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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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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지켰건만
2013년 12월 14일 15시 15분  조회:3606  추천:1  작성자: 넉두리

몸은 지켰건만/콩트이야기
 
김희수
 
 
선녀는 떨리는 손으로 방금 옥금이가 두고간 돈을 세여보기 시작했다. 100원짜리 묶음 다섯이니 5만원이였다. 이렇게 큰돈을 앞에 놓고 선녀는 전률하듯 몸을 떨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돈 5만원이 10만원으로 불어날것이고 그러면 괜찮은 아빠트에 반듯한 새 살림을 처려놓을수 있을거야.”
선녀의 귀에는 옥금이의 오렌지빛 입술사이로 새여나온 간드러진 음성이 지금도 귀전에 울려오는듯 했다. 옥금이는 선녀의 친구이자 사랑의 적수였다. 3년전, 미모의 두 처녀는 인물체격이 엇비슷했으나 선녀쪽이 마음씨가 더 착했다. 그 착한 마음씨때문에 선녀는 경쟁에서 이길수 있었다. 련적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옥금이는 분김에 한번 만나본적도 없는 총각에게 급급히 시집갔다가 석달만에 리혼하고 홀로 나앉았다. 그때로부터 옥금이는 돈많은 사내들한테 붙어서 돈을 물쓰듯 했다. 그런 옥금이가 선녀와 성호가 잔치하기 전날인 오늘 돈 5만원을 가지고 선녀앞에 나타났던것이다.
“그 한국사장님 말이야. 잔치하는 색시를 실랑보다 먼저 차지해보는 기호가 있는데 여기에 돈을 아끼지 않아. 먼저 5만원을 주고 하루밤을 차지한 다음에 5만원을 더 준단 말이야. 하루저녁에 어디가서 10만원을 번단 말이야. 그래 넌 집도 없이 그냥 세방살이를 하겠니?”
옥금이의 이 말은 선녀의 정통을 찔렀다. 집!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에게 집보다 더 중요한게 뭐겠는가. 그런데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잔치나 치러주면 고작일 그녀의 부모나 신랑의 부모는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먹고 입고 쓰고나면 별로 남아돌것이 없는 그들의 몇푼 안되는 로임으로 집을 마련한다는것도 아득한 일이다. 여태껏 결혼잔치를 미룬것도 집때문이였다. 그러다가 더는 방법이 없어 세집을 맡아놓고 래일 잔치를 하기로 날자를 잡았는데…
“그게 그렇게 좋은 노릇이라면 넌 왜 못하고 날 꼬드겨? 네 눈엔 내가 그 따위 몸이나 파는 계집으로 보이던?”
선녀는 갑자기 목욕감에 온몸을 떨었다. 그러자 옥금이는 머루알같은 눈을 곱게 흘겼다.
“어머, 애두! 내게 그런 큰떡이 차려질수 있다면 그 좋은 떡을 내가 먹지 왜 너를 주겠니? 내가 먹을 자격이 안되니깐 너라도 먹으라는거지.”
“넌 사내를 꼬시는 솜씨가 이만저만 아닐텐데 왜 자격이 안된다구 그러니?”
“애두참, 하루밤에 10만원이란게 아무 녀자한테나 메치는 돈인줄 아니? 나같은 리혼녀는 어림도 없어. 그 김사장님은 잔치하기 전날밤인 신부를 특별히 애호하는 괴상망측한 기호가 있대. 바로 너 같은 준신부라면 고가로 산대. 이건 선금 5만원이고 일이 성사된후에 또 5만원을 마저 준대. 하루밤에 10만원 벌이가 어디 흔한 것 같니? 기회는 한번밖에 없어. 오늘밤만 지나면 너도… “
“그만 지껄이고 나가라!”
선녀는 돈묶음을 옥금에게 돌려주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나 옥금이는 개의치 않고 그냥 종알거렸다.
“뭐 상습으로 하라는것도 아니고 단 한번뿐이니깐 뒤탈이 없을거야. 그리고 이 일은 너하구 나하구 사장님 내놓구는 이 세상사람들은 누구도 모를거야.”
“너 사내들한테 잘 붙어먹더니만 인젠 뚜쟁이질까지 하는구나. 왜 친구를 팔아먹지 못해 안달이냐! 이 더러운 돈을 가지고 내앞에서 당장 꺼져라!”
“얘, 그렇게 성급하게 거절하지마.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없어. 싫으면 돈은 후날 돌려줘도 되니깐 김사장님과 저녁에 만날 시간까지 잘 고려해봐.”
옥금이는 김사장과 만날 지점과 시간을 적은 쪽지를 돈묶음과 함께 놓아두고는 급급히 나가버렸다.
“이 돈을…”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던 선녀는 뒤늦게야 돈묶음을 들고 따라 갔으나 옥금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 돈을 선뜻 돌려주지 못했는가. 그래 내가 돈의 유혹에 넘어갔단 말인가? 금전의 유혹에 빠져 정조를 팔아먹는 더러운 년이 되겠단 말인가. 아니야. 이 돈은 절대 가질수 없어. 돌려줘야 해! 그래 돌려주자!”
그러나 이 거금을 세여보는 선녀의 마음은 도무지 평온할수가 없었다. 그녀의 일생에서 앞으로 이런 큰돈을 다시는 쥐여볼것 같지 않았다. 옥금이의 말처럼 이 돈이 그녀의것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한번만 몸을 내던지면 세방살이 고생을 면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김사장과 만날 시간까지 선녀의 머리속에서 천사와 악마의 싸움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제 더 지체할수 없었다. 선녀는 돈묶음을 집어넣은 핸드빽을 들고 집에서 나왔다.
한창 걸어가던 선녀는 주춤거렸다. (내가 왜 이러는걸가? 변태색광인 김사장을 만나서 어쩌자는건지? 승냥이에게 먹히려고? 아니야. 난 지금 돈을 돌려주려 가는거야. 이 돈을 돌려주는 즉시 돌아올거야. 이 시한폭탄 같은 돈을 곁에 두고는 잠시도 안녕할수가 없어. 빨리 돌려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선녀는 택시를 잡아탔다.
50대의 호색한인 김사장은 생각밖에도 행동거지가 점잖았다. 선녀는 선뜻 돈을 꺼내놓지 못하고 귀신에게 홀린듯 김사장이 권하는 쏘파에 앉았다. 김사장은 사후에 주는 다른 돈 5만원을 꺼내보이며 자연스럽게 선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선녀는 (이럴바엔 어디 한번 눈 딱 감고 김사장의 품에 안겨볼가. 그러면 10만원 거금이 모두 내것이 될것이다.)라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였다. 김사장이 “요 내 신부! 요 내 각시!”라고 하며 입술을 덮칠 때 그녀는 덴겁한듯 몸을 떨었다. 성난 눈길로 쏘아보는 신랑 성호의 얼굴이 떠오른것이다. 아, 래일이면 결혼식을 올릴 신랑 성호! 사랑하는 성호에게 곱게 드려야 할 귀중한 첫날밤을 어찌 팔아먹을수 있단 말인가? 안된다. 절대 안된다! 선녀는 김사장을 콱 밀치고 벌떡 일어섰다.
“미안해요. 전 이 돈을 돌려주려 왔어요!”
“어, 그렇다면 난 절대 강박하지 않겠소. 여태껏 날 거절한 아가씨는 없었으니깐. 어디 잘 생각해보오. 10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요?”
김사장은 여유작작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선녀가 다시 품에 안기기를 기다렸다. 그는 남의 신부를 자기가 하루밤 먼저 차지하는것을 최대의 락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래서 1천만원을 미끼로 내던져 100명의 신부를 품어보려고 계획하고있는데 선녀가 벌써 스무번째였다. 먼저번의 녀인들은 돈의 유혹앞에서 모두 고분고분 말을 들었던것이다. 그는 선녀도 그러리라고 확신하고있엇다. 그런데…
“김사장님께서 신혼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파탄하는 그런 짓은 이젠 그만두세요. 녀자를 사겠으면 기생이나 사고요.”
그런데 뜻밖에도 선녀가 이렇게 충고하며 핸드빽에서 5만원을 집어내여 던지는것이 아닌가.
“아니, 아가씨! 아가씨…”
김사장이 황급히 불렀지만 선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녀는 마귀굴에서 벗어난듯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천근 같은 짐을 벗어던진듯 걸음걸이도 가벼웠다. 이 시각 선녀는 성호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성호는 지금 그들의 신방으로 정한 세집에 홀로 있을것이다. 선녀는 한시급히 그의 품에 안기고싶었다. 하루밤을 앞당겨 사랑의 감미로운 낚시밥을 훔쳐먹고싶었다.
선녀가 세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엔 불이 꺼져있었다. 돌아갈가 말가 망설이는데 안에서 웬 녀인이 애교를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난 끝내 성호씰 내 신랑으로 만들었어요. 선녀보다 내가 하루밤 먼저 성호씨와 신방에서 잔치를 하고있으니 난 사랑쟁탈전에서 이긴거야. 어때, 내가 성호씨 각시 옳지?”
“그래. 옥금이는 내 각시야! 선녀가 김사장한테로 가는걸 내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난 오쟁이를 지고도 모를번 했지. 옥금이가 알려줬으니 망정이지 그것도 모르고 난 선녀와 잔치를 치를번 했지. 제길 난 옥금이와 잔치하겠어!”
이어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남녀의 야릇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선녀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 통탄할 일이다! 신혼의 사랑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금전의 유혹을 물리치고 천금보다 귀중한 모을 지켰건만…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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