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 새해인사 겸해서 연우가족들에게 메일을 보내려고 잠시 묵상하는 가운데 문득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한국이 배출한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들 중의 한분으로서 제게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는 분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새날동지회」라는 이름의 학생서클에 가입한 후 그 서클의 리더격인 대학생 선배를 따라(당시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로 계셨던) 선생님의 연구실과 댁을 몇 차례 찾아다니면서 문학수업(‘시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따뜻한 미소와 조용한 목소리로 일본유학시 처음 詩 공부 했을 때의 정황을 일러주시곤 했지요.
그때 선생님은 말씀을 마치실때마다 “사람은 순수해야 돼. 시도 순수해야 되지만 사람이 먼저 순수해야 돼”라는 말씀을 빠뜨리지 않고 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 ‘순수’라는 어휘의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제 가슴 한구석에 옹달샘이 생겨나서 깨끗한 물이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듯한 감을 느꼈지요.
아무튼 세월은 흘러 선생님도 가셨고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 내일모레면 60인데, 그래도 이토록 험악하고 혼탁한 세상을 살면서도 끝까지 마음 한구석에 ‘순수의 정’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때 그 선생님의 지도가 큰 영향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가운데 지난해 11월 말,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고 개포동에 있는 삼성의료원의 빈소에 달려갔을 때, 저는 그때 선생님의 영정 앞에 놓인 국화꽃을 바라보면서, 그분께서 남기시고 간 「꽃」이 저의 인생을 통하여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로 남겨져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한번 선생님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을 느낀 바가 있습니다.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연우 대표님. 외람되지만, 제가 혹시 이렇게 한번 고쳐 써보면 어떨까요?
“내가 김연우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김연우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2002년 말, 집사람을 통하여 처음으로 김연우 대표님을 알게 되었고, 그 후 한달이 지나 김대표께서 한국을 떠나시면서 맡겨 놓은 과업 ― 「연우포럼」을 섬기면서 지금까지 3년 동안 연우의 꽃밭을 가꾸어 오는 가운데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왜냐구요? 세상에 하고 많은 사회단체와 모임이 있지만, 이토록 순수한 이념과 우정으로 연결된 Open Mind Community가 또 어디 있을까요?
사회의 세속적인 여러 가지 벽과 제약조건들 즉 연령, 직업, 성별, 소유, 학력, 정치이념, 지방색 등을 뛰어넘어 오직 인간 대 인간으로 지극히 소박하고 자유로운 관계로 On/Off line을 통하여 만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대화하는 모임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것이 진정한 「연우포럼」의 가치이고 정신적 파워(Power)라고 자부해 볼 때, 우리 「연우포럼」은 이 혼탁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귀한 청량음료 ― 옹달샘에서 솟아나는 순수한 사랑의 생명수와도 같은 그 무엇이 아닐까요?
김연우 대표님, 그리고 사랑하는 연우가족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 서로를 진정으로 위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꽃」들이 되고 싶습니다.
비정하고 이기적인 벽 속에 갇혀 사는 오늘날 현대인의 가슴에 벽을 허물고,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듯, 지혜와 사랑으로 連友하는 우리 「연우포럼」이야말로, 실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창조적인 의미체’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저무는 한 해를 앞두고, 그동안 포럼장으로 수고해오신 김 대표님께 진심으로 큰 감사를 드리며, 또한 함께 읽고, 쓰고, 만나고, 대화하며 동역해온 모든 연우가족들께도 다시 한번 깊은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순수의 정’으로 가득찬, 우리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는 ‘그’에게로 달려가서 영원한 사랑의 「꽃」을 함께 피우는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어봅시다. 출세도 좋고 성공도 좋지만, 순수한 목적이 이끄는 의미있는 삶으로 거듭나는 그런 인생의‘후반전’을 한번 살아봅시다. 해가지는 오늘따라 왠지 김춘수 시인의 「꽃」이 그립고, 또한 그 「꽃」속에 숨어 있는 ‘순수의 정’이 너무 그리워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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