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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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철학만세!
2014년 11월 07일 20시 00분  조회:5801  추천:1  작성자: 최균선
                               변화철학만세!
 
                                     진 언
 
   식자치고《주역(周易)》이란 고서가 있다는것을 모를 사람이 없을게다.《주역》을《역경(易经)》이라고도 하는데 책제목에서 시사하다싶이 “변화철학”저서이다. 어떤 학자가《역경》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인식하는 세가지원칙 즉 “변이(变易), 간이(简易), 불이(不易)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개괄했다.
   “변이(变易)”란 즉 우주만물은 모두 부단한 변화속에 있기에 매시각마다 새롭다는것이며 “간이(简易)”는 즉 소유의 변화하는 사물이 아무리 복잡다단하든, 얼마나 불가사의하든 모두 간단한 규률에 좇아 변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천지간에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것은 바로 변화일진대 바로 절대진리가 아니겠는가? 변화는 사람들에게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래일은 또 오늘과 다르며 심지어 일찰나에 변하지 않은것이란 없다는것을 깨우쳐주고있다.
 《주역》기본원리는 우주와 자연의 운행법칙의 변화의 철학이다. 즉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인데 이를 줄여서“궁즉통(穷即通)”이라한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으로 변화가 있어야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본전제인 궁(穷)의 뜻이다. 단순히 “곤궁하다”는 의미가 아니라“궁구하다(穷究ㅡ속깊이 연구함)”,  “다하다”를 가리키 는것으로서 결국“최선을 다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있는바 림시방편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궁하면 통한다”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자연의 변화를 보라. 자연은 위대한 주재자이다. 자연의 조직체계는 완벽하다. 자연의 변화는 섭리이다. 자연의 섭리는 바뀔때 바뀌지 않고 변할때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못하는 생명의 리치다. 자연의 섭리란 자연계를 지배하고있는 원리이다. 되돌아와 인간의 신체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 그리고 치국지도의 변화도 모두 자연의 질서와 어긋나게 역행할수 없다. 지구촌을 휩쓸며 흉용팽배하는 변화의 물결시대에 변화철학만이 만병통치약이다. 개체도, 군체도, 국가도 그렇다.
   물론 변화에도 긍정적, 부정적요소가 잠재해 있으므로 변화철학을 투철히 파악하고 능란하게 운용해야 한다. 변화란 바라는것이 될수도 있고 두려운것이 될수도 있다. 변화의 격랑속에서 기득권상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수파라 하는지 모르지만 보따리를 헤치기도 무섭고 아니헤치기도 두려워 그냥 현상태유지를 고집한다면 전진은 물론 향상도 기약하기 어렵다.
    개인이든 사회, 국가이든 위기는 변화의 물결이 주는 충격이라 할수 있다. 많은 욕구는 비교로부터 자극을 받아 부단히 확대되고 이미 충족된 욕망은 새로운 욕망과 충돌하면서 갈등과 불안을 증폭시킨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고 누군들 배겨내랴, 그런데 우리에게는 “사회변화”라는 말을 념두에도 두지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하여 처음엔 상전벽해처럼 느껴지던 개혁,개방이기도 하였던것이다. 자고로 피동적이든 주동적이든 변화를 갈망한것은 “주리고 종된자”들이였지만 누가 감히 웨쳤던가! 
   사람의 앞일은 한치앞도 모른다는 말은 세상사의 변화다단함을 예측할길 없다는데서 생긴 말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개체가 변화의 규칙과 방향을 파악할수 없을 때 생활은 시시각각 불안과 공포속에서 떨게 될것은 자명하다. 생명은 운동에 있다고들 말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속절없이 죽어가는것과 다름없다. 하기에 변화에 림하는 최적의 자세는 변화자체를 정상적인것으로 받아들이는것이다. 물론 받아들이지 않아도 변화자체는 그냥 진행형이다. 그래서 력사는 뒤걸음질을 모른다고 하는것이고,
   그런데 도리를 안다는것과 행동에 옮기는 일은 별개이다. 현대문명사회에서 많은 도리를 아는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알고있는 도리를 스스로 열심히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마다, 나라마다 성공, 번영창성에 이르는 “공통분모”가 있다면 아마도 변화 그 자체일게다. 변화를 갈망하는 꿈, 변화를 추구하 는 도전, 변화를 실천하려는 열정, 변화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 더 큰 변화를 향한 희망 등 그 모든것이 그 자신, 그 자체의 능력이고 원동력이다.
    변화하려는 꿈과 열정은 내안의 가능성이다. 내가 가지고있는 에너지의 가능성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에너지의 실체다. 바로 이것을 나의 잠재력, 자아발견의 단계라한다. 변화를 추구하는 도전은 선택문제다. 인생에 세번의 기회가 있다지만 자신있게 선택하는 도전의식이 없다면 수십번 와도 진정한 기회가 되지 못한다. 변화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성은 번데기가 나비로 되는 과정의 모지름과 고통에서 배워야 할것이다. 통통한 번데기의 몸집에서 바늘구멍보다 조금 큰 구멍으로 비집고 나오는 나비, 나비가 되기 위한 그 극적인 장면이 감동적이지 않을수 있으랴!
   챨스 코언이라는 생물학자가 번데기가 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을 보고 나비들의 고통에 안타까움을 느낀나머지 번데기의 구멍을 가위로 잘라주었다. 나비들은 번데기의 구명으로 쉽게 세상을 보았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가위로 잘라준 구멍으로 헐겁게 나온 나비들은 곧바로 날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힘없이 뒹굴었다. 날개 역시 스스로 탈바꿈한 나비보다 아름답지 못했다. 결국 새 생명의 탄생순리에 따라 제대로 진화하지 못하면 날수 없는 나비가 되고마는 생물학적인 원리를 알려주고있다.
   나비가 고치의 작은구멍을 아득바득 빠져나와야 했던것은 앞으로 살아갈수 있는 한 과정이였기때문이다. 나비가 작은구멍을 빠져 나오려고 애쓰는 동안 그 몸통에서 액체가 나와 날개를 적시게 되고 그러면서 단련된 날개가 날수 있는 힘을 얻는것이다. 그렇게 외부적, 내부적압력과 시련을 겪으며 환골탈태한 나비는 얼마나 장한가! 우리는 나비를 낳는 번데기의 변화과정에서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을 련상할수 있으며 코언박사처럼 변화의 규률을 어기는 친절한 “해방자”들을 흔상하게 된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던가? 변화하려는 마음은 객관적으로 촉동받을수는 있어도 누가 통채로 주지 않는다. 곁에서들 “변해라, 변해라!” 하고 독촉하거나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그 집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확실한 변화조짐을 지켜보고있습니다. 동네여러분, 많이 지지하고 기도해주세요”라고 너스레를 떠는것은 그저 싱거운 작태만이 아니다. 내인이 일체를 결정할뿐이라는것을 모르는 우자이다.
   남이 잘되면 내일처럼 진정 기뻐하는 사람을 누가 얼마나 보았는가? 옛날 우리 마을에 지지리 못살아서 뒤손가락질을 받던 집에서 아들딸들이 다 크자 살림이 꽃펴나고 사는듯이 살자 “흥, 잘사는가봐라”하고 방정을 떨던 아낙네는 할말이 없게 되니 “그래도 우리 집과 비하면 어림없지,”하고 비아냥거리는 악습을 털어댔다.
   세속인심은 원래 남이 잘못되면 잘코사니를 부르고 잘나가는듯싶으면 심술이 동하는것이다. 물론 기질적으로 못돼먹은 자들에 국한되지만 너무많다. 이런 자들은 남의 성공을 자기의 잣대로 재이며 콩이야 팥이야 하기좋아한다. “천덕꾸러기”번데기로부터 꽃나비가 나와 훨훨 날때, “네가 잘한탓이 아니라 옆에서 왼심을 쓴 덕분이야,” 하고 야살스럽게 논다면 번데기만도 못한 비릿한 존재들이다.
   변하라고, 변해야 한다고 분주를 피우는 자들은 특정대상이 정작 변화의 징조를 보이는듯싶으면 음으로 양으로 저애하려고 왼새끼를 꼰다. 결국 고양이 쥐생각인것이다. 탈피하는 아픔과 시련이 없는 변화란 없다. 역경을 헤치고 변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은 거룩하다. 좋은 변화를 바라지 않을 바보는 세상에 없다. 그러나 아전인수하려는 어떤자들은 나쁘게 변하기만 바라니 야바위군이 아닌가?  

                                                 2014년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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