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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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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왜서 녀자와 아이를 먼저 구해야 할가 댓글:  조회:6467  추천:19  2014-04-20
왜서 녀자와 아이를 먼저 구해야 할가   김희수     해상에서 배가 침몰했거나 비행기가 추락할 위험이 있어 탈출해야 할 때에는 녀자와 아이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것이 지구촌상식으로 되고있다. 그런데 지난 4월 16일 8시 48분경에 한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의 황해상에서 발생된 세월호려객선침몰사고에서는 이런 지구촌상식이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서 승객들을 대피시켜야 했을 선장이 먼저 탈출했고 이어 항해사, 기관사 등 핵심선원들이 아이들을 선실에 대기하라고 남겨둔채 선두에 서서 살길을 찾아 탈출했다.   배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할 선장이 저 혼자 살겠다고 녀자와 아이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지구촌상식마저 무시한채 먼저 탈출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책임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아이들의 생사는 나몰라라 하고 먼저 탈출한 선장에게 도덕과 량심이란게 있는걸가?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또 빨리 대피해야 한다고 안내를 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22세의 녀성선원 박지영씨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배밖으로 거의 다 빠져나와 살게 된 상황에서 “살려달라”는 등뒤의 비명소리를 듣고 죽음을 무릅쓰고 친구를 구하려 뛰여든 단원고등학교 2학년 녀학생 김주아양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68세의 나이에 살겠다고 도망친 선장은 17세의 나이에 친구를 구하려고 삶을 포기했다가 안타깝게 사망된 김주아양의 소식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가?   선장은 학부모들이 “왜 살아 돌아왔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할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을 이끌고 세월호를 탔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단원고등학교 교감 강민규는 학부모들의 이런 항의를 듣고 자책하다가 “200명의 생사를 알수 없는데 혼자 살기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 내가 수학려행을 추진했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지역에 뿌려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가”라는 유서를 남기고 52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을 매 자결했다. 선장에게는 이런 자책감이도 있는걸가?   선장은 또 “녀자와 어린이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이 위기시의 구조순서를 만든 버큰헤이드호 선장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1852년 2월에 영국해군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伯肯黑德号)가 남아프리카로 가던 도중에 암초에 부딪쳐 침몰위기에 처했을 때 한척에 60명을 태울수 있는 구명보트는 세척밖에 없었다. 승객들은 모두 630명, 180여명밖에 구조될수 없는 상황에서 선장(함정의 상좌)은 모든 병사들을 갑판우에 모이게 한 뒤 부동자세로 서있게 하고 녀자와 아이들을 3척의 구명보트에 태우게 했다. 그리하여 어린이, 녀자, 병약자 193명이 살아남고 선장을 포함한 병사들이 전부 그대로 수장됐다. 그후로 “녀자와 어린이를 먼저 구하라”라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세계 모든 나라의 불문률이 되였다.   한때 중국에서 관중석을 꽉 메우며 상영되였던 영화 《타이타닉호(泰坦尼克号)》의 침몰사고는 1912년 4월 14일에 실제 일어났던 사고였다. 그 사고에서도 녀자와 어린이들에게 먼저 제한된 구명보트를 내주고 어른들과 선장, 항해사, 기관사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배와 함께 물속에 잠겼다.   이렇게 녀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하는것은 해상규칙과 전통일뿐만아니라 선장과 선원들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아이들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박지영씨는 해상규칙과 전통을 지켜고 의무와 책임을 다한 선장보다 더 선장다운 선원이다. 그런 의무도 책임도 없는 김주아양이 친구를 구하기 위해 삶을 포기한 행위는 책임보다도 자각이였을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의무와 책임은커녕 녀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버려두고 먼저 살길을 찾아 탈출했다.   왜서 위기상황에서는 녀자와 아이를 먼저 구해야 할가? 녀성과 아이는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리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은 인류의 미래이고 녀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주는 미래의 희망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인류의 미래도 인류의 희망도 나몰라라 하고 팽개치고 도망쳤다. 그들에게는 미래도 희망도 없다.          
30    좁쌀만큼 콩알만큼 댓글:  조회:5610  추천:9  2014-04-16
좁쌀만큼 콩알만큼   김희수     며칠전에 어느 음식점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데 건너쪽 술상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어떻게 뒤에서 그런 더러운 일을 다 하니?” “임마, 털어서 먼지 안 날만한 사람이 없다구 넌 그리 깨끗하니?”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는것을 들으면서 나는 나도 털면 먼지가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가 잡혀온 녀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의 룰법에 따르면 돌로 처 죽여야 하기때문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돌로 치려고 하자 예수는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둘러선 무리들이 량심에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젊은 사람들까지 모두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간음한 녀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자신들도 죄가 있었기때문에 모두 그 자리를 떠난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 량심에 얼룩 한점 없이 백지장처럼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것이다. 사람이 어느 한순간이거나 어느 한 과정에 한점 부끄럼이 없이 떳떳하게 살수는 있지만 옹근 일생에 거쳐 한점 부끄럼이 없이 살수는 없다.   량심에 얼룩 한점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수가 없다. 있다면 인간이 아니라 신일것이다. 적어도 모택동처럼 신격화된 경우일것이다. 우상화, 신격화 되였을 때의 모택동은 정말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으로 다시 돌아온 본 모습의 모택동은 량심의 백지장에 얼룩이 한점이 아니라 얼룩덜룩했다.   모택동의 공로와 과실을 놓고 볼 때 공이 7, 과가 3이라고 한다. 림표는 공이 5, 과가 5라고 한다. 물론 달리 보는 견해도 있지만 상술한 견해가 우세를 점한다. 그럼 최대악인이라 불리우는 히틀러는 죄만 있고 공이 없었을가? 아니면 공이 1, 죄가 9일가? 세인의 칭송을 받는 넬슨 만델라는 공이 9, 과가 1이였을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온 윤동주시인도 부끄럼이 한점쯤은 있었으리라. 윤동주가 말한 뜻은 “지금까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이 살아왔다”는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부끄러운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죽는 날까지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소망이였을것이다.   우리가 “윤동주는 부끄럼이 한점 없이 살아온 시인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윤동주를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 보는것이며 모택동신격화의 우를 범하는것으로 될것이다. 때문에 응당 “윤동주는 부끄럼이 한점 없이 살려고 노력한 시인이다”라고 해야 할것이다. 윤동주는 비록 바른 량심을 가지고 살았지만 조그마한 실수 같은것은 있었을것이다. 그런 조그마한 실수가 있을수 있는 윤동주이기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가깝고 친절하게 인간답게 다가오는것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범한 과오의 크기를 곡식이나 과일에 비한다면 윤동주나 만델라는 좁쌀이나 입쌀만큼 혹은 팥알이나 콩알만큼 될것이고 모택동은 귤만큼, 림표는 사과만큼, 히틀러는 수박만큼 될가? 물론 이는 정확한 비유라고 할수 없다. 대개 그렇다는 뜻이다.   내 자신을 놓고 볼때 부끄러움의 크기가 앵두만큼 될가? 귤만큼 될가? 사과만큼은 안될거라고 스스로 위안해보지만 내 깊은 속의 부끄러운 생각을 합쳐보면 사과만큼 되지 않을것이라고 장담할수는 없다. 비록 품고있은 생각뿐이고 행동으로 옮긴것은 아니지만 불쑥불쑥 .부끄러운 욕망을 가질 때가 이따금 있었다는것을 부인할수 없다.   정말로 부끄럼이 좁쌀만큼이나 콩알만큼 밖에 안되도록 일생을 산다는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부끄러운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죽는 날까지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바른 량심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죽는 날에 가서 부끄럼의 크기가 너무 부끄러울 정도로 늘어나지 않을것이다. 반면에 반성을 모르고 되는대로 살아간다면 부끄럼이 눈덩이 굴리듯 자꾸만 커져 어느새 수박만큼 될지 모른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많은 나는 아마도 죽는 날까지 윤동주의 서시를 항상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할가 보다.       
29    작년에 왔던 각설이 댓글:  조회:6231  추천:10  2014-04-14
작년에 왔던 각설이   김희수     날씨가 따뜻해지니 겨우내 보이지 않던 거지들이 눈에 띄인다. 거리에서 가련한 모습으로 구걸하는 거지를 보노라니 각설이타령이 생각난다.   얼시구 시구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봄이 오니 작년에 왔던 거지들이 또 연길에 몰려든 모양이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안쪽거지들이 또 왔다”고 말한다. 온몸에 때가 더덕더덕 묻어있고 꾀죄죄한 옷을 입은 거지가 동냥그릇을 앞에 놓고 구걸을 하고있다. 봄이 오면 제비와 함께 찾아오는것이 거지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건 반갑지만 “안쪽”거지들이 찾아온건 정말 보기싫다. 거지들이 길가에 엎드려 도시미관을 해치고있는 꼴이 정말 눈꼴사납다. 거지는 치안, 도시미관, 사회질서, 도시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이런 거지 대부분은 낮에는 거지 밤에는 신사다. 거지들이 낮에는 가련한 상을 하고 비락질을 하다가 밤에는 술집에 들어가 싼페이쑈제(三陪小姐)를 껴안고 논다는 사실이 여러번 증명된바 있다. 시민들이 동정해서 던져주는 돈이 거지의 생계유지에 쓰이는것이 아니라 거지의 향락을 만족시키는데 쓰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거지들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동정을 받는 거지가 동정을 해주는 자신들보다 몇갑절이나 더 부유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거지들이 모두 부자인것은 아니다. 정말 로동능력이 없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거지들도 있을수 있다. 하지만 동냥이 직업이 되여서는 안된다. 거지들을 동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거지들이 늘어날것이다.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자들이 동냥그릇을 들고 비락질에 나설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지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 동냥그릇에 돈을 던져주는데 이런 동정심은 거지무리들을 키워주는것이나 다름없다. 거지에게 동정을 베풀 필요가 없다. 이것이 너무 무정하고 인정이란 꼬물만큼도 없는 행위같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동정을 해줘야 될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야 한다. 전쟁시기에 전쟁고아들이 거지로 되는 경우는 응당 동정해주어야 하지만 평화시기의 현재 중국에서 동냥하는 거지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가엾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동정이 그들을 한평생 거지로 살아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면 자신이 하는 일이 잘된다는 말을 믿고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도와주는것도 진정으로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야 착한 일을 한것으로 되고 보답을 받게 될것이다. 거지는 도와줘야 될 대상이 아니기에 그들을 아무리 도와줘도 그건 착한 일이 될수 없다.   거지들을 죽으란 말이 아니다. 팔다리가 성한 거지들은 자기의 두손으로 벌어먹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로 로동능력을 상실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라면 그건 민정부문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정부에서 그런 거지들을 통일적으로 복지시설에 데려가야 한다. 전쟁시기의 거지들이라면 다른 문제이다. 재해가 생겨도 거지가 생겨날수 있지만 그건 잠시의 현상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여 거지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면 거지가 생길수 없다. 거지가 생존할수 있는 “토양”이 없기때문이다. 거지의 속성은 게으름, 일하기 싫은것, 공짜를 좋아하는것, 놀고먹는것이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거지들은 먹지 말아야 한다. 거지들의 동냥그릇은 언제나 텅텅 비여있게 해야 한다. 돈이 없고 먹을것이 없게 되면 거지들은 더는 생기지 않을것이다. 물론 단시일내에 거지를 없애려는것은 현실적이 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거지에게 동정을 베풀지 말았으면 하는것도 희망사항일뿐이다.   하지만 거지로 인한 사회문제는 간과할수 없는 문제이다. 거지는 심지어 범죄의 온상으로 되고있다. 두목이 있고 조직이 있는 거지무리들은 가정불화거나 여러가지 원인으로 가출한 아이들, 부모의 리혼으로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아이들, 버림받은 아이들을 받아들여 저들의 돈벌이수단으로 구걸에 내몰고있다. 또 거지두목들은 전국각지에서 장애인들을 끌어모아 구걸에 내몰고있다. 이런 거지무리들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악성종양이기에 깨끗이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불완전한 통계의 의하면 현재 우리 나라의 거지수는 100만명이상에 달한다. 최근에 북경에서는 《북경시궤도교통운영안전관리방법》을 공포했다. 이 법규에는 지하철 등 궤도교통역의 입구, 역내, 차안에서 구걸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여있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이 법규의 제정은 사실상 거지의 구걸자유권리를 박탈했다고 인정했다.   《법제일보》에 따르면 거지에게는 그 무슨 “구걸권”이 없다. 구걸행위는 사회도덕이거나 국가법률이 제창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 나라의 헌법에는 “구걸권”에 해당한 근거가 없다. 구걸의 권리는 우리 나라 법률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아니다. 또 구걸은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이 찬양하고 인정하는것이 아니며 일종의 도덕권리도 아니다. 거지가 손을 내밀 때 우리는 거지에게 시주를 할 의무가 없다. 우리가 거절을 했다고 해서 법률의 추궁을 받지 않으며 도덕여론의 질책을 받지 않는다.   행인들의 팔에 매달리며 애걸하는 류랑어린이거지, 장애인으로 위장하여 땅바닥에 기여다니면서 애처롭게 소리치며 손을 내미는 거지가 보이는 지구거나 도시는 관광객들도 눈을 찌프릴것이며 다시 오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또 오려고 하던 다른 관광객들도 소문을 듣고 오지 않으려고 할것이다. 이는 연길시를 관광도시로 건설하는데도 장애로 될것이다.   우리 주에서도 북경시와 같은 구걸을 제한하는 법규를 내와야 한다. 그리고 거지가 산생되는 빈곤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거지들이 발을 붙일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세워놓고있다. 우리 연변에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수 있는 사회구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도화해야 한다고 본다.     
28    수도열쇠 댓글:  조회:5634  추천:8  2014-04-04
수도열쇠   김희수     얼마전에 사무실에서 한담을 하던중에 생수얘기가 나와서 저마다 한두마디씩 하다가 화제가 수도물로 이어지면서 누구의 입에선가 “수도열쇠”란 말이 나왔다. “수도열쇠가 뭐예요?” 아직 30대에 들어서기전인 후배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40대에 들어선 후배도 수도열쇠란게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공공수도물이 있고 집집마다 수도열쇠가 있었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른다. 녀자들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어먹었고 남자들은 멜대를 어깨에 메고 물을 길어먹던 세월이 있었다는것을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른다. 그러니 수도열쇠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알 턱이 있겠는가?   그 시기 산골에서는 샘물을 퍼다 마셨고 시골에서는 우물을 길어먹거나 펌프물을 잣아올려 마셨으며 도시에서는 공공수도물을 길어먹었다. 수도물을 길어먹던 시절이 고달프기는 했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30여년을 살았던 고향 룡정에도 마을마다 공공수도물이 있었다. 물을 긷는 도구로는 주로 오지물동이, 바게쯔(원추형의 물통)와 바께쯔보다 용적이 배가 되는 원통형 물통이 있었다. 우리 집은 공공수도물과 거리가 좀 멀어서 물을 길어다가 물독에 채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기때문에 멜대에 물통 두 개를 달고 다니며 물을 길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물지게를 메고 물을 길으러 나섰다.   출근전 아침시간이거나 퇴근후의 저녁시간이면 공공수도물가에는 물을 길으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줄을 서야 했다. 사람이 줄을 서는것이 아니라 물통이 줄을 선다.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르고 낡은 정도도 서로 다른 물통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은 정말로 가관이였다. 그렇게 물통들을 줄 세워놓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남자들은 담배쌈지를 꺼내들고 담배쉼을 하고 녀자들은 시시껄렁 잡담을 하며 깔깔 웃어댄다. 그러는 사이에 어떤 사람은 남몰래 자신의 물통을 남의 물통앞에 놓고 새치기를 하는 일도 있었다.   수도물을 길으러 갈 때 잊지 말고 꼭 휴대해야 하는것이 바로 수도열쇠다. 이 수도열쇠는 어느 집의것이나 모양과 규격이 똑 같았고 어느 공공수도물이나 다 틀어서 물이 나오게 할수 있었다. 수도열쇠는 전체가 쇠로 만들어졌고 한뼘이 될만한 손잡이가 있다. 손잡이굵기는 치솔손잡이부분만큼 했고 손잡이우쪽은 기윽자모양으로 굽혀졌으며 손가락길이만큼 굽혀져있는 부분에 구멍이 뚫려져있었다. 그 구멍을 공공수도물의 웃쪽 옆부분에 쇠저가락 비슷하게 생긴것이 들여다보이는 부분에 꽂아넣고 손잡이를 슬쩍 틀면 수도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공공수도물 역시 어느 마을의것이나 똑 같았다. 지금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도물과 비슷했지만 수도관이 가정용수도관보다 더 굵었고 수도꼭지가 따로 없었다. 아이들 키만큼 한 수도관우에 “철갑옷”을 입혀놓고 우에는 “철갑모”를 씌워놓았는데 “철갑옷”속의 수도관과 이어진 수도관이 “철갑모”의 약간 아래부분쯤으로 한자쯤 나왔고 그 나와있는 수도관끝이 지금의 수도물처럼 아래로 향하도록 굽혀져있었지만 굽혀진 끝부분은 수도꼭지가 아니라 그냥 수도관과 이어진 부분이였다. 수도물뒤에는 하수도뚜껑처럼 덮어놓은 네모난 콘크리트뚜껑이 있었는데 그 두껑을 열면 우물 비슷한 내부가 보였다. 맨 밑에는 땅밑 수도관과 수도물의 수도관을 이어놓은 부분이 로출되여있었다. 일반적으로 수도물이 고장났을 때가 아니면 이 수도물뚜껑은 열지 않지만 마을의 장난꾸러기들이 수도열쇠를 가지고오지 않았을 경우에 여럿의 힘으로 수도물뚜껑을 열고 땅밑에 장치한 수도물여닫기와 이어진 쇠줄을 당겨서 수도물이 나오게 했다. 그렇게 수도물이 나오면 콸콸 흐르는 수도물에 입을 대고 마시기도 하고 여름이면 머리를 감기도 했다.   그런데 공공수도물을 길어먹던 일이 이제는 옛말이 되였다. 집집마다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공공수도물이 사라진지도 수십년이 되였고 수도열쇠도 자취를 감추어버린지 오래다. 갓 집에 상수도가 들어올 때만 해도 편안히 집에 앉아서 수도물을 받아먹게 됐다고 기뻐했는데 어느때부터인가 수도물을 직접 마시지 못하게 되였다. 도시의 수도물이 비록 시골의 샘물이나 우물물에 비할수는 없었지만 바가지에 받아서 꿀꺽꿀꺽 마시면 목구멍에서 배속까지 시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도물이 안전하지 못하게 되여 돈주고 물을 사먹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물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는 물을 돈주고 사먹는 시대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사먹는 물은 안전한가?   국가질감독검험검역총국 공식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 우리 나라 22개 성, 자치구, 직할시의 211개 기업에서 생산한 220종의 통포장 음용수(饮用水)와 병포장 음용수 제품을 추출하여 검사한 결과 6개회사 브랜드의 음용수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브롬산염(溴酸盐)이란 발암물질이 함유되여있는것이 발견되였다. 그외 12개생수회사의 브랜드에서 유리유효염소(游离氯), 대장균(大肠杆菌) 등이 불합격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총인구의 20%에 해당되는 2억 8천만명의 주민은 불안전한 음용수를 사용하고있어 음용수수질개선이 시급한것으로 나타났다.   돈주고 사먹는 물이 예전에 마시던 공짜물만 못하다니? 돈 주고 사먹는 생수보다 수도열쇠 하나면 공짜수도물을 마음놓고 안전하게 먹을수 있던 그때 그 시절의 물맛이 그립다.     
27    조물주는 왜 인간에게 잠을 주었나 댓글:  조회:5556  추천:11  2014-04-02
조물주는 왜 인간에게 잠을 주었나   김희수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살아있는 모든것들은 잠을 잔다. 식물도 동면하는 동물처럼 겨울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겨울잠을 잔다. 고급동물인 인간도 잠을 잔다.   전기가 없던 옛날에는 밤에 할일이 없었기에 모두 일찍 자군했다.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옛말을 하기도 했지만 일찍 잠을 자는게 습관이였다. 전기는 있었지만 텔레비죤이 없던 시기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오는 일도 있었지만 일찍 자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일찍 자고 일찍 깨여나는것이 보편적이였다. 그래서 일찍 자는 잠이 보약이라거나 일찍 자고 일찍 깨여나면 건강과 행복이 찾아온다는 말도 있었다.   집집마다 텔레비죤이 있게 되면서 잠을 자는 시간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오락장소가 생겨나면서 현대인들은 늦게 자는 습관을 가지게 되였다. 늦게 자도 이튿날의 출근 때문에 일찍 깨여나야 하기에 현대인들의 잠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인간의 적정수면시간은 7~8시간이다. 평균수명이 100세도 안되는 인생에서 3분의 1의 시간을 잠을 자야 하니 얼마나 아까운 시간인가? 이런 계산대로라면 만약 90세를 산다고 할 때 30년동안은 잠을 자야 하는것이다. 물론 하루 7~8시간보다 더 적게 자는 사람도 있고 더 많이 자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사람의 일생에서 잠이 차지하는 시간은 엄청 긴 시간이다.   인간에게 잠이 없다면 대개 30년은 더 사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잠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가? 조물주는 왜 고작 100년도 못사는 인간에게 30년을 허비해야 하는 잠을 주었을가? 잠이 없다면 인간은 더 많은 일을 할수 있고 더 많은 삶의 목표를 정해놓고 더 가치있는 삶을 살수 있을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30년쯤 죽은듯이 누워있어야 하는 잠을 주었을가?   천지만물을 창조한 조물주는 인간의 뇌가 피로에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잠을 준것이 아닐가? 인간의 뇌는 낮동안 지속적으로 각성상태에서 활동을 유지하며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필요한 판단을 내리느라고 지쳐있기때문에 잠을 통해 잠시 뇌를 휴식시켜야 한다.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잠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회복해주는 보약이다.   이렇게 잠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생리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있다. 조물주는 인간의 뇌를 휴식시키기 위해서만 잠을 준것일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조물주가 인간에게 잠을 준 또 다른 리유가 있을것 같다.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라는것, 대낮의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을 꾸라는것이 아닐가? 깨여나면 어디까지는 생시처럼 생생하고 어디까지는 아리송하고 어디까지는 기억나지 않는 미스터리한 꿈, 그것이 개꿈이던 돼지꿈이던 또는 흉몽이던 길몽이던 꿈이 있어서 잠이 의의가 있는것이 아닐가? 그러고 보니 잠도 삶의 일부분으로 인생의 3분의 1이 아깝게 허비되는것이 아닌것 같다.   밤이 깊었다. 컴을 끄고 잠을 자야겠다. 피로도 풀고 생시와 또 다른 신비하고 미스터리한 꿈을 꾸기 위해…      
26    새 생명의 탄생 댓글:  조회:6208  추천:14  2014-03-28
새 생명의 탄생   김희수     3월에 들어서며 련이어 출산소식을 접했다. 먼저 동료가 미국에 있는 자신의 녀동생이 두번째 아이를 낳았다며 스마트폰을 들고와 갓난 녀자아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뒤이어 출산휴가기간 중이던 동료가 남자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이 웨이신(微信)에 아기사진과 함께 올랐다. 귀여운 아기사진들을 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에 저절로 깊은 감동을 느꼈다.   새 새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서 성스러운것이고 새 생명을 창조한 어머니는 그 자체로서 위대한것이다. 배속의 아기를 세상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곡경을 치르는 어머니, 마침내 세상밖으로 나와 힘찬 고고성을 울리는 갓난아기, 꼼지락거리는 작은 생명…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여났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모두 그렇게 새 생명을 창조했다.   녀성은 모진 출산의 진통을 경험하면서 어머니로 된다. 어머니로 되는 과정은 자연 분만일 경우 진통이 시작되고 나서 자궁경부가 완전히 열리게 되는 첫고비, 자궁경부가 완전히 열리고 나서 태아가 만출되기까지의 두번째고비, 태아만출후 태반이 나올 때까지의 세번째고비, 태반이 만출까지 이루어진 뒤 분만후 1시간 동안의 네번째고비의 산통을 극복하는 그야말로 사선을 넘나드는 과정이다.   어머니가 되는 과정도 힘들지만 아버지로 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출산을 위해 모진 진통을 겪는 안해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다는게 한스러워 산실밖에서 바질바질 속을 끓이면서 산모와 아기가 모두 무사하기를 속으로 비는 그 심정, 마음속으로 안해를 응원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아기가 태여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심정, 아들일가, 딸일가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 심정…     그러다가 “응애”하는 갓난아기의 힘찬 고고성이 들리고 간호사가 산실밖으로 나오면 아버지가 된 기쁨에 막 달려가고… 그런 애아빠의 심정을 아는 간호사가 묻기전에 먼저 “순산입니다”하고 알려주면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다음에 간호사가 “고추입니다”하고 알려주는 경우에는 너무 기뻐서 퐁퐁 뛰고 “산모와 아이가 모두 무사합니다”하고 말하는 경우에는 딸이란걸 알고 서운해하던 그 심정…   물론 어머니가 되는 과정은 아이를 잉태해서부터 출산하기까지의 10개월정도가 모두 포함된다. 아니, 결혼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시작해서 아빠, 엄마로 되는 준비과정일것이다. 그러다가 임신하게 되면 녀자는 엄마가 될 마음가짐으로 배속아이에게 태교를 하고 남자는 안해의 배에 귀를 대보기도 하고 점점 커져가는 안해의 배를 보면서 아빠가 될 꿈에 젖어있을것이다.   결혼하는 신랑신부에게 어른들은 한결같이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덕담을 한다. 일단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커플들은 마음속에 조만간에 엄마, 아빠로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품고있을것이다. 결혼전에 아이를 가질수도 있고 결혼해서 몇년후에 아이를 낳으려고 했지만 뜻밖에 임신하여 엄마, 아빠가 될수도 있다. 결혼한 부부는 잉태소식을 알게되면서부터 부모로 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요즘 임신부들은 대부분이 제왕절개분만을 선택한다고 한다. 출산예정일과 가까운 날에서 길일을 선택해 출생일을 미리 정해놓기도 한다. 예전에는 출산예정일은 알았지만 출생일은 미리 알수 없었다. 아이가 어느날에 태여나는지는 하느님도 미리 알수 없었다. 출산예정일이 되여 산통이 심해지는 등 증상이 나타나면 산부인과에 가는것이고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아이가 태여나는 날을 확정할수 있었다. 그래서 밭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고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자연분만시대에 있은 자연의 섭리에 맞는 출산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제왕절개분만을 하기에 출생일까지 미리 알수 있다. 아이가 태여나는것은 원래 신비한 일인데 출생일을 미리 알면 신비롭지 않다. 게다가 아이의 성별까지 미리 알고있으니 “아무날에 남자아이(혹은 녀자아이)를 낳겠군”하고 점쟁이가 된 기분이니 아이의 출산은 조금도 신비롭지 않다.   제왕절개분만은 정상적인 자연분만을 할수 없는 경우에 선택하는 방법이지만 지금은 자연분만을 할수 있는 녀성들도 제왕절개분만을 선택한다. 자연분만으로 안전하게 출산할수 있을가? 출산후 몸매가 망가지지 않을가? 많은 녀성들이 이런 우려를 가지고 아름다운 몸매를 보전하고 안전하게 출산하기 위해서 제왕절개분만을 선택한다고 한다.   자연분만은 출혈이 적고 감염이 적고 회복이 빠른 등의 장점이 있다. 녀성의 몸은 그 자체가 아무런 도움이 없이 스스로 분만을 할수 있도록 만들어져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서 출산하는 녀성도 있는가 보다. 복중의 태아 또한 산도를 통해 세상밖으로 나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상 엄마와 아이의 노력으로 출산을 완성하는 자연분만은 아주 자연스러우며 건강한 분만방법인것이다. 그러니 난산위험이 없는 경우 자연분만에 대한 확신을 가져보는것이 좋을듯 싶다. 그것이 더욱 엄마다운 엄마로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요즘의 많은 산모들은 제왕절개분만을 선택하기에 네가지 고비를 넘는 힘겨운 출산의 진통을 모른다. 요즘의 아버지들은 아들일가 딸일가 하고 산실밖 복도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신비로움을 모른다.   우리들의 생일을 “어머니가 곡경을 치른 날”이란 뜻의 “모난일(母难日)”이라고 하는데 요즘 태여나는 아이들의 생일을 진정한 의미의 “모난일”이라고 할수 있을가?   아무튼 새 새명의 탄생은 성스럽고 경이롭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세상은 지금보다 나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였으면 좋겠다. 그들이 엄마, 아빠가 되여 새 생명을 탄생시킬 때에는 좀 더 신비로움을 느끼면서 잊지 못할 추억이 남을 과정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없는 세상일지라도 새 생명은 영원히 태여나니깐.     
25    지금은 잠에서 깨여나야 할 때 댓글:  조회:5680  추천:4  2014-03-19
지금은 잠에서 깨여나야 할 때   김희수     “빨리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가야지?” 누구나 어릴 때는 늦잠을 깨우는 엄마의 소리를 들었을것이다. 또 자라서는 “따르릉”하는 자명종소리에 깨여나 서둘러 밥을 먹고 부랴부랴 출근도 했을것이다. 지금은 자명종대신 스마트폰기능을 리용하겠지만.   어쨌든간에 잠을 깨우는 소리가 들리면 잠을 더 자고싶어도 일어나야 한다. 배설하고 씻고 밥먹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잠을 깨우는 소리가 분명 들리는데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분명 잠에서 깨여나라고 웨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말이다.   “2010년에 전국의 조선족인구가 183만 929명으로서 2000년의 192만 3842명에 대비해 4.83% 줄었다, 해방초기에 조선족인구비률이 63.4%를 차지했던 연변이 2012년의 조사에서 조선족인구(79만8000명)비률이 36.65%밖에 안되였다. 이런 인구감소세가 지속되고 그 흐름을 완화하는 대책 부재가 지속되면 중국조선족이 자기 민족정체성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연변에서 1만 9500여쌍이 결혼등기를 하고 7800여쌍이 리혼을 해 리혼률이 40%에 달했다.”   “조선족학생수가 급감하면서 최근 20년 새 90%이상이 문을 닫아 중국내 조선족학교가 위기에 처했다.”   중국조선족의 정체성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우리의 잠을 깨운다.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면 정신을 차리고 무관심의 잠에서 벌떡 깨여나 관심의 창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면 조선족사회의 현황도 보일것이고 위기에 대처할 고민도 하게 될것이다.   조선족중에 일부 사람들은 “조선족인구가 줄어들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람?”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도 그들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것이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신이 조선민족이라는 잠재의식이 자리잡고있을것이다. 때문에 이들을 무감각, 무관심이란 발편잠에서 깨여나게 하여 관심의 창문을 열어준다면 이들도 마음속으로 조선족인구가 즐어들지 않고 늘어나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천세만세 자치권리를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바랄것이다.   위기가 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항상 무관심의 잠에서 깨여나 관심의 창문을 열어둔다면 위기의 고비를 얼마든지 넘길수 있을것이다. 또 위기가 왔다고 해서 거창하게 “위기가 왔다”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위기에서 벗어나자”고 구호만 웨쳐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언론에서 목소리도 높여야 하지만 높은 목소리보다 자그마한 실천이 더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언론과 학자들이 힘을 합쳐 정부의 노력과 실천을 이끌어내는것이 중요하다.   조선족사회 구성원들은 가정의 해체를 막는 일부터 시작하면 길이 열릴것이다. 가족끼리 모여앉아 따뜻한 밥을 먹고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손을 꼭 잡고 놓치 말아야 한다. 모두가 이렇게 가정을 지키는 일부터 시작해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간다면 중국조선족사회의 앞날은 희망이 있을것이다.   바야흐로 봄이 다가오고있다. 이제는 긴긴 동면에서 깨여날 때다. 겨우내 잠자던 앙상한 나무들도 슬슬 깨여나 파릇파릇 새싹을 내뿜으려 하고있다. 우리도 이제 무관심의 잠에서 깨여나자. 관심의 창문을 열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그러면 인터내셔널가(국제가)의 선률이 들릴것이다.   일어나라 굶주린 노예들 전세계 로고대중들! 우리의 피가 끓어넘친다 진리를 위해 싸우자! 낡은 세계 짓부셔버리고 노예들 일어나라! 짓밟혀 천대받던자들 천하의 주인이 되리!   이는 판가리 싸움 굳게 뭉쳐 앞으로 인터내셔널을 기어코 실현하리   우리는 하느님도 신선도 임금도 밎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제손으로 인류의 행복 창조하리   로동의 열매를 찾자면 철창을 부시고 나와 불길을 올려 쇠를 단김에 두드려야 성공하리!   이는 판가리 싸움 굳게 뭉쳐 앞으로 인터내셔널을 기어코 실현하리     프랑스의 시인이자 빠리꼼뮨(파리코뮌)의 혁명가인 외젠 에덴 포티에(欧仁·鲍狄埃)가 1871년 6월에 작사하고 로동계급의 작곡가 피에르 드제이테(皮埃尔·狄盖特)가 1888년 6월에 곡을 붙인 무산계급을 각성시킨 노래이다. 한국의 번역본, 조선의 번역본, 중국조선족의 번역본은 가사가 서로 다르다. 조선의 번역본은 일역한 일본의 《국제가》를 조선어로 번역한것으로 알려졌고 중국조선족의 번역본은 중역한 중국의 《국제가》를 조선어로 번역한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국제가의 가사를 다음과 같이 고쳐보았다.   일어나라 중국조선족들 전세계 우리 동포들 우리의 피는 하나이다 자랑찬 단군의 후손들 서로의 불신임을 버리고 겨레들 단합하라 이 세상 어디에 살던지 우리는 중국조선족   이는 우리의 사명 세세대대 이어가며 민족의 얼과 뿌리 영원히 지켜가리   우리는 요행도 다행도 천운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제손으로 우리의 력사 창조하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엄마곰 아빠곰 아기곰이 다같이 아리랑을 부르며 이 땅의 주인이 되자!   이는 우리의 사명 세세대대 이어가며 민족의 얼과 뿌리 영원히 지켜가리!   이제 우리 모두 중국조선족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세세대대로 이 땅에서 민족의 얼과 뿌리 영원히 지켜가자.    
24    현대련애 기술이 필요없다 댓글:  조회:6369  추천:7  2014-03-12
현대련애 기술이 필요없다   김희수     마음에 드는 엠나가 있어 련애편지를 좀 써달라고 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예전에 남자들은 이성에 대해 호감을 가질 나이가 되면 녀자를 꼬시는 련애기술을 알고싶어했다. 그때는 왜서 계집아이를 이르는  평안도, 함경도 방언인 “에미나이”에서 온 “엠나”거나 경상도, 전라남도의 방언인 “가시나”에서 온 “간나”를 녀자를 낮잡아보는 말로 여기면서 사용했는 모르겠다. 게다가 어떤 때는 “엠나”, “간나”의 뒤에 새끼라는 말까지 붙여서 불렀다. 하여튼 련애할 나이가 되면 선배거나 녀자를 잘 꼬시는 친구한테 가서 련애기술을 배우려고 했다.   녀자를 꼬시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련애편지로 꼬시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로 꼬시는것, 그러니까 련애기술이란 련애편지 잘 쓰는 기술과 말 잘하는 기술이라고 해도 무방할것이다. 뭐 녀자의 성격에 따른 공략방법이라든가 녀자의 호감을 사기 위한 작전이라든가 하는 고급기술이야 어찌 일반인들이 알고있었겠는가?   물론 친구들과 짜고 “영웅이 미인을 구하는(英雄救美)”식의 연극을 꾸미는 일도 있긴 있었지만 주된 기술은 그래도 련애편지와 말재주였다. 구변이 좋은 남자들도 처음에는 련애편지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녀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미사려구를 많이 사용했는데 글재주가 모자라는 친구를 위해 련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좀 글깨나 쓴다는 친구가 있으면 련애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매달릴정도였다.   잘 쓴 련애편지에 혹해 넘어오는 녀자들도 적지 않았다. 말주변이 좋은 남자들은 먼저 련애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다음에 녀자가 사귀기를 원하면 말재주로 녀자를 꼬셔서 결혼에 성공하는 반면에 언변이 없는 남자들은 련애편지를 무기로 꾸준히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이렇게 련애편지와 말재주가 련애의 성패를 좌우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편지지에 친필로 한글자 한글자 정성들여 써서 편지봉투에 넣고 수신인과 발신인의 주소를 상세히 적은후 우표를 착 붙여서 부치는 우편편지는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그대신 스마트폰기능을 리용한 인터넷채팅이거나 문자메시지가 대세여서 이제 더는 련애편지를 쓰는 기술이 필요없게 되였다.   련애기술도 필요없게 되였다. 스마트폰 하나면 다 통한다. 편애편지도 스마트폰으로 대신할수 있고 말재주도 스마트폰으로 대신할수 있는 세상이 왔다. 간단한 문안문자는 누구나 다 쓸수 있고 미사려구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시로 복사해 보낼수 있다.   또한 말재주도 필요없게 되였다. 예전에 녀자와 마주앉으면 떨려서 말을 잘 못하는 남자들은 장가 가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보급으로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서도 대화를 주고받을수 있기에 녀자앞에서 떨려서 말을 잘 못하는 남자들도 대답하게  의사를 표시할수 있게 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스마트폰시대에 들어서면서 련인들이 마주앉아도 긴 대화가 필요없게 된것이다.   련인들이 단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에는 남자가 대화를 리드하고 이끌어가야 한다. 녀자의 성격과 취향에 맞게 흥미로운 화제로 대화를 리드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예전에는 언변이 없는 남자들이 결혼전에 녀자친구와 단둘이 오래 앉아 이야기하게 되는 빈집, 공원, 강변 같은 데이트장소를 될수록 피하려고 했다. 1990년대중반부터는 다방 같은 장소도 포함되였다. 하지만 지금은 언변이 없는 남자라고 해도 녀자와 단둘이 있는 데이트장소를 피할 필요가 없게 되였다.   지난해 가을에 친척집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먼 조카벌이 되는 총각이 녀자친구를 데리고왔다. 총각이 말재주가 없어서 총각의 어머니는 근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총각과 처녀가 단둘이 앉아있는 방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대화를 엿들으려고 했지만 두 사람이 한시간이 지나도록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있더란다.   보고있기가 하도 민망하여 강변에 나가 바람을 쏘이라고 권했는데 두 사람을 보내놓고 궁금해서 몰래 따라가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더니 또 한시간이 지나도록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앉아있더란다. 녀자가 돌아간후 총각의 어머니가 아들을 보고 둘이서 뭘 했느냐고 물었더니 손에 든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걔는 걔대로 나는 나대로 이걸 보며 놀았어요”라고 말하더란다. 총각의 어머니는 아들이 퇴짜를 맞을가봐 몹시 근심했다. 그런데 처녀쪽에서 총각이 마음에 든다며 오는 “5.1”절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할줄을 누가 알았으랴…   스마트폰 하나면 다 통하는 세상, 정말로 편리한 세상이 왔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대화도 필요없게 되였다. 사무실에서도 스마트폰화면, 모임장소에서도 스마트폰화면,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프폰화면에만 정신이 팔린 현대인들에게 이제 련애마저 기술이 필요없게 되였다. 언변이 없어도 장가를 못갈가봐 근심할 필요도 없게 되였다. 사랑하는 커플끼리 마주앉아도 벙어리처럼 말없이 스마트폰화면만 바라보는 세상, 날씨는 많이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차갑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23    한국에 김연아 박지성이 있어야 하는 리유 댓글:  조회:5916  추천:6  2014-03-08
한국에 김연아 박지성이 있어야 하는 리유   김희수     한국인들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오직 나 자신만 믿는다. 한국인들에게는 믿음을 주는 인물이 없기때문이다. 한국에는 몽골인을 하나로 뭉치게 한 칭기즈칸 같은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가 될만한 인물이 없다. 대통령도 믿지 못한다.   대통령 해먹기 가장 힘든 나라가 한국인것 같다. 한국 력대대통령중에 리승만(이승만)으로부터 시작해서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로태우(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로무현(노무현), 리명막(이명박), 박근혜까지 욕먹지 않은 대통령이 한분도 없다. 현직때도 욕, 은퇴해서도 욕을 먹는다.   한국에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욕먹는게 기본”이라는 말도 있다. 한국인을 만족시킬 대통령은 이 지구상에는 없을것이다.   대통령도 믿지 못하는 나라, 대통령도 믿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굴 믿고 살가?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다”라고 하는 단군도 한국인들을 하나로 단합시키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한국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지 못한다.   그런 한국인들이 놀랍게도 한강의 기적을 창조하였고 전세계에 한류열풍이 일어나게 했으며 2002년 월드컵에서는 전세계에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었다. 수십만명의 한국인들이 길거리에서 한마음이 되여 붉은 물결을 이루며 열띤 응원을 펼쳤던것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응원을 끝내고 가버린 자리에 쓰레기 한점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당시에 전세계는 하나로 뭉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놀라면서 무한한 감동을 느꼈던것이다.   한국인들을 하나로 단합하게 만든 힘은 무엇이였을가? 모르긴 해도 그후에도 피겨녀왕이라고 불리우는 한국 피겨스케이팅(花样滑冰) 선수 김연아, 산소탱크(氧气瓶)라고 불리우는 한국 축구선수 박지성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아볼수 있지 않을가?   평소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한국인들이지만  김연아와 박지성을 응원할 때면 한마음이 된다. 평소에는 그렇게 한마음이 될수 없다는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연아가 이미 은퇴했고 박지성이 한국국가대표팀은퇴를 확인했다. 이 시점에서 제2의 김연아, 제2의 박지성이 빨리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모래알 같은 한국인들을 누가 한마음으로 뭉치게 하겠는가?     
22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댓글:  조회:6015  추천:5  2014-03-06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김희수     사람의 의식속에는 무수한 만약이라는 가정이 존재하고있다. 그래서 유감을 남기고 살아온 사람들은 한번쯤은 자신이 걸어온 과거에 대해 돌이켜보면서 “만약 내가 애초에 공부를 좀 더 했더라면 좋은 대학에 갔을텐데… 만약 내가 명문대학을 나왔더라면 출세하여 돈도 많이 벌고 지금의 집보다 더 큰 집을 마련하고 지금의 차보다 더 호화로운 차도 마련하고 지금의 안해보다 더 예쁜 녀자와 결혼했을텐데…”하고 만약이란 가정아래 자신의 과거를 장미빛과거로 다시 설계해볼 때가 있을것이다.   크게 유감을 남기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은 또 그들의 나름대로 “만약 부모가 나에게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더라면…만약 은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만약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내 손을 잡아주는 친구가 없었더라면…만약 내가 넘어지고 좌절했을 때 희망의 등대가 되여준 안해와 아이들이 없었더라면…인생을 포기했더라면…”하고 자신의 오늘을 만들어준 과거를 고맙게 생각할것이다.   사람의 일생도 그렇지만 사람의 하루에도 무수한 만약이라는 가정아래 수많은 다른 하루를 꿈꿔볼수 있다. 만약 내가 출근시 택시를 타지 않고 뻐스를 탔더라면…만약 내가 이쪽 길로 가지 않고 저쪽 길로 갔더라면…만약 내가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만약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만약 내가 서양음식점에 가지 않고 한식점에 갔더라면…만약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만약…만약…   력사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나뽈레옹(나폴레옹)이 유럽 전체를 제패했더라면…만약 히틀러가 쓰딸린(스탈린)을 이겼더라면…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북부를 이겼더라면…레닌의 10월혁명이 실패했더라면…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정권을 장악하지 않았더라면…걸프전쟁(海湾战争)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쏘련(소련)이 해체되지 않았더라면…만약…만약…   만약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지 못했더라면…항우가 류방(유방)을 이겼더라면…류비(유비)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리자성이 승승장구의 기세로 청을 물리쳤더라면…오삼계가 청에 투항하지 않았더라면…만약 홍수전의 태평천국이 승리했더라면…손중산이 신해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장작림이 일본군이 일으킨 폭발사고로 죽지 않았더라면…모택동이 장개석을 물리치지 못했더라면…만약…만약…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만약 조선이 일본의 메이지유신보다 더 먼저 근대화를 실현했더라면…만약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지 않았더라면…만약 6.25전쟁에서 어느 일방이 이겼더라면…만약…만약…   만약 중국에서 8.15광복을 맞았을 때 조선반도(한반도)로 돌아갔던 근 100만명의 우리 민족이 귀국하지 않고 동북에 남아 조선족자치구를 지켜냈더라면…1960년대 초기에 조선족들이 조선으로 건너가지 않고 조선의 민초들이 중국 연변으로 대거 건너왔더라면…계획생육정책인지 산아제한정책인지 내려왔을 때 조선족들도 한족들처럼 아이 셋을 낳던 넷을 낳던 서로 눈을 감아주었다라면…개혁개방바람이 불었을 때 시골처녀들이 도시나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시골총각들과 결혼하여 아이 낳고 살았더라면…만약…만약…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것이다. 만약이란 가정이 존재한다면 결과는 좋은쪽으로 달라질수 있고 나쁜쪽으로 달라질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력사에는 만약이란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일생도 마찬가지이다. 유감을 남기든 다행을 남기든 지나가면 그뿐이다. 력사도 인생도 한번뿐 다시 오지 않는다.   만약이란 가정아래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볼 때 유감스러움이 적고 다행스러움이 많은 한생이 되도록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살아가는것이 인생의 지혜가 아닐가 생각해본다.    
21    댓글손님도 손님이다 댓글:  조회:7008  추천:4  2014-03-04
댓글손님도 손님이다   김희수     댓글에 대한 론쟁은 이미 많이 언급되여온 케케묵은 주제이지다. 하지만 댓글이 존재하는 한 계속 말해야 할 론쟁이기도 하다.   인터넷은 누리군(누리꾼 또는 네티즌)들의 세상이다. 누리군들이 자기의 세상에서 댓글을 다는것은 자유이다. 이 자유를 막을수도 없고 또 막아서도 안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건전한 댓글문화를 만들수 있느냐 하는것이다.   인터넷에 오른 원문에 대하여 짤막하게 답하여 올리는 글을 댓글이라고 한다. 그럼 인터넷을 방문하여 댓글을 남기는 누리군을 댓글손님이라고 할수 있고 인터넷에 원문을 올리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할수 있다. 건전한 댓글문화를 만들려면 주인과 손님이 다 함께 노력하여 주인이 주인답고 손님이 손님다운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주인은 주인다운 주인으로   우리 민족은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것으로 소문났다. 주인은 우선 찾아온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해야 한다.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 카페를 방문하여 글을 남기는 댓글손님을 환영해야 한다. 그것이 주인다운 태도이다. 만약 댓글이 싫고 “벙어리손님”만 환영한다면 번번히 댓글을 지우느라 고생하지 말고 “댓글은 일체 사절, 눈팅만 환영!”하고 홈피나 블로그의 상단에 큼직하게 밝혀놓는것이 좋을듯 싶다. 또 의견을 표명하거나 오류를 지적해주는 댓글이 싫다면 “의견표명, 오류지적은 사절, 칭찬댓글만 환영!”하고 밝혀놓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된다. 소통을 하지 않을것이면 그냥 이메일에 글을 쓰는것이 좋을것이다. 물론 악성댓글일 경우는 주인의 마음에 따라 삭제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잡지나 신문에 발표된 글도 독자들이 모두 평가할수 있다. 그런데 잡지나 신문에 독자란이 없는한 독자들의 목소리가 작자나 다른 독자들에게 전해질수 없는것이다. 어느 평론가가 그 글을 평론했다고 할 때 작자는 칭찬해주기만 바랄수 없다. 그럴 경우 평론가가 잘못을 지적해주고 대안을 제시해주었다고 해서 그 평론을 사전에 막을 권리도 없다.   인터넷에 올린 글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놓고 눈팅만 하라고 강요할수는 없다. 또 칭찬댓글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주인다운 태도가 아니다. 하늘우에 하늘이 있다고 자신이 아무리 유명한 인물이라고 하여도 누리군들속에는 평론가 못지 않게 더 수준이 높은 댓글손님도 있을것이다. 때문에 댓글손님의 의견표명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될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댓글손님을 례절스럽게 대하지 못한적이 있다. 그 댓글이 인격모욕, 인신공격이고 오유가 있는 오류지적이라고 생각되여 신경이 좀 예민해졌던 같다. 하지만 너그럽게 용서하지 못한점을 반성해본다.   물론 손님중에 반갑지 않은 손님도 있을것이다. 술주정을 부리고 욕설을 퍼붓는 손님도 있을것이고 폭언이나 망언을 일삼는 손님도 있을것이다. 집에 찾아온 손님은 술주정을 부려도 나중에 찾아오는 다른 손님들이 그가 어느 정도로 어떻게 술주정을 부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 찾아온 댓글손님은 다르다. 술주정을 부렸다면 술주정을 부린 흔적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기때문이다.   때문에 작자가 자신의 글에 달아놓은 댓글을 지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누가 댓글에 주인의 글을 형편없는 글이라고 평가했다고 해서 좋은글이 형편없는 글이 되는것이 아니고 누가 댓글에 주인의 글을 좋은글이라고 평가했다고 해서 차한 글이 좋은글이 되는것도 아니다. 누리군들도 다 제마끔의 사유가 있기에 댓글의 평가에 따라 그 글을 좋다 또는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을것이다. 누리군들은 객관적으로 그 글을 보고 댓글평가의 옳오그름을 판단할것이다. 물론 악의적인 댓글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조성하여 글에 대한 관점을 외곡하게 할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가 념려된다면 반박하는 댓글을 달아놓으면 될것이다.   댓글손님이 술주정을 부리고 욕설을 퍼붓는 경우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다면 다음번에 찾아올 때는 례절을 지키는 좋은 손님으로 될수 있도록 그 손님이 남긴 댓글에 대해 “방문해주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댓글을 좀 문명하게 달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답복하는것으로 잘 달래야 한다.   폭언이나 망언도 한두번쯤은 용서해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당신이 남겨놓은 댓글은 당신의 인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라는 댓글로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습관이 되여 폭언이나 망언을 일삼는 손님에 한해서는 “이런 추태는 두번 다시 환영하지 않습니다”라고 다음번 방문을 사절해야 한다.   주인도 다른 블로그나 카페로 방문하면 손님으로 될수 있다. 자신이 당했다고 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주인에게 갚아주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그런 손님이 싫었으면 다른 주인들도 그런 손님을 싫어한다는것을 알고 문명한 손님으로 되여야 한다.     손님은 손님다운 손님으로   주인도 주인자격을 갖추어야 하지만 댓글손님은 더욱 더 손님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어디가나 환영받는 손님이 되려면 도덕적 책임과 량심을 지켜야 한다. 글을 쓴 사람과 견해가 다르면 충고할것은 충고하되 가능하면 고무격려해주고 용기를 주는 댓글을 달아야 한다. 리성적으로 판단하고 댓글을 달아야지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댓글을 남기기전에 세번 다시 랭정하게 생각해보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것이 댓글손님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남의 집을 방문하여 술주정을 부리며 자기가 댓글에 배설해놓은것이 오줌인지 똥인지 모르는 손님답지 않은 손님이 되여서는 안될것이다. 악플은 사람을 죽일수도 있을 정도로 위해성이 크다. 특히 유명인이나 연예인이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근거도 없는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실제로 있었던것처럼 만들어 무차별 집중공격을 하는 악성댓글때문에 최진실이 자살하지 않았던가. 악성댓글에 시달리면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수 있다.   이런 댓글손님은 손님답지 못한 손님으로 악플페인(악의적인 댓글인 악플을 올리는 일에 중독되여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사람)이라고 한다. 악플페인은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같이 결국에는 사회적 페인이 될것이다. 악성댓글을 올리기 시작하면 결국엔 페인이 되고만다. 남 잡이가 제 잡이 되는것처럼… 누리군마다 악성댓글의 아픔을 가슴에 새겨서 건전한 댓글문화를 만들어간다면 악플이 없는 따뜻한 온라인세상이 되지 않을가 싶다.       
20    녀성의 달 댓글:  조회:6133  추천:6  2014-03-01
녀성의 달   김희수     3월은 녀성의 달이다. 예전에는 3월 8일 하루만 녀성의 날이였지만 최근 몇년간은 3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옹근 3월이 모두 녀성의 날로 되였다.   예전에 녀성들은 1년에 “3.8”절 하루만 녀왕대접을 받았다. 녀왕대접이란것도 별게 아니였다. 그날 하루 남편이 지어준 밥을 먹는게 고작이였다. 그래도 녀성들은 좋다고 그날만은 진짜 녀왕이라도 된것 같아서 우쯜댔다.   이 날이 되면 녀성들은 널찍한 집을 가진 동료의 집에 모여 색다른 음식을 해놓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겁게 놀았다. 물론 남성들을 청하여 함께 즐겼다. 남성들은 녀성의 명절을 축하해준다는 명의로 먹고 마시며 한바탕 춤추며 놀았다는데 도대체 누구의 명절인지 알수 없었다.   이렇게 남성들도 녀성들의 명절에 합세하면서 “3.8”절을 앞당겨 쇠는 일이 생겼고 그렇게 앞당겨 쇠고 나니 정작 3월 8일이 되면 또 입이 궁금하고 배가 출출하여(사실은 술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더 쇠고 본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후, ‘3.8’절을 보내니 왠지 모르게 섭섭한데 한잔 하지비”하고 또 한번 “3.8”절을 더 쇤다.   이렇게 “3.8”절을 앞당겨 쇠는것을 “’3.8’절을을 맞이한다(迎三八)”고 하고 “3.8”절이 지나서 쇠는것을 “’3.8’절을 보낸다(送三八)”고 한다. 처음에는 “3.8”절을 3월 5일부터 시작해 앞당겨 쇠다가 점차 3월 3일로 앞당겼다. 그러다가 아예 3월이 시작되는 첫날인 3월 1일부터 앞당겨 쇠는 바람이 불고있다. 그것도 한번 앞당겨 쇠는것이 아니라 서너번은 앞당겨 쇠고있다. 친구들과 쇠고 동료들과 쇠고 가족들과도 쇠고…이렇게 하다 하다 점점 부풀어서 아예 3월 한달을 모두 “3.8”절로 하는게 좋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있고 실제로 그렇게들 하고있다.   그래서 3월은 명실공히 녀성의 달로 되고있다. 녀성의 날이든 녀성의 달이든 “3.8”절의 원래 뜻은 남녀평등인데 지금은 녀성의 지위가 높아져서인지 그런것은 별로 따지지 않고 먹고 노는데만 신경을 쓰고있는것 같아 보인다.     “3.8”절을 한국에서는 “세계녀성의 날”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국제로동부녀절(国际劳动妇女节)”이라고 한다.   1908년 3월 8일에 1만 5000여명의 녀성로동자들이 미국의 뉴욕에서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로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렸다. 1909년 3월 8일에 미국 시카고에서 녀성로동자들이 남녀평등권리를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 1910년에 단마르크(덴마크)의 쾨뻰하븐(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녀성운동가대회에서 독일의 로동운동지도자 클라라 제트킨(克拉拉·蔡特金)이 “이 날을 세계녀성의 날로 하자”고 제안하여 1911년 3월 8일이 첫 세계녀성의 날로 되였다. 중국은 1922년부터 시작하여 “3.8”절을 기념했고 1949년 12월에 중앙인민정부 정무원에서 매년 3월 8일을 부녀절로 규정했다.   상술한 “3.8”절유래에서 보다싶이 “3.8”절은 남녀평등권리를 요구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것인데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해지고 먹고 마시는 날로만 되고있다. 물론 요즘은 녀성의 지위가 날로 높아지고있는 추세이지만 지금도 남성중싱에 있는 이 세상에는 남녀불평등현상이 엄연히 존재하고있다.   이 세상에는 남성에게 천시당하고 학대당하고 성폭행당하고 유린당하는 녀성들이 부지기수이다. 아랍국가의 녀성들은 절반이상이 문맹이다. 이슬람교률법엔 4명의 부인을 얻을수 있다고 되여있다. 세네갈, 우간다, 리비아, 애급(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마로끄(모로코), 에티오피아, 스워질랜드(스와질랜드), 소말리아, 바레인, 까타르(카타르), 아랍추장국련방(아랍에미리트연합국), 예멘,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이슬람교국가들은 일부다처제를 실시하고있는데 70%이상이 일부다처제가정이다.   이처럼 세계각지에는 심각한 녀성차별이 존재하고있고 중국도 녀성의 권리를 보장하고있지만 억압받고 차별당하고 버림받는 녀성들이 적지 않다. 중국의 가정폭력발생률은 29.7%~35.7%로서 피해자 대부분은 녀성이였다.   남녀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녀성들이 진정으로 남녀평등권리를 누르지 못하고있는 현실에서 3월을 녀성의 달로 하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3월이 먹고 마시는 달로만 되지 말아야 한다. 될수록 술파티회수를 줄이고 적게 먹고 마시는것이 절약차원에서나 건강보호측면에서나 모두 유익하다고 본다.   그대신 “3.8”절의 뜻을 되새기는 오락, 운동, 독서 모임을 많이 가지는것이 좋지 않을가 싶다. 가족끼리 쇨 때에는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안해에게 《녀성은 꽃이라네》와 같은 노래를 불러주거나 한해동안 수고했다는 내용의 편지나 시를 랑독해주는것도 좋을것 같다.   일본 극우세력의 도를 넘은 망언이 계속되고있는 시점에서 녀성의 달이 시작되는 첫날 3월 1일에는 녀성의 달을 위해 축배를 들기전에 먼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압박에 항거해 전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한 “3.1”절을 잊지 말고 잠간이라도 민족을 각성시킨 3.1운동의 뜻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동료나 친구들과 더불어 “3.8”절을 쇨 때에는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놀기도 하고 간단한 취미운동도 하고 녀성권익보호법에 대한 지식도 학습하고 또 세계녀성의 날 창시자 클라라 제트킨부터 시작하여 우리 민족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 저명한 녀성인물들의 사적을 학습한다면 명실상부한 녀성의 달로 될것이 아니겠는가?    
19    밥이 좋니 녀자 좋니 댓글:  조회:8933  추천:10  2014-02-25
밥이 좋니 녀자 좋니   김희수   밥과 녀자중에 어느것이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는것이 정답일가? 솔직히 말해서 이 물음엔 정답이 있을수 없다..   실례로 바다에서 배가 침몰되여 두 젊은 사내가 간신히 구명조끼덕에 목숨을 건져 빈몸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 표류되였다고 하자. 이틀쯤을 굶으면 배도 고프고 한창 혈기왕성할 때라 녀자생각도 나서 견딜수 없을것이다.   때맞춰 내리는 “급시우”처럼 사흩째 되는 날에 난파선이 무인도로 밀려왔는데 배우에는 두 사내에게 가장 수요되는 음식과 미녀가 있었다고 하자. 이 두가지 중에 한 사람이 한가지씩밖에 못가진다고 할 경우에 두 사내는 어느것을 선택할가?   이때 음식의 분량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것이다. 음식이 한 사람이 하루정도 먹을 분량이나 기껏해야 며칠을 먹을수 있는 분량이라고 하자.  그럴 경우 두 사내는 아무래도 며칠을 더 살다가 결국은 굶어죽게 될바에야 미녀를 안고 일순간이라도 즐겨보자는 똑같은 생각을 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음식이 몇년 또는 몇십년 먹을 분량이라면 미녀보다 음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아무리 김태희같은 미인이라고 해도 미녀를 안고 하루를 살기 보다 녀자가 없이라도 오래오래 살수 있는 쪽이 더 나을테니까. 혹시 “내 리상형의 녀자를 안을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아!”하고 나설 자도 있을수 있겠지만 미녀와의 하루밤을 위해 목숨을 던질 용기 있는 자가 몇이나 될가?   이처럼 성욕이 식욕보다 우선일 때도 있지만 식욕이 기본적으로 우선이라고 할수 있다. 사람은 이성을 모르고 살수는 있어도 먹지 못하면 살수 없기때문에 성욕보다 식욕이 우선이라고 한다. 배가 불러야 녀자도 눈에 들어온다는 말처럼.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중요한 3대욕구(식욕, 성욕, 수면욕)중에 우선순위를 매기라면 어느것을 선택하는것이 정답일가? 먹지 못해도 죽고 자지 못해도 죽는다. 하지만 “그거 안하고는 못살것” 같지만 안해도 죽지는 않는다. 때문에 성욕보다 식욕과 수면욕이 우선이라고 할수 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굶주린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앞에 음식과 소녀시대같은 미인들을 줄 세워놓고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먼저 음식에 덮칠것이다. 또 이틀이나 사흘 잠을 못잔 사람앞에 산해진미나 이영애같은 미인을 놓아준다고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것이다. 혹시 “내 평생에 먹고싶었던 조걸!”하거나 “내 평생에 안아보고싶었던 미인!”하고 잠을 포기할 용사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식욕이 1순위라지만 경우에 따라 성욕이 1순위가 될수도 있고 수면욕이 1순위가 될수도 있다. 중국처럼 굶어죽을 일이 없는 경우라면 아무리 산해진미를 갖다놓아도 미인을 먼저 선택할것이다. 또 잠을 못자서 죽는 경우도 없으니까 역시 미인을 먼저 선택할것이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먹을 걱정이 없고 수면부족이 없는 나라의 국민들은 1순위가 성욕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먹는것도 성욕만족을 위해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먼저 선택한다. 하다못해 지렁이라도 정력에 좋다면 앞뒤 안 재고 꼭꼭 씹어먹는다.   실례로 금욕주의 나라가 있었는데 두 남녀가 그 욕망을 참고 참다가 도저히 참을수 없어서 합궁을 했다가 발각되여 벌을 받게 되였다고 하자. 그 벌이라는것이 남녀를 각각 흙벽을 하나 사이둔 다른 방에 가두어놓는것이라고 하고 방안에는 손으로 먹을수 있는 적당한 음식외엔 아무런 도구도 없다고 하자.   만약 며칠후에 문지기가 음식을 가져다 주러 방안에 들어섰다면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목격할 가능성이 높다. 두 남녀가 껴안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 그리고 두 남녀의 열손가락이 다 피투성이 되게 다슬어 떨어지고 벽에는 사람이 나들만한 구멍이 뚫어져있는 장면…   성욕이란 이처럼 무섭고 억제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성폭행, 성매매 같은 부작용이 생기는것이다. 성욕은 인간의 정당한 권리이고 또 마땅히 풀어야 하지만 법이 허용되는 범위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강제로 하거나 권력이나 돈으로 자기의 녀자가 아닌 다른 녀자를 범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먹고싶다고 가게의 음식을 훔치는것으로 식욕을 만족시켜서는 안되고 피곤하다고 회의중이거나 수업중에 곯아떨어지는것으로 수면욕을 만족시켜서는 안될것이다.   각설하고 군자는 배부르면 학문을 닦을 생각을 하고 소인배는 배부르면 녀자생각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녀자생각만 하는 소인배도 어리석지만 학문만 닦는 군자도 바보인것 같다.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녀자생각도 하고 학문도 닦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가?    
18    한달에 한번쯤은 서점에 가보자 댓글:  조회:5886  추천:7  2014-02-19
한달에 한번쯤은 서점에 가보자   김희수     오래만에 연길시 신화서점으로 가보았다. 요즘 세월에 누가 책을 읽나 했더니 생각밖에도 서점엔 책 사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조용히 진렬대를 오가며 책을 고르는 사람, 책을 펼쳐들고 열심히 읽어보는 사람들…그들이 모두 우러러보이고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평소에 바쁘다는 구실로 서점에도 자주 다니지 못하고 독서도 게을리 해온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룡정에서 살던 1990년대 중기까지만 해도 일요일마다 서점에 갔고 또 직접 책가게를 경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연길에 와서도 얼마간은 서점에 자주 갔다. 그러다가 마작, 트럼프, 술, 드라마에 빠져 서점과는 담을 쌓다싶이 했다. 그러다보니 물론 글도 쓰지 못했다. 소위 신문사에 몸을 담고 글을 쓴다는 내가 독서에 게을리하고 서점에도 거의 발길을 끊다싶이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나처럼 서점에 드물게 다니거나 아예 서점에 발길도 향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것이다. 나는 나를 포함해서 서점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에게 한달에 적어도 한번쯤은 서점에 가보자고 권하고싶다. 휴일을 리용해서 부부동반해도 좋고 아이의 손목을 잡고가도 좋고 혼자가도 좋다. 가보면 꼭 새로운 감수를 느낄수 있을것이고 뜻밖의 수확을 거둘수도 있을것이다.   한달에 한번쯤이 안되면 한해에 서너번이라도 여유시간을 짜내여 서점으로 가보자. 그리고 어떤 책들이 있는가 한번 돌아보자.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값이 얼마인가 보지 말고 그 책을 사가지고 나오자. 책 한권이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술 한번 마시는 값보다는 쌀것이다. 술 한번 적게 마시고 마작 한번 적게 놀면 그 돈으로 책 몇권은 얼마든지 살수 있고 술 마시고 마작노는 시간이면 한해에 책 몇권은 쉽게 읽을수 있을것이다.   어떤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리용해 독서할수도 있고 인터넷서점(网上书店)을 리용해 앉아서도 책을 살수도 있는데 힘들게 발품을 팔 필요가 있겠는가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을 리용하는 방법은 어찌 보면 쉽고 편리한 방법일지는 몰라도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평소에도 늘 컴퓨터화면이나 스마트폰화면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이 독서나 책 한권을 사는데까지 인터넷에 의존한다면 점점 라태해져 안일한 삶만 추구하다가 페인이 될 위험도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하면 우울증, 뇌졸증 등 질병에 걸릴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필요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는것이 좋다는 얘기이다.   운동부족으로 건강이 나빠진 현대인에게 온라인서점(网上书店)을 리용하기보다 오프라인서점(实体书店)에 가서 책을 사면 운동효과도 불수 있고 혼탁한 방안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도 마실수 있어 일거량득이 아니겠는가? 또 한가지는 컴퓨터중독이나 스마트폰중독에서 벗어날수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직접 책진렬대앞을 지나노라면 온라인서점에서는 느낄수 없었던 책향기를 맡을수 있고 손바닥에 책을 올려놓으면 저자의 온기를 느낄수 있다. 느낌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어쩌면 책속의 향기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줄지도 모른다. 내게 꼭 맞는 책을 골라서 읽는다면 거기서 유용한 지식과 반짝이는 령감을 얻어 성공의 희열을 맛볼수 있을것이다. 성공한 사람치고 독서를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다 성공하는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은 못되여도 좀 더 가치있는 사람은 될수 있다.   책을 들면 저자의 온기를 느낄수 있어야 그 책을 읽을 생각이 들것이고 책을 읽어도 열심히 읽을수 있을것이다. 나는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저자들에게서 많은 책을 선물받았다. 저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나는 무심하여 저자의 온기를 느끼지 못했기에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읽어보자”고 자꾸만 미루다보니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했다. 책을 읽을 시간은 기다리면 있는것이 아니라 짜내면 있는것인데도 술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는데만 시간을 랑비하면서 독서를 게을리 했던것이다.   나는 몇년전부터 시력이 나빠져서 인터넷글은 보지만 종이책의 글은 잘 보지 못한다. 대낮에 밖에서나 해빛이 잘 들어오는 밝은 방안이 아니고는 책의 글자가 희미하여 알아보지 못한다. 신문교정을 볼 때도 확대경을 들고 본다. 이제 돋보기를 갖춰놓고 선물받은 책도 읽어보고 나에게 수요되는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한다.   물론 독서광은 되지 않을것이다. 독서광은 아무나 되는것이 아니고 흉내낸다고 되는것도 아니니까. 그저 내가 읽고싶고 내게 맞는 책을 골라 읽을것이다. 여러분들께도 그렇게 권하고싶다.   그리고 이제부터 한달에 한번쯤은 두발로 걸어서 서점에 가보려고 한다. 책향기에 흠뻑 취해보는것도 별다른 향수가 아닐가?    
17    이태백이 놀던 달은 어데 갔나? 댓글:  조회:6495  추천:10  2014-02-14
리태백이 놀던 달은 어데 갔나?   김희수       달아달아 밝은 달아 리태백이 놀던 달아 … …   둥근달을 볼 때마다 떠오르던 이 동요, 어릴 때에는 이 동요를 떠올리며 리태백이 술에 취해 읊던 달은 얼마나 밝았을가? 하고 생각하며 다시 달을 쳐보았다. 그때의 보름달은 그래도 리태백이 놀던 달 못지 않게 밝았다.   “참 달이 밝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고 우리 아이들도 보름달을 쳐다보며 “야, 달이 참 밝다!”하고 감탄했다. 보고 또 보아도 밝기만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마당에 술상을 차려놓고 한잔씩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아이들은 손전등이 필요없이 학교운동장에 나가 마음껏 뛰놀았다.   그렇게 밝던 달이 오늘은 왜서 밝아보이지 않을가? 리태백이 놀던 달은 어데 갔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놀던 달은 어데 갔지? 우리가 어릴 때 놀던 달은 어데 갔지?   한해중에 가장 밝은 달은 정월 대보름달과 팔월한가위 보름달이다. 그래서 한해에 두번씩 기다려지는 보름달이다. 그런데 오늘의 달은 예전의 달보다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 때는 자연빛만 있었던 시기여서 지금보다 달이 더 밝았을가? 그래서 “팔월추석 보름달이 밝다하지만 시골에서 더 밝을줄 몰랐습니다”라는 노래도 생겨났을가?   눈부신 연길시의 불빛 사이로 갑오년 정월 대보름달이 떠올랐지만 어쩐지 예전의 보름달보다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야경은 한층 밝아지고 더 아름다워 졌지만 달은 더 밝아보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밝은 달은 달라진것이 없겠는데…   물론 천문학적인 각도에서 보면 시간에 따라 어떤 시간대에는 달이 더 밝아보이고 어떤 시간대에는 달이 덜 밝아보일수 있다. 또 지역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달이 더 밝아보일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달이 덜 밝아보일수 있다.   달이 타원궤도를 돌기때문에 같은 정월 대보름달이라고 해도 크기가 변한다고 한다. 가장 가까울 때의 거리가 35만3800킬로메터이고 가장 멀 때는 41만킬로메터가 된다. 가까울 때는 큰달이 뜨고 멀 때는 작은달이 뜨는데 그 차이는 14%정도나 된다. 또 지역에 따라 달이 뜨는 시간도 다르다.   천문학자들은 이번 갑오년 정월 대보름밤에 보는 달은 완전히 둥근 달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래서 예전보다 밝아보이지 않을가?   집집마다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던 세월에도  달은 지금보다 더 밝았다. 강물에 똥빨래를 하고 오줌을 누던 세월에도 강물은 지금보다 더 맑았다. 자동차가 지나면 먼지가 뽀얗게 일던 흙길 비포장도로밖에 없던 그 세월에도 공기는 지금보다 더 깨끗했다.   지금은 집집의 굴뚝과 석탄보일러굴뚝도 거의 없어졌지만 하늘은 더 뿌옇게 변했다. 강물에서 빨래하고 헤염치는 사람도 없어졌지만 강물은 더 더러워졌다. 자그마한 골목까지 멋지게 포장도로로 만들었지만 공기는 더 오염되였다. 스모그때문에 하늘이 뿌옇게 보인다. 그래서 보름달도 밝아보이지 않는걸가?   보름달이 예전보다 밝아보이지 않는 주요한 원인은 대기오염에도 있겠지만 달을 사랑하는 마음이 현대인들에게서 점점 식어지고있기때문이 아닐가 생각된다. 현대인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무엇에 그리 쫓기는지 스마트폰화면은 들여다볼 시간이 있어도 하늘을 올려다 볼 겨를은 없다. 밤하늘에 초생달이 뜨는지 보름달이 뜨는지도 모르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정월 대보름에 한족들의 음식인 원소(元宵)를 먹는줄은 알아도 우리 민족의 음식인 오곡밥을 먹는줄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는 정월대보름날이 밸런타인데이와 겹쳐 명절분위가가 더 짙어졌지만 어쩐지 술좌석의 분위기만 더 흥성흥성해진것 같다. 커플끼리 산보하며 달구경하기가 둘도 없이 좋은 날이지만 달을 올려다보는 커플들은 많지 않다.   저 대보름달이 옛날을 그리며 외로워하고있다. 저 보름달을 보면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기 위해 달집을 불태우며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던 옛사람들이 떠오른다. 저 보름달을 보면 오곡밥에 버섯, 고사리, 고비, 도라지 등 9가지 나물을 먹고 한해동안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호두, 잣, 밤, 땅콩 등 부럼을 나이 수대로 깨물던 조상들이 떠오른다. 저 보름달을 보면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귀밝이술 마셔라”하며 아이들에게까지 한모금씩 권하고는 윷놀이를 하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 보름달을 보면 “더위팔기”, “동제(洞祭)”, “탑돌이” 등 우리 민족의 정월대보름 세시풍속과 풍성한 달맞이 민속놀이행사가 떠오른다.   정월 대보름의 밤하늘에 홀로 외롭게 떠있는 저 달을 보면 함께 놀아주며 위로해주고싶다.   우리의 뿌리를 되돌아보아야 오늘의 마음을 다잡고 밝은 미래를 맞을수 있다. 아무리 바쁜 일상이라도 가끔씩 밤하늘을 보자. 둥근달이 떠있는 하늘이 아니라도 좋다. 조각달이 떠있는 하늘이라도 좋고 반달이 떠있는 하늘이라도 좋다. 밤하늘을 올려다노라면 달을 사랑하게 될것이고 달을 사랑하면 자연을 사랑하게 되여 환경보호에 힘쓸것이다. 따라서 환경이 아름다워지면 달도 밝아질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 보름달도 리태백이 놀던 그 달처럼 휘영청 밝은 모습으로 떠오를것이라고 믿는다.   (2014년 2월 14일 갑오년 정월 대보름날 밤에 술을 마시고 브르하통하강변에서 달을 올려다보다가 돌아와서 씀.)     
16    형제민족에게 우리 글 보급 어떨가? 댓글:  조회:5710  추천:7  2014-02-12
형제민족에게 우리 글 보급 어떨가?   김희수     언어와 문자는 민족문화의 령혼이다. 하지만 많은 소수민족들은 언어와 문자를 잃어버리고 타민족의 언어문자를 사용하고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가운데서 자기의 문자를 가지고있는 소수민족은 12개뿐이다. 이 12개 소수민족을 꼽으면 몽골족(蒙古族), 장족(藏族-티베트족), 위글족(维吾尔族-위구르족), 까자흐족(哈萨克族-카자흐족), 끼르끼즈족(柯尔克孜族-키르기즈족), 조선족(朝鲜族), 이족(彝族), 태족(傣族), 랍호족(拉祜族-라후족), 경파족(景颇族), 시보족(锡伯族-시버족), 로씨야족(俄罗斯族-러시아족)이 있다.   소수민족가운데서 인구가 두번째, 세번째로 많은 만족(满族)과 회족(回族)은 자기민족의 말과 글이 없다. 그들은 한족과 함께 한어와 한문을 통용하고있다. 자기의 문자를 가지고있는 12개 소수민족과 자기민족의 말고 글이 없는 만족, 회족을 제외한 기타의 소수민족은 자기민족의 말은 가지고있지만 자기민족의 문자가 없다.   소수민족가운데서 인구가 가장 많은 쫭족(壮族-1617만명)도 자기민족의 문자가 없다. 조선족보다 인구가 더 많지만 자기민족의 문자가 없는 민족들로는 묘족(苗族), 토가족(土家族), 부이족(布依族), 동족(侗族), 요족(瑶族)이다. 원래 자기민족의 문자를 가지고있었지만 현재 잃어버린 민족들이 많다. 55개소수민족가운데서 자기민족의 문자가 있는 12개민족외에 회족과 만족이 한문을 쓰고 다른 민족들은 한문 혹은 다른 민족의 문자를 쓰고있다.   1949년 이전에는 문자를 사용하는 민족이 21개였다. 그리고 문자종류는 24가지였다. 해방후 일부 소수민족들이 새로 창제된 문자를 사용했는데 같은 민족사이에도 서로 다른 여러가지 문자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있었기에 중국의 소수민족현행문자는 모두 40가지에 달했다. 그리고 55개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80가지이상에 달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수민족문자는 한어병음문자를 부동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이런 문자와 언어는 존재하고있다는 형식뿐이지 사용자가 극히 적고 사용범위가 매우 적었다.   29개 민족이 54가지 문자를 사용한 시기도 있었다. 일부 소수민족은 같은 소수민족이라고 해도 부동한 분가(支系)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왔다. 일부 소수민족은 2개 혹은 그 이상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해왔다. 고산족(高山族)은 13가지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55개 소수민족은 모두 72가지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대부분 언어와 문자가 사라졌다.   우리 민족의 문자는 몽골문, 장문, 위글문, 까자흐문과 함께 중국소수민족의 주요 5개문자로 되고있다. 이 5개민족의 문자는 해당문자를 사용하는 인구가 대거 집거해있고 100만명이상의 인구가 사용하고있다. 또 본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각 령역에 사용되며 린근이거나 함께 거주하고있는 다른 민족들도 사용하고있다. 현재 문자가 있는 12개소수민족중 7개소수민족의 문자는 통일적인 규범이 없고 사용범위가 매우 적다.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은 주로 한자를 사용하거나 다른 소수민족문자를 사용하고있다. 대부분 소수민족은 본민족언어를 본민족내의 일상생활에서만 사용하고 정치생활, 학교교육에서는 한어나 기타 소수민족의 언어를 사용하고있다. 소수민족 총인구의 절반이상이 한자거나 기타 소수민족의 문자를 사용하고있다.   1000만명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문자라고 꼭 강한 생명력이 있는것은 아니다. 만족은 현재 인구가 1100만명에 달하는지만 언어와 문자를 모두 잃고 한어와 한자를 사용하고있다. 회족도 인구가 천만에 가깝지만 자기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잃고 한어와 한자를 사용하고있다.   전세계적으로 언어와 문자가 없어지는 일이 매일이다싶이 벌어진다고 한다. 중국소수민족중에도 언어와 문자가 없어진 민족이 많다. 회족의 언어와 문자는 이미 멸절되였고 만족의 언어와 문자도 멸절된거나 다름없다.   만족어와 만족문자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달랑 셋만 남았는데 그들은 흑룡강성 북방촌락에 사는 이미 70~80세가 되는 로인들이다. 이 세 로인이 사망되면 만족어와 만족문자는 세계력사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더불어 청조시기에 남겨놓은 수천만건에 달하는 만족문자자료는 영영 알아볼 사람이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와 문자가 없는 형제민족에게 우리 언어와 글을 보급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가? 형제민족에게 우리 글을 보급한다는것 자체가 큰산을 옮기려는것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수도 있겠지만 우공처럼 꾸준히 노력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한어와 한문을 자기민족의 언어와 문자처럼 받아들여 사용하고있는 회족이나 만족 같은 소수민족들에게는 우리 말과 우리글의 보급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민족의 언어와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중에 우리 언어와 글에 호감을 가지게 될 소수민족이 꼭 있을것이다.   물론 어렵고 힘들고 장애도 많고 실패도 있을수 있다.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이라고 해도 중국의 공통문자인 한자를 받아들이는것처럼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그들에게 타민족인 우리 글의 보급은 배타성이 강할것이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는 법. 장애에 부딪칠 때마다 한삽 한삽 파서 옮기느라면 종당에는 길이 열릴것이다.   중국도 국가차원에서 중국어국외보급을 위해 공자학원을 추진하고있고 한국도 한글해외보급을 추진하고있다. 한류열풍과 한국기업들의 해외진출성공에 힘입어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지자 한국의 포도학사 등이 해외에 한국어보급과 한글세계화를 위해 몽골, 윁남(베트남), 캄보쟈(캄보디아), 아프리카 국가 등 100여개 나라에 한글학교설립추진을 계획중이라고 한다.   우리도 한류열풍을 빌어 우리 글의 보급을 추진해야 한다. 우선 보급한다는 마음보다 형제민족에게 우리 글을 홍보한다는 차분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형제민족들과의 공감,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 대화를 통해 친선을 도모하고 상대방의 민요와 우리 민족의 도라지, 아리랑 등 민요를 교류하며 우리 글은 배우기 쉽고 빨리 배울수 있으며 사용하기 편리하다는것을 홍보해야 한다. 우리 글이 우수하고 과학적이고 론리적인 문자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될 때 쯤이면 우리 글 보급을 추진할 시기가 성숙되였다고 생각해도 무방할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슬슬 “유치원생도 쉽게 배울수 있는 글을 배워 우리 글에 당신들의 문화를 홍보하면 조선족뿐만아니라 조선, 한국에도 전파를 탈수 있다”고 상대방의 귀가 솔깃하도록 얘기해주어야 한다.   그 정도까지 되였다고 해도 성공했다고 볼수 없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이 될수도 있고 넘어야 할 산이 첩첩 물이 겹겹일수 있다. 하지만 저 너머에는 꽃향기 풍기는 새 마을이 나타날것임을 믿어야 한다.   형제민족에게 우리 글을 보급한다는것 자체가 우둔한 발상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둔한것이 범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15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댓글:  조회:6660  추천:8  2014-02-04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김희수   어릴 때부터 “모주석만세”, “모주석어록”, “최고지시”를 배우며 자란 나는 그 시기에 모택동이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못하는줄로 알았다. 그래서 위대한 령수 모택동이 사망되여 8억(당시의 중국인구)인민들이 통곡할 때 정말로 이러다가 중국이 무너지는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모택동이 “동무가 사업을 맡아하니 나는 마음이 놓인다(你办事我放心)”고 하면서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화국봉이 영명한 령수로 되여 천안문에 오르는것을 보면서 다소 마음이 놓였다. 모주석이 시름을 놓으니 전당이 시름놓고 전군이 시름놓고 전국인민이 시름놓고 나도 시름놓게 된것이였다. 그런데 화주석이 “기본고리를 틀어쥐고 나라를 다스린다(抓纲治国)”는 전략결책인지 정치강령인지를 내놓았지만 신통하지 않아 나라경제가 발전하지 못했고 백성들의 생활도 펴이지 못했다.   그래서 등소평이 나서게 되였다. 등소평은 이름앞에 “위대한”이나 “영명한”을 붙이지 않고 이름뒤에 “만세”를 붙이지 않았지만 개혁개방의 위대하고 영명한 일을 해놓았고 배부른 백성들의 배속에서 만세소리가 나오게 하였다.   지금은 모택동, 화국봉, 등소평도 모두 가버렸고 그들이 없지만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있다.   일찍이 6국을 통일하고 “3황(三皇)”의 “황”자에 “5제(五帝)의 “제”를 취하여 처음으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사용한 진시황(秦始皇)은 자기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못할것 같아서 천세만세를 누리려고 불로장생약을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결국 장생은 커녕 절명하고 말았다.   말 타고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주름잡으며 서양인들까지 공포에 떨게 했던 칭키스칸(칭기즈칸)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를 말발굽아래에 짓밟으며 유럽제패에 나섰던 나뽈레옹(나폴레옹)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 거룩한 이름을 력사에 남겼지만 그들이 사라져도 세상은 돌아갔다.   이제 악명을 남긴 독재자들을 보자. 유태인(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한 전쟁미치광이 히틀러는 세계제패의 황당한 꿈을 꿨지만 말일이 다가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에티오피아를 침공해서 부족들을 독가스로 학살하도록 명령한 무솔리니는 후에 광장에서 돌팔매질에 맞아 죽었으며 이라크에서 20여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사담 후세인은 미군에게 잡혀 교수형을 당했고 악명높은 일제의 군 통수권자 도죠 히데키는 전범재판에 끌려가기 싫어서 자살을 했지만 실패하여 나중에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 독재자들은 그 행위로 미루어보아 “내가 없으면 지구는 돌아가지 않을것”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들이 없으면 세상이 더욱 잘 돌아가는줄을 몰랐을것이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자기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못하는줄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쥐면 언제까지라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권력을 내놓으면 다른 사람도 할수 있고 하다보면 더 잘할수도 있는데 말이다.   얼마전에 친척집 결혼잔치에 갔을 때 사돈쪽에서 온 아이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처음부터 듣지 않아서 무슨 문제를 가지고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야, 니 반장이란게 참가 아이하면 어떻게 되니? 니 없으면 우리 반이 어쩌니?”하고 물으니 그 반장이란 아이가 “내가 뭐 대단하다구 그래? 내가 없어도 우리 반이 돌아간다. 다른 애들이 더 잘할수도 있어.”하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때 그 반장이란 아이가 “내가 없어도 우리 반이 돌아간다”고 하던 말이 신선한 충격으로 내 가슴에 와닿았다. 이렇게 아이들까지 아는 도리를 우리 어른들은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죽을 때까지 하고싶어도 일정한 시기나 년령대가 지나면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운동선수가 그러하다. 아무리 날고 뛰는 스타라도 결국 은퇴하고만다. 마라도나도 그랬고 요명(姚明)도 그랬다. 하지만 선수들은 은퇴시기에 따라 그 명성의 무게가 다르다. 때문에 현명한 선수들은 전성기에 금메달을 목에 걸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은퇴한다. 반면에 금메달을 더 걸어보겠다는 욕심에 은퇴시기를 미루면 미룰수록 그런 선수들은 은퇴시기에 동메달도 걸지 못하고 오명만 남기게 될것이다.   중국녀자탁구선수 등아평(邓亚萍)은 전성기에 금메달을 달고 은퇴했기에 백전백승의 선수로 남았고 왕남(王楠)은 더 해보려는 욕심때문에 은퇴시기를 한해 두해 미루다보니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선후로 조선선수 김향미와 김영희에게 패했고 2008북경올림픽에서 장이녕(张怡宁)에게 패하는 패배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왕남은 그래도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도리를 깨닫고 그해에 장이녕에게 큰언니(大姐)의 자리를 내주고 은퇴했다. 김연아도 2월 8일에 열리는 2014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그로하여 그 이름은 더욱 빛날것이고 팬들에게도 더욱 깊은 인상으로 기억에 남게 될것이다.   지도간부들도 운동선수와 마찬가지이다.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있을수는 없다. 한번만 더 해보겠다고 버티면 버틸수록 오명만 남길것이다. 전성기에 금메달을 목게 걸고 은퇴하는 선수들처럼 대중들이 박수를 쳐줄 때 은퇴하면 세상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게 될것이다.   내가 없으면 반드시 내 비여있는 자리를 메꾸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지도자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고 네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이 지구에 단 한사람만 남아있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이 지구에 인류가 멸망해도 세상은 돌아간다. 인류가 아닌 또다른 세상이 돌아갈뿐이다.     
14    자가용차시대에 사는 행운과 불행 댓글:  조회:5590  추천:4  2014-01-29
자가용차시대에 사는 행운과 불행   김희수   자가용시대에 사는 우리는 많이 편리해졌다. 아무때나 자가용차를 몰고 자신이 가고싶은 곳으로 갈수 있으니까. 출퇴근도 택시나 뻐스를 기다릴 필요없이 스스로 몰고갈수 있고 짬이 있을 때면 쇼핑도 할수 있고 련인이나 가족, 친구와 함께 려행도 갈수 있다.   한편 자가용차시대에 사는 우리는 몹시 불편해졌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간랑비, 스트레스… 자가용차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또 불행도 따른다. 교통사고증가, 배기오염, 소음공해… 자가용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래도 좋다. 더 좋은 차를 타고다니면 체면이 서고 어깨가 올라가니깐.   자가용차시대에 사는 우리는 힘들다. 자가용차가 없으면 장가 들기도 쉽지 않다. 지금 처녀들은 신랑감을 고를 때 “집이 있나요? 차(자가용)가 있나요?”하고 물어본다. “재봉침이 있나요? 자전거가 있나요?”하고  물어보던 옛날에 비하면 세상이 변해도 몰라보게 변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대부분 출근족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지난날에는 각 단위의 마당에 자전거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자전거 대신 자가용차가 즐비하게 주차되여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그 시기에야 어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때 우리는 단위의 차를 몰고다니는 운전수를 몹시 부러워했고 찦차나 승용차에 한번 앉으면 벼슬이나 한것 처럼 몹시 기뻐했다. 그때는 “외국에서는 18세이상이면 누구나 운전면허증을 따낼수 있다”고 하던 누군가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세샹을 눈으로 보게 되였다.   자가용차시대가 자가용차족들에게는 좋은 점을 많이 가져다주었겠지만 보행자에는 많은 불편을 가져다주었다. 자동차의 증가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자동차행렬때문에 활개치며 마음대로 활보할수도 없다. 보도와 차도가 구분이 있어야 하는데 보도가 따로 없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주차를 해놓아 불편한것쯤은 그래도 참아줄만하다. 그런데 주차해놓은 차가 어느때 뛰쳐나와 보행자의 목숨을 위협할지 모르며 좀전에까지 보도에 보이지 않던 난데없는 승용차가 불쑥 나타나 달려오며 보행자의 목숨을 노리기도 한다.   도로를 가로 건널 때는 더구나 조심해서 주변을 살펴보고 차흐름이 잠시 끊기기를  기다려서 좌우를 살펴보며 보행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차가 가까이에 왔으면 걸음을 멈춰야 하고 차가 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걸어야 하며 어중간한 거리에 있으면 달려야 한다. 이렇게 사람이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줄곧 차눈치를 보아야 한다.   차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걸어가는 사람들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흐름을 바라보노라니 이 도시에 택시차와 자가용차가 없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도로에서 공차기를 해도 위험한 줄을 몰랐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자동차가 없이 도로에서 수레와 마차만 달리던 그 시절에는 어떠했을가?   자가용비행기시대도 눈앞에 곧 다가오려고 하는 이 격변의 시대에 이처럼 후진적인 생각에 잠겨있는것이 한심하지만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모두 불편을 가져다주는 이 도시의 도로문제는 꼭 해결되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정말 보행자들에게는 이 도로를 건너는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모험인지 모른다.   가다가도 막히고  또 가다가도 막히는 도로는 정말 짜증난다. 운전자들은 누구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고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길이 더 오래 막혀버린다. 질서가 없다. 서로 앞서가겠다고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무작정 들이밀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한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뻐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리용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또 선진국들에서는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 자각적으로 자가용을 리용하지 않고 자건거를 타고다니는 시민들이 증가되고있다고 한다. 그런데 연길시에서는 자가용차가 해마다 증가되고있고 그 증가추세가 앞으로 언제까지 게속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심회되는 교통체증, 주차난은 골치거리이다.   게다가 교통규칙을 지키지 않는 보행자들때문에 도로는 무법천지로 되고있다. 보행자들은 아무때나 아무곳에서나 자신의 편리를 위해 무작정 길을 가로 건넌다. 오가는 차량도 상관하지 않는다. 틈만 있으면 앞차와 뒤차의 사이로 요리 살짝 조리 살짝 빠져나간다. 차가 속도를 늦추고 피해주는것을 당연한것처럼 여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정지신호등을 무시하고 마구 건넌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교통규칙이건 공중도덕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이때에는 차가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 보행자전용도로가 있어야 한다.   연길시의 추차난은 더욱 극심해지고있다. 변변한 주차장이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고충건물을 지으면 지하주차장부터 건설한다는데 이 도시의 고충건물지하는 죄다 상가들이 점령해버렸다. 건물앞에 무질서하게  주차해놓은 차량들은 도시의 미관을 흐리우고있을뿐만아니라 지나다니는 보행자와 건물에 출입하는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가져다주고있다.   이제 운전에 재미를 붙인지 몇년이 되지 않는 연길자가용족들에게 주차난완화를 위해 출퇴근할 때에 대중교통을 리용하라고 권고하면 현실적이 되지 못하겠지만 그들에게 문명주차를 권고하고싶다. 운전자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문명하게 주차했으면 좋겠다. 그보다 주차장이 문제겠지만.   자가용차는 날로 급증하는데 이런 차량을 수용할수 있는 주차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교통체증완화를 위한 도로확장도 중요하지만 추차난을 해결하기 위한 주차장건설도 시급한 문제이다. 주차난은 한국 등 외국이나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겪는 골치거리이지만 연길시의 주차난이 더 심각하고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운전자들마다 문명주차를 하는 한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13    동성애 골방에서의 긴긴 울음도 끝나고 댓글:  조회:9396  추천:11  2014-01-25
동성애 골방에서의 긴긴 울음도 끝나고   김희수     동성애는 먼 옛날부터 있었지만 줄곧 골방의 음지에 숨어 해볕을 보지 못했고 양지에 나타나면 무시당하고 억압을 받아왔다. 하지만 로마시대에는 동성애가 일반적인 사회현상이였다. 중세시절에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게이끼리 혹은 레즈비언끼리 부부처럼 살았던 샤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에는 명나라때 복건성에서 동성이 서로 혼례식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 《전국책》의 기재에 의하면 위왕은 납첩 룡양군을 총애했다. 중국의 동성애는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바 제왕으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존재했다. 한고조와 적유, 필원과 리계관, 한무제의 진황후와 초복, 당태종의 아들 리승건과 칭심… 우리 민족의 력사를 보면 고려의 목종(재위 997~1009년)이 동성인 유행간과 유충정을 사랑했고 공민왕(재위 1351~1374)도 동성애에 빠져 총신 김흥경 등 미남자들을 사랑했다. 황실은 동성애의 골방이였다.   비록 한시기, 일부 나라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이 양지로 나오기도 했지만 많이는 억압당하고 업신여겨져왔기때문에 양지에 나오지 못하고 음지에서 진행되였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동성결혼합법화국가가 늘어남에 따라 동성애자들이 음지에서 륙속 양지로 나오고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동성결혼의 합법화추세가 전세계로 번지고있다. 2001년 4월 1일에 화란(네덜란드)이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제도를 시행하였다. 그 뒤를 이어 잇달아 2003년에는 벨지끄(벨기에), 2005년에는 카나다(캐나다), 에스빠냐(스페인), 2006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2009년에는 노르웨이와 스웨리예(스웨덴), 2010년에는 아르헨띠나(아르헨티나), 뽀르뚜갈(포르투갈)과 이슬란드(아이슬란드), 2012년에는 단마르크(덴마크), 2013년에는 우루과이, 브라질, 뉴질랜드, 프랑스와 영국이 동성결혼제도를 립법해 프랑스는 이를 시행하고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2014년부터 잉글랜드(英格兰)와 웨일스(威尔士)에서 먼저 시행된다.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시티와 킨타나로오에서 허용하고 미국에서는 뉴멕시코, 뉴욕, 뉴저지, 하와이 등 20개주에서 허용하고있다. 현재 독일과 룩셈부르그(룩셈부르크), 이딸리아(이탈리아)가 동성결혼제도의 립법화를 진행, 론의중에 있고 아일랜드는 2015년 봄에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남성동성애자를 게이(gay)라고 하고 녀성동성애자를 레즈비언(lesbian)이라고 한다. 불과10여년사이에 동성결혼허용물결이 지구촌을 흔들고있을 정도로 변해가고있다. 아이슬란드(冰岛)의 첫 녀성총리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约翰娜·西于尔扎多蒂), 미국의 피겨스타 조니 위어(约翰尼·威尔), 미국영화배우 재커리 퀸토(扎克瑞 昆图) 등 수많은 정치가들과 스타들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혔다. 중국연예인(홍콩, 대만 포함)들 중에 장국영(张国荣), 언승욱(言承旭), 주걸륜(周杰伦), 왕려굉(王力宏), 모녕(毛宁), 진곤(陈坤), 종한량(钟汉良) 등 수십명이나 동성애자혐의를 받고있다.       전세계에서 약 4%의 인구가 평생 동성과만 성행위를 하고있다. 중국에서 동성애자는 총인구의 3~6%를 차지한다. 구제적으로 중국의 동성애자는 3600만명이상이다. 중국은 1997년의 새 형법에 “류망죄(流氓罪)”를 취소하면서 동성애를 형사처벌을 하지 않게 되였다. 2001년에는 《중국정신장애분류와 진단표준》에서 동성애를 자아승인형과 자아부조화형으로 나누었고 전자는 정신질병명단에서 제거되여 중국동성애의 비병리화를 실현했다.   2010년 1월 13일의 영문판 《중국일보》는 10일전에 두 남성인 증안전과 반문걸이 공개결혼식을 올렸는데 밀월중에 있는 그들이 가족과 친척들의 질책, 사회의 혐오 등 거대한 압력과 고통을 받고있다는 소식을 실었다. 이는 중국의 첫 동성애자의 결혼이였다.   당시 45살인 증안전은 결혼한적이 있고 딸까지 있었지만 자신이 이성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다(녀성을 포옹해도 나무를 끌어안은것처럼 무감각했다고 한다)는것을 발견하고 수치감에 모대기다가 2009년 2월 10일에 협의리혼을 하고 그해 11월에 게이들의 출입이 잦은 술집에서 만난 당시 27살의 제대군인 반문걸과 첫눈에 정이 들어 결혼했다.   청도대학교수이며 에이즈병, 동성애 전문가인 장패천은 “동성애자들이 동성애군체중 다수의 성파트너와 마음대로 성행위를 하는 등의 특수한 생활방식때문에 그들이 에이즈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성애는 에이즈병과 관계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반면에 주로 이슬람권국가에서는 동성애나 동성애자의 동거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최고 사형까지 판결하고있다. 또한 로씨야(러시아)에서는 2013년에 《동성애선동금지법》을 제정하여 공개장소와 언론에서의 동성애행위나 시위 등 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벌금 및 징역형으로 다루고있다. 그때문에 미국의 오바마대통령과 프랑스의 올랑드대통령 등 많은 나라의 정상들이 로씨야의 반인권적인 “동성애차별”을 비판하며 2014소치동계올림픽개회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곧(2월 7일) 로씨야의 소치에서 열리게 될 소치동계올림픽에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몰려들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동성애와 동성결혼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있지만 로씨야와 나이제리아(나이지리아)를 비롯해 동성애를 처벌할데 대한 처벌론란은 올 들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있다.   동성결혼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던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던 이 동성결혼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다. 인구감소, 국가의 성장동력의 쇠퇴,  입양이나 대리모, 인공수정 등 륜리문제, 자녀교양에서의 가치관, 정신, 정서상 혼란문제 등 안고가야 할 미해결문제가 수두룩하다.       
12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한두마디 댓글:  조회:7055  추천:10  2014-01-14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한두마디   김희수       조선족사회의 독서량이 줄어든다고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 어떤이들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글을 읽는 세상인데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를 하느냐고 반박한다.   이런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智能手机)을 통해 독서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가?”하고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스마트폰 사용자들 대부분은 문자메시지, 게임 등에 정신을 팔지 독서를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일부 누리군(누리꾼)들이 뉴스나 포토, 유머, 만화, 영화, 드라마, 좋은글, 인터넷소설 따위를 둘러 볼 정도라고 할가? 물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리용해 유용한 지식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소수이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진정으로 지식을 넓혀주는 유용한 책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벗어나 종이로 된 책을 들고 읽어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유혹에서 벗어나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참된 독서를 할수 있다.   이래도 책을 읽으리고 권고하는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할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 또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한다. 누가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우리 언어가 우리 민족을 위해 존재하는것이지 외국인을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외래어를 람용하는것이야말로 대중의 언어사용에 혼란을 조성하고 신성한 우리 민족언어를 파괴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가 아닐가?   맹몽적으로 새로운것을 따른다고 다 시대앞에서 달리는것이 아니다. 새로운것이 나타날 때마다 그 속에서 알맹이는 접수하고 찌꺼기는 버릴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그런 찌꺼기를 버리라고 권고하는 사람을 덮어놓고 시대에 뒤떨어졌고 말하는 사람을 시대에 앞서간다고 말할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덮어놓고 류행을 따라하면 시대에 앞서가는것인줄로 안다. 류행감기도 따라하면 시대에 앞서간다는 식이다. 외래어를 쓰고 스마트폰만 들고다니면 시대에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중독을 주의하라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버리란다.   얼마전에 복주의 모 대학에 재학중인데 18세의 녀대학생이 기숙사에 함께 거주하는 학생들이 다 아이폰(苹果)5S를 사가지고 노는걸 보고 자기도 사고싶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호씨성을 가진 남성에게 몸을 팔아 소원을 이루려다가 성매매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런 방식으로 시대를 따라하려는것이 시대에 앞서가는것인가? 정말로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이라면 시대에 걸맞는 사고방식부터 갖춰야 할것이다. 대학생이면 공부도 했음직한데 사고방식은 문맹을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인재가 되라고 대학에 보낸 딸이 몸을 팔았다는것을 알면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부모의 심정을 조금만 헤여려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것이다. 스마트폰이 자기의 몸보다 귀중한것인가? 아무리 “순결이 밥먹여주나” 하면서 정조를 헐값으로 취급하는 요즘이라지만 스마트폰 하나에 옷을 벗는다는건 내 몸이 물건보다 못하다는것을 선언하는것과 같다.   정말로 시대를 따라는 대학생이라면 남들이 다 사는 스마트폰이 정 사고싶었다면 먼저 돈을 빌려서 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든지, 참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이 모아지면 사든지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 능력이 안된다면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잠시 단념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꼭 남들보다 먼저 신식 스마트폰을 사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공부에 더 힘을 써야 했다.   스마트폰이 정조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스마트폰을 들었다고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조의 문을 열어가는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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