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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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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날의 그 사건 댓글:  조회:3145  추천:0  2015-10-03
그날의 그 사건   김희수     황산약업유한회사의 강철사장은 거래처의 구옥화와 다섯번째로 만났다. 구옥화는 강철보다 열살이나 어린 30세의 요염한 녀인이였다. 그녀는 몸매가 버들가지 같고 얼굴은 부용꽃 같아서 남자들을 끌만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강철과 업무상의 거래로 만날 때마다 장사얘기를 하는 도중에 가끔씩 추파를 던지곤 했다. 요염한 웃음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대화중에 미묘한 암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철은 그녀를 마구 껴안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사실 40세의 젊은 사장인 강철에게 혼외사랑을 요구하는 녀인들이 여럿이 있었고 그 중에는 구옥화보다 더 젊고 더 어여쁜 처녀들도 있었다. 하지만 강철은 자기에게 아들딸을 낳아준 현숙한 조강지처를 생각하면서 녀인들의 유혹을 일일이 물리쳤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는 귀신에게 홀리웠는지 그만 구옥화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던것이다. 업무상의 일을 상의하다가 저녁이 되자 강철은 귀빈루술집에서 구옥화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둘만의 자리에서 구옥화는 요염한 웃음으로 강철에게 련속 술을 권했다. 장사일이 순조롭게 되자 강철은 그녀가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모두 마셔버렸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구옥화는 강철을 부축하여 호텔에 들어갔고 그 다음 그녀는 강철을 침대에 쓰러뜨리고 강철이 어쩔 사이도 없이 옷을 벗고 마구 덮쳐들었다. 녀인이 발가벗고 달려드는 바람에 강철은 안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이 녀인에게 빨려들어갔다… 일이 끝난후 강철은 후회하며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았다. 그런데 그는 샤워하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간 구옥화가 거기서 공안국에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제보전화를 걸고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얼마후 경찰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강철은 어리둥절해졌다. 구옥화가 손으로 강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남자가 바로 방금전에 저를 강간했어요.》 목욕수건으로 몸을 두른 구옥화는 찢겨진 브래지어와 팬티를 강간당한 증거물로 내놓았다. 경찰들이 보니 침대시트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고 녀인의 옷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경찰들은 구옥화를 다른 방에 데리고 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구옥화는 울면서 고소했다. 《저 사람과 업무상담이 끝나고 저녁에 함께 술을 마셨어요. 워낙 술이 약한 저는 그만 취했는데 저 사람이 호텔까지 끌고와서 저를 침대에 눕히고 갑자기 제 몸을 덮쳐왔어요. 깜짝 놀란 저는 술이 확 깼어요. 저는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몸부림치고 저 사람의 잔등까지 할퀴였지만 벗어날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발 놓아달라고 애걸하며 빌었지만 짐승같은 저 사람은 끝내 제 몸을 짓밟아놓고야 말았어요.》 구옥화는 자기를 성폭행한 강철을 엄하게 징벌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런데 경찰들이 다시 강철이한테 물으니 구옥화의 말과 완전히 달랐다. 《강간이라니? 정말 억울합니다. 저는 그녀를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실무상담을 하다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고 저는 기분이 좋은 김에 그녀가 권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저를 부축하여 호텔까지 왔는데 갑자기 그녀가 저를 침대에 쓸어눕혔습니다. 그녀가 주동적으로 옷을 벗고 달려들었는데 오히려 강간당한건 제 쪽입니다.》 두 사람의 진술이 전혀 다른것을 보고 신중하게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경찰들은 즉시에 기술부문의 일군들을 현장에 불러 진일보 조사하여 구옥화가 제공한 찢겨진 속내의와 침대시트의 음모 등 물품을 증거로 확보했다. 강철이 한사코 구옥화를 강간했다는것을 부인했지만 경찰측은 유력한 인증과 물증을 내놓으며 그의 강간죄혐의가 성립된다고 인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강철의 안해 홍매는 남편이 강간범이라고 믿지 않았다. 홍매는 공안국에 찾아가 남편과 구옥화가 한 공술을 자세히 료해하고 의문되는 점을 발견했다. 그녀는 남편과 구옥화가 그날 저녁식사를 했다는 귀빈루술집을 찾아가 남편의 사진을 내보이며 정황을 자세히 조사해보니 두 술집접대원이 그날 사진의 남자가 취했고 녀자쪽에서 부축했다고 했다. 이 중대한 증거를 내놓자 구옥화는 강철의 안해가 술집접대원을 매수하여 가짜 증언을 했다고 물고 늘어졌고 경찰측도 그것이 강간죄를 부인할만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홍매는 락심하지 않고 변장하고 남몰래 구옥화의 뒤를 밟았다. 홍매는 남몰래 구옥화의 뒤를 미행하다가 구옥화가 맥주집에서 어떤 사내와 만나 통쾌하게 복수했다며 술잔을 들고 경축하는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즉시 접대원으로 가장해서 음식을 나르는체 하며 그들의 칸에 들어가서 몰래카메라를 장치했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과 행동이 모두 몰래카메라에 잡혔다. 홍매는 경찰들을 불렀고 경찰들은 몰래카메라에서 구옥화와 어떤 사내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모든 영문을 알수 있었다. 원래 강철은 1년전에 술먹고 사고를 친 한 직원을 해고 시켰는데 그 직원이 바로 구옥화의 동생이였다. 노래방아가씨로 여러 술집을 다니며 사내들을 꼬신 경험이 있는 구옥화는 직업을 잃고 거지신세가 된 동생을 위해 복수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강철을 접근하여 몸까지 바치면서 복수극을 꾸몄던것이다. 억울한 루명에서 벗어난 강철은 구옥화를 무함죄로 고소하겠느냐는 안해의 물음에 《놓아줍시다》하고 대답했다.    
51    신비한 동행자 댓글:  조회:3015  추천:2  2015-05-03
신비한 동행자   김희수       시병원의 나젊은 의사 동일삼은 새로 맞은 안해 옥화와 함께 신혼려행을 떠났다. 그들이 렬차에 올라 방금 자리를 잡았을 때 느닷없이 웬 녀인이 그들앞에 나타났다. “아이, 두분께서 신혼려행을 떠나시는 모양이군요. 참 즐겁겠네요!” 동일삼부부는 놀란 눈길로 그 녀인을 바라보았다. 그 녀인은 동일삼의 전처 향자였는데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이 전보다 더 젊고 예뻐보였다. 향자는 동일삼부부가 응대하건 말건 맞은켠에 앉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말로는 물건구입을 떠난다지만 동일삼은 어쩐지 전처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있는것만 같아 저으기 불안해났다. 향자는 방송국의 아나운서였다. 그 인물, 그 목소리에 반한 동일삼은 그녀와 결혼했지만 그때로부터 고민에 모대기는 비참한 인생이 되고말았다. 향자는 자기 몸을 남편의 몸과 마음을 쥐고 흔드는 “무기”로 삼아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면 몸을 허락하고 조금이라도 거역하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몸을 범접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때 새로 병원에 들어온 처녀간호사 옥화가 동일삼의 신변에 나타났다. 동일삼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옥화의 싱싱한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속 번뇌가 말끔히 가셔지군 했다. 옥화 또한 의술이 높고 사업심이 강한 동일삼을 존경하고 흠모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사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일삼은 일기를 쓰다 말고 급한 환자가 있어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일기책을 옥화가 보게 되였던것이다. 옥화는 그 일기를 읽고 동일삼의 불행한 혼인에 대해 알게 되였고 동일삼이 자신을 사랑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튿날, 옥화는 동일삼을 찾아가서 처녀의 진정을 서슴없이 고백했다. “전 동선생님이 가정이 있는 분이라는데서 자신을 억제했어요.” 이때로부터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은 시작되였다. 향자는 어느덧 자기의 “무기”가 무용지물이 되여버린것을 발견했다. 부쩍 의심이 든 향자는 남편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는데 끝내 꼬리를 잡고 말았다. 남편이 같은 병원의 처녀간호사와 애매한 관계가 있다는것을 발견한 향자는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였다. 동일삼이가 리혼을 제기하자 웬일인지 향자는 순순히 동의했다. 하여 동일삼은 옥화와 재혼하고 신혼려행을 떠났던것이다. “동선생은 전보다 몹시 여위였군요. 새 부인을 맞아드리더니 정력을 크게 소모했나 보군요.” 향자는 제멋대로 지껄이다가 일삼이가 응대하지 않는것을 보고 옥화한테 얼굴을 돌리고 수작을 걸었다. “아이, 동선생부인은 입이 너무 크군요. 그 입으로 동선생을 너무 괴롭히지 말아요.” “썩 물러가오!” 일삼이는 향자의 몰렴치한 언사에 참을수 없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향자는 떡심좋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저더러 물러가라구요? 전 돈을 내고 차를 탔으니깐 두분께서 환영하지 않아도 방법이 없어요.” 동일삼은 옥화를 데리고 다른 차간으로 피해갔다. 향자가 또 따라와서 시끄럽게 굴가봐 그들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차를 바꿔 탔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지 얼마 안되여 그들의 맞은쪽에 색안경을 낀 젊은 남자가 와서 앉았다. 남자는 동일삼한테서 담배불을 빌리며 어디로 가는가고 물었다. 일삼이가 장춘에 가서 며칠 묵는다고 하자 젊은이는 자기도 동행이라고 하면서 몹시 친절하게 굴었다. 그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장춘역에 와 멎었다. 렬차에서 내린 동일삼부부는 중등쯤 되는 호텔에 자리잡았다. 그 젊은이도 그들의 맞은편 방에 들었다. 동일삼부부가 목욕을 마치고 막 침실에 들어서자 반갑지도 않은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일삼이가 문을 열자 렬차에서 동행했던 젊은이가 배를 부여잡고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 “동선생님, 동선생님은 의사라니깐 절 좀 봐주세요. 웬 일인지 배가 아파 죽겠어요!” 그 젊은이는 다짜고짜로 일삼이를 끌고 자기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드러누운 사나이는 하얀 배를 드러내고놓고 울상을 했다. 일삼이가 배를 만지자 젊은이는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아 가슴우로 끌어올렸다. 갑자기 손에 몽글몽글한것이 만져지자 일삼이는 덴겁한듯 깜짝 놀랐다. “엉?” 일삼이가 놀라서 주춤하자 사나이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색안경과 가발을 벗었다. “당신이?!” 일삼이는 전처의 얼굴에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향자는 재빨리 일삼이의 목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여보, 제가 당신의 안해로 있을 때 린색하게 굴었는데 지금은 당신 마음대로 저를 가지세요!” “이걸 놓소. 난 안해가 있는 사람이요!” “안해가 있는 사람이라구요? 난 당신의 안해가 아닌가요?” “비키오. 난 안해한테 미안한 짓을 할수 없소!” “뭐라고? 나한테는 미안한 짓을 해도 되고 그년한텐 미안한 짓을 할수 없단 말이지? 내가 그년만 못한게 뭐냐? 왜 차별을 놓는가 말이야. 난 오늘 기어코 널 녹여낼테야!” 향자는 성난 사자처럼 펄펄 뛰면서 일삼이의 허리띠에 손을 댔다. 일삼이는 안깐힘을 다해 향자를 밀어버리고 부리나케 그 방에서 뛰쳐나왔다. “왜 그러세요?” 옥화가 쫓기는 강아지처럼 달려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의아스레 물었다. 동일삼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그는 남자로 변장한 향자년이였소!” “어마나, 그년이 자꾸 따라와 시끄럽게 구는군요. 어쩌면 좋아요?” “지금 당장 떠나서 다른 호텔로 갑시다!” 그들은 서둘러 짐을 꾸려가지고 호텔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다른 호텔에 찾아들었다. 그래도 불안하여 잠을 설친 그들은 이튿날에 장춘구경을 포기하고 심양행보통렬차를 잡아탔다. 그들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들이 앉은 차탁우에는 먼저번의 려객이 먹다 남긴 붉은대추 한줌이 놓여있었다. 동일삼은 그 붉은대추를 밀어던지려다가 위생이 불결할것 같아서 후에 쓰레기에 던지려고 비닐봉지에 넣어두었다. 렬차는 이따금씩 기적을 높이 울리며 달리고 또 달렸다. 렬차가 대여섯 정가장을 지났을 때 허리가 구부정하고 머리가 희슥희슥한 로파가 그들 맞은쪽에 맥없이 앉았다. 로파는 일삼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뜻밖에도 반색했다. “아유, 이거 동선생이 아닌가유?” “네. 그런데 할머닌…” “날 모르겠어요? 동선생이 아니면 우리 애는 언녕… 지금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있어유!” 분명 자기가 구해준 환자의 어머니이겠는데 일삼이는 도무지 로파를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로파가 5년전에 교통사고로 다 죽게 된 자기의 아들을 수술하여 살려주지 않았느냐고 설명을 가해서야 비로서 그런 일이 있은듯 싶은 생각이 들었다. 로파는 그때 일삼이가 구해준 아들이 심양의 모 회사에서 사업한다면서 자기는 지금 그 아들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로파는 동선생의 은혜를 갚을길이 없다면서 가방에서 붉은대추를 꺼내 그들에게 맛보라고 권했다. 동일삼부부는 로파가 성의껏 권하자 사양하지 못하고 받아쥐였다. 얼마후 동일삼부부는 잠이 들었는지 의자에 기대여 눈을 감고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로파는 그 자리를 슬며시 떠나서 다음의 자그마한 정가장에서 내렸다. 정거장을 벗어난 로파는 인적기 없는 산속에 들어가 가발과 가짜 살가죽을 벗어던졌다. 로파는 원래 향자였던것이다. 교모하게 로파로 변장한 향자는 독약을 넣은 붉은대추로 동일삼부부를 감쪽같이 지옥에 보내려고 했던것이다. 그녀가 리혼에 순순히 동의한것도 오늘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량심없는 배신자, 동가놈아! 이젠 저승에 가서나 그 화냥년과 좋아해라! 으흐흐!” 향자가 복수의 쾌감에 미친듯이 웃을 때 불쑥 동일삼이와 옥화가 유령마냥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앗, 너희들은 사람이냐? 귀신이냐?” 혼비백산한 향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동일삼은 분노에 찬 눈길로 향자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향자, 넌 우리가 너의 속임수에 넘어가 죽었으리라고 생각했지? 난 먼저번에 속았기 때문에 웬 로파가 동행하자 특히 주의하여 살펴보았어. 넌 아나운서였기 때문에 목소리는 신통하게 위장했지만 젊은 녀자의 그 손만은 감출수 없었어. 넌 환자의 어머니인체 했지만 내 눈과 내 기억만은 속일수 없었어. 난 네가 대추를 내놓을 때 그 대추에 독약이 묻혀있으리라고 의심했어.” “그런데 넌 그 대추를 먹었잖았어?” “우리가 먹은건 먼저번의 려객이 남기고간 대추였어.” 향자는 고양이 락태한 상이 되여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제딴에는 주도면밀한 복수극을 벌렸다고 득의양양해하던 향자는 제가 되려 올가미에 걸려들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것이다.  (1995년)    
50    추억 댓글:  조회:3060  추천:2  2015-03-01
추 억   김희수     요즘 징병검사로 병원은 초만원을 이루고있었다. 나는 생기발랄한 미래의 병사들을 위해 한사람 한사람 세심하게 신체검사를 해나갔다. 두번째 청년의 검사를 끝내고 세번째 청년의 이름을 부를 때였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얼굴이 네모번듯한 중년남자가 역시 키꼴이 장대한 청년을 데리고 들어섰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던 중년남자가 반갑게 소리쳤다. “경수야, 너 의사로 되였구나!” “누구더라?” 내 이름까지 부르며 하대를 하는 중년남자를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던 나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로 그를 맞아주었다. “야, 승호구나! 이게 몇해만이냐?” 우리는 반갑게 손을 잡았다. 헤여진지 20여년이 되는 승호를 만나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어린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까닭모를 대자보(大字报)가 사처에 나붙고 “타도하자!”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던 그때 어른들은 “훙써(红色)”니 “캉다(抗大)”니 “빠얼치(八二七)”니 뭐니 하면서 무리를 지어 대변론하고 돌팔매질하고 맞총질하며 판가리싸움을 하였다. 그 시기 도대체 어째서 때리고 마스고 광란하는지 어른들도 똑똑히 모르고있었으니 갓 짜개바지를 벗어놓은 우리야 무엇을 알았으랴! 한두해가 지나자 살벌하던 분위기는 좀 즘즘해진듯 싶었다. 그러나 가끔 “나쁜놈”에게 고깔모자를 씌워 투장해는 일이 많았고 날마다 식사전이나 상학전에는 “어록책”을 정히 들고 수령의 초상을 마주하여 만수무강을 축원하는것이 어길수 없는 법칙으로 되였다. 그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것도 “로3편”, “만세”, “타도”였다. 어느 수업시간이였다. “누가 우리의 적인가? 누가 우리의 벗인가?”하는 모주석의 문장을 배울 때 선생님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가 우리의 벗입니까? 알만한 학생 손드세요.” 학생들이 너도나도 “옛”하고 손을 들었으나 승호만이 책상에 납죽 엎드려 연필로 무엇인가 열심히 그리고있었다. “승호학생!” 내 앞에 앉은 선생님의 지명을 받자 흠칫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가 자기를 쏘아보는 선생님의 눈길과 마주치자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해보시오. 누가 우리의 벗입니까?” “저…” 승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어물어물 말꼬리를 흐렸다. “우리 아버지.” 순간 물뿌린듯이 조용하던 교실에서 일시에 폭소가 터졌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즘즘해지기를 기다려서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의 적은 누구입니까?” “교장선생님입니다!” 승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있게 대답했다. 교실안은 대번에 술렁거렸다. 물목이 터진듯 여기저기에서 “저새끼, 반동이다!”하는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승호는 구원을 바라는 눈길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교장선생님이 어째서 우리의 적입니까?” 선생님이 따지고들자 승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교장선생님은 코가 크기때문입니다. 외국특무처럼.” “하하하!” 학생들속에서 또 한번 웃음통이 터졌다. 선생님은 승호의 학습장을 집어들고 보더니 눈살이 꼿꼿해졌다. “이건 뭔가요?” “해방군입니다!” “해방군이 모자를 삐딱하니 쓰는가요? 국민당특무처럼? 수업시간에 이따위걸 그리니 적과 벗에 대한 개념도 혼동하지. 다음부터 시간에 집중을 잘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이번에는 학급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정순이를 보고 물었다. “정순학생이 말해보시오. 누가 우리의 적입니까?” 내 옆에 앉은 정순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챙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승호입니다. 승호가 우리의 적입니다!” 교실안은 일시에 키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군거리는 소리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조용히”를 부르고 나서 정순이에게 캐여물었다. “승호학생이 왜서 우리의 적입니까?” “승호는 부농인 자기의 아버지를 우리의 벗이라고 했고 존경하는 교장선생님을 우리의 적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승호는 우리의 적입니다!” “아닙니다! 승호는 좋은 애입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발딱 일어나서 나의 가장 친한 동무를 변호해나섰다. “정순아, 넌 승호의 그림책을 봤니? 놈들이 나오는 낯판대기에다 모두 송곳으로 찔러놨어! 이렇게 놈을 미워하는 애가 어떻게 우리의 적일수 있니?” 정순이도 질세라 손을 흔들면서 소리질렀다. “흥, 나도 봤어. 그 뒤장에 있는 우리 해방군의 얼굴에도 송곳흔적이 있는데 뭐. 승호는 반동이고 나쁜놈이고 계급의 적이야!’ 나도 화가 나서 맞받아 소리쳤다. “좋은 애를 무함하지 말어!” “경수야, 넌 왜 나쁜 애의 편을 드니? 그럼 너도 나쁜 애야!” “승호는 좋은 애야!” “나쁜 애야!” “좋은 애야!” 선생님은 옥신각신하는 우리를 제지시키며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동무들, 부농자제라하여 부모와 한동아리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치렬하고 복잡하고 계급의 적들은 시시각각 복벽을 꿈꾸면서 우리의 후대들을 부식하고 쟁탈하려고 망녕되게 시도하고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적일수도 있고 우리의 벗일수도 있는 지주, 부농, 반형명분자의 자제들을 우리켠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누가 우리의 적이고 누가 우리의 벗인가? 그후에 승호는 “반동구호”사건으로 나어린 가슴에 상처를 입고 정순이와 싸우게 되였다. 소조공부가 끝날 무렵이였다. 소조장인 정순이가 승호의 숙제를 검사하다가 별안간 “반동구호!”라고 새된 소리를 지르더니 승호의 숙제책을 들고 부리나케 학교쪽으로 뛰여갔다. 이튿날에 등교하자바람으로 승호는 선생님한테로 불리워갔다. 선생님은 숙제책을 펼쳐들고 엄한 눈길로 승호를 쏘아보았다. 그것은 정순이가 바친 승호의 숙제책이였는데 거기에는 “림표는 인민의 원쑤이다!”라는 비뚤비뚤한 글씨가 씌여있었다. “이건 동무가 썼습니까?” “네, 제가 썼습니다!” 승호는 선생님의 엄숙한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장한 일이라도 한듯이 싱글벙글 웃기까지 했다. 그러자 화가 난 선생님은 책상을 “쾅”하고 내리치며 꽥 소리질렀다. “동무, 정신을 차리시오! 림부주석은 모주석의 가장 친밀한 전우이며 믿음직한 후계자입니다. 중앙수장을 원쑤라고 악독하게 모독하다니요? 이건 계급의 적들의 반동언론입니다! 솔직하게 탄백하시오. 이건 부농인 동무의 아버지가 시킨 일이지요?”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시구두…” “뭐야? 내가 언제 그렇게 그런 말을 했어?” “그저께 림부주석의 ‘모주석의 말씀은 마디마디가 진리여서 한마디가 만마디를 당한다’는 어록을 배울 때…” “너, 정신을 어따 두었니? 그때 내가 림부주석은 인민의 원수라고 했지 어디 원쑤라고 했니?” “전 원수인지 원쑤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선생님의 발음이…” “아니, 이런…원수와 원쑤도 구별못하니 락제만 하지.” 선생님은 허거픈 웃음으로 이 일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정순이의 입을 통하여 이 일을 알게 된 아이들은 늘 승호를 둘러싸고 “반동, 반동, 새끼반동”하고 놀려주었다. 그러자 울뚝밸이 치솟은 승호는 하학하는 길에 정순이의 멱살을 잡고 따졌다. “야, 누가 반동이야? 다시 말해!” “다시 말하면 어째? 니가 반동이다! 어째?” 정순이는 두려워하기는커녕 딱 마주서서 가시돋친 말로 승호를 찔러주었다. “이 간나!” 승호의 손이 내가 말릴사이도 없이 불이 번쩍나게 정순이의 뺨을 후려쳤다. 정순이는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입만은 놀려댔다. “새끼반동 같은게 으응, 어디 두고보자 으응…” 울분으로 하여 승호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는데 그의 눈에서 웬 일인지 물기가 반짝이였다. 승호는 학급애들뿐만아니라 마을애들한테도 무시당하고 멸시를 받았다. 겨울방학의 어느날에 우리 마을의 아이들은 “특무잡이”놀음을 하게 되였다. 상급생인 정순의 오빠 원식이가 대장이 되여 “특무”가 될 애를 뽑았다. “대만특무에 승호!” “싫어! 난…” 승호는 특무질을 안하겠다고 떼를 썼다. 그러자 원식이는 승호를 삼켜버릴듯이 노려보며 고함쳤다. “임마, 싫어두 해야 돼!” “싫어. 난 해방군역을 하겠어!” “흥, 부농새끼가 해방군을 해? 임마, 너 같은건 특무, 반역자, 졸개질이나 해야 돼!” “씨, 누가 부농새끼야? 넌 개새끼야, 개새끼!” 승호는 더는 굴욕을 참을수 없었던지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원식이한테 대들었다. 원식이도 화가 나서 승호의 면상에 사정없이 주먹을 안겼다. “요 새끼반동아! 내 오늘 너를 타도하여 납작하게 만들겠다!” 원식이는 승호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나와서야 손을 떼고 애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승호의 발밑에 깔린 새하얀 눈우에 시뻘건 피자국이 꽃잎처럼 피여났다. 나는 연필깎는 칼로 솜옷을 베여낸후 솜 한웅큼을 끄집어내여 승호의 피를 닦아주었다. “승호, 괴로와말아. 응? 우리 둘이 놀면 되지 않니? 내가 특무질하고 네가 해방군이 돼라 응?” 승호는 자기를 따뜻이 위로해주는 말을 듣자 내 손을 꼭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일로하여 우리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우리는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숙제도 함께 하고 썰매도 함께 타면서… 그러던 어느날에 승호는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경수야, 넌 커서 뭘 할래?” “난 말이야. 음…모르겠어. 넌?” “군대가 될래!” “군대? 야, 장하구나!” “난 군대가 되여 우리 아버지, 어머니하구 동생들이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놈들과 싸우겠어!” “그래? 난 뭘 할가? 음…난 의사가 될래. 의사가 되여 우리 할아버지의 병을 떼주구 네 병두 봐주구 그리고 또…” “야, 넌 좋은 생각을 했구나. 넌 의사가 되구, 난 군대가 되구. 야, 우리 앞날 만세!” 승호는 기쁜 나머지 퐁퐁 뛰며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우정이 파렬되는 도화선으로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있던 학교측에서는 과단성있게 반부식운동을 벌렸다. 적발하라! 누가 나쁜 말 나쁜 일을 하였는가를 모조리 적발하라! 이러한 호소에 호응하여 모두 적극적으로 일떠나 적발서를 써바쳤으나 나는 연필도 들지 않았다. 쓸것이 없었다. 내 눈엔 모두 좋은 사람으로 돼보이는데 누구를 나쁜 놈이라고 적발한단 말인가? 운동이 한창 고조에 오르던 어느날에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경수학생은 왜서 적발신을 쓰지 않습니까?” “…” “우리 빈하중농자제들은 이번 운동에 앞장서야 돼요. 동무가 승호와 단짝이 되였다는 적발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빈농인 동무를 믿어요. 동무는 승호와 친했으니깐 그가 한 나쁜 일도 알고있겠지요? 어서 그를 적발하시오!” “승호는 좋은 애입니다! 그는 나쁜 일을 한적이 없습니다!” “경수학생, 계급의 적들은 교활하기 짝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늘 선량한척 하지만 속으로는 딴 꿍꿍이를 꾸미고있단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 무산계급정권을 탈취하려고 망녕되게 시도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경각성을 높여 웃음속에 칼을 품고있는 한줌도 못되는 계급의 적들을 일망타진해야 됩니다. 승호의 아버지는 어제 반혁명죄로 체포되였습니다. 정순동무는 벌써 승호의 많은 문제를 적발했습니다. 경수동무, 승호의 아버지란 이 부농분자는 승호를 통하여 동무를 나꿔서 저들의 검은 집단에 가입시키려고 마수를 뻗쳐씁니다. 정신을 차리고 어서 승호와 계선을 가르시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며 공포의 전률을 느겼다. 아, 승호는 원래 나쁜 애였구나! 그런줄도 모르고 난 그애를 따라 그애의 아버지가 이끄는 검은 집단에 가입할번 했구나. 하마트면 나도 나쁜 애로 될번했구나. 정말 위험했어. 나는 낭떠리지에 선듯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눈앞이 캄캄했다. “선생님, 전…적발하겠습니다.” “그래. 좋습니다. 승호가 어떤 나쁜 일을 했는지 말해보시오.” “나쁜 일을 한건 없습니다.” “그럼 어떤 나쁜 말을 했는가를 말해보시오.” “승호는…”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애는 군대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군대?” “네. 부농인 아버지를 위해서…” “그것 보시오. 그 부농분자는 세상을 뒤엎기 위해 자기의 아들에게 총을 메우려고 했소. 흥, 망상이지. 망상!” 이튿날에 비판대회가 열렸다. 승호는 학급애들의 분노에 찬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교단앞에 머리를 푹 떨구고 서있었다. “승호, 너 말해봐. 왜 참군하려고 했어?” 립장이 견정하고 기치가 선명한 정순이가 앞장서 따지고들었다. 승호가 침묵을 지키자 사처에서 “말해라! 말해!”하고 소리쳤다. 승호는 시달리다 못해 입을 열었다. “적과 싸우려고…” “적이란 누구냐? 우리 혁명동지들과 싸우겠단 말이지? 부농인 아버지를 위해서?” 승호는 천천히 머리를 들더니 괴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것이였다. 나하고만 한 말이 탄로났으니 내가 고발했으리란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나는 가슴이 불안했다. 정순이가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듯이 내 곁에 다가와 귀속말로 속삭였다. “두려워 말어라. 그는 한줌도 못되고 우리는 금성철벽이다. 경수야, 네가 실제행동으로 승호와 계선을 가를 때가 왔다. 자, 빨리!” 정순이의 말에서 힘을 얻은 나는 용감하게 앞으로 걸어나가 승호를 손가락질하였다. “승호, 말해라! 너의 아버지가 참군하라고 시켰지?” “아니야!” 아니라구? 뻔뻔스러운 놈!” 나는 불시에 승호의 가슴에 된 주먹을 안겼다. 그러자 아무런 준비도 없던 승호는 뒤로 허망 나자빠졌다. 승호는 입술을 꼭 사려물고 나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는데 얼굴근육이 경련하듯 푸들푸들 떨렸다. “경수야, 너까지도…” 오열에 차 웨치는 승호의 눈에서 두줄기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경수야, 넌 어린 시절의 뜻대로 의사가 되였구나!” 승호의 말에 나는 추억에서 깨여났다. 어린 시절 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겨줬던 일에 가책을 느끼며 나는 낯이 뜨거워났다. 그때 내가 안긴건 주먹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친구에 대한 배반이였다. 그렇다.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에 대한 믿음이 깨여지는 순간 그의 가슴은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승호야, 어릴 때 널 비판할 때 내가…” “허참, 철부지때의 일을 새삼스럽게 들춰내선 뭘해.” “그래두 난…” “경수야, 혼란하고 시비가 전도되였던 세월인데 어찌 정순이나 너를 나무람할수 있겠니? 그때는 어른들도 멋모르고 날뛰였는데 아이들이야 무엇을 알았겠니? 채찍을 안기려면 응당 순진하고 깨끗한 우리의 어린 심령에 무시무시한 공포심을 들쒸우고 서로 적의를 품고 경계하게 한 그 동란세월에 안겨야 하겠지. 허어, 지금은 좋은 세월이 오지 않았니? 경수야, 이 앤 나의 아들이야.” 승호는 데리고온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체검사하러 왔다. 이 애를 군대에 보내려고.” 나는 승호와 청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승호의 뜻을 알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의탁하려는것이였다. 나는 승호의 아들이 의젓한 해방군전사로 될것을 바라면서 신체검사를 시작했다. (1987년)  
49    총각이 기다려요 댓글:  조회:2916  추천:1  2015-02-01
총각이 기다려요   김희수     강인자의 남편은 다른 면에서는 흠잡을데없이 다 좋은데 술만 과하게 마시면 마누라한테 매를 댈가 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결혼하여 10여년이 지나고 아이가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도록 그 버릇은 그냥 고치지 못하고있었다. 강인자는 그런 남편의 버릇을 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허사였다. 하루는 강인자의 친구 최인자가 놀러와서 한 총각이 자기를 따르고있다면서 편지 한통을 꺼내 보였다. 사랑하는 인자씨: 인자씨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것도 압니다. 인자씨가 결혼한 녀성이고 아이까지 있는 녀성이라는것도 압니다. 하지만 총각인 저는 인자씨를 묵묵히 사랑해왔습니다. 인자씨의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다는것을 안 지금은 인자씨를 더더욱 사랑합니다. 인자씨, 사랑을 소중하게 여길줄 모르는 그 따위 남편과 리혼하고 저에게로 오십시오. 저는 우주와 같이 무한하고 생명과 같이 따뜻한 사랑으로 인자씨를 영원히 사랑해줄것입니다! 로총각 K로부터   《어마나, 무슨 이따위 장난편지야?》 강인자는 너무도 우스워 깔깔 웃었다. 그런데 최인자는 정색해서 말했다. 《장난편지가 아니야. 아주 순진한 총각이야. 진심으로 날 좋아하고있어!》 《너 그래 정말 리혼할 셈이냐?》 《그래 리혼할테야. 더는 이렇게 참으면서 살수 없어!》 최인자의 남편은 심한 도박군인데 가장집물을 몽땅 도박판에 밀어넣다싶이 하고있었다. 강인자는 최인자가 불행한 혼인에서 벗어나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축복했다. 그런데 말썽이 생기자고 그랬던지 최인자가 까먹고 총각의 편지를 그만 두고 갔는데 그 편지를 공교롭게도 퇴근하여 돌아온 강인자의 남편이 보게 되였던것이다. 성을 밝히지 않고 《사랑하는 인자씨》라고 했으니 자기 안해한테 온 편지인줄로 알고 강인자의 남편은 얼굴이 흙빛이 되여 안해를 불렀다. 《이게 도대체 뭐요?》 남편의 손에 쥐여있는 편지를 본 강인자는 친구의 비밀이 폭로된줄로만 알고 킥 웃었다. 그런데 남편이 천둥같이 노하여 도끼눈을 부릅뜨고 쏘아보는것이 아닌가. 《왜 그러세요?》 《왜라니? 언제부터 K라는 총각과 좋아했소?》 그제야 남편이 오해하고있다는것을 알아챈 강인자는 사실대로 해석하려다가 문뜩 꾀가 떠올라 일부러 그런척 했다. 《제가 좋아한게 아니라 그 총각이 절 따르는걸 어떻게 해요?》 《에익, 빌어먹을!》 강인자의 남편은 화가 나서 주먹을 쳐들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두려워 쩔쩔 매던 안해가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덤벼드는것이 아닌가. 《때려요. 때려! 이제 한번만 때리면 전 그 총각을 찾아가겠어요!》 이렇게 되자 강인자의 남편은 너무도 기막혀 들었던 주먹을 내려놓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거 아무리 로총각들이 장가가기 힘든 세상이라구 유부녀한테까지 련애편지를 날리다니…》 《이것이 바로 안해를 아까지 않는 유부남들에 대한 경종인줄 아세요!》 《허허, 이제부터 여보님을 녀왕님처럼 받들어 모셔야 되겠네!》 강인자의 남편은 허구프게 웃었다. 그때로부터 안해를 때리는 그의 버릇이 많이 개변되긴 했는데 어쩌다 옛버릇이 되살아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강인자가 《총각이 기다려요!》하고 한마디만 하면 강인자의 남편은 들었던 주먹을 맥없이 내려놓는다고 한다. (1997년)    
48    한밤의 늑대들 댓글:  조회:3776  추천:1  2015-01-01
한밤의 늑대들     김희수       한밤의 늑대들은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다가도 먹이를 찾지 못하면 시퍼런 대낮에도 네거리에 뛰쳐나와 사냥물을 노린다. 어느 봄날의 오후 1시에 오학범, 허기만, 백현식 이 세마리의 늑대가 자그마한 도시의 번화한 거리에 나타났다. 이 늑대들은 지나가는 택시들을 노려보다가 녀택시운전기사가 모는 택시 한대를 불러세웠다. 차문을 빠금히 열고 얼굴을 내민 예쁘장한 녀택시운전기사를 본 늑대들은 “OK!”하면서 차에 올랐다. 학범이가 운전수옆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기만이와 현식이가 뒤좌석에 몸을 묻었다. “어디 가세요?” “화룡쪽으로 몰아주오.” 학범이는 담배를 꼬나물며 옆좌석을 곁눈질했다. 핸들을 잡은 택시아가씨는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앞만 응시하고있었다. 어느덧 다리를 건너 시내를 벗어난 택시는 고속으로 달렸다. 학범이의 탐욕스런 눈길은 택시아가씨의 봉긋한 젖가슴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택시에 앉는 순간부터 택시아가씨의 가슴을 만지만지고 미칠지경인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학범이는 날씨며 택시수입 따위의 얘기들을 지껄여댔다. 하지만 택시아가씨는 짧게 한마디씩 응대할뿐 운전에만 정신을 집중하는듯 했다. 택시가 모아산부근에 다달았을 때 음탕한 눈길로 택시아가씨의 뒤모습만 노리고있던 두 마리의 늑대가 슬금슬금 택시뒤를 살피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차 좀 세워주오. 젠장,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더니 참을수 있어야지.” “빨리 좀…바지에 막 싸겠소.” 택시가 길옆에 멈춰서자 기만이와 현식이는 재빨리 차에서 내리면서 앞뒤를 살펴보았다. 너덧대의 차량들이 지나오고 지나가자 그들은 바지춤을 까는체하면서 차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한참후 오가는 차량이 잠시 끊어지자 그들은 학범에게 눈짓했다. 학범이가 머리를 끄덕이자 그들은 번개같이 달려와 운전석의 차문을 열고 택시아가씨를 끄집어냈다.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택시아가씨는 어쩔바를 몰라 바들바들 떨다가 고함쳤다. “사람…살려요!” 당황해난 세마리의 늑대는 재빨리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산속으로 끌고갔다. 인적이 없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 세마리의 늑대는 평퍼짐한 곳에 “먹이”를 내려놓았다. 기만이와 현식이가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며 망을 보고 우두머리인 학범이가 먼저 택시아가씨한테 덮쳐들었다. “제발…있는 돈을 다 드릴테니 살려주세요!” 택시아가씨는 애원하면서 돈지갑을 내밀었다. 학범이는 그 돈지갑을 넙적 받아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계속 달려들었다. “이러지 마세요. 돈을 드렸는데 절 놓아주세요.” “으흐흐. 난 돈도 가지고 너도 가질테야. 시키는대로 옷을 벗으면 살려준다. 빨리 홀딱 벗어!” 겁에 질린 택시아가씨가 떨리는 손으로 옷을 벗자 학범이는 참을수 없다는듯 굶주린 늑대처럼 그녀를 덮쳤다. 다음은 기만이와 현식이가 번갈아 허리띠를 풀었다… 달포후 자정이 넘은 밤중에 세미리의 늑대는 또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며 사냥물을 노리고있었다. 그러던중 현식이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뒤간에 갔다가 돌아오니 초조하게 기다리고있던 기만이가 재촉하는것이였다. “빨리 가자. 또 하나 잡았다. 학범이가 로획물을 료리하러 세집으로 끌고갔다.” “어때, 섹시하던?” “말도 말라. 나긋나긋한게 맛이 기막힐거야!” 한달음에 세집으로 달려간 그들은 문밖에서 망을 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집안에서 학범이가 처녀를 을러메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옷을 벗어!” “제발…이러지 마세요. 전 다음달에 곧 결혼하게 돼요.” “으흐흐. 거 참 좋구나. 오늘 내가 먼저 신랑이 되여줄 테니 어서 옷을 벗어!” “제발 절 놓아주세요!” 처녀의 애원소리에 현식이는 이상하게도 여느때와 달리 몸이 오싹해났다. 하지만 얼마후 터져나오는 처녀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현식이는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윽하여 학범이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나오자 언녕 허리띠를 풀어놓고 기다리고있던 현식이는 “오늘은 내가 먼저”하고는 참을수 없다는듯 막 들어가려는 기만이를 물리치고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던 현식이가 “앗!”하고 놀란소리를 지르며 정신나간 사람처럼 허둥지둥 되돌아나왔다. “너 웬일이냐?” 학범이와 기만이가 의아해서 따져묻자 현식이는 울상이 되여 말했다. “인젠 끝장이야. 저앤 내 사촌누이동생이야!” “뭐라구?” 학범이와 기만이도 여간 놀란게 아니였다. “저애가 널 고발하면 우린 모두 들통날게 아니야. 아예 저앨 죽여버리자!” 학범이가 칼을 뽑아드는것을 보고 현식이는 급히 앞을 막아서며 “그건 안돼”하고 소리쳤다. “제길, 그럼 네가 책임지고 그앨 구슬려!” 학범이와 기만이는 돌아가고 현식이가 혼자 남아서 사촌녀동생을 얼리고 닥치고 하며 구슬렸으나 그녀는 울기만 하다가 달려나가더니 끝내 파출소를 찾아가 현식이를 고발했다. 이튿날 현식이와 기만이는 붙잡혀 쇠고랑을 찼고 학범이는 어떻게 낌새를 챘는지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다. 이 사건을 취재한 모 신문사의 최수암기자는 이 사건을 신문에 보도하면서 아래와 같은 말로 글을 마무리지었다. “한밤의 늑대들은 녀성들의 공포심리를 리용하여 손쉽게 녀성들의 정조를 빼앗았다. 범인들은 녀성들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들어놓고 강간했는데 이는 우리의 녀성들은 자아보호의식과 저항의식이 너무나 약하다는것을 말해준다. 물론 녀성들은 상대적으로 남성들보다 힘이 약하지만 ‘녀자호신술’을 리용하면 그 어떤 남자든지 물리칠수 있다. 필자가 여기서 언급한 ‘녀자호신술’은 무예를 말하는것이 아니다. 무예를 익혀 늑대들을 대적하는것은 소수의 녀성들만 할수 있는 일이지만 이 ‘녀자호신술’은 녀성들이 누구나 다 할수 있는 방법이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폭력을 사용하기전에는 강간은 불가능하다. 녀자가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무릎을 오무리면 방어벽이 되는데 철벽같이 견고하여 어떤 남자도 이 보루를 돌파할수 없다. 녀자의 호신술이란 바로 이런것인데 많은 녀성들은 늑대가 협박하면 지레 겁을 먹고 옷부터 벗는다.” 그런데 최수암기자의 이 글을 세번이나 읽은 라신애양한테 뜻밖의 재앙이 떨어졌다. 어느날 밤 늦은 귀가를 하던 라신애양은 으슥한 골목에서 한마리의 늑대를 만났는데 이 늑대가 바로 그물에서 빠져나갔던 오학범이였다. 학범이는 다짜고짜로 신애양을 끌고 공사중지중인 건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신애양의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 신애양이 소리를 지르며 결사적으로 반항하자 학범이는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강박적으로 그녀를 끌고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신애양은 완강하게 저항하며 옷을 벗으려고 하지 않았다. 학범이가 완력으로 옷을 벗기면서 덮쳐들자 신애양은 “녀자호신술”로 끝까지 저항하며 최후의 보루를 지켜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목적을 달성할수 없게 된 학범이는 칼을 빼들고 을러멨다.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버릴테다!” 하지만 신애양은 굴함없이 늑대와 싸웠다. 신애양을 굴복시킬수 없게 된 학범이는 마침내 늑대의 본성을 드러내 칼로 신애양의 복부를 사정없이 들이찔렀다… 사흘도 안되여 오학범은 쇠고랑을 찼다. “왜서 라신애양을 죽였는가”라는 경찰들의 질문에 “그녀가 끝까지 반항했기때문에 죽였습니다”라는 대답이 범인의 입에서 나왔다. 그말을 전해들은 신애양의 모친 차씨가 신문사로 달려와 최수암기자를 찾았다. “절 찾았습니까?” 차씨는 자기앞에 나타난 최수암기자를 보고 다시 한번 따져물었다. “자네가 최수암기자유?” “예, 제가 최수암기자인데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차씨는 다짜고짜 최수암기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내 딸을 물어내! 내 딸을 물어내!”하며 울며불며 야단쳤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최수암기자가 영문을 몰라 따져묻자 차씨는 “네놈이 신문에 그 무슨 ‘녀자호신술’인지 나발인지 하는 글을 써냈기에 내 딸이 잘못됐다”면서 대성통곡했다. 라신애양은 그 당시 최수암기자의 글을 어머니한테 보이면서 “엄마, 만약 내 앞에 늑대가 나타나면 난 녀자호신술로 대적할테야”라고 호기스레 말했다는것이였다. 최수암기자는 탄식하면서 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늑대들의 앞에서 녀자호신술로 자기몸을 보호하는것은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범인이 폭력을 사용하고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엔 저항을 포기하는것이 명지한 처사이다. 이건 절대 비겁한 일이 아니다. 녀성에게 있어서 정조는 매우 소중한것이지만 생명은 정조보다 더 귀중하다. 이런 정황에서 정조를 지켜내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다. 늑대들에게 당한 일부 녀성들은 과중한 심리부담을 갖고 자신을 괴롭히고있는데 강간은 녀성의 잘못이 아니다. 때문에 몸이 더럽혀졌다는 생각은 버리고 떳떳하게 머리를 들고 다녀야 한다. 육체상 정신상에서 녀성들의 건강을 해치는 늑대들은 마땅히 호되게 족쳐야 한다. 하지만 족치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족쳐도 새로운 늑대들이 끝없이 나올테니깐. 하기에 늑대들의 번식을 방지하자면 청소년들에게 법제교양과 함께 성교육을 착실하게 하여 올바르고 건전한 성도덕관을 심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건강한 심리로 건실하게 성장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1998년 5월)
47    한 녀인의 눈물 댓글:  조회:3948  추천:1  2014-11-01
한 녀인의 눈물   김희수   그 낯선 사나이가 또 나타났어요. 제가 아들 창호를 학교에 보내려고 문을 열었을 때 저의 집을 기웃거리며 살피던 그 사나이는 도적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화뜰 놀라며 황급히 물러갔어요. 화상을 입은 얼굴이 불그데데하고 거무죽죽하게 얼룩얼룩한 모습이 여간만 험상궂지 않았어요. 벌써 사흘째 아침마다 도적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기여들어 두리번거리는 품이 도적놈이 틀림없었어요. 저의 치부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터라 그 사내가 십중팔구는 저의 재물을 노린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엉큼한 사내들이 가끔 방중에 문을 두드리는 시달림도 용케 이겨낸 저는 별로 겁나지 않았어요. 그러데 아들애의 신상에서 일이 벌어지리라곤 천만 뜻밖이였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창호의 손엔 놀이감권총이 쥐여져있었고 책가방엔 새 필통과 새 학습장이 들어있었으며 호주머니엔 그애가 가장 즐겨먹는 대추가 불룩하게 차있었어요. “창호야, 너 이걸 어디서?” “어떤 아저씨가 줬어요. 영 무섭게 생긴…” “뭐라구?!” 순간 가슴이 섬찍해지며 불길한 예감이 파고들었어요. 그 험상궂은 사나이가 아들애를 유인하여 랍치하려는게 아닐가요? 삽시에 근심과 걱정이 가슴속에서 첩첩한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저는 저의 생명보다 귀중한 창호를 가슴에 꼭 껴안았어요. 아들을 위해 전 시집도 가지 않고 10년세월을 굳세게 살아왔어요. 실로 돌이켜보기에도 힘겨운 추억, 가슴아픈 추억, 고통스러운 추억이지요. 어머닌 저를 낳고 난산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진 이듬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의지가지없는 고아인 저를 룡암골의 바보아들을 둔 량주가 키워줬어요. 이처럼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저에게 하느님은 가혹하게도 소아마비후유증에 쌍지팽신세를 져야 하는 시련까지 안겨주었어요. 다행히 양부모가 저를 살뜰히 대해주고 뒤집오빠 춘남이가 따뜻한 손길을 뻗쳐주었길래 저는 삶의 용기를 가질수가 있었어요. 소꿉동무로 함께 자란 춘남오빠는 늘 보호자로 되여 저와 바보오빠를 업신여기는 애들을 혼내주었어요. 저는 이런 춘남오빠가 미더웠고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히 그에게 호감이 갔어요. 근육질이 탄탄한 의젓한 총각으로 자란 그에게서 전 이성의 강렬한 흡인력을 느꼈어요.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애써 털어버렸어요. 춘남오빠가 종전과는 달리 절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간 그날은 정말 꿈과 같았어요. 춘남오빠는 청춘의 정열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손을 꼭 잡고 고백하는것이였어요. “금자! 꽃인듯 꽃보다도 어여쁘고 달인듯 달보다도 환한 금자! 아름다운 금자, 선녀같은 금자, 내 각시가 되여주오!” 전 가슴이 막 활랑거리며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껴었어요. 이어 춘남오빠는 저를 품속에 와락 끌어안고 마구 키스를 퍼부었어요. 전 지나친 흥분으로 어깨를 들먹였어요. 우리의 사랑은 정말로 달콤했어요. 춘남오빠에게 처녀를 잃었을 때 전 울었어요. 웬 영문인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더군요. “춘남오빠, 변하면 안돼요. 네? 절 버리고가면…”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요! 내가 금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거요!” 춘남오빠는 손수건을 꺼내 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저를 꼭 껴안았어요. 전 춘남오빠의 품에서 행복을 느꼈고 미래의 희망을 내다보았어요. 열광적인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 시간가는줄 모르던 저는 어느날에 배속에서 새 생명이 꿈틀거리고있음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또 잇달아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했어요. 양부모는 저를 민며느리로 데려왔다면서 바보아들과 잔치날까지 정해놨어요. 잔치를 사흘 앞둔 날밤에 저는 늘 만나던 장소에서 춘남오빠를 만났어요. 춘남오빠는 저를 꼭 끌어안고 미칠듯이 키스를 퍼부었어요. 가슴속에서 근심이 여울치고있는 저는 그럴 여유가 없어서 춘남오빠를 살며시 밀쳤어요. “오빠, 어떻게 해요? 이제 잔치날이 막 닥쳐오는데…” “글쎄, 골치아픈 일이요.” “아이참, 우리 둘이 결혼하면 되잖아요? 전 당장 오빠네 집에 가서 살겠어요!” “허참, 결혼이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이요?” “그럼 무슨 방법이 있나요?” “글쎄, 낸들 무슨 방법이…” 춘남오빠는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아댔어요. 저는 주대가 없는 그가 얄미워났어요. 전 그의 입에서 담배대를 확 나꿔채여 저만큼 던져버렸어요. “배속의 아이는 어떻게 해요?” “떨궈버리우!” “뭐라구요?” 전 저의 귀를 의심했어요. 그의 입에서 주저없이 이런 말이 튀여나오다니? “왜 떨궈비리겠어요? 우리 결혼하면 해결될 일인데…” “금자, 우린 결합될수 없소!” “왜요?” 우리 부모는 장애자며느리를 삼을수 없다오!” “네?!”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땅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환멸의 비애가 가슴에 차고넘쳤어요. 스무살 처녀의 순정이 이렇게 한줄기 연기로, 한줌의 재로 되여버렸어요. “제가 장애자이기때문이라구요?” 울분이 가슴가득 괴여올랐어요. 피눈물이 솟구쳤어요. “그래요. 전 장애자예요! 하하하! 오빤 제가 장애자인걸 몰랐어요? 저도 그만 잊고있었군요. 하하하! 전 장애자예요!” 그렇게 히스테리적으로 웃으면서 저는 춘남오빠와 헤여졌어요. 그날밤에 저는 아무도 모르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준 룡암골을 떠나 도망의 길을 다그쳤어요. 그러다가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저는 시가지의 어느 시계방앞에 쓰러졌어요. 마음씨 고운 시계방의 난쟁이가 저를 구하여 조수로 받아주었어요. 저는 지나간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착실히 일만 했어요. 제가 출산했을 때 난쟁이는 영양가있는 음식을 먹여준다, 빨래를 해준다 하며 정성껏 시중을 들었어요. 전 인간세상의 따사로움을 한껏 느꼈어요. 난쟁이는 아이를 기막히게 고와했어요. 짬만 있으면 애를 데리고놀았어요. 애가 세살되던 해의 어느날에 저는 난쟁이가 애를 데리고놀면서 하는 말을 엿듣게 되였어요. “창호야, 아저씨 곱니?” “곱다.” “엄마, 곱니?” “곱다.” “나도 창호의 엄마가 곱다. 아저씨가 창호의 아부지가 될가?” “아부지? 해해. 아부지! …” 난쟁이는 창호의 보동보동한 볼을 빨아주었어요. 저는 더 보고만 있을수 없어 아이를 빼앗아가지고 거실로 돌아갔어요. 그날밤에 저는 오만가지 착잡한 생각에 빠져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 일이 있은후 저와 난쟁이사이는 어색해졌어요. 난쟁이는 더는 아이한테 접근할 엄두를 못했어요. 전 어쩐지 그가 측은해났어요. 마음씨 곱고 손재간이 출중한 그가 생리적결함때문에 여태껏 로총각으로 있었어요. 전 그와 가정을 이루려고 작심했어요. 그런데 우리의 아름다운 연분이 맺어지기도전에 그가 인간세상과 하직할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난쟁이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난후 저는 시계수리를 그만두고 옷장사에 나섰어요. 끈질기게 한덕에 원근에 이름난 치부장원이 되였더니 청혼자도 많았어요. 하지만 전 아들을 위해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아버렸어요. 아들은 저의 생명보다도 귀중해요. 그런데 지금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아들을 해치려들고있으니 제가 어찌 불안하지 않을수 있겠어요. “창호야, 그 무섭게 생긴 사람이 널 보고 어찌던?” “이름과 나이를 물어봤어요.” “이후부터 주의해야 한다. 낯선 사람이 주는 물건은 받지 말고. 알겠니? 래일부터 엄마와 함께 학교가자. 돌아올 때도 마중갈께.” 다음날 아침에 저는 아이와 함께 학교가는 길에 나섰어요. 거리에는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과 오가는 차량들로 붐비였어요. 아이는 저의 앞에서 재롱을 피우며 깡충깡충 뛰여갔어요. 바로 그때 저는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멀지 않은 앞에 서있는것을 발견했어요. 학교가는 아이의 길목을 지키고있어던게 틀림없었어요. 아이는 어느새 저한테서 멀어져 그 낯선 사내쪽으로 가까이 가고있었어요. “창호야!” 제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던 아이는 다가오는 자전거를 피하여 길복판에 들어섰어요. 공교롭게도 그 시각에 해방패자동차 한대가 아이를 향해 질주해왔어요. 쏜살같이 덮쳐드는 자동차앞에서 혼비백산한 아이는 어쩔바를 몰라 가만히 서있기만 했어요. “창호야, 창호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 눈앞이 캄캄했어요. 아이가 자동차밑으로 빨려들어갈 아슬아슬하고 위기일발의 순간이였어요. 갑자기 그 험상궂게 생긴 낯선 사나이가 번개같이 달려가며 아이를 밀어던졌어요! 아이는 구원되였어요. 하지만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는 영영 일어나지 못했어요. 아이를 해친다고 의심했던 사나이가 아들을 구하다가 생명을 바쳤어요. 후에 그 사나이의 호주머니에서 저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편지가 나왔어요. 그 편지를 펼쳐든 저의 손은 심하게 떨렸어요. “금자! 손꼽아 세여보니 꼭 십년이요. 십년전에 금자를 차버린 내가 십년후인 오늘 버림받은 몸이 되였소. 뜻밖의 사고로 화상을 입은 나를 안해는 헌신짝같이 차버렸소. 응당한 보응이요! 나는 신문에 실린 금자의 사적을 읽고 금자가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그처럼 꿋꿋이 살아가고있다는것을 알았소. 금자는 장애자가 아니요. 진정한 장애자는 나같은 인간이요. 나는 아이가 나의 아이라는것을 확인했으나 아이앞에서 아버지라고 밝힐 면목이 없었소. 나는 아버지로 될 자격마저 없는 인간이요. 아이와 더물어 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오. 영원히 용서받을수 없는 춘남으로부터.” “애 아버지!” 저는 피타게 부르짖었어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1990년)  
46    엄마의 눈물 댓글:  조회:3888  추천:5  2014-10-01
엄마의 눈물   김희수     훈이야, 엄마가 왔다. 서울에서 심양, 다시 심양에서 연길,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엄마는 널 보러 왔단다. 네가 보고싶어 1년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왔단다! 공항에서 나온 경자는 한달음에 아들한테로 달려가고싶은 마음이였다. “누나!” 마중나온 동생 경수가 목메여 부르며 달려와 얼싸안았을 때 경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동생이 짐을 받아들고 택시에 올라탔을 때에야 경자는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는 어떠시냐?” “그냥 그렇소.” “호, 네가 고생이구나.” 경자의 어머니는 2년전에 반신불수가 되여 운신을 못했다. 명의란 명의는 다 찾아보고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으나 지금까지 그 본새로 차도가 없었다. 경수는 그런 어머니를 돌보느라고 대학교기숙사에도 들지 못하고 집에서 통학하고있었다. “훈이는…” 경자는 가장 알고싶은 소식을 나중에야 물었다. “그애가 제 애비를 찾아간 후에는 소식을 모르고있소. 나도 공부와 집일이 바빠서 그애를 찾아가보지 못했소. 미안하오. 누나…” 경수는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친정집에 도착한 경자는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나서 짐도 풀지 않고 총망히 택시를 잡아타고 철남으로 향했다. 단층집들이 늘어선 낯익은 골목에서 내린 경자는 총총걸음으로 다가가더니 어느 한 집문앞에 멈춰섰다. 전남편과 함께 여러해를 살던 집, 남들처럼 아기자기하게 살았더라면 그녀는 결코 이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을것이다. 전남편은 지독한 술주정뱅이에 도박군이였다. 로임한푼 내놓지 않고도 끼니마다 음식타발하며 쩍하면 녀편네한테 손찌검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경자는 아이를 위해 불평 한마디 없이 참고 지냈다. 하지만 남편의 행패는 점점 더 심해졌다. 더는 참을수 없게 된 그녀는 결국 천정에 피해가서 리혼을 제기했다. 그런데 화불단행이라고 경자가 정식으로 리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오는 날에 청상과부로 고생속에 살아온 친정어머니가 몸져눕게 되였다. 난전을 벌려 금방 대학에 입학한 경수의 뒤를 대주던 어머니가 운신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남동생의 뒤바라지, 어머니의 치료비, 아들의 학비 등 경제부담과 가정의 중임이 가냘픈 경자의 어깨에 지워지게 되였다. 어머니의 난전을 이어받은 그녀는 목쉬도록 사구려를 웨쳤으나 그 수입으로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대기에도 태반부족이였다. 날이 갈수록 빚더미만 앃일뿐. “여기서 아무리 버둥거려도 살구멍이 있을것 같지 않다. 출국하면 돈을 번다던데…” 어느날, 어머니의 병문안을 온 이모가 한숨섞인 어조로 말했다. 출국? 경자는 한가닥 희망의 빛을 보는듯 했다. 그래서 사처에 연줄을 달아보았으나 남들에겐 활짝 열려있는 출국의 문이 그녀에게만 꽁꽁 닫겨져있는것 같았다. “지름길이 있단다.” 두번째로 병문안을 온 이모가 경자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 지름길이란 한국인에게 시집가는 길이란다. “싫어요!” 처음에 단호히 거절하던 경자는 이모의 거듭되는 설복에 넘어가 마침내 머리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이 한몸 내 던져 가족을 살리자!” 이것이 이를 악문 그녀의 비장한 결심이였다. 얼마후 이모가 결혼상대를 물색해왔다. 교통사고로 마누라를 잃은 50세의 한국사장님이란다. “나이가 좀 많지만 사람이 진국이란다. 네 사진을 보더니 마음에 드는 처녀라며 흡족해하더라.” “처녀라니요?” “난 그 사람에게 네가 처녀라고 소개했단다.” “이모두 참, 사실대로 리혼녀라고 할게지 왜 거짓말을 했나요?” “리혼한 녀자라면 아이가 있는것이 드러날거야. 그 사람은 몸의 순결여부는 따지지 않지만 아이가 있는 녀성은 싫다고 했단다.” “그렇다고 어찌…” 그러나 경자는 그 한국인과 대면할 때 아이를 이모집에 숨겨놓고 울며겨자먹기로 처녀행세를 했다. 그녀한테 반한 한국사장님은 “어머니의 치료비와 동생의 학비에 보태오”라고 하면서 목돈을 내놓았다. 가짜로 미혼공증을 하며 결혼다보니 남들보다 갑절이나 되는 거액의 돈을 9개월이나 되는 마라손식수속에 밀어넣고 마침내 비자 내고 항공권을 손에 쥐게 되였다. “훈이야, 엄마가 먼데 간단다.” 한국신랑 몰래 아들애와 작별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샘솟듯 흘러내렸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인차 올게!” “엄마, 가지 마!” 그때 눈물이 글썽해서 애원하며 매달리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그녀의 눈앞에 삼삼하다. “훈이야, 엄마가 왔단다. 엄마는 1년을 10년맞잡이로 밤낮 너를 그려왔단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치면서 경자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것은 낯선 사내였다. “저, 이 집 주인은요?” “무슨 일입니까? 내가 이 집 주인인데…” “네?! 그럼 이 집에 있던…” “아, 원 주인말입니까? 그는 한달전에 이 집을 나한테 팔고 북대마을에 있는 자그마한 세방을 얻어 이사를 간다고 하던데요.” “네?!” 낯선 사내가 문을 닫자 실망한 경자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옆집문이 열리면서 “이게 훈이에미 아니요?”하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이웃에서 사이좋게 지내던 강녀인이였다. “훈이 아빠는 왜 집을 팔고 세방으로 이사를 갔는지 아시나요?” 강녀인의 집에서 인사말이 오간 뒤 경자가 물었다. “에그, 훈이애비는 사람질을 못하다가 죽겠습데. 곰같은 나그네들이 와서 도박빚을 물라는 성화에 못이겨 집을 팔았다오.” “아니, 제가 부쳐보낸 돈 2000딸라도 있겠는데요.” “아이구, 그런 돈이 있었길래 글쎄 한때는 부지런히 술집녀자들을 끌어들였지. 훈이에미도 그렇지, 그 버릇을 알면서 그 나그네 손에 돈을 쥐여줄건 뭐요?” “글쎄. 나도 훈이를 위해서…” 리혼할 때 경자는 아들을 데리고 몸만 빠져나왔다. 집이고 가장집물이고 일체 재산은 모두 전 남편한테 줘버리고 빈몸으로 나왔지만 지옥에서 빠져나온듯 숨이 활 나오면서 살것 같았다. 경자가 한국에 시집간지 반년남아 되였을 때 아이는 외할머니의 대소변냄새가 싫었던지 아버지한테로 가겠다고 했다. 그때 경자는 한국에서 남편 몰래 전 남편과 전화로 통화하면서 부탁했다. 아이를 잘 보살펴달라고. 그랬더니 전 남편은 자기는 술버릇과 도박버릇을 깨끗이 떼고 엄마없는 불쌍한 아이만 보살피는 일에 전념하고있다고 했다. 그저 경제적으로 힘이 미약한것이 한스러울뿐이라고 부언하면서. 경자는 물론 그 말을 다는 믿지 않았지만 범도 제 새끼를 중히 여긴다는데 사람가죽을 쓴 전 남편이 간대로 그러랴싶어 훈이의 학비와 생활비로 쓰라고 2000딸라를 부쳐보냈던것이다. 그런데 제 새끼의 생활비를 술집계집의 사타구니에 밀어넣다니?! 그것도 부족해서 집까지 도박에 말아먹다니?! 그런 망나니와 함께 있은 훈이가 근심되였다. “그 나그네 훈이를 잘 보살피던가요?” “말두 마오. 한달인가 같이 있다가 제 할미한테 쫓아버렸다오.” “네?!” 흥안의 시골에서 살고있던 아이의 친할머니는 오금을 바로 쓰지 못하여 바깥출입도 겨우하는 80세의 로인이였다. 그런 로인이 어떻게 아이를 잘 돌볼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먼곳에서 학교는 어떻게 다닌단 말인가? “내 전번 주일에 시내에서 그애를 만났는데 뻐스를 탈 돈도 없어 낡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고 하던데 불쌍해서 못보겠습데.” 경자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경자는 얼굴을 돌리고 강녀인의 집에서 나왔다. 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깔려있었다. 마음같아서는 흥안으로 달려가고싶었으나 친정어머니가 기다릴것 같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경자는 아침을 대충 먹고 훈이가 다니는 학교로 향했다. “엄마, 빨리와. 난 엄마가 보고싶어!” 한국에서 남편 몰래 전화로 통화할 때 아들애가 부르짓던 애절한 음성이 또다시 귀전에 들려온다. 아들애가 당금이라도 “엄마”하고 부르며 달려올것만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훈이가 입원했어요.” 학교에서 만난 담임선생님의 말에 경자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 학교에서 갑자기…집에 알렸지만 훈이의 할머니는 오금이 굼뜨지, 아부지, 어머니는 찾을수 없지, 훈이의 외가집에 알리자고 해도 주소를 모르지…” “훈이가 무슨 병으로…” “그애가 글쎄 학교쓰레기통에서 변질된 음식을 뒤져먹고…식물중독에…” 경자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아이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애들이 먹다버린 찌꺼기를 주어먹었을가?! 애비, 에미가 퍼렇게 살아있는 애가 거지로 되여버리다니! “훈이의 증세가 어때요?” “위험하대요.”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담임선생님이 안내하는 병실로 달려들어가는 경자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훈이야, 이 에미가 모질어 널 이지경으로 만들었구나.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너만은 버리지 말아야 했어. 흐흑…훈이야, 눈뜨고 봐, 엄마가 널 보러 왔단다!” 한 어머니의 처절한 울부짖음에 하늘도 슬퍼서인지 “우르릉 꽝!”하고 통곡했다… (1997년)   
45    오묘한 미소 댓글:  조회:3505  추천:6  2014-09-21
오묘한 미소   김희수     지금은 파산되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식료품공장은 경기가 괜찮은 때였다. 그때 마경남이란 청년이 그 공장에 새로 전근돼 왔는데 인사과 양과장이 그들 데리고 공장장사무실로 찾아갔다. “저…이 동무가 새로 온…” 양과장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자 강공장장은 신문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언짢은듯 말허리를 잘랐다. “사람두, 아무데나 배치할 일이지 그런 자질구레한 일까지 나한테 보고할건 뭔가?” “저도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혹시…” “혹시”라는 말에 강공장장이 신문을 내려놓고 머리를 들어보니 키는 전보대 같고 쩍 벌어진 어깨에 쇠기둥 같이 튼튼하게 생긴 젊은이가 눈앞에 서있지 않겠는가. “오, 하늘이 나한테 장수를 내려보냈군. 원료를 운반하는 왕도깨비가 힘꼴을 쓸 사람을 달라구 자꾸만 우는소리를 하는게 골치 아파 죽겠더니 마침 해결됐군. 하하하!” 강공장장이 회색이 만면하여 호탕하게 웃자 눈치 빠른 양과장이 마경남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렸다. “강공장장께서 동무를 상하차공으로 배치했으니 어서 감사를 드리게.” 그러자 꺽다리 마경남이가 강공장장에게 허리를 굽석하며 인사드렸다. “감사합니다! 강공장장동지! 집에선 절 내놓고 근심이 태산 같은데 이번 편지에 공장장께서 절 따뜻이 보살펴주신다고 여쭈겠습니다.” “동무의 부모는 어디서 사업하오?” 거구의 청년이 하도 곰살갑게 인사하는 바람에 강공장장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부모님 두분께선 모두 주정부에서 일봅니다.” “뭐?! 주정부…” 강공장장과 양과장이 이구동성으로 되뇌이며 놀란 눈길을 마주쳤다. “마동문 왜 그 좋은 연길시에서 여기 룡정으로 왔소? 부모님들이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줄텐데…” “전 20살입니다. 외국에선 만18세만 되면 부모한테 의지하지 않고 자립한다는데 우리라구 왜 그렇게 못하겠습니까?” “장하오! 포부가 있소! 마동무도 그렇지만 마동무의 부모님들은 실로 고상한 분들이요. 특수화를 부리지 않고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니…” 강공장장이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양과장도 맞장구를 쳤다. “그분들의 자제를 우리가 마땅히 돌봐야 합지요. 저…마동무, 무슨 곤난이 있으면 강공장장 앞에서 툭 털어놓고 말해보오. 다 해결해준다니까.” “뭐, 곤난이 없습니다. 절 빨리 왕도깨비인지 하는 그분한테 맡겨 일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되자 난처하게 된 강공장장은 눈길을 양과장에게 돌렸다. “에, 양과장, 이렇게 하기오. 지금은 재능에 따라 사람을 쓸 때요. 이 마동무는 전도가 유망한 인재이니 차차 좋은 자리에 안배하도록 하고 지금은 잠시 보위과에…” 이렇게 되여 막일을 할번했던 마경남이가 공장에서 상류에 속하는 보위일군이 되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그런 좋은 일이 오래가지 못했다. “깜짝 속았습니다!” 어느날, 양과장이 허둥지둥 공장장사무실로 뛰여들었던것이다. “주정부에서 사업한다던 마경남의 부모가…” 알고보니 마경남의 부모가 무슨 큰 간부인것이 아니라 주정부에서 보일러일군, 청소일군으로 막일을 하는 로동자였던것이다. 마경남이를 간부로 발전시킬 궁리를 하고있던 강공장장은 너무도 뜻밖의 일에 놀랐다. “냉큼 마경남이를 불러오게!” 강공장장은 분하여 씩씩거리면서 탁상을 탕! 하고 내리쳤다. 그랬지만 부리나케 달려나갔던 양과장이 이윽고 마경남이를 앞세우고 들어섰을 때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 마동무, 지금하는 일이 힘들지 않소?” “뭐 크게 하는 일이 없이 빈들빈들 놀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허허,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 일이 마동무의 신체에 알맞지 않는단 말이요. 인재랑비지. 지금은 재능에 따라 사람을 쓸 때이니 마동무에겐 아무래도 왕도깨비 밑에서 쌀마대랑 메는 일이 적합할거요!” 강공장장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고 마경남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을 잘하라고 고무해주었다. 그때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마경남은 강공장장의 미소에 담긴 오묘한 함의를 알수 없었다. (1996년 12월)    
44    주먹이 운다 댓글:  조회:3470  추천:0  2014-09-04
주먹이 운다   김희수     나는 친구 금송이를 6년만에 다시 만났다. 그동안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고왔으니 때를 쑥 벗었으리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머리와 수염은 얼마동안이나 깎지 않았는지 머리는 머리태를 땋아도 되겠고 얼굴은 온통 털투성이였다. 초췌한 얼굴에 말없이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키는 그는 5년전에 희망에 부풀어서 한국으로 떠났던 생기발랄한 금송이가 아니였다. 무슨 일이 있었을가? 사기라고 당했나? 아니면 그의 집에 무슨 변고라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나는 청도에 가서 3년간 있다가 방금 연변으로 돌아왔기때문에 그이 신변에서 생긴 일을 알수가 없었다. 내가 하도 답답해서 따져묻자 금송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아보자고 한국으로 떠났어. 나만 잘 사는게 아니라 안해와 아이를 위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자고 친척의 돈을 빌려가지고 한국으로 떠났어. 내가 부지런히 일한덕에 1년만에 빚을 다 갚았어. 한국에서 천대받고 무시당해도 전화에서 들려오는 안해와 딸애의 목소리만 들으면 다시 힘이 났어. 빚을 다 갚은후 나는 돈을 버는 족족 안해한테 부쳐보냈어. 안해가 ‘몸을 돌보면서 일하세요. 힘들면 그만 돌아오세요’라고 했지만 나는 한해 또 한해 버티면서 일했어. 그렇게 일만하다가 나는 그만 어깨를 상했어. 중상은 아니였지만 힘든 일을 더는 할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이만큼 벌었으면 널찍한 집도 사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돈도 넉넉하겠다는 계산을 학 귀국하기러 했어. 나는 안해가 근심할가봐 상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했지. 그런데 안해는 기뻐하는 목소리가 아니였어. 나는 안해가 어디 불편한데가 있어서 그라나보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누가?!” 금송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맥주잔을 쏘아보았다. 맥주잔이 원쑤이기라도 한듯이… “연길공항에 도착하여 출구로 나왔지만 마중나와야 할 안해는 보이지 않았어. 너도 알다싶이 우리 부모와 형제자매는 모두 훈춘에 있다보니 안해가 하는 일은 알지 못하고있었어.” 금송이는 맥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6년만에 귀국했는데 맞아주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혼자서 집을 찾아가보니 글쎄 집은 비여있고 문은 잠겨져있었어. 이웃에 물어보니 안해는 전날에 짐을 꾸려가지고 어디론가 갔다는것이였어. 훈춘의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더니 안해가 글쎄 내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열흘후에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딸애를 거기에 맡겨놓고 어디론가 갔다는거야.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여기저기 뛰여다니면서 처가집과 안해를 아는 사람에게 물어도 보고 전화도 걸어보았어. 그러나 모두 안해의 행방을 모른다는것이였어. 그러다가 길에서 안해의 친구를 만나게 되였어. 그녀는 나를 보자 당황해하는 눈치였어. 안해의 행방을 물으니 처음에는 모른다는것이였다. 내가 덮쳐들어 멱살을 잡으며 따져물어서야 실토정을 했는데 안해가 그동안 외간사내와 몰래 동거를 하다가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내와 함께 도망쳤다는거야. 내가 부쳐보낸 돈을 몽땅 가지고말이야!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있어? 어디 있는가 말이야?!” 듣고보니 정말로 기막힌 일이였다. 그의 안해가 어디로 갔는지는 누구도 모른다고 한다. 남편이 피땀으로 번돈을 한푼도 남기지 않고 몽땅 털어가지고 새끼마저 버리고 간 녀인! 정말 쌍년이야! “이게 무슨 놈의 세상이란 말이냐? 개코같은 이놈의 세상을 주먹으로 그냥!” 주먹을 불끈 틀어쥔 금송이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면서 울고있었다.    
43    저승에서 만난 할아버지 댓글:  조회:3335  추천:1  2014-04-04
저승에서 만난 할아버지   김희수     수돌이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이 세상에서 더는 살고싶지 않았다. 극도의 절망에 빠진 그는 어느날밤, 독약을 먹고 자리에 누워 죽기를 기다렸다. 황천길에서 그는 힘들이지 않고 저승에 떨어졌다. 참 이상했다. 머리를 들어보니 대청에 앉아있는 염라대왕이 바로 그가 일곱살나던 해에 세상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넌 누군데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거냐?”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의 손자 수돌입니다!” “네가 수돌이라구?  허허허, 네가 벌써 어른이 됐구나! 몇살이냐?” “서른하고도 세살을 더 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젊은 나이에 이곳에 왔느냐?” “인간세상에서는 살 재미가 없었습니다.” “밝은 세상이 싫어서 이 어두운 세상으로 오다니? 무슨 말못할 고충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네가 이렇게 떠나오면 인간세상에 남아있는 네 애비에미는 얼마나 속타하겠으며 네 안해와 자식들은 누굴 믿고 살아간단말이냐?” “제가 이렇게 죽으면 아버지, 어머니는 시름을 덜겁니다. 그리고 전 미혼이여서 안해도 자식도 없습니다.” “뭐라구? 서른살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다니! 그럼 약혼한 녀자라도 있겠지?” “장모님 배속에나 있겠는지요.” “보아하니 넌 이 할배를 닮아 키도 구척이고 생김새도 의젓한데 아직 장가를 안간걸 보니 눈이 너무 높아 어지간한 처녀들은 눈에 차하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장가를 안간게 아니라 못간겁니다. 저한테 시집오자는 녀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라소니 같은 녀석! 서른살이 넘도록 녀자 하나 나꾸지 못한단말이냐? 네 이 할아버지는 스무살전에 벌써 시집오자는 녀자들이 너무 많아서 누굴 결혼상대로 정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맸단말이다. 그리고 네 애비도 총각때 네 에미 말고도 시집오자는 녀자가 수두룩했단 말이다. 그런데 넌 조상님들이 부끄럽게 서른살이 넘도록 장가를 못가다니!” “할아버지,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마을엔 처녀라곤 그림자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처녀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세상을 뜨던 그해까지만 해도 네 또래의 계집애들과 아래웃또래의 계집애들로 마을은 떠들썩했는데 그 숱한 계집애들이 모두 어딜 갔단말이냐?” “모두 도시나 외국으로 시집을 갔거나 돈벌이를 떠납답니다.” “미친년들이구나! 농사는 안짓고 쯧쯧…그러면 이웃마을의 처녀를 데려오면 될게 아니냐?” “이웃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서남북 어디나 시골엔 처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너말고도 장가 못간 로총각들이 많겠구나.” “부지기수입니다. 전 그래도 로총각중에서 어린축에 속합니다. 근식형이랑 성주형이랑 만철형이랑 무도 마흔살이 넘도록 녀자 손목도 잡아보지 못한 처지입니다. 할아버지도 아들 5형제를 낳았다고 뽐내던 살구나무집을 알겁니다. 그집 막내가 저와 동갑이고 맏형이 마흔다섯살인데 그 5형제가 모두 장가를 못가고있답니다.” “아이구, 기막힌 세상이구나. 그럼 네형 삼돌이도 장가를 못간게 아니냐?” “삼돌형은 다행히 아이 둘달린 과부한테 장가를 들었습니다.” “뭐라구? 삼돌이가 어디 병신이라구 과부한테 장가를 든단말이냐? 그것도 아이 둘이나 달린…아이구!” “그런 자리라도 차려지면 복인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과부들도 시체를 따라 모두 도시나 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뿐만아니라 가정이 있는 젊은 녀자들도 도시나 외국으로 떠났고 젊은 남성들도 그 뒤를 따르고있습니다.” “젊은놈들이 모두 떠나면 농사는 누가 짓는단말이냐?” “농사만 지어 언제 돈을 벌겠습니까? 저와 동갑인 뒤집 일국이는 외국나들이 몇번에 큰돈을 벌더니 꽃 같은 색시를 맞아서 도시아빠트에서 보란듯이 살고있습니다.” “너희들 시골총각들은 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처녀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모양이구나. 후, 가난이 원쑤구나! 돈이 원쑤구나!” 길게 탄식하던 할아버지는 다시 수돌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너도 돈을 많이 벌면 일국이처럼 색시를 얻을수 있을게 아니냐?” “돈을 번다는게 어디 식은죽먹긴줄 압니까? 지금 세월에 농사만 지어 번신할수 없고 남들처럼 출국하자해도 뜻대로 안되지. 도시에 들어가 삼륜차를 한해동안 끌어보았지만 먹고나니 남는게 없었습니다. 인젠 사른세살이 됐는데도 녀자의 살맛이 어떤지조차 모르니 무슨 사는 멋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개코같은 인간세상을 떠나서 여기로 온겁니다.” “이 뼈없는 놈아! 그만한 좌절앞에서 삶의 용기마저 잃다니! 네가 일국이보다 못한게 뭐냐? 넌 일국이보다 더 큰 부자로 될수 있고 일국이보다 더 예쁜 색시를 맞을수 있다는 그런 포부를 품고 노력해보란말이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만 저에게 손오공 같은 신통력도 없는데 무슨수로 부자가 될수 있겠습니까? 제가 벌써 서른하고도 셋인데 이제 돈을 벌어서 어느 천년에 부자가 되겠습니까? 늙어죽을 때 부자가 되여 뭘 하겠습니까? 좋은 세월을 다 놓치고 오금을 못 쓸 때 장가를 가겠습니까? 글쎄 3~5년 고생해서 큰 부자가 될수 있다면 죽을둥살둥 모르고 해보겠습니다만…” “이 등신같은 놈아! 너처럼 ‘언제면 하늘에서 큰돈이 떨어지겠는가, 언제면 벼락부자가 되겠는가’고 백일몽을 꾸며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보내다간 40~50살이 되여도 그 모양이요, 60~70살이 되여도 그 꼴일테지. “대부유천 소부유근”이라고 세상에 처음부터 부자가 어디 있겠느냐? 부지런하면 작은 부자는 될터이고 작은 부자가 쌓이면 그게 곧 큰 부자가 도지 않겠느냐!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으니 부지런히 일하여 40~50살에 부자가 되여 장가들면 70~80살이 되도록 외톨이로 늙기보다 낫지 않겠느냐?” “지당한 말씀입니다. 할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고보니 눈앞이 밝아지고 힘이 막 솟습니다. 그런데 인간세상을 떠난 몸이여서…” “이제라도 늦지 않다. 네가 분투할 결심만 있다면 인간세상으로 보내주마. 기억해라. 저승에선 총각귀신을 안 받으니 부지런히 돈을 벌어 꼭 장가를 가야 한다는것을!” 염라대왕인 수돌이의 할아버지는 수돌이를 번쩍 들어서 공기돌 던지듯 힘껏 허공중에 올리던졌다. 수돌이는 우물안에서 밖으로 솟구치듯 온몸이 우로 자꾸만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어떤 산꼭대기에 닿았다. 수돌이는 사방이 너무나 눈이 부셔서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산아래로 허망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아앗!” 수돌이는 몽롱한 꿈속에서 깨여났다. 수돌이가 먹은 독약은 가짜였다. 신생한 수돌이는 꿈속에서 들었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내 꼭 부지런히 일하여 10년, 늦어도 20년후엔 부자가 되여 보름달처럼 환한 색시를 맞아드릴테야!” (1997년)  
42    련인절 소야곡 댓글:  조회:3992  추천:2  2014-02-12
련인절 소야곡/콩트이야기   김희수     또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왔다. 언제부터인지 중국에서도 성탄절이요, 련인절이요, 어버이날이요 하는 서구의 명절을 쇠기 시작했다. 구실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연변사람들이라 명절이라고 하면 닥치는대로 먹어댄다. 중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정인절(情人节)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련인절이라고 번역하여 부른다. 장걸은 나가 먹기가 싫어서 집에서 먹고 안해와 함께 털레비죤을 보고있다가 친구 최인철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야, 칭런제(情人节)인데 집구석에 들어박혀 뭘 하나? 빨리 나와서 함께 칭런제를 쇠자구.” “련인절? 허허, 마누라를 련인이라 할수 없으니 련인절을 어떻게 쇠겠어? 난 련인도 없는데…” “제기랄, 흥타령이네. 나처럼 마누라가 외국에 간 사람은 이럴 때 더구나 고독하다구. 잔말 말구 어서 나와. 난 지금 자네집 문앞에 와있다구.” 장걸이가 밖으로 나가니 기다리고있던 최인철이가 손을 잡아당겼다. “어디가 한잔 하자구.” “남자끼리 련인절을 쇠겠나? 동성련애라도 할셈인가? 자네 게이는 아니겠지?” “에이, 사람 놀리지 말게. 쌍쌍이 팔을 끼고 가는 련인들을 보면 부럽고 질투 나서 혼자서라도 한잔 하고싶은 심정이야.” “그럼 택시라도 부르지.” “이런 날은 걸어서 가자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련인절을 쇠는지 구경도 할겸.” 그들은 시대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광고판에 쓴걸 보니 칭런제를 발렌타인데이라고 하는군. 발음이 어려워서 딱히 뭐라고 하던지 잊었는데” “내 사전을 찾아봤는데 밸런타인데이(Valentine Day)가 올바른 표기야. 그런데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발렌타인데이라고 부르지. 또 어떤 사람들은 발랜타인데이, 바렌타인데이, 벨렌타인데이라고도 부르지.” 쌍쌍의 련인들이 다정하게 팔을 끼고 오가고있었다. 그때 최인철이 장걸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저 노랑머리가 자네 아들이 아닌가?” 최인철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한 노랑머리 사내아이가 제 또래의 소녀에게서 초콜릿을 선물받더니 둘이서 팔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가는것이였다. 아들이 틀림없었다. “아니, 저 녀석이?!” 이제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녀석이 련인절에 련애한답시고 날치는것이 한심했다. 장걸이가 저 쪽으로 사라지는 아들의 뒤모습을 바라보고있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돌아다보니 아는 친구였는데 어떤 녀자의 팔을 끼고 신나게 걸어오면서 손을 흔들고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떡거리면서 인사를 받자 그 친구는 녀자를 그 자리에 잠간 세워놓고 그한테로 다가왔다. 장걸은 그 녀자가 그의 안해도 아니고 그가 이전에 데리고 다니던 련인도 아닌것을 보고 웃으면서 물었다. “자네 련인절을 멋있게 쇠는구만. 어디서 또 새로운 녀자를 사귀였나?” “사귄게 아니라 세를 맡은거네.” “세를 맡다니?” 친구는 아무 술집에서 련인을 세준다는것이였다. 귀맛 당기는 소식인지라 장걸이와 최인철이 그 술집으로 달려가 보니 헛소문이 아니였다. 그들은 각각 한 녀자씩 세를 맡았다. 한시간에 50원이란다. 술집측에서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련인절에 짝이 없어 외롭게 지내야 할 독신들도 행복하게 련인절을 쇨수 있도록 하기 위해 림시련인을 빌려주는것입니다. 여기서 세를 주는 련인은 화류계아가씨가 아닙니다. 그녀들은 순전히 당신들을 동반하여 함께 거리를 거닐면서 한담이나 할뿐이니 도를 넘는 행동을 하지 말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즐거운 밤이 되십시오!” 말로는 독신들을 위한것이라고 하지만 련인을 세맡아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부남들이였다. 장걸과 최인철도 각각 자신들이 세맡은 “련인”의 팔을 끼고 서로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장걸이가 세맡은 녀자는 나이가 어려보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가운데서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나온 대학생처녀라는것을 알아냈다. 장걸은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우리는 림시련인이라해도 련인은 련인인데 키스라도 한번 해보면 안될가?” “어머, 안돼요!” “한번만 해봅시다!” 장걸이가 간절하게 요구하자 그녀는 마지못해 동의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딱 3초동안만 허락하겠어요. 그 이상은 절대 안돼요. 만약 1초라도 초과하면 110경찰을 부르겠어요.” 장걸은 그런 그녀가 너무 귀엽게 여겨졌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장걸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녀의 입술우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첫키스할 때의 짜릿하고 가슴설레이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한시간이 지나자 장걸은 그녀를 돌려보냈다. 지금쯤은 최인철도 끝났겠다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자네 벌써 끝났어? 난 이제 시작이야!” 핸드폰 저쪽에서 최인철의 말소리에 이어 녀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자네 지금 뭘하고있는거야?” “뭘하고있긴? 세맡아온 련인과 사랑의 밤을 보내고있지!” “아니, 그 녀자는 아가씨가 아니라고 했잖아?” “거야 둘이 하기 나름이지. 아니 이거 이 녀자가 벌써 벗고있네. 전화 끊어!” 장걸은 씩 웃었다. “녀석, 마누라 외국 보내구 외로워하더니 련인절을 제대로 쇠고있네. 난 가서 녀편네의 궁둥이나 만져야지!” (2004년 2월)  
41    처녀귀신 댓글:  조회:5815  추천:2  2014-01-19
처녀귀신/콩트이야기 김희수   외할머니는 현성에서 소문난 점쟁이여서 외가집은 날마다 신수를 점치러 온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앞날의 길흉을 알아보려고 찾아온 사람, 병들었거나 가정불화가 있어서 찾아온 사람, 물건이나 돈을 잃었거나 친인이 실종돼서 찾아온 사람…이런 사람들은 외할머니가 신선이기라도 한듯 돈을 내놓으며 애원한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한바탕 굿을 하고는 점괘를 던진다. 나는 과학기술일군인 박사아들을 둔 외할머니가 귀신놀음을 하는것이 이상해서 짬만 있으면 그 짓거리를 지켜보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른 아침에 곽향장과 그의 아들 곽재호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외할머니를 찾아왔다. “신선할머니, 귀신…귀신…” 곽향장은 목소리가 떨려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곽재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애걸복걸했다. “시…신선…하…할머니, 우…우릴…사…살려…주십시오!” “도대체 웬 일이우? 좀 천천히 말해보우.” 외할머니가 달래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한 곽씨부자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어제저녁에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술을 퍼마신 곽향장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는데 그때 웃층에 있는 곽재호의 방에서“앗”하는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곽향장이 잘못 들었는가 해서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다급히 계단에서 내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후 방문이 벌컥 열렸다. 곽향장이 놀라 일어서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곽재호가 경황망조하여 쏜살같이 달려들어오더니 이불을 뒤집어쓰는것이였다. “왜 그러니?” “아버지, 귀신…귀신…” “너 몽유병환자처럼 왜 이러니? 세상에 어디 귀신이 있다구 그러니?” “정말 귀신입꾸마. 방금 제 방에 나타났습꾸마!” “너 꿈을 꾼게 아니야?” “꿈이 아니라 정말입꾸마. 귀신…귀신…” “이 녀석이 무슨 허깨비를 보고 이렇게 놀라는거야." 곽향장은 아무래도 아들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문을 열고 나섰다. 막계단을 오르려던 곽향장은 그만 “앗”하고 놀란 소리를 질렀다. 계단웃쪽에 하얀 옷을 입고 봉두란발한 녀자귀신이 입에 피묻은 칼을 물고 서있었던것이다. “으흐흐…내 명을 돌려다오!” 곽향장을 본 녀자귀신은 괴상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한발작한발작 계단을 내려오고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그만 혼비백산한 곽씨부자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밖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허둥지둥 똥줄이 빠지게 도망친 곽씨부자는 향정부의 숙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른 아침에 외할머니한테로 뛰여왔던것이다. “그 녀자귀신이 바로 홍매화란 처녀지?” 외할머니는 눈을 꼭 감고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곽씨부자는 이구동성으로 “네!”하고 대답하면서 감탄했다. “신선할머니는 정말로 신선입니다. 우린 경황중에도 그 녀자귀신의 얼굴만은 똑똑히 봤습니다. 그 녀자귀신은 틀림없이 홍매화였습니다.” 홍매화는 나도 잘 알고있는 처녀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것은 외가집에서였다. 그때 곽재호와 갓 약혼한 그녀는 궁합을 보러 외가집에 왔던것이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는 저도몰래 가슴이 설레이며 그녀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방긋이 웃어주던 그 모습! 나는 항상 그녀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웃기를 잘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아까운 스무살꽃나이의 생명을 스스로 종말지었다고 한다. 그녀는 “나는 이 치욕을 참을수 없다. 사랑하는 님까지 나를 버렸으니 나는 정말 이 세상에 살멋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녀가 자살하다니? 나는 믿을수 없었다. 그 전날까지도 나는 그녀를 만났던것이다.   홍매화네 집은 우리집에서 외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다. 그래서 외가집으로 갈 때마다 나는 그녀의 집을 기웃거리군 했다. 그날도 매화의 그림자라도 볼가해서 그녀의 집근처에서 서성거리고있는데 마침 그녀가 집문을 나서고있었다.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몰래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을에서 벗어난 그녀는 곧장 강가로 나갔다.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떠날줄 모르던 그녀가 수심에 잠겨 흐르는 강물만 멍하니 바라보는것이였다. 곽재호가 홍매화를 차버렸다는 소문을 들은 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개자식, 저렇게 훌륭한 처녀를 차버리다니? 넌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강물에 풍덩 뛰여드는것이였다. 나는 “안돼”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따라 강물에 뛰여들었다. 어느새 물속에 가라앉았는지 그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자맥질하여 그녀의 행방을 찾고있는데 그녀가 글쎄 물우에 불쑥 솟아오르더니 능란한 동작으로 강을 헤여건너는것이 아닌가! 뛰따라 강을 건너간 나는 계면쩍게 웃었다. “허허, 난 매화가 짧은 생각을 먹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가 했소.” “제가요? 전 죽지 않겠어요. 전 꿋꿋이 살겠어요!” 꿋꿋이 살겠다던 처녀가 이튿날에 갑자기 자살하다니? 나는 믿을수 없었다. 곽재호, 네놈이 홍매화의 목숨을 앗아간거야. 네놈때문에 홍매화가 죽은거야. 난 네놈을 가만놔두지 않을거야!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렇게 죽은 홍매화가 지금 귀신이 되여 나타나다니? 그 무슨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이 있어 귀신이 되여 곽씨부자를 찾아온것일가? “악귀가 붙었으니 방토를 해야겠수.” 외할머니는 몸소 곽향장의 집에 가서 부적을 붙여주었다. 그런데도 그날밤에 처녀귀신이 또 나타났다. 그래서 곽씨부자가 화들화들 떨면서 외할머니를 찾아와 또다시 애걸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한바탕 귀신놀음을 벌리더니 눈을 감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소리치는것이였다. “그 처녀귀신이 이승에서 짝을 못 맺고 간게 한이 되여 찾아온것이니짝을 지어주어야겠수.” 홍매화는 비록 이승에서 약혼은 했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처녀의 이름을 달고 저승으로 간것으로 된다. 외할머니는 진흙으로 남자모형을 빚은후 거기에 신랑옷을 입히고 귀신딱지를 그린 종이를 붙였다. 그것을 가지고 외할머니는 그날밤에 곽향장네 집에 묵으면서 처녀귀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새벽 두시가 되자 하얀 옷을 입고 봉두란발한 처녀귀신이 입에 피묻은 칼을 물고 나타났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주문같은것을 중얼중얼 외우더니 진흙으로 빚은 남자모형을 처녀귀신한테 던지며 “네 신랑이 예있으니 어서 모시고 썩 물러가라!”하고 고함쳤다. 그러자 처녀귀신이 그 진흙으로 빚은 신랑을 받아가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이튿날밤에 곽씨부자는 만시름을 놓고 잤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그 검질긴 처녀귀신이 또다시 나타날줄을. “이젠 나도 방법이 없수!” 외할머니는 세번째로 찾아온 곽씨부자를 그대로 돌려보냈다. 풀이 죽어 대문밖으로 나서는 그들을 바래며 내가 슬며시 귀띔했다. “내게 처녀귀신을 쫓을 방법이 있습니다.” 그랬으나 곽씨부자는 못미더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지푸라기도 잡는 물에 빠진자의 심정으로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외할머니께서 업었던 신이 지금 네게로 와서 붙었습니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방토가 효력이 없는겁니다.” 외할머니한테 점을 치러 올때마다 내가 곁에 있는것을 보아온 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굽신거리며 애원했다. “그럼 방선생께서 방법을 대여주십시오!” 평소에는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던 곽씨부자가 “방선생”이라고 깍듯이 부르며 애걸했다. 나는 그런 그들이 가증스웠으나 방법을 대주지 않을수 없었다. “그 처녀귀신이 다른 사람들은 찾아가지 않고 당신들만 찾아가는것은 꼭 까닭이 있을것입니다. 당신들이 그 처녀한테 잘못을 저지른것이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가슴에 한이 맺혀가지고 밤마다 찾아오는것이니 당신들은 그 맺힌것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풀어준단말입니까?” “오늘밤에 그 처녀귀신이 나타나면 당신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처녀한테 저지른 잘못을 이실직고하면서 용서를 비십시오. 그래야 그 맺힌것이 풀리면서 처녀귀신은 영영 물러갈것입니다.” 이미 귀신에게 혼날대로 혼난 그들이라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밤에 처녀귀신이 나타나자 곽씨부자는 내가 시키는대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홍매화아가씨, 내가 며느리로 될 아가씨를 욕보였으니 용서해주오!” 곽향장이 먼저 머리를 조아리자 처녀귀신의 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어떻게 나를 욕보였단 말이냐? 사실대로 말해봐.” 그러자 곽향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에 여느때보다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나는 ‘재호야, 저녁밥을 지었느냐’하고 소리치며 2층에 있는 재호의 방으로 올라갔소. 그런데 재호는 보이지 않고 빠금히 열린 문으로 아가씨가 혼자서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소. 가슴띠와 삼각팬티만 걸친채 자고있는 아가씨를 본 나는 순식간에 온몸이 달아올랐소. 녀편네가 출국하여 몇달동안 녀자를 모르고 살아온 나는 반쯤 드러난 젖가슴과 풍만한 히프를 보자 그만 참을수 없어서 아가씨한테 덮치고말았소. 잠결에 아가씨는 나를 재호로 여기고 받아주는것 같았소. 그러다가 뭔가 잘못된것 같아 아가씨가 눈을 떴을 때는 일이 수습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소. 바로 그때 난데없이 재호가 나타났던거요. 난 재호한테 아가씨가날 꼬셨다고 거짓말을 했소. 그래서…” “매화, 내가 잘못했소. 모두 내 잘못이요!” 이번에는 곽재호가 두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그날 매화와 운우지정을 나눈후 나는 매화가 잠든것을 보고 난 남새사러 장마당으로 갔댔소. 내가 남새를 사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보지 말아야 할것을 보게 되였소. 나는 매화의 해석도 듣지 않고 아버지의 말만 믿고 매화를 매질하여 쫓아버리면서 관계를 끊는다고 선포했소. 하지만 난 매화를 잊을수 없었소. 그래서 매화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매화가 또 아버지와…” 재호의 말을 곽향장이 다시 이었다. “아가씨가 그때 재호와 관계를 끊자 나는 아가씨의 집에 찾아가서 아가씨가 혼자있는것을 보고 내 정부로 되여달라고 애걸했소. 물론 아가씨는 견결히 반대했지만 나는 억지로 아가씨를 끌어안았는데 그때재호가 나타났던거요.” 이번에는 재호가 곽향장의 말을 이었다. “그때 매화가 아버지와 하는 짓거리를 본 나는 화가 치밀어 매화를 끌고 강변의 숲속으로 들어갔소. 거기서 나는 극도의 분노를 참을수 없어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두손으로 매화의 목을 조였소. 매화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던거요. 그랬지만 매화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유서비슷한 쪽지가 나의 살인죄를 덮어감추어주었소. 아마도 그 쪽지는 아가씨가 아버지한테 욕을 보고 나한테 쫒겨난 그날에 분김에 몇글자 썼던것 같소. 아무튼 아버지와 나는 매화가 스스로 목을 맨것처럼 꾸며놓았소.” “악독한 살인자!” 그때 처녀귀신이 벽력같이 고함지르더니 하얀옷을 벗어던지고 위장한 피묻은 칼과 인면탈을 벗었다. 그러자 곽씨부자는 경악으로 온몸을 떨었다. “앗! 방선생…당신이?!” 그랬다. 처녀귀신은 바로 나였다. 처녀귀신이란건 바로 내가 꾸민 연극이였다. 홍매화의 자살을 의심하고있던 나는 범인을 잡아내려고 이런 귀신극을 꾸몄던것이다. 한마디 언급할것은 홍매화의 얼굴모습을 본따 만든 인조얼굴가죽은 일본에서 박사칭호를 받고 돌아온 외삼촌의 연구성과라는것이다. 거기에 천성적으로 녀자목소리를 흉내 잘내는 나의 장끼가 은을 냈던것이다. “흐흐흐, 당신이 아무리 귀신극을 꾸며도 우릴 잡을수 없어. 증거가 없으니깐!” 얼마후 놀란 가슴이 진정된 곽씨부자가 빈정거렸다. 그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사전에 경찰들과 상의하고 이 방안에 도청장치를 가설했소. 지금쯤은 이 근처에 숨어있던 경찰들이 당신들의 범죄사실을 다 듣고 달려올거요.”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세 명의 경찰이 물을 열고 들어왔다. 곽씨부자는 찍소리도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이제는 원혼이 된 홍매화처녀도 안심하고 잠들것이다. (1998년)  
40    세번째 남자 댓글:  조회:3756  추천:0  2014-01-11
세번째 남자/콩트이야기   김희수     명숙이는 활자로 찍혀나온 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해도 곧이듣는 처녀이다. 신문에서 술이 여러가지 질병을 초래한다고 하니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돼지고기에 낭충이 있다고 하니 남새만 사서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여태껏 병원문이 어느쪽에 달려있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신랑감을 고르는데까지 책대로 하다가 그만 쓴맛을 보고말았다. 한창 꽃피는 나이인 그녀는 한 남자와 약혼했는데 둘이 서로 정이 들대로 들어 “당신이 없으면 못살아”하는 노래처럼 떨어질수 없을정도까지 되였다. 그런데 명숙이가 녀성잡지에 실린 《색상으로 본 남성》이란 글을 읽은탓으로 그들의 사랑은 그만 파탄되고말았다. “…남색을 즐기는 남성은 표면상에서 랑만적인것 같지만 기실은 가장 무정한 남성이다. 그들이 나타내는 정감이 놀라울정도로 부드럽고 생활에 대한 정취 또한 도도하지만 충성심은 빵점! 이런 남성들은 자기의 장점으로 자기가 노리던 녀성을 쟁취하기만 하면 점차 그녀한테서 떨어져 다른 이상한테 관심을 가진다. 통계에 의하면 선천적으로 남색을 즐기는 남성중의 50%이상이 사랑의 배신자였다.” 여기까지 읽은 명숙이는 가슴이 떨려 안절부절못했다. 미혼부도 혹시 남색을 즐기지 않을가? 그래서 그녀는 단숨에 미혼부한테로 달려가서 다짜고짜 따져물었다. “자긴 무슨 색갈을 즐기죠?” “나말이요?” 아닌밤중에 홍두깨내밀듯한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던 미혼부는 한참후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난 특히 남색을 즐기는데 명숙이는?” 그말에 명숙이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비록 자기를 미친듯이 사랑하는 미혼부이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남색을 즐기는 그가 정말로 충성심이 빵점이여서 앞으로 다른 녀인을 엿볼지 누가 알겠는가? 천만다행이야. 내가 이 글을 읽기를 잘했지. 그렇지 않으면 그 후과는…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러던 그녀는 다시 돌려 생각해보기도 했다. 50%이상이 사랑의 배신자라면 미혼부가 혹시 사랑의 배신자가 아닌40여%안에 들수도 있지 않을가? 하지만 그녀는 50%이상의 모험을 할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과단성있게 자신이 배신을 당하기전에 먼저 첫번째 남자와 헤여졌다. 눈물을 흘리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음의 상처도 아물게 되자 명숙이는 두번째 남자를 만났다. 이번에는 먼저번의 교훈을 잊지 않고 첫대면에 무슨 색갈을 즐기는가부터 물어보았다. “난 남색을 제일 싫어하고 좋아하는 색갈은…” “됐어요.” 그녀는 더 듣고싶지 않았다. 지내보면서 그 남자가 모든 면에서 나무랄데가 없는것을 본 그녀는 결혼날자까지 잡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또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어떤 혈형의 남자와 결혼하면 좋은가》라는 글을 읽게 되였다. 그 글엔 O형인 녀성이 A형, B형, AB형인 남성과 결합하면 조화되지 않아서 자식이 혈액병을 얻게 된다고 쓰고나서 O형인 녀성은 O형인 남성을 선택하는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명숙이는 O형이였다. 신랑감은 무슨 혈형일가? 급해난 그녀는 당장에서 신랑감한테 전화를 걸어 “자긴 무슨 혈형이죠?”하고 물었다. “나말이요? AB형인데… 무슨 일이요?” “앗!” 절망한 명숙이는 비명을 지르며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그 글에 부부간의 혈형이 조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꼭 자식이 혈액병에 걸린다고 하는것은 아니라는 부언이 있었지만 신랑감이 그 “꼭”안에 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그녀는 미래에 태여날 아기가 혈액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또 눈물을 흘리면서 두번째 남자와 “빠이빠이”를 하는수밖에 없었다. “책은 참 좋아. 두번이나 날 구해주었어. 인젠 남색을 즐기지 않는 O형인 남자를 찾아야지.” 그래서 명숙이는 날마다 “O형의 남성들이여, O형인 녀성을 위해서는 제발 다른 혈형의 녀성들과 결합하지 마소서!”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하늘도 그녀의 정성에 감동되였는지 정말로 그녀마음에 딱 드는 타입인 남성을 기적같이 그녀앞에 나타나게 해주었다. “저…무슨 혈형인지 물어봐도 될가요?” “난 O형이요.” O형이라는 말에 명숙이는 기쁨을 감추며 재차 물었다. “무슨 색갈을 즐기세요?” 세번째 남자는 첫대면에 별난것을 묻는 명숙이를 흥미있다는듯이 빤히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꼭 대답해야 되오?” “네. 이건 아주 중요해요.” 그렇다면 대답하지. 난 노란색을 제일 즐기요.” “OK!” 명숙이는 너무도 기뻐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했다. 지내보니 세번째 남자는 모든 면에서 먼저번의 두 남자를 릉가했다. 명숙이는 소원대로 세번째 남자와 결혼하여 떡판같은 아들까지 낳았다. 그런데 명숙이는 결혼후 남편이 남색을 매우 즐긴다는것을 발견했다. 방안의 장식에 대부분 남색을 사용하는가 하면 가방이나 쓰는 물건도 남색을 애용했다. “자긴 남색을 즐기는게 아닌가요?” 명숙이는 미심쩍어 따지고들었다. 그러자 남편은 빙그레 웃었다. “이제야 알았소? 난 남색을 특별히 즐기오.” “뭐라나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자긴 노란색을 즐긴다고 하지 않았나요?” “허허, 그건 그때 당신이 머리에 노란색을 염색한게 예뻐보여서 그렇게 말했던거요.” “아이고, 내 팔자야!” 명숙이는 너무도 기막히고 상심하여 가슴을 치며 울어댔다. 남편이 깜짝 놀라면서 영문을 물어보자 그녀는 《색상으로 본 남성》이란 글이 실린 잡지를 꺼내보이며 넉두리를 했다. “자신 다른 녀잘 좋아하죠? 이제 곧 절 배반하게죠? 량심없는 사람!” “허허참.” 그제야 영문을 알게 된 남편은 어이없다는듯 싱긋 웃었다. “이건 죄다 한가한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지어낸 엉터리론조에 불과하니 믿을게 못되오!” “책에 난건데 왜 엉터리겠어요? 엉터리를 어떻게 책에 내요? 비법간행물도 아닌데.” “답답한 당신, 책에 난거라고 해서 무턱대고 다 믿으면 안되오. 책도 틀린점이 있으니깐.” “책이 어떻게 틀려요? 책은 절대 틀릴수 없어요. 자긴 다른 녀잘 좋아하죠?” “기실 이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다른 녀자를 좋아한단말이요.” “무슨 이 세상의 남자들이 다 그렇겠어요? 자기처럼 남색을 즐기는 남자들만 그렇겠죠.” “남색을 즐기건 노란색을 즐기건 관계없이 세상의 남자들은 다 다른 녀자를 좋아하오. 그저 소수의 남자들만이 행동에 옮기고 대부분 남자들은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는 구별이 있을뿐이요.” “그럼 자긴 ‘행동파’인가요? ‘마음속파’인가요?” “난 그저 마음속에 여보당신밖에 없는 파요!” 남편이 꼭 껴안고 애무해주자 명숙이는 다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후 남편의 일거일동을 주시해보았으나 다른 녀자를 좋아하는 낌새는 꼬물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외려 안해에 대한 충성심만이 날이갈수록 더 강렬해질뿐이였다. 책이 틀렸을가? 아니, 책은 틀릴수 없어. 아마도 남편은 그 사랑의 배신자가 아닌40여%안에 든걸거야.” “남색사건”이 지난 몇달후 그들에게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여 또 한차례의 부부전쟁이 일어났다. 명숙이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급히 수혈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명숙이는 자기와 남편의 혈형이 모두 O형이여서 다행으로 여기고 헌혈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혈형검사를 하겠다는것이였다. “혈형검사는 왜 해요?” “여보, 난 종래로 혈형검사를 한적이 없기에 여태껏 자신이 무슨 혈형인지 모르고있소.” “첫대면할 때 자긴 O형이라고 했잖아요?” “그땐 모른다고 하면 당신의 반감을 살가봐 아무렇게나 둘러댔던거요.” “뭐라나요? 그럼 빨리 검사해봐요.” 검사결과 남편은 제일 꺼림직한 AB형이였다. 그래서 홀로 아버지한테 헌혈하고난 명숙이는 또 한번 “아이고, 내 팔자야”를 불렀다. 그런데 다행히 아들은 혈액병에 걸리지 않고 건실하게 자랐다. “여보, 이제부터 책에 있다고해서 뭐나 덮어놓고 그대로 믿지 말고 자기절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옳고그름을 식별하는 법을 배우오.” “책이 뭐 틀린다고 그래요? 우리 애가 혈액병에 걸리지 않은건 자기가 그 ‘꼭’안에 들지 않았기때문이죠.” “허허참, 당신은 정말 막무가내야.” “그래도 제가 책대로 했길래 자기를 만날수 있은거죠. 그렇지 않으면 첫번째 남자나 두번째 남자한테 시집갔을지도 몰라요.” “그럼 내가 세번째 남자라는거요?” “호호호. 전 아마도 세번째 남자인 자기와 백년해로 할 운명인가봐요.” 명숙이는 남편의 가슴에 살며시 얼굴을 묻었다. 그런 그녀를 남편은 꼭 껴안아주었다. (1998년)     
39    아버지를 때린 아들 댓글:  조회:3283  추천:0  2014-01-04
아버지를 때린 아들   김희수     리호는 어릴 때부터 줄곧 아버지한테서 욕을 먹고 매를 맞으면서 자랐다. 욕도 보통의 욕이 아니라 《이 뒈질 새끼야!》, 《이 사람질을 못할 새끼야!》하고 집이 떠날갈듯이 질러대는 상욕이였고 매도 한두번 뺨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며 심지어는 재떨이, 비자루, 몽둥이까지 사용하여 온몸이 멍들도록 때리고야 그만두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리호가 큰 잘못을 저지른것도 아니였다. 밖에서 놀음에 좀 탐해도 욕을 해댔고 학습성적이 약간만 내려가도 매질을 해댔다. 지난 설명절에도 리호가 대수롭지 않은 실수를 범했는데도 화를 벌컥 내며 때리려고 들었다. 그날 리호는 《명절인데 너도 한잔 먹어라》하는 친척들의 강권에 못이겨 맥주 한잔을 마셨는데 친척들이 돌아간후 아버니는 《쬐꼬만 녀석이 벌써부터 술을 처먹어?!》하고 욕설을 마구 퍼부으면서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왜 명절날에도 사람을 때리려고 합니까?》 리호는 억울하다는듯 한걸음 물러서며 불평을 토했다. 여태껏 자기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던 아들이 말대꾸를 하자 더욱 화가 치민 아버지는 《아니, 이 녀석이 어디라고 감히 대들어?!》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주먹으로 아들의 면상을 갈겼다. 그러나 아들이 잽싸게 피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휘청거리며 앞으로 꼬꾸라질번 했다. 《아니, 이 녀석이 어딜 피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는 아버지는 몽둥이를 찾아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들이 차갑게 쏘아보며 경고했다. 《아버지, 어서 그 몽둥이를 놓으세요!》 《너 뭐라구?!》 《아버지, 내 경고하겠는데 이제부터 날 때리지 마세요!》 《뭐… 뭐야? 이 녀석…》 《나도 이젠 컸습니다! 어느때까지 날 때리겠습니까?》 《컸다고 애비한테 대들겠단 말이냐?! 후레자식!》 성난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나 아들은 살짝살짝 피하다가 한매 맞으면서 몽둥이를 빼앗아던졋다. 그리고 주먹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힘껏 들이쳤다. 아버지는 《아이쿠!》하고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니, 이 녀석이 감히 애비를 쳐?!》 아버지가 다시 달려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의 멱살을 힘껏 틀어쥐고 무섭게 노려보았다.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13년동안이나 나를 때려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아버지를 때릴 차례입니다. 난 내가 맞은것만큼 이후 13년동안 아버지를 때릴겁니다!》 아버지는 이제부터 힘으로 아들을 당할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그후부터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지 못했다. 그대신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집에 좀 늦게 들어와도 때렸고 입에서 술냄새가 나도 때렷다. 아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아버지는 탄식했다. 《결국 나의 〈욕질교육〉과 〈매질교육〉이 이런 후과를 초래했어!》(2004년 2월)  
38    심수에서 마약중독자가 된 연변처녀 댓글:  조회:4138  추천:1  2014-01-04
심수에서 마약중독자가 된 연변처녀   김희수     연변처녀 김영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5년전에 청도에 돈벌이를 떠났다가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상해를 거쳐 광주에 갔다가 다시 심수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가 심수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은후 여태까지 3년동안 가족과 전화련계가 끊어져 있었다. 부모들은 그녀의 소식을 몰라 여태까지 근심걱정에 애태우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그녀의 사촌언니 김화가 지난 3월 중순에 심수에 일보러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만났던것이다. 일을 다 보고 남편과 함께 도시구경을 하던 중 그녀는 길이 막혀서 남편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앞의 차가 교통사고를 냈던것이다.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부딪친 두 차가 모두 몹시 파손되고 그 때문에 길에 막혀 교통이 엉망이 되여버렸던것이다. 원래 멀미가 심했던 김화는 남편보고 내려서 걸어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차에서 내려 걸었는데 그만 방향을 잘못 잡아서 반대 길로 걸어갔다. 얼마후 앞에 다리가 보였는데 춘풍립체교였다. 다리아래엔 자그마한 공원 같아 보였는데 거기엔 트럼프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대낮인데도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화는 쉬다가 가자고 남편을 끌어서 그들은 다리아래로 걸어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8-9명의 남녀들이 누워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고 어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워낙 호기심이 강한 김화가 찬찬히 살펴보니 그 남녀들의 팔목엔 주사자리가 다닥다닥했고 옆에는 주사바늘과 피묻은 휴지가 널려있었다. 그녀는 이상한 생각에 다시 보다가 그만 몸을 오싹 떨며 남편에게 귀속말로 《여보, 저게 말로만 듣던 마약흡입자들이 아닌가요?》했다. 남편도 《가능하오.》했다. 김화는 다시 그 쪽을 보다가 담배를 피우고있는 녀자가 어쩐지 낯익어 보였다. 《어머, 저 녀자가 김영이 아닌가요?! 김영 그애…》김영을 본적이 있는 남편도 놀라는 눈치였다. 《김영아! 김영아!》 김화가 부르는 소리를 처음엔 듣지 못하던 그녀자가 거듭 소리쳐 부르자 이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김화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니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틀림없는 김영이였다. 김영은 자기들의 패거리 눈치를 보다가 손짓으로 소리치지 말라고 암시하면서 김화한테로 천천히 다가왔다. 《김영아, 너 왜 지금까지 통 소식이 없었니? 여기선 뭘 하는거니?》 김화가 너무도 뜻밖이고 너무도 반가워서 와락 끌어안으려고 하는데 김영이가 재빨리 피했다. 《언니, 날 아는체 하지 말고 낮은 소리로 말해요.》 《넌 집에서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데 그러니? 다른 일을 다 제쳐놓고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그러자 김영은 눈물을 훔치더니 호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김화에게 주면서 말했다. 《언니, 난 돌아갈수 없어요! 여긴 위험하니 어서 가세요! 빨리!》 김영은 김화를 재촉하고는 곧 돌아서서 자기들 패거리한테로 돌아갔다. 김화가 다시 부르려하는것을 남편이 막았다. 하지만 김화는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종이에 적어서 김영에게 갖다주면서 꼭 련계해달라고 부탁하고서야 눈물을 흘리며 헤여졌다. 차를 타고 호텔에 돌아온 김화는 남편과 함께 김영이주던 편지봉투를 재빨리 뜯어보았다. 그것은 이미전에 써두었던 편지였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지만 어머니, 아버지께선 영원히 이 편지를 보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이 불효녀는 길을 잘못 들어서 오늘 이 지경이 되였습니다. 심수에 온후 막벌이를 하다가 힘들어서 쉽고 수입이 많은 일을 찾아하려다가 가짜 직업소개소의 함정에 빠져 몸을 망치고 매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타락한 녀자가 되고말았습니다. 처음엔 제가 죽어도 몸을 팔지 않겠다고 저항하자 그들은 저를 묶어놓고 내 몸에 마약을 주사했습니다. 그후 마약에 인이 박힌 저는 그들이 하라는대로 손님을 받았습니다. 이런 윤락녀의 생활을 하다가 저는 어느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마약에 인히 박힌 저는 집으로 돌아갈수 없었습니다. 거를 방황하다가 지금의 패거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처럼 마약 중독자들인데 낮에는 잠을 자거나 마약을 주사하고 밤에는 남자들은 도적질하고 녀자들은 매음하여 그 돈으로 독품을 구입합니다. 우리는 주로 낮에는 립체교아래에서 드러내놓고 마약을 주사하지만 누구도 우리를 어쩌지 못합니다. 저는 팔에 너무 많이 맞아서 이제는 허벅지에 주사합니다. 경찰들이 오면 우리는 신출귀몰하게 달아났다가 다시 기여듭니다. 어머니, 아버지, 만약 이 편지를 보더라도 저를 찾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저 이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저도 이런 모습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 딸을 잊어주세요!》 편지를 읽고나서 김화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과 함께 당지 공안국에 사건을 제보했다. 하지만 경찰들이 현장에 찾아갔을 때는 그들의 패거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은 마약사용자들이 많아서 관리하기도 바쁘다고 말했다. 김화네가 심수를 떠날 때 김영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울면서 부모한테는 자기를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고 다시는 자기를 찾지 말아달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변으로 돌아오는 차에 몸을 실은 김화는 눈물이 글썽해서 마음속으로 웨쳤다. 《아, 김영아, 너를 어찌하면 좋으냐?》  
37    세방살이 댓글:  조회:3353  추천:1  2013-12-29
세방살이/콩트이야기   김희수   퇴근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일을 마치고 총망히 자기의 보금자리로 찾아가는 사람들속에 근심에 쌓여 터벅터벅 걸어가는 명호라는 젊은 사나이가 있다. 동료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끌었으나 그는 집에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는 승호가 베껴준 유상저금당첨번호를 적은 종이 한장외에는 일전한푼도 없다. 손목시계는 팔아서 전기세와 위생비, 수도세를 물었고 자전거는 팔아서 새해분 집세에 보탰다. 결혼해 8년은 세방살이 8년이였다. 세집만 해도 아홉번 바꿨는데 아홉번 이사에 안해 순실이의 손목시계와 자전거, 결혼잔치 때 갖춘 재봉기와 세탁기를 모두 집세에 밀어넣었다. 이제 가장집물이란 이불장과 찬장, 텔레비죤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도 팔아야 할 위기에 직면하였다. 처제의 결혼잔치와 삼촌의 환갑잔치가 당금인데다가 조카의 첫돌생일까지 겹치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안해가 출근하는 공장이 문을 닫아 밥통까지 떨어지게 되였다. 《부조에 나갈 돈만해도 몇백원인데…호―》 한숨을 내쉬는 순실이의 앞에서 무기력한 명호는 《텔레비죤을 팔기요》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텔리비죤을 팔지 마! 으응…응…》 딸애가 당금 누가 빼앗아가기라고 할듯 텔레비죤을 꼭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당신은 정말…》 순실이는 딸애를 달래며 애틋하고도 야속스러운 눈길로 명호를 쳐다본다. 그런 눈길이 이젠 몇번째인지 모른다. 새해분 집세를 물지 못하여 임신한 몸으로 한 겨울에 집주인에게 쫓겨날 때도 순실이는 그런 눈길로 명호를 쳐다보았다. 그런 눈길이 말보다도 더욱 명호의 가슴을 찔러준다. 날로 초췌해가는 안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명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생활고에 부대낄대로 부대끼면서 불평 한마디 없는 안해를 대할 때마다 명호는 무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고지식한 자기를 만나 온갖 고생을 다 겪고있는 안해가 불쌍하기만 했다. 원래 새해에는 그에게 집이 차례질 순서였지만 공장에서는 갑자기 처한 불경기로 인해 종업원의 주택을 지을 계획을 포기해버렸던것이다. 명호가 세집에 들어섰을 때 순실이가 벌써 딸애를 유치원에서 데려다 놓고 밥을 짓고있었다. 딸애는 명호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텔레비죤을 막아섰다. 기분이 잡친 명호는 저녁술을 드는둥마는둥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듯 호주머니에서 유상저금당첨번호를 적은 종이장을 꺼내 순실앞에 내밀었다. 《전번에 산 유상저금권이 있지 않소? 당첨번호가 나왔는데 어디 한번 맞춰보오.》 《우리한테 언제 그런 복이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순실이는 서랍에서 유상저금권 두장을 꺼내 말등부터 하나하나 대조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실이가 유상저금권 한장을 높이 쳐들고 집이 떠나갈듯 환성을 질렀다. 《빨리 와보세요. 당첨됐어요! 우리 당첨됐어요!》 《보나마나 또 말등이겠지.》 《특등입니다! 특등!》 《뭐요? 그게 정말이요?!》 특등이면 1만원이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명호는 믿어지지 않아 재빨리 순실이의 손에서 유상저금권과 당첨번호를 빼앗다싶이 해서 한글자 한글자 맞춰보았다. 특등에 13075인데 유상저금권번호도 한글자도 차이 없는 13075였다. 《야, 특등에 당첨됐구나! 만세!》 명호는 미칠듯이 기뻤다! 딸애를 끌어안은 순실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함뿍 피여났다. 이 돈으로 무엇을 살가? 명호도 순실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순실이가 먼저 물었다. 《우리 이 돈으로 뭘 사겠습니까?》 《전자풍금!》 딸애가 선참으로 요구했다. 《저…》 명호는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어 안해를 보고 말했다. 《우리 먼저 자기가 사고싶은걸 손바닥에 쓰기요. 그 다음 〈시작〉하고 동시에 손바작을 펴보는게 어떻소?》 《그게 참 재미있겠습니다!》 명호와 순실이는 각각 손바닥에 쓰고 나서 《시작!》하는 소리와 함께 동시에 손을 쭉 폈다. 서로 상대방의 손바닥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던 그들 부부는 한바탕 통쾌하게 웃고말았다. 그들의 손바닥에는 모두 똑같은 《집》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적혀져있었던것이다. 아, 얼마나 마음속으로 갈망하던 집이였던가! 1만원이면 괜찮은 위치의 30평방메터정도의 단층벽돌집을 살수 있다. 이제 곧 내집마련꿈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날밤 그들은 궁궐같은 집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은 명호가 휴식하는 화요일이였다. 아침을 먹은후 그들은 딸애를 유치원에 맡겨놓고 곧추 은행으로 향했다. 숱한 사람들이 은행문앞에 나붙은 당첨번호를 맞춰보느라고 법석거리고있었다. 그들이 사람들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할때 명호에게 당첨번호를 베껴줬던 승호가 안으로부터 나오다가 그들을 알아보고 근시안경을 추스르며 쑥스럽게 웃었다. 《명호, 어제 내가 베껴준 당첨번호 특등이 있잖아? 오늘 다시 살펴보니 한글자가 틀렸더라. 원래 번호는 13675인데 내가 가운데 6을 0으로 빗보고 잘못 베꼈더라.》 《뭐라구?!》 명호는 두 어깨가 내려앉으며 사맥이 나른해졌다. 순실이도 실성한 사람처럼 멍해있었다. 명호는 믿어지지 않아 사람들속을 비집고 들어가 다시 대조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명호는 실망해 주저앉은 안해가 더 근심되였다. 그는 재빨리 사람들속을 비집고 나와서 안해를 위안해주었다. 《순실이, 너무 괴로워 마오! 내가 앞으로…》 《앞으로는 그냥 이렇게 살지 맙시다!》 명호는 《이렇게 살지 말자》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안해가 이젠 지긋지긋한 가난에 질려 나와 헤여지려는게 아닐가? 순실이는 뜻밖에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행운을 바라지 맙시다. 우린 아직 젊습니다. 우리 자신의 두손으로 행복을 창조합시다. 전 이제 곧 장사할 생각입니다. 내 두손으로 벌어서 꼭 우리의 보금자리인 내집마련을 실현할 결심입니다!》 《순실이, 고맙소!》 명호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는 안해의 손을 뜨겁게 잡고 말했다. 《나도 한몫 감당하겠소!》 《우리 손잡고 해봅시다!》 나젊은 부부는 손에 손을 잡고 자기들의 행복한 앞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1991년)     
36    살모사행동 댓글:  조회:3790  추천:0  2013-12-29
살모사행동/콩트이야기   김희수     어느 시공을 중지당한 건물안에서 마약암거래가 시작되고있었다. 두 쪽이 5메터의 간격을 두고 마주서서 검은가방을 열어보인다. 다음 “두더지”와 “살모사”가 “물건”이 든 가방을 넘겨주자 상대방에서도 현금이 든 가방을 넘겨준다. 바로 그때였다. “꼼짝말앗!” 갑자기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총을 빼든 경찰이 그들앞에 나타났다. 난데없는 경찰이 나타나자 암거리쌍방은 혼비백산한듯 멍해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수갑을 꺼내는 찰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살모사가 번개같이 발길을 날려 경찰의 손에 든 총을 떨궈버렸던것이다. 너무나도 잽싼 행동에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것은 다음 순간이였다. 경찰의 총을 주어든 살모사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경찰을 향해 련방 불을 토했던것이다. 경찰은 가슴에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경찰이 죽은것을 보자 두더지는 “빨리”하고 소리치며 부하들을 이끌고 황망히 도망쳤다. 그들은 본부인 “천하제일술집”의 지하실에 돌아와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경찰이 어떻게 냄새를 맡았지? 그런데 살모사, 자네가 경찰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네. 가방안에 든건 마약이 아니라 우유가루였으니깐.” 두더지파의 마약밀수조직의 두목인 두더지가 새로 받아들인 조직원 살모사를 보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살모사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그럼 이번 행동은 날 고험하기 위한 가짜행동이였다는 말입니까? 보스, 정말 섭섭합니다.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다니요?” “살모사, 노여워 말게. 이건 생사와 관계되는 큰일이길래 그 어떤 사람이든지 반드시 고험을 받아야 하네.” 두더지가 살모사의 어깨를 다독여주는데 마약을 매입할 상대방으로 가장했던 셋중에서 한자가 의심스럽다는듯이 말했다. “보스, 그 경찰녀석이 어떻게 냄새를 맡고 우리 뒤를 밟았을가요? 왜 혼자였을가요?” “그놈들이 우리를 의심한지는 오래지. 아마 그놈이 우리를 감시하고있다가 혼자서 공을 세워보겠다고 뒤따른것 같아. 현장에 와서 다른 경찰한테 통지하고 혼자서 뛰여들었다가 개목숨을 잃은걸거야.” 두더지는 쏘파에 기대여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는 오늘 살모사의 기지넘치는 용맹성에 탄복했다. 경찰까지 죽여버린 살모사를 인젠 완전히 신임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더지파에서 몇몇 측근들을 내놓고는 다른 조직원들은 그가 진짜 보스라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어느 한번은 그가 한 조직원의 계집을 데리고놀다가 그 조직원이 거느리고 온 무리들에게 뭇매를 맞게 되였다. 그때 한 건장한 청년이 뛰여들어 보기좋게 무리들을 때려눕히고 반죽임이 된 두더지를 병원에 업고갔다. “젊은이는 왜 날 구했지?” 구급을 받고 정신을 차린 두더지는 그때까지 곁에서 시중드는 청년을 보고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사장님같은 분을 구해주면 일자리라도 얻을수 있을가해서요.” “음, 그래?” 두더지는 청년의 솔직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퇴원하는 길로 청년을 “천하제일술집”의 경비일군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에 청년에게 당한 깡패들이 더욱 많은 무리들을 끌고와서 청년을 죽여버리겠다고 행패를 부렸다. 한 깡패가 앞장서 칼을 빼여들고 달려들자 청년은 태연자야갛게 맞받아 나가며 소리쳤다. “찔러라, 이놈! 담이 있으면 어디 찔러봐!” 비실비실 뒤걸음치던 깡패녀석은 떨리는 손으로 청년의 가슴을 쿡 찔렀다. 청년은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오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을 내밀며 고함쳤다. “이놈아, 어디 한번만 더 찔러봐! 어서 찔러보란 말이다!” 그러자 부들부들 떨던 깡패녀석은 끝내 칼을 놓아버리고 청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때로부터 두더지는 청년에게 “살모사”란 별명을 달아주고 측근으로 삼았다. 물론 부하들을 시켜 청년의 뒤를 파보는것도 잊지 않았다. 뒤조사를 해본 결과 청년은 상해죄와 절도죄로 콩밥을 먹은적이 있는 알짜 불량배였다. 살모사가 경찰을 쏜 그날저녁에 두더지는 련속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나는 공안국내부에 매수한 23호한테서 날아온 소식인데 살모사가 죽인 경찰이 마약수사과 부과장이라는것과 흉수를 잡으려고 공안국이 총동원됐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마약밀매조직에서 파견한 K라는 인물이 물건을 가지고 곧 도착한다는 기별이였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미꾸라지파”란 마약밀매조직에서도 K가 소속되여있는 해외밀수조직과 련계를 달고있다는 소식도 잇달아 들려왔다. 얼마전에 두더지는 “물건”을 들고 암거래에 나서려고 했는데 물건을 도거리하다싶이 거두어들이던 거래측의 한 조직원이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이 소식을 23호한테서 들은 두더지는 재빨리 그 조직원을 제거해버렸다. 그후 물건을 사려는 측이 잠시 나타나지 않아 두더지는 골치를 앓고있었다. 이번에 K의 물건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면 이 좋은 “장사”를 미꾸라지파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다못해 두더지는 유력한 조수인 살모사를 불러 방도를 상의했다. “지금 물건을 얻지 못해 안달인데 수소문하면 사려는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수 있을겁니다.” “자금줄이 든든한 측을 잡아서 거래해야 하는데…”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사귄 친구가 있는데 황금장사를 하여 돈도 많고 통이 큽니다. 그 친구가 언제부터 물건을 얻지 못해 그러던데요.” “그 친구 믿을만한가?” “백프로 믿어도 됩니다.” “그럼 가서 알아보게.” 이튿날에 살모사가 희색이 만면하여 돌아왔다. “련계했습니다. 그 친구가 현금을 준비해놓겠답니다. 시간과 지점은 우리쪽에서 따로 통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잘했네. K도 오늘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마침 잘됐네.” 두더지가 흐뭇하여 살모사를 칭찬하고있을 때 전화가 왔다. “여보시우? 엉? 23호인가? 그래…알았네. 20분후에 손님을 그리고 보내지.” 전화를 마친 두더지는 상을 잔뜩 찌푸렸다. 23호가 스파이라는것을 알고있는 살모사는 조심스레 물었다. “23호한테서 무슨 새로운 정보라도 왔습니까?” “공안국에서 지금 마약수사과 부과장을 살해한 흉수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느라고 잠시 마약밀수타격을 늦추고있다네. 이 좋은 시기를 놓치면 안되지. 래일쯤 행동해야지. 그런데 23호가 또 돈을 독촉해왔네. 제길, 그놈은 돈밖에 모른다니까. 왕거미가 전문 그놈에게 돈을 보내주었는데 지금 K의 마중을 가고 없으니 어쩐담…” “보스께서 직접 가시지요.” “내가 직접 가면 그놈은 더 크게 요구하면서 시끄럽게 구네. 그놈은 중요한 인물이여서 우리 조직에서 나하고 왕거미외에는 아무도 23호가 누군지 모르네. 내가 자네를 믿으니 이번에 자네가 가서 23호를 만나게. 지금 즉시 ‘놀부다방’의 맨 끝방으로 가게. 접선암호는 여차여차하네.” 살모사가 “놀부다방”의 맨 끝방에 들어가니 한 낯선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그 사내가 23호라고 단정한 살모사는 맞은켠에 앉으며 접선암호를 외웠다. 암호가 맞아떨어지자 살모사가 조용히 물었다. “자네가 23호인가?” “그렇네. 보스가 가방을 보내던가?” 살모사는 대답대신 잽사게 달려들어 23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그를 걸상에 꽁꽁 묶어놓았다. “당신은…누구요? 왜 이러는거요?” 너무나도 급작스레 당한 23호는 놀라움과 의혹에 찬 눈길로 살모사를 바라보았다. 살모사는 핸드폰으로 경찰을 불렀다. 그러자 혼비백산한 23호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너…넌 도대체 누구야?” “흐흐흐, 23호! 난 너에게 주는 이 돈이 욕심나서 두더지를 배반하고 ‘미꾸라지파’로 가는거야!” 한참후 경찰들이 달려들어오는것을 보자 살모사는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살모사가 돌아오자 왕거미와 K도 마침 도착하여 그들은 마약밀매를 그날저녁으로 앞당겨 하기로 결정하고  상대방에 통지했다. “이번 행동을 ‘살모사행동’이라고 하자구!” 두더지는 살모사에게 마약가방을 넘겨주고 넷은 승용차에 올랐다. 교활한 두더지는 접선지점을 도중에 세번이나 바꾸어 상대방에게 통지했다. 끝내 마지막 지점에서 쌍방은 접선했는데 상대방도 넷이였다. 쌍방은 서로 물건과 현금을 확인한후 교환했다. 두더지가 성공의 미소를 짓고있을 때 상대방의 색안경을 낀 사나이와 살모사의 시선이 신속하게 마주쳤다. 때를 같이하여 “꼼짝말앗”하는 벽력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상대방에서 일제히 총을 꺼내들었다. 두더지와 K, 왕거미가 황망히 반항하려고 했으나 때는 늦었다. 살모사가 어느새 그들의 무기를 해제했고 상대방에서 번개같이 달려들어 세놈에게 수갑을 채웠다. 색안경을 낀 사나이가 살모사의 손을 잡자 두더지가 증오의 눈길로 살모사를 쏘아보았다. “살모사, 넌 왜 날 배반했어? 이놈들은 ‘미꾸라지파’겠지? 넌 날 배반하고 이놈들에게 넘어간거지? 이 배은망덕한 놈아!” “두더지! 꿈을 꾸지 말아. ‘미꾸라지파’란 우리가 꾸며낸것으로 존재하지도 않아. 난 경찰이야! 알겠어?” “뭐? 네가 경찰이라구? 넌 마약수사과 부과장이란 놈을 쏴죽이지 않았니?” 두더지가 의혹에 찬 눈길로 바라보자 색안경을 낀 사나이가 빙그레 웃으며 색안경과 가발을 벗고 가짜코수염을 떼여냈다. “아니, 넌 사람이냐? 귀신이냐?” 살모사의 총에 맞고 저승에 갔던 마약수사과 부과장이 눈앞에 서있는것이 아닌가! “이 미련한 두더지야! 넌 총싸움영화에서 배우들이 진짜로 죽는걸 봤어?” 그제야 두더지는 경찰들의 연극에 넘어가 살모사를 신임한 자신을 저주했으나 후회막급이였다. 두더지마약밀수조직을 짓부셔버린 영웅사나이 살모사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여러해전부터 깡패들과 휩쓸리기도 하고 감옥밥도 먹으며 잠복임무를 대기하고있다가 이번에 살모사행동에 나선 인민경찰이였다. (1999년)    
35    시골학교 댓글:  조회:3205  추천:2  2013-12-21
시골학교/콩트이야기   김희수     남호선생은 쓸쓸한 마음으로 휑뎅그렁한 교정을 거닐고있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수백명학생들의 글소리가 랑랑했던 이 자그마한 산골학교가 학생원천이 끊어져 문을 닫게 된것이다. 젊은 녀성들은 모두 도시거나 외국으로 나가고 늙으이들과 학부모로 될 나이의 로총각들만 이 산골마을을 지키고있으니 자연히 후대가 끊어진것이다. 학생수가 줄고 줄어 나중에는 4명만 남았댔는데 페교되면서 그 4명학생마저 배움터를 떠나게 되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교정을 바장이던 남선생은 학교문에서 나와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4명학생의 전도가 근심된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생각에 잠겨 걸어가던 남선생은 누군가 인사하는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인사하는 학생은 4명중의 금송이와 송국이였다. “선생님, 우린 오늘부터 한족학교에 다닙니다.” 그 말에 가슴이 쓰려난 남선생은 “한어를 배우는것도 중요하겠지만 학생들은 조선족으로서 언제든지 우리 말 우리 글을 잊지 말아야 하오”라고 당부하였다. 다른 애들의 정황을 물어보니 옥숙이는 도시학교로 가고 성무도 곧 한족학교에 다닐것이라고 했다. 남달리 총명하여 공부에 으뜸인 성무마저 한족학교에 가게 된다니 남선생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선생님, 우리 성무를 못봤수?” 금송이와 송국이가 떠난후 성무의 할아버지가 허둥지둥 달려오며 물었다. 그 애는 아버지가 학족학교에 붙이겠다니깐 싫다고 달아났다는것이다. 남선생은 성무의 할아버지를 도와 사처로 성무를 찾으러 다녔다. 나중에 페교된 학교에서 그애를 찾을수 있었다. 그애는 자기가 공부하던 교실에서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있었던것이다. “선생님, 내가 저애를 공부시키겠다고 한마리밖에 없는 소까지 팔았수다. 그런데 학교가 없어졌으니 이젠 어째유? 저애는 한족학교에는 안가겠다지, 우리 힘으로는 도시학교에 보내지 못하지…” 성무의 할아버지가 눈물이 글썽해서 하는 말에 남선생은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말에는 “애비 없이는 살아도 소 없이는 못산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애비보다 더 귀중한 소까지 팔아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했건만 배움터를 잃어버렸으니 이보다 더 큰 비애가 어디에 있겠는가! “선생님, 오늘 마지막으로 저한테 더 강의해주세요!” 성무의 간청에 의해 성큼성큼 교단에 올라간 남선생은 흑판에 큼작하게 열네글자를 써놓고 높은 소리로 읽었다. “우리는 우리 말 우리 글을 사랑한다!”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힘주어 따라 읽는 성무, 그애의 새별같은 눈에 이슬이 반짝였다. 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난 남선생은 자신이 밥술을 드는한 꼭 성무학생을 공부시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 (1998년)    
34    복수의 도끼를 든 사나이 댓글:  조회:3449  추천:0  2013-12-21
  복수의 도끼를 든 사나이/콩트이야기     김희수     수호는 여름이면 무더위를 무릅쓰고 겨울이면 눈보라와 싸우며 하루 벌이를 해가는 가난한 삼륜차부였다. 딸애와 안해를 끔찍이 사랑한 순박한 가장이였던 그는 외도 한번 안하고 충실하게 가정의 중임을 떠메고 나갔다. 그런데 안해가 부정한 짓으로 자기를 배반할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렇게도 다정했던 안해는 밤에 부부간의 사랑을 한번 하자고 껴안을라치면 짜증을 내며 쌀쌀한 태도로 돌아눕기만 했다. 수호는 갑자기 달라진 안해의 태도에 어리둥절해졌고 남들처럼 버젓이 차려놓고 살지 못하는 살림살이에 짜증나서 그러나? 하고 생각하며 안해를 리해하려고 애썼다. 안해여, 몇년만 더 참아다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당신의 손에 반짝반짝 눈부신 보석반지 끼워주고 당신의 목에 다이아몬드목걸이 걸어드릴테니… 수호는 삼륜차를 몰고 나가면서 올핸 꼭 장사밑천을 모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수호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면서 부지런히 일했다. 그가 가족을 위해 피땀을 흘리며 일할 때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안해가 가끔씩 어떤 사내와 함께 데이트한다는 소문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수호는 안해를 의심하지 않았다. 한번은 가까운 사람이 그의 처가 불고기점 주인인 박씨와 놀아나고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지 말라며 버럭 화를 냈다. 한번은 같은 삼륜차부인 김씨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넌 네 처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데 왜 그냥 삼륜차를 모니? 히히, 너 처가 불고기점 주인에게 특수접대를 해주는 수입만해도 짭짤할텐데…으하하!》 《뭐야?! 이 새끼…》 수호는 분노를 가누지 못해 주먹과 발길로 김씨를 한바탕 패주었다. 상처를 입힌 죄로 그는 쇠고랑을 찬 신세가 되였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가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TV도 못보고 피곤하여 잠들 때는 몰랐는데 감방에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다. 혹시 안해가 정말로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가? 내가 너무 안해를 믿은게 아닐가? 수호는 불길한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곰곰이 돌이켜보았다. 불고기점에서 복무원으로 일하고있는 안해가 일이 끝나면 다른 녀직원들과 함께 불고기점에서 자고온다고 전화할 때가 많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녀직원들과 함께 잔다는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사실은 불고기점 주인과 붙어버린것일수도 있었다. 외박이 잦은 녀자치고 부정을 뿌리고 다니지 않는 녀자는 드물다고 어느 선배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밝혀내야 한다. 안해의 부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좋은 일이고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그땐 도끼산장이야! 수호는 15일만에 풀려나왔다. 그런데 안해가 마중 나오지 않았다. 의심의 덩이가 더욱 커갔다. 집에 달려가니 딸애가 《아버지!》하고 달려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벌써 집을 나갔어.》 아이의 말에 수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안해가 불고기점 주인을 따라 갔다는것이였다. 안해의 부정이 사실로 밝혀지자 그의 눈엔 살기가 돋았다. 이 화냥년을 내손으로 죽여야지! 수호는 주먹을 쥐고 벼르다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가정이 망해버린 이제 내가 살아서 뭐하냐고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그러다가 화김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그는 리성을 잃고말았다. 화냥년을 어떻게 죽일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였다.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도끼가 눈에 띄였다. 수호는 딸애를 이웃에 맡기고 안해의 행적을 찾아나섰다. 박씨는 불고기점을 팔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도시를 헤맸으나 헛탕이였다. 그러다가 처와 사내놈이 어느 노래방에서 놀고있다는 소식을 얻어듣고 도끼를 품속에 감추고 곧바로 노래방으로 쳐들어갔다. 212호실에 뛰여들어가니 몇쌍이 꼭 껴안고 춤추며 돌아가고있었는데 그 속에는 처와 박씨도 있었다. 《이 더러운 년놈들아!》 수호는 도끼를 꺼내들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혼비백산한 남녀들은 살길을 찾아헤맸고 노래방은 아수라장이 되였다. 수호는 처와 박씨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갔다. 처와 박씨는 뒤걸음치다가 벽이 막혀 더는 도망갈수 없게 되였다. 복수의 도끼를 높이 쳐든 수호가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처와 박씨를 향해 내리 찍으려는 찰나 《아빠, 안돼!》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빠의 심상치 않은 행동이 수상쩍어 몰래 뒤따라온 딸애가 울면서 소리쳤던것이다. 《아빠, 날 고아로 만들셈인가요? 엄마를 죽이면 아빠도 죽어요. 그럼 난 어쩌라나요?》 딸애가 훌쩍거리면서 하는 말에 수호는 들었던 도끼를 맥없이 내려놓았다. 딸애는 울면서 아빠 품에 안겼고 그런 딸애를 꼭 껴안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부둥켜안은 딸애와 아버지는 오래도록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엄마는 갈라면 가라고 해요. 내가 아빠를 잘 모실테니 우리 둘이 살면 되잖아요.》 딸애의 말에 수호는 정신이 들었다. 가정은 망해버린것이 아니다. 내겐 이렇게 셈이 든 딸애가 있지 않는가! 《얘야, 네가 아니면 내가 하마터면 살인죄를 지을번했구나. 그래, 그깟 년은 가라고 하지. 내 이를 악물고 돈 많이 벌어서 너를 큰 사람으로 키우리라.》 (1997년)  
33    몸은 지켰건만 댓글:  조회:3541  추천:1  2013-12-14
몸은 지켰건만/콩트이야기   김희수     선녀는 떨리는 손으로 방금 옥금이가 두고간 돈을 세여보기 시작했다. 100원짜리 묶음 다섯이니 5만원이였다. 이렇게 큰돈을 앞에 놓고 선녀는 전률하듯 몸을 떨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돈 5만원이 10만원으로 불어날것이고 그러면 괜찮은 아빠트에 반듯한 새 살림을 처려놓을수 있을거야.” 선녀의 귀에는 옥금이의 오렌지빛 입술사이로 새여나온 간드러진 음성이 지금도 귀전에 울려오는듯 했다. 옥금이는 선녀의 친구이자 사랑의 적수였다. 3년전, 미모의 두 처녀는 인물체격이 엇비슷했으나 선녀쪽이 마음씨가 더 착했다. 그 착한 마음씨때문에 선녀는 경쟁에서 이길수 있었다. 련적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옥금이는 분김에 한번 만나본적도 없는 총각에게 급급히 시집갔다가 석달만에 리혼하고 홀로 나앉았다. 그때로부터 옥금이는 돈많은 사내들한테 붙어서 돈을 물쓰듯 했다. 그런 옥금이가 선녀와 성호가 잔치하기 전날인 오늘 돈 5만원을 가지고 선녀앞에 나타났던것이다. “그 한국사장님 말이야. 잔치하는 색시를 실랑보다 먼저 차지해보는 기호가 있는데 여기에 돈을 아끼지 않아. 먼저 5만원을 주고 하루밤을 차지한 다음에 5만원을 더 준단 말이야. 하루저녁에 어디가서 10만원을 번단 말이야. 그래 넌 집도 없이 그냥 세방살이를 하겠니?” 옥금이의 이 말은 선녀의 정통을 찔렀다. 집!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에게 집보다 더 중요한게 뭐겠는가. 그런데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잔치나 치러주면 고작일 그녀의 부모나 신랑의 부모는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먹고 입고 쓰고나면 별로 남아돌것이 없는 그들의 몇푼 안되는 로임으로 집을 마련한다는것도 아득한 일이다. 여태껏 결혼잔치를 미룬것도 집때문이였다. 그러다가 더는 방법이 없어 세집을 맡아놓고 래일 잔치를 하기로 날자를 잡았는데… “그게 그렇게 좋은 노릇이라면 넌 왜 못하고 날 꼬드겨? 네 눈엔 내가 그 따위 몸이나 파는 계집으로 보이던?” 선녀는 갑자기 목욕감에 온몸을 떨었다. 그러자 옥금이는 머루알같은 눈을 곱게 흘겼다. “어머, 애두! 내게 그런 큰떡이 차려질수 있다면 그 좋은 떡을 내가 먹지 왜 너를 주겠니? 내가 먹을 자격이 안되니깐 너라도 먹으라는거지.” “넌 사내를 꼬시는 솜씨가 이만저만 아닐텐데 왜 자격이 안된다구 그러니?” “애두참, 하루밤에 10만원이란게 아무 녀자한테나 메치는 돈인줄 아니? 나같은 리혼녀는 어림도 없어. 그 김사장님은 잔치하기 전날밤인 신부를 특별히 애호하는 괴상망측한 기호가 있대. 바로 너 같은 준신부라면 고가로 산대. 이건 선금 5만원이고 일이 성사된후에 또 5만원을 마저 준대. 하루밤에 10만원 벌이가 어디 흔한 것 같니? 기회는 한번밖에 없어. 오늘밤만 지나면 너도… “ “그만 지껄이고 나가라!” 선녀는 돈묶음을 옥금에게 돌려주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나 옥금이는 개의치 않고 그냥 종알거렸다. “뭐 상습으로 하라는것도 아니고 단 한번뿐이니깐 뒤탈이 없을거야. 그리고 이 일은 너하구 나하구 사장님 내놓구는 이 세상사람들은 누구도 모를거야.” “너 사내들한테 잘 붙어먹더니만 인젠 뚜쟁이질까지 하는구나. 왜 친구를 팔아먹지 못해 안달이냐! 이 더러운 돈을 가지고 내앞에서 당장 꺼져라!” “얘, 그렇게 성급하게 거절하지마.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없어. 싫으면 돈은 후날 돌려줘도 되니깐 김사장님과 저녁에 만날 시간까지 잘 고려해봐.” 옥금이는 김사장과 만날 지점과 시간을 적은 쪽지를 돈묶음과 함께 놓아두고는 급급히 나가버렸다. “이 돈을…”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던 선녀는 뒤늦게야 돈묶음을 들고 따라 갔으나 옥금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 돈을 선뜻 돌려주지 못했는가. 그래 내가 돈의 유혹에 넘어갔단 말인가? 금전의 유혹에 빠져 정조를 팔아먹는 더러운 년이 되겠단 말인가. 아니야. 이 돈은 절대 가질수 없어. 돌려줘야 해! 그래 돌려주자!” 그러나 이 거금을 세여보는 선녀의 마음은 도무지 평온할수가 없었다. 그녀의 일생에서 앞으로 이런 큰돈을 다시는 쥐여볼것 같지 않았다. 옥금이의 말처럼 이 돈이 그녀의것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한번만 몸을 내던지면 세방살이 고생을 면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김사장과 만날 시간까지 선녀의 머리속에서 천사와 악마의 싸움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제 더 지체할수 없었다. 선녀는 돈묶음을 집어넣은 핸드빽을 들고 집에서 나왔다. 한창 걸어가던 선녀는 주춤거렸다. (내가 왜 이러는걸가? 변태색광인 김사장을 만나서 어쩌자는건지? 승냥이에게 먹히려고? 아니야. 난 지금 돈을 돌려주려 가는거야. 이 돈을 돌려주는 즉시 돌아올거야. 이 시한폭탄 같은 돈을 곁에 두고는 잠시도 안녕할수가 없어. 빨리 돌려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선녀는 택시를 잡아탔다. 50대의 호색한인 김사장은 생각밖에도 행동거지가 점잖았다. 선녀는 선뜻 돈을 꺼내놓지 못하고 귀신에게 홀린듯 김사장이 권하는 쏘파에 앉았다. 김사장은 사후에 주는 다른 돈 5만원을 꺼내보이며 자연스럽게 선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선녀는 (이럴바엔 어디 한번 눈 딱 감고 김사장의 품에 안겨볼가. 그러면 10만원 거금이 모두 내것이 될것이다.)라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였다. 김사장이 “요 내 신부! 요 내 각시!”라고 하며 입술을 덮칠 때 그녀는 덴겁한듯 몸을 떨었다. 성난 눈길로 쏘아보는 신랑 성호의 얼굴이 떠오른것이다. 아, 래일이면 결혼식을 올릴 신랑 성호! 사랑하는 성호에게 곱게 드려야 할 귀중한 첫날밤을 어찌 팔아먹을수 있단 말인가? 안된다. 절대 안된다! 선녀는 김사장을 콱 밀치고 벌떡 일어섰다. “미안해요. 전 이 돈을 돌려주려 왔어요!” “어, 그렇다면 난 절대 강박하지 않겠소. 여태껏 날 거절한 아가씨는 없었으니깐. 어디 잘 생각해보오. 10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요?” 김사장은 여유작작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선녀가 다시 품에 안기기를 기다렸다. 그는 남의 신부를 자기가 하루밤 먼저 차지하는것을 최대의 락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래서 1천만원을 미끼로 내던져 100명의 신부를 품어보려고 계획하고있는데 선녀가 벌써 스무번째였다. 먼저번의 녀인들은 돈의 유혹앞에서 모두 고분고분 말을 들었던것이다. 그는 선녀도 그러리라고 확신하고있엇다. 그런데… “김사장님께서 신혼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파탄하는 그런 짓은 이젠 그만두세요. 녀자를 사겠으면 기생이나 사고요.” 그런데 뜻밖에도 선녀가 이렇게 충고하며 핸드빽에서 5만원을 집어내여 던지는것이 아닌가. “아니, 아가씨! 아가씨…” 김사장이 황급히 불렀지만 선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녀는 마귀굴에서 벗어난듯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천근 같은 짐을 벗어던진듯 걸음걸이도 가벼웠다. 이 시각 선녀는 성호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성호는 지금 그들의 신방으로 정한 세집에 홀로 있을것이다. 선녀는 한시급히 그의 품에 안기고싶었다. 하루밤을 앞당겨 사랑의 감미로운 낚시밥을 훔쳐먹고싶었다. 선녀가 세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엔 불이 꺼져있었다. 돌아갈가 말가 망설이는데 안에서 웬 녀인이 애교를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난 끝내 성호씰 내 신랑으로 만들었어요. 선녀보다 내가 하루밤 먼저 성호씨와 신방에서 잔치를 하고있으니 난 사랑쟁탈전에서 이긴거야. 어때, 내가 성호씨 각시 옳지?” “그래. 옥금이는 내 각시야! 선녀가 김사장한테로 가는걸 내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난 오쟁이를 지고도 모를번 했지. 옥금이가 알려줬으니 망정이지 그것도 모르고 난 선녀와 잔치를 치를번 했지. 제길 난 옥금이와 잔치하겠어!” 이어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남녀의 야릇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선녀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 통탄할 일이다! 신혼의 사랑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금전의 유혹을 물리치고 천금보다 귀중한 모을 지켰건만…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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