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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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화석”에 새긴 감회
2015년 09월 03일 18시 53분  조회:5090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력사의 “화석”에 새긴 감회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여라!” 그 누구의 호연지기인지 몰라도 가슴에 새긴지는 오래다. 하지만 나는 대장부가 못되여 북경에 두세번 다녀오면서도 장성에 올라 충천하는 의기를 뽐내볼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있었다.
    이번에 어쩌다 만리장성에서 가장 정화이고 대표작이라는 팔달령에 올라서 감개무량함에 젖어보게 되였다. 1억2천만을 헤아리는 유람객들을 맞고 보낸 명승지이니 장성에 관한 미문과 송가인들 얼마이랴,
   장성에 대한 찬가에서 주선률은 우선 인류의 걸작으로서 고대중국인민들의 땀과 지혜의 결정이고 중화민족의 넋이며 상징이고 교오라는것이다. 정말이지 허위단심 장 성에 올라서 처음 느껴진 감각은 력사적실재감과 질감이였다.
   장성은 력사적유적이라고 하지만 일종 력사의 “화석”이기도 하다. 력사란 별로 믿을것이 못된다. 종이에 기록한것이든 그려놓은것이든 반신반의하게 될뿐이다. 특히 정사(正史)라는것은 승리자가 쓴것으로서 거기에 소위 3휘(三讳)라는것이 붙어서 력사의 진실이 많이도 배제되여있는것이다.
  “야사”라는것도 오늘날 영화들에서 무슨 “희설(戏说)”이라는것의 선조에 불과한것이여서 믿을바가 못된다. 무릇 어느 민족으로 말하든 력사적인 건축물이야말로 력사의 진실한 기록으로서 그 민족이 생활한 시대적특징을 시사해준다.
   이를테면 애급의 금자탑은 당시 애급인들이 얼마나 정밀한 기하학을 장악하고있 었는가를 알려주고 중국의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그 강포와 전횡속에 숨겨진 허약성과 잔포성을 잘 알려주며 이미 력사의 페허로 된 원명원이 락후한 민족의 필연적인 운명을 말해주듯이 말이다.
   정말이지 험산준령을 한줄에 꿰여 연연 만리를 뻗어나간 장성의 경관에서 주요한 미는 숭고의 미 즉 장려함이다. 이미 퇴색하고 현대인들의 손길에 다듬어진 장성이지만 자체의 건축미와 자연미의 고도의 융합으로서 심미형식과 비극정신의 내함의 통일 체라고 말할수 있겠다. 장성의 미의 래원은 무엇보다 2천년을 내리 간직해온 깊은 정신적내함으로서 이런 정신의 내함을 누군가 “비극정신”이라고 개괄하고있다.
   장성은 력사가 후세에 남긴 감탄표로서 강렬한 생명의 절주감을 느끼게 했다. 이런 절주감은 자연에서 오는것 같았다. 높은것은 련산련봉의 릉선우에 길게 드러누웠고 낮은것은 아찔하게 깊은 계곡을 꿰여들었다. 장성의 절주감은 횡적인 기복운동에 만 있는것이 아니라 종적인 연신과 확장에도 있었다. 그야말로 여기 장성에서 하늘 높고 땅이 두터운줄을 더욱 실감하게 되였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붐비는 유람객들에게 부대끼며 천하운관을 바라보노라니 실용성공능을 상실한후 일종 거대한 심미공능만을 고스란히 남겨놓고있다는 실락감이 가슴 그들먹하게 괴여올랐다. 과연 만리장성이 기적인가, 아니면 치욕인가? 중화민족 의 문명을 대표하는가, 아니면 락후함을 대표하는가? 보수의 상징인가, 아니면 불요불굴의 상징인가? 나약함의 상징인가? 아니면 용감함의 상징인가?
   장성에 오른 사람이라면 우선 그 장엄함에 숙연해지고 뒤이어 찬탄이 흘러나올것이며 고대민족의 지혜로움과 용기에 탄복할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랭정히 반성해 보면 결과적으로 력사의 기적으로 남았지만 외세의 침입을 막아보려 한 무용(无用)의 군사방어공사이다. 사실 만리장성은 오늘까지 하나의 외적도 막아낸적이 없었고 한촌의 국토도 지켜낸적이 없었다. 대신 시야를 막은 엉성한 울타리로 되여 오가는 락타떼의 방울소리를 끊어버렸다. 만리장성은 모욕당한자자가 사후에 찬 쓸모없는 정조대이고 유약한자의 정신적 지팽이이다.
   어찌 생각하면 비장한 생명을 쌓아 연연 만리를 뻗어간 묘지같기도 한 장성, 매 하나의 검은 별돌장마다에서 원혼이 신음하는듯싶었고 매 하나의 틈서리에서 낮사흘, 밤사흘 대성통곡한 렬녀 맹강녀의 피울음소리가 새여나오는듯싶었다.
   비바람 사나운 밤이나 설한풍에 돌뿌리마저 얼어튀는 그런 밤이면 만리에 쌓여진 혼백들이 천고의 한을 공소하는지 누가 알랴!영원히 흐르는 강하의 모래알같은 생명, 바다같은 피와 눈물은 단지 황제가 만리강산을 베고 편안히 자게 하기 위해 황궁의 담장으로 쌓아진것이라고 하면 력사유물의 가치를 너무 폄하하는것일가?
   통치자들은 천백년래 허황한 신화로, 제국을 지키는 문신으로 삼아왔고 무당의 주문을 요귀를 굴복시키는 령험한 부절로 삼았지만 금군의 창끝이 너무나 가볍게 찌르고 들어와 누르하치의 들뛰던 말발굽아래 장성이 소스라쳐 전률했으리라. 군기는 찢기고 시체들은 장성아래 즐비하게 널렸는데 눈이 빨개진 들개들이 려염집“처녀들의 꿈속의 사람”을 물어뜯고 있었으리라!
   장성에 깃든 공과 죄를 그 누가 한마디로 저울질할수 있으랴, 장성에 대한 찬가속에서 맹강녀의 통곡소리를 방불히 듣는듯하다면 너무 감상적일가? 장생불사하며 부화사치한 생활을 누리고 진왕조를 만년대계로 이어가려던 진시황의 사나운 욕심은 타매받아야 하는가, 공덕을 기려야 하는가? 석양이 끝없이 뻗어간 장성을 묵묵히 굽어보고있다. 련봉마다 푸름이 우거지고 풀벌레의 울음소리에 귀가 따가운 시절이면 해묵은 력사의 견증자, 장성도 생기를 띠려는가?
   장성은 우주공간에서 볼수 있는 지구촌의 유일한 흔적이라지만 물리광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연구가 나와있다. 장성은 위대한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 우매의 표징이기도 하다. 장성은 가슴을 열지 않아 마침내 허물어지고 그 허물어진 틈서리로 들어온 동서방의 유람객들이 웃고 떠들어친다. 그들도 수십만 로동인민의 해골을 밟고 선듯한 느낌을 물리칠수 없으리라.
   이른봄 2월, 서산에 기운 해는 랭랭하고 서북풍에 나무가지들만 몸부림치는데 상념만은 오히리려 무성해진다. 장성이 깊이 뿌리내린 험봉들도 말이 없고 우러러보아 피빛하늘도 무심하다만 한소리 불러보고싶었다. 불우했던 미인 왕소군이 눈물을 삼키며 새외로 나가던 기구한 길은 어디서부터 사라졌는고?
   유구한 력사를 전진도상의 보따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력사유적을 잘 보존하면 선인들의 덕을 계승하여 전철을 밟지 않을수 있다. 력사를 잊은 민족은 력사의 음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위대한 력사유적을 화석으로 만들거나 인위적으로 페허로 만든다면 역시 력사 자체를 페허로 만드느 극히 무지하고 몽매한 짓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만 도취되여있다면 돌이켜보는 그 눈은 자호감을 가지더라도 노루친 막대 삼년 우려먹듯이 그 시각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 력사의 페허에서 래일을 내다볼줄 알아야 진정 전진의 동력을 얻을것이다.
 
                         2006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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