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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약간 얼큰한 정도로 마셔야
리명근
세상인심가운데 술인심만큼 좋은것은 없을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술자리가 벌어지면 술을 권하는것이 주도(酒道)처럼 되여있다. 안마시겠다 해도 억지로 마시도록 권하고 또 취해도 혼자 취하는것이 아니라 술친구와 더불어 취하겠다는 심사가 술선심의 발로이다. 다른것에 린색하면서도 술인심만큼 후해서 술돈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술을 권하여 같이 취하려고 선심을 쓰는것은 무엇때문일가? 그리고 술만 마시면 노상 옹하던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지어는 평소 “고기를 만진 손도 국솥에 씻거나” “감기고뿔도 남을 안주는” 정도로 린색하기로 소문난 술군이건만 술만 들어가면 고까짓거 다 뭐냐 하면서 다 준다고 통이 크게 소리치는것은 또 왜서일가? 아무튼 “술 취한 사람 사촌 기와집 사준다”는 말이 그른데 없는것 같다.
술은 “취하는 맛”에 마신다고들 한다. 그 “취하는 맛”이란 단적으로 표현해서 대뇌의 억제작용을 흐리게 하여 루적된 스트레스를 푸는 맛이라고 할수 있다. 확실히 술을 마시면 뇌의 억제기능이 둔화되고 마비되기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또 술은 스트레스만 푸는것이 아니라 식욕을 증진시키는 역할, 전날의 술기운을 해소시키는 해장의 효능도 가지고있다. 하지만 식욕을 돋구기 위해 마시는 반주술과 간밤에 먹은 술의 기운을 풀기 위해 한잔하는 해장술은 가급적으로 혼자서 마셔야 한다. 예로부터 “술은 해장술에 망하고 투전은 본전 추다 망한다”고 하였은즉 반주술과 해장술을 턱대고 술병의 굽을 내고야마는 습관이나 아침 해장술을 친구들과 함께 저녁까지 마시는 주습은 삼가할바이다. 말하자면 술이 좋은 점만 갖고있는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예로부터 “술은백약의 으뜸이요, 만병의 근원”이라 하였듯이 술을 잘 리용하면 건강을 증진시켜 장수를 누릴수 있다지만 도를 넘긴 술은 신체를 때이르게 망가지게 한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중국의 국학시조인 공자가 애주가였다면 적지 않는 사람들은 놀랄수도 있을것이다. 사실 공자는 술을 좋아했거니와 그 주량도 매우 컸다고 한다.《십국춘추》의 기재에 의하면 “문왕은 술을 천잔을 마셨고 공자는 백그릇을 마셨다.”고 하였으니 공자의 주량이 술독이였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공자는 주량에 대한 제자들의 물음에 “나는 술을 마시되 량을 정하지는 아니 하나 술을 마심으로 인하여 심신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다.”고했다.《사기》에서는“주극즉란(酒极则乱)” 즉“술이 도를 지나치면 언행이 어지러워진다”고 정의하였으니 어찌술을 경계하지 않을수 있으랴!
동서고금에 있어서의 국가의 흥망성쇠와 영웅호걸, 시인문객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기록한 력사와 문헌을 뒤져보면 술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다. 또한 우리 인간의 일상생활의 희로애락에서 술이 인간에게 매개하여주는 역할이 지대한 면도 있다지만 술로 인하여 호색황음하고 자신과 국가를 파멸시킨 군주가 있었는가 하면 개인적으로는 주가 있는 곳에 색이 있어 주색에 빠져 패륜패덕의 행위를 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줄로 안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은 술과 관련한 명언들도 적지 않게 남기였다. 례하면 광음(狂饮)을 삼가하라는 뜻에서 술군을 롱하는말 즉“술먹은 개(정신없이 술에 취한 사람을 욕으로 이르는 말)”, “술덤벙, 물덤벙(모든 일에 경거망동한다는 뜻)”, “술 받아주고 뺨 맞는다(남에게 후하게 대접해주고 도리여 모욕을 당한다는 말)”, “술과 안주를 보면 맹세도 잊는다(항간에서 전해지고있는 “술맹세, 개맹세”의 뜻과 비슷함)” 등의 말로 우리를 경각시켜주고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주도함에 있어 당대의 명장으로 일장월취하던 김유신이 화랑시절에 기녀 천관에게 탐닉하여 자주 그 집을 찾던차에 하루는 타처에서 술에 만취하여 귀가하던중 그가 타고 가던 말이 평소에 자주 가던 길에 익숙하여 천관의 집으로 길을 잡아 찾아 당도한후 연후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기녀집임을 알고 대오각성하고 차고있던 대검을 뽑아 애마를 참하고 분연히 귀가, 맹성하여 오직 화랑오계를 지켜 위국충정으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였다는 미담은 오늘도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다. 이렇듯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 주량에 따라 천차만별인만큼 김유신은 술을 통음하고서도 삼국을 통일하는데 진충보국하였으되 삼천궁녀와 주지육림속에 방탕한 생활로 주야를 모르고 성충(成忠)과 흥수(兴首)의 충신간언을 마이동풍으로 흘렸던 백제의 마지막 군주인 의자왕의 최후는 어떠하였는가? 정녕 량자 모두가 술로써 건곤일척의 흥망을 극명하게 대조한 일이 아닐가 싶다.
술을 시작함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며 그 뒤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된다고 하니 삼가하고 삼가할 일이다. 그러니 술은 곤드레만드레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마시는것을 피하고 약간 얼큰할 정도에서 그치는것이 좋다. 술을 많이 마시면 자연히 말이 많고 말이 많으면 경망스럽게 수다스러운 행동을 하기 마련인 연고로 옛 지성인들은 “술마시면서 허튼소리 하지 않는 사람이 참 군자이다(酒中不言真君子)”고 하면서 근신절주(谨慎节酒)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여쭈기도하였다.
물론 술은 예로부터 사가의 관혼상제로부터 나라의 종묘사직에 이르기까지 필요불가결의 명물로 전해졌고 좋은 음식임이 틀림없다. 그러하기에 옛 시인들은 “술은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록봉이요/ 천하의 모든이에게 마음을 수양하고 바른 성정을 기르는 계기가 되는 명약이라”, “하늘과 땅이 모두 술을 사랑하니/ 애주는 하늘에 부끄러운 일이 아니로다/ 청주는 성인이요 탁주는 현인이라/ 청주와 탁주 다 마셨거늘/ 구태여 신선이 되려고 빌거야 있으랴…” 등등 술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실로 술은 사람의 성정을 현우미추(贤愚美丑)로 만드는 묘약임에는 틀림없으니 약주로 끝내고 광약(狂药)으로 번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정말로 스트레스해소가 목적인 술은 퇴근길에 아무런 리해관계가 없는 친구와 더불어 작은 술집인들 관계없이 마른 명태라도 쪽쪽 뜯으면서 여유작작하게 권커니작커니 한잔 나누는 가운데 주변으로부터 세상에 보기싫은 사람들에 대한 욕, 총각시절에 짝사랑에 빠져 고민속에서 헤맸지만 곁도 주지 않았던 처녀에 대한 불만 그리고 나아가서는 바가지를 빡빡 긁어대는 지금의 안해에 대한 불평까지 털어놓으며 공감하고 껄껄하면서 마시는 술이라 하겠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실때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을 느끼는것이 술이며 또 그 술이 들어가는 창자는 따로 있는상 싶기도 하다. 아무튼 취기를 리용하여 평상시에 할수 없는 말이나 부탁을 성사시켜 보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이 허심탄회하게 술을 마신다면 그 와중에 술의 향연을 차분히 만끽할수 있어 마시고 또 마셔도 큰 탈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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