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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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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행로
2013년 12월 21일 21시 21분  조회:3142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대중소설
 
위험한 행로
 
 
김희수

 


“너 직업이 뭐냐?”
아까 그 경찰이 또 물었다. 경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경찰은 담배연기를 확 내뿜었다.
“이름이 뭐냐?”
“지경호.”
“직업은?”
“직업은 없습니다.”
“뭐? 직업이 없다구?”
경찰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더니 빙그레 웃었다.
“너 아마추어인가 했더니 프로였구나!”
“프로라니요?”
“너 다른 직업은 없고 ‘바이’만 전문업으로 삼으니깐 프로가 아니구 뭐냐?”
“바이라니요?”
“시치미를 떼지 마! 그래 바이가 소매치기란걸 몰라? 어느때부터 바이를 했으며 이번이 몇번째야?”
경찰은 매서운 기운이 서리발치는 눈길로 경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전 그런걸 모릅니다.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임마! 바른대로 말해. 구류소맛을 보고싶냐?”
“아, 아니… 전, 전…”
경호는 겁기어린 눈길로 경찰을 쳐다보며 몸을 떨었다. 경찰은 또 한번 담배연기를 확 내뿜었다.
“바른대로 말해. 몇번째야?”
“아니,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임마, 훔치지 않은게 왜 그 돈지갑이 네 호주머니에서 나왔니? 응?”
“그건 땅딸보가…”
“그래 땅딸보가 널 붙잡았지. 계속 말해.”
“뭘 말하란 말입니까? 전 도둑이 아닙니다.”
“완고한 새끼!”
경찰은 책상을 “쾅”하고 내리쳤다. 경호를 쏘아보는 그 눈길은 한자루의 비수와 같이 날카로왔다. 하지만 경호는 몸을 떨뿐 죄를 승인하지 않았다. 경찰은 얼리고 닥치고 하다가 경호가 자백하지 않으니까 경호를 심문실에 가둬놓고 자물쇠를 잠궈놓았다.
“전 억울합니다! 절 놓아주십시오!”
경호는 문을 막 두르리며 애처롭게 웨쳐댔다. 그러나 경찰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가버렸다.
빈방에 홀로 갇힌 경호는 억울하고 분했다. 경찰마저 다짜고짜로 도둑으로 몰다니? 악몽같았다. 경호는 이것이 꿈이라고, 꿈에서 깨여나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거라고 자신을 위안해보았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적 공포와 불안은 그러한 달램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이 무시로 몸을 휩쌌다.
차가운 책상우에서 하루밤을 보낸 경호는 이튿날 오전 10시쯤에 더욱 무시무시한 곳으로 끌려갔다. 그가 방안에 들어서자 문이 닫기고 “절컥”하고 자물쇠가 잠겨졌다. 그는 승냥이굴에 들어선듯 온몸을 전률했다. 두줄로 똑바로 앉아 꼼짝하지 않고있던 8~9명의 녀석들이 바깥의 발자국소리가 멀리 사라지자 삽시에 독기어린 음침한 눈길로 그를 쏘아보고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가리를 쩍 벌린 굶주린 승냥이떼같기도 했고 혀를 날름거리는 흉악한 독사무리같기도 했다.
“이리 왓!”
두목인듯한 녀석이 위엄있게 호령하자 경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두목의 앞으로 다가갔다.
“차렷!”
두목이 구령을 부르자 경호는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차렷자세를 갖추었다. 두목이 불이 번쩍나게 경호의 귀쌈을 후려쳤다.
“이름이 뭐야?”
“지경호.”
“여긴 왜 왔니?”
경호는 도리머리질했다. 그러자 두목의 옆에 있던 한 녀석이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가며 경호의 뺨을 갈겨댔다.
“이 새끼야! 귀머거리야? 캉터우(炕头)가 묻는 말뜻은 네가 무슨 죄를 지어 여길 들어왔는가 말이다!”
“난 아무 죄도 짓지 않았소!”
“뭐라구?!”
두목은 두눈을 부릅뜨고 경호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꽥 소리질렀다.
“얘들아!”
“예썰!”
두목의 말이 떨어지자 말석에 앉은 세 녀석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일제히 일어섰다.
“너희들이 이 새끼의 버릇을 좀 가르쳐줘라!”
“예썰!”
세 녀석이 번갈아 다가와 경호의 귀쌈을 보기좋게 찰싹찰싹 후려쳤다.
“아이쿠!”
그 다음은 주먹과 발길이 날아들었다. 경호의 코와 입귀로 시뻘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만!”
두목이 졸개들을 제지시키고나서 살기등등해서 경호를 노려보았다.
“임마, 네가 저지른 짓을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가!”
경호는 육체의 고통과 말못할 정신적 괴로움에 가슴이 찢기고 눈물이 솟았다. 구류소가 이처럼 진저리나고 무시무시한 곳인줄을 몰랐다. 억울하게 갇힌것만 해도 통분한 일인데 진짜 불량배들에게 매까지 얻어맞다니!
경호의 눈앞에 억울하게 파출소에 잡혀오던 그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룡정으로 달리는 초만원뻐스에 몸을 실은 경호는 밀치닥거리는 사람들틈에 끼워 진땀을 뺐다. 무더운 여름날씨에 공기마저 혼탁하여 질식할 지경이였다. 뭇사람들의 퀴퀴한 땀냄새를 피하느라고 머리를 이러저리 돌리던 경호는 문뜩 웬 검은 손이 곁에 있는 한 중년녀인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것을 발견했다. 흠칫 놀라 다시 보니 재빠른 솜씨로 돈지갑을 후려낸 그 검은손의 임자는 스무살안팎의 땅딸보였다. 그 땅딸보는 경호의 눈길이 자기를 지켜보는것을 보고 위협적인 눈길로 쏘아보았다. 얄미운 도둑놈! 돈을 털리운 저 아주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까밝혀놓자. 뻐스안에 숱한 사람들인데 저 따위 도둑 한놈을 겁나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주머니!”
경호가 막 중년녀인의 팔을 흔드는 찰나에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땅딸보는 번개같이 그를 밀치닥거리며 제쪽에서 먼저 소리쳤다.
“도둑을 잡읍소!”
그러면서 땅딸보는 중년녀인에게 돈지갑을 털리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던 중년녀인은 울상이 되여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구, 내 돈 200원이 잃어졌구나! 아이구, 어느 놈이 내 돈을…”
“아주머니, 바로 저자가 아주머니의 돈을 훔쳤습꾸마!”
경호가 손으로 땅딸보를 가리키자 몇몇 건장한 장정들이 달려들어 땅딸보의 두팔을 붙잡았다.
“이 도둑놈아, 백주에 남의 호주머니를 털어?!”
“아이쿠, 억울합꾸마. 도둑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 새끼입꾸마!”
땅딸보는 고개짓으로 경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놈아, 무슨 변명이냐? 어서 돈을 내놔!”
“정말입꾸마. 내 저 새끼가 저 아줌마의 걸망을 터는걸 똑바로 봤습꾸마. 못믿겠으면 어디 저 새끼의 몸을 뒤져봅소!”
이리하여 뭇사람들의 시선은 땅딸보로부터 경호한테로 옮겨졌다. 경호는 뻔뻔스러운 땅딸보가 역겨웠다. 자신의 청백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숱한 눈길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져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의 호주머니에서 난데없는 돈지갑이 나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종래로 돈지갑을 사용한 적이 없는 그에게 돈지갑이 있을리 만무했다.
“아, 내 돈지갑!”
돈을 털리운 중년녀인이 냉큼 돈지갑을 나꿔챘다. 그러자 교활한 땅딸보가 즉시 소리쳤다.
“아줌마, 잠간만! 그 돈지갑이 정말로 아줌마의것이 옳은지 어떻게 암둥? 그러지 말고 그안에 무엇이 들어있다는것을 말해야 증명할수 있을 아님둥?”
그래서 그 중년녀인이 돈지갑을 땅딸보에게 넘겨주면서 그안에 10원짜리 인민페 15장과 5원짜리 인민페 10장 그리고 자기의 신분증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땅딸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주위사람들앞에서 돈지갑안의 물건을 꺼내보였다. 중년녀인이 말한것과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사람은 겉을 보구선 모르겠단말이요. 알고보니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도둑이였구만!”
“저런 녀석은 가만두었선 안되우. 잡아가야 하우!”
뭇사람들의 욕지거리와 눈총을 한몸에 받으며 경호는 넋을 잃은듯 서있었다. 이때에야 그는 땅딸보가 자기를 밀칠 때 작간을 부린것이란것을 깨달았다. 분했다. 치가 떨렸다.
“전 도둑이 아닙니다! 사실은 저 땅딸보가…”
그가 사실의 진상을 까밝혀놓으려고 했으나 누구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뻐스는 방향을 바꾸어 파출소로 향했다. 그가 억울하다고 했으나 인증, 물증이 다 있기에 소용이 없었다…
“빨리 네가 지은 죄를 말해라!”
두목이 두눈을 무섭게 부듭뜨고 재촉하자 경호는 짧은 회상에서 깨여났다.
“이 새끼야, 무슨 짓을 했는지 빨리 말하란 말이다!”
두목은 자신이 경찰에게 당하던 화풀이를 경호에게 하는듯 싶었다.
“난, 난…나쁜 짓을…”
“임마, 네가 나쁜 짓을 했다는걸 다 안다. 그래 색갈을 했니?”
“아니…”
“안했다구? 임마, 니 녀자빤쯔까지 벗기구 어떻게 했다는걸 우리 다 알구있다. 솔직하게 말해라!”
“아니, 난 그런 짓을 안했소!”
“뭐야? 홀딱 벗겼지?”
“아니…”
“정말이냐?”
두목은 경호를 당장 한입에 삼켜버릴듯이 노려보았다. 경호는 사지를 와들와들 떨었다.
“벗겼니? 안벗겼니?”
“버…벗겼소.”
경호는 마지못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승인했다. 두목은 그제야 히죽이 웃으며 담배불을 붙였다.
“벗겼으면 벗겼다구 진작 대답해야지. 야, 임마. 네가 어디 한번 재미보던 동작을 여기서 표현해봐라!”
경호는 수치와 모욕감으로 하여 슬피 울었다. 그러나 두목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았다. 경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몇번 추잡한 동작을 하고나서야 숨을 돌릴수 있었다.
점심에 사발 하나 드나들만한 쪽문으로 시누런 강냉이밥과 멀건 시래기국이 들어왔다.
경호는 강냉이밥이 모래알 씹는듯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두목은 용하게도 밥 한그릇을 제꺽 조겨대고 경호의 몫까지 빼앗아먹었다.
경호는 오전에 그만큼 당했으니 오후에는 아무일도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두목이 또 괴롭힐줄이야.
“임마, 이제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너 ‘맥주’를 마시겠니? ‘노래’를 부르겠니?”
“맥주”란 두목이 선사하는 오줌이다. 경호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맥주”가 아무래도 좋지 않은것을 뜻하는것 같아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이 새끼, 목청이 좋은 모양이다. ‘령감’!”
“예썰!”
“마이크 준비!”
“예썰!”
령감이란 녀석이 경호를 끌고가서 변기통뚜껑을 열었다. 순식간에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야, 임마! 이것이 세계제1류의 고급마이크야! 여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되 3절까지 불러야 된다! 알겠니? 자아, 시—작!”
령감은 경호의 머리를 강박적으로 변기통에 틀어박았다. 경호는 고약한 냄새를 참으며 숨가삐 노래를 불렀다…
경호는 졸개중에서도 말석졸개가 되여 두목의 온갖 시중을 다 들어줘야 했다. 이부자리를 펴고 개인다, 변기통뚜껑을 여닫는다, 옷으로 부채질을 해준다, 전신안마를 해준다 하며 별의별 고생을 다 했다.
제일 힘든것은 대변을 보는 일이였다. 불량배들이 지켜보는 코앞에서 변기통에 엉뎅이를 대고있노라면 긴장감과 수치심에 배설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을 끌면 못된 녀석들이 달려와 엉뎅이를 찰싹! 찰싹! 때려놓는다.
구류소의 밤은 고통의 밤이였다. 도리대로 말하면 밤이면 육체적인 시달림이 없으니 편안해야 했다. 하지만 낮에 받은 수모와 모욕 그리고 억울함으로 하여 무시로 파고드는 정신적 고통은 말로는 형언할수 없었다. 곁에 누운 녀석들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색정이야기를 하다가도 한바탕 음탕하게 웃어댄다. 하지만 경호는 한쪽에 돌아누워 설음에 겨워 울고 또 울었다. 아, 원통하다! 어찌하여 결백하게 살아가려는 내 인생에 이런 치욕의 력사를 남겨야 한단 말인가!
15일이란 나날이 그렇게 지루할줄은 몰랐다. 경호는 마침내 굴욕과 고통을 이겨내고 그 지긋지긋하고 진저리나는 생활을 결속지었다.
자유의 몸이 된 경호는 그 길로 목욕탕에 달려가 몸에 밴 더러운것을 씻었다. 하지만 수모와 억울함은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씻겨지지 않았다.
경호는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공교롭게도 한 청년과 마주쳤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 청년이 바로 소매치기군 땅딸보가 아닌가! 그자를 보자 경호의 가슴은 증오로 불타올랐다.
“이 도둑놈아! 왜서 네가 훔치고도 나에게 덤터기를 씌웠니? 너때문에 난 억울하게 당했다. 온갖 모욕을 다 받으며…가자, 파출소로 가서 자수해라!”
경호가 손을 잡아끌자 땅딸보는 실눈을 지으며 웃었다.
“노여워마오. 난 원래부터 친구를 억울하게 하려는 생각이 없었소.”
땅딸보가 능청을 떨자 경호는 화가 났다.
“누가 너같은 망나니의 친구야? 어서 파출소에 가서 내 억울한 루명부터 벗겨달라!”
“허허참,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파출소에 간들 어쩌겠소. 내가 잘못했다고 빌면 안되겠소? 나두 그때 친구를 해치려고 그런게 아니라 방법이 없어서 그랜게유.”
“방법이 없어 그랬다구? 개나발을 불지 마!”
“개나발이 아니요. 친구는 그래 ‘런짜이쟝후 썬부유지(人在江湖, 身不由己)’란 말을 못들었소? 강호에 떠도는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할수 없이 마음에 없는 일을 하게 되는 때가 있는거요. 나는 그때 친구를 해칠 마음이 꼬물만큼도 없었지만 할수 없이 그렇게 한거요. 그때 친구가 못본척하고 가만있었더라면 난 그럴 필요가 없었을거요. 그러니까 완전히 내 잘못이 아니라 친구한테도 차실이 있는게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잡히는건 내 자신이 아니겠소? 내가 잡히면 경찰한테도 욕을 보고 우리 로따(老大)한테도 벌을 받게 된단 말이요. 그러니…”
“그 무슨 개똥같은 궤변이야? 잡히는게 그리 무서우면 당장 가서 자수하고 손을 씻으란 말이다!”
“손을 씻으라구? 내 배운 재간이 그것뿐인데 손을 씻구 무슨 일을 하겠소? 그리고 잡히는걸 무서워하면 아무일도 해낼수 없단 말이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모험이 필요하오. 농사군이 재해가 드는걸 무서워한다면 농사를 지울수 없고 어부가 배가 뒤집히는걸 두려워한다면 고기를 잡을수 없소. 또한 운전기사가 교통사고를 무서워한다면 핸들을 잡을수 없고 오입쟁이가 안해를 무서워한다면…”
“듣기 싫다!”
땅딸보의 황당한 론리와 썩어빠진 인생관에 경호는 전률하듯 몸을 떨었다. 땅딸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계속 떠벌려댔다.
“헤헤, 친구! 우리 패거리에 가담하지 않겠소? 그럼 날마다 호강할게요. 온천하 사람들의 호주머니가 모두 우리의 은행이고 저금통이란 말이요. 친구도 어차피 도둑이란 감투를 썼으니 우리 손잡고 해보자구!”
“더럽다! 나보고 도둑놈이 되라구? 네 같은 놈은 좋은 끝장이 없을게다! 아무때든 꼭 법망에 걸릴게다! 가자, 지금 나하구 파출소에 가서 자수해라!”
경호는 땅딸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때 몇몇 청년들이 나타나서 땅딸보를 불렀다. 경호는 할수 없이 땅딸보를 놓아주었다.
“친구, 다시 만나자구!”
땅딸보는 패거리들과 함께 가면서 경호에게 손을 저었다.
경호가 구류소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소문은 동네에서도 퍼지고 친구들한테도 퍼졌다. 그는 밖에 나설 때마다 아는 사람들의 뒤손질을 따갑게 느꼈다. 친구들한테 놀러가도 그가 자기네것을 훔치지 않나 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하고있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나는 청백하다. 그러나 나는 세상사람들의 눈에 더러운 도둑으로 보인다. 아아, 말못할 억울함이여!
경호는 웃음을 잃었다. 련며칠 집구석에 꾹 박혀있노라니 미칠것만 같았다. 그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문을 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발길이 가는대로 이거리 저거리 쏘다녔다. 울적한 기분에 잠겨 어정어정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웬 억센 손이 뒤에서 어깨를 잡는 바람에 와뜰 놀랐다.
“여, 친구. 또 만났군!”
땅딸보였다. 능글능글 웃는 그 낯짝을 보자 경호는 화가 치밀었다.
“임마, 너때문에 난 진짜 도둑처럼 몰리고있다. 이 죽일놈의 새끼야!”
“거참, 안됐구만. 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한번 진짜 도둑이 돼보는게 어떻소?”
“뭐야? 이 새끼…”
“친구들의 의심과 사회의 차별대우를 받으며 머리도 못쳐들고 다닐게 뭐요. 나하구 손잡고 한번 해보기오. 사회는 친구를 버려도 우리 형제들은 친구를 따뜻하게 품어줄게요!”
“개소리치지 마!”
경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 면상을 한대 얻어맞은 땅딸보는 두번째로 날아오는 경호의 주먹을 잽사게 피하며 덤벼들었다. 둘은 한동안 치고 박고 했다. 얼마후 맥이 지난 둘은 피투성이가 되여 주저앉았다.
“허, 친구도 꽤 날파람이 있던데. 난 친구가 점점 더 맘에 드는구만.”
땅딸보가 종이로 코피를 닦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경호는 그런 땅딸보를 성난 눈길로 쏘아보았다.
“이 새끼, 널 찢어죽이지 못하는게 원통하다!”
“허허, 친구.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우리 저기 들어가 한잔 하며 화해하자구!”
땅딸보가 경호의 손을 잡아끌면서 일어섰다. 경호는 땅딸보의 손을 뿌리쳤다.
“개새끼, 누가 너같은 도둑놈과 친구하겠니?”
경호는 발길로 땅딸보를 한번 더 걷어차고 몸을 돌렸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몇몇 불량배들이 경호의 앞을 막아섰다.
“이봐, 친구. 왜 한잔 하자는데 남의 성의를 무시해?”
땅딸보와 녀석들은 무작정 경호를 끌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땅딸보와 경호는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술상에 마주 앉았다.
“자, 인생은 일장춘몽이거니 먹고 마셔 보자!”
경호는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을수 없었다. 술이 몇잔 들어가자 경호는 자기절로 청해서 더 마셔댔다. 취하고싶었다. 취하여 거리를 쏘다니며 웨치고싶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여보게, 친구. 억울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와 한길을 걷게 된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은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한 길이라는걸 알아야 하오.”
“미안하오. 이 지경호는 그 길로는 갈수 없소. 난 내 길을 나절로 갈것이요!”
경호는 비틀거리며 술집에서 나왔다. 땅딸보가 따라 나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자기의 길을 자기절로 걷겠다구? 정말로 사내대장부의 패기가 있는 말이요. 하지만 난 조만간에 친구가 우리 형제의 품으로 들어오리라고 믿소. 지금은 강박하지 않겠으니 친구 마음대로 하오.”
경호가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서자 부모가 “사람질을 못할 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경호는 “사람질”을 하기 위해 이튿날부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에게 전과가 있다고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눈물이 나왔다. 혼자서 공원의 의자에 앉아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친구. 또 만났네!”
땅딸보였다. 여기서 또 땅딸보를 만나다니? 악연이라도 이런 악연이 어디 또 있을가?
“우리 인연이 깊구만! 반갑게 만났는데 어디가서 한잔 하자구!”
땅딸보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경호는 될대로 되라고 땅딸보를 따라갔다. 땅딸보는 경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더니 3차만에 단간방이 있는 곳에 가서 아가씨까지 넣어주었다. 그날밤에 경호는 처음으로 아가씨와 재미를 보고나서 땅딸보의 도둑패거리에 가담했다.
경호는 땅딸보패거리의 두목한테서 한주일동안 소매치기에 대한 리론강의를 들으면서 호주머니를 터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땅딸보를 따라다니면서 관찰능력을 키우면서 직접 실천에 나섰다.
연길에서 룡정으로 달리는 뻐스에 오른 경호는 한 중년사내의 웃옷 호주머니를 단단히 노렸다. 차가 시교를 방금 벗어났을 때 그는 손을 잽싸게 놀려 중년사내의 웃옷호주머니의 단추를 반쯤 벗겨놓고 시치미를 떼고있다가 뻐스가 들썩거리는 기회를 타서 손을 썼는데 그만 “노”를 감았던 손이 떨리면서 발각되고 말았다. 뒤를 봐주던 땅딸보가 비수로 중년사내를 위협해서야 무사히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다음에는 룡정에서 연길로 달리는 뻐스에 올랐다. 노리던 사냥물이 눈에 들어오자 땅딸보가 경호를 슬쩍 건드렸다. 경호는 땅딸보의 눈짓대로 한 소녀의 곁에 바싹 붙어섰다. 경호는 가슴이 두근거려 몇번이나 쏜쓸 기회를 놓쳤다. 땅딸보의 눈짓에서 힘을 얻은 경호는 대담하게 손을 썼다. 성공이다. 처음으로 남의 돈뭉치를 자기의것으로 만든 경호는 가슴이 세차게 들뛰였다. 뻐스가 모아산에서 멈춰섰다. 땅딸보의 신호를 받은 경호가 뻐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 소녀가 갑자기 목놓아 울며 소리쳤다.
“내돈, 내돈이 없어졌어요! 입원한 어머니의 수술비를 물자던 돈인데 이걸 어쩌나요? 엉엉…”
소녀의 울음소리는 경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로임봉투를 털리우고 소매치기를 욕하던 정경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그는 량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에게 밀리는척 하며 소녀한테 몸이 쏠리는 기회를 타서  민첩한 동작으로 돈뭉치를 도로 소녀의 핸드백에 넣어주고는 부랴부랴 뻐스에서 내렸다. 그의 뒤를 따라 뻐스에서 내린 땅딸보가 성난 눈길로 경호를 쏘아보았다.
“다 나꿔챈 돈을 도로 넣어주다니? 왜서 그런 바보짓을 했소?”
“그애가 너무 불쌍해서…”
“불쌍하다니? 하하하! 불쌍한걸 다 고려하면 우린 굶어죽소. 이런 일을 하자면 마음이 독해야 하오. 우리는 사람들의 통곡소리를 즐거운 노래처럼 들을줄 알아야 하오.”
이튿날에 그들은 룡정뻐스부에서 점잖게 거딜며 사냥물을 찾아다녔다. 한참후 경호가 투덜거렸다.
“제길할, ‘천당문’은 ‘참대속’이요.”
“괜찮소. ‘지하통로’에 ‘물만두’가 보이요. 몇‘타바(100원)’는 됨직한데 그거라도 따보기오.”
경호는 땅딸보의 눈짓대로 조양천방면의 검표구에 줄을 선 한 아낙네의 뒤에 바싹 붙어섰다. 땅딸보가 잽사게 차표 두장을 끊어가지고 왔다. 검표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물밀듯 터져나가며 다투어 뻐스에 올랐다. 승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경호는 그 아낙네와 같이 뻐스의 중간쯤에 서있게 되였다. 약사빠른 땅딸보가 얼마쯤 뒤에서 지켜봐주었다. 뻐스가 움직이자 경호는 손쓸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삼봉동어구의 울퉁불퉁한 흙길에 들어서자 뻐스가 몹시 들추었다. 경호는 몸이 앞으로 쏠리는 기회를 빌어 무릎으로 그 아낙네의 엉뎅이를 지긋이 밀면서 잽싸게 바지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한참후 뻐스가 재차 들추는 순간 경호는 감아올렸던 “노”를 살며시 꺼냈다. 곁사람들은 물론 그 아낙네도 눈치차리지 못했다. “지하통로”라고 하는 바지호주머니는 소매치기들의 가장 어려운 돌파구였다. 이 돌파구를 손쉽게 열어제낀 경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뻐스에서 내려 돈을 세여보니 한 “꼬재(1000원)”나 되였다. 너무도 흐뭇하여 그들은 술집에 가서 배를 두드리며 먹어댔다.
“손님들은 직업이 뭐예요?”
곁에 앉은 아가씨가 술을 부으며 물었다. 경호는 어데가나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가슴이 찔리였다. 직업이 없다고 말하자니 체면이 깎일것 같고 그렇다고 직업이 “바이(소매치기)”라고 말할수도 없고…그가 처음 억울하게 잡혔을 때 경찰이 그랬다. 다른 직업이 없으니까 바이를 전문업으로 삼는 프로 아니냐고. 그런데 그렇게 억울하다고 웨치던 그가 진짜로 소매치기를 전문업으로 삼는 프로가 되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직업이 뭐예요’가 뭐야? ‘무슨 사업을 하시나요’라고 물어야지.”
땅딸보가 아가씨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아가씨가 해쭉 웃으며 다시 물었다.
“손님들은 무슨 사업을 하십니까?”
“우린 장사군이야!”
“어마나, 그럼 사장님이시겠네요. 사장님은 무슨 장사를 하십니까?”
“인육장사를 하지. 너희들은 인육을 팔고 우리는 인육을 사고. 하하하!”
땅딸보는 아가씨의 엉뎅이를 툭툭 치며 웃어댔다. 하지만 경호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자신의 운명이 한스럽고 그런 인생이 서러웠다.
경호의 소매치기솜씨가 제법 늘었을 무렵에 땅딸보가 경도선렬차에 올라 크게 하다가 덜미를 잡히여 감옥신세를 지게 되였다. 경호는 자기의 앞날을 보는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경호는 소매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남은 패거리들이 자꾸만 떠미는 통에 마지못해 혼자서 뻐스에 올랐다. 고수머리중년사내를 목표물로 삼았다. 사람들이 밀치는 기회를 타서 경호는 잽싸게 해냈다. 다음 정류소에서 내린 경호가 성공의 기쁨에 겨워 휘파람을 부는데 어느새 따라 내렸는지 고수머리사내가 그를 불러세웠다.
“여보게, 젊은이!”
에크, 들키였구나. 뛰자! 경호가 도망치려는데 고수머리가 다시 소리쳤다.
“지경호, 이걸 가지고가게!”
낮도 코도 모르는 고수머리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대자 경호는 깜짝 놀랐다. 고수머리가 손에 신분증을 들고 흔들어댔다. 자기의 호주머니를 뒤져본 경호는 또 한번 크게 놀랐다. 방금전에 뻐스안에서 털어냈던 고수머리의 돈지갑과 자신의 신분증이 깜쪽같이 없어졌던것이다. 아니, 저 고수머리가?!
“이건 자네의것이니깐 돌려주겠네.”
고수머리가 다가와서 경호에게 신분증을 넘겨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호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들고
“이건 내것이니까 자네한테 줄수는 없네!”
하면서 경호를 쏘아보았다. 경호는 오금이 저려났다.
“아이구, 스승님! 이거 눈이 있어도 망울이 없어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경호는 손발이 닿도록 싹싹 빌었다. 그러자 고수머리가 히쭉 웃었다.
“자네 날 스승으로 모시고싶나?”
“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자네가 나의 제자로 될 의향이 있다면 날 따라오게나.”
경호는 고수머리의 뒤를 따라갔다. 고수머리는 경호를 데리고 자동차수리부안으로 들어갔다. 고수머리는 거기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나도 한때는 한다하는 소매치기군이였네. 하지만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좋은 끝장이 없네. 나는 끝내 잡혔고 안해마저 달아났네. 난 감옥에서 나온 뒤로 그 일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자동차수리부를 꾸렸네. 이전엔 경찰만 보아도 날 잡으로 오지 않나 해서 속이 조마조마했고 잠을 자도 경찰에게 잡히는 꿈만 꾸었네. 하지만 지금은 어데가나 머리를 떳떳이 쳐들고 다닐수 있고 잠을 자도 발편잠을 잘수가 있네. 또 자기의 땀으로 번돈이니까 돈을 써도 떳떳이 쓸수가 있고…총적으로 말해서 사람답게 살수가 있게 되였다는 말이네. 어떤가? 젊은이도 그 일에서 깨끗이 손을 씻고 사람답게 살아보지 않겠나?”
“…”
경호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저도몰래 고수머리의 말에 공감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젊은이, 나의 제자로 되여 여기서 일해보지 않겠나? 로임은 비록 소매치기보다 적을수는 있지만 떳떳한 직업이여서 사는 보람이 있을거네.”
“…”
경호는 여전히 멍하니 서있었다.
“대답이 없으면 동의한걸로 치겠네.”
고수머리가 경호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손님이 고장난 자동차를 끌고왔다. 고수머리가 부지런히 서두르며 경호를 보고 말했다.
“젊은이, 뭘하고있나? 어서 저쪽에 가서 수리도구를 가져오게!”
경호는 장군의 명령을 받은 병사마냥 재빨리 움직였다. 고수머리에게 수리도구를 가져다주는 순간 경호는 가슴이 세차게 설레였다. 인젠 어데가나 그 누가 직업이 뭔가고 물어도 떳떳이 대답할수 있게 되였구나.
“난 자동차수리공입니다!”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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