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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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10 (이승률19)
2007년 04월 25일 17시 32분  조회:2978  추천:84  작성자: 이승률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Ⅹ.

마지막 날(넷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카네자키 항으로 갔다. 지난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아내를 설득한 후 호텔 프론트에 내려가서 콜택시 하나를 (새벽에 이용할 수 있도록) 미리 부탁해 놓았었다.

현해탄을 바라보며, 직접 그 푸른 바다의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네자키 항은 호텔에서 차량 거리로 불과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항구는 아직 날이 깨지 않아 어둡고 조용했다. 선착장 입구의 주차장에 택시를 주차시켜 놓은 후 나와 아내는 일본인 운전기사의 안내로 부둣가로 다가갔다. 새벽 조업을 하기 위해 어부들 7-8명이 두 척의 고깃배를 드나들면서 출항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부둣가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비친 어부들의 표정이 조금은 긴장되어 보이는 기색이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숭고하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의 역사를 우리들에게 제공해줄 것인가.

택시기사에게 저들이 주로 어떤 고기를 잡느냐고 물어봤더니, 손수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아라까부’라는 고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큰 것은 1마리에 500¥까지 팔린다고 하면서, 해안으로부터 5~10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릴낚시로 조업을 한다고 했다.

출항준비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차츰 수평선 저 너머 멀리서부터 날이 밝아오는 감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포구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탁본을 뜰 때 나타나는 글자와 그림처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해탄의 새벽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이 현해탄의 해저에 새 길을 열어 주십시오. 항공과 해운으로만 운송되던 물류가 철도와 도로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새 길을 열어 주십시오. 그래서 빙산의 일각으로 교류하던 수준을 뛰어 넘어, 수면 속에 잠복되어 있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의 잠재능력을 총체적으로 시너지화 할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주십시오. 상품과 기술과 문화와 자금과 인력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교류협력 할 수 있는 자유무역의 새 길을 열어주십시오. 새 시대, 새로운 역사발전을 위한 대동맥의 통로를 열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과거사로부터 떠밀려온 한일간 레드 오션의 운명을 미래지향적인 블루 오션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변화시켜 주십시오. 서로의 장점을 나누어 가짐으로서, 서로의 강점과 비전을 창의적으로 융합함으로서 더 큰 진보를 이룩해가는 창조적인 가치개혁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블루 오션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동북아의 새로운 새벽을 깨우는 현해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먼동이 트는 바다를 응시하며, 뜨거운 울음을 삼키듯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아내가 곁에서 팔로 내 등을 감싸안은 채 함께 마음을 모아주었다. 하늘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항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 날이 열리는 현해탄의 푸른 파도가 더없이 정답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마침내 조업을 준비하던 고깃배 두 척이 선착장을 떠나 출항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손을 흔들어주며 그들의 하루 일과를 축복해주었다. 선착장에 오래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어 주차장으로 가서 택시를 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또 한번 이렇게 속삭였다.

“나, 잘했지. 내가 생각해도 참 잘한 것 같아. 그리고 당신 멋져.”

예고 없이 새벽 일찍 요란(?)을 떨며 데리고 나온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해서 한 말이다. 아내는 처음에는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나”하는 투로 생각했지만, 막상 카네자키 항에 와서 현해탄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기도할 때는, 남편의 생각과 뜻이 자신에게도 전해져서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일체화되는 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히브리서 11장 1절)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하면,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들의 바라는 바 꿈과 소망이 하나님 뜻 안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믿음이 신앙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일간 해저터널」이 한일간의 관계개선과 동북아 평화발전의 공동선을 창출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하는 것을 면밀히 목도하고 싶어진다.

나는 택시 안에서 아내의 손을 잡은 채 우리들의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면서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왔다.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그런지 아침 조찬이 더욱 맛있었다.
우리 삼삼회 일행들은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다음 어제 갔던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으로 다시 갔다. 36홀 골프장이라서, 어제와는 다른 코스로 라운딩을 했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고, 스코어도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좋게 나왔다. 함께 라운딩을 했던 이은선 회장께서 칭찬을 해주셨다.

“이 부총장은 몸이 불편하다 하면서도 좀체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을 비워서 그런가, 스윙 폼도 부드럽고 퍼팅 감각도 매우 안정되어 있어.”

이 말씀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사람을 얼마나 안정되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라고 누군가 말해주던 것이 기억났다.

개인 간에, 단체 간에, 국가 간에도 이러한 절제의 미학과 능력이 잘 훈련되어서 각자의 컨디션을 안정되게 이끌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가 잘나서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깨가 몹시 아파서 어쩔 수없이 하프 스윙 정도로 한다는 게 마음을 비운 꼴이 되어 결과적으로 플레이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이런 깨우침이 들자,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에 관한 일화가 다시 생각났다. 그는 일본 「마쓰시다 전기」의 창업자로서, 일본인들이 뽑은 지난 1천년간의 가장 위대한 경영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흔히 일컬어지고 있는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3가지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 : 11세에 조실부모했기 때문에, 철이 일찍 들었다.

둘째 : 어릴 적부터 건강이 나빴기 때문에, 늘 건강을 조심하여 95세까지 장수(1894-1989)할 수 있었다.

셋째 :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한 후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배움에 겸손하게 되어 그 결과로 경영의 귀재(National 社,  Panasonic 社 운영)가 되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아픔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겸손히, 성실하게 정진해 나간다면, 그 아픔과 약점이 우리의 인생을, 기업을, 국가를 오히려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터닝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얼마 전(EU탄생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Markel) 총리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방문하고 남긴 글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과오와 약점을 인정하고 주변국가와 함께 손잡고 화해의 길로 나선 독일 덕분에 지금 유럽은 국경도 허물고 각종 제도를 통일시켜 가면서 공동의 번영을 꾀하고 있다.

독일과 나란히 2차대전의 전범국가였던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유럽에는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고 또 메르켈 총리가 발 벗고 나서면 유럽과 세계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크게 각광 받는다.

반면에 일본이 힘을 과시할 조짐을 보이면 주변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의심부터 하게 된다. 고이즈미 전(前)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도 그랬거니와, 아베 현(現) 총리의 종군위안부 발언만 해도, 주변국가의 만류와 우려를 무시한 채 국제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고서야 누가 일본 총리의 리더십을 존중해 주겠는가? 도대체 무엇이 독일과 일본을 이렇게 차이나게 만드는가?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의 마지막 코스를 라운딩하면서 나는 일본 지도자들이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일생과 독일의 경우를 교훈삼아 자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절제하는 미덕으로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자신의 아픔과 약점과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면서, 겸허하게 이웃과 벗하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정신으로 공동선을 이루어 나간다면, 동북아 평화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블루 오션의 대로가 열리지 않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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