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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 100년 기념탑》아래에서
2013년 01월 12일 08시 16분  조회:7668  추천:1  작성자: 최균선
                                      《개척 100년 기념탑》아래에서
 
                                                   (청도)최 균 필
 
    지난 봄, 20여년만에 흑룡강성에 있는 처가마을에 다녀왔다. 청도의 중산공원에 벗꽃이 만개하여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북국의 명주, 할빈 지구에 들어서니 아직도 음달진 곳에는 겨울장군이 퇴각하는 흔적인듯 채녹지 않은 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수화현 흥화민족자치향으로 떠난 뻐스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빈자리를 실었건만 3시간이나 숨가쁘게 내달렸다. 처가마을의 변천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그중에서도 질척거리던 흙길이 세멘트로 잘 포장되여있는것이다. 시원하게 탁 트인 신작로 량켠 에는 금방 물이 오른 수양버들이 여윈 가지를 흐늘거리며 나를 반겨주는듯 하였다.
    차에서 내려 마을어구에 들어서던 나는 저도모르게 못박힌듯 서버렸다. 동시에 감동 그 자체인 탄성이 터져나왔다. 상상밖에도 우리 글로《흥화개척100년》이라고 큼직하게 쓴 검은 대리석 기념탑이 우뚝 솟아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것이다. 글자마 다 금빛으로 빛나고 탑꼭대기에는 전형적인 조선황소가 남향하고 호기롭게 누워있 었는데 디자인이 잘 조화되여 있어 하나의 예술품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누가 주도하여 내놓은 걸작인지 모르나 여기 흥화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기발한 창조물이였고 개척민의 후대들이 튼튼히 뿌리박고 있음을 말해주는 력사의 견증물이 기도 하였다. 비록 대도시인의 신분에 걸맞는 정장을 하고 있었지만 껍데기를 벗기면 뛸데없는 농민의 아들인지라 마음이 숙연해지고 머리가 숙여지였다. 고향떠나 타향살 이 한평생에 처음 느껴보는 감격이여서일가 눈물까지 핑 돌면서 가슴이 찡해났다. 그렇게 이윽토록 굳어져있는데 처조카가 마중나와 나의 감동을 깨뜨렸다.
    나는 조카에게 이 탑을 언제. 누가 세웠는가 하는 등 많은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려는듯 무더기 질문을 들이댔다. 조카의 말에 의하면 15년전에 마을사람들이 한국으로, 연해지구로 대거 떠나면서부터 천여호가 넘던 조선족대집거지가 일시에 무너지고 이젠 겨우 180호 남짓이 남았다고 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북방의 어미지향, 뿌리박은 옛터가 풍전등화가 되는것을 가슴조리며 지켜보던 마을어른들이 잡초가 무성하던 빈집터와 내버리고 간 터밭들에 2년동안 콩과 강냉이농사를 지어 모은 돈으로 이렇게 기념탑을 세우고 주위에 각가지 꽃들을 심어놓아 더욱 이채를 띠게 하였다.
    천하지대본인 농사로 세세대대를 이어오며 이 땅을 가꾸어온 향토에 대한 애착심 은 근간을 굳게 지키려는 로세대들의 충정이였다. 일찍,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허허 만주벌판이였던 이 땅에 새삶의 첫괭 이를 박아 어언 100년의 력사를 기록해왔다.
    흑토지대에서도 곡창으로 이름높은 어미지향으로 가꾸어온 긴긴 세월 그들이 흘린 피땀인들인들 얼마랴! 그렇게 일떠세운 가원은 후대들에게 물려준 값치를수 없는 대물림보배이다. 이런 땅에《개척 100주년 기념탑》을 일떠세운것은 여러가지로 깊 고 깊은 함의가 새겨져있다. 그래서 더욱 하나의 력사적장거인것이다.
     마을은 이미 돌이킬수 없이 황페해졌지만 기름진 논벌에 생명수로 넘치는 거도는 세멘트로 잘 포장되여 있고 량켠에는 애솔들이 불철주야 농토를 지키는 초병인양 줄져서있다. 선진농업국인 일본땅에서나 볼수 있는 수전지대의 현대화농토건설의 모 습이 여기 조선족집거지인 흥화민족자치향에서 새롭게 보니 새농촌건설을 도모하는 정부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 땅의 로농들의 웅숭깊은 향토애 가 얼마나 끈덕진가를 절감하게 되였다.
    청도에 앉아서 풍문으로 듣던바와는 여러가지로 다르게 민족혼이 뿌리채 날려 간것이 아니고 아직도 남은 사람들이 가꾼 향촌의 풍경화는 농민의 아들인 나의 가슴을 달구고도 남음이 있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지만 자기 가원을 굳건히 지켜가는 흥화사람들은 켤코 못난 사람들이 아니다.
    땅을 뚜지며 사는 농부에게는 흙이 하늘밑의 전부이고 삶이며 생활의 가락이고 혼이고 숨결이다. 그뿐이 아니다. 피와 살과 뼈에 이르는 농부의 생명 그 자체이다. 땅이 있어야 고향도 있고 나라도 있고 민족도 있거늘 그 옛날 우리의 보습대일 땅 한 뙈기 없는 비애를 지금 젊은이들은 미처 알지 못하고있다. 그래서 선배들이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이땅을 지켜 로심초사하는것이 아니랴,
   하지만 시대의 역설인가? 여기저기 반상적인 정경 또한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흥화민족향에서 제일 인기를 끌던 민족중학교와 소학교의 햇빛 찬란하던 창가마다에서 랑랑하게 울려나오던 글소리도 시들해지고 민족의 생력군들이 미래를 떠멜 새싹들이 생기발랄하게 뛰놀던 운동장도 괴괴하고 다만 꽃씨 들을 멀리 날려보내고 말이 없는 민들레의 처연한 모습만 나의 지성을 후벼대였다.
    환득환실의 섭리로 시린 가슴을 달래야 하는가? 천여명 학생들이 오구작작 떠들며 우리 말, 우리 글을 배우던 민족교육의 보금자리가 어이 이렇게 되였는가? 지금은 고작 16명 학생을 붙안고 맴돌며 완전페교를 기다리고 있다니 염통이 번져질 일이 아닌가?  민들레밭이 되여버린 학교운동장만 상심을 불러오는것이 아니였다. 흥화향 의 2천정보도 넘는 수전에 벼농사짓는 조선족농민은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촌민위원회는 대지주가 되고 촌민들은 작은 지주가 되여 밭머리에도 얼씬하지 않고도 정보당 7천원을 꼭꼭 받아내며 도시사람들처럼 쌀을 사먹으니 삶의 질적향상일가? 비전이라 할가? 제땅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들이 모두 건달농사군으로 환골탈태 하였으니 변화무쌍한 이 시대의 명물이라 할가부다. 그나저나 흥화촌의 로농들은 외국으로 연해지구로 돈벌러 나간 자식들의 메마른 가슴에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을 안겨주려고 해마다 식수하고 알뜰히 가꾸면서 조상의 개척지를 지키고 있는것만으로 도 다행이요 곁에서 보는 내 마음에도 믿음이 태산처럼 높아졌다.
    더구나 흥화민족향에 2천정보의 수전을 한족들이 일정기간 임대하여 농사는 지을수 있으나 빈집을 사거나 세를 들어사는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흥화촌의 토 정책이 에누리없이 시행되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한족집이 한호도 없어서 불행중 다행이랄가. 그렇게라도 자기의 터전을 지키려는 그 마음이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고 혈관속에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는 탓인지 몇십년만에 처가의 터밭에서 괭이를 잡아보았다. 이랑을 짓고 강냉이, 원두, 감자같은것을 심노라니 땀벌창이 되였지만 넥타이매고 농부의 흉내를 내는것만으로도 기분이 별로였다. 지금은 청도에서 사무한신으로 남부럽지 않게 만년을 호강하며 보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고향에 돌아가서 아담한 기와집이나 사들고 터밭이랑 가꾸고 닭개짐승도 키우면서 인생의 겨울철 살아온 한생을 정리하면서 한적한 농가생활을 하고싶은 충동이 가끔 이는것은 농민의 아들이기때문이리라.
    처가마을을 떠나기전 다시 기념탑아래 오래오래 서있노라니 생각의 갈피들이 억천갈래로 얽히고 서리였다. 세월이 흘러 기념탐을 세운 늙은이들이 세상을 떠나고나 면 산지사방에 뿔뿔이 흩어졌던 후손들이 고향의 땅을 찾아올런지 쓰잘데없는 걱정과 소망에 마음이 더구나 착잡해지는것은 내가 너무 감성적이여서일가? 나는 들꽃 한묶 음 돈독히 묶어서 기념탑언저리에 놓았다. 그리고 흘러가는 백년 조선족마을, 모래알 처럼 흩어져가는 민심의 이변을 이제 또 백년만큼은 지켜달라고 두손모아 빌었다.
     타지방에 적을 둔 로옹이지만 농토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다를데 있으랴, 우리가 스스로 자기 가원을 버린다면 물러설 자리가 없다. 천애지각에 흩어져있더라도 조상  들이 물려준 보배로운 땅을 잃지 말고 넋이라도 있거들랑 고향에 돌아와 울바자 말뚝 을 다시 튼튼히 박아다오. 타향에는 민족의 넋이 잠들 자리가 없느니라.
 
                                                             2011년 9월 10 일
                                                                                               청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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