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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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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해 탈□ 김희수 댓글:  조회:1123  추천:0  2020-11-20
1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주고 사철맛집 앞에서 내린 철우는 불룩한 가방부터 만져보았다. 그 안에 묵직한 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든든해진 철우는 사철맛집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단간방을 찾아 자리잡은 그는 복무원 아가씨에게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좀 전에 걸었던 전화번호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준수, 어디까지 왔어? 거의 온다구? 난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와.” 휴대폰을 내려놓은 철우는 조심스레 가방을 열고 100원짜리 묶음을 세여보았다. 세번이나 다시 세여보면서 열묶음이 맞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생각하면 너무나 힘든 세월이였다. 남들처럼 잘 먹고 잘살지는 못해도 아이들을 공부시키면서 먹고 입고 자는 근심이 없이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는 마누라 궁둥이 만지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는데 느닷없이 찾아온 안해의 뇨독증 때문에 불행이 시작되였다. 철우는 병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아이들과 남편 앞에서 억지웃음을 짓는 안해가 안스럽고 불쌍하여 그런 안해를 살리겠다고 집 팔고 빚을 지며 치료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여서 찾아간 것이 준수였고 그에게 두말없이 선뜻 10만원이란 거금을 내준 것도 준수였다. “고맙다! 준수. 이 돈을 꼭 갚을게.” “고맙긴 뭐, 니 처가 이제 30대 초반인데 사람부터 살려야지. 돈이 더 수요되면 주저하지 말고 얘기해라.” “나도 그 사람 나이가 아까워 더 살리고 싶다. 아이들도 너무 어려 엄마가 수요되고……” 철우는 눈물을 훔치면서 차용증을 쓰자고 권했다. 싸인하고 손도장을 찍겠다고 했지만 준수는 친구 사이에 차용증을 써선 뭘 하겠느냐며 아무때나 돈이 생기면 본전만 갚아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사정이 어려우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철우가 그럼 증인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다른 사람을 부르자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당했다. 그렇게 철우는 차용증도 증인도 없이 10만원을 받아가지고 나오면서 고맙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것이 1989년이였으니 10만원은 그때 도심의 아빠트 한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였다. 그런 거금을 차용증도 없이 선뜻 내준 준수가 고마워서 철우는 안해를 살리겠다고 치료비로 모두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안해를 살리지 못했다. 친구 준수의 눈물나도록 고마운 지원의 손길과 철우의 정성 어린 간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해는 치료효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1년 후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빚만 남기고 떠나간 안해, 그래도 살았으면 고마웠을 텐데 치료비만 쓰고 간 안해가 야속했다. 어떻게 10살, 12살밖에 안되는 아들딸을 두고 35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단 말인가? “여보, 그렇게 가면 나혼자 어쩌라구? 이 많은 빚을 어떻게 다 갚으라구?” 철우는 오열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밤낮으로 일했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돈을 모았다. 준수의 빚을 갚겠다고 퇴근해서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하기도 했지만 돈은 별로 모아지지 않았다. 마누라 없이 살아도 이것 없이 못 산다고 했던 담배도 끊고 이걸 발명한 사람에게 노벨상을 주어야 한다던 술도 끊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억척스레 일하며 악착같이 아득바득 애썼지만 생각처럼 돈이 모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가야 벌 수 있다고 한국행을 권유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여기저기서 돈을 꿔다가 출국수속을 밟았다… 7년 동안 한국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하며 모은 목돈을 손에 쥔 철우는 드디여 귀국했다. 귀국해서 처음 한 일이 준수한테 전화해 만나자고 한 일이였다. 이제 이 돈을 준수한테 넘겨주면 10년 동안 어깨를 지지누르는 것 같던 무거운 짐을 벗고 어깨를 쭉 펴고 다닐 것 같았다. 철우는 은행에서 준수를 만나 직접 빌린 돈을 주려고도 생각했지만 한잔 나누면서 고맙다는 말을 곁들이는 것이 나을듯 싶었다. 철우는 메뉴를 훑어보면서 준수가 좋아하는 료리 두가지를 먼저 주문했다. 그런데 거의 도착한다던 준수는 이제나 저제나 나타나지 않았다. 절대로 약속시간을 어길 준수가 아닌데 30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혹시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늦는다거나 못 오게 된다면 전화라도 하겠는데 지금까지 오지 못하는 걸 보면 사고라도 생긴 게 아닐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철우는 휴대폰을 꺼내 준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응답이 없었다. 잠시후 다시 걸자 뜻밖에도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휴대폰 주인을 아십니까?” “네. 그분과 만나기로 한 친군데요…” “저… 이 휴대폰 주인은 교통사고가 나서…” “뭐라구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거기 어딥니까?” 철우는 준수가 어떻게 됐는지 물을 경황도 없이 위치부터 확인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 부랴부랴 달려갔다. 살아야 하는데,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 생각만 하면서 주먹을 쥐고 달렸다.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교통경찰들이 현장조사를 끝내고 시신을 옮기고 있었다. 시신은 피투성이가 되였지만 낯익었다. 다가가 확인하는 순간 철우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준수야! 준수!” 준수가 가다니? 얼마 전까지도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전화하던 사람이 죽다니?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금이 들어있는 가방을 잡고 있는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2 준수를 보내는 날, 하늘도 슬퍼서인지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유가족의 눈물과 함께 땅을 적셨다. 평생 남을 도우며 살아온 고인의 장례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를 무릅쓰고 찾아와 애도를 표했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의 애처로운 통곡소리가 철우의 가슴을 찢었다. 준수의 죽음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철우는 한켠에 죄인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내가 맛집으로 부르지 않고 직접 돈을 돌려주었더라면 준수가 죽지 않았을텐데… 인간적이고 소탈한 준수의 모습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났다. 언젠가 둘이 함께 술을 마시며 한담을 할 때 준수가 웃으며 이런 말 한 적이 있었다. “철우야, 우리 둘중에서 누가 먼저 죽을가?” “그걸 누가 알아. 내 생각엔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넌 나보다 건강하지 않니?” “그건 모르는 일이야. 건강해보이는 사람이 먼저 죽을 수도 있고. 여하튼 70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가도 괜찮을 것 같다. 너무 오래 살면 벽에 똥칠을 할가 봐 두려워.” 철우는 죽는다는 말이 싫어 화제를 바꾸려고 준수를 흘겨보았다. “넌 오늘 왜 재수 없게 죽는다는 말을 자꾸 하니? 우린 아직 죽을 날이 멀었어!” “허허허” 준수는 소탈하게 웃었다. “죽음도 학문이야. 우리가 사는 것이 날마다 죽음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아니겠니?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오래오래 기억해준다면 그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지.” 그렇게 죽음에 대해 고담준론을 펼치며 70까지는 살겠다던 준수가 50도 안된 나이에 이렇게 빨리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철우는 인생이 무상하게 느끼면서 허탈감에 빠졌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이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괴로움에 눈물을 훔쳤다. 장례식 내내 그런 자책감에 모대기다가 철우는 고인의 가족들을 대할 용기가 없어 부조돈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철우는 그 후에도 준수에게 빚을 졌다는 자책감 때문에 예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준 준수에게는 평생 갚지 못할 은혜의 빚을 졌고 준수 가족에게는 남편과 아버지를 잃게 한 빚을 졌다는 죄책감이 밤낮으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사람이 빚을 지고는 못 사는 거야. 사람은 량심이 있어야 해. 은혜를 모르면 사람도 아니지.” 준수가 가고 한달이 지난 후 철우는 거금이 든 가방을 들고 준수의 안해를 찾아갔다. 미망인은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난듯 안존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철우를 맞아주었다. 철우는 미망인이 타온 커피를 받아들고 죄책감을 감추느라 고개를 숙였다. 미망인이 커피가 싫으면 차를 따라오겠다고 일어서려고 할 때 철우는 고개를 들고 커피향이 좋다고 했다. 그는 죄책감을 털어버리려고 긴긴 세월 끈끈하게 쌓아온 고인과의 우정을 내세우며 고인의 인품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고인의 가족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특히 고인을 잃고 힘들겠는데 도움을 받을 일이 있으면 솔직하게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미망인은 가끔씩 남편이 그리울 때가 있어 그렇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다고 했다. 철우는 그 때에야 비로소 고인의 집을 방문한 목적이 생각나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저, 준수가 생전에 돈을……” 성격이 급한 미망인은 철우의 말을 채 듣지 않고 가로챘다. “잘 아시겠지만 준수씨는 주머니사정이 넉넉해서 여태껏 누구한테 돈을 꾼 적이 없어요.” 한국에 가서 5년 동안 생활한 적이 있는 미망인은 언제나 남편에게 준수씨라는 호칭을 썼다. 철우는 미망인의 오해를 정정하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그런 게 아니라 준수가 누구한테 돈을 꾼 게 아니라 꿔준 일이……” 이번에도 미망인은 철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준수씨가 누구한테 돈을 꿔줬다고 한 말을 못 들었어요. 그의 유품에 차용증 같은 것도 없었구요.” “저, 그게 아니라 저……” 철우는 거금이 들어있는 묵직한 가방을 들고 돌려 주려고 일어섰다. 바로 그 때 갑자기 미망인의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상대방과 통화를 하던 미망인은 “미안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서……” 하는 말만 남기고 부랴부랴 밖으로 뛰여나갔다. 멍해있던 철우가 거금이 든 가방을 든 채 뒤따라 나갔을 때는 미망인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3 빚을 갚으러 갔다가 갚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온 철우는 다시 찾아가서 갚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빚을 꼭 갚아야 하는데 하고 마음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행동에는 옮기지 못했다. 빚이 항상 무겁게 몸을 누르면서 괴롭혔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졌다. 공교롭게도 그때 식품상점을 경영하던 이웃이 사정 때문에 가게를 내놓는다고 했다. 당장 밥그릇이 필요했던 철우는 구미가 당겼지만 자금 때문에 고민했다. “준수의 빚은 나중에 갚고 먼저 이 돈을 당겨 쓴다?” 하고 생각하다가도 또 “안돼. 사람이 량심이 있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빚을 갚는 게 먼저야.” 하고 왼고개를 치기도 하며 갈등을 겪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철우는 준수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먹고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부끄러움을 덮었다. 온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못 이루며 량심의 목소리와 싸우던 철우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결단을 내렸다. 아이들을 시집 장가 보내고 밥은 먹고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준수의 빚을 갚기로 했던 돈으로 가게를 차려놓고 아들과 함께 식료품을 팔았다. 딸 슬기는 취직이 어려워 한국으로 나갔다. 철우는 매일 가게문을 닫고 돈을 셀 때마다 준수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량심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돈을 모아 꼭 빚을 갚아야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아들에게 주는 용돈마저 줄였다. 아들은 입이 한자나 나와서 불만을 터뜨렸다. “이렇게 쥐뿔 만큼씩 모아서 어느 세월에 그 많은 빚을 다 갚겠습니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으고 또 모으면 목돈이 되겠지.” “아버지나 그렇게 사세요. 난 이 일을 더는 못하겠습니다. 창피해죽겠단 말입니다!” “창피하긴 뭐가 창피하단 말이냐?” “아이들이 나를 식장이라고 놀려준단 말입니다.” “식장?” “식료품장수란 말입니다.” 아들은 젊은 나이에 식료품이나 파는 게 체면이 깎인다고 투덜대더니 자기도 누나 따라 한국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넌 어려서 안된다. 스무살밖에 안된 녀석이 어떻게 남의 나라에 가서 일하겠다는 거냐?” “누나도 갔잖아요? 나절로 벌어서 장가 갈 돈을 모아야지 않겠어요?” “장가갈 돈은 이 애비가 모아줄게.” “빚까지 진 신세에 어느 천년에 돈을 모으겠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들이 몇달 후에는 위장질환을 앓다가 수술까지 하게 되였다. 수술비로 적지 않은 돈이 나갔다. 그 후에도 철우는 식료품장사를 견지하면서 계속 돈을 모았지만 아들의 말처럼 그렇게 모아서는 20년 후에도 빚을 다 갚을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빚을 갚겠다는 철우의 의욕도 퇴색했다. 세월은 량심도 죄책감도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몇해가 지난 후에는 차용증도 없고 증인도 없고 가족도 모르는 사실인데 그냥 묻어둬도 괜찮지 않을가 하는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4 세월이 흘러 딸도 시집을 가고 아들도 장가를 갔다. 그동안 철우는 준수에게 빚진 일을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고 해야 할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간에게는 살다가 갑자기 잊고 살았던 기억을 되살리는 어떤 계기가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그날 철우는 대련에 사는 딸집에 가려고 공항으로 나갔다. 이른 시간이여서 공항 대합실에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눈앞에 유령이 나타났다. 먼발치에서 철우를 바라보던 유령은 곧장 철우를 향해 다가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 유령을 본 철우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 유령은 준수였다. 순간 철우는 오래동안 잊고 살았던 빚이 떠오르며 준수가 유령이 되여 빚받으러 온 것 같아 전신이 옥죄여오는 공포를 느꼈다. 그러던 철우는 가까스로 진정하며 귀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내가 헛것을 본 거야!” 철우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은 허깨비가 아니라 분명 준수였다. 내가 정말 귀신을 본 걸가? 귀신이 아니라면 죽은 사람이 어찌 살아서 내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온몸에 전률이 이는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 귀신이 깍듯이 인사했다. “슬기 아빠, 안녕하세요?” 그제야 철우는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귀신이 아니라 준수의 아들 건이였다. 건이는 철우의 딸 슬기와 동갑이며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줄곧 한반에서 공부한 동창생이였다. 준수는 생전에 두 아이를 놓고 철우와 사돈을 맺자고 롱담을 한 적도 있었다. 철우는 눈앞에 나타난 준수의 아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선 준수의 아들은 제 아빠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응, 너 건이 아니냐?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철우는 건이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발견했다. “너 얼굴색이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저, 엄마가 많이 아파요.” “무슨 병인데?” “연변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진단이 안 나와서 지금 북경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중이예요. 치료비가 모자라 여기저기서 돈을 꿔가지고 다시 북경으로 가는 참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순간 철우는 오래도록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죄책감이 꿈틀 고개를 드는 걸 느꼈다. 내가 진작 빚을 갚았더라면 준수 가족이 치료비 걱정은 덜었을 텐데 하는 량심의 가책에 건이의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 철우는 준수가 사망한 후 준수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조차 외면하고 살아온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준수가 생전에 그토록 큰 도움을 주었는데 친구의 자식이 엄마의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사처로 뛰여다니는 상황이 된 것도 모르고 있다니? 도움을 받을 때는 그 은혜를 꼭 갚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자신은 은혜를 저버린 천벌 받을 인간으로 된 것이다. “너 잠간만 기다려.” 철우는 현금인출기에서 은행카드에 있던 2만원을 찾아 수중에 있던 5000원의 현금과 함께 건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건이는 그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 너의 아버지한테 빚진 것이 있어 그런다. 받아라, 어서.” “고맙습니다.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건이는 빚진 것이 있다는 말을 철우가 아빠에게 신세를 좀 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철우는 건이가 고맙다고 한 말과 나중에 꼭 갚겠다고 한 말에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날 철우는 딸집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준수의 빚을 갚기 위해 또 한국으로 나갔다.   5 20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은 낯익으면서도 낯설었다. 철우는 모든 것이 많이 변해있는 모습에 놀랐고 더구나 가리봉동, 대림동과 같은 조선족집거지까지 생겨난 것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하게 감상에 젖어있는 것도 잠간, 이곳에 온 목적 대로 하루빨리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보다 먼저 준수의 빚을 갚아야 했다. 빚이 어깨를 지지눌러 기를 펼 수 없었다. 빚을 다 갚아야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았다. 사실 관광객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풍경 따위에나 취해 감상에 젖어있을 조선족은 매우 드물다. 분초를 다투어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왔을 때처럼 한국인에게 사기당하는 일은 적어졌지만 한국인의 눈치를 보면서 일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국인 앞에서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처음부터 주눅이 들면 한국인들의 업신여김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철우는 이곳에서 한국인들에게 수없이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았지만 참을 인자 셋을 품고 견지했다. 그런데 지금은 당당한 위엄이 무시라는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아주는 효과적인 방어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였기에 이방인이 아니라 단군의 후손이란 자신감을 가지고 허리를 쭉쭉 펴고 일했다. 철우는 장기간 서울에 눌러 있던 친척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다. 60세를 넘긴 몸으로 한국에 와서 일하자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봉급이 높은 일자리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고 저임금의 일자리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도 하는 수 없이 젊은이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덜 힘든 일이였지만 장기간 육체로동을 하노라니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우면 전신이 뻐근하고 팔다리가 쑤시군 했다.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 하루종일 숨이 차게 뛰여다닌다 서울하늘 하늘아래서 내 꿈도 가까이 온다 … 지쳐 누워있다가도 이런 노래를 들으면 다시 힘이 생겼다. 아파도 참고 힘들어도 감내하면서 철우는 5년 동안 견지했다. 그렇게 고생한 보람으로 손에 목돈을 쥐기는 했지만 몸이 지치고 마음도 지쳐서 깊은 병이 들었다. 온몸이 아파서 귀국했을 때는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피골이 상접하고 눈확이 푹 꺼져들어간 데다가 얼굴까지 창백하여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특히 아들딸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서럽게 엉엉 울어댔다. 3개월 후에 철우는 급기야 입원했지만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먼저 간 안해가 떠오르고 또 준수가 떠올랐다. 준수와 함께 죽음에 대해 담론하던 일도 떠올랐다. 자신은 이제 2~3년은 더 살아야 70세를 채우지만 벽에 똥칠은 하지 않고 간다 생각하니 그래도 다소 위안이 되였다.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해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간다는 생각, 자식들도 이제 다 어른이 되여 각자의 가정을 이루었으니 부모 없이도 잘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기면서 눈을 감아도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한가지 일이 딱 마음에 걸렸다. 죽기 전에 해결하지 못하면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장장 30년을 자책감에 시달리게 하며 못견디게 괴롭히던 일이였다. 림종을 앞둔 철우는 아들딸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아빠가 친구에게 10만원을 빚진 것이 있는데 아직도 갚지 못했다. 그게 30년 전의 일이니까 지금 돈으로 100만원은 더 될 거다. 100만원은 아니여도 너희들이 힘자라는 만큼 꼭 갚아야 한다. 슬기야, 너 아빠 친구 준수를 잘 알지? 건이의 아빠 말이다. 너의 엄마가 앓을 때 치료비로 쓰라고 선뜻 거금을 내준 고마운 분이다. 그런데 아빠는 그런 친구의 은혜를 잊고 지금까지도 그 빚을 갚지 못했다. 빚을 지고는 못산다고 아빠는 그동안 자책감으로 인한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았다. 한동안은 빚진 일을 잊기도 했지만 기억에 영영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일이였지. 너희들에게 빚을 지우고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그러나 아빠가 이 지경이 되였으니 내가 지금까지 모은 돈에 너희들이 보탤 수 있으면 보태서 준수의 아들 건이에게 보내주어라. 이것이 아빠의 마지막 부탁이다.” “아빠, 그 돈을 꼭 갚아야 해요? 차용증도 쓰지 않았고 증인도 없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갚지 않아도 건이네는 모를 거예요.” 철우는 그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 힘을 모아 말했다. “차용증을 쓰지 않았다고 꾼 돈이 꾸지 않은 것으로 되겠니? 아빠의 친구가 우리 가족이 제일 어려울 때 도와주었는데 우리가 그 은혜를 잊어서야 되겠니? 지금 건이네도 엄마의 치료비에 거금을 쓰고 생활형편이 몹시 어려울 거다. 이제 아빠는 준수를 만나러 가겠는데 그를 만나서 뭐라고 말을 하겠니? 빚을 갚지 못하고 무슨 낯으로 그를 보겠니? 그러니 너희들이 아빠의 빚을 꼭 갚아다오. 제발 부탁이다. 아빠의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꼭 갚아다오.” 철우의 딸 슬기는 지체하지 않고 자기의 저금을 찾아 돈 액수를 맞춘 후 건이에게 전화를 걸어 구좌번호를 알아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철우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철우는 숨은 거두었지만 눈은 뜨고 있었다. “왜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일가?” “아빠는 아마 빚 때문에 눈을 감지 못한 것 같아.” 슬기는 돈을 건이의 구좌에 넣어주고 나서 아빠한테 빚을 다 갚았다고 속삭였다. 그제야 철우는 눈을 감았다. 연변일보 
35    꽈배기인생 댓글:  조회:1113  추천:0  2020-09-07
단편소설   꽈배기인생   김희수   내 인생은 태여날 때부터 꽈배기처럼 비비 꼬여있었다. 꽈배기는 중국말로 마화(麻花)라고 하고 함경북도 방언으로 타래떡이라고 한다. 꽈배기건 마화건 타래떡이건 나는 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릴 때에는 무척 즐겨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꽈배기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는 로임을 타는 날이면 꼭꼭 꽈배기를 사다주곤 했다. 꽈배기를 먹을 때면 언제나 꽈배기처럼 땋아내린 뒤집 명희누나의 외태가 생각났다. 나는 명희누나의 외태를 풀듯이 꽈배기를 한가닥씩 길게 풀어 가지고 한입씩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내가 꽈배기를 맛있게 냠냠 먹는 것을 지켜보던 명희누나가 “자 똥 먹는 걸 좀 봐라. 창지 똥 먹는다”하고 익살스럽게 웃으며 놀려주었다. 내 이름은 조선말로 창길(昌吉)이지만 조선족들은 중국어 발음대로 “창지”라고 불렀다. 명희누나가 꽈배기를 똥이라고 한 다음부터 나는 꽈배기가 정말 똥같아서 다시는 먹지 않았다. 그 것은 아마도 내가 다섯살 때라고 기억된다. 나는 내가 먹는 꽈배기를 똥이라고 한 명희누나한테 보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명희누나의 하교길에 기다리고 있다가 명희누나가 나타나자마자 바지를 벗고 오줌을 갈겼다. 뜻밖에 오줌세례를 받은 명희누나는 평소에 그렇게 예쁘던 눈을 무섭게 지릅뜨며 화를 벌컥 냈다. “야, 임마! 내 오늘 니 고토리를 쑥 빼먹겠다!” “빼먹어봐라, 빼먹어봐라!” 명희누가 쫓아오자 나는 바지춤을 붙잡고 줄행랑을 놓았다. 사흘후였다. 내가 집마당에서 혼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명희누나가 달려오더니 무작정 내 바지를 벗겼다.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었다. “야, 임마! 내 오늘 니 고토리를 쑥 잘라버리겠다. 다시는 오줌을 누지 못하게.” “누나, 하지 마. 제발……”      이러다가 정말로 고추가 명희누나의 가위에 썩둑 잘리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에 질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때마침 엄마가 와서 말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내가 사내구실을 못할 번 했다. 엄마는 내가 첫돌이 지난지 얼마 안되여 새마을 조선족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뒤집에 명희누나네가 살고 있었다고 했다. 명희누나네는 색다른 음식을 하게 되면 언제나 우리 집으로 들고 왔고 우리 엄마도 그 보답으로 꼭꼭 채소를 보내주곤 했다. 할머니네가 채소밭을 가꾸고 있었기에 우리 집에는 채소가 좀 여남이 있었던것 같다. 우리 집은 한족이였지만 만두나 젠빙(煎饼)보다는 된장국이나 김치를 더 즐겨 먹었다. 명희누나가 내 고추를 자르려고 했던 그 사건이 있은후 나는 얼마동안 명희누나를 멀리했지만 달포도 지나지 않아 곧 명희누나와 화해했고 명희누나가 하교하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그때마다 명희누나의 친구들은 늘 명희누나와 나를 놀려주었다. “야아, 어떤 애는 엉뎅이에 꼬리 달렸다. 창지 명희 꼬랑대구나!” 하지만 명희누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옥자누나만 늘 나를 쫓으려고 애썼다. “야, 창지야, 넌 남자라는게 남자들과 놀아야지 왜 부실하게 자꾸 녀자들과 놀려구 하니? 저리 가라, 가!” 옥자누나가 쫓으면 나는 명희누나의 뒤에 피했고 명희누나는 그런 나를 두둔하고 나섰다. “창지 아직 어려서 그러니 여기서 놀게 하자꾸나.”      나보다 세살 년상인 명희누나는 “똑똑한 애”라고 동네어른들로부터 늘 칭찬을 받았다. 공부도 잘했고 말도 잘했고 돌차기(망차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실뜨기 등 못하는 놀이가 없었다. 돌차기를 할 때면 명희누나의 발은 신들린 것 같았다. 명희누나가 한 발은 들고 한 발로만 뛰여가면서 돌을 차면 돌은 바로 목표하는 칸의 가장 적중한 곳에 떨어지곤 했다. 공기놀이를 할 때면 공기돌 하나를 우로 던지고 그 사이에 땅바닥의 네개의 공기돌을 몽땅 손안에 쥐고 우에서 내려오는 공기돌마저 착착 받아쥐는데 조그마한 손이 어찌 그리 예쁘고 빨리 움직이는지 보는 눈이 다 뒤집힐 지경이였다. 명희누나가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곡마단의 곡예공연을 보는듯 아슬아슬했다. 두 아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량쪽에 서서 각각 고무줄의 량끝을 잡고 손을 머리우로 뻗쳐 고무줄을 높이 들어올리면 명희누나가 중간쯤에서 다리를 쭉 들어올려 고무줄을 착 발목에 걸어 내려 두발을 감아치는데 넘어질듯 하면서 균형을 잡는 그 동작이 얼마나 잽싸고 우아한지 모른다. 누나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나는 곁에서 지켜보다가 나도 함께 놀자고 떼를 쓰곤했다. 고무줄놀이에서 가장 쉬운 것이 “혁명을 틀어쥐고 생산을 촉진하자(抓革命促生产)”는 놀이였다. 이 놀이는 고무줄의 량끝을 이어서 두줄로 만든후 두 아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량쪽에 서서 고무줄을 두발목에 걸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하나, 둘씩 놀이동작을 한다. 고무줄놀이는 발목에서부터 무릎, 넓적다리, 궁둥이, 허리, 겨드랑이, 어깨, 목, 귀, 머리와 머리 위 한 뼘, 머리 위 두 뼘, 마지막에는 손을 뻗친 높이에까지 점점 고무줄의 높이를 상승시키는데 두줄놀이는 외줄놀이처럼 높이 뛸수 없기에 외줄놀이보다 높이를 몇단계 낮춘다. 두줄놀이를 할 때는 두 아이가 고무줄을 걸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차례로 한 아이씩놀이를 한다. 고무줄을 걸고 있는 두 아이가 “쫘(抓)”하고 소리치면 고무줄 한켠에 두발을 모으고 대기하고 있던 아이는 토끼처럼 깡충 뛰여서 두발이 두줄의 고무줄 안으로 들어오도록 내려선다. 그리고 “거(革)”하고 소리치면 개구리처럼 폴짝 뛰여서 두 다리를 벌려가지고 두발이 각각 두줄의 고무줄밖에 닿도록 내려선다. 다시 “밍(命)”하고 소리치면 원숭이처럼 잽싸게 뛰여올랐다가 두 발이 고무줄 안에 들어오도록 내려서고 “추(促)”하고 소리치면 벼룩처럼 훌쩍 뛰여 오르는 순간 몸을 90도로 돌려서 처음에 서있던 고무줄 한켠으로 내려서고 “썽(生)”하고 소리치면 바람처럼 씽하니 뛰여오르는 순간 두 발등에 고무줄의 한줄을 걸어가지고 건너편으로 넘어내리고 “찬(产)”하고 소리치면 캥거루처럼 껑충 뛰여오르는 순간 발등에 걸었던 고무줄에서 벗어나며 고무줄 건너쪽으로 살짝 내려선다. 잘하는 아이가 먼저 한 동작씩 하면서 뒤따라 하는 아이에게 고무줄높이를 낮춰주기도 한다. 두줄놀이는 상대적으로 쉽기에 유치원아이들이나 소학교 저학년아이들이 놀고 외줄놀이는 소학생이나 중학생들이 논다.          나는 명희누나네가 전투영웅 황계광, 구소운을 구가하는 한족노래에 맞추어 고무줄놀이를 하는것을 많이 보았다. 그 노래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 내용이 대략 이러했다. ……쓰얼 쓰얼쑈링땅(十二、十二小铃铛), 짠떠우잉쓩 황지광(战斗英雄黄继光), 황지광, 츄쏘우윈(黄继光、邱少云), 타먼씨썽 워이워먼(他们牺牲为我们), 둬씨라쒀 미라쒀(哆唏啦嗦咪啦嗦). 나는 명희누나가 놀이를 할 때면 곁에서 구경하면서 “누나 잘 한다!”하고 손뼉을 치면서 응원했다. 어느날, 내가 외가집에 갔다 오니 여러명의 녀자애들이 동네공터에서 편을 나누어 꽃찾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두 편이 서로 팔짱을 끼고 일정한 거리를 사이두고 마주 서서 있다가 명희누나의 편에서 먼저 한 발작씩 전진하며 노래를 부르자 상대방의 편에서 또 한발작씩 전진하며 노래로 대답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겠니 찾겠니 찾겠니 명희꽃을 찾겠다 찾겠다 찾겠다   상대방 편에서 명희꽃을 찾겠다고 하자 명희누나가 나서서 상대방의 한 사람과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결정했다. 아쉽게 명희누나가 져서 명희누나는 상대편으로 넘어갔다. 이겨서 좋구나 좋구나 좋구나 져서두 좋구나 좋구나 좋구나   두 편은 한 판을 결속짓고 다음 판으로 넘어가 또 노래를 부르며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이 “명희꽃”을 찾는 회수가 제일 많았다. 그만큼 명희누나는 애들 속에서 인기가 높았다. 아이들 무리에서 리더격인 명희누나는 재치있는 리더십으로 아이들을 쥐락펴락 했고 아이들은 명희누나가 하는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그 덕에 나는 무난히 녀자애들속에 끼워서 놀수 있었다. 나는 열살전에는 딱지치기, 유리구슬치기, 땅따먹기, 살구씨따먹기, 땅에 여러가지 형태의 금을 긋고 겨루는 놀이 등 남자애들의 놀이보다 공기놀이, 고누, 고무줄놀이, 실뜨기 등 녀자애들의 놀이를 더 좋아했다. 물론 이런 녀자애들 놀이는 모두 명희누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명희누나한테서 배웠다. 하지만 열살이 되던 해에 명희누나의 날벼락 같은 말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후로 더는 명희누나의 뒤를 따라 다니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조선족보다 조선말을 더 잘하는 한족이라고 한다. 내가 조선어를 류창하게 술술 구사할라치면 조선족아줌마들은 “저는 어떻게 조선말을 그리 잘하오?” 하고 묻는다. 나는 “저는”하는 말이 리해되지 않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예?”하고 되묻는다. 아줌마들이 “제 말이요.”하고 한마디 더 해서야 나는 “아, 예. 저는 조선족학교에 다녔습꾸마.”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꼬치꼬치 캐여묻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부모가 원래 조선말을 잘하는데다가 조선족마을에서 태여나 줄곧 조선족들과 이웃하고 살았습꾸마”라고 말해준다. 내가 어릴 때에는 조선족마을과 한족마을이 따로 따로 있었다. 그때는 한족들은 한족들끼리, 조선족들은 조선족들끼리 동네를 형성하고 저마끔 한 동네에서 살았는데 간혹 조선족동네에 한족집이 한둘이 있는 동네도 있었다. 우리 집이 바로 그랬다. 우리 집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새 마을 조선족동네에서 유일한 한족집이였다. 명희누나의 엄마는 우리 집에 놀러올 때면 언제나 “이 집 가무떼기 있습둥?”하고 소리치면서 노크했다. 그러면 우리 엄마는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명희 엄맘둥? 날래 들어옵소”하고 반긴다. 나는 “가무떼기”라는 것이 가정주부라는 뜻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였다.     나의 부모는 왜서 조선족동네에서 살았고 왜서 나를 조선족유치원, 조선족학교에 붙였을가? 이런 의문이 있었지만 나는 부모한테 물어본적이 없다. 나는 외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지만 외할머니가 조선족이였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조선족이여서 엄마가 조선말을 잘했고 나 또한 반은 조선족인 엄마에게서 배워서 조선말을 잘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외할머니가 조선족이니 내 몸에서 4분의 1이 조선족피가 흐르고 있는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내가 입양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난 진짜 한족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려준 것은 명희누나였다. 내가 열살이 되던 해에 명희누나는 자그마한 일로 나하고 다투다가 “야 창지야, 너는 주어온 아이다. 너네 엄마가 널 검은 철다리 밑에서 주어왔다”하고 놀려주었다. 그 날벼락 같은 말을 듣고 나는 “아니야, 난 우리 엄마가 낳은 아이야!”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나는 그 즉시 울면서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붙잡고 “명희누나가 그러는데 내가 다리 밑에서 주어 온 아이래. 엄마, 이게 정말이야?”하고 따져 물었다. 순간 엄마는 당황해 하며 “누가 그런 허튼소리를 줴치던?”하고 되물었다. “명희누나가 그랬어.” “그건 거짓말이야. 우리 창지는 이 엄마가 낳은 아이야.”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그제야 안심이 된 나는 다시 명희누나를 찾아가서 “누나는 왜 거짓말을 했어?! 우리 엄마가 다 알려줬어. 난 다리 밑에서 주어 온 아이가 아니라 엄마 배속에서 나온 아이래.”하고 따지듯이 말했다. 명희누나는 그런 나를 째려보며 소리쳤다. “야, 이 멍청아! 너네 엄마야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실말을 하겠니?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네 친엄마가 널 낳아서 검은 철다리 밑에 버렸대. 그 걸 지금의 너네 엄마가 주어다 키웠대.” “거짓말이야!” “정말이야. 너네 원래 살던 동네의 왕아줌마가 말하는 걸 우리 엄마가 직접 들었대. 왕아줌마는 네네 엄마가 다리 밑에서 널 주어 오는 걸 직접 보았대. 왕아줌마가 나중에 알아보니 너네 친엄마는 처녀의 몸으로 널 낳았기에 키울수 없어 갓난 널 다리 밑에 버렸대.”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나는 내가 버림받은 아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버림받은 아이라면 괴로워 미칠것 같았다. 나는 한참 울다가 물었다. “그럼 우리 친엄마는 지금 어디 있대?” “그야 누구도 모른대. 널 다리 밑에 버리고 간후 누구도 소식을 모른대.” “아니야! 거짓말이야!”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그날밤 나는 열살 어린 나이에 처음 외박을 했고 룡정역 대합실에서 밤을 지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집으로 달려가 친엄마가 어디 있느냐고 발광을 해서 엄마를 당황하게 했다. 엄마는 곧장 명희네 집에 찾아가서 “이 집 명희가 왜 당치않은 말을 해서 우리 창지를 버림받은 아이로 만드냐”고 명희 엄마를 보고 야단을 쳤다. 명희 엄마는 어른들끼리 하는 말을 명희가 잘못 알아듣고 그런 말을 했다고 사과했다. 엄마는 명희 엄마와 함께 우리가 원래 살았던 동네에 찾아가 왕아줌마를 데려왔고 왕아줌마는 내 앞에서 “주어 온 아이란 건 쉬창지(许昌吉)를 말한 거야. 넌 쉬창지(徐昌吉)잖아? 난 너네 엄마가 널 임신해서 배가 불룩한 것도 보았고 널 낳는 것도 직접 보았다. 넌 너의 엄마가 낳은 아이가 틀림없어”하고 해석했다. 결국 “허(许)”와 “서(徐)”는 중국어로 발음이 같아서 명희누나가 오해했다는 것이였다. 그날 어른들이 다 물러간후 나는 명희누나를 보고 “들었지? 난 주어 온 아이가 아니야.”하고 아주 떳떳하다는 듯 배를 쑥 내밀었다. 그런데 명희누나는 그런 나를 비웃으며 반박했다. “다른 집 애들은 다 형이나 누나, 동생들이 있는데 너만 혼자인 게 이상하지 않니? 네가 주어 온 아이가 아니면 왜 네네 집엔 아이가 하나뿐이겠니?” 정말 그랬다. 다른 집들은 형제자매가 네댓씩 되였고 명희누나도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내가 정말로 주어 온 아이일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나는 더는 엄마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엄마가 상심할가봐 그런 것도 있었지만 혹시나 정말로 나를 주어 온 아이라고 승인할가봐 더욱 겁났던 것이다. 그날밤 나는 혼자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울면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새벽에 쪽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정주간에 밥상이 차려져있고 그 옆에 어머니가 누워 계셨다. 우리 집은 웃방과 정주 두간이 있는 조선족 온돌을 놓은 집이여서 웃방의 미닫이문을 열면 정주간과 부엌이 한눈에 드러나 보인다. 우리 집은 세 식구인데 나는 웃방에서 자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주간에서 주무셨다.   “어머니, 어디 아프신가요?” “네 어머니는 네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가슴 아파서 지난밤에 눈물로 밤을 새웠다.” 아버지가 대신 하는 말에 나는 가슴에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며 눈물이 나왔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어머니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창지야, 누가 뭐래도 넌 내 아들이야! 우리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지?” “압니다. 어머니, 미안해요!” 나는 양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알지만 갓난 나를 버린 생모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엄마가 나를 주어왔다는 검은 철교를 찾아갔다. 집에서 5백보가량 걸으면 기차길이 나타나고 그 기차길을 건너 다시 2백보가량 걸으면 또 새로운 기차길이 나타나는데 그 기차길을 따라 잠간 걷노라면 해란강우에 놓인 검은 철교에 다달을 수 있다. 이 검은 철교에는 내 발자국이 수없이 남아있다. 학교밭이 검은 철교 건너쪽에 있었기에 반아이들과 함께 학교밭에 일하러 다닐 때도 건너 다녔고 여름철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수영하러 다닐 때도 건너 다녔고 가을철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과수원에 과일서리를 하러 다닐 때도 건너 다녔고 겨울철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타러 다닐 때도 건너 다녔다.    나는 검은 철교의 한 끝에 멍하니 서서 검은 철교의 저쪽 끝을 바라보기도 하고 강물을 넋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다리밑에 버렸다면 가운데는 강물이니 시작점이나 끝점 어디에 버렸을 것이다. 수없이 건너다닌 검은 철교지만 어쩐지 낯설어보였다. 그런데 이쪽에 서면 이쪽이 시작점 같고 다리를 건너 저쪽에 서서 보면 저쪽이 시작점 같다. 시작점이던 끝점이던 어느 한쪽에 버렸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 강뚝에서 경사지게 돌로 쌓은 다리아래를 내려가보니 첫 교각주위에 자그마한 백사장이 있었지만 아이를 버릴만한 장소는 아니였다. 다리건너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아이를 버릴 마음을 먹은 모진 엄마라지만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여름철이나 겨울철이라면 수영이나 썰매 타러 나온 아이들이 빨리 발견할수 있었겠지만 내 생일이 4월초이니 군데군데 살얼음판이 남아있는 이 계절에 강가로 놀러 나온 아이들이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이른 봄이라지만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아기는 얼어죽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버렸을것이다. 아마도 다리 맨 밑이 아니라 다리 조금 밑인 강뚝 어딘가에 버린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니 가까운 곳에서 응아응아 하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처량하게 들렸다. 저렇게 애달프게 우는 아이를 버리고 어떻게 발걸음이 떨어졌을가? 엄마라는 사람은……  나는 몸서리치는 다리 밑을 피해 다시 검은 철교에 올라섰다. 갑자기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철교 저쪽을 바라보니 당직실로 쓰고 있는 일제 때의 또치카에서 나온 철도원아저씨가 기차가 온다는 신호로 푸른 기발을 높이 들고 호각을 불고 있었다. 호각소리에 이어 뿡 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내 다리란간에 몸을 기댔다. 순간 기차가 기적소리 높이 강풍이 몰아치듯 지나갔다. 기적소리에 귀가 먹먹했고 기차바람에 내 몸이 날려갈 것 같았다. 순간 나는 갓난아이가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얼마나 무서웠을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났다.     왜 하필 다리밑에 버렸을가? 차라리 강물에 버렸더라면 이처럼 고통스럽지 않았을것을. 키우지도 못하고 버릴거면 왜 나를 낳았어? 나는 나를 낳은 엄마가 죽도록 미웠고 내가 버림받은 아이란걸 알게 한 명희누나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렇게 죽이고 싶도록 밉던 명희누나였지만 몇년이 지난후에는 지난 일을 잊고 다시명희누나를 좋아하게 되였다. 단순히 좋아한 정도가 아니였다. 나는 청소년기 이성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명희누나를 사랑하게 되였다. 많고도 많은 녀자들 중에 왜 하필 세살이나 년상인 명희누나만 녀자로 보였을가? 내 눈엔 명희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보였다. 명희누나만 보면 공연히 가슴이 설레이고 하루라도 명희누나를 보지 못하면 미칠 것 같았다. 어느날은 명희누나와 섹스하는 꿈을 꾸면서 처음 몽정을 하기도 했다. 다음날 젖은 속옷을 누가 볼가봐 두려워 몰래 빨래했고 그후 명희누나를 보기가 민망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는 명희누나의 손을 잡고 정처없이 걷고 싶었고 명희누나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련며칠 밤잠을 설치면서 젊은 날의 짝사랑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내 마음을 고백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날은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이였다. 명희누나를 향한 사랑의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던 그날 나는 낚시대를 들고 명희누나를 찾아갔다. 말이 낚시대이니 그건 대나무가지로 만든 비자루에서 단단한 가지를 골라내여 낚시대랍시고 만들어 거기에 낚시줄과 낚시바늘을 맨것이다. 또 치약의 웃부분을 녹인 납으로 봉돌을 만들어 달아놓았는데 당시 아이들에게 이런 낚시도구가 류행이였다. “누나, 낚시하러 갈가?” 내가 낚시대를 흔들어보이자 명희누나는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을 곱게 흘겼다. “오늘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낚시 낚자만 들어도 싫어하던 네가 낚시야?” “나도 한번 낚시 배워볼려구. 누나, 같이 가줄래.”  “사내애들 하는 낚시를 내가 왜 가?” “날씨도 좋은데 낚시도 하고 미역도 감고 좋잖아?” “그럼 애들 불러 함께 가자.” “애들은 무슨…… 우리 둘만 가자.” “너랑 나랑 둘이서만?” “응.”  “우리 둘이서 무슨 재미야?” 명희누나는 기어이 애들을 부를 작정이였다. 급해난 나는 핑계거리를 찾았다. “사람이 많으면 물고기가 달아나. 우리 둘만 가자.” 그러나 명희누나는 애들을 부르러 이집 저집 찾아다녔다. 마침 일이 잘 되느라 그런지 애들이 모두 어디로 멀리 놀러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명희누나는 단념했는지 나를 따라 나섰다. 명희누나와 내가 강가에 이르니 빨래 하러 나온 아낙네들과 수영하러 나온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룡문교를 건너 강뚝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가 버드나무가 있는 조용한 곳에 자리잡았다. 명희누나와 나는 버드나무 아래에 나란히 앉아 낚시질을 했다. 나는 어설픈 동작으로 낚시바늘에 미끼를 끼워서 강물에 던졌다. 원래부터 낚시에는 흥미가 없었던 차라 나는 낚시대를 잡은 채 홀린듯이 명희누나의 얼굴만 넋없이 바라보았다. 명희누나는 희고 보동보동한 손으로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야 창지, 너 왜 낚시엔 집중하지 않고 나만 보니? 그래 가지고 물고기를 낚기나 하겠니?” 명희누나는 가까이 다가와 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탁 튕겼다. 나는 바보처럼 씩 웃었다. “누나가 너무 이뻐서……” “너 녀자 이쁜 것두 아니?” “응. 누나 너무 이뻐. 정말 이뻐! 누나 나랑 련애할래?” “뭐라구?!” “누나 우리 약혼하자!” 나는 불의의 습격을 했다. 전광석화와 같이 순식간에 명희누나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갑작스럽게 당한 명희누나는 당황해다가 나를 콱 밀치고 주먹을 내들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더 쬐꼬만게 이 누나랑 련애하겠다구? 누나랑 련애하려면 10년은 더 자라야 할걸.”  나는 련애하겠다고 명희누나한테 덤볐다가 머리에 꿀밤 한 대를 맞았다. 명희누나가 또 꿀밤을 먹이려고 하자 나는 황급히 피하며 소리쳤다. “내 지금은 키가 작지만 몇년후엔 누나보다 더 클수 있어. 누나, 10년 기다려줘.” “야, 임마! 10년후엔 누난 시집가서 애 엄마가 될거다!” 명희누나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깔깔 웃어댔다. 그렇게 내 청춘의 첫 고백은 실패로 끝났고 실련의 아품이 너무 컸지만 나는 명희누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명희누나와 나는 모두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명희누나는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기 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하향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가 집체호 생활을 했기에 대학에 갈 꿈조차 꾸지 못했다. 나는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던 해에 중학교를 졸압했지만 그 당시 대부분 아이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때문에 대학에 붙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3년동안 군복무를 하고 나와 백화공사에 취직했다. 군대에서 제대하던 날 나는 집에 잠간 들렀다가 곧 명희누나가 있는 집체호로 찾아갔다. 명희누나는 뜻밖에 찾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너 군대 갔다 오더니 진짜 사내대장부 됐구나!” 명희누나가 내 손을 잡아주고 집체호의 다른 누나들도 키 크고 잘 생긴 군대총각이 왔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내가 명희누나의 신랑감이라고 롱담을 했을 때 남자들쪽에서 한 형이 적의에 찬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형이 명희누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 명희누나는 동구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작별인사를 나눌 때 나는 갑자기 명희누나의 손을 잡으며 고백했다. “이제 내가 누나보다 키도 더 컸으니 우리 진짜로 련애하자.” “창지, 너 또 그런 롱담을……” “롱담이 아니야.” 나는 일생에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명희누나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이번에는 사춘기의 키스가 아니라 정열에 불타는 청춘의 키스였다. 뜻밖에도 명희누나는 나를 물리치지 않고 키스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후 나는 명희누나의 집체호로 뻔질나게 다녔다. 우리는 집체호에서 500메터 떨어진강가의 버드나무아래를 비밀장소로 만들었고 명희누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금살금 비밀장소로 나왔다. 어느날 명희누나는 불쑥 생뚱한 말을 했다. “창지야, 미안해.” “갑자기 미안하다니?” “내가 널 주어온 아이라고 놀려준 일이……” “다 지나간 일을 새삼스럽게. 난 다 잊었어.” 그 순간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나서 나는 바보같은 물음을 던졌다. “날 낳아준 엄마가 왜 하필 다리밑에 날 버렸을가?” “너 바보야? 지금도 다리밑에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 나의 진지한 눈길에 명희누나는 깔깔 웃어댔다. “그건 어른들이 아이를 놀려주는 말투야.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넌 다리밑에서 주어온 아이야’하고 놀려주는데 정말 아이를 다리밑에 버리는 부모가 있을가? 누군가의 집앞에 버리면 버렸겠지.” 그럼 나의 생모도 날 지금의 양부모가 살던 집앞에 버린 걸가? 다리밑이 아니라…… 몇년후 명희누나는 집체호생활을 결속짓고 도시로 돌아와 제지공장에 취직했다. 명희누나가 취직하자 나는 정식으로 청혼하고 부모님께 결혼의사를 밝혔다. 한족들은 녀자가 세살쯤 년상인 것을 개의치 않아서 그런지 부모님은 “명희 그 아이를 오래동안 곁에서 지켜보아서 잘 아는데 현모량처가 될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통쾌하게 동의했다. 그런데 내가 년하이고 한족이라는 리유로 명희누나의 부모님이 심하게 반대했다. 그렇게 되자 어머니는 명희누나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사정했다. “우리 창지는 비록 한족이라 하지만 조선족이나 다름없습꾸마. 말이나 습관이나 완전히 조선족입꾸마. 명희를 친딸처럼 잘 대해줄테니 우리 창지한테 줍소.” “그게 아니 될 말입꾸마. 아무리 조선말을 잘 한다고 해도 민족이 다른데……게다가 창지는 우리 명희보다 세살이나 어리지 않습둥?” 명희누나의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반대했다. 어머니는 명희누나의 어머니한테 다시 한번 사정했다. “민족이 다르다고 결혼 못하는 게 아니꾸마. 우리 어머니도 조선족인데 한족집에 시집와서 잘 살았습꾸마. 사실 한족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여러 민족이 융합되여 하나의 민족으로 된 게꾸마. 먼 옛날에 황제를 수령으로 하는 하족(夏族)과 염제를 수령으로 하는 화족(华族)이 련맹을 맺은후 점차 하나로 융합되여 화하족(华夏族)이 되였고 후에 화하족은 장면족(藏缅族), 토화라인(吐火罗人), 동이족(东夷族), 초족(楚族), 통고사인(通古斯人), 서융(西戎), 치우(蚩尤)의 후대, 흉노족(匈奴族), 선비족(鲜卑族) 등과 융합되여 새 민족 즉 한족이 산생되였다고 합꾸마.” “창지 엄마 유식한 건 알겠는데 안 되는건 안 되는 겠꾸마!” 명희누나의 엄마가 그렇게 안 된다고 하는데도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무릅까지 꿇고 사정했다. “애들이 서로 좋아하는 걸 봐서 결혼시키깁소!” 사정이 사촌보다 낫다고  하지만 명희누나의 아버지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내 딸을 한족한테 주느니 차라리 절에 출가시키겠다!” 그야말로 딸을 녀승으로 만들지언정 나한테는 시집보내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단이였다. 게다가 명희누나의 아버지는 한마디 경고를 더 붙였다. “네 놈이 다시 내 딸을 만나봐.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야!” 삭발하고 비구니가 된 명희누나와 다리가 분질러진 내 모습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분질러질 위험을 무릅쓰고 남몰래 명희누나를 만나서 변함없는 사랑과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으나 명희누나는 녀승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지 리별을 선언했다. 내가 아무리 매달리고 애걸복걸해도 헤여지자는 명의누나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누나, 난 10년이고 20년이고 누나를 기다릴 거야!” 나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애타게 소리쳤으나 명희누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내 가슴에 아픈 상처만 남기고 끝나버렸다. 그후 명희누나는 이사를 갔고 이듬해에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신랑은 명희누나와 한집체호에 있던, 나를 적의에 찬 눈길로 바라보던 그 남자였다. 우리는 명실상부한 갑돌이와 갑순이의 신세가 된 것이다. 명희누나가 시집을 간 이듬해에 나도 한족처녀를 만나 장가를 갔지만 화가 나서 간 것이 아니였다.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을 보긴 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저 명희누나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을 뿐이다. 그후 세월이 살같이 흘러 내 딸도 시집을 갈 나이가 되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딸,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내 생명과도 같은 그 아이에게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신랑감을 골라주려고 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날 나와 안해가 텔레비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딸이 키가 큰 남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나는 한동안 놀라서 아무말도 못했다. “너 남자친구와 사귄다는 말도 없었잖아?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결혼이라니……” 안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딸이 데리고 온 젊은이가 조선족이였던 것이다. 준수한 외모에 품행이 단정한 젊은이였고 경제형편도 넉넉한 편이였지만 조선족이라니? 나는 내 아픈 과거가 생각나 딸이 좋다고 하니 크게 반대를 못했지만 안해는 절대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안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는 안된다!” 딸도 울며불며 그 젊은이가 아니면 시집을 안 간다고 야단을 쳤다. 딸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안해를 달랬다. “지금은 민족이 달라도 문제될 게 없잖소? 애들이 좋다는데…… 요즘은 조선족사위를 삼은 집이 적잖은 것도 현실이고……우리 단위의 서과장도 지난해에 조선족사위를 삼은 일을 당신도 알고 있잖소?” “서과장은 돼도 난 안돼요.” 안해가 아무리 반대해도 딸을 이길 수 없었다. 내 딸은 우리를 속이고 결혼등록을 하는 날로 그 젊은이와 동거했다. 그리고 그해 말에 덜컥 임신까지 했다. 배가 불러오자 안해도 하는 수 없이 고집을 꺾고 딸의 결혼식을 치르는데 동의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딸이 임신까지 하는 동안 안해의 반대 때문에 우리는 사돈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결혼식을 앞두고 마주앉게 되였다. 사돈과 만나는 장소에서 안사돈을 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안사돈이 바로 나의 첫사랑 명희누나였던 것이다. 명희누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 놀라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서 정체를 밝히지 않고  모르는 척 했다. 그리고 나중에 둘이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희누나는 아이까지 가진 상태에서 어른들의 문제 때문에 자식들의 결혼을 반대할 수 없다는 립장을 밝혔고 나도 생각이 복잡했지만 같은 생각이라고 의사를 표시했다. 이리하여 우리 둘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이 이루게 되였다. 결혼후 몇달만에 내 딸이 아들을 낳았고 나는 외손자를 보게 되였다. 그런데 외손자를 본 기쁨을 누려 볼 틈도 없이 안해가 말썽을 피웠다. 외손자의 호적을 올릴 때 일이 생겼다. 안해는 아이가 엄마의 성을 따르게 하고 민족도 한족으로 올려야 한다고 고집했다. 나는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글쎄 우리의 욕심은 그렇지만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온 법이요. 따라서 민족도 아버지의 민족을 따라야 응당한 것이요.” “뭐가 응당하는 거예요? 지금 어느 시대인데 그 따위 말을 해요? 지금은 아이가 엄마의 성과 엄마의 민족을 따를 수도 있는 시대예요.”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말도 있지 않소. 말도 안되는 그런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겠소.” 내가 딱 잘라 말했지만 안해는 한마디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딸은 출가외인이란 말 옛말이 된지 오래예요. 우리는 자식이라곤 딸 하나밖에 없는데 외손자가 우리의 대를 잇게 해야 되잖아요?” “자식이 하나인 건 사위네도 마찬가지요. 그쪽도 대를 이어야 할 게 아니겠소?” “아이참, 당신은 누구 편이예요?” “무슨 편이 따로 있겠소? 난 누구편도 아니요. 그저 공정하게 말하는 거요. 조선족이 자꾸 줄어든다고 하지 않소? 기왕에 딸을 조선족한테 시집보냈으니 외손자를 조선족으로 올려 조선족을 한명이라도 보태 게 하자구. 우리 한족은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민족이 아니요? 그만큼 여유가 있기에 배포를 부려도 되잖겠소?” 내가 짐짓 배를 쑥 내밀었으나 안해는 어림없는 소리라는 듯 손사래까지 쳤다. “인도인구가 중국인구를 거의 따라 오는데 우리가 방심해서야 되겠어요?” “허허참, 조선족은 중국인구가 아니요? 그리고 인도의 주류민족인 힌두스탄족은 인도인구의 72%정도밖에 안 되지만 한족은 중국인구의 92%나 되오. 이러니 세계 최대의 민족답게 배를 쑥 내밀어도 될게 아니겠소?” 내가 아무리 구구절절이 설득을 해도 안해한테 내 말은 소귀에 경읽기였다. 안해는 사돈집에 찾아가서 수십가지 리유를 대면서 외손자의 호적을 한족으로 올려야 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돈집에서 양보하지 않고 딸까지 시집편을 따르겠다고 하는 판에 독불장군이라 손을 들고 말았다.    외손자의 호적문제 때문에 소란이 있은후 우리 집에는 또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집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도둑은 집이 빈틈을 타서 좌물쇠를 부수고 침입해 서랍과 궤에서 현금과 보자기를 훔쳐갔다. 내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땅을 치며 울어댔다. “창지야, 도둑이 보자기를 훔쳐갔다. 보자기를……”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했다. “어머니, 보자기에 무슨 귀중한 물품이라도 들었습니까?” 어머니는 울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나는 보자기에 무엇이 들었는지 물어보지 않고 “어머니,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드릴테니 울지 마십시오.”하고 위안했다. 웬 일인지 그날밤에 나는 나의 생모가 갓난아기를 버리는 꿈을 꾸었다. 그후 며칠동안 고요한 밤에 자리에 누우면 내가 누구일가, 하는 생각에 잠을 들 수 없었다. 생모는 왜 나를 버렸을가? 그리고 처녀를 임신시킨 나쁜 생부는 어떤 낯짝일가? 나는 몇번이나 양부모한테 물어볼가 하다가 그만두고 사처에 수소문하여 왕아줌마를 찾았다. 며칠만에 나의 생모가 나를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는 바로 그 왕아줌마를 찾는데 성공했고 그날로 왕아줌마를 만났다. 이 때의 왕아줌마는 이미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백발의 왕할머니가 되여있었다.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누군데?” 왕아줌마는 나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쉬창지입니다. 내 친엄마가 날 버리는 걸 할머니가 보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 자네구먼. 개구쟁이 자네를 본 것이 어제같았는데. 참, 세월이 사람을 이처럼 늙게 만드는구먼.” 왕아줌마는 지난일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어있었지만 나는 그런 기분이 아니였다. “내 생모는 어떤 사람이였습니까? 왜 나를 버렸답니까? 아는대로 다 얘기해주십시오.” 내가 무턱대고 질문을 던지자 왕아줌마는 당황해하다가 후, 하고 탄식했다. “자네 여태껏 그 아픈 걸 가슴에 품고 살았구먼. 나도 사실 자네 생모에 대해 아는 게 얼마 없네. 그저 새파랗게 젊은 녀자가 갓난 아기를 자네 양부모네 집 문앞에 버리는 걸 보았을 뿐이네. 그때 이상하여 뒤를 밟았더니 영국더기에 있는 어떤 초가집으로 들어가더구먼. 그래서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이웃들도 그 녀자가 금방 이사해와서 잘 모른다더구먼. 누군가 그 녀자는 처녀인데 아이를 낳았다더구먼.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았네. 그후 자네의 양부모와 같이 가보니 그 녀자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네. 동네사람들도 그 녀자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네. 내가 아는 건 이뿐이네.” 이만한 단서를 가지고 생모를 찾는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생모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가장 알고 싶은 한마디를 물었다. “내 진짜 성은 뭔지 아십니까? 내 생모는 한족이였습니까?” “글세. 자네를 버렸을 때 보자기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 그 안에 자네 출생을 증명할만한 글쪽지 같은게 있었을 거네. 아마도 한족집 문앞에 버린 걸 보아선 한족일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녀자가 조선말을 류창하게 하는 걸 보았다는 사람도 있네. 뭐 자네처럼 한족이 조선말을 잘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데 자네 생모는 자네 양부모가 결혼한지 6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다는 걸 알고 그 집 문앞에 아이를 버린 것 같네. 그러고 보니 한족일 수도 있고 조선족일 수도 있겠는데……” 모든 것이 애매했다. 나는 보자기를 도둑맞은 일이 떠올랐다. 왕아줌마가 말한 보자기가 그 보자기일가? 그래서 어머니가 그렇게 슬프게 울었구나. 집에 돌아간 나는 집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면서 보자기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헛물만 켜고 말았다. 도둑맞은 보자기가 그 보자기임에 틀림없었다. 보자기가 없어졌으니 내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도 알수 없었다. 양부모한테 묻고 싶었지만 그들이 마음이 상할가봐 입을 열지 못했다. 내가 보자기를 찾던 그해 나의 양아버지가 사망되였다. 이제 양아버지가 사망됐으니 양어머니에게 물어보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차차 물어보자, 하고 내 출생의 비밀에 대해 묻는 일을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그해 한국으로 돈벌이를 나갔다. 3년이 지나후 엄마의 병세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급급히 귀국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엄마는 림종을 앞두고 있었다. 엄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무슨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영원히 건강할줄 알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어머니에게 꼭 묻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마음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이 시각 나는 그 말을 묻지 않을수 없었다. “어머니, 제가 입양아입니까? 어떤 처녀가 낳아서 버린 아이를 어머니가 안아다가 키우신 겁니까?” 엄마는 맥없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간신히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가장 묻고 싶었던 물음을 다그쳤다. “어머니, 제가 한족입니까? 조선족입니까?” 엄마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만 할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말로 의사를 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물었다. “어머니, 제가 한족입니까?” 나는 엄마가 머리를 끄덕이거나 가로젖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대답을 들을수 없었다. 엄마는 그 순간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한족인가? 조선족인가? 이는 영원히 알수 없는 비밀로 되였다.      연변문학 2019년 6월호             
34    [단편] 할 일이 있습니까? (김희수) 댓글:  조회:1261  추천:0  2020-09-03
단편소설   할 일이 있습니까?   김희수     사람들이 다 출근했거나 일하러 나간 후의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노라면 나처럼 할 일이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백수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야근하는 사람들과 퇴직한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할 일이 없는 20대, 30대, 40대, 50대들이 자신의 취미에 따라 공원, 숲속, 놀이터, 강가, 낚시터, 장기판, 오락방, PC방, 마작방 등에 몰려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직업이 없거나 잠시 일자리를 그만두고 노는 백수들이다.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오전 9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이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나 같은 백수가 이처럼 많은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날은 오토바이를 집에 버려두고 발길이 닿는대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할 일이 있습니까?” 머리를 들고 말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아서야 나는 내가 수무그룹앞을 갓 지나 로무일군들이 쭉 늘어서 하루의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인력시장까지 온 것을 발견했다. 거기엔 숱한 남녀 로무일군들이 서서 한담을 하면서 일손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로무일군중에 조선족이 매우 적었기에 나는 조선말이 들리자 신기한 눈길로 말소리가 나는 쪽에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 할 일이 있습니까?” 내 또래의 40대 아줌마가 내 앞까지 다가오며 재차 물었다. 그러자 한패인 듯한 세명의 녀인이 뒤따라 나를 둘러쌌다. 나는 시간이 많고 심심하던 차라 장난기가 동하여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말꼬투리를 잡았다. “난 선생님이 아닙니다. 선생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아이참, 학생을 가르쳐야 선생님입니까? 선생님, 할 일이……” 나한테 말을 건 아줌마가 얼굴이 반반하고 말소리가 부드러운데다가 하도 인상이 좋았기에 나는 긴 대화를 나누어볼 생각으로 정면 대답을 회피하려고 말허리를 잘랐다. “그래도 난 선생이라고 불리울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하도 사양하니까 예쁜 아줌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초면에 만난 낯선 분인데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손님이라고 부르자니 제가 뭐 손님을 접대하는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집을 찾아 온 손님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사람들처럼 아저씨라고 부르자니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당신이라고 부르자니 남편을 부르는 것 같고 그 쪽이라고 부르자니 례절이 없는 것 같고……” 예쁜 아줌마가 재미있게 얘기하자 나도 신바람이 났다. “정말 그렇기도 합니다. 한족들처럼 니디 워디 하면 간단할텐데요.” “그렇기도 하군요. 여하튼 선생님, 할 일이 있습니까?”   “할 일이요? 아참, 할 일이야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지요.” 내가 능글능글 웃자 예쁜 아줌마는 약간 짜증이 난 듯이 목청을 높였다. “도대체 있단 말입니까? 없단 말입니까?” “지금은 할 일이 없어서 여기에 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좀 지나면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마작판에서 ‘한 사람이 모자란다(三缺一)’라는 전화가 오면 만리장성을 쌓을 일이 생길 수 있고 술상에서 ‘한잔 하자’라는 전화가 오면 거나하게 마실 일이 생길 수도 있지요.” “아니, 제 말은 선생님이 할 일이 아니라 제가 할 일이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럼 응당 ‘시킬 일이 있습니까?’라거나 ‘일손을 요구합니까?’라고 물어야죠.” “아이, 뭐 신문에 내겠습니까? 문법까지 따지며 말꼬투리 잡습니까? ‘할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도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데 말입니다.” 예쁜 아줌마는 화를 내는 듯 했지만 말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이럴 때는 웃는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 “허허허, 내가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고 또 아주머니도 여기 서서 심심해 하는 것 같아 얘기거리를 만들자구 그런 겁니다. 화 났다면 죄송합니다.” 예쁜 아줌마와 함께 나를 둘러싼 세 녀인은 모두 조선족이였다. 그중 둘은 50대로 보이고 하나는 30대 후반이 아니면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50대 녀인중 하나는 뚱뚱했고 다른 하나는 마른편이였다. 그리고 어려보이는 녀인은 넷중 키가 제일 컸다. 50대의 두 녀인이 일을 시키러 온 사람이 아니니 대꾸를 하지 말라고 눈짓했지만 예쁜 아줌마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고용주를 기다리기 심심했던지 내 기대대로 긴 대화를 이어갔다. “뭐, 화까지야. 아까 마작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도 이전엔 마작미치광이였슴다. 그런데 마작을 오래 놀아보니 돈을 잃는 건 물론 건강까지 나쁘게 됐슴다. 소변을 억지로 참느라 방광염에 걸렸고 오래 앉아있으니 허리통증이 생겼슴다. 그리고 술얘기도 나왔지만 술도 마찬가짐다. 나도 한때 애주가였는데 간이고 위고 다 나빠져서 지금은 술을 끊었슴다.” “그래도 마작, 술, 담배가 3대 아편인 걸 어떻게 합니까? 마누라 없이 살아도 마작, 술, 담배가 없으면 못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에그그, 남자들은 마누라가 다 달아나야 정신을 차리겠는지.” 뚱뚱한 녀인이 우리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뚱뚱한 녀인이 예쁜 아줌마를 보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분이 우리 이쁜이에게 반했구나.” 마른 녀인도 맞장구를 쳤다. “하기야 우리 이쁜이 보고 일을 시키는 고용주들이 많기도 하지비.” “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내 요 미모에 반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죠.” 예쁜 아줌마는 두 녀인의 칭찬에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한술 더 떠서 자화자찬했다. 그녀는 대화하는 동안에도 누가 일을 시키러 오는 사람이 있나 해서 거리쪽을 살려보군 했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는데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한 김에 아줌마에게 일을 시킬가 합니다.” 그러자 예쁜 아줌마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무슨 일입니까?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예쁜 아줌마의 말에 나는 또 장난기가 동했다. “정말로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할수 있겠습니까?” “네. 선생님이 상상하는 그런 일은 말구요.” “내가 상상하는게 어떤 건데요?” “아이참, 남자들은 다 엉큼하지 않습니까?” 예쁜 아줌마가 백이든 흑이든 남자들은 다 씨잡아 욕하는 것을 보고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남자들은 다 엉큼하지만 마음속파와 행동파 두 가지 부류가 있지요.” “마음속파는 뭐고 행동파는 또 뭡니까?” “엉큼한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만 있는 남자들을 마음속파라고 하고 그런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남자들을 행동파라고 하지요. 나는 대부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속파랍니다. 그러니 난 무슨 상상같은 걸 할지는 몰라도 행동에 옮기지는 않습니다. 그저 내가 시킬 일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무슨 일인가요? 저에게 시킬 일이……” “갑시다. 가보면 알게 아닙니까?” “무슨 일인지 말해야 알죠. 값도 흥정해야 하고……” “일당은 최고로 쳐주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다짐을 받 듯이 다시 웃으며 묻자 예쁜 아줌마는 곱게 눈을 흘겼다. “아니, 선생님두 참, 그런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다 하겠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내가 오늘 시킬 일도 사람을 해치지 않고 법을 어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도구도 필요없이 맨 주먹으로 가면 됩니다.” “그럼 좋습니다. 갑시다!” 아줌마가 나를 따라 나서자 곁의 세 녀인도 함께 따라왔다. 나는 급히 세 녀인을 막아섰다. “내가 시킬 일은 이 아줌마가 혼자서 해도 얼마든지 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필요없습니다.” “우리 네 사람은 일할 때 항상 함께 뭉쳐다니는 한패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세 녀인이 기어코 따라 오겠다고 하자 나는 하는 수 없이 넷 모두 데리고 나섰다. 내가 앞장서 걷는데 예쁜 아줌마가 따라오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무슨 일을 시키는지는 몰라도 택시를 타야지 않겠습니까? 지금 10시가 다 됐는데 이렇게 걸어서 어느 시간에 일하겠습니까?” “안심하십시오. 하루 일당을 다 쳐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걸어가는 것도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뭐가 그리 신비합니까? 선생님이 사기군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허허, 내가 일당을 주지 않으면 넷이서 함께 날 파출소로 끌고 가십시오.” 나는 네 녀인을 데리고 공원으로 들어가 한바퀴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녀들을 데리고 공원정자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와서 무슨 일을 시키겠다는 겁니까?” 예쁜 아줌마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전화를 거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여기서 친구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제 친구가 오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네 녀인은 의심하는 눈빛이였으나 더 묻지 않고 저들끼리 횡설수설했다. “정말 오래만에 공원에 와 보는구나.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한 시내에 있는 공원도 와볼 시간이 없었네.” 뚱뚱한 녀인이 비탄조로 내뱉자 마른 녀인이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게 말이우. 그런데 여기 와 보니까 할 일이 없이 노는 사람들이 어째 이리 많은지 모르겠소.” “지금은 취업 하기 힘들어 노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소. 우리 아들은 대학을 졸업한지 이티가 되는데 취직을 못했다니까.” “하긴 제 조카도 마찬가짐다. 중점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한국에 나가 막벌이를 한다잖아요.” 예쁜 아줌마도 한마디 했다. 셋이서 계속 한담을 했지만 키 큰 녀인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뚱뚱한 녀인이 키 큰 녀인의 어깨를 툭 쳤다. “막내가 좀 얘기해보우. 그래 남편이 집에서 논다더니 일자리를 얻었소?” “리혼했습니다.” “뭐?!” 세 녀인이 모두 놀란 소리를 질렀다. 키 큰 녀인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처녀때 그 사람의 달콤한 말재주에 넘어가 결혼했더니 일하기 싫어하는 건달일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처음에는 어느 소구역의 경비원이였는데 술 처먹고 돼지처럼 쿨쿨 자는 사이에 도난사건이 생겨서 그날로 일자리에서 쫓겨났죠. 그래서 나같이 로무를 하자고 말했더니 힘든 일은 못하겠다 하고 청소하는 일을 소개 시켜줬더니 아는 사람을 만나 창피하다고 하루만에 일을 그만뒀죠. 환자를 간병하는 일을 소개시켜줬더니 사내대장부가 어찌 남의 대소변을 받아내겠는가 하면서 거절했죠. 그러다가 한국에 나갔는데 처음에는 돈을 좀 벌었다고 소식을 보내오더니 그 돈을 다른 녀자에게 다 써버리고 빚까지 지고 돌아왔어요. 그래서 화김에 리혼하고 말았어요.” 나도 이따금씩 녀인들의 말에 끼여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때가 되자 녀인들이 친구가 왜 아직도 오지 않느냐, 빨리 전화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웃으면서 먼저 점심이나 먹고 보자면서 녀인들을 조선족맛집으로 데리고 갔다. 녀인들은 나같은 고용주는 처음 본다고 하면서 의심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면서도 체면 차리지 않고 맛있고 비싼 음식을 시켜 먹었다. 나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많이 들라고 권했다. 녀인들은 힘든 일을 해서인지 그 많은 음식을 게눈 감추듯 다 먹어버렸다. 뚱뚱한 녀인은 잘 먹었다고 하면서 트림까지 했다. 식사가 끝나자 녀인들은 또 빨리 일을 시켜달라고 재촉했다. 나는 할 일이 많지 않아 천천히 해도 된다고 했으나 녀인들은 빨리 끝내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집에서 나오자 나는 이 골목 저 골목 돌다가 녀인들을 데리고 조선족커피집으로 들어갔다. 녀인들은 일당을 근심하지 말라는 나의 말에 미심쩍어 하면서도 따라 들어왔다. 녀인들은 아메리카노커피를 청했고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녀인들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쉴새없이 입을 놀려댔다. 뚱뚱한 녀인이 새로 온 손님에게 커피를 따라주는 접대원아가씨를 바라보더니 우리한테 물었다. “아까 맛집에서도 그렇고 여기 커피집에서도 그렇고 다들 이상한 걸 발견하지 못했소?” “이상한 거라니?” 마른 녀인과 키 큰 녀인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예쁜 아줌마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히죽 웃었다. “아까 맛집과 여기 커피집이 모두 조선족집인데 접대원은 모두 한족인게 이상하다는 거죠?” “그래 맞아.” 뚱뚱한 녀인이 예쁜 아줌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우리 이쁜이 언제 봐도 똑똑하다니까!” “얘를 칭찬하지 마오. 자꾸 춰주니까 우리 머리우에 올라앉으려고 하는 게 아니겠소?” “내 언니들 머리우에 올라앉기야 쉽지요뭐. 그런데 막내 머리우에 올라앉기는 힘들죠. 막내가 너무 키가 커서……” 예쁜 아줌마의 말에 나이 많은 두 녀인이 한바탕 웃어댓다. 여태껏 잠자코 있던 키 큰 녀인이 아까 화제를 다시 이어갔다. “지금 간판은 조선족집이지만 한족들이 하는 영업집이 많죠. 이게 다 조선족들이 관내나 한국에 많이 나가서 그렇죠. 지금 조선족들은 힘든 일, 더러운 일은 다 그만두고 한국에 나갔지만 거기서도 더 힘든 일, 더러운 일을 하고 있어요. 여기선 조선족들의 빈자리를 한족들이 다 차지하고 있고요. 우리가 하는 로무일도 우리 패와 숙자네 패 말고는 조선족이 없잖아요?” 예쁜 아줌마도 한숨을 내쉬였다. “그건 그렇슴다. 정말 여기서 일자리를 찾자면 많은데 다들 한국에 나가자고 하죠. 사실 나도 한국에 나가고 싶은데 아이를 공부시켜야 하기에 지금은 안돼요. 앞으로 아이를 대학에 보내놓고 한국에 나갈 예정이예요.” 나는 여기서도 일자리가 많다고 하면서도 한국에 가겠다고 하는 예쁜 아줌마를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얘기를 하던 중 예쁜 아줌마가 갑자기 생각난 듯 또 나를 보고 재촉했다. “우리한테 무슨 일을 시켜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빨리 일 좀 합시다.” 다른 세 녀인도 독촉했다. “우린 커피같은 걸 마시며 한가하게 보낼 사람이 아니니 빨리 일을 시켜주십시오.” “좋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내가 정색하자 네 녀인은 무슨 중요한 발표라도 기다리 듯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나만 바라보았다. 나는 에헴, 하고 기침소리를 내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난 한국에 나가 돈을 좀 벌어왔지만 지금은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노는 백수입니다. 마누라가 지금도 한국에 나가 있고 나는 아이를 공부시킨다는 핑계로 밤낮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스마트폰 중독자로 되였답니다. 앉아서도 스마트폰, 누워서도 스마트폰, 서서도 스마트폰,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스파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답니다. 하루종일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계속 들여다 보았지요. 사람들은 또 나같은 사람을 일러 수그리족(低头族)이라고도 하지요. 나는 언제나 스마트폰 2개, 보조배터리(充电宝), 이어폰 등을 휴대하고 다니죠.” “그래서?” “밤낮 스마트폰에 너무 몰입했더니 목과 허리가 아프고 잠이 오지 않을 뿐만아니라 우울증, 불안, 공포 등 증상이 나타나서 미칠지경이였습니다.” “적당히 좀 하지. 그래서?” “그래서 병원치료를 받았으나 낫지 않아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더니 주로 산책을 많이 하고 타인과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해서 오늘 녀사분들을 고용해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녀사분들은 오늘 할 일을 다 완성했으니 이제 일당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일당을 넉넉하게 드리자 녀인들은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받아 미안하다고 했다. “아닙니다. 내가 녀사분들과 대화하면서 스마트폰중독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예쁜 아줌마와 대화를 나눠 오늘 즐거웠습니다.” 내가 악수를 청하자 예쁜 아줌마는 내 손을 잡아 흔들며 곱게 눈을 흘겼다. “우리 녀자들도 이렇게 아무 일이나 다 하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 이튿날도 나는 발길이 닿는대로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도 할 일이 있어야 하겠는데. 무슨 일을 찾아할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걸어가는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할 일이 있습니까?” 귀에 익은 목소리여서 바라보니 어제 만났던 예쁜 아줌마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또 수무그룹 앞을 지나 인력시장 앞에 서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예쁜 아줌마가 말을 건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방금 자가용에서 내린 어떤 신사였다. 나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지만 예쁜 아줌마가 했던 말이 자꾸만 귀전을 때렸다. “할 일이 있습니까?”   2019년 9월 20일 연변일보 해란강부간 발표.  
33    로총각의 순애보 / 김희수 댓글:  조회:3350  추천:1  2015-05-22
로총각의 순애보 김희수   조선남은 올해 마흔한살인 로총각이다. 코가 비뚤어진것도 아닌데 여태껏 장가를 못간것은 바로 그 개도 안 먹는 돈때문이였다. 요즘 세월의 로총각 대부분이 그러하듯 돈이 없는 그를 처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도대체 돈이 무엇이길래… 하지만 요즘 처녀들이 돈, 돈, 돈… 하는것은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돈때문에 악을 쓰는것은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서이다. 집도 널직한것으로 마련하고 가전제품도 호화스러운것으로 갖추고 자가용도 굴리면서 멋지게 살아보기 위해 사람들은 로씨야요, 리비아요, 한국이요, 일본이요 하며 외국으로 돈벌이를 떠나고 어떤 처녀들은 아예 외국으로 시집을 가버린다. 처녀들뿐만아니라 아줌마들도 남편과 아이까지 다 버리고 돈 많은 사장님이나 외국남자들의 품에 안겨버린다. 이제는 한국결혼이요, 일본결혼이요 하고 신문과 방송에 광고까지 내며 공공연히 우리 녀자들은 외국으로 가버린다. 《녀자들이 모두 외국으로 날아가면 나같은 로총각들은 어떻게 장가를 가나?》 조선남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개코같은 인생을 종말짓고말것을… 결국 한번은 저 화장터에 실려가 한줌의 재로 사라져버릴 인생인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조선남은 차마 목숨은 못 버리고 우유배달이랑, 생수배달이랑 하며 그럭저럭 하루하루 살아가고있었다. 오토바이에 싣고 다닌다 하지만 물통을 어깨에 메고 하루에도 6, 7층 아빠트를 몇십번씩 오를 때면 숨이 턱에 닿고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밤에 자리에 누우면 어깨며 다리가 시큰시큰 쑤셨다. 더구나 엘레베터가 고장이 난 한 회사의 12층으로 올라갈 때면 정말 죽을 지경이였다. 그러나 이런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것이니 얼마든지 견딜수 있고 또 이제는 단련되여 6, 7층 계단을 오르내리는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다만 견딜수 없는것은 녀자 없는 고독이였다. 온종일 뼈빠지게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맞아주는것은 썰렁한 가마목뿐이다. 이 도시에 얼마 남지 않은 구식온돌집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자리에 누우면 낮에 생수배달을 했던 아빠트 주인들이 떠오른다. 널직하고 호화로운 집에서 사는 그들이 눈물나게 부러웠다. 특히 그런 집에서 사는 젊은 녀자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도 저런 마누라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나고 집에 혼자 있는 젊고 이쁜 녀주인을 보면 마구 덮치고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솟구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중에서도 그의 단골이 된 정씨 아줌마를 보면 정신이 아찔했다. 정씨 아줌마는 그보다 서너살 년상이였지만 얼굴이며 몸매가 처녀 뺨칠 정도였다. 정씨 아줌마는 조선남과 낯이 익자 궁금한지 이것 저것 물었다. 《이렇게 일을 잘해서 집사람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허허, 집사람은 무슨 집사람… 난 총각입니다.》 《어머, 총각이라니? 나이도 있을텐데…》 《부끄럽지만 마흔을 갓 넘었습니다. 장가 가기 바쁜 세상이여서…》 《하기야 요즘 세월이 좀… 그렇지만…》 동정의 눈길로 조선남을 바라보던 정씨 아줌마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오른듯 무릎을 탁 치더니 시탐조로 물었다. 《저… 림시 데리고 살 녀자라도 구할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녀자인데 남편과 아이까지 있지만 딱한 사정이 있어서 한달에 500원씩 주는 남자가 있으면 《림시마누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는것이였다. 조선남은 그 말을 롱담으로 듣고 픽 웃었다. 《어디 그런 미친 녀자가 있답니까?》 《미쳐서도 아니고 헤프고 밝히는 그런 녀자도 아니예요. 아주 정숙한 녀자인데 사정이 딱해서… 짠지장사를 하는데 남들만 음식솜씨가 못한지 잘 팔리지 않지, 다방이나 노래방 아가씨로 들어가자 해도 나이가 많지, 그렇다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 파는 일은 죽어도 못하겠고… 그저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착한 남자가 있으면 림시라도 그의 마누라로 되겠다나요.》 《기막히군!》 조선남은 한심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왼고개를 쳤다. 정씨 아줌마가 그 녀자와 만날 의향이 있으면 소개해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 집에서 나왔다. 가슴이 아팠다. 그날 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밤마다 녀자생각이 나서 못견디게 괴롭지만 참고 살아왔다. 이제 장가가긴 다 글러버린 처지에 아무 녀자나 데리고 살아볼가?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달에 500원이라… 그는 어느 한번 친구에게 《그렇고 그런 곳》으로 끌려가서 《그런 녀자》를 산적이 있었다. 한시간에 100원이였다. 거기에 비하면 한달에 500원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녀자가 밉게 생기지 않았다면 림시라도 데리고 살아보자고 생각하다가 《이 미친놈!》 하고 주먹으로 제 가슴을 마구 쳤다. 미쳤지. 내가 미쳤지. 아무리 장가를 가지 못했다고 남의 마누라를 세맡겠다니? 그는 담배불을 붙여 뻑뻑 빨다가 담배연기를 길게 확― 내뿜었다. 담배연기는 그의 한숨처럼 천정으로 치솟아올랐다. 어디 한번 미친짓을 해본다? 이런 결심을 했다가도 그는 감히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몇번이나 정씨 아줌마네 아빠트앞까지 갔다가도 발길을 되돌렸다. 쌍쌍이 걸어가는 남녀들, 10대의 어린것들마저 팔을 끼고 다닌다. 그런데 왜 나만은 혼자 쓸쓸하게 살아야 하나? 씨, 림시라도 좋고 잠시라도 좋다. 남의 녀자라도 붙잡고 살아보자. 그러다가 또 탄식이 나간다. 아아, 멀쩡한 사내놈이 장가를 못가서 남의 안해를 빌려서 살아야 하다니?! 슬프다, 이내 신세여! 그런데 사흘후 정씨 아줌마한테서 생수배달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 아니, 무슨 물을 벌써 다 마셨을가? 그가 오토바이짐받이에 생수를 달고 한달음에 달려가보니 정씨 아줌마가 귀속말로 소곤거렸다. 《내 전번에 말하던 그 녀자가 지금 우리 집에 와있어요.》 조선남이 그 녀자를 얼핏 보니 나이는 자기와 비슷해보였고 얼굴은 이쁘지 않았지만 몸매가 잘 빠지고 말할 때마다 살짝 드러나는 덧이가 매력적이였다. 《다방에 가서 돈 파느라 하지 말고 여기서 얘기 나누세요.》 정씨 아줌마가 자리를 피해주어 두 사람은 마주앉았다. 한동안 말없이 어색해있다가 조선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아주머니한테서 이미 그쪽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뜻밖에 만나게 되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뭐 련애하는것도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합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로총각이다보니 사실 녀자가 수요됩니다. 이렇게 못난 놈과 림시라도 살아볼 의향이 있다면 저한테 오십시오.》 《그쪽에선 제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제가 어떤 녀자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제가 나쁜 녀자라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 녀자가 숙였던 고개를 살며시 들고 우울해보이는 눈으로 조선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정씨 아줌마의 말로는 그녀가 딱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다고 하지만 그는 구체적으로 그녀가 무슨 딱한 사정이 있는지 모른다. 필경 이런 일은 그녀나 그나 모두 떳떳하지 못한 일이였다. 그러니 서로 상대방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물론 궁금합니다만 그쪽에서 사정을 말하고싶지 않다면 굳이 캐묻지 않겠습니다.》 《사정을 봐줘서 고맙습니다. 정아주머니한테서 들었겠지만 한달에 500원입니다. 그런데 저는 평소엔 그냥 저의 집에서 생활하고 주말마다 그쪽 집으로 갈수 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그쪽과 함께 생활할수 있습니다. 그쪽에서 무슨 요구가 있으면 말씀해보십시오.》 날마다 함께 사는것이 아니고 주말에만… 욕심같아선 그녀를 진짜 안해로 맞아 한평생 날마다 함께 살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자기 처지를 깨닫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였다. 《남의 안해를 빌려다 살아야 하는 신세에 무슨 요구가 더 있겠습니까?》 이렇게 두 사람은 림시주말부부를 맺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그 녀자는 그날 밤으로 조선남을 따라갔다. 그 녀자는 조선남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집안에 어지럽게 널린 물건들을 깨끗이 거두고 쓸고 닦은후 행주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저녁밥을 지었다. 오랜만에 녀자가 지어준 밥을 먹어보는 조선남은 너무 행복하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전에 엄마가 지어준 밥을 내놓고는 녀자가 지어준 밥이 처음이였다. 저녁을 먹은후 텔레비죤을 보다가 그 녀자가 이불을 폈다. 그리고 베개 두개를 가지런히 놓고 먼저 누운후 처녀같이 부끄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와 누우세요.》 텔레비죤을 보는척하면서 그 녀자의 눈치만 살피던 로총각은 가슴이 동해처럼 마구 설레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그 녀자한테로 다가가 옷을 벗기고 끌어안았는지 모른다. 어느 땐가 《그렇고 그런 곳》에서 《그런 녀자》와 《그런 경험》이 있었지만 진정한 녀자의 맛을 보기는 처음이였다. 오래동안 굶주렸던 욕정의 분출구가 화려하게 폭발하는 순간 그는 녀자란 이런것이구나, 이래서 남자에겐 녀자가 있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다. 어떤 사정으로 돈때문에 온 녀자지만 잠시라도 자기 녀자가 되여주는것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단순히 육체적인 욕망때문만이 아니였다. 그는 그 녀자한테서 《가정》의 따사로움과 《사랑》의 감미로움을 느꼈다. 그 녀자는 어김없이 주말마다 찾아와서 그의 《안해》가 되여주었다. 그사이에 그는 알게 모르게 그 녀자한테 정이 들었다. 오래동안 사랑에 목말랐던 로총각은 진정으로 그 녀자를 사랑하게 되였다. 그는 날마다 주말이 돌아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것은 달콤한 기다림이였다. 그런 기다림이 있었기에 그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힘든줄 몰랐다. 남의 안해를 세맡자면 혼자 살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했기에 그는 생수배달을 하는외에 신문과 우유배달도 했다. 온종일 오토바이먼지를 들쓰면서 거리를 질주해도 그 녀자만 생각하면 성수가 났다. 생수를 두통씩 메고 6, 7층 계단을 오르내려도 기운이 막 솟구쳤다.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12층도 잠간사이에 가볍게 오르내렸다. 어느날, 조선남은 그 녀자와 사랑을 나눈후 꼭 껴안고 속심을 털어놓았다. 《우리… 진짜 부부가 되면 안될가요?》 《림시라고 말했잖아요?》 《안해를 남한테 세줄만큼 박정한 남편이라면 리혼하고 나와 살자요. 난 당신을 영원히 생명처럼 사랑할겁니다!》 《그건 안돼요. 전 총각의 과분한 사랑을 받을만한 그런 녀자가 못돼요. 이러지 말고 앞으로 좋은 녀자를 찾아 장가를 드세요.》 《아닙니다. 내 눈엔 당신이 제일 좋은 녀자입니다. 우리 결혼합시다!》 《그건 불가능해요.》 그녀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조선남은 그 녀자를 더욱 으스러지게 꼭 껴안으며 애걸했다. 《난 정말 당신을 생명처럼 사랑합니다! 우리 결혼합시다!》 《자꾸 이러지 말아요. 우린 림시부부라고 계약했잖아요. 서로 계약을 지킵시다.》 《그럼 지금처럼 림시부부라도 좋으니 우리 영원히 이렇게 삽시다. 영원히 날 떠나지 말아주십시오. 네?》 《총각은 정말 순진해요. 이 세상을 너무 몰라요…》 조선남은 안타까왔다. 그 녀자와 영원히 함께 살고싶은데 그 욕망을 실현할수 없는 현실이… 그는 그 녀자가 어느날 문뜩 떠날가봐 근심되였다. 그런데 정말 그날은 끝내 찾아왔다. 《주말부부》를 맺은지 6개월이 되는 어느날, 그 녀자가 뜻밖에 《오늘이 마지막이예요. 이제 가면 전 다시 오지 못해요.》라고 했다. 순간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듯했다. 남의 안해였지만 그는 그 녀자를 자기 안해처럼 사랑했다. 그 사랑이 그의 가슴에 꽉 차서 이제는 그 녀자와 떨어져서는 못살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이라니… 《왜?》 그 녀자는 헤여져야 하는 리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 녀자의 정체를 알고싶었다. 그래서 그 녀자가 작별을 고하고 떠날 때 뒤를 밟았다. 그런데 이렇게 헤여지는 마당에 뒤를 밟는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하지만 강한 궁금증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그 녀자는 택시를 잡아타고 북대에서 내리더니 어느 골목의 초라한 대문앞에서 내렸다. 그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멀찌감치 숨어서 살펴보았다. 그 녀자는 초라한 대문을 열고 낡아빠진 단층집으로 들어갔다. 슬금슬금 초라한 대문앞까지 다가간 그는 따라 들어갈가 말가 망설이다가 대문앞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렸다. 담배를 몇대 피웠는지 모른다. 반나절이나 지났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얼른 구석에 몸을 숨겼다. 그 녀자가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나오더니 마침 그 골목에 왔던 택시를 불러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따라가려 했지만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놓치고말았다. 마침 그 옆집할머니가 대문앞으로 나온것을 보고 다가가서 물었다. 《저… 이 집 아줌마가 방금 짐을 들고 나가던데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할머니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자 그는 제꺽 거짓말을 둘러댔다. 《이 집 아줌마가 우리 집에 와 가정보모를 했는데 오늘 갑자기 그만두고… 물건을 두고 갔기에 돌려주려고 왔는데…》 그제야 할머니는 경계심을 늦추고 입을 열었다. 《에그, 그 엠네 불쌍한 엠네요. 남정이 차사고로 반신불수가 돼서 혼자서 아이를 공부시키느라 죽을 고생을 했소. 어제는 외국 갔던 애 고모가 와서 애 아빠를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는 애 이모가 와서 데려가고… 그 엠네는 외국으로 돈벌이하러 간다고 하더구먼.》 원래 이런 일이였구나. 조선남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 녀자는 그저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 녀자가 없는 집은 너무 썰렁했다. 그는 집에서 뛰쳐나가 한동안 그 녀자가 떠나간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녀자는 어디로 갔을가? 한국으로 갔을가? 아니면 일본? 미국? 호주? 그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장승처럼 서있었다. 그의 집 굴뚝에서 시꺼먼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고있었다. 굴뚝에서 솟는 연기는 로총각의 《한숨》이였다.  
32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4) 댓글:  조회:3593  추천:2  2014-10-04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김희수 4. 불타는 복수     “다음은 금실언니와 은실언니의 원쑤를 갚을 차례야.” 그녀들은 마지막 복수상대를 찾아나섰다. 두차례의 사건때문에 공안부문의 조사가 심했지만 그녀들은 대담하게 행동했다. 동실이, 옥실이, 순실이는 금실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몇번이나 해주던 얘기를 잊을수 없었다. “나와 은실이는 일본에 가서 5년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거금을 벌어가지고 귀국했어. 그동안 도박빚만 잔뜩 걸머지고있던 남편은 우릴 반갑게 맞아주었어. 미혼인 은실이는 며칠동안 우리집에 묵으면서 장래일을 토론하기로 했어. 여러 친척들이 모여 그리움과 회포를 풀고 돌아간후 남편이 도박에서 손을 싹 씻고 장사를 해보겠다고 하길래 나도 음식점이나 경영하려고 영업집을 흥정했지. 우리집은 다섯집이 한줄로 붙은 낡은 단층집이였어. 그래서 살림도 할수 있고 영업도 할수 있는 집을 흥정하고 이튿날 현금을 가져가기로 했어. 남편이 하도 독촉하길래 전날 오후 미리 저금소에 가서 현금 200만원을 찾아왔어. 그런데 그날밤 일이 생길줄이야 누가 알았겠니? 밤중에 자다가 갑자기 화끈해나길래 눈을 떠보니 덮고있는 이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있었어. ‘아악’하고 소리지르며 일어나니 곁에 누워 자던 남편이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안고 자던 가방도 없어졌어. 현금 200만원이 든 가방말이야. 그때 ‘언니! 불이났어. 불이야, 사람살려!’하고 웃방에서 자던 은실이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어. 나는 재빨리 방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은실의 손을 잡고 나가려고 했어. 겨울이여서 방문을 봉했길래 살아나갈 길은 정주간 출입문밖에 없었어. 그런데 불길은 벌써 온집안에 번지여 사면팔방에서 빨간 혀를 날름거리면서 우리를 삼켜버리려고 기세사납게 덮쳐왔어. 우리는 불속을 헤치고 앞으로 나갔어. 그러자 화염은 삽시간에 우리의 머리칼을 태워버렸어. 그래도 우리는 불에 타죽지 않으려고 문쪽을 향해 결사적으로 전진했어. 우리가 출입문까지 간신히 갔을 때 웃방의 지붕 한모퉁이가 무너져내려왔어. 우리는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어.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어. 그제야 나는 남편이 불을 질렀다는것, 불을 지르고 달아나면서 밖으로 문을 잠궈놓았다는것을 알았어. 우리는 절망속에서도 결사적으로 발길로 문을 걷어차며 ‘불이야, 불이야! 사람살려요!’하고 목청껏 웨쳤어. 그러다가 쓰러졌는데 깨여났을 때는 병원의 침대에 누워있었어. 그날밤 옆집에서 몇몇 청년들이 마작을 놀았는데 한 청년이 소변보러 밖으로 나왔다가 불이난것을 발견하고 고함쳐서 사람들을 불렀대. 옆집 주인은 고맙게도 자기집 물건이 타는것보다 사람의 목숨이 더 귀중하다면서 청년들더러 빨리 우리집에 뛰여들어 사람을 구하라고 독촉하면서 자신이 앞장섰대. 결국 우리의 목숨은 구했으나 옆집은 타서 재가 되였지. 하지만 우리는 살아난것이 죽기보다 못한 상황이 되였어. 얼굴과 온몸이 타서 귀신의 몰골이 되였지. 공안국에서 사건을 조사했지만 달아난 남편을 붙잡지 못했어. 우리는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꼭 우리 손으로 그자를 붙잡아 복수하리라 맹세했어. 은실이는 불에 온몸이 타면서도 속옷에 감춘 저금통장과 신분증만은 꼭 감싸고 보호했던거야. 은실에게는 500만원의 저금이 있었어. 누군가 우리더러 성형수술을 하라고 했어. 하지만 국내의 수준으로는 피부이식이요, 성형수술이요 하는걸 아무리 해봤자 우리처럼 엄중한 상처는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는 불가능한거야. 그렇다고 외국에 가서 그런 수술을 받자면 500만딸라면 어떨가, 500만원 인민페로는 수술비용이 어림도 없었어. 우리는 모든걸 포기했어.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옆집에 새집을 사주고 나머지는 모두 복수비용으로 쓰기로 했어.” 석달후, 그녀들은 끝내 금실의 남편을 찾아냈다. 그자를 붙잡은것은 우연한 일이였다. 다섯 녀자는 금실의 남편 청수를 찾으려고 다시 A시로 들어갔다. 거기서 병원의 미스 정을 찾아갔더니 사촌오빠가 방금 귀국했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다섯 녀인은 희망이 보이는것 같아서 몹시 기뻤다. 금실이가 미스 정에게 그 사촌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미스 정이 전화를 걸더니 1시간후에 신세대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알려주었다. 다섯 녀인은 미스 정과 함께 신세대다방으로 갔다. 한참 기다리니 미스 정의 사촌오빠가 나타났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 사촌오빠가 입을 열었다. “정순(미스 정)이한테서 들어서 그쪽 사연을 대략 알고있습니다. 청수와는 가까운 친구는 아니고 친구를 통해 가끔씩 만나는 사이였습니다. 청수가 그런 짓을 했다니…친구이지만 용서가 안됩니다. 그런 친구를 둔게 부끄럽습니다.” 미스 정이 사촌오빠의 어깨를 탁 치면서 말했다. “오빠는 그저 그 친구가 어디 있는지만 말해주면 되오. 어서 이 불쌍한 언니들을 위해 그 친구의 행방을 알려주오.” 다섯 녀인도 간절한 눈길로 사촌오빠의 입만 바라보았다. 사촌오빠는 담배를 꺼내 피우려다가 녀자들만 있는것을 보고 불을 붙이지 않고 손에 들고만 있었다. 그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친구를 배반하는 일이지만 경우가 경우이다보니 말해주겠습니다. 제가 청수와 가장 가까운 친구를 통해 알아보았는데 청수는 그 동안 늘 노래방, 안마원에 드다들면서 돈을 물쓰듯 썼답니다. 그러다가 도박판에서 돈을 다 잃고 빚쟁이들을 피해 지금은 B시의 아리랑다리 서쪽 강뚝에서 두번째에 위치한 사촌형의 아빠트에 숨어있는다고 하더군요. 그 사촌형부부는 모두 일본에 나가고 비여있는 집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촌오빠는 구체적인 집의 위치도를 그려주면서 5층인것은 알지만 어느 집인것은 모른다고 했다. 다섯 녀인은 미스 정과 사촌오빠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맥주대접을 한후 B시로 달려갔다. 아리랑다리 서쪽 강뚝에 있는 그 아빠트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빠트에는 7층아빠트인데 5층이 10호나 되였다. 다섯 녀인은 한 사람이 두집씩 맡아가지고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을 찾았다. 그 아빠트는 초인종이 없었다. 은실이가 3단원 5층 1호의 문을 두드리자 한 뚱뚱한 중년 녀인이 나왔다. 은실이는 청수의 사촌형이라는 그 부부의 이름을 대면서 어느 집에 사느냐고 물었다. 중년 녀인은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했다. 은실이는 미스 정의 사촌오빠한테서 들었던 대로 사촌형부부의 외모특징을 설명하면서 지금은 일본에 나갔다고 했다. 그제야 중년 녀인은 그 집에 바로 곁에 있는 2호집이라고 하면서 2호집에 지금은 주인의 사촌동생이라고 하는 한 청년이 혼자서 살고있다고 알려주었다. 금실이가 휴대하고 다니던 청수의 사진을 보여주니 중년 녀인은 바로 그 청년이 맞다고 했다. 은실이는 기뻐서 다른 자매들에게 찾았다고 전화를 걸었다. 얼마후 다른 네 녀인이 은실이가 있는 5층으로 달려왔다. 그녀들은 간단히 상의한후 2호집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두번이나 더 두드리며 문에 귀를 대고 집안의 동정을 살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집에 없는거야.” “어디 갔을가?” “다른데 달아난건 아니겠지?” “저녁에 다시 와 보자.” 다섯 녀인은 돌아가 저녁을 먹은후 다시 와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금실이가 휴대폰을 꺼내 미스 정의 사촌오빠가 알려준 청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청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실이는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녀는 청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을가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네가 다시 전화해봐라.” 금실이가 옥실이한테 여차여차 하라고 시켰다. 옥실이가 청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청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실이는 침착하게 물었다. “전 위생비 받으러 왔는데 주인이 없어서…언제쯤 올수 있는데요?” “뭐? 위생비? 그런데 그쪽이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지? 도대체 누구야?” 청수가 화를 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다섯 녀인은 한시간동안 더 기다리다가 려관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일찍 달려와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역시 사람이 없었다. 련속 사흘이나 진을 치고있으면서 기다렸으나 청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흘째 되는 날에 뜻밖에도 청수가 거주한다고 하던 2호집에 웬 중년 남자가 이사왔다. 마침 현장에 있던 순실이가 전화를 해서 동실이를 제외한 다른 녀인들이 모두 달려왔다. 동실이는 설사를 해서 혼자서 려관에 남아있었다. 금실이가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이 집에 살던 청년은 어디로 갔어요?” “아, 그 청년 말이요? 그는 마작판에서 늘 함께 놀던 청년이요. 요즘 내가 살던 집을 허물게 되였는데 그 청년이 이 집을 나에게 세를 주었소.” “이 사람이 맞나요?” 금실이가 청수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니 중년 남자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 청년이 맞소.” “그럼 이 청년은 어디로 갔어요?” “그 청년은 지금 여럿이 함께 거주하는 눅거리 세집에 들어있소.” “그 세집은 어디 있어요?” 중년 남자는 웬 일로 청수를 찾느냐고 되물었다. 금실이가 친척이라고 하자 중년 남자는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모른다고 하면서 알려주지 않았다. 네 녀인은 려관으로 돌아갔다. “이제 어떻게 할가?” 려관방에서 다섯 녀인은 얼굴을 맞대고 청수의 거처를 찾을 일에 대해 상의했다. “먼저 그 중년 남자를 미행하여 마작을 노는 장소를 알아내자. 그 곳에 꼭 청수가 나타날거야.” 금실이가 말했다. “마작장소를 알아내면 동실이가 마작판에 들어가 놀음을 놀면서 청수가 나타나는가를 살펴봐라. 중년 남자가 동실이의 얼굴을 모르기에 의심하지 않을거야.” 이튿날부터 다섯 녀인은 중년 남자를 미행하여 그가 마작을 노는 장소를 알아냈다. 그 다음날부터 동실이가 마작판에 나타났다. 동실이는 이 동네에 갓 이사왔다고 하면서 마작판에 붙었다. 마작을 놀면서 남자들을 살펴보니 그 속에 사진으로 봤던 청수가 있었다. 동실이는 일부러 청수와 함께 마작을 놀면서 그와 접촉했다. 동실이는 일부러 남편이 한국에 나가 혼자 사는 녀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청수에게 추파를 보냈다. 그리고 마작이 끝난후에는 함께 맥주 마시러 가자고 꼬셨다. 청수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면서 따라 나섰다. 맥주집에서 맥주 서너병 마시자 청수는 화장실로 간다고 일어섰다. 동실이는 청수가 화장실로 간 사이에 청수의 맥주잔에 수면제를 탔다. 배설하고 돌아온 청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수면제를 탄 맥주를 꿀꺽꿀꺽 잘도 마셔댔다. 그리고 욕정이 불타는 색마의 눈길로 동실이를 바라보다가 결국 잠들고말았다. 동실이는 밖에서 대기하고있던 네 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섯 녀인은 자는 청수를 부축하여 맥주집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훔쳐온 7인용 승용차에 청수를 싣고 원 거주지 외딴집이 있는 시골로 달려갔다. 도중에 그녀들은 돼지처럼 쿨쿨 잠이 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청수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았다. 그녀들이 외딴 초가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날이 밝아올 무렵이였다. 그녀들은 두손과 두발을 꽁꽁 묶어놓은 청수를 외딴집의 나무기둥에 매놓았다… 잠에서 깨여난 청수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자신은 손발이 꽁꽁 묶여있는데 눈앞에 귀신같은 다섯 녀인이 무섭게 쏘아보고있었기때문이다. 이때 다섯 녀인은 모두 가면을 벗은 모습이였다. “너희들은 귀신이냐? 사람이냐?” 다섯 녀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청수를 쏘아보기만 했다. 청수는 공포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딥니까? 당신은 누구신지?” “우린 복수의 화신이다!” 은실이가 청수의 귀쌈을 후려치며 말했다. 금실이도 청수의 귀쌈을 갈기면서 증오에 불타는 눈길로 쏘아보았다. “청수, 너 네 죄를 아느냐?” 청수는 한 녀인이 자기의 이름까지 부르자 더욱 놀라서 몸을 화들화들 떨었다. “다…당신들은 마…마작빚을 받으러 온겁니까? 내 꼭 갚겠으니 요…용서해주세요.” “이놈아, 아직도 네가 지은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모르겠느냐? 난 네가 불에 태워죽이려고 했던 금실이다! 그리고 이 앤 내 동생 은실이고…” “금실이라구? 귀…귀신이야!” 청수가 공포에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금실이와 은실이가 번갈아 청수의 귀쌈을 후려지며 소리질렀다. “이 놈아, 똑똑히 보아라! 우린 사람이다!” “너희들은 죽지 않은거냐?” “넌 우리가 죽기를 바랐겠지?” “아, 요…용서해주오. 금실이…제발 용서해주오.” “뭐? 용서해달라구?” “그래도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지 않소? 그러니 용서해주오. 제발…” “이 놈아! 넌 그래 우리가 이런 모습을 하고있는게 살아있는거라고 생각하느냐?” 곁에 있던 동실이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이건 죽기보다 못한 모습이야! 금실언니와 은실언니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게 아니야! 오직 네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여태까지 살았던거야!” “그래 우린 오늘을 위해 버텨왔다! 오늘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다!” 금실이가 은실이가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금실이는 은실이를 불러 뭐라고 상의하더니 저녁에 복수행동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금실이와 은실이는 날이 저물어오자 옥실이와 순실에게 술과 안주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옥실이와 순실이가 나가자 금실이와 은실이는 또 동실에게 음료와 빵을 더 사오라고 돈지갑을 주었다. 동실이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여기 두메산골에는 식품상점이 한집뿐이였는데 외딴 초가집에서 그곳까지 가자면 30분가량 걸어가야 했다. 동실이는 빨리 걸었기에 식품상점에 도착했을 때는 옥실이와 순실이를 따라잡았다. 세 자매는 식품상점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금실이와 은실이가 준 돈지갑에서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아니, 이건 뭐야? 큰언니가 쓴거잖아…” 세 자매는 황급히 쪽지를 읽어내려갔다.   동실아, 옥실아, 순실아! 너희들의 복수는 통쾌하게 끝났고 이제 나와 은실이의 복수만 남았구나. 원쑤놈은 이미 잡아왔으니 복수는 우리 두 사람의 손으로 완성하려고 한다. 나와 은실이는 불속에서 이미 죽은 몸, 오직 오늘의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러니 복수하는 순간 우리도 갈것이다. 활활 타는 불속에서 원쑤놈을 보내며 우리도 함께 가려고 한다. 불쌍한 동실아, 옥실아, 순실아! 너희들은 살아야 한다. 나머지 돈을 나눠 가지고 살길을 찾아가거라. 안녕히!   “언니!” “언니!” “언니…” 세녀인은 정신없이 부르짖으며 상점문을 열고 나와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녀들은 오금에서 불이나게 외딴 초가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쪽에서 시꺼먼 연기와 뻘건 불길이 하늘높이 솟아오르는것이 눈앞에 안겨왔다. 세녀인은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그녀들은 주먹을 쥐고 허둥지둥 뛰여갔다. 불길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들이 목적지에 다달았을 때는 외딴 초가집이 반나마 타들어가고있었다. 벌써 불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게 모여있었다. 외딴집이여서 불길이 다른 곳으로 번져갈 념려가 없었기에 누구도 나서서 불을 끄려고 하지 않았다. 또 불길이 워낙 기세가 사나워서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하려고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불길은 여전히 세차게 타오르고있었다. 활활 밤하늘을 태우면서 세차게 솟아오르는 불길, 그것은 두 녀인의 비장한 복수의 불길이였다. “언니야!” “언니야…!” “언―니―야―” 세녀인은 목놓아 울면서 피타게 불렀다. 울다가 부르고 부르다가 울고…외딴 초가집이 다 타버렸을 때는 구경군들도 다 흩어지고 그녀들도 지쳐버리고 말았다. 기구한 운명이 하나로 이어져 마음을 함께 해온 다섯 녀인! 이제 그녀들은 셋밖에 남지 않았다. 가슴속에 깊은 원한을 품은 그녀들은 복수,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고 다른 길이 없었다. 지금은 원쑤놈들을 다 잡아내여 복수를 마쳤건만…결국 복수의 끝은 이렇단 말인가? 세 녀인은 한줌의 재로 타버린 두 언니께 절을 올리고 나서 눈물을 훔치며 길을 떠났다. 워낙 도시보다 일찍 잠든 산골마을은 고요한 정적속에 잠겨들고 풀벌레들만이 이 밤에 그녀들에게 구슬픈 노래를 불러주고있었다. 캄캄칠야의 오솔길을 한걸음 한걸음 더듬어가던 그녀들은 갑자기 주춤거렸다. 어디로 갈것인가? 눈앞이 어둡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2003년)    
31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3) 댓글:  조회:3303  추천:1  2014-10-04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김희수 3. 피값은 피로 갚다   금실이가 미리 준비해둔 류산병을 동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동실아, 복수할 때가 왔다. 어서 통쾌하게 복수해!” 류산병을 받아쥔 동실의 손이 떨렸다. 동실은 살기띤 눈길로 범호를 쏘아보았다. 범호의 얼굴이 송장처럼 퍼렇게 질렸다. 동실이가 병마개를 열자 등골이 오싹해진 범호는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소…소연이…제…제발…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요…용서해주오!” 순간 동실의 눈앞에는 범호와 아기자기한 사랑을 주고받던 아름다운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그녀는 손맥이 풀리면서 류산병을 방바닥에 놓아버렸다. 금실이가 황급히 류산병을 주어서 동실에게 다시 쥐여주며 말했다. “동실아, 마음이 약해져선 안돼! 어서…” “언니, 난 차마 못하겠소.” 그러자 옥실이와 순실이가 격분해서 말했다. “동실언니, 언니가 저 새끼한테 어떻게 당했는데…그걸 벌써 잊었소?” “동실언니, 잔인한 자에게는 잔인하게! 그자에게 어떻게 당했으면 당한만큼 돌려줘야 하오!” 은실이도 거울을 들고와서 동실의 얼굴을 비춰보이며 말했다. “저 자가 널 이지경으로 만들었는데 그래 복수하지 않겠단 말이냐?”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귀신같은 모습을 본 동실이는 다시 류산병을 받아쥐였다. 범호를 쏘아보는 그녀의 두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사나운 기세로 달려드는 동실이를 본 범호는 몸에서 솜털까지 곤두서는듯한 전률을 느꼈다. 동실이는 이를 악물고 류산을 범호의 얼굴에 확 끼얹었다. “아악!” 범호의 비명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그녀들은 범호의 눈을 가리고 입을 틀어막은후 밤중에 그를 차에 실어다가 도시의 한복판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음의 복수계획을 토론했다. 금실이가 1인자답게 지시했다. “동실의 원쑤를 갚았으니 다음은 옥실과 순실의 복수를 할 차례야. 순실이가 그 련분이란 여우 갈보년의 거처를 알아냈다고 했지? 이제 우리 더 자세히 정찰한후 그 갈보년의 뒤를 미행하는거야. 그러면 혹시 그 두 망나니를 찾아낼지도 몰라.” 이튿날, 추녀결사대는 얼굴에 실리콘가면을 쓰고 도시로 출발했다. 그날은 헛탕을 치고 려관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다음날에 그녀들은 두개소조로 나누어 1소조는 동실이와 순실이가 오토바이를 몰고 1호목표인 련분이란 갈보년의 거처를 정찰하고 2소조는 금실이, 은실이, 옥실이가 승용차를 몰고 크고 작은 술집들을 돌면서 2호목표인 코빨갱이와 애꾸눈이의 종적을 정찰했다. 동실이와 순실이는 오래도록 련분의 거처를 맴돌며 감시했다. 오전 11시쯤 돼서 련분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시체 옷을 입은 그녀는 오리궁둥이를 흔들며 걸어가더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누구한테서 온 전화인지 경쾌한 음악이 울려나왔다. “와이―어머, 장대장이세요? 오대장도 함께 있다구요? 네,네, 장미술집으로 오라구요? 네, 곧 갈게요.” 련분의 목소리가 워낙 높아서 오십보 뒤에 있는 동실이네 귀에까지 똑똑히 들렸다. “저 여우 갈보년이 또 꼬리질하는군! 장대장이요, 오대장이요 하는게 그 사람가죽을 뒤집어 쓴 두마리 승냥이 코빨갱이와 애꾸눈이 틀림없어.” 련분이를 쏘아보는 순실의 눈에 불이 철철 흘렀다. 그녀는 련분의 꼬임에 들어 신세를 망치던 그날을 영원히 잊을수 없었다. 동갑나이인 설매와 홍매는 두메산골인 가난한 홍북촌에서 살았다. 열일곱살 나던 해 그녀들은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고 도시로 진출했다. 처음에는 남의 가게에서 옷을 팔아주다가 한 고향사람인 련분이를 만났다. 련분이는 몹시 반가워 하며 그녀들을 데리고 가서 자기의 집을 구경시켰다. 120평방메터가 되는 호화로운 아빠트였는데 가전제품이 구전했다. “어머, 이게 언니집 맞아요?” “언닌 어느새 이 많은 돈을 벌었나요?” 설매와 홍매는 부러운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련분이가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도시에선 돈을 쉽게 벌수 있어. 너들도 몇년만 잘하면 이런 집을 얼마든지 살수 있어.” “우린 한달에 500원밖에 못받아요. 옷을 많이 팔아야 700원을 준대요. 그리고 가정부로 들어가도 500원이상은 못받는대요. 그 돈으론 먹고 쓰고나면 없는데 어느 천년에 이런 집을 사겠어요?” “남의 가게를 봐줘서야 무슨 출로가 있겠니? 내가 알고있는 몇몇 술집이 있는데 그런 곳에 접대원으로 들어가면 한달에 3000원을 받는단다. 그외 팁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그보다 몇배나 더 많단다.” “어머, 그게 술집아가씨(三陪小姐)가 아니요? 그런 일을 어떻게 하오?” 설매와 홍매가 놀라서 펄쩍 뛰자 련분이는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일하고있는 술집은 그런 곳이 아니야. 거긴 국가에서 꾸리는 5성급호텔인데 거기에 다니는 손님들은 아주 문명하단다. 그리고 국가에서 인정하는 경비일군들까지 있어서 아주 안전하단다.” “그런곳에 가면 손님들과 같이 술을 마셔야 되는게 아니오? 그런 곳엔 별의별 손님들이 다 있다는데 얼마나 무섭겠소? 그러다가 잘못되면…” 설매와 홍매가 못미더워하자 련분이는 다시 간살을 떨었다. “어마, 너넨 정말 촌뜨기여서 모르는구나. 거기의 접대원들은 술상곁에 서서 가만있다가 손님들의 술잔이 비면 곧 다가가서 술만 부어주면 돼. 또 거기의 손님들은 모두 점잖고 문명하여 접대원들에게 다른 수작은 절대 하지 않거든. 또한 거기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외국상인들이라 통이 커서 팁도 두두룩하게 많이 주거든.” “정말 그렇게 깨끗한 술집이 있소?” “거긴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는데 아무나 못들어가겠지?” 설매와 홍매는 귀가 솔깃했다. 그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것을 본 련분이는 요사스럽게 눈알을 굴리다가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들어가자면 대학에 붙기만 더 힘들단다. 나도 그 술집의 총경리와 친분이 있는 우리 삼촌을 통해서 들어갔지. 너들이 들어갈 생각이 있다면 내 연줄을 놓아줄게.” “아이, 정말이요? 깨끗하고 돈을 많이 벌수 있다면 우린 들어가겠소.” “언니, 우릴 위해 힘써 주오!” 설매와 홍매는 손님들에게 술만 부어주는 접대원을 TV드라마에서 보았던지라 련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귀가 솔깃하여 자기들을 술집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을 들었다. 며칠후 련분이는 설매와 홍매를 백조술집에 데리고 가서 총경리에게 소개했다. 총경리는 두 처녀의 아래우를 쭉 훑어보더니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그 즉시로 출근하라고 했다. 두 처녀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이 련분의 꼬임에 들어 악마의 소굴에 빠져들었을 줄을 어찌 알았으랴! 련분의 말대로 백조술집은 경비일군들이 지켜주어 아주 “안전”했다. 하지만 경비일군들은 손님들의 성희롱으로부터 접대원들의 인신안전을 지키는것이 아니라 접대원들을 외부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지키는 역할을 하고있었다. 경비일군들은 설매네를 그곳에서 먹고 자게하면서 술집문을 한발작도 나서지 못하게 지켰다. 그리고 강박적으로 손님을 받도록 명령했다. 원래 백조술집은 지하기생집이였던것이다. 설매와 홍매는 자신들이 암흑한 운명에 처한것을 몹시 두려워했으나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련분이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줄로 알았다. 련분의 삼촌이 총경리와 친분이 있다니 련분이를 만나면 곧 이곳에서 풀려날줄로 알았다. 그래서 련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녀들을 지키던 경비대장이라는 애꾸눈이와 코빨갱이가 빙그레 웃더니 한시간후 련분이를 데리고 왔다. 두 처녀는 련분에게 매달려 울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했고 어서 삼촌에게 부탁해서 자기들을 이곳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그런데 련분이가 도리여 그녀들을 구슬리는것이 아닌가. “일이 이렇게 된바엔 어쩌겠니? 마음을 안착하고 잘해봐라. 손님을 받는 일이 처음엔 좀 어렵지만 습관되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야. 이 손님 저 손님에게서 목돈을 받는 재미란…” “언니! 그게 무슨 말이요? 우리더러 몸을 팔란 말이요? 언닌 처음부터 알고 우릴 이 매음소굴에 빠뜨린게 아니오?” 설매와 홍매는 너무도 놀랍고 분하고 격분하여 마구 소리질렀다. “언닌 도대체 우리와 무슨 원쑤진 일이 있어서 우릴 이런 구렁텅이에 빠뜨려놓고 우리 일생을 망치게 한단말이요?!” 그러자 련분이는 제쪽에서 도리여 눈살이 꼿꼿해서 쏘아붙였다. “내 너넬 위해 치부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는데 감사하단 말은 못할망정 은인을 욕하다니? 여길 구렁텅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여긴 녀자들이 큰돈을 벌수 있는 활무대야!” 설매는 너무도 어이없어 말이 나가지 않았다. 홍매가 격분해서 따지고 들었다. “이제보니 언닌 이런데서 몸뚱아리를 팔아서 치부했겠구만. 우리더러 그런 더러운 돈을 벌라구? 언닌 제걸 팔다못해 이젠 뚜쟁이질까지 하는구만.” “뭐? 뭐?” 련분이는 얼굴색이 퍼래졌다가 갑자기 능청스럽게 웃으며 뇌까렸다. “욕하겠으면 싫컷 욕해라. 너넨 지금은 날 욕하겠지만 앞으로 돈을 많이 벌게되면 나한테 감사드릴거야. 몸을 파는게 뭐 나쁜 일이야? 몸을 판다고 달라지는것도 없는데. 나를 봐라. 지금까지 천명이나 되는 남자들과 그 일을 했지만 여전히 처녀같잖아? 그리고 숱한 남자들이 나하고 결혼하지 못해 안달아하고있어. 그중엔 사장님도 있고 국장님도…” “닥쳐!” 홍매가 듣다못해 련분의 말을 탁 자르며 고함쳤다. “더러운 여우 갈보년아! 우리가 너같은줄 아느냐? 우린 널 공안국에 고발할테다!” “고발?” 련분이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그러다가 련분이는 송곳눈으로 홍매네를 쏘아보며 을러멨다. “이년들이 하늘 높은줄 모르는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큰소리야. 여기에 들어오면 순종하는 길밖에 없어. 깨끗한 몸으로 여길 나가려니 꿈도 꾸지 말라. 남자들을 많이 받아 술집에 만족할만한 돈을 벌어줘야 나처럼 자유를 얻을수 있는거야! 부질없는 반항은 하지 말고 고분고분 순종해라. 알겠느냐?” “퉤! 더럽다!” “이 개ХХ같은 년아!” 설매와 홍매가 다투어 욕설을 퍼붓자 련분이는 또 한번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코빨갱이와 애꾸눈이를 보고 말했다. “이년들이 아무래도 먼저 Х맛을 먹여줘야 정신을 차리겠는 모양이예요. 장대장과 오대장네 먼저 이년들의 딱지를 떼줘요. 장대장과 오대장네는 정말 복이 있어요. 숫처녀 맛을 보게 됐으니. 으흐흐!” 련분이가 나가자 애꾸눈이와 코빨갱이가 굶주린 늑대처럼 사납게 달려들었다. 한놈이 하나씩 맡아가지고 물고 빨고 만지고 하며 지랄발광을 해댔다. 그녀들은 옷이 찢겨지고 벗겨져나갔지만 젖먹던 힘을 다 내서 반항했다. 두 망나니는 근 반시간동안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힘만 뺐을뿐 성공하지 못했다. 몇번이나 거듭 달려들어 성난 물건을 집어넣으려고 시도했으나 그녀들이 두 다리를 꼭 오무리고 결사적으로 반항하는 바람에 번마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들의 손톱에 낯짝까지 할퀴운 두 망나니는 분하여 씩씩거리며 고아댔다. “이 씹팔년들이 감히 반항해?! 똥매를 맞아봐야 제정신이 들겠는 모양이구나!” 두 망나니의 주먹과 발길이 비발처럼 날아왔다. 그녀들이 아픔을 견디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막자 두 망나니는 구두발로 그녀들을 마구 짓밟아놓았다. 그녀들의 얼굴은 피투성이 되였고 팔, 다리, 가슴은 퍼렇게 멍들었다. 두 놈은 때리기에 지쳤는지 매를 잠간 멈추고 뇌까렸다. “야, 이 간나들아! 손님을 받겠니? 안받겠니?” 그녀들은 이를 꼭 악물고 두 눈을 부릅뜨고 두 망나니를 쏘아볼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 간나들이?!” 화가 치밀어오른 두 망나니는 바줄을 가져와서 그녀들을 알몸 그대로 꽁꽁 묶어놓았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칼끝을 그녀들의 얼굴에 바싹 들이대며 을러멨다. “우리 말을 듣겠니? 안듣겠니? 말을 듣지 않으면 네년들의 낯짝에 장기판을 그어줄테다!” “녀자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얼굴이야. 그까짓 몸뚱아리야 판다고 뭐 다스니? 우리한테 먼저 준 다음 손님들에게 개방해라. 그러면 술집도 돈을 벌고 너네도 돈을 벌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지 않니? 고분고분 손님을 받으면 우린 너네를 보호해 줄거고 그렇지 않고 말을 듣지 않으면 너네 얼굴을 망가뜨려 놓겠다!” 그녀들은 등골이 서늘해나며 사지를 벌벌 떨었다. 두 망나니는 동시에 칼끝으로 그녀들의 얼굴을 살짝 긁었다. 그녀들의 볼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들은”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 간나야, 말을 듣겠니? 안 듣겠니? 우리하고 한판 하겠니? 안 하겠니?” “우리하고 재미있게 놀면 이만해두고 그렇지 않고 계속 반항하면 얼굴에 바둑판을 새겨놓겠다!” 두 망나니는 칼끝에 묻은 피를 그녀들에게 보이며 위협했다. 그녀들은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참을수 없어 꽥 소리를 질렀다. “이 인간망나니들아!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는 법이다. 당장 손을 멈추고 우리를 풀어달라!” “죄에 죄를 더하지 말고 이만 그쳐라! 공안국에 고발할테다!” 두 망나니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으하하…고발하겠다구? 고발하겠으면 고발해라. 이 간나들아, 우리가 무서워할줄 아느냐?” “이 간나들이 정말 악질이구나! 네년들이 어느만큼 견디는가 어디보자.” 두 망나니는 뭐라고 수근거리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꼬나물었다. 그리고 악마처럼 웃으며 말했다. “으흐흐…이년들이 이쁜 젖탱이를 달았구나. 이 젖탱이를 더 이쁘게 미용해줘야지.” “그래, 젖탱이부터 미용해주자구. 담배불로 말이야! 으흐흐…” 두 망나니는 담배불을 그녀들의 젖꼭지에 갖다댔다. “아악!…” 그녀들의 입에서 자지러진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잔인무도한 두 망나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들의 젖통을 담배불로 원을 그어가면서 지져놓았다. 처절한 비명소리...살타는 냄새...그녀들이 기절해넘어가자 두 망나니는 술을 마시며 그녀들이 깨여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들이 정신을 차리자 두 망나니는 계속해서 야수적만행을 저질렀다. 두 망나니는 칼로 그녀들의 얼굴을 가로세로 마구 “X”자와 “#”자를 그어서 보기에도 끔찍한 생채기를 만들어놓았다. 그녀들은 참을수 없는 모진 고통에 신음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악독한 놈들아, 네놈들은 좋은 끝장이 없을게다!” “이 살인악마들아, 네놈들은 천벌을 받을게다!” 두 녀인의 얼굴에서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가 많이 흐르자 두 망나니는 그녀들의 얼굴에 지혈면을 발라주고나서 악마처럼 웃어댔다. “으흐흐…으흐흐…이 간나들이 아직도 입은 살아있구나.” “안되겠어. 아직도 모자란가봐. 웃입대신 아래입을 다스려놓아야지.으흐흐…” 두 망나니는 어디론가 나갔다가 한참 후 당구 큐를 하나씩 들고왔다. 그들은 잔인하게 당구 큐를 그녀들의 질속에 마구 쑤셔넣었다. 그리고나서 음부마저 담배불로 지져놓고서야 포악한 행위를 그만두었다…   “순실아, 빨리! 빨리…” 동실이가 재촉해서야 순실이는 몸서리치는 추억에서 깨여났다. 동실이가 순실의 어깨를 쳤다. “저 여우 갈보년이 택시를 잡아탔어. 우리도 빨리…” 동실이와 순실이는 재빨리 오토바이를 몰고 련분이가 탄 차의 뒤를 쫓았다. 그녀들은 뒤를 쫓는 한편 금실이네한테 핸드폰으로 1호목표가 장미술집에서 2호목표를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통지했다. 금실이네가 먼저 장미술집에 도착했다. 술집안을 기웃거리며 찾았으나 2호목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단간방들을 기웃거렸다. 문을 닫은 단간방들을 하나하나 열고 들어가서 살펴보다가 방을 잘못 찾은체하면서 도로 나와버리곤 했다. 12층의 맨마지막 방을 열고 들어갔던 옥실이는 온몸이 경직하는듯 했다. 바로 눈앞에 코빨갱이와 애꾸눈이 있었던것이다. 술상에 앉아 료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있던 녀석들은 지금은 옥실이로 이름을 바꾼 설매의 얼굴을 못알아보고 접대원으로 알았는지 “넌 새로온 애냐? 료리가 왜 이리 늦니? 빨리 좀 가져와!”하고 재촉했다. 원쑤를 눈앞에 둔 옥실이는 가슴에서 복수의 피가 끓어올랐다. (이런 죽일 놈들! 얼마나 찾아 헤맸는데 이제야 만났구나! 아아, 이 원쑤를 어떻게 갚나?) “아니, 이년 뭐해? 빨리…” 녀석들이 재차 재촉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옥실이는 “네네…”하고 물러나왔다. 그녀는 금실이와 은실에게 “2호목표가 안에 있어요.”하고 낮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바로 그때 웬 녀인이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옥실이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1호목표예요”하고 나직이 말했다. 그녀들은 얼른 자리를 피하면서 몰래 련분이를 감시했다. 련분이가 2호목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고 련분의 뒤를 따라 온 동실이와 순실이도 뒤따라 나타났다. 그녀들 다섯은 뭔가 의논하더니 옥실이와 은실이가 남아서 감시하고 나머지는 재빨리 목표가 들어간 옆방에 자리잡고 앉아서 접대원을 불러 술과 안주를 시켰다.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감시하고있던 옥실이와 은실이는 한 접대원이 료리를 들고 나타나서 목표가 들어간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얼른 막아서서 료리를 나꿔챘다. 그러자 접대원이 조급해서 말했다. “아니, 이건 손님들의 료리가 아니예요. 손님들이 요구한 료리는 좀 더 기다려야 해요. 들어가서 내심하게…” “우린 지금 급해서 그래요. 외국에서 오신 귀빈을 모셨는데 좀 우대해줘요.” 옥실이와 은실이는 접대원의 손에 50원짜리 인민페를 쥐여주며 구슬려댔다. 그러자 접대원은 좋아라고 물러났다. 옥실이와 은실이는 재빨리 금실이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료리에 몽혼약을 섞어가지고 다시 나와서 곧바로 목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련분이와 뭔가 수근거리고있던 애꾸눈이가 그녀들이 들어서는것을 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씹팔, 왜 이리 늦은거야! 빨리 갖다 놔!” “네네, 늦어서 미안해요.” 옥실이와 은실이가 일부러 허리를 곱실거리며 료리를 술상에 갖다 놓았다. 애꾸눈이, 코빨갱이, 련분이 셋은 옥실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은실이는 손에까지 화상을 입어 보기흉한 상처가 남았기에 장갑을 끼고있었다. 그것을 본 코빨갱이가 이마살을 찌프리며 소리쳤다. “아니, 이년이 장갑은 왜 끼고 지랄이냐? 우리한테서 사스가 옮을가봐 그러냐, 조류독감이 전염될가봐 그러냐? 엉?!” “미…미안해요. 당장 나가서 벗겠어요.” 옥실이와 은실이는 허리를 한번 더 굽실거리고 나서 급히 물러나왔다. 두 녀인은 급히 카운터에 가서 두방의 술값을 물고 슬며시 금실이네가 있는 옆방으로 들어가서 의미있는 눈짓을 해보였다. 다섯 녀인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옆방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잠잠해졌다. 긴장하게 전투준비를 하고있던 그녀들은 벌떡 일어서서 옆방으로 뛰여들어갔다. 세 년놈은 약기운이 몸에 퍼졌는지 보기좋게 쓰러져있었다. 그녀들은 재빨리 행동했다. 힘이 센 금실이가 체격이 왜소한 련분이를 업고 은실이와 옥실이가 애꾸눈이를, 동실이와 순실이가 코빨갱이를 부축해가지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까지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술에 취한 사람을 부축해가는거라고 여기고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듯 본체만체하고 지나갔다. 그녀들은 죽은 돼지같은 세 년놈을 간신히 끌고 술집앞에 세워놓은 자기들이 몰고 온 승용차로 다가갔다. 그녀들은 힘을 합쳐 승용차의 뒤좌석에 세 년놈을 처넣었다. 금실이가 운전석에 올라 차를 몰고 옥실이가 조수석에 앉았다. 그뒤를 동실이와 순실이가 오토바이를 몰고 바싹 따랐다. 은실이는 동실의 뒤에 앉았다. 그녀들은 먼저 차를 조용하고 작은 골목으로 몰고 들어가서 죽은 돼지같은 세 년놈을 바줄로 꽁꽁 묶어놓은후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워놓았다. 그 다음 다시 차를 몰고 달렸다. 번화한 거리를 벗어나자 차는 속력을 가하며 쏜살같이 달렸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좌석의 세 원쑤놈을 쏘아보는 옥실의 눈에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얼굴과 온몸이 피투성이 되여 밤중에 길바닥에 던져지던 비참한 일이 머리속을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날 코빨갱이와 애꾸눈이는 반죽음이 된 설매와 홍매를 밤중에 시골의 길가에 던져버렸다. 우연하게 길에서 금실이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죽어서 원혼이 되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병원치료를 받고 나와서 파출소에 고발했지만 련분이와 두 망나니는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버린 뒤여서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비리경찰의 보호를 받고있는 백조술집은 겉으로는 정당한 영업을 하고있어서 아무런 처리도 받지 않았다. 공안부문의 사건조사가 흐지부지해지자 그녀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원쑤놈들을 찾아내여 복수하리라 속으로 별렀다. 그녀들은 소식이 잡힐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원쑤놈의 종적을 끈질기게 추적하던 설매와 홍매는 뜻밖에 고향사람을 만나서 련분이가 B시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들은 즉시 B시로 찾아가 끈질기게 렴탐한 결과 끝내 련분의 거처를 알아냈던것이다… 날이 어두워지는것과 함께 그녀들은 외딴 초가집에 도착했다. 세 년놈은 이미 깨여나 있었다. 년놈들은 영문도 모른채 차에서 끌려져내려와 집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끌려들어가면서도 년놈들은 꽁꽁 묶어놓은 바줄을 벗어나겠다고 버둥거리며 몸부림쳤다. 그녀들은 년놈들의 눈을 가리웠던 검은 천을 풀어주고 입에 틀어막았던 수건을 빼내주었다. 어리둥절하여 방안을 둘러보던 년놈들은 겁에 질린 눈길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다…당신들은 누구요? 왜 우리를 랍치한거요?” 애꾸눈이가 사내노라고 목에 피대를 세우며 항거했다. 련분이도 억울하다는듯 한마디 했다. “우린 당신들과 원쑤진 일도 없는데…” “원쑤진 일이 없다구? 이 년아!” 옥실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련분의 귀싸대기를 찰싹찰싹 후려쳤다. 순실이도 분노가 북받쳐서 애꾸눈이와 코빨갱이의 뺨을 번갈아가며 후려갈겼다. 곁에서 구경하던 금실이, 은실이, 동실이도 달려들어 세 년놈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걷어찼다. “다…당신들은 도…도대체 왜 이러는거요?” 이번에는 코빨갱이가 항거했다. 옥실이와 순실이가 부엌에 가서 날카로운 칼을 집어들고 왔다. 그녀들은 각기 코빨갱이와 애꾸눈이의 낯짝에 시퍼런 칼끝을 갖다대며 증오에 찬 눈길로 쏘아보았다. “이놈들아, 우리를 못 알아보겠느냐?” “다…당신들은?!…” “기억력을 살려줄가?” 옥실이와 순실이는 얼굴에 쓴 고무가면을 벗어던졌다. 두 망나니는 사시나무떨듯 와들와들 떨면서 겁난 눈길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을 찬찬히 눈여겨보던 애꾸눈이와 코빨갱이 그리고 련분이는 모두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아! 네…네년들이?!” “네년들이라니? 이 악마놈들아!” 옥실이와 순실이는 분노에 차서 부르짖으며 각기 코빨갱이와 애꾸눈이의 낯짝에 시퍼런 칼끝을 바싹 들이대고 내리그었다. 두 놈의 얼굴에서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두 놈의 입에서 새여나왔다. 두 녀인이 다시 한번 칼질을 하면서 따져물었다. “어떠냐? 얼굴미용을 하는 맛이 좋으냐?” “우…우리가 자…잘못했으니 요…용서해주오…” 두 망나니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용서를 빌었다. “너들이 뭐 잘못이 있겠니? 우리를 미용해줬으니 우리도 그만큼 너넬 미용해주면 되겠는데. 리치가 그렇지 않느냐?” 두 녀인은 추호의 용서도 없이 계속해서 칼로 두 놈의 낯짝에 마구 “X”자와 “#”자를 그어놓았다. 두 놈은 처절한 비명을 연신 질러댔고 곁에서 지켜보는 련분이는 겁에 질려 사지를 벌벌 떨고있었다. 옥실이와 순실이는 두 악당의 얼굴에 지혈면을 발라주면서 차갑게 웃었다. “이번엔 아래도리를 미용해줘야지.” 어느새 금실이와 은실이가 미리 준비했다가 넘겨주는 가위를 옥실이와 순실이가 받아쥐였다. 두 놈은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옥실이와 순실이는 가위로 각기 두 놈의 바지지퍼 주위를 베여낸후 팬티까지 도려냈다. 그러자 두 놈의 축 처진 물건이 밖으로 드러났다. 동실이가 두대의 담배에 불을 붙여서 옥실이와 순실에게 넘겨주었다. 옥실이와 순실이가 빨갛게 타들어가는 담배불을 두 놈의 성기 가까이에 가져가려 하자 두 악당은 그만 혼비백산하여 공포에 떨면서 울부짖었다. “제…제발 그것만은 용서해주오!” “제발 빕니다! 녀사님들, 그것만은…” 두 녀인은 랭담하고 격멸에 찬 눈길로 두 악당을 쏘아보았다. “야. 이 녀석들아! 아래도리를 미용 좀 해주겠다는데 왜 울며불며 야단들이냐?” “남자들은 그걸 생명처럼 간주한다지? 남자들에게 가장 중요한게 그거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더욱 정성들여 미용해줘야 되는게 아니겠어? 으하하…” “녀사들…아니 천사님들 제발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아…제발 비나이다! 잘못했습니다!” 두 악당은 비굴하게 눈물을 질질 흘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하지만 원한이 가슴속에 깊이 쌓인 두 녀인은 그들을 비수같이 쏘아보며 고함쳤다. “용서해달라구? 네 녀석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에게 사정이 있었느냐?” “이런 악마같은 놈아!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용서를 바라느냐?!” 두 녀인은 담배를 한모금씩 빨아들이고 담배재를 털어버렸다. 그리고 시뻘겋게 불타는 담배불로 두 악당의 성기를 여기저기 사정없이 마구 지져놓았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 여우 갈보년은 어떻게 처리할가?” 동실이가 사지를 벌벌 떨고있는 련분이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두 악당은 이미 기절해 자빠져있었다. 금실이가 격분해서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 만큼 갚아줘야지. 이런 찢어죽일년은 말이야. 그렇지? 옥실아, 순실아?” “당한 만큼 갚아줘!” 은실이도 부추겼다. “설매야, 홍매야, 제발 날 용서해줘!” 옥실이와 순실이가 반응을 보이기전에 련분이가 앞질러 용서를 빌었다. 옥실이와 순실이는 랭담하게 그녀를 쏘아보며 물었다. “우리가 왜 널 용서해줘야지?” “네년이 용서를 받을만한 리유를 말해봐. 그럼 용서해줄게!” 련분이는 살구멍수가 나졌나싶어 머리를 굴리며 궁리하다가 말했다. “내가 잘못하고 죄를 지은것만은 사실이지만 너네 얼굴과 몸을 해친건 아니잖아?” “닥쳐! 우리를 지하매음소굴에 빠뜨려놓은건 누구야?” “우릴 성폭행하라고 사주한건 또 누구야?” 옥실이와 순실이가 격분하여 쏘아보자 련분이는 울상이 되여 빌었다. “하지만 난 너넬 직접 해치지 않았잖아? 설매야, 홍매야,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날 용서해줘!” 옥실이와 순실이는 분노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우린 설매와 홍매가 아니야! 설매와 홍매는 언녕 죽었어! 네년의 손에 죽은거야!” 두 녀인은 련분의 앞에서 칼을 흔들어댔다. “당한 만큼 갚아줄테야!” 얼굴이 송장처럼 퍼렇게 질린 련분이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었다. 그러나 두 녀인은 사정없이 그녀의 얼굴에 칼질을 해댔다… 다섯 녀인은 또 밤을 타서 세 년놈을 도시의 거리바닥에 던져버리고 왔다.    
30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2) 댓글:  조회:3144  추천:1  2014-10-04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김희수   2. 결혼식날 신랑을 랍치     백옥같은 흰눈이 포실포실 내리는 거리로 꽃단장을 한 42대의 승용차가 줄지어 달리고있었다. 차창에 매달린 매화꽃 같은 눈송이를 바라보며 신랑은 신부의 손을 잡고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결혼날자 참 잘 잡았소. 결혼식날 눈이 오면 한평생 복 받는다는데.” “우린 행복할거예요!” 신부도 행복에 겨워 신랑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인다. 결혼식을 거행하게 될 혼례청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나 혼례차대렬은 위풍을 시위라도 하듯 도시의 크고 작은 거리를 빙빙 돌면서 천천히 달리고있었다. 번화한 거리를 지나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두명의 녀자교통경찰이 나타나 차를 세우고 면허증을 검사했다. 맨앞의 안내차와 신랑신부의 차는 무사통과하고 뒤의 차들만 남아서 계속 검사를 받고있었다. 녀자교통경찰은 교통규칙을 위반한것이 아닌데도 일부러 트집잡아 혼례차들을 난처하게 구는듯 했다. 운전사의 면허증을 검사하는가 하면 안전띠를 검사하기도 하고 심지어 차에 앉은 매개 손님들의 신분증까지 자세히 검사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혼례차는 급해했고 급기야는 인민페 1000원을 내놓으며 혼례식에 늦어지지 않게 길을 내달라고 애걸했다. 한편 앞에서 무사통과 했던 차도 얼마 못가서 시끄러운 일에 봉착했다. 또 느닷없이 세명의 녀자교통경찰이 나타나서 길을 가로 막았다. 신랑이 투덜거렸다. “오늘은 무슨 녀자교통경찰이 이리 많아?” 그런데 녀자교통경찰은 앞의 안내차는 무사통과 시키고 신랑신부의 차만 붙잡아두고 애를 먹이고있었다. 그중 한 녀자교통경찰은 신랑을 뚫어지게 눈여겨보더니 당장 차에서 내리도록 명령했다. “아무래도 이 신랑이란 자가 의심스럽단 말입니다. 전번에 사람 깔아놓고 뺑소니친 그자와 너무나 똑 떼 닮았어요. 본부에 데리고 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세명의 녀교통경찰이 잽싸게 달려들어 신랑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신랑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녀교통경찰들을 바라보았다. “당신들 교통경찰이 맞아? 교통경찰이 수갑을 휴대하고 다니다니?” “넌 차로 사람을 깔아죽이고 도망친 뺑소니범이야! 그러니 수갑을 채워야지!” “난 뺑소니범이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난 곧 결혼식을 올려야할 신랑이니 빨리 놔주세요!” “그래요. 그인 뺑소니차를 몬적이 없으니 어서 놔주세요!” 신랑신부 그리고 운전수와 둘러리 모두 울상이 되여 애걸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뺑소니범이 옳은지 아닌지는 가서 조사해보면 알게 되겠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순순히 따라와!” 녀교통경찰은 신랑을 압송하여 경찰차에 실었다. 신부와 둘러리들이 란리법석을 떨었으나 신랑을 압송한 경찰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듯이 달렸다.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고 발악하던 신랑은 얼마후 체념했는지 가만있었다. 그러다가 차가 교외를 벗어나자 신랑은 당황하여 부르짖었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거요?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개자식, 입 좀 다물어!” 뒤좌석에 앉은 두 녀교통경찰이 달려들어 수건으로 신랑의 입을 틀어막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웠다. 교외를 벗어난 차는 꼬불꼬불 오솔길을 돌고 돌아 서너시간 달렸다. 그리고 십여분간 멈춰서서 셋이 식사를 하는듯하더니 다시 어딘지 모를 방향으로 달리고 달렸다.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차가 달리는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어둑한 때였다. 세명의 녀교통경찰이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린 신랑을 끌고 외딴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있던 두녀인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언니네들이 그놈을 순리롭게 잡아왔군요.” “옥실이, 순실이 너들이 벌써 와있었구나.” 옥실이와 순실이라고 불리운 두녀인은 맨처음 신혼차를 가로 막았던 가짜 녀교통경찰이였다. 그리고 신랑을 랍치해온 세 녀교통경찰은 원래 금실이, 은실이, 동실이였고 그녀들이 몰고 온 차는 신랑을 랍치하기 위해 훔쳐온 경찰차였다. 그녀들은 붙잡아온 신랑을 죄수처럼 무릎을 꿇게하고 그의 입에 틀어막았던 수건을 빼내고 눈에 가리웠던 천을 풀어주었다. 신랑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당신들은 가…가짜 교통경찰이지? 왜 장가가는 사람을 붙잡아온거요?” 다섯 녀인은 매서운 기운이 서리발치는 눈길로 신랑을 쏘아보았다. 옥실이와 순실이가 달려들어 신랑의 귀쌈을 찰싹찰싹 후려쳤다. “그래 우리는 가짜다. 너 같은 량심없는 놈도 장가를 가?! 이놈아!” “다…당신들은 도…도대체 누구요?” 다섯 녀인이 살기등등한 눈길로 신랑을 쏘아보며 이구동성으로 웨쳤다. “우리는 복수의 녀신이다!” 다섯 녀인이 동시에 얼굴에 씌웠던 고무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기절초풍할 지경으로 놀란 신랑은 “아!”하고 외마디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앞에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보기흉한 다섯 얼굴이 나타났던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귀신의 얼굴이였다. 리더격인 금실이가 동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동실이가 신랑의 귀쌈을 힘껏 후려치며 말했다. “네놈이 저지른 나쁜짓을 실토해라!” 신랑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난…나쁜짓을 한적이 없소.” 그러자 동실이가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불타는 두눈으로 신랑을 무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양범호! 너 나쁜 짓을 한적이 없다구?” “다…당신은 누구요?” 신랑 양범호는 웬 녀인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동실이가 다시 범호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댔다. “범호, 너 이 악마같은 놈아! 그래 네가 훼손시킨 이 얼굴을 모르겠느냐?” “다…당신은…소…소연이?!” 겁에 질린 눈길로 동실을 바라보던 범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난…난 소연의 얼굴을 훼손시키지 않았소. 그…그건 명도가 한짓이요. 소연이도 알다싶이 류산을 던진건 명도가…아악…” 범호는 말끝을 채 맺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동실의 주먹이 벼락같이 그의 면상으로 날아왔던것이다. 그의 코구멍에서 시뻘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잇달아 동실의 주먹이 그의 눈통으로 날아왔다. “이 나쁜 새끼야! 어디다 변명이냐?” 동실의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범호… 명도… 돌이켜보고싶지 않은 지난일들이 그녀의 머리속을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소연이와 범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복한 한쌍의 련인이였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그들은 세집을 얻어 동거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살아갔다. 그러나 이런 비법동거생활은 장구지책은 못되였다. 어쨌든 결혼해야 했는데 그러자면 “내집”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다달이 살아가는 생활비용을 쓰고나면 남는것이 없는 그들의 수입으로 집을 마련한다는것은 헛된 꿈에 불과했다. 결혼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자면 출국하는 길밖에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소연이는 일본수속을 다그쳤고 범호는 로씨야수속을 밟았다. 그런데 소연의 일본수속은 자꾸만 꼬여갔고 범호만이 순리롭게 로씨야땅을 밟게 되였다. 혼자 남게된 소연이는 편지로 그리움을 전하며 범호가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중 친구의 결혼파티에서 풋면목을 익힌 명도라는 총각이 그녀의 생활에 뛰여들었다. 명도는 기회만 있으면 소연이를 청해 음식을 대접했다. 명도가 성실하고 마음이 착했기때문에 소연이는 그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단둘이 만나는 장소만은 피했다. 그렇게 달이 가고 해가 바뀌였지만 명도는 그녀와의 만남의 장소를 꾸준히 마련했다. 소연이는 명도와 만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점차 그에게 호감을 갖게되였다. 하지만 자신에겐 사랑하는 범호가 있기에 녀자의 본분만은 지켜야 한다는것은 항상 잊지 않고있었다. 그녀는 끝내 범호가 돌아오는 날까지 5년을 외로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뎌냈다. 범호가 돌아온 그날 밤에 그녀는 범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녀는 전날 명도의 청혼을 용하게 거절했던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범호의 사랑이 이전처럼 뜨겁지 못한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명도가 집요하게 사랑의 공세를 들이댔는데 그것이 결국 범호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그녀는 사실대로 자신이 청백하다는것을 털어놓았으나 범호는 그녀를 행실이 부정한 년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며 주먹과 발길로 사정없이 때렸다. 그러면서 관계를 그만두자고 했다. 그녀는 울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추호도 변한적이 없으니 절대 헤여질수 없다고, 목숨이 붙어있는 한 영원히 그를 따르겠다고 말했다. 며칠후 그녀는 자신의 청백을 해명해달라고 명도를 찾아가 말할 생각이였는데 마침 명도한테서 먼저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들은 공원의 으슥한 곳에서 만났다. 명도는 한손에 무슨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들고있었는데 다른 한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소연이, 난 소연이를 사랑하오! 우리 결혼하기오!” “명도씨, 이러지 말아요. 난 곧 범호씨와 결혼하게 되는데 명도씨때문에 그의 오해를 받고있어요. 명도씨가 나서서…” “소연이, 소연이는 범호와 결합될 운명이 아니오! 그와의 사랑은 이뤄질수 없으니 나하고…” “안돼요! 난 영원히 범호씨만 따를거예요!” “소연이, 소연이가 나한테 시집오지 않겠다면 난 소연의 꽃같은 얼굴을 훼손시켜버릴거요!” 갑자기 명도가 음흉하게 웃더니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흔들며 위협했다. “나한테 시집오겠소? 안오겠소? 안오겠다면 이 류산을 소연의 얼굴에 뿌리겠소!” “아니?! 뭐…” 소연이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낯선 사람보듯 명도를 바라보았다. 선량하던 명도가 갑자기 포악한 망나니로 변하다니?? 소연이는 두눈을 꼭 감고 추호의 흔들림도없이 대답했다. “나의 사랑은 오직 범호씨에게만 속해요! 당신이 나의 얼굴을 망가뜨리겠으면 망가뜨려봐요!” “에익! 이 년이?!” 절망에 빠진 명도는 손에 들고있던 병마개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소연의 얼굴에 확 끼얹었다. “아…앗!” 째지는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소연이가 그자리에 쓰러졌다… 동실의 회억은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 가서 멎어버렸다. 그녀의 눈에서 저도몰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온몸을 떨기만 하던 범호가 다시 한번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소연이, 소연의 얼굴에 류산을 뿌린건 내가 아니란 말이요. 그건 명도가…” “닥쳐! 진짜 흉범은 바로 너야!” 동실이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발길로 범호의 가슴을 힘껏 걷어찼다. 범호가 “어이쿠”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동실이는 격분에 찬 목소리로 꾸짖었다. “이 인간망나니야! 내가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고 입원해있는 동안 너는 한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절교신까지 보내왔지. 내가 절망에 빠져 자결하려고 할 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 자매들을 만나 이름을 동실이라 고치고 복수의 힘을 기르게 된거야. 후에 조사를 해서야 난 모든 진실을 알게된거야.” 이미 귀국하기전부터 로씨야에 온 고향친구를 통해서 명도가 소연이를 짝사랑하고있다는 소문을 들은 범호는 귀국하자마자 소연이 몰래 명도를 만나서 “나와 소연이는 아무래도 결합될수 없는 운명이요. 우리 부모는 소연이와 결혼하는 날에는 목숨을 버리겠다면서 우리의 결혼을 반대하고있소. 그러니 명도가 나대신 소연이를 사랑해주오.”하고 말했다. 거기에 힘을 얻은 명도는 소연에게 줄기차게 사랑의 공세를 들이댔다. 하지만 번마다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범호가 또 찾아와서 방법을 대주었다. “구슬려서 안되면 위협해보오. 계속 거절하면 류산을 뿌려서 얼굴을 훼손시키겠다고 을러메란 말이오.” 그러면서 범호는 들고온 액체병을 흔들어보였다. 명도가 깜짝 놀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건 안되오! 그런 짓은 절대 할수 없소!” 그러자 범호는 빙그레 웃으며 병속의 물을 자신의 얼굴에 쏟아부었다. “이건 가짜요. 맨물이란 말이요. 이것으로 위협해서 말을 들으면 좋은 일이고 거절당한다면 물이라도 끼얹어 그녀의 놀라는 모습을 보면 통쾌한 보복이라도 되는게 아니겠소? 그동안 애써 추구해온 보답으로 말이요. 하하하…” 범호는 또 화장실에 가서 병에 물을 담는체하면서 진짜 류산이 들어있는 병을 명도에게 넘겨주었다… “이 나쁜 새끼야!” 동실이는 격분해서 이를 갈며 쏘아붙였다. “명도는 내 얼굴에 뿌린것이 진짜 류산인것을 알고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하여 멍해 있다가 마구 울부짖으며 나를 업고 병원에 달려갔어. 그리고 절망한 나머지 공안국에 찾아가서 자수하고 혼자서 모든 죄를 뒤집어썼어. 이런 사실을 난 명도가 갇힌 감옥에 면회 가서 알아냈어. 그리고 우리 자매 다섯이서 너와 관계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알아본 결과 너는 로씨야에 함께 간 고향의 어떤 처녀와 거기서 수년간 살림을 꾸렸으며 돌아오자마자 그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이같은 비렬한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을 밝혀냈어.” “이 악귀같은 새끼야! 이래도 변명할거냐?” 금실이, 은실이, 옥실이, 순실이가 차례로 범호에게 주먹과 발길을 날렸다. 범호는 윽윽 비명을 지르다가 악쓰며 발악했다. “그래 옳다. 모든 음모는 내가 꾸민것이다. 그래 날 어쩔 작정이냐?” “이 새끼야, 우리는 복수의 녀신이야! 너한테 복수의 칼을 안길테다!” “뭐…날 죽이겠다구?” 공포에 떨던 범호는 금실이가 칼을 들고오자 그만 바지에 똥을 삑 하고 쌌다. 그는 울면서 애걸했다. “제…제발…모…목숨만 살려주시오! 그러면 내 돈 10만원을 드리겠소!” “이 비겁한 새끼야, 아이구 이 구린내…돈으로 목숨을 건지자구? 어림도없는 일이야!” “그…그럼 매사람에게 10만원씩 드리겠소!” “이 새끼, 정신 좀 차려라! 그깟 더러운 돈으로는 안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의 더러운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 범호는 비로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하지만 여전히 겁에 질린 눈길로 동실이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그럼…날 도대체 어…어떻게 처리할거요?” 금실이가 범호를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 “우리의 복수방침은…” 그러자 은실이, 동실이, 옥실이, 순실이가 말을 이었다. “피값은 피로 갚는다!”  
29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1) 댓글:  조회:3657  추천:1  2014-10-04
중편소설   추녀결사대   김희수     이것은 2003년에 생긴 이야기이다. 한때 세상을 뒤흔든 놀라운 사건이였지만 지금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1. 가면을 쓴 녀자들   깊고 깊은 두메산골에 주인없는 외딴 초가집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금실이, 은실이라고 부르는 두 녀자가 세를 맡아 들고있었다. 그녀들은 늘 A시쪽으로 나갔다가 며칠에 한번씩 돌아오곤 했다. 한번은 그녀들이 밤중에 마을에 들어서다가 손전등을 들고오는 한 농민과 마주쳤다. 부지불식간에 손전등으로 두 녀인을 비춰본 그 농민은 갑자기 “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돌아서서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정신없이 달아났다.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집에 들어선 그 농민은 자기가 방금 외딴 초가집 부근에서 두 녀자귀신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 마을 사람들에게도 녀자귀신을 본 얘기를 했다.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후부터 모두들 밤중에 외딴 초가집부근에 나가는것을 꺼려했다. 그리고 외딴 초가집의 두 녀자가 밤중에 귀신으로 변하는게 아닐가 하고 의심들을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 발생되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고있었다. 사실은 외딴 초가집의 두 녀자는 친자매간이였는데 불붙는 집에 갇혔다가 옆집에서 마작을 놀던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구했으나 온몸에 심하게 화상을 입은 불행한 경력을 가지고있었다. 더구나 그 불은 큰언니 금실의 남편 청수가 일부러 질러놓고 달아난것이여서 그녀들은 가슴에 깊은 원한을 품고있었다. 그 당시 청년들은 그녀들을 불속에서 구해서 병원에 싣고갔다.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엄중하게 화상을 입은 그녀들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더구나 얼굴은 보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처음 거울을 마주했을 때 그녀들은 절망에 찬 비명을 질러대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금실이가 바줄에 목을 매려고 했을 때 은실이가 발견했고 은실이가 목을 매려고 할 때 금실이가 눈치채고 지켜보다가 말렸다. “우리가 왜 죽어?” 두 자매는 붙안고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두 자매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죽지 말고 살아서 복수하자!” 그녀들은 이를 악물고 남몰래 복수의 칼을 갈았다. 의사는 해외에 나가 성형수술을 받으면 얼굴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할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 자매는 얼굴회복보다 복수가 먼저였다. 그들 자매는 상처가 아물어 퇴원하는 길로 짐을 쌌다. 도시에서 뻐스를 타고 네시간을 가야 하는 두메살골에 빈 외딴집이 있다는것을 알아낸 그녀들은 밤도와 택시를 리용해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 집은 정신이 이상한 한 남자가 살다가 죽은 집이여서 누구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두 자매는 그 집에 짐을 풀었다. 그날부터 두 자매는 두메산골에 깊숙이 숨어서 지내면서 은밀하게 남자의 종적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종적을 감추고 달아난 남자를 찾기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것 만큼이나 어렵겠지만 두 자매는 하늘끝까지 가서라도 남자를 꼭 잡아낼 잡도리였다. 그 짐승같은 남자를 찾아내 그 남자의 가슴에 복수의 칼을 꽂고야 말겠다는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녀들은 먼저 실제 사람피부처럼 보이는 실리콘가면을 사들였다. 이 실리콘가면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외국에서 들여온것이여서 구입하기 어려웠다. 그 실리콘가면을 쓰면 진짜 얼굴처럼 보였다. 두 자매는 실리콘가면을 쓰고 도시로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남자의 소식을 렴탐했고 밤에는 쓰고있기가 답답하여 실리콘가면을 벗어놓았다. 귀신을 보았다는 농민이 본것은 바로 화상을 입어 보기 흉하게 된 그녀들의 진짜얼굴이였다. 금실이와 은실이는 날마다 금실의 남편 청수를 추적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금실이는 은실이와 함께 먼저 청수의 부모가 거주하는 집으로 찾아가보았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청수의 부모는 청수와 련계가 있을것 같았지만 어디로 도망쳤는지 모른다고 했다. 원래 큰 희망을 품지 않았지만 청수 부모의 랭랭한 태도에 실망도 느끼고 화도 나서 금실이는 나오면서 문을 쾅 닫았다. 아빠트계단을 내려오는데 전화가 울렸다. 금실이는 핸드백에서 전화를 꺼냈다. 두 자매가 화상으로 입원해있던 병원의 중년간호사가 걸어온 전화였다. 두 자매의 사연을 잘 알고있는 그녀는 두 자매가 퇴원해 나올때 청수의 행방을 알아보겠다고 대답했었다. “우리 병원의 간호사 쑈쩡(小郑)이 청수의 친구를 안다고 합데.” 두 자매는 쏜살같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쑈쩡은 조선족이였다. 사촌오빠가 청수의 친구였는데 지금은 한국에 나갔다고 했다. 나중에 사촌오빠와 련계가 되면 청수의 행방을 물어보겠노라고 선선히 대답하는 미스 정을 보면서 두 자매는 다시 희망을 품게 되였다. 두 자매가 금방 미스 정과 헤여졌는데 병원의 뒤쪽복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보니 입원한 녀환자가 자살하려다가 간호사한테 발견되였다는것이다. “자살? 왜? 불치병이라도 걸렸나요?” 금실이의 물음에 한 중년환자가 대답했다. “에그, 새파랗게 젊은 녀잔데 누군가 그녀의 얼굴에 류산(硫酸)에 끼얹었다나? 좀 전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흉한 얼굴을 보았던 모양이요. 그래서 목을 매여 죽겠다고 란리를 피웠다나. 쯧쯧 불쌍하기두.” 금실이와 은실이는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그녀가 몹시 걱정되였다. 비록 얼굴 한번 본적이 없는 낯선 녀자였지만 그녀가 또 나쁜 마음을 먹을가봐 걱정되여 그대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두 자매는 자살을 시도했다는 그녀의 병실로 찾아갔다. 그녀는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침대우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금실이와 은실이가 그녀한테로 다가가려고 할 때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며 병실밖으로 뛰여나갔다. 두 자매는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허둥지둥 달려가던 그녀는 유보도 나무의자에 앉아 흐느끼였다. 두 자매가 다가가자 그녀는 다시 일어나서 병원밖으로 달려나가더니 길 한복판에 서서 자동차가 마주 달려오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것을 포기한듯 눈을 감고있었다. 다행히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그녀는 자동차와 한보의 거리를 놓고 무사하게 되였다. “죽고싶으냐?!” 차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욕설을 퍼붓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덴겁하여 뒤걸음치더니 황망히 차를 몰고 사라졌다. 두 자매가 쏜살같이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고 병원마당으로 돌아왔다. 두 자매는 그녀를 유보도 의자에 앉혀놓고 위안해주면서 인생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몰골로 살아서 뭘 하느냐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금실이와 은실이는 서로 눈짓하더니 동시에 가면을 벗었다. 두 자매의 진짜 얼굴을 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금실이가 자신들이 당한 불행을 이야기해주고나서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우리도 몇번이나 나쁜 마음을 먹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 만든 놈을 징벌하지 않고 죽을수는 없었어요!” 두 자매의 이야기는 그녀를 절망에서 빠져나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가족을 만난듯 두 자매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더니 자신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 이름은 소연이라고 불러요. 범호라는 남자를 만나 동거했는데…” 소연의 이야기를 들은 금실이와 은실이는 솟구치는 분노를 참을수 없었다. 그들은 소연이와 함께 복수하자고 약속했다. 그후부터 소연이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금실이와 은실이를 가족처럼 믿고 의지하게 되였다. 소연은 퇴원하는 길로 금실이와 은실이가 거주하는 시골의 외딴집으로 와서 살았다. 세 자매는 날이 밝으면 가면을 쓰고 사처로 다니면서 자신들을 망가뜨린 남자들의 종적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먼저 소연의 얼굴에 류산을 뿌린 명도부터 찾기로 했다. “명도 그 놈이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래도 일말의 량심은 남았는지 날 업고 병원에 갔어요. 그리고 입원비까지 지불하고 도망쳤더군요”. 그들은 한달째 A시의 골목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헛물만 켰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날, 세 자매는 아침을 먹자마자 가면을 쓰고 도시로 들어갔다. 일이 잘 되자고 그랬는지 도시에 도착하여 뻐스에서 내리자마자 명도의 친구를 만났다. 명도와 늘 붙어다니던 친구이기에 소연이는 첫눈에 알아보았다. 소연은 명도의 친구가 달아날가봐 두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명도가 어디 있어요?” “어? 소연이구먼.” “명도 그 새끼 어디 있어요?!” 금실이와 은실이도 다가와서 따져물었다. 명도의 친구는 세 녀인을 번갈아보더니 떠듬거렸다. “나…나두 명도를 못본지 오래되오.” “바른대로 말해!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 금실이와 은실이가 좌우에서 명도 친구의 량옆구리에 칼끝을 들이댔다. 명도의 친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며…명도는…가…감옥에 있소.” 명도의 친구는 명도가 소연의 얼굴에 류산을 끼얹은후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파출소에 찾아가 자수했다고 알려주었다. 세 녀인은 명도의 친구가 알려주는 감옥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날은 명도를 면회할수 없었다. 그래서 세 녀인은 종적을 감춘 금실의 남편 청수를 찾아다니다가 날이 어둡자 시골로 가는 막차를 잡아탔다. 세 년인은 모두 피곤하여 눈을 감았는데 그 사이에 뻐스는 외딴집이 있는 시골마을을 지나갔다. 뒤늦게 깨여난 세 녀인은 부랴부랴 뻐스에서 내렸다. 세 녀인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 걸어가던중 앞서가던 은실이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여기 사람이 누워있어요!” 금실이와 소연이가 달려가보니 길옆에 두 녀인이 누워있었다. “죽은것 같아요.” 은실이가 말했다. “사람…살려줘요.” 그때 누워있던 두 녀인중에 한 녀인이 가냘픈 소리로 구원을 청했다. “살아있어요!” 소연이가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두 녀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세 녀인은 깜짝 놀랐다. 그 두 녀인의 얼굴도 처참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길가에 던져버리다니? 어떤 놈들인지…”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자!” 금실이가 다급히 소리치면서 그중 한 녀인을 업으려고 했다. 은실이와 소연이가 도와주고 은실이가 다른 녀인을 업었다. 세 녀인은 두 녀인을 번갈아 업고 가까운 촌위생소로 달려갔다. 거기서 두 녀인은 간단한 치료를 받고 이튿날에 도시병원으로 옮겨졌다. 세 녀인은 그 두 녀인이 퇴원할 때까지 곁에서 보살펴주었다. 그 두 녀인은 세 녀인도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것을 알고 친자매를 만난듯 그들을 믿고 의지하게 되였다. 퇴원하는 날 두 녀인은 세 녀인을 따라 외딴집으로 왔다. 두 녀자는 설매와 홍매라고 불렀는데 온밤 눈물을 흘리면서 건달들의 칼에 얼굴이 훼손당한 자기들의 비참한 경력을 이야기했다. 그날밤 다섯 녀인은 서로 끌어안고 한바탕 울었다. 그리고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고나서 다섯은 결의 자매를 맺고 나이 순서로 금실이, 은실이 뒤를 이어 소연이는 동실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설매와 홍매는 각기 옥실이, 순실이라고 개명했다. 큰언니 금실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웨쳤다. “그자들을 반드시 우리 손으로 잡아내서 복수하자!” 그녀들은 다섯 녀인으로 무어진 복수조직을 “추녀결사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금실이가 다 함께 복수구호를 부르자고 하면서 먼저 웨쳤다. “죽음을 무릅쓰고 복수하자!” 네 녀자도 주먹을 불끈 쥐고 복창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복수하자!” “피는 피로써 갚자!” “피는 피로써 갚자!” 다섯 녀자는 가면을 쓰고 복수의 길에 나섰다. 실리콘가면은 그녀들의 화상자국과 흉터자국을 가려주었다. 그리고 원 생김새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다섯 녀자, 이제 새롭게 태여난 모습으로 복수의 상대를 찾아나선것이다.  
28    슬픈 녀자 / 단편소설 댓글:  조회:3473  추천:3  2014-07-01
슬픈 녀자   김희수     나는 불행하게도 슬픈 녀자로 이 세상에 태여났다. 철부지시절엔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애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면서 유쾌히 뛰놀았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슬픈 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웬일인지 남학생들은 누구나 내곁에 앉기를 꺼렸으며 나와 말을 걸기조차 싫어했다. 심지어 나를 쳐다보는것마저 겁나했다. 어쩌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면 번개같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하며 외면했다. 물론 이 모든것은 남녀유별때문이 아니였다. 남학생들은 다른 녀학생들과는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면서 잘 놀았던것이다. 특히 애금이한테는 아이스크림이랑 사탕껌이랑 바나나랑 사주면서 무척 다정하게 굴었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이성에 눈을 뜨지 못한 때여서 남학생들에게 외면당하는것은 분한대로 참고 지낼수 있었다. 하지만 녀학생들에게마저 멸시당하는건 도저히 참을수 없었다. “에그그, 쟤두 녀자야?” “글쎄다. 제딴엔 녀자라고 치마를 입은걸 좀봐. 히히…” 나에게 이런 모욕을 퍼붓는 애들과 머리채를 끄집어당기며 싸움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학급에서 나를 업신여기지 않고 나하고 놀아주는 애는 유독 애금이 혼자뿐이였다. 애금이는 나랑 이웃집에서 소꿉놀이를 함께 하며 자란 가장 친한 애인데 우리는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니곤 했다. 애금이는 나를 깔보는 애들이 있으면 언제나 내 역성을 들어주곤 했다. “너희들이 사람을 그렇게 업신여기면 못써! 너희들은 뭐가 잘나서 그래?” 그러면 애들은 금시 풀이 죽어서 “어머, 애금이는 왜 저런 애랑 같이 노니?” 하고 슬금슬금 뒤걸음친다. 언제부터인가 애들속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우리반에 원숭이 한마리가 있다는것이였다. 물론 원숭이는 어떤 애의 별명임이 틀림없었다. 원숭이? 그렇게 자랑스런 칭호는 아닌데…누구의 별명일가? 처음에 나는 그것이 나에게 붙여진 별명인것을 몰랐다. 어느날 애금이랑 나란히 걸어가고있는데 멀리서 쑥덕거리던 애들이 우리 쪽을 향해 “원숭이”하고 합창하는것이였다. 이런 일은 몇번이나 있었다. 나는 뭔가 심상찮은것을 느꼈다. “원숭이”는 결코 애금의 별명이 아닐것이다. 애금이와 원숭이는 어울리는 곳이 있을수 없다. 애금이는 보는 사람마다 “와!”하고 놀라고 다음에는 “이쁘기두해라!”하는 감탄이 절로 뒤따르는 그야말로 장미꽃처럼 예쁜 아이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틀림없이 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원숭이”란 뭘 뜻하는 말일가? 내 행동이 원숭이처럼 날렵하다는 뜻은 절대 아닐거야. 나는 운동선수도 아니고 체육성적도 겨우 급제이고 나무우로 바라오를 줄도 모르니까. 그럼…내 얼굴이?! 집에 돌아오기 바쁘게 나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다. 거울속의 내 얼굴을 이윽토록 들여다보던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찌나 분하고 억울하던지…나는 내 얼굴이 못생겼다는걸 안다. 하지만 원숭이처럼 생겼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저녁에 나는 퇴근하여 돌아온 엄마를 붙잡고 울면서 행악질했다. “엄마, 왜 날 남들처럼 곱게 낳지 못하고 이리도 못생기게 낳았나요? 네? 왜서요?!” “얘가 오늘은 왜 이래?” “애들이 날 원숭이처럼 생겼대요! 흑흑…원숭이란 별명을 달고 놀려준단 말이예요!” “아니 나쁜 애들! 사람의 인격을 그렇게  모욕하는 법이 어디 있니?!” 분하여 펄쩍 뛰던 엄마도 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내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꽁꽁 닫아버렸다. 사실 이건 엄마를 나무랄수도 없는 일이였다. 엄마라고 어째서 자식을 곱게 낳고싶지 않았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이 밉게 태여나기를 바라겠는가. 자식을 낳는 일이 어디 곱게 낳고싶으면 곱게 낳고 밉게 낳고싶으면 밉게 낳고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이 밝은 세상을 보게 해준것만해도 아빠 엄마에게는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왜 나만 하필 이렇게 밉게 태여났나? 조물주도 정말 불공평하지. 애금이는 너무 이쁘게 만들어주면서도 왜 나는 너무 추하게 빚어놓았담? “녀성은 꽃이라네”하는 노래가사도 있다싶이 녀자는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왜 나만은 녀자인데 이리도 추하게 빚어놓았단말인가! 빌어먹을 조물주! 망할놈의 조물주! 나는 조물주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저주했다. 나는 내가 슬픈 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웃음을 잃었다. 그리고 학급의 모든 애들을 증오했다. 남자애든 녀자애든 잘난체하는 애들을 모두 증오했다. 나하고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애금이를 내놓고는… 애금이는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나는 그애를 따라 공부에 애썼다. 그런 덕에 나는 애금이와 같은 중점고중에 붙었고 또 같은 의과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였다. 대학에서도 애금이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여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애금이와 함께 다닐 때면 나는 늘 자비감을 느끼곤 했다. 우리가 나란히 거닐 때면 만나는 사람마다 “와, 저 녀학생이 미인인데!”하고 감탄하면서 그애한테만 관심을 돌리고 나같은건 영 무시해버린다. 그러면서도 애금이랑 붙어다니는 리유는 가련하기 짝이없는 허영심때문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우리 아버진 무슨 사장, 우리 아버진 무슨 국장”하고 아버지를 등대고 우쭐하듯이 나도 “난 애금이와 가장 친한 사이야”하는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싶었던것이다. 어디로 가나 인기가 있는 애금이, 사람마다 칭찬하는 애금이, 남자들마다 침을 흘리는 애금이…이런 애금이와 가장 친한 친구란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쟨 애금이와 가장 친한 사이래!” “야, 부럽다! 난 애금이와 친하고싶어도 연줄이 없어서 못친하는데…” 애들이 이렇게 겉으로 드러내놓고 얘기를 아니해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부러워하는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런 허영심마저 없었다면 나는 나를 무시하는 남학생들앞에서 여태껏 버텨내지 못했을것이다. 그리고 나는 애금이와 친한덕에 많은 남학생들의 품에 안겨볼수 있었다. 고중때도 그랬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나에게 잘 보이려는 남학생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던 애들이 커피를 사준다, 저녁을 사준다, 나이트클럽에 청한다하며 나를 공주모시듯 했다. “저…오늘 시간 있어?” 어느날에 또 한 남학생이 나한데 다가와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보리자루”란 별명을 가진 애였다. 보리자루는 인물도 잘 생기고 공부도 잘 했지만 녀학생들앞에서는 얼굴만 붉히며 두마디이상의 대화도 못하는 애였다. 그래서 어느 계집애가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란 말을 간략해서 “보리자루”란 별명을 달아주었던것이다. 나는 이 보리자루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척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글쎄. 시간이야 짜내면 있을수도 있지만…왜? 나랑 데이트하자구?” “그…그래. 가자, 내 저녁 사줄게.” 나는 못이기는체하며 보리자루를 따라갔다. 그날 저녁에 잘 먹고 잘 마시고나서 3차로 노래방까지 가서 잘 놀아댔다. 나는 보리자루와 함께 사랑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보리자루의 품에 폭 파묻혀서 춤을 추기도 했다. 보리자루는 싫으면서도 마지못해 나를 안고 춤을 추는 눈치였다. 노래방에서 나와서 조용한 곳에 이르자 보리자루는 나를 불러놓고 무슨 할말이 있는듯 머뭇거리는것이였다. 그가 한동안 머뭇거리기만 하면서 입을 열지 못하자 나는 그를 차갑게 쏘아보며 따져 물었다. “말해봐. 오늘 저녁을 사준 의도가 뭐지? 나한테 프로포즈하려는거냐?” “헤헤…그래. 프로포즈하려는건 옳은데…” “어머! 난 동의다! 래일 당장 결혼등기하러 가자!” 나는 보리자루의 속셈을 빤히 알면서도 짐짓 오해한척 하며 그의 품에 뛰여들었다. 그러자 그는 황급히 나를 밀어내며 말을 더듬었다. “저…저…그…그게 아니야!” “그럼 뭐냐?” “저…저…이걸…” 그는 호주머니에서 편지 한통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내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이걸 애금이한테 전해줘!” “애금에게 줄게면 네가 직접 줄게지 왜 내손을 걸치는거냐?” “그애를 만나면 떨려서…” 그래. 떨리기도 하겠다. 구변이 뛰여난 애들도 애금의 앞에서는 자신이 없다면서 내 손을 빌리는 판인데 하물며 제 앞의 말도 변변히 못하는 보리자루임에랴. “이건 내가 밤잠도 못자면서 쓴거야. 569일동안 짝사랑을 하면서…꼭 애금이한테 전해줘. 부탁한다.” 나는 보리자루의 진정에 감동되여 기숙사에 돌아가자마자 그 련애편지를 애금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뭐냐?” “한 남학생의 마음이 담긴 꽃편지…” “아니, 너 또 쓸데없이…” 애금이는 그 편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땅바닥에 내던지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왜 이따위 심부름만 하는거야? 다신 남자애들 손에서 이따위걸 받아들고 오지마!” “성내지 말고 읽어봐. 이건 널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미남자가 569일동안 짝사랑을 하면서 쓴 마음속 고백이란다.”  “시끄러워! 애송이 동창생들은 내 눈에 들지 않으니 다시는 그애들의 심부름을 하지마. 기어코 하겠으면 너나 그애들과 련애해라.” “이 가시나야, 사람을 놀리지 마. 그애들이 나같은걸 눈에 들어할리 있니? 너무 재지 말고 남이 정성껏 쓴 편진데 읽어보기나 해. 그런 다음에 싫으면 싫다고 한마디라도 적어줘. 적선하는 셈치고. 그래야 나도 할말이 있지.” “시끄럽다는데 왜 자꾸 그래?” 애금이는 버럭 화를 내며 돌아섰다. 상놈의 계집애, 잘 났다고 우쭐대긴! 나한테 프러포즈하는 남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난 너무도 행복하여 막 울어버렸을거야. 이튿날에 나는 보리자루를 만나 편지를 도로 돌려주었다. 개봉도 하지 않은 편지봉투를 본 보리자루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건…애금이한테 전해주지 못한거야?” “전해줬어. 그런데 그앤 거들떠보지도 않고 팽개치더라.” “보지도 않았단 말이냐?! 읽어보지도 않고…” 보리자루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새파랗게 질리는것이였다. 나는 그만 보리자루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구혼하다가 퇴짜맞은 기분이 어떤지, 거절당한 실련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하는건 당해보지 않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애금이한테 련애편지를 보냈다가 퇴박맞은 보리자루의 몰락을 보고 실련이란 두 글자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게 되였다. 그후부터 워낙 말수가 적던 보리자루는 완전히 벙어리가 되였다. 온종일 멍하니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보리자루는 얼마후 혼자서 이 거리 저 거리 쏘다니며 “읽어보지도 않고…읽어보지도 않고…”하고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그는 결국 미쳐버렸던것이다. 보리자루가 미쳐버린후 나는 더는 남학생들의 련애편지심부름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에게 잘 보이려고 커피도 사고 춤도 청하던 남학생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가더니 마침내 한놈도 얼씬하지 않았다. 제기랄, 얼굴이 반반한 녀자애들궁둥이만 쫓아다니는 수컷들! 그런데 남학생들이 떨어져나가자 이번엔 녀학생들이 나하고 바짝 친하려고 달라붙는게 이상했다. 그무렵에 녀자애들은 누구나 나하고 단둘이 다니기를 좋아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나하고 애금이가 나란히 붙어다니는것을 보고 부러워 그러는것인줄로 알았다. 그래서 멋도 모르고 좋아서 그 애들에게 끌려 도서관으로 가도 함께 가고 쇼핑하러 가도 함께 갔다. 어제는 달숙이가 잡아끌었고 오늘은 해란이가 끌어당기고해서 나는 끊임없이 그애들의 짝이 되여줘야 했다. 그 애들은 특히 나를 데리고 자기의 남자친구의 앞에 나타나기를 특별히 좋아했다. 나는 그것이 그 애들이 내 앞에서 자기의 남자친구를 자랑하기 위한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자존심이 상하는대로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그냥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나는 뭔가 이상한것을 발견했다. 나하고 함께 다니는 애들마다 다른 애들에게 똑같은 칭찬을 받는게  아닌가.  “어머나, 저 애가 이전보다 예뻐진걸 봐.” 그 애들의 남자친구들도 놀란 눈길로 바라보며 “와, 우리 XX씨 오늘따라 이쁜데!”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그러다가 무슨 화장품을 쓰느냐, 어느 미용원에 다니느냐고 꼬치꼬치 따져묻기도 했다. 한번은 같은 반에 다니는 김양과 함께  쇼핑하러 나갔다가 거리에서 중문학부에 다닌다는 김양의 후배고향친구를 만났다. 그 후배는 김양을 보자 “어머, 언니 예쁘게 번졌다!”하면서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김양은 오래간만이라면서 후배를 다방에 청했다. 김양과 후배가 자리에 앉을 때 나는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볼일을 마치고 나오니 김양과 후배는 내가 다가온줄도 모르고 신나서 이런 말을 주고받는것이였다. “언닌 무슨 화장품을 쓴거야? 그리고 어느 미용원에 다닌거야? 예뻐진 비결을 좀 가르쳐 줘!” “난 고급화장품을 쓴것도 아니고 미용원에 다닌것도 아니야.” “그럼 비결이 뭐야?” “비결? 호호호! 넌 나하고 함께 온 애를 봤지? 그애가 바로 고급미용사야!” 나는 그만 어정쩡하였다. 내가 고급미용사라니? 내가 언제 미용술을 배운적이 있었던가? 저 애가 불긴 부는데…난 부동의 자세로 그냥 그 애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 언닌 고급미용사랑 친한게 정말 좋겠소! 그런데 그 고급미용사에게 독특한 미용비결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비결은 무슨 비결. 그냥 그 애하고 함께 다니면 자연적으로 미용이 되는거야. 1전 한푼 쓰지 않고.” “언니두 참, 그저 그 고급미용사와 함께 다니면 자연히 미용이 된다니? 사람 놀리는게 아니우?” “넌 참 둔하기두! 그것도 못 알아듣겠냐? 넌 나하고 같이 온 그 애 생김새를 봤지?” “그 고급미용사…히히, 언니 솔직히 말해서 난 그렇게 못생긴 녀자를 난생 처음 봤소! 아하, 그러니까…언니 알았소!” 김양의 후배가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듯 무릎을 탁 쳤다. “그러니까 그렇게 추하게 생긴 녀자랑 함께 다니니 두 사람이 선명하게 대비가 되면서 언니가 더욱 돋보이고 예뻐 보인거였군요!” 거기까지 들은 나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분하여 부들부들 온몸을 떨다가 나는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내가 저도 모르게 그 애들의 “고급미용사”노릇을 해주었다니! 아아, 이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할가!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애금이가 나하고 함께 다니길 좋아한것도 이 때문이 아니였을가? 괘씸한 가시내! 오라질 가시내!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네가 어찌 나한테 그럴수 있니? 그후부터 나는 누구와도 단짝이 되여 다니지 않았다. 혼자서 묵묵히 걸어다니고 혼자서 묵묵히 생각하고 혼자서 묵묵히 공부에만 열중했다. 그럭저럭 슬픈 녀자의 대학생활은 끝나고 애금이와 나는 졸업후 또 운명처럼 같은 병원에 취직하게 되였다. 병원에서도 애금이와 나는 같은 의사였지만 판이한 대우를 받았다. 애금이는 선배의사나 간호사, 환자들에게 귀염받고 칭찬받는 대상이였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신세였다. 게다가 애금이는 다음 원장후보로 물망에 오르고있는 젊은 미남닥터와 약혼까지 한 사이여서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는 또 한번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녀는 잘난 인물덕에 시대의 총아로 가는곳마다 떠받들리는데 나는 왜 시대의 불행아로 태여나 어디가나 무시당해야만 하는가! 아아, 비참한 내 인생, 불쌍한 내 신세여! 이때로부터 나는 애금이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마음속깊이 줄곧 그녀를 질투해왔는지 모른다. 나는 애금의 미모를 볼때마다 “주여, 저애의 얼굴이 주근깨투성이로 되게 하여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기도 했고 “저애의 얼굴이 저애한테서 실련당한 남자들의 칼에 긁히여 바둑판이 되거나 류산벼락을 맞고 험상궂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하고 마음속으로 빌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기도하면 할수록 그녀의 얼굴이 도리여 더 예뻐지는게 아닌가! 그녀가 잘못되기를 저주하면 할수록 더 잘되는게 배아파 못견딜 지경이였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마침내 불행이 닥쳐왔다. 그해 3.8절에 병원에서 회식을 조직하여 우리는 “먹자술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배터지게 먹은 다음 과별로 따로 “놀자노래방”에 가서 불러라 추어라 하며 싫컷 놀았다. 거기서도 나는 무시당하는 꼴이여서 춤짝이 없었지만 내 멋에 논다고 마이크를 잡고 목청을 뽑아댔다. 노래방에서 헤여질 때 같은 기숙사에 든 애금이와 나는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평소엔 원장후보가 늘 애금이를 기숙사까지 바래다주었는데 이날은 원장후보가 출장중이여서 그녀와 나는 오래간만에 길동무가 되였다. 노래방에서 기숙사까지 거리가 멀지 않은데다가 차안이 답답하다고 하며 애금이는 걸어가자고 했다. 때는 새벽 2시, 거리엔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외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우리가 작은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승용차 한대가 우리 옆에 와서 멎더니 별안간 세 괴한이 뛰쳐나와 우리의 손목을 꽉 잡는것이였다. 나는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애금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걸했다.   “이…있는 돈을 다 드릴테니 제…제발 목숨만은 사…살려주세요!” “우린 돈도 싫고 목숨도 싫어!” “그…그럼 원하는게 뭐죠?” “원하는게 뭔가구? 으하하!” 사내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가씨, 시치미를 떼고있군. 그래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게 뭔지 모른단 말이요? 우린 마흔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간 불우총각이란 말이요!” “헤헤, 그렇소. 아가씨들, 오늘 선심 좀 베풀어 우리 불우총각 장가 좀 들게 해줘요!” 알고보니 이 놈들은 돈이나 재물을 빼앗고 살인하는 강도가 아니라 녀자몸을 탐내는 색마였구나. 놈들의 정체를 알게되자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애금이는 제발 놓아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난 날 잡아가시오 하고 얌전하게 가만히 있었다. 이거 공연히 놀랐잖아. 목숨을 빼앗는 강도라면 두렵지만 몸을 빼앗는 호색한이야 두려울것도 없지. 달라면 주면 되니까. 주고싶어도 줄 남자가 없어 고민이였는데 차라리 잘됐잖아. 밤에 잠자리에 누워 괴한에게 강간당하는 상상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어떤 날 밤에는 거리에 막 달려나가 아무 남자나 붙잡고 몸을 맡기고싶어 발광하기도 했지. 그런데 오늘 드디여 그 소원을 이루게 되는구나. 나는 눈을 꼭 감고 그 시각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를 붙잡고있던 녀석이 갑자기 내 손을 홱 뿌리치며 덴겁한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에씨, 재수없어! 이 계집은 원숭이처럼 생겼잖아.” “뭐가 원숭이야?” 다른 녀석이 와서 나를 눈여겨보더니 구토라도 할듯 왝왝 구역질을 해대며 뇌까렸다. “퉤! 퉤! 메스꺼워! 박색이라도 이런 박색은 처음이야! 30년전에 먹었던 오그랑죽이 다 올라오겠어!” “히야, 내껀 절색이야!” 그때 애금이를 붙잡고있던 녀석이 환성을 질렀다. 그러자 내 쪽에 있던 두 녀석이 애금이한테로 다가가 보더니 감탄하는것이였다. “야아, 천하일색이군! 우리 함께 나눠먹자!” “왔다다! 오늘은 내 먼저다!” 세 호색한은 저항하는 애금이를 강제로 차안에 밀어놓았다. 나는 나절로라도 따라간다는듯 차곁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때 세 녀석이 나를 무섭게 쏘아보더니 그중 한 녀석이 발길로 내 궁둥이를 차면서 꽥 소리질렀다. “야야, 이 원숭이야, 넌 저리 썩 물러가라!” 애금이만 달랑 싣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승용차의 뒤모습을 쏘아보던 나는 너무도 분하고 억울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원통하구나! 녀자로 태여나서 강간조차 거절당하다니! 강간당할 자격마저 없다니! 비참한 내 인생이여! 남들은 강간당한것이 분하여 운다지만 나는 강간당하고싶어도 강간당할 자격마저 없는것이 분하여 울었다. 나는 제 설음에 겨워 애금이가 당한 봉변도 잊고 혼자서 훌쩍훌쩍 울다가 기숙사로 돌아왔다. 량심적으로 말해서 나는 공안국에 사건을 제보하고 애금의 집에 알리면서 애금이를 구출하기 위해 힘써야 했다. 하지만 그놈의 쓰잘데없는 질투때문에 나는 그녀의 불행을 기뻐했다. 잘코사니! 잘났다고 으스댈적에 알아봤지.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인물로 흥한 넌 인물로 망한게지. 흐흐, 이제 소문나면 넌 그 원장후보닥터에게 시집가긴 다 글렀어! 이튿날에 출근한 난 애금이가 지난밤에 세 색마에게 륜간당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워낙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지는 법이라 얼마 안되여 병원안팎에 애금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출장갔던 원장후보도 돌아왔으니 그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이제 나에겐 애금이가 머리도 못들고 다니다가 원장후보에게 채이는것을 통쾌한 기분으로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일은 뜻밖에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번져갔다. 사람들은 애금의 불행을 동정하면서 강간범만 욕해댔다. “짐승보다 못한 새끼들, 우리 병원의 꽃을 짓밟아놓다니?! 그놈의 물건을 썩둑 잘라서 씨를 말려야 해!” 그리고 나중에는 애금이가 당하는것을 보고도 제보하지 않은 나를 타매하면서 “생긴게 못났더니 하는 짓마저 얄밉다”고 질책하는가 하면 “차라리 못생긴 제가 당하고 애금이를 구했더라면 마음씨 곱다는 말이나 듣지”하고 나무람하기도 했다. 원장후보는 또 애금이를 전보다 더 끔찍하게 사랑해주면서 다음달로 결혼날자까지 잡았던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비참해진건 나밖에 없었다. 하느님도 무정하지. 왜 이 몸을 추하게 만들어놓고 이다지도 고달프게 한단말인가. 그래 내가 추하게 태여난게 죄였단말인가! 애금이가 결혼하는 날에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덧 마흔살이란 나이를 먹었다. 마흔살이 되는 그해 가을에 나는 정말로 절망에 빠져 개코같은 내 인생을 종말 지으려고 마음먹었다. 이제 더 살아보았자 그저 그렇고 그런 내 인생에 쨍 하고 해뜰 희망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마흔살 로처녀가 되여 남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가련한 이 몸을 저 부르하통하에 던져 물고기들에게 은혜나 베풀자. 비장한 결의를 다진 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강가로 나갔다. 그런데 배놀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투신자살하는데 방해가 되였다. 자살하기 적당한 곳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하남다리에 올라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것만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눈을 꼭 감고 “아빠, 엄마, 절 낳아주신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불효녀는 갑니다”하고 마음속으로 외운후 다리아래로 뛰여들었다… 이렇게 나는 죽었다. 죽어서 나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 그런데 그 세상 사람들도 나를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는 내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그러는것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통곡했다. 죽으면 이런 고통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저승에서도 이런 고통이 따를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니, 녀사님은 왜서 그렇게 예쁜 얼굴을 가리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한번만 더 보여주십시오!” 내가 두손을 내리우고 보니 숱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와, 절세미인이구나!”하면서 감탄하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들이 나를 놀려주는것이라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들은 불쌍한 녀자를 놀리는것이 그렇게도 기분이 좋습니까? 이승에서도 이런 수모를 견디지 못해 저승으로 왔는데 여기서도 이러면 난 어떻게 살라고 그럽니까? 아니, 이승에서는 그래도 내가 못생겨도 원숭이처럼 못생겼다고 사실대로 말해주면서 놀려주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나를 원숭이구경하듯이 바라보면서도 잘생겼다고 비꼬아대니 아아, 지옥이라고 이런 지옥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슬픈 녀자로 태여나 죽어서도 슬픈 녀자로 된 내 운명이 너무 슬퍼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보고 화를 내는것이였다. “아니, 이 녀자봐라! 그렇게 예쁜 얼굴을 가지고도 못생겼다고 울기까지 하니 그래 우리를 못생겼다고 놀리는게 아닌감?” 나는 정말로 어리둥절해졌다. 저승에서는 미적표준이 달라진걸가? 나처럼 못생긴 사람이 미인인걸가? “선녀처럼 예쁜 녀사님, 어디 한번 비춰보세요!” 그때 누군가 나한테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급히 거울을 들고 보았다. 거울속의 내 얼굴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어쩌면 내 얼굴이 애금의 얼굴로 변할수 있다 말인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애금의 얼굴…그러니깐 이승에서 못생긴 얼굴로 살아온 한을 저승에서 풀라고 이렇게 얼굴을 바꿔준걸가? 나는 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저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있었다. 나도 호기심이 들어 뒤따갔다. 사람들은 방금 이승에서 죽어서 여기로 온 녀자를 둘러싸고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녀자를 보고 “어머, 세상에! 저렇게 못생긴 녀자도 있네! 원숭이처럼 생겼잖아?”하고 놀려주는것이였다. 사람들속을 비집고 들어가 그 녀자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녀자는 바로 내였다. 아니, 나의 얼굴을 가지고있었다. 나를 본 그 녀자도 놀란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앗, 당신이 어떻게 내 얼굴을 가지고있어?!” 알고보니 그 녀자는 애금이였다. 살아서 미인이였던 애금이는 죽어서 못생긴 내 얼굴을 가지게 된것이다. 잘코사니! 애금이한테 다가간 나는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승에서는 잘 났다고 우쭐대도 여기서는 이승에서의 나처럼 맨날 눈물코물 쥐여짜며 수모를 당해야 해. 이 원숭이처럼 못생긴 간나새끼야!” 그런데 애금이가 갑자기 “내 얼굴을 내놔! 내 얼굴을 내놔!”하며 나한테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발로 내 어깨를 깨물었다. “앗!”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 깨여났군요!” 웬 녀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예쁜 간호사가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나는 병원의 침대에 누워있었던것이다. “내가 어떻게 되여…” “왜서 그런 나쁜 마음을 먹었어요? 저의 남자친구가 물에 뛰여든…” 간호사는 나를 뭐라고 부를지 생각하는것 같더니 잠시후 말을 이었다. “저의 남자친구가 언니를 구했어요. 이렇게 살아났으니 정말 다행이예요.” “거…거울 좀…”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간호사는 어리둥절해다가 한참후에야 깨달은듯 손거울을 찾아가지고 왔다. 나는 빼앗다싶이 거울을 나꿔챘다. 그리고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거울을 든 손이 바르르 떨렸다. “저…언니, 아마도 얼굴때문에 고민하는것 같은데 사실 저도 이전엔 영 못생겼어요. 그런데 3년전에 성형수술을 받고 지금처럼 예쁜 얼굴로 변하고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였어요. 그러니 언니도 희망을 가지세요. 제가 절 수술해주었던 성형외과의사를 소개해줄가요?” “필요없어요.” 나는 간호사의 호의를 거절했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홀로 강뚝을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온것도 내 운명일것이다. 아직은 죽지 않을 운명이라면 다시는 죽음을 택하지 않을것이다. 그럼 계속 슬픈 녀자로 살아갈것인가? 성형수술을 받고 애금이처럼 아름다운 얼굴로 살아갈가? 아니, 나는 내가 생긴대로 살아가련다. 슬픈 녀자가 이닌 못생겨도 제 잘난 멋에 웃으며 멋있게 사는 녀자로…아마도 이것이 나를 죽지 못하게 한 주의 뜻이 아니겠는가?    
27    엄마야 누나야 댓글:  조회:3405  추천:2  2014-06-06
엄마야 누나야  김희수   엄마가 간지도 10년, 누나가 간지도 5년이 된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그 10년을, 그 5년을 형국이는 밤마다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며 견뎌왔다.   《엄마, 어서 돌아와 응? 누나, 어서 돌아와 응?》 엄마에게서 전화가 올 때마다 형국이는 그렇게 간절히 애걸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냥 그 대답뿐이였다. 《좀만 더 있다가 응? 1년만 더 기다려 응?》 그런데 그 1년이 어느새 5년이 되고… 5년후에는 또 누나까지 데려갔다. 《엄마, 가지 마. 응? 누나, 가지 마. 응?》 형국이는 엄마가 갈 때도 그렇게 울면서 빌었고 누나가 갈 때도 그렇게 울면서 빌었다. 그러나 엄마도 누나도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훌쩍 떠나버렸다. 형국이는 엄마를 그리며 10년, 누나를 그리며 5년을 살았다. 그런데 아직도 엄마와 누나는 돌아오지 않는다. 어제도 할머니가 많이 앓는다고 전화했다. 그랬건만 엄마와 누나는 입원비를 부쳐보내겠다면서 돌아오겠다는 말은 아예 하지 않았다. 7년전, 아버지가 앓을 때도 그랬다. 치료비만 부치고 안부를 묻고는 끝이였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다고 했을 때에야 아차! 했다. 엄마가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가 벌써 운명하신후였다. 아버지의 후사를 치르고 엄마는 또다시 떠나갔다. 왜서 그렇게 가야만 했는지 형국이는 리해가 되지 않는다. 말로는 널 대학까지 공부시켜야지, 그리고 남부럽잖게 잘살아야지 하는것이 리유였다. 엄마가 널 공부시키기 위해 애면글면하는데 공부를 잘해야지. 아버지도 생전에 그렇게 말했지만 형국이는 웬 일인지 공부가 잘되지 않는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고 아무리 애써도 공부가 잘되지 않는다. 형국이의 학급에는 형국이처럼 부모가 출국한 애들이 많았다. 서로의 고민을 알아주는 그 애들과는 못하는 말이 없었다. 《임마, 넌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늘 전화도 해주고 돈도 부쳐보내지 않니? 그리고 너의 아버지와 리혼도 하지 않고…》 형국이가 엄마에 대한 불평만 하면 엄마에게 버림 받은 그 애들이 그랬다. 형국이는 그런 애들의 엄마에 비하면 자기 엄마는 그래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애쓰시는데 공부를 잘하려고 마음먹어도 웬 일인지 공부가 잘되지 않는다. 엄마가 떠난후에는 그래도 8년 년상인 누나가 있어서 괜찮았다. 외롭고 쓸쓸할 때면 누나가 엄마도 돼주고 아빠도 돼주고 하며 자상한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누나가 있을 때까지는 공부도 학급에서 앞자리였다. 그래서 대학에 붙는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가 세상 뜬후 누나도 훌쩍 떠나버렸다. 웬 일인지 누나까지 떠나간후 형국이의 학습성적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신심 없이 시험장으로 들어갔던 형국이는 고개를 푹 숙인채 맥없이 걸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가 그때부터 몸져눕기 시작했다. 과연 시험성적도 대학입학점수선 미달이였다. 엄마와 누나가 자꾸 전화로 점수를 얼마나 땄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형국이는 엄마와 누나가 시험점수를 알면 속상해할가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려버렸다. 그러면 엄마와 누나는 돈은 얼마든지 대줄수 있으니 올해 붙지 못하면 명년에 다시 치라고 고무하지만 형국이는 공부를 다시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엄마와 누나가 어서 돌아오기만 기대했다. 형국이는 속상하거나 외로울 때마다 강변으로 나온다. 강가를 거니노라면 빨래하던 엄마의 모습과 미역 감던 누나의 모습이 삼삼히 떠오른다. 엄마는 세탁기를 두고도 늘 빨래하러 강변으로 나오군 했다. 그때마다 누나도 따라나와 미역 감고 형국이도 팬티바람으로 미꾸라지를 잡는다고 설쳐댔다. 까르르 깔깔… 그가 맨손으로 미꾸라지를 잡으면 엄마도 웃고 누나도 웃었다. 생각하면 그때가 제일 좋았다.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강변에 빨래하던 엄마도 없고 미역 감던 누나도 없다. 《왜 누나까지 가야 해? 가지 않으면 안되나?》 형국이는 누나가 떠날 때 눈물이 글썽하여 물었다. 《얘야, 남들처럼 잘살아야지. 널 대학공부시키고 장가보낼 돈까지 벌어가지고 올게.》 누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떠나버렸다. 외할머니께서는 엄마 어릴 때에는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강냉이떡을 먹고 해진 옷을 다닥다닥 기워 입으면서도 온 집식구가 아기자기 웃으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때는 아무리 가난해도 가족이 서로 떨어져사는 집이 없었단다. 엄마 학교 다닐 때에는 부모들과 떨어져사는 애들이 거의 없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호화로운 아빠트(형국이는 아빠트를 비워두고 옛 동네 할머니의 집에서 살았다)에서 현대화가전제품을 구전하게 갖추고 살면서도 엄마와 누나는 만족을 모른다. 날마다 엄마와 누나를 그리던 어느날, 형국이는 갑자기 몸이 아파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상세하게 검사하더니 련계전화를 남겨놓고 가라고 했다. 형국이는 할머니가 근심할가봐 이모네 집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 그런데 이튿날에 이모가 찾아와서 입원하라고 했다. 《약을 먹었더니 다 나았어요. 이제 아프지 않아요.》 형국이가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지만 이모는 무작정 병원으로 끌고갔고 할머니도 따라오면서 자꾸 눈물만 훔쳤다. 《할머니, 내가 뭐 큰병에 걸린것도 아닌데 울지 마.》 《응, 할머닌 울지 않는다. 울긴 왜 울어.》 그런데 할머니는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형국이가 입원한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가 아프다면서… 엄마가 갈게.》 《아니, 괜찮아.》 그렇게 돌아오라고 애원해도 들은척도 하지 않던 엄마가 누나까지 데리고 형국이의 곁으로 날아왔다. 이모에게서 형국이가 불치의 병에 걸려 이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불행한 소식을 전해듣고 울면서 달려왔다. 그러나 형국이는 그때까지도 그런줄을 모르고있었다. 《또 출국하는가요?》 형국이는 엄마와 누나의 손을 잡고 물었다. 《10년이야. 인생이 얼마라고 혈육끼리 서로 헤여져 살아야 해? 이젠 안 가, 이젠 안 가!》 엄마와 누나는 눈물이 글썽해서 대답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죽는다던 형국의 병은 잘못 알려진것이였다. 형국이와 동성동명인 다른 사람의 병일줄을… 형국이는 인츰 퇴원했고 온 집안에 기쁨이 넘쳐났다. 형국이는 엄마랑 누나랑 함께 살게 된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러나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달후, 엄마와 누나는 또 외국으로 떠났다. 가지 말라고 그렇게 애원하는 형국이를 무정하게 남겨놓고…  
26    딸집나들이 댓글:  조회:4859  추천:4  2014-01-04
대중소설   딸집나들이   김희수   강태호는 외동딸을 시집보낸후 처음 딸집으로 갔다. 딸이 먼 해변가 도시로 시집을 갔기때문에 한번 딸집으로 행차하자해도 쉽지 않았다. 한해에 한번씩 춘절마다 딸과 사위가 왔다가면 그뿐이였다. 그런데 올해엔 딸이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희소식이 날아와서 손자를 안아보러 가야겠다고 준비를 서두르는데 뜻밖에 또 사위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였다. 워낙 몸이 불편한 그의 처 서씨는 락루하며 주저앉았고 그가 혼자서 《불쌍한 내딸아!》하며 부랴부랴 짐을 꾸려가지고 남행렬차에 올라탔다. 강태호는 농촌에서 태여나 농촌에서 자란 농사군이였지만 농사엔 재미를 못붙이고 로씨야, 한국 등 외국을 나들며 장사도 하고 품팔이도 하여 백만장자의 행렬에 들어섰다. 하지만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그 향소재지 마을에 눌러 살았다. 도시에서 살면 소비가 많아 얼마 못가서 모아둔 돈을 다 날리고 만다는것이다. 그는 그랑데령감처럼 한심한 수전노는 아니였지만 돈은 딱 써야 할 데만 썼고 가까운 사람이 좀 꿔달라고 사정해도 일전한푼 꿔주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누가 아무리 3푼리자, 5푼리자를 준대도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그 돈을 가장 든든하다고 믿는 국가 저금에 꼭 넣어두고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딸집행차에 1만원 현금과 20만원 저금카드를 몸에 지니고 떠났다. 강태호를 실은 렬차는 역을 벗어나자 쏜살같이 달렸다. 빠른 속도로 줄기차게 달렸지만 강태호는 어쩐지 차가 느리게 가는것 같았다. 차가 두개 역을 지나자 그는 참지 못하고 두덜거렸다. 《젠장, 기차라는게 왜 이리 굼떠? 소수레를 타도 이보다 더 빠르겠어!》 《이 기차는 쾌속렬차입니다. 차창밖으로 달리는 속도를 좀 보십시오. 나는것 같지 않습니까?》 맞은 쪽에 앉은 나그네가 어이없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태호는 여전히 못마땅한듯 게두덜거렸다. 《에이, 기차가 아니라 개미가 기여가는것 같군!》 나그네가 재미있다는듯 태호를 보고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허허허, 그럼 손님은 비행기를 타시지 왜 기차를 타셨습니까?》 《이보시오, 돈이 없어서 침대차표도 못 끊고 이렇게 앉아가는 신세에 어떻게 비행기를 다 타겠습니까?》 《허허, 내 보기엔 손님은 돈이 많은 분 같은데요.》 《거참, 척 보면 농사군인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나같은 농민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허허허…》 《농민이라구요? 지금 농민들을 업신여길게 아닙니다. 농민들중에는 백만장자, 천만장자가 많답니다. 경제작물이요, 양식업이요, 남새재배요 하는 치부항목들로 부자가 된 분들도 있고 출국하여 떼돈을 번 분들도 있지요. 여하튼…》 《신문에 난 치부소식들을 보고 그러는구만. 그런 소식들은 대부분 허튼소리니 믿지 마시오.》 강태호는 속으로 (이 녀석이 그래도 사람보는 눈이 있어.)하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시치미를 뗐다. 나그네는 능글능글하며 그냥 말을 걸어왔다. 태호는 나그네와 이 얘기 저 얘기하노라니 시간가는줄 몰랐다. 알고보니 나그네는 연길에 집이 있는 장사군이였는데 그와는 목적지까지 동행이였다. 렬차는 밤낮 이틀을 달려서야 해변가 도시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내렸을 때는 오후 3시가 약간 지났다. 딸에게 전화를 거니 갓 출근해서 래일 아침에야 돌아온다는것이였다. 딸 애순이는 처음에는 흠칫 놀라는듯 하더니 이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아버지 오셨군요. 왜 오시기전에 전화를 안했어요?》 《내가 며칠전에 너 보러 온다고 했잖아?》 《그래도 언제 도착한다는걸 알려줘야지요. 제가 야근해서 아버지 절로는 집을 못 찾겠는데요. 어떻게 할가요?》 《금방 몸을 풀고 무슨 일을 한다구 그러냐? 쉬면서 몸조리를 해야지. 쯧쯧…》 《애아빠가 빚을 지고 죽어서 살기가 좀 바빠요. 아버지, 하루밤만 호텔에 묵으세요. 래일 아침 제가 모시러 갈게요.》 《내 걱정은 하지 말라. 네가 홀몸으로 갓난애를 데리고 살기가 어려울줄 알고 너한테 줄려고 돈 좀 가지고 왔다.》 《아이, 제가 아버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찌 아버지 돈을 받겠어요? 제가 저절로 살수 있으니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강태호는 딸이 고생하는것이 가슴 아팠다. 그래도 딸의 목소리가 명랑하고 밝아서 저으기 안심이 되였다. 그는 역에서 가까운 려관을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거기서 또 연길에 집이 있다는 나그네를 만났다. 그는 침대 둘 있는 방에 나그네와 함께 들었다. 통성명을 하자 연길나그네는 그를 강형이라고 불렀고 그는 나그네를 연길친구라고 불렀다. 려관주인이 와서 무슨 요구가 없느냐고 물었다. 손님의 요구는 뭐든지 다 들어준다는것이였다. 강태호는 아무것도 요구하는게 없다고 말했다. 주인이 나가자 연길나그네가 그에게 귀속말로 은근히 꼬드겼다. 《강형, 우리 둘이 아가씨 하나씩 부르지 않겠습니까? 여기 아가씨들이 모두 서비스 일류지요.》 《이보게, 연길친구, 여긴 노래방도 아닌데 아가씨를 불러 뭘 하겠습니까?》 《허허, 강형도 시치미를 뗄줄 아시는구려. 그러지 말고 특수서비스를 받아봅시다. 여기 아가씨들은 모두 예쁘고 몸매가 잘 빠졌을뿐만아니라 한번 부르기만 하면 끝내준답니다.》 연길나그네가 침을 꿀꺽 삼키며 꼬드겼지만 강태호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가 외국돈벌이를 나가 돈을 그만큼 모을수 있었던것도 녀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로씨야에 갔을 때 모두 금발머리아가씨를 안아본다고 장사한 돈을 털어도 그만은 정조를 지켰고 한국에 갔을 때 모두 끝내준다는 윤락녀의 몸속에 피땀으로 번돈을 집어넣어도 그만은 걸려들지 않았던것이다. 연길나그네가 다시 그를 건드렸다. 《강형, 한번 재미봅시다.》 《그럼 그쪽에서나 부르시구려. 난 싫어유.》 《나만 부르면 그쪽에서는 구경만 하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함께 놀아봅시다.》 《아니, 서로 보는 앞에서 그 따위 짓을 하겠다는겁니까?》 《그게 더 좋지 않습니까? 서로 하나씩 껴안고 놀다가 나중에 상대를 바꿔가지고 즐길수도 있으니 더 자극적이지요. 사실 난 그래서 독방에 들지 않고 강형과 함께 든겁니다.》 《아니, 이 연길친구 이제 보니 아주 저질이구려!》 《허허참, 강형, 듣기 거북하게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남자들은 밖에 나오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연길친구는 큰 부자는 아닌것 같은데 피땀으로 번 돈을 계집의 구멍에 망탕 집어넣자면 아깝지 않습니까? 또 마누라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강형, 난 이래 보여도 돈을 흥청망청 마구 써버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침대차표도 끊지 않고 여기까지 앉아오는걸 보면 모르겠습니까? 절약해야 할 때는 절약하고 써야 할 때는 써야지요.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살아있을 때 먹고 마시고 놀아야지요. 하지만 나는 항상 자신을 저울질 해보면서 자신의 분수에 맞게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놀지요. 마누라에게는 언제나 생활비용을 푼푼하게 준답니다. 생활이 넉넉하니까 마누라는 아무 군말도 없지요. 강형, 한평생 쥐처럼 한구멍만 파면 무슨 멋이 있겠습니까? 우린 기차에서 만난 친구지만 려관에도 함께 들었으니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내가 혼자 전부의 비용을 대겠으니 아기씨 하나만 불러다가 우리 둘이서 함께 즐겨봅시다.》 《놀려면 당신 혼자 노시오. 난 흥치가 없어요. 그러다가 병이라도 옮으면 재수없는거 아니시우? 괜히 마누라한테까지 옮겨놓았다가 경칠라구?》 《아니, 강형은 공처가 아니시우? 마누라가 그렇게 무서워요? 허허허. 그럼 아가씨는 그만 둡시다.》 연길나그네는 껄껄 웃었다. 저녁을 먹은후 강태호가 텔레비를 보려는데 연길나그네가 또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강형,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데 보지 않으려오?》 《뭘 그러는데…》 연길나그네는 가방에서 사진첩을 꺼내들고 강태호의 앞에 와서 펼쳐들었다. 그 사진첩을 바라보는 강태호의 눈이 대번에 화등잔처럼 커졌다. 사진첩에는 녀자의 가슴만 찍은 사진이 쭉 배렬되여 있었다. 연길나그네가 사진첩을 한장 한장 번지자 가지가지 류형의 젖가슴이 다 있었다. 수박처럼 커다란 젖통이 있는가 하면 탁구공처럼 빈약한 젖가슴도 있고 또 고무풍선처럼 다치면 금방 터질듯한 젖무덤도 있었다. 또한 묵모같은 예쁜 대접젖이 있는가 하면 쇠뿔같이 끝이 쀼죽한 쇠뿔젖, 병같이 길죽한 병젖, 사발모양의 사발젖, 연적같이 납작하고 작은 연적젖, 젖꼭지가 오목하게 들어간 구융젖 등 별의별 모양이 다 있었고 유두의 모양이나 색갈도 각각 달랐다. 《헉!》 태호는 흥분으로 하여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특히 녀자의 가슴에 집착하고있었다. 막내둥이로 응석을 받으며 자란 그는 다섯살 때까지 엄마의 젖을 빨았다. 열세살 때 그는 학교에서 돌아와 집문을 여는 순간 속옷을 갈아입던 누나의 커다란 젖통을 보고 처음 흥분을 느꼈었다. 그리고 마누라와 첫날밤에는 옷고름을 푼뒤 성급하게 젖가슴부터 헤쳐놓고 빨아댔다. 그후부터 그는 마누라의 젖통을 쥐고 자야 잠을 잘수 있었다. 《강형, 이건 진짜랍니다. 내가 디지털카메라로 직접 찍은겁니다.》 《직접 찍은거라구? 이런걸 어디서…》 《허허, 강형은 모르는구려. 이 고장엔 녀자들이 가슴만 내놓고 파는 지하장소가 있답니다.》 《가슴만 판다구? 어떻게…》 《가슴을 파는 녀자들은 문에 가슴크기만큼 두개의 구멍을 낸 곳에 서서 그 구멍으로 젖무덤을 내놓는답니다. 그러기에 손님들은 녀자의 얼굴은 물론 다른 부위도 볼수 없답니다. 손님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녀자의 젖가슴을 한바탕 빨고 만지고 즐기다 나온답니다.》 《젖이 큰 녀자면 구멍도 더 크게 내야겠군.》 《그 구멍은 자동으로 크기를 조절할수 있는 장치가 되여있어서 큰 가슴이건 작은 가슴이건 모두 젖통만 동그랗게 내놓인답니다. 강형, 우리 오늘밤 젖이나 빨러 갑시다. 거긴 성병에 걸릴 위험도 없으니 마음놓고 즐길수 있지요.》 연길나그네는 강태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강태호는 못이기는체하고 따라갔다. 강태호는 스스로도 그런 곳에 선뜻 따라가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는 로씨야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거기서 장사를 한지 1년쯤 되였을 때 훈춘친구, 도문친구, 룡정친구 등이 함께 있는 방으로 로씨야처녀가 들어왔다. 강태호가 안해밖에 모르는 사내라는 소문을 들은 로씨야처녀는 일부러 가슴을 헤쳐놓고 강태호한테 마구잡이로 덤벼들었다. 그바람에 강태호는 벽쪽으로 밀려갔다. 그녀는 다른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허옇고 커다란 젖가슴을 막 드러내며 로어로 뭐라고 지껄였다. 로어에 귀가 밝은 룡정친구가 소리쳤다. 《어이, 태호, 그녀가 젖을 빨아달라네. 어서 빨아주게나!》 《으흐흐! 어서 빨아주게!》 모두 손벽을 쳐대며 웃었다. 로씨야처녀의 수박같이 커다란 젖통이 코앞에서 흔들거렸다. 눈앞에서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탐스럽고 풍만한 젖가슴을 보자 강태호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숨쉬기조차 바빴다. 《헉!》 강태호는 더 지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푹 주저앉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후 모두들 태호를 입에 다 들어온 떡도 못받아먹는 바보라고 놀려주었다. 연길나그네는 태호를 신비한 장소로 데리고 갔다. 택시에서 내려 그 곳으로 들어가면서 연길나그네는 물었다. 《강형은 빈젖을 빨겠습니까, 진짜로 나오는걸 빨겠습니까?》 《진짜로 젖이 나오는것도 있습니까?》 《허허, 있다뿐이겠습니까? 그런데 좀 비싸지요. 빈젖을 빨고 만지는데는 10분에 1백원이고 나오는 진짜 젖을 먹는데는 1분에 1백원이지요. 시간만 되면 자동적으로 문이 스르르 닫혀버린답니다.》 《정말로 너무 비싸군. 이건 아가씨와 진짜로 노는것보다 더 비싸지 않습니까?》 《그래도 여긴 매일 만원이여서 손님들이 줄을 선답니다. 노래방에선 별로 만지지도 못하고 아가씨에게 팁만 50원씩 날리지 않습니까? 그 돈이면 모두 이런 곳에 오겠다고 한답니다.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녀자의 젖을 빨고 만지는 재미가 또 따로 있지요. 그런데 여기선 녀자와 절대 대화를 나누지 못한답니다. 가슴을 파는 녀자들은 몸을 파는 녀자들과는 달리 얼굴이 드러나는걸 몹시 두려워하지요. 그래서 혹시 목소리가 폭로되면 진면모가 드러날 위험이 있으니까 입을 열지 않고 손님들도 혹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지 몰라 벙어리질 하지요. 허허, 가슴만 파는 이런 장소가 생겼기에 못난 녀자도 가슴만 잘 달리면 큰돈을 벌수 있는 길이 열렸지요. 그 곳에 가면 손님들은 자기의 요구를 말합니다. 보스는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큰 젖을 요구하는 손님은 큰 젖이 달린 녀자의 방으로 안내해주고 작은 젖을 요구하는 손님은 작은 젖이 달린 녀자의 방으로 안내해주지요. 강형은 큰걸 요구합니까, 작은걸 요구합니까?》 《난 큰걸 선호하는 편이지요.》 《역시 남자군요. 강형은 빈젖을 요구합니까, 나오는걸 요구합니까?》 《빨러 온바엔 비싸더라도 진짜 나오는걸 빨아야지.》 《허허, 이제 보니 강형도 끼가 좀 있군요. 나도 역시 나오는걸로 하겠습니다.》 강태호는 5백원을 내고 5분동안의 입장권을 샀다. 8호방이 차례졌다. 8호실 문을 열고들어서니 안은 몸집이 비대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수 있을만큼 비좁았다. 마주선 나무벽을 똑똑 두드리자 자동적으로 두개의 동그란 구멍이 열리더니 그 구멍으로 두개의 젖무덤이 불쑥 나왔다. 크고 몽글몽글한 젖가슴이였는데 유두주위가 검은 자주빛이였다. 《헉!》 강태호는 솥뚜껑같은 손으로 젖통을 한손에 하나씩 잡아쥐였다. 너무 커서 잡혀쥐지 않았다. 그는 두손으로 왼쪽 젖을 먼저 잡고 탐색하듯 주위를 만지다가 입을 유두에 갖다댔다. 그리고 천천히 혀로 유두를 희롱하다가 힘껏 빨아들이자 비릿하고 찝찔한 액체가 입속에 흘러들었다. 그는 그것을 꿀꺽 삼켰다. 《헉!》 강태호는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엄마의 젖을 빠는 기분이였다. 녀자의 젖을 빨아먹어보기는 지금까지 세번째였다. 첫번째는 당연히 엄마의 젖이였고 다음은 마누라의 젖이였다. 마누라가 해산했을 때 그는 더욱 마누라의 젖에 집착하면서 딸과 함께 마누라의 젖을 나눠먹었다. 다행이 마누라의 젖이 많아서 그는 만족을 느낄수 있었다. 《어허헉!》 그는 혀로 젖무덤주위를 애무해나갔다. 그러다가 젖무덤에 유표나게 드러난 까만점을 발견하고 더욱 흥분된 그는 혀바닥으로 그 까만점을 마구 핥아댔다. 그는 다시 오른쪽 젖을 빨았다. 힘있게 흡입하자 짜릿한 액체가 기분좋게 입안을 간지럽혔다. 그는 그 맛을 아껴가면서 쭉 들이켰다. 느낌이 너무도 좋았다. 그런데 좋은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갔다. 미처 만족을 못느꼈는데 젖무덤이 안으로 쑥 들어가는것과 동시에 두개의 동그란 구멍도 자동적으로 스르르 닫혔다. 아쉬웠지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연길나그네도 나오는 중이였다. 그들은 려관으로 돌아왔다. 연길나그네는 코를 골며 깊은 잠이 들었으나 강태호는 까만 점이 유표나는 젖가슴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던 그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딸이 마중을 나와서 강태호는 연길나그네와 작별하고 딸집으로 갔다. 《애순아, 내 손자는 왜 안고 오지 않았느냐? 막 안아보고싶어 죽을지경인데.》 딸집으로 달리는 택시안에서 강태호가 물었다. 애순이 생긋 웃었다. 《아버진 할아버지가 되니 좋으세요?》 《그럼. 좋다뿐이겠니?》 《뭐가 좋겠어요?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면 늙었다는 표징인데…》 《사람이 늙는거야 자연의 법칙이지. 그래도 손자를 보게 되니 기분이 좋다.》 《애는 가정부에게 맡겨두고 왔어요. 제가 출근하면 가정부가 집에서 애를 봐요.》 《난 또 애를 탁아소에 맡긴다구. 월급이 얼마나 되기에 가정부를 다 쓰니?》 《그럼 어쩌겠어요. 회사엔 탁아소가 없지…》 택시는 어느새 딸집에 도착했다. 강태호는 딸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정부한테서 손자부터 빼앗다싶이 받아서 안았다. 《허허, 이 녀석이 외할아버지를 똑 떼 닮았구나! 요 내 손자야!》 《장군아, 외할아버지다. 외할아버지.》 《장군이라구? 그 녀석 정말 앞으로 장군이 될 상이로구나.》 아이는 낯선 사람에게 안기자 으앙 하고 울어댔다. 딸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허허, 그 녀석 낯을 가리는 모양이구나.》 그제야 강태호는 여유를 갖고 집을 둘러보았다. 객실 하나에 침실 두칸이였다. 《애아버지가 남겨놓은건 이 집 한채 밖에 없어요.》 《그래 출근하는 데는 어디냐?》 《일본에서 꾸리는 회사예요.》 《낮에 출근하는 데는 없냐? 애를 데리고 어떻게 밤일을 하겠느냐?》 《야근하면 돈이 많아요.》 《에그, 혼자서 애만 키우자해도 바쁘겠는데 야근까지 하며 무슨 고생이냐? 내 돈을 줄테니 애가 클 때까지 집에서 쉬면서 애나 봐라.》 《안돼요. 아버지 돈을 어떻게 써요.》 그때 애가 보채면서 울어댔다. 이미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은 아버지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젖통을 다 드러내놓고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었다. 강태호 역시 아무 생각도 없이 아이가 젖을 먹는 모습을 대견한듯이 바라보았다. 《허허, 그 녀석 잘도 먹는다.》 무심하게 딸의 젖가슴을 바라보던 강태호는 갑자기 몸을 휘청거렸다. 딸의 왼쪽 젖무덤에 까만 점이 유표나게 나있지 않는가! 《아!》 강태호는 온몸의 피가 꺼꾸로 흐르는듯 했다. ( 혹시? 이럴수가? 아닐거야. 공교로운 일치일거야. 아니야. 아니야. ) 연신 부정했다가도 ( 어쩌면 똑같은 왼쪽 가슴이지? 그리고 까만 점의 위치나 크기도 똑같아. 또 저 커다란 젖통의 모양은 너무나 눈에 익지 않는가! ) 하고 다시 의심이 꼬리를 쳐들면서 악몽을 꾸는듯 가슴이 섬뜩했다. 《아버지, 어디 불편하세요?》 시름없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다가 무심결에 아버지의 굳어진 모습을 본 딸이 놀라서 물었다. 《아, 아니…》 《그런데 왜 낯색이 이상해요?》 《아, 저…기차에 오래 앉아왔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그럼 어서 주무시세요.》 딸이 가정부를 시켜 베개를 가져오게 했다. 강태호는 베개를 베고 누우면서 물었다. 《그래 너네 회사에서는 야근만 하니?》 《네. 오후에 나갔다가 자정이 넘어야 돌아와요.》 《음…》 강태호는 낮게 신음하면서 눈을 꼭 감았다. 유표나는 까만 점이 자꾸만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그 어떤 예감이 그를 못견디게 괴롭혔다. 강태호는 출근하는 딸의 뒤를 미행했다. 그러다가 도중에 놓쳐버렸다. 다음날 다시 미행해서야 끝내 딸의 종착지점을 알아냈다. 예감이 틀림없이 맞았다. 한번 왔던 곳이지만 너무나 인상이 깊은 곳이였다. 그는 악몽을 꾸는것 같았다. (딸의 젖을 사먹다니?! 으흐흐…) 그는 주먹으로 마구 가슴을 치기도 하고 머리를 마구 집어뜯기도 했다. (에익, 더러운 쌍년! 내 손자가 먹는걸 아무 사내한테나 팔아?) 그는 주먹을 휘두르며 딸년을 욕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더러운 놈은 나지. 그런 곳을 찾아간 내가 더러운 놈이지. 내가 무슨 딸을 욕할 자격이 있단말인가? ) 하고 다시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그는 발길이 가는대로 정처없이 걷다가 날이 저물자 딸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강태호는 저금소에 가서 돈을 찾아서 딸의 이름으로 20만원을 저금했다. 그리고 밤새 쓴 편지와 함께 그 저금통장을 딸의 손에 쥐여주고 간다는 말도 없이 집으로 가는 렬차에 몸을 실었다. 한편 아버지가 쓴 편지를 읽어본 애순이는 경악했다.   애순아, 이 아비는 널 볼 면목이 없구나. 이 아비는 사람이 아니다! 이 아비는 너네 집에 오는 날 밤에 가슴을 팔고 사는 장소에 가서 어떤 녀자의 젖을 사먹었단다. 그런데 그 녀자의 왼쪽 젖가슴에는 유표나는 까만 점이 있었지. 그런데 누가 알았겠니?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네 가슴에도 똑같은 까만 점이 있을 줄을. 그 어떤 예감이 들어서 몰래 너의 뒤를 미행했더니 네가 출근한다는 곳이 바로 그 장소가 아니겠니? 아아, 이건 악몽이구나! 얘야, 이 아비는 너에게 미안하다. 부탁하건대 제발 그런 일은 그만두어라.   편지가 맥없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애순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가? 애순이가 꾸벅 무릎을 꿇고 부르짖었다. 《아버지, 추한 모습 보여드려 미안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께요!》    
25    파산전야에 가져가는 사람들 댓글:  조회:3560  추천:2  2013-12-29
대중소설   파산전야에 가져가는 사람들   김희수     20세기 80년대말에 신주대지에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고 시장경제가 들어서면서 수많은 국영기업들이 불경기를 맞아 “방학”하지 않으면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시기 어느 식료품공장도 결국은 파산되고 말았는데 지금은 이름조차 없어진 그 공장에서 그 당시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주 황당한 일들이 일어났다. 아래의 이야기들은 째이지 못하고 뒤죽박죽이 되였다. 하지만 공장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여서 이야기도 따라서 뒤죽박죽이 될수밖에 없었다.   1. 문지기와 집안도적 새벽 두시, 걸상에 앉은채 쪽잠이 들었던 접수실문지기 고털보는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깨여났다. 창문밖에서 세 녀성로동자가 창문을 두르리며 소리치고있었다. “고스푸(高师傅), 어서 대문 열어줘요!” 고털보는 쪽문으로 잰내비상같은 얼굴을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 꽃같이 예쁜 처녀 추매와 왈패 녀인 금자 그리고 못생긴 녀인 오나가 뭔지 모를 포대를 가득 실은 밀차를 접수실앞에 세워놓고 서있었다. 저걸 가지고 공장문을 나가려고? 고털보는 의심스러웠다. 그는 요즘 종업원들이 공장의 물건을 몰래 집으로 가져가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떤 종업원들은 공장문을 순조롭게 통과하기 위해 장물의 일부를 갈라내여 접수실문지기에게 주군 했다. 고털보도 여러번 이런 장물을 얻어가졌었다. 하지만 야금야금 가져가는 종업원들은 가끔 있었지만 이렇게 밀차들이로 가져가는 담큰 도적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고털보는 씽하니 문을 열고 나가 세 녀인의 앞을 막아섰다. “이 포대안의것은 뭐요?” 고털보가 포대끈을 풀어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금자가 고털보에게로 바싹 다가서며 눈을 곱게 흘겼다. “아이, 보면 모르오? 돼지먹이요!” “밤중에 무슨 돼지먹이를 이리 많이 실어가우? 내 어디 좀 볼가?” 고털보는 포대아구리를 헤쳐고 살펴보았다. 웃부분은 하품(次品)과자거나 일하다가 바닥에 흘린 밀가루를 쓸어모은 돼지먹이가 옳았지만 밑부분은 상품으로 완성품창고에 들어가야 할 정품(正品)과자였다. 그는 또 포대 몇개를 들어서 땅에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밀차밑부에 무슨 물건을 가득 넣은 마대가 드러났다. 그 큰 마대를 헤쳐보니 안에는 전부 차입쌀이 들어있었다. 요즘은 공장에서 한창 원소(元宵)생산에 바삐 돌고있었다. 원소를 만들려면 속을 만드는 원료도 있어야 하지만 찹쌀가루가 있어야 한다. 추매와 금자, 오나는 요즘 밤에 출근하여 찹쌀가루를 내는 일을 하고있었다. 그녀들은 다른 밤대거리패들이 퇴근한 자정에 출근하여 일을 하다가 중도에 과자와 찹쌀 한마대를 실어내다가 나누어 가지려고 했다. 먼저 주일에는 돼지먹이라고 하여 다른 문지기들을 깜쪽같이 속였는데 오늘은 재수없이 고털보에게 덜미를 잡힌것이다. 공장에서는 이전에 하품과자거나 땅바닥에 흘린 원료를 쓸어모은 밀가루따위 식료품찌꺼기들을 일률로 창고에 바친 다음 다시 값을 쳐서 돼지먹이로 처리했지만 지금은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없이 가져가고싶은 사람이면 모아두었다가 일전한푼 내지 않고서도 공장문을 무사통과했다. 세 녀인은 바로 이런 빈틈을 리용하여 사욕을 채우려고 했던것이다. “흥, 이것도 돼지먹이요?” 고털보는 발로 찹쌀마대를 툭툭 차면서 세 녀인을 쏘아보았다. “보아하니 여러번 해먹은 솜씨구만. 밑엔 장물을 감추고 우엔 돼지먹이로 가리워놓고…” 다른 사람같으면 당황하여 용서해달라고 빌기라도 했을테지만 담이 큰 금자는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아이, 고스푸가 돼지먹이라고 하면 돼지먹이가 되는게 아니겠소? 한번만 눈감아주오. 양?” 왈패로 소문난 금자는 고털보의 몸에 가슴을 막 들이대면서 애교를 떨었다. 금자는 마흔살이 다 되였지만 아직도 처녀때의 매력이 여전했다. 녀인의 가슴이 딱 붙어왔지만 두터운 깃털옷때문에 전기가 안통했는지 고털보의 눈길은 예쁘고 나어린 추매에게 쏠려있었다. 금자를 밀치고 추매의 가슴을 노려보던 고털보는 접수실쪽문을 열고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아니, 뭘하려고 그래요?!” 깜짝 놀란 추매가 소리질렀다. 고털보는 추매를 삼켜버릴듯이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난 공장내부의 큰 도적을 잡았다고 보위과장네 집에 전화를 걸겠어!” “제발 전화하지 마세요!” 당황해난 추매가 고털보의 손에 매달리며 애걸했다. “고스푸, 다신 안그럴테니 이번만 눈감아줘요.” 고털보는 예쁜 한족처녀의 앵두같은 입술을 노려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눈감아달라구? 글쎄 눈은 감을수 있는데 내 입은 어쩌겠니? 네 입으로 내 입을 막아준다면 대문을 열어줄수도 있는데…” 고털보는 늑대의 눈길로 추매를 노려보았다. 고털보의 잰내비얼굴이 가까이다가오자 추매는 질겁한듯 뒤걸음쳤다. 남자를 모르는 추매가 아니였지만 잰내비상인 고털보만은 싫었던것이다. 그때 금자가 추매의 귀가에 입을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추매가 해시시 웃으며 고털보에게 다가갔다. “고스푸가 눈 딱 감고 입 꽉 다물어준다면 하라는대로 하겠어요.” 미칠듯이 기뻐난 고털보는 신바람이 나서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문지기가 푸른등을 켜주자 금자와 오나는 밀차를 밀고 당당하게 공장문을 나섰다. 고털보는 추매를 데리고 접수실로 들어가기 바쁘게 끌어안으려고 했다. 추매는 살짝 몸을 피하며 밖을 가리켰다. “누가 오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이 시간에 누가 온다구 그래? 지금 공장안에는 우리 둘 외엔 다섯 사람밖에 없어. 변전실에 당직을 서는 전공 한놈이 있고 보이라실에 보이라를 지키는 보이라공 두놈이 있고 된장직장에 계기를 보는 놈 두놈이 있지. 그외 다른 직장은 모두 비여있어. 원래 간부숙직 당번인 왕부공장장이 더 있었지만 그놈은 초저녁에 잠간 얼굴을 보이고는 녀편네의 궁둥이를 만지러 집으로 돌아갔지.” 고털보가 바싹 붙어앉으며 처녀의 엉뎅이를 살살 만지자 추매는 한발 물러나 앉으며 말했다. “그 봐요. 다섯 사람이나 있는데 그들이 불쑥 나타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그래요?” “그런 근심은 하지두 마. 그 다섯놈은 돼지처럼 쿨쿨 자고있을거야. 만약 자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시간에 접수실로 올 까닭이 없지. 정 무서우면 우리 불을 끄고…” 고털보는 전등을 끄고 어두운 곳에서 추매를 와락 끌어안았다. “추매야, 난 꿈에도 이날을 기다렸다. 너와 한번만 자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지. 아, 드디여 오늘…” 고털보는 추매의 입술을 찾으려고 했으나 추매가 잽사게 얼굴을 돌리는 바람에 처녀의 귀방물만 핥게 되였다. 그는 추매의 가슴을 만지려고 했으나 두터운 겨울옷때문에 잘 만져지지 않았다. 그는 급히 추매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그러자 추매가 그를 밀치면서 전등을 켰다. 방안이 밝아지자 고털보가 투덜거렸다. “제길, 불은 왜 켰어?” “련애를 하자구 그래요.” “련애? 어떻게 하지?” “서로 달콤한 말로 속삭이며 상대방을 료해하는거죠. 료해도 없이 어떻게…” “한 공장에 출근하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에 뭘 또 료해한다구 그래? 종업원이 모두 200명밖에 안되는 공장에서 누가 누구를 모르겠니? 더구나 우리는 한 마을에서 살고있지 않느냐?” 고털보는 씩씩거렸다. 내키지 않았지만 추매가 종알거리면서 참새처럼 쉴새없이 횡설수설 늘여놓는 말을 들어야 했다. 건성으로 응대하고 듣고있던 고털보는 더는 못견디겠는지 또 달려들었다. “추매야 련애는 그만하고 이제 시작하자. 응?” “이걸 놔요! 점잖지 못하게 왜 이래요?” “아니?! 너…가만있지 못하겠니?” “저리 썩 비켜요! 이만하면 동무를 잘해줬으니 고마운줄 알아요. 난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흥! 몸을 빼려고? 도둑년같으니!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난 널 고발할테다!” 추매한테 거절을 당하자 고털보는 펄쩍 성을 내며 위협했다. 그러나 추매는 겁나는 기색이 아니였다. “고발하겠으면 해요. 고스푸도 우리와 한동아리인데 두려울게 뭔가요?” “허튼소리, 내가 어떻게 너와 한동아리란 말이냐?” “우리가 공장물건을 도적질해 나가는걸 알면서도 문을 활짝 열어준건 누구예요?” “그건…하지만 난 이렇게 말할거야. 난 너희들이 찹쌀을 도적질하는걸 발견하고 못나가게 막았는데 너희들이 어떤 남자들이랑 짜고들어 강제로 날 접수실에 묶어놓고 나갔다구 말이야. 여기 마침 바줄도 있어. 난 이제야 저절로 바줄을 풀고 사건을 제보하는거라고 할테야. 보위과장네 집에도 전화하고 파출소에도 전화할테야!” 고털보는 전화기를 들고 추매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추매는 겁나할 대신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 고발해봐요! 금자아줌마랑 오나아줌마랑 밀차를 밀고 먼저 고스푸네 집으로 갔거든요.” “우리 집엔 왜?” “금자아줌마는 밀차의 과자와 찹쌀을 고스푸네 집에도 한몫 갈라내여 나눠줄거예요. 고스푸의 부탁을 받고 왔다면 고스푸네 집에서도 받아줄거예요.” “내가 언제 그런 부탁을 했어?” “고스푸가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장물을 받아먹은걸 모르는줄 아세요? 금자아줌마, 오나아줌마, 나 이렇게 셋이서 고스푸의 부탁을 받았다고 딱 잡아떼면 고스푸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거예요. 어때요? 앞으로도 우리 합작하지 않겠어요?” 고털보는 다리맥이 탁 풀렸다. 지금이라도 물건을 받지 말라고 집에 전화하면 늦지 않겠지만 맹랑하게도 집에 전화가 없다. 공장장이나 보위과장네 집에 전화할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도적과 한동아리로 몰리지 않으면 강간미수범으로 잡힐수도 있었다. “빠이빠이!” 추매는 고털보에게 비웃는 손짓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고털보도 따라 나갔다. 추매는 풍만한 궁둥이를 보기좋게 흔들며 공장문을 나서고있었다. “씨팔년, 너한테 속았구나!” 고털보는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듯 멀리 사라지는 추매의 예쁜 궁둥이만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2. 강장장의 아들과 녀도적   밤대거리 퇴근후에 온 공장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더구나 뒤마당은 어두컴컴하여 무시무시한 기운까지 감돌았다. 워낙 뒤마당에도 촉수 높은 전등을 켜놓았으나 누군가의 돌팔매에 전등알이 명중되군 했다. 괴상한것은 전공들이 전등알을 바꿔넣으면 그날로 박살나군 했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전등알을 갈아대던 전공들도 나중엔 지쳤는지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지금처럼 어두컴컴하다. 이런 어두운 곳에서는 귀신과 도적이 활동하기가 제일 좋은 법이다. 자정이 지났을 때 귀신인지 도적인지 모를 검은 그림자가 제과직장에서 빠져나와 공장의 뒤마당으로 슬금슬금 걸어가고있었다. 어깨에 멘 물건이 무거운지 자꾸만 올리추면서 걸어간다. 뒤대문에 이른 검은 그림자는 메였던 물건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긴 끈을 꺼내여 한끝으로 물건포대의 아구리를 꽁꽁 동여맨후 다른 한 끝을 쥐고 날렵하게 대문우로 바라올라간다. 잠간후 대문꼭대기의 가름대를 가로 타고앉은 검은 그림자는 손에 쥔 줄을 잡아당긴다. 땅바닥에 놓여있던 물건이 허공에 들리워 줄을 따라 점점 우로 올라간다. 바로 그때 난데없는 찦차가 달려오며 두줄기의 강한 헤드라이트불빛으로 그 검은 그림자를 비추었다. 그 바람에 물건을 묶은 줄을 쥐고 당기던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 검은 그림자는 예쁜 처녀 추매였다. 깜짝 놀란 추매는 물건을 끌어올리던 줄을 놓고야 말았다. 평소에는 밤중에 공장마당에서 차가 달리는 일이 없었는데 그날 추매는 재수없게도 운전수녀석에게 현장을 들켰던것이다. 공장의 몇몇 남성들이 도적질해가던 방법대로 멋지게 한번 슬쩍 해먹자던 일이 불운하게도 운전수녀석에게 발각되고 만것이다. 추매는 경을 치를 단단한 각오를 하고 아래로 도로 내려갔다. 찦차가 멎더니 운전석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그 사내는 음험하게 웃으며 추매한테로 다가갔다. 그 사내를 본 추매는 “쟝꺼?(姜哥)”했다. 그 사내는 강공장장의 아들 강명호였다. 명호는 뭐라고 지껄이더니 물건을 안고 처녀를 앞세우며 찦차에 올랐다. 둘 사이에 무슨 말이 몇번 오가더니 명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정말로 운수가 좋구나. 요렇게 미인을 껴안게 됐으니…흐흐…” “으응…사람을 놀래워놓구도 뭘…간 떨어질번 했잖아요?” 추매는 명호의 품에 안기면서 애교를 떨었다. 명호는 그런 추매를 꼭 껴안고 말했다. “너 담이 크게 그게 뭐야?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어쩌자구 그래? 다신 그런 우둔한 짓을 하지 말어.” “왜 아깝나요? 공장장의 아드님이 보호해주는데 이제부터 마음놓고 더 크게 해재껴야죠.” “이 바보야! 공장의 물건이 내것두 아닌데 뭐 아깝겠니? 가져가겠으면 맘대로 가져가라. 그런데 우둔하게 훔치지 말고 다음부터 욕심하는게 있으면 나하고 슬쩍 귀띔해라. 원료가 공장에 들어오기전에 도중에서 슬쩍 한두포대씩 빼내면 쥐도새도 몰라.” “장부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건 내게 다 방법이 있다. 넌 그저 내 말만 고분고분 잘 들으면 된다. 씨, 여기선 멋이 없구나. 우리 집에 가서 재미있게 놀자.” “쏘우즈너(嫂子呢—오빠 각시는…)?” “그 녀잔 조선으로 마른명태 가지러 갔어. 방해될게 없으니 우리 둘이 오늘밤에 죽었다 살아났다 하면서 신나게 놀아보자!” “어머,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 얼마후 찦차는 공장문을 빠져나와 나는듯이 달려갔다. 3. 강공장장과 풍류녀인   금자는 지금 마흔살이 가까왔으나 무도장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스캔들을 달고다녔다. 그녀의 풍류적인 이야기는 많고도 많지만 그중에서 치마를 벗어 강공장장을 쫓은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그것은 그녀가 밤대거리를 하던 어느날이였다. 제과직장의 제2작업반의 녀성종업원들은 썰썰하다면서 닭알과자를 생산하는 원료인 닭알을 삶아먹자고 쑥덕공론을 하더니 곧 행동을 시작했다. 과자를 굽는 전기화로는 마치 기차굴 같았고 그 “터널”속을 잇달아 줄지어 들어가는 과자철판은 기차바곤 같았다. 철판에 짜놓은 하얀 반죽의 생과자가 입구로 들어갔다가 출구로 나올 때에는 노르스름하게 익어서 나온다. 먹는 일에는 언제나 극성인 금자는 두개의 철판에다 물을 반쯤씩 붓고 생닭알을 그득 담아서 전기화로의 입구에 밀어넣었다. 닭알은 과자와 달라서 출구로 나왔을 때 채 익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들고와서 입구에 밀어넣어을 때 강공장장이 불쑥 제과직장에 들어섰다. 마작판에서 헤여지는 길에 공장을 순시하러 나왔던것이다. 느닷없이 호랑이같은 공장장이 나타나자 녀종업원들은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출구로 닭알철판이 당금 나오려는데도 강공장장은 출구쪽에 떡 버티고 서서 과자의 품질을 검사하는지 배가 고팠던지 닭알과자를 와작와작 씹어먹으면서 떠날념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제 금시 시한폭탄이 폭발하듯 신경이 팽팽하여 숨을 죽이고있었다. 만약 과자 대신 삶은 닭알이 나오는것이 강장장이 눈에 뜨이면 제2작업반의 모든 성원들이 공장전체종업원대회에서 공개비판을 받는것은 물론 거액의 벌금까지 안게 된다. 출구에서 전기화로의 온도를 조절하며 과자굽는 일을 맡고있던 녀인은 “시한폭탄”이 눈앞에 보이자 “어!”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이제 10초만 지나면 “닭알폭탄”이 출구로 나와 강공장장의 눈에 뜨이게 될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급한 중에 꾀가 나온다고 위기일발의 시각에 금자는 강공장장의 코앞에서 치마를 와락 벗어내리우면서 “어마나, 치마끈이 끊어졌네!”하고 화닥닥 놀란 소리를 질렀다. 과자를 씹어먹고있던 강공장장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금자를 바라보았다. 순간 노란 팬티와 하얀 넙적다리가 한눈에 안겨왔다.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보게 된 강공장장은 단통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황망히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새끼처럼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시한폭탄”이 안전하게 출구로 나왔다. 이렇게 제2작업반의 녀종업원들은 금자의 기지덕분에 무사히 고비를 넘기게 되였다. 그런데 그날 쫓기듯 제과직장에서 나온 강공장장은 “무사”하지 못햇다. 집에 돌아가 자리에 누운 강공장장은 눈앞에 자꾸만 금자의 하얀 넙적다리와 노란 팬티가 떠올라 도무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며칠후 직장에서 힘든 일을 하던 금자는 창고보관원으로 “승급”되였다가 얼마후에는 출납원의 자리에까지 올라앉았다. 금자의 “벼락출세”와 동시에 공장에는 쉬쉬한 소문이 나돌았다. 강공장장이 몰래 금자를 불러서 금자가 입은 노란 팬티가 보고싶다고 해서 금자가 살짝 노란 팬티를 벗어주었다는것이다.   4. 좀도둑 왕씨의 “강의”     음력설이 다가왔다. 명절이면 공장에서 접수실문지기를 휴식시키고 그 대신 숙직일군을 따로 배치했다. 숙직일군은 낮과 밤을 갈라서 낮에는 녀성, 밤에는 남성이 지킨다. 인원수는 매일마다 낮고 밤에 각각 간부 2명과 보통로동자 4~5명씩 배치한다. 사람들은 벽보에 붙은 명단을 보고 자기의 이름이 붙어있으면 자발적으로 날자에 맞춰서 나온다. 이번 음력설 숙직인 창덕이는 제시간에 공장에 나와서 낮에 숙직을 서고있는 사람들을 교대해주었다. 저녁때까지 기다려도 보이라공 왕씨만 나오고 다른 숙직일군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왕씨는 평소에는 창덕이와 별로 인사도 없이 지내는 사이인데 그날은 웬일인지 각별히 친절을 베풀며 맥주까지 대접시키는것이였다. “공장에 지금은 너와 나밖에 없구나.” 창덕이가 마지막잔을 들며 탄식하자 왕씨가 신비하게 웃으며 씨벌여댔다. “좋은 기회인데 슬쩍 해재껴야지.” 이놈도 훔치려는게 아닐가? 요즘 공장물품을 가져가는 좀도둑이 늘어나고있다는것을 창덕이는 알고있었다. 제과직장의 일부종업원들은 과자나 밀가루, 사탕가루를 야금야금 훔쳐갔고 사탕직장의 일부종업원들은 사탕이나 사탕가루를 살금살금 빼내갔으며 빵직장의 일부종업원들은 빵이나 밀가루, 사탕가루를 가만가만 가져갔다. 그런가 하면 기름튀기직장에서는 꽈배기따위를, 두부직장에서는 두부를, 우유직장에서는 우유를, 얼음과자직장에는 아이스크림을, 된장직장에서는 된장과 간장을 가져가군 했다. 일부 좀도둑들은 다른 직장의 물품을 서로 바꿔서 가져가기도 했다. 그외에도 콩기름, 입쌀, 찹쌀, 콩, 팥, 락화생, 참깨, 호두, 닭알, 각정 첨가제…등등을 가져갔다. 창덕의 의심은 옳았다. 과연 왕씨는 담이 크게도 보이라용석탄을 손잡이뜨락또르에 가득 실어서 집으로 몰고갔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빈차를 몰고 돌아온 왕씨는 창덕이를 부추겼다. “생각이 있으면 너도 가져가라.” “싫어. 공가의 물품을 맘대로 가져가서 되니?” “바보야, 남들이 해먹는판에 못가져가는게 머저리야. 우리 보이라공들이야 뭐 가져갈게 있니? 어쩌다 철관이나 마사진 부속품따위를 팔아 개추렴이나 하면 다지. 전공과 수리공놈들은 전기기재거나 낡은 기계, 철물따위를 팔아서 늘 식당놀음을 하지. 제길할, 보관원, 운전수, 위생소놈들 할것없이 해먹지 않은 놈이 어디 있다구!” “창고보관원도 해먹니?” “해먹기만 하겠니? 머리만 굴리면 창고가 금광이지. 위생소의 의사놈과 간호원년들은 약품따위를 가져다 팔아서 제 주머니에 쑤셔넣고…운전수놈들은 공가의 차를 굴리지만 제집이 넘쳐나게 공짜물건이 들어오지. 알고보면 다 해먹는 판이야.” “이건 제 지붕을 털어 불을 때는 격이 아니야? 이러다간 나중엔 한데 나앉게 되잖겠니?” “이미 한데 나앉게 된 판이야. 우리 좀도둑들이 가져가는건 아무것도 아니야. 큰 도둑들은 간부놈들이지.” “간부들도 가져간다구? 모두 자기의 우세를 리용해 가져가는데 간부들은 무엇을 가져가겠니? 책걸상, 사무용품, 차잔이나 주전자따위를 가져갈리 만무하지 않겠니? 매일 신문과 문건학습을 하면서 사상각오가 높아질대로 높아진 그분들은 가져갈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져가지 않을거야.” “넌 정말 유치하구나. 그래 옳다. 그분들은 매일 신문과 문건학습을 하면서 법을 알고있길래 우리처럼 보이는 좀도둑질은 하지 않아. 그분들은 말이야. 보이지 않게 슬쩍 해도 크게 해먹는단말이야!” 목에 피대를 세워가지고 손짓까지 하면서 큰소리로 엮어대는 왕의 “강의”는 끝이 없었다. 창덕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5. 천과장을 믿은 후과     추석을 한달 열흘을 앞두고 강공장장은 공장구락부에서 전체종업원대회를 열었다. 월병생산 40일대회전 동원대회였다. 강공장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두시간에 달하는 장편연설을 했는데 중점은 월병을 많이 생산하라는 호소령이였다. 전 공장의 상하가 일심협력하여 월병생산에 총궐기하라! 매 직장마다 두대거리를 세대거리로 늘이며 간부들도 대부분 직장에 내려가 생산로동을 지원하라! 초과량에 따라 상금도 푸짐히 안겨줄것이니 있는 힘을 다해 많이 많이 생산하라! 월병대생산이 시작되였다. 타지방의 식료품공장들과 숱한 개체식료품공장들에서 월병시장을 쟁탈하려고 치렬한 경쟁을 벌리고있는 형세였지만 강공장장은 생산량만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월병질이 말이 아니였다. 일부 종업원들이 정황을 반영했지만 강공장장은 그들의 말을 귀밖으로 들었다. 능력있는 공급판매과의 천과장이 있는한 판로는 근심하지 않아도 되니 생산이나 많이 하라는것이였다. 한편 천과장은 식당에 푸짐한 술상을 차려놓고 각 향, 진의 공급판매합작사와 큰 식료품상점의 구입원들을 모두 청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구입들이 천과장을 청해 먹이면서 제발 더 달라고 애걸했지만 지금은 세월이 바뀌여 천과장쪽에서 구입원들을 청해놓고 먹이면서 제발 더 가져가달라고 애걸하는 판이였다. 이 장면을 목겫한 창덕이가 몇몇 종업원들과 함께 강공장장을 찾아가 말했다. 먹은쇠 똥 눈다고 먹이기도 해야겠지만 제품의 질을 틀어쥐지 않고 맹목적으로 구입원들을 먹이기만 해서야 무슨 쓸데 있는가. 어디서나 책임제를 실시하는 이때에 누가 팔아먹지 못할 월병을 가져가려고 하겠는가. 더구나 숱한 동업종에서 월병시장을 쟁탈하려고 치렬한 경쟁을 벌리고있는 이때에 질은 생명이 아니겠는가. 이런 내용으로 진언을 했지만 강공장장은 한마디로 물리쳐버렸다. “천과장만 믿으면 돼. 빨리빨리 생산이나 다그치라구!” “계속 이대로 나가다간 천과장이 아니라 만과장이라 해도 안됩니다. 생산을 줄이고…” 창덕이가 답답하여 한마디 하자 강공장장이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동무가 뭘 안다구그래. 천과장은 혀바닥을 한번 놀리면 개똥도 황금으로 팔아먹는 사람이야!” 강공장장은 천과장을 굳게 믿고 “생산, 생산, 또 생산!”이란 구호를 높이 웨쳤다. 생산량을 추구하느라고 생산속도를 다그친데다가 생산원가를 낮추라는 강공장장의 지시대로 원료를 줄이고 하품과자를 대량적으로 물에 불궜다가 월병속에 섞어 쓴데서 월병질이 현저하게 나빠졌다. 천과장한테서 술을 얻어먹고 선물을 받아갈 때만 해도 한톤이요, 두톤이요 하며 어벌크게 사가겠다고 선선히 응낙하던 구입원들은 월병질이 나쁜것을 보고는 낯가림으로 한두상자씩밖에 가져가지 않았다. 그외의 작은 상점들에서는 어쩌다가 한상자씩 가져가군 했다. 대부분 식료품상점들에서는 이미 타지방이나 개체공장들의 질좋은 월병을 구입해놓았던것이다. 추석이 래일로 다가오는데도 월병은 창고에 그대로 가득 쌓여있었다. 이때에야 급해난 강공장장은 천과장을 불러놓고 따지고들었다. “숱한 돈을 처넣어 배불리 먹였겠는데 한상자도 가져가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이게…” “그 사람들이 가져가겠다고 대답을 해놓고서는…말하면 말한대로 안한다니깐요.” 천과장도 속수무책인듯 두손만 마주 비볐다. 그해가 지나서 이듬해 여름이 되도록 100여톤의 월병이 팔리지 않은채 창고안에서 썩고말았다.   6. 강공장장과 재무과장     공장이 다섯번째로 “방학”을 하던 어느날에 창덕이는 친구들과 함께 술마시러 갔는데 뒤쪽 칸막이를 한 방에서 귀에 익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창덕이가 가만히 엿보니 강공장장과 재무과 과장이며 주관회계인 우치가 마주앉아 쑥덕공론을 하다가 갑자기 다투는것 같았다. “그건 안되오!” 강공장장이 손을 홱 내젓자 우치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송이버섯때도 난 한몫 빠지지 않았습니까?” 일본에서 송이버섯을 대량으로 수요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강공장장은 공장의 몇몇 골간들을 운남성에 파견하여 송이버섯을 구입해오게 했다. 운남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나기에 전국각지에서 온 구입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송이버섯을 따는 채집인들의 손에서 직접 구매할수는 없었다. 당지의 세력있는 장사군들이 산속의 길목마다 지키고있다가 채집인들의 손에서 헐값으로 넘겨받아서 앉은 자리에서 높은 값으로 외지의 장사군들에게 되넘겼기때문이다. 이런 당지의 장사군들을 얼도판즈(二道贩子)라고 한다. 그런데 외지의 장사군들이 이 당지 얼도판즈의 손에서 직접 송이버섯을 구매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거기에는 따로 “문”이 있고 “통로”가 있었는데 아무나 “문”을 열고 “통로”로 들어갈수 없었다. 외지인들이 이 “문”을 찾아 “통로”를 뚫기는 더욱 어려웠다. 강공장장이 파견한 골간들은 아는 사람을 통해 “문”을 찾아 “통로”를 뚫었기에 얼도판즈의 손에서 직접 송이버섯을 구입할수 있었다. 공장의 골간들은 구입한 송이버섯을 모아서는 공장에 부쳐보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리속을 채우는것도 잊지 않았다. 골간들은 공가의 돈을 리용하여 얼도판즈의 손에서 송이버섯을 구입해다가 통로를 모르는 외지의 장사군들에게 되넘겨주어 그 라리에서 폭리를 얻었다. 운남에 한두달 있는 사이에 매 사람앞에 5만원씩 돌아갔다. 몰론 강공장장의 몫도 있었다. 1980년말에 “만원호”라면 높이 우러러 볼 때였으니 5만원이란 얼마나 큰 돈이였는지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첫해에는 송이버섯장사가 잘되여 전체종업원들에게 매인당 200원이란 년말상금을 내주게 되였다. 하층로동자들에게 200원이란 적지 않은 돈이였기에 모두들 기뻐했다. 이듬해의 7월이 되자 강공장장은 직접 나서서 첫해에 갔던 골간들외에 우치를 더 데리고 서둘러 운남으로 출발했다. 강공장장과 우치는 한달만에 먼저 돌아왔으나 남아있던 골간들과 똑같은 몫으로 한 사람이 10만원씩 손에 쥐게 되였다. 두번재해에는 장사가 더 잘되여 종업원마다 년말상금을 300원씩 타게 되였다. 련속 두해째나 재미를 본 강공장장은 세번째해에는 더욱 크게 해보려고 별렀다. 송이버섯은 비싼 물건이여서 자금이 많이 수요되였다. 강공장장은 거액의 대부금을 맡아가지고 먼저번보다 몇배 더 많은 수량의 송이버섯을 구입해들였다. 그런데 그해엔 다른 기업들에서도 정보를 얻어가지고 대량으로 송이버섯을 구입해들이는 바람에 송이버섯시세가 갑자기 폭락하고말았다. 게다가 일본 사람들도 배가 불렀는지 값을 깎기만 하고 사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라도 일본사람들이 달라는 값에 팔았으면 리윤은 못보더라도 본전쯤은 거의 찾았을것이다. 그러나 강공장장은 지난해의 가격에 팔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송이버섯이 똥값이 되자 강공장장은 사용하지 않은 우유직장에 송이버섯을 보관했다. 비닐통에 포장한 송이버섯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후 또 다른 일본사람들을 찾아 흥정했는데 원가를 고집하다가 한해를 더 묵여두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소금에 절인 송이버섯이라고 해도 그맘때면 변질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강공장장은 전체종업원들을 총동원하여 변질된 송이버섯을 가려내고 1, 2, 3등으로 나누어 다시 포장하게 했다. 결국 배부른 흥정을 하는 장사군을 찾아 똥값의 똥값에 처리하긴 했지만 대부금의 리자를 물기에도 모자라는 금액이였다. 공장에서는 밑졌지만 세번째해에도 송이버섯을 구입하러 운남에 갔던 골간들은 한 사람이 10만원씩 손에 쥐게 되였다. 이렇게 운남에 갔던 골간들은 3년동안에 한 사람이 25만원씩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재무과장 우치만이 첫해에 빠지다보니 다른 골간들에 비해 5만원을 적게 가졌던것이다. “이 사람아, 자넨 첫해에 빠졌을뿐인데 그땐 절반수자밖에 안되고 또 자녀에게 몰래 상금 5000원을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두…” 강공장장이 기분 나쁘다는듯 담배연기를 홱 내 뿜자 우치가 손으로 담배연기를 쫓으며 말했다. “강공장장은 어디 송이버섯때뿐입니까? 집을 셋채나 지어 둘째아들의 집까지 마련했지. 그리고…” “그만하게! 5만원을 보충해주면 되잖은가? 이 사람아!” “제가 고까짓 5만원때문에 그러는줄 압니까? 저에겐 강공장장이 어느때 어떻게 공가의 자금을 따돌렸다는 증가가 있습니다.” 우치가 교활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추자 강공장장은 얼굴이 수수떡처럼 뻘개져서 씨근거렸다. “자네 날 위협하는건가?” “제가 어찌 감히 공장장님을 위협하겠습니까? 그저 저의 조그마한 요구를 들어달라는것뿐입니다.” “도대체 얼마를 요구하나?” “제가 첫해에 못가진 수자에 동그라미를 하나 보태서 주십시오.” “50만원? 자네 정신 있나? 자네도 알다싶이 지금 공장의 형편이 말이 아니잖은가?” “손해보거나 망해가는 기업일수록 공장장의 배가 더 불러가는 법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야 몰라도 제가 이런 리치를 모를리 있겠습니까?” “자네 정말 욕심이 과하군!” “피차일반이지요!” 강공장장이 마지 못해 웃음을 짓자 우치도 교활하게 따라 웃었다. 창덕이는 거기까지 엿듣고 길게 탄식했다. 그때로부터 식료품공장은 줄곧 생산을 정지하고있다가 3년후에 파산선고를 받았다. (1997년)    
24    위험한 행로 댓글:  조회:3141  추천:0  2013-12-21
대중소설   위험한 행로     김희수   “너 직업이 뭐냐?” 아까 그 경찰이 또 물었다. 경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경찰은 담배연기를 확 내뿜었다. “이름이 뭐냐?” “지경호.” “직업은?” “직업은 없습니다.” “뭐? 직업이 없다구?” 경찰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더니 빙그레 웃었다. “너 아마추어인가 했더니 프로였구나!” “프로라니요?” “너 다른 직업은 없고 ‘바이’만 전문업으로 삼으니깐 프로가 아니구 뭐냐?” “바이라니요?” “시치미를 떼지 마! 그래 바이가 소매치기란걸 몰라? 어느때부터 바이를 했으며 이번이 몇번째야?” 경찰은 매서운 기운이 서리발치는 눈길로 경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전 그런걸 모릅니다.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임마! 바른대로 말해. 구류소맛을 보고싶냐?” “아, 아니… 전, 전…” 경호는 겁기어린 눈길로 경찰을 쳐다보며 몸을 떨었다. 경찰은 또 한번 담배연기를 확 내뿜었다. “바른대로 말해. 몇번째야?” “아니,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임마, 훔치지 않은게 왜 그 돈지갑이 네 호주머니에서 나왔니? 응?” “그건 땅딸보가…” “그래 땅딸보가 널 붙잡았지. 계속 말해.” “뭘 말하란 말입니까? 전 도둑이 아닙니다.” “완고한 새끼!” 경찰은 책상을 “쾅”하고 내리쳤다. 경호를 쏘아보는 그 눈길은 한자루의 비수와 같이 날카로왔다. 하지만 경호는 몸을 떨뿐 죄를 승인하지 않았다. 경찰은 얼리고 닥치고 하다가 경호가 자백하지 않으니까 경호를 심문실에 가둬놓고 자물쇠를 잠궈놓았다. “전 억울합니다! 절 놓아주십시오!” 경호는 문을 막 두르리며 애처롭게 웨쳐댔다. 그러나 경찰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가버렸다. 빈방에 홀로 갇힌 경호는 억울하고 분했다. 경찰마저 다짜고짜로 도둑으로 몰다니? 악몽같았다. 경호는 이것이 꿈이라고, 꿈에서 깨여나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거라고 자신을 위안해보았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적 공포와 불안은 그러한 달램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이 무시로 몸을 휩쌌다. 차가운 책상우에서 하루밤을 보낸 경호는 이튿날 오전 10시쯤에 더욱 무시무시한 곳으로 끌려갔다. 그가 방안에 들어서자 문이 닫기고 “절컥”하고 자물쇠가 잠겨졌다. 그는 승냥이굴에 들어선듯 온몸을 전률했다. 두줄로 똑바로 앉아 꼼짝하지 않고있던 8~9명의 녀석들이 바깥의 발자국소리가 멀리 사라지자 삽시에 독기어린 음침한 눈길로 그를 쏘아보고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가리를 쩍 벌린 굶주린 승냥이떼같기도 했고 혀를 날름거리는 흉악한 독사무리같기도 했다. “이리 왓!” 두목인듯한 녀석이 위엄있게 호령하자 경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두목의 앞으로 다가갔다. “차렷!” 두목이 구령을 부르자 경호는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차렷자세를 갖추었다. 두목이 불이 번쩍나게 경호의 귀쌈을 후려쳤다. “이름이 뭐야?” “지경호.” “여긴 왜 왔니?” 경호는 도리머리질했다. 그러자 두목의 옆에 있던 한 녀석이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가며 경호의 뺨을 갈겨댔다. “이 새끼야! 귀머거리야? 캉터우(炕头)가 묻는 말뜻은 네가 무슨 죄를 지어 여길 들어왔는가 말이다!” “난 아무 죄도 짓지 않았소!” “뭐라구?!” 두목은 두눈을 부릅뜨고 경호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꽥 소리질렀다. “얘들아!” “예썰!” 두목의 말이 떨어지자 말석에 앉은 세 녀석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일제히 일어섰다. “너희들이 이 새끼의 버릇을 좀 가르쳐줘라!” “예썰!” 세 녀석이 번갈아 다가와 경호의 귀쌈을 보기좋게 찰싹찰싹 후려쳤다. “아이쿠!” 그 다음은 주먹과 발길이 날아들었다. 경호의 코와 입귀로 시뻘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만!” 두목이 졸개들을 제지시키고나서 살기등등해서 경호를 노려보았다. “임마, 네가 저지른 짓을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가!” 경호는 육체의 고통과 말못할 정신적 괴로움에 가슴이 찢기고 눈물이 솟았다. 구류소가 이처럼 진저리나고 무시무시한 곳인줄을 몰랐다. 억울하게 갇힌것만 해도 통분한 일인데 진짜 불량배들에게 매까지 얻어맞다니! 경호의 눈앞에 억울하게 파출소에 잡혀오던 그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룡정으로 달리는 초만원뻐스에 몸을 실은 경호는 밀치닥거리는 사람들틈에 끼워 진땀을 뺐다. 무더운 여름날씨에 공기마저 혼탁하여 질식할 지경이였다. 뭇사람들의 퀴퀴한 땀냄새를 피하느라고 머리를 이러저리 돌리던 경호는 문뜩 웬 검은 손이 곁에 있는 한 중년녀인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것을 발견했다. 흠칫 놀라 다시 보니 재빠른 솜씨로 돈지갑을 후려낸 그 검은손의 임자는 스무살안팎의 땅딸보였다. 그 땅딸보는 경호의 눈길이 자기를 지켜보는것을 보고 위협적인 눈길로 쏘아보았다. 얄미운 도둑놈! 돈을 털리운 저 아주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까밝혀놓자. 뻐스안에 숱한 사람들인데 저 따위 도둑 한놈을 겁나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주머니!” 경호가 막 중년녀인의 팔을 흔드는 찰나에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땅딸보는 번개같이 그를 밀치닥거리며 제쪽에서 먼저 소리쳤다. “도둑을 잡읍소!” 그러면서 땅딸보는 중년녀인에게 돈지갑을 털리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던 중년녀인은 울상이 되여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구, 내 돈 200원이 잃어졌구나! 아이구, 어느 놈이 내 돈을…” “아주머니, 바로 저자가 아주머니의 돈을 훔쳤습꾸마!” 경호가 손으로 땅딸보를 가리키자 몇몇 건장한 장정들이 달려들어 땅딸보의 두팔을 붙잡았다. “이 도둑놈아, 백주에 남의 호주머니를 털어?!” “아이쿠, 억울합꾸마. 도둑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 새끼입꾸마!” 땅딸보는 고개짓으로 경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놈아, 무슨 변명이냐? 어서 돈을 내놔!” “정말입꾸마. 내 저 새끼가 저 아줌마의 걸망을 터는걸 똑바로 봤습꾸마. 못믿겠으면 어디 저 새끼의 몸을 뒤져봅소!” 이리하여 뭇사람들의 시선은 땅딸보로부터 경호한테로 옮겨졌다. 경호는 뻔뻔스러운 땅딸보가 역겨웠다. 자신의 청백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숱한 눈길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져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의 호주머니에서 난데없는 돈지갑이 나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종래로 돈지갑을 사용한 적이 없는 그에게 돈지갑이 있을리 만무했다. “아, 내 돈지갑!” 돈을 털리운 중년녀인이 냉큼 돈지갑을 나꿔챘다. 그러자 교활한 땅딸보가 즉시 소리쳤다. “아줌마, 잠간만! 그 돈지갑이 정말로 아줌마의것이 옳은지 어떻게 암둥? 그러지 말고 그안에 무엇이 들어있다는것을 말해야 증명할수 있을 아님둥?” 그래서 그 중년녀인이 돈지갑을 땅딸보에게 넘겨주면서 그안에 10원짜리 인민페 15장과 5원짜리 인민페 10장 그리고 자기의 신분증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땅딸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주위사람들앞에서 돈지갑안의 물건을 꺼내보였다. 중년녀인이 말한것과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사람은 겉을 보구선 모르겠단말이요. 알고보니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도둑이였구만!” “저런 녀석은 가만두었선 안되우. 잡아가야 하우!” 뭇사람들의 욕지거리와 눈총을 한몸에 받으며 경호는 넋을 잃은듯 서있었다. 이때에야 그는 땅딸보가 자기를 밀칠 때 작간을 부린것이란것을 깨달았다. 분했다. 치가 떨렸다. “전 도둑이 아닙니다! 사실은 저 땅딸보가…” 그가 사실의 진상을 까밝혀놓으려고 했으나 누구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뻐스는 방향을 바꾸어 파출소로 향했다. 그가 억울하다고 했으나 인증, 물증이 다 있기에 소용이 없었다… “빨리 네가 지은 죄를 말해라!” 두목이 두눈을 무섭게 부듭뜨고 재촉하자 경호는 짧은 회상에서 깨여났다. “이 새끼야, 무슨 짓을 했는지 빨리 말하란 말이다!” 두목은 자신이 경찰에게 당하던 화풀이를 경호에게 하는듯 싶었다. “난, 난…나쁜 짓을…” “임마, 네가 나쁜 짓을 했다는걸 다 안다. 그래 색갈을 했니?” “아니…” “안했다구? 임마, 니 녀자빤쯔까지 벗기구 어떻게 했다는걸 우리 다 알구있다. 솔직하게 말해라!” “아니, 난 그런 짓을 안했소!” “뭐야? 홀딱 벗겼지?” “아니…” “정말이냐?” 두목은 경호를 당장 한입에 삼켜버릴듯이 노려보았다. 경호는 사지를 와들와들 떨었다. “벗겼니? 안벗겼니?” “버…벗겼소.” 경호는 마지못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승인했다. 두목은 그제야 히죽이 웃으며 담배불을 붙였다. “벗겼으면 벗겼다구 진작 대답해야지. 야, 임마. 네가 어디 한번 재미보던 동작을 여기서 표현해봐라!” 경호는 수치와 모욕감으로 하여 슬피 울었다. 그러나 두목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았다. 경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몇번 추잡한 동작을 하고나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점심에 사발 하나 드나들만한 쪽문으로 시누런 강냉이밥과 멀건 시래기국이 들어왔다. 경호는 강냉이밥이 모래알 씹는듯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두목은 용하게도 밥 한그릇을 제꺽 조겨대고 경호의 몫까지 빼앗아먹었다. 경호는 오전에 그만큼 당했으니 오후에는 아무일도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두목이 또 괴롭힐줄이야. “임마, 이제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너 ‘맥주’를 마시겠니? ‘노래’를 부르겠니?” “맥주”란 두목이 선사하는 오줌이다. 경호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맥주”가 아무래도 좋지 않은것을 뜻하는것 같아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이 새끼, 목청이 좋은 모양이다. ‘령감’!” “예썰!” “마이크 준비!” “예썰!” 령감이란 녀석이 경호를 끌고가서 변기통뚜껑을 열었다. 순식간에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야, 임마! 이것이 세계제1류의 고급마이크야! 여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되 3절까지 불러야 된다! 알겠니? 자아, 시—작!” 령감은 경호의 머리를 강박적으로 변기통에 틀어박았다. 경호는 고약한 냄새를 참으며 숨가삐 노래를 불렀다… 경호는 졸개중에서도 말석졸개가 되여 두목의 온갖 시중을 다 들어줘야 했다. 이부자리를 펴고 개인다, 변기통뚜껑을 여닫는다, 옷으로 부채질을 해준다, 전신안마를 해준다 하며 별의별 고생을 다 했다. 제일 힘든것은 대변을 보는 일이였다. 불량배들이 지켜보는 코앞에서 변기통에 엉뎅이를 대고있노라면 긴장감과 수치심에 배설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을 끌면 못된 녀석들이 달려와 엉뎅이를 찰싹! 찰싹! 때려놓는다. 구류소의 밤은 고통의 밤이였다. 도리대로 말하면 밤이면 육체적인 시달림이 없으니 편안해야 했다. 하지만 낮에 받은 수모와 모욕 그리고 억울함으로 하여 무시로 파고드는 정신적 고통은 말로는 형언할수 없었다. 곁에 누운 녀석들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색정이야기를 하다가도 한바탕 음탕하게 웃어댄다. 하지만 경호는 한쪽에 돌아누워 설음에 겨워 울고 또 울었다. 아, 원통하다! 어찌하여 결백하게 살아가려는 내 인생에 이런 치욕의 력사를 남겨야 한단 말인가! 15일이란 나날이 그렇게 지루할줄은 몰랐다. 경호는 마침내 굴욕과 고통을 이겨내고 그 지긋지긋하고 진저리나는 생활을 결속지었다. 자유의 몸이 된 경호는 그 길로 목욕탕에 달려가 몸에 밴 더러운것을 씻었다. 하지만 수모와 억울함은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씻겨지지 않았다. 경호는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공교롭게도 한 청년과 마주쳤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 청년이 바로 소매치기군 땅딸보가 아닌가! 그자를 보자 경호의 가슴은 증오로 불타올랐다. “이 도둑놈아! 왜서 네가 훔치고도 나에게 덤터기를 씌웠니? 너때문에 난 억울하게 당했다. 온갖 모욕을 다 받으며…가자, 파출소로 가서 자수해라!” 경호가 손을 잡아끌자 땅딸보는 실눈을 지으며 웃었다. “노여워마오. 난 원래부터 친구를 억울하게 하려는 생각이 없었소.” 땅딸보가 능청을 떨자 경호는 화가 났다. “누가 너같은 망나니의 친구야? 어서 파출소에 가서 내 억울한 루명부터 벗겨달라!” “허허참,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파출소에 간들 어쩌겠소. 내가 잘못했다고 빌면 안되겠소? 나두 그때 친구를 해치려고 그런게 아니라 방법이 없어서 그랜게유.” “방법이 없어 그랬다구? 개나발을 불지 마!” “개나발이 아니요. 친구는 그래 ‘런짜이쟝후 썬부유지(人在江湖, 身不由己)’란 말을 못들었소? 강호에 떠도는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할수 없이 마음에 없는 일을 하게 되는 때가 있는거요. 나는 그때 친구를 해칠 마음이 꼬물만큼도 없었지만 할수 없이 그렇게 한거요. 그때 친구가 못본척하고 가만있었더라면 난 그럴 필요가 없었을거요. 그러니까 완전히 내 잘못이 아니라 친구한테도 차실이 있는게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잡히는건 내 자신이 아니겠소? 내가 잡히면 경찰한테도 욕을 보고 우리 로따(老大)한테도 벌을 받게 된단 말이요. 그러니…” “그 무슨 개똥같은 궤변이야? 잡히는게 그리 무서우면 당장 가서 자수하고 손을 씻으란 말이다!” “손을 씻으라구? 내 배운 재간이 그것뿐인데 손을 씻구 무슨 일을 하겠소? 그리고 잡히는걸 무서워하면 아무일도 해낼수 없단 말이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모험이 필요하오. 농사군이 재해가 드는걸 무서워한다면 농사를 지울수 없고 어부가 배가 뒤집히는걸 두려워한다면 고기를 잡을수 없소. 또한 운전기사가 교통사고를 무서워한다면 핸들을 잡을수 없고 오입쟁이가 안해를 무서워한다면…” “듣기 싫다!” 땅딸보의 황당한 론리와 썩어빠진 인생관에 경호는 전률하듯 몸을 떨었다. 땅딸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계속 떠벌려댔다. “헤헤, 친구! 우리 패거리에 가담하지 않겠소? 그럼 날마다 호강할게요. 온천하 사람들의 호주머니가 모두 우리의 은행이고 저금통이란 말이요. 친구도 어차피 도둑이란 감투를 썼으니 우리 손잡고 해보자구!” “더럽다! 나보고 도둑놈이 되라구? 네 같은 놈은 좋은 끝장이 없을게다! 아무때든 꼭 법망에 걸릴게다! 가자, 지금 나하구 파출소에 가서 자수해라!” 경호는 땅딸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때 몇몇 청년들이 나타나서 땅딸보를 불렀다. 경호는 할수 없이 땅딸보를 놓아주었다. “친구, 다시 만나자구!” 땅딸보는 패거리들과 함께 가면서 경호에게 손을 저었다. 경호가 구류소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소문은 동네에서도 퍼지고 친구들한테도 퍼졌다. 그는 밖에 나설 때마다 아는 사람들의 뒤손질을 따갑게 느꼈다. 친구들한테 놀러가도 그가 자기네것을 훔치지 않나 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하고있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나는 청백하다. 그러나 나는 세상사람들의 눈에 더러운 도둑으로 보인다. 아아, 말못할 억울함이여! 경호는 웃음을 잃었다. 련며칠 집구석에 꾹 박혀있노라니 미칠것만 같았다. 그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문을 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발길이 가는대로 이거리 저거리 쏘다녔다. 울적한 기분에 잠겨 어정어정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웬 억센 손이 뒤에서 어깨를 잡는 바람에 와뜰 놀랐다. “여, 친구. 또 만났군!” 땅딸보였다. 능글능글 웃는 그 낯짝을 보자 경호는 화가 치밀었다. “임마, 너때문에 난 진짜 도둑처럼 몰리고있다. 이 죽일놈의 새끼야!” “거참, 안됐구만. 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한번 진짜 도둑이 돼보는게 어떻소?” “뭐야? 이 새끼…” “친구들의 의심과 사회의 차별대우를 받으며 머리도 못쳐들고 다닐게 뭐요. 나하구 손잡고 한번 해보기오. 사회는 친구를 버려도 우리 형제들은 친구를 따뜻하게 품어줄게요!” “개소리치지 마!” 경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 면상을 한대 얻어맞은 땅딸보는 두번째로 날아오는 경호의 주먹을 잽사게 피하며 덤벼들었다. 둘은 한동안 치고 박고 했다. 얼마후 맥이 지난 둘은 피투성이가 되여 주저앉았다. “허, 친구도 꽤 날파람이 있던데. 난 친구가 점점 더 맘에 드는구만.” 땅딸보가 종이로 코피를 닦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경호는 그런 땅딸보를 성난 눈길로 쏘아보았다. “이 새끼, 널 찢어죽이지 못하는게 원통하다!” “허허, 친구.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우리 저기 들어가 한잔 하며 화해하자구!” 땅딸보가 경호의 손을 잡아끌면서 일어섰다. 경호는 땅딸보의 손을 뿌리쳤다. “개새끼, 누가 너같은 도둑놈과 친구하겠니?” 경호는 발길로 땅딸보를 한번 더 걷어차고 몸을 돌렸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몇몇 불량배들이 경호의 앞을 막아섰다. “이봐, 친구. 왜 한잔 하자는데 남의 성의를 무시해?” 땅딸보와 녀석들은 무작정 경호를 끌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땅딸보와 경호는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술상에 마주 앉았다. “자, 인생은 일장춘몽이거니 먹고 마셔 보자!” 경호는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을수 없었다. 술이 몇잔 들어가자 경호는 자기절로 청해서 더 마셔댔다. 취하고싶었다. 취하여 거리를 쏘다니며 웨치고싶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여보게, 친구. 억울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와 한길을 걷게 된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은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한 길이라는걸 알아야 하오.” “미안하오. 이 지경호는 그 길로는 갈수 없소. 난 내 길을 나절로 갈것이요!” 경호는 비틀거리며 술집에서 나왔다. 땅딸보가 따라 나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자기의 길을 자기절로 걷겠다구? 정말로 사내대장부의 패기가 있는 말이요. 하지만 난 조만간에 친구가 우리 형제의 품으로 들어오리라고 믿소. 지금은 강박하지 않겠으니 친구 마음대로 하오.” 경호가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서자 부모가 “사람질을 못할 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경호는 “사람질”을 하기 위해 이튿날부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에게 전과가 있다고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눈물이 나왔다. 혼자서 공원의 의자에 앉아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친구. 또 만났네!” 땅딸보였다. 여기서 또 땅딸보를 만나다니? 악연이라도 이런 악연이 어디 또 있을가? “우리 인연이 깊구만! 반갑게 만났는데 어디가서 한잔 하자구!” 땅딸보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경호는 될대로 되라고 땅딸보를 따라갔다. 땅딸보는 경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더니 3차만에 단간방이 있는 곳에 가서 아가씨까지 넣어주었다. 그날밤에 경호는 처음으로 아가씨와 재미를 보고나서 땅딸보의 도둑패거리에 가담했다. 경호는 땅딸보패거리의 두목한테서 한주일동안 소매치기에 대한 리론강의를 들으면서 호주머니를 터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땅딸보를 따라다니면서 관찰능력을 키우면서 직접 실천에 나섰다. 연길에서 룡정으로 달리는 뻐스에 오른 경호는 한 중년사내의 웃옷 호주머니를 단단히 노렸다. 차가 시교를 방금 벗어났을 때 그는 손을 잽싸게 놀려 중년사내의 웃옷호주머니의 단추를 반쯤 벗겨놓고 시치미를 떼고있다가 뻐스가 들썩거리는 기회를 타서 손을 썼는데 그만 “노”를 감았던 손이 떨리면서 발각되고 말았다. 뒤를 봐주던 땅딸보가 비수로 중년사내를 위협해서야 무사히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다음에는 룡정에서 연길로 달리는 뻐스에 올랐다. 노리던 사냥물이 눈에 들어오자 땅딸보가 경호를 슬쩍 건드렸다. 경호는 땅딸보의 눈짓대로 한 소녀의 곁에 바싹 붙어섰다. 경호는 가슴이 두근거려 몇번이나 쏜쓸 기회를 놓쳤다. 땅딸보의 눈짓에서 힘을 얻은 경호는 대담하게 손을 썼다. 성공이다. 처음으로 남의 돈뭉치를 자기의것으로 만든 경호는 가슴이 세차게 들뛰였다. 뻐스가 모아산에서 멈춰섰다. 땅딸보의 신호를 받은 경호가 뻐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 소녀가 갑자기 목놓아 울며 소리쳤다. “내돈, 내돈이 없어졌어요! 입원한 어머니의 수술비를 물자던 돈인데 이걸 어쩌나요? 엉엉…” 소녀의 울음소리는 경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로임봉투를 털리우고 소매치기를 욕하던 정경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그는 량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에게 밀리는척 하며 소녀한테 몸이 쏠리는 기회를 타서  민첩한 동작으로 돈뭉치를 도로 소녀의 핸드백에 넣어주고는 부랴부랴 뻐스에서 내렸다. 그의 뒤를 따라 뻐스에서 내린 땅딸보가 성난 눈길로 경호를 쏘아보았다. “다 나꿔챈 돈을 도로 넣어주다니? 왜서 그런 바보짓을 했소?” “그애가 너무 불쌍해서…” “불쌍하다니? 하하하! 불쌍한걸 다 고려하면 우린 굶어죽소. 이런 일을 하자면 마음이 독해야 하오. 우리는 사람들의 통곡소리를 즐거운 노래처럼 들을줄 알아야 하오.” 이튿날에 그들은 룡정뻐스부에서 점잖게 거딜며 사냥물을 찾아다녔다. 한참후 경호가 투덜거렸다. “제길할, ‘천당문’은 ‘참대속’이요.” “괜찮소. ‘지하통로’에 ‘물만두’가 보이요. 몇‘타바(100원)’는 됨직한데 그거라도 따보기오.” 경호는 땅딸보의 눈짓대로 조양천방면의 검표구에 줄을 선 한 아낙네의 뒤에 바싹 붙어섰다. 땅딸보가 잽사게 차표 두장을 끊어가지고 왔다. 검표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물밀듯 터져나가며 다투어 뻐스에 올랐다. 승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경호는 그 아낙네와 같이 뻐스의 중간쯤에 서있게 되였다. 약사빠른 땅딸보가 얼마쯤 뒤에서 지켜봐주었다. 뻐스가 움직이자 경호는 손쓸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삼봉동어구의 울퉁불퉁한 흙길에 들어서자 뻐스가 몹시 들추었다. 경호는 몸이 앞으로 쏠리는 기회를 빌어 무릎으로 그 아낙네의 엉뎅이를 지긋이 밀면서 잽싸게 바지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한참후 뻐스가 재차 들추는 순간 경호는 감아올렸던 “노”를 살며시 꺼냈다. 곁사람들은 물론 그 아낙네도 눈치차리지 못했다. “지하통로”라고 하는 바지호주머니는 소매치기들의 가장 어려운 돌파구였다. 이 돌파구를 손쉽게 열어제낀 경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뻐스에서 내려 돈을 세여보니 한 “꼬재(1000원)”나 되였다. 너무도 흐뭇하여 그들은 술집에 가서 배를 두드리며 먹어댔다. “손님들은 직업이 뭐예요?” 곁에 앉은 아가씨가 술을 부으며 물었다. 경호는 어데가나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가슴이 찔리였다. 직업이 없다고 말하자니 체면이 깎일것 같고 그렇다고 직업이 “바이(소매치기)”라고 말할수도 없고…그가 처음 억울하게 잡혔을 때 경찰이 그랬다. 다른 직업이 없으니까 바이를 전문업으로 삼는 프로 아니냐고. 그런데 그렇게 억울하다고 웨치던 그가 진짜로 소매치기를 전문업으로 삼는 프로가 되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직업이 뭐예요’가 뭐야? ‘무슨 사업을 하시나요’라고 물어야지.” 땅딸보가 아가씨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아가씨가 해쭉 웃으며 다시 물었다. “손님들은 무슨 사업을 하십니까?” “우린 장사군이야!” “어마나, 그럼 사장님이시겠네요. 사장님은 무슨 장사를 하십니까?” “인육장사를 하지. 너희들은 인육을 팔고 우리는 인육을 사고. 하하하!” 땅딸보는 아가씨의 엉뎅이를 툭툭 치며 웃어댔다. 하지만 경호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자신의 운명이 한스럽고 그런 인생이 서러웠다. 경호의 소매치기솜씨가 제법 늘었을 무렵에 땅딸보가 경도선렬차에 올라 크게 하다가 덜미를 잡히여 감옥신세를 지게 되였다. 경호는 자기의 앞날을 보는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경호는 소매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남은 패거리들이 자꾸만 떠미는 통에 마지못해 혼자서 뻐스에 올랐다. 고수머리중년사내를 목표물로 삼았다. 사람들이 밀치는 기회를 타서 경호는 잽싸게 해냈다. 다음 정류소에서 내린 경호가 성공의 기쁨에 겨워 휘파람을 부는데 어느새 따라 내렸는지 고수머리사내가 그를 불러세웠다. “여보게, 젊은이!” 에크, 들키였구나. 뛰자! 경호가 도망치려는데 고수머리가 다시 소리쳤다. “지경호, 이걸 가지고가게!” 낮도 코도 모르는 고수머리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대자 경호는 깜짝 놀랐다. 고수머리가 손에 신분증을 들고 흔들어댔다. 자기의 호주머니를 뒤져본 경호는 또 한번 크게 놀랐다. 방금전에 뻐스안에서 털어냈던 고수머리의 돈지갑과 자신의 신분증이 깜쪽같이 없어졌던것이다. 아니, 저 고수머리가?! “이건 자네의것이니깐 돌려주겠네.” 고수머리가 다가와서 경호에게 신분증을 넘겨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호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들고 “이건 내것이니까 자네한테 줄수는 없네!” 하면서 경호를 쏘아보았다. 경호는 오금이 저려났다. “아이구, 스승님! 이거 눈이 있어도 망울이 없어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경호는 손발이 닿도록 싹싹 빌었다. 그러자 고수머리가 히쭉 웃었다. “자네 날 스승으로 모시고싶나?” “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자네가 나의 제자로 될 의향이 있다면 날 따라오게나.” 경호는 고수머리의 뒤를 따라갔다. 고수머리는 경호를 데리고 자동차수리부안으로 들어갔다. 고수머리는 거기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나도 한때는 한다하는 소매치기군이였네. 하지만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좋은 끝장이 없네. 나는 끝내 잡혔고 안해마저 달아났네. 난 감옥에서 나온 뒤로 그 일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자동차수리부를 꾸렸네. 이전엔 경찰만 보아도 날 잡으로 오지 않나 해서 속이 조마조마했고 잠을 자도 경찰에게 잡히는 꿈만 꾸었네. 하지만 지금은 어데가나 머리를 떳떳이 쳐들고 다닐수 있고 잠을 자도 발편잠을 잘수가 있네. 또 자기의 땀으로 번돈이니까 돈을 써도 떳떳이 쓸수가 있고…총적으로 말해서 사람답게 살수가 있게 되였다는 말이네. 어떤가? 젊은이도 그 일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사람답게 살아보지 않겠나?” “…” 경호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저도몰래 고수머리의 말에 공감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젊은이, 나의 제자로 되여 여기서 일해보지 않겠나? 로임은 비록 소매치기보다 적을수는 있지만 떳떳한 직업이여서 사는 보람이 있을거네.” “…” 경호는 여전히 멍하니 서있었다. “대답이 없으면 동의한걸로 치겠네.” 고수머리가 경호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손님이 고장난 자동차를 끌고왔다. 고수머리가 부지런히 서두르며 경호를 보고 말했다. “젊은이, 뭘하고있나? 어서 저쪽에 가서 수리도구를 가져오게!” 경호는 장군의 명령을 받은 병사마냥 재빨리 움직였다. 고수머리에게 수리도구를 가져다주는 순간 경호는 가슴이 세차게 설레였다. 인젠 어데가나 그 누가 직업이 뭔가고 물어도 떳떳이 대답할수 있게 되였구나. “난 자동차수리공입니다!” (1989년)    
23    청춘의 충동 댓글:  조회:3810  추천:0  2013-12-14
단편소설 청춘의 충동 김희수 박창범선생은 그저께 4차까지 마신 술로 해서 아직도 배가 따끔따끔 아파나고 맑은 정신이 나지 않았다. 멍하기만 한 머리로 어떻게 수업강의를 마쳤는지 모른다. 그는 한손으로 통증이 심한 배의 왼쪽부위를 지긋이 누르고 다른 한손으로 정신이 나지 않은 머리를 탁탁 치면서 오늘부터 술을 끊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그렇게 맹세한지 한시간도 못되여 창범선생은 장사장의 손에 끌려서 안국장이랑 함께 동방불고기성에 앉아있게 되였다. 참, 일은 공교로웠다. 만약 장사장에게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던 그녀와 그렇게 관계가 얼기설기 뒤섞어지는 않았을것이다. 낮에 서시장거리에서 우연히 세번 부딪혔는데 그렇게 인상이 깊었던것은 그녀가 너무 예쁘게 생겼기 때문일것이다. 하필이면 그 좁은 길에 차가 들어섰고 그 차를 피한다는것이 그만 마주오던 그녀와 어깨를 부딪혔던것이다. 《아, 미안…》 창범선생이 미안함을 표시하자 그녀도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나갔다. 그뿐이라면 그녀에 대한 인상도 곧 지워졌을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날 상가를 돌다가 또 한번 그녀와 마주쳤고 거리에 나와 택시를 잡다가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를 보고 생긋 웃었다. 창범선생이 그녀를 생각하며 퇴근하는데 장사장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창범선생은 장사장과 함께 술마시러 가기가 제일 싫었다. 장사장은 한번 간다하면 적어도 3차로 노래방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애주가였다. 그 다음은 주머니사정이야 어떠하던지 상관없이 안마방을 찾는다. 장사장은 가는 곳마다 노래방이나 안마방의 보스들을 잘 알아서 외상놀이도 곧잘 한다. 《자, 박선생, 안국장, 군침이 슬슬 도는 불고기에 한잔 들어보세.》 장사장은 술잔이야 얼마나 크던지 상관없이 첫잔부터 마지막잔까지 단숨에 건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술장사였다. 장사장과 안국장이 건배할 때 창범이는 생수를 부은 잔을 들이켰다. 《아니, 박선생은 왜 첫잔부터 재미없이 이래?》 《나 오늘부터 술을 끊었어요.》 《아하, 박선생은 왜 아까부터 박선생답지 않게 술을 끊었다고 그래?》 술을 끊기로 맹세한 창범이는 오늘은 누가 끌던지 모두 거절하고 곧바로 하숙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방금 교문을 나서자 장사장이 지키고있은듯 그의 손을 잡아끌었었다. 《박선생, 박선생이 우리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느라 수고많았는데 오늘 내 그 〈원쑤〉를 갚아야 하겠소.》 《아니, 전에도 많이 대접받았는데 뭘 또…》 《사양하지 말게. 오늘은 내 박선생을 〈체포〉해 가야겠소.》 《싫어요. 난 술을 끊었어요.》 《뭐? 박선생이 술을 끊었다구? 이거 해가 서산에 뜨겠소. 하하하! 저기 안국장도 기다린다구. 어서 가세.》 장사장은 곧이듣지 않고 그냥 손을 잡아끈다. 장사장과 안국장은 모두 창범이가 가르치는 학급의 학부모였다. 장사장은 그 무슨 회사의 사장도 아니고 떠돌이장사군이였다. 안국장도 예전엔 모모국의 국장이였지만 지금은 개체장사군으로 탈바꿈해있었다. 《정말입니다. 난 정말 술을 끊었으니 안국장과 두분이 가세요.》 창범이가 막 뿌리치며 가려는것을 장사장이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장사장은 죄수를 압송해가듯 창범이를 억지로 택시에 밀어넣고 동방불고기성으로 왔던것이다. 《그저께 마신 술이 아직도…못견디게 배가 아픕니다. 난 이제부터 술을 끊었으니 누구도 나한테 술을 권하지 마십시오.》 《술을 끊었다구? 예로부터 술과 담배 그리고 도박과 오입은 못끊는다고 했어. 자, 첫잔만 들라구.》 《도박과 오입을 못끊는다고 했지요. 술과 담배는 끊을수 있어요.》 《하, 끊자고 마음만 먹으면 도박과 오입도 끊을수야 있지. 하지만 남자가 술마저 끊으면 무슨 멋에 살겠어. 자, 들어보세.》 《그저께 마신 술이…》 《누군 그저께 안 마셨어? 난 그저께 5차까지 마시고도 어제 또 3차까지 했어. 젊은 사람이 고까짓 술도 못하고 장가를 어떻게 가?》 《허허참, 술 잘 마시는것과 장가가는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박선생은 총각이니까 모르는군. 남자는 술이 강해야 장가를 가서도 마누라를 잘 다스린다구. 안 그런가. 안국장?》 장사장이 슬쩍 눈짓하자 안국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남자는 술이 강해야 밤에 하는 일도 잘할수 있지. 밤에 하는 일만 잘해주면 밥상부터 달라진다구. 마누라는 남편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차리느라고 오금에서 불이 나게 뛰여다닌다구. 어디 그뿐인가. 집안 일을 도맡아하면서도 힘든 줄을 모르고 남편의 손톱, 발톱 깎아주고 발까지 씻어준다구.》 《허허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겁니까? 내가 지금 곧 핸드폰으로 사모님께 〈사모님, 사모님은 안국장님의 발까지 씻어준다면서요? 정말 모범부인이시더군요. 나에게도 사모님처럼 미래의 모범부인이 될 색시감을 좀 소개해주세요.〉라고 여쭤볼까요?》 창범이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자 급해난 안국장이 핸드폰을 나꿔채며 술잔을 들었다. 《자, 롱담은 그만하고 술이나 들자구!》 창범이는 마지못해 한잔을 비우고나서 말했다. 《두분도 이젠 술을 좀 적당히 드십시오. 내가 건강신문에서 봤는데 술을 많이 마시면 정력이 약해진다더군요. 그리고 요즘 술과 담배로 40~50대의 분들이 성기능이 쇠퇴해져서 부인들이 욕구불만이더군요.》 그 말에 장사장과 안국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정말로 예전만 못해. 마누라곁에 가본지도 오래되지.》 《난 이젠 마누라하고는 잘 안되네. 밖에 나가 다른 녀자랑 하면 잘도 되는데 말이야.》 창범이는 두 학부모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면서 술좌석이 끝날 때까지 석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장사장이 오늘은 확실히 쏘겠다면서 2차로 버드나무다방에 들러 커피 마시고 3차로 노래방에 간다고 일어설 때 창범이는 사양하고 하숙방에 돌아가려고 했다. 《너무 늦었는데 두분만 가세요. 난…》 《박선생이 왜 이래? 누가 말리는걸 보자구그래?》 《총각선생이 뭐가 근심이야? 우리처럼 집에서 마누라랑 애새끼랑 기다리는것두 아니구.》 《난 술이 바빠서…》 《그럼 맥주 마시지 말고 목청만 뽑아보게나. 불야성노래방에 기막히게 예쁜 아가씨들이 왔다는데 한번 가보세.》 장사장과 안국장은 강제로 창범이를 택시에 밀어넣고 불야성노래방으로 달려갔다. 노래방에 들어서자 장사장을 아는 마담이 호들갑을 떨며 친히 8호방으로 안내했다. 마담은 또 얼마후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섹시한 아가씨 셋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얼굴이며 몸매가 제일 빼여난 아가씨를 장사장에게 소개했다. 《장사장님, 이 앤 시체말로 얼짱, 몸짱, 노래짱이예요. 얘, 미향아, 장사장님 잘 모셔라. 그리고 너들도 이분들 잘 모셔. 그럼 여러분, 유쾌하게 노세요.》 창범이는 미향이란 그녀한테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미향이가 바로 낮에 그한테 세번 웃음을 선물했던 그녀였던것이다. 마담이 나가고 미향이란 아가씨가 장사장의 옆에 앉으려 하자 장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사양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박선생이요. 그러니 셋짱(얼짱, 몸짱, 노래짱)아가씨는 이 박선생이랑 파트너가 되는게 좋겠소. 이 박선생은 미국류학까지 갔다온 영어선생으로서 전도가 류망이오!》 장사장은 전도가 유망하다는 말을 우습게 번지면서 미녀를 창범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창범이가 총각선생이란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자 미향이는 창범의 곁에 바싹 붙어앉으며 애교를 부렸다. 《아까 첫눈에 알아봤어요. 낮에 거리에서 세번 마주쳤던 분이죠?…선생님께서 너무 미남이기에 제가 기억하고있었죠. 제 소개부터 먼저 하죠. 전 미향이라고 불러요. 오늘밤 선생님께서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미향이는 창범에게 맥주를 부어주고 《건배》하며 잔을 마주쳤다. 잔을 비우자 또 창범의 입에 포도를 넣어주었다. 《선생님은 어떤 노래를 좋아하세요? 제가 선곡해드리죠.》 미향이와 창범이는 함께 《강촌에 살고싶네》를 불렀다.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는 꽃피고 새가 우는 논밭에 묻혀서… 미향의 목소리는 확실히 맑고 아름다웠다. 다음에 미향이는 절주 빠른 노래를 불렀다. 창범이는 노래실력은 괜찮았지만 가사를 몰라서 마이크를 놓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장사장과 안국장은 젊은이들처럼 머리를 정신없이 흔들어대며 춤을 추고있었다. 한곡이 끝나 장사장이 마이크를 잡자 미향이가 다가와 창범의 손을 잡아끌었다. 춤이 시작되자 미향이는 두팔로 창범의 목을 꼭 껴안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폭 파묻었다. 빙글빙글 돌아갈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창범의 코끝을 간질거리며 이름할수 없는 향기를 물씬 풍겼다. 창범이는 그 향긋한 향기에 머리가 아찔아찔했다. 그는 그녀에게서 좀 떨어지려고 그녀를 밀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자 그녀는 두팔에 힘을 주며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박선생님, 전 선생님이랑 그냥 이렇게 딱 붙어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손을 좀 푸오. 저 사람들이 보겠소.》 《아이, 박선생님은 정말 총각이시네. 전 이런 선생님이 더 좋아요.》 미향이는 생글생글 웃다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가 뜨면서 살짝 추파까지 보냈다. 마침 노래가 끝나서 창범이는 자리에 돌아왔다. 창범이는 미향이가 권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번에 안국장이랑 노래를 부르고 장사장이랑 춤추러 나갔다. 미향이가 손을 잡아끄는것을 창범이는 사양했다. 그러자 미향이는 창범의 무릎에 앉아 맥주를 권하며 안주를 입에 넣어주었다. 창범이는 그녀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일어서서 화장실로 나갔다. 그가 소변을 보고 나오려는데 어느새 따라 나왔는지 미향이가 다가와 귀속말로 가만히 속삭였다. 《박선생님, 오늘밤 절 아무데나 데려가 주세요. 네?》 《?…》 《박선생님 정말 멋지다! 선생님, 절 아무데나 데리고가 주실래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께요.》 미향이는 요염하게 웃으며 유혹했다. 아니, 이 녀자가 당돌하게… 《아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오.》 창범이는 미향이를 떠밀었다. 그러나 미향이는 창범이의 팔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머, 박선생님은 정말 순진한 총각인가봐. 전 이런 박선생님이 더 좋아요.》 《이걸 놓소!》 《박선생니임-》 《이걸 놓으란 말이요!》 창범이는 미향을 확 뿌리치고 장사장과 안국장한테 간다는 말도 없이 노래방에서 나왔다. 취하여 이곳이 어느 위치인지 알수 없었다. 택시를 불러 타고 《공신으로…》하고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운 일도 있는가. 어제밤 퍼마신 술에 골은 나머지 늦잠을 자고있던 창범이가 《아저씨, 일어나》하고 누군가 흔들어깨우는 바람에 눈을 뜨고보니 서너살되는 남자어린애가 그의 귀를 잡아흔들고있었고 그 옆에는 어제밤 불야성노래방에서 함께 춤을 추던 아가씨가 얌전하게 앉아있는것이 아니가! 아니, 이건…창범이는 취하여 아가씨의 집에 잘못 왔나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자신의 하숙방이 옳았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는… 《할머니께서 식사하시래요.》 그가 깨여나자 아가씨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어린애를 데리고 객실로 나갔다. 창범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세수부터 했다. 눈길이 마주쳐도 아가씨는 모르는체 했다. 주인집할머니가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인사시켰다. 《어제낮에 우리 집에 하숙을 정한 새기네. 그리고 이쪽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아직 총각이라오.》 워낙은 그랬구나. 창범이는 저런 지저분한 아가씨와 한집에서 살게된것이 불쾌했다. 비록 방은 서로 다르지만…아가씨가 례절스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전 김향옥이라고 불러요.》 향옥이라고? 어제밤 노래방에서는 미향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더니…그래, 노래방아가씨들은 모두 가명을 쓰니까 미향이란건 가명일게고…그럼 향옥이는 진짜 이름일가? 아무튼 미향이든 향옥이든 그 아가씨가 그 아가씨일텐데 사람이 어찌 이렇게 판판 다른 두개의 얼굴을 가질수가 있을가? 이 아가씨가 어제밤 노래방에서 자신의 목을 꼭 껴안고 동동 매달려 춤을 추다가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박선생님 정말 멋지다! 선생님, 절 아무데나 데리고가 주실래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께요.》하고 요염하게 웃으며 유혹해오던 그 아가씨란 말인가?! 낮에는 향옥이란 이름을 가지고 숙녀인체 하고 밤에는 미향이라는 이름으로 창녀노릇 하는 두 얼굴의 아가씨! 창범이는 경멸의 눈길로 아가씨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아가씨, 날 모르겠소?》 《모르겠는데요. 우리 언제 만난적 있나요?》 아가씨는 정말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했다. 그래, 노래방아가씨라는 정체를 숨기고싶겠지. 흥! 아가씨는 어린애를 데리고 자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리혼한 녀자인가? 저렇게 어린 자식을 데리고있으면서도 이 사내 저 사내에게 육체를 팔다니? 한심하군, 한심해! 창범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밥상에 마주 앉았다. 주인집할머니가 반찬을 데워오면서 물었다. 《박선생, 저 새기가 어떻소? 이쁘고 얌전하고…》 《할머니, 왜 저런 녀자를 받아들였습니까?》 《저런 녀자라니? 난 박선생의 색시를 만들가 하고 들였는데…》 《할머니두, 저런 녀자가 어떻게 내 배필이 될수 있습니까?》 《왜? 어린애가 달렸다구 그러오? 흐흐, 총각선생, 저 아가씬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라오.》 시집도 안간 처녀가 아이까지 있다면 미혼모인가? 아이 아빠한테 버림받고 화김에 화류계에 몸을 던진 녀자? 아니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고 이 남자 저 남자한테서 기생하며 살아가는 녀자? 《할머니, 저 아가씨가 어떤 녀자인지 알고나 그러십니까?》 창범이가 아가씨의 정체를 밝혀놓으려는데 마침 아가씨가 다가와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할머니, 이 애를 좀 봐주실래요? 어디 좀 나갔다 오자구 그래요.》 《오냐, 그래라.》 할머니가 선선히 대답하자 향옥이는 아이를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돌아서 나가는데 얼굴도 이뻤지만 잘 빠진 뒤모습이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인물이 아깝군! 미혼모라니…더구나…》 창범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할머니가 싱그레 웃으며 말했다. 《미혼모라니? 그 아가씨의 몸매와 걸음걸이를 보오. 어디 애 낳은 녀잔가?》 《몸매를 보고 어떻게 애 낳은 녀잘 가려요? 요즘 세월엔 몸매를 잘 가꿔서 처녀같은 아줌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에그, 총각선생은 어째 그리 녀자 보는 눈이 없소. 저 아가씨는 처녀요. 순수한 처녀라니깐!》 아니, 이 할머니가 벌써 로망이 들었나? 애 엄마를 처녀라고 우겨대다니? 《총각선생도 빨리 장가를 가야지 요즘 세월엔 녀자들이 금값이 돼서 저렇게 참한 처녀도 드물다오. 저 건너 집의 아줌마는 애가 달린 리혼한 녀자인데 글쎄 총각들을 셋이나 줄 세워 놓고 이마들 탁탁 튕기며 고른다오.》 창범이는 픽 웃었다. 그러다 다시 탄식했다. 그는 대학교 때 약혼녀가 외국으로 시집을 간후로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고있다가 이제 30대중반에 들어서니 마음에 드는 처녀를 찾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우선 돈냄새부터 맡는 처녀들에게 가진것이 없는 창범이는 리상적인 배우자감이 못되였다. 창범이쪽에서도 그런 처녀들은 경멸의 대상이였다. 할머니가 뭐라고 자꾸 말했지만 창범이는 더 대꾸하지 않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싫컷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누군가 귀를 잡아흔드는 바람에 눈을 뜨고보니 남자애가 《아저씨, 점심 먹어.》하며 자기를 깨우고있는것이 아닌가. 달콤한 잠을 깨운것이 괘씸했지만 어린것이 하는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욕이 나가지 않았다. 어린것을 안고 나가니 할머니와 향옥이는 밥상에 마주앉아있었다. 향옥이는 창범이를 보고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가르치고있는가, 조선족학생들이 줄어든다는데 그 학교정황은 어떤가고 자세히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 싫어 침묵을 지켰는데 할머니가 《이 총각선생은 영어를 가르친다우》하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자 향옥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반짝 빛나더니 《박선생님, 저한테 영어를 가르쳐주실래요?》하고 애걸하듯 간절한 눈길로 바라본다. 창범이는 놀랐다. 노래방아가씨가 영어를 배우겠다니? 영어를 배워서 뭘 하려고? 돈많은 외국남자를 꼬시겠다는건가? 《아이참, 보수는 후하게 드릴께요. 꼭 가르쳐주세요 네?》 창범이가 대답이 없자 향옥이는 안달아나서 바짝 달라붙었다. 흥, 돈은 얼마든지 있다 그 말이지? 사내들한테 한번 몸을 던지면 보수따윈 문제없다 그 말이지? 흥! 창범이는 코웃음을 쳤다. 《에그, 총각선생, 어서 대답하게. 이렇게 이쁜 처녀가 청드는데 어서 들어주게.》 할머니가 곁에서 보기가 민망한지 창범이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 창범이는 정말로 《그런 녀자》한테 가르쳐주기 싫었다. 그는 갑자기 묘한 핑계거리를 생각해냈다. 《난 밤에밖에 시간이 없는데…》 밤에는 이 아가씨가 노래방에 나가야 되니까 할수없이 제쪽에서 못하겠다고 그만둘것이 아닌가? 그런데 창범의 그 말이 끝나기 바쁘기 향옥이가 손벽을 치며 좋아서 퐁퐁 뛰는게 아니겠는가? 《좋아요. 저도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밖에 시간이 없는데요. 잘 됐어요. 선생님, 그럼 잘 가르쳐주세요. 부탁해요.》 아니, 이 아가씨가 낮에 출근한다니? 《직업》을 바꿨는가? 밤에만 《출근》하는 노래방아가씨를 그만두고 어느 사내가 전화로 부르면 낮에만 달려가 《일》하는 콜걸? 그나저나 이건 큰일이다. 싫은대로 이 아가씨에게 영어를 가르쳐야하다니… 그날 저녁부터 향옥이는 창범이를 《선생님》, 《선생님》하며 열심히 영어공부에 달라붙었다. 창범이는 향옥의 열정에 탄복되였다. 그녀는 시간을 어길세라 매일 저녁마다 제시간에 꼭꼭 와서 가르침을 받았을뿐만아니라 아침 짬을 타서도 모르는것을 물어가며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웠다. 《그런 녀자》가 배움에 이처럼 열성을 몰붓다니…이렇게 참한 녀자가 어떻게 되여 그런곳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을가? 창범이는 탄식했다. 아깝다, 아까워! 《그런 녀자》가 아니라면… 창범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향옥이한테 끌리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그녀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겠지만 특히 그녀의 향학열에 탄복되였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좋아졌다. 그녀의 그 깊이를 알수 없는 호수같이 그윽한 눈길이 좋았다. 그녀의 부드럽고 친절한 말씨가 좋았다. 그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있고싶었다. 그러다가도 도리머리질 했다. 내가 《그런 녀자》한테 끌리다니? 더구나 아이까지 달린…이래선 안되는데…하지만 향옥이와 마주하면 그녀가 《그런 녀자》란 생각이 말끔히 없어졌다. 《그런 녀자》면 어떤가 말이다. 그녀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한다면 역시 훌륭한 녀자가 아니겠는가. 어느날 주인집할머니가 창범이를 보고 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총각선생이 나한테 한턱을 내야겠네.》 《제가요? 무슨 턱을…》 《총각선생이 향옥처녀를 좋아하고있잖아. 이 늙은이가 그런 기회를 마련해줬는데 그래 보답이 없어서야 되겠소?》 《아…네…》 《총각이 쑥스러워하긴. 처녀도 총각을 좋아하는 눈치던데 빨리 다그치게.》 창범이는 꼭 향옥이한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날, 창범이는 교무주임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2차로 노래방까지 끌려갔다. 향옥이한테서 전화가 와서 곧 가마하고 말해놓았기에 2차는 아니 가려고 했지만 교무주임이 《노래 잘하는 창범선생이 축하노래 한곡 불러달라》고 어찌나 잡아끄는지 하는수 없이 따라 가고말았다. 또 불야성노래방이였다. 창범이가 먼저 한곡 부르고있는데 아가씨들이 뒤늦게야 들어왔다.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던 창범이는 갑자기 마이크를 쥔 손을 떨었다. 아가씨들속에 미향이, 아니 향옥이도 끼여있었던것이다. 아까는 영어공부시간이 늦었다면서 빨리 오라고 전화하던 향옥이가 여기 노래방에 나타나다니? 《본업》을 다시 시작할 작정인가? 아니면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화가 나서 여기로 온것일가? 향옥이는 손님들을 둘러보니더니 곧바로 창범이한테로 다가왔다. 《어머, 멋진 선생님이 또 오셨네.》 향옥이는 리별했던 련인을 다시 만난듯 반기면서 창범의 목을 두손으로 꼭 껴안았다. 하숙집에서는 창범이와 손이라도 부딪칠세라 조심스레 행동하던 향옥이가 노래방에서는 누가 보는 앞에서도 이처럼 대담한 행동을 한단말인가? 창범이는 몹시 불쾌하여 향옥이를 슬며시 밀치며 물었다. 《아가씬 누구요?》 《어머, 귀인은 잊음이 헤픈가봐. 먼저번에 저랑 파트너가 되여 춤도 함께 추고…그랬잖아요.》 《그랬던가? 난 기억에 없는데…》 《어머, 선생님두, 일반적으로 우린 손님들을 다 기억 못해도 손님들은 우릴 기억하는데…아마도 제가 매력이 없었던가봐요. 선생님, 전 미향이예요. 미향, 기억 안나요?》 《미향? 그래 노래방에 왔으니 이름도 미향이라 바꿔야겠지. 하하하!》 창범이는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미향이를 뿌리치고 노래방에서 나왔다. 창범이는 배반당한듯 가슴이 쓰려났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그래 《그런 녀자》를 맘속으로 사랑했었단 말인가? 바보같이 못난 자식! 창범이는 스스로 자기를 비웃었다. 더러운 년!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 구석에 가서 왝왝 토해버렸다. 그는 휴지를 꺼내 입을 닦고는 손을 들어 택시를 불렀다. 하숙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향옥이가 그를 맞아주었다. 《어머, 선생님, 인제 오셨군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요걸 딱 몰라서…》 《날 기다렸다구? 흥, 왜 노래방에서 더 놀아대지 않고 벌써 왔소?》 《노래방이라니요? 전 노래방에 간적이 없는데…》 향옥이는 아닌 밤중에 무슨 홍두깨냐는듯 의아한 눈길로 창범이를 바라본다. 창범이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무슨 녀자가 이처럼 낯가죽이 두껍담? 《그래 이름을 미향이라고 고치고 옷을 바꿔 입으면 내가 못 알아보는줄 아오? 아까는 노래방에서 나한테 매달려 갖은 아양을 다 떨더니 왜 집에 와서는 내숭을 떠는거요? 난 아가씰 경멸하오! 아가씨가 노래방아가씨라고 경멸하는것이 아니라 아가씨가 야누스처럼 두개의 얼굴을 가진 가면을 쓴 위선자이기때문이요.》 《무슨 말씀인지…혹시 선생님이 노래방에서 저랑 똑같이 생긴 미향이란 아가씰 만나셨어요?》 《아직도 시치미를 떼겠소? 미향이가 향옥이고 향옥이가 미향이지 그래 딴 사람이겠소?》 《그 미향이가 바로 향미일거예요. 저의 쌍둥이언니 향미…》 《뭐?! 쌍둥이…향옥이가 쌍둥이라구?!》 창범이는 깜짝 놀랐다. 내가 왜서 그 생각을 못했을가? 《향미언닌와 전 쌍둥이자매인데 향미언니는 불행하게도 처녀몸으로 아이까지 낳은후 타락하여 자기의 인생이 거꾸로 됐다면서 이름자를 거꾸로 고치고 유흥가를 돌아다니며 아가씨질 했어요. 아이는 저한테 맡기고…》 워낙은 그런 일이였구나. 창범이는 그만 향옥의 앞에서 면구스러워 어쩔줄 몰랐다. 《향옥이, 미안하오. 내가 영문도 모르고 마구 욕부터 했으니…》 《미안하면 저한테 영어를 더 잘 가르쳐주세요.》 향옥이가 방그레 웃었다. 《그거야 응당 그래야지…》 아, 인생은 워낙 이렇게 아름다운것이였구나! 창범이는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는것 같았다. 며칠후 하숙집에서 영어공부를 하다가 향옥이가 창범이를 보고 말했다. 《우리 나가 바람이나 쏘일까요?》 《좋아.》 창범이와 향옥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부르하통하로 나갔다. 주말이라 강변엔 낚시질을 하는 사람, 배놀이를 하는 사람, 산보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강가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나란히 걸어갔다. 창범이는 어쩐지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기회에 사랑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다가도 용기가 부족하여 입밖에 내보내지 못하고 도로 삼켜버리기를 몇번, 그러다가 크게 용기를 내여 《저…향옥이…》하는데 갑자기 향옥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여기까지 왔다구요? 저는 배놀이하는 부근에 있어요. 제가 보인다구요?》 향옥이는 핸드폰을 끄더니 뒤를 돌아다보았다. 무지개다리 쪽에서 몸집이 웅장한 사내가 계단을 밟고 내려오고있었다. 그 사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창범이네 앞까지 달려왔다. 향옥이가 그 사내를 보고 방긋이 웃더니 창범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소개하지요. 이 분이 바로 저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박선생이예요.》 창범이는 또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분은 향옥이의 오빠가 틀림없을꺼야. 향옥이가 나를 오빠한테 소개하는구나. 이러면 벌써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게 아닌가.) 그런데 다음순간 향옥이가 《그리고 이분은…저의 남자친구예요. 이제 곧 결혼하게 될…》하고 그 사내를 가리키며 창범이한테 소개하는게 아닌가?! 그 순간 창범이는 몽둥이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듯 멍해졌다. (그녀에게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걸 왜 생각 못했을까? 그런줄도 모르고 제 좋은 멋에…얼마나 바보였는가.) 창범이는 갑자기 이 세상이 어두워진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듯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듯 했다. 그는 그 사내가 《수고 많이 했습니다!》하고 손을 잡을 때 어떻게 대꾸했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내가 《저기 포장마차에 가서 한잔하며 이야기합시다.》하고 끌어서 따라 갔던것 같았고 거기서 술만 연신 들이켰던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 장사장을 만나서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가 3차만인가 4차만인가 무슨 노래방인가 간것 같았는데 그 이상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새벽에 목이 말라 깨여난 그는 깜짝 놀랐다. 자기는 낯선 침대에 누워있는데 글쎄 자기곁에 향옥이가 누워있지 않는가. 그것도 발가벗은 향옥이가…그리고 자신의 몸도 어느새 발가벗겨져 있지 않는가.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가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는데 어느새 눈을 뜬 향옥이가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깨나셨어요? 목이 마르지요? 제가 생수 떠다드리죠.》 《아니, 여기가 어디요? 내가 어떻게 여기에 누워있지?》 《어머, 선생님두, 기억 안나세요? 선생님께서 어제밤에 장사장이랑 함께 노래방에 왔는데 몹시 취하셨더군요. 저를 보더니 〈향옥이, 향옥이…〉하고 부르더니 막 토하고…그래서 제가 저의 세집에 모시고 온거죠.》 《아니, 내가…이게 무슨 실례…그럼 거기는 미향이?》 《이제야 절 알아보시는군요. 온밤 저를 향옥이라고 부르시더니…호호호…》 창범이는 너무도 창피하여 얼굴을 들수 없었다. 미향이가 속옷을 입더니 일어나 생수를 떠왔다. 창범이는 생수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랭수가 들어가자 속에서 일던 불이 꺼지며 살것 같았다. 정신이 들자 또 자신이 한 행동이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내가 지난밤 추태를 보이고 또 미향이와 발가벗고 한 이불을 덮고 잤다니…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혹시 내가 취하여 미향에게 무슨 일을 저지른건 아닐까? 《내가…혹시…미향에게 불순한 행동을 한건 아닌지…》 《어머, 자기가 한 행동도 모르세요?》 《난 정말 기억나지 않는데…》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책임을 회피하려는건 아니겠죠?》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정말 미안하오. 난…난…》 창범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자 미향이가 깔깔 웃어댔다. 《호호호. 선생님은 정말 순진하시네. 제가 책임지라는 말을 안 할테니 안심하세요. 지난밤에 제가 취한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저의 침대에 눕혔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향옥이…향옥이!〉하며 저를 막 껴안더군요. 전 피할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좋아서 옷을 벗고 선생님에게 맡겨버렸어요. 전 알아요. 선생님은 저의 쌍둥이동생 향옥이를 사랑하죠?》 《…》 《향옥인 착하고 현숙한 애지요. 제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 애는 절 위로해주었고 제가 갈팡질팡하여 아이마저 버리려고 할 때 그 애는 선뜻이 나서 제 아이를 맡아 키웠죠. 이젠 미국류학을 갔던 그 애의 미혼부가 돌아왔으니 저의 아이를 제가 찾아서 키워야 하겠어요. 엄마구실을 못한 저의 죄를 반성하고 죄없는 아이를 버린 그 빚을 갚아야하지요.》 미향이의 예쁜 눈에서 이슬이 반짝거렸다. 창범이는 그녀에게도 모성애가 있구나 하고 느끼면서 그녀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였다. 미향이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이 세상 남자들을 모두 저주하며 노래방아가씨가 되여 남자들의 팁을 꼬셔냈죠. 하지만 여태껏 어느 남자에게나 몸을 허락한 적은 없었어요. 몸만은 팔지 않았죠. 그런데 선생님만은 달랐어요. 선생님처럼 순진한 남자는 처음 봤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꼬시려했지요. 그러면서 저도 몰래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거죠. 선생님, 사랑해요!》 미향이는 방그레 웃으며 다가와 창범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창범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미향이를 밀치며 떠듬거렸다. 《미…미안하오. 난…》 《호호호. 선생님, 미안해할것 없어요. 전 알아요. 저같은 녀자가…더구나 아이까지 달린 녀자가 선생님의 배필이 안된다는것을. 전 선생님께 부담을 주지 않겠어요. 선생님, 시름놓고 가세요. 하지만 제가 수요된다면 아무때나 불러주세요.》 《미향이…》 창범이는 입을 열었으나 무슨 말을 더 할수 없었다. 그는 미향이를 사랑하고싶었으나 그런 용기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창범이는 미향이가 지어주는 아침밥을 먹고 그 길로 등교했다. 오후에 퇴근하여 하숙집에 돌아오니 향옥이가 짐을 꾸리고있었다. 미혼부가 왔으니 여기서 떠나려는게로군. 하고 생각하면서 창범이는 짐을 꾸리는것을 거들어주었다. 주인집할머니가 아쉬운듯이 말했다. 《에그, 저 새기를 박선생과 약혼시키자 했더니 임자가 있었군. 박선생, 저 새기가 래일 새집에 이사하고 다음달에 결혼잔치를 한다오.》 《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향옥이, 축하하오!》 창범이는 겉으로는 대범하게 말했으나 속은 알짝지근했다. 할머니는 향옥에게 마지막 끼니를 대접시킨다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짐을 다 꾸린 향옥이는 창범이를 보고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수고했어요.》 《아니, 수고는 뭘…》 《저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또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창범이는 같은 쌍둥이인데 왜 이렇게 다를가? 미향이도 향옥이처럼 순수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하다가 문뜩 아이가 보이지 않는것을 보고 물었다. 《아이는?》 《언니가 데려갔어요. 이제부터 자기가 키우겠대요. 이제 곧 결혼하는 저에게 더는 부담을 줄수 없다면서 데려갔어요. 사실 언니는 아주 훌륭한 녀자예요. 거기에 비하면 전 정말 나쁜 녀자예요. 언니가 타락하게 된것도 모두 저때문이죠.》 《향옥이때문이라니. 그건?》 《몇년전에 저의 남자친구가 미국류학을 떠나겠는데 자금이 모자랐어요. 그래서 친구랑 술상에서 만나서 노래방에도 몇번 함께 다니며 풋 면목을 익힌 최사장한테서 사정을 말했더니 선선히 2만원을 꿔주더군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떠난후 최사장은 저한테 와서 치근거리면서 꾼 돈을 받지 않겠으니 자기와 동침하자는것이였어요. 제가 과분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깡패를 추겨서 저의 다리를 잘라 놓게 하겠다고 위협했어요. 그자가 평소에 어중이떠중이 깡패무리와 사귀고있다는것을 알고있는 저는 무서워 벌벌 떨었어요. 저한테서 모든 사연을 들은 언니가 격분하여 나섰어요. 언니는 그날로 최사장을 만났는데 물론 최사장은 언니를 저인줄로 알고있었죠. 언니는 어느 다방에서 그자를 만나서 그 따위 위협은 안 통한다, 빚은 꼭 물겠으니 시간을 달라, 하고 말했죠. 그자는 교활하게 웃더니 어느새 언니가 마시는 커피에 몽혼약을 탔어요. 그리고 언니가 혼미해지자 택시에 싣고 가서 언니의 순결을 빼앗았어요. 그때 언니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남자친구에게마저 주지 않았던 처녀의 순결을 이렇게 빼앗겼던것이였어요. 언니는 너무도 통분하여 울었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라 이것으로 빚을 청산하자고 했지요. 하지만 그자는 한번으론 안된다면서 한달동안 동거해야 빚을 안받겠다는 조건을 내놓았어요. 언니는 이미 젖은 몸이 물에 들어가는걸 꺼리랴 하고 그자의 요구를 들어줬어요. 한달후 빚을 청산하고 그자의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이 일을 알게 된 언니의 남자친구는 언니를 더러운 년이라고 욕하면서 차버렸어요. 실련의 고통에 모대기던 언니는 자살할 마음까지 먹었어요. 언니가 유서까지 써놓은것을 본 저는 언니를 붙잡고 네가 죽으면 나도 함께 죽겠다, 우리는 같은 날에 태여난 쌍둥이니까 죽어도 같이 죽자, 하고 말하며 통곡했어요. 그러니까 언니는 유서를 찢어버렸는데 그후에도 자살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언니는 문뜩 자신이 임신한걸 발견했어요.》 워낙은 그랬구나! 창범이는 쌍둥이자매가 당한 봉변을 듣고 한숨을 내쉬였다. 향옥이가 말을 이었다. 《자신의 배속에서 작은 생명이 꿈틀거리는것을 발견한 언니는 그 생명을 살려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자신의 몸은 이미 자신의 생명 하나뿐만이 아니라는것을 발견하는 순간 언니는 자살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그 작은 생명을 사랑하게 되였어요. 결국 언니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어요. 그후 언니는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살아가려고 마음먹고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아버렸어요. 그러다가 한 남자의 출현으로 언니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였는데…》 향옥이는 말을 잠깐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언니는 아는 사람의 중매로 리혼하고 아이가 없는 남자를 만났어요. 처음에 언니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가 주동적으로 찾아와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언니를 꼬셨어요. 언니는 그 남자를 상대하기 싫어했지만 그 남자는 혼자서 달콤한 말을 늘여놓았어요. 언니는 그 남자를 랭대하면서 쫓아냈지만 그 남자는 물러가지 않고 날마다 찾아와서 끈질기게 달라붙었어요. 그 남자는 우리 먼저 결혼상대로가 아니라 우정을 주고받는 보통친구로 사귀자, 그러다가 서로 상대방을 료해한후에 다시 보자, 하면서 언니의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렸어요. 그 남자는 기회만 있으면 언니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온갖 감언리설로 언니의 마음을 녹였어요. 키 크고 준수한 용모에 청산류수같은 말솜씨를 가진 그 남자에게 언니는 차츰차츰 마음이 흔들렸어요. 언니의 마음이 움직이는것을 발견한 그 남자는 다시 언니에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언니는 이미 그 남자에게 마음이 빼앗겼음에도 나는 미혼모이니 당신과 짝이 기운다, 당신은 나보다 훌륭한 녀자를 찾아가라, 하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내 눈에 당신은 가장 훌륭한 녀자다, 나는 당신을 생명처럼 사랑하면서 당신의 아이를 내 친아들처럼 키우겠다, 하고 말하며 언니를 포옹해주려고 두 팔을 벌렸어요. 그러자 언니는 감동되여 그 남자의 품에 안겨버렸어요. 하지만 그 남자의 속셈은 그게 아니였어요. 그 남자는 언니의 미모에 반하여 언니가 미혼모라는것도 꺼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던거예요. 이렇게 그 남자에게 속아넘어간 언니는 그 남자와 동거했어요. 언니는 그 남자와 동거하면서 결혼을 재촉했지만 그 남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어요. 언니가 자꾸만 결혼등기를 하러 가자고 재촉하자 그 남자는 왜 이리 시끄럽게 놀아? 계속 이러면 너와는 끝이다! 하면서 발칵 화를 냈어요. 그 남자는 언니 모르게 다른 녀자를 사귀고있었던거예요. 그 사실이 언니한테 들통나자 그 남자는 제 쪽에서 성을 내면서 언니와 관계를 끊어버렸어요. 그 남자의 배반이 언니에게 준 타격은 너무 컸어요.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은 언니는 이때부터 모든 남자들을 저주하게 되였어요. 그리고 타락하여 노래방아가씨로 되여 남자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는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언니가 변하자 제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언니의 아이를 도맡아 키웠어요.》 향옥이는 한숨을 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언니는 타락한게 아니예요. 언니는 본바탕이 선량하고 순결하고 착한 녀자예요. 지금도 언니는 변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언니의 마음은 저보다 더 깨끗해요. 저는 겉보기엔 남들에게 좋은 녀자로 보이지만 속마음은 허위적이고 리기적이지요. 언니가 저때문에 그렇게 됐는데도 저는 남들에게 〈처녀의 몸으로 타락한 언니의 아이를 키워주는 훌륭한 녀자〉라는 이미지를 자랑하고싶었어요. 선생님, 제가 이렇게 선생님께 속마음을 다 말하는것은…》 향옥이는 기대에 찬 눈길로 창범이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주인집할머니한테서도 듣고 저도 눈치챘어요. 선생님께서 저한테 마음을 두고있다는것을요. 전 선생님을 다는 료해하고있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여태까지 관찰을 통해 선생님은 훌륭한 남자라는것을 보아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결혼할 상대가 있고…아니 제가 약혼한 몸이 아니라 해도 저같은건 선생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훌륭한 녀자가 못돼요. 선생님께서 진짜 녀자 보는 눈이 있다면 저같은 녀자보다 우리 언니 미향이를 사랑해주세요.》 향옥이의 이야기는 창범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다. 창범이는 자기가 여태껏 30여년을 살면서 이 사회에 대하여, 녀자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있었다는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어느 주말, 창범이가 하숙집에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있었다. 그때 예쁘장한 녀인이 커피를 따라 가지고 와서 창범에게 권했다. 《선생님, 좀 쉬면서 가르쳐요.》 그러자 아이가 녀인을 흘겨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엄만 나빠. 선생님한테만 커피 갖다드리고…흥! 나보다 선생님을 더 이뻐하면서…》 그러자 창범이도 미향이도 유쾌하게 웃었다. (2005년)  
22    숨결 댓글:  조회:3448  추천:0  2013-12-14
단편소설   숨 결   김희수     그날 아침 공장사람들은 하나, 둘 출근하는 길로 벽보를 둘러쌌다. 홍상철이도 사람들 틈에 끼여 제일 첫머리에 있는 자기의 이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얼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홍동문 이번에도 주력이군. 영광스럽겠네!》 리회계가 상철이의 어깨를 툭툭치며 웃었다. 상철이가 한마디 툭 쏘아주려는데 몇몇 로동자들이 걸어왔다. 《허허, 이번엔 〈앉은 놈〉들이 로동개조를 든든히 하게 됐군!》 《그만큼 편안했으면 내려와 뼈다구를 좀 놀려보는것도 마땅하지!》 《제길, 한달이 아니라 한 일년 붙들어뒀으면 좋겠는걸!》 공장은 추석월병철이면 농촌의 모내기철처럼 분망하다. 추석을 한달 앞두고 돌격적으로 월병생산에 들어서는데 이때면 《앉은 놈》들도 절반은 의자에서 엉뎅이를 털고 일어나 의무로동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은 두해에 한번밖에 없으나 (워낙 한해에 한번씩인데 륜번으로 사람을 바꾸다보니 평균 한사람에게 두해에 한번씩 차례지는 셈이다.)앉은 놈들은 거의 모두가 직장에 내려와 밀가루먼지를 뒤집어쓰기 싫어 병을 핑계댄다든가 집에 무슨 딱한 사정이 있다든가 하며 구실을 만들어 가지고 몸을 빼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제1, 2, 3 《쏘파분》들께서 토론하여 명단을 작성했던것이다. 이런 연고로 홍상철이는 노기등등하여 《제일쏘파분》을 찾아가 따지고들었다. 《전 작년에 내려갔는데 왜 또 내려가라는겁니까?》 《제1일쏘파분》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고 상철이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사실 나도 이번엔 홍회계를 내려보내지 않으려고 했소. 그런데 직장에서 홍회계의 이름을 특별히 찍어서 요구했소. 그러니 고생스럽지만 좀 수고해주오. 허허허!》 직장에서 홍상철의 이름을 찍어 요구했다는것은 사실이였다. 홍상철이가 어찌나 몸을 내번지고 일을 잘했던지 이번해에는 여러 작업반장들이 서로 자기반조에 보내달라고 다투어 요구했던것이다. 《전 제가 내려가는데 불만이 있어 그러는게 아닙니다. 왜 리회계같은 사람은 몇년째 한번도 내려가지 않습니까?》 《허허참, 모든 일이 어떻게 천편일률로 되겠소. 홍회계, 한달만 수고해주오!》 말해봤자 헛수고였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 미리 알고있은 홍상철이는 구태여 더 따지지 않고 공장장사무실을 나와버렸다. 누가 그랬는지 공장사람들을 두패로 나누어 《앉은 놈》과 《선놈》으로 갈라놓았다. 《앉은 놈》이란 의자가 차례진 지체높은 분들을 가리키고 《선놈》이란 직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을 말하는것이다. 《앉은 놈》을 또 쏘파, 나무의자, 절반의자로 세등급을 내였다. 쏘파에 의젓이 앉은 분들은 상등분들이고 나무의자에 편안히 앉은 분들은 중등분들이니 절반의자에 쪼크리고 앉은 분들은 하등분들이라 해야겠다. 그런데 하등분들을 어째서 절반의자라고 하는가? 반쪽의자를 깔고 둘이서 한의자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는다는 뜻인가? 아니, 하등분들도 중등분들과 마찬가지로 나무의자에 앉아 사무를 본다. 다르다면 상등쏘파분들의 지시를 받는다든가 하층 선놈들의 부름을 받는다든가 할 때면 즉시로 의자에서 엉뎅이를 털고 일어나 《앞으로 갓!》을 해야 하는것이다. 절반의자는 전공과 접수실인원 그리고 창고보관원을 례로 들수 있다. 전공은 말로는 절반의자라고 하지만 기실 위세를 부리는 면에서나 자기 배를 채우는 면에서나 모두 나무의자들보다 나은것이다. 접수실인원은 비록 지위면에서 창고보관원만 못하지만 편안한 일자리만 탐내는 공장사람들은 문지기라고 천하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나무의자들도 그 자리를 탐내는것이다. 그러니 절반의자에서도 창고보관원이 꼴찌인것이다. 공장에는 네개의 창고에 보관원 넷이 있다. 철물교전류창고, 포장물창고, 제품창고, 원료창고 이 네개의 창고중에서 최령감이 맡았던 원료창고의 일이 제일 어지럽고 힘들다. 그래서 공장사람들은 최령감을 《말석령감》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그가 퇴직하여 잠시 그 말석의자가 비여있다. 홍상철이는 공장에서 문화정도가 제일 높은 《1등수재》이다. 그는 공장에서 유일한 중등전문학교졸업생인데 자습하여 대학본과졸업증서까지 탔었다. 홍상철이가 있는 재무과에서는 과장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관계망을 통해 모 은행으로 뚫고 들어가는 바람에 잠시 그 과장자리가 비여있었다. 도리대로 말한다면 이 자리는 응당 주관회계인 홍상철에게 차례져야 할것이나 고중졸업생인 리회계에게 이 자리가 차례진다는 소문이 떠돌고있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홍상철이가 《제1쏘파분》의 눈에 난것을 다 알고있다. 홍상철이가 경제를 틀어쥐고있는데서 가끔 모순이 생기게 되였다. 《제1쏘파분》께서 이렇게 하라하면 고분고분 그대로 해야겠는데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홍상철이는 이렇게 하면 좋지 않으니 저렇게 하는게 어떻겠냐 하면서 제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이건 절대로 이렇게 할수 없다고 외고집을 부리기까지 하였다. 리회계가 찦차를 사자는 제의는 《제1쏘파분》의 지시를 받고 내놓은것인데 홍상철이는 찦차를 사는 나쁜 점에 대해 열가지로 렬거하면서 견결히 막아나섰고 그대신 공장운영에 리로운 트럭을 사야한다고 손을 흔들어댔다. 그래서 《제1쏘파분》께서 찦차를 사는 일을 뒤로 미루었으나 이 일로 하여 홍상철이는 리회계와 《제1쏘파분》의 눈에 나게 되였다. 공장에는 원래 생산직장마다 남자가 희소했는데 홍상철이가 내려간 오춘화작업반에는 남자라곤 한사람도 없는 《랑자군》반이였다. 게다가 그와 함께 내려간 세명의 《앉은 놈》도 녀자여서 그가 유일한 남자였다. 마침 그의 이름이 영화 《홍색랑자군》에서 나오는 당대표 홍상청이와 비스했기에 누군가 그에게 《당대표》란 별명을 달아주었다. 《당대표》가 《랑자군》을 거느리고 창고에 가서 원료를 타내올 때는 볼만했다. 사탕가루와 밀가루포대를 가득 실은 밀차를 뒤에서 숱한 랑자군들이 밀고 앞에서는 《당대표》가 혼자 끌고 간다. 그때면 직장에 내려가지 않은 몇몇 《앉은 놈》들이 그늘밑에 앉아서 《샹챈진! 썅챈진!》하고 《홍색랑자군》의 행진곡을 부르며 《당대표》를 골려주는데 그중에서도 리회계의 목소리가 제일 높았다. 《어이, 〈당대표〉! 일 잘하는데, 하하하!》 《당대표》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앉은 행운아들을 쏘아본다. 그러면 그게 더 재미있다고 그치들은 목청을 높여 소리친다. 《어이, 《당대표》, 오청화가 련애하자고 따르고있네!》 작업반장 오춘화는 자기를 빗대고 놀리는 줄 알고 밀가루를 한웅큼 손에 쥐고 달려가서 그치들에게 밀가루벼락을 안긴다. 《어이쿠, 퉤!퉤!》 얼굴에 밀가루먼지를 푹 뒤집어 쓴 리회계가 우거지상이 되여 툴툴거린다. 그러자 《랑자군》들속에서 일시에 짜그르르 유쾌한 웃음보가 터지고 《앉은 놈》들도 제멋에 배를 끌어안고 웃는다. 《하하하, 오청화가 리과장에게 고급분을 발라줬군!》 한 《앉은 놈》이 손벽을 치며 고아대자 《선놈》들은 그만 어정쩡해졌다. 리과장이라니? 리회계가 언제 과장으로 승급했단말인가? 리회게가 공장에 들어오자마자 회계자리에 앉은것은 그가 배전국 모 과장과 사돈이 되였기때문이다. 몇달전에는 상업국 국장이 후실을 맞아들이는 바람에 뜻밖에도 그분의 처5촌조카가 되는 행운까지 지니게 되였다. 직장에 돌아온 《선놈》들은 분통이 터지여 너도나도 욕설을 퍼부었다. 《정말 기차오! 어째 개뿔도 모르는 리회계를 다 과장을 시켰다오?》 《응당 홍회계가 과장이 돼야지요!》 《그렇지 않구! 그 눈깔 먼 병신들이 인재를 몰라본당이!》 했건만 홍상철이는 말없이 일만 했다. 요란한 반죽기와 전기화로의 동음속에서 떠들썩한 녀인들의 웃음속에서 《당대표》는 기름때를 묻혀가며 한달을 보냈다. 《랑자군》들과 작별의 술을 마신 이튿날 아침, 홍상철이는 사무실계단을 오르다가 웃층에서 내려오는 《제1쏘파분》과 만났다. 《제1쏘파분》은 싱글벙글 웃으며 《당대표》의 어깨를 친절하게 두드렸다. 《허허, 홍동무, 수고했소!》 《수고야 뭘, 응당한 일이지요.》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당대표》의 입가엔 쓰거운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가 재무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제1쏘파분》께서 다시 불러세웠다. 돌아다보니 최고분은 웃고있었다. 《홍동무, 한달만 더 수고해야겠소!》 《?》 《홍동무도 알다싶이 한달동안 내처 월병만 생산하다보니 지금 다른 품종의 생산이 딸리고있는 형편이오. 그런데 오춘화작업반엔 남자가 없어 생산에 영향을 받고있소. 맨 녀자들이 100킬로그람짜리 쌀마대랑 어떻게...》 《오, 그래서 저더러 직장에 남으라는겁니까?》 《영 남으라는게 아니오. 다른 남자를 배치하기전까지 홍동무가 좀 수고해달라는거요!》 이리하여 《당대표》는 또다시 《랑자군》들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한달만에 재무과로 들어가니 리과장이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있었다. 《오, 홍동무, 무슨 용무가 있소? 아니면 옛 사무실이 그리워...》 《리회계, 난 사업하러 왔소!》 《사업하러 왔다구? 하, 이거 아직 모르고있소? 여긴 홍동무의 자리가 없는데...》 《당대표》가 보니 자기의 자리엔 웬 낯선 녀인이 앉아있었다. 주먹같은 분노가 가슴에서 올라왔다. 재무과를 나온 그는 한달음에 공장장사무실로 달려들어갔다. 마침 쏘파에 비스듬히 앉아 신문을 보고있던 《제1쏘파분》이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오, 홍동무구만! 무슨 일로?...》 아닌보살하는 최고분을 보자 《당대표》의 불끈 틀어쥔 주먹에서 우득우득 소리가 났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 그 일말이오? 이거 참, 일이 딱하게 됐소. 재무과에 새로 온 동무는 방역소의…》 《알만합니다!》 《당대표》는 뿌질뿌질 끓어오르는 격분을 가까스로 참았다. 담배불을 붙여무는 《제1쏘파분》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알면 됐소. 재무과엔 인원이 넘어나니까 어쩌겠소. 원료창고의 보관원자리가 비여있는데…》 최고쏘파분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또 한번 말끝을 흐리였다. 《당대표》는 두눈을 부릅뜨고 최고분을 쏘아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춘화작업반에 남자가 없어서 어쩝니까?》 《거긴 보이라공 주충일이를 보내기로 했소.》 《주충일?》 《당대표》는 주충일이를 잊을수 없었다. 지난해의 어느날밤, 그가 간부직일을 설 때였다. 손전지를 켜들고 공장안을 돌아보던 그는 갑자기 배가 아파나 땅바닥에서 대굴대굴 구울었다. 그때 보이라불을 때던 주충일이가 아우성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그를 업고 시병원까지 달려갔다. 말수 적고 수걱수걱 일만하는 주충일, 《당대표》는 이 주충일을 돕고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렇다면 저대신 주충일이한테 창고보관원을 넘겨주십시오. 전 그냥 오춘화작업반에 남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앉은 놈》이였던 홍상철이는 《선놈》이 되고 《선놈》이였던 주충일이는 《〈앉은 놈》이 되였다. 《말석의자》에 앉기전까지 주충일은 공장사람들에게 《주깍쟁이》로 불리웠다. 주충일이가 성이 주씨인데다가 한심한 깍쟁이라고 그런 별명을 달았는지 아니면 소설 《고옥보》에서 나오는 주깍쟁이를 생각하고 그런 별명을 달았는지 하는건 딱히 알수 없지만 그가 소문난 깍쟁인것만은 사실이였다. 주충일은 술담배와는 인연이 없고 마작이나 트럼프놀음도 깜깜부지이다. 옷도 일년 사시절 늘 그 한벌밖에 없는듯한 초록색 옷에 남색바지를 입고 《해방군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겨울이면 밑에 솜옷을 더 껴입을뿐이다. 그가 그 옷을 20년전 공장에 들어올 때부터 입었다는 사람도 있고 10여년전 장가 들 때부터 입었다는 사람도 있는데 여하튼 그 옷을 오래전부터 입고 다닌것만은 사실이다. 주충일이는 홍상철이가 재무과에서 밀려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쓰려났다. 홍상철이가 자기보다 서너살 더 어리다고 하지만 학식있는 그를 몹시 존경하는터였다. 상철이를 찾아가 한마디 위안이라도 해주고싶었다. 그가 과자직장문어구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숱한 《선놈》들이 왁작 떠들어대고있었다. 《세상에 어디 이런 법이 있어요! 인재를 밀어내다니? 홍회계가 억울해요!》 《공장이 망하자고 하는 짓이야!》 《홍회계를 밀어내선 안되오! 우리 올라가 해내기오!》 《옳소! 우리 모두 올라가 도리를 따지기오!》 《선놈》들이 벌떼처럼 직장안에서 밀려나왔다. 주총일이는 얼른 한켠에 비켜섰다. 분노에 찬 《선놈》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사무청사로 돌진하려 할 때 홍상철이가 뒤따라나오며 앞을 막아섰다. 《여러분, 이러지 맙시다! 떠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직장에 내려와 여러분들과 함께 일하는게 더 마음이 편안합니다!》 홍상철이가 이렇게 나오자 선두에 섰던 오춘화는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여럿ㅇ르 이끌고 직장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주충일이는 홍상철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쥐였다. 《상철아, 난 무슨 말로 널 위안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형님! 형님과 같은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으니 난 조금도 괴롭지 않소!》 《상철아, 네가 보관원직을 내게 양보했다면서? 감사는 하다만...》 《허허 참, 형님두, 그 일이 보이라공보다는 나을거요. 난 일하러 가야겠소.》 상철이가 떠나자 주충일이는 열쇠뭉치를 흔들며 원료창고로 돌아갔다. 공장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소문난 《쓰레기대장》인 주충일이를 하찮게 보고있었다. 집에 아무런 가장집물도 없는데다가 몇해전에는 안해까지 달아나서 홀아비가 되였지, 후에 외국에 있는 그의 친척이 거금을 보내왔다는 소문이 났건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 업심을 받고있는 상태였다. 그런 속에서도 이 《말석의자》를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이 대해주는 사람이 딱 둘이 있는데 그들인즉 《당대표》와 작업반장 오춘화였다. 오춘화는 남편이 늘 술을 마시고 폭행을 저질러서 리혼한 녀인인데 인물은 수수해도 마음씨가 비단같고 성미가 시원시원했다. 그녀는 누가 뒤에서 《말석의자》를 《깍쟁이》, 《쓰레기》, 《눈병신》이라고 헐뜯기만 하면 당장에서 남의 인격을 모욕하지 말라고 따갑게 타이르군 했다. 워낙 말수가 적은 《말석의자》도 오춘화와 마주서기만하면 말이 그칠새 없었다. 이 모든것을 한눈에 꿰뚫어본 《당대표》는 좋은 일을 하려고 오춘화를 찾아 가만히 대중을 떠보았으나 그녀는 무슨 롱담을 하느냐고 아닌보살하며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타내온 원료가 모자라서 《당대표》와 오춘화는 일하던 도중에 《말석의자》한테로 가게 되였다. 빈 밀차를 함께 밀고 가던 오춘화가 갑자기 밀차에 뛰여오르며 까르르 웃어댔다. 《호호호, 동갑이, 내가 앉으니 더 가볍지?》 사실 사람이 앉으니 밀차가 평형을 잡으며 끌기가 더 쉬웠다. 《당대표》는 오춘화를 태운 밀차를 밀고 쏜살같이 달렸다. 《이제 내 혼내주지 않나봐!》 밀차의 속도가 빨라지자 오춘화는 질겁하여 《멈춰요, 멈춰요!》하고 소리쳤다. 바로 그때 뿡뿡-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리며 달려오던 새 찦차 한대가 밀차옆을 스쳐지나더니 공장마당을 한바퀴 빙빙 돈후 다시 그들 앞에 와서 멈춰서는것이였다. 운전수좌석에서 최고쏘파분의 아드님이 내리고 뒤좌석에서 최고쏘파분과 재무과 리과장이 위풍당당하게 나왔다. 최고분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리과장을 보며 말했다. 《허허, 새차가 좋긴 좋구려!》 《더이를데 있습니까? 이제부터 우리한테도 자기 차가 있으니 연길로 갈 때 편리하게 됐습니다!》 맞장구를 치던 리과장은 밀차를 밀고 가는 《당대표》를 발견하고 손을 저어대며 소리쳤다. 《어이-〈당대표〉! 오청화와 둘이서 재미 좋은데, 하하하!》 《제길, 너무 좋아하지 말어!》 홍상철이는 리과장을 쏘아보고는 계속 밀차를 밀었다. 밀차에 앉아 최고쏘파분의 아드님이 찦차를 닦고있는것을 바라보며 오춘화는 입을 삐죽거렸다. 《하긴 잘하오. 공장은 밑지기만 하는데 저들은 호강을 부리고...》 《호강을 부리라지.》 《운전수가 남아도는데 찦차는 제 아들을 몰게 하구 참!》 《맘대루 날뛰라지!》 창고문앞까지 갔을 때 홍상철이는 문에 자물쇠가 걸리지 않은것을 보고 안에 대고 소리쳤다. 《형님, 문을 여오! 새각시를 데려왔소!》 《아이, 동갑이두!》 오춘화는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빨개서 밀차에서 뛰여내렸다. 이윽고 창고문이 열리며 《말석의자》가 나왔다. 그는 온몸에 밀가루먼지를 보얗게 뒤집어쓰고있었는데 흰 위생모밑에 드러난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여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입을 싸쥐고 키득키득 웃던 오춘화가 주충일에게 눈을 곱게 흘겼다. 《아이참, 주동무, 어서 옷을 갈아입고 세수하세요!》 《아니, 또 일하면 묻겠는데 뭘...》 오춘화가 손으로 주충일의 옷을 털어주자 홍상철이가 놀려주었다. 《어허, 동갑이, 신랑재만 생각하다가 원료는 안 타가겠소?》 《아이, 괘씸해라!》 오춘화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상철이한테 막 대들었다. 상철이가 요리조리 피하며 달아나자 춘화는 붙잡겠다고 기를 쓰고 쫓아다녔다. 《상철아, 아이들처럼 무슨 장난이냐? 빨리 싣기나 해라!》 주충일이가 말려서야 그들은 《정전》을 하고 밀차에 원료를 실었다. 오춘화가 주충일이와 표를 맞춰보는 사이에 혼자서 밀차를 밀고 나간 홍상철이는 재빨리 밖으로 문을 걸어놓았다. 오춘화가 상철의 의도를 알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열리지 않는 문을 안타깝게 밀어댔다. 주충일이도 달려와 문을 밀며 소리쳤다. 《상철아, 문을 열어라! 어서!》 《하하하, 형님, 둘이 마음놓고 련애를 하오. 내 한시간후에 와서 문을 열어줄게.》 상철이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밀차를 밀고 떠나버렸다. 그때로부터 석달이 지난후 주충일이와 오춘화가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렸는데 상철이는 남의 기쁜 날에 흰술 많이 마시고 취해서 울었다고 한다. 《혀...형님! 우...우리 공장이 마...망하게 됐소! 나...난 시...실망했단말이우!》 상철이는 충일의 어깨를 막 부여잡고 흔들다가 자기이 가슴을 마구 두드려댔다. 술을 입에 대보지도 못한 충일이였지만 취중진담이란것만은 아는지라 크게 한숨를 내쉬였다. 《내 가슴도 찢어지는것 같다!》 상철이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눈앞에는 얼마전에 있은 일들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났다. 삼복철이여서 《선놈》들은 직장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일하는데 《앉은놈》들은 밖이 그늘밑에 한두줄로 쭉 줄지어 앉아서 부채질하며 한담을 하고있었다. 밸이 꼬인 상철이가 《앉은놈》들의 사무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보니 두칸을 제외하고 모두 텅텅 비여있었는데 그 두칸나마 한칸에 한놈씩 낮잠을 자고있었다. 듣자니 오늘도 최고분은 찦차를 타고 연길로 공원놀이를 갔다고 한다. 원료나 제품을 싣지 못하는 찦차는 《쏘파분》들을 위해 잘도 봉사했다. 공가일이나 사사일이나 찦차, 코앞을 가도 찦차, 쩍하면 연길로 내달리는 찦차... 한번은 생산도중에 기계가 고장나서 상철이는 수리공과 전공을 데리러 갔댔는데 꽁꽁 잠긴 자물쇠만 그를 맞아주었다. 온 공자안을 다 돌아다녔으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다른 《앉은 놈》들도 태반이나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니 더러는 트럼프놀이를 하러 가고 더러는 마작를 놀러 갔다고 한다. 그가 공장장실로 찾아가니 최고분은 보이지 않고 제2쏘파분이 맞아주었는데 정황을 들은 두번째분은 사정이 그렇게 됐으니 오늘은 잠시 생산을 중지하라는것이였다. 그래서 여느때보다 일찍 퇴근한 상철이는 오래동안 만나보지 못한 친구네 집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그 친구네 집은 바로 최고분네 집 앞집이였다. 듣자니 최고분네는 요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짓는다고 했다. 그가 친구네 집부근에 이르러보니 최고분네 층집은 거의 마무리가 되여가고있었다. 그런데 바삐 도아치는 일군들이 태반이나 낯익은 얼굴들이 아닌가! 공장의 전공들은 전기를 가설하느라고 정신없이 돌아치고 공장의 수리공들은 계단란간을 만드느라 뒤나가는 줄도 모르고있었다. 리과장과 나머지 《앉은 놈》들은 땀벌창이 되여 이리저리 뛰여다니며 잔심부름을 하고… 《자네 공장치들이 집을 허물때부터 와서 저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고있네. 지도자분의 군중위신이 높은 모양이지? 그런데 정직한 지도자분이라면 왜 공장의 직원들을 데려와 제집을 짓는 일을 시키겠나? 허허, 저 집을 짓는 자금도 제호주머니의 돈이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나?》 어느새 왔는지 친구가 히죽거리며 하는 말에 상철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상철이는 최고분이 미웠다. 공장의 운명엔 관심이 없이 제 배만 채우기에 급급한 최고분이 미웠다. 그래서 어느날 최고분께서 그들이 일하는 직장에 내려왔을 때 심술을 부렸다. 그날은 수공과자를 만들었는데 상철이가 밀가루반죽을 책임졌다. 최고분께서 뒤짐을 지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반죽기 있는데로 다가올 때 기다리고있던 상철이는 채 쏟지 않은 밀가루포대를 뒤번져가지고 반죽기 안에 대고 탁탁 정신없이 털어댔다. 그러자 새뽀얀밀가루먼지가 주위에 날리면서 최골분의 양복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모양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랑자군》들 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제야 상철이는 《미안합니다!》하며 아닌보살하며 콩기름이 번지르르한 두 손으로 최고분의 신사양복을 탁탁 털어드렸다. 그러자 그 멋진 양복이 얼룩덜룩 불꼴없이 되였다. 상철이는 최고분이 성내기를 기다렸다. 성내는 그 모습을 보는것이 그의 목적이였다. 그런데 최고분께서는 아무 일도 없는듯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젊은이, 일할 땐 조심하게나.》하며 빙그레 웃기까지 하는것이였다. 상철이는 분했다. 하지만 상철이는 알지 못했다. 최고분은 벌써 가슴속에 《칼》을 갈고있었던것이다. 바로 그해 공장은 불경기여서 절반 로동자들을 《방학》시키게 됐는데 그 명단에는 상철이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공장사람들은 어째서 직장에서 일 잘하고 주력인 상철이를 《방학》시켰을가고 의문을 품었으나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많지 못했다. 하지만 이 《방학》이 상철에게 얼마나 유리했는가를 그들은 몰랐었다. 《당대표》가 공장에서 나간지 딱 석달만에 《말석의자》도 《벼슬》자리를 떼우고 공장에서 나가게 되였다. 충일이가 《말석의자》를 빼앗기우기 한달전에 《제1쏘파분》의 아드님이 결혼잔치를 했는데 종업원당 최저로 20원씩 로임에서 떼내여 부조를 했다. 그때 20원이 뭉텅 잘리운 로임봉투를 받아든 충일이는 당장에서 부조돈을 거둔 리과장을 찾아가 한다는 말이 《내 돈을 돌려줍소!》였다. 하니까 리과장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다른 사람들은 50원, 100원, 300원, 500원씩 하는데 동문 낯이 간지럽지 않소?》하고 면박을 주니 충일이는 《남은 싫다는데 왜 억지로 그램둥?》하며 끝내 그 돈 20원을 도로 찾아갔다고 한다. 이 일로하여 충일이가 《방학》하게 된 일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충일이가 《방학》한 그해 그의 부친이 병으로 돌아갔다. 그의 부친의 장례날은 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는 날이였다. 그날 충일이는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드러눕고말았다. 6개월후 춘화가 공장에서 전체종업원대회를 열고 새 공장장을 선거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충일이는 너무도 기뻐 안해를 안고 몇바퀴 빙빙 돌기까지 하였다. 《춘화, 우리 상철이를 찾아가기오. 새 공장장 적임자는 상철이밖에 없소!》 범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이때 상철이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그는 《방학》기간에 기업관리에 관한것을 파고들어 학습도 하고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시장정보도 료해하면서 많은것을 배웠다. 그러다가 남방에서 큰 기업을 꾸리고있는 동창생을 만났는데 그 동창생이 그의 재능을 보아내고 월로임 1천 5백원에 그를 초빙했다. 공장에서 받던 60~70원의 로읾에 비하면 그것은 대단한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고 옛정분을 생각하여 충일이한테 작별인사를 하러 왔던것이다. 《상철아, 너 떠나겠다는 말이냐? 공장이 싹 잘못되는데 못본척하고 떠나겠단말이냐? 엉?》 충일이는 성이 나서 입술을 푸들푸들 떨었다. 상철이는 충일이를 외면하며 한숨을 내쉬였다. 《형님, 나도 공장을 사랑하오. 하지만 이미 망태기가 된 공장을 춰세우자면 곤난이 막심하오. 벌써 1년동안이나 로임을 못내주고있지 않소? 형님도 나와 함께 가기오. 내 좋은 자리를 알선해줄께.》 《사람이 돈을 보고 살겠니? 내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 입고 쓸 돈이 있다. 하지만 내가 죽게 일하는게 무엇때문이겠니? 공장은 내 집이란 말이다. 나를 20여년이나 먹여준 공장이 지금 망하고있다. 상철아, 난 너에게 희망을 걸고있다. 내 비록 배운것은 없어도 사람 볼줄은 안다. 이번 공장장선거경쟁에 참가해다구! 내 빈다!》 《형님, 지금 형편에 50~60년대의 과자를 생산해선 팔아먹을수 없소. 새항목을 하자면 자금이 수요되는데 지금 국가재정도 곤난하여 대부금을 맡자해도...》 《네가 정말 해낼 신심만 있다면 돈은 내가 대주마!》 《형님!...》 상철이는 감격에 겨워 충일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바로 이때 밖에서 떠들썩하더니 오춘화가 이끌고 온 숱한 《선놈》들이 집안에 들어섰다. 《홍동무! 우리 공장 200여명 종업원들을 위해 이번 선거에 참가해주오!》 《우린 모두 홍동무를 지지하오!》 집안에서부터 밖에까지 쭉 늘어선 방대한 대오를 본 상철이는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이처럼 뜨거운 마음들을 저버리고 떠나려고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당장에서 초빙장을 찢어버렸다. 상철이가 공장장선거경쟁에서 승리하게 된것은 그가 내놓은 방안의 세밀성과 빈틈없는 과학성, 대다수 종업원들의 지지도 있겠지만 곤난한 국가재정에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그 한마디가 논 역할이 컸다. 이것은 주충일의 공로였다. 공장구락부에서 상철이는 격정에 넘치는 취임연설을 하였다. 《모두들 알다싶이 우리 공장엔 〈앉은 놈〉과 〈선놈〉이 있습니다. 200여명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공장에 100여명이나 되는 〈앉은 놈〉이 있습니다. 이후엔 〈앉은 놈〉이건 〈선놈〉이건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능력에 따라 사람을 쓰고 로동강도에 따라 로임을 내주겠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할일은 찦차를 파는것입니다.》 장내에선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조용하십시오. 한가지 공포하겠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말석의자〉에 앉아있던 주충일동지가 우리 공장을 위해 100원이란 거액의 돈을 무리식으로 선대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공장사람들은 왁작 끓어번졌다. 《여러분! 주충일동지는 또 공장의 돼지먹이로 돼지를 먹여 판 돈과 공장의 페품을 팔아 모은 돈을 저금했는데 2만원이랍니다. 그는 이돈을 몽땅 공장에 바치면서 오래동안 로임을 타지 못해 곤난을 겪고있는 여러분들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만세!》 《만세!》 공장사람들은 눈물이 글썽하여 웨쳐댔다. 이때로부터 공장은 들끓기 시작했고 공장사람들의 숨결은 전례없이 높뛰였다. 1992년 9월.  
21    내가 만든 영웅 댓글:  조회:4241  추천:1  2013-12-08
단편소설 내가 만든 영웅 김희수     《석호, 그 녀석이 인물은 인물이야!》 동창회에 참석했던 동창들은 이구동성으로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석호를 칭찬했다. 석호가 자금을 내놓아 5성급호텔에 동창회파티를 마련해준 때문만이 아니였다. 석호는 전성에서도 손꼽히는 사영기업가로 그 명성이 높았고 양로원후원, 불우어린이돕기 등 자선사업과 동요콩쿠르, 조선족수필상 등 사회활동에 해마다 후원해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기 때문이다. 《석호컵》으로 명명한 각종 음악상, 글짓기상만 해도 10가지는 되였다. 이번에도 그는 통이 크게 호화호텔에 동창회파티를 열었고 중도에서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지만 3차까지 절차를 모두 안배하고 떠났던것이다. 《버릇없이 석호는 무슨 석호야? 석총재님이지!》 경일이가 이렇게 시정하자 명남이가 손을 휘두르며 반대했다. 《아첨 떨지 말라. 설사 석호가 국가주석이 됐다하더라도 우리에겐 여전히 석호지! 동창생인데 이름을 왜 못 부르겠니?》 《명남아, 너 학교 때 석호한테 맨날 얻어맞고도 정신 못 차렸니? 너 석호주먹이 무섭잖니?》 《야, 임마, 우리가 지금 주먹을 휘두를 나이야? 아무튼 난 그 녀석보다 공부는 더 잘했지만 그 녀석의 능력엔 탄복한다. 하여튼 난놈이야! 허허, 학교 때 한심한 개구쟁이던 그 녀석이 오늘 이처럼 대단한 인물이 될줄이야! 안 그래, 김기자?》 경일이와 입씨름을 하던 명남이가 이번에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실 석호가 굴지의 사영기업 《호랑이그룹》의 총재로 되기까지는 무엇보다 나의 공로가 컸다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석호의 덕을 많이 보았으니 엎음 갚음이라고 할가. 여기 앉은 동창들은 모두 석호와 내가 가장 가까운 사이란것을 알고있다. 그랬다. 석호와 나는 서로 앞뒤집에서 살았고 학교도 소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5학년까지 줄곧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석호와 나는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달랐지만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나는 나약하고 온순했지만 석호는 힘이 세고 우락부락했다. 석호는 늘 주먹을 휘두르며 동학들과 싸움질하며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였고 수업시간에는 늘 옆에 앉은 학생을 건드리지 않으면 앞에 앉은 녀학생의 잔등에 락서한 종이장을 붙이는 등 장난이 심한 아이였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들은 그애의 옆이나 앞에 앉기 싫어했다. 선생님이 몇번이나 석호를 불러다놓고 잘못을 타이르고 훌륭한 학생이 될것을 바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이 타이를 때는 당장 잘못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겠노라고 결심서(내가 대신 써주었다)까지 써서 바쳤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 옛버릇이 살아나서 수업시간에 장난질하고 휴식시간에는 동학들과 싸움질하군했다. 영순이는 우리 반에서 머리태를 가장 길게 기른 녀자애였다. 한번은 영순이의 뒤에 앉은 수남이와 바꿔 앉은 석호는 수업시간에 앞에 앉은 영순이의 머리태를 살금살금 걸상에 동여맸는데 수업시간이 끝나 기립할 때까지 영순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벌떡 일어섰다가《아앗》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또 한번은 반장인 명남에게 다짜고짜로 주먹을 안겨 코피가 터지게 했다. 자기가 장난 쓴 사실을 선생님한테 고자질했다는 리유로. 선생님은 그런 석호를 타이르다못해 학급의 전체학생들 앞에 세워놓고 비판도 했지만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은 방법이 없어서 석호를 제일 뒤에 앉히고 그애의 주위에 장난꾸러기 애들을 같이 앉게 했다. 그러나 그애의 장난은 점점 심해졌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흑판에 글을 쓰려고 돌아설 때마다 선생님에게 분필을 던지군했다. 명중률도 대단해서 그애의 손에서 날아간 분필은 꼭꼭 선생님의 등에 맞지 않으면 선생님의 뒤통수에 명중되군했다. 선생님이 돌아서서 《누가 한 짓이냐?》고 물어도 애들은 그애의 주먹이 무서워 말을 못했다. 한번은 수학선생님이 그애가 장난 쓰는것을 보고 교편으로 그애의 뒤통수를 탁 치면서 심하게 꾸중한적이 있었는데 온종일 분풀이 할 궁리를 하던 그애는 이튿날 수학시간이 시작되기전에 교편의 손잡이에 콜타르를 발라놓았다. 그것을 모르고 교편을 잡은 수학선생님은 손에 진득진득한것이 묻어나자 깜짝 놀랐고 다음순간 펄쩍 성난 얼굴로 우리를 쏘아보며 《누가 한 짓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수학선생님은 닉명으로 쪽지를 써서 바치라고 했다. 나는 석호가 한짓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누가 한짓인지 모른다고 써서 바쳤다. 대부분 아이들도 석호의 주먹이 무서워서 그렇게 써서 바쳤다. 하지만 닉명이라 대담한 아이들도 있었던가 보다. 수학선생님은 학생들에게서 거둔 쪽지를 통해 석호가 한짓이라는것을 알아냈다. 석호는 교무실에 끌려가 벌을 받았다. 이튿날 석호는 고자질 한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닉명이라지만 고발자는 대번에 드러났다. 바로 학급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반장 명남이였다. 명남이의 뒤에 앉은 경일이가 석호한테 와서 가만히 알려줬다. 《명남이가 쪽지 쓰는걸 내가 가만히 엿봤는데 그앤 쪽지에 〈석호가 한짓입니다!〉하고 쓰더라. 내가 똑똑히 봤어.》 석호는 그 다음 수업시간에 경일이와 바꿔 앉았다. 종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명남이가 《기립!》하고 구호를 불렀다.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서자 선생님이 손을 저으며 《앉으시오!》했다.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는데 갑자기 명남이가 《아이쿠!》하고 비명을 질렀다. 엉뎅이에 압침이 찔렸던것이다. 누가 한짓인지 뻔했다. 명남이가 일어설 때 석호가 슬며시 명남이의 걸상에 압침을 세워놓은것이다. 《네가 한짓이지?》 명남이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석호는 모르쇠를 잡았다. 선생님도 와서 따져 물었지만 석호는 그저 덮어놓고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뗐다. 《왜 나만 의심합니까? 좌우 옆의 애들도 그럴수 있고 뒤에도 나 혼자만 있는게 아닌데…》 선생님이 주위의 애들과 물었지만 모두 석호의 보복이 무서워 말을 못했다. 학급엔 석호 말고도 말썽꾸러기들이 여럿이 되였다. 학교에선 이런 말썽꾸러기들을 다루는데 편리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진정 그들의 학습을 관심해서인지 제고반을 꾸렸다. 시험을 쳐서 학습성적이 차한 학생을 한개 반에서 9~10명씩 뽑아서 제고반에 보냈다. 그런데 1등 말썽꾸러기인 석호만은 그냥 우리 반에 남아 있었다. 그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시험 칠 때 내가 몰래 모범답안을 적어주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커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댔지만 석호의 커닝수법이 고명했기에 발견되지 않았던것이다. 함께 맞장구를 칠 장난꾸러기들이 없어지자 석호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을 지껄였다. 애들이나 선생님이나 모두 석호를 모기나 파리처럼 싫어했다. 그런데 새로 온 최선생님이 반주임을 맡으면서부터 욕설만 듣던 석호는 날마다 칭찬을 받게 되였다. 최선생님이 말썽꾸러기학생을 다루는 방법은 아주 독특했다. 무조건 칭찬을 하는것이다. 석호가 수업시간에 장난을 쓰거나 옆의 애들을 건드려도 최선생님은 모른 체 하고있다가 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오늘 석호학생은 진보가 많습니다. 장난도 적게 쓰고요. 계속 잘해보세요.》하고 칭찬했다. 날마다 칭찬을 듣자 쑥스러웠든지 석호는 어느날 《좋은 일》을 해야겠다면서 나더러 집에서 망치와 못을 가지고 등교하라고 했다. 그의 말을 거절할수 없었다. 휴식시간에 그는 마사진 책걸상을 수리해놓았다. 물론 그 책걸상은 그가 마사놓은 것이였다. 장난이 심했던 그는 쩍하면 자기의 책걸상을 망가뜨려 놓고는 휴식시간이면 다른 애들의 책걸상과 바꿔놓군 했다. 그래놓고 지금 그 책걸상을 수리해 놓은것이다. 그 일을 알게 된 최선생님은 석호가 뢰봉을 따라 배워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면서 전체학생들더러 박수를 치게 했다. 이것이 석호가 《출세》하게 된 첫걸음이였다…   동창들은 모두 술이 거나하게 되자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2차로 노래방에 간다고 떠들 때 나는 슬그머니 빠져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학교 음악교원인 안해가 피아노를 치고 딸년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나는 딸년에게 노래수준이 진보가 많다고 칭찬하고나서 석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를 쓰기 위해 서재로 들어가 노트북에 마주 앉았다. 사실 피아노와 컴퓨터, 노트북은 모두 석호의 덕분에 차려진것이였다. 한번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석호가 내 딸년이 노래부르는것을 보고 《네가 성악에 소질이 있구나. 그리고 네 엄마도 음악선생인데 피아노가 없어서야 되겠니? 우리 집 놈이 새 피아노를 사놓고 낡은 피아노는 자리만 차지하고있는데 낡았다고 꺼리지 않는다면 너한테 주마.》하고 말해놓고 그 이튿날로 사람을 파견하여 우리 집에 피아노를 실어왔다. 그리고 내가 그의 회사에 취재를 갔을 때《기자량반에게 노트북이 없어서야 되겠나? 내게 노트북이 2개나 있으니 하나 가져가.》하면서 즉석에서 선물하는것이였다. 내가 황송해하자 《네가 우리회사의 홍보에 큰 공헌을 했는데 그 만한 보답이야 못하겠니?》하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후 나와 안해는 딸년이 동요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는 모습을 TV에서 보면서 흥분되였다. 그날 우리는 대상으로 채색털레비죤을 받아안고 오는 딸년을 마중 나갔다. 석호가 보낸 차에 앉아오면서 딸년은 기뻐서 말했다. 《엄마, 아빠, 내가 상으로 탄 텔레비죤이 얼마나 큰지 알아? 영화화면만큼 돼.》 나는 속으로 기쁘기도 했지만 석호에게 자꾸만 은혜를 입는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내 딸년보다 노래실력이 나은 애들이 서너명은 더 있었는데도 딸년이 대상을 받은것은 완전히 이번 동요콩쿠르를 후원한 석호의 덕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 엄마, 아빠 저기 석총재님의 사진이다!》 아이의 환성소리에 차창밖을 내다보니 광고판에 거폭의 석호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딸년은 석총재님이 친히 대상을 발급했다면서 뽐내듯 말했다. 나는 딸년의 손에서 영예증서를 받아쥐였다. 그 빨간 영예증서를 보노라니 석호가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던 지난 일들이 어제일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 당시엔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어른들뿐만아니라 학생들도 모주석저작을 열독하게 했다. 집집마다 모택동선집 1~4권까지 갖춰놓고있었고 어떤 집에는 매 사람 앞에 한질씩 돌아갔다. 그래서 누구나 간단한 모주석어록은 몇편씩 암송할수 있었고 로3편을 줄줄 내리 외우는 3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나도 머리가 총명했던 모양인지 모주석어록을 40%정도는 줄줄 내리 외울수 있었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학습은 대충하게 하고 오후엔 붉은 가위를 씌운 모주석저작을 책가방에 넣고 와서 읽도록 했다. 사실 따분한 정치책을 골똘히 읽는 아이는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명남이나 나도 좀씩 읽다가는 싫증을 느끼군했다. 최선생님도 학생들이 저작학습을 하는 정황을 감시하고있었지만 학생들이 책에 집중하지 않아도 크게 나무람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석호가 매일 모주석저작을 열심히 탐독하는것이였다. 수업시간엔 책을 1분도 들여다볼 인내력이 없던 그가 매일 2~3시간씩 곁눈 한번 팔지 않고 골똘히 모주석저작을 탐독하는 일이 정말 놀라웠다. 붉은 보서에서 눈길 한번 떼지 않고 열심히 저작학습을 하는것을 보고 내가 이상해서 가만히 물었다. 《모주석저작이 그렇게 재미있니?》 《야, 임마, 누가 재미있어 읽니? 이건 정치학습이야. 모주석저작을 학습하고 두뇌가 명석해지자고 그래.》 그러면서도 내가 어느 페지를 읽는지 들여다보자고 하니까 제꺽 보던 책을 확 덮어버리는것이였다. 하여튼 재간은 재간이였다. 반년동안 그는 모주석저작을 1권부터 4권까지 얼마나 반복하여 읽었는지 모른다. 그가 이처럼 열심히 저작학습을 하는것을 보고 나뿐만아니라 다른 애들과 최선생님도 놀랐다. 최선생님은 전체학생들 앞에서 격동된 목소리로 석호를 칭찬했다. 《동무들, 석호동무는 뚫고 들어가는 뢰봉동지의 못정신을 발양하여 모주석저작을 고심하고도 참답게 그리고 열심히 학습하고있습니다. 우리 모두 석호동무를 따라 배웁시다!》 석호는 모주석저작학습적극분자로 선거되였다. 최선생님은 그에게 독후감을 쓰라는 임무를 주었다. 물론 매개 학생들에게 모두 독후감을 쓰라는 임무가 떨어졌지만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자》, 《혁명을 끝까지 진행하자》등의 교과서에 있는 내용에 국한해서였다. 하지만 석호에게는 1권부터 4권까지의 매개 문장을 학습한 체득을 쓰라고 했다. 그리고 먼저 1권을 학습한 독후감을 실제와 결부시켜 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석호는 입을 딱 벌렸다. 그날 하교할 때 석호는 나를 불러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갔다. 그는 울상을 한 얼굴로 말했다. 《야, 이거 큰일났다! 큰일났어!》 《왜 그래?》 《아까 선생님이 나더러 독후감을 써오라고 할 때 식은땀이 쫙 났어.》 《독후감을 써오라면 쓰면 되지. 왜?》 석호는 오만상을 찌푸린 얼굴로 근심에 쌓여 말했다. 《야, 너도 내가 말은 잘해도 글은 못쓰는걸 잘 알잖니? 네가 내 대신 써주렴.》 《니가 모주석저작을 1권부터 4권까지 통달했는데 뭘 막히는게 있겠니?》 《사실…난…난 모주석저작을 한페지도 읽지 않았어.》 《피-거짓말! 네가 모주석저작을 열심히 학습한건 선생님과 우리가 다 직접 목격하여 알고있는 사실인데 뭘.》 《그게 아니고 사실은…》 석호는 책가방에서 《모택동선집》 한권을 꺼내여 나한데 넘겨주며 말했다. 《너 이걸 펼쳐봐.》 그 책을 받아서 펼쳐본 나는 깜짝 놀랐다. 붉은 가위는 분명 《모택동선집》인데 안은 《수호전》이였다! 석호는 《수호전》책에 《모택동선집》의 붉은 가위를 씌워서 읽은것이였다. 《아니, 너…너…이거…반동이야!》 나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건 아주 엄중한 행위였다. 발견되면 반동이란 모자가 씌워지고 전교사생들 앞에서 비판대회를 열고 투쟁받게 되는것이다. 나의 귀에는 《반동분자 석호를 타도하자!》하는 구호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쉿! 가만있어.》 《너, 발견되면 어쩌자고 그랬어?》 《그 재미도 없는 모주석저작을 2~3시간씩 읽을 생각을 하니 진저리가 났어. 그때 삼촌댁에서 가져온 〈수호전〉을 봤는데 정말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렇다고 어찌…》 그 당시 《수호전》은 희귀한 책으로서 구하기가 힘들었다. 나도 그 책이 대단히 재미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때 처음 만져보았다. 《이제 날 구해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 독후감 써주렴. 부탁해. 그 대신 〈수호전〉을 빌려줄께.》 《정말?》 나는 정말 《수호전》을 읽고싶었다. 그래서 독후감을 써주는데 동의했다. 그후 석호는 매일마다 선생님과 동학들 앞에서 내가 써준 독후감을 읽었다. 그때마다 최선생님은 석호가 저작학습을 열심히 했을뿐만아니라 독후감도 잘 썼다고 칭찬했다. 최선생님은 곧 석호를 홍소병(소년선봉대)에 가입시켰다. 소문난 장난꾸러기 석호가 앞가슴에 붉은 넥타이를 매게 되리라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땐 반에서 아직 넥타이를 매지 못하고있는 애들이 절반이나 되는 때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석호는 얼마 안되여 전교의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 되였다. 학교에선 전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모두 학교마당에 집합시키고 모주석저작학습모범 석호의 사적보고를 듣게 했다. 학교 주석대에 오른 석호는 전교사생들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열심히 모주석저작을 학습했는가를 한바탕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한후 또 격앙된 목소리로 내가 써준 독후감을 줄줄 내리읽었다.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면 두뇌가 명석해져서 진짜 벗과 진짜 적을 식별할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벗인가? 전세계 압박 받고 착취 받는 무산자는 모두 우리의 벗입니다. 누가 우리의 적인가? 지주, 자본가, 제국주의, 일체반동파는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벗과 단결하여 우리의 적과 싸워야 합니다!》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학생대표인 명남이가 구호를 웨쳤다. 《석호동무를 따라 배우자!》 그러면 전체 선생님과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따라 배우자!》하고 목청껏 따라 웨쳤다. 그날 석호는 전교사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모주석저작학습모범 상장을 받아 안고 너무도 기뻐서 싱글벙글 웃었다. 얼마후 석호는 현의 모범이 되여 전현 모주석저작학습모범표창대회에 참석하여 사적보고를 하게 되였다. 학교에선 줄을 서서 가슴에 붉은 꽃을 달고 돌아온 그를 박수로 환영했다. 석호는 또 체육위원이 되였고 3호학생까지 되였다. 3호학생 표준은 첫째로 품행이 좋아야 하고 둘째로 공부를 잘해야 하며 셋째로 체육운동을 잘해야 한다. 석호는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기에 첫째 조건은 단연히 합격이고 체육운동도 학급에서 따를 자가 없었기에 셋째 조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두번째 조건이 문제였다. 원래 공부하기 싫어하고 학습성적이 낮은 석호가 아무리 날고 뛰여도 이 두번째 조건에 합격될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것은 사람이 하기에 달렸다. 최선생님은 석호를 내 곁에 앉게 했다. 그것은 또한 석호의 요구이기도 했다. 석호는 시험을 칠 때마다 내 답안을 보고 베꼈다. 최선생님은 그가 커닝을 한것을 눈치 챘지만 눈을 감아주었다. 덕분에 학습성적까지 우수를 맞은 석호는 무난하게 3호학생이 될수 있었다. 그가 모범이 된것도 3호학생이 된것도 모두 나의 공로였다. 석호도 이런 《은혜》를 잊지 않고 나를 잘 대해주었다. 신체가 허약했던 나는 늘 힘센 아이들에게 얻어맞지 않으면 놀림을 당하군했다. 하지만 석호가 나의 뒤심이 돼주면서부터 나를 깔보고 업신여기는 아이가 없었다. 공부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던 당시는 수업시간보다 로동시간이 더 많았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로동을 많이 시켰다. 학교 돼지 키우기, 겨울날 싸리나무 해오기, 방학기간 비료모으기, 학교밭에 거름내기, 생산대를 도와 모내기, 김매기, 가을하기, 제전만들기…나는 공부는 잘했지만 신체가 허약했던 탓으로 로동에선 언제나 점수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석호가 도와주었기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싸리나무를 할 때면 나는 남의 절반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석호가 몇몇 힘센 아이들에게 한마디하면 그 애들이 자기가 베여온 싸리나무를 한줌씩 갈라서 나한테 주군했다. 싸리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로동을 할 때도 석호는 힘센 아이들에게 나를 도와주도록 명령했다. 석호는 학급에서 힘이 최고였지만 로동을 할 때면 힘들이지 않고 꾀를 부리군했다. 비료모으기를 할 때면 슬그머니 남이 모은 비료를 도둑질해 왔고 김매기나 가을할 때면 자기는 앉아서 쉬면서 다른 힘센 애들을 자기 몫과 나의 몫까지 하게 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면서 선생님이 보면 열심히 일하는척 했다. 그랬기에 그는 언제나 일을 잘한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듣군 했다.   《아빠, 뭘해? 내리지 않고…》 딸년의 재촉에 추억에서 깨여난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가 벌써 집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고 석호가 보낸 일군들이 딸년이 대상으로 탄 텔레비죤을 우리가 사는 아파트 6층으로 올려다주었다. 나는 석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 《호랑이 같은 사나이》의 집필을 다그쳤다. 요즘 석호는 회사의 일로 분주히 뛰여다니느라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비밀이라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면서 석호는 회사의 경기가 좋지 못해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호랑이그룹이 불경기라니? 물론 국외에선 굴지의 그룹들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있지만 눈앞의 석호의 회사의 불경기는 믿어지지 않았다. 석호는 내가 따라서 근심하자 《잠시겠지…》 하면서 되려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가 이번의 난관을 꼭 뚫고 나가리라 믿었다. 그러면서 나는 짬만 있으면 집필을 다그쳤다. 어느날 저녁, 내가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동창생 명남이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연구항목을 후원해달라고 석호를 찾아갔다가 거절당했다고 분하여 씩씩거렸다. 《학교 때 내가 자길 고발했다고 날 무시하는거지. 자식, 뭐가 잘났다고…》 나는 학교 때 명남이와 석호사이가 쥐와 고양이처럼 앙숙이였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석호가 그 때문에 손을 내미는 명남이를 거절한것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석호가 돈을 좀 벌었다고 소문이 나자 친척친구, 동창생, 정부기관 관리 등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후원해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석호가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만족시켜준다는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요즘 회사의 경기가 좋지 못할 때 명남이를 도와줄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석호의 회사가 불경기란 비밀을 루설할수 없었기 때문에 《그게 아닐거야.》 하는 말밖에 할수 없었다. 하지만 명남이는 《그 녀석이 내 고발 때문에 입단을 못하던 일을 잊지 않고있을거야.》하면서 이를 갈았다. 분하여 씩씩거리면서 돌아가는 명남이의 뒤모습을 보자 나는 또 지난일들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소학교때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였던 석호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반주임인 박선생님의 호감을 샀다. 그래서 그가 반장이 되고 명남이가 부반장, 내가 학습위원이 되였다. 잔꾀가 많은 석호는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날마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교무청사의 복도와 계단을 반들반들 윤기나게 닦아놓고 다음에 또 교실청소를 깨끗이 해놓군 했다. 그리고 나무를 깎아 교편을 만들어오기도 하고 흑판에 먹칠을 까맣게 해놓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홍위병조직에 첫 사람으로 가입했다. 팔에 홍위병완장을 두른 그는 정말 위풍이 당당해보였다. 그는 중학교에서도 역시 내 옆에 앉아서 시험을 칠 때면 내 답안을 베끼군 했다. 그는 홍위병에 가입하는 그날 나보고 입단신청서를 써달라고 했다. 이튿날 등교하면서 나는 그의 이름으로 쓴 입단신청서를 넘겨주었고 그는 그것을 보고 다른 종이게 베껴써서 선생님께 바쳤다. 그런지 얼마되지 않아 선생님은 석호의 입단이 곧 비준된다고 했다. 모두가 부러워했고 석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거렸다. 그런데 그가 일을 치는 바람에 그만 그의 입단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석호는 소학교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선생님이 모르게 하교해서 가만가만 피웠기에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오자 그는 대담하게도 호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다니면서 휴식시간이면 몇몇 애들과 함께 학교변소 아니면 뒤마당의 구석에 숨어서 가만가만 피워댔다. 그러다가 명남이한테 발각되였다. 석호한테 질투를 느꼈던 명남이는 석호가 담배를 피운 사실을 곧 선생님한테 고자질했다. 자기보다 공부를 못하고 장난꾸러기였던 석호가 반장이 되고 곧 입단까지 하게 된다니 질투가 나서 견딜수 없었던 모양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속으로 석호를 질투하고있었다. 하지만 감히 고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여튼 이때문에 석호는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한바탕 꾸지람을 들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었다면 석호의 입단은 문제없었을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고 가만있을 석호가 아니였다. 하교할 때 석호는 명남이를 구석진 곳에 끌고 가서 주먹과 발길로 사정없이 족쳐댔다. 늘씬하게 얻어맞은 명남이는 사흘동안이나 등교하지 못했다. 이 일때문에 석호는 전반 학생들 앞에서 비판받게 되였다. 석호가 입단하지 못한 대신 명남이와 내가 홍위병에 가입하고 또 이어서 입단까지 했다. 명남이와 내가 입단하는 날 석호는 분하여 씩씩거렸다. 《개새끼 두고보자!》 그는 명남이를 이를 갈며 미워했다. 그러나 벼르기만 할뿐 다시 때리지는 않았다.   나는 석호의 일대기를 써나가다가 자꾸만 난제에 부딪혔다. 어떤 일은 사실대로 쓸수가 없었던것이다.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 된 일도 그랬고 《대채전》을 만들 때의 일과 물에 빠진 나를 구할 때의 일도 그랬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반드시 삽일 되여야 할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석호의 《출세》길이 다시 열렸다. 학교에서는 《문을 열고 학교를 꾸리는》길을 따라 전교학생들을 충동원하여 《대채전》(제전)을 만들러 산골로 내몰았다. 우리는 이불짐을 등에 지고 청석골로 내려갔다. 학생들은 사원들의 집에 4~5명씩 나누어 들었다. 석호와 나 그리고 다른 2명의 애가 함께 생산대 대장의 집에 들었다. 이튿날엔 빈하중농의 쓰라린 과거사도 들었고 한줌도 못되는 몇몇 계급의 적들을 투쟁하는 대회에도 참석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로동열정을 높여주기 위한것이였다. 해방전, 헐벗고 굶주리던 빈고농들이 지주, 부농에게 압박 받고 착취 받던 눈물겨운 이야기는 우리의 눈물을 자아냈고 시시각각 복벽을 꿈꾸는 한줌도 못되는 계급의 적들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은 우리들의 격분을 돋궈주었다. 선생님은 전장에 나선 전사들처럼 우리에게 선서문을 써서 바치게 했다. 석호는 또 나에게 선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넌 입단했기에 안 써도 괜찮아. 내걸 멋지게 써달라. 난 이번 기회에 꼭 입단하고야 말겠어.》 나는 그날 저녁 선서문을 써서 석호에게 주었고 석호는 그걸 베껴서 선생님한테 바쳤다. 이튿날 선생님은 석호가 선서문을 잘 썼다면서 학생들 앞에서 내가 써준 선서문을 랑독했다. 《…나는 빈하중들의 피눈물나는 과거사를 듣고 나니 오늘의 행복이 얼마나 어렵게 왔는가를 깨닫게 되였고 모주석께서 마련해주신 살기 좋은 사회주의세상에서 부러운것이 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한줌도 못되는 반동분자들의 죄행을 듣고 나니 계급투쟁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된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모주석께서는 계급투쟁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교시하셨습니다. 한줌도 못되는 계급의 적들은 저들의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어두운 구석에 숨어서 날마다 시퍼런 칼을 갈고있습니다. 하기에 우리는 시시각각 경각성을 높여 계급의 적들의 파괴활동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대체전을 만들러 여기로 온것도 사회주의를 더욱 잘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무들, 우리 모두 우공이 산을 옮긴 정신으로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가면서 결사적으로 가파른 산을 깎아 층층제전을 쌓아갑시다! 이는 우리의 기개와 혁명정신을 고험할수 있는 싸움터입니다. 나는 홍위병입니다. 더구나 입단신청서까지 써바친 몸입니다. 나는 이 싸움에서 앞장서 싸우겠습니다. 조직에서 나를 고험해주십시오. 나는 이 싸움터에서 쓰러지는 날이 있더라도 마지막 피 한방울 남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투지를 고무하는 좋은 선서문이라고 석호를 칭찬하면서 결사적으로 싸우자고 구호를 높이 웨쳤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대채전만들기격전에 나선 우리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사처에 붉은 기발이 휘날리고 《농업에서 대채를 따라 배우자!》는 큼직한 글발이 한눈에 안겨온다. 모두가 부지런히 삽질하고 힘차게 곡괭이를 휘두른다. 우리는 가파른 산을 깎고 또 깎아 한층한층 제전을 쌓아갔다. 처음에는 성수나던것이 며칠이 지나자 허리가 시큰해나고 무릎마디가 쑤셔난다. 20여일이 지나니 약골인 나는 더 지탱할것 같지 않았다. 풀썩 주저앉고싶었다. 석호를 곁눈질해보니 그는 그래도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부지런히 삽질을 해댄다. 《자식, 입단하자고 정신없이 일해대는군!》 곁눈질하면서 삽질하던 나는 그만 삽으로 발등을 찔렀다. 《아…아…악!》 나의 비명소리에 선생님과 동학들이 달려왔다. 내 발등에선 피가 흐르고있었다. 적십자위생가방을 메고 달려온 학교위생원이 대충 지혈제를 발라주고 붕대로 상처를 감싸주었다. 나는 상처가 몹시 쑤셔나고 고통스러웠지만 이튿날부터 일하러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였다. 석호랑 일하러 나갈 때 나는 주인집에 편안히 누워서 석호가 빌려준 《수호전》을 읽다가는 절뚝거리며 마을구경을 하군했다. 《이 자식, 팔자가 늘어지게 됐군!》 석호는 나를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던것이 어느날 갑자기 일하러 나갔던 그는 중도에 애들에게 업혀서 돌아왔다. 《어찌된 일이냐?》 《너처럼 발등이 상했어!》 석호를 업고 온 경일이가 말했다. 경과는 이러했다. 열심히 곡괭이질 하던 석호는 갑자기 아앗! 하고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하늘땅이 핑글핑글 돌아가는듯 했다. 선생님과 동학들이 달려와보니 그의 발등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위생원의 처치가 끝나자 석호에게 호감을 갖고있는 박선생님이 관심조로 말했다. 《석호동무는 너무 무리했소. 돌아가 쉬오!》 《아니, 전 물러설수 없습니다. 마지막 피 한방울 남을 때까지 견지하겠다고 선서까지 했는데 어떻게…》 《석호동무, 신체는 혁명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동무의 몫까지 하겠으니 돌아가 휴식하오. 동무들, 석호동무는 상처를 입고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고상한 정신입니까? 우리 모두 석호동무의 정신을 따라배워 석호동무의 몫까지 해나갑시다!》 《석호동무의 몫까지 해나갑시다!》 모두들 따라 웨쳤다고 한다. 경일이랑 다시 일하러 나가고 둘만 남자 내가 물었다. 《아프니?》 《씨, 아파 죽겠다! 너처럼 편안한 팔자가 되자고 한 노릇이 쉽지 않다. 아이쿠!》 《나처럼 편안한 팔자가 되자고 그랬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씨, 일부러 곡괭이로 발등을 내리쳤다.》 《상한게 아니구 일부러?》 나는 깜짝 놀랐다.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제 발등을 내리치다니? 《쉿,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석호는 내가 입이 무겁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부탁했다. 이보다 더 엄중한-《수호전》책에《모택동선집》의 붉은 가위를 씌워《모주석저작학습모범》으로 된- 사실도 내 입에서 새여나가지 않았던것이다. 아무튼 석호가 상하자 동무가 있어 좋았다. 우리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선생님도 푹 쉬라고 했다. 나는 상처가 아프고 하니까 집생각이 났다. 《아예 대채전이고 뭐고 그만두고 집으로 갈까?》 《야, 임마, 나도 집생각이 난다. 하지만 지금 한창 투항파 송강을 비판하는 이때에 물러선다면 혁명의 도피분자로 될꺼야. 넌 단원이란게 그만한 고생을 할 각오도 없니?》 《흥, 넌 각오가 높아서 저절로 상처를 냈니?》 《야, 누가 듣겠다. 난 입단소개인으로 널 찾았는데 네가 가면 난 어떻게 해? 난 꼭 이번 기회에 입단해야겠어.》 《네가 제1선에서 물러섰으니 여기서 벌써 점수가 깎였어.》 《글쎄 말이야. 지금 조직에서 날 고험하고있는데…씨! 어쩌면 좋아?》 우거지상이 되여 얼굴을 잔뜩 찌푸린 석호는 근심에 쌓여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들 제1선에서 싸우고있는데 우리도 후근에서 무슨 일을 해놓아야 되지 않겠니?》 《여기서 무슨 할 일이 있니? 밥을 하겠니? 빨래를 하겠니?》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시를 쓰자!》 《시를?》 《너 글을 잘 쓰지 않니? 시한수 써달라. 제1선에서 싸우고있는 애들을 고무격려할수 있는 시를 말이다.》 석호는 당장 종이와 만년필을 가져다 내 앞에 놓았다. 나는 한창 머리를 짜며 궁리하다가 시랍시고 몇줄 썼다. 그것을 보던 석호가 다른 종이에 베끼더니 이튿날 아침에 선생님한테 바쳤다. 당장에서 쭉 훑어보던 박선생님은 연신《잘 썼소! 잘 썼소!》하고 칭찬하더니 식사하고있는 애들을 둘러보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들! 석호동무는 부상을 당하여 로동에 참가할수 없게 되자 전투적인 시를 써서 우리를 고무하고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림표 공구 비판하니 삽날에 번개일고 대채정신 빛발치니 층층제전 높아가네…〉어떻습니까? 용기와 힘이 막 솟아나지 않습니까? 오늘엔 석호동무의 시를 읊으며 돌격전을 벌려봅시다!》 박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애들은 집이 떠나갈듯 박수갈채를 보냈다. 열흘후 석호의 입단이 비준되였다. 석호는《대채전》에 꽂아놓은 단기아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입단선서를 했다. 이 모든것은 석호가 잔꾀를 잘 부린 결과였지만 결국 나의 공로였다. 정말 석호의 잔꾀는 아무도 못 따른다. 졸업무렵이였다. 그때는 대학시험제도가 갓 회복되여서 대학에 붙을만한 학생이 학급에서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대학시험을 치렀다. 긴장하던 대학시험도 끝나자 석호와 나는 미역감으러 강변으로 나갔다. 시험을 잘 친 나는 이미 대학생이 된거나 다름없다고 자신하고있었다. 그러나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석호는 졸업후의 장래를 근심하고있었다. 아빠엄마가 림시공이여서 다른 애들처럼 부모대신에 공장에 들어갈수도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동생이 둘까지 있어 집이 몹시 가난했다. 그는 자기의 출로를 생각하며 자꾸만 머리를 굴렸다. 해란강은 어떤 곳은 무릎까지 올 정도로 물이 얕았지만 어떤 곳은 어른이 서서 두손을 쳐들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도 있었다. 수영을 잘 못하는 나는 물이 옅은 곳에서 놀았고 수영재주가 좋은 석호는 키넘는 깊은 곳에서 강을 건너갔다 건너왔다 하며 자유자재로 헤엄쳤다. 개구리헤엄도 치고 누운헤엄도 치며 재주를 부리던 석호가 나한테로 다가오며 정색해서 말했다. 《너 내 하라는대로 하겠니?》 《뭘?》 그는 내 귀에 뭐라고 소곤거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안돼! 그러다 내가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그런 근심은 거둬라. 내 헤엄재주를 너도 알잖니?》 《그래도 그렇지.》 《겁쟁이같은게. 일없다는데!》 나는 겁이 덜컥 났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더러 진짜처럼 허우적거리며 물밑에 가라앉았다 나왔다 하며 연극을 놀라고 부탁하고 강 저쪽으로 헤엄쳐 건너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류쪽 100여메터밖에 빨래하는 아낙네 몇이 있고 상류쪽 100여메터밖에 4~5명의 애들이 미역을 감고있을뿐 사방 100메터안엔 석호와 나 둘밖에 없었다. 두려웠지만 나는 석호를 믿고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겨우 개발헤엄밖에 몇보 칠줄 모르는 나는 물이 깊은 곳에 들어가자 저도 몰래 온몸이 떨리면서 허우적거렸다. 석호쪽을 보니 석호가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일부러 두손을 허우적허우적하며 《사람 살려요!》 하고 고함쳤다. 그러나 석호가 오는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며 맥이 단꺼번에 풀렸다. 나는 정말로 더 지탱할수 없었다. 가짜로 하자던 노릇이 정말로 물에 빠지고말았다. 나는 물밑에 가라앉았다가 겨우 솟아오르며 절망에 찬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요!》 내가 몇번이나 물밑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나오며 허우적거려서야 석호가 다가왔다. 다는 구세주나 만난듯 다짜고짜로 석호한테 매달렸다. 그 바람에 석호도 함께 물밑에 가라앉았다. 석호는 다시 솟아오른후 나를 끌고 힘겹게 일보일보 전진하며 기슭으로 헤여나왔다. 그는 나를 안전하게 기슭에 떠민후 맥이 진했는지 그만 물살에 도로 밀려가고말았다. 나는 그의 머리가 물밑에 가라앉는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와 석호가 강기슭에 누워있었는데 숱한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있었다. 누군가 석호를 인공호흡을 시키고있었다. 나는 별일이 없었으나 석호는 위급한 모양이였다. 사람들은 《안되겠어!》하면서 석호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도 울면서 따라갔다. (석호, 저 자식이 가짜로 연극을 놀자더니 정말 죽는게 아냐?!) 나는 무서웠다. 그러나 병원의 구급실에 실려갈 때까지 죽은듯이 누워있던 석호는 의사가 몇번 배를 누르며 구급하자 곧 정신을 차리고 살아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석호는 나를 구한후 사람들이 달려오는것을 보고 일부러 물살에 밀리는 척하며 물밑에 잠겨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고 사람들이 구해냈을 때는 일부러 죽은듯이 누워 있었다고 한다. 석호가 물에 빠진 나를 구하다가 목숨까지 잃을번 했다는 소식은 날개라도 돋친듯 삽시간에 펴졌다. 나의 어머니는 집닭이 낳은 닭알 한 광주리를 가지고 석호네 집에 찾아가서 내 생명을 구해준 석호에게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는 석호의 요구에 따라 《생명의 은인》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방송국과 신문사에 보냈다. 석호의 《영웅사적》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문사와 방송국기자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석호와 나를 취재하면서 선생님과 우리반 애들 몇몇에게도 석호의 정황에 대해 몇마디씩 물어보았다. 석호가 소학교시절에《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였고 또 3호학생이며 공청단원이란 말을 듣고 기자들은 석호가 오늘날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자기의 동무을 구할수 있은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영웅》의 화려한 과거를 렬거하면서 석호의 사적을 재차 크게 보도했다. 시에서는 석호에게 《모범공청단원》칭호를 수여했고 각 학교에서는 석호를 따라 배우는 활동을 기세 높게 일으켰다. 《영웅》이 되자 《출세》길도 활짝 트였다. 졸업하면서 그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교육국의 추천으로 백화공사에 들어가 선전간사로 있었다. 그러나 읽은 글이 짧아서 막히는 일이 많았다. 흑판보에 쓰는 짧은 한어문장도 쓰지 못해서 20리밖에 있는 삼촌댁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삼촌손을 빌려서 쓰군했다. 그때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던 때여서 나의 도움을 받을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동료들이나 이웃들에게 묻기도 창피하여 먼곳에 있는 삼촌을 찾아가군 했다. 그래도 그는 사상이 좋았기에 곧 공회주석으로 승급했다. 공회주석이 되여서도 막히는것이 많았지만 삼촌의 손을 빌기도 하고 신화자전을 찾기도 하며 겨우겨우 문서를 작성해나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석호는 《하해》한다고 사표를 쓰고 백화공사에서 나왔다. 그때만 해도 백화공사는 《철밥통》이였기에 모두들 그의 그런 거동을 반대했고 대학공부를 했다는 나마저도 리해하지 못했다. 그는 시장조사를 한다고 남방으로 들어갔다가 오더니 시가지 중심에 가게를 빌리고 싸구려 가전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그는 자질구레한 물건보다 주로 자전거나 텔레비전을 구입해다가 팔았다. 특히 남방에 연줄을 달아서 천연색텔레비전을 싼값으로 가져다가 고가로 팔아서 숱한 리윤을 보았다. 그는 졸부가 됐다. 나는 몇번이나 그를 찾아가 취재했다. 그의 사적을 신문에 냈을 뿐만아니라 실화로 써서 청년잡지에 발표했다. 나는 글에서 통이 크게 해내는 사나이라고 석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런데 그는 더욱 통이 크게 해내려다가 결국 망하게 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돈까지 꿔다가 여러 곳에 분점을 세우고 천연색텔레비전을 대량으로 구입해들였다. 그런데 천연색텔레비전 시세가 갑자기 폭락하면서 그는 빚더미에 나앉고말았다. 그는 빚재촉을 피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어느날,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을 보니 전혀 빚돈 재촉에 시달린 사람같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에서 근심하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까짓 빚이 뭘 대단하다구 그래? 이제 내가 빚을 갚고 일어서는 걸 봐.》하고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는 우리 집에 사흘을 묵은후 나갔는데 떠돌아다니면서 마른명태, 해삼 등 장사를 시작했다. 그의 청산류수같은 말재주 덕분인지 장사가 잘 돼서 1년후엔 빚을 다 갚고 3년 후엔 목돈을 손에 쥐게 되였다.   그렇게 석호는 일어섰다. 그는 다방, 노래방, 안마방을 꾸리며 치부의 길로 달렸다. 그의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노래방이란 곳에 가서 노래를 불러보고 안마방이란 곳에 가서 안마를 받아보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나는 그의 치부사적을 써서 신문에 냈고 《청년》잡지에도 실화로 발표했다. TV방송국기자들도 그를 찾아와 취해했고 그 덕에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보도매체에서 춰주자 그의 장사는 점점 더 잘됐고 그는 호경기를 타고 경영범위와 규모를 넓혀 문화오락회사를 꾸렸다. 그는 저명한 청년기업가로 되였고 정부에서도 그의 회사를 중시하고 부추겨주었다. 모모한 지도자분들이 늘 그의 회사를 찾아와 고무해주는 장면이 늘 TV뉴스에 보도되였다. 그는 시장보다도 더 바쁜 인물이 되였다. 나마저도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분주히 뛰여다니다가 마침내 나를 불렀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패기가 넘쳐흘렀고 말마디마다 자신감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새항목을 내오고 회사규모를 대대적으로 확대했으니 회사도 그룹으로 바꿔야 하겠는데 너더러 그룹 이름을 좀 지어달라고 불렀어.》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내게 부탁해도 되겠니?》 한참 생각을 굴리던 나는 문뜩 떠오른 생각이 있어 말했다. 《좀 특수하면서도 순 우리말로 짓는게 어때? 례하면 〈호랑이그룹〉이라든지.》 《〈호랑이그룹〉이라…》 순간 석호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호랑이는 동물의 왕이라 천하에 적수가 없지. 그리고 민족성도 있고. 그게 좋겠어. 치렬한 시장경제시대에 살아 남자면 호랑이처럼 강해야지! 하하하! 〈호랑이그룹〉!》 며칠후 《호랑이그룹》설립의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였다. 모모한 지도자분들과 사회각계인사들, 여러 신문, 잡지, TV방송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석호는 격동된 목소리로 그룹의 밝은 전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호랑이그룹〉은 이미 전국각지에 분회사를 세웠고 빠른 시일내에 한국, 일본, 미국에도 분회사를 세울 계획을 작성했습니다. 이제 제품이 대규모적으로 생산되면 판매는 문제없고 리윤은 천문학수자입니다.》 《야, 대단하다!》 회장엔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보도매체에선 《호랑이그룹》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내가 《호랑이그룹》에 대해 쓴 기사는 번마다 신문의 톱자리에 실렸다. 어느날, 석호가 나를 불렀다. 어딘가 피로하고 수심에 잠긴 모습이였다. 《너 몹시 지친 모습이구나. 회사의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휴식하면서 해야지.》 《일이 바쁜건 괜찮지만 한가지 근심이 있다.》 《회사가 잘 나가는데 뭐가 근심이야?》 《계획대로 하자니 자금이 많이 딸린다. 괜히 크게 벌렸나봐》 《너무 급히 서두른게 아니야? 급히 먹는 밥이 목이 멘다고…이제라도 회사규모를 축소해.》 《안돼. 여기까지 와서 후퇴할수 없어! 끝까지 밀고 나가야지!》 《그래 방법은 생각했니? 은행대부금은?》 《은행대부금을 바란다는것은 꿈이야. 아무래도 사회에서 모금해야 하겠어. 높은 리자를 걸고 모금하는거야.》 《그래 놓고 갚을수 있는거니?》 《너 〈호랑이그룹〉의 실력을 몰라서 그러니? 〈호랑이그룹〉이라면 모두 믿을거야. 네가 신문에 기사 좀 내라. 〈호랑이그룹〉에서 미국과 합자해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데 자금은 량측에서 절반씩 투자하기로 했다고. 그런데 자금이 좀 딸린다는 사정도 먹히게 좀 써달라.》 나는 돌아가자마자 《세계로 향해 달리는 〈호랑이그룹〉》이라는 기사를 써서 신문 톱자리에 실었다. 우리 신문사는 《호랑이그룹》의 후원을 많이 받고있기에 《호랑이그룹》의 기사라면 언제나 톱자리를 할애해주었다. 《호랑이그룹》의 후원을 받아온것도 내고 《호랑이그룹》의 영구성 광고를 받아온것도 나이기에 신문사지도부에서는 나를 황제처럼 떠받들었다. 나는 재빨리 고급기자로, 총편판공실주임으로 되였다. 《호랑이그룹》은 내가 쓴 기사가 나가자마자 모금활동을 벌렸는데 온사회가 떠들썩하게 반향이 컸다. 기업, 단체, 개인 모두가 높은 리자에 현혹되여 저금통장을 털어가지고 벌떼처럼 《호랑이그룹》으로 달려갔다. 어떤 사람은 반신반의하면서《이렇게 목돈을 내놓았다가 떼이지 않을가?》했고 그러면 옆에서 《아니, 이 사람, 〈호랑이그룹〉을 못 믿겠나? 석총재님이 어떤 분이신데. 그리고 신문사가 거짓말하겠나?》하면서 안심시켰다. 우리 집사람도 어느새 저금통장을 몽땅 털어서 《호랑이그룹》에 가져갔다. 이렇게 《호랑이그룹》의 자금은 해결되였고 《호랑이그룹》은 눈덩이 굴리듯 점점 커져서 굴지의 사영기업으로 발전했다. 석호의 이름은 점점 더 유명해졌고 그의 덕에 나는 에세이집을 5권이나 세상에 내놓을수 있었다. 나는 태산같은 그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 《호랑이 같은 사나이》의 집필을 다그쳤다. 그러는 가운데 그와 세번이나 만났는데 그는 회사의 경기가 좋지 못하다는 비밀도 터놓았다. 그는 회사청사의 24층 옥상에 올라서 도시를 바라보기를 즐겼다. 내가 그의 회사에 찾아갈 때마다 그는 늘 옥상에 혼자 서있었다. 그날도 옥상에서 나를 만난 그는 내가 따라서 근심하자 《잠시겠지…》하더니 다음에 만났을 땐 어두운 얼굴로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게 아니였는데…》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세번이나 《그게 아니였는데…》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다가 나를 돌아보며 《내가 이 옥상에서 뛰여내린다면 어떻게 될가?》했다. 그 말에 가슴이 섬뜩해난 내가 《아니, 너 미쳤니? 무슨 할 생각이 없어 그런 생각을 다해?》하고 쏘아보자 그는 씩 웃으며 《롱담이야》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정색해서 《너도 우리 회사에 돈을 빌려준게 있겠지? 소문내지 말고 어서 찾아가.》했다. 내가 《그렇게 엄중해?》하자 그는 《내 말대로 해》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지만 불안한 예감이 자꾸만 가슴에 덮쳤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어디서 비밀이 새여 나왔는지 《호랑이그룹》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나와 석호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나한테서 소문의 진가를 알려고 탐문했다. 나는 《나도 석총재님을 만나본지 오래돼서 잘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내가 외자로 취재를 나왔는데 석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더러 자신의 회사에 와달라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가? 회사경기가 좋지 않다더니 부도가 날 셈인가? 아니, 그럴수 없을거야.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석호가 누군데 부도가 나겠어.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야. 나뿐만아니라 석호를 알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믿지 않을것이였다. 그러나 만약에…만약에 그의 그룹이 망한다면 지진이 일어난듯 그 진동은 엄청날것이였다. 그의 회사에 거금을 밀어넣은 그 숱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리는듯 했다. 나는 취재를 부랴부랴 끝내고 급급히 택시를 불러 탔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를 찾아을 때 그는 회사청사의 옥상의 바깥쪽에 목석처럼 서있었고 그의 뒤에선 예닐곱살 된 녀자아이가 혼자서 끈을 맨 고무풍선을 손에 들고 뛰여다니고있었다. 언젠가 내가 보았던 이 회사직원의 아이였다. 《석호야!》 나는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석총재님》이라 하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불러서야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몹시 초췌해 있었다. 언제나 혈색이 좋던 그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어글어글하던 눈엔 정기가 없었다. 그는 다가오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의 전기는 마무리 돼가니?》 《응, 거의 다 썼는데 결말을 아직…》 《결말은 비참하다. 더 쓰지 말라. 그리고 쓴걸 다 지워버려!》 《아니, 언제나 락관적이던 네가 왜 그렇게 비관실망하니?》 《망했다! 이젠 완전히 망했다! 〈호랑이그룹〉은 망했다!》 석호는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이제 난 이 세상을 볼 낯이 없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망하게 한 죄인이다! 내 회사에 거금을 밀어넣고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석호, 진정해라, 무슨 방법이 있을거야!》 《방법? 이제 방법은 없어! 아무런 방법도 없어! 방법이 있다면 죄인인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거야!》 절망에 차 참회하는 그를 보자 가슴이 몹시 아팠다. 그가 정말 마음을 잘못 먹을가봐 덜컥 겁이 났다. 《석호, 진정해라! 방법은 꼭 있을거야!》 《흐흐흐! 내가 일떠세운 회사청사의 24층 옥상에서 뛰여내리는것, 이것이 최후의 선택이야! 이것이 이 석호의 마땅한 끝장이야!》 《아니, 안돼!》 나는 그의 투신자살을 막으려고 달려가 그들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힘을 당할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콱 밀어 던졌다. 《내 자식을 부탁한다! 그리고 안녕히! 나는 간다!》 그 순간 나는 고무풍선이 옥상끝으로 날아가는것을 보았다. 고무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끈을 놓쳐버린 녀자아이가 옥상끝으로 달려가다가 엎어지는것을 보았다. 하지만 석호는 녀자아이 쪽은 보지도 못하고 옥상끝에서 아래로 몸을 던지고있었다. 《앗, 안돼!》 하지만 늦었다. 석호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녀자아이가 위험했다.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 옥상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엎어져 울고있는 녀자아이를 안고 옥상 중간으로 돌아왔다. 악몽을 꾸는것 같았다. 석호가 이렇게 가다니? 녀자아이의 울음에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석호의 비참한 최후를 만회할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라 녀자아이를 보고 말했다. 《너도 보았지? 방금 옥상에서 떨어진 아저씨를? 저 아저씨가 너를 구하려다가 떨어진거다. 알겠니?》 아이는 머리를 끄덕였고 엄마가 찾아오자 석총재님이 자기를 구하려다가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TV방송국기자들이 왔을 때 아이 엄마는 석총재님이 아니면 자신의 아이가 죽을번 했다면서 《석총재님!》하면서 대성통곡했다. 그날 밤으로 석호의 영웅사적이 TV뉴스에 보도되였고 잇달아 내가 쓴 《어린 생명을 구하다가 목숨을 바친 〈호랑이그룹〉석총재》라는 기사가 이튿날 신문 톱기사로 나갔다. 얼마후 정부에선 석호에게 영웅칭호를 주었고 그의 회사가 망한 내막도 비밀도 덮어두었다. 그리고 내가 쓴 석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 《호랑이 같은 사나이》도 해빛을 보게 되였다.    
20    안개속의 메아리 댓글:  조회:3627  추천:0  2013-12-08
대중소설 안개속의 메아리 김희수     여름철에 잡아들자 《어절씨구목욕탕》은 손님이 뜸해졌다. 3층에 찾아오는 손님은 더구나 적었다. 두 처녀와 젊은 부부간이 왔다간후로 10시가 되도록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3층의 담당접대원은 워낙 둘이였는데 중년녀인이 아들잔치때문에 사흘간 말미를 맡았기에 오늘은 젊은 녀인 혼자였다. 그녀는 하도 무료하여 《천지》잡지를 펼쳐들었다. 금방 소설의 서두를 읽어내려갈 때 계단을 밟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하여 1남1녀가 그녀앞에 나타나 목욕표를 내밀었다. 보던 책을 내려놓고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어 목욕표를 받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곰같은 몸집에 장대한 체구를 가진 50대의 멋진 양복차림의 신사사나이와 미끈한 몸매에 짙은 화장을 한 20대의 화려한 옷차림의 미녀가 나란히 서있는것이 아닌가. 《박총경리께서 어떻게…》 그녀는 50대 사나이가 《두둥실호텔》의 총경리 박규태임을 대뜸 알아보고 허리를 굽석거렸다. 무도장의 단골인 그녀는 박총경리와 두번이나 춤을 추는 《영광》을 가진적이 있었으나 안면이 넓은 박총경리는 그녀같은 《하찮은》 녀인을 기억하고있을리 만무했다. 그녀는 곁사람들한테서 박총경리가 마누라와 리혼하고 스무살난 처녀를 후실로 맞아들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렇게 박총경리의 새 부인을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였다. 《아이참, 더워죽겠네! 전번부터 샤워욕기가 고장났다고 말했는데두 새걸 사오지 않더니 봐요. 탈탈거리며 이 고생인걸!》 박총경리의 젊은 안해는 왼쪽 어깨에 메였던 가방을 오른 쪽 어깨에 바꿔 메며 종알거린다. 백양처럼 미끈하게 쪽 빠진 몸매, 보름달같이 환한 얼굴, 다치면 터질듯 불룩 솟은 탐스런 젖가슴은 가히 박총경리의 애간장을 태워줄만 했다. 《허허허! 이렇게 다니는것도 재미지비.》 박총경리는 젊은 안해의 손을 다정스레 잡고 접대원녀인이 안내하는 309호 방으로 들어갔다. 부러운 눈길로 그들을 일별한 접대원녀인은 제자리에 돌아와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시간이 약 40분가량 흘렀을 때 박총경리의 젊은 안해가 먼저 문을 열고 나오며 안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세요! 아직도 안됐나요? 정말 굼뜨네. 전 먼저 이 앞 《옹헤야미용청》에 가겠으니 그리 알아요!》 박총경리의 안해가 부랴부랴 층계를 내려간지도 20분이 지났으나 박총경리는 나오지 않았다. 웬 일일가? 그녀는 309호 방으로 다가갔다. 안에서 수도물 흐르는 소리가 쏴-쏴 귀전을 때렸다. (이 령감이 아직도 몸을 씻고있군. 사업이 바쁘다보니 목욕할 새가 없었나보지?) 지정된 한시간이 지났으나 다른 손님이 없기에 그녀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다시 돌아와 책을 펼쳐들었다. 소설 한편을 다 읽었는데도 박총경리는 나오는 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그 어떤 예감에 가슴이 섬찍해났다. (이 령감이 혹시 졸도한게나 아닐가?)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309호 방문을 두드렸다. 《박총경리, 계시나요?》 대답이 없다. 그녀는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였다. 《박총경리! 박총경리!》 역시 대답이 없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눈앞의 처참한 광경에 놀라 《앗!》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마후 형사정찰과 과장 석진이와 정찰원 구민이 현장에 도착했다.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채로 굳어진 시체는 목에 바줄로 조인 흔적이 남아있는 외 다른 곳은 상처자국이나 다친 흔적이 없었다. 피해자는 년령이 50세좌우, 키가 1.75메터, 체중이 90킬로그람 됨직했다. 시체촬영이 끝나자 석진이와 구민이는 피해자가 벗어놓은 옷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양복호주머니에서 열쇠묶음과 만년필, 사업용수첩 그리고 가치가 퍼그나 되는 인민페와 외화가 나왔다. 석진이는 안호주머니에서 정교하게 찍은 명함장을 들추어냈다.   박규태: 《두둥실호텔》총경리. 지력개발회 리사장, 발전기금회 리사장, XX협회 명예회장.   보아하니 피살자는 이름있는 기업가이며 명성높은 사회활동가였다. 명함장에서 손을 뗀 석진이는 그때까지 쏴-쏴- 소리치며 흐르는 수도물을 끄며 예리한 눈길로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천정은 콩크리트였고 안방엔 목욕통 둘이 있고 겉방엔 밑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나무침대 둘이 있었는데 오른쪽 침대에 박규태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하나뿐인 창문은 꽁꽁 잠겨져 있고 창밖아래로는 행인과 차량들이 간단없이 오가고있었다. 흉수가 창문으로 뛰여들어 왔거나 이 방에 잠복해있는 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석진이는 구민이와 함께 시체의 첫 발견자인 접대원녀인을 만났다. 그녀는 어찌나 놀랐던지 그때까지도 벌벌 떨며 사건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귀담아듣고 난 석진이는 담배를 두대째 갈아대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20살좌우의 미인이라 했지? 그런데 키는 얼마나 돼보였소?》 《키가요? 저…1.60메터는 될거예요.》 《박총경리네가 목욕탕에 들어간후 무슨 소리가 안들렸소?》 《아무 소리도 못들었어요.》 석진이와 구민이는 다시 1층과 2층의 담당접대원과 목욕탕의 경리를 만나 필요되는것을 조사했다. 흉수는 박규태와 함께 목욕탕에 온 녀인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녀인이 정말 박규태의 안해일가? 제보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오느라 점심도 먹지 못한 그들은 빵으로 대충 요기를 한후 곧추 《두둥실호텔》로 차를 몰았다. 6층으로 된 호텔은 호화롭고도 으리으리했다 맨 아래층은 식당과 록화청이고 2층은 오락장, 3층은 무도장, 그 다음 웃층은 모두 호텔방이였다. 그들은 각층의 해당경리들과 몇몇 일군들을 만나본후 나중에 박총경리의 비서를 찾았다. 대학졸업생인 젊은 비서는 박총경리가 당한 불행에 대해 몹시 애석해하였다. 《박총경리는 사업에 몹시 열중한 정력적인 기업가였지요. 사람들은 그의 사생활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하며 의논하고있는데 저는 그런것에 관심을 돌리지 않기에 잘 모릅니다.》 《박총경리가 젊은 안해를 맞았다는데…》 《그건 1년전의 일이지요. 그때 박총경리는 본 안해와 리혼하고 지금의 안해를 맞았는데 그 녀자는 박총경리의 시집간 딸보다 더 어렸지만 남편을 끔찍히 사랑했답니다.》 《박총경리 안해의 사업단위는…》 《원래는 술집 복무원이였는데 지금은 직업을 버리고 가정주부질 한답니다.》 《박경린 오늘아침 출근했소?》 《네. 여느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는데 9시가 거의 되여 웬 녀자한테서 전화가 와서 나갔지요.》 《웬 녀자한테서? 전화내용은?》 《전 그때 곁에서 무심히 들었는데 박총경리가 대방이 누구냐고 두번 물은것 같습니다.》 《비서동문 박총경리네 집을 아는지요?》 《알다뿐이겠습니까, 제가 두분을 모셔다드리지요!》 그들이 비서의 안내로 박규태네 집에 가보니 집은 비여있는지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둘은 저녁에 다시 찾아갔다. 젊은 안주인이 집에 있었다. 초인종소리를 듣고 문을 연 그녀는 자기앞에 나타난 두 형사경찰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그들을 널찍한 접대실로 안내하고는 차를 따라주었다. 석진이는 그녀의 예쁘장한 두눈에 눈물방울이 가랑가랑 맺혀있는것을 보았다. 《동무가 박총경리의 안해요?》 《네. 방금 남편단위에서 위문하려 왔다갔댔어요. 정말 뜻밖이예요. 너무나도…》 그녀의 고운 눈에서 두줄기의 눈물이 소리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그 눈물은 억지로 짜낸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 슬픈 표정도 아니였다.그녀가 박규태와 결합한것은 돈을 탐낸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박규태의 재능과 기업가다운 풍채에 끌려서였다. 그녀는 나이 많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규태는 어린 안해를 끔직히도 귀여워했다. 갓 결혼해서 꿀맛같던 그들의 생활이 6개월이 지난후부터 웬 일인지 랭랭해지더니 차츰 티각타각 말다툼질이 끝이 없었다. 《우린 사건을 조사하러 왔소. 동문 오늘 낮에 어디에 갔댔소?》 《집에 있기 답답해서 바람 쏘이러…》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뭘 했으며 누구와 함께 있었소?》 《저…저는…》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흑빛이 되였다. 그녀가 당황해하는것을 보고 쏘파에 앉았던 구민이가 벌떡 일어나며 키가 신통히도 1.60메터좌우되는 이 예쁜 녀인을 쏘아보았다. 《왜 당황해하는거요? 솔직히 교대하오!》 《전…제발 묻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석진이는 격해지려는 구민이를 가볍게 누를며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오. 우린 절대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굴지 않소.》 《전…전…남편을 보복하고싶었어요!》 《무엇때문에?》 《갓 결혼해서 절 기막히게 아끼고 사랑해주던 남편이 반년전부터 그 열정이 차츰 식어거더니 늘 밤중에 들어오는가 하면 외박하는 차수가 늘어났어요. 전 그가 도박을 노는가 햇는데 알고보니 다른 녀인들과 놀아댄게 아니겠어요. 이 널찍한 집에서 홀로 밤을 새우는 제 고통을 어찌 한입으로 다 말할수 있겠어요. 전 반년동안이나 남편이 있는 생과부질했어요!》 《동문 남편이 외도한다는걸 어떻게 알았소?》 《밖에서 시시한 말이 돌고 저한테 귀띔해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번은 남편이 옷을 씻다가 호주머니에서 웬 녀인의 사진 한장을 발견했어요. 처녀같아보이는 그녀는 저보다 더 예쁘게 생겼어요. 소문을 믿지 않던 저는 이때에야 자신이 배반당했음을 의식했어요. 저는 말없이 집을 떠났어요. 친정집에 간 이튿날로 되돌아왔어요. 올케의 눈치가 보여 아침밥도 먹지 않고 이른 새벽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글쎄 제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갈보니 바로 사진의 그 녀인과 남편이 발가벗고 한침대에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전 남편을 보복하고싶었어요!》 《그렇다고 어찌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단말이요?》 구민이는 수갑을 꺼내 그녀의 손에 채우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뒤주춤하며 놀란소리를 질렀다. 《남편을 살해했다니요? 전 남편을 미워했지만 살해하려는 마음을 먹어본적이 없어요!》 《보복하려 했다면서 살인하지 않았다니?》 《전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같은 방법으로…》 그녀는 남편에게 보복하려고 첫사랑을 나누었던 총각을 찾아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줄곧 《닐리리공원》에서 놀다가 점심을 함께 먹고 저녁밀회까지 약속했는데 공교롭게도 남ㅁ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 총각은 어디서 사업하오?》 《의학원학생이예요.》 《박총경리가 집에 데리고 왔다는 녀자는 키가 어느만큼 되고 어떤 특징이 있엇소?》 《그 녀자는 아래입술밑에 유표나게 까만 기미가 있었는데 제가 들어서자 옷을 입고 달아다는걸 보니 키는 저보다 더 컸어요.》 석진이는 일어나 집안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욕실에 가서 샤워욕기를 다쳐보니 물줄기가 쏴-하고 뿜겨나왔다. 이튿날 아침에 시체검사보고가 나왔다. 흉수가 박규태를 바줄로 목을 매여 죽인것이 확인되였다. 흉수는 지문을 남기지 않았다. 석진이와 구민이는 의학원의 그 학생을 찾아가니 그 학생은 자기가 어제 확실히 그 시간에 박총경리의 안해와 밀회를 가졌다는것이였다. 그들은 다시 박총경리의 안해와 《어절씨구목욕탕》의 3층 담당접대원녀인을 대면시켰다. 《저 녀자가 아니예요. 어제 박총경리와 같이 온 녀자는 저 녀자보다 키가 훨씬 더 컸어요.》 《어제 동문 그 녀자의 키가 1.60메터좌우 된다고 하지 않았소?》 《제가 그랬던가요? 눈짐작으로 그만큼 된다고 생각했는데…》 《동무, 이건 장난이 아니요. 가짜 정황을 제공하면 법적책임을 져야 하오!》 《어마나, 전 그래도 사실대로 말하느라 했는데…》 《그럼 한가지 더 묻기오. 박총경리와 같이 온 녀자는 얼굴에 무슨 특징이 없었소? 말하자면 기미라든가 주근깨라든가 하는거말이요.》 《기미?》 애써 기억을 더듬으며 접대원녀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 녀잔 얼굴에 아무런 표적도 없었어요.》 석진이와 구민이는 다시 《두둥실호텔》로 가서 박총경리의 비서를 찾았다. 《비서동무, 이 호텔엔 아래입술밑에 기미가 있는 녀자가 있소?》 《기미요? 우리 호텔의 6층 접대원 계옥이가 아래입술밑에 기마가 있습니다. 그 처년 키가 크고 아주 예쁘게 생겼는데 박총경리의 소개로 들어왔지요.》 《박경린 그 녀자를 어떻게 알고 데려왔다오?》 《3.8절 텔레비죤야회를 촬영할 때였지요.》 박총경리의 비서는 지나간 그 로맨스를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계옥이이 미혼부 광욱이는 구연단의 만담배우였다. 그때 계옥이는 광욱이의 만담종목이 야회에 오른 덕분에 관람석에 앉게 되였다. 그녀의 곁에는 뚱뚱한 몸집의 50대 사나이가 만면에 웃음을 담고 앉아있었다. 《이번 야회를 후원해주신 〈두둥실호텔〉의 박규태총경리께서 보귀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사회자가 계옥이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와 방그레 웃으며 50대 사나이한테 마이크를 내민다. (아, 저이가 신문과 잡지에 소개된 그 명성높은 기업가 박총경리구나!) 계옥이는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박규태를 바라본다. 청산류수로 발언을 끝낸 박규태는 자리에 도로 앉으며 계옥이한테 눈웃음을 보낸다. 가요절목이 시작되자 박규태는 신이 난듯 선으로 박자까지 쳐대다가 어망결에 계옥이의 무릎을 탁 쳐놓는다. 《어, 이거 미안하오!》 규태가 난처해하며 사과하자 계옥이는 별일 없다는듯 생글생글 웃었다. 《박총경리께선 음악을 무척 즐기시는 모양이군요!》 《대단히 즐기오. 얼마나 심금을 울려주는 선률이오! 동문 즐기지 않소?》 《저도 즐겨요.》 박규태는 계옥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는 계옥이가 아직 직업이 없다고 하자 놀란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직업이 없다니? 동무같은 인물체격이면 복무계통에서 서로 빼앗자고 하겠는데. 우리 호텔에 들어올 의향이 있소?》 《제가 어떻게…》 계옥이는 가슴이 쿵쿵 뛰였다. 순식간에 직업을 찾다니. 그것도 광욱이가 있는 도시에서 출근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집체합숙이 있는데 주숙비는 무료요. 로임은 200원인데 표현에 따라 더 내줄수도 있소. 어떻소? 래일부터 출근해도 되오!》 너무나도 기뻐난 계옥이는 박규태한테 연신 감사를 드렸다… 《계옥이는 지금 어디에 있소? 출근했소?》 구민이가 급히 물었다. 《아마 출근했을겁니다. 6층에 올라가 보십시오.》 6층에 올라간 그들은 뚱뚱한 접대원처녀를 만났다. 《계옥인 어디 있소?》 《계옥인 어제 아침에 일찍 떠났어요. 웬 영문인지 일을 영 그만두겠다며 짐을 꾸려가지고 갔어요.》 《가버렸다구?!》 석진이와 구민이는 서로 놀란 눈길을 교환했다. 석진이는 담배불을 붙여물었다. 《계옥인 평소에 누구와 거래가 많았소?》 《저하고 제일 친했어요. 그리고 구연단에 있는 미혼부 광욱이가 늘 찾아왔어요. 계옥이는 시골처녀이고 광욱이는 도시총각인데 광욱이의 외가집이 계옥이네 뒤집에 있었대요. 계옥이는 어릴 때의 한토막이야기를 몇번이나 저한테 들려줬어요…》 걸음발을 타면서부터 외가집에서 자랐던 광욱이는 도시학교에 다니면서도 계옥이와 떨어질수 없어 방학이면 꼭꼭 외가집으로 놀러 가군했다. 계옥이가 10살을 잡던 여름방학이였다. 외가집에 놀러 가는 선참으로 계옥이를 찾은 광욱이는 아버지가 출장갔다가 사온 자석달린 비닐필통을 계옥이 앞에 내놓았다. 《요거 봐꽁!》 《해해, 필통 곱다. 날 줘!》 《날 붙잡으면 줄래!》 광욱이가 필통을 높이 들고 흔들며 애를 태우자 계옥이는 광욱이를 붙잡겠다고 기를 쓰고 쫓아다녔다. 가까이에서 요리조리 피해 달리던 광욱이는 갑자기 동구밖 수수밭쪽으로 달려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광욱아!》 계옥이가 뒤쫓아가며 수수밭을 살폈으나 광욱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야웅!》 문뜩 계옥이의 앞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마나! 고양이…》 계옥이가 고양이를 보려고 앞으로 몇발작 옮기자 이번엔 등뒤에서 《매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해, 염소…》 계옥이가 뒤로 돌아서서 염소를 찾으려는데 이번엔 《따웅!》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범이 온다! 광욱아, 너 어디 있니?》 어찌나 겁났던지 계옥인 뛰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히히, 나 여기 있다!》 광욱이가 땅에서 솟아났는지 그녀의 앞에 불쑥 나타나 필통을 내밀었다. 그후부터 광욱이는 《어마나! 고양이》, 《해해, 염소》, 《에크, 범이 온다!》하며 계옥이를 놀려주군 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계옥이와 박총경리의 관계를 아는대로 말해보오!》 구민이가 듣다못해 뚱뚱한 접대원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자 접대원처녀는 옷깃을 매만지며 말머리를 돌렸다. 《호텔에 들어온 계옥이는 늘 박총경리의 따뜻한 관심을 받군했어요. 처음 계옥이는 무도장의 표를 팔았는데 어중이떠중이들이 자꾸 모여들어 시끄럽게 굴자 박총경리는 즉시 매표원을 그만두게 하고 저와 함께 호텔복무원일을 하게 했어요. 박총경리는 늘 찾아와서 일이 마음에 드는가,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는가, 식사는 어떤가 하면서 어버이다운 사랑을 베풀어주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제가 일이 있어 총경리실로 갔는데 안에서 박총경일와 계옥이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호기심에 끌린 제가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박총경리가 자그마한 함을 계옥이한테 넘겨주고있었어요. 〈계옥이가 이달 표현이 좋기에 장려로 주는거요!〉 〈뭔데요?〉 〈어디 열어보오.〉 〈어머, 금반지?!〉 함을 열어보던 계옥이가 깜짝 놀란 소리를 질렀어요. 다음 순간 계옥이는 함을 도로 돌려주었어요. 〈전 이렇게 귀중한걸 받을수 없어요.〉 〈그까짓게 뭘 대단하다구 그러오? 어서 받소!〉 박총경리는 갑작스레 계옥이의 손을 꼭 잡고 탐욕스런 눈길로 계옥이를 노려보는거였어요. 〈아니, 왜 이래요?〉 계옥이가 힘껏 손을 뿌리치자 박총경리는 죄송스러운듯 두 손을 움츠러뜨리며 가련한 상을 지었어요. 〈계옥인 내 마음을 모를거요. 난 계옥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몰래 사진까지 찍어두었소. 난 자나깨나 계옥이의 사진과 동무하였소. 계옥이 난…〉 박총경리는 호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계옥이한테 보여주며 애걸했어요. 〈박총경리님, 자중하세요! 박총경리님은 처자가 있는 분으로서…〉 〈난 안해와 추호의 감정도 없소! 계옥이가 원한다면 난 안해와 리혼…〉 〈박총경리님, 전 박총경리님을 선배로, 유능한 기업가로 존경해왔어요. 그러니 박총경리님도 절 존중해주기 바래요. 박총경리님도 알다싶이 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계옥이가 일어나 나오려는것을 보자 저는 얼른 몸을 감췄어요. 이 일이 있은후 전 그들이 다시 접촉하는걸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 수심에 푹 잠겨 있던 계옥이가 훌쩍 떠났고 박총경리가 갑자기 비참하게…》 《계옥이가 짐을 꾸릴 때 어떤 물건들이 있었소?》 《옷견지와 화장품따위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앤 줄뛰기운동을 즐겼는데 줄뛰기도 짐속에 넣고 갔어요.》 《줄뛰기?》 석진이와 구민이의 눈길이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언뜻 부딪쳤다. 흉기로 될수 있는 줄뛰기가 계옥이한테 있었다는 사실은 홀시할수 없는 일이였다. 처음엔 자기 몸을 지키던 계옥이가 왜 박규태의 품에 안겼을가? 왜 박규태네 집에서 그들이 성관계를 가진 이튿날 박규태가 살해됐을가? 계옥이가 정말 흉수라면 기미는? 《어절씨구목욕탕》의 접대워녀인은 흉수의 얼굴에 기미가 없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기미라는건 지워버릴수도 있고 만들어넣을수도 있다. 박규태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간 녀인은 나올 때 《옹혜야미용청》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자기를 폭로하였을가? 20대 녀인이니 빈구석이 있을수도 있는것이다. 《동문 계옥이의 집주소를 아오?》 《전 몰라요. 구연단의 광욱이를 찾아가요. 그가 알아요.》 그들이 먼저 《옹혜야미용청》에 찾아가니 아래입술밑에 기미가 있는 이쁘고 키 근 처녀가 그날 확실히 왔댔는데 기미를 지우지는 않았다는것이였다. 그렇다면 다른 미용청에 가서 했을것이다. 그들은 구연단의 광욱이를 찾아갔다. 광욱이는 20대의 미남이였다. 계옥이의 집주소를 그럽니까? 당신들은 박총경리살인사건이 계옥이와 관계된다고 의심하는게 아닙니까?》 《우린 지금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요. 그러니 동무가 협조해주기를 바라오.》 광욱이는 석진이와 구민이의 기색을 살피더니 계옥이가 살고있는 시골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얼마후 석진이와 구민이를 태운 경찰차는 계옥이가 살고있는 시골로 줄달음쳤다. 약 1시간가량 달리자 차는 계옥이가 산다는 동동촌의 마을에 들어섰다. 수레길 둔덕아래에 시내물이 흐르고있었는데 그 둔덕 버드나무밑에 한 녀인이 그린듯이 서있었다. 경찰차는 그녀와 10여보 떨어진 곳에서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곧추 그 녀인한테로 다가갔다. 《말씀 좀 물읍시다.》하고 그녀를 부르던 석진이는 멍해졌다. 피려는 꽃송이같이 아름다운 얼굴, 호수같이 맑고 그윽한 눈, 꼭 씹어놓고싶은 애된 입, 그 아래입술밑에 유표나게 드러난 기미를 가진 미모의 녀인이 의혹에 찬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고있는것이 아닌가. 석진이는 그녀가 바로 계옥이라고 판단했다. 《동무가 〈두둥실호텔〉에서 일하던 계옥이요?》 《네, 무슨 일인가요?》 《동문 어제 몇시차에 집에 왔소?》 《11시 20분차로 왔어요.》 《동문 아침 일찌기 호텔을 떠났는데 그동안 뭘 했소?》 《저는 〈에루화시장〉에서 아침을 먹고 차시간이 멀었기에 답답한 가슴을 달래려고 강가로 나갔어요.》 《누구와 함께 있었소?》 《혼자 있었어요.》 《동문 박총경리와 경상적으로 남녀관계를 가졌소?》 구민이가 불쑥 물었다. 《무슨 의미인가요?》 《동문 그래 박총경리댁에서 추태를 부리다가 박총경리의 안해한테 들킨적이 없소?》 《뭐라구요? 제가 추태를 부렸다구요?》 계옥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것을 겨우 참았다. 그녀의 앞에는 그날 일들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났다. 박규태가 금반지로 계옥이를 나꾸려고 한지도 열흘이 지난 어느날, 광욱이가 접대실에 홀로 있는 계옥이를 찾아왔다. 소곤소곤 소삭이던 둘은 어느새 한덩어리가 되여 격렬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때 《에헴!》하는 소리와 함께 손님 두분이 나타났다. 멋적게 된 광욱이는 작별을 하고 돌아갔다. 손님을 안내하고 돌아온 계옥이는 자기들이 앉아있던 자리에 사진 한장이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 사진을 주어들고 보던 그녀는 그만 흠칫 몸을 떨었다. 사진엔 웬 낯선 녀인이 광욱이를 꼭 끌어안고 행복에 겨워 웃고있었던것이다. (아, 이것이 정말이란 말인가? 광욱이가 이 따위 더러운 사진을 품고 다니면서 아무런 주저도 없이 나하고 키스를 하다니?! 망나니야! 색광이야!) 증오와 울분이 그녀의 가슴에서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그날밤, 그녀는 배반당한 슬픔이 무시로 가슴을 파고들어 한잠도 못잤다. 이튿날엔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도 하지 않고 홀로 합숙에 누워있었다. 9시쯤 해서 규태가 찾아왔다. 《왜서 출근하지 않았는가 했더니 어디 아프오? 불편하면 말미를 줄테니 며칠 푹 쉬오!》 《듣기 싫어요! 썩 물러가요!》 계옥이는 발딱 일어나며 고함쳤다. 규태는 제풀에 물러갔다. 점심때가 되자 규태가 계옥이한테 점심밥을 날라다 놓고 소리없이 나가버렸다. 그녀는 그들떠도 보지 않았다. 규태는 저녁때 또 밥을 갖다놓고 나갔다. 그런데 이윽하여 광욱이가 헐례벌떡거리며 들어섰다. 《계옥이, 어디 아프오? 박총경리님의 전화를 받고 오는 길이요. 어서 병원에 가 보기요.》 《썩 물러가요! 망나니!》 광욱이를 보자 계옥이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계옥이는 침대머리에 있는 유리잔 두개를 련속 던졌다. 유리잔은 광욱이의 발밑에서 짤라당짤라당 하며 산산쪼각이 났다. 광욱이는 뜻밖의 일에 아연실색했다. 《계옥이, 왜 이러는거요? 도대체 웬 일이요?》 계옥이는 광욱이한테 막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이때 규태가 들어와 그들을 말렸다. 규태를 보자 계옥이는 보복심이 솟구쳤다. 그녀는 애교를 떨며 규태한테 거마리처럼 칭칭 감겨들었다. 《사랑하는이, 저와 함께 커피점에 가자요. 네?》 광욱이는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 어정쩡해났다. 계옥이가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그처럼 순결한 계옥이가! 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계옥이, 이게 어찌된 일이오?》 《어찌된 일인가구? 이 사진의 이년하고 물어봐!》 계옥이는 호주머니에서 그 더러운 사진을 꺼내여 광욱이한테 홱 팽개치고는 규태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좋은 기회라고 느껴진 규태는 계옥이를 자기의 단골커피점으로 데리고 갔다. 규태는 복무원녀인한테 다가가서 배원짜리 지페 한장과 종이봉지 하나를 건네주고는 슬그머니 눈짓했다. 잠시후 자리를 잡고 앉은 그들앞에 복무원녀인이 커피 두 고뿌를 들고 왔다. 《계옥이, 자, 들기요!》 《들자요, 박총경리님!》 계옥이는 내심의 고통을 커피로 묵새기려는듯 단모금에 쭉 마셔버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규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옥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계옥이는 이내 드티여 앉았다. 그러자 규태는 능글능글 웃으며 계옥이를 꼭 끌어안았다.계옥이는 박규태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으나 머리가 혼미해지며 까딱할 맥이 없었다. 그녀는 저도 몰래 규태의 품에서 잠들고말았다. 그녀가 깨여났을 때는 얼마나 한심한 일이 벌어졌던가!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인 그녀가 박규태의 곁에 누워있었다. 원통했다. 18년 고이 키워온 귀중한 처녀를 값없이 잃은것이 원통했다. 그녀는 박규태의 낯판대기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이 짐승같은 놈아!》 그녀는 울고싶었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가증스런 색마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바로 그때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박규태의 젊은 안해가 들어섰다… 《그렇다면 박총경리가 동무를 짓밟았단 말이지?》 《그자는 저를 점유하려는 욕망으로 간계를 꾸며 저와 광욱동무사이에 엄중한 오해가 생기게 했어요.》 《간계라니?》 《광욱동문 제가 만나주지 않으니 그자가 절 해친 날 아침 편지를 보내왔어요.》 계옥이는 호주머니에서 편지 한통을 꺼냈다. 석진이와 구민이는 제꺽 편지를 받아 읽었다.   계옥이: 그 사진은 이렇게 된 일이요. 글쎄 그 사진에 있는 낯선 녀인이 나를 찾아와서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조용한 곳에 불러가더니 무턱대고 나를 막 끌어안는게 아니겠소? 한동안 그러던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손을 풀고 어디론가 가버리는것이였소. 그때 난 정신병환자인가 했는데 동무가 넘겨주는 그 사진을 보자 뭔가 깨달았소. 나는 그녀를 찾아 진실을 밝혀야 하겠다는 생가이 번쩍 들어 친구들을 총동원시켜 카라 ,술집, 다방, 불고기점, 무도장 등 오락장소를 샅샅이 훑게 했소. 마침내 한 술집에서 그녀의 종적을 찾아냈소. 그녀는 원래 불고기점의 복무원이였는데 매음하다 쫓겨 지금은 《에루와시장》 2층 동쪽 매대에서 옷장사를 한다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당장 《에루화시장》 2층 동쪽 매대에 가서 그녀를 붙잡고 따졌소. 그녀는 오래전부터 박총경리와 치정관계가 있던 녀인인데 박총경리가 돈 2배원을 주며 그녀를 시켰다오. 자기는 숨어서 사진을 찍고. 얼마나 가증스런 인간이요?! 하지만 계옥이 우리 사이의 오해가 풀렸으니 다행이요!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거요! 계옥이만을 사랑하는 광욱이로부터.   그들이 편지를 다 읽자 계옥이는 또 다른 쪽지 한장을 넘겨주었다. 《이건 제가 광욱동무한테 회답해보내려고 썼다가 보내지 못한 쪽지예요.》 그들은 그 쪽지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광욱동무: 전 광욱동무를 볼 면목이 없어요! 박총경리가 그 저주로운 그자가 커피에다 몽혼약을 풀어 저한테 먹인후 자기 집에 끌고 가서 제 몸을…아, 하늘에, 땅에, 골수에, 오장에 마디마디에 사무치는 이 원한을 어떻게 푼단말인가요? 전 박총경리, 그자를 죽여버리겠어요!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계옥이로부터. 《그래서 동문 박총경리를 죽였단 말이요?》 《무슨 뜻인가요?》 《시치미를 떼지 마오. 동문 미용원에 간적이 있지?》 《옹혜야미용청》에 가서 제 얼굴을 흉측하게 만들어달라고 청든적이 있어요.》 《변명하지 마오. 동무는 박총경리를 유혹하여 목욕통에 데리고 간후 줄뛰기로 목을 졸라 죽였소. 동무는 법률의 무기를 사용할 대신 개인복수를 했기에 자기를 망쳤소!》 《그래요. 전 자기를 망쳤어요.》 계옥이는 한숨을 내쉬였다. 《전 살고싶은 생각이 없어요. 차라리 잘 됐어요. 절 체포하세요!》 《계옥동무, 동무는 중요한 혐의대상이기에 우리와 함께 가서 심사를 받아야 하겠소!》 석진이가 이렇게 말하자 구민이는 수갑을 꺼내 계옥이의 손목에 채우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오토바이 한대가 그들한테로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잠간만!》하고 웨쳤다. 그들 셋은 놀란 눈길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바라보았다. 잠간후 오토바이가 그들 앞에 와서 멎으면서 웬 녀인이 훌쩍 뛰여내렸다. 키 크고 이쁘고 나젊은 그 녀인은 계옥이를 서글픈 눈길로 바라보더니 두 경찰한테로 다가가 말했다. 《제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진짜 흉수예요! 전 수사를 벌리고있는 당신들을 진작부터 주시했어요. 오늘 당신들이 여길 오는걸 보고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가봐 제가 자수하려고 따라 왔어요. 그 처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 절 체포하세요!》 《동무는 누군데 흉수라고 자칭하는거요?》 《제가 살인경과를 말하면 당신들은 제가 흉수라는것을 믿을거예요.》 그녀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평온 어조로 이야기했다. 《닐리리공원》 구석진 곳에 50대의 사나이와 20대의 녀인의 괴이한 상봉. 《박총경린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군요!》 《아가씬 누군데 여기서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소?》 《박총경리께서 우리 녀자애들을 무척 귀여워한다기에 한번 만나보려고…》 《도대체 어쩌자는거요?》 박규태는 얼굴이 수수떡처럼 붉어지며 불가사이한 낯선 녀인을 쏘아보았다. 《아이참, 어쩌긴 어쩌겠어요? 박총경리와 사귀자는거지요!》 그녀는 박규태한테 찰거마리처럼 감겨들며 아양을 떨었다. 규태는 마음같아선 방금 피려는 꽃같은 그녀를 당장 삼켜버리고싶었다. 《아가씬 내 호주머니의 돈냄새를 맡은거지?》 《아니예요. 전 돈을 탐낸게 아니예요.》 《그럼 왜?》 《아이, 참 쑥스럽게…》 녀인이 몸을 배배 꼬자 규태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당장 그 녀인을 침대에 눕히고싶어졌다. 《그럼 지금 당장 장소를 찾아볼가?》 《글쎄요. 아이, 근데 이 며칠째 목욕을 하지 않았더니…》 《그래? 그럼 당장 목욕탕에…》 박규태를 유혹하여 목욕탕에 데리고 간 녀인은 온갖 아양을 다 부려 규태더러 먼저 옷을 벗게 했다. 그 다음 녀인은 박규태의 라신을 감상하는체 하며 뒤모습을 보자고 구슬렸다. 얼이 쑥 빠진 박규태가 고분고분 하라는대로 돌아서자 그녀는 어깨는 어떻고 허리는 엉뎅이는 어떻다는둥 하며 평가를 늘여놓는 한편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둔 바줄로 불시에 박규태의 목을 졸랐다. 가련한 박규태는 녀색을 즐기려다가 이렇게 목숨을 잃은것이였다… 《동문 도대체 누구요? 왜서 박총경리를 죽였소?》 구민이의 의혹에 찬 질문이였다. 여태껏 사색에 잠겼던 석진이가 무릎을 탁 쳤다. 《구민이, 우린 이번 사건수사에서 엄중한 실책을 범했소! 우린 표면현상에 미혹되여 흉수를 녀자라고만 생각했던거요!》 그러자 흉수라고 자칭하는 녀인이 시내물에 달려가 세수를 하고 올라와서 가발과 가짜 유방을 벗어 팽개쳤다. 그녀는 삽시에 미남으로 변했다. 그 남자를 보는 순간 계옥이가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광욱동무!》 계옥이는 정신없이 광욱이한테로 달려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꼭 부등켜안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계옥이!》 《광욱동무!》 서로 애절하게 부르는 두 련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샘솟았다. 한동안 근엄한 눈길로 두 청춘남녀의 포옹을 지켜보던 석진이와 구민이는 급기야 광욱이를 경찰차에 오르게 했다. 《광욱동무!》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오르는 광욱에게 정신없이 매달리며 대성통곡했다. 무정한 경찰차는 계옥이를 떼여놓고 뽀얀 먼지를 남기며 사라졌다. 피타는 목소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며 경찰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던 그녀는 그만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고 푹 꼬꾸라졌다. 바로 그때 그녀의 앞으로 고양이 한마리가 폴짝폴짝 뛰여갔다. 《야웅!》 《어마나! 고양이…》 《매매!》 《해해, 염소…》 《따웅!》 《에크, 범이 온다! 광욱아, 너 어디 있니?》 《히히, 나 여기 있다!》 … … … 1991. 9.  
19    쪼각난 제형 댓글:  조회:3940  추천:0  2013-12-08
단편소설   쪼각난 제형   김희수     삼라만상이 쥐죽은듯 고요한 야밤삼경에 숲속에서 벌거숭이 남녀가 사랑의 랑만에 취해있다, 옥으로 다듬은듯한 녀인의 알몸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건강미 흐르는 사내의 육체는 소같이 든든하다. 처음과는 달리 녀인은 부끄러움을 잊고 두팔로 사내의 목을 감았다. 이젠 가시처럼 찔리는 꺼슬꺼슬한 수염도 아프지 않았고 시꺼먼 털이 가득한 앞가슴도 두렵지 않았다. 《인섭아, 난 이젠 너한테 모든걸 바쳤어! 몸도 마음도…》 《응, 연옥, 넌 이젠 내것이야! 영원히…》 《영원히…》 녀인은 행복에 겨워 푸시시한 사내의 가슴털에 얼굴을 비빈다. 취한듯 녀인을 애무하던 사내가 갑자기 놀란소리를 지른다. 《저길 봐, 누가 우릴 훔쳐보고있어!》 《어마나!》 와뜰 놀란 녀인은 황급히 곁에 있는 옷가지로 몸을 가리며 사내의 품속에 바싹 기여든다. 《아이, 무서워!》 《무섭긴? 바보야, 우릴 훔쳐보는건 저 하늘의 별들이야!》 《어머머, 괘씸한게!》 겁기어린 눈길로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던 녀인은 주먹으로 사내의 가슴을 북치듯 쾅쾅 쳤다. 사내는 녀인이 때려주는대로 맞아주다가 빙그레 웃으며 녀인을 꼭 끌어안았다. 《야-별들이 많지?》 둘은 나란히 누워 금싸라기를 쥐여뿌린듯한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인섭아, 우리 저 별들중에서 우리별을 찾자.》 《히히, 우리 별? 저봐, 나란히 떠있는 저 쌍둥이별이 바로 너와 나야. 바로 우리별이란 말이야!》 《멍텅구리, 그게 어디 쌍둥이별이야? 셋이 나란히 있는걸 봐라. 삼태성이야!》 《아니, 너 왕청같은걸 보구 그러는구나. 그게 어디 삼태성이야.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삼태성은 겨울밤에 보인다더라.》 《애두 참, 셋이 나란히 있는걸 보면서 그러니?》 《글쎄 무슨 별일가? 상관있니. 셋이면 더 좋지. 저걸 우리별로 하자. 우리별은 셋이야!》 《너 돌지 않았니? 우린 둘인데 어떻게 저 별을 우리별로 하니?》 《너 정말 몰라서 그러니? 지금은 우리 둘이지만 이 다음 네가 아길 낳으면 셋이 아니구 뭐야!》 《아이, 부끄러워!》 연옥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그리고는 달콤한듯 되뇌였다. 《우리별은 셋! 우리별은 셋…》 열렬한 사랑에 불타고있는 연옥이와 인섭이는 시내와 동떨어져 있는 여기 으슥한 숲속의 잔디밭을 에덴동산을 정하고 이 밤에 남몰래 선악과를 따먹었다.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했으나 다행히 락원에서 쫓겨나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금과를 따먹는 재미를 거듭 맛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연옥이는 잔잔한 호수같이 맑고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눈으로 인섭이를 바라보며 볼그스럼한 입술을 열었다. 《인섭아, 우리 이래도 되니?》 《뭐 어째 잘못된게 있니?》 인섭이는 짜장 모를일이라는듯 왼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안달아난 연옥이는 주먹으로 인섭의 어깨를 탁 쳤다. 《너 정말 태평이구나. 결혼두 안하구 이래서 괜찮겠니?》 《결혼하면 되지뭐.》 《그럼 언제 결혼할가?》 《왜? 내가 변할가봐 두렵니? 난 절대 안변해. 내 마음엔 오직 너 하나밖에 없어!》 인섭이는 단침을 꿀꺽 삼키면서 연옥이의 모란꽃같은 붉고 탐스런 입술을 향해 접근했다. 육박해오는 인섭의 타는듯한 입술을 연옥이는 잽싸게 손바닥으로 막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니까 남자들은 죽자살자 맹세하다가두 쩍하면 변하더라. 사과를 보면 배를 던지고 또 바나나를 보면 사과를 팽개치고… 너두 결국 그렇게 날 버리겠지?》 《허참, 넌 내가 변할것 같니? 사람 잘못 봤다. 난 죽어도 안변한다. 오히려 네쪽에서 변할가봐 두렵다.》 《내가? 난 네가 없으면 못살것 같은데 어떻게 변하니?》 《정말?》 《정말.》 《그럼 우린 누구도 안변해. 변함없이 함께 사는거야!》 《응, 백년을 아니, 천년을 함께 살자!》 서로 상대방을 꼭 끌어안은 그들은 달콤하고 감미로운 사랑에 취해 날 새는줄 몰랐다. 한달이 지났다. 연옥이는 또 인섭이를 재촉했다. 《우리 그냥 이러고있으면 어쩌니?》 《어쩌긴? 이러고있는게 나쁘니?》 《아이참, 넌 …우리 결혼하자!》 《결혼?》 《응.》 《나두 결혼하자구 생각해봤어. 그런데…》 《그런데 어째 내가 싫어졌니?》 《아니야. 결혼하자면 돈이 있어야 되지 않니? 돈이 없이야 어떻게 결혼하고 또 결혼한 다음 어떻게 살아가겠니? 그래서…》 《그래서 돈을 번 다음 결혼하잔 말이니?》 《맞아.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 널 새각시로 맞아드릴테야!》 《글쎄. 생각은 좋은데 돈을 어떻게 버니? 공장이란건 문을 닫아 월급도 못받는 주제에 …》 《두 손이 있는데 왜 돈을 못벌겠니? 내겐 힘이 무진장하다!》 《힘이 무슨 쓸데있니? 지금은 머리로 돈을 버는 때인데.》 《쳇, 넌 몰라. 난 로무송출을 가기로 했어.》 《로무송출? 힘들다던데…》 《까짓거. 이 좋은 신체에 무슨 일을 못해!》 《몇년이야?》 《3년.》 《그리 오래…그럼 난 혼자서 어째.》 연옥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3년이란 세월을 떨어져 살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쓸쓸했다. 인섭이도 연옥이를 두고 떠날 일을 생각하니 속으로 눈물이 났으나 천연스레 롱담을 했다. 《내가 없으면 좋지 않니? 다른 남자를 친하는게.》 《얘봐라, 그것두 말이라구 하니? 니 그렇게 말하면 난 정말 다른 남자를 친하겠다!》 《친해라. 정작 친해라면 못 친할걸 가지고.》 《못친하지 않구. 정말이다. 난 죽으나 사나 널 따르겠다!》 《그래, 내가 죽으면 너도 죽겠니?》 《응, 난 너없이 살수 없으니까 널 따라 죽을꺼야!》 《바보! 함께 살순 있어도 함께 죽는 법이 없어! 아무리 어쩌구 해두 산 사람은 살기 마련이야. 그리구 죽은 사람두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따라 함께 죽기를 훤하지 않아. 반대로 자기가 다 살지 못한 몫까지 오래오래 살아서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거야.》 《넌 그저 태평스런 소리만 하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슴이 찢겨 어떻게 사니?》 《슬픔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소실되는거야. 그리고 다른 배우자를 찾아 행복하게 살수도 있는거구.》 《함께 죽지는 못할망정 그런 배반을 해서 되니?》 《배반이 아니야, 죽은 다음에 그러는건. 내가 죽은 다음 네가 수절하면 난 죽어두 눈을 못감아.》 《얘봐라, 니 지금 당장 죽니? 싱겁다!》 죽는다 산다하는 말에 기분이 잡친 연옥이는 눈을 곱게 흘겼다. 인섭이가 로무송출을 떠나는 날은 빨리도 다가왔다. 리별을 앞두고 그들은 대낮에 보금자리에 기여들었다. 연옥이가 들고온 핸드백에서 손수건과 작은 가위를 꺼내는것을 인섭이는 의아쩍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건 뭐야?》 《우리 이 손수건을 가위로 절반씩 베여가지자. 3년이란 세월 그리울 때가 많겠는데 그때면 서로 절반 손수건을 보면서 …》 《그 생각 잘했다. 우리 천애지에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하나.》 연옥이한테서 가위와 손수건을 받아들고 절반을 베려던 인섭이는 문뜩 손을 멈추었다. 《연옥아, 우리 이 손수건을 세등분하자. 그래서 한몫은 내가 가지고 두몫은 네가 가지고있다가 앞으로 우리 아이가 태여나면 한몫을 베여주는게 어때?》 《아이, 넌 부끄럽지 않니? 자꾸 그런 말을 하면서 …》 《쳇, 부끄럽긴? 내 나이에 애아버지 소릴 듣는 애두 있는데 뭘.》 한창 궁리하던 인섭이는 땅바닥에 손수건을 펴놓고 접은 종이를 자대로 삼아 원주필로 손수건에 먼저 아래밑변이 웃밑변의 배로 되는 등각제형을 그리고 아래밑변의 중점과 웃밑변의 량끝을 련결하는 선을 그으니 제형안에 똑같은 2등변3각형 셋이 나타났다. 《이 세개의 3각형은 우리 별이야. 우리 3각별 셋이 한데 뭉쳐 제형이 됐으니 이건 우리 사랑이 제방뚝처럼 든든하다는 뜻이야! 이 셋중에서 어느 하나가 없어도 제방뚝은 평형을 잃고 무너져. 그러니 우리 셋은 서로 떨어져 살수 없는 3위1체야!》 인섭이의 설명에 연옥이는 흡족한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인섭이는 제형에서 3각형 하나를 베여내여 자기가 가지고 두 3각형이 평행4변형을 이룬 나머지 부분을 연옥이한테 넘겨주었다. 그것을 받아쥐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연옥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호-3각별 하나가 떨어져 나가니 이 뚝이 막 무너질것 같아.》 《근심마, 내 3년후에 돌아와 다시 붙일게.》 《3년이나…아득해.》 연옥이는 가슴에서 애틋한 정이 사무치며 저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그는 급기야 인섭이의 몸에 안기며 울음을 내놓았다. 《바보야, 울지마, 리별은 잠시야.》 연옥이를 꼭 끌어안은 인섭이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이제 떨어지면 다시 못볼듯 그들은 오래도록 붙어있었다. 인섭이는 떠났다. 떠나면서 연옥에게 록음테프를 하나 남겨주었다. 인섭이를 바래다주고 돌아온 연옥이는 가슴속이 텅 빈것 같이 허전했다. 그녀는 인섭이가 남겨준 록음테프를 록음기에 넣고 단추를 눌렀다. 길면 3년 짧으면 1년 잠간만 당신곁을 떠나있는것이라오 외로워도 참고 살아주오 그리워도 참고 살아주오 아, 돌아올 그날까지 …   록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애달픈 노래소리는 그녀의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더 애절하게 했다. 그녀는 날마다 록음기를 틀어놓고 인섭이가 베여가고 남은 손수건쪼각을 들여다보며 맘속으로 태평양건너 머나먼 나라에 간 미혼부를 그렸다. 기다림이란 고역이였다. 시간은 하루하루 더디게 흘렀다. 그녀는 3년이란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애타는 기다림속에서 어느덧 한해가 지나갔다. 이 한해동안 청혼자들이 수없이 나타났지만 그녀는 죄다 거절해버렸다. 그런데 유독 창식이라는 비위좋은 총각만은 그냥 검질기게 달라붙었다. 귀찮아진 그녀는 자기는 임자있는 꽃이니 더는 치근거리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창식이는 히물히물 웃으며 《치근거린다는 말이 얼마나 듣기 거북하냐, 내가 연옥씨를 딱 사랑하고싶어 따라다니는데 나쁠게 뭐냐》고 떡심좋게 너스레를 부렸다. 펄쩍 성난 그녀가 건달, 망나니라고 욕설을 퍼부으니 창식이는 그 목소리 듣기 좋으니 한번만 더 욕해달란다. 《시끄럽게 굴지 말아요. 저의 미혼부는 소림무술에 정통한 힘장사예요. 이제 그이가 돌아오면 당신의 머리를 수박쪼개듯 두동강 내지 않나 봐요!》 《하느님맙시사! 내 머리가 두쪽이 된다니 이 일을 어찌 하노?》 창식이는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싸쥐고 짐짓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양을 본 연옥이는 깨고소해났다. 건장한 인섭이에 비해 여윈축인 창식이는 상대도 될것 같지 않았다. 이쯤하면 속이 언 창식이가 제풀에 물러나리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또 능청스럽게 웃으며 달라붙었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이 청춘이 요절되는게 아깝긴 하지만 사랑하는 연옥이를 위해서라면 헤헤, 내 이 머리가 두쪽이 아니라 분신쇄골이 된다해도 원이 없겠소!》 《바보!》 《내가 바보라구?》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는 녀자를 위해 죽어도 좋다니 바보가 아니구 뭐예요?》 《허허, 바보는 내가 아니라 연옥씨요.》 《제가 왜 바본가요?》 《미래의 남편도 못알아보고 바보라고 했으니까 바보가 아니구 뭐요.》 《흥, 김치국이나 콱 마셔요!》 펄쩍 성난 연옥이는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했으나 창식이는 그후에도 날마다 그녀가 출퇴근길에 반드시 지나야 하는 다리목을 지키고있다가 그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능청스럽게 웃으며 몇마디씩 우스개를 부리고야 물러가군하였다. 그녀가 상대하기 싫어 본체만체 지나쳐버리려고 하면 창식이는 일부러 큰소리로 《이거참, 오래간만이구만!》하면서 그의 손을 다짜고짜로 막 잡아흔드는데 그럴 때면 행인들의 이목이 두려워서라도 잠간 멈춰서서 어처구니없는 청혼타령을 들어줘야 했다. 청산류수같이 내리엮는 말주변도 좋거니와 우습강스레 눈알을 요리 판들 조리 판들 굴리는 익살은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못들은척 입을 꾹 다물고있는다. 그러면 창식이는 아름다운 연옥씨가 갑자기 벙어리로 됐으니 시집을 다 갔다는둥 이 세상에 벙어리색시를 맞아드릴 사람은 창식이밖에 없다는둥 하면서 얼레발을 쳤다. 이런 정도에서 그냥 입을 다물고있을수 없어 누가 벙어리냐고 욕사발을 안기면 창식이는 그제야 만족한듯 빙그레 웃는다. 연옥이한테서 욕지거리라도 듣지 않으면 그날은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슨 수를 쓰든지 연옥이의 입을 열게 하고야 시름을 놓는다. 이렇게 되여 연옥이는 날마다 창식이와 입씨름하는데 습관되였다. 아무튼 그가 불순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몇분동안의 시간으로 이 무료한 사나이의 비위를 맞춰주는것도 랑패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그와 한두마디 욕지거리를 하던데로부터 욕소리는 어느새 끊어지고 이따금 그의 말에 끼여들고 그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게 될줄을. 5분을 이야기 한다는것이 10분이 되고 10분이 다시 30분으로 되더니 나중엔 두세시간씩 이야기해도 시간가는줄 몰랐다. 더구나 창식이가 사랑에 대한 말을 더는 입밖에 꺼내지 않으니 그녀는 마음놓고 이야기할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편으로 창식이를 경계하였다. 그래서 둘사이의 관계가 절대 우정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군자협정을 맺었다. 창식이와 사귀면서부터 연옥이는 기분이 상쾌했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눈깜짝할 사이에 또 한해가 지났다. 이제 1년만 지나면 사랑하는 인섭이가 돌아올것이다. 그러면 사랑의 제방뚝을 새롭게 쌓고 화촉 밝은 동방에서…인섭이와의 달콤하고 즐거운 상봉을 그려보는 연옥이의 아름다운 두눈에서는 행복의 밝은 별이 빛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즐거운 상봉은 실현될수 없었다. 연옥이는 태평양건너에서 부고 한장이 날아왔다는 소식을 인섭이의 누이동생을 통해 뒤늦게야 듣게 되였다. 사랑하는 인섭이가 애석하게도 바다귀신이 되였단다. 《인섭아!》 첫사랑을 속삭이던 숲속까지 단숨에 뛰여간 연옥이는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하늘땅이 빙글빙글 돌아가는것만 같아 그녀는 잔디밭에 쓰러졌다. 얼마후 그녀는 간장을 비트는듯 애통하게 흐느끼며 연신 어깨를 들먹거렸다. 아아, 사랑하는 인섭이를 이제 다시는 볼수 없다니!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와서 천년만년 함께 살자던 인섭이가 영영 돌아올수 없다니! 비애, 끝없는 비애가 가슴에 차고넘친다. 인섭아, 너를 잃고 내가 어떻게 살아간단말이냐! 그녀는 처절하게 가슴을 쥐여뜯었다. 인섭아, 왜 날 두고 혼자 갔어?! 나도 널 따라가겠어! 연옥이는 가위를 꺼내 가슴에 갖다댔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귀전에 입선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바보! 함께 죽는 법이 어디 있어? 어쩌구 해도 산사람은 살기 마련이야. 그리고 죽은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따라 죽기를 원하지 않아. 반대로 자기가 다 살지 못한 몫까지 오래오래 살아서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거야.》 안섭아, 넌 내가 따라가는걸 원하지 않는단 말이지? 하지만 너를 잃고 내가 무슨 살멋이 있단말이냐. 우리 거기서 함께 살자. 기다려, 내가 갈께! 연옥이는 가위를 쥔 두손을 번쩍 쳐들고 가슴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두눈을 꼭 감고 힘껏 내리찍었다. 그런데 가위는 가슴에 닿기도전에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창식이가 그녀의 손에서 가위를 앗아 던졌던것이다. 창식이는 그녀가 걱정되여 슬그머니 그녀의 뒤를 따라왔던것이다. 《왜 이런 못난짓을 하는거요? 연옥인 인섭씨의 뜻을 받들어 더 견강하게 살아야 하오!》 《전 죽고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연옥이는 창식이의 품에 쓰러지며 목놓아 울었다. 인섭이를 잃은 연옥이는 울적한 나날을 보냈다. 창식이가 곁에서 위로해주고 우스개도 피웠으나 그녀의 슬픔을 덜어주지 못했다.   길면 3년 짧으면 1년 잠간만 당신곁을 떠나있는것이라오.   록음기를 틀어놓고 인섭이가 주고간 록음테프의 노래를 듣노라니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무정한 사람, 왜 잠간만 떠난다 해놓고 영영 떠났는가말이야! 그녀는 고이 간직했던 손수건쪼각을 꺼내놓고 인섭이가 베여간 3각형쪼각을 떠올렸다. 그 3각별이 갑자기 허공중에 둥둥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하늘에 날아올라 커다란 별이 되여 반짝거렸다. 반짝반짝 빛뿌리던 그 별이 어느새 인섭이의 얼굴로 변하여 연옥이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아, 인섭아, 너 돌아왔구나! 3각별을 붙이려 돌아왔구나. 어서 우리의 사랑뚝인 제형을 만들고 천년만년 함께 살자! 인섭아, 빨리 내려와! 연옥이가 너무도 반가워 환성을 지르자 인섭이는 빨갛고 노랗고 파란 세줄기의 빛을 타고 순식간에 연옥의 앞에 내려왔다. 《인섭아!》 《연옥아!》 연옥이를 정겹게 바라보던 인섭이는 품속에서 3각별을 꺼내 연옥이가 펼쳐놓은 평행4변형의 원자리에 제형이 되게 딱 붙여놓는다, 《아, 인섭아!》 연옥이는 너무도 기뻐 두팔을 벌려 인섭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런데 인섭이도 제형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손에 쥐운건 손수건쪼각뿐이다. 가슴에 가득찼던 기쁨은 바람에 날리는 안개처럼 스러지고 가을하늘과 같이 휑뎅그렁한 공허가 밀려왔다.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리움이 추억이 뜨거운 물결처럼 가슴벅차게 밀려왔다. 인섭이와 둘이서 숲속에 나란히 누워 《우리별》을 찾던 일이며 손수건을 베여 제형을 만들던 지난 일들이 어제일처럼 떠오르며 가슴을 애태운다. 아, 인섭아, 넌 영원히 돌아올수 없단 말이냐? 아니, 넌 돌아왔다! 넌 언녕 내 마음속에 돌아왔다. 네가 내 마음속에 있는 한 우리의 사랑뚝은 무너지지 않을것이다. 너는 영원히 내 마음속의 3각별이 되여 무형이 힘으로 이 평행4변형을 제형으로 받쳐줄것이다. 연옥이의 눈에 인젠 평행4변형이 하나의 완정한 제형으로 보였다. 이 제형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면서부터 그녀의 얼굴에는 더는 우울한 기색을 찾아볼수 없었다. 그녀가 다시 생활에 대한 신심을 얻자 가장 기뻐한것은 창식이였다. 《연옥씨, 연옥씨가 슬픔을 힘으로 바꾸니 참 기쁘오. 인섭씬 개인 돈벌이를 떠났다지만 기실 나라의 경제진흥을 위해 몸을 바친거요. 연옥씨, 우리 함께 인섭씨가 다 하지 못한 사업을 끝까지 해나가기오!》 《고마워요, 창식씨!》 연옥이는 자기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창식이와 같은 지기가 있는것이 만족스러웠다. 창식이는 타고난 말재주와 우스개로 연옥에게 무한한 웃음의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이 웃음의 꽃다발은 연옥이를 슬픔과 고통을 잊고 새 삶에로 줄달음치게 했으며 연옥에게 새로운 동경과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창식이가 어느새 자신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로 가슴에 자리잡았음을 그녀는 놀랍게 발견했다. 이따금 타는듯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창식이의 정열이 두려웠다. 그녀는 이제 곧 그 정열이 폭발하며 무서운 일이 닥치고말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어느날 얼빠진 사람처럼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창식이가 갑자기 그녀를 와락 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어리둥절하여 창식이가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있던 연옥이는 갑자기 꿈에서 깬듯 창식이를 콱 밀치고 돌아서서 허둥지둥 달려갔다. 단숨에 첫사랑을 속삭이던 숲속의 잔디밭까지 뛰여간 연옥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인섭아, 난 어쩌면 좋아?!》 연옥이는 인섭이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있는듯한 그 자리를 애절하게 바라보며 흑흑 느끼였다. 《바보야, 울지마!》 난데없는 인섭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인섭이는 보이지 않고 그 귀에 익은 목소리만이 계속 들려왔다. 《슬픔은 지나면 그뿐이야. 얼마든지 다른 대상을 찾아 행복을 누릴수 있는거야. 내가 죽은 다음 네가 수절하면 난 죽어두 눈을 못감아.》 《인섭아!》 그녀가 목터지게 불렀으나 인섭이의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옷깃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인섭이가 로무송출을 떠나기전에 롱담 비슷이 한 그말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에게 남겨준 유언같았다. 인섭아, 안심해. 내 꼭 너처럼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테야! 몇달후 연옥이와 창식이는 결혼식을 올렸다. 첫날밤, 새각시를 꼭 끌어안은 새신랑은 기쁨에 겨워 웨쳤다. 《오늘부터 연옥씨는 나의 안해요! 오늘부터 나는 한평생 연옥씨를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이 될것이요!》 《창식씨, 전 …》 연옥이는 갑자기 창식이의 품에서 벗어나며 고개를 숙인다. 창식이는 연옥이의 손을 꼭 잡고 관심조로 묻는다. 《웬 일이요?》 《전… 처녀몸이 아니예요.》 《실없는 소리. 난 과거를 따지지 않소. 내 마음속에 연옥씨는 영원히 훌륭한 안해요!》 《창식씨…저도 오늘부터 한평생 창식씨를 알뜰살뜰 사랑하는 안해로 되겠어요!》 신랑신부가 뜨거운 포옹과 열렬한 키스를 퍼부을 때 신부의 품속에서 무엇인가 떨어진다. 신부의 옷고름을 풀려다가 그것을 발견한 신랑이 신비한듯이 그것을 주어들고 바라본다. 《허허, 이건 손수건을 베여 만든 모형이구만. 평행4변형안에 똑같은 3각형 두개가 있으니 이걸 우리 둘이 사랑의 표식으로 하나씩 나눠가지기오.》 신랑은 신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가위를 들고 와 그것을 두쪽으로 베기 시작했다. 신부는 원래의 제형이 쪼각나는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어차피 잊어야 할 첫사랑인데 제지시켜선 무엇하랴. 《이걸보오. 이 두 3각형을 떼였다 붙이면 딱 맞는것처럼 우리도 천생배필이란말이요!》 신랑이 싱글벙글 웃자 신부도 가볍게 살짝 웃었다. 신혼생활은 달콤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기자기한 살림에 웃음이 그칠새 없었다. 익살스러운 신랑은 새라새로운 유희와 불타는 사랑으로 신부에게 무한한 행복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노래와 웃음과 사랑의 랑만이 차넘치던 그들의 생활에 운명의 조화랄가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겨났다. 어느날 오후, 창식이가 출근하고 야근을 한 연옥이가 혼자 집에서 빨래질을 하는데 문뜩 초인종이 울렸다. 빨래하던 손을 치마에 씻고 문을 연 연옥이는 눈앞에 나타난 건장한 사내를 보자 깜짝 놀랐다. 《아니?!》 《왜 날 몰라보겠니?》 사내도 연옥이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연옥이는 꿈인지 생신지 분별못하게 어리둥절해지며 말이 잘 나가지 않았다. 《너 …너 …》 그이란 말인가? 정말 그이란 말인가? 그이가 살아서 돌아왔단말인가?! 《연옥아, 나야, 나!》 《너 정말 인섭이란 말이냐?!》 연옥이는 뜻밖의 기쁨과 놀라움에 가슴이 쿵쿵 세차게 뛰였다. 《그래. 나 인섭이야. 내가 돌아왔어!》 인섭이는 두팔을 벌려 연옥이를 꼭 껴안았다. 인섭이의 품에 안긴 연옥이는 모든것이 꿈만 같았다. 《네가 잘못된줄 알았는데 어떻게 …》 연옥이는 갑자기 흐느끼였다. 그러는 연옥이를 더 힘주어 껴안으며 입섭이는 말했다. 《후-고기배가 침몰됐을 땐 바다귀신이 다 되는줄 알았지. 그런데 하느님이 도왔는지 떠내려오는 널판지를 붙잡고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선에 올랐어. 그 많은 사람들중에 나혼자 살았단말이야.》 《정말 천명이구나. 그런데 왜 살았다고 소식을 전하지 않았니? 왜?》 《그땐 나도 내가 〈죽은〉줄을 몰랐어. 후에야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고향에까지 날아간줄 알게 됐어. 나는 소식을 전하려다가 고쳐 생각했어. 죽은줄 알았던 내가 문뜩 나타나면 네가 어쩔가 하는 호기심이 들면서 너에게 뜻밖의 놀람움과 기쁨을 주는 상봉을 마련하고싶었어. 드디여 나는 너와의 아름다운 혼인생활을 꿈꾸면서 귀국했어. 그런데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건만 그리운 사람은 맞아주지 않고 들리는건 네가 다른 사람의 안해로 되였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뿐이였어!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있단말이냐! 어쩌면 이럴수가 …아아! 통분하고 애달픈나머지 나는 울었어! 울다가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널 찾아왔어. 내 사랑 연옥아!》 《아, 인섭아, 난 어쩌면 좋아?》 연옥이의 흐느낌은 더 세찼다. 인섭이의 눈에도 맑은 이슬이 맺혔다. 《연옥아, 내 사랑아! 난 네가 없인 못살아. 날 따라가자!》 《가긴 어딜 …》 《어디든지 좋아. 여길 멀리멀리 떠나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찾자.》 《그건 안돼.》 《왜?》 《난 …난 가정이 있어.》 《가정? 가정이 다 뭐야! 넌 내것이야! 우리 천년만년 함께 살자고 맹세하지 않았니? 그런데 넌 …》 《인섭아, 날 용서해줘. 난 너의 〈유언〉대로 …》 《나의 〈유언〉이라니?》 《넌 네가 죽으면 얼마든지 다른 대상을 찾아 …그리구 내가 수절하면 죽어도 눈을 못감겠다고 …》 《아니야! 난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길래 그건 다 무효야!》 분하여 부르르 몸을 떨던 인섭이는 담배 한대를 태우고나서 진정한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의 그 자식이 널 잘 대해주니?》 《응, 그인 좋은 분이야.》 《음음 …》 인섭이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윽별렀다. 내 사랑을 빼앗은 개자식, 어디 두고보자! 그날 저녁 인섭이는 창식이와 마주섰다. 통성명을 하고나서 인섭이는 자기가 찾아온 사연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난 연옥이를 찾아가겠소!》 《안되오. 연옥이는 나의 안해요!》 《연옥이는 원래 내것이였소!》 《하지만 지금은 나의 안해요!》 《연옥이는 내것이요! 연옥일 나한테 돌려주오!》 《안되오. 연옥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오!》 두 사내는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적의에 찬 눈길로 서로 상대방을 노려보는 두 련적의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번뜩이였다. 《그럼 좋소. 우리 결투하기오!》인섭이가 살기띤 눈길로 무섭게 쏘아보며 한발작 다가서자 그 기세에 눌리워 창식인는 뒤걸음쳤다. 《결투? 문명하지 못하게 그런 야만 …》 《어째 겁나오?》 인섭이가 랭소하자 모욕을 느낀 창식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겁나긴? 난 연옥씨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소!》 《좋소! 사내답소! 자, 우리 밖으로 나가 결판을 내기요!》 인섭이는 꺽쇠같은 손으로 창식이의 가는 손목을 잡아끌었다. 《왜들 이러세요. 제발 싸우지 말아요!》 여태껏 곁에서 겁난 눈길로 두 사내를 지켜보던 연옥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두 사내를 막아나섰다. 했으나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두 사내는 연옥이를 밀어버리고 기세사납게 마주섰다. 리지를 잃은 두 사내는 기어코 큰일을 저지를것 같았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출입문쪽을 향해 전진하던 두 사내는 연옥이의 목소리에 거의 동시에 몸을 돌렸다. 순간 그들은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지고말았다. 연옥이가 가위로 자기의 가슴을 당금 찌를듯이 겨누고있었던것이다. 《두분께서 저때문에 의를 상하니 전 정말 가슴이 아파요. 제가 나쁜 년이예요! 제가 두분께 죄를 졌으니 오늘 속죄하겠어요!》 《연옥이, 연옥이가 죽어선 안되오!》 《연옥아, 어서 가위를 내려놔!》 두 사내는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가위를 가슴에 꼭 갖다대고 애절한 눈길로 두 사내를 바라보는 연옥이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있었다. 《두분께서 다투지 마세요. 제 한몸이 죽어 …》 《연옥이, 잠간 기다리오!》 창식이가 씽하니 주방으로 달려들어가더니 식칼을 들고 나왔다. 《연옥이, 난 연옥이 없인 살수 없소! 우리 함께 죽기요!》 창식이가 식칼을 가슴에 갖다대자 인섭이는 쓴웃음을 짓더니 넥타이를 풀어 가기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연옥아, 나도 네가 없인 살수 없어! 우리 함께 죽자!》 일이 이렇게 되자 연옥이는 맥없이 가위를 던져버렸다. 무고한 두 사내를 따라 죽게 할수 없었던것이다. 창식이와 연옥이를 뚫어지게 쏘아보던 인섭이가 랭혹하게 웃었다. 《기실 죽음이란 두려운것이 아니요. 이 인섭이는 한번 죽은 목숨이였소. 오직 연옥이와의 상봉을 위해, 연옥이를 꼭 살아서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나운 파도와 생사박투를 했던거요. 이제 연옥이를 잃고 내 살아서 무엇하겠소! 두분도 죽기가 소원이라면 오늘 저녁 우리 셋이 최후의 만찬을 차려놓고 실컷 먹고 마시기요. 어떻소?》 인섭이이 묻는듯한 눈길에 연옥이와 창식이는 비장하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럼 좋소. 연옥이는 집에서 료리를 볶고 창식이는 술을 사오도록 하오. 난 독약을 구해오겠소!》 인섭이의 분공대로 창식이는 술사러 떠나고 연옥이는 료리를 볶았다. 술상을 다 차렸을 때 인섭이도 독약을 구해가지고 돌아왔다. 셋은 술상에 마주 앉았다. 두 사내는 련속 석잔을 마셨다. 연옥이도 세모금에 한잔을 굽냈다. 인섭이는 세개의 빈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붓고나서 호주머니에서 종이봉지를 꺼내여 헤쳤다. 인섭이는 그것을 세등분하여 각기 세 술잔에 쏟아넣었다. 그리고는 애절한 눈길로 연옥이를 바라보았다. 《연옥아, 우리가 리별하던 날 손수건으로 제형을 만들던 일이 생각나니?》 《인섭아, 그 제형은 이미 …》 연옥이는 품속에서 3각형손수건쪼각을 꺼내여 떨리는 손으로 상우에 놓았다. 그러자 창식이도 생각난듯 다른 한쪼각 손수건을 꺼내여 연옥의것과 나란히 평행4변형이 되게 붙여놓고 시뚝해서 인섭이를 흘겨보았다. 《이건 우리 부부의 사랑의 표식이야. 이 두 3각형을 붙여놓으면 딱 맞는것처럼 우리 부부의 마음도 …》 《닥쳐!》 인섭이가 갑자기 꽥 소리질렀다. 분기가 치밀어오른 인섭이는 소중히 간직했던 자기의 3각형손수건쪼각을 꺼내여 평행4변형에 붙여 제형으로 만들어놓고 독기어린 눈길로 연옥이를 노려보았다. 《난 그래도 우리의 사랑뚝을 받쳐주려고 천신만고 찾아왔는데 넌 다른 남자더러 성스러운 우리 제형을 허물게 하다니!》 《인섭아, 난 …난 …네가 잘못된줄 알고 …》 《내가 죽은줄 알고 그랬다는 말이지? 내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그냥 행복하게 살았을테지? 그렇지?》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이 창식부부를 쏘아보는 인섭이의 눈에서 푸른 불줄기가 번뜩거렸다. 창식이와 연옥이는 말없이 인섭이를 외면했다. 《말해봐!》 인섭이가 벽력같이 고함지르며 창식이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분기가 치민 창식이는 노기띤 얼굴로 인섭이를 마주보았다. 《그래 우리 아주 행복했어!》 《개자식! 남의 사랑을 빼앗고도 행복하다구?!》 인섭이는 꽉 틀어잡은 창식이의 멱살을 힘껏 흔들었다. 창식이가 인섭이의 힘을 당하지 못하여 끙끙 소리내자 연옥이가 애원했다. 《인섭아, 창식씨를 괴롭히지 마! 그에건 잘못이 없어. 모두 내 탓이야. 내가 …》 《모두 네탓이라구? 그래 넌 날 배반했지! 배반!》 《배반이 아니야. 그건 …》 《그럼 좋아. 창식이와 리혼하고 나와 같이 살자!》 《안돼. 난 창식씨와 떨어질수 없어!》 《정말이야? 너 …》 애절한 눈길로 연옥이를 바라보는 인섭이의 눈에 이슬이 반짝거렸다. 연옥이가 머리를 끄덕이자 인섭이는 절망한듯 주먹으로 연신 제 가슴을 들이쳤다. 《너희들 부부정이 이토록 깊단말이지? 으하하! 이 인섭이가 왜 바다귀신이 되지 않고 살아왔단말인가!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사랑을 빼앗기는 고통을 받지 않았으련만. 아, 원통하구나!》 비분에 몸을 떨던 인섭이는 진정한듯 독주를 들고 쓴웃음을 지었다. 《독주까지 부어놓고 은원을 따져 무엇하겠소. 자, 우리 셋이 함께 죽기로 언약했으니 어서 들기요. 우리 사이의 모든 사랑과 증오도 이 독주와 함께 소실될것이요!》 순간 죽음의 공포가 방안에 차넘쳤다. 창식이는 떨리는 손으로 인섭이가 권하는 독주잔을 들었다. 잇달아 독주를 들고 창식이를 바라보는 연옥이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여보세요. 미안해요. 당신까지 함께 데리고 가서 …》 《그런 말 마오. 사랑하는 안해와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 난 오히려 기쁘오!》 애잔한 눈길로 연옥이를 마주보는 창식이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인섭이는 슬픔과 눈물에 젖은 그들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쌀쌀하게 웃었다. 《당신들만 기쁜게 아니라 나도 기쁘오! 황천길에 동무가 있게 돼서.》 셋은 술잔을 마주쳤다. 짧디짧은 인생과 영별하는 비장한 격정이 세 젊은이의 가슴을 흔들었다. 《아름다운 죽음을 향해!》 인섭이가 독주를 입가에 가져가며 가볍게 웃었다. 《용감히!》 연옥이가 선참으로 독주를 마셔버렸다! 잇달아 창식이도 눈을 감고 단모금에 독주를 굽냈다. 그들 부부가 내려놓은 빈술잔을 바라보던 인섭이가 들었던 잔을 내려놓으며 갑자기 너털웃음을 쳤다. 《하하하! 바보같은것들! 내가 왜 너희들과 같이 죽는단말이냐? 난 오늘 통쾌하게 복수했단말이야! 알겠어? 하하하!》 《아니?!》연옥이와 창식이는 놀란 눈길을 교환했다. 인섭이는 득의양양하여 껄껄 웃었다. 창식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인섭이를 노려보다가 연옥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보, 우리가 속았소. 인섭이 저 개자식이 …》 《여보세요. 그가 죽음이 겁나서 그러는데 오래오래 살라고 해요. 전 죽음이 겁나지 않아요. 그저 사랑하는 당신을 함께 데리고 가는게 괴로울뿐이예요.》 《여보, 괴로워마오. 지금 난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죽으니 원이 없소! 우리 이 세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을 래세에 가서 마저 하기오!》 《네. 우리 래세에 가서 오래오래 사랑하자요!》 연옥이와 창식이는 서로 꼭 끌어안고 죽음을 기다렸다. 《하하하! 정말 눈물이 없이는 볼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인데!》 인섭이가 랭소하며 손으로 상우의 제형손수건쪼각을 와락 쓸어던지며 가슴을 치며 넋두리했다. 《아, 쪼각난 제형, 깨여진 사랑, 내 첫사랑 연옥이여! 그대 정말 내곁으로 돌아올수 없단말인가!》 《흥, 죽을 용기마저 없는 비겁한 녀석이 무슨 자격으로 사랑을 운운해!》 창식이가 비웃자 인섭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래 난 죽을 용기가 없어. 난 살아야 해. 꿋꿋이 살아야 해!》 인섭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문을 밀고 나가려던 그는 서로 꼭 껴안고있는 연옥부부를 바라보며 쌀쌀하게 웃었다. 《이제 몇분후에는 너희들이 끝장이야! 흐하하! 저승에 가서나 행복하게 살아라!》 인섭이의 싸늘한 그 웃음은 지옥에서 들려오는 염라대왕의 웃음같이 몸서리치게 죽음의 공포를 몰아왔다. 연옥이와 창식이는 떨리는 몸을 더욱 억세게 부등켜안았다. 《깜빡 잊을번했군.》 문을 열고 나가려던 인섭이는 생각난듯 품속에서 무엇인가 꺼내들고 신비하게 웃었다. 《이건 술잔에 넣고 남은 독약주머니야. 죽음을 앞당기고싶다면 이걸 더 먹으란 말이야!》 인섭이는 독약을 넣은 비닐주머니를 그들 부부앞에 홱 뿌리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인섭이가 던진 비닐주머니는 면바로 꼭 껴안고있는 그들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것은 시한폭탄처럼 그들부부를 공포에 떨게 했다. 두려움에 떨며 그들은 죽음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도록 지나도록 아무런 고통도 없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연옥이가 떨리는 손으로 독약주머니를 주어들었다. 그 독약주머니를 바라보는 그들부부의 눈길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은 동시에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건 우유가루구나!》 ()    
18    그녀의 털보남편 댓글:  조회:4478  추천:1  2013-12-08
단편소설   그녀의 털보남편   김희수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난것은 어느 시장거리에서였다. 쇼핑을 나온 그녀는 시장거리를 거닐다가 장사군들속에 몸을 쪼크리고 앉아있는 그와 언뜻 눈길이 부딪쳤다. 그 눈길이 부드럽고 친절했다. 그녀는 저도 몰래 그 눈길에 끌려 그한테로 다가갔다. 그의 코앞까지 다가가는 동안 그녀는 줄곧 그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고있었다. 그 또한 한발작 한발작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를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온 몸에 털이 뒤덮인 난쟁이였다. 그녀는 거리에 나앉아 남의 구경거리가 된 그의 사정이 몹시 안쓰러웠다. 천천히 허리를 굽힌 그녀는 오른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가볍게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그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다시 한번 그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그녀의 선의적인 웃음과 따뜻한 손길을 느낀 그는 고맙다는듯 살짝 몸을 일으켜 례의를 표했다. 그녀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기를 따라가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그는 그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젊고 아릿다운 그녀의 매력에 기가 질렸는지 고개를 숙인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녀는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다시 한번 같은 물음을 반복했다. 그는 머리를 들어 그녀를 이윽토록 바라보더니 그녀의 얼굴에서 진정한 호의를 읽었는지 머리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이렇게 되여 그녀는 그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였다. 그녀의 집에 들어선 그는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누군가를 찾는듯 했다. 그녀만한 년령이면 꼭 있어야할 바깥주인을 찾는거라고 그녀는 짐작했다. 그녀는 자기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로처녀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처럼 예쁘고 지적인 녀인이 아직까지 독신으로 있는것이 놀랍고도 이상한 모양이였다. 그녀는 말없이 씽긋 웃었다. 그러자 그는 남의 비밀을 캐묻고싶지 않다는듯 그녀의 알뜰한 솜씨로 꾸며진 깨끗하고 정결한 방안을 감탄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새집에 온것이 마음에 드는지 깡충깡충 뛰여다녔다.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그에게 그녀는 우선 식사대접부터 시켰다. 그녀는 재빠른 음식솜씨를 펼쳐 한상 푸짐하게 차려주었다. 그는 맛있게 먹어주면서 연신 고맙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렇게 그들은 한집식구가 되였다. 한집식구라지만 그는 그녀를 주인처럼 섬겼다. 그러면서 자기의 충성심을 보이려는듯 그녀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기 할일을 찾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그를 노복으로 대하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처럼 여기면서 밥도 한상에서 같이 먹었고 쇼핑할 때도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다. 잠을 잘 때에 그는 구석에서 홀로 자는것이 습관돼서인지 구석방에서 이불도 덮지 않고 쪼크리고 잤다. 그녀도 그런 그의 습관을 존중해서 그대로 두었다.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자신의 신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걸 발견했다. 라태하던 생활이 절주있게 되였고 흐트러졌던 생활의 리듬이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 전진하게 되였다. 항상 늦잠을 자던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그와 함께 달리기를 했고 대충 요기하던 아침식사도 푸짐하게 차려놓고 그와 함께 맛있게 먹군 했다. 그리고 한주일에 한번꼴로 하던 방안청소도 매일매일 말끔하게 치우고 닦았으며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밀리던 빨래도 제때에 깨끗하게 씻군했다. 그의 존재로 하여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던 그녀의 생활에 노래와 웃음이 차넘쳤다.     그녀는 그와 함께 아침 달리기를 하고나면 왕성한 식욕이 끓어올랐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게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군했다. 설거지를 하고나서 그녀는 거울앞에 앉아서 얼굴화장을 한다. 눈섭도 그리고 아이섀도도 칠하고 오렌지색 루즈도 진하게 발라놓는다. 그는 그녀곁에 서서 그녀가 그녀가 화장하는 섹시한 모습을 홀린듯이 바라본다. 그는 거울속에 나타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내심 탄복하며 감탄하다가도 자기의 못난 모습을 발견하고는 얼른 거울에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저만치 물러서서 계속 그녀의 매력적인 자태를 지켜본다.       화장을 끝낸 그녀는 옷장문을 열고 옷을 꺼내 입는다. 그는 곁에서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가 무슨 옷을 입는가를 주시해본다. 그녀가 제복을 꺼내 입으면 출근날인줄 알고 서운하여 맥없이 주저앉고 그녀가 평복을 결쳐 입으면 휴식날인줄 알고 기뻐서 폴딱거린다. 그녀가 출근하면 그는 혼자서 집을 지켜야 하기에 너무나 심심하고 적적하고 고독하다. 하지만 휴식날이면 집에 있으나 나들이를 하나 그녀가 항상 그와 함께 있어주기에 즐겁고 유쾌하기만하다.      출근할 때면 그녀는 집문을 나서기전에 꼭꼭 그를 껴안고 그의 볼에 뽀뽀해주면서 집을 잘 지키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그는 명심하겠노라고 힘있게 머리를 끄덕여 대답하고나고 《빠이빠이》하는 그녀의 동작을 본받아 자기도 그럴듯하게 포즈를 취해본다.그녀가 출근하고 혼자 남게 되면 그는 먼저 부엌간에서부터 뛰여들어가 전기밥솥의 스위치를 껐나,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나, 수도물이 새지 않나 자세히 살펴본다.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객실로 나와서 텔레비죤을 켜놓고 마음에 드는 프로를 구경한다. 처음에 그는 전기밥솥이며 가스레인지며 수도물이며 텔레비죤이며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를 몰랐다. 그녀는 몇번이나 거듭하여 차근차근 가르쳐주어서야 그는  그 모든것의 사용법을 익히게 되였다. 그는 리모콘으로 채널을 바꿔댔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것은 만화영화였다. 만화영화중에서도 특히 멍멍이가 나오는 동화편을 즐겨했다. TV의 화면에 멍멍이가 나타날 때면 그는 너무도 즐거워서 멍멍이의 동작을 본따서 폴짝폴짝 뛰군했다. 퇴근무렵이면 그는 현관앞에 서서 그녀의 귀가를 기다린다. 벽시계의 뻐꾸기가 《뻐꾹뻐꾹》하고 다섯번을 울기만 하면 그녀는 어김없이 집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녀는 언제나 반색하여 매달리는 그를 꼬옥 껴안고 그의 볼에 《뻑》 소리나게 입을 맞춰준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그에게 더욱 정이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부터 그녀에게는 늦은 귀가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동료들과 친구들과의 래왕도 점점 뜸해졌다. 그녀가 혼자 살 때는 레스토랑, 카바레, 카페 등을 전전하면서 3차, 4차 련거퍼 마셔대던것이 그와 함께 있으면서부터는 1차마저 사양하는 차수가 많아졌다. 그녀에게는 그와 함께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번뇌가 말끔히 가셔지고 가슴속에서 오로지 기쁨만이 샘솟듯 솟아나는것이였다. 그녀는 아침이면 그와 함께 달리기를 했고 저녁이면 그와 함께 야시장을 돌아보기도 했으며 강가를 산책하기도 했다. 그리고 휴식일이면 그와 함께 쇼핑도 하고 공원놀이, 들놀이도 했다.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차수가 잦아짐에 따라 그들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결혼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기로 하느님께 맹세한 그녀에게 사랑이란 두번 다시 있을수 없는것이였다. 그녀는  《남자》라는 말만 들어도 속에서 구토가 올라왔다. 그만큼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 대해 증오하고있었다. 증오하기보다 그녀는  《남자》들에 대해 완전히 실망을 느끼고있었다.     그녀가 처음 알게 된 남자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란 그녀에게 있어서 범처럼 무서운 존재였다. 아버지는 사흘이 멀다하게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서는 쩍하면 어머니와 언니를 때리군 했다. 아버지는 때린다하면 사정이 없었다. 주먹과 발길로 피가 터질 때까지 혹독한 매질을 하군 했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이튿날이면 어머니와 언니의 팔다리는 퍼렇게 멍들군 했다. 언니는 이마며 턱이며가 흉터가 생겨 동학들 보기 부끄럽다고 학교로 못가는 때가 많았다. 그녀가 여덟살때부터는 그녀에게까지 매를 대군 했다. 그때면 어머니는 항상 딸을 보호하느라고 갑절이나 매를 더 맞군 했다. 아버지가 이처럼 폭력군이기만 하면 그래도 괜찮았다. 그 주제에 아버지는 쩍하면 계집질하면서 오늘은 이년 래일은 저년과 붙어다녔다. 그래도 그 쪽이 썩 좋았다. 아버지가 밖에서 외도하는 날이면 매를 맞지 않게 되니까.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보응이였던지 아버지는 유부녀인 어떤 년과 좋아서 붙어지내다가 유부남에게 물매를 맞고 하반신을 못쓰게 된것이다. 이제는 아버지가 다시는 때리지 못하게 된것이다. 하지만 바깥출입을 할수 없게 된 아버지는 자리에 누운채로 똥오줌을 싸는 처지가 되였다. 말없이 응당한것처럼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똥빨래를 씻는 어머니를 보고 그녀는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      《엄만 밸도 없나요? 그것도 인간이라고 시중들어요?》      《그럼 못써. 그래도 네 아버지가 아니냐?》      《저건 어버지가 아니라 짐승이예요. 짐승! 그 짐승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우리 셋이 따로 나가 살자요.》     그런데 언니도 아버지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그녀를 나무란다. 리해할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심하게 당하고도 그런 아버지를 용서해주는 어머니와 언니가 리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만은 아버지를 용서할수 없었다. 아버지가 속벌에 똥을 쌀 때마다 그녀는 구린내난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의 저주때문인지 아버지는 얼마후 쥐약을 먹고 자결하고말았다.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되여버린 아버지를 보고 슬피우는 언니를 보면서 그녀는 언니만은 어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지 말기를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그 형부라는 남자는 또 어떤 남자였던가.     그녀가 고중3학년때였는데 어느 하루는 언니가 어떤 남자를 집에 데리고 왔다. 키 크고 멋진 남자였다. 말도 변설이여서 첫대면인 그녀를 처제라고 부르며 처제는 매화꽃처럼 예쁘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댔다. 그리고 어느새 장모님이 됐는지 어머니를  《장모님, 장모님》하고 부르면서  《따님과 저는 여차여차 사랑하게 되여 서로 떨어질수 없는 사이가 되였습니다. 따님을 저한테 주십시오. 따님을 데려다가 고생시키지 않겠습니다. 따님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게 하겠습니다.》하고 엎드려 절까지 했다. 한평생 아버지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마를새 없었던 어머니는  《따님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게 하겠습니다.》하는 그 한마디에 감동되였는지 그 자리에서 큰딸의 혼사를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집간 딸이 남몰래 눈물을 짜고있었을줄은 저 세상으로 가는 날까지 어머니는 모르고있었다. 어머니가 딸집에 갈 때마다 언니는 눈물을 감추고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었기때문이였다. 어머니는 세상뜨는 날까지  《작은사위도 큰사위 같은 좋은 남자를 삼아야 할테데.》하고 그녀의 혼사를 걱정하셨다. 그녀도 그때까지는 언니의 결혼생활이 행복한 줄로 알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중에 그녀는 동료들과 같이 3차를 가다가 노래방앞에서 형부가 어떤 아가씨와 키스하는것을 발견했다. 남들이 지켜보는것도 아랑곳없이 희미한 불빛아래에서 입을 맞춰대던 형부는 그 아가씨와 함께 택시에 앉아 어디론가 사라지는것이였다. 그녀는 자신이 배반당한듯 가슴속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녀는 이튿날 곧 언니를 찾아갔다. 그제야 언니는 눈물을 질질 짜면서 시집온지 한달만에 형부가 무서운 바람둥이라는걸 알았단다. 자기한테 화류병을 옮겨온적도 몇번이나 된단다. 그런줄 알면서도 왜 여태까지 그런 남자와 살았느냐고 물으니까 어머니가 알면 락루하실가봐 참고 살았단다.  《지금도 늦지 않아요. 그 짐승같은 남자와 헤여져요.》하니까  《애두 있는데 그럭저럭 살아야지》하고 리혼할수 없다며 언니는 한숨을 짓는다. 그녀는 그런 언니가 불싸하다 못해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녀에게도 여기저기에서 중매가 들어왔다. 언니도 중매를 서면서 몇몇 총각들을 소개해주었다. 중매가 아니라해도 그녀에게는 청혼하는 남자들이 여럿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만날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남자라면 모두가 아버지 같고 형부 같은 족속 같아서 진저리났다. 더구나 그런 남자들과 사랑을 한답시고 키스를 할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났다. 그런 생각은 시집간 친구들의 남편들을 보면서 점정 더해갔다. 한 친구는 시집을 잘 갔다고 모두들 부러워했다. 돈 많고 학벌 높고 인물 잘 생기고 맘씨 곱다고 친구도 시물시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신혼살림을 하면서 친구는 하냥 행복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그녀는 정말 좋은 남자가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이런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날 그녀는 3차인지 4차인지 동료들과 함께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신적이 있었다. 그녀들이 방금 레지가 갖다주는 커피를 들었을 때 곁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녀가 서로 빨고 만지고 하는 소리였다. 칸막이 벽이 워낙 엷어서 옆방에서 토해내는 녀인의 신음소리까지 그대로 들려왔다.  《어머! 어머!》하는 녀자의 애교어린 목소리를 뒤이어  《히히, 너 노브라군!》하는 남자의 음탕한 웃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다음 남자가  《아, 미치겠어, 우리 집으로 가자!》하고 녀자의  《어머, 부인님은요?》 놀란소리에 남자가  《우리 마누라 본가집으로 갔어, 어때, 좋지?》한다. 여기까지 들은 그녀는 구역질이 났다. 당금 구토할것 같아 그녀는 화장실로 가려고 문을 열고 나섰다. 그때 마침 옆방에서 나오는 그 남주인공과 눈길이 딱 마주쳤다. 순간 그녀와 남주인공은 다같이 깜짝 놀랐다. 그 남주인공이 바로 그녀의 친구의 잘난 남편이였던것이다.     또 다른 한 친구는 결혼한지 6년만에 잘 살아보겠다고 한국에 나갔다. 가면서 친구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애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친구의 남편은 항상 퇴근이 늦었기에 그녀는 날마다 퇴근하기 바쁘게 유치원에 뛰여가 친구의 애를 집에 데려다주군 했다. 친구의 남편은 그런 그녀가 감사하다면서 어느 하루는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친구의 남편이 밖으로 나가자는걸 그녀는 친구가 피땀으로 번 돈을 아껴야 한다면서 집에서 간단히 먹자고 했다. 둘은 함께 부엌에서 바삐 돌아치며 물만두를 빚고 료리도 몇가지 볶았다. 친구의 남편이 그녀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우리 부부 같잖아》했다. 그녀도 그런 롱담쯤은 웃으며 받아주었다. 둘이 맥주를 마시는 동안 배불리 먹은 친구의 딸애는 자기의 방에 들어가 쌔근쌔근 코를 골았다. 술이 거나하게 되였을 때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던 친구의 남편이 갑자기 덮치면서 그녀를 와락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녀는 그런 무례한 행동에 화가 치밀어 친구의 남편을 콱 밀치면서  《이게 무슨 짓이예요? 한국에서 고생하는 애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아요?》했다. 그러자 친구의 남편은  《거기 간 녀자들 다 애인 있다더라. 내 마누라도 지금쯤 어떤 놈팽이와 붙었을거야. 제길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인데 뭐. 우리도 애인하자.》하면서 재차 덮쳐왔다. 그녀는 더는 참을수 없어 친구의 남편의 귀쌈을 후려치고는 도망하다싶이 그 집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직장 상사인 사장님도 그녀에게  《관심》의 손길을 뻗쳐왔다. 매사에 이런저런  《관신》과  《배려》를 베풀더니 급기야는 본색을 드러내고말았다. 조용한 다방에서 보석반지와 금목걸이를 그녀앞에 내놓으면서 애인이 돼달란다.  《사장님께 장미라는 애인 있잖아요?》하니까  《애인 여럿이면 좋잖아.》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기색이 변한걸 보고  《장미는 인제 정 떨어졌어. 너처럼 사랑스럽지 못해.》하면서 그녀를 와락 껴안고 오늘밤 요구를 들어달란다. 사장님이 덮치는 순간 그녀는 또 구역질이 났다. 그녀는 젖가슴을 만지는 사장님을 콱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를 총망히 걸어갔다. 오가는 남자들이 흘끔흘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자기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길이 모두 색마의 눈길처럼 느껴지며 온 몸이 오싹해났다. 그녀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탄했다. 《남자들은 모두 더럽고 치사한 동물이야!》     그렇게 봐서인지 정말 그런것 같았다. 남자들은 모여앉기만 하면  《누구는 애인이 몇이요, 어느 술집아가씨가 잘해주오.》하며 지저분한 섹스얘기뿐이다. 노래방이나 카페 같은 곳에 함께 가면 남자들의 더러운 손이 슬그머니 그녀의 넙적다리거나 젖가슴쪽으로 침입하는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런 남자들이 무안하여 얼굴를 붉어질 정도로 따끔하게 찔러주었다. 그런 일이 몇번 있은후로는 누구도 감히 그녀를 건드릴 엄두를 못냈다. 거리를 거닐때면 지나가던 어떤 남자들이 그녀를 보고  《와, 저 아가씨 가슴 이쁘다!》,  《히프는 얼마나 근사한데!》하고 저들끼리 수군거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남자들의 눈알이 몸에 붙어있는것 같아서 신경질적으로 옷을 털어버리군 했다.  《어떤 남자들은 짐승이야.》하고 느끼던데로부터 그녀는 이제는  《모든 남자들은 짐승이야. 아니, 짐승보다 못한 최하류의 미물이야.》하고 이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색정광으로 보게 되였다.      《이 세상엔 좋은 남자들도 있어.》 하면서 언니는 또 한 남자들 소개해왔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 남자는 공부밖에 몰랐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남들이 다 하는 련애 한번 안했대. 대학을 나와서는 반신불수인 부모님을 시중드느라 배우자를 찾을 마음이 여유가 없었대. 효성이 지극하고 마음씨 착한 그 남자는 장차 애처가로 될 남자야.》      《애처가건 공처가건 난 남자라고 하면 모두 징그러워.》      《너 그러지 말고 한번 만나봐. 정말 좋은 남자야.》      《지금 세월에 좋은 남자 어디 있어? 남자들은 모두 짐승...》      《너 색안경을 쓰고 보니까 그렇지.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어디 한번만 만나봐. 그럼 너도 관점이 바뀔거야.》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났다. 선보기 위해 만난것이 아니라 언니한테  《이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색골이다》는 자기의 관점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만난것이였다. 첫대면에 악수하는 그 남자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그 남자가 시작부터 늑대의 본성이 꼬리를 쳐든거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그 남자이 표정을 살피려고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감히 그녀의 얼굴을 마주 응시할수 없어 고개를 약간 숙인것이였겠으나 그녀는 그 남자의 음탕한 눈길이 자기의 앞가슴과 사타구니에 쏠린것이라고 여겼다. (그럼 그렇겠지. 이 세상에 늑대가 아닌 남자가 어디 있겠어.)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남자가 신입사원 모집하듯 그녀의 간력을 간단하게 묻더니 엄숙하게 말하는것이였다.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피차에 연분이 있어 만났는데 이 나이에 따로 련애할것도 없지 않습니까? 난 독신인데 오늘부터 우리 집에 옮겨와 함께 삽시다. 우리 두 사람이 사용할 쌍침대도 새로 마련해놓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도 어이없어 말이 나가지 않았다. 낯도 코도 모르던 사람이 만나자마자 함께 살아? 뭐?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할 침대라구? 침대, 침대! 그래 남자들은 그짓밖에 모르는 늑대이니까! 그녀는 언니를 찾아가서 그 남자도 역시 아버지와 형부와 똑같은 족속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언니는 웃으며  《요즘은 열여덟, 열아홉이 되는 애들도 만나면 동거부터 하는데 뭘그래?》히거 그녀를 나무랐다. 그녀는 언니를 쏘아보며  《아이, 구역질나. 남자라는것들은 모두 짐승보다 못한 존재야. 난 영원히 혼자 살거야!》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는 그런 그녀를 가슴 아픈 눈길로 바라보며  《네 관점이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흐르다니? 아무래도 넌 심리치료를 받아봐야겠구나!》고 했다. 언니의 그런 걱정을 그녀는 웃음으로 넘겨버렸으나 때론 자기로서도 자기 자신이 이상하게 여겨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남자들을 좋게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좋게 보여지지가 않았다. 보이는 남자들마다 모두 아버지, 형부, 사장님, 친구의 남편들 같은 그런 족속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하늘을 우러러 굳게 맹세했다.(난 한평생 결혼하지 않겠어! 그 어떤 남자도 사랑하지 않겠어!)     그 어떤 남자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녀가 지금은 귀신에게 홀린듯 털봉린 그를 사랑하게 된것이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한테 애정이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도 마음속으로 그녀를 사랑하고있엇지만 감히 그녀와의 사랑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있었다. 어느날밤, 그녀는 사랑의 표시를 하며 그를 자기의 침대에 눕혔다. 그녀는 그를 꼭 껴안고 잤다. 그렇게 몇밤을 잤지만 그들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마음속으로 얼마나 자기를 깊이 사랑하고있는지를 그의 눈빛과 그의 행동에서 알수 있었다. 어느 한번 그녀가 길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주어왔다. 그녀가 그 고양이를 몹시 귀여워하는것을 본 그는 질투로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것이였다. 그러더 그는 마침내 사나운 기세로 그 고양이를 공격하여 멀리 쫓아버리고말았다. 그녀는 그가 이처럼 성내는것을 처음 보았다. 그런데 며칠후 그가 또 성내는 일이 발생했다. 그녀가 그와 함께 저녁산책을 할 때였다. 무슨 일로 저만치 뒤떨어져 걷던 그는 골목에서 그녀가 어떤 남자와 포옹하고있는것을(사실은 포옹하고있은것이 아니라 치한이 그녀를 덮친것이였다.)보고 성난 숫사자와 같이 맹렬하게 돌진하여 그 치한을 쫓아버렸다. 그녀는 감격하여 그를 꼭 껴안고 키스해주었다. 그후 그녀는 그를 늘 무릎에 앉히고 노래를 불러주군 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눈은 언제나 행복에 젖어들군 했다. 눈빛만 보아도 그들은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수 있었다.      《우리 결혼해요!》     어느날 그녀는 그를 꼭 껴안고 고백했다. 그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너무 뜻밖이인지 멍청한 눈길로 그녀만을 쳐다본다. 그녀가 재차 속삭이며 뜨거운 입맞춤을 하자 그의 눈은 감격에 젖어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결혼식을 준비했다. 곱게 화장한 그녀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에게도 신랑옷을 입혀주었다. 푸짐한 잔치상도 차렸다. 하지만 손님은 청하지 않았다. 친척도 동료도 심지어는 언니마더 청하지 않았다. 둘만이 하는 결혼식이였다. 신부는 여느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털보신랑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를 쳐다보느라 넋을 잃을 지경이였다. 결혼식은 간단했다. 신랑신부가 맞절을 하고 결혼반지를 교환하니 모두 끝난것이다.     첫날밤은 달콤했다. 신부는 침대우에 쌍희자가 새겨진 시트를 펴놓고 신랑더러 기다리라고 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한창 씻고있는데 신랑이 빠끔이 열려져있는 욕실문을 밀고 들어왔다. 샤워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줄기를 젖무덤에 대고있던 신부는 신랑이 들어오는것을 보고  《어머, 얌체야!》하고 애교스럽게 웃었다. 녀자의 알몸을 처음 보는 신랑은 넋빠진듯 신부의 라신을 응시했다.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미끈한 몸매, 곡선미 넘치는 풍만한 히프, 그리고 탱탱하고 봉긋한 젖가슴은 신부의 숨결을 따라 춤추듯 오르내린다.      《우리 함께 씻어요!》     신부가 배시시 웃으며 샤워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줄기를 신랑의 몸에 대고 공격했다. 신선한 충격에 신랑은 춤추듯 흥분에 겨워 폴짝폴짝 뛰였다. 신부는 정성들여 신랑의 몸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목욕을 하고나니 시원하고 거뿐했다. 신부는 신랑을 안고 침대우에 올랐다. 신부는 신랑에게 격렬한 키스를 퍼부으며 신랑의 민감한 부위를 애무해주었다. 신부의 애무가 진하고 격렬하게 진행되자 신랑은 흥분이 고조되여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부는 애원하듯 신랑에게 애무를 요구했다. 신랑은 뜨겁게 달아오른 혀바닥으로 신부의 탱탱한 젖가슴을 애무해주었다. 신랑이 어린아이처럼 젖가슴을 파고들고 신부는  《아!》하고 신음을 토해내며 가랑이를 가위처럼 벌렸다. 신랑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것 같았다. 신부는 다가올 미지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으로 가볍게 몸을 떨었다. 신랑은 곧 신부와 결합해야 한다는것을 느꼈지만 너무도 기쁘고 너무도 흥분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신부는 당혹해하는 신랑을 고무의 눈길로 바라보며 용기를 주었다. 신랑은 마침내 신부와 한몸이 되는 신성한 사랑을 완성했다.     그들은 이렇게 부부가 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한집에서 아기자기 살면서 다정하게 거리를 산책하는것을 보면서도 그들이 부부간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선녀같은 그녀와 털보인 그가 어느 모로 보나 어울리는 한쌍으로 돼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남편은 온몸에 털이 뒤덮인데다가 난쟁이였고 말할줄도 몰랐다. 하지만 속세의 인간들이 어찌 그들의 고결한 사랑을 리해할수 있으리요. 남편은 구역질이 나는 남자들과 달랐다. 이 세상의 남자들과 젼혀 달랐다. 비록 외모는 짝지지만 내심세계만은 비할데없이 아름답고 깨끗했다. 남편은 욕망이 없었다. 하루 세끼 배불리 먹여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속세의 남자들처럼 다른 녀자를 넘겨볼줄도 몰랐다. 이 세상의 관습에 오염되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거짓을 몰랐다. 오직 그녀에게만 충성하며 무슨 일이든 그녀가 시키는대로 했다. 남편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남자들보다 더욱 훌륭했다.     남들이야 알아주든말든 그녀는 남편을 한없이 사랑했다. 남편 또한 그녀를 깊이깊이 사랑했다. 그들은 날에 날마다 꿀맛같은 사랑을 맛보면서 무한히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들한테 뜻하지 않던 불행이 닥쳐왔다. 그날은 남편이 감기로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을 침대에 눕혀놓고 약 사러 나갔다. 그런데 남편이 그녀 모르게 그녀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나섰다. 그런줄도 모르고 그녀는 남편의 약을 사기에 급한 걸음을 재촉했다. 간밤에 내린 눈때문에 길바닥이 몹시 미끄러웠다. 그녀가 길 복판에서 미끄러워 주춤거리고있을 때 자동차 한대가 곧 바로 그녀를 향해 무섭게 달려왔다. 공포의 전률을 느끼며  《앗!》하는 순간 그녀는 어떤 강한 힘에 떠밀려 길 저쪽켠으로 나자빠졌다.  《차사고가 났어!》하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아픈 허리를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만 같았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남편이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져있었던것이다. 그녀는 영문을 알았다. 남편이 그녀를 구하느라 자기 자신을 희생한것이였다. 그녀는 황급히 비틀거리면서 남편한테로 다가갔다.      《죽었구만, 죽었어!》     남편의 시체를 둘러싸고 수군거리던 구경군들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흩어져 가버렸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이 죽다니?! 사랑하는 남편이 죽다니?! 목숨바쳐 그녀를 구한 남편!      《아이구! 아이구...》     그녀는 처절하게 가슴을 쥐여뜯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은 하늘에 닿을듯 했다. 그녀는 남편의 시체를 붙잡고 간장을 비트는듯 애통하게 흐느끼였다.      《이미 죽은걸 어찌겠수. 운다고 다시 살아날수야 없지 않수? 내 잘못은 별로 없지만 손해배상은 하리다.》     운전기사가 다가와 돈지갑에서 백원짜리 몇장을 꺼내여 선심쓰듯 그녀앞에 던져주고는 슬금슬금 물러갔다. 그녀는 그 돈을 북북 찢어던졌다. 분하고 슬프고 억울했다. 너희들의 눈에 그래 남편의 몸값이 이것밖에 안된단 말이냐? 어떤 남편인데? 내 남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하고 가장 정직하고 가장 순수한 남편이란 말이야!     비애가 왈칵 한가슴에 밀려온다. 그녀는 또다시 가슴을 쥐여뜯으며 처절하게 통곡했다. 지나가던 행인 하나가 땅을 치며 슬피 우는 그녀를 보고 리해할수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허참, 개 한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걸 가지고 왜 저리 슬피 운담?》                               (2003년 7월)      
17    2등 인생 댓글:  조회:3279  추천:1  2013-12-01
단편소설 2등 인생 김희수   그날 저녁, 그자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나는 온밤을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을 이룰수 없었다. 몇번이나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밤바람이 정답게 내 몸을 어루만져준다. 애인의 키스처럼 향긋한 밤바람을 훅 들이키고 나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라이터를 꺼내 들었으나 손이 떨리면서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그자가 죽었다! 그자가 죽었다! 꿈같은 사실이다. 믿어지지 않는다. 믿어지지 않아 몇번이나 재확인해본 사실이다. 국장으로 갓 승급한 그자는 만수무강술집에서 제1차 축하파티를 끝내고(여기서 나는 시름시름 앓는 안해를 핑계로 그자와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첨하는 하급들에게 떠밀려 교외에 있는 무지개별장으로 제2차 축하파티를 열려고 국장전용차에 앉아가는 도중에 마주 달려오는 트럭과 부딪쳐 그 자리에서 당장 숨지고말았다. 이 소식은 그 뒤의 차에 앉았던 부하들이 사건현장에서 부국장인 내게 전해준 비보이다. 부하들은 울먹한 목소리로 이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자가 죽었다니? 이게 꿈은 아니겠지? 그자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자의 가족에게는 비보겠지만 나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수 없다. 그자에게 눌리여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30년! 장장 30년을 그자에게 눌리여 살아온 세월들을 돌이켜보노라니 눈물이 난다. “여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느새 안해가 내곁에 다가와서 부드러운 말씨로 따뜻이 위로해준다. 안해는 내가 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너무 큰 슬픔에 잠겨있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나하고 10년여를 함께 살아온 안해이지만 내 깊은 속마음을 아직 모르고있다. “여보, 바람이 찬데 들어가요.” “먼저 가 자오.” 오늘따라 달이 휘영청 밝다. 그자는 이제 저 아름다운 달도 볼수 없게 되였구나. 하하하! 저 달은 이제 그자의것이 아니다. 이 세상도 그자의것이 아니다. 아아, 저 달을 보니 월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달같이 환한 그녀의 얼굴이…그녀는 내 첫사랑이였다. 하지만 나는 첫사랑을 그자에게 빼앗겼다. 첫사랑뿐만아니라 나는 그자에게 모든것을 빼앗겼다.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그자는 나에게서 모든것을 빼앗아갔다. 그런 그자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여보, 들어가 주무셔요. 래일 출근해야지요.” 나는 안해에게 끌려 도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안해는 쌔근쌔근 코를 골았으나 나는 흥분으로 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날 그자와 함께 해온 가지가지 추억들이 머리를 주마등같이 스쳐 지났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공부도 학급에서 으뜸이였을뿐만아니라 음악, 체육, 미술도 으뜸이였다. 그래서 소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줄곧 반장이였고 홍소병(소년선봉대), 홍위병, 공청단에도 제일 먼저 가입했다. 그때는 붉은 넥타이를 매보지도 못하고 소학교를 졸업한 애들도 있었고 홍위병완장을 껴보지도 못하고 학생시절을 마친 애들이 있었으니 소학교를 졸업하면서 입단까지 하고 중학교에 들어서자 반장에 공청단서기까지 겸하고있는 나는 전체학생들의 흠모의 대상이였다. 게다가 출중한 용모까지 가지고있어서 나는 녀학생들의 호감을 독차지하고있었다. 그런데 그자가 오면서부터 나는 1등의 자리를 그자에게 내주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중학교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라이벌이였던 그자가 오면서부터 나는 비참한(?) 2등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자는 중학교 3학년 때 우리반에 전학해 왔다. 선생님이 그자를 데리고 와서 새로 전학해온 동무라고 소개할 때 전체학생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자에게로 집중되였다. 녀자애들의 입에서 “와, 잘생겼다!”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그자는 나보다도 더 잘생겼다. 나는 그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까닭 모를 질투심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그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얼굴만 잘생기면 뭐라나? 실력이 있어야지. 어디 두고보자!… 하지만 선생님이 소개하는 그자의 경력부터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자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나처럼 반장에 공천단서기까지 겸했으며 공부도 학급에서 줄곧 1등이였다고 한다. 실로 만만찮은 적수를 만났다는 생각에 나는 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해났다. 그자는 첫 시험부터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줬다. 물론 정식시험은 아니고 평소의 보통시험이였지만 그자의 수학, 물리, 화학 점수는 나와 동점이였고 조선어문과 한어 점수는 만점으로서 나보다 5점이나 더 맞았다. 그자는 한족말을 아주 잘했고 그때문에 한어문장도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읽었다. 당시는 공부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던 20세기 70년대 상반기였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은 역시 모든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였다. 그자의 실력이 점점 뚜렷해지자 나는 초조해났다. 이러다가 그자가 앞으로 계속 날 초과하면 어쩌나 하고 나는 점점 더 초조해났다. 보통시험인데 뭐. 이따 학기말시험에 가서 누가 이기나 두고보자! 나는 스스로 자신을 위안하며 날마다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자에게 져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내가 두려워하던 그 시각은 드디어 왔다. 학기말 시험서적이 공개되였다. 그자가 1등이고 나는 2등이였다. 그자는 이렇게 줄곧 1등이던 내 자리를 빼앗았다. 비참했다. 내 일생에서 처음으로 1등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순간이였다. 애들은 놀라움과 경탄에 찬 눈길로 그자를 바라보았고 이어 동정과 련민의 시선을 나한테로 옮겼다. 그런 애들앞에서 나는 부끄러워 얼굴도 들수 없었다. 학기말 시험성적이 공개되던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너무도 분하여 엉엉 울었다. 이제 무슨 얼굴로 선생님과 동학들의 앞에 나선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베개를 적셨다. 나는 울다가 일어나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그자를 죽이고싶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그자를 죽이고싶은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곧추 강변으로 달려갔다. 강가에서 말대가리 만한 돌을 골라 그 돌우에 분필로 그자의 얼굴을 그려놓고 5보쯤 뒤로 물러섰다. 작은 돌멩이를 주어들고 그자의 “얼굴”을 과녁으로 삼고 돌팔매질했다. “이 나쁜 놈아! 똥물에 빠져 뒈져라!” 내 손에서 날아간 돌멩이는 그자의 이마에 명중됐다. “이 개새끼야! 쥐약 먹고 죽어라! 죽어!” 이번에는 코에 맞았다. 그리고 눈에, 입에 비발치듯 날아갔다. 얼마후 맥도 진하고 화도 얼마간 가라앉았다. 강물에 뛰여들어 시원하게 미역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시험성적표를 들여다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의문되는 점이 있었다. 수학, 물리, 화학 시험성적은 100점은 몰라도 95점은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89점이나 90점밖에 안되였다. 선생님이 실수로 내 점수를 깎지 않았을가? 이튿날 등교하여 선생님을 찾아가니 선생님은 내 시험지를 내놓으며 맞춰보라는것이였다. 나는 내가 옳게 써넣은 답안이 틀리게 된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허심하지 못하고 교오자만한다면서 한바탕 나를 질책했다. 그럼 내가 틀렸단말인가? 나는 아리송했다. 그때로부터 나는 선생님이나 동학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미약한 변화가 있는것을 발견했다. 선생님들은 나보다도 그자에 대한 칭찬이 더 많았고 내 주위에 뭉쳐있던 애들이 하나 둘씩 그자와 친하려고 나도는 눈치가 엿보였다. 심지어 월녀마저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교과서와 학습장을 들고 그자한테로 달려간다. 월녀는 학교의 꽃으로 불리는 미소녀로서 나와는 련인사이다. 나와 친한 애들은 월녀가 나랑 사귀는 사이라는 사실을 다 안다. 그런 월녀가 그자한테로 접근하니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는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꾹 참으며 다가가 월녀의 팔을 와락 잡아당겨서 조용한 학교뒤마당으로 끌고 갔다. “왜 이래? 이걸 놔!” “야, 너 왜 그자한테 치근거리니?” “치근거리다니? 누가?” “니가…” “모를 문제가 있어 그애한테 물어본건데 그게 어디 치근거린게야?” “모를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면 안되니?” “니도 모를까봐 그랬다. 어째.” “뭐야?!” 순간 나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월녀마저 그자를 나보다 더 낫게 보다니?! “이 간나새끼!” 나는 월녀의 뺨을 찰싹 후려쳤다. 그러자 월녀는 엉엉 울면서 교실쪽으로 달려갔다. 혼자 남은 나는 울분을 참을수 없어 버드나무를 손으로 탁! 탁! 쳐댔다. 화가 좀 가라앉자 그녀를 때린것이 후회되였다. 나는 천천히 교실로 돌아갔다. 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다른 애들은 모두 하교하고 안에는 월녀와 그자 둘밖에 없었다. 월녀는 그때까지 서럽게 울고있었는데 그자가 월녀를 달래고있었다. “월녀, 누가 널 울렸어? 말해봐. 내가 네 눈에서 눈물나게 한 그 자식을 때려줄께.” 그자는 뻔뻔스럽게도 자기가 월녀의 련인이요, 보호자나 되는듯이 말하고있었다. 그 정경을 보자 나는 다시금 노기가 솟아올랐다. 도끼눈을 부릅뜨고 다가가 그자와 한바탕 붙으려는데 인기척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 월녀가 나를 보더니 다가와 아무 일도 없은듯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월녀와 함께 학교대문을 나서면서 나는 가라앉은 소리로 사과했다. “아까는 미안했어. 내가…” “아니, 너도 자존심이 상했을꺼야. 내가 그 생각을 못하고…” 이렇게 우리는 화해했다. 월녀는 “그애는 너보다 공부는 더 잘하는데 남을 가르치는 수준은 너보다 못한것 같더라. 너는 ‘요건 요렇게 하면 돼’하고 차근차근 잘도 가르치는데 그애는 내가 모를 수학문제를 물어보니 ‘이건 저…저건 저…’하면서 어물어물했어. 아마 속에 든건 많아도 그걸 나타내는 능력은 약한 모양이야”하고 말해서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자에게 당한 참패와 치욕을 잊을수 없었다. 그자에게 내준 1등 자리를 다시 빼앗고야 말리라 별렀다. 하지만 그 당시는 “문을 열고 학교를 꾸릴”때라 빈하중농을 따라 배워 비료를 모은다 밭일을 한다하며 로동만 하다나니 공부하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자는 가는 곳마다 환영받았고 하는 일마다 나보다 나았다. 비료를 모아도 나보다 더 많이 모았고 모내기나 기움이나 가을걷이나 대채전(제전)을 해도 나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일축을 냈다. 그뿐만아니라 그자는 미술에서도 나를 릉가했다. 특히 그자는 비행기와 탱크를 잘 그렸다. 월녀마저 그자의 그림 솜씨에 반해버렸다. 그때는 고급중학교가 따로 없이 중학교 3학년에서 곧 4학년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중학교 4학년으로 올라갔을 때는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였을 시기여서 다시 공부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엉터리공부를 해온 학생들이여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자가 1등이고 나는 2등이였다. 평소엔 공부성적이 우수해 보이지 않던 그자가 시험만 치르면 항상 나보다 조금씩 앞섰다. 그때 동학들 중에서 누군가 나에게 주유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3국시기 오나라의 으뜸가는 모사 주공근!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별명일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수치스러운 별명이였다. 누구나 알다싶이 주유는 지모가 뛰여나다고 천하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모사였지만 제갈량에게 눌리여 기를 펴지 못하고 살다가 비명에 죽은 비참한 운명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일은 내게 그런 별명을 달아준 놈팽이가 그자에게 제갈량이란 별명을 달아준것이였다. 아아, 기막힌 내 운명이여! 중학교 4학년에 올라가면서 나는 한쪽에 밀려나고 완전히 그자의 천하가 되였다. 간부를 다시 선거했는데 그자가 반장 겸 공청단서기로 당선되였다. 나는 그저 허수아비 부반장자리나 지키고있었다. 이때로부터 내 2등 인생이 정식으로 시작된 셈이다. 누구나 다 알다싶이 제갈공명은 세번이나 크게 주공근의 화를 돋궈준다. 운명이랄까 그자도 꼭 내 화를 크게 세번 돋궈주었다. 그자가 첫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준것은 바로 대학시절 내 사랑하는 월녀를 빼앗아간 사건이였다. 공교롭게도 그자와 나 그리고 월녀는 모두 같은 대학에 붙어 함께 공부하게 되였다. 그런데 여기에 반드시 삽입해야 할 에피소드가 있다. 항상 시험만 치르면 나보다 점수가 더 높던 그자가 대학시험에서 나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맞았던것이다. 동학들은 모두 이외라고 생각했고 월녀도 모를 일이라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런데 그자도 자신의 시험점수를 예상하고있었던지 보통대학에 지망했던것이다. 나도 내가 높은 점수를 따내리란 자신이 없은데다가 월녀와 떨어지기 싫어 그들과 같은 대학에 지망했던것이다. 운명은 또 우리 셋을 한데 묶어놓고 짓궂은 장난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몇해를 공부하면서 월녀는 변함없이 내게 맘을 두고있었다. 여가가 있을 때마다 밀회했고 방학때마다 함께 상대방의 집을 방문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던것이다. 그런데 졸업할 림박에 갑자기 그녀가 그자의 품에 안겨버렸던것이다. 졸업학년 때는 실습을 나가서 잘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보다 랭정했고 그자를 보는 눈길이 정을 그득 담고있는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더니 졸업할 무렵에는 끝내 그자에게로 가버렸다. 아니, 어쩌면 중학시절 그자가 나타날 때부터 벌써 그녀의 마음은 그자에게 가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자가 그때부터 그녀를 나한테서 빼앗아가려고 계획을 짜고 음모를 꾸미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자는 그녀가 내 약혼녀인줄 뻔히 알면서도 그녀에게 접근하여 마라톤식 사랑의 공세를 들이대 그녀의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댔던것이다. 짐승같은 놈! 졸업파티 전날까지도 나는 그자가 그녀를 빼앗아간 줄을 감감 모르고있었다. 졸업파티에 참석해보니 이상하게도 그자와 그녀가 나란히 서있었고 내가 그녀에게 춤을 청하려는 시각에 그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에 마이크를 잡고는 기고만장하여 온 대청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로 지껄여댔다. “친애하는 동학 여러분,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대학생활을 마치고 이제 곧 사회로 진출하게 됩니다. 아쉬운 리별을 앞두고 모인 이 자리를 빌어 나는 한가지 중요한 소식을 선포하려고 합니다.” 동학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자에게로 쏠렸다. 그자는 싱글벙글 웃었고 그자의 손을 잡은 그녀도 방글방글 웃고있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자가 말을 이었다. “나는 바로 우리 학교의 꽃인 월녀씨와 정식으로 백년가약을 맺었음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이 장소는 졸업파티이자 우리의 약혼파티인 셈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을 축복해주십시오!” 순간 나는 멍해졌다. 내가 잘못들은것이 아닌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속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나와 친한 박군이 내 곁에 다가와서 격분하여 말했다. “아니, 어떻게 네 약혼녀가 하루밤사이에 저 자식의 약혼녀로 되였지?” 월녀가 내 약혼녀란 사실은 박군만이 알고있는 사실이 아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장소에서 감쪽같이 약혼녀를 빼앗은 사실을 공개하는것은 나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아닐수 없다. 동학들이 이상야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그 눈길은 마치 “저 자식이 바보처럼 약혼녀를 빼앗겼군!”하고 나를 비웃는것 같았다. 아아, 이런 모욕을 어찌 참을수 있단 말인가! 너무도 격분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나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천천히 그자한테로 다가갔다. 그자는 내가 다가온것도 모르고 주위사람들과 희희락락하며 뭐라고 지껄이고있었다. 나는 먼저 그자의 곁에선 월녀에게 따지고 들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미안해, 일이 이미 이렇게 됐어.” “이렇게 됐다니? 너하고 나 약혼한 사이 아니였어? 왜 나한텐 헤여진다는 말도 없이…한마디 말도 없다가…네가 어찌 나한테 이럴수 있니? 아무리 그래도 우린 중학교 때부터 여태까지 사랑해온 사이인데 이럴수 있느냐 말이야? 그래 너희들은 나같은건 안중에도 없단 말이지?” “미…미안해. 너한테 헤여지자는 말을 하려 했으나 차마 입을 뗄수가 없어서…” “이 죽일 년의 간나새끼!” 나는 월녀의 뺨을 찰싹 후려쳤다. 그러자 그자가 와닥닥 팔을 걷고 나섰다. “너 왜 내 약혼녀를 치는거냐?!” 격분한 나는 그자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자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야, 임마! 뭐 약혼녀?! 너 친구의 약혼녀를 빼앗고도 뻔뻔스럽게 네 약혼녀라니? 이 짐승보다 못한 놈아!” 나는 주먹으로 그자를 면상을 들이쳤다. 그러나 그자가 피하는 바람에 나는 헛방을 치고 말았다. 다시 들이치려는데 월녀가 그자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칠 테면 자기를 치라는듯이 배를 쑥 내밀고 경멸의 눈길로 차갑게 나를 쏘아보았다. 아아, 녀자란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다. 사랑할 때는 그렇게도 상냥하고 살뜰하더니 이렇게 순식간에 180도로 돌아서 표독스럽게 변하는구나! 동학들이 구경거리나 생긴듯 모여서는것을 보고 나는 돌아서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슴이 찢긴다. 분노때문인지 실련의 고통때문인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 같다. 아아, 그녀를 죽이고싶다! 나를 배반하고 적수의 품에 안긴 그녀를 죽이고싶다! 아니 그녀보다 그자를 죽이고싶다! 내 사랑을 빼앗아간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싶다! 나는 헬스장으로 달려가서 권투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그자라고 상상하며 사정없이 들이쳤다. “이 죽일 놈의 새끼야! 벼락 맞아 뒈져라! 뒈져!”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이 차 헐떡거릴 때까지 그자를 저주하며 샌드백을 들이쳤다. “에이즈에 걸려 죽어라! 염병하다 죽어라! 급살맞아 죽어라! 차에 치어 죽어라!” 별의별 욕설을 다 퍼부으며 샌드백을 들이쳤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긴다.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다. 내 첫사랑을 빼앗아간 그자! 내 인생에 볕을 볼 날이 없게 한 그자가 죽었으니 어찌 흥분되지 않을수 있으랴! 나는 다시 살며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으로 흘러드는 달빛이 여전히 밝다. 그자는 이제 저 밝은 달을 볼수 없게 되였구나. 천하에 제밖에 없는듯이 언제나 뭇사람들 앞에서 빛을 발하며 그렇게 우쭐거리더니 이젠 캄캄한 저승귀신이 되였구나. 나는 담배불을 붙여 물었다. 언제나 내 앞에서 승리자의 자태로 우쭐거리던 그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자는 제갈량이 주유에게 세번이나 화를 돋궈주듯 그렇게 내게 세번이나 화를 돋궈주고 승리감에 취하여 꼭꼭 축하파티를 열었다. 내 첫사랑인 월녀를 빼앗아갈 때도 축하파티를 열었고 또 두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줄 때도 축하파티를 열었다. 그자가 두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준것은 정말로 뜻밖에 일이였다. 나는 월녀를 그자에게 빼앗긴후 실련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장래에 그자보다 더 큰 사람이 되리라 맹세하고 졸업후 정부관원으로 되는 길을 택했다. 처음엔 시장비서로 몇년간 있다가 기층의 당위서기로 있으면서 기초를 닦은후 다시 중요부문으로 올라가 부처장이 되였다. 나를 등용한 상급은 로처장이 명년에 퇴직하게 되면 그 자리는 내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시간은 빨리도 지나 로처장이 퇴직하게 되였다. 이제 곧 처장으로 승급하게 될것이라고 여긴 나는 기쁨과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상급에서 처장을 따로 임명해 내려보낼줄을. 그보다 더 놀라운것은 그자가 바로 내 앞에 처장이 되여 나타났던것이다. 그자가 내 상급이 되다니?! 그자가 내 벼슬길을 가로막다니? 아아, 이 얼마나 분통터지는 일인가! 그자는 내 앞에 승리자의 자태로 나타나 승리감에 웃으며 그날밤에 축하파티를 열었다. 나는 분통을 참으며 그자에게 축하의 술을 부어주지 않을수 없었다. 내게 아부하던 부하들이 모두 그자에게 붙어 아부하는 꼬락서니를 보노라니 그 자리에 더 앉아있을수 없어 핑계를 대고 나온 나는 친구가 꾸린 혈스장으로 달려갔다. 분통이 터진다. 아아, 그자를 죽이고싶다! 내 처장자리를 빼앗아간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싶다! 나는 권투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그자라고 상상하며 사정없이 들이쳤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내 첫사랑을 빼앗아간 놈! 내 처장자리를 빼앗아간 놈! 아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런데 지금 그자가 죽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들어가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인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 출근을 서둘렀다. 사무청사에 도착하니 모두들 그자의 죽음에 대해 의논하고있었다. “국장님은 다재다능한 분이였는데 후-“ “한창 해먹을 나이에 아깝게도…쯧쯧…” 비감한 표정을 짓고있는 부하들의 얼굴을 보니 그자의 죽음이 실감났다. 그자가 정말 죽었구나! 상급에서도 화환을 보내왔고 부시장이 친히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엔 국의 전체직원이 참석했을 뿐만아니라 형제단위와 국산하 하급단위의 대표들도 참석했다. 그외에 친척친우들까지 합쳐 그자의 장례식은 북적북적했다. 장의행렬만 보아도 그자가 살았을 때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였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그자는 지금 시체가 되여 누워있었다. 그자가 죽었다! 그자가 죽었다! 나는 그자의 주검을 쏘아보았다. 언제나 내 앞에서 승리자의 자태로 우쭐거리던 그자, 내 화를 세번이나 돋구어주던 그자가 지금은 시체가 되여 누워있는것이다. 그자가 세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준것은 얼마전의 일이였다. 그자가 처장이 되자 나는 그자의 그늘에 가리워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 실무능력이 그자보다 더 우수하다고 믿고있었다. 아무튼 고집스러운데가 많았던 나는 어느 땐가는 꼭 그자를 이기겠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사업에 열성을 퍼부었다. 내 잠재한 재능을 한껏 발휘하며 하급에게 내 지도능력을 과시했고 상급에게 내 재능을 보여줬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했던가. 과연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아 어느날 상급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칭찬했다. “잘해보게. 우에선 이미 자네를 승급시키기로 결정했네!” 그 말을 들은 나는 대번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아, 나는 마침내 그자의 우에 올라앉게 됐구나. 장장 30년을 그자의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이제야 그자를 누르며 살게 됐구나. 그날밤에 나는 기쁨과 흥분으로 하여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꿈에 그자를 보았다. 항상 내 앞에서 배를 쑥 내밀고 득의양양해하던 그자가 나를 보자 “국장님”하고 허리를 굽실거린다. 나는 천정을 쳐다보다가 그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잘해보게”했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는데 그자가 어느새 라이터로 불을 붙여준다. 그러면서 그자는 “국장님, 오늘 저녁에 국장님을 우리 집으로 좀 모셨으면 하는데요. 변변한건 없지만 국장님을 모시고 술이나 한잔…”하고 황송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런 그자를 바라보며 “음, 저녁에 시간이 있겠는지 모르겠네”하고는 비서를 보고 물었다.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됐나?” “저녁엔 아직 다른 안배가 없습니다. 국장님.” “그럼 가는것으로 하지.” 그러자 그자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연신 허리를 굽실거린다. 저녁이 되여 그자의 집에 가자 푸짐하게 차린 술상에서 그자의 안해인 나의 첫사랑 월녀가 술을 부어준다. 그자가 화장실로 간 사이에 월녀는 내곁에 바싹 붙어앉으며 “제가 대학교땐 눈이 있어도 망울이 없어 국장님을 배반했는데 정말 미안해요. 이제라도 국장님께서 절 나무라지 않으신다면 제가 리혼하고 국장님의 품에 안기겠어요”하고 애교를 부린다. 그러나 나는 월녀의 궁둥이를 툭 차버린다. “난 리혼 못해. 내 안해는 현숙한 녀자야.” “그럼 제가 국장님의 정부로 되지요.” 월녀가 다시 내 품에 안겨들며 아양을 떤다. 그제야 나는 그녀를 슬쩍 껴안고 대학시절에 만지던 그녀의 가슴을 슬슬 만져댄다. 화장실에 갔다 돌아온 그자는 내가 자기의 안해를 애무하는것을 보더니 “국장님, 미안합니다”하며 제꺽 자리를 피해준다. 나는 그자와 나를 배반하고 간 그녀에게 복수하듯 내 첫사랑을 발가벗겨 놓고 그녀의 하얀 몸뚱이를 마음껏 롱락한다. “국장님-어서 일어나 아침 드세요.” 안해가 달콤한 내 꿈을 깨운다. 안해도 내가 국장으로 승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나는 아침을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아서 출근했다. 기분 좋은 날은 정말로 기분 좋은 날인가 보다. 그날로 나는 부국장으로 임명되였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속에서 나는 멸시의 눈길로 그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배를 쑥 내밀고 어깨를 으쓱하는데…원국장이 전근하고 그자를 새국장으로 임명한다고 선포하는게 아니겠는가! 아아,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자가 또 내 상급이 되다니?! 나는 또 그자의 밑에서 2등인생을 살아야 하다니! 나는 또 옥상에 설치한 샌드백을 사정없이 들이치며 “급살맞아 죽어라! 차에 치어 죽어라!”하고 별의별 욕설을 다 퍼부었다… 내 저주때문에 그자가 죽은것인가? 그자는 지금 내 앞에 시체로 되여 누워있다. 그자가 죽었다! 그자가 죽었다! 나는 그자의 주검을 쏘아보았다. (이젠 네가 내 우에 올라앉아 우쭐거리지 못하겠지? 하하하!) 이렇게 기뻐해야 했지만 정작 그자의 시체를 마주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고 대신 눈물이 나왔다. 화장터는 울음바다였다. 미망인인 내 첫사랑 월녀도 울고 그자의 아들도 울고 그자의 친척도 울고 그자의 부하들도 울었다. 그자의 시신을 태운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갔다. 그자는 한줌의 재로 되여 나왔다. 제갈량은 세번이나 주유의 화를 돋궈주었고 그자도 세번이나 내 화를 돋궈주었다. 주유는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이미 주유를 내시고 어찌 또 제갈량을 내셨습니까!”하고 부르짖고는 곧 숨졌다. 제갈량은 주유를 세번만에 화를 돋궈 죽게 했지만 그자는 세번만에 내 화를 돋궈주고도 도리여 제 자신이 죽고말았다. 그자는 확실히 제갈량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주유가 아니였다. 그자가 내 화를 돋궈주면 나는 샌드백을 치는것으로 화를 풀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는 참을 인자가 있었다. 참자. 참는게 어른이고 참는게 승자다. 참고 살자. 참고 참고 또 참노라면 그 어느 땐가는 꼭 “쨍” 하고 해뜰 날이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노기를 누르고 치욕을 참고 살았다. 참았기에 오늘 그자를 이긴것이다. 추도사는 내가 읽었다. 그자의 업적을 하나하나 라렬하면서 나는 저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추도사를 읽기를 마치고 나는 손으로 낯을 가리며 목놓아 울었다. 그것은 그자를 잃은 슬픔의 눈물만이 아니였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그자의 그늘에 가리워 2등 인생을 살아왔다. 장장 30년을 그자에게 눌리여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니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제갈량은 세번이나 주유를 격노시켜 죽이고도 주유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하지만 그때의 제갈량의 심정하고 지금의 내 심정은 완전히 다르다. 제갈량이 먼저 죽고 주유가 그 장례식에 참석하는 정경을 상상해 보라. 그럼 지금의 내 심정을 짐작할수 있으리라. 제갈량은 주유의 령전에서 제문을 읽고나서 일부러 슬픈듯이 땅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 그가 눈물을 샘솟듯 흘리며 애통해하기를 마지 않는것을 보고 주유의 밑에 있던 동오의 장수들이 “사람들이 모두 주유와 제갈량은 사이가 나쁘다더니 이제 제갈공명이 슬퍼하는걸 보니 그게 다 공연한 소리로군”하고 절로 감동되여 서로 수군거렸다. 지금 내가 통곡하는것을 보고 나의 부하들도 이와 똑 같은 말로 서로 수군거리고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모두 부국장님과 국장님은 사이가 나쁘다더니 이제 부국장님이 슬퍼하는걸 보니 그게 다 공연한 소리로군”하고.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고 그자가 죽자 그자의 이름을 다시 외우는 사람도 점점 적어졌고 그자에게 아부하던 자들이 모두 내게 달라붙어 아부했다. 어느날, 나는 그자의 미망인이며 나의 첫사랑인 월녀를 만났다. 그녀를 보자 내 심정은 착잡했고 그녀도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눈치여서 우리는 조용한 다방에 가서 마주 앉았다. 내가 적당한 언어를 찾아 그녀에게 위안의 인사를 하려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넌 지금도 내가 널 배반했다고 원망하고있겠지?” 그녀는 학생시절처럼 “너, 나”하고 불렀다. 그것이 더 친절하게 느껴졌다. 사실 난 그녀를 원망하고있었다. 이날 이때까지. “애초에 내가 널 선택했던건 네가 제일 우수한 남자라고 믿었기때문이지. 그런데 내 앞에 너보다 더 우수한 남자가 나타났던거야.” “그자를 말하는거지? 널 내게서 빼앗아간 그자…” “그가 날 빼앗아 간게 아니라 나 스스로 그에게로 갔어. 그가 너보다 더 우수했기때문이야.” “난 그자가 나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잖아. 물론 학교 때 시험성적이 나보다 더 우수했지만. 대학시험성적도 나보다 못하고 지도자로서의 실무능력도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 그녀의 입에서 그자가 나보다 더 우수하단 말이 나오자 자존심이 몹시 상한 나는 반발심이 생겼다. “글쎄. 실력은 네가 그보다 낫다고 할수 있겠지. 그가 돌아간후 난 그의 일기책을 보고 학교때 그의 공부성적이 너보다 못했다는걸 알았어. 그는 교육국국장인 삼촌을 두고있은데다가 선생님께 늘 푸짐한 뢰물을 사갔대. 그래서 선생님은 그의 시험답안이 틀려도 시험성적을 올려줬고 때론 너의 시험성적이 너무 높아서…” “아니?! 그럼 내 시험성적을 깎았다는 말이지?”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깜짝 놀랐다. 나는 학교 때 옳게 써넣었던 답안이 틀려진걸 발견하고 선생님께 따지던 생각이 떠오르며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것봐, 그자는 그렇게 비렬한 자였어!” 나는 분노가 솟구쳤지만 그녀는 천연스럽게 말했다. “내가 이런 비밀을 말하는건 고인이 된 그를 욕보이려는게 아니야. 내막이야 어찌됐건 넌 확실히 그보다 선생님들의 호감을 사지 못했던게 아니겠어.” 그건 그랬다. 나는 공부만 공부라고 선생님들께 인사치레를 못했지만 그자는 인사성이 밝아 늘 선생님들께 호감을 샀다. 그자는 학교내에서나 거리에서나 선생님들을 만나기만 하면 죽은 할애비가 살아온듯한 반가운 웃음을 온 얼굴에 바르고 허리를 90도로 굽실거리며 인사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넌 그보다 실무능력이나 인간성이나 더 우수하다고 할수 있지. 업무실력으로 보면 네가 국장이 되고 그가 부국장이 돼야 하겠지.” 사실 난 무슨 일에서나 하급을 잘 대해주고 대중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아 대중들에게서 인간성이 좋다는 평판을 듣고있었다. “하지만 넌 1인자감이 못돼.” “?” 나는 어리둥절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왜? 하는 물음표를 던졌다. “1인자로 되자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뭔지 알아? 그게 너한텐 없지만 그에겐 있었어. 그는 보통때도 그랬지만 승급할 기회거나 관건적인 시기엔 상급을 찾아가 인사하군 했어.” “인사? 흥, 뢰물을 들고간 거겠지.” “뢰물을 들고 간게 뭐가 나빠? 넌 관청에 있으면서도 그런걸 비웃으니까 1인자가 못되는거야. 정치무대에서 그처럼 1인자가 되자면 낯가죽이 두꺼울 땐 두꺼워야 하고 속마음이 검을 땐 검어야 해. 너처럼 곧은 직자로 하지 말고 모든 일을 상급의 눈치를 보아가며 령활하게 처리해야 해.” 난 확실히 상급에 아부할 줄을 몰랐다. 반면에 그자는 처세술에 능해서 상급의 눈치를 보고 아첨할줄을 알고 일부 부하들에게 리득을 베풀줄도 알아 호평을 받고있었다. 그자는 학생시절부터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려고 기회만 있으면 갖은 애를 다 썼고 정치무대에서도 상급에 아첨하는데는 고수였다. 벼슬을 하자면 적당한 아첨은 해야 된다는걸 나는 알고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체질이 아니여서 그자와 늘 의견이 틀렸고 더 높은 상급과도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넌 종합실력이 그보다 못해. 그런데도 상급이 눈이 멀어 알아주지 못한다고 불만을 품고있으면서 그를 질투하지 않았어. 난 네가 1등인생을 살겠으면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본받으라고 충고할뿐이야.” “충고 고마워. 하지만 그자는 죽었어. 그자의 시대는 지났어. 난 그자처럼 치사하게 살지 않고 내 방식대로 1등인생을 살거야!” 그자가 죽은후 모두들 국장자리는 당연히 내게라고들 말했다. 주위에서 그랬고 상급에서도 그런 눈치였다. 나도 국장자리는 이제 떼여 논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허리를 쭉 펴고 배를 쑥 내밀었다. 그자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살기 좋으냐. 이제부터 2등인생을 결속 짓고 1등인생을 살게 됐구나. 그런데 얼마후 우에서 다른 한 자를 국장으로 임명해 내려보냈다. 듣자니 그자도 상급의 집에 뢰물을 들고 드나들었다고 한다. 나는 또 하는수 없이 그자의 밑에서 2등인생을 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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