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규는 고급중학교 영어교원이고 명화는 시병원 외과의사이다. 대학시절부터 사랑을 불태워 온 그들이 여태껏 결혼하지 못하고있는 원인은 두 집 다 가난한 탓으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했기때문이다.
다른 련인들처럼 다방이나 나이트클럽에 드나들지 못하는 그들은 주말이면 팔걸이를 하고 강뚝이나 공원을 산책하는것이 고작이였다.
어느날, 철규네집이 자리잡은 교외에서 산책하던 그들은 새로 일떠선 호화로운 저택집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철규는 매일 출퇴근길에 이 집이 일떠서는것을 보아왔지만 오늘은 주인이 새집들이 했는지 전에없이 엄엄한 기분을 느꼈다. 꼭 닫긴 철대문, 높은 담장에 둘러쌓인 정원에 나란히 서있는 두 대의 수입제 승용차와 고급오토바이…
“저렇게 어마어마한 집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있을가요?”
“글쎄…”
“우리도 저런 집에서 살아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글쎄…”
경탄과 부러운 눈길로 저택집을 바라보는 한쌍의 련인, 그들의 눈엔 눈앞의 저택이 2층이 아니라 20층, 200층으로 바라볼수조차 없이 아득히 높아본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저택주인이 중년에 상처한 천마집단의 서총재라는것을 탐지해냈고 또 그 집엔 서총재의 무남독녀 보배딸과 가정부할멈이 살고있다는것도 알아냈다.
철규는 출퇴근길에 저택집아가씨가 철대문앞에서 애완견을 안고 서있는것을 늘 보게 되였다. 용모는 그다지 예쁘지 않았지만 딱히 무엇이라고 찍어 말할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있는 부자집아가씨를 철규는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군 했다. 그때면 그 아가씨도 그에게 방긋이 웃어주는것이였다.
하루는 늦잠을 자다보니 철규는 출근길이 총망하게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저택집철대문앞까지 왔을 때 자전거바퀴에 유리조각이 박히며 “팡!” 하는 소리가 났다. 그때 애완견을 안고있던 저택집아가씨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바삐 철대문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부근에 있는 자전거수리부에 자전거를 맡긴 철규는 출근이 늦어질가봐 초조해났다. 그가 손목시계를 부지런히 들여다보며 뻐스를 기다리고있는데 갑자기 호화로운 승용차 한대가 그의 앞에 와 멈춰섰다.
“어서 오르세요!”
운전석의 차창유리문이 열리면서 저택집아가씨가 얼굴을 내밀었다. 철규가 어정쩡해 서있자 아가씨가 “지각하겠어요. 제가 태워다드릴테니 어서 오르세요!”라고 재촉했다. 그가 얼떨떨하여 차에 오르자 승용차는 나는듯이 질주했다. 그가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는데 아가씨가 어떻게 알았는지 고급중학교문앞에 와서 멈춰서는것이였다. 더욱 놀라운것은 퇴근길에 그 승용차가 또 학교문앞에서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 게다가 저택집아가씨가 그를 호화로운 술집으로 모시고가서 한상 푸짐히 대접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알고보니 저택집아가씨는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그를 가정교사로 초빙하겠으니 거절하지 말아달라는것이였다.
“내가 영어교원이라는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선생님이 우리 집문앞을 지나 출퇴근할 때 학생들이 인사를 하는것을 여러번 보았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정황을 캐여물었지요.”
“그랬군요. 그런데 시간이 좀…”
“제가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주말마다 오셔서 가르치면 돼요. 보수도 후하게 드릴께요.”
서춘금이라고 부르는 저택집아가씨는 박씨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생긋 웃었다. 가난한 명화의 예쁜 웃음을 압도하는 그 도고한 웃음앞에서 철규는 그만 주눅이 들고말았다.
철규가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부터 명화와의 주말만남이 해체되고 평일의 저녁밀회만 남게 되였다. 철규는 몇번이나 명화에게 가정교사로 들어간 사실을 말하려다가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명화쪽에서도 주말만남이 취소된데 대해 놀라지 않았고 리유도 따지지 않는것이 이상했다. 만나면 할 말이 끝이 없던 이 한쌍의 련인은 화제거리가 점점 줄어들었고 그대신 뜨겁게 달아오른 육체를 애욕의 불길에 달래다가 헤여지군 했다. 그러다가 이런 저녁밀회마저 드물어졌으니…
어느날, 저택집에서 춘금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철규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화려한 옷차림을 한 젊은 녀인이 서총재의 부축을 받으며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뒤모습을 보았다. 분명 집에 들어왔다가 돌아가는 길인데도 집이 하도 커서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저 녀인이 누굽니까?”
철규의 말을 듣고 달려와 창밖을 내다보던 춘금이가 말했다.
“저와 동갑인 처녀예요. 말로는 아버지의 가정의사라고 하지만 저의 계모가 될지도 몰라요.”
춘금의 말에 철규는 깜짝 놀랐다. 서총재가 딸같은 녀자와 결혼한다니? 그리고 저렇게 새파란 처녀가 아버지벌되는 남자의 품에 안기다니? 돈의 위력에 감탄한 철규는 그 어떤 욕망에 몸이 달았다.
처음에는 열심히 영어를 배우던 춘금이가 차츰 영어에 싫증을 느끼더니 쩍하면 철규를 자가용차에 태워가지고 도시의 밤세계에 뛰여들었다. 춘금이는 카바레, 다방, 노래방, 5성급호텔 등 화려한 불빛세계를 전전하면서 “촌뜨기”인 철규에게 현대인의 향수를 만끽하게 했다. 춘금이는 춤을 출 때 철규의 목에 두팔을 걸고 의식적으로 풍만한 젖가슴을 밀착시켰다. 철규도 눈을 감고 춘금의 허리를 껴안은 두팔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선생님을 처음 보는 순간 저는 정말 세상에 멋진 남자도 있구나 하고 첫눈에 반했어요. 선생님, 절 사랑해주세요!”
어느날 밤, 춘금이는 자기의 침실에서 철규를 껴안고 사랑을 고백했다. 끝내 부자집아가씨의 유혹에 넘어간 철규는 춘금이를 껴안고 침대에 올랐다.
그 일이 있은후 철규는 한동안 불안과 동요에 모대기면서 갈팡질팡했다. “명화에게 미안한 짓을 더는 할수 없다. 춘금이와의 허위적 사랑을 깨끗이 끊어버리자”고 결심했다가도 호화로운 저택집에 발을 들여놓을 때면 “명화가 예쁘면 뭐래? 정이 깊으면 뭐래? 돈, 돈이 있으면 다야. 돈만 있으면 사랑도 행복도 명예도 지위도 다 있게 될거야”라는 욕망이 끓어올라 사랑이 없는 가슴에 춘금이를 껴안아주군 했다.
얼마후 이 일을 알게 된 서총재가 철규를 조용히 불러놓고 물었다.
“자네 정말로 내 딸을 사랑하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철규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우렁차게 대답하자 서총재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난 자네가 진심으로 내 딸을 사랑하길 바라네. 자네도 알다싶이 나에겐 슬하에 춘금이 하나밖에 없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데릴사위를 삼아 함께 있을 작정이였네. 자네가 동의한다면…”
“동의합니다!”
이제 저택집 미래의 주인으로 된다고 생각하니 철규는 미칠듯한 기쁨으로 가슴이 들먹거렸다. 그런데 그 기쁨과 함께 한가지 근심이 생겼다. 춘금이와 결혼날자까지 정해놓은 그는 하루 빨리 명화를 찾아가서 그녀와의 관계를 두부모 베듯 딱 끊어버려야 했던것이다. 어떻게 말을 뗄가 고민하다가 명화를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 시체머리도 하지 못하고 다니던 가난뱅이 명화가 어느새 화려한 옷차림에 금목걸이, 금귀걸이, 금반지가 반짝거리는 “귀족아가씨”로 탈바꿈했던것이다. 철규는 문뜩 저택집창밖으로 보았던 젊은 녀인이 떠올랐다. 그때는 화려한 옷차림때문에 그 녀인이 명화이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것이다.
세상일이란 참 묘하기도 하다.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련인이 불과 몇달사이에 장모, 사위로 되였으니 말이다. 명화는 서총재의 후실로 들어가고 철규는 저택집아가씨의 새신랑으로 되여 그들은 그렇게도 부러워하던 저택집에서 함께 살게 되였다. 처음에는 미묘한 관계때문에 어색해하던 그들은 얼마후 옛정이 되살아났는데…
“이 더러운 년놈들아!”
발가벗고 한몸이 되였던 철규와 명화는 난데없는 서총재의 천둥같은 호통소리에 혼비백산했다. 가만가만 도적사랑을 맛보는 일에 정신이 빠지다보니 그들은 서총재와 춘금이가 의심하고 기회를 기다리다가 꼬리를 잡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나가랏! 더러운것들!”
쫓겨나 철대문을 나서며 철규와 명화는 아쉬운 눈길로 높은 저택을 되돌아보았다. 슬프다! 저 궁궐 같은 저택집에서 한평생 호강을 누리며 살줄 알았는데…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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