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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 시어의 구별
최룡관
시를 배우면서 시가 언어의 연금술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 사이에 언어상에서 어떤 구별이 있는가를 한번 나름대로 탐색해 보았다.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시다. 현실주의시의 주요 목적은 계몽과 교육이라고 말할수 있지만 모더니즘시 목표는 심미추구이다. 이 두가지 시사이에 언어상에서 엄격한 구별이 존재한다. 아래에 필자가 찾아본 구별에 대하여 이야기하려한다.
첫째: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는 모두 상징을 쓴다. 하지만 현실주의시는 단순한 상징을 쓰기에 알아보기 쉽지만 모더니즘시는 상징성이 2중3중의 표현으로 나타나기에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에서 《바다》를 쓰면서 <<희랍외투>>니<<히드라>>라고 하였을 때 그가 <<나르시는 말한다>>에서 쓴 <<샘물>>이라는 상징어를 알아야 한다. 그 <<샘물>>이 무엇을 상징하였는가를 알아야 발레리가 쓴 바다의 함의도 알수 있고 희랍외투와 히드라도 알수있는 것이다. 현실주의시 상징은 전통적윤리에 기대여 창조하는것이 많지만 이미지시 상징은 작가가 주관적상상으로 창조해내는것이 많으므로 몽롱성을 띄게 된다.
둘째: 현주의시와 모더니즘시는 다 은유를 쓴다. 현실주의 시가 쓰는 은유는 확실성을 띠지만 모더니즘시가 쓰는 은유는 불확실성을 띤다. 현실주의시 은유는 전통성을 강조하지만 모더니즘시 은유는 시인자신의 창조성을 강조한다. <<비행기는 하늘에서 나는 새다>>라고 할때면 다 같은 의미를 가진 <<난다>>가 있으므로 리해에 큰 의상이 없지만 << 비행기는 하늘을 켜는 톱이다>>라고 표현했을 때 우리는 돌연감을 느끼게 되며 그것의 표현을 인차 리해하지 못하고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셋째: 현실주의시나 모더니즘시는 다 언어에 색깔을 올리는데 현실주의는 전통적인 습관에 의거하여 색깔을 올리고 모더니즘시는 전통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늘에 뜨는 태양을 현실주의시는 <<붉은 태양 >>이나 <<은빛태양>>이라고 하지만 상징주의 시는 <<까만 태양>> << 파란태양>><<노란 태양>>이라고 한다. 특히 모더니즘시는 추상적인 언어에 색깔을 올리므로써 언어를 완전히 새롭게 창출한다. <<아름다운 사랑>>을 <<새파란 사랑>> 혹은 <<풀빛사랑>> 그외에도 <<연분홍 소리>>, <<까아만 그리움>>...등등, 추상적인언어를 가시적인 언어로 만듬으로써 이미지에 도착하려 한다.
네 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내함이 단순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내함이 다양하다.
그러기 때문에 모더니즘시는 제목과 시의 내용이 왕청같이 다른것을 만날 때가 있다. 전봉건은 <<피아노>>를 쓰면서 <<신선한 물고기가 쏟아진다>>고 하였고, 아폴리네르는 <<개구리>>를 쓴다는것이 <<섬>>을 노래하였다. 이러한 례들은 많고도 많다. 모더니즘시가 다각적인 양상과 다층차적인 함의로 받아들여야 함은 언어의 내함이 시인에 의하여 요술처럼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섯째: 현실주의시의 언어는 사물과의 동질성을 추구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언어를 조작하여 쓴다. 현실주의시는 기쁨이 가슴에 벅차오를 때 <<넘치는 기쁨>>이라고 하겠지만 모더니즘시는 <<참혹한 기쁨>>이라고 하게 된다. 전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이기에 사물과의 동질성을 추구했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후자는 일상성을 떠나서 새롭게 떠올린 언어로서 가히 조작하였다고 할수 있겠다.
여섯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현실과 조화하려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현실과 떨어지려한다. 현실주의시는 구름을 말할 때 <<구름은 하늘에서 날아다닌다>>로 쓰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구름은 하늘을 닦는 걸레이다>>라고 한다. 그것은 모더니즘시는 시를 쓸 때 일반적으로 새로운 <<짝>>을 맞추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비유어의 보조수단을 리용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그런 수단을 꺼린다. 현실주의시는 <<해바라기는 태양처럼 반짝인다>>인다고 할 때 모더니즘시는 <<해바라기는 태양>>이다. 왜냐하면 현실주의시는 비유를 설정할 때 -처럼, -마냥, 듯이...등 보조적인 언어를 쓰려하지만 모더니즘시언어는 그런 보조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현실주의시는 직접비유를 좋아하지만 모더니즘시는 간접비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공리적인 뜻에 모를 박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주관주의적인 뜻에 모를 박는다. 봄비에 관하여 말할 때 현실주의시는 <<봄비는 사물의 탄생을 고한다>>다고 쓰지만 모더니즘시는 << 봄비는 관에 못질한다>>고 쓰게 된다. 그것은 현실주의시는 일상적인 언어를 쓰기에 류의하지만 모더니즘시는 새로운 언어조합과 새로운 사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현실주의시는 언어로 사물을 묘사하려 하지만 모더니즘시는 언어로 새로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새싹을 놓고 말할 때 현실주의시는 <<새싹은 파랗게 돋아난다>>고 하겠지만 모더니즘시는 <<새싹은 부리로 흙껍질을 깨고있다>>라고 쓰게 된다. <<파랗게 돋아난다>>와 <<부리로 흙껍질을 깬다>>의 차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전자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썼지만 후자는 새로운 사실로 , 새로운 느낌으로, 창의가 있게 쓴것이다.
열 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개념을 그대로 나타내려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개념을 형상화하려고 한다. 현실주의시는 <<그리움은 언제나 따스하다.>> 고 하지만 모더니즘시는 <<새빨간 그리움이 얼음장을 녹여준다.>>라고 하게 된다. <<그리움은 언제나 따스하다.>>는 문구는 추상적인 언어라렬이지만 <<새빨간 그리움이 얼음장을 녹여준다. >>는 언어의 표현이 물화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겠다. 시구는 물질운동으로 표현되여야 하는것이 모더니즘시의 하나의 사항이기도 하다.
열한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어떤 뜻을 확실하게 하려고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어떤 뜻을 불확실하게 하려고 한다. 새가 운다는것을 쓰고자할 때 현실주의시 언어는 <<새는 지저귄다>>고 하면 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 새는 가갸거겨를 읽는다 >>라고 하게 된다. 전자는 아무런 무리 없이 독자에게 수용되겠지만 후자는 시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독자에게 주게 된다. 그것은 현실주의시는 확실성과 협화성을 추구하지만 모더니즘시는 불확실성과 불협화성을 추구하기때문이라고 할수있다.
열두번째: 현실주의시 언어는 언어의 원 흐름을 보존하려 하지만 모더니즘시 언어는 언어의 원 흐름을 파괴하면서 이질적인 언어의 결합을 추구한다. 현실주의시는 <<우리는 시간이 흐름속에서 간다>>하고 말하게 되지만 모더니즘시는 <<우리는 시간의 가지에 앉아간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은 언어의 원 흐름을 보존하였다고 할수있겠지만 <<시간의 가지>>는 새로운 언어조합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의 가지>>라는 이 언어조합은 성질이 서로 다른 언어를 강압적으로 묶어놓은것이라겠다. 언어의 련금사란 말은 언어를 다시 제련해 내여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다는 말인데 아마 이러한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우에서 열두가지방면으로 현실주의시와 모더니즘시의 언어의 구별을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구별이 더 있으리라 믿는다. 모더니즘시는 언어의 집이라고 하며 언어는 현대시를 건설하는 재료라고 한다. 집을 지을 때 같은 재료를 써도 어떻게 짓는가에 의하여 집의 모양과 색깔 및 용처가 다른것처럼 언어의 집인 모더지즘시도 언어라는 재료를 어떻게 쓰는가에 의하여 시의 양상이 달라지고 시의 함의가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2007.1.29-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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