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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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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싸는 이야기
2013년 12월 29일 13시 19분  조회:4215  추천:2  작성자: 넉두리

먹고 싸는 이야기
 
한국소설가 천운영

 
 
이것은 똥에 관한 이야기다. 똥 중에서도 새똥. 새 중에서도 하필이면 날지도 못하고 걷는 것마저 처량한 펭귄. 날 수는 없어도 새는 새여서 새처럼 똥을 싼다는, 펭귄 똥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은 여름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남극의 여름. 펭귄들이 짝을 짓고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워내는 번식의 계절. 여름의 일과 똥의 일.

새들은 똥이 생기는 족족 싸지른다. 날든 걷든 앉아 있든, 언제 어디서든. 똥은 물론이고 소화되지 않은 먹을거리들을 오줌과 함께 발사한다. 그래서 냄새도 지독하고 독성도 강하다. 펭귄 똥은 분홍색이고 크릴새우 썩은 내가 난다. 이 냄새를 기막히게 알아차리고 덤벼드는 칼집부리물떼새 녀석은 펭귄 똥에 섞여 나온 소화되지 않은 크릴새우 껍데기를 주로 먹는다. 널려 있는 게 똥이니 사냥에 힘 뺄 일도 없다.
 
펭귄 한 놈이 크릴 사냥을 나가면 다른 한 놈은 반드시 둥지에 남아야 한다. 포식자 도둑갈매기에게 알과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그 자리에서 똥을 싸다 보니 둥지를 중심으로 똥 줄기가 사방무늬로 쌓여간다. 둥지를 튼 것인지 똥밭에 앉은 것인지. 똥밭에 앉았어도 새끼를 품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눈이 녹는다. 녹은 물이 펭귄 둥지를 거친다. 역한 똥물이 길을 만들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역한 만큼 유기물이 풍부한 영양물이다. 그것이 바다에서 플랑크톤을 키워낸다. 플랑크톤이 풍부해야 크릴새우가 잘 자란다. 올해 남극 킹조지섬 앞바다는 크릴이 대풍년이다. 그래서 고래들도 펭귄도 물질에 신이 난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펭귄들은 바다를 날며 크릴 사냥을 한다.
 
크릴을 배에 그득 채운 펭귄이 열심히 언덕을 오른다. 뒤뚱거리기는 해도 미끄러지지는 않는다. 먼 길을 뒤뚱거려 둥지에 이르면 크릴을 내놓기 전에 우선 자랑질부터 한다. 고개를 길게 빼고 나 잘했지. 새끼를 지키고 있던 녀석은 칭찬하는 고갯짓으로 화답한다. 이리저리 고개춤을 추며 잘했군 잘했어. 그렇게 한동안 자랑질과 칭잔질의 흥겨운 의식을 끝낸 후에야 임무교대를 하고 크릴을 게워낸다. 새끼 펭귄들은 쏙쏙 잘도 받아먹으면서 또 즐겁게 똥을 싼다.




 
펭귄 똥을 노리는 것은 비단 칼집물떼새뿐이 아니다. 펭귄 똥을 찾아 남극까지 찾아온 인간도 있다. 그는 똥이라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에서 얼룩말 똥과 한 계절을 보냈다. 대부분 싸 놓은 똥을 파헤치지만, 죽은 펭귄을 해부해 위장에 든 똥을 파헤치기도 한다. 그는 그 속에서 기생충을 찾아낸다.
 
똥에 머리를 처박고 기생충을 찾는 데 온 신경을 모으고 있는 그는 소박하지만 정성 그득한 밥상을 받은 사람 같다. 담담하게 그러나 진정으로 즐겁게 젓가락질을 한다. 그는 어쩌면 지금까지 어디서에도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기생충에 이름을 붙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올해 기생충 때문에 죽은 펭귄에 대한 사례연구를 발표하게 될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새끼 펭귄들이 털갈이까지 마치고 물질 연습까지 끝내고 나면 남극의 여름도 끝이다. 여름이 끝나면 펭귄도 떠나고 연구원도 떠날 것이다. 똥들이 있던 자리에서는 녹조류 프라지올라가 푸르게 돋아날 것이다. 눈 밑에서도 숨을 쉬며 땅의 온도를 아주 조금쯤 올려놓을 것이다.
 
이것은 똥에 관한 이야기다. 싸는 이야기고 먹는 이야기다.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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