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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신음하는 령혼
최 균 선
1
아침해가 하늘높이 떴다. 미옥이는 후렁후렁한 잠옷을 대충 걸치고 화장대앞에 사뿐 내려앉아 하루의 첫일과에 서두른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기름이 발리우고 바르고 문지르고 찍고 그린다.
그녀는 춤추듯 경쾌한 걸음걸이로 맞은켠 경리실로 건너가 큰 거울앞에 멈춰서 요리조리 제몸맵시를 비춰본다. 너무도 산뜻하고 호화로왔다. 그는 달콤하게 웃었다.
그녀는 카텐을 와락와락 열어제끼고 창문들을 활짝 열어놓았다. 꽃도시는 바야흐로 무르녹고있다.
그녀는 록음기단추를 잘칵 눌렀다. 무도곡이다. 무도홀에 나선 기분으로 빙그 르르 돌아본다. 날아가는 잠자리날개같이 포르르 날리는 옷자락에 따라 온 방안에 향수냄새가 파도쳐간다.
미옥이는 변했다. 빨리도 변했다. 그녀는 늦게 골라잡은 이 인생의 삽곡을 빠른 절주로 연주해가고있었다.
2
미옥이는 자기가 워낙부터 이러한 생활의 주인공이였던듯이 착각될 때마다 지난날의 교원생활이 더욱 신물나게 돌이켜졌다. 날마다 이른 아침에 학교에 나가고 저녁이면 밀린 빨래를 하고 늦도록 교수안 쓰느라 눈을 쥐여뜯고…채바퀴 돌듯 단조롭고 무미무색하던 생활, 그런 생활을 어떻게 영위해왔던지가 놀랍게 생각되였다. 그저 다정다감한 녀자였던 그가 곰같이 힘센 남편의 지칠줄 모르는 사랑에 고달픔을 묻고 자기를 속이며 살아왔던지도 모를 일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로임타는 날이면 기어이 터지고야마는 신경질에 자기가 몇년은 겉늙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 얄팍한 로임봉투를 거꾸로 쏟아놓고 남편의 부스럭돈까지 합해보고 쪼개보고 다시 힙해보아도 태반이나 부족이던 돈, 색날은 남편의 나들이옷에 신경을 쓰면 앞코가 터진 자기의 구두가 퀭하니 입벌리고 항의를 한다. 하지만 우선 쌀, 기름을 타고나면 소학교 다니는 딸애가 또 돈을 내라 지청 구다.
더구나 골머리 아프고 밸이 곤두서는 일은 집세다. 건축공사에 다니는 남편이 늘 짓는다는 집들에는 누가 다 들어사는지 심사가 꼬여 죽을 지경이다. 널직한 집이 좋기는 하나 거두기가 말째다며 배부른 타령을 하는 아낙네들을 보면 너무도 꼴사나 와서 쫓아가며 침을 뱉아주고싶다.
《여보세요, 좀 무슨 변통이 있어야잖아요? 매일 벽돌을 쌓고 문을 짜 달아주고 해도 헛간 한칸 차례없는 그깐 일을 그만 두든지…》
《아따, 바가지 좀 작작 긁소. 야장집에 식칼이 없단 말 못들었소?》
《야장집에 식칼 없는게 누구 탓이게요.》
《그럼 야장탓이던가?!》
거의 달마다 부르는 그 돈타령에 민수도 궁리가 틔였는지 단위에 적을 두고 나와 가구점을 꾸렸다. 낮에 밤을 이어 켜고 깎고 대패질하여 구슬땀을 흘리니 돈도 좀 들어오고 살림펴일 싹수도 좀 보이는듯싶더니 관내에서 목수들이 쓸어들고 무슨 종합식가구요 하는것이 판을 치는데다 목재값까지 꼭뒤에 올라가 붙는바람에 그만 제쪽지에 물러나고말았다. 그래서 발벗은 김에 참외장사, 수박장사, 목재장사… 될듯싶다는 장사는 돌아가며 다 해보았지만 수걱수걱 땀흘리며 일해먹을 팔자였는지 그냥 밑지기만 한다. 게다가 몇번 봉창에 녹다보니 거꾸로의 만원호로 되고말았다.
그저 그만치 살라는 팔자인걸 공연히 철밥통까지 차던지게 했다고 민수는 쩍하면 고주망태가 되여 성풀이가 일쑤이다. 교수준비도 채못하고 학교에 나간 일이 몇번이 였는지 모른다. 그래도 둘이 출근할 때는 그럭저럭 살아갔으나 남편이 빈둥거리자 정말 살아갈길이 묘연했다. 게다가 빚군이 문턱에 걸터앉아 성화를 할때면 그만 콱 죽어버리고싶은 마음이였다.
바로 그런 때에 행운이 찾아들었다. 민수의 옛친구 마도남이 불쑥 찾아왔다. 철창에서 놓여나온지 3년이 된단다.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는지 배도 나오고 목덜미 도 두둑하였는데 가죽잠바에 금테안경까지 척 걸고 제법 풍채를 뽐내고있다.
《흥, 옷을 입었다고 원숭이가 아닐가.》
마도남의 똥집까지 다 알고있는 미옥은 보기만 해도 역겹고 무서워서 잘 응대 해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주칸에서 교안쓰는 그의 귀만은 저도 모르게 사이문께로 동냥을 가는것이 별일 이였다.
《허허, 자네 잘 지내나보군그래.》
《세월을 잘 만나서 한몫 단단히 보게 되였지뭐야.》
《?!》
《장사란 별거 아니야. 등치고 앞배 후벼내고 얼리고 닥치고 하면 되는거니까. 어쨌든 지금은 모험가의 천당일세.》
《하긴 그렇지만.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않나?》
《암, 산이 커야 그림자도 크다구. 거 우리 외삼촌 미국에 있다 하지 않았나. 대재벌이라나. 나에게 나래를 달아주었지!》
《!!》
《헌데 나혼자의 힘으로는 너무 벅찬 활동무대여서…》
《됐네그려. 날 써주게. 난 지금 엉망진창이네. 자, 한잔 쭉 내라구.》
《그렇지 않아두 자네 좀 궁하게 보낸다는걸 알구 왔네. 그러나 자넨 안돼. 뭐 장사판이 채석장인줄 아나?》
《?!》
《자네 그러지 말고 처복이나 입게.》
《처복이라니?》
《자네 처는 한어 잘하고 글씨 잘 쓰고 지식도 있지 않나, 또…아무튼 자네 처를 난 비서감으로 점찍어놓고 왔네.》
《뭐, 비서라구? 그건 안되네. 천하 없어도…녀편네 등쳐먹고 무슨놈의 처복인가?》
《글쎄 싫으면말라구. 이거 페많이 끼쳤네. 예약금5천장쯤 줄수 있으니 생각해보라구. 생각있으면 려관에 와서 날 찾게.》
미옥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짝을 이룰수 없는 빈궁과 요염을 두고 속을 태웠다. 잘 살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 황금은 눈앞에 있어도 통하지 못할 그 길이였다.
미옥이는 마도남을 잘 알고있었다. 민수, 도남이, 미옥이는 한 집체호에서 몇년동안 코를 맞대고있던 처지였다. 미옥이는 지금도 그날 밤의 일이 몸서리치게 떠올라 남편의 가슴을 파고들 지경이다.
연줄좋은 애들은 다 도시로 올라가고 뚝쟁이 민수와 아버지때문에 앉은석동을 하는 순애, 그리고 농촌에 한평생 뿌리박는다고 고아대던 도남이와 자기만이 남았다.
대대마을에서 영화를 돌리던 날 밤이였다. 민수가 채석장에 가다보니 도남이와 순애만이 영화보러 갔다. 미옥이는 된감기에 걸려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밤은 어느때나 되였는지 영화구경을 마치고 온 순애가 미옥이를 흔들어 깨웠다.
《얘, 너 열이 몹시 나누구나.》
순애는 미옥이를 아래목에 눕히고 자기는 미옥이가 누웠던 사이문쪽에 누웠다. 뜨뜻한 아래목에서 혼곤히 잠들었던 미옥이는 고막을 찢는 새된 소리에 화닥닥 놀라 잠을 깨였다. 귀때기를 쳐도 모를만큼 방안은 캄캄하였다.
《미옥이! 내다, 도남이야. 잠자쿠 있어. 버둥거리면 죽여치울테다.》
미옥이는 무슨 영문인지 알았지만 소리도 나가지 않고 덜덜 떨리기만 했다.
《너 순애두 거기 가만있어.》
아래목에서 인기척이 나자 엄포를 놓는판이다. 순애를 자기인줄로 알고 마도남 이가 덮쳐든게 분명했다. 그 소리에 정신이 펄쩍 든 미옥이는 천방지축 문을 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순애의 비명소리가 뒤통수를 쳤다.
미옥이는 누구를 소리쳐 부를념도 못하고 삽짝문밖에서 떨고만 있었다.
《아니, 이게 미옥이 아니요?! 이 추운 밤에 어찌된 일이요? 신도 신지 않고…》
미옥에게는 언제나 정을 폭폭 담아주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미옥의 지각은 깨여났다.
《웅걸오빠!》
미옥이는 웅걸에게 꽉 매달려《와—》하고 울음을 터뜨리 였 다.
《순…순애가 저기…》
《무슨 일이요? 엉?》
《마도남이, 지금…순애를…》
《도남이가? …》
웅걸이는 뇌리를 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도남이의 사람됨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색을 하지 않고 태연스레 말했다.
《마침 대대민병회의에 갔다가…함께 들어가기요.》
그는 앞에서 성큼성큼 뜰안에 들어서더니 《도남이, 도남이!》하고 큰소리로 불렀다.
이윽해서 도남이의 방에 불이 켜졌다.
《누구요? 이 밤중에?!》
잠내를 잔뜩 피우는 도남이의 소리였다.
《나, 웅걸이야. 문 좀 열라구.》
《무슨 일이야. 야밤중에 제길! 단잠을 깨우면서…》
《미옥이, 도남이가 왜 제방에서 자는구만?》
《아니예요, 방금…》
《음, 내 알겠소. 빨리 들어가 자오.》
미옥이는 집안에 들어갔다. 순애는 말그대로 불성모양이 되여있었다. 슬피슬피 울고있는 순애를 보는 미옥이의 마음은 찢기였다. 심한 자책과 수치감에 순애를 와락 부둥켜안고 울었다.
미옥이는 보호산을 찾아야 했다. 그 적임자가 웅걸이였다. 마침 웅걸이도 미옥이 를 남몰래 사랑하고있던차라 그들은 대번에 그림자처럼 붙어다니게 되였다. 도남이도 호랑이같은 웅걸이앞에서 더는 어쩌지 못하였다.
인물체격이 칠칠하고 맘씨 무던한 웅걸이가 농촌총각이 아니였던들 미옥이의 운명은 달리 발전하였을것이다.
생각이 웅걸에게 미치자 미옥이는 더는 돌이켜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마도남, 네 심보를 내가 모를라구, 흥!》
미옥이는 분해서 콩팥칠팥했다.
이튿날 아침, 민수는 밤새 궁냥이 돌았던지 미옥이가 응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참, 당신은 정말 단순하군요. 그래 녀편네를 깨진 질그릇 만들 작정이예요!》
《예약금 5천원이면 바쁜 목이나…》
《걷어치워요! 가라면 아예 리혼하고 가지요.》
미옥이가 리혼소리를 하는바람에 민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였다. 그러나 미옥이 의 마음이 흔들림을 받지 않는건 아니였다. 마도남의 비서가 욕심나서가 아니였다. 그건 돈에 대한 유혹 앞에서의 흔들림이였다.
그녀는 마침내 자기의 운명투전장을 상품경제의 격류속에 던져놓고 재신과 겨루어보기로 작심했다. 미옥이는 천장사에 미립이 튼 웃집아주머니를 따라 천장사에 나섰다.
학교에는 장기휴양진단서를 들여놓았다.
3
일년이 지나갔다.
처음엔 담도 없고 자금도 적어서 작은 도시로만 다니다가 차츰 상해, 광주, 심수에까지 발길이 뻗었다. 눈도 떠졌고 세상 물정도 알게 되였고 《지기》들도 많이 생겼다.
세번째 광주행차는 미옥의 운명의 전절점이 되였다. 미옥이는 렬차에서 홍삼 장사를 떠났다는 한 어리무던한 중년사나이를 알게 되였다. 그들은 재빨리 의사 소통이 잘되였다.
《난 광주가 처음이여서…》
《걱정말아요. 내가 홍삼을 얼마든지 처리해줄수 있어요. 수고비는요?》
《일만 잘되면야. 광주에 도착해서 예약금 2천원을 먼저 주지요.》
미옥이는 이 일로 뛰여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은 미옥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비록 광주에《지기》들이 더러 있긴하였지만 모두가 바라는것이 있었다. 미옥이는 속수무책이였다. 려비도 거덜이 났다.
그 어리숙한 사나이가 어찌나 지궂게 붙어다니는지 몸을 뺄수도 없었다. 미옥이 는 광주에 온 이튿날 이미 예약금 2천원을 받아 집에 부쳐보냈던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내가 홍삼을 저절로 다 처리했으니 돈을 도로 내지 않으면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땅땅 을러메였다.
미옥이는 뛸데없이 되였다. 결판이 나야 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미옥이는 하는수없이 분세수에 향수냄새를 풍기며 마도남의 앞에 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이거 미옥씨가 어떻게? 반갑소! 반갑소! 자, 어서 앉으시오.》
《도남오빠, 아니, 저 마경리!》
미옥이는 제 맘을 속인다는걸 느꼈을 때 얼굴이 뜨거워났다.
《자, 어서 앉소, 앉소.》
미옥이는 두눈이 화등잔이 되였다. 이렇게 으리으리하고 호 화로운 경리사무실은 난생처음 보았던것이다.
《참, 민수군은 잘 있겠지? 헌데 미옥씬 무슨 꽃바람이 불어서…》
미옥이는 두루 둘러맞추다가 돈을 좀 꾸어달라는 말을 겨우 꺼냈다.
《아, 그런 일이군요. 까짓것, 되구말구요.》
가슴을 툭툭 치며 강개하게 나오는 도남이를 바라보는 미옥이의 눈이 반짝 빛난다. 이 마도남이 워낙 인정이 넘치는 사나이가 아니였던가싶어지고 어데선지 존경의 마음 비슷한것까지 생기는것이 그녀로서도 이상스러웠다.
《너무 별스럽게 생각할건 없소. 조건으로 미옥씨가 나와 합작해서 한번 큰 사업을 해보자는것뿐이요.》
《비서질을 하라는거겠죠? 얼마를 줄수 있어요?》
《만약 기꺼이 손을 잡는다면 까짓 2, 3백원으로 청할줄 아오?》
지난해까지만도 뱀을 본듯이 싫어하던 마도남이였고 청소공질하면 했지 도남이의 비서질은 안한다던 미옥이였다. 하건만 오늘 미옥의 감정은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따져놓고보면 결코 그 2천원때문만이 아니였다. 잠자던 일만가지 욕망이 머리를 들고 눈부시게 현란한 이 세계를 바라볼 때 미옥의 눈에서는 이 마도남이란 사나이가 새롭게 현상되여 나타났다. 리성은 아직도 망서리고있을 때 욕망은 벌써 입을 통해 보수부터 따지고있었다.
《만약 내킨다면 래일부터 출근하오. 주숙은 따로 배치할테니깐.》
미옥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보며 마도남은 드팀이 없다는듯 말하였다.
《그럼, 우리 오래간만인데 식사하러 갑시다…》
4
미옥이가 집에 편지 한장 띄우지 않고 마도남의《다도해》무역공사에 남아 비서질한지도 두어달 되였다.
어느날 조용한 점심때였다.
《그동안 당신 수고가 많았소. 교제화의 역할도 출중하게 놀았구요.》
언제부터인지 도남이는 미옥이를 당신이라고 스스럼없이 불렀다. 또 그런대로 개의치않고 들어두는 미옥이였다.
《이건 첫번째 로임이요. 받소. 그리구 먼저 선대한 그 돈은 내가 방조해준것 이니까 계산에 넣지 않겠소.》
미옥이는 천원도 잘될 돈뭉치앞에서 가슴이 뻐근해졌다. 이름할수 없는 어떤 위력앞에서 감격하고 말았다.
《이건 내가 사려금으로 따로 주는거요. 당신의 신분에 맞게 단장해야 할게 아니요?》
《!!》
미옥이는 또 한번 놀랐다.
《그리구 미옥이가 좀 노여워하겠는지…나 민수군에게 편지했소. 돈도 5천원 부쳤소. 빚갚으라구.》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가요?》
《아니, 은혜란 서로 사이뜬 사람들에게서만 오가는 말이요.》
《그래두요, 전 어쩐지 당신의…》
《참, 며칠전 외삼촌께서 또 편지가 왔구만. 아예 그쪽에 건너와서 유산을 상속받을 준비도 하라면서…생각있으면 한번 읽어보구려.》
미옥이는 뉘정신에 편지를 받아 읽었는지도 몰랐다.
《허지만 난 정말이지 여기를 훌쩍 떠날수 없구만. 소중한 무엇이 자꾸 걸려서…》
이렇게 뒤말을 삼키는 도남이의 눈길도 그럴듯했거니와 말로 미옥의 꿈이 피여나는 가슴을 일렁거려주기에는 너무나 훌륭하였다. 마도남을 살짝 훔쳐보는 미옥이는 자기가 지금 이 사나이를 사랑하고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발견이였다.
도남이가 갑자기 미옥이가 앉은 긴쏘파에 건너와 엎어졌다. 미옥이도 얼결에 그를 부등켜안았다.
《미옥이, 나와 결혼하기요. 난 고독하오. 난 내내 미옥이를 사랑해왔소!》
마도남은 미옥이가 더 말할틈도 주지 않고 그 큰 입으로 미옥의 입술을 덮었다.
그녀는 몽혼약이나 먹은것처럼 정신이 아찔해났다.
그녀의 눈앞에 문득 남편 민수의 초췌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두줄기 눈물이 도랑을 파며 흘러내렸다. 리성이 깨여나 채찍을 들었던것 이다. 미옥이는 민수와 결혼하던 화촉동방의 첫밤에도 웅걸이의 모습이 별스럽게 떠올랐었다. 그처럼 달디달게 무르익혀오던 시골의 사랑을, 그 좋은 사나이를 마침내 는 울려놓고 도시에 온 민수와 결혼한 미옥이였다. 민수의 품에서 웅걸이를 생각하던 미옥이가 오늘은 마도남의 품에 안겨 민수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내버리듯 또 한번 신음했다.
《미옥이, 왜 그러오?》
미옥이는 도남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늦바람이 곱새를 벗긴다고 서른다섯나이의 미옥이는 내친 걸음을 멈추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서로 자석처럼 붙어 돌아갔다. 배도 잘 맞았고 손도 잘 맞았다.
어느날, 미옥이는 도남이의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생글거렸다.
《외삼촌이 언제쯤 비행기표를 보낼가요?》
《허, 급하긴. 가기전에 우린 더 많은 일을 해야겠소. 당신도 민수와 리혼해 야지.》
《그럼, 당신의 순애는요? 이 몇년을 내내 당신을 기다렸다면서요?》
미옥이는 순애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흥, 다 파먹은 김치독인걸. 까짓 촌계집을! 한 5천원 줴주고 관계를 끊었소.》
마도남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당신 정말 량심없구려.》
미옥이는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5
고급호텔 쏘파우에 손님 서넛이 앉아있다. 이슥해서야 샤와욕을 한 미옥이가 물기어린 머리를 폭포처럼 드리우고 들어섰다. 삽시에 코를 찌르는 화장품냄새가 방안을 휩쌌다.
미옥이는 또 둔갑하였다.
그녀는 암거래소의 유명짜한 《교제화》가 되였다. 그의 신통력은 마도남에게서 배운것이라 하지만 지금은 마도남마저 입을 딱 벌릴지경이였다. 그녀는 편지마다 돌아오라고 애걸하는 남편의 입에 돈뭉치를 밀어넣으며 얼렁뚱땅 살아갔다.
얼마전, 미옥이는 도남이와 함께 연변에 다녀왔다. 딸이 보고싶어서였다. 귀부인 같은 어마어마한 차림새에 큼직한 가죽트렁크를 들고 집에 들어서는 그녀의 행차에 온 마을이 혀를 홰홰 내둘렀다. 그러나 민수는 그 많은 물건들과 돈보다도 안해가 돌아온것이 더 반가왔다.
진종일 엄마목에 매달려있다싶이 하던 딸애가 잠들자 민수는 안해를 슬며시 끄당겼다.
《여보, 보고싶었소. 고생이 많았겠구먼. 정말이지 이렇게 한자리에 누우니 첫날 밤같구려, 허허…》
그러나 미옥이는 그저 귀찮기만 했다. 그래서 짜증스레 몸을 뒤챘다.
《당신…어딘가 변한것 같구려.》
《아직도 든 정보다 돈이 더 필요해요.》
《난 돈도 싫소. 인젠 왔으니 구차한대로 살기오. 다신 못갈줄 아오.》
《왜 못가요? 그 잘나게 일처리를 해놓구두…인젠 다 쓴죽이야요.》
《뭐요? 당신이?! 흥, 바람이 어지간히 난게 아니로군!》
민수도 화가 나서 안해를 활 밀었다.
《싫으면 아예 리혼하자요.》
《리혼? 이제 보니 네가 도남에게 영 붙은 모양이구나. 너 몸 팔았지?》
《흥!》
《에익, 갈보! 돈만 있으면 개도 사람이더냐. 가져가, 더러운 돈!》
뚝밸을 쓸라치면 미친 황소같은 민수였다.
두들겨패기의 이틀 낮과 밤이 지나갔다.《뽕뽕》하는 자동차경적이 울리자 미옥이는 기다렸다는듯 총알처럼 집을 뛰쳐나갔다.
《여보, 미옥이! 개같은… 리혼이다!》
하이야에 앉아 어둠속에 사라지는 도남이와 미옥이를 뒤쫓다말고 끈떨어진 뒤웅박같이 댕그랗게 남아서 울어대는 딸애를 바라보는 민수의 눈에 불이 황황 일었 다.
《개같은년놈들! 쫓아갈테다. 찾아낼테다! 못살게 굴테다! 죽여버릴테다!》
두발 구르며 종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의 험악해진 얼굴을 미옥이는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울며불며 따라서는 딸애도 못본척하였다.
《운전수, 빨리 몰아요!》
이렇게 재촉하는 미옥의 꼭 다문 입가에 이슬같은것이 두방울이 맺혀있었다.
그후로 미옥이는 남편이 뒤쫓아와서 도남이와 동거하는걸 보 면 더 큰일 날것 같아서 개체호 고급려관에 자리잡았다. 그래서 그곳이 암거래소가 되였다. 물론 마도남을 등에 업고서였다. 인젠 그런지도 몇달 잘되였다.
《미옥이!》
파마머리의 청년이 일어났다. 어느 술담배공사의 구입원이라는 그와의 교역은 홀가분하게 끝났다. 그 청년은 미옥의 《충신》으로 자처하면서 견마지용을 다하고 있는터였는데 종이에 싼 《물건》을 기꺼이 《잊고》 일어서는것이였다.
미옥이는 악수할 때 그의 손바닥을 간지르는것으로 최상의 보답을 암시했다.
파마머리는 가장 값가는 정보나 얻은듯 헤벌쭉해서 나갔다. 맨 마지막으로 쉰살쯤됨직한 사나이가 접견을 바랬다. 미옥이는 매혹적인 미소를 던져주었다.
《로띵, 사업비 3천원만 더 내야 해요.》
《아이야, 미옥아가씨, 이미 돈까지 다 물었는데 또 무슨…》
《됐어요. 좋을대로 하세요.》
미옥이는 더 듣고싶지 않다는듯 사나이의 말을 중둥무이 하고는 선풍기단추를 잘칵 눌렀다. 사나이는 자기들의 이야기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는것을 느끼고 그만 일어서고말았다. 그러는 사나이꼴을 미옥이는 깨고소하게 돌아다보았다.
《좋소. 미옥이 나도 밤낮 빈방아만 찧지 않을걸. 사기군 같으니라구. 난 법에 고소할테요!》
미옥이는 그 말에 덴겁하였다. 그것은 미옥이가 제일 듣기 두려워하는 말이였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도 잠간 동안이였을뿐이다. 그녀는 태연한체하며 젊은이가 《잊고》간 물건을 헤쳐보았다. 돈, 돈이였다! 그녀의 얼굴엔 다시 느긋한 미소가 괴여 올랐다. 그녀는 자기의 미모로 치마자락에 매달리는 사내들을 실컷 주무르고 비웃어줄수 있다는것을 믿고있었다.
돈뭉치를 금고에 넣는 그녀의 마음은 또다시 놓쳐버린 고무풍선처럼 둥실둥실 떠가기만 했다. 그는 택시를 불러타고 도남이한테로 갔다.
붐비는 거리를 시틋하게 내다보던 미옥이는 등받이에 기대여 사르르 눈을 감았다. 하이야가 갑자기 하늘중천에 아득히 날아간다. 도남이의 외삼촌이 오면 도남이와 결혼하고 그곳으로 날아가야 한다. 백만장자 조카부인이 된다면 더 바랄것이 무엇 이랴! 세계 어느 곳이나 가고싶은 곳이면 다 가볼수 있다…
미옥이는 흥이 날 때마다 자기 귀가에 불어넣던 마도남의 말을 늘 복음처럼 되새겨보군 하는터였다. 비행기 타고 멀리 날아가버리면 민수인들 어찌랴. 그저 딸애에 대한 생각이 가슴 짜릿하게 갈마들뿐이였다.
미옥이가 도남이의 경리실에 들어가보니 사람은 간곳없고 금방 던져버린듯한 담배꽁초가 연기를 몰몰 피우고있었다. 웬일인지 새로 데려온 출납원 영애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감이 들었다. 미옥이는 살금살금 밀실문께로 다가갔다. 안에서 과연 말소리가 새여나왔다.
《아이, 이러지 말아요.》
《영애…》
《아이, 난 몰라… 미옥아주머니가 알면…》
《까짓걸, 다 파먹은 김치독이야. 이젠 향항늙다리한테나 붙어서 재미를 보라지, 흥!》
미옥이는 정신이 아찔했다. 꽃무늬천장이 빙그르르 돌았다.
《아, 내가!…》
배반의 쓰디쓴 고통이 뼈속까지 스미면서 마음속에서 무엇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문을 세차게 발로 차고는 그만 졸도해버렸다.
6
이른새벽이다.
똑딱, 똑딱! 어김없고 단조로운 시계소리는 생활의 순환과 생명의 운동을 알려나주듯 쉬임이 없다.미옥이가 태를 끊고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던 그때에도, 사랑의 첫 열매를 토하던 그 때에도 시계는 이렇게 가차없이 돌아갔다.
그때는 그래도 희망을 재촉하고 행복을 축복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이 새벽 시계소리는 인간성을 말아먹는 탐욕을 질책하는듯 가슴을 두드려준다.
숨막히던 빚도 벗고 돈도 조금 모았지만 미옥이는 녀인으로서 안해로서 어머니 로서 지지말아야 할 마음의 빚을 한껏 짊어지게 되였다. 영영 벗을수 없는 빚이였다.
이제 남은것은 무엇이고 바랄것은 무엇인가? 마도남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락원의 세계로 가려던 꿈도 일장춘몽이 되고말았다. 그녀는 때늦게나마 성실한 두 사나이를 배반한 자기가 마도남에게 기편롱락을 당한것은 마땅한 인과보응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 새벽, 미옥이는 그런 고통속에서 잠못들고있다.
똑딱, 똑딱… 시계소리는 공포와 절망의 문을 노크하듯 귀에 파고들었다. 참회와 수치감, 고통속에서 흘린 눈물은 베개를 푹 적시였다.
(미옥이, 돌아오오, 어서! 한인간으로서 존엄보다 더 귀중 한게 있소? 여기에 우리의 딸 헤영의 편지도 함께 보내오…)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에서 절절하게 울리던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금 귀청을 때린다. 사랑하는 딸애가 부르는 소리는 더욱 가슴을 찢는다.
《…엄마, 돌아와요. 응! 아버진 오늘아침에도 밥하며 울었어. 모두 엄마가 나쁜탓이래. 엄마, 빨리 집으로 와요. 난 다시는 돈달라 안할게. 엄만 돈이 그리도 좋나? 난 돈이 미워… 오늘부터 내 마중갈게. 엄마! 응!…》
미옥이는 가슴을 뜯었다.
《아—아, 난 미친년이다. 천하 몹쓸 에미다! 돈미치광이다!》
이렇게 길게 부르짖는 미옥의 입술에서 빨간 피가 맺혀 나왔다. 흑흑! 하는 흐느낌뒤에 뒤따르는 신음소리가 뼈짬에 스민다. 안식을 잃고 낭떠러지에서 통곡하는 령혼의 신음이였다.
《똑, 똑, 똑…》
갑자기 노크소리가 되알지게 울린다. 미옥이는 몸을 옹송그렸다.
《똑, 똑, 똑…》
망망대해에 외로이 뜬 쪽배가 부서지는 소리처럼 소름이 쭉— 끼치는 소리였다.
《똑, 똑, 똑…》
천지 1990년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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