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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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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메아리
2013년 12월 08일 11시 32분  조회:3642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대중소설


안개속의 메아리


김희수
 
 
여름철에 잡아들자 《어절씨구목욕탕》은 손님이 뜸해졌다. 3층에 찾아오는 손님은 더구나 적었다. 두 처녀와 젊은 부부간이 왔다간후로 10시가 되도록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3층의 담당접대원은 워낙 둘이였는데 중년녀인이 아들잔치때문에 사흘간 말미를 맡았기에 오늘은 젊은 녀인 혼자였다.
그녀는 하도 무료하여 《천지》잡지를 펼쳐들었다. 금방 소설의 서두를 읽어내려갈 때 계단을 밟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하여 1남1녀가 그녀앞에 나타나 목욕표를 내밀었다. 보던 책을 내려놓고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어 목욕표를 받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곰같은 몸집에 장대한 체구를 가진 50대의 멋진 양복차림의 신사사나이와 미끈한 몸매에 짙은 화장을 한 20대의 화려한 옷차림의 미녀가 나란히 서있는것이 아닌가.
《박총경리께서 어떻게…》
그녀는 50대 사나이가 《두둥실호텔》의 총경리 박규태임을 대뜸 알아보고 허리를 굽석거렸다. 무도장의 단골인 그녀는 박총경리와 두번이나 춤을 추는 《영광》을 가진적이 있었으나 안면이 넓은 박총경리는 그녀같은 《하찮은》 녀인을 기억하고있을리 만무했다. 그녀는 곁사람들한테서 박총경리가 마누라와 리혼하고 스무살난 처녀를 후실로 맞아들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렇게 박총경리의 새 부인을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였다.
《아이참, 더워죽겠네! 전번부터 샤워욕기가 고장났다고 말했는데두 새걸 사오지 않더니 봐요. 탈탈거리며 이 고생인걸!》
박총경리의 젊은 안해는 왼쪽 어깨에 메였던 가방을 오른 쪽 어깨에 바꿔 메며 종알거린다. 백양처럼 미끈하게 쪽 빠진 몸매, 보름달같이 환한 얼굴, 다치면 터질듯 불룩 솟은 탐스런 젖가슴은 가히 박총경리의 애간장을 태워줄만 했다.
《허허허! 이렇게 다니는것도 재미지비.》
박총경리는 젊은 안해의 손을 다정스레 잡고 접대원녀인이 안내하는 309호 방으로 들어갔다. 부러운 눈길로 그들을 일별한 접대원녀인은 제자리에 돌아와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시간이 약 40분가량 흘렀을 때 박총경리의 젊은 안해가 먼저 문을 열고 나오며 안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세요! 아직도 안됐나요? 정말 굼뜨네. 전 먼저 이 앞 《옹헤야미용청》에 가겠으니 그리 알아요!》
박총경리의 안해가 부랴부랴 층계를 내려간지도 20분이 지났으나 박총경리는 나오지 않았다. 웬 일일가? 그녀는 309호 방으로 다가갔다. 안에서 수도물 흐르는 소리가 쏴-쏴 귀전을 때렸다.
(이 령감이 아직도 몸을 씻고있군. 사업이 바쁘다보니 목욕할 새가 없었나보지?)
지정된 한시간이 지났으나 다른 손님이 없기에 그녀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다시 돌아와 책을 펼쳐들었다. 소설 한편을 다 읽었는데도 박총경리는 나오는 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그 어떤 예감에 가슴이 섬찍해났다.
(이 령감이 혹시 졸도한게나 아닐가?)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309호 방문을 두드렸다.
《박총경리, 계시나요?》
대답이 없다. 그녀는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였다.
《박총경리! 박총경리!》
역시 대답이 없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눈앞의 처참한 광경에 놀라 《앗!》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마후 형사정찰과 과장 석진이와 정찰원 구민이 현장에 도착했다.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채로 굳어진 시체는 목에 바줄로 조인 흔적이 남아있는 외 다른 곳은 상처자국이나 다친 흔적이 없었다. 피해자는 년령이 50세좌우, 키가 1.75메터, 체중이 90킬로그람 됨직했다. 시체촬영이 끝나자 석진이와 구민이는 피해자가 벗어놓은 옷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양복호주머니에서 열쇠묶음과 만년필, 사업용수첩 그리고 가치가 퍼그나 되는 인민페와 외화가 나왔다. 석진이는 안호주머니에서 정교하게 찍은 명함장을 들추어냈다.
 
박규태:
《두둥실호텔》총경리. 지력개발회 리사장, 발전기금회 리사장, XX협회 명예회장.
 
보아하니 피살자는 이름있는 기업가이며 명성높은 사회활동가였다. 명함장에서 손을 뗀 석진이는 그때까지 쏴-쏴- 소리치며 흐르는 수도물을 끄며 예리한 눈길로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천정은 콩크리트였고 안방엔 목욕통 둘이 있고 겉방엔 밑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나무침대 둘이 있었는데 오른쪽 침대에 박규태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하나뿐인 창문은 꽁꽁 잠겨져 있고 창밖아래로는 행인과 차량들이 간단없이 오가고있었다. 흉수가 창문으로 뛰여들어 왔거나 이 방에 잠복해있는 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석진이는 구민이와 함께 시체의 첫 발견자인 접대원녀인을 만났다. 그녀는 어찌나 놀랐던지 그때까지도 벌벌 떨며 사건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귀담아듣고 난 석진이는 담배를 두대째 갈아대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20살좌우의 미인이라 했지? 그런데 키는 얼마나 돼보였소?》
《키가요? 저…1.60메터는 될거예요.》
《박총경리네가 목욕탕에 들어간후 무슨 소리가 안들렸소?》
《아무 소리도 못들었어요.》
석진이와 구민이는 다시 1층과 2층의 담당접대원과 목욕탕의 경리를 만나 필요되는것을 조사했다. 흉수는 박규태와 함께 목욕탕에 온 녀인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녀인이 정말 박규태의 안해일가?
제보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오느라 점심도 먹지 못한 그들은 빵으로 대충 요기를 한후 곧추 《두둥실호텔》로 차를 몰았다.
6층으로 된 호텔은 호화롭고도 으리으리했다 맨 아래층은 식당과 록화청이고 2층은 오락장, 3층은 무도장, 그 다음 웃층은 모두 호텔방이였다. 그들은 각층의 해당경리들과 몇몇 일군들을 만나본후 나중에 박총경리의 비서를 찾았다. 대학졸업생인 젊은 비서는 박총경리가 당한 불행에 대해 몹시 애석해하였다.
《박총경리는 사업에 몹시 열중한 정력적인 기업가였지요. 사람들은 그의 사생활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하며 의논하고있는데 저는 그런것에 관심을 돌리지 않기에 잘 모릅니다.》
《박총경리가 젊은 안해를 맞았다는데…》
《그건 1년전의 일이지요. 그때 박총경리는 본 안해와 리혼하고 지금의 안해를 맞았는데 그 녀자는 박총경리의 시집간 딸보다 더 어렸지만 남편을 끔찍히 사랑했답니다.》
《박총경리 안해의 사업단위는…》
《원래는 술집 복무원이였는데 지금은 직업을 버리고 가정주부질 한답니다.》
《박경린 오늘아침 출근했소?》
《네. 여느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는데 9시가 거의 되여 웬 녀자한테서 전화가 와서 나갔지요.》
《웬 녀자한테서? 전화내용은?》
《전 그때 곁에서 무심히 들었는데 박총경리가 대방이 누구냐고 두번 물은것 같습니다.》
《비서동문 박총경리네 집을 아는지요?》
《알다뿐이겠습니까, 제가 두분을 모셔다드리지요!》
그들이 비서의 안내로 박규태네 집에 가보니 집은 비여있는지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둘은 저녁에 다시 찾아갔다.
젊은 안주인이 집에 있었다. 초인종소리를 듣고 문을 연 그녀는 자기앞에 나타난 두 형사경찰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그들을 널찍한 접대실로 안내하고는 차를 따라주었다. 석진이는 그녀의 예쁘장한 두눈에 눈물방울이 가랑가랑 맺혀있는것을 보았다.
《동무가 박총경리의 안해요?》
《네. 방금 남편단위에서 위문하려 왔다갔댔어요. 정말 뜻밖이예요. 너무나도…》
그녀의 고운 눈에서 두줄기의 눈물이 소리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그 눈물은 억지로 짜낸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 슬픈 표정도 아니였다.그녀가 박규태와 결합한것은 돈을 탐낸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박규태의 재능과 기업가다운 풍채에 끌려서였다. 그녀는 나이 많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규태는 어린 안해를 끔직히도 귀여워했다. 갓 결혼해서 꿀맛같던 그들의 생활이 6개월이 지난후부터 웬 일인지 랭랭해지더니 차츰 티각타각 말다툼질이 끝이 없었다.
《우린 사건을 조사하러 왔소. 동문 오늘 낮에 어디에 갔댔소?》
《집에 있기 답답해서 바람 쏘이러…》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뭘 했으며 누구와 함께 있었소?》
《저…저는…》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흑빛이 되였다. 그녀가 당황해하는것을 보고 쏘파에 앉았던 구민이가 벌떡 일어나며 키가 신통히도 1.60메터좌우되는 이 예쁜 녀인을 쏘아보았다.
《왜 당황해하는거요? 솔직히 교대하오!》
《전…제발 묻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석진이는 격해지려는 구민이를 가볍게 누를며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오. 우린 절대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굴지 않소.》
《전…전…남편을 보복하고싶었어요!》
《무엇때문에?》
《갓 결혼해서 절 기막히게 아끼고 사랑해주던 남편이 반년전부터 그 열정이 차츰 식어거더니 늘 밤중에 들어오는가 하면 외박하는 차수가 늘어났어요. 전 그가 도박을 노는가 햇는데 알고보니 다른 녀인들과 놀아댄게 아니겠어요. 이 널찍한 집에서 홀로 밤을 새우는 제 고통을 어찌 한입으로 다 말할수 있겠어요. 전 반년동안이나 남편이 있는 생과부질했어요!》
《동문 남편이 외도한다는걸 어떻게 알았소?》
《밖에서 시시한 말이 돌고 저한테 귀띔해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번은 남편이 옷을 씻다가 호주머니에서 웬 녀인의 사진 한장을 발견했어요. 처녀같아보이는 그녀는 저보다 더 예쁘게 생겼어요. 소문을 믿지 않던 저는 이때에야 자신이 배반당했음을 의식했어요. 저는 말없이 집을 떠났어요. 친정집에 간 이튿날로 되돌아왔어요. 올케의 눈치가 보여 아침밥도 먹지 않고 이른 새벽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글쎄 제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갈보니 바로 사진의 그 녀인과 남편이 발가벗고 한침대에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전 남편을 보복하고싶었어요!》
《그렇다고 어찌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단말이요?》
구민이는 수갑을 꺼내 그녀의 손에 채우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뒤주춤하며 놀란소리를 질렀다.
《남편을 살해했다니요? 전 남편을 미워했지만 살해하려는 마음을 먹어본적이 없어요!》
《보복하려 했다면서 살인하지 않았다니?》
《전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같은 방법으로…》
그녀는 남편에게 보복하려고 첫사랑을 나누었던 총각을 찾아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줄곧 《닐리리공원》에서 놀다가 점심을 함께 먹고 저녁밀회까지 약속했는데 공교롭게도 남ㅁ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 총각은 어디서 사업하오?》
《의학원학생이예요.》
《박총경리가 집에 데리고 왔다는 녀자는 키가 어느만큼 되고 어떤 특징이 있엇소?》
《그 녀자는 아래입술밑에 유표나게 까만 기미가 있었는데 제가 들어서자 옷을 입고 달아다는걸 보니 키는 저보다 더 컸어요.》
석진이는 일어나 집안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욕실에 가서 샤워욕기를 다쳐보니 물줄기가 쏴-하고 뿜겨나왔다.
이튿날 아침에 시체검사보고가 나왔다. 흉수가 박규태를 바줄로 목을 매여 죽인것이 확인되였다. 흉수는 지문을 남기지 않았다.
석진이와 구민이는 의학원의 그 학생을 찾아가니 그 학생은 자기가 어제 확실히 그 시간에 박총경리의 안해와 밀회를 가졌다는것이였다. 그들은 다시 박총경리의 안해와 《어절씨구목욕탕》의 3층 담당접대원녀인을 대면시켰다.
《저 녀자가 아니예요. 어제 박총경리와 같이 온 녀자는 저 녀자보다 키가 훨씬 더 컸어요.》
《어제 동문 그 녀자의 키가 1.60메터좌우 된다고 하지 않았소?》
《제가 그랬던가요? 눈짐작으로 그만큼 된다고 생각했는데…》
《동무, 이건 장난이 아니요. 가짜 정황을 제공하면 법적책임을 져야 하오!》
《어마나, 전 그래도 사실대로 말하느라 했는데…》
《그럼 한가지 더 묻기오. 박총경리와 같이 온 녀자는 얼굴에 무슨 특징이 없었소? 말하자면 기미라든가 주근깨라든가 하는거말이요.》
《기미?》
애써 기억을 더듬으며 접대원녀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 녀잔 얼굴에 아무런 표적도 없었어요.》
석진이와 구민이는 다시 《두둥실호텔》로 가서 박총경리의 비서를 찾았다.
《비서동무, 이 호텔엔 아래입술밑에 기미가 있는 녀자가 있소?》
《기미요? 우리 호텔의 6층 접대원 계옥이가 아래입술밑에 기마가 있습니다. 그 처년 키가 크고 아주 예쁘게 생겼는데 박총경리의 소개로 들어왔지요.》
《박경린 그 녀자를 어떻게 알고 데려왔다오?》
《3.8절 텔레비죤야회를 촬영할 때였지요.》
박총경리의 비서는 지나간 그 로맨스를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계옥이이 미혼부 광욱이는 구연단의 만담배우였다. 그때 계옥이는 광욱이의 만담종목이 야회에 오른 덕분에 관람석에 앉게 되였다. 그녀의 곁에는 뚱뚱한 몸집의 50대 사나이가 만면에 웃음을 담고 앉아있었다.
《이번 야회를 후원해주신 〈두둥실호텔〉의 박규태총경리께서 보귀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사회자가 계옥이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와 방그레 웃으며 50대 사나이한테 마이크를 내민다.
(아, 저이가 신문과 잡지에 소개된 그 명성높은 기업가 박총경리구나!)
계옥이는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박규태를 바라본다. 청산류수로 발언을 끝낸 박규태는 자리에 도로 앉으며 계옥이한테 눈웃음을 보낸다. 가요절목이 시작되자 박규태는 신이 난듯 선으로 박자까지 쳐대다가 어망결에 계옥이의 무릎을 탁 쳐놓는다.
《어, 이거 미안하오!》
규태가 난처해하며 사과하자 계옥이는 별일 없다는듯 생글생글 웃었다.
《박총경리께선 음악을 무척 즐기시는 모양이군요!》
《대단히 즐기오. 얼마나 심금을 울려주는 선률이오! 동문 즐기지 않소?》
《저도 즐겨요.》
박규태는 계옥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는 계옥이가 아직 직업이 없다고 하자 놀란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직업이 없다니? 동무같은 인물체격이면 복무계통에서 서로 빼앗자고 하겠는데. 우리 호텔에 들어올 의향이 있소?》
《제가 어떻게…》
계옥이는 가슴이 쿵쿵 뛰였다. 순식간에 직업을 찾다니. 그것도 광욱이가 있는 도시에서 출근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집체합숙이 있는데 주숙비는 무료요. 로임은 200원인데 표현에 따라 더 내줄수도 있소. 어떻소? 래일부터 출근해도 되오!》
너무나도 기뻐난 계옥이는 박규태한테 연신 감사를 드렸다…
《계옥이는 지금 어디에 있소? 출근했소?》
구민이가 급히 물었다.
《아마 출근했을겁니다. 6층에 올라가 보십시오.》
6층에 올라간 그들은 뚱뚱한 접대원처녀를 만났다.
《계옥인 어디 있소?》
《계옥인 어제 아침에 일찍 떠났어요. 웬 영문인지 일을 영 그만두겠다며 짐을 꾸려가지고 갔어요.》
《가버렸다구?!》
석진이와 구민이는 서로 놀란 눈길을 교환했다. 석진이는 담배불을 붙여물었다.
《계옥인 평소에 누구와 거래가 많았소?》
《저하고 제일 친했어요. 그리고 구연단에 있는 미혼부 광욱이가 늘 찾아왔어요. 계옥이는 시골처녀이고 광욱이는 도시총각인데 광욱이의 외가집이 계옥이네 뒤집에 있었대요. 계옥이는 어릴 때의 한토막이야기를 몇번이나 저한테 들려줬어요…》
걸음발을 타면서부터 외가집에서 자랐던 광욱이는 도시학교에 다니면서도 계옥이와 떨어질수 없어 방학이면 꼭꼭 외가집으로 놀러 가군했다. 계옥이가 10살을 잡던 여름방학이였다. 외가집에 놀러 가는 선참으로 계옥이를 찾은 광욱이는 아버지가 출장갔다가 사온 자석달린 비닐필통을 계옥이 앞에 내놓았다.
《요거 봐꽁!》
《해해, 필통 곱다. 날 줘!》
《날 붙잡으면 줄래!》
광욱이가 필통을 높이 들고 흔들며 애를 태우자 계옥이는 광욱이를 붙잡겠다고 기를 쓰고 쫓아다녔다. 가까이에서 요리조리 피해 달리던 광욱이는 갑자기 동구밖 수수밭쪽으로 달려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광욱아!》
계옥이가 뒤쫓아가며 수수밭을 살폈으나 광욱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야웅!》
문뜩 계옥이의 앞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마나! 고양이…》
계옥이가 고양이를 보려고 앞으로 몇발작 옮기자 이번엔 등뒤에서 《매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해, 염소…》
계옥이가 뒤로 돌아서서 염소를 찾으려는데 이번엔 《따웅!》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범이 온다! 광욱아, 너 어디 있니?》
어찌나 겁났던지 계옥인 뛰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히히, 나 여기 있다!》
광욱이가 땅에서 솟아났는지 그녀의 앞에 불쑥 나타나 필통을 내밀었다. 그후부터 광욱이는 《어마나! 고양이》, 《해해, 염소》, 《에크, 범이 온다!》하며 계옥이를 놀려주군 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계옥이와 박총경리의 관계를 아는대로 말해보오!》
구민이가 듣다못해 뚱뚱한 접대원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자 접대원처녀는 옷깃을 매만지며 말머리를 돌렸다.
《호텔에 들어온 계옥이는 늘 박총경리의 따뜻한 관심을 받군했어요. 처음 계옥이는 무도장의 표를 팔았는데 어중이떠중이들이 자꾸 모여들어 시끄럽게 굴자 박총경리는 즉시 매표원을 그만두게 하고 저와 함께 호텔복무원일을 하게 했어요. 박총경리는 늘 찾아와서 일이 마음에 드는가,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는가, 식사는 어떤가 하면서 어버이다운 사랑을 베풀어주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제가 일이 있어 총경리실로 갔는데 안에서 박총경일와 계옥이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호기심에 끌린 제가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박총경리가 자그마한 함을 계옥이한테 넘겨주고있었어요.
〈계옥이가 이달 표현이 좋기에 장려로 주는거요!〉
〈뭔데요?〉
〈어디 열어보오.〉
〈어머, 금반지?!〉
함을 열어보던 계옥이가 깜짝 놀란 소리를 질렀어요. 다음 순간 계옥이는 함을 도로 돌려주었어요.
〈전 이렇게 귀중한걸 받을수 없어요.〉
〈그까짓게 뭘 대단하다구 그러오? 어서 받소!〉
박총경리는 갑작스레 계옥이의 손을 꼭 잡고 탐욕스런 눈길로 계옥이를 노려보는거였어요.
〈아니, 왜 이래요?〉
계옥이가 힘껏 손을 뿌리치자 박총경리는 죄송스러운듯 두 손을 움츠러뜨리며 가련한 상을 지었어요.
〈계옥인 내 마음을 모를거요. 난 계옥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몰래 사진까지 찍어두었소. 난 자나깨나 계옥이의 사진과 동무하였소. 계옥이 난…〉
박총경리는 호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계옥이한테 보여주며 애걸했어요.
〈박총경리님, 자중하세요! 박총경리님은 처자가 있는 분으로서…〉
〈난 안해와 추호의 감정도 없소! 계옥이가 원한다면 난 안해와 리혼…〉
〈박총경리님, 전 박총경리님을 선배로, 유능한 기업가로 존경해왔어요. 그러니 박총경리님도 절 존중해주기 바래요. 박총경리님도 알다싶이 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계옥이가 일어나 나오려는것을 보자 저는 얼른 몸을 감췄어요. 이 일이 있은후 전 그들이 다시 접촉하는걸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 수심에 푹 잠겨 있던 계옥이가 훌쩍 떠났고 박총경리가 갑자기 비참하게…》
《계옥이가 짐을 꾸릴 때 어떤 물건들이 있었소?》
《옷견지와 화장품따위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앤 줄뛰기운동을 즐겼는데 줄뛰기도 짐속에 넣고 갔어요.》
《줄뛰기?》
석진이와 구민이의 눈길이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언뜻 부딪쳤다. 흉기로 될수 있는 줄뛰기가 계옥이한테 있었다는 사실은 홀시할수 없는 일이였다. 처음엔 자기 몸을 지키던 계옥이가 왜 박규태의 품에 안겼을가? 왜 박규태네 집에서 그들이 성관계를 가진 이튿날 박규태가 살해됐을가? 계옥이가 정말 흉수라면 기미는? 《어절씨구목욕탕》의 접대워녀인은 흉수의 얼굴에 기미가 없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기미라는건 지워버릴수도 있고 만들어넣을수도 있다. 박규태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간 녀인은 나올 때 《옹혜야미용청》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자기를 폭로하였을가? 20대 녀인이니 빈구석이 있을수도 있는것이다.
《동문 계옥이의 집주소를 아오?》
《전 몰라요. 구연단의 광욱이를 찾아가요. 그가 알아요.》
그들이 먼저 《옹혜야미용청》에 찾아가니 아래입술밑에 기미가 있는 이쁘고 키 근 처녀가 그날 확실히 왔댔는데 기미를 지우지는 않았다는것이였다. 그렇다면 다른 미용청에 가서 했을것이다. 그들은 구연단의 광욱이를 찾아갔다. 광욱이는 20대의 미남이였다.
계옥이의 집주소를 그럽니까? 당신들은 박총경리살인사건이 계옥이와 관계된다고 의심하는게 아닙니까?》
《우린 지금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요. 그러니 동무가 협조해주기를 바라오.》
광욱이는 석진이와 구민이의 기색을 살피더니 계옥이가 살고있는 시골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얼마후 석진이와 구민이를 태운 경찰차는 계옥이가 살고있는 시골로 줄달음쳤다. 약 1시간가량 달리자 차는 계옥이가 산다는 동동촌의 마을에 들어섰다. 수레길 둔덕아래에 시내물이 흐르고있었는데 그 둔덕 버드나무밑에 한 녀인이 그린듯이 서있었다. 경찰차는 그녀와 10여보 떨어진 곳에서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곧추 그 녀인한테로 다가갔다. 《말씀 좀 물읍시다.》하고 그녀를 부르던 석진이는 멍해졌다. 피려는 꽃송이같이 아름다운 얼굴, 호수같이 맑고 그윽한 눈, 꼭 씹어놓고싶은 애된 입, 그 아래입술밑에 유표나게 드러난 기미를 가진 미모의 녀인이 의혹에 찬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고있는것이 아닌가. 석진이는 그녀가 바로 계옥이라고 판단했다.
《동무가 〈두둥실호텔〉에서 일하던 계옥이요?》
《네, 무슨 일인가요?》
《동문 어제 몇시차에 집에 왔소?》
《11시 20분차로 왔어요.》
《동문 아침 일찌기 호텔을 떠났는데 그동안 뭘 했소?》
《저는 〈에루화시장〉에서 아침을 먹고 차시간이 멀었기에 답답한 가슴을 달래려고 강가로 나갔어요.》
《누구와 함께 있었소?》
《혼자 있었어요.》
《동문 박총경리와 경상적으로 남녀관계를 가졌소?》
구민이가 불쑥 물었다.
《무슨 의미인가요?》
《동문 그래 박총경리댁에서 추태를 부리다가 박총경리의 안해한테 들킨적이 없소?》
《뭐라구요? 제가 추태를 부렸다구요?》
계옥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것을 겨우 참았다. 그녀의 앞에는 그날 일들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났다.
박규태가 금반지로 계옥이를 나꾸려고 한지도 열흘이 지난 어느날, 광욱이가 접대실에 홀로 있는 계옥이를 찾아왔다. 소곤소곤 소삭이던 둘은 어느새 한덩어리가 되여 격렬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때 《에헴!》하는 소리와 함께 손님 두분이 나타났다. 멋적게 된 광욱이는 작별을 하고 돌아갔다. 손님을 안내하고 돌아온 계옥이는 자기들이 앉아있던 자리에 사진 한장이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 사진을 주어들고 보던 그녀는 그만 흠칫 몸을 떨었다. 사진엔 웬 낯선 녀인이 광욱이를 꼭 끌어안고 행복에 겨워 웃고있었던것이다.
(아, 이것이 정말이란 말인가? 광욱이가 이 따위 더러운 사진을 품고 다니면서 아무런 주저도 없이 나하고 키스를 하다니?! 망나니야! 색광이야!)
증오와 울분이 그녀의 가슴에서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그날밤, 그녀는 배반당한 슬픔이 무시로 가슴을 파고들어 한잠도 못잤다. 이튿날엔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도 하지 않고 홀로 합숙에 누워있었다. 9시쯤 해서 규태가 찾아왔다.
《왜서 출근하지 않았는가 했더니 어디 아프오? 불편하면 말미를 줄테니 며칠 푹 쉬오!》
《듣기 싫어요! 썩 물러가요!》
계옥이는 발딱 일어나며 고함쳤다. 규태는 제풀에 물러갔다. 점심때가 되자 규태가 계옥이한테 점심밥을 날라다 놓고 소리없이 나가버렸다. 그녀는 그들떠도 보지 않았다. 규태는 저녁때 또 밥을 갖다놓고 나갔다. 그런데 이윽하여 광욱이가 헐례벌떡거리며 들어섰다.
《계옥이, 어디 아프오? 박총경리님의 전화를 받고 오는 길이요. 어서 병원에 가 보기요.》
《썩 물러가요! 망나니!》
광욱이를 보자 계옥이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계옥이는 침대머리에 있는 유리잔 두개를 련속 던졌다. 유리잔은 광욱이의 발밑에서 짤라당짤라당 하며 산산쪼각이 났다. 광욱이는 뜻밖의 일에 아연실색했다.
《계옥이, 왜 이러는거요? 도대체 웬 일이요?》
계옥이는 광욱이한테 막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이때 규태가 들어와 그들을 말렸다. 규태를 보자 계옥이는 보복심이 솟구쳤다. 그녀는 애교를 떨며 규태한테 거마리처럼 칭칭 감겨들었다.
《사랑하는이, 저와 함께 커피점에 가자요. 네?》
광욱이는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 어정쩡해났다. 계옥이가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그처럼 순결한 계옥이가! 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계옥이, 이게 어찌된 일이오?》
《어찌된 일인가구? 이 사진의 이년하고 물어봐!》
계옥이는 호주머니에서 그 더러운 사진을 꺼내여 광욱이한테 홱 팽개치고는 규태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좋은 기회라고 느껴진 규태는 계옥이를 자기의 단골커피점으로 데리고 갔다. 규태는 복무원녀인한테 다가가서 배원짜리 지페 한장과 종이봉지 하나를 건네주고는 슬그머니 눈짓했다. 잠시후 자리를 잡고 앉은 그들앞에 복무원녀인이 커피 두 고뿌를 들고 왔다.
《계옥이, 자, 들기요!》
《들자요, 박총경리님!》
계옥이는 내심의 고통을 커피로 묵새기려는듯 단모금에 쭉 마셔버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규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옥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계옥이는 이내 드티여 앉았다. 그러자 규태는 능글능글 웃으며 계옥이를 꼭 끌어안았다.계옥이는 박규태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으나 머리가 혼미해지며 까딱할 맥이 없었다. 그녀는 저도 몰래 규태의 품에서 잠들고말았다.
그녀가 깨여났을 때는 얼마나 한심한 일이 벌어졌던가!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인 그녀가 박규태의 곁에 누워있었다. 원통했다. 18년 고이 키워온 귀중한 처녀를 값없이 잃은것이 원통했다. 그녀는 박규태의 낯판대기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이 짐승같은 놈아!》
그녀는 울고싶었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가증스런 색마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바로 그때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박규태의 젊은 안해가 들어섰다…
《그렇다면 박총경리가 동무를 짓밟았단 말이지?》
《그자는 저를 점유하려는 욕망으로 간계를 꾸며 저와 광욱동무사이에 엄중한 오해가 생기게 했어요.》
《간계라니?》
《광욱동문 제가 만나주지 않으니 그자가 절 해친 날 아침 편지를 보내왔어요.》
계옥이는 호주머니에서 편지 한통을 꺼냈다. 석진이와 구민이는 제꺽 편지를 받아 읽었다.
 
계옥이:
그 사진은 이렇게 된 일이요. 글쎄 그 사진에 있는 낯선 녀인이 나를 찾아와서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조용한 곳에 불러가더니 무턱대고 나를 막 끌어안는게 아니겠소? 한동안 그러던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손을 풀고 어디론가 가버리는것이였소. 그때 난 정신병환자인가 했는데 동무가 넘겨주는 그 사진을 보자 뭔가 깨달았소. 나는 그녀를 찾아 진실을 밝혀야 하겠다는 생가이 번쩍 들어 친구들을 총동원시켜 카라 ,술집, 다방, 불고기점, 무도장 등 오락장소를 샅샅이 훑게 했소. 마침내 한 술집에서 그녀의 종적을 찾아냈소. 그녀는 원래 불고기점의 복무원이였는데 매음하다 쫓겨 지금은 《에루와시장》 2층 동쪽 매대에서 옷장사를 한다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당장 《에루화시장》 2층 동쪽 매대에 가서 그녀를 붙잡고 따졌소. 그녀는 오래전부터 박총경리와 치정관계가 있던 녀인인데 박총경리가 돈 2배원을 주며 그녀를 시켰다오. 자기는 숨어서 사진을 찍고. 얼마나 가증스런 인간이요?! 하지만 계옥이 우리 사이의 오해가 풀렸으니 다행이요!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거요!
계옥이만을 사랑하는 광욱이로부터.
 
그들이 편지를 다 읽자 계옥이는 또 다른 쪽지 한장을 넘겨주었다.
《이건 제가 광욱동무한테 회답해보내려고 썼다가 보내지 못한 쪽지예요.》
그들은 그 쪽지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광욱동무:
전 광욱동무를 볼 면목이 없어요! 박총경리가 그 저주로운 그자가 커피에다 몽혼약을 풀어 저한테 먹인후 자기 집에 끌고 가서 제 몸을…아, 하늘에, 땅에, 골수에, 오장에 마디마디에 사무치는 이 원한을 어떻게 푼단말인가요? 전 박총경리, 그자를 죽여버리겠어요!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계옥이로부터.
《그래서 동문 박총경리를 죽였단 말이요?》
《무슨 뜻인가요?》
《시치미를 떼지 마오. 동문 미용원에 간적이 있지?》
《옹혜야미용청》에 가서 제 얼굴을 흉측하게 만들어달라고 청든적이 있어요.》
《변명하지 마오. 동무는 박총경리를 유혹하여 목욕통에 데리고 간후 줄뛰기로 목을 졸라 죽였소. 동무는 법률의 무기를 사용할 대신 개인복수를 했기에 자기를 망쳤소!》
《그래요. 전 자기를 망쳤어요.》 계옥이는 한숨을 내쉬였다. 《전 살고싶은 생각이 없어요. 차라리 잘 됐어요. 절 체포하세요!》
《계옥동무, 동무는 중요한 혐의대상이기에 우리와 함께 가서 심사를 받아야 하겠소!》
석진이가 이렇게 말하자 구민이는 수갑을 꺼내 계옥이의 손목에 채우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오토바이 한대가 그들한테로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잠간만!》하고 웨쳤다. 그들 셋은 놀란 눈길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바라보았다. 잠간후 오토바이가 그들 앞에 와서 멎으면서 웬 녀인이 훌쩍 뛰여내렸다. 키 크고 이쁘고 나젊은 그 녀인은 계옥이를 서글픈 눈길로 바라보더니 두 경찰한테로 다가가 말했다.
《제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진짜 흉수예요! 전 수사를 벌리고있는 당신들을 진작부터 주시했어요. 오늘 당신들이 여길 오는걸 보고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가봐 제가 자수하려고 따라 왔어요. 그 처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 절 체포하세요!》
《동무는 누군데 흉수라고 자칭하는거요?》
《제가 살인경과를 말하면 당신들은 제가 흉수라는것을 믿을거예요.》
그녀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평온 어조로 이야기했다.
《닐리리공원》 구석진 곳에 50대의 사나이와 20대의 녀인의 괴이한 상봉.
《박총경린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군요!》
《아가씬 누군데 여기서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소?》
《박총경리께서 우리 녀자애들을 무척 귀여워한다기에 한번 만나보려고…》
《도대체 어쩌자는거요?》
박규태는 얼굴이 수수떡처럼 붉어지며 불가사이한 낯선 녀인을 쏘아보았다.
《아이참, 어쩌긴 어쩌겠어요? 박총경리와 사귀자는거지요!》
그녀는 박규태한테 찰거마리처럼 감겨들며 아양을 떨었다. 규태는 마음같아선 방금 피려는 꽃같은 그녀를 당장 삼켜버리고싶었다.
《아가씬 내 호주머니의 돈냄새를 맡은거지?》
《아니예요. 전 돈을 탐낸게 아니예요.》
《그럼 왜?》
《아이, 참 쑥스럽게…》
녀인이 몸을 배배 꼬자 규태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당장 그 녀인을 침대에 눕히고싶어졌다.
《그럼 지금 당장 장소를 찾아볼가?》
《글쎄요. 아이, 근데 이 며칠째 목욕을 하지 않았더니…》
《그래? 그럼 당장 목욕탕에…》
박규태를 유혹하여 목욕탕에 데리고 간 녀인은 온갖 아양을 다 부려 규태더러 먼저 옷을 벗게 했다. 그 다음 녀인은 박규태의 라신을 감상하는체 하며 뒤모습을 보자고 구슬렸다. 얼이 쑥 빠진 박규태가 고분고분 하라는대로 돌아서자 그녀는 어깨는 어떻고 허리는 엉뎅이는 어떻다는둥 하며 평가를 늘여놓는 한편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둔 바줄로 불시에 박규태의 목을 졸랐다. 가련한 박규태는 녀색을 즐기려다가 이렇게 목숨을 잃은것이였다…
《동문 도대체 누구요? 왜서 박총경리를 죽였소?》
구민이의 의혹에 찬 질문이였다. 여태껏 사색에 잠겼던 석진이가 무릎을 탁 쳤다.
《구민이, 우린 이번 사건수사에서 엄중한 실책을 범했소! 우린 표면현상에 미혹되여 흉수를 녀자라고만 생각했던거요!》
그러자 흉수라고 자칭하는 녀인이 시내물에 달려가 세수를 하고 올라와서 가발과 가짜 유방을 벗어 팽개쳤다. 그녀는 삽시에 미남으로 변했다. 그 남자를 보는 순간 계옥이가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광욱동무!》
계옥이는 정신없이 광욱이한테로 달려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꼭 부등켜안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계옥이!》
《광욱동무!》
서로 애절하게 부르는 두 련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샘솟았다. 한동안 근엄한 눈길로 두 청춘남녀의 포옹을 지켜보던 석진이와 구민이는 급기야 광욱이를 경찰차에 오르게 했다.
《광욱동무!》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오르는 광욱에게 정신없이 매달리며 대성통곡했다. 무정한 경찰차는 계옥이를 떼여놓고 뽀얀 먼지를 남기며 사라졌다. 피타는 목소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며 경찰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던 그녀는 그만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고 푹 꼬꾸라졌다. 바로 그때 그녀의 앞으로 고양이 한마리가 폴짝폴짝 뛰여갔다.
《야웅!》
《어마나! 고양이…》
《매매!》
《해해, 염소…》
《따웅!》
《에크, 범이 온다! 광욱아, 너 어디 있니?》
《히히, 나 여기 있다!》
… … …
199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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