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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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7 (이승률16)
2007년 04월 25일 17시 23분  조회:2614  추천:88  작성자: 이승률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Ⅶ.

셋째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대로 곧장 온천장으로 가서 몸을 풀었다. 나는 실내탕보다 건물 바깥에 만들어놓은 연못형의 옥외탕(‘岩風呂’)을 더 많이 애용했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서서히 밝아오는 새 하늘의 여명을 바라보며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폐부 깊숙이 시원한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없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때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묵상에 한번 빠져보라! 새벽에 옥외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용하기도 하려니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은 묵상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아의 경지에 다다른 듯한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때 느끼는 특별한 인식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표피적인 감각 즉 물 위에 떠있는 빙산의 일부를 보고 느끼는 정도의 감각이 아니라, 물속에 잠복되어 있어서 그 깊이와 부피를 알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힘의 세계에 이르는 인지능력을 체득하게 해준다.

그날 아침 나는 30분이 넘도록 반신욕을 하면서 조용히 묵상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 특별한 인식을 통하여 자아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능력을 훈련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온천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아랫배(단전)에 힘을 모으고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땀을 줄줄 흘리듯) 하나씩 정리해나가다 보면,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평소에 잘 깨닫지 못했던) 영적 기운이 온천수처럼 뜨겁게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새로운 영적 기운은 강력하고 순수하며 몰아적인 힘을 증대시키면서 자신의 폐쇄적인 아집의 틀을 뛰어넘도록 만드는, 무소부재에 가까운 소통의 감흥을 불러일으켜준다. 이것을 나는 개체의 한계를 벗어나 자타를 함께 공유하는 대아(大我)의 경지라고 부르고 싶다. 이 대아의 경지를 통해 우리는 자타의 존재가치를 더욱 확장해서 이해하게 되고, 마침내 “인류 공동선”이라고 부를만한 보편적인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습득하게 된다.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한동안 새벽 묵상의 재미에 빠져있던 나는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환하게 밝아진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옅은 구름이 새의 깃털처럼 표표히 떠있는 광경이다. 오늘도 날씨가 무척 좋겠다는 감을 느끼며 다음과 같은 염원을 가져보았다.

우리 한중일 3국간에도 국민적 감성 즉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의 기복을 통하여 쌓여진 민족의식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한 통합적인 학습의 훈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서로 소아병적인 민족감정을 앞세워 끝없는 소모전을 펴면서 적대시하기만 해야 하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하겠다. 각자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통합적인 사고의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국가 간 개체의 한계와 속성을 뛰어 넘어 ‘인류라는 큰 틀’의 경지를 통해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각국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굴, 확장해나가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가야 할 때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화시대의 국제협력 흐름에 적합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문화와 전통을 수립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 동북아인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사명이요 그 의무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반성과 함께 그동안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구상해왔던, 한중일 3국간에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대안(an alternative plan for new dream society)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것은,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을 기초로 하여 동북아지역 철도 및 도로망을 대폭 확충하고, 동시에 동북아 물류시스템의 국제통합모델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동북아FTA 및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보자는 의견이다. (*한미FTA협상이 지금 금년 3월말 시한부로 한미 양국간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나는 한미FTA가 성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의 한명인데, 이 협상이 성사될 경우 그 파급효과로 한중FTA․한일FTA협상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한국이 국제유통시장의 교차점이 되어 동북아FTA 및 경제공동체의 새로운 한마당을 여는 기회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만일 이러한 대안이 채택되어 각 민족, 각 국가 간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불신과 불화의 벽을 허물고 한중일 3국간에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만드는, 성숙한 자기인식의 인지능력을 학습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다면 동북아 3국은 지금까지 과거사에 묶여 있었던 질곡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자국 중심의 냉전적 사고와 단절된 역사의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과 ‘함께하는 정신’으로 공동선(共同善)의 대로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이 길은 우리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묵혀 있었던 각국의 현안문제들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번영의 기회를 맞도록 해줄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은 마치 한국 속담에 있는 것처럼 ‘도랑치고 가재잡는 식’의 입체적인 역사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면서 우리 동북아지역에 희망의 새 시대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길은 일본의 속담에 ‘힘든 일이 당신을 보배로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 모두를 21세기 국제사회의 정련된 보배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

온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얽매고 있던 관습과 아집의 사슬들이 하나씩 둘씩 풀려가는 듯한 감을 느끼면서, 이런 깊이 있는 자기성찰의 생각과 함께 “이것은 한번 해볼 만한 일이다”라는 결단의 확신이 생기자 나는 그만 주체할 수 없는 심경이 되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온 힘을 다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리쳐 기도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한일 해저터널과 함께 동북아에 새로운 교통의 대로를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이 대로에 연접되어 있는 모든 묵은 땅을 기경하게 해 주시고, 나아가 한중일 3국이 한마당의 판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침내 이 동북아 연합의 기초 위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거듭나는 새로운 희망의 역사, 꿈의 실크로드를 완성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나는 이런 기도를 하면서 영적으로 주어지는 무한한 기쁨의 힘을 느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완성해주고 있다는 감을 느끼게 되자 나의 마음은 하늘의 깃털구름처럼 가벼워졌다. 온천을 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이런 환희의 감정과 함께 승화되어, 마치 이 일이 당장 이루어진 듯한 환상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

밝아 오는 새 하늘이 점점 더 푸른색을 띄면서 빛나기 시작했다. 빛의 감성이 내 영혼 깊숙한 곳까지 비쳐 오는듯한 느낌이다.

한중일 3국 국민들 가슴 속에도 내가 느끼는 이와 같은 자기 인식에 대한 객관적 인지능력의 훈련이 숙달되어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껴안아주며 새로운 융합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공동체 의식이 하루 빨리 확산되기를 희망하면서 새벽 온천을 마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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