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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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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군의 이야기
2013년 11월 10일 21시 55분  조회:2538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술군의 이야기


콩트/ 이야기

김희수
 
 
중인량반, 안녕하십니까? 뭐? 오래간만이라구요? 며칠만에 만났는데 오래간만이라니요? 하하하! 날마다 개근하던 단골손님이니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요. 그동안 외출했댔는가구요? 아, 아닙니다. 집에 좀 속탄 일이 있어서…

헤헤, 주인량반, 오늘은 그 독한 배갈을 둬병 주시우. 푹 취해야 하겠습니다. 안주는 뭐 아무거나 주십시오. 우리 아버지는 생전에 소금 두알을 놓고도 배갈 한병쯤은 문제없이 마셨지요. 저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썩두부 하나만 있으면 다른 안주는 필요 없습니다. 주인량반도 알고있다구요? 내가 썩두부 하나 놓고 배갈을 두병씩 답새기는 술고래라는것을…헤헤, 다 지나간 이야깁니다. 지금은 따끈따끈한 모두부가 있어야 그래도 술이 들어가지요.

카아! 거 술맛 참 좋군요. 주인량반, 주인량반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누라라구요? 하하하! 주인량반은 정말 모르는군요. 마누라보다 더 좋은게 바로 먹는겁니다. 이 세상에 먹는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물주가 입을 만들어준것은 첫째는 먹어라는것이고 둘째는 말하라는것이지요. 글쎄 먹는게 얼마나 중요하면 《먹고 죽기》, 《먹어야 체면》, 《먹은 죄는 없다》는 말이 나오고 《목구멍이 포도청》, 《금강산도 식후경》, 《밥 한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라든가 《배만 부르면 세상인줄 안다》는 등등의 속담이 다 생겨났겠습니까? 《인생은 일장 춘몽이거니 먹고 마시여라.》는 시구가 있지 않습니까. 먹는게 제일이니 먹어야 합지요. 먹는게라면 가릴게 있습니까. 땅우에서 기는 놈, 뛰는 놈, 물에서 사는 놈,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놈 할것 없이 난 그저 닥치는대로 다 먹지요. 에, 난 잠자리도 통째로 삼켜봤고 쥐고기도 먹어봤고 사람고기도 맛보았지요.

놀라지 마십시오. 내가 뭐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번은 내가 돼지고기를 탕치다가 그만 실수하여 식칼로 손가락을 내리찍었지요. 아뿔사, 손가락 하나가 뭉텅 잘라져 나갔지요. 그때 내 머리속에는 불현듯 3국지의 하후돈장군이 부모가 준 정혈을 버릴수 없어 싸움터에서 뽑혀나온 자신의 눈알을 씹어 삼키던 비장한 장거가 떠올라 나도 잘려나간 내 손가락을 돼지고기와 함께 삶아서 먹었는데 정말 별맛입디다. 보는 보와 같이 그래서 지금 내 왼손 중지가 3분의 2가 없습니다.
에, 먹는게 이렇게 좋지만 이 먹는것 중에서도 술이 제일 좋지요. 남자로 태여나 술과 담배를 모른다면 정말 그 두냥반짜리를 달고 다닐 자격이 없지요.

에, 나는 물론 학생 때부터 술의 진미를 알게 되여 사회에 나와서는 줄기차게 마셔댔지요. 퇴근하여 서산에 해질무렵부터 3차, 4차 옮겨 다니며 마셨는데 마지막 음식점을 나서면 동산에 소는 해를 맞기가 일쑤였지요. 소문이 나자 룡정은 물론 연변에서 나한테 시집오자는 처녀가 없었지요. 안달아난 삼촌이 머나먼 흑룡강 오상의 처녀를 중매하면서 내가 술 마실 줄을 모른다고 속였지요. 첫대면후 그 처녀가 나의 외모에 반하여 약혼에 동의하고 결혼날자까지 받았지요. 삼촌은 나더러 결혼할 때까지만 술을 딱 끊어달라고 애걸 절반, 훈계 절반 했습니다. 종신대사라 나도 정신을 바싹 차리고 술을 끊었는데 그게 참 죽기보다 더 힘들더군요. 사돈보기 때와 결혼잔치 때 다른 사람들이 마셔라, 부어라 하는것을 지켜보노라니 군침이 막 도는데 삼촌이 곁에서 사이다만 부어주며 눈을 딱 밝히고 있어 참는 수밖에 없었지요.

아참, 그 고비를 넘기자 개 똥 먹는 버릇이 어딜 가겠습니까. 결혼한 이튿날부터 고주랑망태가 되는데 안해는 속았다고 울며불며 야단치고…그래봤자 제까짓게 소용 있나요? 이미 엎지른 물인데…그런 줄도 모르고 불원천리 흑룡강에서 딸집에 처음 찾아온 장모님은 이 사위가 술 마실 줄 모른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이 자자한 판에 물만두를 빚어놓고 안해가 식초 한병을 사오라고 해서 식품상점에 들어선 내가 글쎄 술친구들에게 붙잡혀 한잔만 한잔만 하다가 식초사러 온 줄도 까맣게 잊고 줄기차게 마셔댔는데…취하여 집에 돌아가니 장모님이 딸을 잘못 줬다고 울고불고…하하하! 그때는 이미 안해의 배가 뚱뚱해지기 시작했으니 별수 있나요?

에, 그후 안해는 애새끼 때문에 참는다면서 《이젠 마시겠으면 콱 마십시오.》하고 내가 아무리 마셔대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것이 내가 직장에서 정리실업 당하여 밀려나자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지요. 《생활이 바쁜데 일자리를 찾을 궁리는 하지 않고 빈들빈들 놀면서 술만 마시면 어떻게 사냐? 노는것도 괜찮으니 술만 마시지 말라.》이렇게 권고도 하고 애걸도 했지만 난 그따위 잔소린 개방귀로 여기고 날마다 취해 들어와선 주정을 부렸지요.

에참,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무던하던 안해가 보따리 싸고 달아날 줄이야. 바로 그저께 일입니다. 안해는 애새끼를 데리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버렸지요.

아이고, 주인량반, 이젠 난 홀아비가 됐으니 어떻게 살겠습니까? 뭐?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아무 일이나 찾아하라구요? 내 이 미남 체격에 어디가서 체면 깎이게 신수리나 자건거수리를 하겠습니까? 삼륜차는 더욱 못 끌지요. 그런 일은 죽어도 못하지요. 그럼 어디 돈이 있어 술을 마시는가구요? 집이 있지 않습니까. 집을 팔면 얼마동안은 술을 마실수 있을게 아닙니까. 뭐, 내가 타락했다구요? 워낙 개코같은 인생인데 타락한들 뭐랍니까? 그래도 정신차리고 새출발을 하라구요? 후―술맛 좋군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겠는지…

주인량반, 안해 없는 집은 정말 썰렁하지요. 텅 빈집 같습니다. 주인량반 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좋은게 마누라일까요. 그런데 요 술이란 놈이 마누라보다 썩 더 좋은걸 어떻게 합니까. 주인량반도 한잔…에, 모르겠습니다. 이젠 술이 더 좋은지 마누라가 더 좋은지…원래는 술이 더 좋았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요. 아, 이거 마지막 잔인데…카악…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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