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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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12 (이승률21)
2007년 04월 25일 17시 37분  조회:3024  추천:93  작성자: 이승률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Ⅻ.

나는 금년 5월 중순경에 하와이 출장 계획이 잡혀있다. 9월 5일 개교 예정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소식을 교민사회에 전하고, 개교 준비에 필요한 교육기자재 지원업무와 교수인력 교류를 상담하기 위해 각계 기관과 하와이 대학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하와이 대학에서는 특별히 미래전략센터 소장인 짐 데이토(Jim Dator, 73세) 교수를 만나도록 약속이 되어있다. 그는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고 있으며, 1967년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협회’를 만들어 미래학(future study)이란 학문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한 선구자다.

그는 지난 1월 초 한국을 방문 했을 때 “정보화사회 다음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해일이 밀려든다”고 단언했다.
(chosun.com 1월 8일 기사 참조)

그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꿈과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경제의 주력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핵심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드림 소사이어티에 진입한 세계 1호 국가’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한류(韓流)”라는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상품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짐 데이토 교수가 사용하는 전문용어들 가운데 이런 게 있다.

국민총생산(GNP) 대신에 국민총매력(GNC: Gross National Cool)이란 지표를 쓰자고 하는 제안이 그것이다. GNP가 한 나라 국민이 생산한 모든 상품가치의 합, 즉 물질(재화․서비스의 총생산)에 기준한 것이라면, GNC는 한 나라가 얼마나 쿨(cool, 매력적)한가에 의해 그 나라의 부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이미지의 생산, 결합, 유통이 주 평가요소가 된다.

나는 짐 데이토 교수를 만나면, 동북아사회의 새로운 미래가치 창조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볼 작정이다. 그의 대답이 벌써부터 자못 궁금해진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쩌면 우리 동북아 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한 퓨전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퓨전(fusion)을 길게 늘여 쓰면 future vision이 된다. 동북아사회의 future vision을 ‘fusion’에 두고, 그 핵심역량을 ‘사랑’이라고 하는 이미지에 결부시켜 보자.

“사랑으로 융합된 힘”

이것이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가치를 이끌어내는 이미지 파워(Image Power)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이미지 파워를 가진 신크래틱스 리더십(Syncretics Leadership : 갈등을 통합하는 리더십)들이 각국에서 왕성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과거사에 묶여있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천박한 패권의식의 한계(레드 오션)를 벗어나 국민들의 마인드 세트(Mind Set)를 개방적인 대아(大我)의 경지 ― 선린공동체의식으로 전환시켜 나감으로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해저 깊이 잠복되어 있던) 잠재능력과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합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이 융합된 지식과 힘을, 정치․경제․사회․산업․기술․과학․교육․문화 등 여러 부문에 적용하여 새로운 가치 개혁의 국제 클러스터(International Cluster)를 구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주창하는 ‘동북아 연합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우리를 「드림 소사이어티」로 향하게 하는 시대정신이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블루 오션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역사」다.

일본 열도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한 몸의 공동체로 융합하고 연결하는 일은, 동양의 선진들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대동사회」로 진입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나는 신명을 다 바쳐 이 길을 예비하고 개척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사회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정보공동체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정보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국민총매력(GNC)의 이미지 파워가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제도와 생활양식을 통째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하는 신문명 시대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간에 기득권을 고집하며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는 정략배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 묵은 관습의 껍질이 얼마나 누추하게 보이는지!

이제 그만 우리 새로워지자.

새로운 꿈과 이미지로 우리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
EU(유럽연합)의 통합정신을 본받아 우리 아시아권(圈)에서도 각 국가의 지도자들과 인재들이 서로 내면적 소통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기회를 만들어보자.

이를 위한 상징적 대안으로 나는 「2008년 북경올림픽 기념 평화철도 운행계획」을 적극 추진할 것이며, 그리고 이 계획이 성사되면 그때 아키히토 일황 가족들을 「평화철도」의 VIP로 정중히 초대코자 한다.

아키히토 일황과 나루히토 왕세자가 나란히 평화열차를 타고 한반도(남북한)를 거쳐 중국의 수도 북경역에 도착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라!

과거 「명치(明治)유신」시대였다면 정복자로, 지배자로, 허리에 총칼을 차고 근엄한 얼굴로 입성했을 일황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상황을 잘 분별하고 있는 아키히토 일황은 「명인(明仁)유신」의 화해자로, 섬기는 자로, 만면에 배려 깊은 사랑과 겸손과 양보의 미소를 띠며 평화의 사도로 그곳에 당도할 것이다.
(*여기서 큰 고민이 생긴다. 1860년대 도쿠가와 막부 때 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과 조직력을 갖춘 일본의 현 집권당과 정부 관료들이 아키히토 일황의 「명인유신」을 인정하고 그 대열에 순순히 따라 나설지가 미지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미리 알고,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위해 창의적인 개혁의 길을 걸어가고자 꿈꾸는 인재들은 반드시 있으리라! 당시 「명치유신」을 일으킬 때는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경향에 따라 자국의 부국강병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지만(대표적 인물: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 화폐 만엔권 도안 인물), 이제는 지구촌 정보사회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세계화 경향에 따라 통합적인 사고의 지도력으로 지역공동체 경제발전 및 집단 안보체제를 이끌어가야 할 시대이다.

꿈과 이미지와 사랑으로 융합하는 퓨전의 정신을 겸비한 신크래틱스(Syncretics) 리더들이 아키히토 일황을 모시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가치개혁을 이루어 나간다면, 이들이야말로 내가 제안한 「명인유신」의 비전을 실천하는 핵심역량의 인재집단이 될 것이다.)

나는 상상해본다.

평화열차를 타고 2008년 북경올림픽이 열리는 중국을 향해 나아갈 때, 한반도(남북한)를 통과하는 아키히토 일황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마도 그는 故 이수현 군을 마음속 깊이 추모하면서, 고인이 보여주었던 헌신과 희생의 정신, 그 사랑의 복음적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려고 노력할 것 같다. 일본을 상징하는 신분으로서 국제평화를 위해 故 이수현 군처럼 살신성인하는 자세를 보이고 싶어 할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진정으로 그렇기만 하다면, 우린 일본을 용납해야 되지 않겠는가. 일국을 대표하는 왕의 신분으로, 죽음을 각오하는 마음으로 과거사의 과오를 씻어내려고 한다면, 그 점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고 새 시대의 동역자로, 친구로 받아들여야 되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나는 또 고민이 생긴다. 혹시 일부 한국인들이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상기하면서, “중국을 치려니 길을 비켜달라”고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가도(征明假道)」론을 다시 들먹이며, 나를 민족의 반역자쯤으로 몰아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인 Open Mind & Network의 물결이,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치고 바다로 나아가듯, 우리를 진보적인 존재가치와 「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고 있음이 자명하지 않는가!)

이로서 일본은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씻고, (독일처럼) 주변국가들과 함께 손잡고 화해하며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거듭난 모습으로 세계 속에 부각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되어야만,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주변국가들의 적대적 감정을 해소하고, (일본)스스로 가해자로서 느끼는 가책의 족쇄를 풀고 일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GNC(국민총매력) 강국으로서의  ‘새로운 일본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이 진정한 국제평화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 또한 동북아 평화발전의 새 길을 열어가는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북핵문제도 자연스럽게 고차적인 협상의 단계로 업그레이드(Up-Grade)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며, 그리고 평화발전정책을 국가발전의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는 중국 후진타오 정부의 위상을 (경제대국에 이어) 외교 강국으로까지 끌어 올리는, 획기적인 진보의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30년 전에 일본을 방문했던 등소평 주석의 “열정”이 기억난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당시 등소평 주석은 신칸센을 타고 일본 주요도시 여러 곳을 탐방하면서 특히 일본의 과학기술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이 일이 중국의 개혁개방과 근대화를 이루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던가. 어쩌면 2008년 북경올림픽에 참가할 아키히토 일황 일행들이 중국의 여러 도시를 탐방하면서 중국의 신경제개발지역과 신기술산업단지를 둘러볼 기회를 가진다면, 그 역시 중국의 저력과 장미빛 미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겠는가. 이 일이 또한 일본과의 새로운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이 되지 않겠는가.

“일본의 이미지를 바꾸라”

비행기가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의 내륙으로 진입하자 나는 조용히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지난 3박 4일 동안의 큐슈 여행을 통하여 듣고 보고 느낀 점을 감안하여,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에게 한마디 권면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보니, 바로 이 말이 떠올랐다.

현해탄의 해저터널은, (내가 믿기로) 언젠가는 건설될 것이다. 아키히토 일황께서 그때까지 생존해계셔서 (지금은 후쿠오카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나 쾌속선을 타고 건너가지만) 언젠가 신칸센과 KTX 고속열차를 타고 현해탄의 해저터널을 건너 “도쿄에서 런던까지” 유람하는, 아름다운 「희망의 역사」를 실현하는 기회를 더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한일양국에서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조선시대 한일간 교류의 첨병이었던 ‘조선통신사’가 다녔던 도시들을 주축으로 지역주민들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를 TV를 통해서 본 바가 있다.

예를 들면 나가사키, 야마구치 현(縣)과 시즈오카, 하코네 시(市) 등의 주민들은 부산에서 준비하고 있는 행사에 참석해 자기 지역 마쓰리(축제)행사를 선보이고, 또 부산 시민들은 쓰시마, 도쿄 등지를 찾아가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한다고 한다.

2000년에 있었던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 기념행사 중의 하나로 실행되었던 대륙간 철도여행이, 나의 이번 큐슈여행을 통해 새로운 창의적 대안(‘도쿄에서 런던까지’)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올해 4월말 경에 열리게 될 한국․일본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하여 무엇인가 한일간에 새롭고 진취적인 가치개혁의 지평(地平)이 열렸으면 좋겠다.

비행시간 내내 깊은 묵상에 빠져있던 나는 목적지에 다 와 간다는 기내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눈을 떴다. 옆자리의 아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머리를 매만지며 입국할 준비를 한다.

“이번 여행, 참 좋았어요. 다음에 또 데려가줘요.”

아내로부터 큰 점수를 땄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한마디 응해주었다.

“그래. 우리 늘 함께 다닙시다. 당신 멋져. 사랑해.”

아내가 소녀처럼 해맑게 웃는다.

얼마 있지 않아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영종도에서 산동반도를 바라보는 쪽의 서해바다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현상 때문인가?

오늘따라 유난히 붉은 노을이 피를 토하듯 붉고, 그 아래 「레드 오션」으로 불리울만한 붉은 물결이 대륙풍 바람에 떠밀려 거세게 출렁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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