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아침(5/14), 조간 신문을 읽다가 참으로 기분 좋은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모금활동을 벌여서, 모교의 김영길 총장에게 업무용 승용차 한 대를 구입해 전달했다는 기사다.
지난 3월초 한 졸업생이 김 총장의 차량이 무려 32만㎞를 달린 노후차량(1997년식)임을 우연히 발견하고 동문들에게 '총장님께 새 차 사드리기 운동'을 제의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이 캠페인은 동문회 홈페이지를 통해 졸업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재학생까지 동참하면서 모금운동이 급물살을 탔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졸업생 한 명이 자사에서 신형 '그랜저TG' 출시를 앞두고 1호차 주인공을 찾고 있으며, 그 주인공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정보를 전해주었다.
모금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만에 4백 여명의 졸업생이 동참, 2천5백여만원의 기금을 마련하게 되자, 현대자동차 측에서도 이런 감동적인 소식을 접하고 차량가격 일부를 선뜻 지원하면서 마침내 김 총장이 '그랜저TG 1호차'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새 차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총장님! 32만㎞부터는 저희와 함께 달려요" 모금운동에 참여한 한동대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한마음으로 부르짖는 함성이, 한동 ― 한국의 동쪽 바다를 넘어 세계를 향해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듯한 감격을 느낀 토요일 아침이었다.
Ⅱ
한동대를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소중한 추억거리가 하나 있다.
내가 김영길 총장을 처음 만난 것은, 한동대 개교와 함께 첫 입학식(1995. 3. 7)을 치른 지 얼마 안되는 8월 중순, 한 여름날 불볕이 내리쬐는 학교 교정에서다. 그전에 신문기사와 강연테이프를 통해서 한동대 설립과정에 있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 기적에 가까운 신입생모집의 비화, 그리고 본인의 신앙간증 등을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당시 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여름방학철을 이용하여 실시하는 「전국 순복음실업인수련대회」의 기획팀장으로 봉사할 때였다. 나는 경주보문단지에서 열린 2박3일간의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특별한 기획행사를 하나 준비했다. 수련대회 이틀째 되는 날,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1천명에 가까운 순복음실업인들을 버스에 편승시켜, 오전에 먼저 포항제철을 견학한 후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북쪽 동해안 산지에 위치해있는 한동대를 찾아가는, 일종의 성지(?)방문행사였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동대는 기독정신으로 세운 민족대학이다. 이제 갓 심어진 어린 나무다. 어렵게 어렵게 일으킨 하나님의 대학이다. 기왕에 우리가 경주까지 왔으니, 이 대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찾아가서 격려하고 한마음으로 기도해드리는 것은 마땅히 할만한 일이다" 그때 나는 호텔 측과 협의하여, 호텔에서 먹어야 할 점심을 취소하고 그 비용을 헌금(장학금 천만원)으로 대체, 학교에 기증키로 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점심은 학교측에서 도시락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협조를 구했다.
또한 나는 개인적으로, 본 대학이 장차 한국과 세계를 덮는 푸른 의(義)의 나무로 자라나 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우리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30년생 느티나무 한 그루를 기증해서, 대학본관 앞 화단에 기념식수할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해두었다.
이 모든 기획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와 여건을 따라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그 날, 한동대에 도착한 우리들은, 8월 한낮의 뜨거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정문에서 우리 일행들을 맞이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김영길 총장과 학교 관계자들을 반갑게 만났다. 우리들은 악수했고 또 서로 얼싸안았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해후였다.
그 후 한동대학이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큰 나무가 자라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마음속으로 늘 동역하는 심정으로 중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후에도 김영길 총장을 미국 시카고 코스타(KOSTA:한국유학생수양회), 기독교연합행사, 간증집회, 그리고 산학협력 및 대학발전을 위한 학술세미나 등에서 여러 번 만나 교분을 나누었지만, 십년 전 그때 8월 중순 한낮의 첫 만남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한동대를 생각하기만 하면, 정오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기쁨으로 내 마음속에 되새겨지는 얼굴들이 있다. 동해바다가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지의 버려진 땅, 그 황량한 허허벌판의 광야 위에 기적의 상아탑을 일으켜 세운 한동대 사람들의 얼굴 ― 김영길 총장 내외분과 복음주의 교수진들, 그리고 연변과기대 교환학생으로 다녀간 수많은 청년학생들의 새벽이슬 같은 얼굴들이 내 마음속에 주마등처럼 되새겨진다.
아,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가! 또한 이들은 얼마나 소중한 나의 형제들인가!
Ⅲ
나의 인생 후반전을 위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대표적 사건 하나를 들라치면, 서슴없이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과의 만남을 들고 싶다.나는 그를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직전인 10월초, 베이징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와의 만남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나의 기독교 입문에 대해 약간 설명해드리는 것이 전체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1990년 1월초,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오산리금식기도원」에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것이 신앙생활을 하게된 첫걸음이 되었다. 그 후 교회 내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에서 봉사하게 되었으며, 거기서 만난 분들과 함께 그 해 6월 중순, 북경을 거쳐 연길, 백두산, 심양을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정보를 얻은 것이 바로 중국에서의 골프장 사업이었다. (당시 우리회사는 골프장 조경공사에 주력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경우 북경과 상해 두 지역에서만 일본인들이 설립한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한중수교 전이었지만, 골프장건설사업은 장기간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수교 전에 일찍 추진하는 것이 선점효과가 있을 것 같아 나는 주변 건설업자들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이 일을 추진할 뜻을 세웠다.
내가 대표가 되어 그 해 7월부터 매월 한번씩 세 차례에 걸쳐 청도(靑島)시를 방문해 중국측 관리들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관광개발지역 내 골프장으로 허가 난 땅(18홀 규모)을 적정가격으로 매입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다. 그러나 이런 일(국제협상)을 처음 취급하는 청도시 책임자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배짱(?)을 부리는 탓에 도저히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때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었던 양상곤 주석의 아들 양소명이란 분을 만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북경 인터내셔널 호텔로 갔다. 그때가 북경아시안게임 직전인 1990년 10월초였다.
약속장소에 간 나는 또 다른 한 분의 한국인 ― 나보다 훨씬 더 연배가 많은 한국분이 계신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이중으로 약속된 것을 깨닫고 그 분에게 먼저 말씀을 하시라고 권해드린 후 옆에서 경청하게 되었다. 그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미국시민권자이지만 원래는 한국 출신입니다. 영국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고 그 후 미국으로 이민가서 20년 넘게 생활하는 동안, 대학교수도 됐고 또 기업도 운영해서 미국 사회에서는 비교적 크게 성공을 한 편입니다. 그 후 1986년도에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북경에 와있는 동안, 우리 동족들이 사는 연길, 길림, 장춘, 할빈지역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보니 조선족들이 그들의 고유한 말과 글은 지키고 있는데 고등교육기관이 없어서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에 있는 재산을 팔아와서 연길에 기술전문대학을 하나 세우려고 하니, 당신 부친께서 국가권력자이시므로 내가 하는 일을 협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중국에 돈벌러 온 것도 아니고, 반대급부를 얻기 위해 투자하러 온 것도 아닙니다. 나는 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중국에 선진교육을 전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교육을 통해서 중국을 돕고 우리 동족을 깨우치는 일에 봉사하고 싶어서 대학을 세우려고 하는 겁니다. 선생께서 나를 한번 도와주세요"
그 때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곁에서 그 말씀을 듣는 중에 얼마나 놀라고 감동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이런 숭고한 뜻을 갖고 아무 대가없이 자신의 인생과 재산을 남을 위해 내놓는 사람이 있다니! 그분이 바로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이시다. 나는 중국에 개인사업을 하러 갔다가 김진경 총장을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그때 한 사람의 크리스천 지도자를 만나면서 그 만남을 통해 내 인생의 후반전을 180도 터닝(Turning)시키는 기회를 맞게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이후 나의 생애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게되었다. 지금까지 만 15년 동안, 그 길에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분과 함께 오직 '푯대를 향하여' 순수한 봉사의 길로 매진해왔다. 매장풍습이 있는 조선족들의 공동묘지였으나, 나중에 공산사회가 되면서 화장제도로 바뀐 후 쓸모없는 곳으로 버려져 있던 죽음의 땅 ― 그 연길시 북산가 언덕 위 삼십만평의 땅 위에 세워진 연변과기대는 이제 중국의 발전과 조선족들의 희망과 동북아시대의 미래를 거듭나게 만드는 생명의 땅으로 변화되어 우리들 눈앞에 우뚝 서있다.
이와 같은 거듭남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그때 그 북경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주신 은혜와 사랑의 선물임을 확신한다. 아! 이 일은 내게 얼마나 빛나는 행복인가!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사역인가!
Ⅳ
각 대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학교소개가 있고, 거기에는 반드시 총장인사말씀이 있다. 이 메시지는 그 대학의 교육이념과 목표, 실천강령 등이 함축되어 있어서 대학의 진로와 성격을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먼저 한동대 김영길 총장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한동대학교는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세계적 철강 산업의 중심인 포항에서 국제적 시야(Global Horizons)를 품고 1995년 개교하였습니다. 한동대의 개교 시점은 인터넷(WWW)의 상용화로 인류가 지식정보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때이며, 또한 경제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효되어 글로벌 경제가 가동되는 해 이기도 합니다. 한동대학교는 이러한 역사적 시점에서 개교하면서,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와 글로벌시대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교육 커리큘럼과 국제적 시민의 인성교육, 특히 무감독 양심시험으로 대표되는 정직성 교육을 처음 실시하여 '21세기형, 새로운 대학 모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동대학교는 세상을 변화시킬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국내외에서 한동 캠퍼스에 몰려왔고, 정직하고 유능한 교수 및 직원들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동대는 기독교 신앙교육(Faith)을 기반으로 국제화교육(Global Leadership), 전문성교육(Academic Excellence), 인성교육(Honesty)에 치중하는 특성화 교육체계를 잘 발전시켜온 대학으로 평판이 높다.올해 겨우 7회째 졸업생을 배출한 짧은 연륜의 지방대학에 불과하지만, 그 교육성과는 실로 대단하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실시하는 교육개혁추진우수대학으로 매년 선정되어왔으며, 정보통신부 IT장비지원사업선정대학이기도 하다.
또한 그동안 세계 90여개의 대학과 교류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대표적 사례 : 연변과기대)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40여개국으로부터 500명에 이르는 해외유학생들을 유치했으며, 삼성전자, LG전자, 한국IBM 등 '최고수준급'의 기업에 대거 입사하는 등 졸업생중 취업률이 80%를 상회하는 경이로운 실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2002년 3월에, 아시아 최초 미국식 로스쿨로 개원한 국제법률대학원(International Law School)은 3년제 과정으로, 지난 12월 2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이들 중에 2명이 미국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한동대는, 한국의 지방대학이라는 약점을 딛고 오히려 세계화시대의 전문인 지도자양성에 성공한 진보적인 기독교육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보자. 연변과학기술대학(YUST)은 중국에서 외국인이 설립한 유일한 4년제 사립대학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중국의 신교육정책에 따른 100大 중점대학육성계획에 포함되어 그 지명도를 높여왔으며, 최근에는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 등과 같이 신입생 1차 선발대학에 지정됨으로서 속칭 일류대학이 되어있다. 올해 들어 개교 13주년, 졸업생 배출 9회에 불과한 신생대학이, 그것도 중국 변방 소도시의 황량한 공동묘지 터 위에 세워진 이 대학이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해왔길래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게 되었을까? 누구는 이 대학을 가리켜 기적의 동산, '미러클 캠퍼스(Miracle Campus)'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 연변과기대의 성장요인은 과연 무엇인가? 이제 그 핵심인물인 김진경 총장의 인사말씀을 들어보자.
"연변과기대는 세계화•현대화•미래화로 나아가는 21세기 중국 교육의 개혁개방 정신에 따라 1992년 산생(産生)된 중국 최초의 중외합작대학입니다. 진리•평화•사랑의 교육 이념 아래, 뜻을 함께 하는 꿈과 Vision을 품은 전 세계 13개국에서 모여든 300여명의 교직원들이, 정직한 인격과 최고의 지식을 갖춘 전문인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학생들을 자식같이 사랑하며 성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의-협력-봉사의 실천 강령을 따라 국제 사회의 경쟁력을 지닌 창의형, 쓸모형, 인격형 인재를 양성하여 다가오는 동북아 시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 대학의 교육 기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연변과기대는 전공 지식과 응용력을 겸비하며 건전한 인성과 사회성,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안목과 세계적인 비전을 갖추어, 다가오는 시대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나갈 각 분야의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공과 전산의 실무지식을 구비하고, 의사소통에 필요한 다중 언어(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를 통해 중국의 급속한 기술발전과 개방적 산업 환경속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미국, 독일 등 세계 100여개 대학, 연구소 및 기업과 자매결연관계를 맺고 활발한 교류협력을 하고 있으며 매 학기 100여명의 학생들이 교환학생 및 유학생 또는 기업연수생으로 해외로 파견되고 상호 방문하는 등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미국, 유럽 등의 여러 나라에서 본 대학을 후원하는 후원회가 결성되어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우리 대학을 위해 헌신하며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을 통한 동북아 시대의 미래 일꾼들을 키워내는 뜻있는 사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연변과기대의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높은 뜻에 부름을 받아 기쁨으로 동역하는 대학, 그것이 연변과기대의 정신입니다. 이 대학은 바로 여러분들을 주인으로 모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세기 꿈과 비전이 있는 대학, 사랑과 소망과 기쁨이 있는 대학...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미래를 함께 가꾸어 갑시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대학의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한국 교계와 미국 교민사회에서 지원하는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교학 및 연구분야는 자원봉사로 참여한 수많은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급속히 발전•확대되어왔다. 이와 같은 기부문화와 자원봉사정신이 함께 꽃피운 연변과기대는, 공산사회의 폐쇄적인 기존교육체계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며, 나아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21세기 동북아시아의 국제교류 및 협력을 이끌어 가는 신사고•신기술교육의 시범학교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연변과기대를 방문한 사람들은, 학교 캠퍼스를 둘러보는 가운데 우선 학생들이 친절하고 인사성이 있으며 명랑하고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 반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리고 대화를 해보면 국제사회 즉 시장경제자본주의체제에 대해 충분히 오픈 마인드(Open Mind)되어있고, 또한 세계정보에 매우 익숙해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학생들(구성비 : 조선족 80%, 한족 17%, 고려인 및 기타 3%)이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캠퍼스 공용어인 3개국어(중국어, 한국어, 영어)에 능숙하고 컴퓨터 응용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집단 ― 따라서 취업률 100%를 자랑하는 명문대학으로 발전해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교육성과를 보고 북한 지도부가 평양에도 연변과기대와 같은 대학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여 한국의 통일부 사업승인(2001. 6. 5)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바로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도대체 어떻게 교육했길래 중국공산사회 안에서(자본주의국가출신 외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와 같은 혁명적인 대안학교가 가능하단 말인가?
Ⅴ
이제 결론적으로 이 두 대학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온 공통적인 특질을 정리해볼 때다.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지난 토요일 아침(5/14), 조간신문을 읽고 난 이후 나는 며칠동안 줄곧 이 문제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제 내 나름대로 그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깨우친 바를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여섯가지 덕목(핵심가치)으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1)탁월한 리더십
김영길 총장 없는 한동대를 생각해 보라. 또 김진경 총장 없는 연변과기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상상하기만 해도 우스꽝스럽고 볼 모양이 없어질 것 같지 않은가? 그만큼 이 두 분이 끼친 영향력이 크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아무도 그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을 때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머리를 내저을 때에도 끝까지 이를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과 믿음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뜻을 현실에 투사하여 결행할 수 있었던 김영길 총장과 김진경 총장의 탁월한 리더십에 거의 100% 의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는 부르심(Calling)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이 있었고, 빼어난 사명감과 열정으로 가득찼다. 꿈을 가졌고, 이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강인한 추진력과 헌신이 있었다. 앞을 내다보는 분별력과 미래가치를 위해 (리스크를 안고)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를 가졌으며, 나아가 주위에 잠자고 있는 인력들을 일깨워 자신의 동역자로 삼는 선구자적인 능력도 갖췄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약점과 실수를 스스로 자인하는 인간적인 매력과 도덕성을 지녔으며, 무엇보다 남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용서와 화해의 포용력을 발휘해온 지도자들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믿음과 신념의 그루터기 위에서 끝가지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끌어온 지도력이야말로, 열악한 환경과 악조건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강점으로 변환(變換)시킨 탁월한 리더십이 되어 오늘날의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를 성립시켜 왔다고 나는 단언한다.
(2) 강한 비전 공동체
김영길 총장과 김진경 총장의 탁월한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추종하고 지지하는 동역자들(Fellowership)로 하여금 강한 비전공동체를 만들도록 이끌어갔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럽과 호주에서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에서 수많은 젊은 일꾼들이 사명감과 영감에 이끌려 한 명씩 두 명씩 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회와 KOSTA(한국유학생수양회)를 통해, 대학강단과 학회와 사회단체를 통해 선발되고 추천된 유능한 비져너리(Visionary)들이 끊이지 않고 포항으로 연길로 찾아왔다.
이들 뿐만 아니라 (나처럼) 어떤 경로로든 인생의 후반전을 좀 더 보람있고 의미있게 살아보겠다고 작정한 적지 않은 수의 장년층 인사들도 함께 뜻을 같이했다. 누구는 교수로, 누구는 직원으로, 누구는 후원자로, 누구는 중보자로 어떤 형태로든 그들은 그 속에서 배우고 자라는 학생들과 함께 거룩한 소망의 동역체 ― 꿈과 비전이 넘치는 신교육 공동체를 이루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지칠 줄 모르고 달려가는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활력(성장동력)은 바로 이와 같이 리더십과 펠로우십의 조화를 통해 나타나는, 강한 비전공동체 즉, 한몸으로 승화된 시너지(상승효과)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3) 신지식 열린교육
지식정보화시대와 글로벌시대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대학이 적응해나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학생들로 하여금 천부적으로 주어진 개성과 재능을 잘 살려서,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유익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지극히 심플한 대안(실천방안)을 내놓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지식을 수혈하여 열린교육 시스템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동대학의 무전공/무학과 입학제도는 기존의 대학개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교육방법이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미리부터 전공과 학과를 선택하지 않고 입학 후 상당기간이 지난 후에 전공을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이와 더불어 복수전공제를 실시하여, 자신의 전공에 대한 심도깊은 전문성과 함께 인접학문에 대한 연관적인 지식을 습득해 나갈 수 있도록 보완하는 개방적인 시스템도 아울러 장치했다.
연변과기대는 중국 대학교육제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전공/무학과 입학제도는 실행할 수가 없다. 그 대신 국제사회와의 폭넓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끊임없이 신지식을 유입하고 이를 중국현실에 맞게 적용시키는 과정에 특별히 다중언어습득훈련과 자발적이고 실무적인 부전공제도를 강화하여 연변과기대의 특질을 향상시키는 교육효과를 얻고 있다. '열린교육'은 지금껏 '닫혀있음'으로 인해 여러 병폐를 야기한 학교교육의 규정된 양식을 깨뜨림으로서 새로운 교육의 성과를 기대해보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모리슨(Morrision)과 같은 학자는 '열린 교육'을 인간의 개별화를 인정하고 독립심과 자유를 장려할 뿐만 아니라 학생에 대한 존중심을 보이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전형적인 학교 시스템을 재구조화(Reengineering)하는 교육방식이라고 정의했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저마다 갖고 있는 한계상황 즉 한국의 지방대학과 중국의 변방대학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지식정보화시대와 글로벌시대의 현실상황에 최대한 '시대공감'하면서 학생들 개개인의 자유성과 천부적인 능력을 최적화(Optimization) 시키는 교육적 스팩(Spec)을 차곡차곡 쌓아온 특성화교육시스템에 성공한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미래지향적인 창의성
"국가 경쟁력은 지식에서 나오며, 지식은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학습에서 나온다" 이 말은 '사이파이 커뮤니케이션스'社의 CEO 토드 사일러 박사가 몇 년 전에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초빙되어 왔을 때 연설했던 말의 한 대목이다. 나는 이 말에 크게 공감하여 지금도 메모용 수첩의 첫 장에 적어놓고 수시로 펴 읽어보곤 한다. 그리고 또 한사람의 어록을 추천하고자 한다. 최근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美EIA상을 탄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반도체총괄사장)이 그의 수상기념연설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시행하고 있는 '신지식 열린교육'의 학습제도 및 교육방법은 결과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미래지향적인 창의성(내용 : Open Mind & Network, Global Standard, Positive Sum Game 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줌으로서 나아가 한국과 중국의 미래지향적인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유명한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자는 미래가 있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가 있는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 요청하는 것이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학생들이 바로 이와 같이 미래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인재들이 다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5) 헌신적인 삶의 모범
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오늘날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수많은 동인(動因)들이 있겠다. 그 가운데 특히, 탁월한 리더십과 강한 비전공동체, 신지식 열린교육과 미래지향적인 창의성 등은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성장요인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요인들이 아무리 중요하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고 해도, 이 대학들의 성장과 발전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결정적인 힘의 모멘트는 삶으로서의 헌신, 즉, 총장으로부터 모든 교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이 '헌신적인 삶의 모범'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여러분들께 한번 물어보고 싶다.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인격은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 ―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소유와 재능과 여건과 목숨까지도 바쳐서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인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알고 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노래하며, 버려진 동해안의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그곳에 새로운 신천지가 임재할 수 있도록,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고 돌보는 일에 젊음을 불태워 왔던 수많은 유학파 엘리트들을 나는 알고 있다. 한겨울에 영하 3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중국변방의 동토, 저 어둡고 황량한 공동묘지의 터 위에서, 개인의 명예와 안락함과 출세에 이르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남을 위해, 공의(公義)를 위해 헌신해왔던 수많은 연변과기대 교수들의 그 눈물 젖은 사랑의 행로를 나는 알고있다.
어린 자식이 석탄가루 매연과 추위에 견디다못해 폐렴으로 쓰러져 있는데도, 집에서 급히 연락을 받고 뛰어나가 교통사고 난 학생을 들쳐업고 500m가 넘는 밤길을 넘어지며 걸어가서, 3일 동안이나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간호했던 한 교수의 고백을 들어보자.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입니다. 사랑은 죽은 생명까지도 살리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학교캠퍼스 안에서 학생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공부하고 뛰놀고 노래하며 생활하는 사이에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삶으로서의 헌신적인 모범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그들의 감성을 울리고 지성을 새롭게 하고, 영성을 깨우치게 한 근본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것이 연변과기대를 중국 안에서 선진적인 일류대학이 되게 했으며 또한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집단이 되도록 만든 궁극적인 핵심가치가 된 것이다.
(6) 참된 제자훈련
교수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참된 제자훈련일 것이다. 자신들이 힘들고 외롭고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제자들이 잘못되고 비뚤어지고 소외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 교수들도 같은 입장이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들을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고 자랑한다. 개교 때부터 실시한 한동대의 무감독 양심시험은 이미 유명해진 일이다. 미래 세상을 바꾸는 지도자는 무엇보다 진실하고 정직해야 된다는 학교방침을 학생들도 잘 수행하고 있다. 실제적인 학습관리를 통하여 인성교육이 몸에 베도록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연변과기대에서도 ICM(Integrity Campus Movement)이라 하여 무감독시험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대안적 시범교육이 되고 있다. 이 무감독시험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처음에는 학생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많은 학생들이 정직하게 시험을 치렀으나 일부 학생들이 커닝하는 양심불량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래 편지는 한 학생이 나중에 지도교수에게 반성문 형식으로 보낸 글이다.
「양심」
"전번 시험 때에는 여러 가지 고려가 많았습니다. 보고 쓰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고, 보지 않고 쓰려니 밑지는 것 같고, 결국에는 내 양심을 버리고 커닝을 하였습니다. 훌륭한 21세기의 리더를 키우는 우리 대학의 과학사 중간고사에 커닝을 하였습니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양심과 정직성은 나의 손과 눈에 의하여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 커닝을 하면서 전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끊임없는 내부 전쟁을 하였고, 시험지에 꽉 차게 적어놓은 답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주일을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너무도 민망하여 교수님의 얼굴을 도무지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읽으신 동학들의 글은 채찍이 되어 나의 마음을 후려쳤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 것마저도 나에게는 그렇게 큰 부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양심적으로 다시 채점하라는 말에 나는 내 인생의 1949년이 온 것만 같았습니다.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채점 해보니 49점이었습니다. 무려 23점이나 감점되었지만, 나의 정직을 찾았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동학들의 뉘우침과 성실한 고백을 듣고, 그렇게 열심히 양심 채점을 하는 동학들을 보면서 이번 무감독 시험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잃었던 양심을 되찾고, 정직의 중요성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연변과기대의 신입생으로서 기둥이 되어야 할 내가 우리 대학의 취지, 정직을 잃을 뻔한 가슴 아픈 교훈,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나의 성적을 위하여 양심을 버리는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양심을 되찾도록 이끌어 주신 교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H학생)"
이와 같이 학생들은 흔들리면서 자란다. 도종환 시인이 지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가 있다. 1연만 인용해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요즘 들어 연변과기대 교수들은 내게 이렇게 간증한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것이 훈련되고 습득이 되니까 이젠 학생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정직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참된 제자훈련은 바로 이와 같은 인성교육과 자율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통하여 드러난다. 정직운동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를 이끄는 도덕적인 리더십,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성, 그리고 지역과 세계를 섬기는 봉사활동을 통해 인간관계의 순도를 높여가는 참사랑의 섬김운동은,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교수들로 하여금 제자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든 참된 제자훈련의 고귀한 성과들인 것이다.
Ⅵ
나는 내일이면 강원도 태백으로 가야한다. 쫓기면서 글을 쓴다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바쁜 중에 억지로 써온 「글」을 오늘밤에는 마감해야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수 있게 된다. 아무튼 나는 내일 「예수원」창립 40주년 기념행사에 간다. 그곳은 내 영혼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거기에 가면, 소중한 분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故 대천덕 신부의 아들인 벤 토레이 신부도 만나지만 그 어머니 현재인 할머니도 만나게 되고, 또한 공동체생활을 하는 수십 명의 형제들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마침내 한동대 김영길 총장도 만나게 되리라.
벤 토레이 신부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새롭게 시작한 사역 ― 네 번째 강 프로젝트(북한학교)의 제1회 개강예배가 작년 1월에 있었는데, 그때 김영길 총장께서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예수원 40주년 창립행사에 김총장께서도 인사차 방문하게 된다는 소식이다) 올해 제2회 개강예배 때는 부족하지만 본인이 가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날 눈이 1m 이상이나 쌓였는데, 지금도 눈 덮인 예수원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벤 토레이 신부의 수행비서인 최요한 형제가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난다.
"예수원이 있는 삼수령(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발원지)은 백두대간의 중앙에 위치합니다. 이제 또 하나의 강 ― 네 번째 강이 백두대간을 따라 북한으로 흐르게 됩니다. 이 강물은 북한의 헐벗은 땅을 적시고 생명을 되살리는 영적 회복의 물결이 될 것입니다. 그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리에 한동대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 개마고원과 백두산을 넘어 만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정점에 연변과기대가 있습니다. 예수원에서 흘러내리는 이 네 번째 강물은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협력을 통하여 북한에 새로운 회복의 기운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김영길 총장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지만, 올해는 연변과기대 이 회장님을 모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제 이 두 대학이 힘을 합쳐 북한을 돕고 민족을 되살리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평양과기대가 건축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평양과기대를 영적으로 떠받치는 두 기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터에 예수원의 네 번째 강물이 하수와 같이 흐르는 때를 꼭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리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이제 여기서 한동대와 연변과기대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지난주, 토요일 아침(5/14) 조간을 읽고서, 김영길 총장의 고물차를 신형 '그랜저TG'로 바꿔준 한동대 학생들의 소행(?)이 너무 보기에 좋아서, 이런저런 옛날 생각들 ― 십 년 전에 김영길 총장을 포항 교정에서 처음 만났고, 또한 15년 전 김진경 총장을 북경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을 되새기며 쓰기 시작한 글이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나는 진정으로 이 두 분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또한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모든 교직원들과 학생들을 동일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인생의 후반전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역과 봉사의 기회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이제는 글을 마쳤으니 편히 잠들자. 그리고 내일이면 예수원에서 함박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소년같은 김영길 총장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리라.
그런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이 오면, 한반도 통일의 내일이 오면, 그 날에는 하수와 같이 흐르는 네 번째 강물에 뛰어들어 맘껏 헤엄치고 싶다.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삼수령의 발원지(예수원)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은어가 되어 흐르고 싶다. 그 내일이 꿈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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