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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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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충동
2013년 12월 14일 15시 32분  조회:3822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단편소설


청춘의 충동


김희수


박창범선생은 그저께 4차까지 마신 술로 해서 아직도 배가 따끔따끔 아파나고 맑은 정신이 나지 않았다. 멍하기만 한 머리로 어떻게 수업강의를 마쳤는지 모른다. 그는 한손으로 통증이 심한 배의 왼쪽부위를 지긋이 누르고 다른 한손으로 정신이 나지 않은 머리를 탁탁 치면서 오늘부터 술을 끊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그렇게 맹세한지 한시간도 못되여 창범선생은 장사장의 손에 끌려서 안국장이랑 함께 동방불고기성에 앉아있게 되였다.
참, 일은 공교로웠다. 만약 장사장에게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던 그녀와 그렇게 관계가 얼기설기 뒤섞어지는 않았을것이다. 낮에 서시장거리에서 우연히 세번 부딪혔는데 그렇게 인상이 깊었던것은 그녀가 너무 예쁘게 생겼기 때문일것이다. 하필이면 그 좁은 길에 차가 들어섰고 그 차를 피한다는것이 그만 마주오던 그녀와 어깨를 부딪혔던것이다.
《아, 미안…》
창범선생이 미안함을 표시하자 그녀도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나갔다. 그뿐이라면 그녀에 대한 인상도 곧 지워졌을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날 상가를 돌다가 또 한번 그녀와 마주쳤고 거리에 나와 택시를 잡다가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를 보고 생긋 웃었다.
창범선생이 그녀를 생각하며 퇴근하는데 장사장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창범선생은 장사장과 함께 술마시러 가기가 제일 싫었다. 장사장은 한번 간다하면 적어도 3차로 노래방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애주가였다. 그 다음은 주머니사정이야 어떠하던지 상관없이 안마방을 찾는다. 장사장은 가는 곳마다 노래방이나 안마방의 보스들을 잘 알아서 외상놀이도 곧잘 한다.
《자, 박선생, 안국장, 군침이 슬슬 도는 불고기에 한잔 들어보세.》
장사장은 술잔이야 얼마나 크던지 상관없이 첫잔부터 마지막잔까지 단숨에 건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술장사였다. 장사장과 안국장이 건배할 때 창범이는 생수를 부은 잔을 들이켰다.
《아니, 박선생은 왜 첫잔부터 재미없이 이래?》
《나 오늘부터 술을 끊었어요.》
《아하, 박선생은 왜 아까부터 박선생답지 않게 술을 끊었다고 그래?》
술을 끊기로 맹세한 창범이는 오늘은 누가 끌던지 모두 거절하고 곧바로 하숙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방금 교문을 나서자 장사장이 지키고있은듯 그의 손을 잡아끌었었다.
《박선생, 박선생이 우리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느라 수고많았는데 오늘 내 그 〈원쑤〉를 갚아야 하겠소.》
《아니, 전에도 많이 대접받았는데 뭘 또…》
《사양하지 말게. 오늘은 내 박선생을 〈체포〉해 가야겠소.》
《싫어요. 난 술을 끊었어요.》
《뭐? 박선생이 술을 끊었다구? 이거 해가 서산에 뜨겠소. 하하하! 저기 안국장도 기다린다구. 어서 가세.》
장사장은 곧이듣지 않고 그냥 손을 잡아끈다. 장사장과 안국장은 모두 창범이가 가르치는 학급의 학부모였다. 장사장은 그 무슨 회사의 사장도 아니고 떠돌이장사군이였다. 안국장도 예전엔 모모국의 국장이였지만 지금은 개체장사군으로 탈바꿈해있었다.
《정말입니다. 난 정말 술을 끊었으니 안국장과 두분이 가세요.》
창범이가 막 뿌리치며 가려는것을 장사장이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장사장은 죄수를 압송해가듯 창범이를 억지로 택시에 밀어넣고 동방불고기성으로 왔던것이다.
《그저께 마신 술이 아직도…못견디게 배가 아픕니다. 난 이제부터 술을 끊었으니 누구도 나한테 술을 권하지 마십시오.》
《술을 끊었다구? 예로부터 술과 담배 그리고 도박과 오입은 못끊는다고 했어. 자, 첫잔만 들라구.》
《도박과 오입을 못끊는다고 했지요. 술과 담배는 끊을수 있어요.》
《하, 끊자고 마음만 먹으면 도박과 오입도 끊을수야 있지. 하지만 남자가 술마저 끊으면 무슨 멋에 살겠어. 자, 들어보세.》
《그저께 마신 술이…》
《누군 그저께 안 마셨어? 난 그저께 5차까지 마시고도 어제 또 3차까지 했어. 젊은 사람이 고까짓 술도 못하고 장가를 어떻게 가?》
《허허참, 술 잘 마시는것과 장가가는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박선생은 총각이니까 모르는군. 남자는 술이 강해야 장가를 가서도 마누라를 잘 다스린다구. 안 그런가. 안국장?》
장사장이 슬쩍 눈짓하자 안국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남자는 술이 강해야 밤에 하는 일도 잘할수 있지. 밤에 하는 일만 잘해주면 밥상부터 달라진다구. 마누라는 남편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차리느라고 오금에서 불이 나게 뛰여다닌다구. 어디 그뿐인가. 집안 일을 도맡아하면서도 힘든 줄을 모르고 남편의 손톱, 발톱 깎아주고 발까지 씻어준다구.》
《허허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겁니까? 내가 지금 곧 핸드폰으로 사모님께 〈사모님, 사모님은 안국장님의 발까지 씻어준다면서요? 정말 모범부인이시더군요. 나에게도 사모님처럼 미래의 모범부인이 될 색시감을 좀 소개해주세요.〉라고 여쭤볼까요?》
창범이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자 급해난 안국장이 핸드폰을 나꿔채며 술잔을 들었다.
《자, 롱담은 그만하고 술이나 들자구!》
창범이는 마지못해 한잔을 비우고나서 말했다.
《두분도 이젠 술을 좀 적당히 드십시오. 내가 건강신문에서 봤는데 술을 많이 마시면 정력이 약해진다더군요. 그리고 요즘 술과 담배로 40~50대의 분들이 성기능이 쇠퇴해져서 부인들이 욕구불만이더군요.》
그 말에 장사장과 안국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정말로 예전만 못해. 마누라곁에 가본지도 오래되지.》
《난 이젠 마누라하고는 잘 안되네. 밖에 나가 다른 녀자랑 하면 잘도 되는데 말이야.》
창범이는 두 학부모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면서 술좌석이 끝날 때까지 석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장사장이 오늘은 확실히 쏘겠다면서 2차로 버드나무다방에 들러 커피 마시고 3차로 노래방에 간다고 일어설 때 창범이는 사양하고 하숙방에 돌아가려고 했다.
《너무 늦었는데 두분만 가세요. 난…》
《박선생이 왜 이래? 누가 말리는걸 보자구그래?》
《총각선생이 뭐가 근심이야? 우리처럼 집에서 마누라랑 애새끼랑 기다리는것두 아니구.》
《난 술이 바빠서…》
《그럼 맥주 마시지 말고 목청만 뽑아보게나. 불야성노래방에 기막히게 예쁜 아가씨들이 왔다는데 한번 가보세.》
장사장과 안국장은 강제로 창범이를 택시에 밀어넣고 불야성노래방으로 달려갔다. 노래방에 들어서자 장사장을 아는 마담이 호들갑을 떨며 친히 8호방으로 안내했다. 마담은 또 얼마후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섹시한 아가씨 셋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얼굴이며 몸매가 제일 빼여난 아가씨를 장사장에게 소개했다.
《장사장님, 이 앤 시체말로 얼짱, 몸짱, 노래짱이예요. 얘, 미향아, 장사장님 잘 모셔라. 그리고 너들도 이분들 잘 모셔. 그럼 여러분, 유쾌하게 노세요.》
창범이는 미향이란 그녀한테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미향이가 바로 낮에 그한테 세번 웃음을 선물했던 그녀였던것이다. 마담이 나가고 미향이란 아가씨가 장사장의 옆에 앉으려 하자 장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사양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박선생이요. 그러니 셋짱(얼짱, 몸짱, 노래짱)아가씨는 이 박선생이랑 파트너가 되는게 좋겠소. 이 박선생은 미국류학까지 갔다온 영어선생으로서 전도가 류망이오!》
장사장은 전도가 유망하다는 말을 우습게 번지면서 미녀를 창범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창범이가 총각선생이란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자 미향이는 창범의 곁에 바싹 붙어앉으며 애교를 부렸다.
《아까 첫눈에 알아봤어요. 낮에 거리에서 세번 마주쳤던 분이죠?…선생님께서 너무 미남이기에 제가 기억하고있었죠. 제 소개부터 먼저 하죠. 전 미향이라고 불러요. 오늘밤 선생님께서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미향이는 창범에게 맥주를 부어주고 《건배》하며 잔을 마주쳤다. 잔을 비우자 또 창범의 입에 포도를 넣어주었다.
《선생님은 어떤 노래를 좋아하세요? 제가 선곡해드리죠.》
미향이와 창범이는 함께 《강촌에 살고싶네》를 불렀다.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는
꽃피고 새가 우는 논밭에 묻혀서…
미향의 목소리는 확실히 맑고 아름다웠다. 다음에 미향이는 절주 빠른 노래를 불렀다. 창범이는 노래실력은 괜찮았지만 가사를 몰라서 마이크를 놓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장사장과 안국장은 젊은이들처럼 머리를 정신없이 흔들어대며 춤을 추고있었다. 한곡이 끝나 장사장이 마이크를 잡자 미향이가 다가와 창범의 손을 잡아끌었다. 춤이 시작되자 미향이는 두팔로 창범의 목을 꼭 껴안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폭 파묻었다. 빙글빙글 돌아갈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창범의 코끝을 간질거리며 이름할수 없는 향기를 물씬 풍겼다. 창범이는 그 향긋한 향기에 머리가 아찔아찔했다. 그는 그녀에게서 좀 떨어지려고 그녀를 밀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자 그녀는 두팔에 힘을 주며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박선생님, 전 선생님이랑 그냥 이렇게 딱 붙어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손을 좀 푸오. 저 사람들이 보겠소.》
《아이, 박선생님은 정말 총각이시네. 전 이런 선생님이 더 좋아요.》
미향이는 생글생글 웃다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가 뜨면서 살짝 추파까지 보냈다. 마침 노래가 끝나서 창범이는 자리에 돌아왔다. 창범이는 미향이가 권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번에 안국장이랑 노래를 부르고 장사장이랑 춤추러 나갔다. 미향이가 손을 잡아끄는것을 창범이는 사양했다. 그러자 미향이는 창범의 무릎에 앉아 맥주를 권하며 안주를 입에 넣어주었다. 창범이는 그녀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일어서서 화장실로 나갔다. 그가 소변을 보고 나오려는데 어느새 따라 나왔는지 미향이가 다가와 귀속말로 가만히 속삭였다.
《박선생님, 오늘밤 절 아무데나 데려가 주세요. 네?》
《?…》
《박선생님 정말 멋지다! 선생님, 절 아무데나 데리고가 주실래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께요.》
미향이는 요염하게 웃으며 유혹했다. 아니, 이 녀자가 당돌하게…
《아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오.》
창범이는 미향이를 떠밀었다. 그러나 미향이는 창범이의 팔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머, 박선생님은 정말 순진한 총각인가봐. 전 이런 박선생님이 더 좋아요.》
《이걸 놓소!》
《박선생니임-》
《이걸 놓으란 말이요!》
창범이는 미향을 확 뿌리치고 장사장과 안국장한테 간다는 말도 없이 노래방에서 나왔다. 취하여 이곳이 어느 위치인지 알수 없었다. 택시를 불러 타고 《공신으로…》하고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운 일도 있는가. 어제밤 퍼마신 술에 골은 나머지 늦잠을 자고있던 창범이가 《아저씨, 일어나》하고 누군가 흔들어깨우는 바람에 눈을 뜨고보니 서너살되는 남자어린애가 그의 귀를 잡아흔들고있었고 그 옆에는 어제밤 불야성노래방에서 함께 춤을 추던 아가씨가 얌전하게 앉아있는것이 아니가! 아니, 이건…창범이는 취하여 아가씨의 집에 잘못 왔나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자신의 하숙방이 옳았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는…
《할머니께서 식사하시래요.》
그가 깨여나자 아가씨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어린애를 데리고 객실로 나갔다. 창범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세수부터 했다. 눈길이 마주쳐도 아가씨는 모르는체 했다. 주인집할머니가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인사시켰다.
《어제낮에 우리 집에 하숙을 정한 새기네. 그리고 이쪽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아직 총각이라오.》
워낙은 그랬구나. 창범이는 저런 지저분한 아가씨와 한집에서 살게된것이 불쾌했다. 비록 방은 서로 다르지만…아가씨가 례절스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전 김향옥이라고 불러요.》
향옥이라고? 어제밤 노래방에서는 미향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더니…그래, 노래방아가씨들은 모두 가명을 쓰니까 미향이란건 가명일게고…그럼 향옥이는 진짜 이름일가? 아무튼 미향이든 향옥이든 그 아가씨가 그 아가씨일텐데 사람이 어찌 이렇게 판판 다른 두개의 얼굴을 가질수가 있을가? 이 아가씨가 어제밤 노래방에서 자신의 목을 꼭 껴안고 동동 매달려 춤을 추다가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박선생님 정말 멋지다! 선생님, 절 아무데나 데리고가 주실래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께요.》하고 요염하게 웃으며 유혹해오던 그 아가씨란 말인가?! 낮에는 향옥이란 이름을 가지고 숙녀인체 하고 밤에는 미향이라는 이름으로 창녀노릇 하는 두 얼굴의 아가씨! 창범이는 경멸의 눈길로 아가씨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아가씨, 날 모르겠소?》
《모르겠는데요. 우리 언제 만난적 있나요?》
아가씨는 정말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했다. 그래, 노래방아가씨라는 정체를 숨기고싶겠지. 흥!
아가씨는 어린애를 데리고 자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리혼한 녀자인가? 저렇게 어린 자식을 데리고있으면서도 이 사내 저 사내에게 육체를 팔다니? 한심하군, 한심해! 창범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밥상에 마주 앉았다. 주인집할머니가 반찬을 데워오면서 물었다.
《박선생, 저 새기가 어떻소? 이쁘고 얌전하고…》
《할머니, 왜 저런 녀자를 받아들였습니까?》
《저런 녀자라니? 난 박선생의 색시를 만들가 하고 들였는데…》
《할머니두, 저런 녀자가 어떻게 내 배필이 될수 있습니까?》
《왜? 어린애가 달렸다구 그러오? 흐흐, 총각선생, 저 아가씬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라오.》
시집도 안간 처녀가 아이까지 있다면 미혼모인가? 아이 아빠한테 버림받고 화김에 화류계에 몸을 던진 녀자? 아니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고 이 남자 저 남자한테서 기생하며 살아가는 녀자?
《할머니, 저 아가씨가 어떤 녀자인지 알고나 그러십니까?》
창범이가 아가씨의 정체를 밝혀놓으려는데 마침 아가씨가 다가와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할머니, 이 애를 좀 봐주실래요? 어디 좀 나갔다 오자구 그래요.》
《오냐, 그래라.》
할머니가 선선히 대답하자 향옥이는 아이를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돌아서 나가는데 얼굴도 이뻤지만 잘 빠진 뒤모습이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인물이 아깝군! 미혼모라니…더구나…》
창범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할머니가 싱그레 웃으며 말했다.
《미혼모라니? 그 아가씨의 몸매와 걸음걸이를 보오. 어디 애 낳은 녀잔가?》
《몸매를 보고 어떻게 애 낳은 녀잘 가려요? 요즘 세월엔 몸매를 잘 가꿔서 처녀같은 아줌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에그, 총각선생은 어째 그리 녀자 보는 눈이 없소. 저 아가씨는 처녀요. 순수한 처녀라니깐!》
아니, 이 할머니가 벌써 로망이 들었나? 애 엄마를 처녀라고 우겨대다니?
《총각선생도 빨리 장가를 가야지 요즘 세월엔 녀자들이 금값이 돼서 저렇게 참한 처녀도 드물다오. 저 건너 집의 아줌마는 애가 달린 리혼한 녀자인데 글쎄 총각들을 셋이나 줄 세워 놓고 이마들 탁탁 튕기며 고른다오.》
창범이는 픽 웃었다. 그러다 다시 탄식했다. 그는 대학교 때 약혼녀가 외국으로 시집을 간후로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고있다가 이제 30대중반에 들어서니 마음에 드는 처녀를 찾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우선 돈냄새부터 맡는 처녀들에게 가진것이 없는 창범이는 리상적인 배우자감이 못되였다. 창범이쪽에서도 그런 처녀들은 경멸의 대상이였다.
할머니가 뭐라고 자꾸 말했지만 창범이는 더 대꾸하지 않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싫컷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누군가 귀를 잡아흔드는 바람에 눈을 뜨고보니 남자애가 《아저씨, 점심 먹어.》하며 자기를 깨우고있는것이 아닌가. 달콤한 잠을 깨운것이 괘씸했지만 어린것이 하는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욕이 나가지 않았다. 어린것을 안고 나가니 할머니와 향옥이는 밥상에 마주앉아있었다. 향옥이는 창범이를 보고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가르치고있는가, 조선족학생들이 줄어든다는데 그 학교정황은 어떤가고 자세히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 싫어 침묵을 지켰는데 할머니가 《이 총각선생은 영어를 가르친다우》하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자 향옥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반짝 빛나더니 《박선생님, 저한테 영어를 가르쳐주실래요?》하고 애걸하듯 간절한 눈길로 바라본다. 창범이는 놀랐다. 노래방아가씨가 영어를 배우겠다니? 영어를 배워서 뭘 하려고? 돈많은 외국남자를 꼬시겠다는건가?
《아이참, 보수는 후하게 드릴께요. 꼭 가르쳐주세요 네?》
창범이가 대답이 없자 향옥이는 안달아나서 바짝 달라붙었다. 흥, 돈은 얼마든지 있다 그 말이지? 사내들한테 한번 몸을 던지면 보수따윈 문제없다 그 말이지? 흥! 창범이는 코웃음을 쳤다.
《에그, 총각선생, 어서 대답하게. 이렇게 이쁜 처녀가 청드는데 어서 들어주게.》
할머니가 곁에서 보기가 민망한지 창범이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 창범이는 정말로 《그런 녀자》한테 가르쳐주기 싫었다. 그는 갑자기 묘한 핑계거리를 생각해냈다.
《난 밤에밖에 시간이 없는데…》
밤에는 이 아가씨가 노래방에 나가야 되니까 할수없이 제쪽에서 못하겠다고 그만둘것이 아닌가? 그런데 창범의 그 말이 끝나기 바쁘기 향옥이가 손벽을 치며 좋아서 퐁퐁 뛰는게 아니겠는가?
《좋아요. 저도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밖에 시간이 없는데요. 잘 됐어요. 선생님, 그럼 잘 가르쳐주세요. 부탁해요.》
아니, 이 아가씨가 낮에 출근한다니? 《직업》을 바꿨는가? 밤에만 《출근》하는 노래방아가씨를 그만두고 어느 사내가 전화로 부르면 낮에만 달려가 《일》하는 콜걸? 그나저나 이건 큰일이다. 싫은대로 이 아가씨에게 영어를 가르쳐야하다니…
그날 저녁부터 향옥이는 창범이를 《선생님》, 《선생님》하며 열심히 영어공부에 달라붙었다. 창범이는 향옥의 열정에 탄복되였다. 그녀는 시간을 어길세라 매일 저녁마다 제시간에 꼭꼭 와서 가르침을 받았을뿐만아니라 아침 짬을 타서도 모르는것을 물어가며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웠다. 《그런 녀자》가 배움에 이처럼 열성을 몰붓다니…이렇게 참한 녀자가 어떻게 되여 그런곳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을가? 창범이는 탄식했다. 아깝다, 아까워! 《그런 녀자》가 아니라면…
창범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향옥이한테 끌리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그녀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겠지만 특히 그녀의 향학열에 탄복되였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좋아졌다. 그녀의 그 깊이를 알수 없는 호수같이 그윽한 눈길이 좋았다. 그녀의 부드럽고 친절한 말씨가 좋았다. 그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있고싶었다. 그러다가도 도리머리질 했다. 내가 《그런 녀자》한테 끌리다니? 더구나 아이까지 달린…이래선 안되는데…하지만 향옥이와 마주하면 그녀가 《그런 녀자》란 생각이 말끔히 없어졌다. 《그런 녀자》면 어떤가 말이다. 그녀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한다면 역시 훌륭한 녀자가 아니겠는가.
어느날 주인집할머니가 창범이를 보고 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총각선생이 나한테 한턱을 내야겠네.》
《제가요? 무슨 턱을…》
《총각선생이 향옥처녀를 좋아하고있잖아. 이 늙은이가 그런 기회를 마련해줬는데 그래 보답이 없어서야 되겠소?》
《아…네…》
《총각이 쑥스러워하긴. 처녀도 총각을 좋아하는 눈치던데 빨리 다그치게.》
창범이는 꼭 향옥이한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날, 창범이는 교무주임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2차로 노래방까지 끌려갔다. 향옥이한테서 전화가 와서 곧 가마하고 말해놓았기에 2차는 아니 가려고 했지만 교무주임이 《노래 잘하는 창범선생이 축하노래 한곡 불러달라》고 어찌나 잡아끄는지 하는수 없이 따라 가고말았다. 또 불야성노래방이였다. 창범이가 먼저 한곡 부르고있는데 아가씨들이 뒤늦게야 들어왔다.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던 창범이는 갑자기 마이크를 쥔 손을 떨었다. 아가씨들속에 미향이, 아니 향옥이도 끼여있었던것이다. 아까는 영어공부시간이 늦었다면서 빨리 오라고 전화하던 향옥이가 여기 노래방에 나타나다니? 《본업》을 다시 시작할 작정인가? 아니면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화가 나서 여기로 온것일가? 향옥이는 손님들을 둘러보니더니 곧바로 창범이한테로 다가왔다.
《어머, 멋진 선생님이 또 오셨네.》
향옥이는 리별했던 련인을 다시 만난듯 반기면서 창범의 목을 두손으로 꼭 껴안았다. 하숙집에서는 창범이와 손이라도 부딪칠세라 조심스레 행동하던 향옥이가 노래방에서는 누가 보는 앞에서도 이처럼 대담한 행동을 한단말인가? 창범이는 몹시 불쾌하여 향옥이를 슬며시 밀치며 물었다.
《아가씬 누구요?》
《어머, 귀인은 잊음이 헤픈가봐. 먼저번에 저랑 파트너가 되여 춤도 함께 추고…그랬잖아요.》
《그랬던가? 난 기억에 없는데…》
《어머, 선생님두, 일반적으로 우린 손님들을 다 기억 못해도 손님들은 우릴 기억하는데…아마도 제가 매력이 없었던가봐요. 선생님, 전 미향이예요. 미향, 기억 안나요?》
《미향? 그래 노래방에 왔으니 이름도 미향이라 바꿔야겠지. 하하하!》
창범이는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미향이를 뿌리치고 노래방에서 나왔다. 창범이는 배반당한듯 가슴이 쓰려났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그래 《그런 녀자》를 맘속으로 사랑했었단 말인가? 바보같이 못난 자식! 창범이는 스스로 자기를 비웃었다. 더러운 년!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 구석에 가서 왝왝 토해버렸다. 그는 휴지를 꺼내 입을 닦고는 손을 들어 택시를 불렀다.
하숙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향옥이가 그를 맞아주었다.
《어머, 선생님, 인제 오셨군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요걸 딱 몰라서…》
《날 기다렸다구? 흥, 왜 노래방에서 더 놀아대지 않고 벌써 왔소?》
《노래방이라니요? 전 노래방에 간적이 없는데…》
향옥이는 아닌 밤중에 무슨 홍두깨냐는듯 의아한 눈길로 창범이를 바라본다. 창범이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무슨 녀자가 이처럼 낯가죽이 두껍담?
《그래 이름을 미향이라고 고치고 옷을 바꿔 입으면 내가 못 알아보는줄 아오? 아까는 노래방에서 나한테 매달려 갖은 아양을 다 떨더니 왜 집에 와서는 내숭을 떠는거요? 난 아가씰 경멸하오! 아가씨가 노래방아가씨라고 경멸하는것이 아니라 아가씨가 야누스처럼 두개의 얼굴을 가진 가면을 쓴 위선자이기때문이요.》
《무슨 말씀인지…혹시 선생님이 노래방에서 저랑 똑같이 생긴 미향이란 아가씰 만나셨어요?》
《아직도 시치미를 떼겠소? 미향이가 향옥이고 향옥이가 미향이지 그래 딴 사람이겠소?》
《그 미향이가 바로 향미일거예요. 저의 쌍둥이언니 향미…》
《뭐?! 쌍둥이…향옥이가 쌍둥이라구?!》
창범이는 깜짝 놀랐다. 내가 왜서 그 생각을 못했을가?
《향미언닌와 전 쌍둥이자매인데 향미언니는 불행하게도 처녀몸으로 아이까지 낳은후 타락하여 자기의 인생이 거꾸로 됐다면서 이름자를 거꾸로 고치고 유흥가를 돌아다니며 아가씨질 했어요. 아이는 저한테 맡기고…》
워낙은 그런 일이였구나. 창범이는 그만 향옥의 앞에서 면구스러워 어쩔줄 몰랐다.
《향옥이, 미안하오. 내가 영문도 모르고 마구 욕부터 했으니…》
《미안하면 저한테 영어를 더 잘 가르쳐주세요.》
향옥이가 방그레 웃었다.
《그거야 응당 그래야지…》
아, 인생은 워낙 이렇게 아름다운것이였구나! 창범이는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는것 같았다.
며칠후 하숙집에서 영어공부를 하다가 향옥이가 창범이를 보고 말했다.
《우리 나가 바람이나 쏘일까요?》
《좋아.》
창범이와 향옥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부르하통하로 나갔다. 주말이라 강변엔 낚시질을 하는 사람, 배놀이를 하는 사람, 산보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강가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나란히 걸어갔다. 창범이는 어쩐지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기회에 사랑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다가도 용기가 부족하여 입밖에 내보내지 못하고 도로 삼켜버리기를 몇번, 그러다가 크게 용기를 내여 《저…향옥이…》하는데 갑자기 향옥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여기까지 왔다구요? 저는 배놀이하는 부근에 있어요. 제가 보인다구요?》
향옥이는 핸드폰을 끄더니 뒤를 돌아다보았다. 무지개다리 쪽에서 몸집이 웅장한 사내가 계단을 밟고 내려오고있었다. 그 사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창범이네 앞까지 달려왔다. 향옥이가 그 사내를 보고 방긋이 웃더니 창범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소개하지요. 이 분이 바로 저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박선생이예요.》
창범이는 또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분은 향옥이의 오빠가 틀림없을꺼야. 향옥이가 나를 오빠한테 소개하는구나. 이러면 벌써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게 아닌가.)
그런데 다음순간 향옥이가
《그리고 이분은…저의 남자친구예요. 이제 곧 결혼하게 될…》하고 그 사내를 가리키며 창범이한테 소개하는게 아닌가?! 그 순간 창범이는 몽둥이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듯 멍해졌다. (그녀에게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걸 왜 생각 못했을까? 그런줄도 모르고 제 좋은 멋에…얼마나 바보였는가.)
창범이는 갑자기 이 세상이 어두워진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듯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듯 했다. 그는 그 사내가 《수고 많이 했습니다!》하고 손을 잡을 때 어떻게 대꾸했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내가 《저기 포장마차에 가서 한잔하며 이야기합시다.》하고 끌어서 따라 갔던것 같았고 거기서 술만 연신 들이켰던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 장사장을 만나서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가 3차만인가 4차만인가 무슨 노래방인가 간것 같았는데 그 이상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새벽에 목이 말라 깨여난 그는 깜짝 놀랐다. 자기는 낯선 침대에 누워있는데 글쎄 자기곁에 향옥이가 누워있지 않는가. 그것도 발가벗은 향옥이가…그리고 자신의 몸도 어느새 발가벗겨져 있지 않는가.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가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는데 어느새 눈을 뜬 향옥이가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깨나셨어요? 목이 마르지요? 제가 생수 떠다드리죠.》
《아니, 여기가 어디요? 내가 어떻게 여기에 누워있지?》
《어머, 선생님두, 기억 안나세요? 선생님께서 어제밤에 장사장이랑 함께 노래방에 왔는데 몹시 취하셨더군요. 저를 보더니 〈향옥이, 향옥이…〉하고 부르더니 막 토하고…그래서 제가 저의 세집에 모시고 온거죠.》
《아니, 내가…이게 무슨 실례…그럼 거기는 미향이?》
《이제야 절 알아보시는군요. 온밤 저를 향옥이라고 부르시더니…호호호…》
창범이는 너무도 창피하여 얼굴을 들수 없었다. 미향이가 속옷을 입더니 일어나 생수를 떠왔다. 창범이는 생수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랭수가 들어가자 속에서 일던 불이 꺼지며 살것 같았다. 정신이 들자 또 자신이 한 행동이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내가 지난밤 추태를 보이고 또 미향이와 발가벗고 한 이불을 덮고 잤다니…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혹시 내가 취하여 미향에게 무슨 일을 저지른건 아닐까?
《내가…혹시…미향에게 불순한 행동을 한건 아닌지…》
《어머, 자기가 한 행동도 모르세요?》
《난 정말 기억나지 않는데…》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책임을 회피하려는건 아니겠죠?》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정말 미안하오. 난…난…》
창범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자 미향이가 깔깔 웃어댔다.
《호호호. 선생님은 정말 순진하시네. 제가 책임지라는 말을 안 할테니 안심하세요. 지난밤에 제가 취한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저의 침대에 눕혔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향옥이…향옥이!〉하며 저를 막 껴안더군요. 전 피할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좋아서 옷을 벗고 선생님에게 맡겨버렸어요. 전 알아요. 선생님은 저의 쌍둥이동생 향옥이를 사랑하죠?》
《…》
《향옥인 착하고 현숙한 애지요. 제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 애는 절 위로해주었고 제가 갈팡질팡하여 아이마저 버리려고 할 때 그 애는 선뜻이 나서 제 아이를 맡아 키웠죠. 이젠 미국류학을 갔던 그 애의 미혼부가 돌아왔으니 저의 아이를 제가 찾아서 키워야 하겠어요. 엄마구실을 못한 저의 죄를 반성하고 죄없는 아이를 버린 그 빚을 갚아야하지요.》
미향이의 예쁜 눈에서 이슬이 반짝거렸다. 창범이는 그녀에게도 모성애가 있구나 하고 느끼면서 그녀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였다. 미향이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이 세상 남자들을 모두 저주하며 노래방아가씨가 되여 남자들의 팁을 꼬셔냈죠. 하지만 여태껏 어느 남자에게나 몸을 허락한 적은 없었어요. 몸만은 팔지 않았죠. 그런데 선생님만은 달랐어요. 선생님처럼 순진한 남자는 처음 봤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꼬시려했지요. 그러면서 저도 몰래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거죠. 선생님, 사랑해요!》
미향이는 방그레 웃으며 다가와 창범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창범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미향이를 밀치며 떠듬거렸다.
《미…미안하오. 난…》
《호호호. 선생님, 미안해할것 없어요. 전 알아요. 저같은 녀자가…더구나 아이까지 달린 녀자가 선생님의 배필이 안된다는것을. 전 선생님께 부담을 주지 않겠어요. 선생님, 시름놓고 가세요. 하지만 제가 수요된다면 아무때나 불러주세요.》
《미향이…》
창범이는 입을 열었으나 무슨 말을 더 할수 없었다. 그는 미향이를 사랑하고싶었으나 그런 용기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창범이는 미향이가 지어주는 아침밥을 먹고 그 길로 등교했다.
오후에 퇴근하여 하숙집에 돌아오니 향옥이가 짐을 꾸리고있었다. 미혼부가 왔으니 여기서 떠나려는게로군. 하고 생각하면서 창범이는 짐을 꾸리는것을 거들어주었다. 주인집할머니가 아쉬운듯이 말했다.
《에그, 저 새기를 박선생과 약혼시키자 했더니 임자가 있었군. 박선생, 저 새기가 래일 새집에 이사하고 다음달에 결혼잔치를 한다오.》
《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향옥이, 축하하오!》
창범이는 겉으로는 대범하게 말했으나 속은 알짝지근했다. 할머니는 향옥에게 마지막 끼니를 대접시킨다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짐을 다 꾸린 향옥이는 창범이를 보고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수고했어요.》
《아니, 수고는 뭘…》
《저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또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창범이는 같은 쌍둥이인데 왜 이렇게 다를가? 미향이도 향옥이처럼 순수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하다가 문뜩 아이가 보이지 않는것을 보고 물었다.
《아이는?》
《언니가 데려갔어요. 이제부터 자기가 키우겠대요. 이제 곧 결혼하는 저에게 더는 부담을 줄수 없다면서 데려갔어요. 사실 언니는 아주 훌륭한 녀자예요. 거기에 비하면 전 정말 나쁜 녀자예요. 언니가 타락하게 된것도 모두 저때문이죠.》
《향옥이때문이라니. 그건?》
《몇년전에 저의 남자친구가 미국류학을 떠나겠는데 자금이 모자랐어요. 그래서 친구랑 술상에서 만나서 노래방에도 몇번 함께 다니며 풋 면목을 익힌 최사장한테서 사정을 말했더니 선선히 2만원을 꿔주더군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떠난후 최사장은 저한테 와서 치근거리면서 꾼 돈을 받지 않겠으니 자기와 동침하자는것이였어요. 제가 과분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깡패를 추겨서 저의 다리를 잘라 놓게 하겠다고 위협했어요. 그자가 평소에 어중이떠중이 깡패무리와 사귀고있다는것을 알고있는 저는 무서워 벌벌 떨었어요. 저한테서 모든 사연을 들은 언니가 격분하여 나섰어요. 언니는 그날로 최사장을 만났는데 물론 최사장은 언니를 저인줄로 알고있었죠. 언니는 어느 다방에서 그자를 만나서 그 따위 위협은 안 통한다, 빚은 꼭 물겠으니 시간을 달라, 하고 말했죠. 그자는 교활하게 웃더니 어느새 언니가 마시는 커피에 몽혼약을 탔어요. 그리고 언니가 혼미해지자 택시에 싣고 가서 언니의 순결을 빼앗았어요. 그때 언니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남자친구에게마저 주지 않았던 처녀의 순결을 이렇게 빼앗겼던것이였어요. 언니는 너무도 통분하여 울었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라 이것으로 빚을 청산하자고 했지요. 하지만 그자는 한번으론 안된다면서 한달동안 동거해야 빚을 안받겠다는 조건을 내놓았어요. 언니는 이미 젖은 몸이 물에 들어가는걸 꺼리랴 하고 그자의 요구를 들어줬어요. 한달후 빚을 청산하고 그자의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이 일을 알게 된 언니의 남자친구는 언니를 더러운 년이라고 욕하면서 차버렸어요. 실련의 고통에 모대기던 언니는 자살할 마음까지 먹었어요. 언니가 유서까지 써놓은것을 본 저는 언니를 붙잡고 네가 죽으면 나도 함께 죽겠다, 우리는 같은 날에 태여난 쌍둥이니까 죽어도 같이 죽자, 하고 말하며 통곡했어요. 그러니까 언니는 유서를 찢어버렸는데 그후에도 자살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언니는 문뜩 자신이 임신한걸 발견했어요.》
워낙은 그랬구나! 창범이는 쌍둥이자매가 당한 봉변을 듣고 한숨을 내쉬였다. 향옥이가 말을 이었다.
《자신의 배속에서 작은 생명이 꿈틀거리는것을 발견한 언니는 그 생명을 살려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자신의 몸은 이미 자신의 생명 하나뿐만이 아니라는것을 발견하는 순간 언니는 자살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그 작은 생명을 사랑하게 되였어요. 결국 언니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어요. 그후 언니는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살아가려고 마음먹고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아버렸어요. 그러다가 한 남자의 출현으로 언니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였는데…》
향옥이는 말을 잠깐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언니는 아는 사람의 중매로 리혼하고 아이가 없는 남자를 만났어요. 처음에 언니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가 주동적으로 찾아와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언니를 꼬셨어요. 언니는 그 남자를 상대하기 싫어했지만 그 남자는 혼자서 달콤한 말을 늘여놓았어요. 언니는 그 남자를 랭대하면서 쫓아냈지만 그 남자는 물러가지 않고 날마다 찾아와서 끈질기게 달라붙었어요. 그 남자는 우리 먼저 결혼상대로가 아니라 우정을 주고받는 보통친구로 사귀자, 그러다가 서로 상대방을 료해한후에 다시 보자, 하면서 언니의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렸어요. 그 남자는 기회만 있으면 언니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온갖 감언리설로 언니의 마음을 녹였어요. 키 크고 준수한 용모에 청산류수같은 말솜씨를 가진 그 남자에게 언니는 차츰차츰 마음이 흔들렸어요. 언니의 마음이 움직이는것을 발견한 그 남자는 다시 언니에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언니는 이미 그 남자에게 마음이 빼앗겼음에도 나는 미혼모이니 당신과 짝이 기운다, 당신은 나보다 훌륭한 녀자를 찾아가라, 하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내 눈에 당신은 가장 훌륭한 녀자다, 나는 당신을 생명처럼 사랑하면서 당신의 아이를 내 친아들처럼 키우겠다, 하고 말하며 언니를 포옹해주려고 두 팔을 벌렸어요. 그러자 언니는 감동되여 그 남자의 품에 안겨버렸어요. 하지만 그 남자의 속셈은 그게 아니였어요. 그 남자는 언니의 미모에 반하여 언니가 미혼모라는것도 꺼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던거예요. 이렇게 그 남자에게 속아넘어간 언니는 그 남자와 동거했어요. 언니는 그 남자와 동거하면서 결혼을 재촉했지만 그 남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어요. 언니가 자꾸만 결혼등기를 하러 가자고 재촉하자 그 남자는 왜 이리 시끄럽게 놀아? 계속 이러면 너와는 끝이다! 하면서 발칵 화를 냈어요. 그 남자는 언니 모르게 다른 녀자를 사귀고있었던거예요. 그 사실이 언니한테 들통나자 그 남자는 제 쪽에서 성을 내면서 언니와 관계를 끊어버렸어요. 그 남자의 배반이 언니에게 준 타격은 너무 컸어요.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은 언니는 이때부터 모든 남자들을 저주하게 되였어요. 그리고 타락하여 노래방아가씨로 되여 남자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는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언니가 변하자 제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언니의 아이를 도맡아 키웠어요.》
향옥이는 한숨을 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언니는 타락한게 아니예요. 언니는 본바탕이 선량하고 순결하고 착한 녀자예요. 지금도 언니는 변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언니의 마음은 저보다 더 깨끗해요. 저는 겉보기엔 남들에게 좋은 녀자로 보이지만 속마음은 허위적이고 리기적이지요. 언니가 저때문에 그렇게 됐는데도 저는 남들에게 〈처녀의 몸으로 타락한 언니의 아이를 키워주는 훌륭한 녀자〉라는 이미지를 자랑하고싶었어요. 선생님, 제가 이렇게 선생님께 속마음을 다 말하는것은…》
향옥이는 기대에 찬 눈길로 창범이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주인집할머니한테서도 듣고 저도 눈치챘어요. 선생님께서 저한테 마음을 두고있다는것을요. 전 선생님을 다는 료해하고있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여태까지 관찰을 통해 선생님은 훌륭한 남자라는것을 보아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결혼할 상대가 있고…아니 제가 약혼한 몸이 아니라 해도 저같은건 선생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훌륭한 녀자가 못돼요. 선생님께서 진짜 녀자 보는 눈이 있다면 저같은 녀자보다 우리 언니 미향이를 사랑해주세요.》
향옥이의 이야기는 창범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다. 창범이는 자기가 여태껏 30여년을 살면서 이 사회에 대하여, 녀자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있었다는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어느 주말, 창범이가 하숙집에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있었다. 그때 예쁘장한 녀인이 커피를 따라 가지고 와서 창범에게 권했다.
《선생님, 좀 쉬면서 가르쳐요.》
그러자 아이가 녀인을 흘겨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엄만 나빠. 선생님한테만 커피 갖다드리고…흥! 나보다 선생님을 더 이뻐하면서…》
그러자 창범이도 미향이도 유쾌하게 웃었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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