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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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
2008년 11월 02일 08시 16분  조회:3402  추천:56  작성자: 이승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


이승률 연변과학기술대학 부총장
           평양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백두산에서 돌아온 일행들을 위하여 연길시 근교에 있는 별장형 한정식 식당에 숙식이 마련되었다.

임대버스가 마을에 도착하것은 오후 6시 무렵이었다.

이 마을(小河龍)은 연길시를 관통해서 흘러온 부르하통하(河)와 용정 벌을 지나온 해란강이 만나서 구비 돌아가는 합수(合水)목 마을이다.

여기서 차량으로 5분정도만 더 올라가면 한국의 참빛그룹(眞光集団)에서 운영하고 있는 해란강 골프장(36홀)이 나오는데, 어제 밤에 묵었던 백두산 천상관광호텔도 이 회사의 소유다.

마을 어귀에 버스가 진입하자 나는 마이크를 잡고 멀리 마을 뒷산 언덕에 보이는 세 그루의 노송(老松)을 가리키며, 이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저 소나무들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수령이 천년 넘는다고 해서 흔히 천년송으로 불려지고 있는 이 소나무들은, 산기슭 한곳에 삼각형을 이루며 자리잡고 있는데다 그 모양과 크기가 우산형으로 똑같이 생긴 거목인지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고 한다.

나는 짖꿎은 생각이 들어서 일행들에게,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다들 가서 세 그루 천년송을 껴안고 한번씩 소원을 빌어보라. 그러면 산신령이 도와서 소원성취케 해 줄지도 모르지 않겠냐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일행들이 버스에서 내려 한정식 식당으로 들어가자 주인 내외와 종업원들이 반색을 하며 맞아주었다.

주인 내외는 한국인들로서 이곳에 와서 생활한지 벌써 15년이나 되는 분들이다.

2층으로 지어진 이 집의 형태는 소나무 원목을 많이 사용해서 지은 황토집 한옥이었고, 기와지붕 위에 장독을 얹어 놓아 토속적이면서도 유니크한 맛을 물씬 풍겼다.
실내 복도와 거실의 벽은 황토로 마감되어 있고, 천장에는 묵화 그림들이 여러장 가지런히 발라져있으며, 노출된 소나무 서까래에 옥수수, 조, 조롱박들이 박쥐처럼 매달려 있었다. 주방이 넓고 깨끗하게 설비되어 있으며, 실내 한쪽 구석에는 한증막도 시설되어있다. 그리고 온돌 구조의 크고 작은 방들이 여러개 있어서, 단체 숙박이나 연수활동이 가능한 식당이었다.

이 한정식 식당을 소개받고 출입한지가 벌써 사오년이 지났다. 주인 내외는 독실한 크리스챤으로서, 연길 기독실업인회(CBMC) 회원이기도하다. 그래서 연변과기대 교수들과 회원들에게는 특별대우를 해주었다.

그리고 또한 감사한 일은 이 댁의 부군되시는 분이 화가여서, 실내 여러곳에 크고 작은 유화작품들을 전시해 놓았기 때문에, 이 집에만 오면 마치 화랑(갤러리)에 온 것 같아서 늘 기분이 좋았다.

민박회 일행들은 남자, 여자로 구분해서 큰방을 2개 공동사용하기로 했다.

내 방은 크기가 작지만 독방을 쓰도록 배려해 주었다. 짐을 다 풀어 놓고나서 우리들은 저녁 식탁이 준비되기까지 약 30분정도 여유가 있어서 천년송이 있는 마을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나도 이 마을에 여러번 왔지만, 그때마다 멀리서 쳐다보기만 했지 소나무가 있는 동산에 직접 올라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판에 찍어낸것처럼 크기와 모양이 거의 비슷한 이 세 그루 노송의 자태는 내가 예상했던것 보다 휠씬 더 크고 우람차며, 아름다웠다.

일행들은 어둡기전에 또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들이다.
해가 뉘엿뉘엿지는 황혼을 바라보며, 내가 가르쳐준대로 천년송을 끌어안고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기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가 깔깔대며 노는 모습이 마치 개구쟁이 어린아이들 같다.

식당으로 돌아오자 이 집에서 가장 큰 방에 만찬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정식 메뉴로 차린 정결한 음식들이 한상 가득하다. 술은 동동주 막걸리를 담아 놓았다고 해서 그걸로 우선 목을 추겼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기호에는 맞지 않아 평시대로 맥주와 고량주를 주로 마셨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음주를 하는 중간 중간에 본격적으로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다.

방안에 노래방 기기가 준비되어 있어서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고와 박사의 딸 애리가 디스코 춤으로 우리들을 마냥 즐겁게 해 주었다. 손수건을 돌려가면서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정서적으로 우리 한민족 마음에 가장 가깝게 와 닿고 심금을 울린 노래는 역시 몽골민요였다.

아래에 소개하는 노래는 몽골민족들이 즐겨 부르는 목가풍의 민요로서 그들의 삶의 원천인 초원을 노래하고 있다. 우런 박사와 진영충 박사가 함께 불러준 이 노래는, 그 가사 내용이 밝고 명랑한데 비해 음색은 듣는이로 하여금 한(恨)을 느끼게 했다. 잃어버린 역사의 슬픔을 되새기게 하는 것 같아 마음에 찡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러한 느낌은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을까?

가사 내용이 너무 좋아 여기 한수 번역해 적어 본다.

『아름다운 초원은 나의 집』
1.
美麗的草原我的家,風吹綠草遍地花,彩碟紛飛百鳥唱,一彎碧水映晚霞,駿馬好似 踩雲朵,牛羊好似珍珠灑,啊哈呵,牧羊姑娘放聲唱,愉快的歌聲滿天涯,牧羊姑娘放聲唱,愉快的歌聲滿天涯

"아름다운 초원은 나의 집
바람은 초록 풀 위에 불고 대지는 꽃동산
다채로운 나비가 날고 새들은 노래 부르누나
푸른 물결에 저녁 노을 비치고
준마는 구름을 타듯 달린다.
소와 양들은 진주를 뿌린 듯 한데
아하아, 목양 처녀는 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유쾌한 그 노래 소리 하늘가에 울려 퍼지네.
목양처녀는 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유쾌한 그 노래 소리 하늘가에 울려 퍼지네."

2.
美麗的草原我的家,水清草美我愛他,草原就象綠色的海,氈包就象白蓮花,牧民描繪幸福景,春光萬里美如畫,啊哈呵,牧羊姑娘放聲唱,愉快的歌聲滿天涯,牧羊姑娘放聲唱,愉快的歌聲滿天涯 

"아름다운 초원은 나의 집
물은 맑고 잔디는 아름다워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초원은 녹색의 바다와 같고
몽골 집은 백련 꽃과 같다.
목민들은 행복한 정경을 새기고
만리의 봄빛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아하아, 목양 처녀는 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유쾌한 그 노래 소리 하늘가에 울려 퍼지네.
목양처녀는 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유쾌한 그 노래 소리 하늘가에 울려 퍼지네."

시간이 많이 흘러가자 모두들 술이 거나해진 모습이다.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벽에 기대앉아 여러가지 의견을 발표하는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먼저 내년도 민박회 모임을 어디에서 할 것인지부터 논의하였다.

이 안건은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동안 내몽고와 조선족 사회를 둘러보았으니, 이제 내년에는 신장지구 우루무치와 뚜루판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있는 뚜루판의 고성(古城)에 가서 삼장법사를 만나 한판 종교적인 영적 싸움을 벌려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일행들이 떠나갈듯 웃어제꼈다.

다들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겠지만, 그때 내 마음속을 스치고 지나간 비젼은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이곳 연길에 중국 최초의 기독실업인회(CBMC)를 창립한것이 1994년 8월 1일이었다.그 후 올해까지 만14년이 경과하는 동안 중국 전역에 한국인 CBMC 40여곳, 중국한족 CBMC 20여곳, 조선족 CBMC 5곳으로 확대 발전했다. 또한 2000년도에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에 한국인 CBMC를, 카자스탄 알마티에 고려인 CBMC를 창립했으며, 그 다음해인 2001년도에 터키 이스탄불에 한국 기업인과 터키인들로 구성된 기독실업인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그때 서울에서 KAL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항공기 좌석 뒤 포켓에 있는 항공잡지를 꺼내들고 세계지도를 펼쳐보는 순간 지구 북위40도 선상에 거의 일직선으로 CBMC를 기초로하는 뉴실크로드 미션의 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라며 감격해 했는지 모른다.

거기 북위40도 선상을 중심으로 세계지도에 나타나는 도시들을 살펴보면, 아시아대륙 맨 동쪽 끝에 옌지라고 적혀있는 도시가 나올것이다. 그곳이 바로 이곳 연길이다. 그리고나서 시선을 왼쪽으로, 즉 서쪽으로 옮겨보라. 거기에 심양, 북경이 있다. 또 시선을 서쪽으로 옮겨보라. 서안, 우루무치가 나온다. 또 시선을 서쪽으로 옮겨보라. 알마티, 타쉬켄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또 한번 더 시선을 왼쪽으로 옮겨보라. 그러면 아시아대륙 맨 서쪽 끝에 이스탄불이 나올것이다. 이것이 바로 1994년 8월 1일 이후 하나님께서 내 손을 붙잡고 차례대로 CBMC 창립을 통해 이끌어 가신 실크로드 미션의 길이다. 이것은 곧 세계역사의 서진화 현상과 궤를 같이 하는 흐름이어서 나는 이 CBMC 사역의 길을 통하여 섭리사관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Back To Jerusalem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가운데, 2005년 9월 서울 영동CBMC팀들과 함께 카작스탄 알마티를 거쳐 우루무치에 선교여행을 갔다가 인근에 있는 뚜루판 고성(古城)을 관광하고 돌아가는 길에 와이프가 우연스럽게 위구르 소녀 한명을 입양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후일 그 소녀의 이름을 한나로 고쳐주었는데, 관광지 잡화점에서 풍물 장사를 하던 일을 그만두게 하고, 중학교 때 중단되었던 학업을 다시 계속하도록 지원하여 올해 지금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맞고 있다.

눈이 맑고 웃을 때 너무나 천진스러워 보이던 한나는 이제 우리 부부가 매일같이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위구르족 선교 비전의 마스코트가 되어있다.

『지금 울란바토르의 몽골국제대학(MIU) 부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용규 박사(하버드대, 역사학)에 의하면, 원래 '위구르'란 말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 전파된 초기 기독교의 대종(大宗)을 흔히 네스토리안파(Nestorianism) 교회라고 한다.
AD 5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를 석권했던 투르키스탄, 위구르, 몽골, 티무르 등 왕조역사의 부침과 함께 유목민에게 나타났던 기독교 역사는 천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부흥기와 침체기를 반복하면서 중앙아시아와 중국 북부지역에 널리 전파되었다.

실크로드가 그 중심 교통로였으며, 뚜루판은 당시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중간 교통요충지였다. AD 15세기 이후 중동지역 대상(隊商)들에 의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쇠락한 기독교세력을 대체하여 이슬람권 상업 종교 세력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그 후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슬람교를 신봉하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스탄'제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소비에트 연방에 참여한 중앙아시아 5개국(CIS)국가 중 카작스탄과 중국의 국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천산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살고 있던 위구르 족들이 카작스탄과 중국 신장지역으로 분할됨에 따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국가체제 아래 놓이게 된 실정이다.

내가 주목하는 점은 바로 이점이다.

조선족사회는 한반도라는 모국이 있으면서 중국에 이주한 자생적인 소수민족 집단이지만, 위구르는 중앙아시아에 개입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침탈에 의해 분리된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나는 이들과 접하면서 폐쇄적인 민족심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행의식을 극복하고,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생산수단을 가르쳐 주는 일은 CBMC 사역을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3년 알마티(카작스탄)와 우루무치(중국) 양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기독실업인들을 연계하여 BMF(Business Mission Fund)라는 소액융자대출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서 위구르족들에게 복음전도와 함께 생산성을 이끌어내는 일을 돕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나를 입양하게 되었으니 이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래 기독교인이었던 위구르족과의 관계를 복원하는)아주 특별한 기회요. 영적인 선물이라고 믿어진다.

특히 중국과 카작스탄에 흩어져 있는 위구르족들이 과거역사에 매이지 않고, 주어진 현실여건 안에서 중국과 카작스탄 사이의 가교역할을 한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을 구성할 수 있다면, 그 중간고리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위구르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조선족사회가 중국과 한국,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간매체 역할을 잘 할 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이런 희망과 전략개념을 갖고 CBMC 실크로드 사역을 통하여 위구르족의 앞날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이 일은 나로서는 참 행복한 일이다.

우리 부부가 한나 가족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것은, 위구르족이 바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이며 그 가운데 교통요충지인 뚜루판의 고성(古城)에 살고 있는 한나가 바로 예표적 인물로 내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를 돕고, 그 가족을 지원하고 그 족속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나의 집을 거점으로 주변 위구르족 농가들이 조합을 구성하여 건포도생산을 위한 자립생활공동체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원래 그 지역은 사막지대라서 일교차가 심하고 여름에는 영상 45도,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오르내리는 연중 기온편차가 극심한 지방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자고로 세계에서 당도가 제일 높은 포도생산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대부분의 생산량을 유럽으로 출하하고 있다고 하는데, 언젠가는 그곳이 프랑스에 있는 '때제 수도원'과 같은 신앙공동체로 발전 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 기초를 닦는 일을 준비하고 싶었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때 나는 그곳을 「화염산 포도수도원」이라 이름짓고,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고성(古城)에서 한판의 일전을 벌려 볼 생각이다.

이 영적 싸움은 누가 누구를 이기고자 하는 싸움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믿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전달해서 고행자의 약점을 보완하고 갈등을 해소시켜 줌으로서 마침내 그 자신이 스스로 윤회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 줄 작정이다.

이는 희생적인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고, 이런 사랑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바쳐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있어야 가능한 싸움이다. 그런 영적 싸움을 한번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내년에 「민박회」일행들과 함께 뚜루판을 찾아가고 싶은 나의 궁극적인 희망의 메세지다."

이런 생각이 찰나적으로 압축되어 뇌리 속에 저장되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벌써 뚜루판의 화염산 위를 힘차게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천산산맥을 넘어, Back To Jerusalem으로 나아가는 순례의 길에 「민박회」일행들도 동역자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일행들은 나의 제안을 모두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다만 내년 8월 초에 일단 북경에서 만나 그동안 뵙지 못했던 학교(중앙민족대) 스승 교수님들을 모시고 세미나를 가진 후, 다같이 우루무치로 갔다가 뚜루판과 서안을 거쳐 각자 임지로 돌아가는 코스를 결의했다.

그러고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영 박사가 지난해 우리 일행들이 다녀왔던 징기스칸 유적지 주변 사막지대에 한국 KAL 직원들과 시민단체들이 녹화 사업을 많이 지원해줘서 큰 진전을 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들의 대화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번져 나갔고, 중국 내몽골 지역의 초원을 지키기 위한 한 방안으로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급기야 유목민의 기질과 성향, 대 몽골제국의 성립이 가능했던 이유 등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야기의 초점을 (민박회에는 몽골족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원(元)나라의 역참제와 글로벌 네트워크 기능을 비교하는 쪽으로 대화를 풀어 나갔다.

결국 이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해보라면, 신 노마드(유목민)운동을 기초로하는 가치경영에 승패가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IT기술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터넷 강국이란 점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가장 첨단적인 능력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한 후에, 나는 과거 750여년전 대 몽골제국 쿠빌라이 시대에 마르크 폴로가 썼던 「동방견문록」이 같은 베니스 동향인 컬럼버스에게 꿈을 심어 주어 마침내 미주 신대륙을 발견 하는 계기를 이루었듯이, 징기스칸의 후예들인 「민박회」 몽골족 여러분들이 장차 「서방견문록」을 쓰게 된다면, 이 「민박회」가 신 노마드의 꿈과 용기를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를 잊지 말고 기록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나는 다시한번 건배 제창을 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 시대는 탈(脫) 중심화를 지향하는 지식정보 시대입니다. 이제 모든 개인들이 네트워크상(上)의 중심 역참이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 민박회의 소수민족들처럼 변방에  위치해 있는것이 오히려 외부와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 복합적인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될 것입니다. 중심에 갇혀있는 큰 자들보다 변방에 있는 작은 자들이 더욱 민첩하게 세계의 변화에 직면하고 소통하는 감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 민박회가 이 시대의 흐름을 변화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서 이웃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이 시대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촉진자(促進者)가 될 것입니다.

우리 다함께 건배 합시다. 내가 당신하면 멋져라고 건배하세요. 이 말은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그리고 가끔은 져주면서 살자는 뜻입니다. 우리 함께 건배합시다. 당신!  멋져!"

이것이 내가 「민박회」를 통하여 소수민족 엘리트들에게 거는 기대였다.

밤새도록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은 술이지만, 시간이 너무 깊어서 모임을 파하기로 했다.

오늘밤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는것을 상기시키면서 부회장 서영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건배 제창을 했다.

"우리, 마지막 잔을 폭탄주로 듭시다. 각자 다 폭탄주를 만들어요. 저는 다시한번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너무나 크게 감동했습니다. 우리들은 올림픽 개막식 입장권이 얼마나 귀하고 비싼 값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해 그걸 포기하고 이곳으로 달려와 주셨습니다. 우리 민박회 일동은 이 일을 영원히 잊지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이 회장님을 사랑합니다. 이 회장님과 함께 영원히 변치않는 우정으로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 한마음으로 건배합시다. 다같이 사랑을 위하여, 건배!"

저마다 머리 위에서 맥주 잔 안에 작은 술잔이 부딪혀 딸랑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일어나 손에 손을 잡고 서로를 부등켜 안았다.

누구는 울고 있었다. 급기야 우리들 대부분은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렸다.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제2차 민박회 모임의 마지막 밤은 여러 가지 상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엎치락 뒤치락 거리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인 그런 불면의 밤이 되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
Ⅰ. 민박회
Ⅱ. 경희궁의 밤
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
Ⅴ. 흐름의 미학
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
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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