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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이미지와 상상
문학을 한다는 사람치고 상상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실상 다 아는것 같으면서도 모르는것이 상상이다. 안다는것은 누구나 상상의 초학자쯤은 되는것이고 모른다는것은 누구나 다 상상의 전문가는 아니라는것이다. 필자도 초학자 그물에서 벗어날것 같지는 못하다. 그저 상상이 없으면 시를 쓸수 없고 상상력이 약하면 좋은 시를 쓸수 없다는것쯤은 알고있을뿐이다.
어느 책에선가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가 상상에 대하여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과거에 느꼈던 <<원물의 모상을 재생하는 능력에 주어진 명칭이 상상>>이 라고 하였다. 원물의 모상을 재생하는 능력이라는것은 과거에 어떠한 사물에서 받았던 인상과 기억을 그대로 떠올리는것이 아닌가싶다.
시는 시인의 상상을 언어로 그려낸 그림이다. 즉 이미지이다. 상상이 어떻게 이미지를 생성하는가?
<<문예비평의 원리>>라는 글에서 I.A.리처즈는 상상에 대하여 여섯가지방면으로 이렇게 밝히고있다.
<<1.생생한 심상 (보통은 시각심상)을 낳는다.
2.상상력은 뜻하지 않는것이 단지 비유적인 용법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3.상상력을 타인의 정신상태, 특히 그 정신의 상태를 공감각적으로 재생하는것을 뜻하는 경우가 있다.
4.보통 결합되여 있지 않은것을 결합하는것, 즉 발명력이라는 뜻이다.
5. 보통 따로따로라고 생각되는것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는 과학적인 상상력에 례시되는 의미...
6.상상력을 적용하는 통합적 마술적 힘은 ...상반되는 성질이나 불조화한 성질의 밸런스(균형) 혹은 화해로 되여나타난다>>
리처즈의 론술은 상상을 원물의 모상을 떠올리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한보 더 나아가서 비유적인 용법, 공감각, 발명력, 적절한 결합, 밸런스로 전개하면서 <<통합적 마술적 힘>>을 기대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적상상력이란 어떠한것이라는것을 깊게 넓게 인식하게 된다.
사람에게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있는것처럼 상상에도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있을것 같다.
<<원물의 모상을 재생>>시키는것을 할아버지라고 할수 있겠다. 이 할아버지는 아들인 아버지를 만들수있고 아버지는 또 아들인 손자를 만들어낼수있다. 이 과정을 리처즈는 여섯개 단계로 풀이 하면서 얕은데로부터 깊은데로 한발자국씩 들어가고있는것이다.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 천착해 보기 바란다. 우리가 단일상상이요, 복합상상이요 창조적상상이요 하는것의 도리를 리처즈는 자세하게 가르친다고 하겠다.
숱한 <<원물의 모상>>들이 집합되고 어울리고 변이되면서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낸다. 바로 리처즈가 말한 <<2,3,4,5,6>>에 속하면서 새롭게 생성된 새로운 상상이 바로 현대시의 이미지라 하겠다. <<원물의 모상>>을 떠올리는것은 이미지가 아닌가? 이미지는 이미지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모방적이미지다. 모방적이미지들이 모이고 어울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였을 때 그 이미지를 비로소 필자가 말하는 이미지라 하겠다. 현대시의 이미지는 단순한 상상(원물재생)이나 복합상상(여러가지 원물재생)이 아니라 생산적상상(새로운 이미지)이 낳은 비실재적인 새로운 허상을 말하는것이라겠다. 그래서 오늘의 시는 반영이 아니라 표현이라고 한다.
책을 보면 코울리지는 실제를 떠난 공상을 비난하였다 하고 흄은 공상의 기능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상상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이다. 이미지는 상상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는다. 모든 기성론리와 기성법칙을 초월하는 상상만이 이미지에서 가치를 발생한다. 일반적이고 습관적이고 규례에 얽매인 상상, 그것들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상에 의하여 산생된 이미지는 현대시에서 설자리를 내여주지 않는다.
왜서인가? 상상은 누구나 다 할수있지만 누구나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가 다 이미지를 떠올리수있지만 누구나 다 시를 쓸수 있는것도 아니다. 련상작용에 의하여 새롭게 태여난 허상, 그런 허상이 체현된 이미지, 그것이 비로소 시로 될수있는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단정하고싶다. 이미지는 오관에 반영된 원물의 모상인 것이 아니라 제6감각 즉 마음의 감각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그림이다.
I.A.리처즈는 <<상상력을 적용하는 통합적 마술적 힘은......상반되는 성질이나 불조화한 성질의 밸런스 혹은 화해로 되여나타난다.>>고 하였다. 시적이미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이것이라고 말하고싶다. 김춘수는 <<시의 리해와 작법>>이라는 저서에서 <<리상적인 짝을 맞춰주는것이 상상>>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들은 서양의 리처즈와 한국의 김춘수가 똑같은 말을 하고있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있다. 이미지란 쉬운 말로 하면 <<리상적인 짝>>을 맞추어준것이라겠다. 짝을 맞출 때 상상은 매파로서 이질적인 사물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연분을 맺어주고 한집 (하나의 이미지)에서 살게 한다. 이질적인 사물 례하면 물과 불 혹은 소리와 나무같은것들이 서로 화해되면서 새로운 표현으로 결박되였을 때 이러한 이미지가 현대시의 이미지이고 이러한 이미지를 잘 만들어내는 시인을 이미지리스트라 부르리라.
군중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나무가지 위의 꽃잎들
이 시는 파운드의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의 전문이다. 이미지리스트의 선언에 만족한 답을 주는 본보기시라고 할수있겠다. 비록 두줄이지만 이 시편에는 파운드의 7년간이라는 사색이 슴배인 시이고 워낙 30줄이 던데로부터 두줄로 함축하였다고 한다. 흄이 말한것처럼 <<명랑하고 메마르고 세련된것>>이라고 하겠다. <<군중>>, <<유령>>, <<얼굴>>, <<검은 나무가지>>, <<꽃잎>> 어느 하나도 <<모호하고 불확정적인것>>이 없고 <<긴축되고 집중>>되였다고 할수있다. <<유령처럼>>나타난 <<군중>>의 <<얼굴들>>을 <<축축한 검은 나무가지의 꽃잎들>>이라고 하였는데 <<얼굴들>>과 <<꽃잎들>>이 가장 주요한 언어인것같다. 시인의 결박을 통하여 <<얼굴들>>이 <<꽃잎들>>로 둔갑한다. 이 <<꽃잎>>은 허구로 생성된 <<꽃잎>>이지 실재하는 <<꽃잎>>이 아니다. 즉 변형시켜 만들어놓은것이지 현실적존재가 아니다. 상상속의 존재 즉 허상이다. 이런 허상만이 예술에 값하는것이며 현대시에 값하는 이미지일것이다. <<짝>>이 맞추어진 이 두 사물은 완연하게 성질이 다른 사물이라는것을 우리는 얼핏 보아도 알게 된다. 파운드는 <<짝>>을 훌륭하게 맞추고있다. 이런 이미지야말로 영원히 기억에 남는 절실한 감동을 주는 시가 아닐가.
<<시의 목표는 미지의것에 도달함이며 달리 표현하면 볼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수 없는것을 듣는 것이다>> <<알바트로스>>라는 책에 적힌 이 랭보의 말이 성립된다고 하면 남들이 다 알고 다 보고 다 들을수있는것을 시로 쓴다는것은 종이랑비 정력랑비 시간랑비로밖에 취급할수 없을것이다. 오직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여 내여야만 시의 목적, 예술의 목적에 접근할수있으리라.
시를 쓴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것이라고 대답하면 시험과은 만점을 매겨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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