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행하게도 슬픈 녀자로 이 세상에 태여났다. 철부지시절엔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애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면서 유쾌히 뛰놀았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슬픈 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웬일인지 남학생들은 누구나 내곁에 앉기를 꺼렸으며 나와 말을 걸기조차 싫어했다. 심지어 나를 쳐다보는것마저 겁나했다. 어쩌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면 번개같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하며 외면했다. 물론 이 모든것은 남녀유별때문이 아니였다. 남학생들은 다른 녀학생들과는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면서 잘 놀았던것이다. 특히 애금이한테는 아이스크림이랑 사탕껌이랑 바나나랑 사주면서 무척 다정하게 굴었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이성에 눈을 뜨지 못한 때여서 남학생들에게 외면당하는것은 분한대로 참고 지낼수 있었다. 하지만 녀학생들에게마저 멸시당하는건 도저히 참을수 없었다.
“에그그, 쟤두 녀자야?”
“글쎄다. 제딴엔 녀자라고 치마를 입은걸 좀봐. 히히…”
나에게 이런 모욕을 퍼붓는 애들과 머리채를 끄집어당기며 싸움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학급에서 나를 업신여기지 않고 나하고 놀아주는 애는 유독 애금이 혼자뿐이였다. 애금이는 나랑 이웃집에서 소꿉놀이를 함께 하며 자란 가장 친한 애인데 우리는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니곤 했다. 애금이는 나를 깔보는 애들이 있으면 언제나 내 역성을 들어주곤 했다.
“너희들이 사람을 그렇게 업신여기면 못써! 너희들은 뭐가 잘나서 그래?”
그러면 애들은 금시 풀이 죽어서
“어머, 애금이는 왜 저런 애랑 같이 노니?”
하고 슬금슬금 뒤걸음친다.
언제부터인가 애들속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우리반에 원숭이 한마리가 있다는것이였다. 물론 원숭이는 어떤 애의 별명임이 틀림없었다. 원숭이? 그렇게 자랑스런 칭호는 아닌데…누구의 별명일가?
처음에 나는 그것이 나에게 붙여진 별명인것을 몰랐다. 어느날 애금이랑 나란히 걸어가고있는데 멀리서 쑥덕거리던 애들이 우리 쪽을 향해 “원숭이”하고 합창하는것이였다. 이런 일은 몇번이나 있었다. 나는 뭔가 심상찮은것을 느꼈다. “원숭이”는 결코 애금의 별명이 아닐것이다. 애금이와 원숭이는 어울리는 곳이 있을수 없다. 애금이는 보는 사람마다 “와!”하고 놀라고 다음에는 “이쁘기두해라!”하는 감탄이 절로 뒤따르는 그야말로 장미꽃처럼 예쁜 아이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틀림없이 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원숭이”란 뭘 뜻하는 말일가? 내 행동이 원숭이처럼 날렵하다는 뜻은 절대 아닐거야. 나는 운동선수도 아니고 체육성적도 겨우 급제이고 나무우로 바라오를 줄도 모르니까. 그럼…내 얼굴이?!
집에 돌아오기 바쁘게 나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다. 거울속의 내 얼굴을 이윽토록 들여다보던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찌나 분하고 억울하던지…나는 내 얼굴이 못생겼다는걸 안다. 하지만 원숭이처럼 생겼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저녁에 나는 퇴근하여 돌아온 엄마를 붙잡고 울면서 행악질했다.
“엄마, 왜 날 남들처럼 곱게 낳지 못하고 이리도 못생기게 낳았나요? 네? 왜서요?!”
“얘가 오늘은 왜 이래?”
“애들이 날 원숭이처럼 생겼대요! 흑흑…원숭이란 별명을 달고 놀려준단 말이예요!”
“아니 나쁜 애들! 사람의 인격을 그렇게 모욕하는 법이 어디 있니?!”
분하여 펄쩍 뛰던 엄마도 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내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꽁꽁 닫아버렸다. 사실 이건 엄마를 나무랄수도 없는 일이였다. 엄마라고 어째서 자식을 곱게 낳고싶지 않았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이 밉게 태여나기를 바라겠는가. 자식을 낳는 일이 어디 곱게 낳고싶으면 곱게 낳고 밉게 낳고싶으면 밉게 낳고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이 밝은 세상을 보게 해준것만해도 아빠 엄마에게는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왜 나만 하필 이렇게 밉게 태여났나? 조물주도 정말 불공평하지. 애금이는 너무 이쁘게 만들어주면서도 왜 나는 너무 추하게 빚어놓았담? “녀성은 꽃이라네”하는 노래가사도 있다싶이 녀자는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왜 나만은 녀자인데 이리도 추하게 빚어놓았단말인가! 빌어먹을 조물주! 망할놈의 조물주! 나는 조물주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저주했다.
나는 내가 슬픈 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웃음을 잃었다. 그리고 학급의 모든 애들을 증오했다. 남자애든 녀자애든 잘난체하는 애들을 모두 증오했다. 나하고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애금이를 내놓고는…
애금이는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나는 그애를 따라 공부에 애썼다. 그런 덕에 나는 애금이와 같은 중점고중에 붙었고 또 같은 의과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였다. 대학에서도 애금이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여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애금이와 함께 다닐 때면 나는 늘 자비감을 느끼곤 했다. 우리가 나란히 거닐 때면 만나는 사람마다 “와, 저 녀학생이 미인인데!”하고 감탄하면서 그애한테만 관심을 돌리고 나같은건 영 무시해버린다. 그러면서도 애금이랑 붙어다니는 리유는 가련하기 짝이없는 허영심때문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우리 아버진 무슨 사장, 우리 아버진 무슨 국장”하고 아버지를 등대고 우쭐하듯이 나도 “난 애금이와 가장 친한 사이야”하는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싶었던것이다. 어디로 가나 인기가 있는 애금이, 사람마다 칭찬하는 애금이, 남자들마다 침을 흘리는 애금이…이런 애금이와 가장 친한 친구란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쟨 애금이와 가장 친한 사이래!”
“야, 부럽다! 난 애금이와 친하고싶어도 연줄이 없어서 못친하는데…”
애들이 이렇게 겉으로 드러내놓고 얘기를 아니해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부러워하는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런 허영심마저 없었다면 나는 나를 무시하는 남학생들앞에서 여태껏 버텨내지 못했을것이다. 그리고 나는 애금이와 친한덕에 많은 남학생들의 품에 안겨볼수 있었다. 고중때도 그랬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나에게 잘 보이려는 남학생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던 애들이 커피를 사준다, 저녁을 사준다, 나이트클럽에 청한다하며 나를 공주모시듯 했다.
“저…오늘 시간 있어?”
어느날에 또 한 남학생이 나한데 다가와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보리자루”란 별명을 가진 애였다. 보리자루는 인물도 잘 생기고 공부도 잘 했지만 녀학생들앞에서는 얼굴만 붉히며 두마디이상의 대화도 못하는 애였다. 그래서 어느 계집애가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란 말을 간략해서 “보리자루”란 별명을 달아주었던것이다. 나는 이 보리자루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척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글쎄. 시간이야 짜내면 있을수도 있지만…왜? 나랑 데이트하자구?”
“그…그래. 가자, 내 저녁 사줄게.”
나는 못이기는체하며 보리자루를 따라갔다. 그날 저녁에 잘 먹고 잘 마시고나서 3차로 노래방까지 가서 잘 놀아댔다. 나는 보리자루와 함께 사랑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보리자루의 품에 폭 파묻혀서 춤을 추기도 했다. 보리자루는 싫으면서도 마지못해 나를 안고 춤을 추는 눈치였다. 노래방에서 나와서 조용한 곳에 이르자 보리자루는 나를 불러놓고 무슨 할말이 있는듯 머뭇거리는것이였다. 그가 한동안 머뭇거리기만 하면서 입을 열지 못하자 나는 그를 차갑게 쏘아보며 따져 물었다.
“말해봐. 오늘 저녁을 사준 의도가 뭐지? 나한테 프로포즈하려는거냐?”
“헤헤…그래. 프로포즈하려는건 옳은데…”
“어머! 난 동의다! 래일 당장 결혼등기하러 가자!”
나는 보리자루의 속셈을 빤히 알면서도 짐짓 오해한척 하며 그의 품에 뛰여들었다. 그러자 그는 황급히 나를 밀어내며 말을 더듬었다.
“저…저…그…그게 아니야!”
“그럼 뭐냐?”
“저…저…이걸…”
그는 호주머니에서 편지 한통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내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이걸 애금이한테 전해줘!”
“애금에게 줄게면 네가 직접 줄게지 왜 내손을 걸치는거냐?”
“그애를 만나면 떨려서…”
그래. 떨리기도 하겠다. 구변이 뛰여난 애들도 애금의 앞에서는 자신이 없다면서 내 손을 빌리는 판인데 하물며 제 앞의 말도 변변히 못하는 보리자루임에랴.
“이건 내가 밤잠도 못자면서 쓴거야. 569일동안 짝사랑을 하면서…꼭 애금이한테 전해줘. 부탁한다.”
나는 보리자루의 진정에 감동되여 기숙사에 돌아가자마자 그 련애편지를 애금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뭐냐?”
“한 남학생의 마음이 담긴 꽃편지…”
“아니, 너 또 쓸데없이…”
애금이는 그 편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땅바닥에 내던지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왜 이따위 심부름만 하는거야? 다신 남자애들 손에서 이따위걸 받아들고 오지마!”
“성내지 말고 읽어봐. 이건 널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미남자가 569일동안 짝사랑을 하면서 쓴 마음속 고백이란다.”
“시끄러워! 애송이 동창생들은 내 눈에 들지 않으니 다시는 그애들의 심부름을 하지마. 기어코 하겠으면 너나 그애들과 련애해라.”
“이 가시나야, 사람을 놀리지 마. 그애들이 나같은걸 눈에 들어할리 있니? 너무 재지 말고 남이 정성껏 쓴 편진데 읽어보기나 해. 그런 다음에 싫으면 싫다고 한마디라도 적어줘. 적선하는 셈치고. 그래야 나도 할말이 있지.”
“시끄럽다는데 왜 자꾸 그래?”
애금이는 버럭 화를 내며 돌아섰다. 상놈의 계집애, 잘 났다고 우쭐대긴! 나한테 프러포즈하는 남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난 너무도 행복하여 막 울어버렸을거야.
이튿날에 나는 보리자루를 만나 편지를 도로 돌려주었다. 개봉도 하지 않은 편지봉투를 본 보리자루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건…애금이한테 전해주지 못한거야?”
“전해줬어. 그런데 그앤 거들떠보지도 않고 팽개치더라.”
“보지도 않았단 말이냐?! 읽어보지도 않고…”
보리자루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새파랗게 질리는것이였다. 나는 그만 보리자루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구혼하다가 퇴짜맞은 기분이 어떤지, 거절당한 실련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하는건 당해보지 않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애금이한테 련애편지를 보냈다가 퇴박맞은 보리자루의 몰락을 보고 실련이란 두 글자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게 되였다.
그후부터 워낙 말수가 적던 보리자루는 완전히 벙어리가 되였다. 온종일 멍하니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보리자루는 얼마후 혼자서 이 거리 저 거리 쏘다니며 “읽어보지도 않고…읽어보지도 않고…”하고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그는 결국 미쳐버렸던것이다.
보리자루가 미쳐버린후 나는 더는 남학생들의 련애편지심부름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에게 잘 보이려고 커피도 사고 춤도 청하던 남학생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가더니 마침내 한놈도 얼씬하지 않았다. 제기랄, 얼굴이 반반한 녀자애들궁둥이만 쫓아다니는 수컷들!
그런데 남학생들이 떨어져나가자 이번엔 녀학생들이 나하고 바짝 친하려고 달라붙는게 이상했다. 그무렵에 녀자애들은 누구나 나하고 단둘이 다니기를 좋아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나하고 애금이가 나란히 붙어다니는것을 보고 부러워 그러는것인줄로 알았다. 그래서 멋도 모르고 좋아서 그 애들에게 끌려 도서관으로 가도 함께 가고 쇼핑하러 가도 함께 갔다. 어제는 달숙이가 잡아끌었고 오늘은 해란이가 끌어당기고해서 나는 끊임없이 그애들의 짝이 되여줘야 했다. 그 애들은 특히 나를 데리고 자기의 남자친구의 앞에 나타나기를 특별히 좋아했다. 나는 그것이 그 애들이 내 앞에서 자기의 남자친구를 자랑하기 위한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자존심이 상하는대로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그냥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나는 뭔가 이상한것을 발견했다. 나하고 함께 다니는 애들마다 다른 애들에게 똑같은 칭찬을 받는게 아닌가.
“어머나, 저 애가 이전보다 예뻐진걸 봐.”
그 애들의 남자친구들도 놀란 눈길로 바라보며
“와, 우리 XX씨 오늘따라 이쁜데!”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그러다가 무슨 화장품을 쓰느냐, 어느 미용원에 다니느냐고 꼬치꼬치 따져묻기도 했다.
한번은 같은 반에 다니는 김양과 함께 쇼핑하러 나갔다가 거리에서 중문학부에 다닌다는 김양의 후배고향친구를 만났다. 그 후배는 김양을 보자 “어머, 언니 예쁘게 번졌다!”하면서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김양은 오래간만이라면서 후배를 다방에 청했다. 김양과 후배가 자리에 앉을 때 나는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볼일을 마치고 나오니 김양과 후배는 내가 다가온줄도 모르고 신나서 이런 말을 주고받는것이였다.
“언닌 무슨 화장품을 쓴거야? 그리고 어느 미용원에 다닌거야? 예뻐진 비결을 좀 가르쳐 줘!”
“난 고급화장품을 쓴것도 아니고 미용원에 다닌것도 아니야.”
“그럼 비결이 뭐야?”
“비결? 호호호! 넌 나하고 함께 온 애를 봤지? 그애가 바로 고급미용사야!”
나는 그만 어정쩡하였다. 내가 고급미용사라니? 내가 언제 미용술을 배운적이 있었던가? 저 애가 불긴 부는데…난 부동의 자세로 그냥 그 애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 언닌 고급미용사랑 친한게 정말 좋겠소! 그런데 그 고급미용사에게 독특한 미용비결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비결은 무슨 비결. 그냥 그 애하고 함께 다니면 자연적으로 미용이 되는거야. 1전 한푼 쓰지 않고.”
“언니두 참, 그저 그 고급미용사와 함께 다니면 자연히 미용이 된다니? 사람 놀리는게 아니우?”
“넌 참 둔하기두! 그것도 못 알아듣겠냐? 넌 나하고 같이 온 그 애 생김새를 봤지?”
“그 고급미용사…히히, 언니 솔직히 말해서 난 그렇게 못생긴 녀자를 난생 처음 봤소! 아하, 그러니까…언니 알았소!”
김양의 후배가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듯 무릎을 탁 쳤다.
“그러니까 그렇게 추하게 생긴 녀자랑 함께 다니니 두 사람이 선명하게 대비가 되면서 언니가 더욱 돋보이고 예뻐 보인거였군요!”
거기까지 들은 나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분하여 부들부들 온몸을 떨다가 나는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내가 저도 모르게 그 애들의 “고급미용사”노릇을 해주었다니! 아아, 이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할가!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애금이가 나하고 함께 다니길 좋아한것도 이 때문이 아니였을가? 괘씸한 가시내! 오라질 가시내!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네가 어찌 나한테 그럴수 있니?
그후부터 나는 누구와도 단짝이 되여 다니지 않았다. 혼자서 묵묵히 걸어다니고 혼자서 묵묵히 생각하고 혼자서 묵묵히 공부에만 열중했다.
그럭저럭 슬픈 녀자의 대학생활은 끝나고 애금이와 나는 졸업후 또 운명처럼 같은 병원에 취직하게 되였다.
병원에서도 애금이와 나는 같은 의사였지만 판이한 대우를 받았다. 애금이는 선배의사나 간호사, 환자들에게 귀염받고 칭찬받는 대상이였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신세였다. 게다가 애금이는 다음 원장후보로 물망에 오르고있는 젊은 미남닥터와 약혼까지 한 사이여서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는 또 한번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녀는 잘난 인물덕에 시대의 총아로 가는곳마다 떠받들리는데 나는 왜 시대의 불행아로 태여나 어디가나 무시당해야만 하는가! 아아, 비참한 내 인생, 불쌍한 내 신세여!
이때로부터 나는 애금이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마음속깊이 줄곧 그녀를 질투해왔는지 모른다. 나는 애금의 미모를 볼때마다 “주여, 저애의 얼굴이 주근깨투성이로 되게 하여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기도 했고 “저애의 얼굴이 저애한테서 실련당한 남자들의 칼에 긁히여 바둑판이 되거나 류산벼락을 맞고 험상궂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하고 마음속으로 빌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기도하면 할수록 그녀의 얼굴이 도리여 더 예뻐지는게 아닌가! 그녀가 잘못되기를 저주하면 할수록 더 잘되는게 배아파 못견딜 지경이였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마침내 불행이 닥쳐왔다. 그해 3.8절에 병원에서 회식을 조직하여 우리는 “먹자술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배터지게 먹은 다음 과별로 따로 “놀자노래방”에 가서 불러라 추어라 하며 싫컷 놀았다. 거기서도 나는 무시당하는 꼴이여서 춤짝이 없었지만 내 멋에 논다고 마이크를 잡고 목청을 뽑아댔다.
노래방에서 헤여질 때 같은 기숙사에 든 애금이와 나는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평소엔 원장후보가 늘 애금이를 기숙사까지 바래다주었는데 이날은 원장후보가 출장중이여서 그녀와 나는 오래간만에 길동무가 되였다. 노래방에서 기숙사까지 거리가 멀지 않은데다가 차안이 답답하다고 하며 애금이는 걸어가자고 했다. 때는 새벽 2시, 거리엔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외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우리가 작은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승용차 한대가 우리 옆에 와서 멎더니 별안간 세 괴한이 뛰쳐나와 우리의 손목을 꽉 잡는것이였다. 나는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애금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걸했다.
“이…있는 돈을 다 드릴테니 제…제발 목숨만은 사…살려주세요!”
“우린 돈도 싫고 목숨도 싫어!”
“그…그럼 원하는게 뭐죠?”
“원하는게 뭔가구? 으하하!”
사내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가씨, 시치미를 떼고있군. 그래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게 뭔지 모른단 말이요? 우린 마흔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간 불우총각이란 말이요!”
“헤헤, 그렇소. 아가씨들, 오늘 선심 좀 베풀어 우리 불우총각 장가 좀 들게 해줘요!”
알고보니 이 놈들은 돈이나 재물을 빼앗고 살인하는 강도가 아니라 녀자몸을 탐내는 색마였구나. 놈들의 정체를 알게되자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애금이는 제발 놓아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난 날 잡아가시오 하고 얌전하게 가만히 있었다. 이거 공연히 놀랐잖아. 목숨을 빼앗는 강도라면 두렵지만 몸을 빼앗는 호색한이야 두려울것도 없지. 달라면 주면 되니까. 주고싶어도 줄 남자가 없어 고민이였는데 차라리 잘됐잖아. 밤에 잠자리에 누워 괴한에게 강간당하는 상상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어떤 날 밤에는 거리에 막 달려나가 아무 남자나 붙잡고 몸을 맡기고싶어 발광하기도 했지. 그런데 오늘 드디여 그 소원을 이루게 되는구나. 나는 눈을 꼭 감고 그 시각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를 붙잡고있던 녀석이 갑자기 내 손을 홱 뿌리치며 덴겁한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에씨, 재수없어! 이 계집은 원숭이처럼 생겼잖아.”
“뭐가 원숭이야?”
다른 녀석이 와서 나를 눈여겨보더니 구토라도 할듯 왝왝 구역질을 해대며 뇌까렸다.
“퉤! 퉤! 메스꺼워! 박색이라도 이런 박색은 처음이야! 30년전에 먹었던 오그랑죽이 다 올라오겠어!”
“히야, 내껀 절색이야!”
그때 애금이를 붙잡고있던 녀석이 환성을 질렀다. 그러자 내 쪽에 있던 두 녀석이 애금이한테로 다가가 보더니 감탄하는것이였다.
“야아, 천하일색이군! 우리 함께 나눠먹자!”
“왔다다! 오늘은 내 먼저다!”
세 호색한은 저항하는 애금이를 강제로 차안에 밀어놓았다. 나는 나절로라도 따라간다는듯 차곁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때 세 녀석이 나를 무섭게 쏘아보더니 그중 한 녀석이 발길로 내 궁둥이를 차면서 꽥 소리질렀다.
“야야, 이 원숭이야, 넌 저리 썩 물러가라!”
애금이만 달랑 싣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승용차의 뒤모습을 쏘아보던 나는 너무도 분하고 억울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원통하구나! 녀자로 태여나서 강간조차 거절당하다니! 강간당할 자격마저 없다니! 비참한 내 인생이여!
남들은 강간당한것이 분하여 운다지만 나는 강간당하고싶어도 강간당할 자격마저 없는것이 분하여 울었다. 나는 제 설음에 겨워 애금이가 당한 봉변도 잊고 혼자서 훌쩍훌쩍 울다가 기숙사로 돌아왔다. 량심적으로 말해서 나는 공안국에 사건을 제보하고 애금의 집에 알리면서 애금이를 구출하기 위해 힘써야 했다. 하지만 그놈의 쓰잘데없는 질투때문에 나는 그녀의 불행을 기뻐했다. 잘코사니! 잘났다고 으스댈적에 알아봤지.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인물로 흥한 넌 인물로 망한게지. 흐흐, 이제 소문나면 넌 그 원장후보닥터에게 시집가긴 다 글렀어!
이튿날에 출근한 난 애금이가 지난밤에 세 색마에게 륜간당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워낙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지는 법이라 얼마 안되여 병원안팎에 애금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출장갔던 원장후보도 돌아왔으니 그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이제 나에겐 애금이가 머리도 못들고 다니다가 원장후보에게 채이는것을 통쾌한 기분으로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일은 뜻밖에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번져갔다. 사람들은 애금의 불행을 동정하면서 강간범만 욕해댔다.
“짐승보다 못한 새끼들, 우리 병원의 꽃을 짓밟아놓다니?! 그놈의 물건을 썩둑 잘라서 씨를 말려야 해!”
그리고 나중에는 애금이가 당하는것을 보고도 제보하지 않은 나를 타매하면서 “생긴게 못났더니 하는 짓마저 얄밉다”고 질책하는가 하면 “차라리 못생긴 제가 당하고 애금이를 구했더라면 마음씨 곱다는 말이나 듣지”하고 나무람하기도 했다. 원장후보는 또 애금이를 전보다 더 끔찍하게 사랑해주면서 다음달로 결혼날자까지 잡았던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비참해진건 나밖에 없었다. 하느님도 무정하지. 왜 이 몸을 추하게 만들어놓고 이다지도 고달프게 한단말인가. 그래 내가 추하게 태여난게 죄였단말인가!
애금이가 결혼하는 날에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덧 마흔살이란 나이를 먹었다. 마흔살이 되는 그해 가을에 나는 정말로 절망에 빠져 개코같은 내 인생을 종말 지으려고 마음먹었다. 이제 더 살아보았자 그저 그렇고 그런 내 인생에 쨍 하고 해뜰 희망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마흔살 로처녀가 되여 남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가련한 이 몸을 저 부르하통하에 던져 물고기들에게 은혜나 베풀자.
비장한 결의를 다진 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강가로 나갔다. 그런데 배놀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투신자살하는데 방해가 되였다. 자살하기 적당한 곳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하남다리에 올라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것만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눈을 꼭 감고 “아빠, 엄마, 절 낳아주신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불효녀는 갑니다”하고 마음속으로 외운후 다리아래로 뛰여들었다…
이렇게 나는 죽었다. 죽어서 나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 그런데 그 세상 사람들도 나를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는 내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그러는것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통곡했다. 죽으면 이런 고통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저승에서도 이런 고통이 따를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니, 녀사님은 왜서 그렇게 예쁜 얼굴을 가리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한번만 더 보여주십시오!”
내가 두손을 내리우고 보니 숱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와, 절세미인이구나!”하면서 감탄하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들이 나를 놀려주는것이라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들은 불쌍한 녀자를 놀리는것이 그렇게도 기분이 좋습니까? 이승에서도 이런 수모를 견디지 못해 저승으로 왔는데 여기서도 이러면 난 어떻게 살라고 그럽니까? 아니, 이승에서는 그래도 내가 못생겨도 원숭이처럼 못생겼다고 사실대로 말해주면서 놀려주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나를 원숭이구경하듯이 바라보면서도 잘생겼다고 비꼬아대니 아아, 지옥이라고 이런 지옥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슬픈 녀자로 태여나 죽어서도 슬픈 녀자로 된 내 운명이 너무 슬퍼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보고 화를 내는것이였다.
“아니, 이 녀자봐라! 그렇게 예쁜 얼굴을 가지고도 못생겼다고 울기까지 하니 그래 우리를 못생겼다고 놀리는게 아닌감?”
나는 정말로 어리둥절해졌다. 저승에서는 미적표준이 달라진걸가? 나처럼 못생긴 사람이 미인인걸가?
“선녀처럼 예쁜 녀사님, 어디 한번 비춰보세요!”
그때 누군가 나한테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급히 거울을 들고 보았다. 거울속의 내 얼굴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어쩌면 내 얼굴이 애금의 얼굴로 변할수 있다 말인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애금의 얼굴…그러니깐 이승에서 못생긴 얼굴로 살아온 한을 저승에서 풀라고 이렇게 얼굴을 바꿔준걸가? 나는 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저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있었다. 나도 호기심이 들어 뒤따갔다. 사람들은 방금 이승에서 죽어서 여기로 온 녀자를 둘러싸고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녀자를 보고 “어머, 세상에! 저렇게 못생긴 녀자도 있네! 원숭이처럼 생겼잖아?”하고 놀려주는것이였다. 사람들속을 비집고 들어가 그 녀자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녀자는 바로 내였다. 아니, 나의 얼굴을 가지고있었다. 나를 본 그 녀자도 놀란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앗, 당신이 어떻게 내 얼굴을 가지고있어?!”
알고보니 그 녀자는 애금이였다. 살아서 미인이였던 애금이는 죽어서 못생긴 내 얼굴을 가지게 된것이다. 잘코사니! 애금이한테 다가간 나는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승에서는 잘 났다고 우쭐대도 여기서는 이승에서의 나처럼 맨날 눈물코물 쥐여짜며 수모를 당해야 해. 이 원숭이처럼 못생긴 간나새끼야!”
그런데 애금이가 갑자기 “내 얼굴을 내놔! 내 얼굴을 내놔!”하며 나한테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발로 내 어깨를 깨물었다.
“앗!”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 깨여났군요!”
웬 녀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예쁜 간호사가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나는 병원의 침대에 누워있었던것이다.
“내가 어떻게 되여…”
“왜서 그런 나쁜 마음을 먹었어요? 저의 남자친구가 물에 뛰여든…”
간호사는 나를 뭐라고 부를지 생각하는것 같더니 잠시후 말을 이었다.
“저의 남자친구가 언니를 구했어요. 이렇게 살아났으니 정말 다행이예요.”
“거…거울 좀…”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간호사는 어리둥절해다가 한참후에야 깨달은듯 손거울을 찾아가지고 왔다. 나는 빼앗다싶이 거울을 나꿔챘다. 그리고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거울을 든 손이 바르르 떨렸다.
“저…언니, 아마도 얼굴때문에 고민하는것 같은데 사실 저도 이전엔 영 못생겼어요. 그런데 3년전에 성형수술을 받고 지금처럼 예쁜 얼굴로 변하고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였어요. 그러니 언니도 희망을 가지세요. 제가 절 수술해주었던 성형외과의사를 소개해줄가요?”
“필요없어요.”
나는 간호사의 호의를 거절했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홀로 강뚝을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온것도 내 운명일것이다. 아직은 죽지 않을 운명이라면 다시는 죽음을 택하지 않을것이다. 그럼 계속 슬픈 녀자로 살아갈것인가? 성형수술을 받고 애금이처럼 아름다운 얼굴로 살아갈가?
아니, 나는 내가 생긴대로 살아가련다. 슬픈 녀자가 이닌 못생겨도 제 잘난 멋에 웃으며 멋있게 사는 녀자로…아마도 이것이 나를 죽지 못하게 한 주의 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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