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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Ⅳ.
나는 이시이 회장으로부터 2000년도에 있었던 11개 국가간 장거리 철도여행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와 더불어 최근에 호조를 보이고 있는 부산-후쿠오카 간 쾌속선 사업의 결과로 한일 간에 1일 생활문화권이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기발하고 거대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시이 회장님, 저는 중국 정부가 2008년 북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투자와 정책적 배려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이 그동안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군부의 반대와 고위급회담의 정치적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해 아직도 불통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건데, 이제 보십시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초긴장 상태였던 북미관계도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의 합의를 계기로 새로운 협상의 길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부시 정부가 그동안 완강히 거부해왔던 북미간 직접대화의 길을 스스로 자청해서 터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보였던 중국이 미국의 태도 변화에 힘입어 다시 밀월관계를 회복해가고 있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2008년 북경올림픽을 잘만 준비하면 지금까지 있었던 올림픽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국제평화무드의 축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미소 양대진영의 화해를 이끌어 낸 탈 냉전적 평화의 축제였다면, 2008년 북경올림픽은 북미 간의 긴장해소뿐만 아니라 남북한 공존 및 6자회담 당사국들 간의 동북아 국제협력시대를 이끌어내는 기념비적인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하나의 선린공동체로 연결하는 세계 최대의 평화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자꾸 들어요. 이를 위한 저의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이시이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2000년도 일본-네덜란드 간 국제교류행사를 좀 더 크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선, 영국 런던에서 출발하는 떼제베 열차가 파리(프랑스), 브뤼셀(벨기에)을 거쳐 암스텔담역(네덜란드)까지 오면 거기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여 베를린(독일), 프라하(체코), 바르샤바(폴란드), 모스크바(러시아), 이르쿠츠크(러시아), 울란바토르(몽골)를 거쳐 중국 북경역에 도착하는 A구간 노선을 정해봅시다. 다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출발하는 신칸센 열차가 오사카를 거쳐 후쿠오카에 도착하면, 거기서 후쿠오카-부산 간 쾌속선으로 갈아타고 부산항에 내린 후 부산역에서 KTX열차를 타고 출발하여 서울역까지 와서 다시 일반 열차로 갈아탄 후 개성, 평양, 신의주를 지나 단동, 심양을 거쳐 북경역에 이르는 B구간 노선을 정해봅시다.
북경 올림픽 참관을 위해 영국 런던에서 출발한 유럽, 러시아 참관단과 일본 도쿄에서 출발한 일본, 남북한 참관단들이 북경역에서 서로 함께 상봉한다고 한번 가정해봅시다. 이 만남은 얼마나 통쾌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입맞춤이 되겠습니까? 또한 이 북경 올림픽 기간 동안 유럽인들은 B구간을 이용하여 한반도와 일본을 방문하고, 또한 동북아 인사들은 A구간을 활용하여 러시아와 유럽까지 방문단을 구성하여 상호 내왕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도쿄에서 런던까지” 이어지는 꿈의 철도 여행을 기획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한일간 해저터널이 건설되지 못해 아직은 후쿠오카-부산 간에는 쾌속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그 길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는 것이 결국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인데, 아마도 북경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북한도 선심을 쓸 것이고 또한 중국의 후진타오 정부도 국제사회에 주변국가와의 ‘평화발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한에게 이의 성사를 종용할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의 끝(영국)에서 아시아 대륙의 끝(일본)으로 이어지는 이 평화 철도 운행계획이 결코 헛된 꿈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은 대안을 양국 정부의 전문기관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제안해볼 뜻을 지금 가져봅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아태연구소를 통하여 중국 지도부에게 이 대안을 건의해 볼 생각이며, 또한 한국의 통일부 및 건설교통부(주무기관 : 한국철도공사)와 북한의 민화협을 통하여 북한 지도부에게 이 대안을 건의해 볼 생각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저희 연변과기대에서 자매학교로 건설해온 평양과기대가 올해 9월 5일부로 개교할 예정인데, 이 평양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을 성실하게 건의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국제대학으로서의 통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이시이 회장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 새로운 희망의 길을 내다보는 듯, 감동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떨리고 있었다.
나의 생각과 비전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 같다. 오늘 잠시 틈을 내어 콜택시를 타고 ‘미션벨리’에서 ‘니씨데쓰 그랜드호텔’로 달려왔지만, 기실 그렇게 와서도 이와 같이 유익한 대화를 나누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냥 만나보고 싶었고 공동관심사에 대해 약간의 의견을 나누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도우사, 우리는 서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꿈의 세계 ―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동북아 연합의 꿈과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것이 어찌하여 하필이면 일제 치하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던 한국의 국경일 3.1절을 기념하는 날에 생겨진 일인가? 또한 이것이 어찌하여 하필이면 그 옛날 1860년대 개화기 때 일본 명치유신을 성공시킨 부국강병론자들을 대거 배출시킨 큐슈 땅에서 생겨진 일이란 말인가?
이런 특별한 감동을 느끼면서 본인은, 우리 한국인들도 이제는 3.1절을 일제시대 기미독립만세 사건이라는 과거사 속의 한 장르로만 계속 기억할 것이 아니라, 21세기 탈냉전, 탈이념 국제협력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국제시민으로서, 한중일 3국이 “삼자가 하나” 되듯 한 몸으로 거듭나는 공동체 역사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기념일로 이해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는 큐슈를 계속 한 개의 「섬」으로만 남겨놓지 말고, 한반도와 직결되는 교통인프라(해저터널)를 건설하여 서로가 하나의 생활문화공동체를 이룸으로서 명실공히 큐슈지역의 인재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사무라이式 사고체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 신천지, 평화의 신세계를 향해 새로운 개화의 꿈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한반도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유익한 길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구상도 생긴다. 아, 무엇이 과연 우리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희망을 이끌어가는 역사의 진로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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