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http://www.zoglo.net/blog/cuijunshan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이규보의 <동명왕편>분석연구 (소우)
2013년 01월 24일 17시 52분  조회:1029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摘 要
 
李奎报是朝鲜高丽时期诗人。字春卿,号白云居士,京畿道骗州人。他精通经史百家、佛老之书。青年时与“海左七贤”派诗人交游,经常参与他们的诗会活动,深受他们不满现实思想的影响,1190 年登同进士第,曾博览群书,并开始写作。
著有长诗《东明王篇》和《三百零二韵诗》等。他能诗善文,历任高官。在朝鲜文学史上,他是最早一个同情农民、憎恨贪官污吏、描写民间疾苦的诗人。一生写了近万首诗,仅存2000 余首。表现劳动人民生活、关心农民、热爱祖国、憎恨敌人者占多数。奠定了朝鲜现实主义诗歌的基础。
他的经典著作民族诗篇《东明王篇》里收有七千余首诗歌,是朝鮮古代第一部長篇事詩,是神話傳說歷史化和作家文學中“復活”的一個典型例子,具有強烈的幻想和浪漫主義色彩,情節離奇古怪,但有生活依據,偶然中蘊藏著必然性。語言生動活潑,風格豪放雄渾。
 
关键语:李奎报 东明王篇 長篇事詩 風格
 
                                 차 례
서론
연구목적과 의의
기존 연구사 검토
연구범위와 방법
본론
1. 이규보가 살던 역사적, 사회적 배경
2. 이규보의 생애
3.<동명왕편)의 창작과정
4. 작품감상
결말
 
참고문헌
 
                                       1. 서 론
 
1. 1 연구목적과 의의
한국 한문학에서 이규보만큼 그 영향력이 컸던 문인은 찾기 힘들 것이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문집 중 <목은집>과 함께 가장 방대한 양의 것을 남기 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영향력이나 중요성은 적어도 임진왜란 이전까지 는 눅도 비길바가 아니었다고 할 정도이다.
한국문학사에서 기본양식을 갖춘 영웅서사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 기 말엽이었다.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이규보는 1193년, 그의 나이 26세때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지었다.
1.2 기존 연구사 검토
이규보는 고려 중기의 문인으로서 이른바 중세 후기 문학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이다. 그 동안 이규보에 대한 연구성과는 풍성하게 이루어져있다. 그렇지만 이규보에 대한 평가는 각이한 바 능문능리형 관리인 신흥사대부 의 전형이었다고도 하고 권간에 기생한 아첨 인사였다고도 하고 민중과 민족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고도 하고 벼슬을 위해 문학작품을 썼다고도 한다.
1.3 연구범위와 방법
백운 이규보(李奎報)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많은 시문학과 작품들을 남겼다. 본 논문에서는 원형비평의 방법, 해석연구의 방법으로 이규보와 한국문학사 최초의 영웅 서사시인 “동명왕편”에 반영된 문학사상, 예술 특징 및 문학사적 의의 등에 대해서 다시 살펴보려 한다.

                                            2. 본 론
 
2.1 이규보의 생애
  이규보(1168~1241)의 자는 춘경(春卿) 이며,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삼혹호선생 (三酷好先生), 지헌(止軒) 등이다. 시호는 문순(文順), 고향은 황려현(여주)으로, 그의 일가는 그곳의 향리층이었다. 그는 고려시대의 뛰어난 민족 시인이자 탁월한 유물론 철학자이기도 하다.
  20세가 되기 전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미 몇 차례나 사마시에 응시 했으나 관례적인 과거의 문체엔 소홀히 한 탓에 모두 낙방하고 말았다. 21세 때 감시에 응시해 장원으로 합격 하였으며 23세 때에는 예부시에 응시해 진사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중용되지 못하여 오랫동안 천마산 등지에서 은거하면서 ‘백운거사’라 하고 독서와 저작에만 힘을 기울였다.
이 시기는 그의 문학수업에 있어 의미가 매우 컸다. 10여 년에 걸친 은거와 유랑의 생활이 지난 뒤 이규보는 32세에 비로소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최충헌 부자의 눈에 띄어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권신들의 무고와 배척을 받아 수차에 걸쳐 경주, 죽주 등지로 유배생활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가 34세가 되었을 때 남쪽지방 곳곳에서 농민봉기가 발생하자 정부에서는 농민봉기군을 진압하기 위해 직위만 있지 아직 직무는 없던 관리들이나 과거의 급제 자들을 불러들여서 수제에 충당하였다. 이규보는 농민봉기를 국난이라 부르며 적당을 진압하는 것은 관리가 아닌 사람에게 도 책임이 있다 하여 농민봉기를 진압하는 관군에 가담하고 ‘병마록 사겸수제’라는 관직을 제수 받았다.
2.2 이규보가 살던 시대 배경
  12세기 말 고려의 정세로 말하면. 1270년, 문신에 대한 반발과 노역, 생활고에 지친 무인들은 의종(毅宗)의 보현원(普賢院) 행차 때 정중부 (鄭仲夫)를 중심으로 난을 일으킨다. 무신들은 의종을 폐하고 왕의 동생인 익양공(翼陽公)을 명종(明宗)으로 등극시키며, 문신들을 제거한 후 무신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을 구성한다.
  1196년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을 죽이고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하면서 분쟁이 종결되었다.. 최충헌은 명종을 폐위시키고 신종(神宗)을 왕으로 앉힌 후 최씨정권 60년의 기반을 다진다. 최씨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은 덕분에 정권과 민심은 안정을 찾아 행정지식을 가진 문신들의 등용이 확대될 수 있었다.
2. 3 이규보의 문학성과
  이규보는 걸출한 시호(詩豪)로서 호탕 활달한 시풍으로 당대를 풍미 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감상을 적은 즉흥시로 유명했다. 처음 에 도연명의 영향을 받았으나 개성을 살려 독자적인 시격을 이룩했다. 시와 술, 거문고를 즐겨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자처했다. 저서로는 ‘동 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백운 소설(白雲小說)’ 등이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은 아들 이함(函)에 의해서 1241년 고종 28년에 초간 되었는데 전집 41권, 후집 12권, 총 53권으로 편집 되어있다.
3 . 1 <동명왕편>의 창작과정
「동명왕편(東明王篇)」은 한국 최고의 민족 영웅 서사시이다. 처음 이규보 는 세상에서 동명왕에 대한 신통하고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황당하고 기괴하므로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구삼국사 舊三國史〉를 얻어 동명 왕본기를 읽어보니 동명왕 이야기가 "귀(鬼)가 아니라 신(神)이요, 환(幻)이 아니라 성(聖)"이었음을 알게 되었 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당시 스물여섯 젊은 청년 이규보는 <우리 민족, 고려라는 우리 나라야말로 성스러운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이고,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는 민족임을 후대에 까지 알림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자 이규보는 당시 민중들에게 구전되어 오던 설(說)과 구삼국사 (舊三國史)에서 취재하여 우리의 민족적 우월성을 드높이고, 고려가 위대한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다 는 고려인의 자부심(自負心)을 나타내며 성스러운 건국(建國)의 유래를 기록하여 길이 전하려는 의도로 이 작품을 썼다.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갖고자함이고, 아울러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려고 했다.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민중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체적인 문학을 이루려고 동명왕편(東明王篇)지었다. 그의 마음은 혼란스러운 당시의 국가를 바로잡을 영웅의 탄생을 고대하게 했고 이를 동명왕편으로 보여주려 하였던것이다.
4. 작품감상
4.1 구조와 내용
<동명왕편>은 영웅서사시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한시의 한 형태인 오언시 282구로 짜여져 있고, 부연 설명이 필요한 구절이나 사건에는 주를 달아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시 자체만 하더라도 1410자에 이르는 장편적인 분량을 갖추고 있으나, 오언시는 한시 중에서 가장 간략한 형태로서, 기억하기에 비교적 편리하다는 이점을 갖고 있기에 <동명왕편>을 지음에 있어 시적 형태에 대한 이규보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작품의 짜임새는, 머리말에 이어 먼저 해모수를 등장시켜 동명왕의 혈통을 제시 하고, 다음으로 동명왕의 일생, 즉 탄생-성장-시련-투쟁-승리의 과정을 노래하고, 이어서 유리를 등장시켜 후일담을 보여주고, 맺음말로 끝냄으로써 시간적 순서에 따른 순차적 진행의 원리에 따라 ‘영웅의 일생’구조에 부합되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되어 있다. 동명왕의 경우 개인-가문-국가의 역사가 곧 상호 유기적인 관련성을 갖는다는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논리 정연한 짜임새인 것이다.
위와같이 이규보는 동명왕편이라는 최초의 민족영웅서사시를 창작하였다. 그를 통해 도탄에 빠진 자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일체감을 갖도록 하려했고, 기존의 유교 적 합리주의와 중국중심적 역사관에 반하여 자국의 신화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동명왕편은 훗날 역사를 기록한 악부인 '영사악부'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친다.
4.2 이야기 줄거리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성업(聖業)을 이룩한 동명왕의 신화(神話)를 장편 서사시로 쓴 것이다. 이 작품에는 북방 대륙에서 반도에 걸친 광활한 대지와 천상(天上), 해상(海上)의 삼계(三界)를 활동 무대로 영웅들이 각축 한다. 주인공 동명왕의 등장을 예비하는 해모수와 하백의 대결, 동명왕과 부여국 왕자들, 송․양 등과의 대결, 후계자 유리의 시련 등 영웅들의 상호 갈등을 통해 사건이 야기되고 새로운 갈등이 유도되는 것이다. 영웅들의 투쟁 방식은 힘과 힘, 꾀와 꾀, 신통력과 신통력의 대결이다. 이런 투쟁을 통해 부족 사회의 힘을 집결하여 고대 국가 즉, 고구려의 건설이라는 역사적인 대업을 완수해 가는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이 시는 서장·본장·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장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서장에서는 중국의 신화적 인물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동명왕의 이야기가 중국 의 신화나 전설과 마찬가지로 태고의 신성한 자취임을 밝혔다. 본장의 전반부에서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解慕漱)를 주인공으로 삼아 동명왕 탄생 이전에 있었던 일을 노래했다.
장편서사시에서 성인이란 주몽을 말하며, 이규보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국이라는 점을 자랑 스러워했다. 그런데 자부심을 가져야 할 고려국가 의 위상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져 있었다. 이규보는 혼란스러운 국가를 바로 잡을 영웅의 탄생을 고대했다. 백운거사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이규보에게 다시 꿈을 꾸게 하는 것, 그것이 주몽의 얘기라는 뜻이다.
본장의 후반부에서는 동명왕 주몽의 출생·시련·투쟁·승리를 영웅의 일생에 맞게 다루고, 끝으로 주몽의 아들 유리(類利)를 등장시켜 3대에 걸친 행적을 두루 보여주었다. 종장에서는 동명왕의 신성한 자취는 믿을 수 있는 직필(直筆)이라는 것을 거듭 밝히고, 인의(人義)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덧붙였다. 〈동명왕편〉은 중국중심주의 때문에 위축되어 있던 의식을 떨쳐버리고 고대의 자기중심주의를 발전시켜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을 민족의 영웅으로 내세움으로써 문화창조의 방향을 전환시키고자 했던 작품이다.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 부분 주몽의 영웅성은 그의 탄생과정부터 활쏘기 능력, 신비한 힘 등으로 뒷받침된다. 아버지인 해모수와 어머니 유화, 이들은 모두 신(神)과 관련이 있다.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 유화는 강의 신 하백의 딸이다. 두 사람의 결혼은 어딘가 고대적인 약탈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해모수와 하백으로 대표되는 두 부족간의 갈등이 여기에 등장하기도 한다.
주몽의 탄생 이후 성장은 전형적인 드라마이다. 부여왕자들과의 갈등과 시련이 있고,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탈출의 백미는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였다. 뒤쫓는 부여의 추격부대와 위기의 순간, 주몽은 자라와 거북이로 이루어진 다리를 건너 이들을 따돌 린다. 주몽이 만든 국가는 확장 단계에서 비류국과 충돌한다. 그는 굴복 하지 않는 비류국의 송양과 활쏘기 내기에서 승리한다. 
결국 나라를 세운 주몽은 40세에 사망하고, 이후에는 그의 아들 유리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규보가 이 얘기를 통해 남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군주의 얘기다. 그가 유학적 가치가 아닌 신화적 얘기에 몰입했으면서도, 결말에는 다시 유학적 사고로 돌아간다.
창업하는 군주는 성스러워야 한다는 점, 그리고 수성하는 군주는 너그럽 고 어짊으로 왕위를 지키고, 예의로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 이다. 이것이 그가 당시 통치자들에게 할 말이었다. 젊은 시절의 이규보는 무신 쿠데타라는 큰 변란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고려 국가의 위상 속에 초라한 현재의 자기 모습을 대입시키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은 주몽의 영웅적 행적과 위업을 찬미한 작품인만큼 주몽 신화의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그 갈등의 폭을 넓히고 주몽의 영웅적 포부․의지․지혜 등을 더욱 부각시켰다.
4.3 <동명왕편)에서의 시의 함의
<전략>
 
王知慕漱妃(왕지모수비)      왕이 해모수의 왕비인 것을 알고
仍以別室寘(잉이별실치)      이에 별궁에 두었다
懷日生朱蒙(회일생주몽)      해를 품고 주몽을 낳았으니
是歲歲在癸(시세세재계)      이 해가 계해년이었다
骨表諒最奇(골표량최기)      골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啼聲亦甚偉(제성역심위)      우는 소리가 또한 심히 컸다
初生卵如升(초생란여승)      처음에 되만한 알을 낳으니
觀者皆驚悸(관자개경계)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王以爲不祥(왕이위불상)      왕이 상서롭지 못하다
此豈人之類(차기인지류)      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 하고
置之馬牧中(치지마목중)      마구간 속에 두었더니
群馬皆不履(군마개불리)      여러 말들이 모두 밟지 않고
棄之深山中(기지심산중)      깊은 산 속에 버렸더니
百獸皆擁衛(백수개옹위)      온갖 짐승이 모두 옹위하였다
 
왕이 천제 아들의 비(妃)인 것을 알고 별궁(別宮)에 두었더니, 그 여자의 품 안에 해가 비치자 이어 임신하여 신작(新作)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晝夢)을 낳았는데,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상이 영특하고 기이하였 다. 처음 낳을 때에 좌편 겨드랑 이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 [五升]들이만 하였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고,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왕이 알을 도로 가져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더니, 알이 마침내 갈라져서 한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낳은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언어가 모두 정확하였다.
동명왕의 출생에 대해 노래한 대목이다. 출생에서부터 보통 인물과는 다른 신이 (神異)함을 보여 준다. 알에서 나왔다는 것은 건국신으로서의 신성(神聖)함을 드러내 는 것이며, 이런 점을 통해 영웅적 인물의 출생에 대해 설화적 요소가 접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몽의 탄생 과정에서 햇빛이 유화의 몸을 비춘 것은 하늘과의 연관성이 지속되 었음을 의미하며, 그 결과 알을 낳는데 알[卵]은 ‘세계’를 상징 한다. 세계는 깨뜨 려져서 하나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데, 그 창조자가 바로 동명왕인 것이다. 알을 새나 짐승이 보호하는 것은 신성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母姑擧而育(모고거이육)      어미가 우선 받아서 기르니
經月言語始(경월언어시)      한 달이 되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自言蠅噆目(자언승참목)      스스로 말하되 파리가 눈을 빨아서
臥不能安睡(와불능안수)      누워도 편안히 잘 수 없다 하였다
母爲作弓矢(모위작궁시)      어머니가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其弓不虛掎(기궁불허기)      그 활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주몽은 어머니에게 말한다,
  “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오.” 하였다. 그 어머니가 댓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스스로 물레 위의 파리를 쏘는데 화살을 쏘는 족족 맞혔다. 부여(夫餘)에서 활 잘 쏘는 것을 주몽 (朱蒙)이라고들 한다.
한 달만에 말을 하고 화살로 파리를 맞추었다는 것은 주몽이 비범하고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알게 한다. 활과 화살은 바로 제왕의 상징이 된다. 화살은 햇살과 같은 의미로 활을 잘 쏜다는 것은 해를 통어하는 존재,  즉 왕을 의미한다.
 
暗結三賢友(암결삼현우)      가만히 세 어진 벗을 맺으니
其人共多智(기인공다지)      그 사람들 모두 지혜가 많았다
南行至淹滯(남행지엄체)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러
欲渡無舟艤(욕도무주의)      건너려 하여도 배가 없었다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 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 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皇天)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 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주몽이 시련을 극복하고 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노래한 대목이다. 금와왕의 아들의 모해는 성장 후의 위기이며, 이 위기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는 부분이다.
 
形勝開王都(형승개왕도)      형세 좋은 땅에 왕도를 개설하니
山川鬱嶵歸(산천울죄귀)      산천이 울창하고 높고 컸다
自然茀蕝上(자연불절상)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略定君臣位(략정군신위)      대강 군신의 위치를 정하였다  <후략>
 
건국신으로서의 주몽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세운 점을 명확히 밝힌 대목이다. 주몽 신화는 물론 동명왕편도 영웅의 일생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영웅의 일생은 “(1)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다. (2) 잉태나 출생이 비정상적이다. (3) 어려서부터 비범하다. (4) 기아(棄兒)가 되거나 죽을 고비에 이른다. (5) 구출․양육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6) 자라서 다시 위기에 부딪힌다. (7) 위기를 투쟁으로 극복하고 승리한다.”는 7단락으로 되어 있다.
4.4 단군신화와의 비교
4.4.1 공통점
둘 다 삼대기(三代記) 구조이며, 시간 구조에 있어 일치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웅녀(熊女)와 유화(柳花)도 대응된다.
4.4.2 차이점
그러나 이러한 일치에도 불구하고 두 신화는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여준다. 첫째, 단군 신화는 투쟁이나 갈등이 거의 없는 조화로운 세계인 데 반해, 동명왕 신화의 경우는 투쟁과 갈등의 세계이다. 해모수 (海慕漱)와 하백(河伯)의 대결, 주몽과 부여국 왕자의 갈등, 주몽과 송양(松讓)의 대결 등이 그런 것을 보여 준다.
둘째, 단군 신화의 경우 최초의 여자격인 웅녀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변한 것이고,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인간이 태어난다. 그러나 동명왕 신화의 경우 해모수의 상대는 이미 인간이었는데 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알이었다. 즉 난생 설화(卵生說話)의 요소가 중요한 것으로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난생 설화는 동북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것인데 동명왕 신화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4.4.3단군신화의 특징
(1)삼위일체사상
  전체 줄거리가 하늘, 땅 사람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하늘의 환인, 땅의 곰, 사람의 단군이다. 그리고 이 3가지 요소를 환웅을 통해서 결합시키고 있다. 이것은 한민족이 하늘, 땅, 인간의 삼위일체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단군신화가 위 3요소 가운데 하늘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져 있는 것은 한민족의 중심사상이 하늘을 숭배한 것이었음도 알게한다.
(2)홍익인간의 정신
  단군신화에는 한민족의 종교사상, 정치사상, 사회사상이 압축되어 나타나 있다. 그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널리 이롭게 해야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이다.
  역사 서술이 당대의 객관적인 가치관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규보의 이런 남다른 인식은 “창출신의(創出新意:새로운 뜻을 나타냄)”를 내세웠던 그의 시론으로도 뒷받침 되듯이 적극적인 문화창조 의식에서 비롯된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동기는 역사보존의식과 민족자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결 론
 
고구려 시조 주몽의 이야기는 고금을 막론한 유명한 이야기다. 동명왕편은 이처럼 유명한 주몽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민족영웅서사시이다. 그가 살던 고려 중기는 몽고의 침입으로 민족구성원이 몽고에 항쟁하던 시기였다. 또한 무신 집권기로 정치적으로도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 이규보는 주몽이라는 영웅을 소재로 동명왕편을 창작하여 민족주체의식과 일체감, 투쟁심을 기르는데 일조 하고자 하였다.
  당시 문인 지식인들은 대부분 중국 중심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작자는 동명왕편 서문에서 "우리가 중국못지 않은 성인의 나라임을 천하에 알리고자 한다"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처럼 동명왕편은 기존의 유교적 합리주의나 중국중심적 역사관에서 벗어난 창작물임에 또한가지 의의를 지닌다.
서문에서 이규보는 “동명왕의 일은 변화의 신이한 것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고 실로 나라를 창시한 신기한 사적이니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뒷사람들이 장차 어떻게 볼것인가.”라고 하여 역사보존의식을 분명히 하였다. 이어서 이규보는 “그러므로 시를 지어 고려가 본래 성인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민족 자존의식도 뚜렷이 하였다.


참고 문헌
1. 김경수, 이규보 연구, 단국대학원, 1979
2. 이병도 외 20인, 국역동국이상국집, 민족문화추친회, 1982
3. 이기백, 한국민신론., 일조각, 1975
4. 조동일, 한국문학사상시론, 지식산업사, 1978
5. 강동엽, 치웅, 김의숙, 이경수, 한국고전문학의 이해와 분석, 북스힐, 2001
6. 박지선 엮음,『동양고전의 이해』1999, 시인사, 서울
7. 김상훈 엮음,『이규보 작품집』1994, 태학사, 서울
8.. 송현호,『한국 고전문학의 해설』1995, 관동출판사, 서울
9.김창동,『고구려 문학을 찾아서』2002, 도서출판 박이성, 서울
10.정우락『李奎報 文學論의 哲學的 基底』,
11.권태효『東明王神話의 形成過程에 대한 一考察』,
12. 전형대 저,「이규보의 삶과 문학」홍성사, 1983년
13. 정병헌「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파주 : 돌베개, 1998년
14. 이지영,「한국문학작가론 1」황패강 외 집문당 : 2000년
15. 김진영 ․ 차충환「백운거사 이규보 시집」서울 : 민속원, 1997년
16. 민병수「이규보의 시세계」『한국한시작가연구』, 태학사, 1995년
17. 송준호 『한국명가한시선 1』문헌과 해석사, 1999년
18. 하강진『이규보의 문학이론과 작품세계』세종출판사, 2001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20 인생살이 이모저모 2019-02-26 0 4321
819 (잡문) 진실과 허구의 비애 2018-11-26 0 4419
818 (잡문) 인간다운 삶, 비인간적인 죽음 2018-11-23 0 4555
817 (잡문) 땅, 바다, 하늘 그리고… 2018-11-23 0 4595
816 (잡문) 웃기는 참회 2018-11-16 0 3597
815 (잡문) 시와 시인의 아리러니 2018-11-09 0 3527
814 숲속의 대변론 2018-11-09 0 3652
813 그저 미중부족만이 아닐세그려 2018-11-09 0 3491
812 (잡감) 우문현답 2018-10-05 0 3702
811 (잡문)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2018-10-05 0 4009
810 (칼럼) 문학사랑 인간사랑 2018-09-30 0 3828
809 (수필) 구름에 실어본 명상 2018-09-28 0 4192
808 (문화칼럼) 문학혼 2018-09-20 0 4107
807 (잡문) 작가의 량지 2018-09-20 0 3959
806 ( 잡문) 작가정신을 기리다 2018-09-20 0 4191
805 ( 칼럼)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2018-09-20 0 3666
804 (잡감) 숙명인가? 비애로다 2018-09-14 0 3557
803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2018-09-03 0 4315
802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2018-08-24 0 4600
801 딱해진 우리네 문학 2018-08-18 0 3810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