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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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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의 변신과 도전
2014년 12월 14일 14시 42분  조회:4921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중국문학의 변신과 도전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중국 정통 문학사에서는 1976년, 즉 문혁 이후의 문학을 ‘신(新)시기 문학’이라부른다. 그런데 최근 1949년부터 70년대까지를 ‘전(前)삼십년 문학’, 개혁·개방 이후 현재까지를 ‘후(後)삼십년 문학’이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이 겪은 엄청난 변화를 생각하면 이런 구분은 타당하고도 남음이 있다. 79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처음 제기한 ‘소강(小康)사회 건설’의 방향이 새 지도자 시진핑에 의해서도 거듭 확인됐다. 중국은 2020년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을 향해 전진 중이다. 그러나 화려한 외양 안에는 오랜 상처와 세파에 단단하게 굳어진맨살이 있다. 지금부터 살펴볼 ‘후삼십년’ 문학은 바로 그 맨살이다.
 
질풍노도 시대
한마디로 1980년대는 질풍노도의 시대다. 사회주의 시기에 ‘지식인’은 애매한 존재였다. 시대의 주역은 ‘노농병’이었고 그 ‘동반자’였던 지식인은 좀처럼 체제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50년대 반우파 투쟁을 거쳐 문화혁명기에 이르러 지식인의 존재 기반은 극도로 위태로웠다.
 
마침내 문혁이 종결되고 개혁·개방 직후 반동으로 몰렸던 지식인들이 하나 둘 복권됐다. 농촌과 변방으로 하방당한 ‘지청(知靑:지식청년)’들도 대거 도시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사회의 중심에 선 지식인들은 잃어버린 실존적 근거를 찾아 길을 나선다.
 
80년대 문학은 ‘상흔문학(傷痕文學)’과 ‘반사문학(反思文學)’에서 시작된다. 78년 루신화(盧新華)는 문혁 시기에 반동으로 몰린 어머니와 절연한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 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괴로워한다는 자전적 소설 『상흔』을 발표했다. 문혁 직후 홍위병 세대의 심경을 잘 보여 주지만 시간적으로 문혁을 충분히 사유하지 못한 치기를 어쩌진 못했다.
 
뒤이어 나온 반사문학은 보다 성숙했다. 왕멍(王蒙)·장셴량(張賢亮)·다이허우잉(戴厚英)은 극좌노선과 관료주의가 낳은 비극적인 시대상을 깊이 있게 묘사했다.
 
그중 한국에서도 출간된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는 참회의 시각으로 망각된 휴머니즘의 가치를 불러냈다.
 
80년대 중반에 ‘심근문학(尋根文學)’이 등장했다. 당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문혁의 전면 부정’임을 감안하면 상흔문학이나 반사문학 식의 문혁 비판은 오히려 체제순응적인 면이 있다. 심근문학 작가 한사오궁은 문혁을 악마화하는 것이야말로 문혁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차단한다고 생각했다. 청년 시절의 하방 경험에 기반한 그의 소설은 홍위병과 지청이 같은 세대라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운다. 그의 세대는 아버지·스승을 반동으로 내몬 가해자이자 황폐한 변경에서 하릴없이 청춘을 허비한 피해자였다. 『귀거래』 『여자, 여자, 여자』의 인물들이 겪는 착란과 환상은 이런 분열적 시대 경험에 기인한다.
 
‘심근문학’은 분열과 혼돈으로 충만하다. ‘심근(뿌리 찾기)’이라는 모토 자체가 역설적으로 ‘뿌리’를 상실한 세대의 정신적 공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때 열렬히 신봉했던 이념과 가치가 하루아침에 ‘전면 부정’되고, 모처럼 활짝 열린 문으로 서구의 새 사상과 사조가 물밀 듯 밀려왔다. 믿었던 현대는 ‘봉건’으로 매도되고 새로운 현대가 시작됐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공황 상태에서 이들은 자신이 청춘을 보낸 농촌과 변방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청의 『장기왕』 『아이들의 왕』, 장청즈의 『북방의 강』 『심령사』는 이런 혼돈의 시대가 낳은 보석이다.
 
‘심근문학’은 형식 면에서도 가히 전위적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획일적 굴레에서 벗어나 시대가 선사한 자유를 맘껏 들이켰다. 초현실주의, 마술적 리얼리즘, 의식의 흐름, 노장사상…. 이들은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실험했다. 80년대 끝 무렵의 ‘선봉문학(先鋒文學)’은 이런 실험문학의 마지막 단계이자 90년대 문학으로 가는 과도기이다. 또한 모옌과 위화, 쑤퉁을 낳은 토양이 됐다.
 
탈정치화 시대
1990년대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지식인의 영락과 문학의 범속화다. 80년대 작가들은 혼돈의 시대에 방향을 제시할 의무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실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중도 그들을 따랐다. 그런 면에서 80년대는 문학의 전성기였다. 작가들에겐 대중의 존경과 최소한의 안락한 생활이 보장됐다. 90년대처럼 시장에 아첨할 필요가 없었다.
 
90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중국 문학의 생리를 뒤바꿔 놓았다. 위대한 작품을 결정하는 것은 이제 시장이다. 작가들은 실험을 중단했다.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은 존재가치가 없었다. 80년대 말 ‘선봉문학’으로 출발한 작가들은 ‘신사실주의’와 ‘신역사주의’라는 새 장르에 둥지를 틀었다. 둘은 같은 계열이다. 쉽게 말해 ‘사실’을 새로 쓰고 ‘역사’를 새로 쓴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실과 역사는 ‘팩트(facts)’의 다른 말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숭고한 이념을 추구했던 지난 시대와 달리 90년대 작가들은 팩트에 집착했다. 세상에서 진실한 것은 오직 하나, 순간순간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팩트뿐이다. 중국에서 이때처럼 문학이 왜소해진 때도 없을 것이다. 문학은 더 이상 숭고한 게 아니라 범속한 개인들의 범속한 일상일 뿐이다. ‘문학의 탈정치화’라는 말이 회자된 것도 이때였다. 이들은 체제를 비판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걸었다.
 
중산층의 자잘한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든 류전윈의 『닭털 같은 나날』은 신사실주의의 대표작이다. 팡팡의 『풍경』은 무의미한 삶에 유독 번득이는 생존본능을 섬세하게 그렸다. 위화도 초기의 실험을 접고 『산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같은 범속한 문체로 돌아왔다. 문혁을 그렸지만 그는 어떤 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는다. 평범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뒤에 문혁은 배경으로 깔려 있을 뿐이다. 쑤퉁은 30년대 ‘민국’ 시기를 주로 다뤘다. 그 역시 시대와 역사에 함구했다. 『쌀』은 한 용속한 인물의 동물적 본능과, 그럼에도 결국 처절하게 실패하는 운명의 냉혹함을 담았다. 왕안이의 『장한가』는 상하이 40년의 현대사를 고요히 흐르는 한 여인의 육체 속에 응축시켰다.
 
90년대의 또 다른 특징은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순문학은 소비주의 문학과 구분되는 본격 문학을 뜻한다.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가 현격했던 과거와 달리 90년대는 사회 중간층이 형성되면서 독서가 교양이 아닌 ‘소비’ 대상이 된 시기다. 왕숴의 애정물과 범죄물은 중간층을 대상으로 ‘건달문학’이란 새 장르를 개척했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TV 드라마 ‘갈망’은 90년대 ‘왕숴 붐’을 일으켰다. 한편 주원의 『나는 달러가 좋아』는 좀 다른 건달문학이다. 거침없는 욕설과 외설은 껍데기만 남은 기성세대의 엄숙주의에 보내는 조롱이다.
 
보면 볼수록 90년대는 반어적이다. 작가가 계몽자가 아닌 대중과 똑같은 범속한 ‘개인’으로 내려옴으로써 중국 문학이 대중적 저변을 넓혔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2000년대는 문학의 전국시대(戰國時代)다. 사방에서 실력자들이 득세했다. 1990년대까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순문학’은 곳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세대 문학에 속수무책이다. 무엇보다 지난 10년 세상이 너무 빨리 변했다. 기성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바링허우(80後)’ ‘주링허우(90後)’ 세대의 독서 취향을 ‘순문학’이 종잡지 못하는 사이에 새로운 문학들이 세상을 뒤바꾸고 있다.
 
가장 막강한 도전자는 단연 ‘인터넷문학’이다. 중국의 인터넷소설은 기성 문학판을 뒤흔드는 정도다. 90년대부터 시장경제가 문학의 체질을 바꿨지만 2000년대 문학에 개입하는 대자본의 경영방식은 차원이 다르다. 상하이에 본사를 세운 ‘성다원쉐(盛大文學)’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거대 연예기획사다. 수많은 작가를 ‘전속’으로 거느린 이 주식회사는 철저한 영리성 원칙에 따라 작품을 생산·관리한다. 작가를 아이돌로 띄우고 파생·부가상품으로 이윤을 극대화한다.
여기엔 이중성이 있다. 자본 증식의 욕망에 몸을 맡겨 ‘놀이’로 전락한 문학이 겉모습이라면 양극화, 권귀(權貴) 자본주의, 관료 부패, 대량 실업으로 얼룩진 중국 현실에 대한 비판과 냉소가 내면 깊숙이 산재한다. 이 상반된 양면을 ‘바링허우’의 두 원조 궈징밍과 한한이 대표한다. 23세에 잡지 ‘최소설’을 창간한 궈징밍은 2010년 ‘최만화(最漫畵)’ ‘방과후’ 등 계열사 잡지를 통합하고 수십 명의 아이돌 전속작가를 영입해 문화출판기획사를 차렸다. 반면 한한이 낸 잡지 ‘독창단’은 발간 2호만에 발매 금지됐다. 지금 그는 블로거로 활동 중이다. 중국 사회의 아픈 곳을 찌르는 그의 신랄한 문장은 2010년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지목할 정도다.






 



신흥문학에 압도당하고 있지만 ‘순문학’에도 약진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중 비페이위와 츠쯔젠은 기성문학과 다른 서사풍격으로 장편소설의 최고 권위 마오둔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90년대 문학이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들의 독백이었다면, 이들은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방식을 찾고 있다. 비페이위의 『위미』는 문혁에서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중국 사회의 상처 난 내면을 시골 소녀의 눈으로 예리하게 훑는다. 근작 『추나』에선 맹인 안마사들의 세계로 들어가 삶과 영혼의 깊이를 탐색했다. 한편 츠쯔젠은 네이멍구자치구와 러시아 국경지대를 잇는 헤이룽장성 일대를 배경으로 에벤키(Ewenki)족 100년의 부족사를 그렸다. 여성·맹인·소수민족 등 기성 서사의 변방에 있던 소수자의 시선으로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섬세하게 복원하는 이들은 ‘순문학’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작지만 주목할 흐름이 있다. 2004년 출현한 ‘저층(底層)문학’이다. 류지밍을 비롯한 작가들은 개혁·개방과 초고속 성장이 초래한 양극화·부정부패 등에 주목한다. 농민공·해고노동자·촌부·광부 등 중국 사회의 광범위한 저변을 지탱하는 저층의 삶을 서사화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위기에 몰린 ‘순문학’의 지원군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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