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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하이퍼텍스트와 전자하이퍼텍스트
2013년 07월 06일 16시 15분  조회:1715  추천:0  작성자: 최룡관
종이하이퍼텍스트와 전자하이퍼텍스트

오남구 

 
 
1. 하이퍼텍스트의 문학에 관한 전망
 
다음의 글은  정과리교수의 하이퍼텍스트의 문학에 관한 전망이다.
 
문자와 동영상(動映像)과 음향이 한데로 겹치는 하이퍼미디어의 문학, 또는 여러 다양한 글쓰기들을 유기적 계층구조로 연결한 하이퍼텍스트의 문학이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은 전망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한국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게다가 그러한 하이퍼미디어, 하이퍼텍스트에 대하여 여전히 ‘문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문학의 ‘文’ 그리고 literature의 ‘letter’는 문학이 ‘언어’ (더 좁혀, 문자)를 중심매체(中心媒體)로 삼는다는 뜻을 포함하고도 있다. 하이퍼미디어에서는 그러한 중심매질(中心媒質)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퍼텍스트 또한 그 자체로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퍼미디어의 장 속에 종속하여 있어서, 하이퍼텍스트는 끊임없이 불안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곳의 언어는 컴퓨터 부호(符號)로의 변신을 독촉 받고 있는 언어이다. 중심매체가 붕괴된 문화적 장르에 대해, 단순히 언어가 그 안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문학이라고 이름할 수가 있을까? 차라리 새로운 장르의 탄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정과리, 컴퓨터와 문학, "문학의 새로운 이해" 중에서, 문학과 지성사, 1996년]
 
다음의 글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하이퍼텍스트의 문학에 관한 전망이다.
 
디지털 텍스트가 시간과 존재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요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언젠가 엠아이티 스쿨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미디어랩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된 전자 종이를 내게 보여 주었어요. 양피지에서 펄프 종이를 거쳐 플라스틱 종이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이퍼텍스트가 결코 전통적인 텍스트를 대체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음악에다 비유하면 전통적인 텍스트는 권위 있는 악보에 바탕을 둔 클래식 음악에 해당하며, 누구나 한 줄 즉흥적으로 써 넣을 수  있는 열린 텍스트인 하이퍼텍스트는 재즈 음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재즈의 즉흥 연주가 클래식의 악보 위주 연주를 대체하지 않는 것처럼, 하이퍼텍스트와 전통적 텍스트 역시 서로 공존(共存)해 갈 것입니다. [시사저널 1996년 12월 4일자, [뉴미디어] "디지털 매체, 책 말살하지 못한다"]
 
정과리교수는 종이책(전자책의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을 떠난 미디어의 문학을 말하고 있다. 에코(Umberto Eco)는 미래의 신개념의 종이까지 확장하고 있다. 미디어는 소통의 모든 매체를 망라하는 개념이다. 그들은 소통의 도구로서 아주 기본적인 미디어의 하나인 기호, 즉 언어가 표현하는 하이퍼텍스트를 간과해 버린 듯이 보인다. 확장된 개념의 하이퍼텍스트 방법의 문학, 종이 하이퍼텍스트의 문학(하이퍼시)은 불가능한 것인가?
 
 
2.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
 
다음의 글은  '하이퍼택스트 지향의 동인지' 대담( 월간『시문학』4월호, 2008년 )에 붙이고 있는 문덕수시인의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이다.
 
종이 위에 쓴 하이퍼텍스트와 인터넷이나 TV 모니터에 비친 하이퍼텍스트(전자 하이퍼텍스트)는 원리 면에서는 본질적으로 같으나, 일단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TV 화면의 세계를 가상공간(假想空間)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사이버 세계 또는 ‘버추얼’(virtual) 세계라고도 말합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이 버추얼세계에서 결합되는 이미지, 텍스트, 음성이 합성된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1)종이 위에 글자로 씌어진 시의 언어는 버추얼화(virtual化)된 언어라고 합니다. 흔히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를 ‘가상현실’이라고 번역합니다만, 종이에 씌어진 시의 언어도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미끈하게 잘 성장한 적송 소나무를 보고, 그것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마음속에 떠올린다고 가정합시다. 이것은 분명히 ‘기억’입니다만, ‘기억’이라고 해도 좋고, ‘회상’이라고 해도 좋고, ‘재생(再生) 이미지’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 소나무가 아닌 산수유꽃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쨌든, 소나무나 산수유꽃은 언어화(기호화) 하여 기억해 둔 것을 다시 상상하여 떠올린 것입니다. 시인은 언어화 하여 기억해 둔 이러한 여러 가지 자원을 소재로 하여 시작품을 쓰고 있음은 이미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있고, 또 늘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기억해 낸 ‘소나무’나 ‘산수유꽃’은 어제 공원이나 길가에서 보고 인식한 그대로의 소나무나 산수유꽃이 아니라, 즉 실재(實在)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의식 속에 대리해서 떠올려 나타내는 이미지이거나(이때의 이미지를 철학에서는 表象 representation이라고도 합니다.) 가상현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현실이 소멸된 이미지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심상(image)라고 말하지요. 심상은 현실에 있는 사물의 모습 그대로라고(즉 사물 자체) 할 수 없으나, 그 사물을 가리키는 어떤 관련성은 있습니다. 대상에 관련되는 사실을 가리키는 성질을 ‘지향성’이라고 하고, 지향성이 가리키는 바깥의 대상을 지향대상(指向對象, referent)이라고 합니다. 시는 언어예술이면서도 언어를 넘어선다고 하는 주장(문덕수 지음 『오늘의 詩作法』, 시문학사, 2004)도 언어가 가지는 지향대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 것입니다.
 
둘째, 기억해 둔 언어기호를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끄집어내어 되풀이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끄집어내어 되풀이할 때마다 언어기호가 가지는 법칙에 따라서 조금 다르게 현세화(顯勢化) 또는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소나무나 산수유꽃이라는 사물이 언어에 잠세된 모양(潛勢態라고도 함)으로 그것의 원래 지위를 바꾸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언어의 잠세태로 전위(轉位)하는 것인데, 이것을 언어의 버추얼화(化)라고도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다면 인터넷이나 TV 등의 IT기기가 탄생되기 이전에 이미 언어 자체에도 버추얼화의 성질이 있었다고 보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상(李箱)의 시나, 60년대 시집 『선․공간』(문덕수 지음, 성문각, 1966)의 수록 작품을 하이퍼텍스트 시의 남상이나 선구작(오남구 시인이 이상옥과의 대담에서 문덕수의 시를 하이퍼텍스트의 선구작으로 거론함.)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언어의 이러한 버추얼 기능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2)그런데, 문제는 예상하는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령 “작난감 신부에게 내가 바늘을 주면 작난감 신부는 아무것이나 막 찌른다”(이상, 「I WED A TOY BRIDE」의 2)의 경우, “작난감신부”는 생명이 없는 작난감이므로 ‘찌르는 현실적 동작’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가상세계에는 얼마든지 가능한 동작입니다. “白紙 위에 한 줄기 鐵路가 깔려 있다”(이상,「距離」)의 경우에도,‘백지’(白紙)라는 언어화된 세계가 있고(즉 버추얼화된 언어가 있고), 다시 그 ‘백지 위에 깔려 있는 철로’라는, 버추얼 세계에서만 가능한 이미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백지 위에 깔려 있는 철로’라는 언어 기호를 그대로 한꺼번에 기억한 단일한 의미 체험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시나, 그 후의 이 계열의 실험시는 모두 이와 같이 이중(二重)의 버추얼화한 현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버추얼화가 겹쳐 있는 복합적 특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3)컴퓨터에서는 입력 때 이미지, 문자, 소리(음성) 등이 모두 이진법(二進法:0,1)이나 화소(畵素) 인공기호(컴퓨터 언어)로 바뀌게 되고, 출력시에는 화상, 언어, 음성이 합성되어 다시 ‘자연기호’로 바뀌어 화면(모니터)에 나타나게 됩니다. 자연기호로 바뀌게 된다고 했지만, 지향대상(즉 사물), 언어, 음성 등을 다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변화를 기호의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고 합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나 사물, 어느 곳에도 볼 수 없는 인간의 얼굴, 누가 지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이야기나 음성 등을 마음대로 합성하여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컴퓨터의 공간 안에서 컴퓨터 언어로 전위(轉位)되고 합성되어, 그 인공기호로 다시 시청자가 시청할 수 있는 현실세계로 시뮬레이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컴퓨터라는 버추얼세계의 원리입니다.
 
컴퓨터의 인공언어(이진법과 화소 등)가 합성해서 만들어내는 이러한 버추얼 리얼리티(가상현실)의 원리는 시쓰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사(示唆)를 던져줍니다. 그것은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원고지 위에 우리가 쓰는 언어기호에도 이러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컴퓨터의 인공언어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은 지향대상(작품의 바깥에 있는 현실의 어떤 세계나 사물)을 시뮬레이트해서, 즉 허구적으로 구성해서 우리에게 보고 듣게 해주는 것과 같이, 우리가 쓰는 언어도 컴퓨터의 인공언어처럼 가상현실을 창조하고, 그리고 그 ‘가상현실’은 흔히 우리는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는 그런 세계를 우리에게 체험하도록 해 줍니다.
 
물론 디지털 기술에 의해서 인공언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컴퓨터의 인공언어(인공기호)가 형성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電腦空間. 컴퓨터의 네트워크로 맺어진 가상세계)라고 말한다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의미세계가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가를, 그 변용의 여러 가지 방법을 안다는 것은, 그대로 종이 위에 쓰는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에 의한 컴퓨터 공간에서의 의미 변용에는 ‘인터페이스’(interface:화면의 ‘접촉면’을 의미하나, 특히 유서(user)가 직접 접촉하는 면을 의미함),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쌍방향 대화 또는 상호작용성), 그리고 여기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등 여러 가지 의미 변용의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시급한 ‘하이퍼텍스트’의 문제부터 보기로 하겠습니다.
 
(4)대담 중에는 ‘hypertext’라는 말은 넬슨(Theodore Nelson)의 조어라든지, 또 시쓰기의 방법 면에서 ‘건너뛰기’등의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하이퍼텍스트는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종이 위에 쓰는 언어기호(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에서도 그 성립이 가능한 사실을 먼저 지적해 둡니다. 이 사실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의 부록인 「한국시의 동서남북」(문덕수 시집 『꽃먼지 속의 비둘기』에 수록, 2007)에도 예시를 들어 설명되어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하이퍼텍스트는 ‘여러 가지 텍스트를 서로 관련시켜 하나의 데이터로 다루는 복합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텍스트의 특정 부분으로부터 다른 별개의 텍스트를 관련시킬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에서는, 컴퓨터 화면과 유서(user)의 메시지를 접속시키는 ‘시프터’(shifter)라는 이동장치가 있음은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장치를 이용하여 어떤 한 시행(詩行)이나 센텐스의 임의의 부분에 다른 어구나 시행 또는 텍스트가 연결되어(링크되어), 복수의 텍스트가 상호간에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기존의 시 텍스트나 산문 텍스트는 그 문맥이 선조적(線條的), 일방적 순서로 진행됩니다만, 이동장치인 시프트를 이용함으로써 사용자가 맥락을 자기 시점에서 자유롭게 접속하여 전환하게 됩니다. 시간적, 선조적, 앞뒤의 순서로 진행되는 한 맥락이, 중간에서 전혀 다른 맥락이 가지처럼 붙어서 갈라지고, 다시 그 가지에서 또다른 맥락의 가지로 갈라져, 이리하여 맥락을 달리하는 많은 복수의 텍스트가 얽혀 하나의 커다란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①여자의눈은北極에서邂逅하였다.②北極은초겨울이다.③여자의눈에는白夜가나타났다. 
― 이상, 「興行物天使」에서
 
“여자의 눈은 北極에서 邂逅하였다”의 1문 다음에, “北極은 초겨울이다”의 2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2문은 1문의 “北極”이라는 맥락의 한 부분에서 갈라져나간 또다른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3문은 1문의 “여자의 눈”이라는 주어에 링크됨으로써 원래 문맥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엄밀한 의미에서 제2문도 맥락에서 완전히 일탈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1문의 “여자, 여자의 눈, 북극, 해후” 등의 부분에서 갈라져 또 다른 맥락의 텍스트가 증식되어 하나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하이퍼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내 귀 속으로 한 새가 검불을 물어나르듯 종일 소리를 물어다 나르고 ②나는 것을 못견뎌 하는 소리를 지를 듯 말 듯 ③어머니! 이제 고압선에 옹크리고 있는 새만 보아도 무섭습니다.
― 양준호 「바다.1」 전문
 
편의상 ③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①문의 “소리”와 ②문의 “소리”를 맥락이 갈라진 실례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①문의 “새”와 ③문의 “새”도 역시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이퍼텍스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맥락을 의미하는 ‘컨텍스트’(context)의 어원은 하나의 텍스트와 함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텍스트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마치 나방이 같지?/시궁창에 처넣어진 거야”(초현실주의 문학,예술 시리즈 (3) 『오브제』, p.43)와 같은, 일종 선문답 같은 예도 하이퍼텍스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문덕수,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 월간『시문학』4월호, 2008년 4월]
 
 
3, 고소영S라인 하이퍼텍스트
 
긴 인용문을 들었다. 필자가 하이퍼텍스트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는다. 하이퍼텍스트의 무한한 가능성에 놀라고 있다. 상상이 끝없이 이어지는 하이퍼텍스트많큼 인간의 머리 속을 닮은 것은 없는 듯 하다. 실재로 무의식 세계의 초현실의 시와 포스트모던의 언어유희라든가 파편적 시쓰기에서 유사하게 사용된 방법이기도 하다.  다음의 글은 필자의 ‘하이퍼텍스트 문장 강의’ 내용이다.
 
이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 은 실재로 낯설지 않다. 단지 하이퍼텍스트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오늘의 미디어문화 특성의 하나로서 세태를 잘 풍자하고 언어유희 하는 ‘고소영S라인’은 하이퍼텍스트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1)하이퍼텍스트의 문장 구성은 마디, 링크, 경로로써 이루어진다. 예문의 ‘고 소 영 S라인’으로 설명하면 ‘고’ , ‘소’ , ‘영’ , ‘S라인’ 4개의 소리 ‘마디’가 있다. 원래 이 말은 인기 탤런트 고소영의 몸 S라인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을 유전공학에서처럼 난자에서 원래의 염색체를 빼어내고 다른 염색체를 집어넣듯 원래의 의미를 빼어낸다. 즉 해체한다. 그리고 다른 의미를 다시 집어넣는다. 바로 이러한 방법이 하이퍼텍스트의 ‘링크’로 보면 된다. 즉 ‘고’ 라는 소리에 ‘고려대 인맥’ 이란 내용을 링크(연결)시켜 놓고 ‘소’ 라는 소리에 ‘소망교회 인맥’ 이란 내용을 링크시켜 놓고 ‘영’ 이란 소리에 ‘영남 인맥’ 이란 내용을 링크시켜 놓고 ‘S라인’ 이란 소리에 ‘서울시 인맥’ 이란 내용을 링크시켜 놓는다. 그리고 나서 “고 소영 S라인 아는 사람?” 하고 언어유희(언어게임?)가 시작된다.
 
좌중은 ‘고소영 S라인’ 이란 말을 놓고 수수께끼를 풀듯 각기 ‘고’ 와 ‘소’ 와 ‘영’ 과 ‘S라인’ 이란 소리마디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의미를 찾는다. ‘고’ 소리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무수히 많다. 그래서 각 각의 소리마디에 연결해서 상상할 수 있는 의미는 너무 많아서 미로의 여행이 된다. 하이퍼텍스트의 ‘경로’는 이런 미로의 여행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여기에는 많은 경로가 탄생하고 미지의 흥분이 있다. 이때 미로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청문회' 등  숨겨 논 링크의 힌트를 주고 분위기를 잡고 원하는 경로로 유도한다. 인맥 에는 청문회가 링크되어 있고 다시 청문회에 세태를 풍자하는 말들이 링크되어 있다. 많은 땅에 대한 질문에 "투기는 하지 않고 땅을 사랑했노라", 골프회원권 두 개에 대한 질문에 "싸구려입니다" 등의 많은 말들이 링크되어 있다. 청문회를 듣고 있는 사람들, 서민 대중은 소외와 이질감과 자괴감으로 벼랑에  내몰리고 이를 카타르시스하기 위해서 하이퍼텍스트의 언어유희를 하게 된다.  
 
 (2)이상은 하이퍼텍스트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히 단편적인 일면인 포스트모던 한 언어유희를 실례로 든 것이다. 지금까지 살핀 마디와 링크 그리고 하이퍼/hyper 경로를 갖는 하이퍼텍스트는 상상의 미로에서 경로를 찾아가며 즐기는 언어게임에서 보듯이 기존의 텍스트(아날로그)와는 상대적으로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하이퍼텍스트시와 디카시 대담. 2008. 시문학 3월호」참조). 대담에서 상상의 경로를 우주의 별자리를 이어가는 것에 비유했으며 먼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경로로 비유하여 말한 바 있다. 
 
 링크와 경로는 포스트모던의 종점에서 나타난 것으로 '해체에서 통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미 기호는 ‘고소영S라인’의 언어유희와 같은 형식으로 의미가 탄생된 것이다. 언어는 실재 사물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기표에 기의가 링크(약속)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문장에서 의미(관념)가 연결됨으로써 인과 등의 선조적 구성을 가지게 된다.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다시 의미를 집어넣은 ‘고소영S라인’ 하이퍼텍스트는 요즘의 세태를 풍자하며 대중이 카타르시스를 하고 있다. 현대 미디어 문화의 하나인 하이퍼텍스트는 새로운 시론으로 실용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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