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의 첫날, 나는 남편과 함께 손자를 데리고 공원놀이를 떠났다. 비록 겨울이였지만 공원은 신세기를 맞는 명절기분으로 흥성흥성했다.
50대의 남편은 손자와 함께 뛰여다니면서 놀았다. 사랑하는 두 남자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지친 나는 중도에서 투항하고 의자에 앉아 다리쉼을 하였다. 그때 《언니》하고 반갑게 부르는 소리에 머리를 들고 보니 30대의 예쁘장한 녀인이 내 앞에서 생긋 웃고있었다.
《언니, 참 오래간만이요!》
《누구더라?》
《아이참, 날 모르겠소?》
《오-너로구나!》
그제야 생각났다. 그녀는 이전에 식료품공장에 함께 출근할 때 15살이나 년상인 나를 《언니, 언니》하면서 몹시 따르던 애였다. 17살 어린 나이에 공장에 들어온 그녀는 마음씨 착하고 일도 눈치 약게 잘해서 사람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었다. 살결이 흰데다가 흰옷을 즐겨입고 다녀서 사람들은 그녀를 《흰나비》라고 불렀다.
《흰나비》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불렀다. 특히 《우리 엄마 기쁘게》라는 노래는 그녀의 지정곡이였다. 이렇게 순진하고 천진란만한 소녀인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나쁘게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공장보위과의 최간사와 애매한 관계가 있다는 뒤소리가 들리더니 얼마후엔 또 털보총각과 비정상적인 래왕이 있다는 추문이 온 공장에 쫙 퍼졌다. 어떤 소문이나 쉽게 믿지 않는 나는 어느 야근 때 그녀가 탈의실에서 최간사와 뒹구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서야 헛소문이 아님을 믿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공장사람들은 《흰나비》를 《얼룩나비》라고 부르게 되였다.
그후 공장이 파산되여 서로 헤여진후부터 나는 《얼룩나비》의 소식을 모르고있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오늘 여기서 뜻밖에도 그녀를 만나게 될줄이야.
우리는 함께 앉아 지난간 일들을 두루 이야기했다. 그녀는 지금 남편을 잘 만나 귀여운 딸을 두고 잘 지내고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문뜩 《언니…》하고 불러놓고는 뒤말을 머뭇거린다.
《왜 그러니?》
《저…언니는 날 더러운 여자로 보고있겠지?》
《아니, 무슨…》
《난 이전엔 누구한테도 우리 집 형편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소. 사실 그때 우리 집은 몹시 가난했고 어머닌 중병으로 앓아누웠소. 하지만 돈이 없어 어머닌 약을 쓸 형편이 못되였소. 25원밖에 안되는 내 월급으로 어머니와 나 그리고 두 동생 이렇게 네식구가 살아가야 했으니까 말이요. 그때 먼 친척벌이 되는 사람이 어머니 병치료에 쓸 토방법을 알려줬는데 사탕가루와 닭알이 수요되였소.》
그녀에게는 사탕가루와 닭알을 살 돈이 없었다. 생각다못해 그녀는 공장에서 과자원료로 쓰는 사탕가루와 닭알을 훔쳐가기로 작정했다. 어느날 야근하는 기회를 타서 그녀는 가방에 사탕가루와 닭알을 슬그머니 넣어가지고 공장문을 나서다가 그날 당직인 보위과 최간사에게 발각되였다. 그녀의 미모에 침을 흘리며 음험한 생각을 품고있던 최간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사물실로 끌고 갔다. 최간사는 공장의 물건을 훔친 그녀를 전체종업원들 앞에 세워놓고 비판대회를 열겠다고 을러멨다. 그녀가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울면서 빌자 그는 음탕하게 웃으면서 자기 말만 들으면 비밀을 지켜준다고 했다.
《나는 도적이란 소문이 나는게 두려웠소. 소문이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는 날엔 한평생 청백하게 살아온 어머닌 얼마나 실망하겠소. 어머닌 그런 타격을 받고 병세가 더 중해질게 뻔했소. 그래서 나는 최간사의 거듭되는 협박에 굴복하여 몸을 맡겼던거요. 그 일이 있은후 최간사는 기회만 있으면 나를 덮쳤어요. 얼마후 우리 둘의 관계를 발견한 털보도 내 약점을 리용하여 내 몸을 빼앗았던거요. 호-그때는 왜 그리도 어리석었던지…》
그녀는 가슴 아픈 회상에서 깨여나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아니, 네가…그렇게 아픈 사연을 가슴에 묻고있었다니…》
나는 《얼룩나비》, 아니 《흰나비》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2000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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