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의 관문인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이 3월 26일 개항하여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내가 타고 들어간 아시아나 항공의 승객들은 한국인으로서는 제3터미널로 입경하는 첫 손님이 된 셈이다.(대한항공은 예전처럼 제2터미널을 계속 이용한다.)
2004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던 제3터미널 신청사의 건축규모는 연면적 98만6,000㎡로 단일 터미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며, 인천공항의 1.5배가 된다. 홍콩 첵랍콕 공항을 설계했던 영국의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이 터미널은 지붕에 황금빛 알루미늄 합금 금속판으로 만든 300여개의 채광창을 돌출시켜 놓았는데, 이 채광창을 열 경우 비늘을 세운 채 엎드려있는 용(龍)의 형상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언론들은 제3터미널 신청사를 “중화(中華)의 힘이 응축된 건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항공여객이 급증 할 것으로 보고 2010년 안에 북경 제2공항을 착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말 현재 147곳인 중국 전역의 공항을 2020년까지 244곳으로 늘려 100km마다 공항을 하나씩 건설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중국 경제의 발전상은 이제 항공부문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북경 올림픽을 정점으로 중국의 모든 국가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듯한 긴박감을 느끼며 제3 터미널의 광활한(?) 구조물 안으로 첫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최근 신청사 개장과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내·외국인의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내·외국인이 내던 기존의 검역카드와 관세카드는 모두 사라졌으며, 내국인은 아예 출입국 신고 카드조차 없앴다고 한다. 한마디로 통제사회가 서비스 사회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국의 변화는 국가 정치체제가 보장되는 범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규제의 덫에 걸려 있는 한국의 관치행정 실정에 비해, 중국의 규제철폐 및 완화 속도는 적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군마처럼 빠르고 용감하다. 중국의 ‘한국 따라잡기’는 이제 태풍에 밀려온 파도가 방파제를 곧 덮칠듯한 기세로 육박하고 있는듯한 형국이다. 한국의 방파제는 중국이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붉은 파도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서우두(首都)공항의 제3터미널을 빠져 나오면서 내가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복합된, 자존심을 긁는 묘한 굴욕감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김설송 사장(청화대 출신 조선족, 전 다산네트워크 중국지사장)의 차를 타고 호텔에 체크인 한 후, 곧 바로 찾아 간곳이 제10차 중국국제핵공업 전람회가 열리고 있는「북경 농업 전시회관」이었다. 중국핵공업총공사, 중국원자력학회, 북경시 상무국이 공동주최한 이 전람회에 GE, 웨스팅하우스 등 16개국 100개사 이상이 참여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전력과 한전수력원자력(이하‘한수원’), 두산중공업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가했다.
나는 중국핵공업총공사의 한국 에이전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설송 사장을 한전 관계자들에게 소개시켜서, 한전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원전 수출 및 핵폐기물 처리기술 이전에 대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본 전람회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람회의‘한수원’측 실무책임자인 김현철 부장과 두산중공업의 중국 총대표인 김정수 상무이사를 만나 한국 원전의 기술력과 운영체계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15년에 걸쳐 한·중간 발전설비 기술교류를 위한 추진과정에 있었던 많은 애로점과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다.
오늘날 온실가스 규제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원자력 발전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발전업체들이 원전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은 이미 검증된 원전의 친환경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원전은 화력발전과 달리 이산화탄소(CO₂)등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데다 kw당 전력 생산비용이 39원으로 유연탄(42원), 가스(100원)에 비해 저렴하다. 이런 원전 산업의 시장성을 가늠할 때 기술력만을 놓고 보면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한국은 1970년대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천기술을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20기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한국형 표준 모델인 OPR1000, 독자 모델인 APR1400 등을 만들어 왔다. 특히 기술자립도가 95%를 넘는 APR1400은 kw당 건설비가 2,000달러 수준으로 미국 등 경쟁 모델(3,000달러 수준)보다 30%이상 저렴하다.
다만 원자로에 대한 원천기술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 수입국이 한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요구할 경우 일일이 (웨스팅하우스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한국형 원전 수출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원천기술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장차 경쟁 대상국이 될 한국의 발전업체에게 쉽게 허가를 해 주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국형 원전을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지목했다. 한국전력 등 국내발전업체들은 다음 달 터키정부가 발주할 예정인 원전 국제입찰에 국내 자체기술로 개발한 독자 모델 ‘APR1400’으로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세계화 경제정책이 이 원전 수출사업을 통해 물꼬가 터지기를 마음 깊이 고대해 본다.
또한 원천기술의 장벽 때문에 40여기의 원전 건설 물량이 준비되어있는 중국 발전산업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전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어찌 내가 국민 된 한사람으로서 그냥 죽치고 앉아있기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핵공업총공사의 핵심 인물들을 만나 한판의 큰 게임이라도 벌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문제는, 충동은 크지만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한탄스러운 마음으로 제10차 중국국제핵공업전람회장을 떠날 때,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내 눈을 찌른다. ‘너는 무엇으로 중국을 대응할 것인가’라고 따갑게 쏘아부치는 것 같았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17년간이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그 만큼 중국을 잘 안다고 하면서, 도대체 무엇으로 중국과 경쟁하려고 준비해 왔는가 하는 자책감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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