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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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Ⅹ. 미래를 기다리며 댓글:  조회:2868  추천:121  2008-07-22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Ⅹ. 미래를 기다리며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나는 장시간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둘이서 함께 손을 잡으면 따뜻한 온기와 함께 사랑의 기운이 전달되는 감을 느끼는데, 이 느낌이 사람을 매우 기분 좋게 해준다.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온 뒤에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10분경이었다. 항공편 안내판을 살펴 보았다. 미국 아틀렌타에서 들어오는 KAL비행기가 예정보다 50분가량 일찍 도착한다는 사인이 뜨고 있었다. 그렇다면 4시 30분경에 도착할 예정이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졌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손자를 만나본다는 기대와 감격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출국장 옆 대기석에 한참을 앉아 있는데, 둘째 아들(동헌)의 장인, 장모되시는 분들이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전갈을 받고 서둘러서 오신 것이다. 오늘 드디어 둘째 며느리(김수현)가 세 살된 손자(준호)를 데리고 오는 날이다. 2년전에 아이가 첫 돌 되기전에 오하이오 컬럼버스에 있는 아들집을 방문했을때 잠시 안아보고는 그동안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손자다. 둘째 아들은 포항공대(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5년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유학을 가서 나노 물리학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며느리는 한국에서 의상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에 가서 패션디자인 학부를 다시 공부한 후 지금 아베크롬비(ABERCROMBIE)라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이번에 비자 갱신을 하기위해 한국에 나오게 되었는데, 아들과 며느리의 휴가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며느리가 먼저 아이를 데리고 왔다가 열흘 후에 혼자 돌아가면, 아들은 5월초에 와서 2주정도 있다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갈 계획이다. 내겐 2남 1녀의 자식들이 있다.큰 아들(동엽)은 연세대 의대(신경외과)를 졸업했으며, 군복무를 마친 다음 금년 3월부터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펠로우로 근무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서 벌써 1남(준혁),1녀(지민)를 두고 있다. 큰 며느리(강민정)는 이전에 외국계 증권회사 여러 곳(쟈뎅 플레밍, 도이치 방크, 도쿄 미쓰비씨)에서 어널리스트로 일 하다가 지금은 셋째 아이를 가져 집에서 쉬고 있다. 막내 여식(현주)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갔다가 코넬공대에서 토목(Civil Engineering)을, 석사과정에서 CM(Construction Management)을 전공했으며 , 지난해 연말 귀국하여 지금 SK건설에 입사하여 근무 중이다. 이 2남 1녀 자식들을 생각하면 늘 고맙게 여겨진다. 자녀들이 모두 착실하고 건전하며 밝고 명랑하게 잘 자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또 일찍부터 교회를 나가 믿음도 좋아서 나는 이들을 내 ‘믿음의 선배’로 깍듯이 섬기고 있다. 특히 둘째 아들(동헌)의 전공분야는 나노보다 한 단계 더 미시적인 마이너스 10승 단위인 엥스트롬(Angstrom)이다. 최근 그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의 기본성질 가운데 자기력을 일으키는 Spin과 Spin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 논문(“Seeing and Manipulating Spin-Spin Interactions at the Single Atomic Level ")을 발표하여 오하이오 주립대 컴패티션에서 2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제 그의 아들이자 나의 둘째 손자인 준호가 드디어 서울에 오는 것이다!집에서 아이와 함께 스킨십을 한답시고 잠 잘때도 웃통을 벗고 아이를 안고 자는 둘째 아들이다. 자기 자식을 키워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했는데, 나는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내 심정을 알아주기보다 그들의 자식을 잘 키워주는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마침 우리가 중국에서 돌아온 비행기 시간과 미국에서 며느리가 들어오는 비행기의 도착시간이 거의 1시간 반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않아, 우리 내외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둘째 며느리와 손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을 만났을 때, 눈물이 나도록 반갑고 고마운 그 심정은 이제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손자는 나의 미래다. 내가 손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미래는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수년전에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께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美EIA상을 탄 다음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메아리쳐 온다.“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그렇다. 손자는 나에게 있어서 ‘새롭게 창조하는 미래상’을 준비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미래를 꿈꾸며 살아왔고, 또한 미래를 나에게로 끌어당기며 일하려고 노력해왔다. 언젠가 나의 손자들은 나의 꿈과 미래를 창조적으로 실현해 줄 것을 믿는다. 3박 4일간의 북경 여행을 돌아보며 쓴 이글의 내용이 앞으로 어떻게 진전되고 실현될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손자를 기다리듯 나의 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꿈꾸며 기다릴 것이다. 새롭게 창조되는 미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꿈꾸며 기다릴 것이다.“오, 원더풀 데이”3박 4일간 여정의 마지막 시간에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양 손자를 가슴에 안고 속으로 터뜨린 일성이 바로 이 말이다. 그 외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너무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되어 뜨거운 눈물을 주룩 흘렸다. 이 눈물은 오염된 공기를 씻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북경의 인공비가 아니라, 존재를 향한 나의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의 눈물이었다.(끝)
8    Ⅸ. 창조적인 대안 댓글:  조회:3038  추천:100  2008-07-18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Ⅸ. 창조적인 대안간밤에 비가 그치는가 했더니 북경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보슬비가 내렸다. 만개했던 목련의 하얀 잎들이 땅에 떨어져 빗물에 젖어있는 모습이, 마치 금새 사라진 영화(榮華)의 잔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에 서글픔이 묻어났다. 전신자 교수와 우리 내외는 조찬을 마친 후 서둘러서 체크아웃을 했다.얼마있지 않아 연변과기대 북경 주재원인 박혜명 비서가 승용차를 갖고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호텔로 찾아왔다. 전 교수는 오늘 연길로 갔다가 일주일 후 다시 또 북경에 나와야 된다고 했다. 북경대, 한국 극동문제연구소, 조선사회과학원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세미나 준비를 돕기 위해 평양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와같이 국제세미나를 기획하고 조정하는 중개 역할을 벌써 10년이 넘도록 진행해 오고있다. “ 전 선생이 없으면 아예 회의가 성립되지 않겠구먼” 특히 중국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할 경우, 거의 대부분의 준비 작업을 조선족 엘리트들이 주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여성인력으로서는 전신자 교수가 가장 뛰어난 실력자로 평가 받고 있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전 교수를 차에서 내려주고 우리들은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북경대에서 4환로를 거쳐 서우두(首都)공항으로 접속되는 도시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도로 위에 횡으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제한속도 표지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주행속도를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차선에 따라 구별해 놓은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편도 3차선인 공항로를, 1차선 주행속도 120-90㎞, 2차선 100-80㎞, 3차선 100-60㎞로 구별해 놓은 것이다. 중국인들의 실용정신과 유연성이 크게 돋보이는 교통규칙이었다. 사소한 일 같아 보이지만,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한국의 고속도로에도 한번 적용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올림픽을 잘 치르기 위해 여러면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박 비서가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온 비가 사실은 인공 비였다고 알려주었다. 황사가 심할때나 대기오염치가 아주 높을때는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가끔 강제 강우를 실시한다고 했다. 나는 최근에, 올림픽 출전이 결정된 외국 선수들이 해외전지 훈련장소로 개최지인 중국을 택하지 않고 한국 제주도에 많이 와서 연습하는 이유가 바로 공기 청정도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어서 그 얘기가 실감나게 들렸다. 박 비서는 날씨가 덥고 비가 올지도 모르는 8월에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 중국정부의 처사에 대해 매우 못 마땅한 심경을 토로했다.“북경 날씨가 봄은 짧고 가을이 긴게 특징이예요. 9월 중순부터 10월의 북경 날씨는 하늘도 청명하고 공기가 아주 좋아요. 기온도 덥지 않고, 그땐 비도 거의 안와요. 1990년 북경 아시아게임도 10월초에 했었는데 10월 8일이나 또는 중국 국가 성립일인 10월1일 같은 날 개막식을 하면 오죽 좋겠어요?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에 개막식을 한다고 하니, 중국 사람들이 아무리 8자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싶어요.”8자의 중국식 발음이 ‘빠’로 발성되는데, 이 말은 ‘ (대박이)터진다’를 뜻하는  発(發)와 같은 발음으로 들린다. 그래서 8자는 곧 부(富)를 상징하는 숫자가 되어, 최근 중국 사람들이 8자가 많이 들어가는 차량 번호와 핸드폰 번호를 구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마디로 물질만능주의와 주술적인 미신행위가 합쳐진 천민자본주의 형태의 사회풍조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와같은 풍조를 민간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부당국에서 조차 용인하고 조장하는 듯한 분위기여서, 중국은 문자 그대로 용이 지배하는 미신대국인가 싶을 정도이다.나는 중국이란 나라가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에 거의 다 왔을 때 전신자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조금 전에 이문 박사의 연락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사회” 출판발행죄담회가 국가기관에 알려지면서 ‘정협보(전국정치협상회의 관보)’에서 특별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는 소식이다. 나는 속으로“내가 뭐 특별난 사람도 아닌데...”하면서도 웬지 기분이 좋아졌다.사람이 남으로부터 인정 받는다는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중국에 있어서 “전국정치협상회의”는 중국을 중국답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최고도의 정치기술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중국 주요기관의 언론매체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점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때 얼핏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단어가 바로‘협상’이란 단어였다.“협상이란 무엇인가?”나는‘협상’이란 용어를 무척 중시한다. 특히 5년전에 「Win-Win Paradigm」이란 책을 발간한 이후 가장 중요시 해왔던 전문 용어가 바로 ‘협상’이었다. (최근에 들어와 내가 줄 곧 강조하고 있는) 상생과 협동과 융합을 지향하는 통합윤리 시대에 즈음하여‘협상’이라는 용어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Key Word가 되고 있다. 표현이 좀 지날칠지 모르지만, (사람이 죽고사는 문제를 빼 놓고는) 이 세상만사가 다‘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요즘 세상은‘협상’의 성공여부가 시장경제에서의 승패를 가늠하는 지렛대로 평가되고 있다. 모임에 가서 가끔 농담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이 세상에서 타협이 안 되는 두 부류가 있다. 그건 누구일까요?”다들 이러쿵저러쿵 대답을 늘어놓지만 맞추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나는 천연스럽게 씩 웃고는 이렇게 대답한다.“하나는 테러집단이고, 다른 한 부류는 교수들이지요.”사람들이 왁자지껄 웃는다. 사실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테러단체와 교수사회는 독선적이고 자기중심논리에 강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란 나라는 자고로 이 지구촌 사회에서‘협상’을 가장 잘해온 국가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것이 정복과 지배논리를 위한‘협상’이란점이 오늘날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상생논리의 협상론과 그 개념이 다를뿐이다. 아무튼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同化시키는 탁월한 협상의 능력을 갖춘 민족이 바로 중화민족인 것이다. .... ...... ...양쪽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창의적인 대안(creative option)’이 아니겠는가. 좋은 협상가란 상대의 요구(position)가 아닌 욕구(interest)에 초점을 맞춘 후 나와 상대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께서 좋은 협상가가 되어서 세계를 그들의 품안에 끌어안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평화대국의 지도자들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나는 비로소 며칠 전 서우두(首都)공항의 제 3터미널에 첫발을 딛고 북경에 입경했을 때 느꼈던, 중국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복합된, 자존심을 긁는 묘한 굴욕감 같은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마음에 차 올랐다. 비로소 중국을 대응하고 경쟁할만한 용기와 지략이 생겨났다. 그것은 결국 중국과 한국의 욕구(interest)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상생논리의 협상 즉, ‘창의적인 대안’을 찾아내서 그것을 선제공격하듯 과감하게 제안하고 베팅(betting)하는 ‘우정있는 설복의 능력’임을 깨닫게 되었다. 제 3터미널 신청사에 도착한 후 박혜명 비서를 돌려보내고 나서 우리 내외는 여유있게 출국 수속을 밟았다.그러고나서 옷가게에 들려 손자들(준혁, 준호)과 손녀(지민)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세 아이에게 똑같은 디자인의 2008년 북경올림픽 휘장과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구입했다. 아이들의 옷을 고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북경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는 중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 발전을 위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리고 또한 이 일은 21세기 세계역사를 ‘삼족정립론’의 기초위에서 새롭게 구성하는 대 서사시의 서막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꿈꾸고 희망한다.”* 본문은 편집자의 부득이한 삭제편집으로 상하문맥이 통하지 않는부분이 생겨 해독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필자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관리자
7    Ⅷ. 함께하는 정신 댓글:  조회:2923  추천:100  2008-07-12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Ⅷ. 함께하는 정신만찬을 끝낸 후 나는 가까운 지인 몇 분들을 모시고 勺園호텔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2차 모임(뒷풀이)을 가졌다. 송성유 교수(북경대), 황유복 교수(중앙민족대), 전신자 교수(연변대), 미국에서 온 김유경 사장, 아내 박재숙, 나 그리고 ‘中央人民广播电台(CNR:China National Radio)'의 이영실 기자가 동행했다.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셨던 황유복 교수께서 CNR 인터뷰를 하도록 배려해 주셨다. 커피숍이 시끄러워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자가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기자는 우선 내가 어떻게해서 연변과기대 설립과 운영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만 17년이 넘도록 학교 사역에 종사해 오셨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인터뷰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김진경 총장(연변과기대)께서 책을 추천하면서 쓴 글의 내용을 요약해 줌으로서 그 답변으로 삼았다. (* 참고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추천사’전문을 게재한다.)『 내가 이승률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북경 아시안게임 직전인 1990년 10월 초순이었다. 당시 나는 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에 중국 젊은이들을 위한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던 때였다. 국가지도자의 아들을 만나 대학 설립에 필요한 조언을 구하고자 갔던 자리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조경·토목 및 골프장 건설사업을 주로 해온 기업인으로, 얼마 있지 않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질 것을 알고 산둥성 칭다오에 국제골프장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왔던 참이었다. 약속이 중첩된 것을 알자 그는 내게 먼저 대화하도록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나는 국가지도자(楊尙昆)의 아들에게 앞으로 중국이 발전하려면 과학기술 부문에 주력해야 될 것이며 국제화교육을 통해 인재를 배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대학을 세우려고 하니 당신이 좀 나서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승률회장은 나의 이런 말을 옆에서 경청하면서 내심 무엇인가 크게 느낀 바가 있었던 것 같다. 회의가 끝나고 헤어질 무렵에 그는 내게 다가와서, 추진하고 계시는 일이 너무 귀하다고 격려하면서 서울에 나가게 되면 꼭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말을 단순한 인사말 정도로 듣고 잊어버렸으나, 그 후 열흘 쯤 지나 내가 서울 사무실(연변과기대 후원회)에 볼일이 있어 갔을 때, 그는 나를 다시 찾아와 대학설립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 후 그는 중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려고 했던 계획을 접고, 오직 한마음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에 필요한 인재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교육 사업에 투신하여 지금까지 만 16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와 더불어 함께 일하고 있다.그는 내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때 김 총장님과의 만남이 제 인생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통해 자라나는 중국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총장님과 교수님들을 보면서 저는 많은 것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고귀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저는, 섬김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면서 한걸음씩 정진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보람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나날이 오늘의 저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부족한 사람을 총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늦은 나이이지만 중국에서 학위를 하게 된 것도 다 이와 같은 섭리의 결과가 아닐까요? 민족을 사랑하고, 연변과기대를 섬기고, 지역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도와보겠다고 애쓴 노력과 신념이 오늘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준 힘이었다고 믿습니다.”그렇다. 그는 참으로 순수하고 강인한 심령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개척자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성품과 가치관이 없었다면, 오늘 어떻게 이와 같은 저작이 가능했겠는가? 나는 실로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코자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박사학위 논문을 보강하여 완성도가 높은 전문서적으로 출간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상스럽다. 그리고 조선족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경륜을 갖고 한·중 관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북아」라는 큰 틀을 통해서 조선족들이 국제사회에 나가 실력 있는 중개자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현황을 분석하고 체계적인 방안을 제시한 점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한 이 책은 본교의 대외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산학협력과 대학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가운데, 바쁜 시간의 틈을 내어 오랫동안 성실히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집필된 저서로서 그의 노력과 결실이 더욱 값지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올해 개교 1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학교에 주어진 귀한 영예이며, 나아가 동북아 국제협력의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많은 중국 지식인들과 한국의 전문분야 관계자들에게 주어지는 큰 선물이 되리라고 믿는다.이승률부총장과 함께 해온 지난 16년간의 시간은 한마디로 선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믿음과 우정의 결합을 통해 드러나는 참된 소망의 세월이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길을 계속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다시한번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의 출간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강호제현에 추천하는 바이다.』이영실 기자는 또 질문했다. “이 박사님께서는 조선족사회를 중시하고 또 매우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계시는데, 저도 조선족의 일원이지만 과연 조선족들이 그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나는 그를 한참 빤히 쳐다보다가 잉크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는 신간서적(“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을 뒤적거려 가면서, 조선족 사회의 형성과 조선족 문화의 특성, 개혁 개방 후 한중 경제협력과 주변국가 진출에 대한 현황, 그리고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에 즈음하는 조선족 사회의 문화기능과 미래 진로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 등을 제시하면서 조선족 사회가 갖고 있는 복합문화적 자질과 특성이 이 시대가 추구하고 있는 통합윤리를 위해 얼마나 긴요하고 적합한 기능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족 사회의 잠재력을 교육과 인재양성을 통해‘집단지성’으로 승화시켜나간다면 그 누구보다 훌륭한‘21세기 동북아 맨’이 될 수 있다고 힘써 답변해 주었다. 이 기자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과연 누가 중국 안에서 소수민족인 자신들을 위해 이런 비젼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하는 감동의 빛이 스쳐지나는 것을 보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이 기자는 조선족 젊은 세대를 위해 남기고 싶은 말을 한가지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나는 「희망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동북아의 미래는 동북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중·일 삼국이 새로운 공동체적 대안을 갖고 서로 벽을 허물고 상생, 협동, 융합의 신문명 시대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그 흡인력이 아세안을 이끌고(3+Asian),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동을 규합하는 Fusion Power가 되어서 마침내 ‘아시아 합중국(*중앙일보 2007년 12월 6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해외칼럼“아시아 합중국을 꿈꾸며”참조)’에까지 이르는 새로운 역사창조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조선족 청년들은 이와같은 희망의 역사관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서 한·중·일 삼국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매체집단이 되어 자신들의 선조가 처해왔던 변경 소수민족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광활한 새 시대의 「블루 오션」으로 나아 갈 준비를 하라. 그곳에 Future Vision의 새 길이 있다. I can do 정신, 즉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그 길로 나아가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좋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을 끝마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커피숍으로 내려갔더니, 기다리고 계시던 분들이 중국차를 마시며 조용히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와 이영실 기자도 함께 끼어들어서 얘기하다보니 인원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남녀 두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여성들은 주로 중국의 음식문화, 소수민족의 생활관습의 차이와 자녀교육 쪽으로 얘기하는 것 같았고, 남자들 셋은 어찌어찌 얘기하다보니 결국 또 남북문제와 동북아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로 접어들고 말았다. 황유복 교수께서(어제 3월27일에 있었던)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의 남측당국자들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후 대남 협박을 가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도 궁금해 했지만, 이에 대응하는 북측 태도와 대남전략에 대해서 더 많은 궁금증을 나타내셨다. 내가 중국에 온 뒤 터진 사건이라 전말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동안 관망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던 북한이 드디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물리적인 실력행사를 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황 교수님께서는 이런 일로 인해 평양과기대의 건축과 개교 준비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어린 질문을 하셨다. 나는 평소에 가졌던 경험과 신념을 토대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 드렸다. 평양과기대는 단순한 남·북간의 교류협력 프로젝트가 아니라 중국건설기업이 도급을 맡아 공사를 하고 있고, 세계 여러 국가 출신의 우수인력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조야에서도 미국 시민권자인 김진경 총장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모럴 서포터(Moral support)를 하고 있는 등 국제대학으로서의 기능과 명분을 고루 갖춘 대학이기 때문에 남북간의 갈등구조를 뛰어넘는 치외법권적 교육특구란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또 나는 하버드 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의 이론을 인용하여 앞으로 남북간 문제가 국가차원의 당국자들끼리는 Hard Power 개념의 갈등과 협상을 반복하며 대치상태로 계속 치달을지 모르지만, 이럴수록 교육, 문화, 경제, 기술 등을 내용으로 하는 Soft Power의 교류협력이 NGO단체 또는 민간기업들에 의해 여러 분야에  걸쳐 꾸준히 소통되는 기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줬다. 이렇게 되는것이 남북간 뿐만 아니라 북미간, 북중간, 중미간, 북일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북한 핵문제 해결에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핵문제에만 급급하고 있는 6자회담의 추이도 결국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과 경제개선조치 및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Hard Power와 Soft Power의 포괄적인 협력 차원에까지 이를 때 비로소 해결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대화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너무 과열된감이 없지않아 나는 남북문제를 풀기위해서라도 동북아공동체 협의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필요가 있다면서, 화제를 북경대 송성유 교수께서 평소 주장해 왔던 ‘삼족정립론’으로 돌렸다. ‘삼족정립론’이라 함은, 좁게는 중·한·일 3국이, 넓게는 미주(미국중심),EU,동아시아(중국중심)가 문자 그대로 삼족이 정립된 상태와 같이 국제협력체를 구성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세계 평화발전과 상호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였다.이 논리는 중국 안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차츰 국제협력의 필요성과 다자안보체제를 지향하는 국제질서의 향방을 고려할 때 상당한 수준까지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범용론(凡庸論)이 되리라 판단된다.평소 과묵했던 송 교수께서 이‘삼족정립론’을 논할때는 특유의 쾌걸형 웃음소리와 함께 안공(眼孔)이 활짝 열리는 표정을 짓곤한다. 산동성 출신인 이 분은 나와 전신자 교수 앞에서 가끔 ‘나도 조선족이 될 뻔 했던 사람’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만큼 정서적으로 한반도 사람과 닮았고 또 한국인을 좋아하셨다. 몇 년전에 소위 ‘동북공정’으로 세상이 시끄러울때, 송 교수님께서 조선일보에 인터뷰한 기사가 크게 보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당시‘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 「중국고구려사」를 펴내고 그 연구에 2002년부터 3조원을 투입하여 한중간에 소위 "동북공정"으로 시끄러울 때 중국 주류 사학자인 송 교수께서는‘역사 당시 환경에서 역사를 복원하는 역사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고구려는 낙랑, 대방, 현도, 요동군까지 자신들의 치하로 삼았다.”고 논술하여 한국의 입장을 비호하는 듯한 견해를 밝혔다. 이 바람에 중국 안에서 비난과 위협을 받은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역사는 역사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역사에 개입되는 민족주의나 정치적 의도를 배격한, 참으로 진실된 정통주의 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신 분이다.우리들의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옆에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고 있던 여성들이 이젠 커피숍 마감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일어나자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시간이 밤 10시가 휠씬 지난것을 알았다. 우리들은 송 교수님의 건의대로 여러 가지 동북아 국제학술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을 한마디로 “함께하는 정신”이라 정해 놓고 이를 기념하는 책을 공동집필하자는 의견의 일치를 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협의는 사실 5년전에 내가 전신자 교수로부터 송 교수님을 처음 소개 받았던 자리에서 교배주를 들면서 약속했던 일인데 그동안 각자 여러 권의 저술을 냈지만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반성어린 재 건의였다. 나는 지난해 발족한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통해서 한·중·일 삼국의 관계구조를 공존과 상생의 통합윤리를 바탕으로하는 윈윈 패러다임(Win-Win Paradigm)의 초국가주의 연합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이 공동집필서를 써 볼 생각이다. 커피숍을 떠나,  勺園호텔의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서, 와이프와 함께 손을 잡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온 종일 출판좌담회 일로 바쁘고 긴장했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홀가분한 심경으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흐린 날씨의 검은 하늘에 별이 보일리 없지만 내 가슴속에는 별이 떠 올랐다. 임마누엘 칸트에게는 순수이성을 지향하는 도덕률의 별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 속에 떠오르는 별은 꿈과 우정을 노래하는 희망의 별이었다.이런 날을 두고 “원더풀 데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못난 바보가 어디 있으랴, 북경대의 밤은 깊어가고, 아내를 품은 나의 사랑도 깊어간다. 가슴으로 더 없이 아름다운 별을 헤아리는 밤이었다. (계속)
6    Ⅶ. 조선족 사회 대망론(待望論) 댓글:  조회:3032  추천:131  2008-07-09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Ⅶ. 조선족 사회 대망론 (待望論)3시간에 걸쳐 진행된 출판좌담회의 주요 맥락은 한마디로, 동북아 국제협력에 있어서 유능한 매체집단으로 등장한 조선족 사회를 보다 더 창의적이고 생산성있는 단계로 이끌어 내어 한·중간, 북·중간, 중·일간의 공동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일어와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선족 사회의 복합문화력을 장차 도래할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징검다리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으로 육성하자는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중국의 교육문화 핵심기관인 북경대에서 이러한 논의가 진지하게 토론되고 협의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민족애’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애’는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동시에 뿌리의식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감정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닫힌 민족주의’가 결국 순수한 민족애로 끝나지 않고 악독한 국수주의로 변질되어 그 민족 자신을 멸망의 길로 이끈 사례들을 우리는 세계역사를 통해 뚜렷이 알고 있다. 독일의 파쇼집단이 그랬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랬다. 내가 조선족사회에 관한 책을 쓰면서 줄곧 주장한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윈윈 패러다임(Win-Win Paradigm)의 정신이었다. 즉 Open Mind & Network, Global Standard, 그리고 Positive Sum Game 에 임하는 정신자세와 태도였다.오늘날 국제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세계화’와 ‘지역화(블럭화)’의 이중적 갈등구조를 풀어가는데는 「세계」와「지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의 기재(메커니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람의 지각과 상호관계 속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동북아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시 받을만한 집단 중에 하나가 바로 중국 조선족 사회란 것이다.150여년전, 조선조말기 탐관오리의 학정에 못 이겨 중국에 건너온 조선족 선조들의 농업 이민사를 한번 살펴보라. 그리고 그 이후 일제시대의 항일독립투쟁과 해방 후 중국공민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변경지역 폐쇄적인 사회 구조속에서 숱한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면면히 지켜온 민족문화의 정수를 한번 맛보라. 이런 조선족 사회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과 한중수교(1992)에 힘입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도처로 뜨거운 용암처럼 분출되어 흘러가고 있는 도전의 역사 - 그 진취적인 개척의 기상을 다시한번 마음에 되새겨 보라. 이것이 바로 오늘날 조선족이라는 인간 군상을 통해 새겨보는 한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겠는가.이제 21세기는 소위 신문명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에 와 있다. 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트가 말하는 ‘탈(脫)중심화’현상이 보편화 되고 있으며, 각 국가간에는 중층성 다공화(重層性 多孔化)현상 (일본 와세다 대학의 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郞)교수가 쓴 용어)이 나타나면서 민족국가적 경계의 개념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트랜스네셔널리즘(Transnationalism, 초국가주의)을 이념으로 초국가연합체(예:EU)를 지향하는 새로운 문명사회가 도래하고 있다.이와같은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나는 ‘코스모폴리탄 메트릭스’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요즘 중국과 일본사이에 ‘넛 크래커’처럼 끼어있는 한반도의 정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 일수록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략과 대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이런 (꿈같은) 생각을 많이 해본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남북분단과 중국 및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의 현실이 매우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경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중국 및 일본을 포함한 주변 4대강국을 적극 대응하는 방안으로 북한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6자회담 당사국간의 합의를 기초로하여 북한을 불가침 중립화지역으로 선포하고, 이를 토대로 주변 4대강국들로 하여금 북한의 일정지역(신의주, 남포, 개성, 금강산, 원산, 청진, 나진 등)에 아일랜드 형 투자방식으로 무관세, 노비자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협력특구를 조성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한다. 그런다음 UN(반기문 사무총장)과 협의하여,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독립국가(CIS)등 과거 공산권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에 설립했던 유럽개발은행(EBRD)와 같은 동북아개발은행(가칭)을 설립하여, 북한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포함하는 전체 동북아 지역의 경제발전 및 정치안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기초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남북한 당국에서도 「남북경제협력청」과 같은 특별기구를 신설하여 북한 전 지역을 대상으로 경제개선조치 및 산업발전을 위한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가는것이 지금의 국제정세 흐름을 활용하고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이런 논의와 함께 중국과 일본을 한반도의 양쪽날개로 매달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을 병행 기획토록한다. 우선적으로 동북아FTA 및 통합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3통(통행, 통신, 통관)을 위한 교통인프라 건설에 치중하여, 1차적으로 한·일해저터널을 건설하여 TCR, TSR, TMR 등과 같은 기존 북방노선과 연계하는 한편, 2차적 대안으로 황해도(장산곶)-경기도(백령도)-산동성(위해)를 연결하는 한·중해저터널을 건설하여 한·중·일 3국이 합동으로 환황해 경제권을 개발, 세계적인 경제협력구역으로 발전시킴으로서 동북아 국제협력의 시너지를 갖고 오게 할 뿐 아니라, 한반도가 자연스럽게 이러한 경제공동체의 몸통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것이 또 하나의 창의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의를 자꾸 하다보면 북한 핵문제와 남북한 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중·일 3국간에 빚어왔던 과거사문제, 영토분쟁, 무역수지 역조 등과 같은 모든 현안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On Stop Solution’을 갖추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나는 이것을 ‘도랑치고 가재잡기’식 전략이라고 부른다.만일 이러한 발상이 꿈이 아니고 실제상황으로 진전된다고 가정해볼 때, 이런 시대적 변화의 과정에서 완충적이고 중간매체적인 역할을 감당해 줄 집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중국 조선족 사회가 바로 한·중·일 3국간의 이질문화와 남·북간의 갈등을 정화시키고 조정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매체집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아직은 비록 인구수가 적고 세가 약한 집단이지만, 장차 인재양성과 국제교류 등으로 왕성하게 거듭날 수 있다면 조선족 사회는 초국가주의 신문명시대를 준비하는 ‘코스모폴리탄 매트릭스’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이런 의미에서 나는 (책에서도 결론부문에 썼지만) 조선족 사회를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을 활성화시키고 맛깔스럽게 만드는 소금과 같은 집단이 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북경대「영걸교류중심」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행사는 이와같은 여망을 갖고 진행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성황리에 잘 마쳐졌다. 한족, 조선족, 한국인 등 세 부류가 모였으나 우리들은 모두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협력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고, 또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 한·중·일 3국간에도 모두 유익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저녁 6시경 좌담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비닐로 된 우의를 덮어 쓴 채 부근에 있는 구내 대형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함께 나누었다. 참석자들 중엔 멀리 LA에서 오신 김유경 사장도 끼어 있었다. 사업차 한국에 왔다가 북경에 볼 일도 있고 또 축하도 해줄 겸 겸사해서 왔노라고 했다. 너무나 반가왔다.이분은 미주「한국일보」의 칼럼니스트이며, 영어교육사업(campwww.com) 전문가이기도한데, 최근에 평양과기대 건립을 위해 자진해서 「Friends of PUST」라는 인터넷 모금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날 만찬자리에서 나는 식사도 맛있었지만, 술의 향기가 좋아서 오랜만에 대작을 즐겼다. 둥근 테이블을 돌려가면서 한상에 둘러 모여 식사를 하고 대작을 하게 되니 그 분위기는 문자 그대로 한마음 밥상 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중국에 올때마다 가장 부럽게 여긴것들 중에 하나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이런 둥근 테이블에 둘러 모여 격의없이 식사하고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중국식 민주주의이고 생활규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북아 3국이 하루 빨리 이렇게 한상에서 밥 먹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업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면서 그날 만찬을 기분 좋게 즐겼다.(계속)
5    Ⅵ. 출판기념 좌담회 댓글:  조회:2615  추천:107  2008-07-08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Ⅵ. 출판기념 좌담회북경대 勺園호텔의 아침은 근엄할 정도로 조용했다. 하늘이 흐렸으나 군데군데 만개한 목련, 매화, 박태기, 개나리 등의 꽃나무들이 봄을 일깨워 주고 있는 듯 했다. 오전에 휴식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쉬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점심시간에 이문 박사(중국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 주임교수)께서 오셔서 함께 식사를 했다.그는 언제봐도 호쾌하고 늘 웃는 인상이다. 내가 2005년에 한국에서 「연우포럼」에 올린 글들을 모아 낸 책의 제목이 “윈윈 패러다임”이었다. 그 책을 “共生時代”란 제목으로 중문판을 내도록 결정적 역할을 해준 분이 이문 박사였다. 한·중·일 3국이 FTA(자유무역협정)및 통합시장으로 나아가는 공존과 상생의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자국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발전에 도움이 되고, 또한 이것이 중국 후진타오 정부가 추진하는 신 외교정책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될 것이라는 나의 주장을 높이 평가해준 결과였다. 이번 경우에도 중국 외교부 소속인 「세계지식출판사」에서 중국 변경 소수민족 가운데 매우 민감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는 조선족사회를 다룬 책자를 발간할 수 있도록 협조해준 일은 나로서는 평생 잊지못할 귀한 일로 여겨진다. 또한 이 책은, 그동안 17년간 조선족사회를 위해 사역해왔던 모든 노력을 집대성하는 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내겐 더없이 소중한 일로 인식된다. 나는 그날 점심시간에 이문 박사께서 출판사로부터 직접 갖고 온 책을 처음 받아들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가슴이 부르르 떨리는 듯한 감동을 맛보았다.“원더풀 데이! 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가!”책을 쓴다는 일 자체도 그렇거니와, 일개 기업인으로서, 특히 외국에서 만학을 통해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는 점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대견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여기서 나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동안 자료수집과 번역 및 교정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오후 3시부터 북경대 안에 있는 컨벤션센타, 즉「영걸교류중심」의 프레스홀(Press Hall)에서 북경대 동북아연구소가 주최하는 “21세기 동북아협력과 「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출판발행좌담회”가 열렸다.북경대 동북아연구소는 내가 중앙민족대학에서 학위를 시작했을 때, 전신자 교수께서 연구소 소장되시는 송성유 교수를 소개해준 뒤 객원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내 동북아 관련 중요 정책연구기관이다. 좌담회 식장에는 중국사회과학원, 북경대, 인민대, 중앙민족대 등에서 다년간 국제관계와 소수민족문제를 다뤄 온 전문학자들과 주요 기관장, 기자단, 축하객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 날 있었던 좌담회 관련 취재보도를 일부 인용함으로서 행사 진행성과를 대신코자한다. 『 “21세기동북아협력 및 <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 중문판 출판발행좌담회”가 3월 28일 북경대학 영걸교류센터 프레스 홀 (Press Hall)에서 열렸다. 북경대학 동북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번 좌담회에는 국내외 100여명 전문가 학자들이 참석, 21세기 동북아지역 협력이 직면한 문제와 도전, 조건과 메커니즘 및 <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의 학술적 가치와 현실적 의의에 대해 토론했다.<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는 한국의 사업가이며 연변과기대 부총장인 이승률박사가 2005년 <공생시대: 동북아협력지역발전 새 구도>를 출간한 이래 내놓은 또 한 부의 학술저서이다. <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는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의 도래를 대 배경으로 삼고 중국 조선족 사회와 문화의 형성과 특징 등을 상세히 규명하면서 개혁개방 이후 중화민족대가정의 구성원으로서의 조선족 사회에 일어난 심각한 변화, 조선족 사회가 중국의 발전과 한반도 남북간의 친선관계 및 협력에 미치는 역할에 대해 분석하면서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한반도와 중국의 변연에 위치해있는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200만여명 밖에 안되지만 한반도 문화와 중국 문화를 융합한 이중문화의 성격을 소유함으로써 이 두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소금과 같은 집단이라고 보았으며, 한중 관계의 발전과 남북한의 통일 및 동북아 국제협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개자인 동시에 아름다운 조해자로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중앙민족대학 법학박사이며 한국 반도환경개발㈜ 회장인 이승률박사는 중국 연변과기대 부총장을 맡고 있으며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기획단장, 북경대학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한민족공동체 네트워크인 연우포럼 명예회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이사장 등을 맡아 동북아의 결속과 미래발전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한 친선관계 발전에 진력하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동북아 전문가로 인정받아 기업초청 세미나, 국제학술대회 등에 관련 강의 및 토론 패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리문(李文)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는 북경대학 동북아연구소 송성유(宋成有)소장과 중앙민족대학 황유복교수의 기조연설에 이어 중국서부대개발위원회 최룡호 비서장, 중국국제과학평화촉진회 이현덕 부회장, 재중국한국인회 박제영 부회장 등이 축사를 했으며 세계지식출판사 특약주필 림창(林昶)교수가 세계지식출판사 축하편지를 낭독했다. 특히 이번 <동북아 시대의 조선족 사회> 중문판 출판은 중국의 세계지식출판사에서 국제문제총서 중 조선족 관련 서적으로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 소수변경민족(조선족) 사회를 다룬 책을 선정, 출판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   박복선 기자 (흑룡강신문) 』(계속)
4    Ⅴ. CBCM 사역의 길 댓글:  조회:2985  추천:96  2008-07-08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Ⅴ. CBCM 사역의 길 아내가 오후 5시경 도착하는 비행기로 북경에 왔다. 몇 가지 볼일을 보기 위해 내가 하루 일찍 북경에 온 셈이다. 인민대학을 떠나 숙소인 쿤륜호텔에 돌아 와서 맡겨둔 짐을 찾은 후, 기다리고 있던 박혜명(연변과기대 북경주재원 비서)과 함께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로 갔다. 개항 첫날이었던 어제보다 입국수속이 훨씬 빨라져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숙소를 북경대 안에 있는 勺園(SHAO YEON)호텔로 예약해 두었는데, 가는 도중에(매주 목요일 저녁에 개최되는) 북경CBMC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왕징(望京)에 있는‘전주관’식당으로 먼저 갔다.오랫만에 모임에 참석해서 그런지 낯선 얼굴들이 많았다. 그러나 다들 반갑게 맞아 주었고, 금방 친숙해졌다. 한 믿음 안에서의 동역자라는 개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CBMC가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일거다. 중국에서 한인 CBMC가 공식적으로 처음 창립된 것은 1994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기독실업인회 서울영동지회의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연변과기대 재단이사로서 건축지원 업무를 위해 연길을 자주 왕래하던 가운데 그때 연길에 사업차 오신 한국분들과 교분을 쌓을 기회를 많이 가졌었다. 그때 만나던 분들을 중심으로‘기도회’모임을 시작한 것이 마침내‘연길한인CBMC 창립’이라는 대사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 기구는 명실공히 중국 최초의 기독실업인회로  공식 인정받았다.그 후 한인 CBMC는 청도, 북경, 천진, 심양, 상해, 단동, 대련, 마카오 등지로 확장되면서 현재 중국 전역에 40여개의 지회로 발전해 있다. 그리고 전장(前章)에서 밝힌 것과 같이 2000년에 들어와 중국인 청년기업가들을 인도하여 마침내 2001년에 중국 최초의 중국인 기독실업인회를 구성하게 되었고, 이후 각 대도시 지역을 거점으로 중국 전역에 20여개의 지회가 창립, 육성되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 복음을 전하자’라는 표어를 내걸고「성경공부와 기도회」를 메인 프로그램으로 삼아 진행하고 있는 이 기독실업인회(CBMC) 사역은, 1930년대 미국 시카고 대 공항때 무너진 경제 잿더미 위에서 크리스챤 기업인들이 함께 손잡고 경제재건을 위해 일으킨 기도운동이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 후 이 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한국에는 6·25 동란 시 미 군사고문단 세실 힐(Cecil Hill)대령으로부터 당시 국회 부의장이셨던 황성주 박사에게 전수된 것이 오늘날 한국기독실업인회의 첫걸음이 된 것이다. 현재 이 기구는 세계 70여 개국으로 확장되어 국제 기독단체로는 가장 큰 단체들 중의 하나로 발전했으며, 한국CBMC는 열성적이며 진취적인 한국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세계CBMC 2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필자로서는 중국에 최초로 기독실업인회를 전래, 창립, 육성하는 일에 선도적 역할을 감당한 것을 개인적으로 큰 영예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나중에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2000년), 카작스탄(알마티,2000년), 터키(이스탄불,2001년)지역에까지 CBMC 실크로드 미션 벨트를 형성하도록 이끌어간 것을 무한 한 기쁨으로 여긴다. 이러한 CBMC 사역과 더불어 중앙아시아(CIS)와 연해주 지역에 있는 고려인 학생들을 매년 10여명씩 연변과기대에 유학 올 수 있도록 조치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잘한 일로 기억된다.아무튼 CBMC 사역은 연변과기대 사역과 더불어 내 인생 후반전에 있어서 두 개의 큰 기둥과 같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연고로 중국의 수도 북경에 있는 CBMC 회원들의 안부와 형편을 돌아보기 위해 그 날 저녁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공식 모임명은‘북경CBMC 아름다운 모임’이었다.「좋은 아침」이라는 월간 잡지를 발행하는 김구정 사장의 사회로 경건회가 시작되었으며 북경공업대학 건축학과 교수이신 김준봉 박사의 기도에 이어 상해에서 초빙 강사로 온 이경섭 중앙위원장께서 ‘나와 CBMC'라는 제목의 강의를 해주셨다.광고 시간에 우리 두 내외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인삿말과 더불어 12년전에 북경한인CBMC를 창립할 때의 경과 과정을 회고한 뒤, 특별히 북경에 있는 한인 CBMC회원들이 중국인 CBMC 지도자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Back To Jerusalem"을 향한 실크로드 미션에 힘을 모아 주기를 당부했다. 모임이 끝날 무렵에 연변대학의 전신자 교수께서 밤늦게 연길로부터 북경공항에 도착하여 우리가 있는‘전주관’식당으로 찾아왔다. 아내와 전교수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북경한인CBMC 회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한 뒤, 북경공업대의 김준봉 교수께서 우리 일행 세 사람을 북경대 안에 있는 勺園호텔까지 태워 주었다.김 교수는 연변과기대 건축학과 교수로 6년간 근무했던 나의 동료이다. 북경으로 사역지를 옮겨 북경공업대에서 건축학과 교수로 임용된 후 사스(SARS)가 창궐했던 2003년에 많은 사람들이 북경을 떠났지만 끝까지 남아서 불안에 떨고 있던 중국인들을 돌보며 용기 있는 사랑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영웅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 후 중국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도 여러 권 집필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연우(連友)포럼 회장으로서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의 선봉장 역할을 감당해 주고 있다.(* 연우포럼은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는 김연우 포럼장을 중심으로 시작된 인터넷 칼럼 공동체이다. 나는 김 포럼장을 도와 2003년 서울에서「연우포럼」을 창립한 이후 3년동안 초대 회장직을 수행했으며, 현재는 한국일보 임철순 주필이 2대 회장직을 맡고 있다.) 북경대 勺園호텔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 받은 후 우리 두 내외와 전신자 교수는 밤이 깊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었다. 특히 전 교수는 내게 은인과 같은 인물이다. 내가 연변과기대 사역을 하는 가운데 만학도로서 북경 중앙민족대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그때 지도교수이신 황유복 교수께서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나를 도와주라고 추천해 주신 분이 바로 전신자 교수이다. 전 교수는 인민대 박물관학과를 졸업한 후 연변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물관 주임교수로 오랜 기간 동안 봉직하다가 2003년에 중앙민족대 박사과정(민족학계)에 입학한 나의 동기생이었다. 나는 전 교수의 도움을 받아 레포트와 학위논문 자료를 준비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졸업 후에도 동북아 관련 국제세미나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이제 비로서 밝히지만)내일 북경대 「영걸교류중심」에서 최근 「세계지식출판사」에서 발간한 졸저“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출판기념좌담회가 있을 예정이다. 이 저서는 중앙민족대 학위논문을 기초로 하여 지난해 가을 출간했던 한글판 전문서적“동북아시대와 조선족(「박영사」발행)”이라는 책의 중문판에 해당된다. 전 교수께서는 이 중문판 출판기념좌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서부터 이 곳 북경까지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그의 남편되시는 손춘일 교수도 지금 연변대 민족연구원 원장으로 계시면서‘조선족 이주사’를 집대성한 인물로 학문적 성가를 이루신 분이다. 이 두분들과 우리 내외는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의 벽을 넘어 아름다운 우정의 관계를 지속해온, 집안 친척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전신자 교수를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 대화의 시간이 밤이 깊도록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날 하루는 내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원더풀 데이」였다.(계속)
3    Ⅳ. 새로운 동지들 댓글:  조회:3562  추천:128  2008-07-06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Ⅳ.  새로운 동지들 새벽 기도회를 마친 후 우리 일행들은 북경에서 한국인들이 집중 거주(약 1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는 왕징(望京)이란 곳으로 가서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나서 8시까지 숙소인 쿤륜(崑崙)호텔로 돌아왔다. 황사섭 원장은 지방 출장을 갔기 때문에 못 왔지만, 조찬 시간에 다른 또 한분의 조선족 목사님을 미리 초청해 두었었다. 김성(Daniel Jin)목사는 청화대 출신으로 자동제어 부문을 전공한 영재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2000년 여름이었다. (앞장에서 언급했던) 김설송 사장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청화대 학생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통해 만났었다. 특히 김성 목사는 나의 부탁을 받아들여 2000년 가을부터 중국인 청년기업인들을 규합하여 중국 최초로 중국인 기독실업인회(CBMC)를 구성하는 일에 기초역할을 맡아 주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전도사가 되었으며, 3년전에 미국  LA 풀러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가 1년전에 귀국한 후 현재 북경에서 도시부흥교회(CRC)를 담임하고 있다. 나는 그를 5년만에 만나보게 되었다. 대만 출신인 부인과 함께 온 그를 힘껏 끌어안아 줌으로써 나의 우정과 사랑을 한껏 표현했다. 두 내외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연변과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을 소개해 주었다. 식사 후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그의 지나온 과정과 포부를 자세히 얘기들었다. 그의 꿈은 중국 청년들과 기업인들을 복음화하여 그들과 함께 ‘Back To Jerusalem’으로 나아가는 국제 선교사역이 목표였다. 사역의 푯대가 분명했고, 전략과 열정을 겸비한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실크로드 미션의 꿈을 위해 함께 동역할 것을 다짐하며 뜨거운 기도를 드렸다. 중국 여러 도시에 진출하여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 CBMC 인맥들과 현지 중국인 CBMC 인력들이 함께 뜻을 모아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 선교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새 길이 열릴것만 같은 희망이 솟구쳤다.“원더풀 데이”란 말이 저절로 가슴속에 메아리친다. 김성 목사 내외가 돌아간 다음 나는 또 새로운 손님을 만났다. 한국인 여성법학자로서, 중국 인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마친 후 현재 인민대학 법학부에서 물권법과 지적재산권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는 김현경 교수였다. 11년째 북경에 살고 있다는 김 교수는 중국에 여행을 왔다가 인민대학에 정착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면서 중국이 마음에 들고 생활하기에 무척 편한 사회라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중국어도 능통해서, 내가 듣기로 한국인으로서 김 교수만큼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창했다. 점심 식사를 호텔 부근에 있는 ‘서라벌’식당으로 가서 하기로 했다. 김 교수가 한분을 더 초청해도 좋으냐고 물어서 그러자고 했다. 주 중국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정영옥 채구관(采購官)께서 식당으로 오셨다. 그 분은 원래 한국 조달청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국비로 중국인민대학에 유학와서 석사 공부를 마친 후 귀국했다가 얼마 전에 다시 주 중국 한국대사관으로 부임한 고위직 여성이었다. 나는 두 분의 뛰어난 커리어 우먼들을 모시고 점심을 먹는 행운을 가졌다. 그렇다고 내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미리 준비해간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브로셔를 내 놓고, 식사 도중 짬짬이 학교 홍보를 위해 열띤 강의(?)를 했다. 연변과기대의 실사구시적인 교학시스템, 교수들의 헌신, 학생들의 높은 학력수준, 정직운동과 인성교육 및 맞춤 실기교육, 졸업 후 해외 유학 장려, 중국 내 대도시 취업(100%) 현황, 조선족 사회에 미친 선한 영향력(등대와 같은 역할) 등에 대해서 설명했다. 또한 평양과기대 설립 허가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 북한 내 교육 특구로서의 각별한 의미, 부족한 재정 가운데서도 한국교인들과 미국 교포사회가 꾸준히 지원해서 마침내 14개 건물이 준공단계에 들어가 있는 건축 현황, 그 동안 북한 미사일 발사 및 핵문제 등으로 남·북간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대학 건설현장은 별다른 지장 없이 진척되어 왔다는 무용담 같은 이야기. 그러나 EAR(반출금지품목승인시스템) 관련 업무가 처리되지 못해 컴퓨터, 서버, 인터넷 장비들이 북한 경내에 들어갈 수 없어 개학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소상히 설명해드렸다. 나중에는 연변조선족사회의 지정학적 특수성과 중국 동북지역 진흥정책, 탈북자 문제와 6자회담의 진로, 한반도 통일정책을 위한 Soft Power 전략까지 거론하며 대화의 폭이 여러 방향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이 다 빠져 나가고 우리들만 남아 있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우리들도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영옥 채구관께서 한국대사관 근무지로 돌아간 후 나는 김현경 교수의 안내로 인민대학을 방문했다. 실은 지난해 10월 한국의 「박영사」에서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이라는 전문서적을 출판해 주었는데, 그 「박영사」의 오너이신 안종만 회장께서 내가 북경에 간다고 하니 꼭 가서 만나보라고 추천해 주셨던 분들이 바로 김현경 박사와 그의 스승인 한대원 교수다. 조선족 출신인 한대원 교수는 인민대학 법대의 부원장이며, 「일본법연구소」소장을 겸하고 있는 법학자로서 특히 「중국헌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중요인물이다. 그는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영어에 능통한 국제통 학자로서 저서가 한국에서도 「박영사」를 통하여 출간된바있다. 마침 인민대학을 방문했을 시간에 일본 학자들과 같이 학술세미나를 주재하고 있어서 부득이 별도의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지난해 쓴 책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을 선물로 남겨둔 채 학교를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우리 조선족 사회의 높은 역량과 성취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큰 자긍심을 느꼈다. 김현경 교수의 안내로 법대 도서관을 둘러본 후 그의 연구실에 가서 한 시간가량 대담을 나눴다. 나는 그 대화 가운데 또 하나의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작년 11월 1일부로 통일부에 사단법인 「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등록하고 회장으로 취임한 바 있다. 이 조직은‘21세기 동아시아 공동체’구현을 위한 대안으로, 한·중·일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이 연대하여 공동선을 찾아가고자 하는 R&D기관이다. 트랜스네셔널리즘(Transnationalism, 초국가주의)을 학문적 기반으로 삼고, 동북아 삼국을 접속하는 교통인프라 구축방안으로 한·일해저터널과 한·중해저터널을 연결시키는‘(가칭)동북아 대운하 건설계획’(TNT프로젝트:Tunnel & Tunnel)을 추진하여, 이 교통대로가 통과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통행 ,통신, 통관(물류 유통)이 자유로운 자유무역통합시장을 형성함으로써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새 길을 열어 보자고 하는 것이 본회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결속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동북아 삼국간의 법제를 비교연구하는 일은 이런 큰 계획을 성사 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야 중 하나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해왔는데 마침내 김현경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그 해결책을 찾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의 헌법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보이고 있는 분들이 이석연 변호사(현 법제처장), 강경근 교수(숭실대), 정종섭 교수(서울대)등이 있다. 세분 다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중 강경근 교수는 본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있으면서 특히 일본 공법학자들과의 교류가 매우 깊으신 분이다. 강 교수께서는 내게, 중국 공법학자들과의 교류만 연결되면 명실공히 동북아공동체 차원에서의 법제 비교연구가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곤 했었다. 이제 그 적임자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김현경 교수의 스승인 한대원 교수야말로 바로 내가 찾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는 「중국헌법학회」 회장이면서 일본(어)에 능통한 「일본법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는 분이다. 동북아공동체 법제 비교연구를 풀어가기에는 가장 적합한 인물임에 틀림 없어렷다. “원더풀 데이” 김현경 교수와 대화하면서 나는 좀체 찾기 어려운 보물을 금방 쉽게 찾아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김 교수가 우리 「동북아공동체연구회」의 중국 측 법제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나중에 한대원 교수께도 잘 말씀을 드려서 본회 자문역으로 참여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두 분의 이름을 불러보며 고(故) 김춘수 시인의「꽃」을 되새겨 보았다. 「 꽃 」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경북고 1학년 시절, 철없는 나이였지만 경북대 국문과 선배들 틈에 끼어 김춘수 시인의 강의를 들었고, 그 분의 집에도 몇 번 찾아가서 사사를 하는 등 시심에 심취했던 적이 기억에 새롭다. 그날따라 북경 하늘은 곧 비가 올 듯 찌푸린 날씨였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더없이 쾌청했다. 「꽃」이 만발한 4월이 곧 다가오기 때문일까?(계속)
2    Ⅲ. 비상하는 특새 댓글:  조회:2658  추천:97  2008-07-06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Ⅲ. 비상하는 특새 지난밤 호텔 측에 새벽4시 모닝콜을 부탁해 놓았었다. 어제 저녁을 먹을 때 한 한국분으로부터, 내가 묵고 있는 쿤륜(崑崙)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21세기 한인교회」에서 20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5시부터 시작되는 새벽기도회에 늦지 않게 가려면 4시에는 일어나야 했었다. 따르릉 따르릉 하면서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기계음이 아닌) 청아한 젊은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더풀 데이” 딱 한마디 인삿말이었지만, 이 말은 듣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랄 정도로 기분이 상쾌해졌다.아, 얼마나 멋진 인사말인가! ‘굿모닝’이란 말은 지극히 의례적인 표현이다. ‘해피 데이’라는 말도 노래 제목이어서 그런지 자주 듣는 인삿말이었다. 그런데 “원더풀 데이”란 말은, 특히 새벽 모닝콜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는 이 인삿말이 너무 좋아서 갑자기 코가 벌름거릴 정도로 기분이 고조되었다.(* 3박 4일간의 북경 여행을 되돌아 볼 때, 이번 여행이 웬지 기분좋고 흐뭇했던것은 아마도 이 인삿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이 말이 좋게 느껴졌다.) 「북경 21세기 한인교회」는 21세기 호텔 건물 안에 있다. 5시 10분전에 도착하여 3층으로 올라가 대 예배실로 들어갔더니 상당히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어림잡아 보아도 오백명이상은 되어 보였다.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한국 유학생들이다. 이 교회는 전체 교인수가 약 3,000명 가량되는데 그 중 삼분의 일이 유학생들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찬양과 함께 기도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오늘의 말씀’을 전해주실 목사님이 등단하셨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 분은 서울에서 오신, 내가 너무도 잘 알고 가깝게 지내는 곽수광 목사님이 아닌가! 그는 내가 1995년부터 강사로 봉사해왔던 KOSTA(한국유학생회)의 총무목사이시며, 또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찬양사역자인 송정미 교수(숭실대)의 남편이기도 하다. 나는 「북경21세기 한인교회」의 특새(특별새벽)기도회에 갔다가 뜻밖에 평소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 동역자를 만나게 되자 저절로 입에서 “오, 원더풀 데이”란 말이 튀어 나온 것이다. 말씀과 합심기도가 끝나고 난 다음 개인기도 시간이 되자 (앞자리에 계셨던) 본 교회의 담임목사이신 박태윤 목사님과 부목사이신 김광성 목사님이 곽 목사와 함께 내가 앉아 있는 뒷자리로 다가오셨다. 실내가 컴컴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놀라게 해 주려고 말없이 다가가서 한분 한분씩 두 팔을 벌려 꽉 껴안았다. “아니 장로님, 장로님이 여기 웬일이세요!” “아니 웬일이라니! 나는 새벽기도회에 오면 안돼?!” “아니 서울에 계신분이 어떻게 여길....!” “ 곽 목사는 그럼 어떻게 여길 왔어” 곽 목사는 4월말에 있을 북경KOSTA의 준비를 위해 어제 밤 북경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들 네 사람은 너무나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얼싸안고 어린아이들처럼 볼을 부볐다. 한 믿음 안에서 동역자의 관계로 동고동락하는 일 만큼 더 아름답고 우정있는 만남은 없으리라. 곽 목사와는 벌써 14년째 KOSTA사역을 같이 동역하고 있으며, 박태윤 목사님과는 11년전에 북경에 와 있는 한국유학생들을 위해 처음 KOSTA를 결성할 때부터 함께 협력해왔던 분이시다. 또한 그 후 「21세기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북경CBMC(기독실업인회)를 조직하고 나중에 그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지역에 비즈니스 미션의 씨앗을 심는 사역을 같이 연대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이 날 새벽기도회에서의 만남은 너무나 귀하고 가슴 벅찬 (우연처럼 다가온)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진짜 우린 특새들이네”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대며, 창공을 날개쳐 올라가는 비상하는 독수리와 같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은총과 사명감의 열기가 가득 차오르는 감을 느꼈다. 참으로 멋진, 특별한 새벽의 만남이었다.(계속)
1    Ⅰ. 중화(中華)의 힘 댓글:  조회:2664  추천:84  2008-07-05
『원더풀 데이즈』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Ⅰ. 중화(中華)의 힘     중국 북경의 관문인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이 3월 26일 개항하여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내가 타고 들어간 아시아나 항공의 승객들은 한국인으로서는 제3터미널로 입경하는 첫 손님이 된 셈이다.(대한항공은 예전처럼 제2터미널을 계속 이용한다.)2004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던 제3터미널 신청사의 건축규모는 연면적 98만6,000㎡로 단일 터미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며, 인천공항의 1.5배가 된다. 홍콩 첵랍콕 공항을 설계했던 영국의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이 터미널은 지붕에 황금빛 알루미늄 합금 금속판으로 만든 300여개의 채광창을 돌출시켜 놓았는데, 이 채광창을 열 경우 비늘을 세운 채 엎드려있는 용(龍)의 형상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언론들은 제3터미널 신청사를 “중화(中華)의 힘이 응축된 건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항공여객이 급증 할 것으로 보고 2010년 안에 북경 제2공항을 착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말 현재 147곳인 중국 전역의 공항을 2020년까지 244곳으로 늘려 100km마다 공항을 하나씩 건설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중국 경제의 발전상은 이제 항공부문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북경 올림픽을 정점으로 중국의 모든 국가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듯한 긴박감을 느끼며 제3 터미널의 광활한(?) 구조물 안으로 첫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최근 신청사 개장과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내·외국인의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내·외국인이 내던 기존의 검역카드와 관세카드는 모두 사라졌으며, 내국인은 아예 출입국 신고 카드조차 없앴다고 한다. 한마디로 통제사회가 서비스 사회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중국의 변화는 국가 정치체제가 보장되는 범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규제의 덫에 걸려 있는 한국의 관치행정 실정에 비해, 중국의 규제철폐 및 완화 속도는 적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군마처럼 빠르고 용감하다. 중국의 ‘한국 따라잡기’는 이제 태풍에 밀려온 파도가 방파제를 곧 덮칠듯한 기세로 육박하고 있는듯한 형국이다. 한국의 방파제는 중국이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붉은 파도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서우두(首都)공항의 제3터미널을 빠져 나오면서 내가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복합된, 자존심을 긁는 묘한 굴욕감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김설송 사장(청화대 출신 조선족, 전 다산네트워크 중국지사장)의 차를 타고 호텔에 체크인 한 후, 곧 바로 찾아 간곳이 제10차 중국국제핵공업 전람회가 열리고 있는「북경 농업 전시회관」이었다. 중국핵공업총공사, 중국원자력학회, 북경시 상무국이 공동주최한 이 전람회에 GE, 웨스팅하우스 등 16개국 100개사 이상이 참여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전력과 한전수력원자력(이하‘한수원’), 두산중공업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가했다.나는 중국핵공업총공사의 한국 에이전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설송 사장을 한전 관계자들에게 소개시켜서, 한전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원전 수출 및 핵폐기물 처리기술 이전에 대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본 전람회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이번 전람회의‘한수원’측 실무책임자인 김현철 부장과 두산중공업의 중국 총대표인 김정수 상무이사를 만나 한국 원전의 기술력과 운영체계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15년에 걸쳐 한·중간 발전설비 기술교류를 위한 추진과정에 있었던 많은 애로점과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다.오늘날 온실가스 규제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원자력 발전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발전업체들이 원전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은 이미 검증된 원전의 친환경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원전은 화력발전과 달리 이산화탄소(CO₂)등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데다 kw당 전력 생산비용이 39원으로 유연탄(42원), 가스(100원)에 비해 저렴하다. 이런 원전 산업의 시장성을 가늠할 때 기술력만을 놓고 보면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한국은 1970년대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천기술을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20기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한국형 표준 모델인 OPR1000, 독자 모델인 APR1400 등을 만들어 왔다. 특히 기술자립도가 95%를 넘는 APR1400은 kw당 건설비가 2,000달러 수준으로 미국 등 경쟁 모델(3,000달러 수준)보다 30%이상 저렴하다.다만 원자로에 대한 원천기술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 수입국이 한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요구할 경우 일일이 (웨스팅하우스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한국형 원전 수출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원천기술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장차 경쟁 대상국이 될 한국의 발전업체에게 쉽게 허가를 해 주겠는가 하는 점이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국형 원전을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지목했다. 한국전력 등 국내발전업체들은 다음 달 터키정부가 발주할 예정인 원전 국제입찰에 국내 자체기술로 개발한 독자 모델 ‘APR1400’으로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세계화 경제정책이 이 원전 수출사업을 통해 물꼬가 터지기를 마음 깊이 고대해 본다.또한 원천기술의 장벽 때문에 40여기의 원전 건설 물량이 준비되어있는 중국 발전산업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전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어찌 내가 국민 된 한사람으로서 그냥 죽치고 앉아있기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핵공업총공사의 핵심 인물들을 만나 한판의 큰 게임이라도 벌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문제는, 충동은 크지만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한탄스러운 마음으로 제10차 중국국제핵공업전람회장을 떠날 때,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내 눈을 찌른다. ‘너는 무엇으로 중국을 대응할 것인가’라고 따갑게 쏘아부치는 것 같았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17년간이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그 만큼 중국을 잘 안다고 하면서, 도대체 무엇으로 중국과 경쟁하려고 준비해 왔는가 하는 자책감이 일어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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