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이 쥐죽은듯 고요한 야밤삼경에 숲속에서 벌거숭이 남녀가 사랑의 랑만에 취해있다, 옥으로 다듬은듯한 녀인의 알몸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건강미 흐르는 사내의 육체는 소같이 든든하다.
처음과는 달리 녀인은 부끄러움을 잊고 두팔로 사내의 목을 감았다. 이젠 가시처럼 찔리는 꺼슬꺼슬한 수염도 아프지 않았고 시꺼먼 털이 가득한 앞가슴도 두렵지 않았다.
《인섭아, 난 이젠 너한테 모든걸 바쳤어! 몸도 마음도…》
《응, 연옥, 넌 이젠 내것이야! 영원히…》
《영원히…》
녀인은 행복에 겨워 푸시시한 사내의 가슴털에 얼굴을 비빈다. 취한듯 녀인을 애무하던 사내가 갑자기 놀란소리를 지른다.
《저길 봐, 누가 우릴 훔쳐보고있어!》
《어마나!》
와뜰 놀란 녀인은 황급히 곁에 있는 옷가지로 몸을 가리며 사내의 품속에 바싹 기여든다.
《아이, 무서워!》
《무섭긴? 바보야, 우릴 훔쳐보는건 저 하늘의 별들이야!》
《어머머, 괘씸한게!》
겁기어린 눈길로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던 녀인은 주먹으로 사내의 가슴을 북치듯 쾅쾅 쳤다. 사내는 녀인이 때려주는대로 맞아주다가 빙그레 웃으며 녀인을 꼭 끌어안았다.
《야-별들이 많지?》
둘은 나란히 누워 금싸라기를 쥐여뿌린듯한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인섭아, 우리 저 별들중에서 우리별을 찾자.》
《히히, 우리 별? 저봐, 나란히 떠있는 저 쌍둥이별이 바로 너와 나야. 바로 우리별이란 말이야!》
《멍텅구리, 그게 어디 쌍둥이별이야? 셋이 나란히 있는걸 봐라. 삼태성이야!》
《아니, 너 왕청같은걸 보구 그러는구나. 그게 어디 삼태성이야.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삼태성은 겨울밤에 보인다더라.》
《애두 참, 셋이 나란히 있는걸 보면서 그러니?》
《글쎄 무슨 별일가? 상관있니. 셋이면 더 좋지. 저걸 우리별로 하자. 우리별은 셋이야!》
《너 돌지 않았니? 우린 둘인데 어떻게 저 별을 우리별로 하니?》
《너 정말 몰라서 그러니? 지금은 우리 둘이지만 이 다음 네가 아길 낳으면 셋이 아니구 뭐야!》
《아이, 부끄러워!》
연옥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그리고는 달콤한듯 되뇌였다.
《우리별은 셋! 우리별은 셋…》
열렬한 사랑에 불타고있는 연옥이와 인섭이는 시내와 동떨어져 있는 여기 으슥한 숲속의 잔디밭을 에덴동산을 정하고 이 밤에 남몰래 선악과를 따먹었다.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했으나 다행히 락원에서 쫓겨나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금과를 따먹는 재미를 거듭 맛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연옥이는 잔잔한 호수같이 맑고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눈으로 인섭이를 바라보며 볼그스럼한 입술을 열었다.
《인섭아, 우리 이래도 되니?》
《뭐 어째 잘못된게 있니?》
인섭이는 짜장 모를일이라는듯 왼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안달아난 연옥이는 주먹으로 인섭의 어깨를 탁 쳤다.
《너 정말 태평이구나. 결혼두 안하구 이래서 괜찮겠니?》
《결혼하면 되지뭐.》
《그럼 언제 결혼할가?》
《왜? 내가 변할가봐 두렵니? 난 절대 안변해. 내 마음엔 오직 너 하나밖에 없어!》
인섭이는 단침을 꿀꺽 삼키면서 연옥이의 모란꽃같은 붉고 탐스런 입술을 향해 접근했다. 육박해오는 인섭의 타는듯한 입술을 연옥이는 잽싸게 손바닥으로 막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니까 남자들은 죽자살자 맹세하다가두 쩍하면 변하더라. 사과를 보면 배를 던지고 또 바나나를 보면 사과를 팽개치고… 너두 결국 그렇게 날 버리겠지?》
《허참, 넌 내가 변할것 같니? 사람 잘못 봤다. 난 죽어도 안변한다. 오히려 네쪽에서 변할가봐 두렵다.》
《내가? 난 네가 없으면 못살것 같은데 어떻게 변하니?》
《정말?》
《정말.》
《그럼 우린 누구도 안변해. 변함없이 함께 사는거야!》
《응, 백년을 아니, 천년을 함께 살자!》
서로 상대방을 꼭 끌어안은 그들은 달콤하고 감미로운 사랑에 취해 날 새는줄 몰랐다.
한달이 지났다. 연옥이는 또 인섭이를 재촉했다.
《우리 그냥 이러고있으면 어쩌니?》
《어쩌긴? 이러고있는게 나쁘니?》
《아이참, 넌 …우리 결혼하자!》
《결혼?》
《응.》
《나두 결혼하자구 생각해봤어. 그런데…》
《그런데 어째 내가 싫어졌니?》
《아니야. 결혼하자면 돈이 있어야 되지 않니? 돈이 없이야 어떻게 결혼하고 또 결혼한 다음 어떻게 살아가겠니? 그래서…》
《그래서 돈을 번 다음 결혼하잔 말이니?》
《맞아.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 널 새각시로 맞아드릴테야!》
《글쎄. 생각은 좋은데 돈을 어떻게 버니? 공장이란건 문을 닫아 월급도 못받는 주제에 …》
《두 손이 있는데 왜 돈을 못벌겠니? 내겐 힘이 무진장하다!》
《힘이 무슨 쓸데있니? 지금은 머리로 돈을 버는 때인데.》
《쳇, 넌 몰라. 난 로무송출을 가기로 했어.》
《로무송출? 힘들다던데…》
《까짓거. 이 좋은 신체에 무슨 일을 못해!》
《몇년이야?》
《3년.》
《그리 오래…그럼 난 혼자서 어째.》
연옥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3년이란 세월을 떨어져 살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쓸쓸했다. 인섭이도 연옥이를 두고 떠날 일을 생각하니 속으로 눈물이 났으나 천연스레 롱담을 했다.
《내가 없으면 좋지 않니? 다른 남자를 친하는게.》
《얘봐라, 그것두 말이라구 하니? 니 그렇게 말하면 난 정말 다른 남자를 친하겠다!》
《친해라. 정작 친해라면 못 친할걸 가지고.》
《못친하지 않구. 정말이다. 난 죽으나 사나 널 따르겠다!》
《그래, 내가 죽으면 너도 죽겠니?》
《응, 난 너없이 살수 없으니까 널 따라 죽을꺼야!》
《바보! 함께 살순 있어도 함께 죽는 법이 없어! 아무리 어쩌구 해두 산 사람은 살기 마련이야. 그리구 죽은 사람두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따라 함께 죽기를 훤하지 않아. 반대로 자기가 다 살지 못한 몫까지 오래오래 살아서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거야.》
《넌 그저 태평스런 소리만 하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슴이 찢겨 어떻게 사니?》
《슬픔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소실되는거야. 그리고 다른 배우자를 찾아 행복하게 살수도 있는거구.》
《함께 죽지는 못할망정 그런 배반을 해서 되니?》
《배반이 아니야, 죽은 다음에 그러는건. 내가 죽은 다음 네가 수절하면 난 죽어두 눈을 못감아.》
《얘봐라, 니 지금 당장 죽니? 싱겁다!》
죽는다 산다하는 말에 기분이 잡친 연옥이는 눈을 곱게 흘겼다.
인섭이가 로무송출을 떠나는 날은 빨리도 다가왔다. 리별을 앞두고 그들은 대낮에 보금자리에 기여들었다. 연옥이가 들고온 핸드백에서 손수건과 작은 가위를 꺼내는것을 인섭이는 의아쩍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건 뭐야?》
《우리 이 손수건을 가위로 절반씩 베여가지자. 3년이란 세월 그리울 때가 많겠는데 그때면 서로 절반 손수건을 보면서 …》
《그 생각 잘했다. 우리 천애지에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하나.》
연옥이한테서 가위와 손수건을 받아들고 절반을 베려던 인섭이는 문뜩 손을 멈추었다.
《연옥아, 우리 이 손수건을 세등분하자. 그래서 한몫은 내가 가지고 두몫은 네가 가지고있다가 앞으로 우리 아이가 태여나면 한몫을 베여주는게 어때?》
《아이, 넌 부끄럽지 않니? 자꾸 그런 말을 하면서 …》
《쳇, 부끄럽긴? 내 나이에 애아버지 소릴 듣는 애두 있는데 뭘.》
한창 궁리하던 인섭이는 땅바닥에 손수건을 펴놓고 접은 종이를 자대로 삼아 원주필로 손수건에 먼저 아래밑변이 웃밑변의 배로 되는 등각제형을 그리고 아래밑변의 중점과 웃밑변의 량끝을 련결하는 선을 그으니 제형안에 똑같은 2등변3각형 셋이 나타났다.
《이 세개의 3각형은 우리 별이야. 우리 3각별 셋이 한데 뭉쳐 제형이 됐으니 이건 우리 사랑이 제방뚝처럼 든든하다는 뜻이야! 이 셋중에서 어느 하나가 없어도 제방뚝은 평형을 잃고 무너져. 그러니 우리 셋은 서로 떨어져 살수 없는 3위1체야!》
인섭이의 설명에 연옥이는 흡족한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인섭이는 제형에서 3각형 하나를 베여내여 자기가 가지고 두 3각형이 평행4변형을 이룬 나머지 부분을 연옥이한테 넘겨주었다. 그것을 받아쥐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연옥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호-3각별 하나가 떨어져 나가니 이 뚝이 막 무너질것 같아.》
《근심마, 내 3년후에 돌아와 다시 붙일게.》
《3년이나…아득해.》
연옥이는 가슴에서 애틋한 정이 사무치며 저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그는 급기야 인섭이의 몸에 안기며 울음을 내놓았다.
《바보야, 울지마, 리별은 잠시야.》
연옥이를 꼭 끌어안은 인섭이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이제 떨어지면 다시 못볼듯 그들은 오래도록 붙어있었다.
인섭이는 떠났다. 떠나면서 연옥에게 록음테프를 하나 남겨주었다. 인섭이를 바래다주고 돌아온 연옥이는 가슴속이 텅 빈것 같이 허전했다. 그녀는 인섭이가 남겨준 록음테프를 록음기에 넣고 단추를 눌렀다.
길면 3년 짧으면 1년
잠간만 당신곁을
떠나있는것이라오
외로워도 참고 살아주오
그리워도 참고 살아주오
아, 돌아올 그날까지 …
록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애달픈 노래소리는 그녀의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더 애절하게 했다. 그녀는 날마다 록음기를 틀어놓고 인섭이가 베여가고 남은 손수건쪼각을 들여다보며 맘속으로 태평양건너 머나먼 나라에 간 미혼부를 그렸다.
기다림이란 고역이였다. 시간은 하루하루 더디게 흘렀다. 그녀는 3년이란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애타는 기다림속에서 어느덧 한해가 지나갔다. 이 한해동안 청혼자들이 수없이 나타났지만 그녀는 죄다 거절해버렸다. 그런데 유독 창식이라는 비위좋은 총각만은 그냥 검질기게 달라붙었다. 귀찮아진 그녀는 자기는 임자있는 꽃이니 더는 치근거리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창식이는 히물히물 웃으며 《치근거린다는 말이 얼마나 듣기 거북하냐, 내가 연옥씨를 딱 사랑하고싶어 따라다니는데 나쁠게 뭐냐》고 떡심좋게 너스레를 부렸다. 펄쩍 성난 그녀가 건달, 망나니라고 욕설을 퍼부으니 창식이는 그 목소리 듣기 좋으니 한번만 더 욕해달란다.
《시끄럽게 굴지 말아요. 저의 미혼부는 소림무술에 정통한 힘장사예요. 이제 그이가 돌아오면 당신의 머리를 수박쪼개듯 두동강 내지 않나 봐요!》
《하느님맙시사! 내 머리가 두쪽이 된다니 이 일을 어찌 하노?》
창식이는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싸쥐고 짐짓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양을 본 연옥이는 깨고소해났다. 건장한 인섭이에 비해 여윈축인 창식이는 상대도 될것 같지 않았다. 이쯤하면 속이 언 창식이가 제풀에 물러나리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또 능청스럽게 웃으며 달라붙었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이 청춘이 요절되는게 아깝긴 하지만 사랑하는 연옥이를 위해서라면 헤헤, 내 이 머리가 두쪽이 아니라 분신쇄골이 된다해도 원이 없겠소!》
《바보!》
《내가 바보라구?》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는 녀자를 위해 죽어도 좋다니 바보가 아니구 뭐예요?》
《허허, 바보는 내가 아니라 연옥씨요.》
《제가 왜 바본가요?》
《미래의 남편도 못알아보고 바보라고 했으니까 바보가 아니구 뭐요.》
《흥, 김치국이나 콱 마셔요!》
펄쩍 성난 연옥이는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했으나 창식이는 그후에도 날마다 그녀가 출퇴근길에 반드시 지나야 하는 다리목을 지키고있다가 그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능청스럽게 웃으며 몇마디씩 우스개를 부리고야 물러가군하였다. 그녀가 상대하기 싫어 본체만체 지나쳐버리려고 하면 창식이는 일부러 큰소리로 《이거참, 오래간만이구만!》하면서 그의 손을 다짜고짜로 막 잡아흔드는데 그럴 때면 행인들의 이목이 두려워서라도 잠간 멈춰서서 어처구니없는 청혼타령을 들어줘야 했다. 청산류수같이 내리엮는 말주변도 좋거니와 우습강스레 눈알을 요리 판들 조리 판들 굴리는 익살은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못들은척 입을 꾹 다물고있는다. 그러면 창식이는 아름다운 연옥씨가 갑자기 벙어리로 됐으니 시집을 다 갔다는둥 이 세상에 벙어리색시를 맞아드릴 사람은 창식이밖에 없다는둥 하면서 얼레발을 쳤다. 이런 정도에서 그냥 입을 다물고있을수 없어 누가 벙어리냐고 욕사발을 안기면 창식이는 그제야 만족한듯 빙그레 웃는다. 연옥이한테서 욕지거리라도 듣지 않으면 그날은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슨 수를 쓰든지 연옥이의 입을 열게 하고야 시름을 놓는다.
이렇게 되여 연옥이는 날마다 창식이와 입씨름하는데 습관되였다. 아무튼 그가 불순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몇분동안의 시간으로 이 무료한 사나이의 비위를 맞춰주는것도 랑패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그와 한두마디 욕지거리를 하던데로부터 욕소리는 어느새 끊어지고 이따금 그의 말에 끼여들고 그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게 될줄을. 5분을 이야기 한다는것이 10분이 되고 10분이 다시 30분으로 되더니 나중엔 두세시간씩 이야기해도 시간가는줄 몰랐다. 더구나 창식이가 사랑에 대한 말을 더는 입밖에 꺼내지 않으니 그녀는 마음놓고 이야기할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편으로 창식이를 경계하였다. 그래서 둘사이의 관계가 절대 우정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군자협정을 맺었다.
창식이와 사귀면서부터 연옥이는 기분이 상쾌했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눈깜짝할 사이에 또 한해가 지났다. 이제 1년만 지나면 사랑하는 인섭이가 돌아올것이다. 그러면 사랑의 제방뚝을 새롭게 쌓고 화촉 밝은 동방에서…인섭이와의 달콤하고 즐거운 상봉을 그려보는 연옥이의 아름다운 두눈에서는 행복의 밝은 별이 빛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즐거운 상봉은 실현될수 없었다. 연옥이는 태평양건너에서 부고 한장이 날아왔다는 소식을 인섭이의 누이동생을 통해 뒤늦게야 듣게 되였다. 사랑하는 인섭이가 애석하게도 바다귀신이 되였단다.
《인섭아!》
첫사랑을 속삭이던 숲속까지 단숨에 뛰여간 연옥이는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하늘땅이 빙글빙글 돌아가는것만 같아 그녀는 잔디밭에 쓰러졌다. 얼마후 그녀는 간장을 비트는듯 애통하게 흐느끼며 연신 어깨를 들먹거렸다. 아아, 사랑하는 인섭이를 이제 다시는 볼수 없다니!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와서 천년만년 함께 살자던 인섭이가 영영 돌아올수 없다니! 비애, 끝없는 비애가 가슴에 차고넘친다. 인섭아, 너를 잃고 내가 어떻게 살아간단말이냐! 그녀는 처절하게 가슴을 쥐여뜯었다. 인섭아, 왜 날 두고 혼자 갔어?! 나도 널 따라가겠어! 연옥이는 가위를 꺼내 가슴에 갖다댔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귀전에 입선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바보! 함께 죽는 법이 어디 있어? 어쩌구 해도 산사람은 살기 마련이야. 그리고 죽은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따라 죽기를 원하지 않아. 반대로 자기가 다 살지 못한 몫까지 오래오래 살아서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거야.》
안섭아, 넌 내가 따라가는걸 원하지 않는단 말이지? 하지만 너를 잃고 내가 무슨 살멋이 있단말이냐. 우리 거기서 함께 살자. 기다려, 내가 갈께!
연옥이는 가위를 쥔 두손을 번쩍 쳐들고 가슴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두눈을 꼭 감고 힘껏 내리찍었다. 그런데 가위는 가슴에 닿기도전에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창식이가 그녀의 손에서 가위를 앗아 던졌던것이다. 창식이는 그녀가 걱정되여 슬그머니 그녀의 뒤를 따라왔던것이다.
《왜 이런 못난짓을 하는거요? 연옥인 인섭씨의 뜻을 받들어 더 견강하게 살아야 하오!》
《전 죽고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연옥이는 창식이의 품에 쓰러지며 목놓아 울었다.
인섭이를 잃은 연옥이는 울적한 나날을 보냈다. 창식이가 곁에서 위로해주고 우스개도 피웠으나 그녀의 슬픔을 덜어주지 못했다.
길면 3년 짧으면 1년
잠간만 당신곁을
떠나있는것이라오.
록음기를 틀어놓고 인섭이가 주고간 록음테프의 노래를 듣노라니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무정한 사람, 왜 잠간만 떠난다 해놓고 영영 떠났는가말이야! 그녀는 고이 간직했던 손수건쪼각을 꺼내놓고 인섭이가 베여간 3각형쪼각을 떠올렸다. 그 3각별이 갑자기 허공중에 둥둥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하늘에 날아올라 커다란 별이 되여 반짝거렸다. 반짝반짝 빛뿌리던 그 별이 어느새 인섭이의 얼굴로 변하여 연옥이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아, 인섭아, 너 돌아왔구나! 3각별을 붙이려 돌아왔구나. 어서 우리의 사랑뚝인 제형을 만들고 천년만년 함께 살자! 인섭아, 빨리 내려와! 연옥이가 너무도 반가워 환성을 지르자 인섭이는 빨갛고 노랗고 파란 세줄기의 빛을 타고 순식간에 연옥의 앞에 내려왔다.
《인섭아!》
《연옥아!》
연옥이를 정겹게 바라보던 인섭이는 품속에서 3각별을 꺼내 연옥이가 펼쳐놓은 평행4변형의 원자리에 제형이 되게 딱 붙여놓는다,
《아, 인섭아!》
연옥이는 너무도 기뻐 두팔을 벌려 인섭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런데 인섭이도 제형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손에 쥐운건 손수건쪼각뿐이다.
가슴에 가득찼던 기쁨은 바람에 날리는 안개처럼 스러지고 가을하늘과 같이 휑뎅그렁한 공허가 밀려왔다.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리움이 추억이 뜨거운 물결처럼 가슴벅차게 밀려왔다. 인섭이와 둘이서 숲속에 나란히 누워 《우리별》을 찾던 일이며 손수건을 베여 제형을 만들던 지난 일들이 어제일처럼 떠오르며 가슴을 애태운다. 아, 인섭아, 넌 영원히 돌아올수 없단 말이냐? 아니, 넌 돌아왔다! 넌 언녕 내 마음속에 돌아왔다. 네가 내 마음속에 있는 한 우리의 사랑뚝은 무너지지 않을것이다. 너는 영원히 내 마음속의 3각별이 되여 무형이 힘으로 이 평행4변형을 제형으로 받쳐줄것이다.
연옥이의 눈에 인젠 평행4변형이 하나의 완정한 제형으로 보였다. 이 제형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면서부터 그녀의 얼굴에는 더는 우울한 기색을 찾아볼수 없었다. 그녀가 다시 생활에 대한 신심을 얻자 가장 기뻐한것은 창식이였다.
《연옥씨, 연옥씨가 슬픔을 힘으로 바꾸니 참 기쁘오. 인섭씬 개인 돈벌이를 떠났다지만 기실 나라의 경제진흥을 위해 몸을 바친거요. 연옥씨, 우리 함께 인섭씨가 다 하지 못한 사업을 끝까지 해나가기오!》
《고마워요, 창식씨!》
연옥이는 자기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창식이와 같은 지기가 있는것이 만족스러웠다. 창식이는 타고난 말재주와 우스개로 연옥에게 무한한 웃음의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이 웃음의 꽃다발은 연옥이를 슬픔과 고통을 잊고 새 삶에로 줄달음치게 했으며 연옥에게 새로운 동경과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창식이가 어느새 자신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로 가슴에 자리잡았음을 그녀는 놀랍게 발견했다. 이따금 타는듯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창식이의 정열이 두려웠다. 그녀는 이제 곧 그 정열이 폭발하며 무서운 일이 닥치고말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어느날 얼빠진 사람처럼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창식이가 갑자기 그녀를 와락 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어리둥절하여 창식이가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있던 연옥이는 갑자기 꿈에서 깬듯 창식이를 콱 밀치고 돌아서서 허둥지둥 달려갔다. 단숨에 첫사랑을 속삭이던 숲속의 잔디밭까지 뛰여간 연옥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인섭아, 난 어쩌면 좋아?!》
연옥이는 인섭이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있는듯한 그 자리를 애절하게 바라보며 흑흑 느끼였다.
《바보야, 울지마!》
난데없는 인섭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인섭이는 보이지 않고 그 귀에 익은 목소리만이 계속 들려왔다.
《슬픔은 지나면 그뿐이야. 얼마든지 다른 대상을 찾아 행복을 누릴수 있는거야. 내가 죽은 다음 네가 수절하면 난 죽어두 눈을 못감아.》
《인섭아!》
그녀가 목터지게 불렀으나 인섭이의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옷깃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인섭이가 로무송출을 떠나기전에 롱담 비슷이 한 그말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에게 남겨준 유언같았다. 인섭아, 안심해. 내 꼭 너처럼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테야!
몇달후 연옥이와 창식이는 결혼식을 올렸다.
첫날밤, 새각시를 꼭 끌어안은 새신랑은 기쁨에 겨워 웨쳤다.
《오늘부터 연옥씨는 나의 안해요! 오늘부터 나는 한평생 연옥씨를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이 될것이요!》
《창식씨, 전 …》
연옥이는 갑자기 창식이의 품에서 벗어나며 고개를 숙인다. 창식이는 연옥이의 손을 꼭 잡고 관심조로 묻는다.
《웬 일이요?》
《전… 처녀몸이 아니예요.》
《실없는 소리. 난 과거를 따지지 않소. 내 마음속에 연옥씨는 영원히 훌륭한 안해요!》
《창식씨…저도 오늘부터 한평생 창식씨를 알뜰살뜰 사랑하는 안해로 되겠어요!》
신랑신부가 뜨거운 포옹과 열렬한 키스를 퍼부을 때 신부의 품속에서 무엇인가 떨어진다. 신부의 옷고름을 풀려다가 그것을 발견한 신랑이 신비한듯이 그것을 주어들고 바라본다.
《허허, 이건 손수건을 베여 만든 모형이구만. 평행4변형안에 똑같은 3각형 두개가 있으니 이걸 우리 둘이 사랑의 표식으로 하나씩 나눠가지기오.》
신랑은 신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가위를 들고 와 그것을 두쪽으로 베기 시작했다. 신부는 원래의 제형이 쪼각나는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어차피 잊어야 할 첫사랑인데 제지시켜선 무엇하랴.
《이걸보오. 이 두 3각형을 떼였다 붙이면 딱 맞는것처럼 우리도 천생배필이란말이요!》
신랑이 싱글벙글 웃자 신부도 가볍게 살짝 웃었다.
신혼생활은 달콤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기자기한 살림에 웃음이 그칠새 없었다. 익살스러운 신랑은 새라새로운 유희와 불타는 사랑으로 신부에게 무한한 행복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노래와 웃음과 사랑의 랑만이 차넘치던 그들의 생활에 운명의 조화랄가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겨났다.
어느날 오후, 창식이가 출근하고 야근을 한 연옥이가 혼자 집에서 빨래질을 하는데 문뜩 초인종이 울렸다. 빨래하던 손을 치마에 씻고 문을 연 연옥이는 눈앞에 나타난 건장한 사내를 보자 깜짝 놀랐다.
《아니?!》
《왜 날 몰라보겠니?》
사내도 연옥이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연옥이는 꿈인지 생신지 분별못하게 어리둥절해지며 말이 잘 나가지 않았다.
《너 …너 …》
그이란 말인가? 정말 그이란 말인가? 그이가 살아서 돌아왔단말인가?!
《연옥아, 나야, 나!》
《너 정말 인섭이란 말이냐?!》
연옥이는 뜻밖의 기쁨과 놀라움에 가슴이 쿵쿵 세차게 뛰였다.
《그래. 나 인섭이야. 내가 돌아왔어!》
인섭이는 두팔을 벌려 연옥이를 꼭 껴안았다. 인섭이의 품에 안긴 연옥이는 모든것이 꿈만 같았다.
《네가 잘못된줄 알았는데 어떻게 …》
연옥이는 갑자기 흐느끼였다. 그러는 연옥이를 더 힘주어 껴안으며 입섭이는 말했다.
《후-고기배가 침몰됐을 땐 바다귀신이 다 되는줄 알았지. 그런데 하느님이 도왔는지 떠내려오는 널판지를 붙잡고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선에 올랐어. 그 많은 사람들중에 나혼자 살았단말이야.》
《정말 천명이구나. 그런데 왜 살았다고 소식을 전하지 않았니? 왜?》
《그땐 나도 내가 〈죽은〉줄을 몰랐어. 후에야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고향에까지 날아간줄 알게 됐어. 나는 소식을 전하려다가 고쳐 생각했어. 죽은줄 알았던 내가 문뜩 나타나면 네가 어쩔가 하는 호기심이 들면서 너에게 뜻밖의 놀람움과 기쁨을 주는 상봉을 마련하고싶었어. 드디여 나는 너와의 아름다운 혼인생활을 꿈꾸면서 귀국했어. 그런데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건만 그리운 사람은 맞아주지 않고 들리는건 네가 다른 사람의 안해로 되였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뿐이였어!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있단말이냐! 어쩌면 이럴수가 …아아! 통분하고 애달픈나머지 나는 울었어! 울다가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널 찾아왔어. 내 사랑 연옥아!》
《아, 인섭아, 난 어쩌면 좋아?》
연옥이의 흐느낌은 더 세찼다. 인섭이의 눈에도 맑은 이슬이 맺혔다.
《연옥아, 내 사랑아! 난 네가 없인 못살아. 날 따라가자!》
《가긴 어딜 …》
《어디든지 좋아. 여길 멀리멀리 떠나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찾자.》
《그건 안돼.》
《왜?》
《난 …난 가정이 있어.》
《가정? 가정이 다 뭐야! 넌 내것이야! 우리 천년만년 함께 살자고 맹세하지 않았니? 그런데 넌 …》
《인섭아, 날 용서해줘. 난 너의 〈유언〉대로 …》
《나의 〈유언〉이라니?》
《넌 네가 죽으면 얼마든지 다른 대상을 찾아 …그리구 내가 수절하면 죽어도 눈을 못감겠다고 …》
《아니야! 난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길래 그건 다 무효야!》
분하여 부르르 몸을 떨던 인섭이는 담배 한대를 태우고나서 진정한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의 그 자식이 널 잘 대해주니?》
《응, 그인 좋은 분이야.》
《음음 …》
인섭이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윽별렀다. 내 사랑을 빼앗은 개자식, 어디 두고보자!
그날 저녁 인섭이는 창식이와 마주섰다. 통성명을 하고나서 인섭이는 자기가 찾아온 사연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난 연옥이를 찾아가겠소!》
《안되오. 연옥이는 나의 안해요!》
《연옥이는 원래 내것이였소!》
《하지만 지금은 나의 안해요!》
《연옥이는 내것이요! 연옥일 나한테 돌려주오!》
《안되오. 연옥이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오!》
두 사내는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적의에 찬 눈길로 서로 상대방을 노려보는 두 련적의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번뜩이였다.
《그럼 좋소. 우리 결투하기오!》인섭이가 살기띤 눈길로 무섭게 쏘아보며 한발작 다가서자 그 기세에 눌리워 창식인는 뒤걸음쳤다.
《결투? 문명하지 못하게 그런 야만 …》
《어째 겁나오?》
인섭이가 랭소하자 모욕을 느낀 창식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겁나긴? 난 연옥씨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소!》
《좋소! 사내답소! 자, 우리 밖으로 나가 결판을 내기요!》
인섭이는 꺽쇠같은 손으로 창식이의 가는 손목을 잡아끌었다.
《왜들 이러세요. 제발 싸우지 말아요!》
여태껏 곁에서 겁난 눈길로 두 사내를 지켜보던 연옥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두 사내를 막아나섰다. 했으나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두 사내는 연옥이를 밀어버리고 기세사납게 마주섰다. 리지를 잃은 두 사내는 기어코 큰일을 저지를것 같았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출입문쪽을 향해 전진하던 두 사내는 연옥이의 목소리에 거의 동시에 몸을 돌렸다. 순간 그들은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지고말았다. 연옥이가 가위로 자기의 가슴을 당금 찌를듯이 겨누고있었던것이다.
《두분께서 저때문에 의를 상하니 전 정말 가슴이 아파요. 제가 나쁜 년이예요! 제가 두분께 죄를 졌으니 오늘 속죄하겠어요!》
《연옥이, 연옥이가 죽어선 안되오!》
《연옥아, 어서 가위를 내려놔!》
두 사내는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가위를 가슴에 꼭 갖다대고 애절한 눈길로 두 사내를 바라보는 연옥이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있었다.
《두분께서 다투지 마세요. 제 한몸이 죽어 …》
《연옥이, 잠간 기다리오!》
창식이가 씽하니 주방으로 달려들어가더니 식칼을 들고 나왔다.
《연옥이, 난 연옥이 없인 살수 없소! 우리 함께 죽기요!》
창식이가 식칼을 가슴에 갖다대자 인섭이는 쓴웃음을 짓더니 넥타이를 풀어 가기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연옥아, 나도 네가 없인 살수 없어! 우리 함께 죽자!》
일이 이렇게 되자 연옥이는 맥없이 가위를 던져버렸다. 무고한 두 사내를 따라 죽게 할수 없었던것이다.
창식이와 연옥이를 뚫어지게 쏘아보던 인섭이가 랭혹하게 웃었다.
《기실 죽음이란 두려운것이 아니요. 이 인섭이는 한번 죽은 목숨이였소. 오직 연옥이와의 상봉을 위해, 연옥이를 꼭 살아서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나운 파도와 생사박투를 했던거요. 이제 연옥이를 잃고 내 살아서 무엇하겠소! 두분도 죽기가 소원이라면 오늘 저녁 우리 셋이 최후의 만찬을 차려놓고 실컷 먹고 마시기요. 어떻소?》
인섭이이 묻는듯한 눈길에 연옥이와 창식이는 비장하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럼 좋소. 연옥이는 집에서 료리를 볶고 창식이는 술을 사오도록 하오. 난 독약을 구해오겠소!》
인섭이의 분공대로 창식이는 술사러 떠나고 연옥이는 료리를 볶았다. 술상을 다 차렸을 때 인섭이도 독약을 구해가지고 돌아왔다.
셋은 술상에 마주 앉았다. 두 사내는 련속 석잔을 마셨다. 연옥이도 세모금에 한잔을 굽냈다. 인섭이는 세개의 빈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붓고나서 호주머니에서 종이봉지를 꺼내여 헤쳤다. 인섭이는 그것을 세등분하여 각기 세 술잔에 쏟아넣었다. 그리고는 애절한 눈길로 연옥이를 바라보았다.
《연옥아, 우리가 리별하던 날 손수건으로 제형을 만들던 일이 생각나니?》
《인섭아, 그 제형은 이미 …》
연옥이는 품속에서 3각형손수건쪼각을 꺼내여 떨리는 손으로 상우에 놓았다. 그러자 창식이도 생각난듯 다른 한쪼각 손수건을 꺼내여 연옥의것과 나란히 평행4변형이 되게 붙여놓고 시뚝해서 인섭이를 흘겨보았다.
《이건 우리 부부의 사랑의 표식이야. 이 두 3각형을 붙여놓으면 딱 맞는것처럼 우리 부부의 마음도 …》
《닥쳐!》
인섭이가 갑자기 꽥 소리질렀다. 분기가 치밀어오른 인섭이는 소중히 간직했던 자기의 3각형손수건쪼각을 꺼내여 평행4변형에 붙여 제형으로 만들어놓고 독기어린 눈길로 연옥이를 노려보았다.
《난 그래도 우리의 사랑뚝을 받쳐주려고 천신만고 찾아왔는데 넌 다른 남자더러 성스러운 우리 제형을 허물게 하다니!》
《인섭아, 난 …난 …네가 잘못된줄 알고 …》
《내가 죽은줄 알고 그랬다는 말이지? 내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그냥 행복하게 살았을테지? 그렇지?》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이 창식부부를 쏘아보는 인섭이의 눈에서 푸른 불줄기가 번뜩거렸다. 창식이와 연옥이는 말없이 인섭이를 외면했다.
《말해봐!》
인섭이가 벽력같이 고함지르며 창식이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분기가 치민 창식이는 노기띤 얼굴로 인섭이를 마주보았다.
《그래 우리 아주 행복했어!》
《개자식! 남의 사랑을 빼앗고도 행복하다구?!》
인섭이는 꽉 틀어잡은 창식이의 멱살을 힘껏 흔들었다. 창식이가 인섭이의 힘을 당하지 못하여 끙끙 소리내자 연옥이가 애원했다.
《인섭아, 창식씨를 괴롭히지 마! 그에건 잘못이 없어. 모두 내 탓이야. 내가 …》
《모두 네탓이라구? 그래 넌 날 배반했지! 배반!》
《배반이 아니야. 그건 …》
《그럼 좋아. 창식이와 리혼하고 나와 같이 살자!》
《안돼. 난 창식씨와 떨어질수 없어!》
《정말이야? 너 …》
애절한 눈길로 연옥이를 바라보는 인섭이의 눈에 이슬이 반짝거렸다. 연옥이가 머리를 끄덕이자 인섭이는 절망한듯 주먹으로 연신 제 가슴을 들이쳤다.
《너희들 부부정이 이토록 깊단말이지? 으하하! 이 인섭이가 왜 바다귀신이 되지 않고 살아왔단말인가!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사랑을 빼앗기는 고통을 받지 않았으련만. 아, 원통하구나!》
비분에 몸을 떨던 인섭이는 진정한듯 독주를 들고 쓴웃음을 지었다.
《독주까지 부어놓고 은원을 따져 무엇하겠소. 자, 우리 셋이 함께 죽기로 언약했으니 어서 들기요. 우리 사이의 모든 사랑과 증오도 이 독주와 함께 소실될것이요!》
순간 죽음의 공포가 방안에 차넘쳤다. 창식이는 떨리는 손으로 인섭이가 권하는 독주잔을 들었다. 잇달아 독주를 들고 창식이를 바라보는 연옥이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여보세요. 미안해요. 당신까지 함께 데리고 가서 …》
《그런 말 마오. 사랑하는 안해와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 난 오히려 기쁘오!》
애잔한 눈길로 연옥이를 마주보는 창식이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인섭이는 슬픔과 눈물에 젖은 그들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쌀쌀하게 웃었다.
《당신들만 기쁜게 아니라 나도 기쁘오! 황천길에 동무가 있게 돼서.》
셋은 술잔을 마주쳤다. 짧디짧은 인생과 영별하는 비장한 격정이 세 젊은이의 가슴을 흔들었다.
《아름다운 죽음을 향해!》
인섭이가 독주를 입가에 가져가며 가볍게 웃었다.
《용감히!》
연옥이가 선참으로 독주를 마셔버렸다! 잇달아 창식이도 눈을 감고 단모금에 독주를 굽냈다.
그들 부부가 내려놓은 빈술잔을 바라보던 인섭이가 들었던 잔을 내려놓으며 갑자기 너털웃음을 쳤다.
《하하하! 바보같은것들! 내가 왜 너희들과 같이 죽는단말이냐? 난 오늘 통쾌하게 복수했단말이야! 알겠어? 하하하!》
《아니?!》연옥이와 창식이는 놀란 눈길을 교환했다. 인섭이는 득의양양하여 껄껄 웃었다. 창식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인섭이를 노려보다가 연옥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보, 우리가 속았소. 인섭이 저 개자식이 …》
《여보세요. 그가 죽음이 겁나서 그러는데 오래오래 살라고 해요. 전 죽음이 겁나지 않아요. 그저 사랑하는 당신을 함께 데리고 가는게 괴로울뿐이예요.》
《여보, 괴로워마오. 지금 난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죽으니 원이 없소! 우리 이 세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을 래세에 가서 마저 하기오!》
《네. 우리 래세에 가서 오래오래 사랑하자요!》
연옥이와 창식이는 서로 꼭 끌어안고 죽음을 기다렸다.
《하하하! 정말 눈물이 없이는 볼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인데!》
인섭이가 랭소하며 손으로 상우의 제형손수건쪼각을 와락 쓸어던지며 가슴을 치며 넋두리했다.
《아, 쪼각난 제형, 깨여진 사랑, 내 첫사랑 연옥이여! 그대 정말 내곁으로 돌아올수 없단말인가!》
《흥, 죽을 용기마저 없는 비겁한 녀석이 무슨 자격으로 사랑을 운운해!》
창식이가 비웃자 인섭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래 난 죽을 용기가 없어. 난 살아야 해. 꿋꿋이 살아야 해!》
인섭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문을 밀고 나가려던 그는 서로 꼭 껴안고있는 연옥부부를 바라보며 쌀쌀하게 웃었다.
《이제 몇분후에는 너희들이 끝장이야! 흐하하! 저승에 가서나 행복하게 살아라!》
인섭이의 싸늘한 그 웃음은 지옥에서 들려오는 염라대왕의 웃음같이 몸서리치게 죽음의 공포를 몰아왔다. 연옥이와 창식이는 떨리는 몸을 더욱 억세게 부등켜안았다.
《깜빡 잊을번했군.》
문을 열고 나가려던 인섭이는 생각난듯 품속에서 무엇인가 꺼내들고 신비하게 웃었다.
《이건 술잔에 넣고 남은 독약주머니야. 죽음을 앞당기고싶다면 이걸 더 먹으란 말이야!》
인섭이는 독약을 넣은 비닐주머니를 그들 부부앞에 홱 뿌리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인섭이가 던진 비닐주머니는 면바로 꼭 껴안고있는 그들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것은 시한폭탄처럼 그들부부를 공포에 떨게 했다. 두려움에 떨며 그들은 죽음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도록 지나도록 아무런 고통도 없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연옥이가 떨리는 손으로 독약주머니를 주어들었다. 그 독약주머니를 바라보는 그들부부의 눈길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은 동시에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건 우유가루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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