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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남의 글 한 편을 보내고자 합니다.
제가 읽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춘원 이광수의 <나의 고백> 이란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나는 어떤 날 편지 한 장을 받았다。그것은 철자법도 바로 못 쓴 아라사말 편지인데、우리 동포의 아내가 되어 남매를 두고 과부가 된 러시아 부인의 편지였다。그의 주소는 치따에서도 수천리 떨어진 똠스크였었다고 기억한다。참으로 눈물 나는 것이었다。내 기억을 더듬어서 그 사연의 요령은 이러하였다。
「……내 남편은 대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그는 치따에는 대한 나라의 국민회가 있고 거기는 대한 사람 지도자가 있다고 늘 말하였습니다。그리고 이 아이들이 자라거든 치따에 보내어서 대한 말을 배우고 대한 글을 배워서 대한 나라를 사랑하는 대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그런데 그는 갑자기 죽었습니다。나는 남편의 뜻대로 이 아이들을 대한 사람을 만들어야 하겠는데 가난한 과부라 그러할 힘이 없습니다。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곧 회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오라고 부르신다면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노자를 만들어 가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곧 치따로 가겠습니다。나도 대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으니 치따에서 대한을 위한 일을 시키시면 무엇이나 하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나는 울었다。그 과부의 정상과 정성도 가긍하거니와、만리 이역에서 외국 여자와 결혼하여 가지고 살면서 그 사이에 난 자녀를 대한인을 만들겠다고 애쓰던 가난하고 무식한 한 동포의 심정이 가여웠다。나는 손에 돈만 있으면 곧 그리로 뛰어 가서 그 세 모녀를 데려오고 싶었으나 내 주머니에는 담배 값도 없는 형편이었다.“
정든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가난에 쫓기어 멀리 러시아에까지 가서 살던 어는 무식한 한 분의, 그 순박하면서도 거룩한 조국애에 저도 울었습니다. 그 “대한” 이라는 나라, 자기 백성들 먹여 살리지도 못하고 시베리아까지 내몰아 보내는 그 나라가 무엇이 그리도 중하고 무슨 미련이 그리 많아서 자기 아들딸에게 기어이 대한 말을 가르치고 대한 글을 가르치라고 유언을 하며 죽어갔는지? 그 순박한 조국애에 저는 저를 돌아보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또 러시아 여인으로서 대한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 여인의 그 남편을 따르고자 하는 그 마음에 저는 울었습니다. 죽은 남편의 뜻을 이으려고 하는 그 갸륵한 마음에 저는 정말 옷깃을 여미며 울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그리고 열녀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도대체 “대한”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왜 그토록 대한 말을 가르치고 대한 글을 가르쳐야 합니까?
오늘날 많은 분들은 내 자녀를 영어를 잘하는 국제인으로 기르고자 합니다.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국제인이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영어를 모어로 잘 한다면 국제인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한의 혼은 빠집니다. 말에는 혼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대한의 혼이 빠진 국제인, 그러나 그는 결국 국제 미아가 될 뿐입니다. 진정한 국제인이란 내 혼을 가지고서야 가능한 것입니다. 내 정체성의 튼튼한 터전 위에서라야 “국제”라는 빌딩이 지어집니다. 그렇다면 유창하게 영어 잘하는 국제인보다 무식하지만 내 혼을 가진 대한인이 더 귀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이분을 거룩한 혼의 소유자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을 갖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 합니다. 그래 울었습니다.
우리는 다시한번 이런 무식한 분들의 절규에 귀를 기우려야 하리라 믿습니다. 언제나 민족이나 국가는 이런 민초들이 지켜왔습니다. 멀리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말할 것도 없이 가까이는 한말의 의병들, 그리고 6,25 동란에도 다 민초들이 지켰습니다. 죽으면서도 대한의 얼을 심고자 하는 이 민초의 피눈물의 덕택으로 오늘의 민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혼을 가진 분이 정말 그립습니다.
09.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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