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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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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3)
2013년 11월 10일 22시 17분  조회:2868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김희수

3. 피맺힌 원한

 

20세기 30년대 미국 뉴욕의 모 실험실에서 저명한 대뇌생리학연구전문가인 잭슨박사와 그의 수제자이며 유능한 조수인 리광인박사가 제1대 P․C평화광선실험에 성공한 뒤를 이어 세상을 놀래우는 제2대 P․C평화광선 실험을 진행하고있었다. 제1대 P․C평화광선모자를 사람에게 씌우면 그 사람은 체면술에 걸린듯 묻는 말에 실속대로 탄백하게 된다. 그렇다면 제2대 P․C평화광선모자는 어떤 신비한 위력을 가지고있는가?
이번 실험을 위해 잭슨과 리광인은 살인악마로 소문난 코미라는 흑인을 비밀리에 감옥에서 빼내왔다. 실험은 극비밀리에 진행되고있었기에 잭슨과 리광인 그리고 결혼한지 넉달밖에 안되는 리광인의 안해 오미자외엔 아무도 몰랐다.
안전을 고려하여 수갑과 족쇄를 채운채로 흑인 코미를 의자에 꽁꽁 묶어놓았다. 코미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윽윽 발악하며 두눈을 사납게 부릅뜨고 뭐라고 줄욕을 퍼붓고있었다. 그런 코미에게 잭슨과 리광인은 제2대 P․C평화광선모자를 씌운후 원격조종기 버튼을 누르고 긴장한 눈길로 코미의 반응을 지켜보고있었다.
제2대 P․C평화광선이 대뇌를 자극하자 야수처럼 으르렁대던 코미는 인차 혼수상태에 빠졌다. 시간이 한초한초 흘러갔다. 1분도 안돼 의식을 회복한 코미는 멍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의 이름이 뭔지 알만하오?》
잭슨이 모자를 벗기면서 이렇게 묻자 코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누가 당신을 여기에 묶어놓았는지 알만하오?》
리광인이 이렇게 물어도 코미는 역시 도리머리를 했다. 잭슨이 다시 코미의 안해와 아들의 사진을 꺼내 보여도 코미는 알아보지 못하는것이였다.
코미는 완전히 기억력을 상실했던것이다 제2대 P․C평화광선은 코미의 기억을 지워버리는데 성공한것이다. 사자처럼 사납던 코미가 묶은것을 풀어주고 수갑과 족쇄를 벗겨줘도 온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서잇는것이였다. 사회에 해만 끼치던 악인이 순식간에 선량한 인간으로 되여버린것이다.
《성공이요!》
잭슨과 리광인은 희열에 못이겨 서로 얼싸 안았다. 이 실험을 위해 그들이 흘린 땀은 얼마였으며 지새운 밤은 또 얼마였던가!
기쁨에 겨워 환호하던 잭슨은 갑자기 몸을 비틀거렸다. 이번 실험을 위해 밤낮 정력을 물붓다보니 70의 로인은 그만 지쳤던것이다.
《선생님, 제가 뒤수습을 하겠으니 돌아가 쉬십시오!》
《그럼 수고하게!》
잭슨은 비틀거리며 실험실을 나왔다.
잭슨과 리광인의 침실은 모두 실험의 편리를 위하여 실험실 복도로 통하는 건너방에 있었다. 실험실에 나와 몇발자국 가다가 굽이를 돌아 백보쯤가면 리광인의 침실이고 그 다음 칸이 잭슨의 침실이다.
잭슨이 피로한 다리를 끌고 리광인의 침실문앞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남녀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일본말이였는데 잭슨은 문에 귀를 바싹대고 엿들었다.
《아….이러지 마세요! 그이가 올거에요!》
애원에 찬 음성은 분명 리광인의 안해 오미자의 목소리였다.
《이히히! 실험에 미친 그자가 언제 온다구 그래. 빨리 거치장스런 옷을 벗고 우리 통쾌하게 놀아보자!》
음탕하게 웃는 남자의 목소리도 귀에 익었다. 오미자를 가끔 찾아오던 오미자의 오빠 오철수였다.
잭슨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들이 하는 수작을 봐선 가짜 오랍누이가 틀림없었다.그런데 그들이 왜 일본말을 할가?
《요시다로오빠, 전 그이와 결혼했으니 그의 사람이에요. 제발 이젠 이러지 마세요. 녜?》
《시께요꼬! 넌 내 첩이야! 조직에서 잭슨령감의 과학기술성과를 훔치기 위해 널 리광인에게 붙여줬을뿐이야. 내숭 떨지말구 빨리 옷을 벗으란 말이야!》
아, 그들은 원래 일본첩자였구나! 잭슨은 입귀가 푸들푸들 떨렸다.
《아….이러지 마세요. 전 그이한테 미안한 일을 할수 없어요! 제발…》
《꼼짝말구 고분고분 말들어! 넌 이미 리광인에게 미안한 짓을 했어. 넌 미니카메라로 제1대P․C 평화광선모자의 기술자료와 설계도를 찍어내지 않았니? 우리군은 그 모자덕에 숱한 항일분자를 잡아냈다. 이건 너의 공로야.》
《아니예요. 오빤 그 모잘 범인을 잡는데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범인을 잡는데 썻지. 우리 대일본제국과 대항하는 놈들은 죄다 범인이지. 시께요꼬야, 넌 잭슨령감과 리광인이 인간의 기억력을 지울수 있는 제2대 P․C평화광선모자를 곧 만들어낼거라고 했지? 넌 우리 대일본제국을 위해 그걸 꼭 훔쳐내야 한다! 알았어?》
《아…싫어요. 더는 그런 일을 할수 없어요!》
《이건 조직의 명령이야. 명령을 어기면 넌 끝장이야! 이제 그 모자를 훔쳐내는 날엔 우리 대일본제국과 맞서는 자들의 기억력을 몽땅 지워버릴테야! 그러면 총 한방 쏘지 않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수 있지! 으하하하!》
아! 이자들이 내 광학기술성과를 절도하여 전쟁에 사용했단 말인가! 잭슨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전룰을 느꼇다. 그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평생 과학연구에 심혈을 몰부었던것이다. 그래서 연구해낸 새로운 광선이름을 평화라고 달았던것이다. 제1대 P․C평화광선은 범죄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제2대 P․C평화광선은 이 세상 전쟁미치광이들과 악인들을 새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해냈던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연구성과가 전쟁에 리용되다니? 주먹이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렸다. 안된다, 어서 리광인에게 이 정황을 알려주고 즉시 모든 연구자료와 설계도를 감추어야 한다!
황망히 뒤걸음질로 돌아서던 잭슨은 그만 빈 통졸임통이 가득 찬 상자를 발길로 걷어찼다. 상자가 탁 넘어갔고 잇달아 빈 통졸임통들이 콩크리트바닥에 떼구루루 굴러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누구얏?!》
안에서 요시다로의 놀란 고함소리가 울리지 잭슨은 황급히 달음박질쳤다. 요시다로가 달려나와 총을 빼들었을 때는 잭슨이 복도 굽인돌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뒤잔등에 총을 맞는 잭슨은 통증을 참으며 결사적으로 달음질쳤다.
때마침 총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리광인이 잭슨을 부축하여 실험실로 들어갔다. 실험실에 홀로 앉아있던 흑인 코미가 멍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빨리…빨리…비밀갱도…》
리광인이 문을 걸기 바쁘게 잭슨이 숨가쁜 소리로 웨쳤다. 리광인이 다급히 비밀 암호를 눌러 갱도문을 열었다.
《빨리! 코미…》
리광인은 코미가 먼저 내려가 잭슨을 받아안게 했다. 그때 요시다로가 문을 탕탕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자료…설계도…》
잭슨이 밑에서 황급히 웨치자 리광인은 황망히 중요한 자료와 설계도를 걷어가지구 갱도속으로 들어갔다. 갱도문을 닫았다.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너무나도 급작스레 당한 일이라 영문을 물을 새도 없이 기계적으로 행동하던 리광인이 코미의 무릎에 기대여 피흘리며 신음하는 잭슨을 부여잡고 눈물이 글썽해서 물었다.
《누가 선생님을 쏘았습니까?》
《일본첩자…》
《누가 일본첩자란 말입니까》
《자네 안해 오미자와 그…오철수…》
《네?! 그게 정말입니까?》
리광인은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은듯 뗑해났다.
《그들은…가짜 오누이고…가짜 조선인이야. 진짜이름은 시께요꼬 …요시다로…그들은 원래 부부간이였어….》
《아!》
리광인은 신음했다. 잭슨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들은…제1대 평화광선을 훔치고…또 제2대 ….훔치려고…》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해쳤습니다! 제가 눈이 멀어 일본첩자를 안해로 맞아 그만…》
리광인은 너무도 통분하여 가슴을 치며 울먹거렸다. 잭슨이 괴롭게 신음했다.
《광인이 …내 부탁이 있네.》
《선생님, 부탁하십시오.》
《평화광선을…전쟁에 써서는….안되네. 위급할 때…없애버리게.》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자넨 스승인 나를 초과할 …과학천재야. 제2대 평화광선은…약점이 많네…자네는 꼭 제3대를…》
잭슨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그는 최후의 힘을 다 내여 마지막 부탁을 했다.
《과학의 최고경지는…미치는거네. 온전한 정신으로는…과학의 최고봉에…오를수 없네. 으으…난…인젠…틀렸네.》
잭슨은 맥없이 사지를 뻗어버렸다. 가석하게도 세계과학계의 위대한 거성은 이렇게 꺼져버렸다. 리광인은 너무도 애통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망망한 바다우에 배 한척이 기우뚱거리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리광인과 흑인 코미가 갑판우에 우두커니 서서 망망대해를 노려본다. 검푸른 파도가 철썩 쏴아-갑판을 덮친다.
《형님, 만주가 먼가유?》
코미가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리광인을 건드렸다. 그들은 의형제를 맺었던것이다.
《멀고도 멀지. 이 태평양을 날아 넘으면 크나큰 대륙이 있는데 거기에 만주가 있지. 만주엔 또 우리 어머님이 계시지!》
《어머니…어머닌 좋은 분이지유?》
《그래 좋은분이시지.아, 보고싶은 어머니! 어머닌 지금 무사히 계시는지…》
어머니품을 떠난지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학문을 닦고 과학연구를 하느라고 거의 잊다싶이 했던 어머니였다. 이제는 연구이고 실험이고 다 제쳐놓고 일편단심 어머님께 효성해 드리리라.
《형님…》
코미가 또 물었다.
《만주엔 사람을 죽이는 나쁜놈이 없는가유? 난 잭슨박사를 죽인 그런 나쁜 놈이 무서워유.》
《사람을 죽이는 나쁜 놈들은 이 세상 어디에나 다 있지!》
과거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죽여왔던 코미가 지금은 리해할수 없다는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천진하게 물었다
《나쁜 놈들이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할순 없을가유?》
《있지. 잭슨박사가 그걸 연구하다가 나쁜놈들에게 죽은거야. 그 트렁크안의 물건이 바로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그런 거야.》
리광인이 코미의 손에 들린 트렁크를 가리키며 말하자 코미는 신기한듯 트렁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이제부터 나쁜 놈들이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하자유!》
바로 그때였다.
《그 트렁크를 인줘!》
요시다로와 시께요꼬가 어느새 그들앞에 서있었는데 요시다로의 손에서 권총이 번쩍거렸다. 코미가 공포에 질려 뒤걸음질쳤다.
《다…..당신은 누구요?》
《저놈이 바로 잭슨 박사를 살해한 놈이야!》
리광인이 증오로 불타는 눈길로 요시다로를 노려보며 웨쳤다.
《아, 나쁜놈…》
코미가 몸을 떨었다.
《그 트렁크를 이리 줘! 주지 않으면 죽여버릴테다!》
요시다로가 총으로 위협했다.
《나쁜 놈, 또 사람을 죽이려고 안돼!》
코미가 트렁크를 꽉 틀어쥐였다.
《바가야로! 까불지 말고 빨리 줘!》
요시다로가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내가 셋을 셀 때까지 안주면 총을 쏠테다! 하나…둘…》
하지만 코미는 태연하게 맞받아 소리쳤다.
《이건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방지하는 기계야! 내가 이 트렁크를 들고있으면 넌 나를 죽이지…으악!》
순간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코미가 비명을 지르며 리광인의 품에 쓰러졌다. 요시다로의 총구멍이 불을 토한것이였다.
《코미! 코미!》
리광인이 처철한 목소리로 코미를 불렀다.
《형님…저 놈이…사람을 죽이지…못하게…》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코미는 영영 눈을 감았다.
《나쁜 놈!》
코미의 손에서 트렁크를 빼내며 리광인은 분노에 찬 눈길로 요시다로를 쏘아보았다.
《그 트렁크를 이리줘! 주지 않으면 너도 같은 끝장이야!》
요시다로가 음험하게 웃으며 한발작한발작 다가섰다.
《옛다! 콱 가져라!》
리광인은 갑자기 트렁크를 번쩍 들어 바다에 처넣었다. 그리고는 《으하하!》하고 크게 웃어댔다.
《이 자식이…죽여버릴테다!》
화가 치민 요시다로는 리광인의 가슴에 총을 겨누었다.
《안돼요!》
어느새 리광인의 앞으로 달려온 시께요꼬가 총구를 막아섰다. 요시다로는 분하여 씩씩거리며 총을 거두었다.
잭슨을 죽인것은 크나큰 실책이였다. 상급의 채근이 무서워 요시다로는 잭슨이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거짓 보고를 올렸던것이다. 리광인은 잭슨에 못지 않은 과학천재이다. 이제 그마저 죽여버린다며 상급에서 어떤 책벌이 내릴지 상상할수조차 없다. 연구자료따위가 없어져도 리광인이 살아있으면 실험은 계속 할수 있는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를 얼리고 닥치고 구슬리겠는가 하는것이다.
《리광인, 오지마의 낯을 봐서 너를 살려준다!》
요시다로는 시께요꼬를 세객으로 내세울 속셈으로 이렇게 뇌까렸다
 
《어머님,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리광인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로모께 절을 올린다. 마당에 나와있던 로모는 넋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아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불초자식 광인이 이제야 어머님 뵈러 왔습니다.》
몸을 일으켜 로모의 쪼글쪼글한 얼굴을 바라보는 리광인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그제야 로모는 아들을 와락 얼싸안으며 목메여 락루한다.
《광인아! 네가…정말 왔느냐?》
《제가 왔습니다. 어머님!》
《이게 꿈은 아니겠지?》
《꿈이 아닙니다. 어머님!》
한동안 회포의 정을 풀고 난 모자는 집으로 들어간다. 시께요꼬가 몰래 모자간의 눈물겨운 상봉을 지켜본다. 요시다로와 시께요꼬도 리광인의 뒤를 따라 만주로 왔던것이다. 이튿날 시께요꼬가 요시다로의 부추김을 받고 리광인을 찾아갔다. 부추김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녀자신이 리광인의 품에 다시 안기고싶은 마음이 앞섰던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리광인을 사랑하고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배속에선 리광인과의 사랑의 결정체인 새 생명이 꼼틀꼼틀 자라고있었던것이다.
《여보세요. 전…》
《넌 왜 따라 왔느냐? 냉큼 꺼져라!》
시께요꼬를 쏘아보는 리광인의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시께요꼬는 그 눈길에 질겁하면서도 물러설 념이 없다.
《전 당신과 함께 어머님을 모시면서 살고싶어요!》
《시께요꼬! 허튼 수작 하지마!》
《전 시께요꼬가 아니라 오미자예요. 당신의 안해 오미자예요!》
《뭐? 내 안해라고? 으하하하! 요시다로 그 깨똥같은 놈의 안해는 아니구?》
《아니예요. 요시다로놈은 저의 양오빠인데 그놈이 절 억지로 범했을뿐이예요. 전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듣기 싫다. 썩 물러가!》
리광인은 다짜고짜로 시께요꼬를 대문밖에 밀어냈다. 그러자 시께요꼬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전 당신의 아기를 뱄어요. 제발 절…》
《뭐야?》
일시 놀라서 멍해졌던 리광인은 급기야 폭소를 터뜨린다.
《으하하! 이 능청스런 년, 요시다로의 씨를 배고도 내 아기라고 빌어먹을 년!》
《아니예요. 전 당신과 결혼해서부터 요시다로에게 한번도 몸을 주지 않았어요!》
《귀신이나 믿겠지. 잭슨박사님이 살해되던 날도 넌 그놈과 한 이불속에 들지 않았니?》
《그놈이 억지로 요구했지만 전 끝까지 거절했어요》
《이년! 세살짜리 애나 곧이 들을 말로 날 감쪽같이 속여넘기려구? 어림도 없다!》
《제 말은 모두 사실이예요 어떻게 말해도 제 결백은 증명할 방법이 없군요. 허지만 애만은 진짜 당신의 씨인줄 아셔야해요. 요시다로는 생식불능이니깐요. 그놈은 처첩이 여럿이나 되나 모두 애가 없어요》
《개나발 불지 말고 냉큼 물러가라!》
《정말이예요. 이제 애가 태여나면 보세요. 보증코 당신을 똑 떼 닮았을거예요!》
《개수작하지마. 이 일본 색정간첩 년아! 나한테서 또 뭘 훔쳐내려구? 요시다로놈이 널 시켰지?》
《전 일본인이 아니예요. 조신인 오미자예요. 당신을 사랑하는 오미자예요. 절 당신곁에 있게 해주세요!》
《닥쳐!》
시께요꼬가 아무리 애걸복걸하며 매달려도 리광인은 막무가내 듣지 않고 쫓아낸다.
요시다로는 날마다 시께요꼬를 보내 리광인을 구슬리려 했다. 련며칠 시께요꼬가 달라붙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닷새째 되는 날 요시다로는 끝내 검은 마수를 뻗쳐왔다. 리광인의 로모를 랍치했던것이다.
《리광인! 너는 우리 대일본제국을 위해 다시 제2대 평화광선 실험을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의 어미를 강에 처넣어 죽일테다!》
요시다로가 로모를 다리까지 끌고 가서 살기등등하여 을러멨다.
《이놈아, 우리 어머님께 손대지 말라!》
뒤따라온 리광인이 분노에 치를 떨며 웨쳐댔다.
《으흐흐. 네가 우리 말만 들으면 네 어미를 털끝하나 다치지 않을거다!》
요시다로가 음험하게 웃으며 구슬려댔다. 리광인이 어찌할바를 몰라 놈에게 잡혀 괴로움을 받고있는 로모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어머니!》
《광인아!》
《으흐흐. 로친! 어서 아들더러 우리말을 들으라고 해. 그럼 어미아들이 다 살수 있어!》
요시다로가 총구멍을 로모의 옆구리에 들이대고 윽박질렀다. 로모는 증오에 불타는 눈길로 요시다로를 쏘아보며 아들에게 당부했다.
《광인아, 절대 왜놈들의 말을 들어선 안된다!》
《바가야로! 늙다리같은게 죽고싶어!》
대역무도한 요시다로는 화가 나서 로모를 발길로 걷어찼다. 로약한 로모는 나무토막 넘어지듯 맥없이 쓰러졌다.
《앗! 어머니…》
분노한 리광인은《이 짐승같은 놈아, 내 너하고 결판을 낼테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치며 요시다로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안겼다. 화가 난 놈이 막 리광인에게 발길을 날리려는 때였다.
《이놈아, 내 아들을 건드리지마.》
로모의 추상같은 호령이였다. 로모는 자기가 살아있는 한 놈이 자기를 인질로 끝없이 아들을 괴롭힐것이며 아들은 모자간의 정때문에 놈의 간계에 넘어갈수도 있으리란걸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이 시각 비장한 결심을 내린다.
《광인아, 넌 꿋꿋이 살아야 한다.!》
말을 마치기 바쁘게 로모는 순식간에 몸을 날려 다리아래로 뛰여내렸다! 검푸른 강물이 삽시간에 로모를 삼켜버렸다.
《어머니!》
리광인이 가슴을 쥐여 뜯으며 피타게 웨친다. 그러던 리광인이 정신없이 다리를 내려 강뚝을 따라 뛰여가며 비통하게 부르짖는다.
《어--머--니--!》
리광인은 강물에 풍덩 뛰여든다. 허지만 헤엄에 능하지 못한 그는 얼마 헤여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뒤따라 온 시께요꼬가 리광인을 건져낸다. 시께요꼬는 수영능수였다. 허지만 리광인이 또다시 뛰여들고 시께요꼬는 구해내고…그렇게 거듭 몇번이던가. 리광인도 지치고 시께요꼬도 지치고…그러나 리광인은 련사흘이나 계속 물에 뛰여든다.
사흘째 되는 날 누군가 로모의 시체를 건져냈다. 고기잡이군에 의해 발견된것이다.
《어머니!》
리광인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어머니!》
로모를 묻었으나 리광인은 무덤곁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시께요꼬가 달랬으나 리광인 막무가내였다. 밤낮 사흘동안 무덤곁을 지켰던것이다.
《여보세요.》
사흘째되던 날 음식을 갖고 온 시께요꼬가 안타깝게 부르며 달래려 할 때였다.
《으하하하!》
갑자기 리광인이 크게 웃었다. 깜짝 놀란 시께요꼬가 뒤주춤했다. 시께요꼬를 바라보는 리광인의 눈이 이상했다.
《히히, 좋아!》
리광인이 소리내여 웃으며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시께요꼬도 따라갔고 숨어서 살펴보던 요시다로도 뒤따랐다.
《히히, 좋아!》
리광인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괴상하게 웃어댔다. 광인(光仁)은 광인(狂人)이 되였던것이다.
《저 자식이 미쳤잖아! 왜 저래?》
요시다로가 의아한 눈길로 리광인의 거동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께요꼬는 리광인이 미쳤다고 믿지 않았으나 요시다로가 단념하도록 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꾸며댔다.
《왜 미치지 않겠어요. 잭슨박사의 죽음, 안해의 배반, 코미의 죽음, 어머니의 원통한 최후…저이가 받은 타격은 너무도 컸어요. 그 엄청한 타격을 받아내지 못해 저이는 정신이 잘못된거예요.》
《저 자식이 정말 미쳤을가?》
요시다로는 반신반의했다. 그는 시께요꼬를 천방백계로 리광인에게 접근시켜 미친 진가를 알아내게 했다. 련며칠 관찰해도 가짜라는걸 알아볼수 없었다. 요시다로는 시께요꼬더러 발가벗고 리광인을 유혹하게 하고 자기는 몰래 숨어서 엿보았다. 시께요꼬는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젖통을 드러내놓고 리광인의 앞에 다가섰다.
《히히…히히… 좋아!》
리광인은 괴상야릇하게 웃으며 포도알같은 젖꼭지를 손으로 흔들어보더니 성냥불로 유두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아…앗!》
시께요꼬는 황급히 물러나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었다.
《저인 정말로 미친거예요!》
시께요꼬가 그렇게 말했지만 요시다로는 단념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되면 꼬리가 잡힐거라고 믿었다.
시께요꼬의 배는 점점 커져갔다. 저 아이가 태여나면 리광인의 정체를 알아낼수 있고 또 인질로 삼을수도 있을걸.
시께요꼬는 해산했는데 남자애를 낳았다. 아기는 신통히도 리광인을 빼여닮았다.
《여보세요. 이 앤 당신의 아들이예요. 당신을 닮은걸 봐요.》
시께요꼬가 날마다 리광인에게 애를 보이며 그렇게 말했으나 광인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괴상하게 웃을뿐이였다.
《이 애 이름을 평화라고 짓는게 어때요? 당신의 연구주제가 평화이고 희망도 평화가 아니던가요?…평화야, 아빠하고 안아 달랄가?》
시께요꼬가 평화를 안겨주자 리광인은 아이를 받아안고 괴상하게 웃다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것이였다.
《저 자식이 정말로 미쳤단 말인가?》
요시다로는 믿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회보를 들은 상급에선 시꺼요꼬만 남겨두어 광인을 관찰하게 하고 요시다로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요시다로가 떠나자 시께요꼬는 리광인과 함께 거주하며 그를 보살폈다.
《여보세요. 요시다로놈이 가버렸으니 이젠 정신 차리고 깨나세요. 보세요, 평화가 얼마나 귀여워요? 우리 아기가 웃어요. 아빠를 보고 웃어요.》
시께요꼬가 진정을 담아 그렇게 말했으나 리광인의 미친 증세는 점점 더 심해가는것 같았다. 리광인은 늘 똥오줌을 바지에 싸서 아무렇게나 팽개쳤다. 시께요꼬는 한마디 짜증도 없이 아이와 어른의 똥빨래를 빨아댔다. 산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시께요꼬는 정신적 육체적 시달림으로 몸이 점점 쇠약해졌다.
평화는 무럭무럭 자라서 리광인을 아버지라 불렀지만 그 아버지는 여전히 미친 웃음을 웃었다.
시께요꼬는 끝내 깊은 병이 들었다. 어느날 똥빨래를 씻던 시께요꼬는 맥없이 그자리에 쓰러졌다.
《아버지, 어머니, 일본이 투항했대요!》
그때 밖에 나갔던 평화가 쏜살같이 뛰여들어오며 환희에 차서 소리쳤다. 아이가 전하는 희소식에 리광인이 방에서 뛰쳐나왔고 시께요꼬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들었어요? 일본이 망했대요!》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시께요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썩 후에야 리광인은 시께요꼬, 아니, 오미자가 남긴 유서를 발견했다.
애아버지:
전 애아버지가 미치지 않았다는걸 알고있어요. 저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 글을 남겨둬요. 전 애아버지앞에 영원히 용서받을수 없는 죄인이라는것을 알고있요. 전 요시다로의 핍박으로 애아버지의 연구성과를 훔쳐냈으니깐요. 전 조선사람 오미자예요. 제가 아홉살나던 때에 요시다로의 어머니가 부모를 잃은 저를 키워줬어요. 그들은 저에게 일본이름을 지어주었고 일본글을 가르쳤어요. 제가 나이 들자 이미 장가들었으나 아이가 없는 요시다로는 억지로 저를 첩으로 삶았어요. 일본첩자였던 요시다로는 제가 조선사람인걸 리용해서 애아버지한테 접근하게 했어요. 허지만 저는 애아버지와 결혼하는 날부터 지금껏 애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애아버지, 평화를 잘 키워주세요!
오미자 절필
오미자의 유서를 읽은 리광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이였다. 리광인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는 계속 미쳐야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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