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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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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의 신변에 잠복했던 녀공산당원 심안나
2013년 12월 14일 14시 41분  조회:6594  추천:2  작성자: 넉두리

장개석의 신변에 잠복했던 녀공산당원 심안나
 
 
(번역)
 
 



 
1915년에 강소성 태주에서 출생한 심안나는 1935년 1월에 시험에 합격되여 절강성정부비서처 의사과(议事科)의 속기원(速记员)으로 들어갔다.

1938년에 주은래의 파견을 받고 심안나는 국민당정부최고층으로 잠입해들어갔다. 그녀는 속기원의 신분으로 여러번이나 국민당의 당, 정, 군 최고층의 중대한 회의에 참석하여 대량의 중요한 정보를 수집해 연안에 보내주었으나 폭로되지 않았다. 그녀는 장개석의 신변에서 장장 11년이나 잠복해있었다.

심안나는 국민당중앙상무위원회와 중앙전회에서 모두 속기사업을 담당했으며 국방최고위원회, 국민정부위원회, 최고군사회의 속기사업을 담당했다. 심지어 장개석이 중앙훈련탄에 가서 강의할 때에도 속기사업을 담당했다.

그전에 심안나는 이미 절강성정부비서처 의사과의 속기원이였다. 조직에서 암호로 그녀에게 상해로 돌아오라고  했을 때 그녀는 즉시 성정부의 중요한 회의서류와 회의기록을 트렁크의 옷속에 감춰가지고 와서 조직에 바쳤다. 조직에서는 빈틈없이 임무를 완성한 그녀를 칭찬했다. 그후 그녀는 국민당의 계획 및 무기장비, 도로또치카의 분포정황, 설계도 등 중요한 정보를 특수한 약물을 리용하여 편지지의 뒤면에 썼다. 그리고 정면에는 일반적인 문안인사를 적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조직에 전해주었다.

장개석은 주석대에서 발언하면서 옆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속기원아가씨가 중국공산당의 비밀당원이라는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것이다. 심안나는 1946년말에 중경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이 담판할 때 당중앙에 전략가치가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주은래부주석은 심안나의 정보사업을 “신속하고 정확하다”는 말로 칭찬해주었다. 심안나는 1949년에 중공중앙의 표창을 받았고 1989년에 국가안전부에서 내여준 영예상과 영예증서를 수여받았다.

1947년에 해방전쟁은 대치상태에 있었다. 이 시기에도 심안나는 끊임없이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남편 화명지의 손을 통해 중공중앙남방국 령도의 손에 들어가게 했다. 국민당고위층에서 얻은 이런 극비정보를 장악한 공산당은 국민당군대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적의 심장에 잠복하여 사업하려면 혁명정신을 견지하는외에 반드시 기술이 받쳐주고 어떠한 정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심리감당능력이 있어야 한다. 심안나는 매분당 200자를 기록할수 있는 놀라운 속기속도를 가지고있었다. 이는 그녀가 적의 심장에 잠복할수 있는 선결조건이였다.

새 중국이 성립된후 심안나와 그녀의 남편 화명지는 모두 국가안전부문에서 사업했다.

1946년 6월에 장개석은 고급군사회의에서 발언하다가 절대적인 비밀에 대해 말하기전에 “아래의 말을 기록하지 마시오”라고 명령했다. 심안나는 필을 놓고 장개석이 하는 말을 머리속에 기억해두었다가 휴식시간에 변소로 가는 기회에 슬그머니 중요한 정보를 기록했다.

군통국의 반간첩기구에서 한동안 결사적으로 비밀공산당원을 붙잡으려고 날뛰는 바람에 심안나는 조직과의 관계를 중단하지 않을수 없었다. 1946년 3월 17일에 대립이 비행기추락사고로 죽은후에야 심안나는 중단됐던 조직관계를 회복했다. 그 시기 그녀는 장악한 모든 정보를 직접 《신화일보》총편집이였던 오극견에게 넘겨주었고 오극견은 직접 전파로 연안에 보내주었다.

주은래는 “대립의 죽음은 공산당의 혁명을 10년 앞당겨 성공할수 있게 했다”고 말했고 장개석은 1950년 3월 17일에 있은 대립사망 4돐기념회의에서 침통한 목소리로 “대우농(우농은 대립의 자임)동지가 죽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 대만으로 후퇴하지 않았을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말은 대립이 살아있었더라면 국민당심장에 잠복해있는 심안나와 같은 공산당원들을 붙잡아냈거나 그런 지하공산당원이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을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여러 영화회사에서 심안나를 원형으로 한 영화를 찍으려고 했지만 심안나는 모두 거절했다. 텔레비죤련속극 《특수사명》에 나오는 구양하의 원형은 심안나라고 하는데 “80후”, “90후”의 녀배우들이 어찌 인간의 본성인 칠정육욕을 억제해야 했던 심안나의 고통을 알수 있겠는가?

심안나는 국민당의 심장부위에서 장기간 잠복해있으면서 심리압력이 매우 컸다. 그녀는 다른 지하공산당원들과 달리 활동반경이 매우 작았고 사면에 모두 적이였기때문에 자칫하면 신분이 드러날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뛰여난 지혜로 당이 맡겨군 임무를 출중하게 완성하고 무사하게 당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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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정말
날자:2013-12-15 12:19:40
정말 감동됨니다.총칼을 들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전사들 보다 얼마나 더 용감하고 더 큰 의지와 지혜와 슬기로 하루 24시간 전투한것과 같지 않습니까?얼마나 큰 공로를 ,얼마나 큰 대가를 희생했겠는가를 얼마쯤 알게되였습니다.정말 조국의 공신들임니다.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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