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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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함께하는 정신
2008년 07월 12일 08시 20분  조회:2885  추천:100  작성자: 이승률
『원더풀 데이즈』

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Ⅷ. 함께하는 정신


만찬을 끝낸 후 나는 가까운 지인 몇 분들을 모시고 勺園호텔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2차 모임(뒷풀이)을 가졌다. 송성유 교수(북경대), 황유복 교수(중앙민족대), 전신자 교수(연변대), 미국에서 온 김유경 사장, 아내 박재숙, 나 그리고 ‘中央人民广播电台(CNR:China National Radio)'의 이영실 기자가 동행했다.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셨던 황유복 교수께서 CNR 인터뷰를 하도록 배려해 주셨다. 커피숍이 시끄러워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자가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기자는 우선 내가 어떻게해서 연변과기대 설립과 운영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만 17년이 넘도록 학교 사역에 종사해 오셨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인터뷰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김진경 총장(연변과기대)께서 책을 추천하면서 쓴 글의 내용을 요약해 줌으로서 그 답변으로 삼았다. (* 참고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추천사’전문을 게재한다.)

『 내가 이승률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북경 아시안게임 직전인 1990년 10월 초순이었다. 당시 나는 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에 중국 젊은이들을 위한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던 때였다. 국가지도자의 아들을 만나 대학 설립에 필요한 조언을 구하고자 갔던 자리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조경·토목 및 골프장 건설사업을 주로 해온 기업인으로, 얼마 있지 않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질 것을 알고 산둥성 칭다오에 국제골프장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왔던 참이었다. 약속이 중첩된 것을 알자 그는 내게 먼저 대화하도록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나는 국가지도자(楊尙昆)의 아들에게 앞으로 중국이 발전하려면 과학기술 부문에 주력해야 될 것이며 국제화교육을 통해 인재를 배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대학을 세우려고 하니 당신이 좀 나서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승률회장은 나의 이런 말을 옆에서 경청하면서 내심 무엇인가 크게 느낀 바가 있었던 것 같다. 회의가 끝나고 헤어질 무렵에 그는 내게 다가와서, 추진하고 계시는 일이 너무 귀하다고 격려하면서 서울에 나가게 되면 꼭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말을 단순한 인사말 정도로 듣고 잊어버렸으나, 그 후 열흘 쯤 지나 내가 서울 사무실(연변과기대 후원회)에 볼일이 있어 갔을 때, 그는 나를 다시 찾아와 대학설립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 후 그는 중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려고 했던 계획을 접고, 오직 한마음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에 필요한 인재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교육 사업에 투신하여 지금까지 만 16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와 더불어 함께 일하고 있다.

그는 내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때 김 총장님과의 만남이 제 인생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통해 자라나는 중국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총장님과 교수님들을 보면서 저는 많은 것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고귀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저는, 섬김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면서 한걸음씩 정진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보람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나날이 오늘의 저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부족한 사람을 총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늦은 나이이지만 중국에서 학위를 하게 된 것도 다 이와 같은 섭리의 결과가 아닐까요? 민족을 사랑하고, 연변과기대를 섬기고, 지역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도와보겠다고 애쓴 노력과 신념이 오늘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준 힘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 그는 참으로 순수하고 강인한 심령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개척자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성품과 가치관이 없었다면, 오늘 어떻게 이와 같은 저작이 가능했겠는가? 나는 실로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코자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박사학위 논문을 보강하여 완성도가 높은 전문서적으로 출간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상스럽다. 그리고 조선족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경륜을 갖고 한·중 관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북아」라는 큰 틀을 통해서 조선족들이 국제사회에 나가 실력 있는 중개자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현황을 분석하고 체계적인 방안을 제시한 점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한 이 책은 본교의 대외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산학협력과 대학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가운데, 바쁜 시간의 틈을 내어 오랫동안 성실히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집필된 저서로서 그의 노력과 결실이 더욱 값지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올해 개교 1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학교에 주어진 귀한 영예이며, 나아가 동북아 국제협력의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많은 중국 지식인들과 한국의 전문분야 관계자들에게 주어지는 큰 선물이 되리라고 믿는다.
이승률부총장과 함께 해온 지난 16년간의 시간은 한마디로 선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믿음과 우정의 결합을 통해 드러나는 참된 소망의 세월이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길을 계속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다시한번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의 출간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강호제현에 추천하는 바이다.』

이영실 기자는 또 질문했다.
“이 박사님께서는 조선족사회를 중시하고 또 매우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계시는데, 저도 조선족의 일원이지만 과연 조선족들이 그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그를 한참 빤히 쳐다보다가 잉크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는 신간서적(“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을 뒤적거려 가면서, 조선족 사회의 형성과 조선족 문화의 특성, 개혁 개방 후 한중 경제협력과 주변국가 진출에 대한 현황, 그리고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에 즈음하는 조선족 사회의 문화기능과 미래 진로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 등을 제시하면서 조선족 사회가 갖고 있는 복합문화적 자질과 특성이 이 시대가 추구하고 있는 통합윤리를 위해 얼마나 긴요하고 적합한 기능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족 사회의 잠재력을 교육과 인재양성을 통해‘집단지성’으로 승화시켜나간다면 그 누구보다 훌륭한‘21세기 동북아 맨’이 될 수 있다고 힘써 답변해 주었다. 이 기자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과연 누가 중국 안에서 소수민족인 자신들을 위해 이런 비젼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하는 감동의 빛이 스쳐지나는 것을 보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이 기자는 조선족 젊은 세대를 위해 남기고 싶은 말을 한가지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나는 「희망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동북아의 미래는 동북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중·일 삼국이 새로운 공동체적 대안을 갖고 서로 벽을 허물고 상생, 협동, 융합의 신문명 시대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그 흡인력이 아세안을 이끌고(3+Asian),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동을 규합하는 Fusion Power가 되어서 마침내 ‘아시아 합중국(*중앙일보 2007년 12월 6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해외칼럼“아시아 합중국을 꿈꾸며”참조)’에까지 이르는 새로운 역사창조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조선족 청년들은 이와같은 희망의 역사관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서 한·중·일 삼국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매체집단이 되어 자신들의 선조가 처해왔던 변경 소수민족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광활한 새 시대의 「블루 오션」으로 나아 갈 준비를 하라. 그곳에 Future Vision의 새 길이 있다. I can do 정신, 즉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그 길로 나아가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좋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을 끝마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커피숍으로 내려갔더니, 기다리고 계시던 분들이 중국차를 마시며 조용히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와 이영실 기자도 함께 끼어들어서 얘기하다보니 인원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남녀 두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여성들은 주로 중국의 음식문화, 소수민족의 생활관습의 차이와 자녀교육 쪽으로 얘기하는 것 같았고, 남자들 셋은 어찌어찌 얘기하다보니 결국 또 남북문제와 동북아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로 접어들고 말았다.

황유복 교수께서(어제 3월27일에 있었던)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의 남측당국자들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후 대남 협박을 가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도 궁금해 했지만, 이에 대응하는 북측 태도와 대남전략에 대해서 더 많은 궁금증을 나타내셨다.

내가 중국에 온 뒤 터진 사건이라 전말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동안 관망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던 북한이 드디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물리적인 실력행사를 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황 교수님께서는 이런 일로 인해 평양과기대의 건축과 개교 준비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어린 질문을 하셨다. 나는 평소에 가졌던 경험과 신념을 토대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 드렸다. 평양과기대는 단순한 남·북간의 교류협력 프로젝트가 아니라 중국건설기업이 도급을 맡아 공사를 하고 있고, 세계 여러 국가 출신의 우수인력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조야에서도 미국 시민권자인 김진경 총장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모럴 서포터(Moral support)를 하고 있는 등 국제대학으로서의 기능과 명분을 고루 갖춘 대학이기 때문에 남북간의 갈등구조를 뛰어넘는 치외법권적 교육특구란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또 나는 하버드 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의 이론을 인용하여 앞으로 남북간 문제가 국가차원의 당국자들끼리는 Hard Power 개념의 갈등과 협상을 반복하며 대치상태로 계속 치달을지 모르지만, 이럴수록 교육, 문화, 경제, 기술 등을 내용으로 하는 Soft Power의 교류협력이 NGO단체 또는 민간기업들에 의해 여러 분야에  걸쳐 꾸준히 소통되는 기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줬다. 이렇게 되는것이 남북간 뿐만 아니라 북미간, 북중간, 중미간, 북일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북한 핵문제 해결에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핵문제에만 급급하고 있는 6자회담의 추이도 결국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과 경제개선조치 및 산업발전을 지원하는 Hard Power와 Soft Power의 포괄적인 협력 차원에까지 이를 때 비로소 해결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대화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너무 과열된감이 없지않아 나는 남북문제를 풀기위해서라도 동북아공동체 협의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필요가 있다면서, 화제를 북경대 송성유 교수께서 평소 주장해 왔던 ‘삼족정립론’으로 돌렸다. ‘삼족정립론’이라 함은, 좁게는 중·한·일 3국이, 넓게는 미주(미국중심),EU,동아시아(중국중심)가 문자 그대로 삼족이 정립된 상태와 같이 국제협력체를 구성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세계 평화발전과 상호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였다.

이 논리는 중국 안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차츰 국제협력의 필요성과 다자안보체제를 지향하는 국제질서의 향방을 고려할 때 상당한 수준까지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범용론(凡庸論)이 되리라 판단된다.

평소 과묵했던 송 교수께서 이‘삼족정립론’을 논할때는 특유의 쾌걸형 웃음소리와 함께 안공(眼孔)이 활짝 열리는 표정을 짓곤한다. 산동성 출신인 이 분은 나와 전신자 교수 앞에서 가끔 ‘나도 조선족이 될 뻔 했던 사람’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만큼 정서적으로 한반도 사람과 닮았고 또 한국인을 좋아하셨다. 몇 년전에 소위 ‘동북공정’으로 세상이 시끄러울때, 송 교수님께서 조선일보에 인터뷰한 기사가 크게 보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 「중국고구려사」를 펴내고 그 연구에 2002년부터 3조원을 투입하여 한중간에 소위 "동북공정"으로 시끄러울 때 중국 주류 사학자인 송 교수께서는‘역사 당시 환경에서 역사를 복원하는 역사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고구려는 낙랑, 대방, 현도, 요동군까지 자신들의 치하로 삼았다.”고 논술하여 한국의 입장을 비호하는 듯한 견해를 밝혔다. 이 바람에 중국 안에서 비난과 위협을 받은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역사는 역사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역사에 개입되는 민족주의나 정치적 의도를 배격한, 참으로 진실된 정통주의 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신 분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옆에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고 있던 여성들이 이젠 커피숍 마감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일어나자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시간이 밤 10시가 휠씬 지난것을 알았다. 우리들은 송 교수님의 건의대로 여러 가지 동북아 국제학술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을 한마디로 “함께하는 정신”이라 정해 놓고 이를 기념하는 책을 공동집필하자는 의견의 일치를 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협의는 사실 5년전에 내가 전신자 교수로부터 송 교수님을 처음 소개 받았던 자리에서 교배주를 들면서 약속했던 일인데 그동안 각자 여러 권의 저술을 냈지만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반성어린 재 건의였다.

나는 지난해 발족한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통해서 한·중·일 삼국의 관계구조를 공존과 상생의 통합윤리를 바탕으로하는 윈윈 패러다임(Win-Win Paradigm)의 초국가주의 연합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이 공동집필서를 써 볼 생각이다.

커피숍을 떠나,  勺園호텔의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서, 와이프와 함께 손을 잡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온 종일 출판좌담회 일로 바쁘고 긴장했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홀가분한 심경으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흐린 날씨의 검은 하늘에 별이 보일리 없지만 내 가슴속에는 별이 떠 올랐다. 임마누엘 칸트에게는 순수이성을 지향하는 도덕률의 별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 속에 떠오르는 별은 꿈과 우정을 노래하는 희망의 별이었다.

이런 날을 두고 “원더풀 데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못난 바보가 어디 있으랴, 북경대의 밤은 깊어가고, 아내를 품은 나의 사랑도 깊어간다. 가슴으로 더 없이 아름다운 별을 헤아리는 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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