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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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전 토템시에 대한 고찰.2
2009년 09월 10일 16시 35분  조회:1213  추천:13  작성자: 최룡관


남영전토템시의 이미지성과

남영전시인이 토템시를 쓴것은 하나의 장거이다. 중국현대사에서 토템시를 계통적으로 체계적으로 시인은 없었다. 일부 시인들이 토템에 관한 시들을 쓰기는 하였으나 토템적자각이 없이 썼던것이다. 그들의 시는 선조를 노래하고 선조의 문화를 노래하는것으로 썼을뿐이였다. 시인이 하나의 새로운 시령역을 개척하여 쓴다는것은 령역에 대한 심각한 연구와 철학적사고가 안받침되여야 하는것으로서 아무나하는 일이 아니다. 황차 토템령역은 원시사회의 문화로써 아무나 접근할수 있는 령역이 아니다. 사학적연구가 따라서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남영전은 바로 이러한 일을 시적으로 해내였다. 그러하기에 쎄맨 남영전시인을 <<조선족의 아들이며 더우기는 중화민족의 아들>>이라고 평가한것은 결코 과분한 평가가 아니며 명실에 부합되는 평가이다. 시는 하나의 새로운 령역만 개척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시가 시로 되여야 한다. 시가 시로 된다는것은 시적예술이 시에 무르녹아있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이미지는 시라는 예술의 근본이며 핵심이라고 하겠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를 쓰면서 이미지창출에 모를 박고 신선하고 아름답고 충격적인 새로운 이미지를 많이 창출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와 계발을 주었다.

1.

신화는 인류의 최초의 문화로서 인류의 뿌리를 증언하는 보물이다. 신화적 이미지를 창출한다는것은 인류의 원초적인 문화의 맥을 잇는 작업이라고 할수 있고, 인류의 뿌리에서 보물을 캐고, 화폭을 창출하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곳곳에서 신화적화폭이 펼쳐지고있으며 신화적향기가 그윽하게 피여오르고있다.

넘어 바다 건너 멀리

박쥐의 날개죽지에 숨었다가

아장아장 걸어오는가

고운 얼굴 가리운 얇은 베일

너울너울 어깨를 감싸고

머리우에 팔락이는데

정겹게

방긋 웃으며

흐리마리한 마음의 요람

나무추리에서 흐느적거리네

삼라만상 무게를 잃은 순간

산그림자 해솜마냥 부풀고

바다물결 실타래 풀리듯 넘실거리네

돌멩이도 불룩한 가슴 헤치고

젖을 빨듯

으스름 달빛 빨아들이는데

둥글넘적 환하게

부드러운 빛살속에

상상의 푸른 날개 펼쳐지네

<<>> 첫두련

달이 떠오르는 경상을 쓴것이다. 우리앞으로 신화같은 아름다운 화폭이 잔잔하고도 부드럽게 흘러지나가고있다. 우리는 시구들을 읽으면서 아늑한 환상세계로 빨려들어간다. 달이란 언어 한마디도 없이 달의 이미지를 신화적으로 써놓음으로써 우리는 시를 보고있는것이 아니라 신비하고 아름다운 신화를 읽고있게 된다. 달이 뜨고있는것이 아니라 <<머리우에>> 얇은 베일을 날리는 절세의 미인이 우리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오고있다. 박쥐의 날개밑에 숨었던 아가씨가 상상의 푸른 날개를 저으며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얼마나 황홀한가! <<나무초리에서 흐느적이는>> 절세의 미인을 바라보는 향연과 미인의 향기를 맡는 모든 사물들이 뜬다. 무거운 산도 <<해솜마냥 부풀고>> 바다물결도 <<실타래 풀리듯>> 가볍게 설레이고 돌멩이도 가슴을 헤치고 단젖을 빠느라고 여념이 없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이미지를 남영전은 신화적인 색채로 펼쳐주고있다.

남영전신인은 <<>>에서 아늑한 황홀을 펼쳐주었다면 <<백마>>에서는 가을바람과 같은 시원한 전설적인 이미지를 우리앞에 그려보이고있다.

짙은 안개 헤치고

타래치는 먹장구름 꿰뚫고

아득한 창천에서

달려오는가

눈부신 번개불 번쩍이고

류황내 배인 향기를 휘몰아

쏜살같이 달려온다

칡덩쿨 뻗은 숲을 지나

가시덤불 우거진 거친 들판을 지나

한낮의 흑풍백우 몰아내고

오밤의 검은 장막 열어제치며

지동치듯 달려온다

해빛 안고

달빛 안고

발길 닿는 곳마다 빛이 깨여난다

<<>> 신화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녀성의 신화라면 <<백마>> 신화는 거치르고 날파람이 있는 남성의 신화이다. <<달려온다>>, <<쏜살같이 달려온다>>, <<자동치듯 달려온다>>라고 달려오는 모습을 층차로 나누어 표현함으로써 요원한 곳에서 지척으로 박근하는 천하무적 백마의 무드로 하여 긴박성과 긴장성을 가지게 되며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안개도, 타래치는 먹장구름도, 칡덩굴숲에 깔린 산도, 가시덤불 우거진 들판도 백마의 전진을 막지 못한다. 백마가 번개불을 번쩍이며 령기를 휘몰아오며 흑풍백우를 몰아치고 오밤의 검은 장막을 활활 열어제끼는데 뉘감히 앞길을 막으며 감히 하늘에 사무치는 기세를 당한다던가. 백마의 회오리치는 발자국마다에서 해빛이 깨여나고 달빛이 깨여나고있음에랴.

<<우뢰>>에서도 신화적인 색채가 추호도 기세를 눅잦히지 않는다. 남영전시인은 우뢰를 소나기속에서사하는 일상적인 표현을 떠나서 신화적인 방법으로 다루고있다.

대붕과

하늘을

찢고

땅을 쪼갠다

어둑컴컴한 대지

흐린 하늘에

덩지 대붕은

날개를 퍼덕이며

쇠발톱 번쩍인다

당지 룡은

하늘에 치솟아올라

귀청 째듯 포효한다

우뢰의 화살

우뢰의 도끼

우뢰의 돌멩이

창망한 하늘땅을 짓쪼긴다.

시인은 우뢰를 대붕과 룡이 하늘땅을 갈갈이 찢어버리는것으로 표현하고있다. 대붕과 룡은 모두 신화적인 사물이다. <<우뢰>> 신화적인 사물의 운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의 신화적색채와 의미를 풍만하게 력작이다. 하늘과 땅을 찢어버리는 대붕과 룡의 힘은 언어로써는 표현하기 어렵다. 시인의 표현은 너무 핍진하다. 날개를 퍼덕이며 쇠발톱을 번쩍이는 대붕, 구중천에 솟아올라 귀청이 짜개지는 함성을 지르는 , 그들의 동작과 웨침은 <<화살>>이고 <<도끼>>이고 <<돌멩>>이다.

<<청조오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뜻을 쌀이라 한다면 문장은 불을 때서 지은 밥이고 시는 양조하여 만든 술이다.>> 신화적색채로 씌여진 남영전시인의 <<우뢰>> 밥인것이아니라 술이다. 술중에서도 독하고도 향기로운 술이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를 쓰면서 이밖에도 신화적인 이미지를 창출한 시들이 많다. 그의 신화적이미지는 왕왕 시의 서두를 차지하고있다. 신화적인 이미지를 배치하는것은 필자가 보기에도 안성맞춤의 자리인것 같다. 이렇게 하면 독자에게 돌연적인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되여 독자는 느닷없이 상상의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가서 시적향수를 누리게 된다.

2.

철학은 시의 기초이다. 시는 철학우에 놓여진 건물이다. 때론 시자체가 철학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철학이 없는 시는 기초가 없는 시로서 항구성을 가지지 못한다. 시는 정치에 의하여 지배되는것이 아니라 철학에 의하여 지배된다. 구라파의 현대시들이 이것을 증명하였다. 남영전시인이 토템을 우상으로 세상의 원융을 부르짖는 자체가 력사유물주의와 변증법적관점에 발을 붙인 일종 찰학이다. 그는 토템으로 세계를 해석하려 하고 토템으로 인류력사를 해석하려 하고 토템으로 시의 리상국을 주조하고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서 철리가 두드러지게 안받침된 시구들을 착중해서 보기로 하자. <<>> 4련을 시인은 이렇게 읊조리고있다.

심령의 요람과 날개와 그리고

신전문에 걸린 달은

이지러졌다 둥글어지고

둥글어졌다 이지러지는데

둥글어짐은 이지러지기 위함이요

이지러짐은 둥글어지기 위함이라

둥글고 이지러짐은

영생에로 나아가는 산길이라네

얼핏 보기에는 달이 이지러지고 둥글어지는 현상을 쓴것 같지만 결코 그런것이 아니다. 시인은 <<심령의 요람과 날개>> <<신전문에 걸린 >>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있다. 달을 쓰는것 같지만 실제상에서는 심령의 요람과 심령의 날개를 쓰고있다. 심령의 요람이란 마음의 리상이요 심령의 날개란 마음의 요람을 향하여 가는 인간의 움직임을 표현한것이다. 달이 둥글어졌다 이지러졌다 하는것은 리상을 향하여 가는 로정의 풍파를 암시하며 간고성을 암시하는것이다. 그러기때문에 시인은 <<둥글어지고 이지러짐은/ 영생에로 나아가는 산길>>이라고 읊조리고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 오솔길, 신작로, 대통로, 들길, 산길, 이런 길들중에서 가장 걷기 어려운 길이 산길이다. 산길을 걸어간다는것은 여느 길을 걸어가기 보다 맥이 들고 숨이 차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산길은 령을 넘어가는 길로서 가파롭고 구비가 많을뿐만아니라 위험한 짐승도 있을수 있고, 정글도 있을수 있고, 가시덤불도 있을수 있다. <<영생에로 나아가는 >>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훌떡 가는 길이 아니다. 달의 둥글고 이지러짐이 말하려는것이 바로 이런 길인것이다. 둥글어지는것과 이지러지는것은 모순되는 대립면으로서 그들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전의한다. 달에 대한 시인이 이런 표현은 현실과 상상과 철리가 혼연일체를 이룬 이미지라고 우리는 명명해주어야 할것으로 알고있다.

<<>>에서도 남영전시인은 이미지를 직조하는데 철리를 부어넣는 배려를 돌리고있다. <<>> 2련의 앞부분이 이렇게 이미지화되고있다.

틈만 있으면 파고들어

어디서나 볼수 있지마

발도 없고 날개도 없고

형색 또한 없어라

없는 발이 가장 발이고

없는 날개 가장 날개란다

없는 형상 가장 형상이고

없는 빛이 가장 현란한 빛이란다

땅우를 흐르고 모래밭에 스며들면

하늘에 날리고

이미지는 일상적인 사유로 보면 모순투성이고 말도 맞지 않는다. 땅속에 스며든 물이 보인다고하는가 하면, 발이 없기때문에 가장 발이라고하는가 하면, 날개가 없는게 가장 날개라고하는가 하면, 형상이 없는게 가장 자유로운 형상이라고 하는가 하면, 빛이 없어야 가장 현란한 빛이 된다고 하는가 하면, 물이 땅에 스며들면 하늘에 날린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황당무계한 소리가 시로 된다면 누구나 시인이 되겠다고 혹자는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이며 철리가 무르녹은 이미지이다. 없는것에 있는것에 없고, 차가움에 더움이 있고 더움에 차가움이 있고, 땅땅한것에 무름이 있고 무름에 땅땅한것이 있고 하늘에 땅이 있고 땅에 하늘이 있고, 물음속에 대답이 대답속에 물음이 있고 악함속에 착함이 있고 착함속에 악함이 있고, 강함속에 연약함이 있고 연약함속에 강함이 있고, 무리속에 흩어짐이 있고 흩어짐속에 무리가 있다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세월이고 이것이 절대적진리이다 이러한것을 감지해내는 사람이 현인이다. 이러한것을 이미지화 하는 사람은 시인이다. 랭보도 말했다. 일반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보지 못하는것을 보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남영전시인의 <<>> 대한 이미지를 구축한것은 황당한것 같으면서도 철리가 담겨져있고 헛소리 같은데 예술이 차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철리의 힘이며 시인의 상상의 힘이다.

자아완성을 표현하는 <<>> 철리가 용해된 걸작이다. 대는 땅을 비집고 나오는 강자로서 감히 꽃과 아름다움을 비기고 휘우둥대는 바람과 맞서서 탄탄함을 비기면서 자신을 갈고 벼린다. 그런 대를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한자루의 칼로

한자루의 검으로

자신의 속살을 베여내고

자신의 염통을 끄집에내여

끊임없이 피를 흘리네

참을수 없는 아픔을 참으며

자신에게 모질어

자신에게 무자비하여

한마디 속이 비면

그만큼 허리가 실해지네

마음도

속이 빌수록 성결해지고

속이 빌수록 충실해지네

<<>> 일생은 자학의 일생이다. <<>> <<>>으로 <<자신의 속살을 베여내고/ 자신의 염통을 끄집어낸다>>. 피를 흘리며 언어로서는 표달할수 없는 아픔을 감내하는 독한 놈이다. 참대는 독한 놈으로 되는가? 속이 비여야 키가 커지고 속이 비여야 허리가 실해지기때문이다. 속이 빌수록 마음도 성결해지고 속이 빌수록 마음이 충실해진다. 대는 속을 비우며 자라나서 휘여든 몸뚱이가 아니라 <<꼿꼿한 몸뚱이>> <<하늘>> 받치고 <<신령의 집을>> 받친다. 속을 비워야 함은 그의 운명이고 숙명인지도 모른다.

불교에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워야 심령이 깨끗해지고 마음을 비워야 심신이 건강해지고 마음을 비워야 모든것을 포옹할수 있는것이다. 욕심이 들어찬 마음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일수 없다. 오직 마음이라야 어디를 가나 어떠한 일을 하나 떳떳하게 된다. 시인은 <<>>에서 바로 이런 마음을 추구하지 않았나싶다

<<>> 불교의 성전같은 경지에 도착하기 위하여 모질고 무자비하게 마음을 비우며 자아완성을 하고있다. 비여야 채울수 있는것은 철리이다. 이런 철리로서 남영전시인의 대는 우리들에게 <<푸른 빛살로 생기 돋우는>> 전범을 보여주고있으며 후세사람들도 찾아들어갈 수 있는 대숲을 마련하였다.

3.

모든 토템 자체가 환상적이다. 환상은 남영전시인을 토템의 전당으로 부르고 남영전시인은 환상의 전당에 가서 토템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희희닥거리며 롱지거리도 한다. 남영전의 가장 친한 친구는 토템이고 토템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남영전이다. 시인은 18년동안 토템들과 막역지우로 보내면서 토템들의 속내를 알아보았고 토템들의 소원과 희망을 알아보고 토템시를 썼다. 시가 우리가 보는 42수의 토템시다.

시인들은 상상으로 시를 쓴다. 환상은 상상의 최고 류형이다. 시인은 환상의 차를 타고 일초동안에 수억만리 달릴수 있으며, 환상의 나래를 저어 일초동안에 구만리 하늘을 날수 있다. 모종 의미로 말하면 환상이 시인을 예술의 최고봉으로 끌어올린다고 할수 있겠다. 필자는 남영전시인이 환상적이미지에서 <<신단수>>, <<구름>>, <<토끼>> 이미지 일부만을 살펴보고저 한다.

창천을 쪼각쪼각 받쳐들고

대지를 갈래갈래 거머쥐고

씨비리의 돌개바람 안고 회오리쳤네

회오리쳤네

회오리쳤네

장대 같은 사닥다리 받치고

높다란 기둥을 세워

대지의 배꼽과 북국성을 이어

해와 달을 가지에 휘감아

넋새에게 보금자리를 지어주었다

<<신단수>> 1련이다. 시는 이렇게 쓴다. 빈소리가 한마디도 없다. 하늘과 땅을 이어놓은 신단수가 장쾌하고도 억찬 자신의 모습을 우리들의 눈앞에 그림처럼 낱낱이 보여주고있다. <<하늘을 쪼각쪼각 받쳐든>> 신단수! <<대지를 갈래갈래 거머쥔>> 신단수! <<대지의 배꼽>> 기둥을 세워 <<북국성>> 닿은 기둥, <<해와 달을 가지에 휘감아/ 넋새의 보금자리를 지어준>> 신단수! 실존적인 언어는 한글자도 없는 환상이 끓어번지는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가 바로 시의 고차원을 이루는 이미지가 아닐가. 신단수가 하늘과 땅을 이어놓고 해와 달을 가지에 걸고 웅장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입을 벌리게 된다. 신단수가 하늘과 사이에 기둥을 세우는가? 사닥다리로 되는가? 신단수가 하늘과 땅을 통하는 다린것이다. 시인은 신단수로써 하늘과 땅의 혼연일체, 아니 우주의 혼연일체를 시도하고있다겠다. 천지인화의 위대한 사상이 신단수를 통하여 우리앞에 흐리마리한것이 아니라 확고하고 확연한 이미지로 떠오르고있다. 시인의 흉금은 무연하다. 시인의 흉금속에서 별들이 모래알처럼 작은 사물이 되여 빙글빙글 돌아가고있다. 환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정서를 쏟아부을수 있으랴.

바람의 날개처럼 형체없이

나비의 날개처럼 화려하게

새의 날개처럼 가볍게

바람의 날개 없는 곳에서도

바람의 날개 퍼덕이고

나비의 날개 없는 곳에서도

나비의 날개 퍼덕이고

새의 날개 없는 곳에서도

새의 날개 퍼덕이네

<<구름>>에서 절록하여 환상적이미지이다. 부드럽고 우아한 언어로 우리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이미지를 펼쳐주고있는가! 구름을 바람날개, 나비날개, 새의 날개라고 누가 말한적이있었던가. 날개들이 모여 구름이 되였다는 기기묘묘한 이미지야말로 환상이라도 야릇하면서도 우미한 환상이다. 시란 이상한 물건이다. 없는것도 있게하고 (바람의 날개) 그렇지 않은것도 그렇다고 (나비날개, 새날개) 해야 수작이 되니 말이다. 시인은 환상에 잠기기만 하면 마치 요술사마냥 언어의 광산에서 언어를 캐여다가 제련하여 아름다운 이미지를 자유롭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시인은 사치스럽고 신비한 예술인일것이다. 남영전시인이 <<구름>>에서 창출해낸 환상적이미지가 이를 말해주고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날개들은 날개로 황페한 산천에 단비를 쏟아주며 말한다. <<모임은 합력이고 생존이요/ 흩어짐도 살길이고 번영이라네.>> 말은 구름들의 노란자위이며 날개들의 노란자위이다.

<<>> 하나를 갖지 못하여 불쌍한 토끼는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뒤다리가 길어지고 두귀가 커진다. 이런 토끼는 도망치다가 어디로 갔는가?

도망, 도망치다가

나중엔

월궁에 뛰여들었다

외로운 넋이

월궁에 뛰여들었다

평생 숙원은 귀향

귀향하려는 소망을

돌절구에 넣어

빻고 찧는다

<<토끼>>에서 나오는 옛말이다.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 퍼그나 유모아적이고 해학적인 옛말이다. 이런 옛말은 어디에서 나올가? 환상에서 나온다. 환상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구수한 옛말을 만들어낼수 있단 말인가. 너무 도망치다보니 뒤다리가 길어진 토끼, 두귀가 길어진 토끼다. 뛰고 뛰다가 어망결에 월궁으로 들어갔다는것이다. 이런것이 환상이 아니라면 세상에 환상이라는 존재가 없을지도 모른다. 월궁은 하늘의 궁전이여서 좋으련만 토끼는 뿌리를 잊을수 없어 귀향하려는 평생의 소원을 돌절구에다 넣고 <<빻고 찧는다.>>

남영전시인도 토끼처럼 돌절구를 차지하고 절구속에다 원융의 숙원을 날마다 빻고 짓찧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환상가이고 환상은 시인을 만든다. 그러기때문에 환상으로 짜놓은 이미지가 신비하고 아름답고 리상적이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싶다. 시를 배우려면 환상을 수렴하여야 하고 시간의 검증을 받을수 있는 시를 쓰려면 환상을 날개로 삼아 하늘을 날아보고 땅속을 날아보며 시를 쓰라고

4.

42수의 남영전시인의 토템시가 줄을 지어 검열대앞을 지나간다. 앞장에는 <<>> <<봉황>> 신단수가지를 다듬어 만든 기대를 들었다. 그뒤로 한줄에 토템물이 열씩 넉줄로 섰다. 발자국소리가 쿵쿵 울린다. 원융의 노래소리 우렁차다. 앞장에 룡은 하얀 기발을 들고 봉황은 파란 기발을 들었다. 하얀 기발에는 상징이라는 글발이 눈부시고 파란 기발에는 은유라는 글발이 눈시리다.

검열대우에서는 남영전시인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가슴 벅찬 감동으로 대오을 사열하고있다. 그들의 검열을 보는 관중은 독자들이다. 독자들의 얼굴마다에 웃음이 넘친다.

대오는 검열대를 벗어나며 물이 된다. 상징과 은유의 물결이 너울너울 춤추기도 하고 하늘에 솟구쳤다가 와르르 무너지며 금보라 은보라를 날린다. 쌍무지개 일기도 하고 외무지개 일기도 하면서 매혹스러운 광경을 펼친다.

그래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가벼운것 같으면서도 무거웁고, 소박한것 같으면서도 화려하고, 확연한것 같으면서도 몽롱하고, 얕은것 같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필자는 상징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고 은유에 대하여서만 살펴보고저 한다.

세상 울창한 수림을

드나드는 사슴

수해속에 흔들리는 홍산호런가

설야에 피여난 인삼꽃이런가

<<사슴>> 에서

하늘에서 춤추면 아롱진 노을

땅에 내리면 아름다운 산꽃

<<나비>> 에서

남영전시인은 <<사슴>> <<수해속의 흔들리는 홍산호>>라고 하기도 하고 <<설야에 피여난 인삼꽃>>이라하기도 한다. 이런 은유로 사슴의 귀중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이는 토템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나비>>에서는 날아다니는 나비를 <<아롱진 노을>>이라 하고 풀이나 꽃에 앉은 나비는 <<아름다운 산꽃>>이라고 은유하고있다.

<<나비>>에서도 시인은 아름다운 은유의 꽃을 창조하여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게 하고있다.

<<백조>>에서는 백조가 불안한 운명의 길을 떠날 이런 은유로 표현하고있다.

바람은 길잡이

별은 길표지

번개는 길동무

명명식으로 제시된 이러한 시구들은 은유의 표현이라겠다. 눈물을 흘리며 백조는 고향을 떠나지만 바람은 길잡이가 되여 그와 함께 가고, 별은 길표지가 되여 그의 길을 안내해주고, 번개는 친구가 되여 그와 함께 간다. 자연이 그를 품어주고 자연이 그를 다독여주는 경상을 그리고있다. 더불어 함께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상기한 은유들은 아기자기한 점이 있다면 <<사자>>에서의 은유는 돌발적이다. 사자가 질주하는것을 보고 <<허허 벌판을 질주하는 태양이런가>>하고 서두를 떼고있다. 은유는 우리 눈앞에다 푸른 풀이 무성한 무연한 벌판에서 태양이 달리고있는 정경을 펼쳐주고있다. 달리는 사자의 용맹과 기세 그리고 사자의 용왕매진의 눈시린 빛발이 일시에 독자들 충격하고있다.

시적정서 흐름의 분위기에 따라 시인은 은유를 재치스럽게 배렬하고있다. <<우뢰>>에서 <<>> 하늘에 올라서 포효하는것을 이렇게 쓰고있다.

우뢰의 화살

우뢰의 도끼

우뢰의 돌멩이

창망한 하늘땅을 짓조긴다

은유는 쌍중의 의미를 가진다. 한가지는 우뢰를 화살, 도끼 돌멩이로 은유한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소나기가 내리는것을 화살, 도끼, 돌멩이로 상징하였다. 때문에 은유의 앞에다 <<귀청 째듯 포효한다>> 은유의 마지막에 <<창망한 하늘땅을 짓조긴다>> 시구가 은유의 표현과 아주 어울린다. 물샐틈없이 치밀하게 은유조합과 은유마다 행갈이를 하였기에 <<우뢰의 화살/ 우뢰의 도끼/ 우뢰의 돌멩이>> 격렬한 시의 분위기에 어울리여 쟁쟁한 소리를 낼뿐만아니라 천하무적인 우뢰의 기세와 위력을 확실하게 하여주고있다.

5.사물의 특성을 잡은 이미지

세상의 사물은 특성이 있다. 사물의 특성은 사물존재의 내함으로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표현되면서 존재의 가치를 나타낸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를 쓰면서 시종 사물의 특성에서 눈을 떼지 않고 특성을 집요하게 붙잡고 이미지화를 하고있다. 짐승의 류형에 속하는 토템을 때면 성칼지고 완강하고 거치른 성격을 이미지화하기에 력점을 두는 경향이 다분하고, 조류의 류형에 속하는 토템시를 때면 날개나 나는것을 틀어쥐고 이미지화하는데 집착하였고, 하늘의 사물을 토템시로 때에도 사물의 특성에 배려를 돌리였다. 아래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신단수초리에서 회오리쳐

해상천하에 신비왕국 이어놓고

짐승이 덮쳐도

보라매 노려도

갈범이 울부짖어도

겁내지 않았다

큰물이 밀려와도

광야가 한적해도

공포가 휩쓸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머리 번쩍 쳐들고

날개 퍼덕이며

하늘을 날았거늘

영원히 안일을 모르는 자유의

백의 혼이여

날아다니는것은 조류의 특성이다. 두루미는 조류에 속하는 사물로서 두루미도 나는 특성이 있겠다. 시인은 두루미가 하늘에 날아올라 대지를 부감하는 장면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대지는 살풍경이다. 짐승들은 덮치며 날치고, 보라매는 먹거리를 찾느라고 예리한 눈길로 노려보고, 갈범은 울부짖는다. 홍수는 대지에 범람하고 광야는 쓸쓸하고 적막하다. 공포가 폭풍처럼 대지를 휩쓸고있다. 이런 살풍경이 하늘에 두루미의 눈으로 들어오는가? 그것은 현대문명과 발달이 빚어내는 악과인것이다. 악과를 두루미눈을 통하여 시인은 적라라하게 발가놓고있다. 두루미는 시인의 리상의 체현물이다. <<신단수초리에서 회오리쳐>> 나온 두루미는 <<해상천하에 신비왕국을 이어놓는>> 신령이다. <<해상천하에 신비왕국>> 건설하려는 웅심을 품은 두루미기에 살풍경속에서도 머리를 번쩍 쳐들고 훨훨 날아예고있다. 살풍경과 대조를 이루는 두루미형상은 우리들에게 원융의 희망의 등불을 밝혀 어두움을 가시는 정경을 보여주고있으며 신심을 북돋아주고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문제가 있다. 시인의 머리에 떠오른 의식을 어떻게 이미지화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시인은 자신의 사유를 시로써 표현할 개념적인 언어를 사용할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언어, 구상적인 언어를 써야 하며 사물들의 운동으로써 표현하여야 한다. 그래야 명확하고 정확하고 확연하고 탄탄한 이미지를 떠올릴수 있다. 남영전신인의 <<두루미>>에서는 이런 발휘가 잘되고있어 우리앞에 나타난 이미지가 얼빤한 그림인것이 아니라 한폭한폭이 아주 똑똑하게 안겨온다.

<<거북>> 대한 이미지를 살펴보자. 바다에서도 살고 륙지에서도 사는 거북의 눈은 특별하다. 눈은 일반적인 눈이 아니라 바다속에서도 볼수 륙지에서도 볼수 있는 특별한 눈이다. 거북의 껍질 또한 특별하게 딴딴하다. 시인은 거북을 거북의 특점을 노리였다.

수정눈때문에

철갑등때문에

매발톱도 두렵지 않았다

산짐승의 발굽도 두렵지 않았다

칼날도 활촉도 꿰뚫지 못하고

화염불길도 당해내지 못했다

넓은 모래불에서, 수풀속에서

깨뜨릴수도 태울수도 없는

불사불면의 넋이여

해적무리 달려들면

등허리에서 칼날이 수풀처럼 곤두서고

아가리에선 불길을 활활 내뿜었다

해적들은 꼼짝 못하고

바다에 쳐박혔다

바다에 뒤엎였다

바다에 삼키웠다

<<돛대에 별무리 걸어놓고./ 돛폭에 금노을 펼쳐놓은>> 거북이를 이미지화한 부분이다. 시인은 <<불사불멸의 >> 시화할 거북의 특성인 껍질에서 시를 찾아내고있다. 땅우에서 바다속에서 껍질이 가지는 의미는 찬하무적이다. 그가 천하무적으로 될수 있는것은 껍질이 딴딴하다는 성질에서 류추해내여 이미지화한데 있다. 시인은 륙지에서는 매발톱, 산짐승의 발굽, 칼날, 활촉, 화염불길을 리용하여 껍질의 작용을 보여주고 바다에서는 <<등허리에선 칼날이 수풀처럼 곤두서고./ 아가리에선 불길을 활활 내뿜었다.>> 는 이미지로 거북껍질의 위력을 현시하고있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시는 어떤 사물의 특성에 대한 새로운 표현의 발굴이라고 할수 있다. 시인은 <<거북>>에서 바로 이런 시작업을 훌륭하게 하고있다.

사자의 포효소리는

천둥치듯 팔방에 울려퍼졌고

사자의 금빛 눈부신 갈기는

번개불이 번쩍이듯 하늘을 후려쳤다

그바람에

눈사태 와르르 무너지고

둥근해 뱅뱅 돌고

별똥이 쏟아지며

어둠이 멀리로 쫓겨났다

악마는 바다끝에 쳐박히고

요귀는 십팔층지옥에 갇혔다

<<사자>>에서 짐승의 왕인 사자를 표현한 이미지다. 이미지는 사자는 짐승들중에서 가장 힘이 장사이고 가장 날파람이 있고 가장 무서운 짐승이라는 사자의 특성에 착안점을 두고 표현한 이미지다. 천둥 같은 사자의 포효, 번개불처럼 하늘을 후려치는 갈기, 이러한 표현들은 짐승의 대왕인 사자를 표현함에 충분하다. 시인은 이런 사자의 위력을 효시하기 위하여 무너지는 눈사태, 뱅뱅 도는 태양, 쏟아지는 별무리, 바다에 처박히는 악마, 십팔층 지옥에 갇히는 요귀 등을 동원시킨다. 정면과 반면의 동시적인 움직임을 통하여 사자의 위력에 대한 이미지를 강대하게 보여주고있다.

사자의 특성을 틀어쥐고 이미지화한 이미지에서 우리는 세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지를 만들 시적대상과 련계시킬수 있는 사물들을 찾아 표현하는 방법이 하나요, 관계되지 않는 사물이라도 표현에 유조할 빌어다 표현하는 방법이 둘이고, 이질적인 사물로 변형시켜 표현하는것이 셋이다. <<눈사태>>, <<태양>>, <<별무리>>들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사자와 관계되는 사물이니 하나에 속하고, <<악마>><<요귀>> 관계없는, 허망개입시킨 사물이니 둘에 속하고, <<갈기>> <<번개>>불은 성질이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사물의 변형으로서 셋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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