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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
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부총장
TV 화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막식 공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상을 한 마디로 말해 보라면, 그것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억제할 수 없는 충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중국 고대문명부터 현대까지의 5000년 역사, 그리고 우주시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사회가 추구해야 할 평화의 메시지를 탁월한 상상력과 첨단 기술력으로 압축하여 재현한 능력도 놀랍거니와 이합집산하는 군무를 통하여 인해전술식 조직력을 과시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힘과 이미지를 형상화 시켜나가는 관경을 보고 있노라니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오리엔탈 쇼크'라고 할 만한 이 거대한 응집된 기상의 폭발력은 장차 중국과 세계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는 무엇이며, 북경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행동과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텐데, 그 답은 무엇일까?
이제 중국은 중국만의 중국이 아니라 세계를 이끌어 갈만한 능력을 갖춘 강대국으로서 세계로부터 존경과 책임을 동시에 지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책임이 수반된 가운데 대외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끌고 가야할 의무가 생긴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군사 분야를 빼고는 경제·다자외교·문화 등 대부분의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대등한 세력임을 자임하고 나설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의 향후 행보가 매우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가 성행해 왔다면 앞으로는 중국식 스탠다드를 고집해 국제 관계의 준거 틀(Norm)을 새롭게 짜려는 의도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북경올림픽의 앰블럼을 한자의 여러 서체 중 하나인 전서체(篆書体)를 기반으로 도안 한 것은 주최국으로서의 재량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개막식 선수입장 순서를 알파벳 순서로 하지 않고 각 국가의 이름을 중국 간자체의 획수 순서로 배열한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보인다.
전 세계 문자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합리적인 문자로 한글을 꼽았던 영국의 다큐멘터리 작가 존 맨은 19세기까지 전 세계 정보량의 90%를 한자가 점유하고 있었으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그 90%를 알파벳 문자가 점하게 됐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중국이 북경올림픽을 통해 한자를 부각시키는 이유가 혹시 영어에 빼앗긴 글로벌 패권을 되찾기 위한 도전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와같이 5000년 역사의 문화력과 급부상한 경제 및 외교력을 기반으로 하여 장차 군사력에 까지 세계 최대강국의 위치에 도전하려는 패권의식이 발동한다면, 그때 이 잠깬 사자를 제어 할 국가가 지구촌안에서 미국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결국(오래전부터 예상해 왔던 바와 같이) 미국은 중국을 향후 최대의 적대국가로 지목할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세계전략을 펴 자국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일에 최대한 역점을 두는 쪽으로 국가정책을 추진해 나갈것이다.
그때 한국은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사이에서 과연 어떤 대안을 갖고 자신의 안보와 국가발전정책을 구사해 나갈것인가?
평화와 화합을 내 세운 경이로운 개막식 광경의 이면에서 13억 중국인들이 과시하고 있는 이 거대한 국력의 제의(祭儀)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곧 저 힘이 우리 한반도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과연 우리는 홀로 설수나 있을는지 하는 염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기세등등한 중화 민족주의의 자존심을 거드리지 않으면서 그들과 함께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개막식 후반 선수 입장식 때 등장한 한국과 북한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환호하던 마음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기 시작했다.
한참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손춘일 원장께서 술을 한잔 권해 왔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맥주잔을 들고 여러 사람들과 건배를 한 후 갈증이 나서 연거푸 두잔이나 들이마셨다.
선수 입장식이 끝난 후 자크 로게 IOC위원장의 인사말과 후진타오 주석의 대회 개최선포가 있은 다음 마침내 체조 스타 리닝(李寧)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공중을 날아오르면서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광경이 TV화면에 클로즈업 되자, 새 둥지 모양의 냐오차오 스타디움은 그야말로 터져 나갈듯한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내 마음속에도 새로운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성화는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였던 그리스의 아테네를 출발하여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 지역 여러 국가를 돌아 북경에까지 왔다. 어쩌면 이 성화봉송의 길은 세계역사의 진로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학을 다루는 관점 가운데 섭리사관이 있다. 기독교 사상이 기초가 된 이 역사관은 세계 복음화의 물결이 서진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
중동지역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시작된 그리스도 복음의 물결이 지중해와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그 후 대서양을 건너 신천지 미국에까지 이른 이 물결은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고 일본과 한국을 거쳐 드디어 중국 대륙에 까지 전파되었다.
1964년 동경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2008년 북경올림픽, 이런 순서로 20년을 주기로 순차적으로 밀려온 올림픽의 물결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파고를 넘고 미·소 양대진영의 냉전의 벽을 넘어 마침내 공존과 상생을 목표로 새로운 화합의 복음을 지향하는 세계역사의 서진화 현상을 상징하는 예표가 될 만하다.
그리고 이제 북경올림픽 이후의 중국의 변화가 자못 궁금하다.
중국의 변화는 곧 세계의 변화이다. 세계 역사의 흐름은 중국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물결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 중국의 변화가 이끄는 새로운 역사의 흐름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성화가 점화되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상념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동안 꿈꾸어 왔던 동아시아 공동체 사역의 역사의식과 이를 이끌어 갈 만한 시대정신을 「민박회」소수민족 엘리트들과의 대화 가운데 소통하고 있는 "和"자의 의미속에서 새 길을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내 마음에 갑자기 기름을 끼얻는듯한 흥분이 일어났다.
그것은 장이모우 감독이 중국 지도부와 함께 협의해서 만든 전략적인 의도로서의 작품(和)이 아니라, 2000년 전부터 하나님의 섭리아래 진행되어 왔던 서진화 역사의 분기점에서 나타난 참된 평화로서의 "和"임을 깨닫는 충격이었다.
만일 중국이 이번 북경올림픽 대회의 성공을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의 대외정책을 국제사회가 요청하고 기대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면 이는 세계역사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제대로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후변화에서 안보,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파트너십이 꼭 필요하다."
이는 북경올림픽을 보고 느낀 중국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가 한 말이다. 북경올림픽이 끝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른바 '중국 끌어들이기(China Engagement)에 쏠릴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경올림픽 참석 직전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을 (국제 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대통령 취임 전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차별화할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가 어떤 것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중국"이라고 대답했던적이 있다. 아무튼 이제 중국은 싫던 좋던 국제사회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것은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 안보, 교역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문제 해결 및 해외의 사회공헌 활동, 시장체제의 개방과 자유민주주의 확대 등 다양한 현안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책임을 다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
이에 성공하려면 경제력, 문화력, 군사력에 더해 윤리적인 중국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는게 지배적인 국제여론이다. 중국의 변화는 바로 이와같은 도덕적 리더십 확립을 핵심과제로 삼을 때 비로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올림픽 이후의 과제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여론과 주장은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만하다. 기원 후 2000년간 서진화 현상을 띄면서 흘러 온 역사 변천의 물결이, 2008 북경올림픽을 통하여 중국이 세계역사 흐름의 중심지로 부상함으로써 마침내 "和"의 의미를 21세기 국제사회의 도덕적 리더십의 핵심가치로 승화시켜 나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졌다.
생각이 여기에 까지 이르자 마음속으로 중국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염(念)이 새롭게 깊어짐을 느꼈다.
1978년 개혁 개방이 시작된지 꼭 30년만에 열린 이번 북경올림픽은, 그동안 30년간 고생해 온 중국인들의 어깨를 펴게하고 그 노고를 치하하는 자축의 파티장으로 존중해 줘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아편전쟁 후 서구 열강으로부터 100년간의 침탈을 받았던 쓰라린 역사를 딛고 일어선 중국은 이제 동서양 세계역사 흐름의 가장 중요한 합류지점으로 그 입지를 회복하게 되었다고 이해 하는것이 옳을 것 같다.
다만, 한당(漢唐)시대 이후 1000년만에 다시 세계속에 재등장하는 중화민족 부흥(팍스 시니카)의 드라마는 중국이 중국만을 위해서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세계를 섬기며, 세계를 위한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21세기 정신의 표상임을 증명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다.
그래서 마침내 북경올림픽이 추구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 이러한 희망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캐치 플래이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래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우며 독특한 경기장" 이라고 찬사를 보낸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의 평가와같이, 중국은 이제 평화를 상징하는 새 둥지 모양의 냐오차오(鳥巢)스타디움을 통해 로마제국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역사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천년의 꿈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와 긴장감이 마음속에 잦아들어 왔다.
그리고 나와 함께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에 참가한 「민박회」회원들도 이심전심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소통과 협력, 우정과 헌신의 능력으로 움트는 새로운 '공동체 자유주의' 의식을 품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3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개막식의 전모를 시청하는 동안, 한방에 둘러모인 일행들과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 가슴속에 숨어 있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애환과 여망을 감지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중국과 세계역사를 향한 화해의 여정(和諧之旅)을 시작하는 단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했다.
"오! 하나님 이 길이 당신이 원하시는 길입니까?
중국을 통해 중국을 넘어서야 할 길은 어디로 열려있나요. 작은 자를 사용하여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복음의 진리를 위해 이 소수민족들을 사용하지 않으시렵니까, 이들을 통하여 중국과 세계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길을 예비하여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
Ⅰ. 민박회
Ⅱ. 경희궁의 밤
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
Ⅴ. 흐름의 미학
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
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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