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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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69) 지식분자를 재론함
2017년 10월 12일 19시 23분  조회:225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지식분자를 재론함
 
                                      진 언
 
    지식분자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복합개념이다. 지식을 가지고 있다해서 지식 분자인가? 학벌이 높다해서 지식분자인가? 전문인소는 지식분자로 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기실 좀 공부하면 일정한 지식이 있고 학력을 가진다. 소학교 학력도 학력이라 지식의 다소, 깊고 옅음, 고저가 있을뿐이다. 지식분자도 사람이므로 인격 력량과 정신경계, 이미지로부터 착안하여 가늠해야 할것이다.
    실러는“지식분자는 사상을 위하여 생활하는 사람”이고 “반드시 그 시대의 사회비판자, 현유가치의 반대론자여야 한다”고 단언했다. 례컨대 소크라테스식의 사명을 리행해야 지식분자의 계관을 쓸수 있다. 지식분자의 인격의 핵심은 독립정신과 창조능력이다. 이 시점에서 중국에는 재래로 걸어다니는 책뒤주는 많았지만 명실공히 우러를만한 지식분자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고 말하는것이다.
    지식분자의 본질적특징은 무엇인가? 진정한 지식분자는 일체를 시비에 의거하기에 일단 옳다고 판정되면 끝까지 해내고 아니라고 생각되는것은 하지 않으며 그 어떤 정황에서든지 이 원칙을 고수한다. 진정한 지식분자는 누가 정보를 제공해주어도 무작정 채납하지 않으며 비방하고 모욕중상해도 고매한 지조가 흔들리지 않는다.
    훌륭한 지식분자는《오직 시비를 따질뿐 일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로서 자기의 사상과 견해에 충실할뿐 류행되는 사상을 따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사상, 언론을 호불호의 정서로 대하지 않는다. 서방에는 독립적인격을 상실하고 사회풍조에 따르거나 권세에 붙좇아 대변자가 되고 부정축재에 왼심을 기울인 지식분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인문환경에서는 그런 지식분자가 많이 배출될수 없었다.
     세상이 그를 매몰시키려하고 박해해도 이미 각오하고 있었기에 불가피한 최악의 경우도 과감히 맞서서 정시한다. 부귀영화도 진리를 추구하는 그들의 열정을 앗아가지 못한다. 지식분자의 생명은 학문연구에 있고 이를 비판하는것은 운명적으로 부여된 사명이다. 중국의 저명한 인구리론가 마인초(马寅初) 선생이 그 귀감이 되기에 손색없다. 그는 일찍 20세기50년대초에 인구에 대한 선견지명을 내놓았으나 최고권위의 일언지하에 이단자로 전락되였다.
    주은래가 견해를 바꾸고 잘못을 승인하라고 권고하였지만 태산이 짓눌러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는 자기의 지조를 지켜냈다. 하여 북경대학교장의 직위에서 쫓겨났고 나중에는 령어의 몸이 되였으나 시종 권위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가장 현명한 재판관인 시간이 그가 옳았다는것을 증명하고 루명을 벗었으나 오늘날 보다싶이 중국은 너무나 커다란 대가를 지불하고 있을뿐만아니라 어떻게도 만구할수 없게 되였다.
    이렇듯 지식분자는 마인초선생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 중국에 저명한 지성인인 진연각(陈寅恪)선생도 지식분자에게서 중요한것은《독립정신과 자유적사상》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야말로 지식분자의 생명이다. 지식분자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명을 지닌사람으로서 진리을 지키기 위하여 옹근 시대에 반기를 든 일들이 희귀한 일이 아니였으나 거개 생명대가를 치렀다.
    그러므로 열혈지사는 동양지식분자의 기본선택이 아니였거니와 또 선택일수도 없었다. 안전감이 결여한 처지에서 그들은 자유적리념에서 도망쳐나와 독립자주성을 버려야 했다. 생존위기는 절대다수가 자기의 정신가원과 사상진지를 포기할수밖에 없게 하였다. 자아보존의식만큼 더 중요한것이 있으랴, 환경의 압력하에 생존력량은 지식인의 인생에 결정적인소가 되여질수밖에 없는것이다.
    지식이 곧 죄이고 지식을 가진자는“고린내 나는 아홉째(臭老九)”로 불구대천의 죄인이던 시대, “지식이 많을수록 반동(知识越多越反动)”이라는 기특한 관념이 당시의 구호로까지 되고 공부를 적게 할수록 더좋다는 “명언”이 되여 “독서무용론”까지 만연되던 시대에 비교하면 이런 개념들이 엄청 곤혹스럽지 않으랴. “아는것이 힘”이 라는 베이컨의 말도 있는데 사회문화발전을 추동할 “힘”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때는 그리도 미움을 받아야 했는지 알고도 모를일이다.
    일찍 “초계급인성이란 없다.” 지식분자들이 고취하는 인성이란 “실제상에서 자산계급개인주의다.”라고 하였는데 인간의 량심마저 부인하는 극치에 이른 시대였다. 하여 수많은 비겁한 지식분자들속에서 밀고풍이 성행되였고 령혼을 팔고 사람을 물고 늘어지고 사람을 잡는자가 관운형통(官运亨通)으로 되는 사이비인문풍경이 그려졌다.
    그리하여 독립과 비평은 일반적으로 중국지식분자의 가치관과 전통이 아니였으며 더구나 추구일수 없었다. 고대중국의 지식인들에게는 자기의 견해나 계책을 위정자가 채납하면 더없는 영광이였다. 이러한 가치취향이 존속되여왔기에《대동란》시기 진시황의《분서갱유》도 긍정하는 글을 쓴 야비한 어용문인도 나왔다.  
    그런 피바람에 지식인들의 독립인격, 독립사고능력을 운운할 나위가 있었으랴, 지식분자의 량지는 비틀어지고 문인의 기본품격인 골기는 마침내 뼈도 추리지 못하게 되였다. 그로써 치유불가의 후유증을 낳았고 문인의 량지와 골기는 오늘날도 자못 삼가할바로 되였다. 시대는 변했다. 오늘의 중국은 30년전의 중국이 아니며 지식인들도 30년전의 지식인들이 아니다. 현대중국지식인은 리욕적인 자아로, 명리추구의 자아로 모습을 바꿨다. 지식정보사회, 지식경영시대의 지식인들은 더는 배고픈 소크 라테스가 되려하지 않는다. 부귀영화의 벼슬을 갈구하는 지식인들이 갈수록 많다. 기실 그리된 후에는 더는 지식분자라 칭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실제상 독립사상의 조건을 포기고 권력체계속에서 독립적사고 혹은 창신성이 발휘될수 없기때문이다.
    지금 신주대지에 넘치는것이 문인들이지만 진정한 문인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문인은 문인으로서의 지조가 있고 골기(文骨)있어야 한다. 문인들이 고유의 품격을 상실했다는것은 진정한 문화인의 타락과 상실을 의미한다. 전통적문인은 우아했고 현시기 문인들은 속되며 구시대의 문인은 문장을 근본으로 하였지만 현시기 문인들은 글을 사다리로 삼는다. 지식과 학위로 득세하려는 자아로써 자신의 력량을 그 어느 시대의 지식인들보다 더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영위한다고 자긍한다.
    지식인의 이런 확신은 천재의 시기로 명명되였던 서방근대사에 비교하면 허황하기 짝이없는 자족심리요 자기 기편이다. 실력보다 명분이 앞서고 소신껏 일하기보다 얼렁뚱땅 적당히 둘러맞추고 침소봉대하는 기량만 있으면 웅장과 고기를 다 제염낭에 넣을수 있다. 다른 업종처럼 산품을 생산할뿐 정신량식을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니 학자사회에서 비판정신이 사라진다면 일반 시정사회와 전혀 다를바없다.
   서방세계에서 지식분자의 다른 표현은《비판》이다. 졸라는 《지식분자선언ㅡ나 의 공소》에서 “진리와 거짓을 폭로해야 하고 대립면에서 부정적인 전파자가 되여야 하며 정치와 전제 등에 대해 질의할수 있어야 하고 모종 정도에서 준정치적대항의 립장에 서야 하며 변연화의 비판자가 되여야 하고 비판성은 선구자의 사명을 지녀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언론권이 부여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서방에서는 지금도 지식분자를 “사회의 량심”으로 칭하면서 그들을 인류의 기본가치( 리성, 자유, 공평)의 수호자의 대명사이다. 명실상부한 지식분자들은 상술한 기본가치에 근거하여 사회상의 일체 비정한것들을 비판하며 이런 가치의 실현을 위해 혼신을 다바쳐 분투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지식분자를 우러르고싶다.

                                                                 2011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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