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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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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고국도 모르고 모국도 모른다 댓글:  조회:2471  추천:6  2020-06-14
고국도 모르고 모국도 모른다   김희수   어느 조선족 사이트에서 “고국도 아니고 모국도 아니다”라는 어이 없는 글을 보게 되였다. 아래 이 글의 내용을 요약한다.   두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봤다. 모국: 1. 자기가 태여난 나라. 흔히 외국에 나가있는 사람이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에 쓰는 말. 2. 따로 떨어져나간 나라에서 그 본국을 이르는 말. 고국: 주로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를 이르는 말. 사전해석이 알려주듯이 현재 중국에서 중국국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한국을 “모국”이라고 사용하는 건 옳지 않은 사용법이다. 한국이 일부 이민 1세의 모국이였겠지만 3대 4대에 걸치는 우리가 태여난 나라는 아니다. “고국”이라고 사용하는 건 더더욱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사전에 보면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즉 한국을 “고국”이라고 하면 스스로 지금 살고 있는 나라를 “남의 나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자세이다.   글은 사전해석을 근거로 조선족에게 한국은 고국도 아니고 모국도 아니라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있다. 우선 바이두(百度) 백과의 해석을 보자. 모국: 문화상의 조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이 세세대대로 살던 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상술한 해석에 따르면 중국조선족은 한국을 모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화교들이 미국국적을 가졌든 유럽국적을 가졌든 모두 중국을 자신의 조국, 모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모국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해석을 다시 보자. 모국: 주로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를 이르는 말. “고국도 아니고 모국도 아니다”라는 글의 작자는 이 해석을 근거로 “중국조선족은 중국국적을 가졌기에 남의 나라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고로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 한국을 고국이라고 부를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상술한 사전해석에서 맨 앞에 “주로”란 말이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까 “주로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지 이런 경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족도 “자신의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인 조선이나 한국을 고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조선이나 한국을 “모국”, “고국”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스스로 지금 살고 있는 중국을 “남의 나라”로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이 속한 민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뿐. 전 세계의 화교들은 자신이 어느 나라의 국적을 가졌든간에 모두 중국을 자신의 조국, 모국이라고 부르고 자신을 염황자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국도 아니고 모국도 아니다”라는 글의 작자는 조선족더러 우리의 조상이 세세대대로 살던 나라를 “모국”, ‘고국”이라고 부르지 말란다. 우리 민족더러 조상도 모르는 인간망종으로 되라고 하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90    40년후 우리는 열아홉살이 되였다 댓글:  조회:1573  추천:0  2020-06-14
40년 후 우리는 열아홉살이 되였다 —룡정1중 79년졸업생 40주년 동창모임 기념수필     수필   40년후 우리는 열아홉살이 되였다   김희수   우리는 살면서 여러가지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가족모임, 창립모임, 친목모임, 연구모임, 독서모임, 친구모임, 동호회모임, 향우회모임, 기부모임, 봉사자모임, 협회모임, 회식모임, 총화모임, 송년회모임 등 별의별 모임이 다 있고 모임마다 모두 뜻이 깊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모임이 바로 동창생모임이라고 생각된다. 동창생은 동년배이고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함께 뛰놀던 잊지 못할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만나면 더욱 반갑다. 특히 40년만에 다시 만났다면 그 감격과 반가움은 더 이를데없을 것이다. 지난 7월 18일이 바로 그런 날이였다. 그날 오전에 우리는 유서깊은 룡정에 모여 룡정1중 79년 졸업생 40주년 동창모임을 가졌다. 보고 싶던 얼굴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면서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순간 우리는 비록 이순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40년전 학창시절로 되돌아가 열아홉살, 스무살이 되였다. 40년동안 살아온 경력은 서로 다르지만 공동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는 40년이란 시간을 뚝 떼여버리고 격정의 학창시절로 되돌아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첫눈에 알아보는 이들도 있고 몰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알아보든 몰라보든 다들 악수하며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모임의 첫 행사는 모교를 찾아가 기념사진을 찍기였다. 졸업사진을 찍은지 어제같은데 어느덧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40년전에 졸업사진을 남긴 모교를 배경으로 다시 한번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 기념사진을 찍었다. 40년이란 세월도 우리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된 학창시절의 추억을 변하게 하지 못했다.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학교밭에서 함께 로동하던 그 시간들은 우리의 추억속에 변함없이 남아있다. 오래 된 기억은 점차 잊혀진다고 하지만 학창시절의 추억만은 40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 다시 어제일처럼 새록새록 떠오른다. 우리는 문화대혁명이 갓 일어나던 시기에 유치원에 다녔거나 소학교에 갓 입학한 세대들이였다. 비록 졸업을 2년 앞두고 대학입학시험제도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공부보다 로동을 더 중시해온 시절에 학교 다닌 세대들이였다. 소학교 때부터 5월 말, 6월초면 모내기, 여름이면 김매기, 가을이면 벼가을 하기, 싸리나무 하기, 대채전 만들기, 겨울방학이면 거름모으기 등 1년 사시절 해보지 않은 로동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추억외에 함께 로동하던 잊지 못할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특수한 세대들이였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처럼 공부에 목을 매지 않았기에 딱지치기, 유리구슬치기, 땅따먹기, 살구씨따먹기, 돌차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실뜨기 등 놀이를 마음껏 놀았던 동년의 유쾌한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유감없는 세대들이였다. 이런 격정의 나날을 함께 해온 우리들이였기에 그 추억이 더욱 소중하고 감미롭다. 그립던 동창들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나눌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행복이다. 그리고 이런 동창모임에서 다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다는 것 또한 크나큰 행복일 것이다. 우리는 이 소중한 모임의 순간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자체 가무공연프로와 게임, 오락프로를 마련했다. 우리가 이번 79년 졸업생 40주년 동창모임을 위해 마련한 다채로운 가무공연은 룡정 해란강호텔에서 막을 올렸다.   그립던 동창들아 다정히 모여앉아 지나간 학창시절 추억을 하면서 다시 만난 오늘의 기쁨을 이 술잔에 담아보자    이번 모임에 참석한 동창생 모두가 무대에 올라가 부른 대합창 “동창원무곡”에 이어 학창시절부터 음악과 예슬을 지향하고 있던 동창생들이 독창, 독무, 독주, 3인조 또는 다인조로 나와 장끼를 자랑했다. 관중이나 공연자가 따로 없었다. 우리가 관중이고 우리가 가수, 무용가였다. 가무단이 울고 갈 프로 못지 않은 우리의 공연은 시종 즐거운 웃음과 박수소리 속에서 진행되였다. 공연이 끝나자 우리는 이번 모임을 위해 물심량면으로 후원해준 동창들과 이번 행사를 위해 로고를 아끼지 않은 준비위원회 동창들을 위해 잔을 들고 나서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동창들을 간단히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건강이 최고임을 절감하면서 오찬을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다음 행사장인 동성용진 인화촌에 자리잡은 해란강민속촌을 찾아갔다. 그날 오후 비가 많이 내렸지만 우리의 게임놀이를 막지는 못했다. 남녀가 배합해 고무풍선터치우기, 수건으로 눈을 감싸고 동그라미안에 트럼프장 던지기, 남녀가 함께 주머니속에 하반신을 넣고 달리기…… 우리는 다시 열아홉살, 스무살이 되여 우리의 열정을 불태웠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즐겁게 뛰논 흥겨운 한마당이였다. 비속에서의 신나는 놀이가 끝나자 풍성한 만찬을 마주한 우리는 이번 행사의 원만한 성공을 위해 다시 축배를 들었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우등불오락놀이에 돌진했다. 우등불을 밝히고 흥겨운 곡조에 맞추어 춤추기는 다른 관광객들까지 흡인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구경하던 관광객 모두 우리의 대오에 가입해 손에 손잡고 빙빙 돌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그 모닥불과 함께 우리의 제2의 청춘도 불탔다. 우등불놀이가 끝나자 다시 차려지는 술상, 술자리가 무르익자 40년전에는 못하던 이야기들도 오간다. 누가 누구를 짝사랑했다는 이야기, 누구와 누구는 비밀련애를 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터놓는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면서 그 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다. 당시 남자들 이름 마지막 자에는 “호”가 많이 들어갔고 녀자들 이름 마지막 자에는 “자”가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영호야, 경호야, 응호야 하고 부르면 장난꾸러기 사내애가 떠오르고 순자야, 길자야, 정자야 하고 부르면 얌전한 녀자애가 떠오른다. 장난꾸러기 누구는 사장님이 되였고 얌전둥이 누구는 원장님이 되였다. 그런 달콤한 추억을 잠재우고 날이 밝자 우리는 아침운동을 하고 조찬을 먹은 후 저만침 떨어져 있는 해란강반 온천수락원으로 향했다. 초로의 신사숙녀들은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었다가 시원한 수영장에 뛰여들기도 했다. 수영에 능한 이들은 수영복 그대로 물에 뛰여들고 수영에 서툰 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물놀이에 동참했다. 우리는 재미있는 물놀이를 추억으로 남기고 나서 다시 룡정으로 향했다. 모교에서 멀지 않은 동방랭면집에서 그동안 즐거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40주년 행사는 아름다운 력사의 한페지를 기록해 놓고 아쉬운 막을 내렸다. 졸업 40주년을 계기로 더욱 많은 교류와 더욱 진한 우정이 쌓이고 나아가서는 50주년, 60주년 행사 때 더 많은 동창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다시 만나자, 동창들아! 오늘의 이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자! 인류 력사에 40년은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인생에 40년은 기나긴 시간이다. 그러기에 40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고나 병으로 40년도 못 살고 가버린 이들도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백세인생에 40년은 두번 반이나 올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 우리가 이순의 나이 다 되여 40년전의 스무살을 담소하지만 이제 다시 40년이 지난후 백세가 되여 오늘의 이순을 담소하는 이들이 우리 중에 있으리라고 단언한다. 그때 가면 그분들이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잊지 못할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으며 얼마나 멋지게, 얼마나 진지하게, 얼마나 리얼하게 60인생을 담론했는지를 후대들에게 전해주리라 믿는다.     2019년 8월 2일 금요일 연변일보 해간강부간 제1679기 6면에 실렸음.                     
89    꽃길과 가시밭길 댓글:  조회:45447  추천:5  2017-02-09
꽃길과 가시밭길   김희수     지금 당신의 앞에 꽃길과 가시밭길이 놓여있는데 이 중에 어느 길로 가겠는가?   만약 이런 질문이 나온다면 누구나 꽃길을 선택할것이다. 아름다운 꽃길을 놔두고 험한 기시밭길을 자진해서 걸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꽃길을 지나면 가시밭길이 끝없이 계속 되고 가시밭길을 지나면 꽃길이 쭉 무한하게 펼쳐져있다면 대답은 달라질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말든 지금 좋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꽃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나중에 후회하며 울게 될것이고 앞날의 행복을 위해 고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나중에 웃으며 옛말을 하게 될것이다.   꽃길과 가시밭길은 쉬운 말이여서 누구나 그 뜻을 알고있을것이다. 국어사전을 뒤져보면 “꽃길은 꽃이 피여있거나 꽃으로 장식된 길을 의미하기도 하고 순탄하고 순조로운 삶을 뜻하기도 한다”고 풀이되여있다. 그리고 “가시밭길은 가시덤불이 우거진 길을 의미하기도 하고 괴로움과 어려움이 심한 경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여있다.   그러니 미친사람이 아니고서야 꽃길을 놔두고 가시밭길을 걸으려고 할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꽃길만 있는것이 아니라 가시밭길도 있기에 가시밭길을 피해 꽃길만을 걷는다는것은 금수저가 아니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금수저란 재벌 2~3세거나 고위급간부의 자녀들을 지칭한다.   재벌이나 고위급간부가 아니더라도 자식들을 꽃길만 걷게 해주고싶은것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것이다. 조선족사회에도 자식들을 꽃길만 걷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가시밭길을 걷는 부모들이 많다. 외국에 나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쓴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고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게 하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행복하게 살수 있게 해주려는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만들어준 꽃길이 영원할수 없다. 부모가 돌아가면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걸어야 하기때문이다. 부모가 물려준 돈으로 계속 꽃길을 만들수 있는 금수저, 은수저도 있겠지만 부모가 만들어준 꽃길이 끝나면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동수저, 흙수저가 더 많다.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는 속담이 있다. 물론 요즘은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 온다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세대들처럼 신경통이 올 정도의 고생은 많지 않다. 지금의 가시밭길은 옛날의 가시밭길과 달라서 등이 휘고 손발이 얼어터질 정도로 험하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외자녀시대인 지금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 하나만을 애지중지 키우면서 가시밭길을 한발작도  걷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식 하나를 낳아 불면 꺼질까 쥐면 터질까 장중보옥같이 애지중지 키워 장가까지 보낸 어떤 부모가 있었다. 자식을 꽃길만을 걷게 하기 위해 부부가 번갈아가며 한국에 나가 힘들고 험한 막로동을 하면서 돈을 벌어 아들을 공부시키고 집 마련해주고 차 사주고 해서 장가 보냈다. 그런데 고생을 모르고 고이고이 자란 아들은 보모를 떠나 외지 대학에 가서는 홀로서기를 할수 없어 중퇴했고 나중에 부모가 간신히 취직시켜주고 장가보내주었지만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백수로 지내다가 리혼까지 하고 다시 부모한테 붙어사는 캉가루족이 되였다.   독립하지 못하고 제 구실을 못하는 아들은 허구한 날 빈둥거리면서 소비돈을 달라고 늙은 부모에게 손을 내민다고 한다. 부모는 또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은 그럭저럭 아들을 먹여살리기는 하겠지만 자신들이 죽으면 독립하지 못하는 아들이 어떻게 혼자서 살아가겠는가고 걱정하고있다니 한심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부모가 만들어준 꽃길만 걸어온 자녀들은 탄탄대로에 습관되여 약간만 경사진 비탈길을 만나도 지레 겁부터 먹고 풀썩 주저앉는다. 이런 자녀들이 가시밭길을 만난다면 더구나 갈팡질팡하며 가시에 한번 찔려도 울면서 뒤걸음칠것은 불보듯 빤하다.   반면에 처음부터 부모들이 오솔길, 비탈길을 걷게 하고 용감하게 가시밭길을 걷도록 인도한 자녀들은 혼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여 아무리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도 활개치며 헤쳐나갈것이다. 그렇게 가시밭길을 헤쳐온 사람들앞에는 꽃길만이 펼쳐질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가시밭길을 피하라고 하지 말고 가시에 찔리면 그 아픔을 견디는 방법을 깨닫게 하고 기시에 덜 찔리거나 찔려도 쑥 뽑아버리고 여유있게 웃으며 걸을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 귀한 자식 매로 키워라고 귀한 자식일수록 어려서부터 가시밭길을 걷도록 인도하는것이 현명한 부모의 양육지혜가 아닐가 싶다.        
88    아이들을 구원하라 댓글:  조회:3511  추천:2  2017-01-17
아이들을 구원하라                                                                  김희수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이고 왕이다. 그러나 현재 수많은 어린이들이 비참한 지옥에서 살고있다.   특히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중동에서는 어린이들이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다. 먼저 그것을 립증해주는 아래의 기사들을 보기로 하자.   “예멘에서 어린이들을 전쟁에 내몰고있다. 연필을 쥐여야 할 아이들이 총을 들고 싸우다가 치렬한 전투에서 죽어가고있다. 유엔아동기금은 분쟁이 격화하고있는 예멘내 무장세력중 3분의 1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지역 어린이 2100만명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 중단위기에 처해있다고 유엔이 최근에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다. 비교적 교육률이 높았던 시리아와 이라크는 내전으로 인해 300만명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있으며 예멘과 리비아에서도 정국불안이후 학교를 못다니는 아이들이 급증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또 어린이를 내세워 인질을 참수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이슬람국가가 10∼11세 정도로 보이는 흑인소년이 비무장인질을 참수하는 내용의 새로운 선전동영상을 배포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앞서 유포된 이슬람국가 동영상에서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4∼5살짜리 꼬마 역시 영국출신인 이사 데어로 확인됐다. 이슬람국가는 2015년 7월에도 10살가량의 어린이대원이 시리아군을 흉기로 참수하는 영상을 공개한바 있다.”   “보코하람은 9세 소녀도 자살폭탄테러에 내몰고있다. 보코하람은 2014년 4월에 나이지리아 동북부 보르노주 치복시에 있는 치복 공립녀자중등학교 기숙사를 습격해 녀학생 276명을 랍치하면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피랍 녀학생중 약 200명이 아직 행방불명이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최근에 어린 소년들을 내세워 인질을 참수한데 이어 이번에는 네살배기 아이까지 동원해 공분을 사고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더 타임스는 영국태생으로 알려진 이사 데어(4살)가 리모컨을 작동해 인질 3명이 탄 자동차를 폭파하는 IS의 선전영상이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이슬람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 마을에 화학무기공격을 가해 세살배기 녀자아이가 숨졌다고 이라크정부가 밝혔다. 특히 올해 3살 된 녀자어린아이 파티마 사미르는 화학무기에 로출된 뒤에 신장과 페질환을 앓다가 2016년 3월 10일에 사망했다.”   “이스라엘공습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살던 6살 소녀 이스라 아부 쿠사, 10살 된 그의 오빠 야신 아부 코사가 숨졌다고 알자지라와 일간 하레츠 등 현지언론이 2016년 3월 13일에 보도했다.”   이처럼 전쟁이 계속되고있는 중동뿐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있는 이웃나라 인도의 어린이들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외진 마을에 미성년자 결혼현상이 아직도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 인도의 최년소 신부가 고작 2살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인도언론에 보도되며 파장이 일고있다. 인도의 외진 마을에서 미성년 결혼은 여전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풍속에 따라 어린 신부는 결혼후에 여전히 친정에서 살다가 11~12살이 되면 남편의 집으로 가는데 그후 어린 신부의 운명은 온전히 시댁에 달려있다. 이때부터 어린신부는 나이에 비해 훨씬 힘든 가무로동을 해야 하고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심지어 시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폭행을 당하기 일쑤이며 일부는 십대에 벌써 아이를 낳고 엄마로 살아가기도 한다. 유엔아동기금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3분의 1 이상의 어린 신부가 인도출신인것으로 집계됐다.”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총기란사로 매일 35명정도 목숨을 잃는데 그중에서 1명은 14세이하의 어린이라고 한다. 심지어 11세의 남자아이가 이웃집 8세의 녀자아이를 총으로 살해(2015년 10월 3일 저녁 7시 30분에 미국 테네시주 화이트파인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우리 나라도 례외는 아니다. 류동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아동학대, 아동매매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있는 상황이다. 민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떠돌아다니며 구걸하는 어린이가 100만~150만명이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조직적인 인신매매범죄집단까지 급증하면서 매년 1만명가량의 아이들이 랍치되고있다. 중국의 보도매체는 매년 랍치되는 어린이가 20만명가량일것으로 추산하고있다. 공안부문의 자료에 따르면 유괴되여 팔려가는 어린이는 대부분 6세이하이며 50%이상이 친척이거나 친부모가 직접 팔아먹는것으로 드러났다. 그외 아동학대현상도 빈번하게 발생하고있어 그에 관한 기사도 매일 나오고있는 실정이다.   어린이 기아현상도 엄중하다. 통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10세이하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죽는다고 한다. 식량이 남아돌고있는 중국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딴세상의 이야기같을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와 한 하늘을 이고 같은 땅에서 같이 숨을 쉬고 살고있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이다.   로신은 《광인일기》에서 “아이들을 구원하라”고 웨쳤다. 그런데 근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이들은 비참한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왕으로 떠받들려야 할 어린이들이 노예처럼 팔려가고 학대받고있다. 물론 왕자님, 공주님으로 떠받들리면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들마저도 랍치, 폭행, 학대, 살해 등의 위험에 로출되여있다.   누가 아이들을 전쟁에 내 몰고 아이들을 랍치하고 아이들을 팔아먹고 아이들을 학대하고 아이들을 굶어죽이는가? 그 장본인은 어른이다. 아이들을 지옥같은 비참한 세상에 살게 하는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미래를 지켜주지 못하는 어른은 어른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가 지키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이다. 그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우리는 죽거나 밀려나고 그들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 수십년이 지나서 그들이 주인이 될 때 또 어린이들을 비참한 생활에 내모는 그런 악순환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진정한 왕자님, 공주님으로 떠받들리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로신처럼 “아이들을 구원하라!”고 웨쳐본다. (2016년 4월)    
87    1월은 희망의 달 댓글:  조회:5411  추천:6  2017-01-01
1월은 희망의 달                           김희수   희망찬 2017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우리는 “희망찬”이란 단어를 새해앞에 붙인다. 누구나 새해를 맞으면 괜히 설레이고 황금빛 희망에 부풀게 된다. 그만큼 새해는 기분이 좋고 무엇이나 다시 시작할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더 큰 도약을 위해 더 큰 계획을 세우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더욱 신나게 달려보고싶을것이다.   지난해로 말하면 누구에게는 아프고 힘들었던 한해였을것이고 또 누구에게는 뜻깊고 보람찬 한해였을것이다. 누구에게는 슬프고 괴로웠던 한해였을것이고 또 누구에게는 즐겁고 행복한 한해였을것이다. 누구에게는 허송세월한 한해였을것이고 또 누구에게는 열심히 달려온 한해였을것이다. 그러나 지난해가 어떠한 한해였던지를 막론하고 누구나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려고 할것이다.   지난해에 이루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았다면 새해에는 꼭 이루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될것이고 지난해에 불쾌했거나 불행했던 일로 좌절했거나 절망했다면 새해에는 기쁜일과 좋은 일이 생길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될것이다. 투병생활을 했다면 몸이 건강하기를 바랄것이고 사업에서 실패했다면 일이 뜻대로 되였으면 하는 희망을 품게 될것이다.   그래서 새해의 첫달인 1월을 새 출발을 시작하는 희망의 달이라고 할수 있다. 1월은 비록 소한, 대한의 맵짠 추위가 잠시 맹위를 떨치기도 하지만 따뜻한 봄이 시작된다는 립춘이 곧 오게 되고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 경칩이 눈앞에 있기에 봄이 멀지 않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명실상부한 희망의 달이다.   아이들은 나이를 한살 더 먹었다고 자랑하고 로쳐녀, 로총각, 고령의 로인들은 나이를 한살 더 먹었다고 탄식도 하겠지만 누구나 모두 새로운 희망에 가슴이 더 벅차오를것이다. 나이 한살을 더 먹는다는것은 그만큼 더 성숙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새해에는 역경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지혜롭게 위기를 벗어나 성공하는 사람으로 성장할것이다.   지난해에는 나에게도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진 뒤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였다. 새해에는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한해가 되였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희망의 달 1월부터 새롭게 시작해 보련다.   거지도 재벌이 되는 이 세상에서 새로운 한해에는 돈에 울던 백수는 취직을 하고 사랑에 속던 총각은 장가를 가고 글 읽던 학생은 대학 가고 병마에 시달리던 환자는 완치가 되고 배고파 우는 저 나라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음식 가지고 장난하는 장사군은 뒈지고 가짜약 만드는 놈은 감옥에 가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새해 2017년은 이 세상에 사는 누구나 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돈을 많이 버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누구나 행복하고 즐겁고 화목하고 만복이 깃드는 한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86    지구온난화 인류는 어디로 가는가? 댓글:  조회:4549  추천:6  2016-03-23
지구온난화 인류는 어디로 가는가?   김희수     지구온난화, 이제 우리는 피부로 이것을 실감하며 늘 입에 올리고있다. 여름은 너무 덥다. 겨울은 춥지 않아 겨울같지 않다. 스모그가 계속되고 불볕더위, 한파 등 이상기후가 빈번하게 발생된다. 이상기후가 몰고 온 한파를 제외하면 지금의 겨울은 엄동설한의 칼바람, 살을 에이는 강추위, 뼈속까지 얼어드는 맹추위, 꽁꽁 얼어붙은 강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과장된 느낌이 든다.   예전에 겨울이 오면 남자들은 모두 털모자를 꾹꾹 눌러 썼고 녀자들은 모두 두꺼운 머리수건을 꽁꽁 매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털모자나 머리수건이 사라진지 오래다. 왕바신(王八鞋), 따투쎄(大头鞋)를 신어도 발이 꽁꽁 얼고 개털모자를 써도 귀가 시리던 겨울은 어디로 갔지?   지구온난화로 인해 21세기말이면 빙하가 70%이상이 녹거나 완전히 사라질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였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은 계속해서 상승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지대가 낮은 지역은 물에 잠기거나 페허로 변할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계속 올라간다면 장차 홍수나 가뭄, 도시가 바다물에 잠기는 큰 위험이  닥칠수 있다. 뿐만아니라 산소고갈이라는 더 끔찍한 재앙이 올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이 분석했다. 산소가 없으면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물체가 살수 없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로 신강위글자치구, 서장자치구, 사천성, 청해성, 감숙성, 운남성의 빙하는 1950년대 이후 18%가 줄었고 매년 243평방킬로메터씩 줄어들고있다고 한다. 자난해에 신강 아커타오(阿克陶)현에서 빙하가 이동해 1000㏊의 농지와 70가구에 피해를 입혔다. 신화통신은 2013년에 신강의 빙하가 20년내에 60% 감소하고 50년내에는 80∼90% 줄어들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신강정부는 관광객의 빙하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신강정부는 22698평방킬로메터에 달하는 신강지역빙하에 대한 관광객방문을 2020년까지 금지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온실가스이고 온실가스중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은 이산화탄소라고 한다. 인류는 갈수록 필요한 에너지가 더욱 많아졌기때문에 손쉽게 에너지를 얻을수 있는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소비했다. 이런 화석연료가 연소될 때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이 배출된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류는 이산화탄소배출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지구온난화방지에 얼마만한 효과를 거둘수 있을가? 딱히는 몰라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200~300년후 혹은 500년후에 환경오염, 오존층파괴, 지구온난화, 핵전쟁, 소행성충돌, 화산폭발 등이 극에 달해 지구가 인류가 살수 없는 환경이 되면 인류는 어디로 갈가? 공룡처럼 멸종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질가? 우주의 어딘가에 있을 제2의 지구를 찾아갈가?   정말 인류가 살수있는 환경에 적합한 행성이 우주에 있을가? 있을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살수 있는 행성이 있다고 해도 또 발견하였다고 해도 그 행성이 지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면 거기까지 가기 어렵다. 태양계 너머의 은하계의 어느 행성인가에 제2의 지구가 있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는 우주선을 제조할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인류는 늙어 죽을수도 있다.   그러면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한다. 화성은 인류가 우주선을 타고 가서 착륙할수 있는 태양계의 행성중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행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화성은 기온이 너무 추워서 생명체가 생존할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고 인류가 생존한다는건 더구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인류는 어디로 갈가? 그때에 가면 과학이 상상할수조차 없이 발달하여 그런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믿어야 할가? 우리가 죽은후에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하고 자포자기해야 할가? 나만 배부르게 살다가 죽으면 되지, 하고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수수방관해야 할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할가? 지구가 곧 인류가 생존할수 없는 환경이 되면 인류도 끝장이구나, 하고 비관실망해야 할가?   정말로 지구온난화를 방지할 길이 없을가? 길은 원래 없는것인데 사람이 다녀서 만들어진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 200여개 나라가 합심하고 각 나라마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되여 발벗고 떨쳐나선다면 “산이 첩첩 물이 겹겹 길이 없나했더니 굽이돌아 또 새 마을이 나타나네”하는 옛시처럼 낭떠러지같은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새길이 열릴것이라고 기대해본다.    
85    왜 좋은 이름에 집착할가? 댓글:  조회:4447  추천:6  2016-03-17
왜 좋은 이름에 집착할가?   김희수   근년들어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개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애초에 그 이름을 지었을 때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아름다운 축복이 깃들었을것이다. 부모가 고민하면서 숱한 이름가운데서 골랐을 좋은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지으려고 할 때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놀려준다거나 흔한 이름이여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남이 고치니 덩달아 고친다거나 또는 이름을 고쳐야 출세한다는 점쟁이의 말을 믿는다거나 등등 나름대로의 리유는 있겠지만 과연 이름을 고친다고 운명이 달라질가?   모택동은 1947년 3월 13일에 호종남(胡宗南)이 쳐들어왔을 때 연안을 떠나야 승리한다는 뜻인 리득승(离得胜)과 음이 같은 리덕승(李德胜)으로 개명했기에 전국을 해방하고 승리했다. 하지만 대립(戴笠)은 사주팔자에 좋다는 우농(雨农)이라고 개명했지만 결국 좋은 끝장을 보지 못하고 1946년 3월 17일에 비행기추락사고로 비속(雨中)에서 죽었다.   성공했거나 출세한 사람들은 이름을 잘 지어서 출세한것일가? 정말 그렇다면 이름을 지을 때 출세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지으면 출세는 근심하지 않아서 될것이다. 이 세상에 동성동명이 많다. 그러나 같은 성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고 해도 운명은 서로 다르다. 동성동명이라고 해도 출세한 사람과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것이고 장수한 사람과 단명인 사람도 있을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것은 이름탓이 아니다. 한마디로 성공한 사람들이 이름을 잘 지어서 출세한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이름 하나 잘 지어서 성공했거나 출세한 사람이 없다. 물론 개명한후 성공했거나 출세한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개명한후 손놓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면 출세할수 없었을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이름을 지어서 출세한것이 아니다. 반면에 개명후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부모의 마음 지극히 옳은것이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개명하려는 사람의 마음도 나무람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름에 너무 집착해 자주 개명하려고 하고 일이 뜻대로 안되면 이름탓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만은 바꿔야 할것이다.   모든것을 만족시키고 충족시키는 좋은 이름은 없다. 절대적으로 좋은 이름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이름이 좋다고 너도나도 그 이름을 지으면 중복이 생기고 개성이 없어지게 된다. 작명소가 생겨나고 이름짓기에 도움을 주는 이름짓기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좋은 이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있다. 하지만 이름은 이름일뿐 운명을 개변하지 못한다. 운명을 개변하는것은 좋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두손이다.   이름없이 마당쇠로 살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이름 석자로도 모자라 자, 호까지 달고 숱한 별명까지 길게 붙여서 자신을 나타낸 사람들도 있다. 이름이 없건 이름이 하나이건 이름이 여러개이건 또는 좋은 이름이건 수수한 이름이건 모두 죽으면 후세에 이름이 남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죽음과 함께 그 이름도 사라진다.   이름을 바꾼다고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이름으로 개명해도 자신의 노력이 없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명의 좋은 점도 있다. 이름을 바꾸면 자신심이 생겨날수 있다. 이제야 자아를 찾은것 같고 이제야 진정한 내가 된것 같아 날것만 같은 심정일수 있다. 이런 자신심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려면 자아도취에 취해 꿈만 꾸지 말고 꾸준한 노력의 날개짓을 힘차게 해야 한다.   개명이 헛되게 되지 않으려면 원대한 포부는 아니여도 자신만의 당찬 포부를 품고 참다운 인생관을 세우고 자신의 웅대한 목표를 위해 꾸준이 날개짓을 해야 좋은 이름에 걸맞는 결과가 이루어 질것이라고 생각한다.    
84    환경오염과 정신오염 댓글:  조회:4655  추천:6  2016-02-25
환경오염과 정신오염   김희수     환경오염은 누가 조성하는가? 자연재해거나 사람이다. 자연재해는 피할수 없는 자연현상이기에 사람의 힘으로 막을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일으킨 환경오염은 얼마든지 방지하고 줄이거나 피할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오염을 방치하면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등을 불러와 자연재해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된다.   인간은 왜서 환경을 오염시키는가? 눈앞의 리익이나 개인리익 또는 국부의 리익을 위해서이다. 개개인으로 놓고 말할 때 쓰레기를 아무데나 마구 버리거나 가래, 똥, 오줌 등 배설을 아무데나 하거나(혹은 아이, 애완견 등에 배설시키거나) 등의 행위는 일시적인 편리와 게으름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들고가서 쓰레기통에 치우려면 힘이 들거나 시끄럽다고 생각하기에 그 자리에 내버려둔채 엉덩이를 툭툭 털고 제몸만 깨끗하게 건사하고 떠나버린다. 또 음식물을 먹으며 길을 가다가도 찌꺼기를 길가나 강에 마구 버린다. 내 자신만 편리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한개 기업의 경우 자기 기업의 경제리익만을 위해 주변환경을 마구 오염시키면서 제품을 대량 생산한다. 원래는 환경오염방지대책을 대야 하지만 그러려면 경제리익이 적어지고 제품생산이 늦어질수밖에 없기때문에 주변환경이야 오염되든 말든 관계하지 않고 경제리익만 추구한다.   한개 나라의 경우 자기 나라만의 경제발전, 군사력강화 등을 위해 매연, 악취, 소음, 진동, 오수, 오물, 페기물, 방사능물질 등을 배출해 환경을 마구 오염시키면서 대량 생산을 추진한다. 미국, 일본 등 발달한 나라들은 환경오염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다. 이들 나라들은 먼제 환경을 오염시켜 놓고 나중에 환경오염을 방지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줴치며 이 지구를 자기만의것인듯 마구 오염시키 놓았다. 이제 발전도상국(개발도상국)들이 발달한 나라들이 그랬던것처럼 경제발전을 위해 환경을 오염시키려고 한다.   이런 오염배출은 점점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된다. 한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한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확대된다. 이런것은 모두 눈앞의 리익만을 생각하기때문이다. 수년이나 수십년동안에는 돌아오는 리익이 많다. 이것이 눈앞의 리익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인간의 건강과 생존에 엄중한 장애가 나타난다. 또한 100년후 혹은 몇백년후에 지구는 엄중하게 병들어가게 된다. 장원한 리익, 후대들의 리익을 위한다면 국부의 리익을 희생하더라도 환경오염부터 줄여야 한다. 환경오염원인이 되는 생산 소비는 하지 말고 모든것을 친환경으로 일체화해야 한다.   물론 인류가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환경을 오염시키는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환경을 적게 오염시키는것은 가능한 일이다. 또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줄일수 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것도 정도가 있다. 지금 인류는 해도 너무 한다. 심하게 오염시킨다. 엄중하게 오염시킨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환경을 마구 오염시키면 결국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간단하게 스모그만 봐도 알수 있다. 이보다 더 엄중한 피해는 많고도 많다. 아직 눈앞에 다가오지 않은, 앞으로 다가올 피해도 많고 심각하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도리를 너무 잘 알고있다. 그런데 왜 환경을 오염시키는가? 이는 인간의 정신이 오염되였기때문이다. 정신이 오염된 사람은 자신이 사는 지구를 사랑하지 않기에 환경을 마구 오염시키는것이다. 정신이 오염되지 않은 사람은 절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환경을 오염시키는것은 결국 자멸의 길이라는것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정신이 오염된 사람들은 내 집만을 깨끗이 청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실외도 내가 호흡하고 살아가는 장소이고 내가 먹고 입는것을 공급받는 장소인데도 그걸 모른다. 더 크게는 지구도 우리가 살고있는 하나의 집인데도 그걸 모른다. 혹자는 그런걸 누가 몰라? 라고 반박할수도 있다. 알면서도 범하는건 모르는것보다 더 엄중하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이 더 엄중하게 오염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물론 이 세상에 정신이 전혀 오염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것이다. 오염정도가 적거나 많은 구별이 있을뿐. 정신이 덜 오염되였거나 조금 오염된 사람들은 그래도 지구 전체를 내집으로 생각할것이다. 정신이 많이 오염되였거나 엄중하게 오염된 사람들은 내집밖의것은 모두 남의 집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세척제로 깨끗하게 빡빡 때밀이를 해서 온전한 정신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정신이 맑고 깨끗해진 사람은 더는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을것이다. 믿어도 된다.      
83    소털같이 많은 시간 댓글:  조회:4915  추천:6  2016-02-18
소털같이 많은 시간   김희수     어릴 때에는 정말 시간이 소털같이 많을것 같았고 사람에게 그런 시간은 영원할것 같았다. 그런데 굼벵이처럼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 언제부터인가는 갑자기 기차처럼 빨라져 1년, 2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또 비행기처럼 빨라져 10년, 20년이 눈깜짝할 사이에 가버렸다.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어진다. 세월이 무정하구나. 너울쓰고 시집을 온지 어제같은데 오늘은 백발의 할머니로 되였네, 라고 하던 동네 할머니는 순식간에 화장터의 재로 되여 사라져버렸다. “계급투쟁”을 웨치던 미치광이도 저 세상으로 가버렸고 눈이 사탕가루라고 하던 익살군도 저 세상 사람이 되였다. 그래서 세월이 류수같고 화살같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백세시대라고 할 때 인간에게 시간이 정말 소털같이 많을것 같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백세까지 산다고 해도 실제 인간이 사용할수 있는 시간은 백년인것이 아니다. 인간은 잠을 자는데 인생의 3분의 1을 허비한다. 게다가 인간은 아깝게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세수하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서 일보는데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목욕하고 리발하는데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또 남자는 수염을 깎는데, 녀자는 화장을 하는데 시간을 써야 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백년을 산다고 해도 인간에게 시간은 기껏해야 몇십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시간이 소털같이 많다고 여기면서 여유있게 살아왔다.   우리 어릴 때에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였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숙제도 얼마 안되고 과외도 따로 없었기에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기만 했다. 어찌나 긴지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았던 지루한 방학기간에도 무슨 놀음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 몰라 딱지치기, 제기차기, 숨박곡질, 유리알굴리기, 살구씨먹기, 땅따먹기, 돌차기, 실뜨기, 땅에 놀이판을 그리고 편을 나누어 노는 ㄹ자놀이(집뺏기), 8자놀이(진지점령하기), 전쟁놀이(녀자애들은 주로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등을 번갈아놀았다. 그렇게 시간을 충족하게 보내면서 자랐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놀새없이 바삐 보내면서 한가한 시간이 없는것 같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배설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동안 아이들은 수업에 시달리고 또 영어, 피아노, 미술, 서법, 작문 등 과외에 목매여 눈코뜰새없이 바삐 보낸다. 게다가 틈만 있으면 휴대폰게임에 빠져 정신이 없다보니 여유가 없고 한가한 시간이 없다. 정말로 시간을 빈틈없이 쓴다.   하지만 결국 이것도 잘하지 못하고 저것도 잘하지 못한다. 어느 하나도 뾰족하게 잘 하는게 없다. 어느 방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늘 바쁘다고 하고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투덜대기만 한다. 매일 시간에 쫓기면서 이런 일 저런 일로 바삐 내보지만 결국 이것도 저것도 잘 해놓은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공부하는것도 대학에 가는것도 결국 밥을 먹는 재간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두손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벌어서 밥을 먹을수 있는 재간을 가져야 한다. 밥을 먹는 재간은 한두가지면 충분하다. 여러가지 재간을 가진 사람은 어느 재간으로도 밥벌이를 하지 못한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밥을 먹는 재간이 없는 젊은이들이 많다. 시간에 쫓기면서 10여년을 공부했지만 밥을 먹는 재간을 배우지 못한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누구에게는 더 많이, 누구에게는 더 적게 주어지지 않는다. 100세 로인에게도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이고 1세 아기에게도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이다. 대통령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고 평민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다. 부자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고 가난한 자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똑 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어떤 사람은 천재가 되고 어떤 사람은 용재가 된다.   거목이 되고 성공한 사람들은 시간을 효률적으로 잘 쓴다. 그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열가지, 백가지에 시간을 다 쓰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싶고 할수 있는 어느 한가지 분야에만 시간을 쓴다. 열가지, 백가지 일에 시간을 다 쓰면 늘 시간에 쫓기게 되고 바삐 보내지만 어느 한가지 일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한가지 일에만 시간을 쓰는 사람은 성공하면서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요즘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 시간이 바쁘다고 하면서도 시도때도 없이 스마트폰에 빠져 쓰레기정보, 게임에 시간을 빼앗긴다. 한시간이상의 게임이나 채팅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시간랑비이다. 대신 자신이 가장 하고싶은 중요한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 물론 여유가 있다면 낚시, 등산, 독서, 사교무, 화투, 트럼프, 마작 등 취미생활에도 시간을 쓸수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 벌어서 밥을 먹을수 있고 나머지 시간이 있다면 여유롭게 취미생활에도 시간을 쓰고 사회활동에도 시간을 쓰고 가족을 위한데도 시간을 쓰는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시간을 창조하고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여야 하지 않을가 싶다.    
82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사연 댓글:  조회:5230  추천:7  2016-01-14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사연   김희수     200종이 넘는 원숭이는 엉덩이가 빨간 종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종류도 있다고 한다. 그럼 원숭이의 엉덩이는 왜서 빨갈가? 한 아이의 백일잔치 떡과 시루를 서로 가지려고 다투다가 구멍속으로 들어간 게에게 물려서 원숭이엉덩이가 빨갛게 되였다는 민간설화도 있지만 원숭이엉덩이가 빨간 리유는 사람의 입술이 빨간것 처럼 얇은 피부에 빨간색 피가 비치기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우리 세대들은 실제 원숭이 모습을 보지 못했던 어릴 때부터 “원숭이 어덩이는 빨갛다”는 동요를 통해 원숭이 엉덩이가 빨갛다는것을 알게 되였을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다 이 노래를 부르며 자랐다. 누가 지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가사는 다음과 같다.   잰내비 엉덩이 빨갛다 // 빨간것은 사과다 // 사과는 맛있다 // 맛있는것은 바나나다 // 바나나는 길다 // 긴것은 기차다 // 기차는 빠르다 // 빠른것은 비행기다 // 비행기는 높다 // 높은것은 하늘이다 // 하늘은 푸르다 // 푸른것은 바다다 // 바다는 짜다 // 짠것은 소금이다 // 소금은 희다 // 흰것은 입쌀이다 // 입쌀은 작다 // 작은것은 좁쌀이다 // 좁쌀은 노랗다 // 노란것은 똥이다 // 똥은 구리다 퉤! 퉤! 퉤!   한국에서는 이 동요의 가사가 좀 다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 빨가면 사과 // 사과는 맛있어 // 맛있으면 바나나 // 바나나는 길어 // 길면 기차 // 기차는 빨라 // 빠르면 비행기 // 비행기는 높아 // 높으면 백두산 // 백두산은 뾰족해 // 뾰족하면 가시 // 가시는 무성해 // 무성하면 소나무.   이 동요는 류행되면서 연변에 와서 연변의 입말에 맞게 가사가 고쳐졌는지, 아니면 한국과 다르게 조선에서 류행되던 가사가 중국에 전해진것인지? 고증된 자료를 찾지 못해 사실을 알수 없다.   한국에서 류행되였던 동요는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가 무성한 소나무로 끝나면서 아이들에게 소나무처럼 무성한 희망을 안겨주려고 했던것 같고 연변에서 류행되였던 가사는 원숭이 빨간 엉덩이가 똥으로 끝나면서 아이들에게 우스개, 익살로 웃음을 주려고 했던 같다. 연변에서 류행되였던 동요의 결말(노란것은 똥이다 // 똥은 구리다)은 어른들이 그렇게 고쳤는지, 어린이들끼리 전하면서 그렇게 고쳤는지 알수 없지만 그 결말이 아직 끝나지 않은것 같아 미지근하다. 그래서 나는 결말에 한마디를 보태서 불러보았다.   “똥은 구리다 // 구린것은 탐관이다 // 탐관은 없어져라 퉤! 퉤! 퉤!   새해 원숭이해에는 백성들의 피땀을 빨아내는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부정부패, 온갖 비리를 척결해 백성들이 좀 더 잘살수 있는 한해가 되였으면 좋겠다.     
81    붉은 원숭이해 희망도 붉다 댓글:  조회:5171  추천:7  2016-01-05
붉은 원숭이해 희망도 붉다   김희수     힘찬 청양의 울음소리를 들은지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양울음소리도 미약해지고 붉은 원숭이의 웃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을미년(乙未年)의 착한 청양은 가고 병신년(丙申年)의 엉덩이가 빨간 재주군 원숭이가 희망을 안고 뛰여온다.   운동부족인 나는 언제부터인가 뻐스와 리별하고 걸어서 출퇴근했다. 보행코스는 뻐스코스와 달리 다양하게 선택할수 있어 좋았다. 나는 공원다리를 지나는 코스가 아니라 공원안을 가로질러 돌다리를 건너는 코스를 선택했다. 거리를 줄이려는 원인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것은 지나가면서 공원의 경치, 특히 원숭이를 곁눈질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나는 출근하면서 한번 흘끗, 퇴근하면서 한번 슬쩍 원숭이들을 곁눈질 했고 여유가 있을 때면 가까이 다가가 재롱을 부리는 원숭이를 구경하기도 했다. 나처럼 매일 두번씩 원숭이를 구경할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도 드물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행운”이 새해부터 더는 따르지 않을번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단위에 변동이 있어 새해부터 하남으로 출근하게 될것으로 기본상 결정이 나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원숭이앞으로 다가가서 “잰내비야, 안녕!”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동안 원숭이를 구경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무엇보다도 여태껏 날마다 보던 원숭이를 원숭이해에 마음껏 볼수 없다는것이 서운했다. 출근길이 달라지면 일부러 공원에 가지 않고는 원숭이를 볼수 없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얼마 안되는 사이에 일은 180도로 돌아 변동이 없이 원상태로 돌아가는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그 순간 “원숭이해에 원숭이를 날마다 볼수 있게 되였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희망찬 새해에 원숭이는 희망의 나무에 올라 이리뛰고 저리뛰고 분주히 돌아칠것이다. 우리도 원숭이해를 맞아 가슴 설레이는 날에 새 희망을 안고 새 출발을 하면서 분주히 돌아칠것이다. 원숭이해에 흉내 잘 내는 원숭이를 흉내내는것도 흥미있는 일이 되리라 믿는다.   원숭이는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동물로 흉내를 잘 낸다. 우리도 원숭이처럼 흉내를 잘 내보자. 하지만 우리는 맹목적으로 흉내 내지 말고 나쁜것은 버리고 좋은것만 흉내내자. 그른것은 버리고 옳은것만 가려서 흉내내자. 찌꺼기는 버리고 알짜만 골라서 흉내내자. 기계적으로 흉내만 내지 말고 알짜만 섭취해 참신하고 기발한 자신만의 창발력을 발휘해 기적을 만들자.   원숭이는 팔이 길다. 우리도 원숭이처럼 긴팔을 가져보자. 하지만 우리는 긴팔로 남의것을 가져오거나 남을 때리지 말고 긴팔을 뻗쳐 힘든 사람을 도와주자. 또 내게 차려진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긴팔을 뻗쳐 내것을 챙기고 내것을 지켜보자.   원숭이는 꾀가 많고 지혜롭다. 우리도 원숭이처럼 꾀와 지혜를 가져보자. 하지만 남을 해치고 탐욕만 챙기는데 얕은 꾀를 부리지 말고 범행이나 음모를 꾸미는데 지혜를 악리용하지 말고 다 같이 희망을 키워 성공하고 복을 누리는데 꾀를 쓰고 지혜를 모아보자.   원숭이는 민첩하다. 우리도 원숭이처럼 민첩하게 살아보자. 하지만 행동만 민첩하게 하는 원숭이가 되지 말고 민첩한 행동과 민첩한 사고능력을 겸비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원숭이는 타고난 재주군이다. 누구나 잘 아는 손오공을 련상하게 된다. 우리도 원숭이같은 재주군이 되여보자. 공부 잘해 출세하고 농사도 잘 짓고 장사도 잘 하는 재주를 가져보자. 돈을 잘벌어 가족이 함께 살고 민족이 모여살고 두번째 아이 낳는 재주도 가져보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것은 두려운것이 아니다. 두려운것은 한번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다시 나무에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다. 파란만장한 가시덤불 같은 인생길에서 희망의 나무에 오르다가 한두번쯤 떨어지는것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자그마한 실수이다. 왜서 나무에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해 그 답을 찾은후에 다시 나무에 오르면 희망이 현실이 될것이다. 더구나 붉은 원숭이해에 우리의 희망이 아침노을처럼 붉게 타오름에랴.    
80    조선족 지금은 아플 때 댓글:  조회:5398  추천:8  2015-12-22
조선족 지금은 아플 때   김희수     어느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고인의 맏아들이 보이지 않아서 사정을 알아보니 한국에 간지 2년째라는것이다. 고인은 전날저녁에 갑자기 사망했기에 한국에 가있는 맏아들은 부고를 전해듣고도 이튿날 오전에 치르게 될 장례식에 도착하지 못할것은 뻔했다. 예전에 7일장까지 치르면서 외지에 간 아들을 기다리던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부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돌아가지 못한다. 자녀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돌아가지 못한다. 팔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다시 일하러 나갈뿐이다.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벌어야 하기때문이다. 여기서는 눈물도 사치이다. 아무리 슬프고 고독하고 아파도 참아야 한다. 차별화를 당하고 랭대를 받고 무시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재한조선족들의 현주소이다.   장기간의 고된 로동에 몸이 지친데다가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 이런저런 고민에 마음까지 피로해져 몸에 병이 생긴다. 하지만 어지간한 경우에는 참고 계속 일하기에 나중에 병이 깊어져 사망한 경우도 있고 중병에 걸린 경우도 있다. 잔병은 누구나 다 가지고있다. 몸이 지쳐서 아프다. 마음도 상처를 입어 아프다. 이것 또한 재한조선족들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이들은 희망을 안고 살면서 새로운 기적과 부를 창조하고있다.   조선족사회는 지금 아플 때이다. 대도시 진출과 끊임없는 대규모의 한국행으로 리산가족이 늘면서 조선족 대부분이 리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있다. 온가족이 모여 명절을 쇠는 그런 풍경은 이젠 옛말이 되였다. 조선족마을에서 아기의 울음소리와 아이들이 글읽는 소리를 들을수 없고 조선족이 농사짓는 모습도 보기 힘들게 되였다.   2015년 12월 19일자 한국일보는 “조선족의 터전인 중국 동북3성 거주 조선족은 한때 200만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불과 40만~60만명 정도로 급감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이농현상으로 중국 대도시와 연안도시로 50만명 정도가 빠져나갔고, 한국으로도 이미 75만명(국내 체류 조선족에 한국국적 회복인원 포함) 이상 건너왔다. 한국 이외의 다른 외국으로도 15만~20만명이 이동하면서 조선족 마을은 붕괴 직전이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을 두고 조선족사회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두손 놓고 앉아서 비관할수만은 없다. 일루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조선족공동체가 무너진다는것은 시기상조이다. 조선족사회가 해체될 위기에 처해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위기는 고비만 잘 넘기면 더 발전할수 있는 기회로 될수 있다.   조선족전통사회는 해체되고있지만 그 해체와 더불어 새로운 조선족집거구가 형성되고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소도시에서 대도시, 연해도시 또는 해외(주로 한국)로 이동하고있지만 흩어지면서도 다시 모인다. 결국엔 다시 모일것이다.   대도시, 연애도시에 가있건 한국에 나가있건 우리 모두가 중국조선족이다. 조선족은 모래알처럼 흩어진것이 아니다. 새로운 집거구를 형성하고 조선족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아무리 장기간 헤여져있어도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긴밀히 련결되여있다.   아프면서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면 더욱 단단하고 건강해진다. 조선족사회도 진통을 경험하는 성장과정을 거치면 앞으로 더욱 성숙하고 더욱 건강해질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 다 같이 희망을 가지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위기를 해결해 넘기면서 포기하지 않고 조선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 도라지노래는 계속 울려퍼질것이고 아리랑선률은 영원할것이다.      
79    참는게 아재비다 댓글:  조회:4749  추천:8  2015-12-15
참는게 아재비다   김희수     근년에 박춘봉, 김하일 등 조선족의 이미지를 왕창 추락시키는 한국내 조선족범죄가 늘어나고있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있다. 한국이나 국내를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이나 살인사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일시적인 충동을 참지 못해 분노가 폭발해 발생한 비극임을 알수 있다.   한국 경기도 시흥에서 안해를 목졸라 살해한 뒤에 시신을 훼손해 시화호에 유기한 김하일은 구속된 당시에 “저도 모르게 욱해서 그랬습니다. 집사람에게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김하일이 19년전에도 도문시 석현진에서 20대녀성을 살인한 전과가 있지만 그때도 화를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참았더라면 이런 비극을 피면할수 있었을것이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하지 않는가?   화가 나면 참지 못해 갑자기 늑대나 호랑이로 돌변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욱하는 성질을 자제하면서 화를 참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분노를 참지 못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 사람들의 사례를 적어두고 거울로 삼으면서 참을 인(忍)자를 항상 가슴에 새겨두어야 한다.   화를 참으면 병이 나지 않는가? 화를 참으면 더 큰 화를 불러오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쌓이고 쌍였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여 일어난 범죄도 있지 않는가? 의학적으로 보면 화를 참으면 있던 병이 더해지고 없던 병도 생겨날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화가 날때 참지 말고 풀라고 권한다.   그럼 화를 참아야 하는가? 풀어야 하는가? 의사들이 화를 풀라고 하는것은 마구 행패를 부리거나 싸우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화를 다스리라는 뜻이다. 화가 난다고 마구 란동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과 싸우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엄중한 후과를 조성하게 된다. 결국 자신도 폭행죄나 살인죄로 감옥신세를 지게 되여 후회막급, 그때는 아무리 가슴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화는 참아야 하고 또 풀어야 한다. 그럼 이는 모순되지 않는가? 아니,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참아야 한다는것은 그 자리에서 잠시 참아야 한다는것이고 풀어야 한다는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풀어야 한다는것이다. 즉 그 자리를 피해서 다른 조용한 장소에 가서 풀어야 한다는것이다.   화가 날 때에는, 특히 화를 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될수 있는 경우에는 재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다거나 조용한 강변에 가서 큰소리로 화가 나게 한 상대를 욕한다거나 큰돌을 그 상대라고 가정하고 큰돌을 향해 돌팔매질한다던가, 헬스장으로 달려가서 권투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상대라고 상상하며 “죽일놈, 죽일놈”하고 들이친다거나…자신에게 적당한 화풀이방법을 찾아 화를 다스려야 한다.   화가 나서 피하고싶은데 싸워야 할 상대를 피할수 없을 경우에는 제자리에 돌아서서 속으로 “참는게 아재비다”하고 백번을 외워보는게 아마도 효과가 좋은 방법일것이다. 화가 날 때에는, 특히 누군가 화를 돋굴 때에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는것이 좋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한쪽에서 잠잠하면 상대방도 혼자서 화를 내다가 제풀에 지쳐서 물러갈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참으면 당시에는 손해를 보는것 같지만 나중에는 “그때 참기를 참 잘 했지”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될것이다. 묻지마 살인이나 계획적인 살인을 제외한 살인은 대부분 일시적충동으로 인기된 분노범죄이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속담이 있댜. 또 “참는게 아재비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추워도 조금만 참자, 아파도 조금만 참자,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따스한 봄이 올것이다.     
78    가볍게 창녀를 말한다 댓글:  조회:12095  추천:8  2015-12-08
가볍게 창녀를 말한다   김희수     돈을 받고 남자에게 몸을 파는 녀자를 창녀, 창부, 분홍녀, 매춘부, 매음부, 매음녀, 창기, 성매매녀성, 갈보라고 부른다. 갈보는 창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외에 콜걸도 있는데 콜걸은 매춘장소에서 손님을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전화호출에 응하여 매춘을 하는 녀성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남창은 남색을 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남자이다. 한국에서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통틀어 성근로자라고도 부른다. 창녀촌, 집창촌, 사창가는 창녀가 생활하는 시설이 모인 거리를 뜻한다. 붉은 등이 늘어선 거리라는 뜻으로 홍등가, 유곽이라고 하고 매음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매음굴이라고도 한다.   기생, 기녀는 조선의 사전에서 “① 낡은 사회에서 노래와 춤을 파는것을 업으로 하는 비천한 계층의 녀자. ② 노래와 춤, 몸과 웃음을 파는것을 업으로 하는 젊은 녀자를 통털어 이르는 말.”이라고 했고 한국의 사전에서 “①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로 흥을 돋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 ② 전통사회에서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춤 및 풍류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라고 했다. 그러니까 기생이나 기녀는 조선사전의 두번째 의미대로라면 창녀라는 뜻도 포함된다. 하지만 한국사전의 뜻대로라면 노래와 춤만 팔지 몸을 파는 녀자는 아니다.   중국이나 조선족사회에서는 기생이나 기녀(妓女)를 창녀의 뜻으로 사용하고있다. 중국에서는 기녀(妓女)를 “구중국에서 전문훈련을 받아 직업봉사능력을 갖추고 성매매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청루녀자(青楼女子)로 업내의 직위는 ‘창(娼)’보다 높다. 즉 화대수입이 비교적 높고 사회지위가 비교적 높은 상대에게 몸을 판다.”고 정의했다.     중국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후 법률적으로 성매매를 금지했기에 기녀는 비법이였다. 1949년에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지 얼마 안되여 인민정부에서 기생집을 강제로 페쇄하고 포주를 처벌하고 기생을 개조하는 등 조치를 통과해 창기제도를 금지했다. 1957년에 이르러 매음창기활동은 기본상 엄금되였다. 그러나 1970년대말 즉 1978년에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부터 여러가지 원인으로 매음활동이 중국에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개방도시와 연해지구에서 만연되고 확산되는 추세이다.   북경표준어로 기생의 기(妓)와 닭 계(鸡)의 발음이 동음이기에 기녀를 속칭으로 닭이라고도 불렀다. 중국에서는 창녀를 청루녀자(青楼女子), 암창(暗娼), 풍진녀자(风尘女子)라고도 불렀고 전문 황제와 제왕들을 상대로 하는 창녀를 궁기(宫妓)라고 불렀다. 오늘날에 와서 창녀를 함께 먹고 함께 마시고 잠자리까지 함께 하는 녀성이라는 뜻으로 삼동반아가씨(三陪小姐)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창녀는 줄곧 인류력사와 함께 존재해왔다. 중국고대에는 류여시(柳如是), 소소소(苏小小), 리사사(李师师), 진원원(陈圆圆), 량홍옥(梁红玉), 동소완(董小宛) 등 명기(名妓)가 있었고 우리 민족력사에는 황진이, 이매창, 소백주 등 명기와 론개, 계월향, 홍련 등 의로운 일을 한 기생이 있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긴 명기와 의로운 기생이 있었다고 해서 기생의 존재를 찬성한다는 말이 아니다. 몸을 파는 창녀는 몸을 사겠다는 남자가 있기에 존재한다. 팔겠다는 창녀와 사겠다는 오입쟁이, 누가 더 나쁠가? 피차일반이겠지만 창녀는 남자들에게나 녀자들에게나 모두 무시당하는 존재이다.   무시당하면서 돈때문에 몸을 판다. 자의든 타의든 창녀는 돈때문에 몸을 판다. 돈이 많은 녀자는 몸을 팔지 않는다. 몸을 팔 필요가 없기때문이다. 고대로마의 황후 메사리나와 같은 녀자를 제외하고… 그리고 자중자애하는 녀성도 몸을 팔지 않는다. 핍박에 의한 경우는 제외하고…   어떤 리유로 창녀가 되였건 성매매는 잘못 들어선 “직업”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창녀만 무조건 나쁘다고 단죄할수는 없는 일이다. 창녀를 사자고 하는 남성도 나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입쟁이가 창녀보다 더 나쁠수 있다.   파니까 샀지. 파는걸 샀는데 왜 나쁘나고 해? 금지품을 샀으니까 나쁘다는거야! 누가 금지품을 팔라고 했어? 너같이 사자는 놈이 있으니까 판게 아니겠어?   마약, 장기, 야생동물, 밀수품과 마찬가지로 몸은 이성에게 팔아서는 안된다. 아무리 자기의 몸에 달렸다고 해도 법으로 금지한 이상 팔아서는 안된다. 파는 사람은 팔아야 되는것만 팔고 사는 사람은 사야 되는것만 사야 한다.   세계적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도 있고 금지한 나라도 있다. 중국은 후자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성매매는 비법이며 타격대상이다.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이따금씩 지하성매매업소를 급습해 성매매를 하는 남녀들을 엄하게 처벌하고있다.     성매매가 비법이기에 처벌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매매녀성들을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것이다. 심수의 경찰이 거리에서 100명의 창녀들과 오입쟁이들을 대중앞에 공개한 적이 있고 동관경찰도 창녀를 바줄로 묶은채 길거리에서 얼굴을 공개한적이 있다.   죄패를 목에 걸고 거리로 끌고다니며 투쟁하던 문화대혁명 때의 정경이 눈앞에 떠오르며 눈살이 찌프러진다. 아무리 죄가 있다고 해도 창녀도 인권이 있는데 거리에서 마구 끌고 다니다니…창녀도 사람인데 개취급을 해서야 되겠는가?      
77    궁금한것을 밝혀라 댓글:  조회:5240  추천:7  2015-11-18
궁금한것을 밝혀라   김희수     며칠전에 흑룡강신문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북경 모 영화회사에서 시나리오작가로 활약하고있는 조선족 녀류작가를 소개한 글을 감명깊게 읽었다. 그런데 7000자 남짓한 장문의 글에 녀류작가의 나이가 밝혀지지 않은것이 유감스러웠다.   작가라고 하면 독자들이 궁금해하는것이 물론 대표작이나 주요작품, 고향, 직업같은것이겠으나 그에 못지 않게 궁금한것이 나이다. 그 정도로 성취한 작가이면 년령이 얼마쯤 될가 하는것은 누구나 다 궁금해하는것이다. 몰론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녀류작가의 나이를 추측불가능한것이 아니다.   학교선전대의 일원으로 무대우에서 대합창을 하다가  모택동초상을 든채 잠이 들었던 연고로 반동파로 몰려 투쟁을 받았다는 대목으로 추축해보면 이 녀류작가가 1966~1976년에 소학교에 다녔다는것을 알수 있다.   고중을 졸업하고 4년후에 시험제도가 회복되여 대학시험을 치렀다는 대목을 분석해보면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된것이 1977년이였으니 18~19살에 고중을 졸업했다고 할 때 그해 그녀의 나이는 22~23살이다. 그럼 현재 환갑나이가 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사이트에 올린 이 녀류작가의 사진을 보면 주름 한점 없는것이 많아야 40대로밖에 돼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뒤에 2010년이라는 글이 있으니 5년을 더한다고 해도 50대에 갓 들어섰을 정도밖에 돼보이지 않는다. 동안이여서 사진속의 얼굴이 젊어보일수 있다고 해도 실제 나이를 추측하기 쉽지 않다.   이 글에는 또 녀류작가가 월반하여 13살에 초중을 졸업(가정형편이 어려워 고중에 가지 못하고 13살에 생산대에 들어가 일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일을 하루동안 했는지 며칠동안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내용을 가늠해보면 1년은 넘겨 한것 같지 않다)했다는 대목이 있으니 대학시험을 칠 때의 나이를 두살정도 줄여서 생각할수 있다. 그럼 이 녀류작가의 나이는 57~59세라고 점쳐볼수 있다.   글에서 나이를 밝혔더라면 이렇게 글의 내용을 다시 다시 훑어보고 분석하면서 나이를 추측하는 수고는 없었을것이다. 설사 프라이버시라는게 있어 나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다고 해도 40대작가, 50대작가, 60대작가 정도로 밝힐수야 있지 않겠는가?    지금은 인터넷시대여서 다른 사이트에서 올린 인기글을 번역하거나 퍼다가 내 사이트 혹은 내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퍼다가 올리는 과정에 일반적으로 내용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포토뉴스의 경우 그러하다. 인민망 한국어판이 지난 10월 23일에 올린 “미국 전역 최고 롱다리 소녀 화제, 무려 125cm”란 뉴스를 례로 들어보자.   “미국 뉴욕 출신 20살의 Holly Burt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긴 두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플로리다 주의 한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으로 다리 길이가 무려 125.73cm에 달한다. 이는 이미 모델 Lauren Williams의 기록 124.46cm를 초월했다. 그녀는 2년 전 뉴욕으로 이사 올 때, 조각 같은 자신의 몸매 덕분에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었다.”   인민망 한국어판이 올린 포토뉴스 전문이다. 이에 관한 원문뉴스는 영문사이트에 있겠지만 번역뉴스는 중문사이트에도 있고 한국사이트에도 있다. 중문사이트나 한국사이트나 인민망에서 올린 글보다 몇배는 길다. 인민망은 몇배나 긴 글을 번역했거나 퍼오면서 골자만 줄여서 올린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줄여서 올릴 때는 독자들을 배려해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것을 놓지지 말아야 한다.   웃글에서는 시간, 장소, 인물, 년령, 요점에서 장소(미국 뉴욕), 인물(Holly Burt), 년령(20살), 요점(다리 길이가 무려 125.73cm)은 있지만 시간이 빠지고 없다. 여기서 빼놓은 시간은 “지난 19일(현지 시간)”이다. 그러니 “지난 19일의 보도에 따르면” 혹은 “지난 19일에 보도했다”라고 해야 된다. 그외 이 글에서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다. 바로  최고 롱다리 처녀의 키이다.   독자들은 125.73cm나 되는 긴 다리를 가진 이 처녀의 키는 도대체 얼마나 될가 궁급해할것이다. 중문사이트나 한국사이트에는 이 처녀의 키와 가족의 키가 다 밝혀져있다. 가족의 키까지는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이 처녀의 키만은 밝혀야 했을것이다. 196cm라고. 짧게 줄이는것은 좋지만 독자들이 정말 궁금해하는것까지 마구 줄여서는 안된다는 생각.   또 한가지는 긴 다리 처녀의 이름이다. 이 글에서는 처녀의 영문이름만 밝혔다. 우리 글로 올린 글이라면 꼭 우리 글로 된 이름을 밝혀야 한다고 본다. 즉 홀리 버트(霍莉·伯特)라고.   기사를 쓸 때 우선 대중들이 관심하는것, 알고싶어 하는것,  독자들이 궁금해하는것을 써야 하지 않을가. 글을 다 쓴 다음에도 독자들이 궁금해하는것을 빼놓은것이 없는가를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는것은 어떨가?    
76    녀자가 남자를 구타 무서워 살겠나? 댓글:  조회:7468  추천:7  2015-11-05
녀자가 남자를 구타 무서워 살겠나?   김희수     어릴 때 나는 룡정의 신안소학교에 다녔다. 바로 내가 다니던 신안소학교부근의 마을에 사는 어느 한족부부가 늘 싸움을 했는데 승자는 항상 안해였다. 그 시기에 조선족녀자들이 남편앞에서 찍소리도 못했지만 한족들은 달랐다. 한족들의 경우 남자들이 안해앞에서 찍소리도 못했다.   그 한족부부는 싸운다 하면 동네가 떠들썩하게 싸우군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싸우다가 안해가 매를 들면 남편은 무서워 밖으로 달아나군 했다. 나는 그 집의 안해가 남편을 밖에까지 쫓아오며 구타하는 장면을 서너번 목격했다. 안해는 달아나는 남편을 따라잡은후 한손으로 남편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남편의 뺨을 짝짝 소리나게 때렸다.   그 시기에 한족 남자들이 안해에게 쥐여사는 공처가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안해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조선족의 경우 조선족 녀자가 남편을 구타하는 일은 더구나 보고 죽자 해도 없었다.   그런데 개혁개방후 세상이 달라졌다. 조선족 남자들도 안해에게 쥐여사는 과거의 한족 남자들의 신세가 되고말았다. 그래서 간 큰 남자 시리즈까지 나왔다. 반찬투정하거나 안해에게 말대꾸를 해도 간 큰 남자가 되는것이다.   날이 갈수록 녀자들은 무섭게 변하고있다. 1990년대에 연변에서 잠자는 남편을 도끼로 찍어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녀자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했으면 남편을 죽였겠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그 녀자의 립장에서 리해해 보려고 해도 그 잔인한 살인까지 용납할수는 없다.   3년전에 퇴근하는데 한 20대의 녀자가 길옆에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40대의 남자가 몇초동안 그 녀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담배 피우던 녀자가 그 남자를 쏘아보면서 “보긴 뭘 봐?”하고 꽥 소리질렀다. 녀자의 고함소리에 겁에 질린 남자는 찍소리도 못하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재작년의 어느날 새벽 3시쯤에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여나 창밖을 내다보니 세 청년이 한 청년을 사정없이 구타하고있는데 한 젊은 녀성이 곁에서 구경하고있었다. 청년이 맞아서 반죽음이 되여서야 세 청년은 손을 떼고 가는데 그중 한 청년이 구경하던 젊은 녀성을 보고 “저 쯤 패주면 되니?”하고 물었고 그 녀성이 흡족하다는듯 “양, 만족이요!”하고 대답했다.   작년의 어느날 밤에 술자리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20대의 세 녀성이 한 남성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차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금년 여름의 어느날 밤에 또 한 20대의 녀성이 손으로 한 남자를 가리키며 “이 아새끼, 죽여버린다!”하고 고함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녀자가 남자를 구타하는건 일도 아니다. 이제는 녀자가 어린이의 눈알을 뽑기도 하고 자신이 갓 낳은 피덩이를 가차없이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한다. 중국에서 남편이나 동거남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는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녀자가 남자를 구타하는것쯤은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녀자가 무섭다. 녀자에게 죄를 짓지 말라. 녀자를 화나게 하지 말라. 함부로 녀자를 건드리지 말라. 섣불리 녀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라. 잠을 자다가 어느 순간에 녀자의 가위에 거시기가 잘리거나 녀자의 도끼에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   폭력은 남자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녀성의 지위가 높아진 오늘날에는 녀자도 폭력을 휘두를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한다고 해도 녀성들이 남자들과 폭력따위를 공유해서는 안된다. 남존녀비사상이 지배하던 과거에 녀자들이 아무리 수난을 당했다고 해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되며 그런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더구나 안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남자는 남자다, 녀자는 녀자답게 온순해야 한다, 이런 뜻이 아니다.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녀자도 평등을 주장하며 같이 담배를 피운다면 자신의 건강만 해칠뿐이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서 평등을 주장하며 같이 폭력을 휘두른다면 결국 감옥행, 자신만 해칠뿐이다.   그럼 녀자들보다 10배, 100배는 더 많고 악렬한 남자들의 천인공노할 폭행은 묵과해도 좋단 말인가?! 단죄하려면 남자들부터 단죄해야 할게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남자들의 폭행은 더없이 잔인하고 악렬하기에 본받지 말라는…    
75    두꺼비도 고니고기를 먹을수 있다구요? 댓글:  조회:5622  추천:8  2015-10-27
두꺼비도 고니고기를 먹을수 있다구요?   김희수     중국에는 “두꺼비가 고니(백조)고기를 먹으려 하는군(癞蛤蟆想吃天鹅肉)”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최고명작 《홍루몽》제11회의 마지막쯤에 나오는 말입니다. 가서가 왕희봉을 탐낸다는 말을 들은 평아가 분해서 이런 말을 하면서 가서가 그런 생각을 품다간 꼭 제명에 죽지 못할것이라고 욕을 합니다.   “두꺼비가 고니고기를 먹으려 하는군”이란 말은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손에 넣기 불가능한 물건을 탐내는 사람을 비웃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고 덤비라는 뜻이겠지요. 못생긴 두꺼비주제에 아름다운 고니고기를 먹으려 하는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일깨워주는 말이겠지요. 이 말은 주로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녀인을 탐낼 때 그 남자를 비웃는 말입니다.   여기서 두꺼비는 못나고 가진게 없는 남자를 말합니다. “못나다”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얼굴이 잘나거나 예쁘지 않다 또는 능력이 모자라거나 어리석다”고 해석되여있습니다. 그러니 두꺼비는 못생기거나 능력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남자겠지요. 또 가진게 없는 남자도 구꺼비에 속하겠지요.   그러니까 못생긴 남자, 능력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남자, 가진게 없는 남자는 아름다운 녀인을 탐내지 말라는 말이겠지요. 그럼 두꺼비는 정말로 고니고기를 먹을수 없을가요? 우리 주변에는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녀인을 얻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두꺼비도 고니고기를 먹을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년전에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녀인을 “집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낮은 소리로 “두꺼비도 고니고기를 먹을수 있군”라고 하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못생긴 남자”는 두꺼비가 아니였습니다. 그는 능력이 있고 가진게 있는 남자였습니다. 원래는 “두꺼비”였지만 “룡”으로 탈바꿈했던거죠.   외모는 태여날 때부터 타고납니다. 아무리 성형이 발달한 시대라고 해도 태여날 때 못나게 태여났으면 죽을 때까지 못난대로 살수밖에 없는것이 대다수 “못난이”들의 운명입니다. 하지만 “두꺼비”로 태여났다고 누구나 다 한평생 “두꺼비”로 살아가는건 아니죠. 어떤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호랑”이나 “룡”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니고기도 먹을수 있는겁니다.   반면에 태여날 때부터 잘 생긴 얼굴로 태여나거나 금수저를 물고 “룡”으로 태여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생오라비처럼 얼굴이 잘 생겼다고 해도 아름다운 녀자앞에 두꺼비로 보이는 남자들도 있습니다. 재물을 많이 가졌거나 높은 권세를 자랑하는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룡”같아 보일수도 있지만 능력이 없다면 허수아비룡, 못생긴 “두꺼비”에 불과할뿐이죠.   그러니 고니고기를 먹고싶다면 각고의 노력을 다하여 “호랑이”나 “룡”으로 탈바꿈하라. 이 말을 부탁드리고싶습니다.    
74    열심히 사는것 댓글:  조회:5486  추천:10  2015-10-15
열심히 사는것   김희수   얼마전에 나와 동료들이 신문원고를 편집하고있는데 사무실문이 열리더니 20대의 한족녀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 굽신거리며 입을 여는데 들어보니 물건을 팔러온 세일즈맨(외판원)이였다.   그녀는 곧바로 내 앞에 다가와 웃는 얼굴로 가지고 온 물건을 내놓으며 선전했다. 그녀는 내 마우스받침판의 때를 잠간사이에 쉽고 효과적으로 제거할수 있다면서 시험해보려고 했다. 나는 시끄럽고 성가신 장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손짓으로 강하게 거부했다. 내가 응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제품의 좋은 점에 대해 얼음에 박밀듯 줄줄 내리외우는데 그야말로 청산류수였다. 눈여겨 보지도 않고 귀담아 듣지도 않았지만 얼룩, 찌든때를 제거하는 제품인것 같았다.   내가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으니 그녀는 다른 동료한테 가서 또 환하게 웃으며 처음부터 다시 제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그 동료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서 큰소리로 화를 내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녀는 무시를 당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녀가 나간 다음에야 나는 열심히 살려고 하는 그녀를 무시한것이 마음에 걸리고 후회되였다. 물론 사무실로 찾아다니며 물건을 파는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지만 일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태도, 열심히 살려는 마음가짐만은 보귀한것이라고 생각된다.   몇년전부터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는 나는 출근길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도로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 힘차게 사구려를 부르는 장사군들, 초조하게 할일을 기다리는 인력시장 일용로무자들, 손님을 싣고 달리는 운전기사들 그리고 출근족들…이들은 모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그들속에 태만을 부리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례외이다. 머리를 쓰든 손발을 쓰든 법을 어기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부지런히 일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다. 아무리 힘들고 고된 일이라고 해도 열심히 하는것, 그것이 바로 열심히 사는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들을 위해 대도시나 외국에 나가 열심히 일하거나 고향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이들은 남에게 의거하지 않고 자신의 두손으로 행복을 창조한다.   내가 알고있는 사람들중에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문학에 빠져 열심히 글을 쓰고있는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다 한참은 후배이다. 한사람은 10여년전에 나의 동료였던 녀류작가이다. 그녀는 문학에 그렇게 열정적이면서도 짬을 타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문학창작도 부지런히 하고 문학활동에도 빠지지 않는다. 남편이 외국에 가있으면서 잠시 혼자 살고있으면서도 끼니마다 꼭꼭 영양을 따져가며 자신의 몸을 잘 챙기기도 했다. 그녀는 예쁘게 생기지 않았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이 그녀의 용모를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다른 한사람은 알고있은지 20년도 넘어되는 후배이다. 문학이 점점 외면당하고있는 시대지만 10여년동안 열심히 글만 써온 후배이다. 문학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창작활동을 견지하여 지금은 우리 문단에서 중견작가로 활약하고있다. 20년전에는 나의 뒤에 있었지만 지금은 나보다 휠씬 앞에 서있다. 그와는 사이가 좋은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문학을 하는 그 정신에는 탄복하면서 박수를 보내고싶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해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그들의 얼굴에 땀이 흘러도 그들의 옷에 기름때가 묻어도 그들의 몸에서 냄새가 나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열심히 사는것은 순결하고 아름다운 행위이기때문이다.   이쁘지 않아도 이뻐 보이고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도 탄복시키는것이 열심히 사는것이 아닐가?    
73    개고기 먹지 말라니 소가 음매… 댓글:  조회:6655  추천:11  2015-10-03
개고기 먹지 말라니 소가 음매…   김희수     10월 4일은 세계동물의 날이다. 이날은 동물애호, 동물보호를 위한 기념일이다. 최초에 야생동물사냥은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였다. 그러다가 탐욕에 눈이 어두운 인간들이 야생동물을 마구 사냥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에는 동물보호의식이 높지 못했기때문에 공기총이나 고무줄새총으로 새를 쏘아죽이는것을 취미로 여겼다. 그때는 사냥총으로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인간이 조성한 생태계파괴, 환경오염은 동물의 생존에 엄중한 위험을 주고있다. 게다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사냥으로 많은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국제자연보호련맹의 “적색목록(레드리스트-红色名单)”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약 2만 1000종이 멸종의 위험에 처해있는데 그중에서 약 1만종은 멸종의 위험성이 매우 커서 시급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근 500년래 전세계적으로 785종의 동물이 이미 멸종되였고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있다.   야생동물보호는 아주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에마저 보호의 목소리를 높이는건 리해가 되지 않는다. 근년에는 복단대학연구생이 고양이를 학대한 사건, 한 녀성이 하이힐로 고양이를 밟은 사건, 고양이를 불에 태운 사건 등 고양이학대현상이 잇달아 나타남에 따라 동물을 학대하지 말데 대한 목소리도 높다.   동물학대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어릴 때 잠자리를 하나 둘 잡아서는 무지막지하게 잠자리날개를 마구 잘라버리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잠자리를 각을 떠서 죽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동물학대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고 동물학대라고 지적하는 어른들도 없었다. 잠자리가 인간들에게 하잘것없는 동물이였기 때문일가?   다 같은 동물인데 쥐를 밟아죽이면 잘 죽였다고 하고 고양이를 밟아죽이면 동물학대라고 한다. 모기나 파리를 때려죽이는건 응당한 일이고 벌레같은것은 밟아죽여도 뭐라고 나무람하는 사람이 없다. 쥐나 모기나 파리는 해로운 동물이라서 그렇다쳐도 벌레는 왜서 밟아죽여도 동물학대라고 하지 않는가?   어느 전국인대대표가 고양이고기와 개고기를 먹는것을 금지할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식품안전을 위한것이라면 리해된다. 그러나 그 리유뿐이 아니다. 고양이와 개가 인간의 반려동물이라는것이 주된 리유이다. 이는 너무 황당하다. 그럼 소, 양, 말, 닭, 오리 등은 동물이 아니란 말인가? 왜서 소고기, 양고기는 먹어도 되고 고양이고기, 개고기는 먹으면 안된단 말인가? 차라리 모든 동물의 고기를 먹는것을 금지하라고 하지? 물론 열에 아홉이 항의하겠지만…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동물학대를 반대해야 하는것은 천만지당한 일이지만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에까지 등급을 매기고 존비귀천의 차별을 두는것은 한심하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인간사회에는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이 존재하지만 동물계에는 그런 등급이 없다. 있다면 그건 인간이 정한것이다.   인간은 무엇이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물보호도 인간중심으로 돌아간다. 애완견은 보호동물이 아니지만 인간이 좋아하기때문에 특급보호동물보다 더 높은 보호를 받는다. 특급보호동물은 중점보호대상이지만 일부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구 사냥하고 마구 잡아서 암시장을 통해 교역한다.   희귀동물, 명종에 가까운 동물이기에 특별대우를 받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고양이나 개가 특별대우를 받는것은 양이 울고  소가 항의할 일이다. 쥐도 못잡는 고양이나 집도 못지키는 개따위가 인간에게 고기와 털을 공급하는 나보다 존귀하다니? 아이구, 매매… 인간들에게 안겨 재롱을 부리는 고양이나 개같은 기생충따위가 인간에게 고기와 털, 우유를 공급하는 나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다니? 나도 상류층인간들에게 아부할것을…음매…        
72    력사는 말한다 댓글:  조회:6405  추천:15  2015-08-17
력사는 말한다   김희수     항일전쟁승리 70돐기념일을 눈앞에 두고 발표된 아베담화에서 아베 신조는 중국, 조선,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인민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던 침략행위에 대해 직접적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30만명이상의 민간인들을 학살한 남경대학살참극을 승인하지 않고있다. 그들은 중국인, 조선인(한국인) 등 6000여명을 죽이며 생체실험의 만행을 저지른 일본 731세균부대의 죄행도 감추려고 한다, 그들은 중국(대륙, 대만), 조선(한국), 동남아, 네덜란드 등지의 40만명이상의 녀성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든 위안부만행도 부인하고있다.   지난 6월에 장춘에 갔을 때 위만주국황궁박물관을 참관한적이 있었다. 이 박물관은 중국에 현존하는 3대궁정유적의 하나로 장춘시 관성구 광복로 북측에 자리잡고있다. 중국력사에서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거주하던 위만주국괴뢰황궁을 재건한 이 박물관은 일본제국주의가 무력으로 중국동북을 침략하여 점령하고 파쑈식민통치를 실시한 력사의 증거물이다.   1931년 9월에 동북을 침략한 일본은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듬해 3월 9일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부추겨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웠다. 간략하여 위만황궁(伪满皇宫)이라고 불리우는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일본이 동북을 전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후방으로 삼으려고 어떻게 부의를 조종했으며 부의가 무너진 청정부를 만회하려고 어떻게 일본제국주의의 꼭두각시노릇을 했는지… 등등의 생생한 력사현장을 눈앞에서 볼수 있다.     부의는 1932년 9월 15일에 여기서 일본에 만주국을 승인받기 위해 동북지구의 주권을 팔아먹는 《일만의정서(日满议定书)》를 체결했다. 그리하여 동북지구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확대하는 군사, 물자 보급기지로 되였다. 일본제국주의는 “만주국”이라는 든든한 후방이 있게 되자 1937년 7월 7일 밤에 로구교사변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위만황궁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동북함락력사진렬관(东北沦陷史陈列馆)에 들어서면 일본제국주의가 무력으로 중국동북을 침략하고 파쑈식민지통치를 실시한 증거자료(사진, 문물, 실물)를 볼수 있다. 또한 동북인민들이 평화와 자유를 위해 피흘리며 일제와 맞써 싸운 위대한 장거를 볼수 있다. 그 속에는 양림, 조기석, 김순덕, 최철관, 안희숙, 박락권, 최희숙, 김훈, 김명주, 김정길, 김성범, 리동원, 김윤식, 강인복, 김성룡, 조영희, 박상걸, 임두식 등 수많은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도 있다.   일본은 저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동아공영권이란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피점령국의 자원과 로동력을 략탈하는것이였다. 남의 나라를 마구 짓밟고 마구 강탈하고 마구 학살하는 이것이 바로 일본침략자의 진면모였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벌리면서 승승장구하여 중국의 절반지역을 점령하였지만 침략자의 패배는 이미 시작부터 정해져있었다. 일본은 중국이란 이 기름진 땅덩어리가 욕심이 나 혈안이 되였지만 일본이란 늑대가 삼키기엔 중국은 너무 거대한 룡이였다. 비록 잠에서 깨여나지 못해 늑대에게 물려 상처투성이 되였지만 룡은 룡인것이다. 일본은 속도전을 하려고 했지만 덩치가 큰 중국을 단시일내에 삼키려는것은 망상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모택동은 지구전을 구사했고 국공이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하여 일치 항일하며 일본군과 용감하게 싸웠다. 게다가 일본은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선을 너무 광범하게 형성했기에 장기전을 하려면 후방보급이 따라가기 힘들었다. 일본의 패배는 시간문제였다. 미국과 쏘련의 개입은 일본의 패배를 앞당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 민족의 수많은 항일투사들도 일제와 피흘려 싸우면서 일제의 패망과 항일전쟁승리를 이끄는데 일조했다.   일본은 침략전쟁에서 패배한지 70년이 되였지만 력사를 외곡하면서 과거의 침략력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고있다. 이는 일본군국주의의 뿌리깊은 침략근성이 아베 신조를 비롯한 극우세력의 내면에 깔려있다는것을 말해준다. 일본은 헌법 제9조(평화헌법)개정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근거로 자국이 공격받지 않더라도 지구촌 곳곳에 자위대를 보내 전쟁을 할수 있는 보통국가로 변신하려고 한다.   하지만 력사는 일제침략만행을 고스란히 기록하고있기에 과거의 력사가 반복되는것을 원하지 않는 우리들은 일본군국주의부활을 눈뜨고 보고만 있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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