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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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수치와 가치 (안병렬)
2010년 03월 13일 22시 12분  조회:2307  추천:66  작성자: 안병렬

돈의 수치와 가치

안병렬


해마다 한 번씩 한국으로 나갈 때면 언제나 그 옛날 내가 섬기던 교회를 찾는다. 내 태어난 곳에서 10리도 못되는 곳에 있다. 나는 이 교회에서 서리집사로 3년, 그리고 장로로 19년을 섬겼다. 내 인생 황금기의 정열을 거의 다 바친 곳이니 어찌 잊혀질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내가 죽어서도 이 교회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내 묘지를 잡아놓았다. 이렇게 이 교회를 사랑하기에 교인들도 나를 잊지 못한다. 아니 그들이 그렇게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도 사랑하는 것이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여 주시는가?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장로로 불러주신다. 어디에 가서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는 영원히 우리의 장로라는 것이다. 아, 얼마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칭호던가? 그러기에 나도 이렇게 불리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니 내가 매년 귀국할 때마다 한 번씩 꼭 찾고 교회 또한 한 번씩 꼭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때마다 고향에 온 푸근함을 맛본다, 오래 오래 붇들고 얘기하고 놀고 싶다. 올해도 그랬다. 그 가운데서도 더욱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할머니 권사님들의 인정이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그들은 나를 얼싸 안는다. 개중엔 나보다 연장자도 많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나와 거의 비슷한 연배임에도 허물없이 나를 안으며 반긴다. 그만큼 서로 사이에 거리가 없으니 서로가 반가운 것이다. 그 따스함은 나를 거의 울게 만든다.

  그리고 더욱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 얼싸 안는 와중에 서로가 손을 잡고 악수를 하다 보면 손바닥에 무언가 만져지는 것이 있는데 손을 펴보면 만원짜리 돈이 꼬깃 꼬깃 접혀져 있는 것이다. 무심결에 주머니에 넣었다가 집에 와 펼쳐 보면 대개 한 두 장인데 어떤 때는 세 장인 경우도 있다. 그 돈을 펴보며 나는 운다. 그 마음 쓰심에 내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이다. 어디 넉넉한 분들인가? 대개 고달프게 사시는 분들이다. 내외분만 오두커니 사시거나 혼자 사시는 분, 또는 아들 며느리에 얹혀 사시는 분들이라 자기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런 분들이 나를 생각하고 한 두 푼 모았다가 주시는 것이다. 내 아무리 목석같이 굳은 인간이라 한들 이 돈을 받으며 울지 않으랴? 울면서 한 분, 한 분 얼굴을 떠올리며 축복을 한다. 부디 노년에 건강히 사시다 가시라고, 그리고 아들 딸 손자 손녀, 온 가족이 다 믿음 가운데 잘 되시라고. 

  그런데 올해는 더욱 감격스러운 일을 당하였다.

  90이 되신 노 권사님을 찾아 뵈온 것이다. 옛날 바로 이웃하여 살면서 정이 두터웠던 사이라 해마다 찾아 뵈옵곤 하였는데 요 1, 2년은 그만 뵈옵지를 않았다. 찾아 뵈오면 꼭 돈을 주시기에 부담스러워 일부러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섭섭해 하시랴 싶어 올해는 틈을 내어 찾아뵈었다. 전에는 따님 댁에 계셨는데 지금은 맏아드님 댁에 계셨다. 맏아드님 내외분도 이미 환갑인데 그 어머님을 참으로 잘 모시고 계셨다. 진정으로 효도를 다하기에 많은 분들의 칭송을 받는다고 하였다. 기동을 못하시므로 대소변도 받아 내는지라 남들 같으면 벌써 양로원 같은 곳으로 보냈을 터인데 즐거이 집에서 극진히 모신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그 장로님 내외분이 존경스러웠다. 또 내 자신의 불효를 깨닫고 부끄러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서 뵈오니 의외로 정신만은 초롱초롱하셨다. 진정으로 반가워 하시는 모습이 예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지금도 날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기도하신다는 말씀엔 가슴이 찡해졌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폐를 끼칠까봐 일어서는데 며느님이 억지로 붙든다. 차라도 한 잔 하시란다. 차를 드는 사이 봉투를 가져온다. 어쩔 수 없이 받아왔다.

  집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받은 봉투를 아내에게 주었다. 돈 9.000원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그 9,000원이란 돈이 다른 사람의 몇 만원 몇 십만원보다 더 많은 돈이라며 봉투를 다시 받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9,000원이 아니라 10만원이었다. 아내가 5만원짜리를 5,000원짜리로, 그리고 만원짜리는 천원짜리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장 만원짜리가 봉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돈을 들고 나는 또 한 번 울며 눈물을 흘렸다.  이 돈이 어떤 돈이냐? 이 돈을 모으려 기동도 못하시는 늙으신 할머니가 얼마나 애썼으랴? 한 푼 두 푼 아들 손자, 손녀들이 와서 드리는 돈을 꽁꽁 묶어 놓으셨다가 나에게 주시는 게 아니던가?

  내 어이 이 “정성과 눈물의 돈”을 그냥 쓰랴? 아무래도 내가 그저 쓰기에는 너무 죄송할 것 같았다. 내가 쓴다면, 그 돈은 몇 백만원 가운데 아주 미미한, 그냥 10만원의 효과밖에 못 내기 때문에 별 의의가 없을 것 같았다. 다 같은 10만원의 돈이지만 이 10만원은 그냥 10만원이 아니기에 그 액수보다도 그 할머니가 쏟은 정성, 그리고 내가 흘린 그 눈물이 제 값을 내는 데 쓰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인간 사회의 경제구조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십억을 가진 부자의 10만원이나 전 재산이 10만원뿐인 할머니와 같은 분들의 10만원이나 그 돈이 쓰일 때는 똑 같은 효과를 가진다는 게 참 억울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어쩌랴? 냉혹한 이 사회에서는 같은 걸. 내 혼자 발버둥 치며 “그렇지 않소.” 할지라도 될 리가 없으니 어쩌랴? 그래도 나는 그냥 10만원으로 쓰기에는 너무 죄송하였다.

  나는 그 돈을 조금이라도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써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한참을 고민하다 연변에서 이곳에 와 공부하는 대학생에게 주기로 하였다. 그에게 이 10만원은 몇 100만원 가운데 10만원이 아니라 아마 몇 10만원 가운데 10만원이 될 것이므로 그 정성과 그 눈물의 값을 조금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예금 통장에 입금시켜 주었다. 아마 그는 통장을 보고 놀랐으리라. 그리고 고마워 하리라. 그러나 사실 그 고마움은 내가 받아야 할 것은 아니나 굳이 변명하기도 번거로워 그만 두었다. 그보다는 그 고마움을 내가 가로채고 싶은 못된 욕심도 조금은 작용하였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조금 무거운 짐을 벗은 듯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돈의 수치와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하여 보았다. 수치로는 다 같은 10만원이지만 가치로는 엄청나서 몇 100만원, 몇 1,000만원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 학생은 그 돈으로 그 가치를 상당히 발휘하리라 믿었다. 또 그렇게 되도록 빌었다. 그리고는 그 할머니 권사님께 감사함을 전하는 편지를 보내었다.

  그러고 나니 손에 쥐어주신 이 돈은 어디다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그 학생에게 이 돈마저 부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으나 이미 보내었는데 새삼스러이 또 몇 만원을 보내기도 우스웠다. 그러자 작년에는 그 돈으로 작은 가방을 하나 산 기억이 났다. 그래 올해도 늘 지니며 볼 무엇을 사기로 하였다. 그러자 만년필이 생각났다. 나는 볼펜을 잘 쓰지 않는다. 습관이겠지만 미끄러워 손에 힘이 가지 않으므로 글씨가 잘 쓰여지지 않은 감을 갖는 것이다. 마침 쓰던 만년필이 낡아 새로 사야 할 형편이었다. 교보문고 문방구에 가서 하나를 골랐다. 값이 받은 돈과 비슷하였다. 이 경우 안성맞춤이라 하던가? 매우 기뻤다. “앞으로 그 따뜻한 정을 생각하며 이 만년필로 따뜻한 글도 써야지.” 마음먹으니 흐뭇하였다.  정말 돈을 수치가 아니라 가치로 썼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지금 이 시간도 그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그 권사님들을 떠올리고 감사함을 느낀다. 부디 부디 건강하시라고 빈다. 

2010. 3. 9
중국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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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날자:2010-03-14 15:59:17
연변을 사랑하고 조선족을 사랑하는 마음. 독서운동에 기울인 노력에 감사해 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고 독서사의 여러분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사해 하더군요. 항상 건강하십시요.
1   작성자 : 지킴이
날자:2010-03-18 17:27:45
존경스럽습니다. 글들을 한숨에 다 읽었습니다. 독서운동에 몰부으신 그 노력 모두들 두고두고 잊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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