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에 걸쳐 진행된 출판좌담회의 주요 맥락은 한마디로, 동북아 국제협력에 있어서 유능한 매체집단으로 등장한 조선족 사회를 보다 더 창의적이고 생산성있는 단계로 이끌어 내어 한·중간, 북·중간, 중·일간의 공동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일어와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선족 사회의 복합문화력을 장차 도래할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징검다리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으로 육성하자는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중국의 교육문화 핵심기관인 북경대에서 이러한 논의가 진지하게 토론되고 협의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민족애’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애’는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동시에 뿌리의식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감정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닫힌 민족주의’가 결국 순수한 민족애로 끝나지 않고 악독한 국수주의로 변질되어 그 민족 자신을 멸망의 길로 이끈 사례들을 우리는 세계역사를 통해 뚜렷이 알고 있다. 독일의 파쇼집단이 그랬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랬다.
내가 조선족사회에 관한 책을 쓰면서 줄곧 주장한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윈윈 패러다임(Win-Win Paradigm)의 정신이었다. 즉 Open Mind & Network, Global Standard, 그리고 Positive Sum Game 에 임하는 정신자세와 태도였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세계화’와 ‘지역화(블럭화)’의 이중적 갈등구조를 풀어가는데는 「세계」와「지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의 기재(메커니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람의 지각과 상호관계 속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동북아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시 받을만한 집단 중에 하나가 바로 중국 조선족 사회란 것이다.
150여년전, 조선조말기 탐관오리의 학정에 못 이겨 중국에 건너온 조선족 선조들의 농업 이민사를 한번 살펴보라. 그리고 그 이후 일제시대의 항일독립투쟁과 해방 후 중국공민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변경지역 폐쇄적인 사회 구조속에서 숱한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면면히 지켜온 민족문화의 정수를 한번 맛보라. 이런 조선족 사회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과 한중수교(1992)에 힘입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도처로 뜨거운 용암처럼 분출되어 흘러가고 있는 도전의 역사 - 그 진취적인 개척의 기상을 다시한번 마음에 되새겨 보라. 이것이 바로 오늘날 조선족이라는 인간 군상을 통해 새겨보는 한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겠는가.
이제 21세기는 소위 신문명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에 와 있다. 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트가 말하는 ‘탈(脫)중심화’현상이 보편화 되고 있으며, 각 국가간에는 중층성 다공화(重層性 多孔化)현상 (일본 와세다 대학의 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郞)교수가 쓴 용어)이 나타나면서 민족국가적 경계의 개념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트랜스네셔널리즘(Transnationalism, 초국가주의)을 이념으로 초국가연합체(예:EU)를 지향하는 새로운 문명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이와같은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나는 ‘코스모폴리탄 메트릭스’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요즘 중국과 일본사이에 ‘넛 크래커’처럼 끼어있는 한반도의 정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 일수록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략과 대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이런 (꿈같은) 생각을 많이 해본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남북분단과 중국 및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의 현실이 매우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경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중국 및 일본을 포함한 주변 4대강국을 적극 대응하는 방안으로 북한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6자회담 당사국간의 합의를 기초로하여 북한을 불가침 중립화지역으로 선포하고, 이를 토대로 주변 4대강국들로 하여금 북한의 일정지역(신의주, 남포, 개성, 금강산, 원산, 청진, 나진 등)에 아일랜드 형 투자방식으로 무관세, 노비자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협력특구를 조성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한다. 그런다음 UN(반기문 사무총장)과 협의하여,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독립국가(CIS)등 과거 공산권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에 설립했던 유럽개발은행(EBRD)와 같은 동북아개발은행(가칭)을 설립하여, 북한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포함하는 전체 동북아 지역의 경제발전 및 정치안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기초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남북한 당국에서도 「남북경제협력청」과 같은 특별기구를 신설하여 북한 전 지역을 대상으로 경제개선조치 및 산업발전을 위한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가는것이 지금의 국제정세 흐름을 활용하고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논의와 함께 중국과 일본을 한반도의 양쪽날개로 매달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을 병행 기획토록한다. 우선적으로 동북아FTA 및 통합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3통(통행, 통신, 통관)을 위한 교통인프라 건설에 치중하여, 1차적으로 한·일해저터널을 건설하여 TCR, TSR, TMR 등과 같은 기존 북방노선과 연계하는 한편, 2차적 대안으로 황해도(장산곶)-경기도(백령도)-산동성(위해)를 연결하는 한·중해저터널을 건설하여 한·중·일 3국이 합동으로 환황해 경제권을 개발, 세계적인 경제협력구역으로 발전시킴으로서 동북아 국제협력의 시너지를 갖고 오게 할 뿐 아니라, 한반도가 자연스럽게 이러한 경제공동체의 몸통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것이 또 하나의 창의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의를 자꾸 하다보면 북한 핵문제와 남북한 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중·일 3국간에 빚어왔던 과거사문제, 영토분쟁, 무역수지 역조 등과 같은 모든 현안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On Stop Solution’을 갖추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도랑치고 가재잡기’식 전략이라고 부른다.
만일 이러한 발상이 꿈이 아니고 실제상황으로 진전된다고 가정해볼 때, 이런 시대적 변화의 과정에서 완충적이고 중간매체적인 역할을 감당해 줄 집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중국 조선족 사회가 바로 한·중·일 3국간의 이질문화와 남·북간의 갈등을 정화시키고 조정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매체집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직은 비록 인구수가 적고 세가 약한 집단이지만, 장차 인재양성과 국제교류 등으로 왕성하게 거듭날 수 있다면 조선족 사회는 초국가주의 신문명시대를 준비하는 ‘코스모폴리탄매트릭스’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책에서도 결론부문에 썼지만) 조선족 사회를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을 활성화시키고 맛깔스럽게 만드는 소금과 같은 집단이 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북경대「영걸교류중심」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행사는 이와같은 여망을 갖고 진행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성황리에 잘 마쳐졌다. 한족, 조선족, 한국인 등 세 부류가 모였으나 우리들은 모두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협력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고, 또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 한·중·일 3국간에도 모두 유익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저녁 6시경 좌담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비닐로 된 우의를 덮어 쓴 채 부근에 있는 구내 대형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함께 나누었다. 참석자들 중엔 멀리 LA에서 오신 김유경 사장도 끼어 있었다. 사업차 한국에 왔다가 북경에 볼 일도 있고 또 축하도 해줄 겸 겸사해서 왔노라고 했다. 너무나 반가왔다.
이분은 미주「한국일보」의 칼럼니스트이며, 영어교육사업(campwww.com) 전문가이기도한데, 최근에 평양과기대 건립을 위해 자진해서 「Friends of PUST」라는 인터넷 모금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날 만찬자리에서 나는 식사도 맛있었지만, 술의 향기가 좋아서 오랜만에 대작을 즐겼다. 둥근 테이블을 돌려가면서 한상에 둘러 모여 식사를 하고 대작을 하게 되니 그 분위기는 문자 그대로 한마음 밥상 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중국에 올때마다 가장 부럽게 여긴것들 중에 하나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이런 둥근 테이블에 둘러 모여 격의없이 식사하고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중국식 민주주의이고 생활규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북아 3국이 하루 빨리 이렇게 한상에서 밥 먹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업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면서 그날 만찬을 기분 좋게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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