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렬
꽃(외6수)
보조개 뿐인가
그 속에
환장하도록 부드러운 속살
야릇한 눈길 갉아먹는다
팬티도
브래지어도
달거리도
싫어할 수 있다
홀린 게 나 뿐만 아니다
너의 그림자조차도 미쳐
헤벌린 입 다물지 못하구나
넌 꼭 얌전하게 지지 않을 거다
제발 더는 미치지 말자
로숙자
새는 그림자도 없는 하늘에
날고 있다
빌어먹기는 싫고
애걸할 데도 없는 허공에
맥 잃은 날개만 힘겹다
둥지를 지어도
허름한 지푸래기로 만든다
그 속에
빈 털만 남길 뿐
아무 것도 모아두지 않는다
바람 한모금을
이빨 사이에 물고
꽁지에 힘 추스릴 적에
부리는 입맛 다시지 않는다
구름 한조각이
그림자로 다가오면
너무 낯설어
한바퀴 빙 둘러보고는
울음소리도 남기지 않고
텅 빈 둥지로 돌아온다
둥지에는
그림자라곤 없다
바람구멍만 숭숭하다
새는 낮잠을 자고 싶어한다
배불리는 꿈만은 꾸지 않겠다고
부리를 날개죽지 속에 묻는다
얼굴이 시로 휘여질 때
주름 한오리 휘여서
갈고리 만들어
이마에 얹어놓았다
걸린 게 해빛이다
몸부림치던 해빛이
냅다 갈긴 오줌발
땀이였다
그 땀을 훔쳐
멀리 뿌렸더니
갈고리가 떴다
시였다
족보도 없는 무지개
지친 눈동자는
희미한 민낯에 걸려
그 시를 베끼고 있다
시
가마니 짜는 틀에
바디와 코로 엉키여
시가 짜여진다
바디가 한번 다지고
코가 한번 드나들면
수없이 매듭짓는 가마니가
한편의 시였다
가마니에
모래를 담으면
시어도 알갱이가 된다
한 가마니
두 가마니
재여두면
시집 한권이 되는 것이다
쌀도
왕겨도
자갈도
흙도 담았다
바디와 코는
아직도 짜고 있다
가마니 짜는 틀은 피를 짠다
오빠
애교가 무딘 마누라는
오빠란 말
죽어도 싫다고 한다
밖에서는 남자마다
오빠라고 아양떨어도
집에 있는 이 남자는
오빠가 아니라고 딱 잡아뗀다
오빠가 되면
남자가 아니고
남자가 되면
오빠일 수 없단다
오빠는
언제나 오빠일 뿐
남자는
언제나 내 것 하나란 고집불통
오빠랑 애기 낳으면
몇촌이 되냐며
빤히 쳐다보는 그 눈빛이 더 이뻤다
그물
거미가 만든 철학이다
헤치지 말자고
굳게 닫은 팔괘도 아니요
동그라미로 겹쌓은
손자병법도 아니다
지는 해와 뜨는 해를
죽은 할아버지와 산 손자로
기하학적 사고방식으로
얼버무린 울타리 같은
원심력으로 빨려드는
소용돌이의 짝사랑식 인터넷일가
동그라미 밖으로
외톨로 걷는 골목길에
코대 세운 지평선의 그림자에 갇힌
나
공자가 누구인 줄 모르는
뒤걸음질에 빠진 웅뎅이 속에
옹크린 거미
산지사방 넓히는 자기마당이여
그늘
넓히는 터전은 얌전하다
그 속의 펑퍼짐한 자리는 외롭다
어디까지 뻗을가 헤매는데
발이 열개라도 걸음걸이는 한발작이다
거짓말로 지어놓은 둥지는
바람이 먼저 와서
쉬고 가는 남의 집이다
출처:<<도라지>>2017년 제5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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