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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Ⅵ.
호텔에 도착하여 간단히 온천을 마친 다음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내 중국식당으로 갔다. 이제 막 만찬을 시작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이시이 회장과의 담론을 요약하여 설명해 드린 후, 2008년 북경올림픽을 빌미로 삼아 “도쿄에서 런던까지” 연결되는 대륙간 철도운행 프로젝트를 한번 추진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행들이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이 꼭 성사되어서 장차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과 동북아 FTA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씀을 여러 분들이 해 주셨다.
만찬이 진행되면서 우리들은 그동안 자신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듣고 보고 느낀 점을 기탄없이 쏟아내며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 중 귀담아들어서 기억해둔 이야기 몇 가지를 적어보면 이렇다.
이은선 회장 :
“여기서 한 시간쯤 가면 이쓰까라고 하는 조그만 도시가 있는데, 이곳은 일제치하 때 조선인들이 많이 징용당해 와서 일한 곳이야. 무연탄, 석탄을 캐는 탄광지역인데, 그때 캐낸 양이 산을 이룰 만큼 고생들이 심했다고 하지. 그때 징용 온 사람들을 보국대라고 불렀는데, 주로 군수산업이나 물자공급을 위해 노역했던 분들이야. 그때 그분들의 후예들이 집단적으로 정착해서 사는 마을이 이쓰까야. 지금도 조선인 3세․4세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많이 살고 있어. 그런데 내가 정말 더 마음 아파하는 것은, 조선인 3세․4세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 문제야.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야. 도대체 자기들이 누구인지, 또 누구여야 하는지 이리저리 방황하며 살고 있는 실정이야. 최근에 일본 정부가 출산율 감소를 줄이기 위해 재일동포들에게 귀화를 독려하고 있고, 또 교육과 취업조건을 완화시켜 주어서 청년들이 많이 귀화하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정작 일본인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도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도 많아.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없어. 일부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이 한국 정부에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게 어디 쉽게 허용되겠어? 그냥 외국인 취급이나 하고 말지 뭐. 또 한국에 유학 온 재일동포 학생들을 봐. 그들을 일본학생 취급을 하면서 무관심하게 버려두고 냉대하는 실정이니 이래서야 어디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볼 수 있겠나”
이인혁 회장 :
“오늘 골프장에서 몇 홀인지는 모르지만, 그린 뒤 언덕 잔디밭에 푸른 물감을 먹인 것 보셨지요. 제초제와 성장활성제를 섞어서 뿌렸겠지만, 사실 난 원래 축산과 출신이 아니고 공대 섬유과 출신입니다. 축산을 해서 돈을 버니까 다들 내가 축산과 출신인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옛날에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일본 친구로부터 옷감에 칼라 먹이는 기술을 도입해서 돈을 약간 벌었어요. 그때 번 돈을 갖고 나중에 축산업을 하는 기초자금을 만든 셈이지요.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생명공학연구소는 일본과 기술제휴해서 연구하는 게 많습니다. DNA분야 연구를 보면 일본 기술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있는 게 사실이고, 또 그런 기술을 잘 이용해야 큰돈을 벌 수 있겠지요.”
김경철 회장 :
“나는 1975년부터 78년까지 중앙일보 동경특파원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때 이병철 회장님께서 일본에 오시면 가끔 수행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삼성그룹을 키워 오신 비사(秘史)를 조금씩 얘기 듣곤 했는데, 말씀하실 때마다 일본과의 신의를 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하셨어요. 사실 삼성이 큰걸 보면 거의 일본을 벤치마킹 한 것 아닙니까? 지금은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삼성을 배우려고 야단들이지만... 70년대에 용인 자연농원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랬어요. 재벌기업이 땅장사 한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비난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그때 그만한 땅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서울근교에서 1시간권 안에 그런 큰 휴식공간을 만들 수 있겠어요? 그때 이 회장님께서는 한국에 자연농원 같은 게 적어도 세 군데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시 근로자들이 주말에 휴식을 취하거나 놀러갈 데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한마디로 선견지명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언젠가는 또 연초에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문안을 갔더니, 어제 수술하셨다고 하신 분이 침상에 꼿꼿이 몸을 세우고 앉아서 운기조식하고 계시는 모습을 봤어요.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해오신 분이지요. 그때 회장님께서 저보고 이렇게 느닷없이 물으시더군요. 김군, 요즘 북한 정세가 어떤가? 문제는 없는가? 나라가 잘되고 회사가 잘되려면 우선 북한 문제가 안정이 돼야해. 북한이 시끄러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역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은 전체를 크게 보시더라고요.”
안광우 회장 :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있다가 신한투자신탁 사장으로 갔을 때 일이지요. 제가 제일 먼저 신경 쓴 게 예절교육이었어요. 일본에 있는 은행 본사에 출장와보면, 이 분들의 손님 대하는 모습이 꼭 머슴이 상전 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냥 90도 넘게 허리를 굽혀 몇 번씩이나 절하면서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는데, 제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도 투자신탁의 직원들과 임원들까지 무조건 손님을 보면 90도 절하기 운동을 했었지요. 나중에 그게 회사 실적을 올리는 데 큰 효과를 봤어요. 사실, 앞에서 이인혁 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제가 볼 때는 한국이 일본에 비해 20년은 뒤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기술이나 조직관리 면에서 우리가 배울 게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요새 우리가 IT, 반도체, 그리고 조선이나 제철, 자동차 부문에서 조금 잘나가고 있으니까 그냥 기고만장해서 야단인데, 보세요. 일본이 이제 그동안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부흥단계로 들어서면 아마도 무섭게 발전할 겁니다. 우리 한국기업들 분발해야 해요. 지금 핵문제, 남북문제로 시끄러운데 이거 잘 대비해야 해요.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정부는 수치놀음이나 하고 기업들은 분식회계나 하고 있으면 되겠어요? 이 부총장께서 늘 걱정하듯이 중국의 동북공정만 해도 그래요. 동북공정 문제를 극복하려면, 우리 정부와 기업이 더 경쟁력 있는 사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뿐만 아니라 이제 몇 년 안가서 중국의 발전 속도에 눌려 꼼짝 못할 때가 와요. 진짜 우리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어요.”
남상해 회장 :
“제가 옛날에 소방관협회 회장을 할 때였어요. 일본에서는 경찰보다 소방관을 더 우대하고 최고 대접을 해줘요. 지진이 많은 나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사회질서는 안정이 되어 있지만 자연질서는 언제 지진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위급한 사태가 나면 소방관이 제일 먼저 달려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소방관을 최우대 해주는가 봐요. 그래서 저도 큰 대접을 받았지요. 행사장에서 테이프커팅 할 때나 연설, 또 차량이동 할 때도 제 차가 제일 먼저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가는 겁니다. 제가 한국에서 훈장이나 표창장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인줄 일본사람들도 아는가 보지요(웃음). 그게 아니라, 실제로 소방관을 그렇게 소중하게 대접해주는 사회입니다. 위급할 때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남의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제가 그때 일본에 갔을 때 놀란 게, 하루는 비가 와서 접어서 쓰는 우산을 하나 샀었는데, 그게 고급우산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비싼 걸 샀겠어요. 그런데 제가 호텔에 그냥 두고 나온 우산을, 아, 글쎄 그걸 호텔 측에서 공항까지 호텔 직원이 직접 와서 전달해주는 게 아닙니까? 그것도, 체크아웃을 할 때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호텔 지배인의 편지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이게 일본이에요. 그때 저, 일본, 참 많이 배웠어요.”
우리 일행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본과 맺은 개인의 특별한 인연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만찬 회식이 끝난 후 나는 시간이 꽤 늦었지만 곧바로 객실로 돌아가지 않고 아내와 함께 1층에 있는 중정(中庭)으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면서 “오늘, 참 기분 좋다. 멋진 날이야. 당신, 오늘 더 멋있어 보이는데?”라고 속삭여주었다.
아내가 내 품에 안겨오면서 “아냐, 당신이 더 멋져요. 당신, 정말, 고마워요.”라고 하면서 금세 눈물방울이라도 떨어뜨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때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았다. 아, 한마디 칭찬과 스킨십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가깝게 있다고 소홀히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정을 표시하며 스킨십을 해줄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가깝게 있는 우리 한일간부터, 또 남북한과 한중일 3국 간에도 이런 국가간 스킨십, 기업간 스킨십, 개인간 스킨십이 평소에 자주 있어져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친밀해지고 융통성 있는 생각과 우정으로 선린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가져보았다.
특히 각국 지도자들 간에 서로 자주 만나서 격려하고 칭찬하며 껴안아주는 태도를 보인다면 각국 국민들이 얼마나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스스로 감동이 되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리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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