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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Ⅴ.
숙소인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이시이 회장께서 상담을 마칠 즈음에 난색을 표하며 마지막으로 확인해주신 말씀을 줄곧 음미해 보았다.
“이 박사님, 설사 북한이 길을 열어주어 남북한 철도가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는 곧바로 자신이 먼저 단호하게 답변을 했다.
“그건 북한이 저지른 납치사건입니다. 이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일본 정부에서는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북한을 경유하여 중국으로 여행하는 길을 막을 것입니다. 십중팔구 그렇게 할 것입니다.”
“아니, 이시이 회장님. 납치문제가 아베 총리의 국내정치용 이슈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할지라도, 아무렴 북경 올림픽기간 동안에는 여행을 허락하겠지요. 물론 올림픽 전에 이미 그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되겠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래서 북한의 성의있는 조치로 납치문제가 해결되면 일본은 미국에 뒤따라가는 형식으로 북일정상회담과 수교협의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민 모두가 완전히 납득할 만한 수준에까지 이르러야만 북한을 용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국민 모두가 완전히’라는 말이 또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일본 국민들은 언제까지 집단주의체제에 매여 있으려고 하는가.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납치 문제에 대해초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뉴스평론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또한 일본 아소 외상이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에 1엔도 원조해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일국 외상의 발언으로는 너무 경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와 아소 외상에게 되묻고 싶어진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태도로 책임을 물으면서도, 정작 일본인들 자신에 의해 강제동원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며 ‘허구’라느니,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등의 망언을 서슴없이 뱉어내고 있는데, 과연 일본의 국가적 양심은 남아 있는가? 심지어는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종군 위안부 동원 과정에 일본군과 일본 관리들이 관여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발언(소위 “고노” 담화)조차도 재검토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데, 이것이 과연 선진대국의 리더로서 취할 태도인가를 묻고 싶다.
만일 아베 총리가 계속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조치를 취한다면,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미국 의회에서나 언론에서도 이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데, 차제에 아베 총리 및 일본 정부는 폐쇄적인 집단논리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왕따당하거나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회장님, 저는 이시이 회장님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북경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아시아대륙과 유럽을 연결해서 세계 최장의 철도여행을 계획한다는 일은 앞으로 일본의 대륙진출과 함께 동북아 평화체제를 이끌어 낼만한 세계적인 이슈인데, 이걸 마다하고 일본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은 도무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
“아니 그럼 일본 정부에서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인 납치사건이 일본으로서는 매우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진로의 발돋움을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이런 정도의 한계는 벗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의 도발적인 질문에 이시이 회장은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륙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나라 사람들은 자기 논리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이 박사님께서 우리 일본을 더 잘 이해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섬나라 사람들이라고해서 꼭 그렇겠는가? 대륙의 울타리에 갇혀 대국의 그늘 밑에 속국처럼 지내왔던 많은 소수민족 국가들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선 한반도의 과거 역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독립된 공간에서 대양을 향해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란 섬나라 사람들이 더 개방적이고 우호적으로 교류협력하기 쉬운 사람들일 수 있지 않은가. 개인이나 집단도 결국은 생각하기 나름인데, 일본이 진정으로 일본답기 위해서는 일본을 뛰어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겐까이 로얄호텔까지 타고 오는 택시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념을 정리해 보면서 앞으로 나도 일본과 일본인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겠구나 하는 반성을 가졌다.
갑자기, 이시이 회장이 곁에 있으면 “당신 멋져” 이렇게 외쳐주고 싶은 충동이 뭉클 일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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