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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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약의 안팎
2014년 03월 23일 17시 08분  조회:6101  추천:2  작성자: 최균선
                                                          강약의 안팎
      
                                                                    진 언
 
    “소가 크면 왕노릇하냐?”라는 속담이 있는데 시비도리가 먹통이여서 “힘이 쎄다” 를 경모하던 아이적에는 공부를 잘하면 선생님에게 곱게 보였지만 또래들속에서는 흔히 “똘개지”가 되는게 보통이였고, “삼년묵은 돼지”는 선생님의 눈밖에 나있지만 아이들속에서는 대장님이여서 주먹이 약하면 그앞에서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야  했다.
    대저, 강자를 두려워하고 강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것이 약자의 보편적심리이며 인생유희장에 잠규칙이고 순리이다. 하지만 톡소플라스마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천적인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생충덕에 약자가 강자가 되는셈이다. 이처럼 역으로, 강자가 약자의 눈치를 보거나 약자가 강자에게 그동안 받은만큼의 굴욕과 피학대를 되돌려주는 현상도 비일비재이다.
    무릇 어떠한 사물, 현상이든지 존재적전제가 있거니와 만물의 변화발전에도 전제가 있기마련이다. 우리들중에서 누구든지 대전제에서 도망치지 못하는데 바로 강약의 전제도 포괄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개념이다. 강자가 약자앞에서는 거센체 하지만 더 센놈앞에서는 장담할수 없다. 절대강자란 어떤 시각에 존재하지만 절대적 약세로 되는 인간세상, 어제까지도 떵떵거리던 자도 순식간에 집떠난 강아지가 된다.
    근간에 륙속 락마하여 볼장을 다본 모모한 인물짝들이 많은데 운수가 기울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서 호령질하던 자들도 거꾸로 박히는것을 말려내지 못한다. 어찌되 였든 그도 이 사회에서는 개체일뿐이다. 국가, 사회라는 거대한 거륜에서 아무리 큰 나사로 박혀있었다해도 녹쓸고 이발이 엇긋났거나 무디여 못쓰게 되면 빼버리기 마련이다. 이것은 사회운행의 법칙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젠체했으니 얼마나 명지한가?
    세상은 넓고도 좁다. 화복은 무상하다. 그만큼 세상만사가 차일시피일시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있을 때 안하무인이다가 일단 계하수가 되여지면 김빠진 자전거바퀴처럼 후줄근해지는데 보통사람들과 다를게 없다. 자신이 학대하던자와 한철창에 갇히여 보복을 당하게 될때는 더없는 약자로 거듭나게 되고 뒤늦게나마 인간학대가 얼마나 못할짓인가를 때늦게 절감하면 죽을맛일게다. 그래서 인과보응이라 하는게다.
    우리는 드라마들에서 인간이기를 그만둔듯 약자에게 잔인하기 그지없다가도 상전앞에서는 강아지처럼 꼬리치는 너절한 형상들을 많이 본다.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가?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더 똑똑하기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었을것이다.ㅡ웩, 더독” 사자앞에서는 면양이고 면양앞에서는 사자가 되는것도 인간성의 본질인지 아니면 강약의 변증법인지 모르지만 가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곤충은 결코 나쁜본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한다는 본능때문에 사람의 살을 찌르는데 량자의 경우는 같지않다. 인간의 동물성은 인간의 외재적체험이고 인성이란 인간의 내재적인 본성이기때문이다. 이처럼 운수가 곤두박질해 자신이 그 형틀에 매달리게 되면 그 처절한 몰골에서 막무가내한 강약의 비애를 느끼며 진저리칠것 이다. 결국 강자인체 너덜대는것은 그 자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위치 혹은 권세가 강했을뿐, 그러나 보통 자신이 강자인것으로 착각하니 딱한 동물이 되는게다
   소위 강함은 상대적인 강함이자 정체로서의 강함이기도 하지만 매개 국부에서도 시종 강한것은 아니다. 정체적으로도 강하고 국부에서도 강하다면 절대적강자이지만 어느 한면에서만 존재한다. 환언하면 존재가 결속되는 그 지점에 있지 사물발전의 전 과정에 존재하는것이 아니란 말이다. 약자앞에서 횡포무도하고 강장앞에서는 침먹은 지네가 되는 그런 비겁한 넋들에서 인간본연의 원초적비애가 재연되는것이다.
     싸담이나 카다피같은 괴물들이 권력의 지고지상에 자족하다가도 일단 몰락하면 물에 빠진 개신세가 되여 보통인간보다 더 처참하다. 인간공동의 나약성, 비겁성을 스스로 짓씹는 랑패상들이 동서고금의 력사에도 있었거니와 동서양 국제무대에서도 그런 진행형의 주인공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강자의 비애인가? 약자로된 처절함인가?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ㅡ우리 모두의 비애는 아닌가?
    로자의 물극필반(物极必反)세강필약(势强必弱)이라는 큰도리로 설명할 계제는 아니겠지만도 하루앞도 내다볼수 없는 인생마당에서 너무 우쭐대지 않는게 인간답고 명지하다. 화무십일홍(花十日紅) 이요 달도 차면 기울고 극한으로 성하면 곧 쇠하고 강풍은 아침나절 내내 불지않는다. 한때 기고만장하여 자기눈에 난 사람들을 박해하는 등 상식이하의 악행을 서슴치않던 강청이 마침내 계하수가 되였을 때도 역시 강자였을가? 아니면 약자의 절망에 목메였을가? 아무튼 그가 “강자”가 되기전에는 뛸데 없이 앉아서 소변보는 보통녀자에 불과했다. 권력이 곧 강자를 만들었을뿐이다.
    개체현상만이 아니다. 일찍 중국대지를 멍석말듯하고 동남아를 휩쓸어 천하무적이라며 “도즈게끼”를 울부짖던 대일본황군도 무조건투항하던 그 시각에는 추풍락엽이 되여진 절대적약자가 아니였던가? 이처럼 영원한 강자란 없다. 도처에서 방화살인하며 산사람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들고 너털웃음치고 흉악무도하게 사람의 머리를 풀베듯하였던 그 “절대강자”들의 기염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때 그들은 강약의 변증법에 개탄했을가? 하면서도 자존심은 살아서 20년후에 다시 돌아온다고 나발불었다. 오늘 승냥이의 그 본성이 살아나서 다시 울부짖고 있으니 강약의 륜환인가?
    강약의 호상전환의 전제는 무엇일가? 강자가 주관상에서 시행착오를 범하는것은 강자가 약세로 전락하는 전제의 하나이다. 사람은 누구나 착오를 범할수 있다. 국가도 례외가 아니다. 만약 범한 착오가 치명적이라면 강자로부터 약자로 되는것은 필연적이다. 전화위복이란 진리성의 속담이다. 별볼일없는 존재로 여기며 깔보던 나라도 언젠가는 훌쩍커서 강국으로 되는 사례가 있다. 약소국의 강성이 그례로 될것이다.
    환경의 변화역시 하나의 전제다. 무릇 강하든 약하든 모두 환경속에 존재물이다. 강자의 철학은 강자들에게만 통용된다. 반대로 약자로부터 새롭게 부상한 강자의 철학은 약자들의 계률로 될수 있다. 인간격투로 살륙의 향연을 즐기던 로마황제들도, 유럽대륙까지 말발굽 들띄우던 몽골대제국도.오스만제국의 멸망사도, 한조의 성쇠도, 고구려를 짓밟으려던 리세민의 부끄러운 참패도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란 없다는것을 증명한 력사규률이다. 인간이 벌리는 그 모든 희비극은 종막이 없을리없기때문이다.
    아무리 높은산도 하늘아래서 끝난다. 지금 미국의 인권지상주의, 신간섭주의를 두고 세인들은 “세계경찰” 이라 호칭한다. 종횡무진하는 “세계경찰”이 아직은 더높이 오를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섭리대로 쇠망의 길로 내려오게 되여있다. 약자의 슬로건은 평등으로서 수요하는것은 정의와 극한이다. 그런 극한정신은 불가전승이다.
    사자를 꾀여 우물속에 처박은 토끼이야기는 동화이지만 “토끼”가 “사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례하면 아메리카사자앞에 토끼같던 윁남을 한입에 삼키려들었던 미군이 결국에는 철저히 패배하고 도주하지 않았던가? 착오적인 시간에 착오적인 곳에서 착오적인 대상과 싸웠기에 세기적치욕으로 되였다고 개탄하였다는 조선침략전쟁에서도 기세흉흉하던 월가의 전쟁장사군들이 보기좋게 코대가 꺾이지 않았던가?
    죽음을 각오한 항전앞에서는 약자가 강자로 전환될수 있다. 정의의 분노는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악에 받친 반발심은 괴력을 과시한다. 강자속에 약자가 있고 약자속에 강자가 있는데도 강자의 비극은 변화를 모르는데 있다. 더우기 갖잖은 호가호위는 웃기는 작태로서 이불안에서 활개치는 징한 모습은 세상의 조소를 요청하고있다. 이 역시 눈물겨운 민족의 비애이다.  

                                   2013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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