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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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부록 중국력대하이퍼시 명시들.[련재 끝] 댓글:  조회:877  추천:1  2018-01-10
부록 중국력대하이퍼시 명시들.   아래의 시들은 한국의 중국문학박사인 허세욱교수님이 편찬한 과 (1,2)을 중심으로 골라낸 중국력대하이퍼시 명시들이다. 이 명시집을 보면 하이퍼시는  중국의 시전통이라는것이 환히 알린다.  조금 손색이 가는 점이라면 어떤 시들은 감정절제가 잘 안된것 같다. 하지만 하이퍼시가 중국시문학에서 대간을 이루고있다는것을 감안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것 같다.     중국력대하이퍼시 명시선   1.     중국고대하이퍼시 명시선    전당강서 밤을 새우며(외1수)            맹호연(689ㅡ740)   연기 좌욱한 나룻가에 배를 묶고 어스름 저녁, 나그네가 고개 숙인다   아득한 들끝, 하늘이 나무에 내려앉고 맑은 강물, 달님이 사람곁에 다가선다     광릉 친구에게 부치노라     산그늘 넘어지자, 잔나비 우는데, 강물은 밤을 타고 더욱 급하다.   바람은 두골짜기 풀잎을 울리고, 달빛은 한잎새, 조각배를 비춘다.   건덕땅은 낯설지만, 광릉땅은 향긋 그리워   두줄기 눈물을 고이고이 싸서 서녁땅 친구에게 보내고파라.     가을밤 왕유(701ㅡ781)   빈 산에 가을비, 쓸쓸하고 썰렁하네.   소나무새로 달님이 비치고, 바위위로 샘물이 맑아,   빨래하는 녀인 오느라, 대숲이 바슥바슥, 고깃배 돌아가느라, 연잎이 흔들흔들.   봄풀은 어이 없이 스러지는데, 왕손은 여기서 서성인다.   오야제(烏夜题)(외1수) 리백(701ㅡ762)   황운성 변두리에 보금자리 찾는 까마귀 까악! 까악! 날아와 우네   베틀에 비단 짜던 진천의 아낙네 자욱이 파란 사창 저 안에서 무언지 중얼대다가   북을 멈춘채 멍하니 하늘 보며 먼먼 임을 그리는 외로운 방 주룩주룩 눈물 흐르네     촉도난   아이구! 저리도 높고 험할진저 촉나라 가는 길이 하늘 오르기보다 어려운가?   잠총이나 어부같은 선조들, 나라를 세울 때 얼마나 망연했을까?   그때로부터 사만팔천년전 바로 이웃나라인 진나라와도 벽을 치고 살았다.   서쪽으로 태백산이 막혔고, 거기엔 새 길이 났기로 그 길은 아미산꼭지를 가로 질렀다.   땅이 무너지고 산이 깎이느라 장사들이 죽은 뒤라서 저기 하늘끝에 사다리가 서고 돌띁에 다리가 매였거늘.   위로는 해를 끄는 륙룡마저도 넘지 못하는 봉우리 아래로는 넘실거리는 물결마저 거꾸로 돌아서는 골짜기   황학은 너무 높아 나래를 접고 잔나비고 너무 험해 손을 움추린다 ………………   나그네의 밤(외1수) 두보(712ㅡ770)   가는 풀 산들바람 강기슭에, 높은 돛대 혼자서 지새우는 밤.   별들이 들에 내려 별밭을 일구고, 달님이 따라 내려 강물에 출렁인다.   글 지어 얻은 명성 얼마나 가랴! 늙고 병들어 벼슬조차 던지련다.   훨훨 나부끼는 나무는 무엇일가? 모래사장 지평에 날으는 외기러기.     산에 올라   하늬바람 높은 가을하늘 잔나비 울음소리 슬프네 백사장 맑은 물에 오락가락 새 한마리   끝없이 나무잎은 우수수 쏟아지고 끝없는 장강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만리밖 나그네는 가을이 슬퍼 가도가도 병 든 몸 누대를 오른다   귀밑머리 센채로 한을 삼키고 꼬부랑 늙은 터에 술조차 끊었구나   영스님 거문고 소리를 듣고 한유(768ㅡ824)   속삭이는 련인들이 귀속말인가 사랑사랑 정이 넘쳐 애틋도 하다. 한번 긋자 바람소리 우렁차더니 장사가 적진에 돌진하는듯 흩날리는 버들꽃 떠도는 구름이라 드넓은 우주에서 자유로이 날아라. 백천마리 뭇새들이 지저귀는가 갑자기 들려오는 봉황새소리 더는더는 가락이 높아질수 없을 때 구천에서 떨어져 지심에 잦아드네. …………   오의항(乌衣港)(외1수) 류우석(772ㅡ842)   주작교다리아래 들풀꽃 만발하고 오의항어구로 석양이 내비치네   옛날 왕사집에 넘나들던 제비들 지금은 이름 모를 민가에 날아드네.     석두성에서   산이 옛땅을 에워싸듯 둘렀기로 썰물은 옛성을 두들기다 저 홀로 돌아간다.   회수 동쪽에 돋던 옛달은 이 밤도 저 낮은 담을 너머 가까이 다가온다.     강에는 눈만 내리고 유종원(773ㅡ819)   천산엔 새 끊기고 만경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네   조각배우에 우장 삿갓 쓴 노인 혼자서 차디찬 강설을 낚네.     고기잡이 노인   고기잡이 노인 서쪽바위에서 밤을 새고, 새벽녘 상강물로 초죽을 태운다.   일출에 안개는 사라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고 노젖는 소리에 강산만이 푸르다.   무심히 고개 들어 보니 하늘에서 물이 흐르고 바위위로 하염없는 구름이 오락가락.   가을밤(외1수) 리하(790ㅡ816)   가을바람소리 소슬히 불제 장부의 괴로운 심사, 깜박이는 등불에 여치마저 슬피우네   그 누구가 있어 올올이 엮어진 이 책을 비단벌레에게서 오래도록 지켜주리?   오늘밤 이 시름에 애타는 이 심정, 빗속에서 나를 찾는 여인의 넋이여!   가을 무덤가에는 어느 넋이 있어 포조의 시를 읊거늘 천년의 한이 흙에 묻혀 푸르리     장안을 떠나며     눈속에 계수나무 지고 까마귀, 총에 맞아 울고 간다.   관수엔 노새 그림자 진나라 바람결에 모자끈이 날린다.   고향 찾아 만리를 갔건만 벼슬을 얻지 못해 슬픔만이.   아내는 차마 묻지 못한채 거울에 비치는 두줄기 눈물.     산행 두목(803ㅡ852)   멀리 가을산의 돌길을 오르면, 흰구름 깊은 곳에 인가가 보이네.   이월의 꽃보다 붉은 단풍이 있어, 수레 멈추고 해지는줄 모르네.   상아여(외2수) 리상은(812ㅡ858)   운모(云母)는 병풍안 촛불 혼자서 떨고, 은하는 내려앉아 샛별도 희미하네.   지금쯤 상아는 선약 훔친것을 뉘우치며, 밤마다 푸른 하늘을 보고 가슴 치고있겠지.   낙화   높은 다락의 손님들 흩어질 때 뒤란의 꽃잎들 자욱이 흩날린다.   꼬부랑 논두렁을 오르락내리락 멀리 석양을 전송한다.   애타는 마음으로 낙화를 쓸수 없어 뚫어지게 보노라면 봄은 다시 돌아올듯   내 사랑 봄따라 가버리고 남은것은 눈물 젖은 옷자락뿐     거문고   거문고는 어이타 쉰줄인가? 줄마다 기러기발마다. 젊은 날이 묻히였네.   장자는 나비되여 새벽꿈속을 헤매고 망제는 두견되여 춘삼월을 슬퍼하네.   달 밝은 바다가에서 진주는 눈물을 훔치고, 남전(蓝田)의 따스한 날 옥구술이 연기를 뿜네.   먼 훗날에 이 모든 일들이 추억이 되련만 지금은 다만 망망한 마음, 어찌할바 모르네.   숙직 왕안석(1021ㅡ1086)   금로에 향불 사그라들고 누종소리 아득할 때, 솔솔 봄바람에 쌀쌀한 추위.   봄빛이 괴로워 잠 못 이룰 때, 달빛은 꽃 그림자를 마루에 드리우네.   봄밤 소식(1037ㅡ1101)   봄밤 한허리를 천금엔들 사겠는가?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달무리.   누각의 풍악소리 굽이마다 슬픈데, 그네 걸린 뜨락엔 밤이 깊어만 가네.   쾌각에 올라 황정견(1045ㅡ1105)   소관이 공무를 마치고 나면, 쾌각의 노을은 끝없이 맑아라.   우수수 쏟아지는 락엽에 하늘은 멀고, 환하게 맑은 강물엔 달이 또렷해라.   붉은 거문고줄은 그대 위해 끊었고, 파란 눈빛은 술때문에 가로 보이네.   멀리 돌아가는 배에 처량한 피리소리 이제 내 마음은 갈매기를 벗하네.   검문에서 비를 맞으며 육유(1125ㅡ1210)   옷자락엔 먼지 술 흘린 자국 또한 겹쳤지만, 두루 떠돌아보니 곳곳마다 그리워 넋을 뺀다.   이내 몸도 시인일수 있을가? 가랑비 내리는 날 노새 타고 검문을 들어가네.   화제(花题) 탕얜(1470-1523)   삼만경 호수물은 물인지 하늘인지? 천그루 나무끝은 깊어가는 저녁놀.   아이를 불러 작은 배로 호수를 건너며, 누워 노을에 타는 뫼부리를 본다.   중국현대하이퍼시 명시선   눈물의 자취 刘大白(1880ㅡ1932)   그리움따라 아련히 잠들 때 그대를 교살하여 구유 저 깊은 곳에 묻는다. 봄소식 되살아나는 밤이면 그대는 또 한번 홍두(红豆)가지끝에 되살아난다   비늘구름 누가 저 먼 하늘에다 그렸을가   사람은 꽃속에 사람은 바람속에 바람은 우리들 마음속에   지구에서 달빛이 사라질 때도 어쩌면 이토록 쓸쓸하겠지 ㅡ 혼자 동그마니 앉은 나처럼   삼현(三铉) 선인머(1882ㅡ1964)   정오! 불같은 폭염이 아스팔트에 쏟아지는데 거리엔 인적도 끊긴채 바람만 가도의 버들을 쓰다듬는다   뉘집 부서진 대문틈새로 파란 잔디가 보이고 반짝이는 금빛으로 마당이 질펀한데 그 가장자리로 낮은 흙담이 빙 둘러 삼현을 튕기는 그 사람을 에워쌌건만 삼현의 질펀한 소리는 담을 넘는다   문밖에 해진 옷자락에 주검처럼 앉은 로인 있어 머리를 부둥켜 안은채 숨소리를 죽이고있다.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刘復(1891ㅡ1934)   하늘엔 송이구름 나부끼고 땅엔 산들바람 불어오는데 여보게 산들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데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달빛은 저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 또한 저 달빛을 사랑하는데 여보게 벌꿀처럼 달디단 저 은하의 밤에 나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강물위에 락화가 둥둥 흐르고 물속엔 물고기 사쁜히 노니는데 여보게 제비는 무어라 지껄이는데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앙상한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야화는 놀속에 붉게 타는데 여보게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천상의 거리 꿔머뤄(1892ㅡ1978)   가물가물 가로등이 켜있다 무수한 별들이 깜박이듯 하늘에 별이 빛난다 무수한 가로등을 켜듯   저 아물아물한 공중엔 정녕 아름다운 거리가 있겠지 거리에 진열한 상품들은 인간세상에서 볼수 없는 진품이겠지   보아요 저 나직한 은하는 정녕 널다란게 아니겠지 은하건너의 저들 견우 직녀는 필시 소를 타고 오락가락하겠지   저들은 지금 정녕 하늘의 거리를 산책하겠지 믿어지지 않으면 저 류성을 보아요 저들은 초롱을 들고 걸어요   굿바이 케임브리지 서지마(1896ㅡ1931)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하얀 손 흔들며 서녁하늘 떠가는 구름   강가의 금빛 버들은 석양에 시집가는 새아씨 물결에 밀려밀려 고운 그림자 가슴에 철렁철렁 물결을 이네   향그런 여울위에 파란 풀잎이 비단결 물속에서 그림 그리면 케임브리지 부드러운 파상을 따라 마음은 일렁이는 한가닥 물풀   느릅나무 그늘아래 작은 호수는 샘이 아니라 하늘의 무지개 마름풀 사이로 느릅이 부서지면 무지개 고운 꿈이 그리로 가라앉네   꿈을 쫓아간 쑥대를 짚고 푸른 풀 푸른 물을 거슬러 오르면 가득히 한배에 별빛을 싣고 별빛 비단속에 노래하며 돌아가네   그러나 나는 노래할수 없어라 어디선가 피리소리 가만히 새여오네 벌레도 목이 메여 노래 삼킬 때 오늘밤 케이브리지는 침묵에 잠겨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나그네 옷소매를 훨훨 털면서 행여나 묻혀질가 서녘 땅 구름   케임브리지; 영국 동부 도시이름    어쩌면 문일다(1899ㅡ1946)   어쩌면 당신은 너무 울었나봐요 어쩌면 어쩌면 당신은 잠을 청해보세요 부엉이더런 기침을 삼가하고 개구리더런 울지 말고 박쥐더런 날지 말라고   해빛이여! 당신의 눈까풀을 건드리지 말게 바람이여! 당신의 눈섭을 쓸지 말게 아무도 당신을 깨울수 없나니 솔그늘로 양산 삼아 당신의 잠을 보호하게나   어쩌면 당신은 지금 진흙을 뚫고 가는 지렁이 소릴 듣는게지 어쩌면 당신은 지금 작은 풀뿌리의 물 빨아올리는 소릴 듣는게지 어쩌면 이토록 미세한 음악을 아귀다툼하는 인간의 육성보다 곱게 듣는게지   그래, 당신은 먼저 눈까풀을 내리게나 고이 자게! 고이 자게 내 노란 고물흙을 사뿐사뿐 덮어줄게 그리고 얇은 지전을 훨훨 태워줄게   새벽 리진발(1900ㅡ1976)   새벽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게. 미소는 치아들의 틈새에 끼워두고, 조심스런 손길로는 벨을 누르고, 치마끈으로는 융단모양의 국화의 이승을 헤치면서 오게나! 숨결은 어떨까? 나는 도무지 알수 없네 금빛 눈부신 새벽이여! 성큼성큼 다가오게! 구슬소리 달랑달랑 흔들며 오게나! 자네 신비로운 발자국을 가만히 셈세. 자네 팔뚝을 내게로 활짝 벌리고, 저들은 나처럼 잠꾸러기, 깊이 잠들어있네. 들어와 내곁에 앉게. 젖은 신일랑 벗어던지고. 무슨 꽃송이를 땄나? 이리도 자네 가슴에 흥건한 꽃내음. 아니, 그런데 보이지 않더냐? 그것들(꽃송이)이 함께 놀던 작은 양떼들을 떠난지라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자네처럼 절반쯤은 엄숙한 얼굴로 오거든, 내 화필을 놓겠네. 자네처럼 눈망울을 휘둥그렇게 하면서. 밤까마귀는 까맣게 내눈을 칠하더니만 그냥 날아갔고, 장미는 자네 입술에 붉은 연지를 칠하더니만 바람결에 지고 말더군. 우린 오솔길에 숨어서 여윈 풀들이 솔뿌리에서 통곡함을 보고있었네. 자넨 바람속에서 호흡하고, 난 멀리서 바라보고, 그들은 어둠 밤을 향해 광분했네. 더운 밤은 이제야 비로소 문턱을 넘어갔네. 얼마나 웨치다 가 분노와 오열속에 갔을까? 정말 자기가 오지 않았더라면 난 꿈속에서 자네를 내 품에 안았을걸세. 그렇지 어둠은 분명 문턱을 넘어갔네.      실비(외1수) 穆木天(1900ㅡ)   올올이 마음 가느다란 실비줄기마다 파고들어 아련한 빗소리를 파고들어 시나브로 흔들리는 실안개를 파고든다   아득히 먼 수풀 그 가지끝으로 스며든다 어둡도록 막막하게, 그리고 조금씩 들쑥날쑥한 지붕룡머리로 스며든다. 전선 한줄한줄에 스며든다 살살 불어와서 어디론지 아련히 사라지는 음악에도 스며든다   안개가 자욱한 연못에 스며든다 잠자는 련꽃위로 여기저기 엉기어 고요히 나붓기는 안개의 그물에 스며든다 끝없는 꿈속을 헤매는 공상에 스며든다 옛이야기에도 스며들어 어디론지 자욱하다   멀리 보이지 않는 산꼭대기에 스며든다 바람소리 빗소리로 오락가락한 숲속에 스며든다 영원한 순환으로 멀리멀리 휘감기는 강만에 스며든다 구름인지 물인지 , 비었는지 차있는지 모르는 영원한 하늘가로 스며든다  옛날의 도시, 농촌, 영원한 안개, 영원한 연기에 스며든다 영원한 몽롱, 몽롱뿐인 ㅡ마음에 스며든다 끝없는 담박, 끝없는 황혼, 영원한 점선, 영원한 나부낌, 영원한 그림자, 여원한 실체, 영원한 공허,   끝없는 비줄기 끝없는 마음의 실오라기 몽롱 몽롱 몽롱 몽롱 몽롱 가늘게 무한히 몽롱사이를 스며든다    올올이 마음 가늘게 한줄기한줄기 빗줄기 사이로 스며든다.    리발소 癈名(1901ㅡ)   리발사의 비누거품은 우주와 상관이 없다 마치 물고기가 강호을 잊듯 리발사 손에 쥔 면도기는 인류라는게 많은 자국을 그어야 된다는걸 상기시킨다 벽에는 사구려 라디오가 울린다 그것은 령혼의 침.   무덤 하나 朱湘(1903ㅡ1933)   무덤 하나 동그마니 무덤앞에 들풀이 무성하고 무덤 하나 동그마니 뱀이 기어가듯 바람이 풀을 스친다   반딧불 하나 어둠이 사방을 에워싸고 반딧불 하나 콩만한 빛을 낸다   해괴한 새 한마리 스산한 나무그림자에 숨어 해괴한 새 한마리 인간과는 달리 울음을 터뜨린다   누런 달 한갈쿠리 구름속에서 빼꼼히 내밀고 누런 달 한갈쿠리 문득 산기슭으로 진다    14행 대망서(1905ㅡ1950)   보슬비가 당신의 헝클어진 빈모자에 나붓기고있다 작은 구슬방울이 파란 미역덤불에 부서지듯 죽은 물고기가 하얀 파도위에 뒹굴듯 그 신비롭고 슬픈 빛을 번득이고있다   내 푸른 령혼을 데리고 사랑과 죽음이 깃든 꿈의 왕국에서 잠을 청한다 거기엔 황금색공기와 자색 태양이 있고 거기 불쌍한 생물들이 기쁨의 눈물을 가슴에 적신다 한마리 까맣게 야윈 고양이처럼 나는 그 어둠속에서 초췌하게 기지개를 켜며 내 모든 위선과 진실한 교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고양이를 따라 몽롱한 뽀얀 안개속을 비틀거리며 연분홍 술거품이 호박종에 흩날리듯 나는 뜨거운 눈망울을 거기 어두운 기억속에 감추어둔다    편지 卞之林(1910ㅡ)   우체부가 평상처럼 벨을 누른다 바로 대문의 한가운데를 누른다 황해를 헤염쳐온 물고기인가? 시베리아를 날아온 기러기인가? 지도를 펴고 찾아라고 멀리 간 사람이 말했다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은 그 점신이 끝나는 작은 흑점이라고 표시했다 그것이 끔빛 빛나는 점이고 내 의자는 태산의 꼭지라면 휘영청 밝은 달밤 당신이 머문 곳은 틀림없이 외로운 정거장이겠다 하지만 나는 헌 력사책을 펼치고있거늘 서쪽으로 저녁노을의 함양 옛길을 내다보며 나는 한필의 준마가 달려오는 찰그랑찰그랑 말굽소리를 기다린다.   함양; 진나라서울    구름 하기방(1927ㅡ1977)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해, 저 나부끼는 구름을…’’ 그것은 어쩌면 보들레르 산문시구절 그 목을 한쪽으로 빼고 근심에 차 하늘을 바라보는 멀리서 온 사람   시골을 가면 농부는 성실해서 제 땅을 잃었다 그들의 집은 줄지어 농구로 변신되고 낮이면 논밭에 나가 먹이를 찾고 밤이면 메마른 돌다리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해변의 도시로 갔다 겨울의 아스팔트위엔 별장들이 줄을 서는데 어쩌면 거리에 서있는 창녀같았다 그들도 여름의 환락과 부옹의 탐락,무치를 기다린다   지금부터 나는 북받치는 울분속에 맹서하리라 내게 차라리 작은 띠집 한채를 원할지언정 구름을 사랑하지 않으리 달과 별도 사랑하지 않으리    항해 辛笛(1912ㅡ)   돛을 달았다 돛은 노을이 있는 곳으로 맑고 이끼 낀 곳으로 돛대는 까만 물을 입맞춤한다 까만 나비와 흰 나비처럼   밝은 달은 머리를 비춘다 파란 뱀이 은빛 구슬을 희롱하며 돛대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바람이 불자 뱃사람들은 비와 별들을 묻는다   낮에서 밤까지 밤에서 낮까지 우리는 이 동그라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위에도 원 앞에도 원 영원하면서도 끝이 없는 동그라미   목숨이 망망함은 망망한 연기빛 물을 벗어난다   배 纪弦(1913ㅡ)대만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해한다 내 파이프 자욱히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저음의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단위는 ‘’인생’’이란 중량.     어렸을 때(외1수) 绿原(1922ㅡ)   어렸을 때 나는 글자를 모르고 엄마는 도서관   나는 엄마를 읽는다   어느날 이 세상이 태평해서 사람이 날고… 보리가 눈더미에서 돋고… 돈이 쓸데가 없고…   금괴는 집 짓는데 벽돌로 쓰고 지페는 발라서 연을 만들고 은전은 던져서 물에 무늬를 일으키고,,,   나는 떠돌이 소년이 되련다 금을 칠한 사과 하나와    은발의 초 한자루 그리고    이집트에서 날아온 홍학 한마리를 들고.    우울   태양이 부채꼴의 방사선을 공급하더니 몰락하고 예수는 노새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길손은 초롱불 하나를 사서 건너마을 주막집을 찾는다   성인은 황혼의 연기빛 물가에서 고뇌한다 (우렁은 그의 껍질로 돌아갔다.) 비가 내리는 성곽의 다락엔 (저녁종은 십자가 그림자를 그리며 울린다.) 언제나 투명한 소리 있어 너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 마땅히 꿈꾸는 나그네를 깨워야지   이것은 동화   밤이 깊었다 내게 성냥 한개비를 주소서.    겁회(劫灰) 羊令野(1923ㅡ)         ㅡ 다만 잡목사이로 보일뿐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다. 천둥이 치고 불이 붙고 잿더미에서 나비가 날고   모든것은 무성하지 못한채 맨 손으로 하늘을 더듬는다 북두성은 하늘을 마르도록 퍼내면서 아직껏 단 술 한잔을 따르지 못한다 다만 눈, 비의 꽃송이들 당신의 과실 하나 맺지 못할 이마에 풍성하게 열렸다   뻐꾹새 온 3월을 울었건만 한알의 쌀도 남기지 않은채 봄과 함께 훌쩍 떠나고 당신의 나이테엔 해마다 거듭되는 녹음이 남았건만 모두가 지난 해의 낡은 가락들 당신의 마음에 맴도는 한마리 잠을 잃은 사자 밤마다 풍성한 장미를 맡는다 모든 꽃다움을 후호에 뱉으면서 손바닥에 길렀던 빨간 봉황을 깨워 불붙는 태양으로 날려보낸다   누구의 도끼로 당신의 우주를 철썩 쪼개놓고 우르 꽝꽝 천둥이 울린뒤 바람결에 재더미는 훨훨 남가몽의 나비.    민가 위꽝중(1928ㅡ)   듣건대 북방에 민가 한편 있거늘 다만 황하의 페활량이라야 노래할수 있다네 청해로부터 황하까지 바람도 듣고 모래도 듣고   황하가 얼어 빙하가 된다면 아직도 양자강의 가장 오랜 비음 있거늘 고원으로부터 평원까지 물고기도 듣고 룡도 듣는   양자강이 얼어 빙하가 된다면 또 내가 있지 나의 홍해가 남아 울부짖거늘 새벽 밀물부터 저녁 밀물까지 깨여도 들리고 꿈에도 들리는   어느날 나의 피마저 얼게 될 때 아직도 당신의 피와 저이의 피가 남아 합창하거늘 A형에서 B형까지 울어도 들리고 웃어도 들리고    스트리킹(裸奔) 뤄푸(1928ㅡ)   ……… 2 모자는 벗어 아버지께 옷은 벗어 어머니께 신은 벗어 자식들에게 넥타이는 풀어 친구에게 우산은 주어 이웃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하픔을 한다)   침대는 개미더러 책들은 바퀴더러 사진은 벽더러 편지는 화로더러 시고(诗稿)는 비바람더러 술주전자는 달더러 가져가라하고   (그 혼자서 가만이 쭈그려앉는다)   손발은 삼림에게 골격은 진흙에게 모발은 풀잎에게 지방은 화염에게 혈류는 강하에게 눈은 하늘에게 돌려주고   (그는 갑자기 머리를 세운다)   참새에게 환희를 주먹에겐 분노를 생채기에겐 슬픔을 거울에겐 분함을 폭탄에겐 원한을 력사에겐 망연함을 돌려주고   (돌격준비!)   그는 지금 막 거리로 용입한다 그는 지금 막 먼지로 치닫는다 그는 지금 막 눈보라로 뛰여든다 그는 지금 막 나무들새로 걸어간다 그는 지금 막 강철들과 합류한다 그는 지금 막 꽃내음에 말려든다   드디어 길기도 짧기도 세기도 부드럽기도 구름일수도 안개일수도 숨었다가도 나오며 있다가도 없고 비였다가도 가득한 알몸으로 승화한다   산의 소나무처럼 벌거숭이로 물의 붕어처럼 벌거숭이로 바람의 연기처럼 알몸 그대로 별의 밤처럼 알몸 그대로 안개의 선녀처럼 가리지 않고 얼굴의 눈물처럼 알몸 그대로              3   그는 지금 넘실거리는 종소리를 향해 달린다 달려간다….      2대2 뤄먼(1928ㅡ)   1   창밖은 문 문밖은 잠기고 산밖엔 물 물밖엔 망망한 하늘과 땅   2   사람은 옷을 입고 호주머니엔 려권을 모시고 새는 하늘을 입어도 하늘 그 주머니엔 아무것도 없다   3   새는 산과 물로 날아들고 닭은 푸성귀시장으로 옹기종기   4 바람과 구름과 새의 현주소를 알고자 하늘과 평원의 끝까지 웨쳐도 저들의 다리는 그 골목 그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5   엘리베이터로 엠파이어를 올라도 엘리베이터는 지붕아래에서 머물고 하늘이 구름을 타면 우리들의 시력이 얼마의 높이를 갖고 얼마의 깊이를 갖는지 누가 알랴!   6   낚시줄을 깊은산 시냇물에 띄우면 온 하늘은 거기서 조용히 앉았고 다시 그녀의 허리로 눈길을 옮기면 눈자위마다 번지는 죽은 이의 재즈가락 (16까지 있으나 길어서 삭제함)    말굽소리 바이화(1930ㅡ)   밤 댐,강물,차밭에 달빛이 살짝 깔릴 때 타이족꼬마가 엄마의 무릎에서 자고 꼬마의 꿈속엔 참새들이 줄을 지어 노래한다 꽃들은 풀더미속에 동글동글 미소하고 야자와 망고들이 산턱에 모여 아우성한다   순찰병의 말굽소리 철그럭철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어머니가 은근히 미소하는 순간 말굽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여명 풀밭, 텐트, 소, 염소들이 찬란한 서광을 이마받이할 때 이족아가씨가 님의 가슴앞에서 나직이 노래한다 그녀는 맑은 호반의 짙푸른 목장을 노래한다       소와 염소 떼속 준마를 탄 소념 그리고 와글와글 소리치는 젖소새끼들   순찰병이 말굽소리 찰그럭찰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아가씨가 수줍어 돌아보는 순간 말굽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석양 설산, 빙하, 파란 보리싹들에 지는 노을이 머물 때 장족의 손주가 할아버지어깨에서 피리를 분다 그가 스스로 그리는 먼먼 곳을 분다 먼 곳에 붉은 보석의 서울이 있고 그 붉은 보석이 성에 영원히 대지를 비추는 태양이 반짝이고있다   순찰병의 말굽소리 찰그럭찰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눈 깜박이는 순간 말굽ㅈ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고도 호구에서 예웨이렌(1936ㅡ 대만)   줄이 끊긴 비파가 공중에 가로 놓여 바람의 손가락더러 치라한다 바람의 손가락더러 배속을 때리라 한다   그 다락에 앉은 여자가 머리를 빗는다 광서황제의 얼굴에 닿도록 빗질한다 머리가 너무 길어서 우리는 아무리 쫓아도 따라갈수 없다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줄이 끊긴 연 한닢을 볼수밖에 없다    종달새 레이수얜(1940ㅡ)   날아라! 종달새! 오월의 고요한 새벽을 날개쳐라!   너는 오만한 벼락 너는 즐거운 유성 너는  장려한 일출을 보았고 네 가슴에 일렁이는 행복 너의 사랑 전부로 이 광명을 노래하렴   날아라! 종달새! 오월의 고요한 새벽을 날개쳐라!   보리 푸탠린(1946ㅡ)   보리, 내 사무치게 사랑하는 보리, 내 그대를 위해 시를 쓰노라   청순한 오월엔 일년에 한차례의 수확을 기다린다 봅리수염의 휘날림은 해볕의 자상한 은총 낫을 놓고 절구통과 술을 두들긴다 묶어진 보리짚단은 허리에 수건을 졸라맨 사내   내게는 보리 말고 이 세상 무엇을 갖겠나?   나는 당신이 총애하는 계절인가? 나는 당신의 원야로서 혼례를 파종하는 밀월인가? 불어나는 열매는 갈수록 풍만해지는 내허리 아침 안개를 걸친 자세는 어느 천자의 긴 두루마기   아! 이른 아침, 어느 농부가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린뒤   달밤은 버드나무 한줄과 살구나무 한줄로 경계를 쌓고 어쩌다가 메뚜기 한마리가 외밭으로부터 슬금슬금 도망나온다 뼈 없이 한들한들한 싹은 감수와 항쟁의 깃발 보리! 내 사무치게 사랑하는 보리 내 그대를 위해 시를 쓴노라   태양성편지 뻬이따오(1949ㅡ)     목숨   태양은 위로 오른다   사랑   고요, 기러기떼가 날아간다 황페한 처녀지로 고독이 쿵 넘어진다 하늘엔 짜고 떫은 비가 나부끼고   자유   찢어진 휴지가 나부낀다   아가씨   떨리는 무지개가 나는 새의 꽃털을 채집한다   청춘   붉은 물결이 고독한 노로 스며든다   예술   억만개 휘황한 태양이 부서진 거울에서 현신(现身)한다   인민   달빛에 찢겨 반짝이는 보리알이 성실한 하늘과 땅에 뿌려진다     로동   손, 지구를 에워싼다   운명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난간을 치고 난간은 아무렇게나 밤을 때린다   신앙   양떼가  파란 늪에 넘실거리고 목동은 외마디 퉁소를 분다   평화   식품은 쇼윈도를 빙빙 돌고 말 없는 초콜렛 대포   조국   그는 청동의 방패위에 주조되여 박물관 까만 판자울타리에 기대고있다   생활   그물     기왕 쉬징야 (1950ㅡ)   기왕 앞으론 망망대해 뒤로는 아득한 륙지일바에야 기왕 발아래론 파란 만장을 밟고 또 숙명대로 저 파도를 그릴바에야 기왕 기대고 참을만한 초석조차 해저로 가라앉은바에야 기왕 저륙지는 멀고 바다와 하늘에 가로막혔을바에댜 차라리 내 일생을 바다에 주자꾸나 저 앞에 아무런 안전표지도 없는 바다에 주자꾸나   시월의 헌시(외2수) 망커(1951ㅡ)   수확   가을이 살며시 내 얼굴에 오더니 내가 익었다   로동   나는 장차 모든 마차와 함께 태양을 보리밭으로 유인할것이다   과실   얼마나 귀여운 자식 얼마나 귀여운 눈빛 태양은 빨간 사과 그아래로 무수한 아이들 기묘한 환상   과실   얼마나 귀여운 자식 얼마나 귀여운 눈빛 태양은 빨간 사과 그아래로 무수한 아이들 기묘한 환상   가을숲   당신의 눈빛도 당신의 목소리도 없이 땅에는 붉은 스카프가 내리고…   만남   그것은 구름송이처럼 나플거리는 여인의 그림자   오솔길   그것은 줄곧 흔들리는 백양나무 그것은 백양나무에 기대선 아가씨 그 길은 아가씨가 절망한 굽이굽이 오솔길   구름   나는 당신이 당신이 하얀 잠옷 입을 때를 사랑한다   개척자   나는 강물 나는 젖줄 내게 물을 주오 젖을 주오 나는 쇠쟁기 나는 낫 내게 경작과 수확의 기회를 주오 ……………….   가을   1 과일이 익었습니다 이 붉은 피 나의 과수원엔 하늘처럼 붉게 물든 밤 2 가을은 정욕이 이글거리는 계절 당신의 눈엔 왜 나를 드러내고있나요 3 꽃피는 계절 아이들은 논밭으로 나가 손님이 된다 그들의 재잘거림은 밭갈이하는 사람과 더불어 수확의 계절로 들어간다 아, 가을 틀림없이 당신은 꽃피는 계절 4 당신의 눈망울속 구름은 하염없이 나부끼고 가을이여! 태양은 어이하여 당신을이토록 말리나이까? 5 당신의 품에 안은것은 무엇이뇨? 당신이 휘둥그래 찾는것은 무엇이뇨? 그 눈부신 해살아래 우울한 사람들 사내, 여인, 아이, 빵 그것은 가정의 필요 그것은 요람을 가득 채운 빵 6 아이들에게 더 많은 눈물을 주지 마오 그들에겐 죄가 없나이다 7 해볕속에 찬란한 이 장미 한송이를 사랑에게 드리나이다 8 아! 가을! 당신은 몇가지 빛갈을 지녔나요? 황혼은 목욕을 마친 아가씨의 수건 물결은 아가씨를 희롱하는 부끄러움 밤은 미쳐서 녀인들과 얽혀있거늘 가을 가을임에 틀림없습니다. 9 가을 나의 생일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소 나마저 남기지 않은채 과일이 익었습니다 이 붉은 피 10 아! 문앞에 쭈그리고 있는 다신 어둔 밤 나의 적막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까맣게 그을린 등뼈가 있습니다 내게는 태양도 감쌀 가슴이 있습니다 내게는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누군가에게 경작된 두개골이 있습니다 내게는 하늘도 들락거리는 머리가 있습니다 내게는 아득히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누군가에게 갈고 닦인 손바닥이 있습니다 나는 별을 씨처럼 뿌리는 힘을 가졌습니다 나는 일꾼의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나는 피가 출렁출렁 흐르는 몸을 가졌습니다 나는 인류를 길러낼 젖을 가졌습니다 나는 미래에 부치는 희망을 지녔습니다   조국이여! 사랑하는 조국이여! 쑤팅(1952ㅡ)   나는 당신의 강가의 털털이 물레방아 여러백년 피곤한 노래로 물레질하는 방아 나는 당신의 이마에 까맣게 그을린 작업등 당신이 력사의 터널을 달팽이처럼 기여가로록 비추는 작업등 나는  말라빠진 벼이삭 망가진 길바닥 나는 좌초된 난파서 당시의 어께에 동아줄을 묶었나니 당겨주소서! ㅡㅡ조국이여!   나는 빈곤 나는 슬픔 나는 당신이 대대손손 아프디 아픈 희망이거늘 천사의 소매에서 천백년을 날다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 않은 꽃송이  ㅡ조국이여   나는 방금 신화의 거미줄을 탈출한 당신의 참신한 리상 나는 당신의 눈더미속에 자란 고련의 싹 나는 당신의 눈물적신 보조개 나는 방금 석회를 뿌린 하얀 출발선 나는 지금 막 솟구치는          붉은 려명;     ㅡ조국이여!   나는 당신의 십억분의 일 당신 구백륙십만평방의 총화 당신은 갈기갈기 찢기운 가슴으로 헤매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끓는 나를 키웠다 그것은 나의 피와 나의 살더미위에서 당신의 풍요 당신의 영광 당신의 자유를 얻었나니 ㅡ 조국이여!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여!   증명(외2수) 얜리(1954ㅡ)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햇살이 내게 손짓하고 있을 때 새똥이 내 손가락끝에 떨어진다 소가락 마디는 내 몸에서 빼낸 시름 한토막 하지만 얼른 봄을 확인코저 나는 일벌 한마릴 꼭 쥐어본다 여기서 봄의 강림은 한차례의 아픔에서 시작됨을 확인하거늘 생채기를 벌리고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빈차   스무조각으로 좌우를 바느질한다 발빛아래서 노동한다 낯익은 바람 그대는 낡은 하늘을 꿰맨다      나는 눈(雪)이다   나는 일기를 쓴다 온 대지에 가득히   나는 눈이다 나부낌은 다만 도중의 일   나는 눈이다 시체를 덮는 하얀 베   혹시 내가 틀렸을지라도 내 어찌 노란 잎새를 이해하랴   나는 눈이다       눈을 깜박인다             ㅡ이 착란의 시대에 나는 이러한 착각을 생산한다. 꾸청(1956ㅡ)   나는 죽어서도 눈을 뜰것을 믿는다   무지개가 분수속을 노닐며 부드러이 길손들을 둘러보다가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뱀의 그림자로 둔갑한다   시계가 교회에 살면서 조용히 시간을 재지만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깊은 우물이 된다   붉은 꽃이 은막에 펼쳐지며 활활 봄바람을 맞건만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비릿내 나는 핏덩이가 된다   확신을 얻기위해 나는 두눈을 부릅뜨고있다    물가 양무(1940ㅡ)   나 여기서 벌써 나흘을 앉았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 ㅡ 아무런 발소리 하나 울리지 않는 곳에서   (적막뿐)   풀고사리는 내 바지밑에 돋더니 어느새 내 어깨를 가리였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버릴수 없는 기억의 흐름 기억도 차라리 동동 구름에 적어둘걸   지금 눈을 돌리면 마냥 헤프게 웃는 개나리 그리고 민들레는 꽃가루를 날려날려 시나브로 내 삿갓에 내려앉네 가난한 내 삿갓더러 무엇을 주란 말인가 드러누운 내 그림자더러 또 무얼 주란말인가   오후마다 나흘째의 물소리는 오후마다 나흘째의 발소리런가 그것들이 모두 발을 굴리는 소녀들의 끊임없는 열렬한 고집이라면 ㅡ 아무도 올수 없어 아무도 올수 없네 나는 그저 낮잠이나 청하는수밖에.   심원춘            눈(1936작)        모택동   북국의 풍광 천리에 얼음 덮이고 만리에 눈 날리네 바라보니 장성안팎은 망망한 은세계여라 도도히 흐르던 황하도 홀연 그 기세 잃었구나 산은 춤추는 은배암이런가 고원은 줄달음치는 흰 코끼리런가 저마다 하늘과 높이를 겨루려네 날이 개이면 붉은 단장 소복차림 유난히 아릿다우리   강산이 이렇듯 아름다워라 수많은 영웅들 다투어 허리 굽혔더라 가석하게도 진시황 한무제는 문채 좀 모자랐고 당태조 송태조는 시재 좀 무디였느리라 천제의 총아라던 칭키스칸도 독수리 쏘는 한재주밖에 없었더라 모두 지나간 일이거니 영웅 호걸 찾으려거든 오늘을 보아야 하리                   2016년 4월초   참고문헌   물과 꿈 /가스통 바슐라르/ 문예출판사 몽상의 시학/가스통 바슐라르/동문선 구조주의 력사/프랑수아 도스 /신야사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 라캉쉽게 읽기/우치다 타츠루 /갈라파고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테렌스 호옥스 /동문사 글쓰기 0도 /롤랑 바르트 /동문사 해체/ 자크 데리다/ 예술출판사 데리다의 유령들/니콜러스 로인/앨피 천개의 고원/질 들뢰즈 , 필릭스 가타리/새물결 하이퍼텍스트 3.0 /조지 P 란도/ 코무니케이션빅스 욕망 이론/자크라캉/문예출판사 현실과 초월/문덕수/ 시문학사 문덕수문학연구2/시문학사 심상운시론/ 컴에서 문심조룡/류협/연변인민출판사 《周易生活》/徐坤编著/气象出版社。 人间词话/王国维/吉林文艺出版社。 《秋思》/马致远/元代散曲集《东篱乐府》。 唐4柱大典/ 李仙岩,金虎日 共著/弘新文化社。 주역/장성문 금역, 김성우 한역/연변인민출판사 노자평전/쉬캉썽/미다스북스출판사 언어의 토대/ 로만야콥슨. 모리스할레/ 문학과 지성사 소쉬르/ 조너선 컬러/시공로고스총서 03 시의 리해/정현종, 김주연, 유평근편/민음사 시학/아리스토 텔레스/문예출판사 주석성경/기독지혜사(주) 기억이 나를 본다/시집.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들녁사 하이퍼시 /종합시집/시문학사 하이퍼시2/종합시집/시문학사. 중국고대명시선/허세욱역주/혜원출판사 중국현대명시선.1/허세욱역주/혜원출판사 중국현대명시선.2/허세욱역주/혜원출판사 중국고전문학작품선(제2집)/허룡구편역/료녕인민출판사 남이다 하고난 질문/신세훈/도서출판 천산 최룡관 시선집/ 연변인민출판사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방산옥/연변대학출판사. 자유문학/계간지/96권/도서출판천산 도라지잡지/격월간/2015/제2기. 도라지잡지/격월간/2015/제4기 비비(1)/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편집/ 내부간물 비비(2)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편집/내부간물 비비(3)/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편집/내부간물      뒤풀이   을 출간하게 되니 심정이 사뭇 경건해 집니다. 이 책은 저의 문학생애에서 두번째 기념비를 세운것 같 습니다. 첫번째 기념비는 이였습니다. 두 개이 문학에서의 저의 자화상이라고 할수있을것 같습니 다. 문학은 새로운것에 대한 탐구입니다. 50살을 맞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문학의 본체에 대하여 사색하면서 홀로걷기를 한것 같습니다. 눈보라도 맞아야 했고, 소나기도 맞아야 했습니다. 눈보라와 소나기를 보내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저를 견강하게 하였고 분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명감을 느끼면서 분투하는 큰 힘을 얻었습니다.   나름대로 탐구한 저의 문학의 길은 말그대로 가시밭길이였던 같습니다. 너무도 외로운 길이였고, 너무도 어려운 길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거기에 보람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 책을 내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홍현기화백은 저한테 새로운 서적들을 많이 보내주셨고, 연변일 보전임사장 강룡운선생님은 제1독자로서 많은 조언을 주시 였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 책의 출판을 맡아나선  연변대학출판사 김미숙주임과 임직원들의 로고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이 저로서는 마지막 리론 탐구작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만큼한 졸작을 쓰는데는 꼭 10년이란 공부와 연구 그리고 집필시간이 수요되였습니다.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이 책으로 시리론연구를 마무리 해야 한다는 생각을 털어버릴수가 없습니다. 조금은 섭섭한 생각이 듭니다만 저는 나름대로 문학의 본연을 탐구해 본것에 자부감을 느낍니다. 저와 함께 하이퍼시를 탐구하는 연변동북아문예술연구회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문학의 부흥을 빕니다.                       2016년 5월 13일    
15    10.하이퍼시는 설명과 해석이 아니라 은유와 환유를 촉구 댓글:  조회:548  추천:2  2018-01-10
10.하이퍼시는 설명과 해석이 아니라 은유와 환유를 촉구 하이퍼시에서도 중점적이고 활약적인 수법은 은유와 환유라고 할수 있다. 은유는 돌발적으로 나타나며 시인의 대담한 상상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은유는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불러오기이며, 한사물에서 다른 사물로의 건너뛰기이며, 한사물이 다른 사물을 대체하기이다. 는 은유인데 물과 불타는 물체는 워낙 어떤 련관성을 갖고있는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반대성을 지니고있다. 은유는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격식을 갖고있는 자유로운 상상의 표현이며, 한 사물이 그와 다른 사물로 생성되기이다. 은유는 수직이며 분리이며 반대물과의 짝짓기이다. 환유는 한명칭을 다른명칭으로 대체하기이다. 명칭을 대체하면서 새로움을 발휘하는 문체이다. 는 환유인데 여기서 칼은 료리사를 대체한 언어이다. 에서 북경은 북경시위서기나 시장을 대체한 언어로서 환유에 속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포르에게는 이런 시구가 있다.   아침의 조용한 물소리 장미처럼, 일몰의 사자는 거슬러 오리라. 은빛종소리는 헤염치리라, 얼마나 상냥한 바다인가… 아! 내방의 갈대는 얼마나 울부짖고 있는것일가(165쪽)   우의 시는 참말로 정채로운 이미지라렬이다. 물소리는 은유에 의하여  장미라는 새로운 사물이 되여  나타나고, 일몰은 은유에 의하여  사자라는 새로운 사물이 되여 나타나고, 은빛종 소리, 바다, 갈대들은 환유에 의하여 언어의 코드가 바뀌면서 사물이 새롭게 태여나고 있다겠다. 기이한 감이 드는 이러한 사물운동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며  떨리게도 한다. 은유와 환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분석해본학자는 로만 야콥슨과 모리스할레라고 할수 있다. 그들은 은유는 어떤 유사점, 상합적, 공시적, 수직적, 직유. 초현실주의, 능기생성, 시전경화, 해석불가의 성격을 띤다고 하였고, 환유는 유사성대신 인접성, 상합적대신 련합적, 수직성대신 수평적, 직유대신 제유,  능기생성대신 능기결합, 공시적대신 통시적. 시전경화대신 산문전경화. 초현실주의대신 입체파, 해석불가대신 해석거부라고 하였다.  은유는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변하기이며, 환유는 한 사실이 다른 사실로 변하기인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특별하게 중시하면서 은유를 (.134쪽. 아리스토텔레스)이라고 하였다.  은유는 어떤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는것이 정설이다. 이 유사성은 감각에 의거하기가 일수이다. 일 때 색갈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청각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촉각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미각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모양에 의한 은유다. 일 때는 성질이나 사물의 의미에 의하여 만들어진 은유이기에 경우가 다르다. 이런 등가성은 물은 불이다처럼 등가성이 먼곳에 있다고 할수 있다. 먼곳은 성질이다. 백두산이 술이라고 할 때는  취한다는 의미가 있기때문에 성립되는것이고, 물은 불이라고 할 때 물은 액체이고 액체는 불이 붙는것이 많기도 하거니와 노을속에서 물은 붉은 색갈이 번지기도 한다. 그래서 물도 바다도 호수도 다 불로 전환될수 있는것이다. 기어코 어떤 유사성이 있어야만 은유가 성립되는것은 아니다. 시인은 시를 쓸 때 이것이 은유인가 환유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우연히 은유적으로나 환유적으로 시구가 나오게 되는것이다. 어떤 상상은 몽환과 같은것이여서 은유나 환유가 맞느냐 틀리느냐는 비평가들이나 론할 일이지 시인들이 론할 일은 아니다. 시인은 령혼에 떠오르는 물질생성과 물질운동 즉 이미지를 따라가며 적어놓는 작업을 할뿐이다. 은유든 환유든 다 기발한것일수록 값이 비싼것이다. 소위 기발하다는것은 일상적인 상상의 지평을 넘어서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는는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은유나 환유,  누구의 상상이나 다 뛰여넘은 그 시인만의 은유나 환유, 누구도 깜짝 놀라게 하는 은유나 환유, 누구도 쉽게 리해하기 어려운 은유나 환유,  그것은 천금과도 바꿀수 없는 창조성과 예술성이 융합된것으로서 시인의 위상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그 시인만의 일회용 은유나 환유야말로 최상이것이리라. 최상의것은 코와 코구멍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 망치로 뚜드려도 부서지지 않고, 세월이 흘러가도 부식되지 않고, 색갈이 변하지 않는 은유나 환유를 창조한다는것은 예술의 정상에 오르는 표징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필자의 소견에는 환유보다 은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유는 상징에 도달하는 지름길로서 일상적인 사유에서 신비하고 기이한 사유에로 전환하기 가장 좋은 문학수법인것이다. 은유와 환유에 대하여 많이 론한 석학중의 한사람은 자크 데리다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그는 라는 글에서 무려 150쪽에 달하는 지면을 할애하여 은유와 환유를 피력하였다. 데리다는 은유는  텍스트의 체계속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동상. 249쪽) 또 은유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하면서 (자크 데리다  180쪽) 고 하였다. 찬찬히 읽어보면 알수 있기에 뱀에게 사족을 붙이지 않기로 한다. 태양은 아침에 아세아에서 떠서 아세아의 저녁이 되면 구라파로 가는것이 태양의 궤적 이다. 아침과 저녁은 지구의 자전에 의하여 명명된것으로서 중국은 구라파보다 아침을 먼저 맞게 된다. 태양의 빛은 많은 은유를 생산하는데 동방에서부터 서양으로 가면서 하게 된다. 한국 주역가 김승호의 말씀대로 하면 중국의 문명은 서양보다 적어도3500년을 앞섰다고 할수 있고, 중국 장승호주역가에 의하면 1500여년을 앞섰다고 할수있다. 이것은 주역과 성서의 년한의 차이로 립증할수 있는것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것은 영구불변의 도이며 진리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동상. 245)면서 태양의 수사를 이라고 하였다. (동상) 고 감개무량해 하였다.  중국고대4대 발명인 제지, 인쇄, 화약, 지남침은 인류에게 지대한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고, 철학에서는 으로부터 시작되여 도가, 유가 법가…문학에서는 로부터시작하여 를 거쳐 , , , , …등은 인류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예일대교수 폴 케네디는  (.17쪽)고 하였으리라. 손오공이 72변술을 부려도 여래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없었듯이 서양의 근대, 현대, 당대의 시가가 중국의 고전에 그 뿌리가 있다는것은 벗어날수 없는것이다.  우리는 자호해야 한다. 중국 고전의 전통을 살리면서,  서양의 우수한 문학기교를 받아 들이면서, 우리의 전통인 을  모름지기 윤기나게 갈고 닦으면서, 하이퍼시를 찬란하게 꽃피워야 할것이다.               마무리   이 글은  구조주의의 무의식과 하이퍼시에 대한 감상품이며 습작품이라고 할수 있겠다. 많은 필묵을 들여서 말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즉 하이퍼시는 사물의 생성을 말하는 시이고, 그 구성은 횡적구성으로서  생성은 하나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여럿을 말하는것이다. 현대시에도 이런 시들이 있다. 그때는 파편문체라고 하였다. 21세기에 와서 하이퍼시의  개념을 정립하였고, 본격적으로 21세기 문학을 장식하고 있다고 하겠다. 하이퍼란 강대하다는 말이다. 하이퍼시라는 언어는 영어에서 나왔다. 우린 서양사람들의 하이퍼시를 연구하면서 중국의 시전통과 비해보면 명명의 새로운 감을 느끼고 수법의 신선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시궤도와 국제적인 시궤도를 련결하게 되며, 우리시의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에 하이퍼시가 한줄기 산맥을 이루고있다는것을 피부로 알고 하이퍼시를 해야 한다는것이다. 지식의 결핍과 연구의 제한으로 많은 오류가 존재할수도 있으므로 독자들의 량해를 바란다.                     2015.6ㅡ12  
9.하이퍼시는 단일체가 아니라 다양체를 촉구    첫머리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하나님이 첫째날에 낮과 밤을 만들고, 둘째날에는 물과 하늘을 만들고, 세째날에는 땅에 풀씨와 나무씨를 주고, 네째날에는 물들이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를 하늘에 날게 하고, 다섯째날에는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남자와 녀자를 만들어 번성하여 다스리라 하고, 여섯째날에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열매의 나무를 사람에게 주시고, 기는 놈이고 뛰는 놈이고 나는놈이고 가리지 않고, 생명이 있는 모든것들에게 푸른 풀을 주어서 먹고 살아가게 하였다.  이렇게 엿새동안에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만들어내였단다. 사실 이것들은 새로운 사물이 생성됨을 이야기한것이다. 사물들은 모두 이질적이다. 하이퍼시의 다양체란 이렇게 이질적인 사물들의 련속적인 산생을 쓰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노자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되고 셋이 세상만물이 된다는것도 사물생성의 련속성과 이질성을 말한것이고, 에서 태극이 양과 음을 낳고 양과 음의 기에 의해서 세상사물이 생성된다는것도 실은 무의식이 다양체를 생성한다는 말과 다를바가 없다는 말이겠다. 주역은 5000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다하고 창세기는 3500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단다.주역은 유물론적이고 창세기는 유심론적인것으로서 주역과 창세기는 다른 학문이다.  창세기는 세상 만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지만 주역은 양과 음의 기에 의하여 사물이 생성되였다고 하였다.  이렇게 여러가지 사물의 생성을 시적으로 쓰는것이 하이퍼시다.  련이어 새로운 사물이 나타나게 하는것을 시에서는 다양체라고 한다.  다양체란 이질적인 리좀들의 두개이상의 집합을 말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다양체란 말은 여러가지  리좀이란  말과  다름아닌데 일본의 우노 쿠나이치교수의 해석에 의하면 리좀은.(.98쪽) 20세기까지 우리 시들은 거개가 단일체였다고 할수 있고 , 21세기 시는 단일체가 아니라 다양체로 전의되고 있다. 다양체의 리좀은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와 결이 따로 없다. 기이자 결이고 결이자 기이다. 리좀은 중간에서 생성되며 그속에서 충만되고 그속에서 넘쳐난다. 이것이 특점이기에 시에서 행을 대상으로 한  리좀이라면 행을 마음대로 바꾸어놓아도 되고, 련을 대상으로  한 리좀이라면  련을  마음대로 바꾸어놓아도 문제되지 않는다. 리좀과 리좀은 서로 본성이 다른것으로서 이미의 련결을 부인하며, 한리좀이 하나의 주제를 나타내고있다. 에서 례를 든 시 한수를 더보자. 아마 이 시는 하이퍼시의 법문에 속하는 시라고 할수 있겠다.   영웅의 얼굴 조슈아 래파포트   늙은 바이나모이네넨이 노래부른다 호수에 잔물결이 일고, 지구가 흔들리며 구리산이 떨어진다 억센 옥석들이 덜커덕 굴러가며 절벽이 둘로 갈라지고 돌들이 해변을 철썩 때린다 그는 젊은 요우카하이넨을 노래한다 그의 칼라활에 묘목을 얹고 말의 멍에엔 버드나무 관목 발자국끝에는 호랑버들 그의 금테 두른 썰매를 노래하며 바닷가에 있는 갈대에 구슬로 매듭지은 그의 채찍을 노래한다   먼저 이 시속에 등장하는 인물부터 보자. 바이나모이넨은 영원한 현자라는 뜻으로서, 칼레라바의 주인공이다. 요우카하이넨은 바이나모이넨의 라이벌이다. 둘은 신분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둘은 노래 경연을 한다. 요우카하이넨이 지면 녀동생을 바이나모이넨에게 주기로 한다. 요우카하이넨이 지자  그의 녀동생은 자살을 택한다.  요우카하이넨은 바이나모이넨을 죽이려고 하나 성공하지 못한다. 한수의 짜른 시에 대립되는 두 인물이 선택된 자체가 이색적이다.   늙은 바이나모이네넨이 노래부른다 호수에 잔물결이 일고, 지구가 흔들리며 구리산이 떨어진다 억센 옥석들이 덜커덕 굴러가며 절벽이 둘로 갈라지고 돌들이 해변을 철썩 때린다     바이나 모이네넨이 부른 노래이다.  여기에 세개의 이 있다. 구어적몸짓이란 언어로 표현된 사물의 움직임이다. 몸짓마다 다른 사물들의 운동이다. 첫번째의 몸짓은 이고 두번째 몸짓은 이고 세번째 몸짓은 이다. 에서도 옥석들이 굴러가며부터 일어나는 구어적몸짓이므로 련결이 아니라 분리이다.  굴러가며는 절벽이 둘로 갈라지는 원인같지만 토는 동시에 어떤 행동이 일어남을 표현하는것이지 처럼 앞의 문구가 뒤의 문구의 조건을 지어주거나 원인이 되는것이 아니다. 또 있다. 에서  토가 주어를 표시하므로 앞의 행동의 련결이 아니라 자체의 운동이라는것이다. 아래행의 도 위와 마찬가지이다. 시전반에서 차원이 다른 새로운 사물이 련계되든 말든 관계하지 않고, 한 사물이 나타나면 뒤에 사물이 나타나면서 먼저 사물을 밀어버린다. 나타나고 밀어버리고 하는것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것이 바로 다양체의 수법으로 되는것이다.   그는 젊은 요우카하이넨을 노래한다 그의 칼라활에 묘목을 얹고 말의 멍에엔 버드나무 관목 발자국끝에는 호랑버들 그의 금테 두른 썰매를 노래하며 바닷가에 있는 갈대에 구슬로 매듭지은 그의 채찍을 노래한다   요우카하이넨을 노래한 내용이다. 이 노래는 언어의 흐름들이 천만뜻밖으로 흘러간다. .  이란다. , 일상적인 문법으로 말하면 맞지도 않는 무질서이다. 아래 세행도 마찬가지다. 금테두른 썰매, 바다가 갈대, 구슬로 매듭지은 채찍, 각행은 하나의 리좀이다. 세행이 각기 다른 리좀의 라렬이다. 기성의 관념으로는  이러한 시는 해설이 가능하지 않다. 롤랑바르트의 말을 빌리면 이러하다. (49쪽)  .  기성의 문법대로 하면 죄다 병구이다. 하지만 이런 시구는 인것이 아니라 이며 으로 대자연을 수정한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말은 첫째 시속에 의식의 태도가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는것이다. 의식이 태도란 무엇인가? 시인의 감정이나 립장이다. 그러니 시에선 시인의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 시는 가 아니라 란다. 어떤것이 관계의 행위인가? 과 , 와 , 과 들이 이항대립관계를 이루며 을 이룬다고 하겠다. 에서는 와  및 등 네개의 차원이 다른 물질들이 동시에 대립을 이루며 련합되여있다고 할수 있다. 이러한 시구들은 시인의 어떤 의식의 흐름인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흐름이다. 시인은 어떠한 의식도 표현하지 않고 사물들의 관계의 흐름을 보여주고있다고 하겠다. 이 관계의 흐름만을 표현한다는것은 사실주의의 립장에서 말하면 망태기다. 현대주의립장에서도 사이비한것이다. 이런것들은  현대주의인것이 아니라 구조주의의 하이퍼텍스트이며 무의식의 산물인것이다.  이러한것에 대하여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렇게 말한다.(473-474쪽)여기서 차원이란것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차원이란 우의 리좀과 아래의 리좀의 한다는것이다. 본성이 변해야 한다는것은 우의 리좀과 아래의 리좀이 성질이 다른 사물이여야 한다는 말로 풀이 된다. 더 해석하면 우의 리좀이 물이라면 아래의 리좀은 돌이거나 태양이거나 불이거나 변소간이거나 …자연적인 다른 사물이거나 문화적인 다른 사물이여야 하는것이다.  있다는것이다. 소위 공생이란 한수의 시속에서 함께 살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런 변화와 공생은 다양체라는것에 내재되여있단다.   을 출간한 니콜러스 로일은 이렇게 해석한다. ( 230쪽.)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한개 사물의 운동을 말하것이고  두번째 선이란 앞의 사물과는 련계도 되지 않는 새로운 사물의 운동이라고 리해하면 된다고 생각된다. 롤랑 바르트는 
13    하이퍼시 10대촉구 8.하이퍼시는 자아가 아니라 타자를 촉구 댓글:  조회:595  추천:1  2017-12-20
8.하이퍼시는 자아가 아니라 타자를 촉구   시는 자아가 아니라 타자란 말은 시는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이라는 말이겠다. 타자란 말은 초자아 또는 무아와 통한다. 자아란 말은 인간제일주의와 통하고, 타자란 말은 자연제일주의와 통할것 같다. 자아를 내세우는 시작법은 현대시가 시인자신의 유토피아를  추켜들던 시였고, 타자를 내세우는 시작법은 유토피아를 허물어 중심을 버리는 하이퍼시다.  타자를 주장한 석학중에  자크 라캉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크 라캉 73쪽) 자아란 시에 자기정신을 개입하는것을 말한다고 할수 있다. 그런데 라캉은고 한다. 이제까지 문학작품에서는 정신을 내건 작품들을 창작하는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였다.   때문에 를 쌓았다고 할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명제를 내놓은 다음부터 에는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해체를 주장한 사람은 자크 데리다이다. 필자의 소견에는 하이퍼시를 간단히 말하면 세글자로 요약할수 있을 같은데 이다. 소위 이란 덧붙인다는 말이고, 소위 란 보충한다는 말이고, 소위 란 대체한다는 말이다. 이 세마디를 종합하면 대리보충이다. 대리보충이란 엄청 중요한명제이다. 데리다는 (. 니콜러스 로일.135쪽)고 하였다. 법칙이란 말에 우리는 반드시 주목하여야 한다. 법칙이라면 꼭 그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법칙을 위반하면 벌을 받게 된다. 과거에 우리가 이런 법칙이 있다고 꿈이나 꿔보았던가? 바로 랭보가 말한것처럼 (96쪽. 후고 프리드리히작) 그래서 롤랑바르트는 (. 48쪽.)고 하였으리라. 타자란 유령과 같은것이지만 시에서는 절대로 홀시해서는 안되는 유령인것이다.  한국의 오남구시인은 오래동안 고독하게 시쓰기를 한 시인이다. 그의 시 한수를 보자.   밤비 오남구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깊게 몸 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ㅡ「밤비」전문   이 시를 리해하기 쉽게 풀어 시로 쓰면   깊은 밤이다 내 몸은 몇카로리 짐승이 되여 새로운 깨침을 얻는다 비가 내리며 내 마음의 갈피갈피를 적시고 나는 짐승이 되여 비를 맞으며 서있다 깜박이는 깨달음이 새파란 의식의 불을 켜고 키 큰 미류나무에서 반짝인다. 밤비의 번개속에서 짐승이 환하게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바람이 몇카로리 그리움이 되여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이렇게 를 개조해 놓으면 시의 리해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필자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착안하려는것은 내용이 아니라 첫단위를 비롯한것이다.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는 새로운 깨침을 얻는다는 말이고 , 짐승이라고 한것은 은유인데 나를 짐승으로 변형시키고 있다고 할수 있다. 즉 한 인간인 나를 다른 사물인 타자로 만들었다는것이다. 시는 타자가 주요하다. 시는 존재를 추구하므로 일인칭인 나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삼인칭인 타자가 중요한것이다.  데카르트는 라고 하였으나 자크 라캉은 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주장은 반대이다. 데카르트는 글의 대상과 작자가 동일하다는것이고, 라캉은 글의 대상과 작자가 다르다는것이다. 를 쓴 푸랑스아 도스는 이렇게 말한다. (172쪽) 이제 결론이 내렸다. 푸랑수아 도스와 자크 라캉은 다 구조주의자로서 같은 말을 한다.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기에 한물이 간 철학가라고 할수 있다. 데카르트는 자아를 중시하고 도스와 라캉은 타자를 중시한다. 필자는 타자를 중시하는 당대철학자들의 말을 믿고싶다. 이란 시구는 주관의 객관화이며, 주체의 객관화로서 나로부터  이라는 타자를 탄생시켰다. 시의 마지막행에 나오는 도 타자이다.  콩싹은 콩에서 나왔지만 콩이 아니며 사과는 사과나무에 달려서 익지만 사과는 사과나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새로 탄생된 언어는 원래있던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것이다.  둘은 아무런 관계도 없고 아무런 련민도 없다.  언어는 언제 어디서나 변형을 꿈꿀뿐이다. 언어의 꿈은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 새로운 언어를 불러낸다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자는 언어를 넘어선 언어를 불러낸다는것이라겠다. 언어를 넘어선 언어란 변형된 언어이고 새로운 언어창출에 속하는 사물이라고 할수 있다. 언어가 언어를 넘어선 언어가 바로 타자로 된다는 말이겠다. 을 쓴 니콜러스 로인은  ( 91쪽) 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는 의미와 중요성을 밝힌것이라고 하겠다. 중국 청나라때 유명한 문학비평가 왕궈우이(王国维)라는 평론가가 있었다. 그는 동서양을 결합하여 문학비평서를 썼는데 그것이 《인간사화》(人间词话)이다. 그는 시에는 (有我境)과 (无我境)이 있다고 하였다. 유아경은 자아가 시속에 있는것이고 무아경은 자아가 시속에 없는 타자경이란 말이겠다.이 어구를 해석한 縢咸惠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고 하였다(8쪽)유아경과 무아경은 다 좋은 시를 쓸수 있는데 왜王国维는 무아경을 더 숭상하였을까? 王国维가 좋하하는 시구의 하나가 이런것이 있다,,자역하면 이다. 번역은  잘되지 못했더라도 원이미는 나타난것 같다. 이 시구는 봄물이 오르는 가지와 봄사이에 일어나는 관계를 썼다고 할수 있다. 王国维가 좋아하는 이미지는 아무 사람이 읽어보아도 아름다움을 그지 없이 느끼게 되는 시구이다. 이 이미지는 두사물의 관계를 말했을뿐 시인의 감정을 꼬물만치도 시에 개입시키지 않고있다.  유아경에는 시인의 주장이 있고 바램이 있지만 무아경은 그런것이 없다. 유아경은 주관화이고 무아경은 객관화이다. 주관화는 자기 중심주의이고 객관화는 존재를 존중한다. 우미한것은 개인과 리해충돌이 없다. 아름다운것은 누구나 다 좋아하지만 굉장한것은 이데올로기에 관여되기에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따로 있게 된다. 우미한것은 흔히 자연대 자연이고 사물대 사물로  이루어지고, 굉장한것에는 작자의 립장, 관점, 주장이 로출되여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유를 바라지 예속을 바라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독자들중에는 시인의 립장, 관점,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과 별로라고 보는 사람이 있을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도 따로 있을수 있다. 독자에게 자신의 관념을 강요하는것은 시적으로 모자라는 부분일것이다. 계급과 계층에 관계없이, 총통도 죄인도 관계없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의 아름다움 즉 우미한 시를 왕궈우이는 상등으로 치부한것 같다.  중국고대에 성인은 뜻을 상으로 말한다고 하였다. 시인이 성인이다. 상이란 사물이다.  시인의 관점을 사물에 의탁한다는것은 중국 시문학의 전통이다. 예로부터 시는 시인의 관점을 로출시키는것이 아니라 시인의 관점을 감추어야 한다는것이다. 즉 사물속에 시인의 감정이 녹아있어야 한다는것이다.  고 호소하던 시의 계절도 지나갔거니와 이렇소 저렇소 하고 시인자신이 판단을 내리던 시풍도 사라져야 할 때가 온것 같다. 다시 말해 시인은 사물로서 말해야 하며 사물들의 관계로서 아름다움을 말해야 하는것이다. 사물을 떠나서 자신의 관점을 토로하는것은 류협의 말처럼 골수를 뽑아내는것이다. 골수가 다 빠지면 사람은 죽을것이다. 시는 죽은 송장을 쓰는것이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생명을 쓰는 일이다.  사람은 여러가지 사물들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이란것은 자연의 일속에 속한다. 한 시인이 한사물을 직시할 때 다른 사물들은 시인을 직시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시인도 타자로 시에 나타나야 한다. 오남구시가 바로 이런 시이다. 시인이 리용하는 언어기표도 시인의것이 아니라 타자이다. 시인은 사물과 사물의 이항대립의 관계를 재구성하여 시를 쓰기에 문자의 놀이를 한다고 할수 있다. 그 놀이란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는 놀이이다.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는 놀이가 아닐 때, 그것은 현실그대로가 된다. 현실 그대로는 시의 가장 큰 적이다.        (.91쪽) 니콜러스 로인의 이 말은 언어가 언어를 넘어선다는것은 언어가 언어를 덧붙이고 보충하고 대체한다는것으로 리해되여야 할것으로 알고있다. 그리고 언어의 흐름이 일상성을 떠나서 새롭게 엮어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물과 사물의 짝짓기이며 결혼이지 사물과 감정의 짝짓기거나 결혼이 아니며, 사물과 정신의 짝짓기나 결혼이 아니다. 시는 추억이나 기억을 완성시키는 일이 아니라 생성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이 말은 실로 중요하다. 시적대상을 잡은후 그와 관계되는 어떤 사실같은것을 쓰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새로운 생성을 쓰는것이 중요한것이다. 회억하거나 추억하는것은 시를 쓴다고 할것이 아니라 마땅히 수필을 쓴다고 해야 할것으로 알고 있다. 타자는 회억이나 추억이 아니다. 회억이나 추억은 시적대상과 관련되는 사물이거나 사실이지 시적대상에 의하여 새롭게 생성된 사물 즉 차원이 다른 사물은 아닌것이다. 시는 한사물에서 다른 사물이 생성을 이쁘게 쓰는것이다.  그렇게 쓰는것이  하이퍼시의 좋은 표현이 될것으로 알고있다. 시인은 시종 어느 하나의 언어만 련민하고  사랑하는것이 아니다.   련민과 사랑은 순간일뿐이다. 현실에 대한 파괴파괴이고, 새로운것에 대한 건설건설이다. 건설된것은 파괴된것과 완전히 다른 두가지 사물이다. 건설된것은 파괴된것을 연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건설된것은 또 다시 파괴를 당하게 되고 새로운 건설이건설된 자리를 차지하게 될것이다. 어떠한 건설이나 다 잠시적이다. 이것이 하이퍼시에서의 타자의 의미라겠다. 아무래도 또 주역을 말해야겠다. 주역은 여덟가지 괘로 세상만물을 말하였는데 거기에는 자연사물을 말했을뿐이다. 자연사물이란것은 타자이다. 건괘. 지괘, 풍괘, 수괘, 화개, 연괘, 뢰괘,산괘 등 여덟가지 괘이다. 유감스럽게도 사람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직설한 괘는 없다. 사물속에 인간을 말하는 의미가 내포되여있고 사물의 도에서 나를 볼수 있게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타자속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류협의 은 사물과 사물을 비긴다고 하였고, 시인의 감정은 사물에 의탁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을 말하여도 사물과 사물을 비기는 도리로서 말해야 한다고하였다. 보매 타자의 도리란것도 그 뿌리는 중국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수 있지 않으랴 하는것이다.  어불성설인지는 몰라도 서양에서 지금 말하는 현대시요 하이퍼시라는것들은  근대나 현대에 와서 중국의 고전을 부활시키고 꽃피운것이라고 하겠다.    
12    하이퍼시10대촉구7.하이퍼시는 감정이 아니라 감각을 촉구 댓글:  조회:558  추천:2  2017-12-10
7.하이퍼시는 감정이 아니라 감각을 촉구 감각(感觉)이란 어떤것이고 감정(感情)이란 어떤것인가? 감각이란 느끼여 깨닫는것, 외부 또는 내부작용에 의하여 일어나는 느낌이라고 사전에 씌여있고, 감정이란 사물에 느끼여 일어나는 심정, 기분 즉 기쁨, 슬픔, 성남, 놀람 등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사전에 씌여있다. 이 두언어의 차이는 감각은 느낌이고 감정은 느끼는 마음이라는것이다. 감각은 오관을 통하여 사물의 외부를 느끼는것이고, 감정은 심리를 통하여 희로애락을 느끼는 마음이다. 하이퍼시는 감정을 쓰는 일이 아니라 감각을 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감각과 감각의 조응을 쓰지 감각대 감정이 아니고 감정대 감정은 더구나 아니다. 감각과 감각의 조응으로 도에 도착하는것이다. 도란 사물의 근본리치이고 양과 음의 작용에 의하여 새로운 사물이 생성되고 성장하고 소멸되는것을 말한다. 감각을 신체라 할수 있고 감정은 피라고 할수 있다.  피는 신체속에서 흘러야지 신체밖으로 나와서는 아니 된다. 신체밖으로 피가 나오면 아프고 많은 피가 나오면 생명이 위독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감정을 삼가하여야 하는것이다. 어떤것이 감정의 발로인가? 나는 시를 사랑한다. 장미여 사랑의 상징이여, 봄은 꽃들이 피여나는 계절, 당신의 추억은 나를 울린다. 새는 하늘을 날고 고기는 물속에서 헤염친다…이러한 시구들은 우선 시인만의 상상의 표현으로 될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어떤 감정을 그대로 쏟아놓은것으로 된다.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있는 그대로 씌여져서 함축이 보이지 않는다. 감정이 피로 되여야 한다는것은 드러냄인것이 아니라 감춤이며, 있는 그래로인것이 아니라 변형이며 생성이다.  (.142쪽.)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오늘도 정확하다고 봐야 할것이다. 이 말은 감정의 발로를 억제하라는 말이다. 시속에 가 등장하는것은 시인자신이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장하는 는 새로운 변형을 끌어내기 위하여, 새로운 생성을 도출하기 위하여서만 시에 등장해야 한다는것이다. 오직 이렇게 하여야만 피하게 되는것이다.  피하지 않는것은 남을 믿지 못해서, 남이 자기의 뜻을 리해하지 못할가봐 하는 짓이라겠다.  또 시는 객관화를 기하는것이 좋다. 객관화를 기하려면  피하는것은 순수시쪽으로 가는것이고 피하지 않는것은 이데올로기시쪽으로 가는것이다. 피하는것은 독자에게 시의 해석을 맡기는것이고 피하지 않는것은 독자를 자기의사대로 움직이려는것이다. 피하는것은 시의 여러가지 의미를 흔상해보게 하는것이고 피하지 않는것은 한쪽해석으로만 몰아부치는것이다. 시는 피해야 시의 기능을 발휘할수 있게 된다. 피하지 않는 시는 산문처럼 의사전달에만 국한될 위험성이 대단히 크다. 피하게 하는것은 민주이고 자유이며 자률성이고 피하지 않게 하는것은 강요이며 독단이며 독재이다. 하이퍼시에서 를 죽이는것은 시를 살리는 길이라고 할수 있겠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을 더 빌어보자. (207쪽) 여기서 우선 류의하여야 할것은 과 의 관계이다. 이란것은 변형으로 표현된 사물을 말한다. 시적인 힘은 변형된 사물을 다고 하는데 이끌게 되면 는것이다. 실은 이 에 반작용을 하기도 하여 을  강력하게 발휘시키기도 한다. 도 새겨봐야 할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위 다원적이란 여러차원을 말한것으로써 하나의 사물에 고정된 기술인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사물들에 대한 기술인것이다. 이란  새로운 깨침이 있기에 즐거움이 생긴다는 말이 되겠다. 새로운 깨침 즉 새로운 감각은, 즐거움을 새롭게 맛보게 한다는것이다. 도 그저 지나칠수 없는 말이다. 감각의 섬세함속에서 한감각과 다른 감각이 조응하게 되면 그 새로움에 의하여 는것이다. 잠에서 깨여나게 되는 조응은 새로운 깨침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고 감각의 섬세함이란 을 말함이라겠다. , 이질적사물들이 서로를 아우르면서 어울리는것을 말함이라겠다. 이렇게 되면 언어의 밀도가 치밀해지면서 언어의 긴장이 생기고 언어의 탄력이 생기게 되며 시의 개성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시를 읽는 독자는  의 단맛을 보게 될것이며, 를 깨닫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이란것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라겠다.(인용한것들은 46쪽)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감각하고 감지할수 있는 사물은 4프로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것도 최상의 과학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실제상 혼돈의 세계에서 살고있는 셈이 된다. 우리의 사위는 암흑의 세계인것이다. 시에서 감각의 세계를 중시하게 되는것은 암흑세계속의 사물의 존재를 현시하는 일이고 존재의 근원을 파보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감정은 시간과 장소와 대상에 따라 변하는 불확실한것이다. 지금 정확하다고 하는 모든것들이 정말 정확하다고 확신할수 없다. 림시정확은 있어도 영원한 정확이란 누구도 보증할수 없는것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모든것을 의심하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늘 쇄신을 꿈꾼다. 그 쇄신이 감각적이며 상상적이며 환상적인것으로써 허상에 속하는것이다. 그렇게라도 시인은 이 카오스세계에서 존재를 찾아보려고 몸부림을 치고있다고 하겠다. 시를 감정화가 아니고 감각화 되게 하려면 시창작기교를 련마하여야 한다. 기교를 련마하지 않으면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린다는것이 뜨락에서 맴돈격이 된다고, 깊은 우물을 길어먹으려는데 드레박줄이 짧아서 길어먹지 못한다는 류협의 지적은 옳았던것 같다. 시기교의 근본은 시인이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내는것이다. 시가태여난 날부터 오늘까지도 상징이라는것은 변함이 없다. 문학의 시대마다 상징을 만드는 방법이 다를수 있다. 상징을 만드는 방법이 다름에 따라  시문학의 풍격이 다를수 있다. 오늘은 오늘의 기교가 있는것이다. 오늘의 기교는 구조주의언어학이라고 할수 있다. 구조주의언어학만이 오늘의 쇄신을 불러오게 될것이라고 필자는 믿고있다. 무엇이 오늘의 쇄신인가? 오늘의 쇄신은 한마디로 말하면 예술의 내용이다.  (. 204쪽)필자가 하이퍼시 창작방법에서 이러한 예술의 내용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피력하였으므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력사박물관에서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마당가미루나무숲의 매미들이 한꺼번에 미륵미륵미륵, 미르미르 르르르 흘린다   염소에게서 배웠나, 매해해 얌얌 염소 입술을 뾰죽이 내밀어 매매매하는 그그그 미 매하는 미, 매미이이이를   플랫홈에 혼자 두고 기차가 소리 한번 매앵! 지르고 바퀴를 자글자글 굴리며 떠난다   맴맴맴 매애애 매앵매앵 앵앵앵 미잉미잉 잉잉잉          김규화  전문   김규화시인의  시는 청각적감각이 시전반에 넘쳐흐르고있다. 1련에서는 미륵의 강의로부터 매미울음소리로의 전환을 성립시켰고,  2련에서는 염소의 매매소리로부터 다시 미륵의 소리와 매미소리로의 련상을 떠올리게 한다. 3련에서는 기차의 기적소리로부터 바퀴들이 굴러가는 소리를 끄집어내고있다. 4련에서는 우의 모든 소리들의 대합창이다. 사물들에서 울리는 청각적감각을 주선으로 부동한 사물들의 등장을 주선하면서 시인은 한수의 하이퍼시를 창출해 내고있다. 시에서 나타나는 사물 모두가 시각적인 사물로서 감각적이다. 감각적이라고 하는것은 그러한 사물들에 시인의 어떤 감정이나 주장이 개입되지 않아서 사물자체가 스스로 나타났다가 스스로 사라진다. 그것은 사물들에 시인의 감정이 용해되였기 때문이다. 김규화시는 가히 청각으로 쓴 력작이라고 할수 있겠다. 시가 감각적이 되게 하려면 오관의 작용을 령활하게 리용하는것이 중요하다. 특히 시각과 청각을 잘 기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용이 어떤 의식의 지배속에서가 아니라무의식의 작용속에서 진행되여야 한다. 시에 의식이 작용하기만 하면 시는 값이 싸지지게 되며 자연스러움을 잃게 되며 인위적인것의 산물이 되여 이데올로기를 피면하기 어려울것으로 알고있다. 하이퍼시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지 않는다. 시인의 창조력을 수용할뿐이다. 그 창조력으로 하여 시가 대중을 리탈하는 경우가 있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는 대중속에 빠져서 대중과 호흡을 함께하는것이 아니라 고리가 그물을 끌어당기듯이 대중을 앞으로 끌어당기게 된다. 끌힘이 없는 시는결코 좋은 시로 될수 없을것이다. 시의 끌힘이란 바로 사물생성으로 인한 몽롱성이며 기이성이라고 하겠다. 이 시에서 류의할 점이 하나 더 있다. 매미소리, 염소소리, 기차소리 등이 시인의 청각의 판단에 의하여 달라질수 있으며 달라져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매미를 미륵미륵미륵, 미르미르 르르르 운다고 하고, 염소는 매해해 운다고 하기도 하고, 매매매운다고 하기도 하고, 기차의 기적소리를 매앵한다고 한다. 이러한 청각에 의한 소리들의 의성어는 시인자신의 감각에 의하여 만든 소리라고 할수있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꼭 상투적인 청각언어를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조기천은 범을 따웅하고 운다고 하였는데 필자가 북경동물원에서 들은 범의 울음소리는 야웅이였다. 범이 고양이과에 속하는 짐승이여서 그런지 아무리 다른 소리로 들으려 해도 그냥 야웅이였다. 조선의 한 가사에 하는 말이 있는데 종달이 우는 봄언덕에서 필자가 들어본데 의하면 종달새는 절대 하는 소리를 내는것이 아니였다. 필자의 청각에는 삐리삐리 삐르르르로 들리기도 하고 또르르로 들리기도 하였다. 하여튼 지종은 절대 아니였다. 의성어를 쓸 때는 상투적인 소리로 쓸수도 있지만 시인이 자작하여 쓸수도 있다는것이다. 어떤 사물은 소리를 내지만 우리 귀가 부실하여 듣지 못하는 소리도 있다. 이런 사물의 소리는 시인의 상상에 의하여 자작할수 있다는것이다. 이것이 김규화시인의 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라고 생각된다.   봉선화   봉선화 씨앗이 튕깁니다 8형제가 뛰쳐나와 자아소개를 합니다   하늘이라 부릅니다, ☰ 성은 건(乾)*이고 바람이라 부릅니다, ☴ 성은 손(巽)*이고 진동이라 부릅니다, ☳ 성은 진(震)*이고 불이라 부릅니다, ☲ 성은 리(离)*이고 물이라 부릅니다, ☵ 성은 감(坎)*이고 산이라 부릅니다, ☶ 성은 간(艮)*이고 련꽃이라 부릅니다, ☱ 성은 태(兑)*이고 땅이라 부릅니다, ☷ 성은 곤(坤)*이고   진흙땅우에 남긴 개발자국들이 8형제라고? 네놈 팔자도 사납구나 8년전에 간을 잃고 지금은 알쪽을 떼야겠으니 나는 의사다! 의사면 뭘해! 전립선암이 이미 고환에 전이 되였는데 두달후 너도 지진으로 다 죽을거야! 서쪽묘지 옮기면 지진은 종지부 찍을꺼야   봉선화가 계속 방울을 튕깁니다 8형제들이 결합되여 64형제 낳고… 봉선화방울들은 우주핸들을 잡았습니다    *건:하늘 남성 남편, 손:바람, 진:진동 우뢰, 리:열 전등 무지개  감:물 눈 ,간:산,  태:비 우물 소택지,  곤:지구 녀자 엄마   방산옥시인이 쓴 시 `의 전문이다. 봉선화와 주역을 혼연일체로 만든 재미 있는 시로서 자연물, 주역, 의학 등 여러가지 측면들이 어울려있어 주목을 끌만한 시라고 하겠다. 김규화시인의 시를 청각적감각으로 씌여진 시라 한다면 방산옥시인의 시는 시각적감각으로 씌여진 시라고 할수 있다.  봉선화씨앗들이 팔괘로 변형되는것이 자연스러울뿐만 아니라 선명한 이미지로 눈앞에 나타난다. 봉선화씨앗이 첫알이 튕기면 하늘이 되고, 두번째 알이 튕기면 바람이 되고, 세번째 알이 튕기면  우뢰가 되고, 네번재 알이 튕기면 불이 되고, 다섯번째 알이 튕기면 물이되고, 여섯번째 알이 튕기면  산이 되고, 일곱번째 알이 튕기면 연못이로 되고, 여덟번째 알이 튕기면  땅이 된단다. 련해련속으로 새로운 사물, 시각적인 사물들이 생성되는  렉시아수법이다. 고렇게 작디작은 봉선화씨앗에서 파생되여 튀여나오는 세상만물들이 설득에 별무리없이 나타난다. 봉선화씨앗으로부터 8형제, 8형제로부터 8괘로 넘어가는것이 자연스러울뿐만 아니라 그 수법이 교묘하고 재치스럽다.  3련에서는 8괘와 의학, 주역중의 풍수까지 점철이 되였다.  는 마지막시구는 형상적이고 철학적이여서 유난히 돋보인다.  이란 시각적인 언어는 시인이 창조한 언어로서 천금같은 언어이다. (주역인문학. 뒤면 )다고 김승호주역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확실히 주역은 세계의 탄생과 발전과 변화를 말하는 학문이다. 그런 거창한 도리를 시각화한 언어 로 표현한것은 변형의 도리를 우수하게 리용한것이라고 할수있겠다. 김규화시인의 시 에서 여러가지 사물이 생생하게 살아있는것이나 에서 팔괘를 끌어내는것 모두가 기이하고 오묘하다고 하겠다. 감정의 발로 같은것은 구중천으로 날려보내고 감각을 중시하고 감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것은 당면 우리 시단에서 꼭 류의할바라고 생각한다. 시에서 감정의 값은 한푼도 않되지만 감각의 값은  천만원 주고도 사기 어려운것이라는것을 시인은 잊어서는 안된다. 인류최초의 문자로 적혀진 의 글들은 다 감각적으로 씌여진 글들이다. 건너금을 양이라 하고 가운데가 끊어진 건너금을 음이라 한다. 주역에서는 이 두개의부호로 글을 만드는데 이부호를 효라고 부른다. 주역에서 건너금이 세개로, 수직으로  구성된 글자를 건(乾:☰)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하늘이라는 뜻이란다, 건이란 지금말로 하면 돌이나 나무처럼, 강이나 산처럼 시각적감각에 속하는 언어가 된다. 이 글자의 함의는 광범하다. (주역, 7쪽)라고 하였다. 그리고 , ,, ,, , , ,,  이렇게 열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해석에 따르면 내용이 방대하고 심원하기 이를데  없다. 건괘의 상징성은 14가지가 있단다.(주역머리말, 66쪽). 8괘의 이런 의미를 합치면 도합 백열한가지가 된단다. 주역은 자체가 은어이고 시라고 할수 있다. 8괘든 64괘든 모든 언어들이 명사들 결합으로 된 감각적인 언어들이다. 시에서는 감성보다 감각이 중요하다고 하는것을 서양식인가 하는데 실은 우리의 전통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11    하이퍼시 10대촉구6. 하이퍼시는 고정이 아니라 도주를 촉구 댓글:  조회:514  추천:2  2017-11-30
6. 하이퍼시는 고정이 아니라 도주를 촉구   시간은 도주를 하고있다. 한초도 쉬지 않고 도주를 하고 있다. 시간의 도주는 어떠한 힘으로도 어떠한 물질로도 막을수 없는 도주이다. 시간의 도주를 따라 모든 사물들도 따라서 도주한다. 사람도 도주한다. 정자와 란자가 만나는것도 도주하다가 만나는거고 만나서 엄마의 자궁속에서 자라 애기가 되는것도 도주이고, 어머니배속에서 나오는것도 도주이고, 애기로부터 아이가 되고 소년(소녀)으로 되고 , 소년(소녀)로 된 다음에는 청년으로 되고 장년으로 되고 로인으로 되고 죽어가고 이 모든것은 다 도주이다. 식물들도 도주한다. 접시꽃이 씨앗에서 새싹이 나오고, 잎이 피고 ,줄기가 껑충하게 자라다가 꽃을 피우고, 꽃이 이울고, 열매를 맺고 익히고, 접시꽃자체가 말라들어 죽고, 또 썩어서 흙이 된다. 이 모든것이 도주이다. 이런 도주는 혈통이 있고, 선후가 있고, 체계가 있고, 력사가 있다. 시는 이런 도주와는 다르다. 혈통도, 선후도, 체계도, 력사도, 인생철학과도  관계가 없는 도주이다. 도주를 통하여 (210쪽)   별자리 바람자리 이마 짚어보며 기록한 25시간의 기상관측 나무잎사이에서 솔깃 지구의 률동소리 엿듣는 큰 귀 작은 귀들   신록의 가지끝새 수락한 영상통화 남극의 고래가 전해온 계속되는 비행접시의 방랑   월드컵축구경기 환호성속에 아프리카여인의 절앓이 소리 이른 봄 3월에 언발   빠리패선박람회로 달리는 비행기 그뒤로 동해의 폭풍을 퍼붓는 노르웨이 전나무숲 붉은 머리 기차 길들이 떠있는 허공을 달린 미지의 플래트홈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잠들기 좋은 러시아녀인들의 치마자락   제 1회 리상화문학상을 받은 려순희 시 의 전문이다. 제목은 이지만 내용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거이 행마다 새로운 사물들이 뛰쳐나와 얼굴을 내밀거나 엉덩이를 비쭉 하고는 사라진다. 여러마리 올챙이들이 겨끔내기로 물우에 머리를 내밀었다가 물속으로 쏙 들어가는 경상이다. 한마디로 도주이다. 시적인 도주가 어떤것인가? 하나의 물질에서 그와는 관계가 없는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고 움직이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사물들의 도주로 하여  하이퍼시가 태여난다고 할수 있다. 도주는 행과 행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하고 련과 련사이에 벌어지기도 하고 한행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월드컵축구경기 환호성속에 아프리카여인의 절앓이 소리 이른 봄 3월에 언발    의 제3련이다. 행마다 다른 이미지다. 월드컵경기 환호성과 아프리카여인의 젖앓이 소리는 왕청같이 다른 이미지다. 제3행도 위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다. 이렇게 련계도 안되는 물질들의 움직임의 련속을 도주라고 한다. 상기한 련은 행과 행사이에서 벌어지는 도주라고 할수 있다.   빠리패선박람회로 달리는 비행기 그뒤로 동해의 폭풍을 퍼붓는 노르웨이 전나무숲 붉은 머리 기차 길들이 떠있는 허공을 달린 미지의 플래트홈    제 4련이다. 찬찬히 읽어보면 앞의 한행이 하나의 도주이고 뒤의 두세행이 하나의 도주이고, 제4행이 하나의 도주이고, 5,6행이 어울려 하나의 도주이라고 할수 있다.  도주를 나누는 표준은 내용이라고 할수 있다. 내용이 달라지면 도주가 변한다고 하겠다. 즉 차원의 다름이다.   한행에서 도주가 형성되는 경우는 두가지가 있다겠다. 한가지는 처럼 현실에서 초월로 도약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다른 한가지는 초월에서 초월로 이어지는 경우라겠다. 이런 시행이 있다고 하면 초월에서 초월로 도주한것이라고 하겠다. 란것이 하나의 도주이고, 그위로 는 앞의 초월에서 새로운 초월이 산생된것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서 현대시와 하이퍼시의 구별이 산생된다. 현대시는 한번도주한것으로 시를 만들수 있지만  하이퍼시는 한번의 도주로 시가 아니된다. 하이퍼시는 여러번의 도주를 집성하여 시를 만들게 되는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시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추구하지만 하이퍼시는 여러가지 주제를 추구하게 된다. (.397쪽. 들뢰즈. 가타 리) 인간만 절편적인것이 아니라  사물도 절편적이다. 절편된다는것은 도주가 있기때문이다. 모든 절편은 새로운 절편을 낳게 되는것처럼 모든 도주는 새로운 사물을 낳게 된다. 절편되는것은 련계되기 위함이고  련계되는것은  절편되기 위한것이다. 절편과 련계는 대립통일을 이루는 모든 사물의 공동의 성질이라고 할수 있다. 시속의 사물은 흐르는 물처럼 그냥 움직이게 된다. 움직이기만 하면 새로운 사물이 생성되는데 이것은 새로운 절편의 생성으로서 시 쓰는 기교이다. 당신은 이런 도주를 생각하고 상상하고 시에 리용한적이 있는가를 정신을 가다듬어 생각해볼 일이다. 사물과 사물사이에 모순이 있기에 도주가 일어나게 된다. 도주는 운동이다. 한사물이 다른 사물로 되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계통성이나 체계성 및 력사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454쪽)이다. 이런 소통은 모방도 아니고 동일화도 아니고 통일화도 아니고 새로운 생성이고 새로운 집합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하이퍼시는 모순속에서 새로운 모순이 나타난다. 항상 새로운 모순이 나타나는것은 도주의 조건이고, 한사물이 다른 사물로 둔갑하는것은 도주의 완성이며 결실이다. 완성과 결실은 또다시 새로운 도주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도주는 끝이 없다. 한국 이선시인이 쓴 을 보면 도주가 명백해지리라 생각된다.   딸아이, 까만 눈동자 낙타가 사막위를 뜀박질하오 “히힝” 기쁜 소리들이 어제 펴놓은 이불위에 뽀드득, 발자국을 남깁니다 사막여우눈속, 깊은 샘에서 덜자란 호수속에 반짝이는 초승달이 박혀있다는 깨달음   내일 아침밥은 아내눈속에서 지는 저녁놀 나는 맨발로 출근합니다           ㅡ전문   이선시인의 시 은  도주의 한 본보기라겠다. 도주란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뛰여넘기라고 할수 있다.   딸아이, 까만 눈동자 낙타가 사막위를 뜀박질하오 “히힝” 기쁜 소리들이 어제 펴놓은 이불위에 뽀드득, 발자국을 남깁니다   첫련이다. 딸의 까만 눈동자뒤에 사막위를 뜀질하는 락타가 나오고, 그담에는 기쁜 소리가 나오고, 그담에는 어제 펴놓은 이불위에서 뽀드득거리는 발자국이 나온다. 시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은 도주하기에 바쁘다. 이 사물들은 동일성이나 동질성이 작용하여 도주하는것이 아니라 언어의 통사론적기능에 의하여 도주한다. 뒤에 사물은 앞의 사물과 관계도 없고 련계도 없이 자유롭게 등장하고있다. 이 자유로운 등장이 바로 도주의 표징이며 이 사물에서 저 사물로 뛰여가기이다.이런 도주는 어떠한 기준도 없다. 시인의 상상에 의하여 자유로운 도주만이 있을뿐이다. 도주에는 링크(련결)가 알리는 도주와 링크가 알리지 않는 도주가 있다. 이선의 시는 링크가 알리는 도주이다. , ,  등이 각련에 배치되여있는데 을 링크로 볼수 있다. 시의 내용이 눈이라는 동일한 사물에 의거하여 흘러가고 있는것이다. 이것은 체언의 경우이다. 도주는 체언을 중개로 도주할뿐만 아니라 용언을 중개로 도주하기도 한다.   눈물 김춘수   남자와 녀자의 아래도리가 젖어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래도리가 젖어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였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있었다고 한다.          ㅡ 전문 김춘수의 의 경우가 바로 용언을 중개로 도주하는 경우이다. 는 용언이 중개로 되여 눈물이라는 시가 씌여졌다고 볼수 있다. , ,  모두가 는 용언과 관계를 맺고있는것이다. 어떤 하이퍼시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아무런 련계를 가지지 않고 무작정 엉뚱하게 리좀들의 도약과 쇄신만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시는 조향의 인데 많은 사람들이 론하였기에 우리는 한국 위상진시인의 시를 한수를 보자.   여름감기 위상진   의사가 목안으로 스텐막대를 밀어넣을 때, 비는 내리고 푸른 곰팡이는 벽으로 번지고   지하철스크린도어앞에서 나는 주머니속에서 빠져나간 줄시계처럼 늘어졌다   불편한 자세로 키스를 하고있는 얼음조각같은 녀인들 그림 없는 액자밖에는 부엉의 날개모양의 이파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전화번호처럼 납작해진 길고양이 바닥을 할퀴고 물의 무덤으로 끌려간 두개의 발   붉은 웅덩이를 이어붙인 검회색 하늘 구름은 내 가방으로 흘러들었다. 목쉰 소리를 내며   축축한 시간은 강으로 버려지고 나는 물의 얼굴을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현기증나는 약봉지는 흰죽처럼 번졌다                     ㅡ 전문   위상진시는 마침표가 없어서 독자들이 계속 아래를 써내려갈수도 있다는 공간을 내주고있는 같다. 모두 여섯련으로 되였는데 통일되는 어떤 언표가 없다. 려순희 시 도 이와같은 맥락이다. 온갖 몽타쥬가 다 허용되여있다는것은 이런 시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2련을 제외하고는 한개련에 둘이상의 이미지가 겹쳐져있다. 그것도 차원이 다른것들이다. 조향의 처럼 이색적이라고 할만한것 같다. 이렇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차원을 달리하는것도 도주라고 하겠다. 이런 도주를 초링크라고 말함이 적당할것 같다.  도주는 시의 공간확장에 속한다. 어떤것이 공간확장인가? 의 첫련만 보아도 잘 알린다.    의사가 목안으로 스텐막대를 밀어넣을 때, 비는 내리고 푸른 곰팡이는 벽으로 번지고   여기서는 시가 세가지 사실로 구성되여 있다. 는것이 한개 사실이고, 가 다른 한개 사실이고, 가 또 다른 한개 사실이다. 이 세가지 사실은 도주로 형성된것이고 한개련에 집성된 사실이다. 첫내용은 현실이라고 말할수 있지만 그담 두가지 사실은 가상현실이라고 할수 있다.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각각 차원이 다르다. 차원이 다르기에 공간이 넓혀졌다고 하겠다. 하이퍼시는 현대시토양에서 태여났지만 현대시와 예술적으로 각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차원이 다른 여러가지 도주로 표현되기 때문일것이다. 이 명제에 리해를 돕기위하여 연변 조룡남시인이 쓴 현대시 한수를 더 보기로 하자.   옥을 파간 자리 조룡남   내 가슴에는 웅덩이 하나 그것은 오래전에 옥을 파간 자리 나는 모른다 그 옥이 지금은 누구의 머리를 장식했는지   내 가슴에는 웅덩이 하나 그것은 오래전에 옥을 파간 자리 오늘도 웅덩이엔 허연 소금이 돋치여 마를줄 모르는 비물 눈물이 고여있다.                 ㅡ 전문   중국조선족시단으로 말하면 현대시의 명시에 속하는 시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하이퍼시관념으로 보면 이 시는 현대시일뿐 하이퍼시에 속할수 없는 시다. 왜 그런가? 시종 라는 이 변형 한가지를 중심으로 시가 시작되고 전개되고 종결되였기때문이다. 이런 시는 한번의 도주밖에 없고 차원의 변화가 없다. 하이퍼시는 반드시 두차이상의 도주가 있어야 하고 차원이 달라야 한다. 련을 대상으로 하든 행을 대상으로 하든 완전히 각이한 이미지로 시가 구성되여야 하는것이다. 이쯤 말하면 도주가 리해되리라 믿는다, 하이퍼시에서는 항상 사물이 움직이고 무언가 도주하고 있다는것이 중요한 명제의 하나이다. 다음 장으로 건너가 보자.
10    하이퍼시 10대촉구 5.하이퍼시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촉구 댓글:  조회:537  추천:2  2017-11-20
                       5.하이퍼시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촉구     세계에는 백여개의 나라가 있으므로 미국도, 중국도, 러시야도 소수이다. 채소시장에 가면 배추도 소수이고, 토마토도 소수이고, 무우도 가지도 고추도 소수이다. 우주엔 별들이 무성한데 태양계도 소수이고 지구도 소수이다. 예술로 말하면 작가도 화가도 음악가도 시인도 죄다 소수이다. 각분야의 소수파들이 모이면 전체가 되고 어떠한 하나가 될수 있겠다. 문학에서 특히 시에서 소수파가 되려면 언어에서 특색이 있어야 하며, 작가자신의 개성적인 언어가 따로 있어야 한다. 언어를 이렇게 중시하는것은 작품은 결국은 언어이기 때문이며, 작가가 무의식에 기대여 언어로 글을 쓰기때문이라겠다. 작가가 자기 언어를 수립하지 못하면 개성이 없어지고 풍격이 돋으라지지 못하게 된다.  언어의 소수파가 되는 방법을 이렇게 말한 석학이 있다. 을 야기시켜 는것이다. 시가 독자의 력사적심리와 문화적 심리, 그리고 취미, 가치관, 기억 등과  충돌이 발생한다는것이다. 시인이 새롭게 떠올리는 참신하고 당돌한 이미지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초월하므로 독자는 시의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런 시야 말로 시의 향락을 누리게 하는 시라고 한다. 그것은 시속에 독자가 알수 없거나 알기 어려운 비밀이 잠재해 있기때문이다. 비밀은 열쇠로 열어보아야 한다. 열쇠는 단 하나 시를 흔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열쇠는 독자의 흔상수준과 정비례한다.  시를 쓴다음 시인들은 자신의 쓴 시가 독자들에게 결락감을 안겨줄수 있는 향락의 텍스트가 될수있겠는가를  심사숙고해 볼일이 아니겠는가!  소수파가 되는 시는 향락텍스트라고 해야 할것같다. 향락텍스트는 쾌락텍스트보다 더 우아하고 심도가 더 깊고 추동력이 더 강하고 공간과 시간을  더 확대하고 예술성이 더 깊은것이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류협은 지인은 천년에 한번 통한다고 하였을것이고, 밀턴은  을 쓰고 백년후에야 알아 볼것이라고 하였고, 단테는 을 쓴다음 밀턴처럼 100 년후에야 알아볼것이 라고 하였으리라. 진짜  과  은 100년후부터 알아보았다고 한다.                                                                                                                                                                                                                                    우리 겨례문단에서 근대시와 현대시에서 제일 먼저 소수파가 된 시인은 최남선이였다. 그는 라는 자유시 를 처음으로 발표한 시인이였다. 이 시로하여 시조만 있던 우리 겨례문단에서 서정시의 길이 열리게 되였다. 두번째는 정지용 이라고 할수 있다.  바람소리를 말들이 달리는것으로 표현하거 나 밀물과 썰물을 보고 도마뱀떼가 재재 발렀다고 한것은  류례 없던 언어혁명이였다고 할수 있다. 그후 리상, 조향을 거쳐 하 이퍼시를 주장하는 문덕수와 심상운 등 시인들은 모두가 소수 파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신세훈시인은  라는것을 발견하여 소수파로 되였다. 문학은 이런 소수파들에 의하여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고 앞물결이 뒤물결을 당기며 도도히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는것이다. 소수파라는 언어는 문학을 놓고 고민할줄 알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줄 아는 작가에게 해당하는 칭호라고 생각된다.  아무나 다 소수파가 되는것은 아니다.  이것은 문학발전의 일반적인 기률이다. 소수파는 홀로서기이다. 고독하고 외롭게 묵묵히 자기의 길만 간다. 소수파는 새롭게 나오는것으로써 한획을 긋게 된다. 그 획이 점차 자라서 새로운 전통을 만든다는것은 간과 할수 없는 일이다.  일시적으로 환호를 받는다고 하여 정말 좋은 작품인것은 아니다. 그래서 중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머얜은 베스트셀러에는 명작이 없다고 하였다.  중국조선족시인들에게서 정말 좋은 작품을 뽑아내자면 극 소수뿐이다. 어떤 시인들은 수십년을 시를 썼지만 한수도 골라낼것이 없다. 참으로 애달픈 일이지만 별수 없다. 시인들은 우선 상을 받을 작품을 쓰느라고 애를 쓸것이 아니라 소수파가 되는 작품을 쓰기 위하여 분투하여야 한다. 상안에 상이 없고 상밖에 상이 있는 경우가 너무 빈발하는 상주소를 고칠 때도 되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다. 글로 말한다는 말은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이겠다. 새로운 창의가  없는 작품은 발표되는 시간이자 죽는 시간이다. 장송곡을 울리는 작품에 흥취를 가질것이 아니라 금방 태여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울리는 작품에 모를 박아야 한다. 그러자면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 아는것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모르는 새것을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는자만이 마지막에 웃는 소수파로 될것이다.   
4.하이퍼시는 현실이 아니라 실재를 촉구     하이퍼시는 현실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실재를 촉구한다. 이말은 아주 간단한 말같지만 의미심장한 말이다. 시에서의 현실은 실재를 위한 받침돌과 같은것이다.  시는 현실계에 의하여 생기는것이 아니라 실재계에 의하여 생기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생활에서 오지만 생활그대로가 아니다는 말로 풀이할수 있다. 자크 라캉은 삼위체라는 리론으로 실재계를 말하였다. 삼위체란  실재계, 상징계, 영상계라는 말이다. 이 론의대로 하면 시에서  현실이라는 언어는 값이 가는 언어가 아니다. 시는 현실인것이 아니라 실재계, 상징계, 영상계에 속하는 문학이 된다. 삼위체라는것은 불가분리의 개념이라고 할수 있다. 시를 쓸 때 대상을 정하고 그에 대응하는  다른 대상 즉 이미지를 생각하는것은 상상계라 할수있고, 상상하면 새로운 대상을 얻는 순간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상징계(혹은 영상계)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한차의 상징계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것을 실재계라 한다. 그러니 실재계란 하나의 상징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개의 상징을 얻으려는 욕망이라고 할수있다. 그래서 실재계는 끝이 없다고 해야 마땅하다. 하이퍼시는 바로 이 실재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일것이다. 시에서 실재계는 재구성이라는 단계를 거쳐서 체현되는것이라고 하겠다. 재구성이라는것은 사물을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있는 그대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한사물을 다른 사물로 둔갑시키거나 한사물의 사실을 다른 사물의 운동으로 대체하는것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되면 라캉이 말하는 삼위체에 도착하게 될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라고 자크 라캉은  20쪽에서 밝히고 있다. 시로써 말해보자   피겨 쏘나타    메일 내용 영하의 파도는 지느머리에 칼날을 세운다  칼날은 레코드의 바늘이다  영하의 파도는 불협화음이다 금녀지 덩굴줄기에 접목된  옥송골의 발톱은  벼랑을 넘을 때마다  파란날이 번쩍이고  수만번의 거절은 옥의 티를 일어낸다 누운 절벽은 끝내 등돌려 둥지되고  돌고래 날치 갈매기를 연이어 부화한다 음률에 짜여진 몸짓  피아노의 건반을 오르내리 구르며  옥타브의 협곡 에베레스트빙하를도 하나 하나 넘는다 새기고 새긴 얼음조각에서 매화꽃이 피어나  쏘나타의 소리줄에 매화연이 날리고 지구촌 안방마다     매화연( 宴  )에 취한다 숫돌과 칼의 화음은 서슬이 푸르다            ㅡ강동한 전문   이 시는 제2회 윤동주문학상을 획득한 작품이다.  미국맨하탄에서 료리사들의 세계적인 료리경기가 열리였다. 료리사인 시인은 그 경기를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필자는 자크 라캉의 삼위체에 맞는 작품이 아닐가 생각된다. 상상이 강렬하며 이미지들은 무의식의 산물들이다. 행마다 변형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이 창출된다. 뒤의 이미지는 앞의 이미지를 밀어버리며 사물들이 파도처럼 사품치며 미끄러진다. 거이 30개의 이질적인 물질들이 야릇하게 짝을 지으면서 서로 어울리는가면  분리되고 도약한다. 나타나는가 하면 사라지고, 소용돌이를 이루는가 하면 흘러가버린다. 어느것도 강자가 없다. 강해졌다가 약해지고 높이 떴다가 떨어지고 앞에 섰다가 뒤로 밀린다. 어느것도 현실이 아니다. 죄다 가상을 이루어 부재를 향하여 질주한다. 어느것도 모방스러운것은 없다. 재조직되고 재구성되고 변형되며 생성된다. 중심도 없고 주체도 없다. 어느것이나 다 곁이고 겉이고 변죽이다. 이 시를 꽃밭이라면 여러가지 모양과 여러가지 색갈의 꽃들이 피여있는 꽃밭이다.  강동한은 미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시인이고 김은자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시인이다. 아래에 김은자의 시를 보기로 하자.   치과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끌을 꺼냈다 어제밤 나는 썩은 이에서 푸른 싹이 돋는 꿈을 꾸었다 치과의사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이빨을 뽑자고 했다 나는 그 음악을 잡아 뽑은 자리에 심는다 그것은 너를 벗는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일 마취에서 벗어났을 때 병원창문밖 채송화가 붉은 옷을 입고 춤을 추고있었다 파란 비닐장갑에 묻은 피처럼 선명한 하늘 치과의사는 꽃속으로 드릴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시끄러운 기계소리로  둥근 구멍이 뚫리는 아침 세상밖으로 던져진 시간이 흰이빨을 드러낸채 웃고있다 피흘리고있다    ㅡ의 전문   발치란 이빨을 뽑는다는 말이겠다. 첫두행이 한개 단위이고 삼사행이 한개단위이다. 현실로부터 초월로 상승하면서 실재계를 나타내고있다. 실재계란 현실에 없는 이야기를 말한다. ,  이 2행과 4행은 현실적으로 존재할수 없는 부재의 세계이다. 나는 나는 하면서 시인은 현실인것처럼 말할뿐이다.   채송화가 붉은 옷을 입고 춤을 추고있었다 파란 비닐장갑에 묻은 피처럼 선명한 하늘 치과의사는 꽃속으로 드릴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시끄러운 기계소리로  둥근 구멍이 뚫리는 아침 세상밖으로 던져진 시간이 흰이빨을 드러낸채 웃고있다 피흘리고있다   부드럽고도 싱싱하고 싹싹하고도 탄력있는 언어들이 혀에서 또르르 굴러 입밖으로 나올 때 청이슬이 되여 동동 뜬다. 시인은 마지막에 여섯행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언어들이 현실계와 실재계를 자유로이 드나들면서 실재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있다.  , , , 등은 다 현실세계이지만 나머지 언어들은 다  초월을 보여주는 실재계라고 부를수 있다. 실재계와 초월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라고 하겠다. 시의 힘과 시의 예술성은 현실계에 있는것이 아니라 실재계에 깃들어있다. 실재계야말로 시인의 탐구의 대상이며, 시의 령혼이 빛나고있는 곳이다.  시에서 나타나는 실재계를 시적현실이라고 한다. 에서 은 의사가 낀 장갑이라고 할수 있으므로 현실이고, 은 비닐장갑에 묻은 하늘이라 했기에 실재계이다. 는 이발을 빼는 의사이므로 현실이고, 에서 이란 언어가 이빨대용이므로 실재계이다. 심상운시인은 디지털시를 말할  때 현실계를 염사라하고, 실재계를 접사라고 하였는데 과 이 접사이다. 현실계가 실재계로 넘어가는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생기게 된다. 그것을 문턱이라고도 한다. 문턱은 기승전결에서 말하는 전(转)과 같은 작용을 한다. 이 보이지 않는 문턱은 중요한 분계선이다.   문턱을 넘지 않으면 현실계가 되고 문턱을 넘으면 초월계가 된다. 한 실재계가 다른 실재계로 전의할 때에도 문턱이 작용하게 된다.  한 실재계에서 다른 실재계로 전의하면,  비중심이 되고, 주변적인것이 되고, 탈중심화가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현실계는 실제적인 존재이고, 실재계는 시인의 상상에 의하여 각색되는 비현실적인 허상이나 가상이 된다. 현대시는 초월이 한번 나타나도 되지만 하이퍼시는 새로운 실재계가 여러번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하이퍼시의 고칠수 없는 고질병이다.   " style="color: rgb(51, 51, 51); font-family: 굴림, 굴림체, Gulim, "Baekmuk Dotum", Undotum, "Apple Gothic", "Latin font", sans-serif;" />
  3. 하이퍼시는 사상이 아니라 언어의 기능을 촉구      언어의 기능에 대하여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스위스의 소쉬르이다. 소쉬르는 낱말을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두가지로 분류해 내였다. 시니피앙이란 기표이고 시니피에는 의미인데 이 의미는 사물을 말한다. 사물이 나타나야 어떤 의미를 알수 있기 때문이다. 기표가 사물(체언)을 지칭하지 않고 다른것(용언)을 지칭하면 의미가 확연해지는것이 아니라 몽롱해진다. 용언은 체언에 련결될 때라야만이 자기의 작용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는것으로서 주체로 될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언어의 주체는 어느때 어디서나 체언인것이다. 용언은 체언을 수식하고 설명하고 받쳐주는 언어이다. 그로부터 언어학자들의 연구는 모두가 소쉬르의 언어기능을 론하면서 언어를 발전시켜왔다, 체언은 형상을 떠올리고 용언은 의미를 규명하는 언어라고 할수 있다. 시는 어떤 이미지로  어떤 의미를 떠올리는 작업인것이다. 언어란 우리 모두의 애인이다. 미인처럼 아름답고 어머니처럼 정다웁고 아버지처럼 미더웁다. 아기들은 언어를 먹으며 살이 오르고, 어린이는 언어를 먹으며 뼈마디가 자라나고, 청년들은 언어를 날리며 패기를 떨치고, 중년들은 언어를 누리며 숙성되고, 로인들은 언어를 쌓으며 복을 누린다. 언어는 인간자체이며 언어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다. 한 사람한테서 언어가 사라질 때 생명도 끊어지게 된다. 세계는 여러가지 언어로 구성되였는데 언어는 그 구성원들의 얼굴이 되고  구심점이 되고 얼이 된다. 언어는 사람들을 짐승들과 분리시켜 고급동물이 되게 하고 문명인이 되게 한 원초적인 장본인이다. 언어의 성장은 인간성장의 중요한 표징이기도 하다. 시는 사상이 우선이 아니라 언어의 기능으로부터 시작된다. 프랑수아도스는 (61쪽)는 한마디 말로서 언어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우리 언어에는 자음과 모음이 있다. 입의 소리는 실로 신비하고 다채롭고 황홀하다. 선인들은 그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표기하고, 자음과 모음을 갈라놓기도 하고 결합시키기도하면서 언어를 표현해냈다.  우리의 모음에는 ㅏ,ㅑ,ㅓ,ㅕ… 등이 있고 우리의 자음에는 ㄱ,ㄴ,ㄷ,ㄹ… 등이 있다. 모음은 녀성이고 자음은 남성이다. 그것들은 서로를 자유롭게 사랑한다. 그것들의 사랑행위는 다종다양하고 꺼리낌이 없다. 하나의 자음과 모음이 살놀이를 하기도 하고, 하나의 모음과 자음둘이 동시에 살놀이를 하기도 하고, 하나의 모음과 자음 셋이함께 살놀이를 하기도 한다. 둘자음 하나모음 살놀이나 셋자음 하나 모음 살놀이는 륜간에속하지만 음성의 나라, 자모음의 나라엔 륜간했거나 륜간당해도 법으로 제한하는것이 없다.이로부터 이런 결론이 나온다. 기표들은 선천적으로 자유로운 바람쟁이들이다. 바슐라르는영어의 이라고 하지만 ( .69쪽) 필자가 보기엔 우리의 자모음의 섹스는 언제나 자음인것 같다. 영어나 꼬부랑 기표들은 받침이 없지만 우리조선어에는 받침이 있다. 받침들이 바로 남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있는것이라고 생각된다.받침이 들어감으로써 언어들의 함의가 완전히 철저히 달라지게 되는것이다. 이런것이 언어의 기능이라겠다. 또 낱말의 기능이란것이 있겠다. 사물들사이에는 통일성과 동일성이 없고, 유사성이 없어도 단어들속에는 통일성과 동일성이 존재한다는것이 언어의 기능이다. 이로부터 아무리이질적인 사물이라도 기표로는 서로 련계할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 62.)고  질 들뢰즈와 필릭스 가타리는 말하였으리라. 그들의 말은 언어의 기능에 대하여 완벽한 대답을 주고있다고하겠다. 으로하여 언어와 현실사물은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 된다. 언어는 언제나 탈사물화된다. 언어는 현실사물의 영상을 떠올릴뿐이지 현실사물과는 다른것이다. 태양하면 우리는 태양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느누구나 이미의 장소에서 이미의 시간에 태양이 떴다고 말할수 있다거나 나의 손바닥에 태양이 있다고 말할수 있는것은 태양이라는 언어가 이미지로 표현되고 전달되기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 있다면 나무와 돌이 직접적으로 어울린다고 할수 없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나무와 돌은 하나로 되는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의다른 사물들이다. 하지만 라는 언어와 이라는 단어는 직접적으로 어울릴수있다. 하면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리해하게 된다. 아, 나무와 돌의 합성어라고. 현실적인 사물로는 아니 어울리지만 기표적으로 문자적으로는 매우 잘 어울린다. 나무나 돌이라는 낱말에 나무나 돌의 속성이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다시 자의 어울림  례를 들어보자. , , , , , …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의 모든 단어가 다 돌과 직접 어울릴수 있다는것이다. 돌자만 그런가? 다른 모든 글자들도 다 그렇다. 우의 례들을 다시 한번 연장시켜보자 , , , , , . 이런 례문들은 ( 46쪽. 테렌스호옥스.)되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례문들을 통하여 우리는 이라는 기표가 단 하나의 기표의 의미에 고착되지 않고 다른 기표들과의 관계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킨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런 기표들은 순수한 언어들의 흐름을이루어간다. 우리는 언어의 신비함을 맛보게 되는것이다. 이것은 언어가 자신의 고유한 기능이 있기때문이다.  낱말들의 결합은 인과작용이나 어떤 종속적인 결합을 하는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결합이다.  낱말들은 모두 평등하며 어느것이 우위이고 어느것이 하위라는 구별이 없다. 낱말들은 자체로 꿈을 꾸면서 새로운 세상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그래서 낱말들의 꿈은 끝이 없이 무한하다고 할수 있겠다. 시는 초자연적인 길을 열어야 하는데 그것은 심상에 의하여 창작하여야 한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우에 을 가지고  련계한 문자의 배렬이 초자연적인 길이  아니겠는가?언어가 바뀌고 언어의 흐름이 일상적인 사유의 밖에서 생성되는 글이 바로 초자연적인 길을열어가는것이 아니겠는가? 중국 당나라때 이란 책이 있었다. 언어가 동일성을 발휘한 훌륭한 례문이 있다. (103-108쪽)위의 여섯가지  례문들은언어는 언어자체의 기능에 의하여 결합되고, 생성된 이미지는  원사물과는 관계가 없다는증거를 공급하고 있다고 하겠고, 사물에는 통일성이나 동일성이 없어도 언어에는 통일성과동일성이 있기에 자유롭게 결합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언어기능의 달인이되면 시를 심오하게 쓰게 된다. 심오하지 않는 시는 시시한 감을 면하기 어려울것이다. 신세훈시집 에 이런 시가 있다.   말귀도 날아와 산이 된다 산이 되여 사람을 부른다 두귀가 사람을 부른다 镇安가을에 마이산이 안경너머 보인다 (새끼야, 너도 보고싶잖아)   마이ㅡ마이(MY) 마이ㅡ马耳 마이ㅡ麻衣 麻衣ㅡ마의 태자 말귀를 알아듣는다 두말귀는 알아듣고 하늘에다 쫑긋댄다 보름달이 우리의 눈알이란걸 조선말은 이미 보아알고있다. 말의 눈알이 보름달이란걸 산귀의 두눈알이란걸 (새끼야, 너도 알고있니?)            ㅡ 전문   우리 언어는 동음의의어가 많다. 여기서 나오는 도 그렇고 도 그렇다. 시인은 동음의의어의 함의를 파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면서 정채로운 시를 쓰고있다. 언어를 갈고 닦음이 경의롭다. 1련에서 나오는 말귀가 말의 귀인(马耳)지 아니면 언어의 말구(言句)인지 아니면 말의 귀신(马鬼)인지 분별이 애매하면서도 아름답다. 어찌했든 말자와 귀자의 합성어인것만은 사실이다. 언어의 자유로운 결합의 표현이라겠다. 이런 말귀가 날아와 산이 되여 사람을 부른단다. 말귀와 산이 어울린다. 일상적으로 말하면 어울릴수 없는 항렬에 속하지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것은 언어의 자률성이다. 언어란 어떤 소리와 어떤 소리가 어울려야 하고, 어떤 소리와 어떤 소리는 어울리지 못한다는 법이 없다. 그래서 말귀가 날아와 산이 될뿐만 아니라 사람을 부를수 있는것이다.   마이ㅡ마이(MY) 마이ㅡ麻衣 麻衣ㅡ마의 태자 말귀를 알아듣는다 두말귀는 알아듣고 하늘에다 쫑긋댄다   여기서도 마이의 여러가지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는것은 말하는것을 알아듣는다는 의미이고 는 말의 귀 두개라는 의미라겠다. 말귀의 앞에서 접두사이며 수량을 나타내는 자의 작용으로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인지되고, 새로운 언어의 코드가 생겨나서 새로운 의미를 표현하게끔 조합되였다.    보름달이 우리의 눈알이란걸 조선말은 이미 보아알고있다. 말의 눈알이 보름달이란걸 산귀의 두눈알이란걸 (새끼야, 너도 알고있니?)   시인은 보름달이 우리의 눈알이라고 하는가 하면 말의 눈알을 또 보름달이라고 한다. 시인의 말대로 하면 사람의 눈알이나 말의 눈알이나 다 보름달이 되고, 그것은 또 산의 귀나 산귀신의 눈알이 된다고 한다. 이런 언어의 흐름을 고유한 자연의 길을 여는 불연속적인 말이며, 변형의 표현으로서 한사물이 그와 성질이 다른 사물로 되기인, 기이한 이미지 생성이며 리좀의 생성이다. 하지만 언어의 자률성에 의한 문자의 표기라는것을 우선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가.ㅋㅋㅋ. 신세훈시인의 이러한 언어탐구는 무의식에 의한 탐구라고 할수 있을뿐 다른 말로 정의할수 없다. 신세훈시인이 쓴 언어는 보통사용법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용법으로 씌여졌다. 우리는 그런 언어를 시적언어라고 하고 미적언어라고 한다.  시적언어는 코무니케이션(소통, 의미전달)을 위해서 사용하는것이 아니고, 언어표현행위를 추구하는 언어이며, 언어행위 그자체를 보여주기 위하여 사용되는 언어이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의 창조자가 되는것이다. 시적언어들은 다른 언어와의 관계속에서 언제나 일탈을 꿈꾼다. 말이 많다, 말이 뛴다, 한말이다에서처럼 말이라는 언어가 어떤 언어와 관계를 맺는가에 의해서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한말이다에서는 또 뛰여쓰기에 의하여 달라지기도 한다. 자와 자를 붙여쓰면 수량을 나타내지만 자와 말자를 띄여쓰면 한 말(言), 이미 발설한 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쌀같은것을 대는 수량을 나타내는 한말(一斗)이기도 하다. 문학에서는 사물세계가 단어를 창조하는것이 아니라 단어들이 사물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시의 경우에 사물들의 단어가 련속나올 때도 있는데 그것은 사물세계를 창조하는 모습이 되겠다.  새가 긴다/강이 뛴다/ 말이 난다/나무가 걷는다/ 돌이 눈 뜬다/신이 발을 물고 간다… 보는 바와 같이 아래위의 언어들이 아무런 련계성이 없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를 련속부절하게 이으면서 무한대로 이어갈수도 있다. 례문에서 나오는 ,,, , , 들은 모두 배타성을 띤 각성바지 사물들의 현현이라고 할수 있지만 언어적으로는 아무런 무리가 없이 련계되는 말이다. 이러한것에 대하여 데리다는 간단하게 정통을 찔렀다.  “이렇게 해서 모든 주어진 문맥과의 관계를 끊을수 있으며, 전적으로 제한이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맥을 무한대로 만들어낼수 있다.(.82쪽) 우의 례문의 여섯가지가 바로 를 서로 끊은것이며,  제한이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맥>>을 늘여가고 있다고 하겠다. 상하좌우의 관계를 끊으라 새로운 문맥을 가져다붙이라는것이 바로 무의식의 발상이다. 이렇게 시를 짓는것이 바로 하이퍼시다. 짜집기가 아닌가? 짜집기를 못한다는 법은 없지 않는가! 짜집기란 문학에서 성질이 완전히 다른 사물이 한곳에 모일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정말 그런가? 사실 소설은 이야기 짜집기를 하고, 극은 장면의 짜집기를 하고, 수필은 감정의 짜집기를 하고, 시는 언어의 짜집기를 하게 될 때 예술이라는 경지에 도착되는것이 아닐가. 문학의 짜집기는 하늘에서 떨어진것과 땅에서 솟아난 자연사물의 관계에 그 기초를 두고있는것이다. 지구는 짜집기로 형성된것이라겠다. 산, 강, 공기. 흙. 호랑이, 도마뱀, 모기, 수초, 사람…이러한 사물들이 모인 곳을 우리는 지구라 한다. 사람의 얼굴도 짜집기로 이루어지였다. 눈, 귀, 코, 입, 이빨, 머리 등 같지 않는 사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것이니 짜집기가아니겠는가! 자연과 인간을 말하였는데 이번에는 인간문화인 집을 보기로 하자. 집은 벽돌,모래, 세멘트, 철, 나무 등 완전히 다른 사물들이 모여서 건설된것이다. 그러니 짜집기가 아니라고 할수 없다. 필자의 소견에는 모든 사물은 짜집기로 되여있으며 우리는 짜집기속에서짜집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사물들의 관계를 어떻게 리해하는가에 있다. 강은 산과 들과  련계되고 하늘과 별과 련계되고 새와 노루와 련계되고 수초와 돌과 지렁이와 뱀과… 련계되지 않는것이 없다.세상의 모든 사물은 어떻게 다르든 간에 다 이렇게 련계되고 조화를 이룬다. 하물며 문자는이런 사물들의 련계보다 훨신 더 자유로운 결합의 기능이 있고 자률성이 있음에랴. 문학의 정부는 허구이고 문학의 정치는  상상(想象)이다.  문학은 이런 정부와 정치를 떠나서는 살수 없게 되리라. 짜집기를 못한다거나 짜집기가 틀린다는 말은 뒤를 돌아본 어제날의 이야기이지 미래를 향한 오늘날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2 .하이퍼시는 개념이 아니라 사물을 촉구     개념이란 무엇인가? 오관에 의하여 반영된것을 추리하여 어떤 결론을 추출해낸 관념이라고 할수 있다. 사물이란 무엇인가? 오관에 의하여 감각된 물체이자 형상이라고 할수 있다. 시에서 말하는 사물이란 무엇인가? 사물의 영상을 떠올린 언어라고 말할수 있다. 그것은 기호이며 기표이다. 언어에는 두가지가 있다. 추상적언어와 구상적언어. 추상적언어는 사물의 영상이 떠오르지 않는 언어이다. 생각, 희망, 사랑, 꿈, 증오, 미래… 등등 많은 언어들은 어떠한 영상도 떠오르지 않는 언어이며 인간의 감정을 말하는 언어이다. 이러한 언어들은 추상어에 속한다. 이런 언어와는 다른 일종의  언어가 또 있다. 해, 달, 별, 나무, 강, 풀, 사슴, 메뚜기… 등 많은 언어들은 문자를 보는 순간에 우리의 머리에 영상이 떠오른다. 소위 물질(혹은 실체)이라는것은 이러한 언어를 가리킨다. 물질에 대한 론술을 많이 한 사람들중에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가 있다고 할수 있다.그는 ,,,… 등 저서들을 내놓았는데 다 물질을 분석한 리론이라고 할수 있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불, 공기, 물, 흙은 물질의 사대 원소이다. 바슐라르는 물질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 12쪽)  (물과 꿈>>35쪽) 보는바와 같이 물질은 시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물질이 없으면 이미지가 없게 되고 물질이 없으면 작품의 생명이 없게 된다. 시속에서의 물질의 지위는 그어떠한것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불가결의 요소인것이다. 물질은  이미지를 생성하는 유일한 실체이고 , 물질이 있기에 시라는것이 존재하게 된다. 물질이 상상력과 결합되면 천변만화를 일으킨다. 때문에 물질적상상력은 새로운 승화를 만들어낼수 있고 예기치 못했던 이미지를 생성할수 있을뿐만 아니라 원초적인것과 영원한것의 존재를  파볼로수 있게 한다. 시적물질은  무의식의 체현이라고 할수 있다. 무의식으로 산생되는 사물은 모두가 변형으로 나타난다고 할수 있다. 질 들뢰즈와 필릭스 가타리가 쓴 에서는 상상력에 의한 물질변화의 례들을 이렇게 들고있다 . 1.내 털구멍 하나하나속에 아기가 자라고있다(66쪽) 2.장뇌로 빚은 술 말고는 아무것도 주사하지 말아줘, 그렇지 않으면 내 털구멍 하나하나마다젖가슴이 자라나와(동상) 3.이(虱)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위로 뛰여든다.(67쪽) 4.벌떼는 줄무늬셔츠를 입은 축구선수들의 난투,(68쪽) 5.질베르트를 발음할 때면 나는 내 입안에 그녀를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머금고있다는 인상을 가졌다.(80쪽) 6.낙타가 하늘에서 키득거리는 천마리 낙타가 되는 사막의 시간, 지표면위에 천개의 구멍이생겨나는 저녁시간(80쪽)   이런 례문들은 구조주의자들의 책속에 심심찮게 나타난다. 필자의 소견에는 이런 말인것 같다. 1과 2는 다 털구멍에 대한 무의식의 산물인데 1의 아기는 새로운 털이 나오는것을말하고, 2 는 젖꼭지를 생각하면서 쓴것이고, 주사하지 말라는것은 주장을 말라는것 혹은 술을 먹이지 말라는것이라고 생각된다.  3의 바닷가 모래사장은 인간의 몸체이고, 이는 모래알이다. 4의 줄무늬셔츠는 날개라고 풀이해 보고 축구는 벌들이 윙윙거리며 나는것을 말한다.  5는 죽도록 사랑하는 녀인에 대한 그리움이고, 6에서 하늘에서 키득거리는 낙타란것은 낙타가 목을 쳐들고 우는것을 생각하면 리해될것이고, 천개의 구멍이란 해빛이 그늘사이로 내려와 지면에서 어룽거리는것을 생각하면 리해되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것이 시에대한 흔상이다. 시는 은유와 환유를 기본수법으로 쓰기에 흔상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현대시로부터시마다 수수께끼가 있어야 한다는것은  정도(正道)이다. 수수께끼가 없는 시는 흔상할 가치가 없는것이다. 그래서 시는 말속에 말이 있다고 하리라. 아래에 신금화시인의 시를 례로서물질적상상력에 대한 특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밤  신금화         낮달이 썩뚝썩뚝 베여먹는 해쪼각  하얀 저녁이 까만 밤을 토한다     귀뚤귀뚤 별을 뜨개질하는 귀뚜라미 휘파람소리  하늘에 은하수 목걸이 걸어놓는다     번뜩이는 잉어비늘 하나 따다가  진수성 차리다     놓여진 도마위에  춤추는 야채들 환골탈태     숲을 이룬 가마안에는  잡새들 교향곡연주 한창이다         의 전문   보는바와 같이 두행이 하나의 단위로 된 열행시이다. 각 단위를 한개의 리좀이라고 한다. 각행마다 숙성된 이미지로 되여있다. 각련들이 분리되면서도 련결되여여있다. 5련은 종합성을 띠는 맛이 나지만 여느 이미지와도 다른 이미지다.   낮달이 썩뚝썩뚝 베여먹는 해쪼각  하얀 저녁이 까만 밤을 토한다   첫련이다. 낮달이 해를 썩뚝썩뚝 쪼각내여 베여먹는다고 한다. 이 낮달은 해가 다 지기전의 달이다. 보름날이면 지구에 땅거 미가 쌓이기전에 급해난 달은 벌써 하늘에 떠오른다. 그것이 낮달이다. 시인은 그 낮달이 해를 썩뚝썩뚝 베여먹는다고 상상 한다. 그래서 하얀저녁이 까만 밤을 토한다고 한다.과 이 대조를 이루기도 하고 량극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잘 씌여져 보름날 저녁의 상황을 잘 그리였다고 하겠다.   귀뚤귀뚤 별을 뜨개질하는 귀뚜라미 휘파람소리  하늘에 은하수 목걸이 걸어놓는다    귀뚜라미가 하고 을 분다는 이미지나 그것들이 는 참신하기 그지없는 새로운 상상을 시인은 펼치고있다. 시인은 물질적이미지들 (별, 귀뚜라미, 하늘, 은하수, 목걸이)로 꿈을 꾸고있으며 그것은 몽환과 같은것이며 무아경을 연출하고 있다하겠다. 이런 꿈과 몽환에 도착하는 방법은 한사물을 성질이 다른 사물로 변형시키거나 한사물의 행위를 그와 다른 사물의 행위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1500여년전 류협도 사물과 사물을 비기는것이 심상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즉 사물과 사물을 비기는것이 시를 만드는 방범이라는것이다. 신금화 시 의 각련의 이미지들은  세련된 언어로 만들어진것으로서 깔끔하고 깨끗하다.  이미지와 이미지사이는 불연속이고, 독자적이다. 이미지마다 일상적인 언어 흐름을 배제하고 새로운 언어흐름으로 되여있어서  생동하다, 씹을수록 맛갈스럽고 볼수록 아름답다. 하이퍼시가 창출하는 이미지는 초월적인것이여서 마음속의 그림 일뿐이며, 돌연성과  기의성으로 창조성을 획득하게 된다. 신금화의 시 이 바로 이러하다고 하겠다. 이만큼 해석하면 다른 련들에 대한 이미지 분석은 략하여도 될수 있겠다고 생각 된다.  기표와 기의라는 언어에서 기표는 문자이고 기의는 우선 사물이다.   능기와 소기에서 능기는 기표이고 소기는 우선 사물이다. 사물의 의미는 사물이 변화를 말하는 의미이지 무슨 사상이 아니다. 하이퍼시는 언어의 새로운 련계와 대비 및 흐름 속에서 의미를 새롭게 나타내는데 그 의미자체가 사상이라고 해도 좋다.     시를 직조한다고 말하는데 직조하려면 씨실과 날실이 있어야 한다. 날실이 사물이고 씨실은 기교이다. 이렇게 모든 개념은 사물을 떠나서는 해석이 안된다.  하이퍼시의 감정은 물질을 통하여 체현된다. 물질 그자체가 시인의 감정의 표현이다.  (바슐라르 69쪽) 우리 쓰는 시가 이런 시가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시적물질속에 시인의 감정이 녹아있을뿐만 아니라 꿈꾸어진 물질에는 시인의 의지나 정신의 앙양이 용해되여 있는것이다.그래서 시인은 현 실적인 사실보다상상적인 사실을 더 중시하고 선택하게 된다. 상상적인 사실은 특수한 현실로서 실제적인 사실보다 더 집중 되고 더 보편성을 띠게 되며 더 중요하다. 그것은 사물과 사물의 결합으로서반대 물의 결혼을 말하는것이며,  살놀이를 하는 이미지는 일회용으로서 이미지의 아우라(독창성)를  생 성하게 된다.  시가 이런 시적현실을 가진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기때문에 시인은 시인이 되는것이다. 한국의  계간지 신세훈 주필은 이렇게 말한 다.  (96기(208쪽)신세훈주필이 국민대 교수이며 철학박사이고 문학박사인 류일경의 민조시를 추천할 때 한말씀이다. 신주필 말씀대로 한다면시인이란  위대한 이 름이다. 위대한 이름에 값하는 시를 쓴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명성을 가진 현대시인들도 일생에 여섯수내지 여덟수의 명시를 썼다고 하니 말이다. 시쓰기가 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닿을 수 없는 대안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한발자욱씩 다가가는 사람이 시인이다.  멍청이인지 바보인지 알수도 없는 가엾는 사람이… 한국시 시 한수를 더 보자      어두컴컴한 매립지埋立地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가지를 흐늘쩍흐늘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 ‘안개 속의 나무들’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채野菜를 먹는다. 마른 벽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들고 깊은 잠 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動力線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   고, 지느러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심상운,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전문      이 시를 한국의 이선시인이 극명하게 해설하였다. 그의 해설을 보기로 하자. (컴. 심상운 시론 서평에서) 이선의 시평뿐 아니라 심상운 시자체도 시는 물질, 생성,운동이라고 간단히 말할수있을것 같다.  물질화하는것은 일종 몽상이며 물질은 또 생성되여 나타나는것으로서 시인의감정의 응결이며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심상운 시인은  에서 꿈처럼 물질세계를 나들면서 시인의 저력과 기량을 보이고 있다하겠다. 심상운 시인은 매우 많은 사물과 사물의 생성 및 사물들의 움직임의 조화로써 시를 완성하면서 개인의 의도는 사물들의 운동속에 용해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시는 사물을 쓰는것이지 개인의 관념을 직접 발로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공자는 성인은 뜻을 상(像)을 만들어 표현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상은 사물이다. 시인은 성인이다. 뜻을 상으로 말한다 는것은 시인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기하라는 말이 되겠다. 성인은 뜻을 상으로 말한다는것을  뼈속깊이 새기고 시창작을 한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지만 시인이라면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하이퍼시의 10대 촉구   하이퍼시는 모방이 아니라 변형과 생성을 촉구     2011년도 노벨문학상을 탄 시인이 있다. 그가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이다. 그의  시 을 보자.   오늘은 건물을 열지 않는 날 태양빛이 창유리로 밀려들어 책상표면을 덥힌다. 인간의 운명을 짊어질수 있을만큼 튼튼한 책상들   오늘 우리는 야외로 나와 , 길고 널직한 경사지에 선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다. 해빛속에 서서 눈을 감으면, 서서히 앞으로 밀려가는 느낌을 가지리라   나는 좀처럼 바다로 내려오지 않지만, 오늘은 이곳 평화로운 등을 가진 큼직한 돌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돌들은 바다로부터 한걸음 한걸음 뒷걸음질쳐 여기에 와있다.          ㅡ 전문   에 음악이 있는것이 아니라 사물의 변형이 있으며 사물의 움직임이 있다 .나름대로 분석해 보자.   오늘은 건물을 열지 않는 날 태양빛이 창유리로 밀려들어 책상표면을 덥힌다. 인간의 운명을 짊어질수 있을만큼 튼튼한 책상들   건물은 은어이다. 책상표면도 은어이다. 책상들도 은어이다. 은어란 변형된 언어를 말하는것으로서 언어자체의 이미보다 다른 의미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제목이 이니까 이런 은어들은 어떤 악기를 가리키지 않을가 태양빛이 창유리로 밀려들어 했으니까 그것이 열지 않는 건물인지도 모른다. 그 건물은 책상이다. 인간의 운명을 짊어진 책상들, 가능하게 피아노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추측이다. 시는 변형된 언어들이기에 그것을 풀이해보는 재미로 읽어보는것이 아닐가. 그 풀이가 나름대로니까 틀려도 무방할것이다.   오늘 우리는 야외로 나와 , 길고 널직한 경사지에 선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다. 해빛속에 서서 눈을 감으면, 서서히 앞으로 밀려가는 느낌을 가지리라   장소는 야외행사장이다. 길고 널직한 경사지다. 검은옷 입은 사람도 있단다. 검은옷 입은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가.  피아노리스트일가 아니면 음악연주의 지휘자일가 아니면 청자일가. 나는 해빛속에서 눈을 감는다. 서서히 앞으로 밀려간다. 왜 밀려갈가 음악소리가 그를 앞으로 밀고있는것이다. 그는 음악에  취해서 지금 꿈을 꾸고있는것이 아닌가. 한수의 시가 꿈이란 말이 진실임을 확인하는 제2련이다.   나는 좀처럼 바다로 내려오지 않지만, 오늘은 이곳 평화로운 등을 가진 큼직한 돌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돌들은 바다로부터 한걸음 한걸음 뒷걸음질쳐 여기에 와있다.   어쩌다가 바다로 왔다. 평화로운 등을 가진 큼직한 돌들과 함께 있다.  바다가 밀물이 되여 들어왔다가 썰물이 되여 나가서 생긴 돌들이 아니라 바다로부터 절로 뒤걸음질 쳐서 온 돌들이다. 역사유다. 돌들의 운동이 희한하다.이러고 보면 가 인지도 모른다. 돌들은 감격적으로 피아노연주를 경청하던 청자들일지도 모른다, 하이퍼시는 현실의 초월이라고 한다. 초월자체가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생산해 낸다. 그것을 시적현실이라고 한다. 에 나타난 모든 사물들은 음악에 대한 직접적인 사물들이 아니다. 음악을 감상하는 시인의 령혼속에서 산생된 사물들이다. 령혼에 의하여 산생된 사물들은 죄다 생성에 속하며 그 의식은 무의식에 속한다고 할수 있고 그렇게 씌여진 시는 하이퍼시다. 그 사물들은 모방으로 렬거된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의하여 생성된 변형물들이라겠다.은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기억과 회상이 아니라 변형과 새로운 사물의 산생이다. 음악가와 음악은 기억과 회상을 중시하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률과 새로운 음악언어를 중시하는것이다.   계절의 숲에서 봄을 쪼아먹고 내 가슴에  보금 튼 사랑 알속에는 하늘과 태양 옹근 우주를 포개넣었다 까낳은것이 자유를 나르고 돛단배 바람따라 파도 가르는  갈피에 끼인 시간의 비늘들이  부서져 반짝이는 소리에 웬 사내가 해일 안고 세월의 잔등우로 걸어올 때 다윈이 여름을 부채질하면서 나에게 진화를 한잔 권한다.                 김파시 의 전문   에서는 하나의 사물이 련속적으로 묘사되는것이 아니라 두행이 멀다하게 새로운 사물이 나타나서 운동한다. 처음에는 사랑새가 태여나서 하늘과 태양과 옹근 우주를 포개넣은 알을 낳는다. 그담에는 자유를 나르는 깃이 나오고, 그담에는 바람을 따라서 파도를 가르는 돛단배가 나오고, 그담에는 파도의 갈피에 끼인 시간의 비늘들이 나오고, 그담에는 해일을 안은 사내애가 세월의 잔등위로 걸어가고, 그담에는 여름을 부채질하는 다윈이 나와서 진화를 한잔 권한다. 시는 여러가지 이미지들로 완성되고 있다. 문덕수는 하이퍼시의 한개내용을 한개의 단위(180쪽) 라고 하였다. 는 이런 단위가 여러개 있다. 단위와 단위사이는 련결인것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불연속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적지 않는 사람들은 문학을 모방으로만 보았다.모방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지만 하이퍼시는 사물의 형태나 모양을 변화시킨다.그것이 심상 이다.사물의 모양이나 형태를 변화시키면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둔갑하게 된다. 노벨상을 받은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시 이나 김파시 를 읽으면 문학이 모방 이 아니라 변형이라는것이 증명되며 새로운 사물의 생성이라는것이  불보듯 뻔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한다 라는 제목을 달아본다.  모방과 변형은 완연히 다른 개념이다. 모방은 사물의 재현을 추구하고 변형은 사물의 생성을 추구한다고 하겠다. 모방은 어떤 의식의 해설이고 변형은 어떤 사물의 생성으로써 한 사물 리면에 가리워졌던 다른 사물을 독자앞에 나타나게 한다. 모방은 의식의  산물이고 변형은 무의식의 사물생산이다. 모방은 어떤 사물이나 사실의 제한을 받는 회억이지만 변형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이다. 변형과 무의식은 자식과 부모의 관계인것 같다. 변형도 새로운 사물을 낳고 무의식도 새로운 사물을 낳는다. 변형은 무의식의 표현이고 무의식은 변형의 근본인것 같다.   2)    이란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127쪽)으로부터나왔다.1500년전에 중국의 류협은 시는 심상에 의존한다고 하 였는데 실은 이 말이 변형이라는 언어와 다름없는 말이라고 할수있다. 무의식이란 언어는 지그문트프로이트로부터 나왔고, 변형은 조루즈 뒤메질에 의하여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구조주의의 대표적인물인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평한다. 라고.( (69쪽) 프랑수아 도스) 사물의 모양이나 형태를 변화시키는 변형이나 사물이 생성되는 장소인 무의식은 다가 상징을 생성하는것을 종지로 삼는다.  변형이나 무의식은 둘다 을 전제로 한다. 시인의 상상속에서 모든 윤리는 제로상태 즉영의 상태여야한다. 이나 에서처럼 언 어가 언어를 넘어서면서 한사물에서 그와 성질이  다른 사물이 생겨나게 하는것이 오늘의 주요한 시작법인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하이퍼시는 모방이 아니라 변형이자 생성이라고 생각된다. 인제 시에서 모방이라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견해를 버리고, 그 자리에 변형이나 무의식이라는 관념을 수립할 때가 되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모방이란 관념ㅡ이 낡은 관념은 진작 시적작업에서 력사의 뒤안길에 사라져버린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변형이 현대시의 핵심적수법으로 된지도 100년이 넘었고,  무의식이 시의 핵심적인 근원으로 된지도 인제 반세기가 넘었다. 모방을 버리는것이 문학이나  시가 본질적으로 문학다운것이 되게 하는것이 아닐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변형과 무의식은 새로운 사물을 생성한다는 면에서, 상징에 도달한다는 면에서는 일맥상통한 개념이다.  변형은 하나의 생성으로도 만족할수 있지만 무의식은 여럿의 생성을 대상으로 한다. 변형이 하나의 생성으로 만족되였을 때는 단선구조로 된 현대시라고 할수 있지만  하이퍼시는 무의식으로 쓰는 시여서 단일체에 기대는것이  아니라 다양체에 기대개되는것이 근본이다.    3)    중국고대 5000년전에 이라는것이 있었다. 주역은 우리 고대문화일뿐만 아니라 철학이고 오늘에도 이 철학의 핵심은 여러방면으로 리용되고 있다. 주역이란 말은 여러가지 뜻이다.우리는 주(周)자를 두루주자라고 말하는데 사전을 보면 密,全,环,团结,合,至,循环,救济 등등으로 해석하고, 역(易)은 交换,更改,容易,平坦,轻视 등등으로 해석한다. 필자의 소견에 주역은 문자로써 우주의 생성원리를 말한것이라고 보아진다. 서로  자유롭게 변형되여 생성되며 의미를 전달하는것이 주역이라고 생각한다. 주역에는 무극이 있고, 태극이 있는데 태극은  음과 양으로 나뉘고, 음양의 작용에 의하여 사상이  생긴다고 한다. 상고시대 복희씨는 사상을 발전시켜 8괘로 만들고 감옥에 갇혀있던 주문왕은 8괘를 발전시켜 64괘로 만들었다고 한다.  주역에는 이어진 선
5    무의식에 대한 리해 댓글:  조회:584  추천:1  2017-10-10
  무의식에 대한 리해   1   시는 무의식으로 쓴다. 이말은 새로운 말같지만 고로한 개념이다.무의식에 대한 말은 근대에는 구라파에서 나온 말이지만 실제의 뿌리는 중국의 고대 로부터 있은 시적개념이다.  무의식이란 구조주의 언어학의 핵심적 명제이다. 하이퍼시는 무의식의 산 물이고 무의식은 하이퍼시의 산모이다.  무의식이란 어떤것이기에 이런 작용 을 한다고 말하는가? 이 문제를 풀이하자면 우선 구라파의 무의식부터 살펴보아야 할것 같다. 무의식이란 언어를 가장 확실하게 가장 풍부하게 가장 학문적으로 떠올린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지그문트는 정신병을 연구하면서 꿈에 대한  해석을 할 때 무의식이란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꿈은 어떤 의식의 지배하 에서 꾸는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꿈 은 낮의 의식의 조각들이 변형되여 떠오른 영상으로서, 꿈은 의식적인 활동 인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것으로서 무의식적활동이라는것이다. 프로이트는 에서 아주 많은 꿈사실을 렬거하면서 무의 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두가지 사례를 들면서 무의식을 론술한것이 인상 이 깊다. 첫사례는 첫날밤 고쟁이 남자를 만난 색시가 그냥 자기 남편을 섬 기면서 지내다가 남편이 하녀와 련애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광기를 부리 는 심리와 행동을 말하였고. 둘째 사례는 딸이 집요하게 아버지를 애모하는 심리를 말하면서 그 딸이 쿠션(방석)이 침대모서리에 닿아서는 안된다는 규 칙을 행하는것을 이야기한다. 이 두가지 례로써 노이로제(신경증)에 대한 무 의식적인 강박관념, 고착관념, 기억상실, 무지 등을 무의식증상으로 짚으면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무의식을 분석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에 대한 무의식을 많이 이야기하면서 그런무의식은 어린아이때부터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고추가 살아나는것도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되였다. 꿈은 무의식이나 잠 재의식의 표현으로서 어떤 소망충족을 말하는것이란다.  (프로이트 ) 이라면 서 례를 든것이 많은데 꿈에서는 남성성기가 무수한 상징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례하면지팽이, 양산, 막대기, 나무, 나이프, 단도, 창, 칼,  대포,  피스톨, 권총, 수도꼭지, 분수, 연필, 펜대, 비행기… 녀성성기의 상징으로서 는 구멍, 웅덩이, 동굴, 병, 깡통, 종이상자, 통, 트렁크, 궤짝, 호주머니, 난로 배(船),장롱, 방, 테이블, 달팽이, 조개, 구두, 슬리퍼…사과, 복숭아 등 열매 는 유방의 상징으로, 숲이나 풀숲은 남녀음모의 상징으로, (동상 151) (동상 152)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략한다.왜 이런것을 말하는 가? 무의식은 상징을 생산하는 빈장소이기때문이다. 상징은 시의 핵심이다. 시는 시인이 새롭게 창조하는 상징세계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에 태여나서 1939년9월 23일 에 사망한 사람으로서 83살의 일기를 썼다. 그가 꿈에서 무의식을  발견한 이후 많은 석학들이 꿈이나 무의식에 대하여 여러가지 방면과 방식으로 론 하였다. 무의식은 여러분야에 리용되였는데 예술과 문학에도 리용되였던것이 다. 가스통바슐라르는  ( 72쪽)라고 하면서(동상 76) 라고 쓰고있다. 무의식의 변화와 번역에 대하여 말한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서 무의식은 움직이는 이미지이고, 무의식에 타나난 백조는 여성이지만 움직이기만 하면 남성으로 전화한다는것을 말하고 있다겠다.특히 무의식에 있어서 활동은 어떤 현실적행위요점인것으로 필자는생각하고있다. 다시 말해서 변형되여 생성된것이 시적현실이라는것이다. 무의식을 통하여 남성은 녀성으로 될수 있으며 녀성도 마찬가지로 남성이 될수 있다는것은 변증법이다. 모순되는 두개의 측면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대립면으로 전이한다는 모택동의 철학은 맞는것이다.  불이 물로 되고 물이 불로 될수 있으며,  바위가 액체로 되고 액체가  다시 바위로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도 알수 있는것들이 아닌가.   2   프랑스아 도스는 란 글에서 무의식에 대한 레비스트로스 의 개념을 명철하게 밝히고있다. (183쪽)  프랑수아 도스의 론술에는 우리가 심각하게 음미해 보아야 할 명제들이 많다. 이고, 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구별 을 알게 된다. 잠재의식은 기억의 저장소이고, 무의식은 상징적기능이 수행 되는 빈 장소(아래 빈장소로 략함)이다. 저장소와 빈 장소간에는 확실한 구별과 차이가 있다. 저장소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기억이 쌓여있는  창고같은 곳이고 빈 장소는 새로운 사물이 생성되는 공장같은 곳이다.  무의식은 과 무관한것이고 과도 무관한것이라고 한다. 그럼 무엇과 관계되는것인가? 무의식은 장소와 관계된다. 그 장소는 바로 상징적기능이 수행되는 빈 장소이다. 이 빈 장소는 정감과 관계 없고,력사성과도 관계 없단다. 그러면 무의식으로 쓰는 시는 정으로 쓰는 시도 아 니고 력사로 쓰는 시도 아니란 말이 아닌가. 무의식시는 정이 아니라 새로운 상징이고 력사가 아니라 새로운 상징이라는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의식은 상징을 생산할뿐이라는 말이 된다. 그어떤 설명도, 해석도, 정감도, 력사도 필요 없는 상징적생성만이 무의식의 수요란것이다.   빈 장소라는것은 구조주의 패러다임을 확인하는 세가지 우위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가변요인에 대한 불변요인의 우위란다. 이말은 상징은 변할수  있지만 상징적기능이 수행되는 빈장소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무의식은 구조적법칙들을 부과하는 역활만을 하는 특수한 기능을 지닌 기관 이라고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 기관을 통하여 상징은 하나만 생산되는것이  아니라 여러개가 련속적으로 생산되고, 이런 기관이기에 온갖 몽타쥬가 허 용되는것이다. 둘째는  내용에 대한 형식의 우위란다. 형식이 내용보다 우위란다. 아무 리 좋은 내용이라도 형식의 옷을 입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겠다. 형식이 란 무엇인가? 시적인것을 형식이라고  한다. 그럼 시적인것이란 무엇인가? 시적인것이란 정도 아니고 력사도 아니라고 했다. 내용에 대한  형식의 우위 니까 내용도 아니다. 시적인것이란 바로 변형으로 이룩된 상징인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빈장소를 통과한 상징이 되였는가 안되였는가이다. 상징이 되였으면 시형식을 갖춘것이고 , 상징이 안되였으면 시형식을 갖추지 못한것이라고 하겠다. 시에서 상징은 중요하다. 상징이 안되면 시가 아니고 산문이고,상징이 되면 시에 속한다. 상징도 일반적인것과  고급적인것으로  구분된다 고  하겠다. 일반적인것은 일반적인 시가 되고 고급적인것은 좋은 시가 된다 고 하겠다. 무엇이 일반적인것이고 무엇이 고급적인것인가? 일반적인것은  창의성이 약한것이고 고급적인것은 창의성이 강한것이라고 하겠다. 창의성이 강한것은 애매성과 몽롱성을 동반 한것으로서 흔상하고 또 흔상하여야 그 진의를 알게 되는데 그 진의도 흔상자의 나름에 따라 다르게 된다. 세번째는 기의에 대한 기표의 우위란다. 주지하다시피 기표는 문자이고 기의는  의미이다.  문자가 있어야  기의가 어떤것인가를 알수 있다는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문자가 없는 기의란 있을수 없는것이다.  구조주의패러다임을 고스란히 확인할수 있는 세가지가  바로 무의식내용이며 빈장소이다. 이 말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말할 때 무의식은 상징의 표현이라고 말한것과 일맥상통한것이라고 아니 볼수가 없다.   3   프로이트는 1900년 그가 44살이였을 때 을 출판하였는 데 학계로부터 완전히 묵살당하였단다. 란 제목으로 대학에 서 강의할 때에는 청자가 3명밖에 안되였단다. 1917년에 >을 출간하였다. 이러한 저서에서 꿈과 성,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많이 론술하였다. 지그문트의 의 팬이였던 스위스의 한 학교의 교 장은 철직당하였다고 한다. 그런 말성거리 리론을 지난세기 60년대에 새롭게 조명한 사람은 자크  라캉이였다. 구조주의자인 그는 이란 저서에서 무의식을 새로 운 혜안으로 받아들이였다. 그는 무의식을 존재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자크 라캉 73 쪽) 자크 라캉은 무의식이란것을 문자활동으로 보면서 정신을 개입시키지 않 고도 진리효과들을 모두 만들수 있다고 한다. 문자들은 정신이 내건 주장들 을 짓부셔버렸다고 한다. 이런것을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고 한다는것이다.   여기서 정신과 문자를 따로 보는 견해가 세워지였고, 무의식에서의 문자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문자로 표기하게 되여있고, 문자 는 인간활동의 가장 중요한 표징이라 하겠다. 만약 문자가 창제되지 않았더 라면 우리는 지금도 류인원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무의식은 이런 문자로 써 표현하는것이다. 문자가 없으면 시가 없고 시가 없으면 문자의 변형도 없 는것이다. 그러므로 문자는 시를 만드는 유일한 공구인것이다. 우리는 문자 가 아닌 시를 망상할수도 없는것이다. 자크 라캉은 시키지말라고 하였고,  프랑수아 도스는 이라고 하였다. 두석학의 내용을 귀 납하면 시를 쓸 때 인간의 희로애락을 직접 시에 로출시켜서는 안된다는 말 이 되겠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시인의 희로애락을 모름지기 사물에 의탁하 여 사물로 말하라는것이다. 사물로 말하지 않으면 시로 되기 어려울것이다. 왜냐하면 시는 상징을 만들어내는 문체이기때문에. 소위 정신불개입은 시를 쓸 때에 형이상학을 관계하지 말라는 말과 통하고 어떤 의미보다도 이미지를 를 중시하라는 말과 다름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하는 남근문제에 대하여 자크 라캉은 아주 똑똑하 게 지적하였다. 남근은 남자의 생식기를 말하는데 이 생식기는 상징적언어로 서 남근은 남자에게만 있는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있다는것이다. 이 관점은 백조를 말하던 가스통 바슐라르의 관점과 일치를 보여주는것이다.우에서우리 는 서양인들이 무의식에 대한 해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서양에 만 이런 학설이 있은것은 아니였다.   4   동양에도 이런 학설, 무의식학설이 있다. 서양의 무의식학설은 100여년 의 력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수 있지만 무의식에 대한 중국의 론술은 1500 여년전에 류협의 에 있었다. 중국은 서양보다 아득히 앞서서  이런 개념이 존재하였다 에는 이런 말이 있다. ( 377)이 말을 꺼꾸로 풀어보자. 이문장에서 은 결과라고 할수 있다. 이 결과에 도달하려면고 한다 는것이다. 이것은 는 방법이라고 리해된다. 다시 말하면 문학적사색을 잉태하는데는 세가지 층차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첫층차는 허심함과 조용함이고, 두번째 층차는 선입관을 깨끗이 없애는것이고, 세번째 층차는 정신이 순수하고 깨끗해야 한다는것이다. 요체란 중요한 점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허심함(虚)과 고요함(静)이란 무위무욕 즉 모든 욕망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로 풀이된다.  는 말은 문학적사색을 진행하는 첫순서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선입관을 깨끗이 쓸어버리면 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있던 원래 관념이 사라지게 된다. 원래의 관념을모두 버리면 정신이 순수하고 깨끗해지게 된다. 그것은 모든 리해관계를 깨끗이 청리하고 무엇을 위하지도 말고 얻으려고도 하지 않는 정신, 순수무궁한 정신, 필자는 이런 심태가 무의식의 심태라고 생각한다.  고뿌라는 사물에 대한 선입관을 다 지워버리면 고뿌는 고뿌가 아니라 다른 사물로 둔갑할수 있는것이다. 시인의 상상의 기지에 따라 고뿌는 호수로도 될수 있고, 달로도 될수있고, 탄알로도 될수 있고, 우박으로도 될수 있고, 꽃 으로도 될수 있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사색을 따르면 자궁으로도 될수 있 다.…시인의 상상에 따라 다른 사물로 될수 있는것이다. 사물이 완전히 이질 적인것으로 바뀔수 있을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물이 되여 움직일수도 있는것 이다. 고뿌는 파란 새가 되여 날아간다든가 동그란 달로 뜬다든가 락하산이 내려온다든가… 작자의 상상과 기지에 따라 기기묘묘하게 변형되여 다른 사 물로 움직이는것이 시의 중요한 비결로서 매우 기발한 착상이라고 하겠고, 그런것들을 무의식의 생성이라고 하겠다. 이런것이 바로 류협이 말하는 (동상) 과 . 이 말의 함의는 시를 쓰는 원칙 을 제정해놓은것으로서 필자는 이 말이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할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지도적가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지금도 이 기법을 떠나서는 좋은 시가 나올수 없다고 지적하고싶다. 이 기법은 과거에 도 중요한 기법이고, 오늘에도 중요한 기법이며, 미래에도 중요한 기법이며 우리의 전통이라고 생각된다. 이 전통을 떠나서는 좋은 시창작을 론할수 없 다고 말하고싶다.  발단이란 시작이란 말이다. 시를 쓸 때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가를 우리 모든 시인들이 심사숙고해야 할 테마라고 생각된다. 하라는 명제는  오늘의 현실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할 필요가 있다. 심상이란 마음속의 형상이라는 말이다. 시는 현실에 의존할것이 아니라 심상에 의존하여야 한다는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이라고 하는것도을 한다는 말이라고 할수 있다. 한다는것은 현실보다 초월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되며, 시의 형상은 허상이며 부재라는것을 말한것으로 된다. 한다는것은 무의식에 의존하여 창작한다는 말이아닐가 을 한다는것은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가. 당신은 이렇게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한 시는 (동상) 시가 된단다. 도란 사물의 법칙이라고 할수 있다. 사물이 생성되고 성장하고 사멸하는것을 도라고 한다. 우리가 이런 의식으로 시를 쓰고 있는가를 점검 해 보아야 하지 않을가.   류협이 말하는 요체의 虚(허)와 静(정)은 노자의 에서 온 말 이라고 생각된다. 虚(허)에 대하여 노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 제 40장, 92쪽) 여기서 말하는 유는 사물이고 무는 아무것도 없는 빈 세상을 말하는것 으로서 의식으로 말할 때는 무위무욕하여   마음  즉 무의식이라는것이겠다.  静(정)에 대하여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 제16장.125쪽.)   정은 회귀로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이고 무위무욕은 순수한 정신 즉 무의식이라고 말할수 있다.  모든 사물은 생으로 시작해서 사멸에 이른다는 것이 도(道)이다.  (.제49장.92쪽)고 한다. 도가 하 나를 낳는다는것은 무극이 태극을 낳는다는것이며, 태극 하나는 음과 양 둘 을 낳는다는것이고, 음과 양은 4상(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낳고, 사상은 8괘를 낳고 8괘는 64괘로 되여 세상만물을 낳는다는것과 서로 통하게 되는것이라고 생각된다. 류협이 말하는 요체의 虚와 静은 노자의 도를 문학에 도입한것이며, 주역의 태극설과 음양설을 문학에 도입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虚와 静으로 가는것은 선입관을 깨끗이 쓸어 내는것으로서 이는 도와 통하고 주역과 통하는 길이다. 인 무의식과 사물이 생성되고 회귀하는 기능을 가진  虚 와 静은 본질적으로 별로 다를바가 없는것인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깨침이 없었을가? 그것은 우리가 도가를 숭상한 것이 아니라 유가만을 숭상 했기때문이 아닐가! 또  새것만 중시하고   낡은것을 쓸어버리는 경향으로   주역이나 노자의 학설도 다 쓸어버리였던것이다. 하여 상고시대로부터 흘러오던 우리의 전통이 깨끗이 청리되였던것이리라. 그래서 우리같은  세대들은 자신의 문화의 뿌리며 전통마저도 가맣게 잊고 모르게 되였던것이다.  지금 문학이 어디까지 왔는가?  필자는 문학이 신의 제일시대로부터 시 작하여 인간 제일시대를 거쳐 오늘의 자연 제일시대로 온것 같다. 문학시대 라는것은 거시적인 면을 고려하는것이 기본이라고 생각된다. 예술은 경계가 없다는 말도 있듯이 문학의 시대를 어느 한 지구 어느 한 지역에 얽매워 론 하는것은 문학에서는 잘 통하지 않을것이라고 믿는다. 하물며 지금은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자연 제일시대는 21세기로서 도가를 중시해야  할 시대라고 본다. 노자는 공자의 스승이였다. 그래서 >을 쓴 쉬캉성은 책제목을 달 때 라는 작은 글씨로 전제를  달고, 이라는 큰 글씨로 책제목의 본제를 달았는지도 모른다. 무의식과 하이퍼시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무의식이라는 빈장소는 상징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련속부절히 상징을 생성시킨다. 하이퍼시는 여 러가지 상징의 집성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하이퍼시는 무의식의 표현이 되고 무의식은 하이퍼시의 모체가 되는것이다. 이런 하이퍼시가 시창작에 대 하여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가를 살펴보는것은 오늘의 시창작에 매우 큰 지 도적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4    하이퍼시의 존재리유 댓글:  조회:535  추천:0  2017-08-16
3.하이퍼시의 존재리유    1) 하이퍼시는 오늘의 경제시대에 부응하는 시적구조가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생산이 다국적인것이 많다. 자동차공장하면 여러나라에서 부속을 끌여들여 차를 조립하는가 하면 한나라에서 생산하는것도 여러지구에서 부속품들을 모아서 조립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 나라에 어떤 큰 일이 벌어져도 영향이 그 나라에만 미치는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반응을 일으키거나 세계적인 참여를 초래하게 되는경우가 많다. 시인이 시를 쓰자면 여러가지 인소들이 작동 하게 되는것이고 여러가지 사물과 사건들이 현실을 초월하여 상상도 되고 환상도 되는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사고의 바탕이 되고있다고 하겠다.   2) 인간의 사유는 언제나 다선적이다. 한사람이 동시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는것이다. 누구와 대화하면서 그가 아닌 어떤 사람의 어떤 모습이나 일을 생각할수도 있고, 미국의 뉴욕이나 오스트라리아의 사자, 중국의 고궁…. 이러한것들을 거이 동시에 생각할수도 있고 련속적으로 생각할수도 있다. 이런 생각에 떠오른 사물들은 실제상 아무런 련계도 없고 성질이 완전히 이질적인것들이라고 아니할수 없다. 인간의 사유는 언제나 다각적이고 다시점이라고 할수 있다. 그것이 오늘의 하이퍼시에 사유의 기교를 주지 않을가고 생각된다.   3) 자연도 다종적으로 구성되였다고 할수 있다. 한마을이 있다고 하자. 거기에 사람이 있고  나무가 있고 흙이나 돌이 있고 또 도야지가 있고 닭이 있고 개가 있고 소가 있고,,,,,, 여러가지가 있다. 그것들을 종합하여 버들골이요 남평이요 도문이요 하고 말하게 된다. 손바닥만큼 자그마한 땅의 구조도 그렇게 된다. 거기엔 흙이 있고 풀이나 나무가 있고 또 귀뚜라미나 개미, 지렁이이나 해빛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사물을 통칭해서 어느한 자그마한 곳이 어떤 개념으로 떠오르게 되는것이다. 하나의 사물도 순수한 단종으로 구성된것이 없다. 죄다  여러가지 부동한 사물의 집성으로 구성되여있다. 물은 산소와 수소로, 돌은 여러가지 원소로, 나무나 풒도 마찬가지다. 하이퍼시란 이런 자연의 특성과 무관한것이라고 말할수  없게 된다.   4) 인간의 문화는 또한 다층차적이다. 연길하면 고층건물이 즐비한 거리가 있고 거리에선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다니고 ,여러가지 백화나 가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게된다. 백화에 들어가면 적어도 수천수만종에 달하는 여러가지 상품들이 있는데 이러한 상품들은 다 성질도 다르고 용처도 다르다는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 한 의미에서 하이퍼시는 현실문화에 부응하는것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가.   5)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눈,  코, 입, 귀, 눈섭 등이 보인다. 이 눈귀코입눈섭은 다 성질이 다른 사물들의 모임이라고 할수 있으며 이것들이 모여 얼굴이라는 명명을 받게 된다. 사람의 배속에는 이물질인 똥까지 지니고 다녀도 사람은 사람인것이다. 어느 한 세상에나 순수한 한가지 요소로 구성된 사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수도 없다.  한수의 시에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눈섭이 있게 되는것이 오늘의 하이퍼시라고 생각하게 되는것이 아닐가. 얼굴의 오관은 이질적사물들이 얼굴에 모임이고, 하이퍼시의 오관은 이질적인 언어들의 종의장위에 모임일것이다. 하이퍼시는  한 시인의 령혼속에서 생성되는 상상이나 환상일것이다.      6) 오늘의 시대는 디지털시대라고 하는데 이 디지털시대는 컴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컴은 인간의 사유를 초월한 마술을 부리고있다하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것이다. 마우스로 툭 찍으면 술이 나오기도 하고, 노루가 나오기도 하고, 나비가 나오기도 하고, 삼국연회소설이 나오기도 하고,북경이 나오기도 하고, 미국이 나오기도 하고, 단마르크가 나오기도 한다. 그외에도 현실이나 력사적인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모든   미세한 상황까지 다 드러낸다.  툭 찍으면 변하는 컴은 우리에게 다시각, 다시점 사유를 부여하고도 남겠다. 이것도 하이퍼시의 한개 기초가 되지 않을가.   21세기는 21세기의 문학이 있어야 하고, 시가 있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무의식문학이 21세기 문학이고 , 하이퍼시가 21세기 시가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3    하이퍼시와 현대시의 구별 댓글:  조회:571  추천:0  2017-06-19
2.하이퍼시와 현대시의 구별    하이퍼시를 다양체라면 현대시는 단일체라고 말할수 있겠다. 시로서살펴보자 문둥이 서정주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시 [문둥이]에서는 전반시에 하나의 사물의 이미지에 대한 서술만 있는것이 특징적이라고 하겠다. 시는 문둥이가 어쩌는가만 쓰고있는것이다.아마 서정주시의 다른 시들도 거개가 이렇게 한가지 사물을 둘러싸고 씌여져있는 같다. 하지만 오늘의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의 시는 이와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문둥이가 아주 짧은 시니까 [하이퍼시]시집에서 짧은 시 한수를 보자 북소리 김은자 Scene# 8 고무줄놀이를 한다 엄마는 장사 나가고 저녁이 줄을 뛰여넘는다 나는 엄마를 기다린다 지구를 한바퀴쯤 돌면 아빠가 나올가   이 시는 [문둥이]보다 한줄이 더 많다. 하지만 시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단선이 아니라 다선이다. 소제목부터 야릇하다. 영어에다 우물정자같은 글이 아닌 부호에다 아라비아수자 8을 조합하여 쓴것이 이색적이 아니라 할수 없다.(필자는 한글시에 영어같은 외래어문자를 쓰는것을 좋아하지 않지만)시가 시작되자 북소리가 고무줄놀이를 한다는 변형부터 창의적이다. 청각을 시각화한 공감각의 응용이 이채롭다. 그아래에 엄마가 나오고 저녁이 나오고 지구가 나오고 아빠가 나온다. 시의 행마다 성질이 다른 사물들이 나 타난다. 이 성질이 다른 사물들 자체가 련계성보다도 불연속성이 강한 사물들이다. 차원이 다른 사물들의 이미지라렬로 시를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들의 횡적배렬로 된 시를 하이퍼시라고 한다. 한수의 시에서 성질이 다른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공생하는 시를   심상운시인과 김규화시인은 [하이퍼시발간사]에서 이렇게 긍정하고 있다.  재래의 현대시와 하이퍼시  다른점 6가지를 론하였는데 우리가 심사숙고할만한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할수 있다. 이 여섯가지 구별을 잘 인식하고 리해하는것은 하이퍼시에 대한 리해에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의 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가를 가리켜준다고 생각된다.   현대시와 하이퍼시의 구별표      현과 하 내용 구별종류   현대시   하이퍼시 주제 하나 여럿 구성 종적구성 횡적구성 형상명칭 이미지 리좀 중심문제 유중심 무중심 흐름 기승전결 중간채취 이음새 련결 분렬 체험자 자아 무아.타자 의경 유아경 무아경   현대시와 하이퍼시는 상기한 도표처럼 다른 점이 있지만 시적예술의 동일성 있다. 그것은 둘 다 변형이라는 매개물을 가진다. 둘 다가 무의식이라는 발원지를 가진다. 동일한 매개물과 발원지에서 태여난 시가 단일체일 때는 현대시가 되고, 다양체일 때는 하이퍼시가 된다. 하이퍼시는 현대시에서 탄생한 시다. 하이퍼시의 토양은 현대시이다. 하이퍼시는 현대시 토양위에 세워진 찬란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달걀과 병아리의 관계이다. 병아리는 달걀에서 나왔지만 달걀이 아니고 병아리인것이다.  
2    하이퍼시의 고리는 다선. 불연속. 댓글:  조회:616  추천:0  2017-06-01
하이퍼(hyper)시의 리해   1. 하이퍼시의 고리는 다선. 불연속.   하이퍼시란 어떤 시인가?  무의식으로 쓴 시이다. 고리는  다선. 불련속, 이것은 하이퍼시의  가장 독특한 핵심적 특성이다. 다선이란 개념을 어떻게 리해할것인가? 다선이란말그대로 여러개의 선이란 말이다. 한수의 시에서 한가지 이미지를 둘러싸고 쓰는 종적구성의 시인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차원이 다른 이미지로 구성된 횡적구성으로 된 시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이 서로 련결되는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이라는것이다. 다선이란 말은 한국의 심상운시인이 하이퍼시를 론할 때 한말이다. 필자가 알건대는 서양에서다선시를 제일 처음으로 왕성하게 쓴 시인은 프랑스의 S.J 페르스이다. 전문적으로 다선으로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은 생종.페르스(1960년노벨문학상수상)다.  독일의 석학 후고. 프리드리히는 당년의  다선시를  파편문체시라고 했고 , 데드넬슨은 하이퍼텍스트라고 하였고, 한국의 심상운은 하이퍼시라고 하였고, 프랑스의 질 들뢰즈와 필릭스 가타리는 다양체라고 하였다,   이 모든 명제들이 죄다 무의식에서 발상되는것들이다.   2011년 수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는데 그의 시도  하이퍼시였다. 그러고 보니 21세기 시의 시대는 하이퍼시 시대가 도래한것이 아닐가 하고 필자는 생각해본다.어떤 시가 하이퍼시인가를 알기위하여 그들의 시부터 보자.  비 생종 페르스 비의 용수(榕树)는 거리에 뿌리 내리고 때이른 호수가의 탁한 물속의 벌레들, 산호의 혼인을 향해 솟아오르고 그물로 싸우는 투우사와 같이 벌거벗은 ‘사고’ 공중의 뜰에서 헝클어진 녀인의 머리카락을 빗긴다. 파도의 웨침에 주제의 절박함을 노래하라 시여, 파도의 출렁거림에 도망하는 주제를 노래하라 시여 예언하는 처녀들의 허리에 지나친 애욕 밤에 황갈색의 늪에서 부화하는 금빛의 알 오 기만이여! 이같은 꿈의 기슭에도 나의 정돈된 잠자리 그곳에서 음란한 장미는 시로 선명히 자라 바퀴되여 돌기 시작한다. 나의 비웃음인 무서운 주여, 여기에 있는것은 짐승의 고기맛에 김 뿜는 땅과 처녀수밑의 과부의 점토, 잠 못 이룬 내 사내의 발에 다져진 땅이니 포도주처럼 가까이 가 냄새를 맡을 때 그 땅은 진정 기억의 상실을 시인할것인가? 주여, 내 비웃음의 무서운 주여! 여기에 있는것은 층을 이룬 바다의 겹쳐진 부분의 높은 모래언덕의 응답과 같은, 지상에서 표현되는 꿈, 여기 이곳에 있는 땅은 모두 씁쓸한 땅 새로 태여남의 시간, 그리고 알수 없는 모음의 방문을 받는 나의 령혼. 생종페르스의 [비]를 읽노라면 무엇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 시내용마다 거이 모두가 이질적인 이미지로 라렬되였다고 할수 있겠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는 련계되는것이 아니라 서로 단절되여 있고, 그런 단절들이 모여서 한수의 시를 구성하고 있는것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어떠한 통일적인 해석을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의식에서의 생성의  흐름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있는것이다. 프랑스의 외교관이였지만 시에서 그가 추구한것은 어떤 윤리도, 사상도, 철학도 아니다. 그저 그의 령혼에서 생성되는 이미지들을 집합 하여 한수의 시로 만들었을뿐이다. 한국 태학당에서 출판한 생종페르스의 시집은 [이국의 녀인에게 바치는 시]라는 제목으로 되였는데 모든 시가 다 이런 하이퍼시 즉 이미지가 련결되지 않고 분리된 무의식시다.  주문처럼 흘러나오는 생소한 이미지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그것은 상상력에 대한 자극으로써 반짝이는 이미지들이 장엄한 소리를 내면서 독자들을 아연해지게 한다.이미지들은 조밀하게 배렬되여 어느 한 이미지도 부정할수도 없다. 령혼속에서 끓고 있는 이미지들은 낯설고도 환각적이여서 이색적이고 괴상한 사물들의 움직임이며 언어들의춤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아래에 20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시를 한수 보기로 하자 기상도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시월 바다가 신기루등지느러미를 달고 차갑게 반짝인다. 아무것도 요트경기의 백색 현기증을 기억하지 않는다 어슴프레한 호박빛이 마을위를 비추고 온갖 음향들이 천천히 날아다닌다 개가 짖는 소리는 정원위의 대기중에 그려진 상형문자다 정원에는 노란 과일이 나무를 바보 만들며 제 멋대로 떨어진다.   [기상도] 전문이다. 기상도란 날씨를 알려주는 도해라고 해석할수 있다. 그런데 날씨를 알려준다는것이 오늘은 몇도며 바람이 몇급이며 구름이 어쩌며 하는 말은 한마디도없다. 비가 오는가 눈이 오는가 하는 말따위도 물론 없다. 기상도를 보면서 10월의 바다, 요트경기, 호박빛, 개짓는 소리, 정원의 과일나무들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또 너무 낯선 사물들로 변형되고 있다겠다. 10월의 바다는 신기루등지느러미로, 요트경기는 백색현기증으로, 호박빛은 음향으로 , 개짓는 소리는 상형문자로, 과일은 나무를 바보로 만드는것으로 변형되고 있다. 각련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데 이미지들마다 어떤 련계성도 보이지 않는다. 각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런 각자의 독존이 집합되여 한수의 시를 구성하고 있는것이 하이퍼시다. 한국의 조향의 시 [바다의 층계]도 이러하다. 바다의 층계 조향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手话机 녀인의 허벅지 낚지 까만 눈동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웅에 손을 흔드는 하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끝에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의 의 전문이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는 단절되여 있고 아무련 련계성도 없다.. 우리는 아주 괴상하고 기이한 그림앞에 서있게 된다. 여러가지 기이하고 괴상한 사물들이 모여 한수의 시를 구성하고 있다겠다. 여기서 그 어떤 사상을 추구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시인의 의식이 뛰여다니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을뿐이다. 의식은 그 어떤 장애도 받지 않고 한순간에 자유자재로 번개처럼 하늘을 가를수도 있고, 산처럼 솟을수도 있고, 물처럼 흐를수도 있고, 천년만년을 거스를수도 있고, 고금중외를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빨리 날아다닐수도 있는것이다. 조향의 가 바로 이런 시라고 볼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프랑스의 생종페르스의 나, 스웨덴의 토마스트란스 트뢰메르의 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시라고 볼수 있겠다.   이제까지 프랑스, 스웨덴, 한국의 시를 례로 들었는데 중국에는 이런 시가 없는가? 있다. 원나라의 마치원의 시 가 바로 이런 시다.   추사(秋思) 마치원   메마른 넝쿨 앙상한 고목 황혼의 까마귀   쪼끄만 돌다리 흐르는 시내물 한적한 농가집   청태 낀 길 스산한 서풍 빼빼 여윈 말   석양은 서산으로 기우는데 천애지각의 나그네 애간장만 끊어지네     의 련마다에서 부동한 사물의 라렬로  되여있다. 1련에서는 메마른 넝쿨,앙상한 고목, 황혼의 까마귀 등 사물이 대등한 관계로 라렬되여있고 , 2련에서는 돌다리, 시내물, 농가집이 대등한 관계로 라렬되여있고, 3련에서는 길, 서풍, 말이 대등한 관계로 라렬되여있고,마지막련에서는 석양과 나그네가 라렬되여있다. 모두 열한가지 사물들이 나타나는데 어느한 사물도 다른 한 사물과 직접련계를 가지고있지 않고 어느한 사물도 다른 사물때문에 존재하고 있는것이 아니다. 각 사물들은 모두 독립성을 갖고있다. 열한가지 사물은 등장하여 농촌의 풍속화를 그리고있다.각각의 사물은 풍속화의 한구도로 되고있을뿐이다.마치 참대와 같다. 참대는 속이 빈 껍질로 된것이다. 껍질의 어느 부위나 다 중심이라고 할수 없다. 그러므로 중심이 없는 참대라고 할수 있다.하지만 참대 는 언제나 꿋꿋하게 잘 자란다. 의 각련은 하나의 참대마디라 할수 있고  각련의 사물들은 바로 참대를 이룬 참대의 껍질이라고 할수 있다.어느것도 중심이 아니고  어느것이나 다 변두리다. 이러한 시를 우리는 하이퍼시라고 한다.  한수의 시에서 련계도 되지 않는 여러가지 사물들이 활동한다고 하겠다. 과거에 우리는 이러한것을 구성이 흩어졌소 째이지 못했소 이런 시가 어떻게 시로 되오 하면서 나무리였다. 그런데그런 비난을 받아야 할 시가 오늘은 탐구되고 있다. 김춘수시인이 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주니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였다는것처럼 데드넬슨이 하이퍼텍스트라고 불러주자 도, 도, 도, 도 우리에게로 와서 하이퍼시로 되였다.마치원의 는 에 실려있는 시다. 원나라때에 이런 시가 있었다는것은 지금으로부터 700여년전 일이다.  그러니까 중국문학에서 700년전에 하이퍼시가 있었다는것으로 풀이 된다. 오늘의 하이퍼시는 중국보다 약 650년후에 탄생되였다고 할수 있다. 이것만이아니다. 중국의 고대로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시를 섭렵해보면 하이퍼시가 한줄기 산맥으로 이어져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고대의 맹호연으로부터 오늘의 뻬이도나 망커에 이르기까지 하이퍼시작법을 쓰지 않은 시인들이 없으며 그것도 명시에 속하는시를 썼던것이다. 물론 파편문체요 하이퍼요 하는 이름을 달지 않았을뿐이다.필자는 부록에다 중국하이퍼시의 명시들을 편집해 놓았다.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한번 잘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이퍼시작법이 우리의 전통이라는것이 환히 알게 될것이다.  필자가 올린것이 모두가 아니다. 그외에도 많고도 많을것이다.하이퍼시의 전통은 서구에서 찾을것이 아니라 중국고전에서부터 찾아야 할것이라는것을 시들이 말해주고있다겠다. 한마디로 말해 하이퍼시는 중국시문학의 한줄기대간 그것도 중요한 대간을 이루고있다고 하겠다.
1    [하이퍼시창작론] 프롤로그 댓글:  조회:615  추천:0  2017-06-01
하이퍼시창작론 프롤로그 필자의 저서 [이미지시창작론]에는 이런 말이 기록되여 있다.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 방법은 이외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 일곱가지 방법을 치중하여 설명하였을뿐이다. 이 일곱가지 방법은 어떤 근거를 잡으면서 한 방법이 다. 그러나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데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하는것들이 있다. 이미지란 현실을 초월하여 쓰는것이 중점의 하나인데 무슨 근거가 필요한가? 이 말은 맞는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것은 지적인 지위를 삭감해버리는것으로서 우리들이 연구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당대 영미 초현실주의자들이 이에 속한다고 생각 된다. 그들은 환상적이고 몽상적인 이미지를 제작해내고 파편문체를 많이 쓰는데 필자는 그런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너무 천박하여 여기에서 피력하지 못하고 과제로 남기면서 독자들에게 량해를 구하는 바이다.] 21세기 초에 필자가 [이미지시창작론]을 쓸 때 한 말이다. 그로부터 어느덧 또 10년이 지난 2015년 6월이 돌아왔다.   오늘부터 [독자들에게 량해를 구하던것을] 나름대로 풀어보려고 펜을 들었다. 그답을 한국의 하이퍼시클럽시인들 시와 그들의 시에 대한 글에서 찾게 되였고, 그 원천적인 근거를 조지P 란도의 [하이퍼텍스트3.0]에서 찾아볼수 있게 되였고, 그 리론적원칙들을 구조주의자들의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였고,그 전통을 중국시문학력사와 현실에서 찾아볼수 있었다. 하이퍼시는 서양시문학의 최신 조류이다. 하이퍼시를 하는것은 국제적인 시와 연변의 시를 접목하는 대사일뿐만 아니라 중국시문학전통(중국시문학전통은 우리시문학전통)을 계승하고 발절시키는 대사이다.  필자는 21세기 시문학은 무의식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것이며 시문학에서는 하이퍼시가 새로운 붐을 일으키며 시문학발전을 이끌고 나갈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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