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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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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식”은 자멸을 부른다 댓글:  조회:6554  추천:11  2014-01-09
“유식”은 자멸을 부른다   김희수     예전에 우리 조선족사회에는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자고 주장하는 “유식”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어가 조선어보다 월등하다는 인식이 머리에 꽉 차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한문을 잘 안다는 자신의 “유식”을 뽐내기 위해 한자를 섞어서 쓰자고 주장했던것 같아 보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런 주장을 한 리유가 뭔지 다르게는 리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면 뜻이 잘 알린다는 리유를 들고 나왔지만 여태껏 우리가 한자를 섞어 쓰지 않아도 우리 글로 무슨 뜻이든지 다 잘 표현하고 전달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억지주장은 리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자를 혼용하면 장래가 희망차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이들의 주장대로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면 “汉字를 混用하면 前途가 光明하다”로 된다. 이렇게 장기간 쓰다 쓰다 보면 결국 우리 글은 토밖에 남지 않게 된다. 물론 뜻이 어려운 단어만 먼저 한자로 쓰자고 주장했지만 만약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쓰게 되는 경우 날이 갈수록 한자를 더 많이 쓰려고 할것은 뻔하다. 이들은 대중들이 다 뜻을 아는 단어도 “유식”을 자랑하기 위해 한문으로 쓰려고 할것이다. 즉 “女子의 武器는 眼泪이다”라고 쓰려고 할것이다. 정말로 독자들이 뜻을 리해하기 어려울가봐 념려된다면 괄호안에 한자를 더 넣어주면 될게 아닌가?   이들에게는 “녀자”도 “女子”로 쓰면 유식해보인다. 결국 “유식”이 우리 글의 자멸을 부른다는걸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우리 글에 한자를 섞어 쓸 경우 한자로 대신했던 “사용, 장래(전도), 희망(광명)과 같은 단어는 점차 기억속에 잊어져 버릴것이다. 나중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글에서 남는것은 토밖에 없게 될것이다.   그때에 가서는 “우리 글은 토만 배우면 된다. 토같은건 유치원에서도 다 배울수 있다. 소학교부터 우리 글을 배울 필요없으니까 우리 아이들을 모두 한족학교에 보내자”고 하는 비극이 초래될것이다. 한자를 섞어서 써야 할 정도로 우리 글이 렬등하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우리 글을 버리고 한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하지?   한문을 잘 알고 유식하다면 한문으로 글을 쓰면 될것을 왜서 하필 우리 글을 잡글로 만들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글을 쓰는것이 수치스럽고 한문을 쓰는것이 월등하다고 생각되면 한문으로 글을 써서 발표하면 될것이 아닌가? 애매하게 우리 글을 애용하는 대중들에게 혼란을 조성할게 뭔가? 아마도 이들은 한족사회에 들어가 한문으로 글을 쓰라면 한족들의 발뒤축에도 가지 못하니까 조선족사회에 비집고 들어와서 유식한척 하는것일게다.   지금에 와서 우리 글에 한문을 섞어서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잠잠해졌다. 이젠 한어도 한물가고 영어시대가 도래해서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한어도 한물갔다고 하는것은 현재 한족들중에서 한어에 영문을 섞어서 쓰는 현상이 많고 또 한영문을 혼용해 쓰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은 현실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다.     지금에 와서 한어지상주의자들이 잠잠해지니 이번에는 외국어지상주의자들이 나타나서 신성한 우리 글에 외래어를 마구 섞어 쓰고있다. 우리 글이 외래어투성이가 될 정도로 렬등하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우리 글을 사용하지 않으면 될것이 아닌가? 외국어가 월등하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외국어를 사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왜 “렬등”한 우리 글에 참여해 신성한 우리 글을 어지럽히는지?   외래어를 배척하자는 말이 아니다. 외래어사용은 피면할수 없는 일이다. 이미 장기간 사용했던 외래어, 대체어가 없거나 새로 생겨난 정보통신용어, 전문용어, 기술용어 등은 잠시 외래어로 써야할것이다. 하지만 외래어를 마구 람용해서는 안된다. 우리 언어에 있는 말도 굳이 외래어로 쓰려고 하는건 외래어람용이다. 유식을 드러내려고 의식적으로 외래어만 골라 쓰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외래어를 많이 써야 유식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유식을 뽐내기 위해서는 가급적으로 외래어를 많이 쓰려고 한다. 우리 글을 모두 외래어로 만들지 못하는것을 한스러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이런 “유식”한 사람들의 주장대로 우리 언어에 있는 단어까지 외래어로 만들어 쓰면 외래어가 점점 늘어나 우리가 쓰는 글이 외래어투성이가 되고 외래어가 고유어를 대체하는 국면이 나타나 궁극적으로 외래어로 대체되였던 우리 말이 사라지는 사태를 초래하게 될것이다. 민족의 얼과 문화가 담겨있는 고유어가 사라지고 나면 장차 후대들은 우리가 지금 써놓은 책들을 리해할수 없어 묵은 국어사전을 뒤져보는 비극이 초래될것이다.   과도한 외래어사용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선택하는것과 같다. 외국어는 외국어울타리에서 써야지 우리 글에 도입해 외래어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의 무덤을 파는 일이다. 유식한척 외래어를 람용하지 말자. 필경 대중들속에는 외래어의 뜻을 다 아는 “유식”한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 외래어도 자꾸 사용하느라면 점차 그 뜻을 알게 된다고 반박하지 말자. 그런 반박은 외래어를 쓰지 말자는 주장에는 통하지만 외래어를 람용하지 말자는 주장에는 통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우리 글이 망하게 되는 자멸로 치닫는 행위는 이제 그만둠이 좋지 않을가?   우리 민족의 문자가 왜 위대하고 우수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나 다 표현, 전달할수 있고 어떤 명칭이든 만들어 쓸수 있기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赖肖尔)와 페어뱅크(费正清) 교수는 그들의 교재에서 “한글은 아마도 오늘날 사용되고있는 모든 문자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체계일것이다”고 극찬하였다. 라이샤워와 페어뱅크는 중국에서도 잘 알려진 외교가, 중국통이다.   우리 글은 또 유네스코에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였을뿐만아니라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유네스코는 세종대왕문맹퇴치상을 주고있다. 이 상의 명칭에 세종대왕의 이름을 단것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 문맹자를 없애기에 좋은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했기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도리를 알면 예쁜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외래어사용을 자제하고 외래어를 리해하기 쉬운 우리 말로 바꿔 써야 한다. 우리 언어에 있는 단어는 우리 말로 쓰고 우리 말에 없는 단어라도 가급적 우리 말로 만들어써야 한다. 리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두고 굳이 외래어를 쓸 필요가 있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한자를 쓰지 않고 외래어를 적게 쓰지만 우리 글로 무슨 뜻이든지 다 표달이 가능하지 않는가? 대한민국내에서도 외래어람용을 우려하면서 어려운 외래어를 쉬운 우리 말로 순화해서 쓰자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조선족사회에서도 우리 언어를 천대, 만대에 길이 전해내려가기 위해 외래어람용을 자제하면서 우리 말로 대체할수 있는 외래어는 가급적 쓰지 않는것이 좋지 않을가?   《회남자 원도훈(淮南子·原道训)》에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善游者溺 善骑者堕)”는 말이 있다. 외래어를 잘 안다고 외래어를 과도하게 우리 글에 도입하겠다고 설치다가 궁극적으로 우리 글을 망쳐놓게 될것이다.   현재는 정보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지고 영어가 대세인것은 맞다. 그 충격으로 영어를 외래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어나고있지만 영어는 영어울타리에서 써야 하고 우리 글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될것이다.    
10    산타할아버지께 소원 빌어볼가? 댓글:  조회:14226  추천:7  2013-12-23
산타할아버지께 소원 빌어볼가?   김희수       우리에게는 아주 멀고도 낯선 존재였던 산타할아버지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절한 이름으로 다가왔던가?   19세기중엽에 중국, 일본, 한국 등은 모두 서방에서 불어온 성탄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새 중국이 성립되면서부터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예수그리스도가 개혁개방후에 다시 찾아왔다. 21세기초부터 성탄절은 중국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려 음력설 못지 않은 명절로 자리잡았다. 명절이라면 만들어서라도 쇠고야 마는 우리 조선족사회가 성탄절에서도 뒤질리 없다. 며칠전부터 성탄파티를 열 준비에 서두르며 약속전화부터 해놓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술자리보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에 관심이 더 많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산타클로스할아버지(Santa Claus-圣诞老人)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산타할아버지가 전설의 상상 인물인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특히 어린이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소원을 빌면서 성탄절 전날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린다. 흰수염을 달고 빨간옷을 입고 빨간신을 신은 산타할아버지가 사슴이 이끄는 썰매에 선물을 가득 싣고 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기다리는 동심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매단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산타할아버지…산타할아버지가 정말로 있다고 믿거나 정말이 아니더라도 산타할아비지의 옷차림을 한 누군가 선물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그 동심은 어린이들뿐만아니라 어른들도 가지고있다.   산타할아버지는 어린이들뿐만아니라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어른들에게도 선물을 가져다준다는데 어른인 나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소원 좀 빌어볼가? 동심도 잃어버린지 오래되고 착하지도 않은 나같은 어른에게 산타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극정성으로 빌면 혹시라도 소원을 들어줄지 누가 아는가? 어디 한번 소원을 적어서 산타할아버지가 계신다는 북극에 보내보자.   산타할아버지,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혹시 주소를 몰라서 오시지 못할가봐 상세한 주소를 알려드리려고 해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세상에서 세번째로 땅덩어리가 큰 중국에서 사는데요, 중국에서도 동북, 동북에서도 백의민족의 나라 반도에 접해있는 진달래의 고향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주로 집중해 살고있지요. 우리를 중국조선족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외에 또 동북 3성, 북경, 상해, 청도, 심수 등지에도 살고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에도 나가서 조선족의 기적을 만들어가고있어요.   동방례의지국에서 살아온 조상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는 례절바르고 교양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면서 찬란한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랍니다. 자랑거리를 말하라면 천하루 밤낮을 가지고도 모자라겠지만 한마디로 우리는 어린이들도 착하지만 어른들도 착하답니다. 착하니까 우리에게 선물 주시겠죠? 그럼 이번 크리스마스에 이루고싶은 소원 빌어볼게요.     새 해가 닥쳐오니 새 희망이 부풀어 오르는데 크리스마스선물로 꼭 받고싶은 선물이 너무 많군요. 무엇부터 말해볼가요?   먼저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저소득가정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옷 한벌씩 선물해주시고 양로원에 계시거나 의지할 곳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편안하게 안주하고 근심걱정 없이 살수 있도록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주세요.   혼자서 외로워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동생을 선물로 주시고 페교되여 한족학교에 갈수밖에 없게 된 애들에게 조선족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조선족마을이 하나 둘씩 없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고 장가못간 로총각들에게 착하고 예쁜 색시 선물로 주세요. 이 중국땅에서 조선민족의 얼을 지키면서 열심히 살아가고있는 200만(사실 200만이 안되여 가슴이 아프지만)동포들에게 새해에 모두 좋은 일이 생기도록 해주시고 또 외국에 나간 아빠랑 엄마랑 오래도록 헤여져 리별의 아픔을 겪고있는 아이들에게 하루 빨리 아빠랑 엄마랑 만날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주시고 그런 손자의 손을 잡고 눈길을 헤치며 학교에 가는 할머니께 춥지 않도록 따뜻한 목도리를 선물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 힘들게 일하는 재한, 재미, 재일 등 조선족들에게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주시고 그들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가족과 만날수 있도록 해주시고 병마에 시달리고있는 모든 이들이 병이 씻은듯이 낫도록 해주세요.   시골에서 다시 진달래꽃 활짝 피고 논밭에서 아리랑, 노들강변, 도라지타령에 풍년가를 부르는 젊은이들의 노래소리 넘치게 해주시고 닭음소리, 개짖는 소리, 떡치는 떡메소리 들리고 아기 울음소리, 긁읽는 소리, 할배, 할매들이 스마트폰으로 손자, 손녀들과 글 올리기를 하며 웃는 웃음소리가 마을마다 울려퍼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또 뭐가 있을가요? 음, 그리고 우리 중국조선족인구가 줄어드는 일이 없고 가족이 리별하는 일이 없이 단란히 모여서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그런 여건을 만들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너무 욕심부리는거 아닐가요? ㅎㅎㅎ 그래도 제 소원이니깐요. 이루어 지도록 빌어요. 소원이 너무 과해도 안된다던데 그러면 이런 선물을 얻을 행운의 축복이라도 한마디 해주소서!      
9    한족사위 이제는 그만! 댓글:  조회:9393  추천:20  2013-12-17
한족사위 이제는 그만!   김희수     내 송아지친구 승관의 막내누나는 비단결 같은 마음씨와 꽃처럼 예쁜 얼굴을 가진 처녀여서 따르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런 누나가 한족한테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조선족남자를 마다하고 왜 하필 한족남자한테 시집을 갔을가? 리유를 들어보니 섭섭했다.   밥 할줄 몰라서 조선족남자한테 시집을 가면 시댁의 구박을 받는다는것이다. 한족남자들은 대부분이 료리를 잘하고 집안일을 도맡아할뿐만아니라 부부간에 안해의 지위가 더 높아 남편에게 떠받들리며 살수 있다고 했다.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조선족남자들도 집안일을 잘하고 안해를 떠받들기에 이런 리유로 한족남자한테 시집을 가는 경우는 드물다. 리유야 어떻든 한족사위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박선배 딸 결혼식에 갔을 때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한족사위였던것이다. 결혼식을 한후 곧바로 아이의 첫돌생일잔치까지 차렸는데 한족이 된 그 아이를 보며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새롭다. 윤선배 딸 결혼식에 갔을 때도 그랬다. 윤선배의 사위는 한족사위가 아니였지만 스웨리예(스웨덴)사위였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딸들이 하나 둘씩 타민족이나 외국인한테 시집을 가는것을 볼 때마다 꼭 그래야만 하나 하는 생각에 어쩐지 슬퍼진다.  물론 그 심정은 안다. 한족사위가 달갑지는 않았겠지만 딸이 좋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니 속수무책이였겠지. 하지만 더는 방관하거나 속수무책이여서는 안된다. 혼인은 자유이고 두 사람만 서로 행복하면 된다고 하지만 조선족녀성들은 타민족 남성을 선택할 때에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다시 다시 생각해보면서 조선족남성들에게 눈길을 돌렸으면 좋겠다.   10여년래 조선족 청년들이 청도, 북경, 상해, 심수 등지로 많이 진출하면서 한족과 결혼하는 현상이 늘어나고있다. 이렇게 한족사위를 맞으면서 그 후대가 한족으로 되여버리는 현상은 조선족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를 가속화하는 작용을 하고있다.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가운데서 우수한 민족으로 자랑을 떨치고있지만 타민족과 인구를 비교해보면 보잘것 없다. 2000년 제5차 전국인구조사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에서 조선족보다 인구가 더 많은 민족은 12개나 된다. 우리 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소수민족은 쫭족(壮族)으로 1617만 8800명이고 그 다음순으로는 만족(满族) 1068만 2300명, 회족(回族) 981만 6800명, 묘족(苗族) 894만 100명, 위글족(维吾尔族) 839만 9400명, 토가족(土家族) 802만 8100명, 이족(彝族) 776만 2300명, 몽골족(蒙古族) 581만 3900명, 장족(藏族) 541만 6000명, 부이족(布依族) 297만 1500명, 동족(侗族) 296만 300명, 요족 (瑶族) 263만 7400명이다. 조선족은 192만 3800명으로 집계되였다.   상술한 통계를 보면 조선족인구는 타민족들에 비해 현저한 차이가 난다는것을 알수 있다. 게다가 점점 줄어들고있는 추세이다. 조선족인구감소추세가 지속되면서 연변이 조선족자치주지위를 잃게 되는 위기에 처해있다. 아무리 우수한 민족이라고 해도 인구가 줄어들면 동화되기 마련이다. 한족사위를 삼는것은 우리 민족의 동화를 재촉하는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한족한테 시집을 간 한 녀성은 조선족남자들은 술마시고 노는것을 너무 좋아하기에 믿음성이 없어 집안일을 잘해주고 안해를 떠받들어주는 한족남편을 만났다는것이다. 이것이 한족신랑을 찾는 녀성들의 공동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편면적인 생각이란것만은 틀림이 없다. 현재 가정을 이루고 사는 대부분 조선족 남자들이 집안일도 잘해주고 안해에 대한 사랑도 극진하다.   물론 술마시고 노는것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없는것은 아니다. 이런 남자들은 상기 녀성의 말에서 충격을 받고 나쁜 습관을 고쳐서 한족남자한테 시집을 가려는 녀자를 꼭 잡아두어야 한다. 조선족남성들의 자질제고가 시급하다. 조선족남성들이 타님족남성보다 더 우수한 남성으로 거듭나야 조선족녀성들이 한족들에게 시집을 가는 현상을 막을수 있다.   또한 부모들부터 조선족인구의 급감세에 정신을 차리고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강한 민족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자기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타민족과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을것이다.   한족며느리도 문제다. 한족며느리가 아무리 정성껏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한족엄마의 손에서 자란 아이가 진정한 조선족으로 성장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한족사위는 이제 그만! 적어도 지금은 안된다!”고 고집을 피워본다. 조선족인구가 적어도 몽골족이나 장족만큼 되여야 타민족과의 결혼을 생각해볼수 있는 여유가 생길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안된다는것이다.   사랑은 국계도 없다는데 타민족과의 결혼은 왜 안되느냐고 시대에 뒤떨어진 협애한 민족주의라고 욕해도 좋다.   무엇이나 특수라는것이 있다. 지금 그 특수한 시기이다. 이런 특수한 시기에는 특수한 고집이 필요하다. 옹고집이라고 해도 좋고 똥고집이라고 해도 좋다. 이 시대의 모든 조선족아빠들이 남자친구를 찾는 딸들에게 “한족은 절대 안된다! 죽어도 안된다!”고 옹고집, 똥고집을 좀 부리라면 렴치없는 부탁일가?.        
8    조선족다운 조선족되기 댓글:  조회:8376  추천:16  2013-12-11
조선족다운 조선족되기   김희수     내가 어릴적에 우리 마을에는 한족학교에 다니는 오씨네 형제가 살고있었다. 형은 오성관이라고 불렀는데 나보다 한살 년상이였고 동생은 오웅관이라고 불렀는데 나보다 한살 년하였다. 그들 형제에게는 또 오영, 오웅이라는 한족이름도 있었다. 오씨형제가 한족말을 잘 해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 마을 애들은 그들을 “오개” 또는 “오줌물에 덴 눔”이라고 놀려주었다.     또 분필로 오씨네집 널바자에 마구 락서까지 해놓았다. 하지만 조선글(한글)을 몰랐던 오씨형제는 화가 나도 뭐라고 썼는지 몰라서 대들지 못했다. 나중에 퇴근하여 돌아온 아버지에게 물어서 그 뜻을 알게 되였지만 이미 날이 저물어 애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라 화풀이를 할수 없게 되였다.     그런 일은 그 뒤에도 여러번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에 우리는 오씨네집으로 놀러갔다가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되였다. 오씨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조선글을 가르쳐주고있었던것이다. 우리는 그때 중학교로 갈 나이가 된 오씨형제가 유치원생처럼 “ㄱㄴㄷㄹ, ㅏㅑㅓㅕ”하고 따라 읽는것을 보고 한바탕 웃기만 했을뿐 그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지를 모르고있었다.     지금 오씨형제는 모두 연구원사업을 하고있는데 어릴때 아버지가 조선글을 가르쳐주었기에 조선족으로 떳떳이 살수 있게 되였다면서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오씨형제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한족학교에 보냈지만 나중에 조선족이 조선글을 모르면 안된다는 도리를 알게 되여 조선어교과서를 구해다가 아들들에게 조선글을 가르쳐주었던것이다. 그리고 한족학교에 다녀도 자신이 조선족이라는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는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 조선족으로서 조선글을 모르면 진정한 조선족이라고 할수 없다. 조선족다운 조선족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민족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는 박승관이란 송아지친구가 있는데 유치원때부터 한족학교에 다녀서 조선글을 모른다. 그에게는 오씨형제의 아버지처럼 조선글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없었다. 어릴 때에는 둘도 없는 딱친구였지만 점점 자라면서 조선말보다 한족말을 더 잘하는 그가 서먹서먹할 때가 많았다. 그가 어쩐지 절반 조선족처럼 느껴졌던것이다.     지금도 내 송아지친구 승관이같은 절반 조선족이 적지 않다. 또 이런 절반 조선족을 만들려고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물론 자식의 전도를 생각해서 저울하여 한족학교가 낫다고 판단되여 그런 결정을 내리겠지만 그런 부모들은 한족학교에 보내는것이 자식이 잘되는 길이 아니라는것을 모르고있다. 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내는 리유는 여러가지이만 이미 그런 리유는 토론을 거쳐 모두 부정되였기에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 아이들을 한족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하는 리유는 충분하지만 그런 리유는 다른이들이 이미 언급했다.     어떤 조선족부모들은 조선어를 렬등언어라고 무시하면서 “영어와 한어만 잘하면 되지 그까짓 조선어를 알아서 뭘하겠소?”하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글의 우수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 글의 우수성은 한국이나 조선밖에서도 인정받고있다. 미국의 석학이자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박사는 세계의 모든 언어를 통합하기 위해 하나의 문자체계를 고르라면 한글(조선글)이 가장 적합할것 같다는 말을 했다. 우리 글 만큼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문자시스템은 이 세상에 다시 없다.     또한 우리 글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된 정보화시대에 가장 적절한 언어이다. 지금 컴퓨터를 떠나 펜으로 글을 쓰라면 못쓰는 한족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입력법으로 저절로 글자가 솟아나오는 타자에 습관되여 복잡한 획으로 이루어진 한어글의 모양을 다 잊어먹었던것이다. 하지만 우리 글은 한번 배우면 컴퓨터를 떠나도 잊어먹게 되지 않는다. 컴퓨터자판으로나 펜으로나 눈을 감고 쓸수 있는것이 우리 글이다. 우리 글의 우수성을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다 말하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우월감을 갖고 우리 민족언어를 천대만대 전해 내려가야 한다.     조선족으로서 우리 민족의 언어를 알아야 하지만 우리 민족의 언어만 안다고 조선족다운 조선족이라고 할수 없다. 조선족다운 조선족이 되려면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려는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또 우리 민족의 문화와 력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문화에 대해서는 조선족 대부분이 체계적으는 몰라도 얼마간은 알고있다. 하지만 조선족중에 우리 민족력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이 많다. 신세대가 더욱 엄중하다.       며칠전에 길을 가다가 어느 음식점앞에서 20대의 녀자 셋이 대화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되였다. 한 녀자가 “야, 어제 (한국드라마) 《수백향》에서 진짜수백향이 고구려세작이라고 붙잡혀갔는데 어떻게 될가?”하고 물어서 다른 한 녀자가 “글쎄말이다. 그런데 야, 고구려는 뭐고 고려는 뭐야?”하고 되물었다. 그런데 세번째 녀자가 하는 대답이 정말 황당했다. “야, 그것도 모르니? 고려는 고구려의 줄임말이다!”     이 정도이니 우리 민족이 우리 력사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있는가를 알수 있다. “진시황이 누구냐?”고 청소년들에게 물으면 하나같이 “전국시대의 6국을 통일하고 중국의 첫 황제로 된 인물”이라고 대답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단군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단군이 누구인지 주몽이 누구인지 모르는 우리 민족이 너무나 많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 관한 력사적인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하지 못했기때문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것일가? 우리는 중국에서 살기때문에 중국력사만 알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일부 어른들의 머리에 자리잡고있기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이며 력사학자인 신채호는 “력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은 고급중학교교과에서 전체수업비중의 20%를 력사수업에 치중하고있으며 나치스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을 향해 지속적인 사죄와 보상을 해오고있다. 이처럼 올바른 력사교육을 다음 세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고있기에 독일은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나라로 다시금 우뚝 설수 있게 된것이다.     하지만 조선족학교에서는 중국력사만 중시할뿐 우리 력사수업은 홀시하고있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이 우리 력사를 제대로 알리가 없었던것이다. 단지 우리 청소년들만 잘못했다고 탓할순 없다. 이런 현실을 만든 우리 어른들이 더 큰 반성을 해야 할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격언을 잊지 말고 우리 력사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후대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조선족다운 조선족으로 되기 위한 길이다.    
7    넬슨 만델라 그 영원한 이름 댓글:  조회:6187  추천:6  2013-12-06
넬슨 만델라 그 영원한 이름       남반구하늘에 떠 온 세상을 은은히 밝히던 큰 별이 끝내 스러졌다.   지금 국제사회가 지난 12월 5일 밤에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纳尔逊·曼德拉Nelson Mandela)의 추모열기가 뜨겁다.   습근평 중국국가주석은 만델라의 일생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별세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했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정의로운 거인의 서거에 깊은 슬픔을 표한다”고 했으며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가장 용기있고 선한 인물을 잃었다”고 했고 캐머런 영국총리는 “위대한 빛이 졌다”고 했으며 올랑드 프랑스대통령은 “저항의 메시지 영원할것”이라고 했다. 특히 서로 정치적견해가 다른 한국, 조선, 일본도  일제히 만델라의 별세에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세계가 이처럼 한 나라 지도자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며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적이 없었다.   만델라, 그는 누구인가? 그는 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위인이라고 세계인의 칭송을 받는가?   만델라는 민주적선거를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대통령으로 되였지만 취임후 자신을 27년동안 정치범으로서 옥고를 치르게 하고 흑인을 탄압했던 백인을 용서와 화합정신으로 포용해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인종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오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건설했다.   만델라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함께 잘 살아가는 새로운 나라, 여러가지 색갈로 이루어진 무지개가 아름답게 빛나듯이 아름다운 “무지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압을 받던 피지배계층이 권력을 장악한 뒤 압제자들을 대거 숙청하지 않고 평화공존을 도모한것은 세계력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실로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손색이 없다.   고금중외의 력사를 보면 반대파를 숙청하는것은 왕권(정권)강화를 위한 정당한 일처럼 되여있다. 멀리 보지 않고 청나라 300년이나 조선왕조 500년의 력사만 보아도 왕이 바뀔 때마다 반대파를 제거하는 숙청의 피바람이 불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 피바람에 사돈의 팔촌까지 련루되여 억울한 목숨을 잃기도 했다.   흑인으로서의 만델라는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마구 탄압했고 흑인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취급했던 백인들을 숙청할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평화와 미래의 광명을 위해 눈앞의 복수를 하지 않았다. 위인으로서의 그는 권력과 개인의 리익에만 눈이 어두운 자들보다 더 멀리 내다보았기때문이다. 자유를 향한 열정, 고난속에도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가 그의 정신이다.   만델라는 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쌓아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인구의 절반이 빈곤상태인 국가에서 백인이 장악하고있던 대다수의 경제권을 흑인에게 나눠주는 첫 조치로 토지개혁을 하는 등의 개혁정책과 국제원조속에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비록 백인의 기득권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던 경제의 구조적 한계속에서 토지개혁은 한계를 드러냈지만 이같은 만델라의 “경제평등”노력이 신흥경제국반열에 올라설수 있는 배경이 되였다.     한평생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넬슨 만델라, 이 거인앞에 서면 내 자신이 그처럼 작아보이고 초라할수가 없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 정적까지 끌어안은 그 넓은 도량에 비하면 친구와 동료들과도 작은 일에 얼굴을 붉힌 자신이 부끄러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온 세상이 우리 시대 최고의 위인 넬슨 만델라를 추모하는 이 시각에 전 세계가 만델라가 지향한 평화를 위해 손에 손잡고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화목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기원해본다.     
6    우리 언어 혼용시대가 가져다 준 혼란과 기회 댓글:  조회:7016  추천:7  2013-12-04
  우리 언어 혼용시대가 가져다 준 혼란과 기회    김희수       지금 중국조선족은 한국과 조선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우리 언어를 혼용해 쓰고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출판물에서는 그래도 기존의 우리 문법과 맞춤법을 지키고있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은 연변, 한국, 조선의 문법과 맞춤법을 섞어서 쓰고있다.     예전에는 중국조선족들이 쓰는 언어가 주요하게 조선에서 편찬된 사전을 따랐지만 1990년대이후 한국나들이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에서 쓰는 말과 글을 따르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되면서부터 조선과의 인터넷소통이 불편해진 반면에 한국과의 인터넷소통이 활발해진 현실에서 우리 중국조선족은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쓰는 말과 한국에서 쓰는 글을 따라하게 된것이다.   말을 례로 들면 예전에 우리가 끝말에 늘 쓰던 “-습둥”, “-습꾸마”는 점점 사라져가고 “-요”, “-다”로 끝나는 서울말씨가 늘어나고있는 추세이다. 한국나들이가 늘어나면서 한국에 장기간 거주해있다가 귀국한 사람들이 먼저 한국말을 쓰기 시작했고 한류열풍을 빌어 우리 안방을 차지한 한국드라마도 연변말을 바꾸는데 한몫 했다.     글을 놓고 말하면 기존의 우리 문법과 맞춤법을 지키는 부류도 있고 한국문법과 맞춤법을 따라하는 부류도 있으며 마구 섞어서 쓰는 부류도 있다. 그러나 한국식을 따라 하는 부류들도 한국문법과 한국맞춤법을 제대로 바르게 따라 하지 못하고있다. “연말(년말)”, “노인(로인)” 등은 한국식으로 잘 따라 쓰지만 “웃통”, “뒤골목” 등은 그냥 우리식대로 쓰고있다. 한국식대로 쓰자면 “윗통”, “뒷골목”으로 써야 하겠는데 말이다. 한국식을 따라 하는 부류의 뛰여쓰기도 80%는 한국식이고 20%는 연변식이다. 이렇게 우리 글을 혼용해 사용하는데서 혼란이 조성되고있다. 게다가 인터넷발달로 신조어가 매년 수백개씩 생겨나면서 신조어의 속출로 인터넷을 아는 신세대와 인터넷을 모르는 구세대의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한국과 조선도 언어의 이질화현상이 심화되고있다. 조선에서는 한국말과 글을 외래어투성이여서 리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있으며 한국에서는 “은을 내다”, “죽탕치다”와 같은 조선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사전이 없이는 리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언어의 이질화현상을 내버려두면 혼란이 조성되면서 정상적인 소통마저 어려워질수 있다는우려도 나오고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더 늦기전에 이질성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한국과 조선 량쪽과 모두 교류가 가능한 우리의 우세를 리용해 남북과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 우리의 공통어가 혼란해지는 현상을 바로잡기에 나서야 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인터넷시대인만큼 우리 말과 글을 혼용해 쓰는 현상을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있다. 이들의 리유는 사전상의 어법을 너무 딱딱하게 적용하면 그로 인해 자칫 다채롭게 생성되고 변화하는 언어의 생동감을 훼손할수 있다는것이다.       한국에서는 요즘 과잉교정인간이란 게시물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면서 누리군(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과잉교정인간이란 맞춤법이나 표준어 등에 지나치게 민감하여 잘못된 언어사용을 인정하지 않고 문법과 띄여쓰기 등 올바른 언어사용에 집착하는 사람을 말한다. 맞춤법을 지키는것은 당연하다는 반응과 표준어와 맞춤법을 지키는 자세는 좋으나 지나친 집착은 피곤하다는 의견도 나오고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조선족사회에도 과잉교정인간이 나타나 혼란한 언어사용현상을 바로잡아주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과잉은 뺀 교정인간쯤은 나타나야 한다고 본다.     우리 조선족사회에서 처음에 “조선족기시”라고 잘못 쓰던 표현을 지금은 “조선족무시”라고 바로잡아 쓰고있는 현상도 묵묵히 헌신하는 교정인간의 공헌이 아니겠는가?       지금 조선족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중에 “연길시의 미용”에서 처럼 “미관”이라고 써야 할것을 “미용”이라고 잘못 쓴것, “머리가 쇠뇌되다”에서 처럼 “세뇌”라고 써야 할것을 “쇠뇌”라고 잘못 쓴것 등등 그리고 주어와 술어가 맞물리지 않는 현상도 수두룩하다. 이런 현상도 교정인간이 나서서 제때에 바로잡아주어야 한다고 본다.       인터넷시대에 한국식을 따르는 우리 언어사용현상을 막을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외래어를 무조건 따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 고유어에 있는 말은 외래어를 쓰지 말고 우리 말로 쓰는것이 우리 언어를 지키고 바르게 사용하는 길이라고 본다. 외래어가 판을 치는 한국에서도 인터넷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네티즌(网民)을 순 우리 말로 “누리꾼”이라고도 쓰고있다. 이렇게 우리 말로 만들수 있는 외래어는 우리 말로 만들어 쓰는게 원칙이라고 주장하고싶다. 그리고 한국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컴퓨터로 타자할 때 맞춤법이나 띄여쓰기를 자동으로 바로잡아주는 기능이 있는 “한글2007”을 사용할것을 권고한다.     한국식이든 조선식이든 연변식이든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것이 우리 언어의 혼란한 사용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폐”, 조선에서는 “페”라고 사용하고있는데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이런 경우에는 조선식대로 “페”를 사용하는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적어도 자판을 두드려 타자를 할 때 컴퓨터키보드(电脑键盘)에서 시프트키(shift key)를 누르는 수고를 덜수 있다. 또 조선에서는 다운로드(下载)를 “내려받기”, “내리적재”라고 쓰는데 내 개인의 생각에는 이런 경우에도 조선식으로 우리 말로 쓰는게 옳다고 본다. 우리는 고혈압에 먹는 약을 “강압약”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조선식대로 “혈압내림약”이라고 쓰는게 더 우리 말다운 표현이라고 본다.     그리고 한가지, 글은 사람이 만든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없는 글을 편리하게 만들어 쓸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 글에는 “福”에 해당되는 소리가 없는데 “ㅈ”에 점 하나를 쳐서 “ㅊ”가 되는것 처럼 “ㅍ”에 점 하나를 쳐서 그에 해당되는 소리글자를 만들면 우리 글에서 소리 본딴 말도 좀 더 완벽하게 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자주 쓴다. 우리 언어사용에 위기가 나타난 지금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삼고 언어사용에서의 혼란을 바로잡아 갈 때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하나 하나 바로잡아가느라면 올바른 우리 언어사용법이 정착되고 그릇된 사용법은 점차 사라지게 될것이라는 기대감이 앞선다.  
5    회억대비밥 그리고 나라의 주인 댓글:  조회:6726  추천:6  2013-11-25
    우리는 나라의 주인이란 말을 많이 해왔다. 누가 나라의 주인인가? 우리 모두 나라의 주인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나라의 주인자격을 가지고있는가? 적어도 회억대비밥을 먹던 그 시절에는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 아니였다.   내가 소하교에 다니던 1960년대말과 1970년대초에는 매 학기마다 꼭꼭 회억대비밥(忆苦思甜饭)을 먹었던것으로 기억된다.   회억대비밥은 구사회(해방전)에서 고생스럽게 살았던 지난날을 회상하고 지금의 새 중국에서 사는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행복할수록 쓰라린 과거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먹는 음식이다. 그러니까 헐벗고 굶주리며 살았던 가난한 빈하중농들이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인것이다.   회억대비밥에 사용되는 재료는 그 지방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것으로 선택했다. 어떤 고장에서는 옥수수가루나 고무마가루를 빚어서 찐 워터우(窝头)를 먹었고 어떤 고장에서는 밀기울과 옥수수가루를 혼합하여 워터우를 만들어 먹었으며 어떤 고장에서는 남새(채소, 야채)잎, 토란꽃, 호박꽃, 무우잎이거나 산나물에 쌀겨를 넣어서 끓여 먹었다.   그런데 우리가 먹었던 회억대비밥은 조선족특색에 맞게 하느라고 그랬는지 콩비지에 시래기를 넣어서 국을 끓여 먹었던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반에서는 회억대비밥을 지을 때 우수한 학생의 학부형(학부모) 두셋을 청해서 짓게 했다. 원래는 맛이 없게 만들수록 지난날의 쓰라림을 회상하고 오늘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효과가 좋다고 선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부형들은 음식재료를 생생하고 좋은것으로 선택하고 양념도 살짝 넣어서 맛을 돋구었다.   해마다 회억대비밥을 먹기전에 먼저 빈하중농을 청해서 지난날을 회억하는 보고를 듣군 했다. 어느 한번은 보고자가 낯익은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이웃이며 이웃반에 다니는 종호의 아버지였던것이다. 종호의 아버지는 자신이 어떻게 해방전에 악패지주에게 압박받고 착취받았으며 어떻게 우마보다 못한 굶주린 생활을 했는가를 주먹을 부르쥐며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종호의 아버지가 피눈물 나는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자 반장이 먼저 구호를 부르고 우리가 따라 웨쳤다.   “계급의 쓰라림을 절대 잊지 말자!” “피맺힌 원한을 기억하자!”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나쁜 분자, 우파를 타도하자!”   회억대비밥은 맛이 없게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맛이 없는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 칭찬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한공기씩 먹었고 두공기를 먹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한 아이가 다섯공기나 먹었다. 그 아이가 누구였던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튼 그것을 본 선생이 “동무들, 이 학생의 사상각오가 얼마나 높습니까? 우리 모두 이 학생을 따라 배웁시다”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하는 말이 가관이였다. “회억대비밥이 너무 맛있어서 많이 먹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평소에 먹는 음식보다 더 낫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동생들이 많아서 그런 음식도 배불리 먹지 못합니다. 오늘 정말 생일을 쇤것 같습니다!”   그 바람에 학생들 사이에 참다못해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나더니 급기야 한바탕 와 하고 교실이 무너지는듯한 웃음보가 터졌다. 그러다가 선생이 엄숙한 표정으로 서있는것을 보고 웃을 일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는지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그런 일에 웃을수도 없고 웃어서도 안되였다. 그것은 엄중한 반동언론이였기때문이다. 구사회에서 헐벗고 굶주리던 빈하중농들이 먹던 회억대비밥이 사회주의 새 중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어린이들이 먹는 밥보다 더 맛있다니? 이게 어디 될법이나 할 소리인가? 맛이 있다고 해도 “정말 소태같이 쓴것이 죽을 맛입니다. 지난날에 빈하중농들이 이렇게 돼지뜨물보다 못한 음식을 먹었다니? 회억대비밥을 먹고나서야 나는 사회주의 새 중국에서 사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다시금 깨닫게 되였습니다. 행복할수록 이 행복을 마련해주신 공산당과 모주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인민과 대만인민들은 지금 도탄속에 허덕이고있습니다. 세계 3분의 2나 되는 인민들이 도탄속에 허덕이고있는데 우리가 해방해주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하고 말해야 한다.   실제로 회억대비밥을 먹은 감상문을 쓸 때 학생들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그렇게 썼다. 또 그렇게 써야 통과될수 있었다.   그럼 회억대비밥을 집에서 먹던 밥보다 더 맛있다고 했던 그 학생은 어떻게 되였는가? 원래 이런 일은 반동분자라는 모자를 쓰고 비판을 받아야 했지만 학생이라고 그랬는지 선생이 눈감아주면서 학생들에게 그 일에 대해 함구하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정말로 잘 한 일이였다.   옥수수궈테(玉米锅贴)마저 배불리 먹지 못했던 그 시기에 “우리 나라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를 불러야 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량표(粮票)가 모자라 누런 옥수수떡을 먹고 부표(布票)가 부족하여 더덕더덕 기운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헐벗고 굶주린 대만이나 남조선(한국)어린이들을 걱정하던 우리가 얼마나 한심했던가?   나라가 대문을 닫아매고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려서는 안된다. 지금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얼마나 좋은가? 백성들에게도 알 권리가 있다. 인민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했지만 나라의 주인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아왔으니…그런 세월이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야 하다. 억울하게 모자를 쓰고 조리돌림을 당하고 옥살이를 한 사람들도 통탄할 일이지만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아왔으니 그 세월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했지만 그 세월에는 나라의 주인이 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라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백성인가? 간부인가? 《중화인민공화국헌법》에는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명문으로 밝혀놓았다.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제1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로동계급이 령도하고 로농련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전정(专政)의 사회주의국가이다”고 명시했다. 인민민주전정의 함의는 국가는 인민에게 속하고 인민에 대해 민주를 실시하고 적에 대해 전정을 실시하며 인민의 리익을 수호하는것이다. 인민민주전정의 본질은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나라의 주인은 인민이다. 그럼 인민이란 무엇인가:? 인민은 백성, 평민 즉 주요하게 로동대중을 주체로 하는 사회기본성원이다. 인민은 공민(국민)과 다른 개념이다. 인민은 사회발전에 추진작용을 하는 대다수인을 가르키고 공민은 한 나라에 소유되여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며 진보작용을 일으켰는가, 일으키지 않았는가의 여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인민은 집체개념으로서 대다수인의 집합체이기때문에 어떠한 개인도 인민이라고 칭할수 없다. 하지만 공민은 매 한 사람의 개인이 공민이라고 칭할수 있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이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마땅히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중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인민은 정체를 대표하고 공민은 개체이기때문에 공민의식이 박약하면 인민의 명의로 공민의 개인권리를 박탈하는 작법이 개체는 정체에 복종하라는 가치관념하에 보편적으로 합리화될수 있다. 실례로 어느 한 간부가 “인민군중의 일은 모두 큰일이다”고 공개연설을 했다. 그래서 한 백성이 그 간부를 찾아가서 “당신이 인민군중의 일은 모두 큰일이라고 했는데 해결해달라”고 문제를 반영했다. 그런데 그를 접대한 간부는 “당신이 어떻게 인민군중을 대표할수 있습니까?”하고 대답했다. 그 말인즉 “군중의 일은 모두 큰일이지만 당신은 군중이 아니고 개인이기때문에 당신의 일은 작은일이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을 피면하고 나라의 주인된 권리를 당당하게 향수하려면, 회억대비밥이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려면, 미국, 대만, 남조선(한국)이 우리보다 더 나은 생활을 했다는것을 모르고 살았던것과 같은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우리의 합법적 권익을 수호하려면, 중국조선족이 소수민족정책의 헤택을 떳떳이 향수하려면, 우리 조선족사회가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마땅히, 꼭, 반드시   우리 중국조선족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서, 연변축구팀을 응원하듯 하나로 뭉쳐서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당당한 나라의 주인(인민)이 되여 함께 고민하고 함께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고 함께 해당부문에 문제를 반영하여 해결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4    녀성흡연 홀시할수 없는 문제 댓글:  조회:9764  추천:5  2013-11-20
녀성흡연 홀시할수 없는 문제   김희수     녀자도 담배를 피워야 한다고 두손 들고 찬성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녀자를 보고 잘 한다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도 없을것이다. 하지만 녀성들로만 조직된 어느 만찬모임에서 술이 몇순배 돌아가고 녀성흡연에 대한 화제가 오가던 중에 한 녀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녀자도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데 동의하는 사람 손드세요!”   하고 자기부터 손을 드니까 그 자리에 있던 녀성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 자리에는 흡연녀성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모두 녀성흡연을 찬성한 일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남자들이 피우는데 우리라고 피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하는 오기였을가? 이제 절반 하늘이라고 하는 녀성들도 남녀평등을 운운하며 흡연권리까지 들고 나섰다. “남존녀비”는 할배, 할매들이 이미 무덤속에 가지고 가버려서 녀성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있는 요즘 세월이고 보면 당당하다고 주장하는 녀성들의 흡연권리를 누가 감히 막을수 있겠는가? 간이 커도 어지간히 큰 남자가 아니고서야…   녀성들은 말한다. 남자가 할수 있는 일은 우리 녀성들도 할수 있다. 남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도 우리는 할수 있다. 아이 낳는 일…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녀자는 남자를 지배한다구? 그건 옛날 얘기다. 지금의 녀자는 세계도 지배하고 남자도 지배한다. 보라, 핀란드, 아일랜드, 라트비아, 칠레, 라이베리아, 필리핀, 아르헨띠나, 브라질, 한국…모두 녀성대통령이 나왔다. 그리고 잠자리에서도 녀성상위가 대세다. 남자들이 축구하면 녀자들도 축구하고 남자들이 술을 마시면 녀자들도 술을 마시고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면 녀자들도 담배를 피운다.   그래서인지 지금 세계적으로 녀성흡연인구가 늘어가고있다. 통계에 따르면 유럽에서 남성의 흡연률은 하강추세에 있지만 젊은 녀성의 흡연률은 상승추세에 있다. 독일에서 15~30살 녀성중 절반이 흡연자이다. 영국, 벨지끄(벨기에), 체스꼬, 슬로벤스꼬,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10대녀성의 흡연인구가 상승추세에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연초생산국과 최대 연초소비국이다. 《중국흡연위해건강보고》에 따르면 중국에서 매년 흡연으로 인해 사망된 인구가 100만명을 초과한다. 현제 중국녀성의 흡연률은 2.4%, 흡연녀성인구는 3000만명에 달한다.   《중국흡연과 건강보고》에 따르면 중국에서 현재 남성흡연률은 66%에 달해 10년전보다 하강했지만 청소년흡연자와 녀성흡연자는 상승했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3억 5000만명의 흡연자중 녀성흡연자가 3000만명으로서 매년 10%의 속도로 증가하고있다.   천진시의 통계에 따르면 이 시의 녀성흡연률은 12%에 달해 전국최고기록에 올랐고 이는 북경, 상해의 3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연변의 녀성흡연률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요즘 길에 나서면 젊은 녀성들이 담배를 피우는걸 심심찮게 볼수 있다. 어제도 내가 길을 가다가 어떤 음식점앞에서 20대의 녀성이 담배를 꼬나물고 쪽쪽 빨다가 담배연기를 훅 하고 뿜어내는것을 보았다. 나보다 더 가까이에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좀 멀리 지나가자 흡연녀성이 뒤늦게 음식점에서 나온 자기의 친구를 보고 하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씨, 재수가 없어. 저 사람은 내가 담배를 피우니까 술집아가씨나 되는가 해서 색깔눈을 해가지고 보는것 같아! 난 담배피우는 녀자를 저런 눈길로 여겨보는 남자들을 제일 증오해!”   사실 담배 피우는 녀자를 갈보보듯 하는 남자를이 더러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런 눈길이 아니더라도 담패 피우는 녀자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나는 그런 시선으로 흡연녀성을 바라보는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전에 술을 마시는 녀성을 그런 눈길로 바라본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녀성들도 남자들과 한상에서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동등하게 마시지 않는가? 담배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더는 남성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담배 피우는 녀성들을 따가운 눈길로 보지 말아야 한다.   나도 길에서 젊은 녀성들이 담배를 피우는것을 보면 다시 한번 뒤돌아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녀들을 색다른 눈길로 보는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담배 피우는 그녀들을 향해   “불확실한 시대에서 살며 생긴 스트레스를 담배로 달래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현대녀성들은 담배를 피워야 하는게 시대적 요청입니다. 녀자축구도 없던데로부터 보편화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머지 않아 담배가 녀성의 필수품이 될것입니다!”   하고 응원하며 녀성흡연을 두손들어 지지하는것도 아니다.   내가 담배 피우는 녀성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건 젊디 젊고 장래가 창창한 그녀들의 건강이 념려돼서이다. 이는 공연한 로파심이 아니다.   흡연의 위해성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녀성이 흡연으로 받는 피해가 남성보다 더더욱 크다는 사실은 알고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녀성의 신체구조는 남성과 다르기에 녀성은 담배에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담배에는 수많은 유해물질이 포함되여있는데 그중에 타르와 니꼬찐(니코틴)은 페와 피부의 로화를 촉진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출산전의 흡연은 개인의 건강뿐만아니라 태여날 아이의 건강에도 막대한 나쁜 영향을 끼친다. 또 담배를 피우는 녀성은 페경을 앞당기게 될 위험이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녀성의 란자들은 성숙한 뒤에 배란기 때 방출이 되는데 녀자가 다환방향족 탄화수소(多环芳烃)에 장기간 로출이 될 경우 란자가 성숙되기전에 죽으면서 조기페경이 오게 될수 있다.   또 연구결과 페경이후에도 침윤성유방암위험이 높은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자는 간접흡연에 로출되지 않은 비흡연자에 비해 침윤성유방암 발병위험이 24% 높았다. 그리고 국내의 연구에 따르면 흡연녀성은 비흡연녀성에 비해 유선암에 걸릴 위험이 40%가 더 높고 자궁경부암에 걸릴 위험이 14배나 더 높으며 란소암에 걸릴 위험이 28배나 더 높다. 매일 1~4대의 담배를 피우는 녀성은 중풍위험이 비흡연녀성보다 갑절이나 더 높다. 흡연녀성의 불육증, 불임률은10-30%이고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은 비흡연녀성보다 2~3배 더 높다.   상술한 통계수치는 정말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흡연녀성들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20~30대의 젊고 시체멋을 따르는 녀성, 고학력녀성, 고수입녀성, 시골녀성 등이 녀성흡연의 주요군체이다.   흡연녀성중에는 상처를 받은 녀성도 있고 외롭고 우울해서 피운다는 녀성들도 있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피운다는 녀성들도 있지만 처음에는 멋으로 피우다가 인이 박인 녀성들이 대부분이다. 또 “녀성은 절반 하늘”이기에 남성과 동등해야 하며 녀성흡연을 반대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도 있다. 무슨 원인으로 피우던지 이제 녀성흡연은 남녀평등차원을 넘어서 더는 간과할수 없는 엄중한 사회적문제로 대두하고있다. 현재 눈앞에는 큰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고  방치해둔다면 언젠가는 흡연녀성이 남성을 초과하게 될것이고 그때에 가면 흡연녀성의 건강, 혼인, 가정, 출산, 육아 등에 엄중한 악영향을 끼칠것이고 나아가서 가정불화, 흡연으로 인한 범죄까지 불러올수 있다.   우리 모두가 녀성흡연에 대해 중시하고 정부차원에서 흡연피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금연환경을  조성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금연을 권장하는것도 녀성흡연률을 줄이는 해결책으로 될것이다.   지나가다가 담배 피우는 녀성을 보고 “저 가시나 담배 꼬나문거 좀 봐라. 꼴보기 싫다!” 하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거나 혹은 “야, 저 녀자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 하고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거나 또는 “허허, 이제는 녀자도 담배 피우는 세상이 왔구나!” 하고 웃어넘길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에 녀성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선전하는 글과 금연을 권장하는 글이라도 올리는것이 더욱 좋지 않을가 생각한다.      
3    똥령감의 승리에서 받은 계시 댓글:  조회:7115  추천:5  2013-11-14
똥령감의 승리에서 받은 계시   김희수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의 일이다. 그때는 룡정에 대부분이 단층집이였고 볼일도 밖에 지어놓은 공중변소에 가서 보아야 했다. 지금은 집집마다 집에서 볼일을 보고 이름도 우아하게 화장실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변소, 뒤간, 측간이라고 불렀다. 어떤이들은 로골적으로 “똥쓰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변소는 내려다보면 사람키보다 더 깊은 곳에 배설물이 한눈에 보였고 지독한 구린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런 환경이였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때문에 느긋이 앉아서 일을 볼수 없었다.     말이 나온김에 변소줄에 대해 한마디 하련다. 남새(한국에서는 채소 또는 야채라고 함)를 사도 줄을 서고 물을 길어도 줄을 서야 했던 그 시절에는 소개신과 뒤문치기가 은을 냈지만 유독 변소줄만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 아무리 시장어른이라고 해도 앞에 줄을 선 사람 먼저 들어갈수 없었다. 법률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은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지만 변소줄앞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말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다.   화제가 변소이니 변소에 대해 계속 말해보자. 이 변소를 청소하는 인물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다. 룡정에서 있은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변소라는것은 여기서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튼 이 변소를 청소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50대의 한족 사내였다. 그 사내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조선족들은 모두 그 사내를 “똥푸개령감”이라고 부르다가 간략해서 “똥령감”이라고 불렀다. 사실 인분을 퍼가는 차량(손잡이뜨락또르)이 따로 있었으니 엄격하게 말하면 그를 “똥푸개”라고 부르는것이 맞지 않는 말이다. 응당 “변소간청소부”라고 불러야 할것이다. 지금말로 하면 “화장실청소부”라고 해야 할가?   키가 작달막하고 사시장철 누런 군복에 남색바지를 받쳐 입고 다니는 이 똥령감은 다른건 잘 몰라도 변소청소만은 깨긋하게 잘 했다. 그리고 여가에는 얼음과자(冰棍)를 팔군 했다. 조선족들은 더럽다고 안 사먹었지만 한족들은 잘도 사먹군 했다. 아마도 아이 셋을 데리고 고정직업이 없이 살아가는 그를 동정했던가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똥령감한테 위기가 닥쳐왔다. 위생부문에 근무하는 어떤 사람의 가족이라고 하는 녀인에게 “밥통”을 빼앗겼던것이다. 변소청소도 뒤문치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밥통”을 빼앗긴 똥령감은 어디 해볼데가 없었지만 자신의 생계를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그의 투쟁방식은 그 녀자변소청소부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것이였다. 어떻게 방해했느냐 하면 참 웃다가 배꼽이 빠질 일이였다.   변소에서 뒤를 볼 때 일부러 똥이 구멍으로 내려가게 하지 않고 발을 딛는 디딤대에 놓이게끔 싸댔던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발을 딛고 들어설수 없게 만들었다. 심술이라면 심술이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떤 어린이가 명중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실수를 한것으로 알고 똥이 있는 곳을 딛지 않게 조심하면서 앉아서 일을 보군 했다. 그런데 날마다 그런 일이 생기고 또 똥을 배설해놓은 곳과 량이 많아서 얼굴을 찡그리며 똥이 없거나 적은 칸이 나기를 기다려서 일을 보군 했다. 그러다보니 보귀한 시간을 변소에서 랑비하는 일이 많았다.   똥령감은 이렇게 발디딤대에 똥을 싸놓는 일을 근 반년동안 견지했다. 그것도 두 아들까지 동원해서 변소에 발을 디딜 틈이 없이 만들어놓았다.   이렇게 되자 녀자청소부가 골탕을 먹었고 사람들은 그녀가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당부문에 찾아가서 반영했다. 결국 해당부문에서는 하는 수없이 똥령감을 “복직”시켰다. 똥령감이 변소청소를 하게 되면서부터 변소는 다시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똥령감의 승리에서 배워야 할점이 많다고 본다. 물론 똥령감이 남들에게 해되게 한것도 있었지만 그런 약간의 피해쯤은 용서해줄수 있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자신의 “밥통”을 되찾기 위해서 의지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불굴의 정신이 보귀하다고 본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 렴치불구하고 돈을 더럽게 벌어도 상관없다. 그 돈을 가족을 위해, 자식을 공부시키는데 혹은 투자하여 영업을 하는데 쓴다면 갚지고 보람있는 일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2    나도 친자감정 해봐야 하나? 댓글:  조회:6936  추천:4  2013-11-03
나도 친자감정 해봐야 하나? 김희수 언제부터인가 친자감정바람이 불고있다. 처음에는 연예인, 스포츠스타, 정치, 재계의 유명인사들이 내연녀에게서 태여난 사생아가 자기의 자식이 맞는가를 알아보려고 친자감정을 해보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일반시민들까지 친자감정을 하는 바람이 불고있다고 한다. 안휘성의 첫 친자감정전문기구인 래체극친자감정센터(萊蒂剋親子鑒定中心)에서 지난 국경절휴가가 끝난후에 친자감정을 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어느날에 임신 4개월인 아려라는 녀성이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몰라 고민하다가 관계가 밀접했던 두 남자를 데리고 이 센터로 찾아왔다. 그녀가 임신한것을 알게 된 두 남자는 모두 DNA친자감정을 해서 태아가 자신의 아이가 맞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두 남자는 친자감정비용을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하면서 아이가 자기의 혈육이기를 바랐으나 감정결과 두 남자가 모두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였다. 아려는 또 몇개월후에 태여날 아이의 아빠가 누군인지 몰라 고민했다고 한다. 50여세의 오씨는 오매불망하던 손자가 태여나자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며느리가 바람끼가 있는것을 발견하고 손자마저 아들의 친혈육이 아닐거라는 의심이 들어 아들며느리 몰래 이 센터에 와서 친자감정을 해보았다. 결과 손자는 아들의 친자식이 아니였다. 30여세인 아강은 아이가 자랄수록 자기를 닮지 않은것을 보고 “저애가 혹시 내 친아들이 아닐수 있지 않을가”하는 의심이 들어 안해 몰래 이 센터에 와서 친자감정을 해보았다. 결과 8년동안 애지중지 키운 아이가 친아들이 아니였다. 이런 사례는 안휘성뿐이 아니라 전국각지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친자감정을 통해 친아들이 아니라고 밝혀진 경우가 많아지자 전국각지에서는 “안해를 믿지 말라. 내 자식도 남의 아이인지 모른다”는 말이 나돌면서 친자감정바람이 일고있다고 이 센터의 책임자가 전했다.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니 친자감정이란 아이와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의 사이에 생물학적으로 부모자식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는것이라고 했다. DNA유전자검사는 혈액, 모발, 타액, 구강세포, 뼈 등으로 할수 있는데 1984년 9월에 영국 레스터대학의 유전학자 앨릭 제프리스(亞歷剋•傑弗裡斯)교수에 의해 개발됐다. 유전자검사에서 친자판정에 오류가 생길 확률은 4조7000억분의 1에 불과한것으로 알려졌다. 친자확인을 할 때 유전자감정신뢰도가 99.99%가 되면 친자가 확실하고 친자일 확률은 99.999%, 99.9999% 심지어 99.9999999997%까지 나온다. 친자확인분야에서는 유전자검사기술이 매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단순 실수를 제외하면 정확도는 거의 100%이다. 그러나 유전자검사부문이 늘어남에 따라 기술력이 차하고 기계가 낡고 인력이 부족한 등 원인으로 일부 유전자검사부문의 유전자검사결과는 완전무결하지 못할수도 있다고 한다. 과거에도 혈액감정같은 친자확인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과학적이 되지 못했다. 친자확인기술이 락후하던 지난날에는 안해가 낳은 아이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라고 해도 모르고 살아온 남정네들이 적지 않았을것이다. 남의 자식을 친자식으로 알고 살아온 그네들의 인생이 억울하고 가련하다고 여길수 있겠지만 어찌보면 친자가 아닌지 옳은지 모르고 산 그네들이 더 행복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모르니까 고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적어도 친자문제로 부부간의 갈등도 없었을테니까. 필자는 룡정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한담을 하던중에 친자감정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필자의 친구는 또 자기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 얘기를 옮겨놓았다. 의심이 병이라고 친구의 친구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단다. “그래 널 닮은데가 있더냐?” “내 아들인데 날 닮지 않고 누굴 닮았겠어?” 친구의 친구는 잠간이나마 그런 의심을 해본 자신이 안해와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자책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경우는 가정불화로 가정이 깨질번 했던 사태를 미리 막아서 다행이지만 닮은것 같기도 하고 닮지 않은것 같기도 하여 고민하다가 안해에 대한 불신으로 친자확인을 결심하는 경우라면 친자확인결과가 어떻게 되든 가정불화는 면할수 없게 된다. 만족이 낳은 저명한 가수 나영의 전 남편이였던 축구스타 고봉이 내연녀가 낳은 사생아를 친자확인했던 사건은 한때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면서 온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지만 지금은 잊어버릴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옛말로 되였다. 예전에는 사건, 사고나 유명인친자감별에만 특별히 사용되던 친자확인검사가 지금은 일반 대중에게까지 사용되고있다. 안해에 대한 불신, 불안이나 의심이 친자확인의뢰를 부추기고있다. 속시원히 알아보고 의심이나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친자확인을 의뢰하는 남자들이 늘어나고있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친자확인은 나 한사람에게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안해, 아이 전체 가족에게 영향을 미칠뿐만아니라 사회에도 파급되기에 친자확인을 의뢰하기전에 후과에 대해 심사숙고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고 본다. 감정결과 자신의 피줄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하더라도 남편은 만시름을 다 내려놓을수 있겠지만 안해와 아이에게는 큰 정신적고통과 상처만을 남겨주게 된다. 만약 유전자감정결과 친자가 아닌것으로 확인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안해와 리혼할것인가? 수년, 십여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동안 친자식으로 알고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을 남의 자식이라고 쉽게 버릴수 있겠는가? 키운정도 정인데 그만큼 키웠으면 남의 자식이라고 확인되였다 해도 내 자식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부부사이가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이라면 내 아이가 나를 닮았든 닮지 않았든 친자감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친자확인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 안해를 믿어야 할가? 혹시 내 아이도…”하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도 탈이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서처럼 발가락이라도 닮은것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지 않을가 싶다.        
1    이 세상이 어쩌자고 이러노? 댓글:  조회:7298  추천:7  2013-10-30
이 세상이 어쩌자고 이러노?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주변에서는 한심하고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많이 벌어진다. 살인, 강탈, 폭력, 강간, 방화, 자살, 테로… 그래서 그런지 이따금씩 이런 일이 발생되는것을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처럼 여기고있다. 당연한 일도 아니고 정상적인 일도 아닌데… 하지만 최근에는 도를 넘어 공포, 전률을 느끼게 하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빈번하게 자주 발생되여 충격을 주고있다. 지난 6월에 남경시 강녕구의 22세 되는 악씨성을 가진 녀성이 자신의 두 아이를 방치해 굶겨죽인 사건이 발생, 지난 8월에 산서성 림분시 분서현에서 42세의 장씨성을 가진 녀성이 잔인무도하게도 시동생의 6살 난 아들의 안구를 적출한 사건이 발생, 지난 9월 23일에 심수시에서 51세의 몽씨성을 가진 녀성이 3살 되는 친손녀를 5만원을 받고 산동에 팔아버린 사건 발생, 지난 10월 14일밤에 녕하회족자치구 팽양현 홍하향 문구촌에 사는 마영동이 임신 6개월이 된 안해를 포함해 처가식구 7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 지난 10월 22일에 호남성 가화현에서 뢰씨성을 가진 녀성이 칼로 남편을 찌른후 자신의 친아들 셋(막내 1살, 맏이 9살)을 전부 살해한 사건이 발생, 지난 10월 22일 새벽에 심양시여가호텔에서 30살인 왕씨성의 남성이 칼을 휘들러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녀자친구의 10살난 아들의 오른손을 잘라서 물이 펄펄 끓는 주전자에 넣은 사건 발생… 이외에도 렬거하자면 헤아릴수 없이 많다. 정말 천인공노할 일이며 천추에 용서못할 일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생기다니?! 놀라운 일이다. 물론 저 중동,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전쟁, 내란과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60여년동안(한국식으로 하면 60년여 동안) 전쟁이 없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왔다. 1962년 10월 10일부터 11월 21일까지의 인도와의 군사적 충돌과 1979년 2월의 베트남자위반격전이 있었지만 모두 중국인민해방군이 상대방 나라의 본토로 진격해 승리를 거두었고 1969년 3월에 구쏘련과의 진보도자위반격전도 변방지대에서 벌어진 군사적충돌이여서 절대 대부분의 민간인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일부 변방지대를 제외한 중국대륙에서는 60여년동안 전쟁이 없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온셈이다. 물론 10년동란이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있는 한심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려고 하다보니 화제가 난데없는 전쟁으로 번져간것 같다. 전쟁에서는 군인끼리 서로 죽여도 살인범으로 판결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군을 많이 죽일수록 영웅으로 떠받들리운다.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영웅이 되니 전쟁이란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이런 전쟁을 자꾸 하려고 갈수록 위력이 더 큰 살상무기를 만드는 세상이 함심하다. 전쟁은 전쟁이고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지만 전쟁 못지 않은 비참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주변에서 벌어지고있는것을 보게 된다. 혹자는 60여년동안 늘 그런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새삼스럽게 놀랄 일이 뭔가고 할것이다. 또 혹자는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질 일도 아니고 세상은 세상대로 돌아가는데 무슨 로파심이냐고 탓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를 넘는 끔찍한 참사들이 평소보다 자주 벌어지는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이는 엄중한 사회문제라고 할수 있다. 사회적으로 여러방면에서 해결해야 할 요소들도 많겠지만 문제는 이런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이제는 충격적인 일을 너무 많이 듣고 보아서 면역력이 생겼는지 요즘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 주변의 사람이나 친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죽었다오? 오, 죽었구만”하는 반응을 보일뿐이다. 가족이 죽어도 통곡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고 이튿날로 화장터에 가서 태워버리면 그뿐이다. 망자가 젊은 사람이면 그래도 약간의 통곡소리가 들리지만 망자가 일흔을 넘으면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이 죽어도 “아이구, 기차라!”하며 그 죽음을 슬퍼했고 사돈의 팔촌이 죽어도 “아이구, 아이구!”하며 통곡했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고인과 함께 했던 잊지 못할 일들을 화제로 주고받으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물론 죽은 사람을 늘 생각하면서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것은 건강에 해로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살다가 간 사람들을 가끔씩은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는 어쨌는가? 아침저녁으로 석탄불을 지펴 밥을 짓고 퇴근해 와서는 수도물을 길어오고 하루밖에 없는 일요일휴식일에는 강변으로 빨래함지 들고 가고  김치움 파고 내굴면 온돌을 뜯어 구들고래 훑고 비가 새면 지붕을 이고 벽이 떨어지면 흙모래 섞어 벽 바르고… 그렇게 살면서도 고달픈줄을 몰랐다. 강냉이밥을 먹고 기운옷을 입고 살면서도 어쩌다가 색다른 음식을 하면 이웃에 나눠주고 누구 집에 석탄이 오면 이웃들이 함께 퍼날라다 주고… 그렇게 서로 도와주면서 이웃사촌이란 말 그대로 화목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것이 편안해지고 먹고 살기도 수월해졌지만 더 잘 살기 위해 오직 “돈” 하나만 보고 앞으로 달린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이 죽어도 한번 돌아보면 그뿐이다. 계속 앞으로 달린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이 없다. 이 큰 중국에서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벌어진다구? 내가 살기도 힘든데 그런것까지 관계할 여유가 있는가? 그런건 령도간부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 “우리가 왜 이렇게 변해버린걸가?” 하고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가? 이렇게 랭혈인간이 돼버린 우리, 이제 얼마나 더 한심한 일이 벌어져야 놀라고 충격을 받아서 이 세상 일을 우려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생길가? 이 차가운 세상이 견디기 힘들어 따가운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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