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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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어에 대하여
2021년 03월 22일 21시 07분  조회:241  추천:0  작성자: 최룡관
4언어에 대하여
 
 
우리가 언어속에서 구성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할지라도 언어속에 구성된 대상은 단순히 지정된 대상이 아닌 개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물이란 기표 자체 도 명사로 사용될 때는 이중적이고도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58)
 
대체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지칭된 대상들 사이의 유사성이 아니라 언어표현의 동일성이다. 이처럼 사물속에는 동일성이 없지만 적어도 단어 속에는 통일성과 동일성이 존재한다….프로이드에게는 사물이 폭발하여 동일성을 잃어버려도 단어는 여전히 사물의 동일성을 복원해 주거나 새로운 동일성을 만들어준다.
(천개의 고원62)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언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며, 언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42)
 
 
모든 언어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있는 실재이다. (촘쓰키)(천개의 고원180)
 
사실 고유명사는 촉매작용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채울 수 있고, 확장할 수 있으며, 그것의 의소적 골격 이 지닌 사이들을 무한한 추가물들로 메울 수 있 다. 고유명사의 이와같은 의소적 확장은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다. 각각의 이름은 우선 불연속적이고 고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출현하는 여러장면들을 포함하지만, 이것들은 련합하여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되기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 하는 것은 일정수의 충만한 단위들을 환유적 방식을 통해 련결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0도’148)
 
고유명사는 흉내이고, 아니면 플라톤이 말했듯이 환 영이다. (이것은 의구심이 들지만 맞다)
(롤랑 바르트 ‘구조주의 력사’150)
 
언어는 다질적인 가변적 실재… 한 랑그의 통일성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다. 모국어란 없다. 단지 권력을 장악 한 지배적인 언어가 있을 뿐이다.(동상195)
 
각자는 소수어, 방언, 또는 나만의 말을 발견해야만 하며, 거기에서 출발해야 자기자신의 다수어를 소수 어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소수파라 불리는 작가들의 힘이며 이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유일하게 위대한 작가들이다.(동상203)
 
작품의 언어의 다양성과 변화하는 빛의 생명을 지니기 위해서는 감상적 요인이나 심정적 요인이 형식적 요인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물질의 이미지가 형식, 즉 소멸하
기 쉬운 형식, 공허한 이미지, 변화하는 표면에서 멀어 짐에 따라, 사람들은 본질과 내면의 깊은 곳에서 꿈을 꾼다. 그것은 무게를 가지며 핵심을 갖게 되는 것이 다.(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9
 
에드거포의 말
‘만일 가능한 론리와 과학을 비주체화해야  한다면,  반대로 어휘와 통사론을 비객체화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불가결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대상의 이 러한 비 객체화가 없다면, 또 대상 밑에 우리가 물 질을 볼 수 있게 하는 형식의 변형이 없다면, 잡다한 사물들로 움직이지 않고 생기없는 고체나 우리들 자신들과 무관한 것으로, 세계는 흩어져버릴 것이다.
(동상 29)
 
소쉬르는 <언어기호는 사물을 명칭에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 관계에 의해서 개념을 청각 영상에 결합시킨다>…< 언어는 그자체의 질서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실체가 아니라 형식이 다.> 라고 말한다. (푸랑수아도스 ‘구조주의력사’ 90)
 
언어학은 구조주의적 기획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되며, 가시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효률적인 방법 론을 갖춘 선도학문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인문 사회 과학의 도가니, 멜팅팟의 역할을 하게 된다. (동상 92)
 
언어는 기의에 치중하는 의사 소통의 기능이나, 또는기호 그자체를 중시하는 시적기능을 가진다. (동상 100)
 
기표는 한정된 어떤 개념에 련결되여있지 않다 (동상177)
 
빠롤은 물우에 나타나 있는 빙산의 일각이다. 랑그는그것을 받쳐주는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다 같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그자체는 모순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더 큰 빙산덩어리인 것이다.(동상 25)
 
나무라는 청각이미지 즉 능기와 그것에 수반되는 개념 즉 소기, 그리고 지상에 실제로 자라고 있는 물리적인 나무 사이의 연결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적합성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나무라는 낱말에는 요컨대 자연 그대로인 혹은 나무다운 성질이 없다. 그러니 언어의 구조를 떠나서 현실에의 보증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나무라는 낱말이 땅 우에서 자라고  있는 잎이
 있는 물리적 물체를 의미하는 것은, 그 언어의 구조가 그 낱말에 그 물체를 이미지시키고 있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그 낱말은 그 효력을 인정받게 된다.(테렌스호옥스‘구조주의와 기호학’ 31)
 
시적 언어는 용이주도하리 만큼 자기식적이며 자기 각성적이다. 그것은 자체내에 포함되여 있는 메시지이기를 떠나서, 두드러지게 매체가 되려고 한다. 그것은 자신 에게로 끌어들이는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또 제자신의 언어적 특질을 체계적으로  강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시에 사용되는 낱말들은, 단순히 사상 전달의 신분을 지니고있을 뿐만 아니라, 그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율적인 구체적 실체인 것이다.(동상 86)
 
시는 낱말과 의미를 분리시키기보다는, 오히러ㅡ 놀라운 일이겠으나ㅡ  낱말이 취하게 되는 의미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런 점에서 시는 또 다시 보통의 언어 활동의 정도를 한층 더 높인다… 낱말의 시적 용법 에 의하여 애매성은 낱말의 운용에 있어서의 두드러진 특징이 된다. 이렇게 됨으로서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로 옮겨가는 낱말이 낱말의 구조사의 역활이 전환되여 진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87)
 
언어가 정보전달에 사용될 경우에는 인식적 혹은 지시적 기능에서 작동하고, 말하는 자나 글 쓴 자의 기분이나 태도를 나타내기에 사용될 때는 표현적 혹은 정감적 기능을 볼 수 있고…언어가 …   보통의 사용법에서 최대
로 일탈될 때, 그 언어는 시적으로 혹은 미적으로 사용되여진다   …체코의 언어학자 얀 무카로브스끼가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전경화 현실화라는 행위는 중요 하다. 시적 언어는 코뮤니게이션(소통)을 위해서 사 용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행위 즉 언어행위 그자체를 전면에 내놓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동상103)
 
구조주의의 최대의 특색은, 바로 형식을 내용이 되게 하는 일종의 변환작업에 있는 것 같다… 즉 문학작 품은 언어에 관한 것이며, 언어사용 그자체의 과정을 가장 본질적인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37)
 
문학은 언어의 내부에서 모든 언어에 생래적으로 깃들여있는 형이상학을 파괴하는 그것이다. 문학의 술화의 본 질은 언어를 넘어서가는 일이다.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문학의 존재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문 학이란, 언어가 자살을 기도할 때 사용하는 흉기와 같 은 것이다.(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47)
 
언어체는 한 시대의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규정들 및 습관들의 조직체이다... 언어체가 작가의 파롤에 어떤 형태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며 자양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진실들의 추상적인 원과 같은 것이 며, 이 원을 벗어 날 때 비로소 밀도 있는 고독한 언어가 쌓여지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15)
 
글쓰기는 언어를 넘어선 지점에서 언제나 뿌리 내리고 있으며, 하나의 선이 아니라 싹처럼 전개되고, 어떤 본질을 나타낸다. 어떤 비밀의 위협인 그것은 반소통 이며 위압갑을 준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 23)
 
언어는 당연히 그자체의 파괴를 향하고 있다. (동상38)
 
시적 언어와 산문적 언어는 그것들의 타자성을 나타내는 기호들 자체가 필요없을 만큼 충분히 분리되여있다… 고전주의 사유는 지속이 없으며 고전주의적 시는 자신의 기교적 배치에 필요한 사유 만을 지닌다.그 반대로 근대적 시학에서…  낱말들은 일종의 형식적 연속체를 생산 하며 이 연속체로부터 낱말들 없이는 불가능한 지적 혹은 감정적 밀도가 조금씩 비롯된다. 따라서 말은 보다 정신적인 배태의 빽빽한 시간이며, 이 배태속 에서 ‘사유’가 준비되고 낱말들의 우연을 통해서 조금씩 자리 잡힌다. 따라서 의미작용의 무르익은 열매를 떨어뜨리게 되는 이와같은 언어적 기회는 시적 시간 을 상정하는데, 이 시간은 더 이상 제작의 시간이 아니라 어떤 기호와 어떤 의도의 만남이라는 가능한 모험의 시간이다. 근대적 시는 언어의 모든 구조를 포착하는 차이를 통해서 고전주의적 예술과 대립되 며, 이 두 사이에는 동일한 사회학적 의도 이외에
는 다른 공통점을 남기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0도’ 43)
 
낱말은 무한한 자유로 빛을 발하며 불확실하고 가능한 수많은 관계를 향하여 빛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고정된 관계 가 무너짐으로써 낱말은 어떤 수직적인 기회만을 지닌다. 그것은 의미들, 반사들, 잔상들로 이루어진 어 떤 총체속에 잠기는 덩어리이고 기둥이다. 요컨대 그것은 서있는 기로이다. 여기서 시적인 낱말은 직 접적인 과거가 없는 행위이고, 그것에 결부된 모든 기원들의 반사들이 드리우는 두터운 그림자 만을 제안하는 주변 없는 행위이다… 각각의 시적인 낱 말들은 예기치 않은 대상이고, 언어의 모든 잠재적 가 능성들이  날아오르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것이 다.따라서 그것은 특별한 호기심, 일종의 신성한 식도락을 가지고 생산되고 소비된다. 대문자 낱말의 이와같은 절대적 갈망은 모든 근대적 시에 공통 적인데, 시적인 말을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말로 만든다. 그것은구멍들과 빛들이 가득하고, 지나치게 풍 부함을 주는 기호들과 부재들로 가득한 담화를 확립하지만. 이 담화는 의도의 예상도 연속성도 없으 며 따라서 언어의 사회적 기능에 매우 대립되기 때문에 어떤 불연속적인 말에 단순히 의존하기만 해도 모든 고유한 초자연들의 길이 열리게 된다. (동상46-47) 
 
언어의 어떤 질서에의 모든 예속에서 해방된 백색의 글쓰기를 창도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70)
 
의식적인 작가는 이제 조상 전래의 전능한 기호들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 78)
 
근대적 예술전체가 그렇듯이, 문학적 글쓰기는 역사의 소외와 역사의 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필연성 으로서 그것은 언어들의 찢김, 계급들의 찢김과 분리할 수 없는 찢김을 증언한다, 자유로서 그것은 이런 찢김의 의식이고 그것을 뛰여넘고자하는 노력 자체이다. 그것은 그것자체의 고독에 대해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 여전히 낱말들의 행복에 탐식하는 상상력이며, 어떤 꿈꾸어진 언어를 향해 달려간다.언어가 더 이상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아 담적인 세계의 완벽함을 일종의 리상적인 예견을 통해서 나타내는 신선함을 지닌 그런 언어를 향 해.  글쓰기들의 다양화는 새로운 문학을 확립한 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문학은 오로지 하나의 기획이 되기 위해서만 자신의 언어를 창안한다는 점 때문이 다. 이 기획은 문학이 언어의 유토피아가 되는것이 다.  (동상79) 
 
해체는 비중심의 힘을 사유하게 한다…
언어는 재미있는 놀이감처럼 보일 수 있다. 어떤 이질 적인것( 언어)이 지금  우리들의 일상 언어에서 작동한 다.  (니콜러 스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84)
 
재창조의 유희ㅡ ‘멋대로 해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이른바 ‘자유로운 유희’개념을 환기하게 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되는 언어 타자 즉 ’언어를 넘어서있으면서 언어를 소환해내는 것으로서의 타자라는 관념이다.(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91)
 
언어를 믿지 않고는, 그것을 믿게 만들지 않고는 거짓 말도 불가능하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 리다의 유 령 들’97)
 
연속적 변주는 만인의 소수파되기를 구성하며, <아무도 아닌자>의 다수적 <사실>과 대립된다. 의식의 보편적 형상으로서의 소수파되기는 자율이라고 불린다.확실 히 방언같은 소수어를 사용하거나 게토나 지역주의를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 다. 오히려 수많은 소수적 요소들을 이용하고 연결접 속시키고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자율적이고 돌발적인 특수한 생성을 발명하게 된다. 다수파양식(长调)과 소수파양식短调은 언어를 다루는 두 가지 양식인데, 전자는 언어에서 상수들을 뽑아내는 방식이고 후자는 언어를 련속적 변주로 만드는 방식이다.  
(천개의 고원205-206)
 
고유명사는… 보통명사의 모든 특징들을 부여받고 있지만 모든 투사적 법칙을 넘어서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고유명사를 근거지로 하는 하 이퍼 의미성 현상의 대가 ㅡ혹은 날쁜점ㅡ이다.이 현 상이 고유명사를 시적인 낱말과 매우 유사하게 만들 고 있음은 물론이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146)
고유명사가 하나의 주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하나의 명사(=이름)가 고유명사의 가치를 띠게 되는 것은 형식이나 종과 관계관련해서가 아니다.. 고유명사는 우선 사건, 생성 또는 <이것임>의 질서에 속하는 무엇인가를 지칭한다, 그리고 고유명사의 비밀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군인과 기상학자로, 이들은 전략작전이 나 태풍에 고유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고유명사는 시 간의 주체가 아니라 부정법의 인자이다. 고유명사는 경도와 위도를 명시한다. <진드기>,<늑대>, <말>등의 진정한 고유명을 갖는 것은 이들의 성격을 특징 짓는 유과속의 명명 때문이 아니라 이들을 조성하는 속도들과 이들을 채우는 변용태들 때문이다. 즉 그것은 꼬마한스 의 말ㅡ되기, 늑대인간의 늑대-되기, 스토아주의자의 진드기ㅡ되기(이것들 또한 고유명사이다) 등 스스로 그리고 여러 배치물들 안에 존재하는 사건 때문인 것 이다.(들뢰즈 가타리 ‘천개의 고원’500)
 
  
피상적인 포에지와 같은 포에지를 구별하는 이러한 밀도를 사람들은 ‘감성적 가치’ 에서 ‘감각적 가치’ 로 이행시킴으로써 맛보게 될  것이다. ‘감각적 가치’ 
와의 관계에서 바르게 분류할 수 있을 때에만 상상력의 교의가 밝혀지리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단지 감각적 가 치만이 ‘만물조응’ 을 부여하는 것이다. 감성적 가치 는 번역밖에는 주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감성적이란 의미는 감각과 지각의 수용가능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감각적이라 함은 지각하고 감각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수있다. 
( 바슐라르 ‘물과 꿈’46 주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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