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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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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되여 나는 처녀 (5)
2013년 10월 29일 20시 00분  조회:2566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5)


김희수




5.
그분의 정체
 

 

그분은 해마다 꼭꼭 한번씩 찾아왔다. 그것도 귀녀의 생일날에 어김없이 찾아와서 귀녀에게 생일선물을 주고는 그날 밤차로 총망히 가버렸다. 대그룹의 총재로 사업이 그만큼 바빴을것이다. 그렇게 분망한 가운데서도 꼭꼭 시간을 짜내여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는것은 아버지에 대한 우정이 그만큼 두텁고 귀녀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것을 말해줄것이다.

귀녀는 해마다 생일이 가까워오면 그분이 기다려진다. 이번엔 그분이 무슨 선물을 갖고 올가? 어릴 때는 그랬지만 자라면서 귀녀는 생일선물보다 그분이 보고싶어졌다. 그분은 아버지처럼 엄하지도 않고 만사통이나 한주먹처럼 귀녀의 자유를 박탈하지도 않았다. 그분은 종래로 귀녀에게 공부 잘 하느냐? 선생님 말 잘 듣느냐? 하는 따위의 말을 묻지 않았다. 그분은 귀녀와 마주 앉으면 자기가 다녀온 세계각지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시간이 있으면 귀녀와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귀녀는 그분이 오는 날만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였다. 그분이 있을 때면 아버지도 만사통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귀녀는 해마다 생일이 기다려진다. 귀녀가 대학시험에서 떨어진 해의 생일에는 그분이 노트북과 금목걸이를 가지고 와서 귀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분은 귀녀의 목에 금목걸이를 걸어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 우리 귀녀가 제법 숙녀가 됐구나! 시집가도 되겠는데…

아이…

귀녀는 부끄러워 얼굴이 익은 꽈리 같이 빨개졌다.

허허, 부끄러워 할줄 다 알구. 처녀는 처녀구나.

그분이 껄껄 웃다가 웃음을 거두고 물었다.

그래 공부를 더 해볼 생각이냐? 다음해에 대학시험에 한번 더 도전해보겠느냐?

아니, 전 자신이 없어요. 공부에 흥치도 없구요.

그렇다면 공부 그만두는것도 좋지. 딱 대학에 가야만 희망이 있는것도 아니다. 그럼 네가 해보고싶은 일을 해봐라. 그러나 뭘 하든지 영어와 컴퓨터를 알아야 한다.

알겠어요.

귀녀는 하루 빨리 자유를 찾기 위해 암암리에 싸웠다. 자신의 자유를 가로막는 아버지, 만사통, 한주먹과 말없이 싸웠다. 영어도 열심히 배우고 컴퓨터도 부지런히 배웠다. 배우는것이 곧 싸움이고 배워서 직업을 찾는것이 바로 싸움의 승리였다. 직업을 찾으면 아버지와 만사통이 감시하는 《감옥》에서 벗어나고 한주먹이 통제하는 고삐를 끊어버릴수 있을것이다.

, 넌 자유의 하늘로 마음껏 날아라!

귀녀는 어느날 조롱속에 갇힌 새를 놓아주었다. , 자유! 귀녀는 정말로 자유를 갈망했다. 만사통과 한주먹이 오던 그날부터 귀녀는 옥이랑 철이랑 다른 동학들처럼 자유롭게 뛰놀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몹시 갈망했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묘연한것이였다. 아득한 저 밤하늘의 별처럼 눈앞에 보이면서도 만질수도 딸수도 없는 그런것이였다. 그런데 그 자유가 이제는 고층건물의 옥상에 있는것이다. 계단만 부지런히 오르면 따올수 있는것이다.

그랬다. 귀녀는 23세가 되는 해에 마침내 직업을 찾았다. 어느 회사에 정식 취직한것이다. 귀녀는 자유만세! 하고 소리높이 웨쳤다.

하지만 귀녀는 모르고있었다. 자신은 조롱속에 갇힌 새처럼 이미 운명이 그렇게 인위적으로 주어져 있다는것을. 새의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자신의 힘으로는 조롱속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회사에선 사흘후에 출근하라고 했다. 마침 이튿날은 귀녀의 23세 생일이다. 그래서 귀녀는 자신과 한주먹밖에 모르고있는 이 기쁜소식을 생일상에서 선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아버지도 기뻐하고 그분도 기뻐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생일에 그분이 오지 않았다.

왜 그분이 오지 않았어요?

귀녀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분이 오지 않으니 서운해서 물었다. 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분은 사업이 바빠서 오지 못하고 생일선물만 보내왔다.

선물? 무슨 선물을 보내왔어요?

그 선물을 보여주기전에 내가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엄숙한 어조로 말하면서 귀녀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귀녀는 아버지의 전에 없던 행동이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여태껏 이렇게 은밀하게 딸과 담화하기는 처음이였던것이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피우지 않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뻑뻑 빨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그리고 놀라지도 말고 이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말아라.

아버지가 이렇게 허두를 떼자 귀녀는 더욱 이상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먼저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테니 잘 들어라.

아버지는 귀녀가 여태껏 모르고있던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분은 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기업가이지만 혼인생활은 불행하였다. 그분이 처음 결혼할 때는 지금처럼 대부호는 아니였지만 자그마한 부자는 되였다. 다른 사람의 소개로 한 녀자와 마음이 맞아 결혼했는데 첫날밤을 지내고 나서 그분은 몹시 실망했다. 색시는 처녀가 아니였던것이다. 그분이 영문을 묻자 신부는 자신은 운동을 많이 해서 처녀막이 일찍 파렬된 모양이라고 변명했다. 그분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그렇게 믿었는데 그후 그분은 안해가 처녀때 두번이나 류산까지 한 적이 있다는것을 발견했다. 그분은 자신을 속인 안해를 용서할수 없었다. 즉시 리혼한 그분은 꼭 숫처녀를 얻고야 말리라 마음먹었다. 그분의 장사는 갈수록 잘되여서 그분에게 시집오겠다는 처녀는 줄을 섰다. 하지만 그분의 조건에 합격되는 숫처녀는 없었던것이다. 사처에 수소문했으나 숫처녀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은 생각다못해 나이 어린 처녀를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18세의 처녀와 결혼을 약속하고 3년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그 처녀도 숫처녀가 아닐줄이야. 그분은 화가 났다. 화가 나도 여간 난것이 아니여서 가장집물을 마구 짓부시고 두번째로 리혼했다. 그때로부터 그분은 이 세상 처녀들을 믿을수 없었다. 숫처녀는 없다! 숫처녀는 없다! 그분은 그렇게 웨치며 괴로워했고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꼭 숫처녀와 결혼하고야 말리라 맹세했다.

아버지는 말을 잠시 끊고 다시 담배불을 붙여 물었다. 귀녀는 그분의 혼인상황에 대해 간단히는 알고있었다. 그분이 해마다 자기의 생일에 혼자 오는것을 보고 귀녀는 아버지에게 그분은 왜 동부인하지 않고 언제나 혼자 오느냐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그분은 부인과 헤여진후로 혼자 살고있다고 간단하게 말했었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는데 오늘 와서 알고 보니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귀녀는 그분의 불행한 혼인에 동정은 되면서도 끝까지 숫처녀를 얻으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리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왜서 자신에게 엄숙한 표정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아리송했다.

아버지가 담배한대를 다 피우고 나서 서랍에서 정교하게 포장한 물건을 꺼내서 귀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그분이 너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다. 이건 비단 생일선물일뿐만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란다. 어서 풀어보아라.

귀녀는 천천히 포장을 풀었다. 귀녀의 손끝에서 포장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면서 자그마하고 정교한 함이 나타났다. 함을 열자 안에는 붉은빛과 푸른빛을 뿜는 보석반지가 들어있었다.

아니, 이건?!

귀녀가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자 아버지가 설명했다.

그건 약혼반지다.

웬 약혼반지?!

그분이 너에게 청혼하는 반지다. 그분은 너와 즉시 결혼하려고 한다.

그분이?! 나랑…

귀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건 분명 잘못 들은거라고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아버진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거예요? 그분이 나랑 결혼하려하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뭐가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분이 어떤 분이시냐? 성장어른도 그분의 앞에서는 허리를 굽실거린다. 알겠니? 네가 그분의 부인으로 되는건 영광이란 말이다.

?!

귀녀는 너무도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두눈이 초점을 잃었다. 아버지가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갑자기 아버지가 낯설어 보였다.

아버지! 그분은 아버지의 친구이고 또 나랑은 아버지벌이 되는 분인데 어찌…

아버지의 친구인데는 어때서? 송경령도 아버지의 친구 손중산에게 시집가지 않았느냐?

아버지! 저는 송경령이 아니고 그분도 손중산이 아니예요! 그분께 전해주세요. 전 그분이랑 결혼할수 없다구요!

귀녀야, 이건 네 운명이다. 받아들여라! 너에겐 받아들일 의무만 있을뿐 거절할 권리는 없다.

왜요? ?!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너무 많이 입었다. 갚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딸을 파나요?

너…너…왜 그렇게만 생각하느냐? 그분은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그리고 너를 몹시 사랑하고. 너도 그분을 좋아하지 않느냐?

그분이 훌륭한 분이란걸 알아요. 그리고 저도 그분을 좋아해요. 하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예요!

사랑이 별거냐? 서로 마음을 맞춰가며 살아가면 그게 사랑이지.

아니, 전 그럴수 없어요!

귀녀는 보석반지를 아버지한테 던지고는 아버지의 방을 뛰쳐나왔다.

그분이 어찌 내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귀녀는 믿을수가 없었다. 의혹을 품고 밖으로 달려나왔다. 무작정 뛰고싶었다. 귀녀는 오토바이를 잡아탔다. 어느새 한주먹이 따라왔다.

어딜 가려고?

귀찮았다. 속상해죽겠는데 감시병까지 따라오다니…

상관하지 말아요!

안돼! 내가 몰께.

싫어요. 비켜요!

하지만 한주먹을 떼여버릴 힘이 없었다.

 

�날�����cp:a��스했다. 그분의 자애로운 미소를 대할 때면 귀녀는 그분이 진짜 아버지인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너무나 일찍 어머니를 잃은 귀녀에게 아버지는 전부의 믿음이였다. 어머니가 생전일 때 아버지는 출퇴근할 때마다 꼭꼭 어머니한테 키스하곤 했다. 그리고 곁에서 눈이 동그래서 지켜보는 귀녀에게 뻑 소리나게 뽀뽀해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나타나면서부터 아버지는 귀녀에게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노릇과 아버지노릇을 함께 해오던 아버지한테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엄한 아버지의 의무만이 남은것 같았다.

얘야, 그분이 너한테 컴퓨터까지 사주었는데 잘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만사통선생님을 애먹이지 말고 고부고분 잘 배우거라.

아버지의 따뜻한 손이 귀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오래간만에 《모성애》를 느끼며 귀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당장 아버지의 품에 안겨 막 어리광을 부리고싶었고 어릴 때 경험했던 수염에 찔리는 얼얼한 뽀뽀를 받아보고싶었다. 하지만 아버진 이내 손을 걷어들이고 거실로 들어간다. 순간 귀녀는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뒤범벅이 되면서 저도몰래 눈물이 샘솟는다.

아버지!

속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순간 그분의 얼굴이 불쑥 떠오른다.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던 자애로운 그분의 얼굴이 아버지의 뒤모습을 지우며 또렷이 떠오른다.

귀녀, 빨리 와서 공부해요!

그때 짜증 섞이고 신경질적인 째지는듯한 왜가리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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